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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7 18:12:35

트롤리 딜레마

1. 개요2. 역사3. 사고 실험례4. 사람들은 보통 어떻게 반응하는가?
4.1. 실험 결과4.2. 해석
5.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올바른가?
5.1. 반대 (스위치를 당기지 않는다 / 사람을 밀지 않는다)5.2. 찬성 (스위치를 당긴다 / 사람을 민다)
6. 적용 가능한 예시
6.1. 전쟁6.2. 자율 주행 시스템 설계
7. 인터넷 밈8. 변형 및 유사 문제
8.1. 깊은 관계가 개입된 트롤리 문제8.2. 장기 이식 사례8.3. 우는 아기 딜레마
9. 대중매체10.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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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동 장치가 망가진 기차가 선로 위를 달리고 있다. 선로 위에는 5명의 사람이 있어 선로를 바꾸지 않으면 5명이 죽게 되고 선로를 바꾸면 5명은 살지만 바꾼 선로에 있는 사람 1명은 죽게 된다. 분기기 스위치는 당신 앞에 있다. 스위치를 어떻게 할 것인가?
트롤리 딜레마(Trolley dilemma), 트롤리 문제(Trolley problem) 또는 번역해서 광차 문제(鑛車問題)는 윤리학에서 가정하는 사고 실험의 하나로, 제동 장치가 고장 나 정지할 수 없는 탄광 수레(trolley, 광차)[1]가 소수 또는 다수의 사람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을 경우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결론적으로는 트롤리 문제의 논점은 소수를 위해 다수가 희생하는 것에 대해, 혹은 다수를 위해 소수가 희생하는 것에 대해 윤리학의 관점에서 올바른 선택을 내릴 수 있는가이다.

2. 역사


캡션

영국의 철학자 필리파 풋(Philippa Ruth Foot, 1920년 10월 3일 – 2010년 10월 3일)이 먼저 제시했으며 주디스 자비스 톰슨 및 이후의 피터 엉거와 프랜시스 캠에 의해 체계적으로 분석되었다. 본래 여기서 말하는 trolley는 광차로 번역되는데, 아마도 본래 mine tram, trolley 등을 의도한 것 같다. 어차피 구체적인 설명이 없으니 대부분 좀 큰 열차 같은 걸로 표현되곤 한다. 그리고 광차라고 한다면 본래 희생양들은 광부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파생된 시나리오들에서도 주로 인부(worker)들로 나오는 것에서 그 흔적이 있다. 물론 일반인들은 철로 위에 있을 수 있는 개연성이 별로 없기에 그런 가상의 인부들만 (불쌍하게도) 사고 실험의 주재료로 쓰이는 것 같다.

실제로 광차들은 브레이크가 자주 고장 나기도 했기에 정말로 있을 법한 현실적인 사고 실험이었다. 광차에 부딪혀도 당연히 위험하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전차가 달려드는 것보다는 사정이 나을 수도 있다.

딜레마에 대한 질문으로서,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극단적이고 때론 억지스러운 설정이 추가된다. 이런 질문들이 현대 윤리학을 배우는 이의 사고를 확장시킨다.

사실, 트롤리 문제가 정립되기 전에도 역사적으로 유사한 사고 실험은 형법학계에서 널리 다루어졌다. 특히 대륙법계의 법전에서 이러한 요소가 엄밀히 고려되었다. 고전적으로는 카르네아데스스토아학파의 윤리 이론의 모순을 지적하기 위해 만든 카르네아데스의 판자라는 문제가 얽혀 있었다. 전통적 철학의 영역 밖에서도, 이 문제는 신경 윤리학에서 비중 있게 다루어진다.

3. 사고 실험례

아래 사례들은 모든 법적 책임(도덕적 책임은 아니다)을 무조건 면한다는 가정하에 읽어보길 바란다. 트롤리는 기차의 일종이라 생각하면 편하다.

출제자에 따라선 선로에 사람이 묶여있거나 피할 수 없는 게 어색하다고 생각할 경우 철교나 터널 공사 중이라 인부들이 스스로 피할 방법이 없다고 가정하기도 한다.

4. 사람들은 보통 어떻게 반응하는가?

트롤리 딜레마에 접근하는 한 가지 방식은 심리학적 관점을 취하는 것, 즉 '무엇이 옳은 반응인가?'를 따지는 게 아니라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는 도덕 심리학의 문제이며, 실험을 비롯한 다양한 심리학적 기법을 통해 탐구해 볼 수 있다.

4.1. 실험 결과

마크 하우저(Marc D. Hauser)가 2007년에 500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온라인 설문 조사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왔다. (다만 해당 연구자는 2010년에 여러 건의 연구 부정이 적발되었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NYT )

실험 결과, 사례 1[3]에서는 피실험자들의 89%가 찬성을 선택한 반면 사례 2에서는 단 11%만이 찬성을 선택했다. 이러한 반응은 성별, 교육의 차이, 문화의 차이와 상관없이 공통적이었다. '트롤리'가 뭔지 모르고, 공식적인 종교가 없는 중앙아메리카의 쿠나족이라는 원시 부족에게 '카누에 탄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악어 떼'란 형태로 번안해서 질문했을 때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이런 자극적인 주제를 가진 학술적 연구를 불특정다수에게 노출되는 이런 사이트에 공개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일종의 암묵적인 지시로 작용하게 될 우려가 있다. 해당 연구는 극단적인 주제를 사용해 사람들을 사로잡히게 한다. 무엇이 옳은가? 를 생각하는 것이 아닌 사람들의 반응을 보는 연구이니 사례1과 2 모두 잘못됐다는 반응도 가능하다.

