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무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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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중기에 만들어진 지뢰. 한국 기록역사상 최초의 지뢰이다.2. 기록
광해군일기에 처음 등장한다. 조선 중기인 1612년 (광해군 4년)에 만들어진 지뢰로 조천종이 직접 제작하였다. 파진포는 유럽의 차륜식 총기과 같은 원리로 만들어진 것으로 부싯돌과 마찰을 일으켜 폭발하였다.3. 제작과 실용
광해군일기 59권, 광해 4년 11월 12일 임인 3번째기사 1612년 명 만력(萬曆)40년. 조천종이 만든 화포를 대량으로 제작하여 비치하게 하다.
병조의가 아뢰기를,
"금년 봄에 호서에서 파진포(破陣砲)를 만들었는데, 본도 장계로 인하여 올려 보내도록 하였습니다. 지난달 초 신들이 마침 겨울철 화포를 쏘는 일 때문에 모화관에 모였다가 시험삼아 파진포를 쏘아 보도록 하니, 아륜철(牙輪鐵)이 돌과 서로 마찰하면서 금세 저절로 불이 일어나 철포가 조각이 나고 연기와 화염이 공중에 가득하였으며 불덩이가 땅 에 닿으면서 절반쯤 산을 불태웠습니다. 만일 적이 오는 길에 다수를 묻어 둔다면 승패의 변수에 크게 유익하겠습니다.
그리고 만들어 놓은 철포를 보니, 크기가 냄비만 하였으며 수철(水鐵)이 들어가는 용량도 많아야 1백여 근에 불과하고, 윤철이 든 덩치도 그리 무겁고 크지 않아 합쳐서 한 마리의 말에 싣고도 멀리 가져갈 수 있습니다. 만드는 공역도 크지 않고 싸가지고 멀리 가기에도 매우 간편하므로 적이 오는 길에 묻어 두었다가 스스로 부딪쳐 불이 나도록 하고 우리 군대는 다만 요해처에 싸움을 대비해 묻어 두기만 하면 됩니다. 가령 적들이 이 길을 경유하지 않으면 어찌할 수 없겠지만 만일 이 길로 경유한다면 비록 수천 명의 군사일지라도 한 발의 포탄이면 소탕할 수 있으니, 싸움터의 무기로는 이보다 교묘한 것이 없습니다. 요즘 여러 가지 화포들은 각기 이로운 점과 해로운 점이 있는데, 이 포는 이로운 점만 있고 해로운 점이 없으니 서둘러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거기에 소요되는 잡다한 물품은 훈련 도감에서 일일이 갖추어 주도록 하고, 사환(使喚)과 군인은 병조가 정하여 주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화포의 장인(匠人) 가운데 영리한 한두 사람을 뽑아 장수(匠手) 조천종에게 소속시켜 제조하는 묘법을 배우도록 하고, 천종은 외방 사람으로서 식량을 싸가지고 서울에 머무는 것이 극히 어려우니 요포(料布)를 우선 제급(題給)해야 하겠습니다.
화포를 만든 뒤에는 두세 번 시험적으로 쏘아 보아 자세히 그 묘법을 살핀 뒤, 철이 나는 외방으로 나누어 보내어 많은 수량을 만들게 하여 싸움터의 무기로 준비해 두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위 내용을 해석하면 파진포를 조천종이라는 사람이 만들어서 이미 호서에서 시험을 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부싯돌과 철포가 들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국경지대와 군사적 요충지, 전쟁터에서 쓸수 있도록 준비까지 한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제목에서 나오듯, 대량생산까지 한것으로 추정된다.
병조의가 아뢰기를,
"금년 봄에 호서에서 파진포(破陣砲)를 만들었는데, 본도 장계로 인하여 올려 보내도록 하였습니다. 지난달 초 신들이 마침 겨울철 화포를 쏘는 일 때문에 모화관에 모였다가 시험삼아 파진포를 쏘아 보도록 하니, 아륜철(牙輪鐵)이 돌과 서로 마찰하면서 금세 저절로 불이 일어나 철포가 조각이 나고 연기와 화염이 공중에 가득하였으며 불덩이가 땅 에 닿으면서 절반쯤 산을 불태웠습니다. 만일 적이 오는 길에 다수를 묻어 둔다면 승패의 변수에 크게 유익하겠습니다.
