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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10 19:19:47

토미야마 케이

토미야마 케이
富山敬[1]|Kei Tomiyama
파일:attachment/토미야마 케이/repo9-4.jpg
이름 토미야마 케이
([ruby(富山, ruby=とみやま)] [ruby(敬, ruby=けい)], Kei Tomiyama)
직업 성우, 배우
출신지 만주국 펑톈성 안산
(現 중국 랴오닝 성 안산시)
생년월일 1938년 10월 31일
사망 1995년 9월 25일 (향년 56세)
신체 162cm, 48kg | A형
소속사 아오니 프로덕션(1976~1979)
프로덕션 바오밥(1979~1995)
활동 1960년대 ~ 1995년

1. 개요2. 소개
2.1. 출연작
2.1.1. TV 애니메이션2.1.2. OVA2.1.3. 극장 애니메이션2.1.4. 게임2.1.5. 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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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남자 성우.

2. 소개

본명은 토미야마 쿠니치카(冨山 邦親 とみやま くにちか). 만주국 펑톈성 안산 (현 중국 요녕성 안산시) 히키아게샤 출신으로 태어날 당시에는 만주국 국적을 가졌다.

매력적인 목소리로 70년대부터 주역을 굉장히 많이 맡은, 그야말로 레전드 성우. 유명한 역할로는 캔디캔디테리우스 G 그란체스터우주전함 야마토의 코다이 스스무, UFO로보 그렌다이저듀크 프리드라든가 사무라이 자이언츠의 반바 반, 타이거 마스크, 더 울트라맨히카리 초이치로 등이 있다. 그리고 이런 미남자 캐릭터 외에도 양 웬리같은 헤타레 캐릭터나 게게게의 키타로생쥐인간 같은 개그 캐릭터도 훌륭하게 소화했다. 실제로 70년대부터 80년대 초반까지는 미형 주역이 대다수이다가 80년대 말부터는 망가지는 개그 캐릭터의 비중이 늘어난다.

그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배역은 바로 말년을 함께 한 은하영웅전설헤타레 양 웬리. 작품 자체도 명작이고 연기 자체도 거의 신의 연기였지만, 특히나 양 웬리애니메이션 은하영웅전설에서 죽는 것(OVA 95년 2월 발매)[2]을 연기한 이후 본인도 95년 9월, 57세 생일을 한달 정도 남겨두고 췌장암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워낙 명연기를 보여준 성우 자신이 캐릭터와 함께 같은 해에 떠나니 당시 팬들의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 때문인지 원래라면 애니메이션 4기에도 율리안 민츠의 회상신으로 등장이 있었지만 대역을 쓰기보다는 대사가 없는 것으로 처리했다.

살아생전 성우계 굴지의 대인배로 유명했으며, 성우로써의 실력과 더불어 그 인품으로 인해 선후배 모두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는 인물이었다고 한다. 후배 성우들이 현장에서 NG를 내어도 화내는 법 없이 "괜찮아"라며 온화하게 위로해 주었다고 한다.[3]

그의 인품을 단적으로 알 수 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이케다 슈이치호리우치 켄유의 매니저와 술을 마시다가 호리우치의 매니저에게 "켄유를 불러와"라며 전화를 걸도록 지시했다. 그런데... 매니저는 실수로 호리우치가 아닌 토미야마에게 전화를 걸고 말았다. 만취한 이케다는 전화 너머의 상대가 까마득한 대선배인 토미야마라고는 꿈에도 몰라 무례를 범하게 되는데...
이케다: "나야. 이케다. 뭔 목소리를 깔고 있냐. ㅇㅇ에서 마시고 있으니까 지금 바로 나와!"
토미야마:(가만히 듣고만 있다가) "여기서 가깝긴 한데, 내일 아침 일찍 나가야 하거든. 미안해."
이케다:(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누구시죠?"
토미야마: "토미야마 케이입니다."
이케다:(당황) "실례했습니다!"
토미야마: "나도 가고는 싶은데 말이야. 미안해. 다음에 여유있게 한잔 하자고!"
이렇게, 화내기는커녕 상냥한 말을 건네는 것으로 끝났다고 한다.