4.2. 해석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는 두 사례가 ‘다섯 사람을 구하기 위해 한 사람을 죽이는’ 내용을 공통적으로 가짐에도 불구하고 피실험자들이 트롤리 사례 1은 도덕적으로 허용 가능한 것으로, 사례 2는 허용 불가능한 것이라 보는 도덕적 반응의 차이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한편 문화적 종교적 배경과 상관없이 어느 사회에서나 구성원들이 모두 공통적인 통계적 답변율이 나왔다는 점에서 인간의 윤리성은 종교와 큰 관련이 없음을 증빙하기도 하며 이는 무신론 담론에서도 자주 거론되는 예제이다. 즉 종교를 안 믿는 사람은 비윤리적이라거나 종교가 없어지면 세상이 타락할 것이다와 같은 주장에 반론하는 데 인용된다. 리처드 도킨스 역시도 이 실험을 절찬리에 인용하고 있다. 이런 논쟁에 관심이 있다면 도덕과 종교의 관계 문서도 같이 보자.

실험 1과 실험 2에서 태도가 변하는 73%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은 타인의 죽음에 얼마나 직접적으로 개입하느냐, 그리고 죽음이 얼마나 불가피한가이다.

첫 번째 사례에서 내가 죽음에 영향을 미치는 방법은 '전환기를 조작한다'이다. 직접적으로 사람을 죽인다는 부분이 덜하다. 그리고 더 중요한 점은, 희생될 수 있는 6명은 모두 철길 레일 위에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별도로 다른 레일 위에 있는 한 명은, 다른 5명 중의 한 명이나 마찬가지인 가치를 가질 뿐이다. 즉 개입하지 않았으면 확실하게 5명이 죽었을 상황 대신 개입하여 5명을 살린 상황을 택했다고 해석할 여지가 충분하다.

두 번째 사례에서 희생되는 1명은 철길 위에 있지 않다. 그는 선로 밖의 외부자이고, 내가 개입하지 않는다면 확실하게 죽음의 위험에 근접하지 않는다. 이 사람을 밀어 넣어 죽이는 게 나머지 5명을 살리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조건이 걸려 있기에 애매한 부분은 있지만, "선로"라는 고립계 밖에 존재하기에 엄밀히 따지면 이 사람이 죽는 것보다 나머지 5명이 예정 혹은 운명대로(?) 죽는 것이 덜 이상하다고 볼 여지가 있다. 그리고 죽음으로 밀어넣는 방법도 차단기 조작 같은 한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손으로 직접 밀어 넣는 행동이다. 이 경우 나의 죄책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4] 여기에서 직접 미는 행동을 배제하고 핸들을 돌려서 발판을 열어 떨어뜨린다면 죄책감이 덜한가 하는 식으로 사고를 확장해 볼 수도 있다. #

또한 사례 1과 사례 2는 희생되는 한 사람의 희생 정신에 따라서도 죄책감이 달라질 수 있는데, 사례 1은 자신에게 선택권이 없으므로 그 사람도 다섯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으나, 사례 2의 옆 사람은, 자기보다 다른 다섯 명이 더 중요하다는 희생정신이 있었다면 자발적으로 본인이 뛰어들어서 트롤리를 막았을 것이기 때문에, 사례 1의 경우는 '자신이 다섯을 대신하여 혼자 희생하기를 바랬을지도 모르겠지'라고 죄책감을 조금 회피할 수 있는 것과는 달리, 사례 2의 옆 사람은 최소한 5명의 목숨보다 자신의 목숨을 더 중요시하기에 희생하지 않을 것이 명백한 사람을 강제로 희생시킨다는 차이가 있으므로 죄책감은 사례 2가 보편적으로 훨씬 크다.

5.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올바른가?

"실제로 사람들이 트롤리 딜레마에 대해 어떤 직관을 갖는가", "실제로 어떻게 행위할 것인가"라는 문제와는 독립적으로 각 선택지를 옹호하는 윤리학적 논증이 제시될 수 있다. 1970년대부터 관련 문제에 대해 무수한 연구가 이루어졌으며, 각 입장을 옹호하는 가장 단순한 형태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5.1. 반대 (스위치를 당기지 않는다 / 사람을 밀지 않는다)

사례 1에서 '선로 전환기를 당기지 않는다' / 사례 2에서 '무거운 사람을 밀지 않는다'가 각각 더 도덕적으로 올바른 결정이라는 주장을 옹호하는 한 가지 방식은 "피해를 야기하는 것""피해를 방치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경중이 다르다는 입장에 호소하는 것이다. 이를 옹호하기 위해 원시적 형태의 공리주의에 대한 기초적인 반대 사례인 후술할 "장기 이식 사례"가 원용될 수 있다.

이때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죽이는 것은 어쨌든 나쁘다'를 옹호하는 한 가지 방안은 "한 사람의 죽음을 적극적으로 '야기하는 것'은 많은 사람이 죽는 것을 결과적으로 '방치하는 것'보다 비도덕적이다"라는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이는 법률에서 부작위범을 취급하는 방식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이러한 입장을 트롤리 딜레마에 적용해 보자. 그렇다면 '스위치를 당기지 않는다 / 사람을 밀지 않는다'는 다섯 사람이 죽는 것을 방치할지언정 한 사람을 적극적으로 죽이는 것을 방지한다는 점에서 보다 도덕적이다.