그리고 만들어 놓은 철포를 보니, 크기가 냄비만 하였으며 수철(水鐵)이 들어가는 용량도 많아야 1백여 근에 불과하고, 윤철이 든 덩치도 그리 무겁고 크지 않아 합쳐서 한 마리의 말에 싣고도 멀리 가져갈 수 있습니다. 만드는 공역도 크지 않고 싸가지고 멀리 가기에도 매우 간편하므로 적이 오는 길에 묻어 두었다가 스스로 부딪쳐 불이 나도록 하고 우리 군대는 다만 요해처에 싸움을 대비해 묻어 두기만 하면 됩니다. 가령 적들이 이 길을 경유하지 않으면 어찌할 수 없겠지만 만일 이 길로 경유한다면 비록 수천 명의 군사일지라도 한 발의 포탄이면 소탕할 수 있으니, 싸움터의 무기로는 이보다 교묘한 것이 없습니다. 요즘 여러 가지 화포들은 각기 이로운 점과 해로운 점이 있는데, 이 포는 이로운 점만 있고 해로운 점이 없으니 서둘러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거기에 소요되는 잡다한 물품은 훈련 도감에서 일일이 갖추어 주도록 하고, 사환(使喚)과 군인은 병조가 정하여 주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화포의 장인(匠人) 가운데 영리한 한두 사람을 뽑아 장수(匠手) 조천종에게 소속시켜 제조하는 묘법을 배우도록 하고, 천종은 외방 사람으로서 식량을 싸가지고 서울에 머무는 것이 극히 어려우니 요포(料布)를 우선 제급(題給)해야 하겠습니다.
화포를 만든 뒤에는 두세 번 시험적으로 쏘아 보아 자세히 그 묘법을 살핀 뒤, 철이 나는 외방으로 나누어 보내어 많은 수량을 만들게 하여 싸움터의 무기로 준비해 두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위 내용을 해석하면 파진포를 조천종이라는 사람이 만들어서 이미 호서에서 시험을 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부싯돌과 철포가 들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국경지대와 군사적 요충지, 전쟁터에서 쓸수 있도록 준비까지 한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제목에서 나오듯, 대량생산까지 한것으로 추정된다.
주철 100여근을 사용하여 만든 대형 지뢰로, 적이 이것을 밟으면 안에 들어있던 부싯돌과 아륜철이라는 금속제 바퀴가 마찰을 일으키며 불이 일어나면서 폭발하는 매우 위력적인 무기였다. 조선 후기부터는 함경도, 평안도 북쪽의 기마민족들과 만주족을 막기 위하여 주로 국경지대에 매설되었다.
그 위력은 실록에서 나오듯, 연기와 화염이 공중에 가득하고 불덩이가 땅 위에 닿으며 산의 절반을 불태웠다고 한다. 또 효종때에 함경도 부락민들의 도강을 막기 위해 두만강 녹둔도 일대에 매설을 하기 위해 건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후 실록과 여러 기록들에서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조선 말기에는 이미 대부분 잊혀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순조때 융원필비가 발행된 것으로 보아서는 어느 정도 전승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융원필비를 제외하고는 파진포의 흔적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나마 융원필비에서 도면과 외형을 상세히 기록해 두어서 재현과 복원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광해군 때 개발된 차륜식 지뢰인 파진포가 기록에서 사라진 대신에 도화선을 이용한 지뢰, 즉 지뢰포가 1625년(인조 3년)의 기록에 나타난다.
4. 참고자료
조선왕조실록 국사편찬위원회 - 조천종이 만든 화포를 대량으로 제작하여 비치하게 하다아침의 나라 - 파진포
조선시대에 이미 현대식 지뢰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