절친이었던 성우 토미타 코세이에 의하면 굉장히 참을성이 강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늘 온화하며 싫은 소리를 안하지만, 그만큼 항상 스트레스와 중압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였는지 하루에 담배를 기본 3갑은 피웠으며 술도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4]

1995년 8월 18일 마루코는 아홉살 녹음 직후에 "눈 상태가 안좋다"며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췌장암 말기임이 밝혀졌다. 평소에 워낙 스케쥴이 바빴고 만사를 제치고 일을 최우선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발견이 늦어졌고, 이미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해져 있었다고 한다.[5] 결국 그 해 9월 25일 사망하였다. 향년 56세라는 아까운 나이였기 때문에 모두를 안타깝게 했다. 배우자가 있었지만 토미야마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상주는 아버지가 맡았다고 한다. 중국 출신 히키아게샤로서 중국인 캐릭터가 유작이 되었으니 중국으로 시작해서 중국으로 끝난 인생이라고 볼 수 있다.

사후엔 그가 맡았던 역할은 야마데라 코이치가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음색은 토미야마 케이랑 매우 다르지만 야마데라 코이치가 워낙에 열심히 해서 팬들도 인정해주는 분위기다.

2007년 제2회 성우 어워드부터 미디어 등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인지도를 높인 성우에게 주는 토미야마 케이 상이 수여된다. 2회부터 4회까지는 남녀 구분없이, 5회부터는 남성 성우[6]가 수상한다. 각각 후루야 토오루, 야마데라 코이치, 미즈키 나나, 코야마 리키야, 호리우치 켄유, 미츠야 유지, 미키 신이치로, 오오츠카 아키오, 모리쿠보 쇼타로, 나카오 류세이가 수상했다.[7]

현 일본 남자 성우의 거목이자 레전드인 카미야 아키라후루카와 토시오, 이노우에 카즈히코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선배로도 유명하다. 특히 후루카와 토시오는 자신의 평소 패션 스타일에 대해 토미야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이노우에 카즈히코 말로는 "토미야마 씨는 목소리 톤은 다 똑같다. 그런데 연기력이 뛰어나 어떤 역을 해도 어울린다. 두꺼운 대본도 한 번만 보면 바로 연기를 한다."라며 진심으로 존경했다고 한다. #, #

2.1. 출연작

2.1.1. TV 애니메이션

2.1.2. OVA

2.1.3. 극장 애니메이션

카츠동맨

2.1.4. 게임

2.1.5. 외화



[1] 한국식으로 읽으면 "부산경"이다.[2] OVA 82화.[3] 토미야마가 현역이던 시절에는 지금처럼 디지털 녹음 시스템이 갖추어진 것도 아니었기에 NG가 한번 나면 테이프의 교체나 장비 재정비 등으로 어마어마한 시간이 낭비되었었다. 때문에 NG를 내는 후배에 대해 굉장히 엄격했고, 신인성우가 NG를 냈다가 욕설이나 구타를 당하는 것도 일상다반사였다고 한다. 그런 분위기를 생각해보면 토미야마는 상당히 이례적인 케이스라 할 수 있다.[4] 팬들 사이에서는 이 때문에 췌장암에 걸린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5] 사실 병세 자체는 1994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고, 눈에 띄게 컨디션이 저조해지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 힘들어질 정도였다. 하지만 토미야마는 "내가 쉬면 많은 분들께 민폐를 끼친다"며 아픈 몸을 이끌고 억지로 일을 계속했다고 한다.[6] 5회부터 여성 성우는 타카하시 카즈에 상이 신설.[7] 참고로 21년도의 토미야마 케이상의 수상자는 스즈무라 켄이치인데 스즈무라는 은하영웅전설 DNT에서 양 웬리를 맡고 있다. 토미야마의 대표작이자 말년을 같이한 OVA의 양 웬리라는 점을 생각해볼 때 뭉클한 점이다. 일종의 세대교체라고도 볼수도 있다.[8] 사실 첫 성우 출연은 1957년작 겐쿠로모노가타리지만 실질적으로 준레귤러를 맡게 된 것은 이 작품이다.[9] 1화~33화까지. 토미야마의 첫 추연 캐릭터. 34화부터 최종화인 52화까지 이노우에 마키오가 맡았다.[10] 토미야마의 이름을 알린 출세작. 단, 일부 화 한정으로 모리 카츠지가 맡았다.[11] 토미야마 최고 대표작 중 하나. 이 작품을 기점으로 전성기를 맞이했다.[12] 사후 아오노 타케시가 이어받았다. 그러나 이후 아오노 타케시마저 타계함에 따라 시마다 빈이 이어받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