일례로 주디스 톰슨은 '스위치를 당긴다 / 사람을 민다'는 선택지는 "길 가던 사람의 지갑을 빼앗아서 자선 단체에 기부하는 것"과 비견된다고 논한다. 만약 후자가 도덕적으로 그르다면, 전자 또한 도덕적으로 그르다는 것이다.[5]
Fitzpatrick(2009, 640쪽)은 이 원칙에 바탕이 되는 사고를 황금률 (Golden Rule)로 보는데, 'B가 A 자신에게 하기를 의욕하는 방식으로 A는 B를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B가 나(A)의 돈을 훔쳐서 자선 단체에 보내는 것은, 기부를 하고 싶지 않은 내가 동의하지 않을 일이기 때문에 잘못된 일이라면 그러한 내가 B의 돈을 훔쳐서 (곧, 그에게 침해를 가해서) 자선 단체에 보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더 쉽게 말해서 '내가 당하기 싫은 일이라면 남에게도 하지 않는다'라는 것. 마찬가지로 제삼자가 트롤리를 내게로 보내는 것은, 죽고 싶지 않은 내가 동의하지 않을 일이기 때문에 잘못된 일이라면 그러한 내가 지선에 있는 1명에게로 트롤리를 보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6]

5.2. 찬성 (스위치를 당긴다 / 사람을 민다)

사례 1에서 '선로 전환기를 당긴다' / 사례 2에서 '무거운 사람을 민다'가 각각 더 도덕적으로 올바른 결정이라는 주장을 옹호하는 한 가지 방식은 공리주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일반적인 형태의 공리주의에서 '작위로 인한 피해'와 '부작위(omission)로 인한 피해' 간의 차이는 도덕적으로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입장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대표적인 윤리학자로는 피터 싱어가 있다. 이를테면 싱어는 다음 두 시나리오를 비교한다.
싱어의 주관에 따르면 사례 2의 선진국 시민은 사례 1의 최빈국 시민보다 도덕적으로 덜 비난받을 자격이 없다. '스위치를 당긴다 / 사람을 민다'가 도덕적으로 허용되는 것 역시 같은 이치라는 것이라 주장했다.

6. 적용 가능한 예시

6.1. 전쟁

전쟁과 같이 고도로 예측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하는 때에, 트롤리 딜레마와 유사한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이 펼쳐지기도 한다.

역사 속의 전쟁 가운데에는 남북 전쟁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당시 북군의 명장이었던 율리시스 S. 그랜트는 사석에서 굉장히 인간미 있고 좋은 사람이라는 평을 받았지만, 그가 장군으로서 취한 전략은 단호한 공세였다. 로버트 E. 리에 의해 남군과 북군 간 전력 교환비가 처참했던 상황임을 감안하면 전선의 유지를 위해 그냥 죽으러 가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병사가 무조건 죽을 상황임에도 전쟁의 승리를 위해 진군을 명령했던 것이다. 강대한 위나라를 상대로 꾸준한 북벌을 추진했던 제갈량, 강유 역시 마찬가지의 상황인데, 결국 엄청난 병사를 죽게 만든 제갈량은 현대까지도 명신과 충신의 대표 격으로 꾸준히 언급된다.

'전쟁의 승리(국가 보전)'와 '일개 병사의 목숨'의 비교가 부당하다고 느껴질 수 있다면 지연전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퇴각을 하게 될 경우 소규모 부대가 후방에 남아 추격해 올 적의 대군을 묶고, 그렇게 번 시간을 이용해 본대가 안전히 철수하는 방법을 쓰게 된다. 이렇게 남겨진 소규모 부대의 경우 생존 확률이 극히 떨어지며, 이것이 극단적으로 나타난 사례가 시마즈의 퇴각이다.[8] 결국, 전쟁에서 부대를 지휘하는 사령관이 맞이하는 갈등은 트롤리 딜레마와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6.2. 자율 주행 시스템 설계

JTBC 뉴스 팩트체크
극단적인 상황에서 한정된 시간 내로 어느 쪽이 옳은가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는 점은 AI 시대가 개막한 뒤 자율주행 자동차에 관한 연구에서 법적, 윤리적, 사회적 쟁점으로 부상했다. 차량 충돌 등 교통 사고에서 어떤 선택을 하든 운전자나 제3자의 피해를 발생시킬 수밖에 없다면 AI가 무슨 행동을 우선적으로 취하도록 설계해야 하는가, 결과가 발생한 뒤 피해의 책임은 누가, 어느정도로 져야 하는가가 대표적인 예이다.

법적인 측면의 경우, 현재 자율주행 차량을 개발하는 대다수 기업에서는 AI가 취한 행동에 탑승자가 아니라 자신들이 책임질 수 있다고 홍보한다. 그러나 자율주행 자동차가 더욱 진화하고 상용화되었을 때 정책이 어떻게 변할지는 알 수 없다. 법학계에서도 이에 관한 제조물책임법 및 민형사상의 책임에 관한 논문이 여럿 작성되고 있다.

트롤리 딜레마는 공동체의 이득과 윤리 중 어디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 논란이지만 무인 자동차의 경우 공동체의 합의에 중점을 두게 된다. 극단적인 예를 들면 AI의 사고 발생 처리 과정 프로세스에서 운전자를 희생시킬 것인가 타인을 희생시킬 것인가 선택해야 할 경우. 예컨대 자율 주행 중인 차량을 다수의 무단 횡단 하는 사람들이 가로막았을 경우 이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핸들을 꺾으면 운전자가 확실히 사망하게 된다면? 공리주의 가치를 따르면 더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운전자를 죽이는 게 옳다. 하지만 자율 주행 차량은 상품이기 때문에 타인을 살리기 위해 나를 죽이는 상품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적 합의를 통해 도로교통법을 지키는 한도 내에선 운전자를 우선 보호하는 방침으로 의견이 수렴되고, 운전자를 살리기 위해 다수의 무단 횡단자를 죽이는-사회 유지를 위해 공동체의 가치 손해를 감수하는 방법을 선택할 가능성도 있다.

데이터 수집을 통해 어떤 상황에서나 옳고 누구나 동의하는 자율 주행 인공지능을 완성하면 해결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모두를 만족시키는 규칙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누구부터 살려야 할지에 대해 MIT 연구진이 전 세계 230여 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해서 '네이처'에 발표했다는 기사에 따르면, 설문 결과 유모차 끄는 사람의 우선순위가 가장 높고, 그 뒤를 이어 소녀, 소년, 임신 여성이 이어졌으며, 최하 순위로는 개, 범죄자, 고양이의 우선순위가 가장 낮았다. 이렇듯 대중 매체와 일반적인 도덕 관념에선 사고 발생 시 어린이부터 살리는 쪽에 찬성하는 편이다.
자율 주행이 상용화될 경우, 한문철TV의 위 사고 영상과 같은 상황이 벌어질 시 AI가 '그냥 직진 추돌해서 택시와 저속 충돌 함으로써, 블랙박스 차량(레이) 운전자가 약간의 부상을 입을 가능성' vs. '아예 약간의 부상 가능성도 허용하지 않고 인도로 차량을 틀어 사고 사례와 같이 행인을 치어 사망 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에 대하여 어떤 가치를 우선시하도록 프로그래밍할 것인지에 대하여 윤리적 판단에 직접적으로 직면할 수 있다.

7. 인터넷 밈

파일:trolley1.jpg
이 딜레마를 그린 그림이 변형되어 유머 소재로 쓰이기도 한다. 원본 이야기에선 사람들이 선로 위에서 작업을 하는 중이라고 묘사되어 있는데 이 그림에서는 누군가가 선로에 묶어둔 듯한 모습으로 그려진 게 포인트.
파일:external/i3.kym-cdn.com/252.jpg 파일:복선 드리프트.png
멀티킬 복선 드리프트[9]
파일:external/i0.kym-cdn.com/496.gif 파일:external/i0.kym-cdn.com/28a.jpg
더 월드[요약] Baneposting[번역1]
파일:Trolley_05.webp 파일:Trolley_06.jpg
돈의 힘 실존주의적 트롤리 문제[번역2]
파일:Trolley_07.jpg 파일:Trolley_08.jpg
죄수의 딜레마 트롤리 버전[번역3] 넌 내 경고를 무시했었지[번역4]
파일:Trolley_09.jpg 파일:Trolley_10.jpg
진짜 흑막[번역5] 모두가 5명을 살리고 1명을 죽인다면...[16][번역6][18]
파일:RamanujanTrolley1.jpg 파일:RamanujanTrolley2.jpg
해석학적 트롤리 문제[19] 다른 버전[20][번역7]
(모바일 환경에서는 표가 잘려 보일 수 있으니, 이미지가 세로로 한 줄밖에 보이지 않는다면 화면을 왼쪽으로 스크롤해 주십시오.)

4chan 등의 해외 사이트에서 이 딜레마를 다룬 그림과 함께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이 올라왔는데, 사람들이 단체로 온갖 기상천외한 해답을 내놓다 못해 아예 어처구니 없기 짝이없는 답변 및 파생 문제들을 쏟아내며 '트롤 딜레마'(Trolling Dilemma)로도 불리는 인터넷 밈으로 만들어냈다. (Know Your Meme 항목, FunnyJunk의 예, 개드립넷의 예 1 2, 유튜브 쇼츠) 왜 진작에 알려주지 않았냐며 화풀이하는 건 기본, 스파이더맨이 도와주는 일도 있고[22], 심지어는 만악의 근원을 제거하는 방법도 있다. (링크)[23]

이러한 수준의 문제에 대한 밈적인 대답은 의외로 그 역사가 오래되었는데, 스타트렉제임스 커크의 해답이 그 예시이다. 비유하자면 제3의 새로운 철길을 그린 다음 거기로 달리게 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했다고. 사실 트롤리 딜레마 말고도, 진지한 사고 실험을 비꼬아 유머로 승화시키는 일은 흔하다.

링크(영어)를 들어가 보면 트롤리 딜레마의 온갖 배리에이션을 만들어놓고 고르게 하며, 선택한 사람들의 비중을 보여준다.

8. 변형 및 유사 문제

8.1. 깊은 관계가 개입된 트롤리 문제

기존의 트롤리 문제는 묶어있는 1명과 5명이 모두 타인이라는 전제로 하나, 묶여있는 1명이 완전 타인이 아닌 친구, 가족 등 깊은 관계가 있는 사람일 경우에 대한 변형 문제도 있다. (#When Your Loved One is On the Trolley Track: A Study of Moral Dilemma When Close Relationship is Involved) 즉 타인인 5명을 구하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 1명을 희생시킬 수 있냐는 문제다. BuzzFeed에서는 '사례3'으로써 이 문제를 소개했다.#

이를 잘 풀어낸 예시가 2013년 단편 영화 Most[24]로, 기차가 다니는 다리를 내리는 일을 하던 직원의 아들이 아버지 일을 도와주려다 선로에 끼이는데, 다리를 내리면 아들이 죽게 되지만 내리지 않는다면 수많은 열차 탑승객들이 죽게 된다. 그러나 결국 아버지는 다리를 내리며 자신의 아들이 죽는 대신 수많은 탑승객들을 살리는 선택을 하게 된다.

위 BuzzFeed 영상에서 한 인물은 '선로가 5명을 향하는 건 내 잘못이 아니므로 그대로 놔둬서 가족 1명을 살리겠다'라고 답하기도 하였다. 사실 트롤리 딜레마에서 아무것도 개입하지 않았을시 죽는 쪽이 어디인가 하는 '기본 값'의 상태도 꽤 중요한 요소인데, 여기서 또 다른 기출 변형으로 이미 선로가 향하고 있던 게 사랑하는 사람 1명인 경우도 있다. 즉, 이 경우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원래 죽지 않을 운명인 5명의 목숨을 앗아 가야 하는 문제이다. 혹은 아무런 선택을 하지 않을 경우 두쪽 다 죽고, 개입을 해서 선택을 해야지만 그나마 한쪽을 살릴 수 있는 문제도 있다.

8.2. 장기 이식 사례

장기 이식 사례
건강한 신체를 가진 한 사람이 병원에 입원했다. 그런데 그 병원에는 지구상에서 전쟁을 없앨 수 있는 위대한 정치가, 대부분의 질병을 없앨 수 있는 의학자, 우주의 비밀을 밝혀낼 과학자, 인류의 기술 수준을 한 단계 도약시킬 수 있는 공학자가 각각 시한부 질병으로 입원해 있다. 이들 4명의 위인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건강한 신체를 가진 사람의 장기를 떼어 이식하는 것이다. 이때 장기를 뗀 건강한 사람은 죽는다.

당신은 이들 환자를 담당하는 의사다. 병원의 보안이 워낙 잘되어 있어서 건강한 입원 환자의 장기를 모두 떼어내서 죽인다고 하더라도 이는 외부에 절대 알려지지 않고, 곧 사회에 불안을 절대 초래하지 않는다고 가정하자. 단순한 형태의 행위 공리주의에 따르면 이때 당신은 그 건강한 환자를 죽여서 장기를 네 명의 위대한 사람에게 이식하는 것이야말로 도덕적이다.

"다수의 생존이 무조건 옳다는 식의 숫자가 전부일 뿐인 논리대로라면, 멀쩡한 사람 1명을 강제로 잡아다 그 장기들을 각각 떼어서 수술이 필요한 사람들한테 나눠서 여러 사람의 목숨을 살려도 되는거냐" 라는 식으로 공리주의적 판단에 대한 반례로 나오는 문제이다. 넷플릭스 영화 나의 마더에서도 인공지능 마더가 주인공의 윤리성을 실험하기 위한 문제로 이를 언급한다. 이쪽은 의사가 멀쩡한 사람을 죽이는 것 대신 일부러 치료를 늦춰서 죽음을 유발하는 문제로 변형된다.
의사에게 다섯 명의 환자가 있고 각각 다른 장기를 이식받아야 하는데 당장 병원에 적합한 장기가 없어, 어느 날 생명이 위험한 여섯 번째 환자가 들어왔어 새 환자는 치료 가능하지만 마침 다른 다섯 환자에게 맞는 장기가 있지 의사가 치료를 늦춘다면 새 환자는 죽겠지만 그의 장기로 다른 환자 다섯 명을 살릴 수 있어 의사가 새 환자를 치료하면 한 사람은 살리겠지만 다른 다섯 명은 죽겠지, 의사가 취해야 할 최선의 행동 방침은 무엇일까? - 나의 마더

여기서 주인공인 그 다섯 명이 착한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묻는데, 만약 그렇게 해서 살린 사람이 살인마여서 후에 다른 사람을 죽인다면 더 큰 피해를 야기하게 되는 것이므로 이식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한다.

8.3. 우는 아기 딜레마

비슷해 보이는 도덕적 딜레마로서 우는 아기 딜레마(crying baby dilemma)가 있다.
인종 청소 중인 적 군인들의 수색으로부터 들키지 않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덤불 속에 한데 모여 숨을 죽이고 있는데, 한 주민이 데려온 아기가 난데없이 울기 시작한다. 이 아기를 가만히 두면 군인들이 주민들을 전부 찾아내 죽이겠지만, 그런 상황을 막으려면 그 아기를 목 졸라 죽여야만(혹은 울지 말라고 입을 막으면 숨을 못 쉬어서 질식사)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내용. 요약하자면 아기 1명 죽기 vs 아이를 포함한 모두가 죽기의 상황이다.
비슷해 보이지만 우는 아기 딜레마와 트롤리 딜레마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 트롤리 딜레마와 달리 어느 선택지든 아기는 죽는다. 다만 후자는 아기가 타인에 의해 사망하기에 양심의 가책은 없을 것이나, 전자는 자신이 직접 적극적으로 아이의 죽음을 유발시킨다는 점 때문에 사람으로서 고뇌하게 만든다. 또한 어느 선택지를 고르든 선택자는 안전한 위치에 있는 트롤리 딜레마와 달리, 우는 아기 딜레마는 선택자 본인의 목숨까지도 선택에 달려있다. 따라서 '타인 5명을 구하기 위해 타인 1명을 희생했다' 같은 대의명분으로 해석할 수 있는 트롤리 딜레마와 달리 후자의 선택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아이를 죽였다는 죄책감으로 발현될 수 있다.

우선 수학적으로 바라보면 트롤리는 X와 5Y의 값 비교지만 우는 아기는 n이 양수인 X + nY > X 로 명확하게 구분된다. 또한 트롤리 딜레마와 달리 우는 아기 딜레마는 시행자의 안전이 시행자의 행위와 크게 결부되어 있다. 우는 아기 딜레마는 아기를 살리는 선택을 해도 아기는 물론, 시행자를 포함한 전원이 죽지만, 트롤리 딜레마는 어느 쪽을 택하든 살리는 쪽은 확실히 살릴 수 있다. 개인의 안위는 물론이거니와 전체의 안위가 달려 있는 상황이 우는 아기 딜레마인 만큼, 딜레마라기보다 현실적인 비극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런 딜레마는 종종 발생한다. 남의 아기가 아니라 자신의 아기라 할지라도 죽일 수밖에 없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 논픽션 저서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서도 이런 상황이 서술된다. 군인들로부터 들키지 않기 위해 주민들이 숨어있는데, 갑자기 아기가 울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달래서 울음을 멈추게 하려 했지만 그럼에도 계속 울자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던 아기 엄마는 결국 아기를 물속에 처박았다. 이내 아기는 조용해졌고, 이때 아기 엄마는 물론이고 주민들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탈북민의 사례중에도 비슷한 경우가 있다. 밤중 목선을 타고 바다를 건너 탈북하던 주민들 중에 아기가 있었고, 갑자기 아기가 울자 발각될 위험에 처했다. 결국 아기 엄마는 눈물을 머금고 아기를 바다에 던졌고 주민들은 들키지 않고 탈북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9. 대중매체

예시의 상당수는 우는 아기 딜레마 등 트롤리 딜레마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으므로 주의해서 읽기를 바란다. 트롤리 딜레마가 성립하려면 자신의 선택의 결과가 자신에게 불이익을 주어서는 안 되고, 희생이 되는 대상 모두가 자신과 관련이 없어야 한다.

선술한 '우는 아기 딜레마'와 더불어 전 세계를 막론하고 전쟁을 배경으로 한 창작물에서 클리셰로 자주 등장하는 편이다. 우는 아기 딜레마란, 우는 아이를 그냥 두느냐, 죽여서 적에게 발각당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느냐를 선택하는 도덕적 논제인데, 이 경우는 선택자가 아기를 죽이지 않으면 선택자 본인도 죽는다. 따라서 선택의 결과가 선택자 본인에게 불이익을 주기 때문에 트롤리 딜레마와는 결코 동일하지 않다.

우는 아기 딜레마를 트롤리 딜레마에 대입하자면, 선택자가 1명을 희생하느냐 5명을 희생하느냐를 선택해야 하는데, 선택자의 선택이 널리 공개되어 보복 가능성이 높은 경우가 된다. 그럴 경우 대개 5명의 유가족이 1명의 유가족보다 많기 때문에 1명이 희생하도록 선택하는 편이 선택자에게 일반적으로 유리하다. 반면, 사회적 신분 차이가 있어 1명이 권력자의 자식인 반면, 5명은 보육원의 고아 5명이라면 고아 5명이 희생하도록 선택하는 쪽이 선택자에게 당연 유리하다. 여기서에만 봐도 알 수 있듯, 선택자의 안전이 개입되는 순간 트롤리 딜레마는 그 의미를 상실한다.

또한 희생이 되는 대상이 선택자와 관련이 없어야 한다. 예를 들면 하나뿐인 선택자의 외동아들을 죽게 하느냐, 그 외 다른 사람을 죽게 하느냐의 선택지가 있다. 이 역시, 희생자와 선택자의 감정적 결합이 끼어드므로 트롤리 딜레마가 상정하는 도덕적 의문에서 동떨어진 문제가 된다. '내 친구니까 살려야 해.', '내 자식이니 희생해야 해.' 이런 시각이 나오는 시점에서 이미 트롤리 딜레마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이것 역시 선택자의 (감정적인) 불이익이 선택자의 선택에 결부되었다고 볼 수 있다.

10. 여담

사실 선로 전환기를 수동 조작할 것이라면 이물질 등을 이용해서 탈선시키는 것도 방법이다. 트롤리는 부서질지언정 사람은 다치지 않을 수 있으니까. 이렇게 대답할 경우 트롤리가 무인이 아닌 승객이 타고 있다는 전제를 붙여야 한다.


하버드 대학교에서도 비슷한 질문과 다소 획기적인 답변도 나왔다.[30]

현실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상대가 입는 영구적, 본질적 피해의 양을 고려해야 한다. 다섯이 찰과상에 한 명이 복합 골절이라면 찰과상을 택하는 게 더 낫지 않겠는가? (다만 이래도 골 때리는 경우는 있는데, 다섯이 일상생활 불가능한 영구 장애에 한 명이 즉사라면 생명의 존엄성 그 자체를 위주로 생각할지 삶의 질과 죽음까지의 덜 고통스러운 여정을 위주로 생각할지 딜레마가 생긴다.) 애초에 그렇게 선택할 만한 일을 만들지 않게 위험성을 없애도 될 것이다. 시정 다음에는 꼭 예방 조치가 수반되어야 한다.

실제로 유튜브 채널 Vsauce에서 이 실험을 진행하였다.
결과에 대해서 말하자면 시뮬레이터 실험 상황(유튜브 링크와 비슷한 경우, 단 이쪽은 링크처럼 디테일하지는 않고, 그냥 인터넷상으로 영상과 가상의 제어 컨트롤을 보여주며 테스트하는 것.)의 경우 피실험자마다 다르겠으나 통계처럼 비율상 1명 쪽으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넷상으로 하는 것이기에 현실감이 떨어지는 게 영향을 미친다. 알다시피 실제로 실험한 유투브 영상에서는 그냥 그 자리에 얼어버린 사람들이 많았고 1명 쪽으로 전환한 사람들도 전환 직후부터 패닉 상태였다. 아무래도 시뮬레이션이나 설문이 현실과 가까울수록 얼어버리는 비율이 높고, 이론적인 상황(설문 조사)과 가까울수록 전환하는 비율이 높은 듯하다.

그게 아닌 그냥 현실의 사고 사례집에는 아직 전례가 없는 상황이긴 하나, 사고 실험을 해 보자면 관제사가 CCTV로 직접 보는 경우보다는 배선도 형태로 개략적으로 된 중앙 통제 시스템의 화면을 보므로 그냥 그 당시에 연결되어 있었던 선로 쪽의 사람이 죽을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러니까 원본 문제의 경우 1명인 경우보다는 5명 쪽이 죽을 확률이 높다. 왜냐하면 시스템에 선로 연결 상황은 표시되지만 선로 위에 뭐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른다.[31] 그리고 현장의 선로 전환기 앞에 사람이 있다고 한들 요즘 선로 전환기는 수동 전환 레버가 없는 경우가 많다. 굳이 수동으로 전환하려면 키로 내부를 열고 핸들을 23바퀴를 돌리고 쇄정해야 하는데 그 전에 선로 전환기를 통과할 것이다.

현실에서는 오히려 브레이크와 연관될 가능성이 높다. 전차를 급제동하면 안에 탄 사람이 넘어져 부상을 입을 수 있고 운이 좋지 않으면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현실에서 선로에 뛰어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전차를 급제동하느냐 아니면 안에 있는 사람을 생각해서 급제동하지 않느냐에 대한 선택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현재 한국에 노면 전차가 존재하지는 않지만 대형 화물차나 버스의 경우라고 해도 급제동을 하면 위험한 상황이 초례될 수 있기 때문에 트롤리 딜레마가 생길 수 있다. 실제로 트럭이나 버스의 후방 충돌 교통사고 영상을 보면 운전사가 승객이나 화물 때문에 제동할 수 없었다는 증언을 하는 경우가 많다.

잉글랜드의 전직 축구 선수인 피터 크라우치리버풀 FC 시절에 팀 동료인 디르크 카윗을 카트로 치어 다치게 할 뻔했는데, 구체적인 상황은 동료들과 레이싱을 하다가 시작 지점으로 돌아왔을 때 카트에 브레이크가 없는 것을 뒤늦게 인지한 것. 시작 지점에는 사비 알론소와 카윗이 있었는데 크라우치는 알론소와 카윗 중 누가 더 가치 있는 선수인가 생각하고 카윗 쪽으로 핸들을 꺾었다. 다행히 카윗이 빠르게 피해서 사고는 없었다고. 링크 알론소가 카윗보다 몸값이 높고 유명선수라서 크라우치가 카윗쪽으로 핸들을 꺾은것인데 카윗과 알론소는 키가 같지만 카윗이 더 날씬하고 카윗은 공격수라 점프력과 순발력이 알론소보다 좋았다는 것을 고려하면 카윗쪽으로 꺾은 것이 현명한 선택이었다

도전 골든벨 2019년 6월 23일 방영분(제천제일고등학교 편) 마지막 문제로 출제되었다.

2022년 4월 15일 일본 트위터에서도 상술한 복선 드리프트 해법이 올라와 화제를 모았다. 멀티트랙 브레이크?!

보따에서 이 딜레마를 활용한 김원식 조지기를 했다.# 그러나 김원식이 어떤 선택을 했든 김원식이 조져지는 불이익을 보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론 트롤리 딜레마가 아니다.

나락퀴즈쇼랑 어느정도 상통하는 면도 있다.


[1] 영국 영어에서 트롤리(trolley)는 전형적인 카트(cart)형 수레만을 뜻하지만, 미국 영어에서는 대중교통전동차노면 전차(tram)을 뜻하기도 한다.[2] 유일한 방법이므로, 자신이 옆 사람 대신 떨어져서 트롤리를 멈추게 하는 것이나 과학적 이론은 당연히 배제된다.[3] 이하 사례 서술은 3. 사고 실험례의 사례를 따른다.[4] 단, 사례 2에서 옆의 사람을 밀어 넣는 것이 나머지 5명을 살리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제한이 걸려있기에, "나 스스로가 뛰어들어 살릴 수 있었을 텐데" 등의 후회는 배제된다.[5] Judith Jarvis Thomson (2008). “Turning the Trolley,” Philosophy and Public Affairs, 36 (4): 359–374.[6] 강철. (2013). 트롤리문제와 도덕판단의 세 가지 근거들. 倫理硏究, 1(90), 137-171.[7] 최빈국에서는 여전히 1,000달러를 주고받는 인신매매가 발생하고 있으며 스마트폰 살 돈을 기부한다면 그 일을 막을 수 있었다는 가정이다.[8] 심지어, 이 경우는 다이묘시마즈 요시히로 한 명 살리자고 부대가 몽땅 전멸했다.[9] 미리 스위치를 당겼다가 앞바퀴가 지나가자마자 스위치를 돌려놓는 고난도의 기술이다[요약] DIO 및 더 월드가 시간을 멈추고 레버를 맡았던 사람의 눈앞에 나이프들을 던져놓으면서 시간 정지가 풀린 뒤 그가 찔려 죽게 하고는 첫 번째 선로에 있던 와이푸를 구하고 트롤리가 첫 번째 선로로 향하면서 묶인 자들은 모두 살리...는 듯했으나 두 번째 선로에 있었던 '가장 좋아하는 스튜디오와 망가카(일본 만화가)' 일행도 트롤리로 손수 깔아뭉개 죽이면서 와이푸만 살린 것.[번역1] "내가 이 레버를 당기면, 네가 죽겠냐?" "겁나게 고통스럽겠지."[번역2] 당신이 무엇을 선택하든지 간에, 당신은 결국 죽는다.[번역3] 당신은 왼쪽의 빨강입니다. 만약 당신과 상대방 모두 선로 전환기를 당기지 않으면, 두 트롤리는 서로 충돌하고 5명을 죽일 것입니다. 만약 당신과 상대방 모두 선로 전환기를 당기면, 오직 4명만이 죽고 트롤리는 무사할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만 선로 전환기를 당기고 상대방이 당기지 않는다면, 상대 쪽의 트롤리는 5명을 죽일 뿐만 아니라 당신까지 치고 지나갈물것입니다. 당신은 상대방과 소통을 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신은 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번역4] 빠른 트롤리가 접근하고 있고, 철로 위에는 아무도 없다. 한편, 당신은 Bob에게 회사에서 당신의 샌드위치를 그만 먹으라고 말했었다. 당신은 그에게 경고했었다. 그러나 그는 듣지 않았다. 당신은 그를 밀 것인가?[번역5] 당신은 트롤리 문제 밈에서의 기관사입니다. 당신은 열차를 멈출 수 있지만, 그러지 않습니다. 아무도 이 상황에서의 당신의 역할을 모릅니다. 당신은 매번 살인 욕구를 충족하고, 무사히 빠져나갑니다.[16] 원본은 이 짤로 추정된다.[번역6] 당신은 빨간색 사람입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있는지,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릅니다. 만약 당신이 선로 전환기를 당기면, 당신은 트롤리 문제를 다른 사람들에게 떠넘기게 됩니다. 만약 당신이 당기지 않는다면, 당신은 5명을 죽이게 되고 더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18] 그런데 그림을 잘 보면 모든 사람이 전환기를 당기면 마지막 전환기를 당긴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과 당신이 담당한 트롤리 문제의 5명이 죽게 된다.[19] 오류가 있는데 아래 선로와 똑같은 논리를 적용하면 위 선로는 무한히 많은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1/2명을 살린다. 제타함수참조[20] 왜 1/12명인지는 라마누잔합 문서 참조. -1/12명을 죽게 하는 것이므로 1/12명을 구한다/만든다는 표현으로 바뀌었다.[번역7] 레버를 당겨서 1/12명을 만드시겠습니까?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5명을 죽게 만드시겠습니까?[22] 아는 사람들은 다알 스파이더맨 2 내용. #[23] 특히 만악의 근원을 제거하는 방법은 1명을 죽임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 살린다는 점에서, 공리주의에 부합한다는 철학적인 해석도 있다.[24] 영어로 전부, 대부분을 뜻하는 'Most'가 아닌 체코어로 '다리(Bridge)'를 뜻하는 단어이다.[25] 흰둥이만 사망 vs 흰둥이 포함 지구상 모든 생명체 사망이므로 어느 선택지든 흰둥이는 죽는다는 점, 후자의 경우 선택자 본인도 사망하는 점, 후자는 다른 원인(폭탄)에 의한 사망이지만 전자는 선택자가 적극적으로 흰둥이의 죽음(우주로 쏘아 올림)에 개입하게 되는 점 등. 트롤리 문제보다는 우는 아기 딜레마에 해당한다.[26] 작중에서는 피해 규모가 명확히 설명되지 않으나 에펨코리아의 한 회원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약 38m# 해수면이 상승했고 이 정도 수준이면 필연적인 인명 피해도 발생했을 것이다.[27] (스포일러) 날씨의 아이와 다른 점은 다른 희생양이 그 자리를 대신해 결국 세계도 사랑하는 사람도 같이 구했다는 점.[28] 앤디의 설명에 따르면 문 열면 전부 제노모프에게 몰살당하는 최악의 상황이 닥친다고한다.[29] 물론 라인하르트의 선택이 결과적으로 절친의 어이없는 죽음이라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지긴 했지만, 결정하는 시점에서 이는 예측 가능한 부분 밖이다.[30] 물론 이 경우에는 샌델 교수가 말한대로 딜레마의 요지 자체가 바뀌며, 이런 식으로 생각하자면 "5명이 동시에 죽는 경우"를 상정하는 식으로 끝이 없기 때문에 원제에 관련해서는 참신함 이상의 의미를 갖기는 어렵다.[31] 하지만 선로 위의 작업자라면 미리 관제로부터 승인을 받은 후 작업하기 때문에 작업자라면 관제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