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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3 10:52:14

각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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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대한민국 각궁3. 각궁 관련 명칭4. 재료 쓰임5. 각궁 올리기(얹기)6. 문제점7. 기타
7.1. 만주족 활과 비교
7.1.1. 길이 차이7.1.2. 형태 차이

1. 개요

각궁(뿔활, horn bow, 角弓)[1]합성궁(컴퍼짓 보우, composite bow)의 한 종류로, 나무힘줄 외에 을 주 재료로 추가한 을 가리킨다.[2] 위로 늘어지는 부분인 활의 바깥쪽에 탄력이 강한 힘줄(심)을 놓고, 안쪽에는 반발성이 강한 뿔을 이용하여 매우 강력하고 먼 사거리를 갖게 된다. 이러한 합성궁 기술은 일반적인 목궁에 비하여 첨단 무기로 여겨졌다. 각궁은 힘이 약한 사람이라도 일정한 위력을 확보할 수 있고, 장력이 적어 조준이 흐트러지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으나 양손의 거리가 극단적으로 멀어[3] 정확히 조준하는 데 애로사항이 있고, 기후에 따라 완전히 못 쓸 물건이 되기도 하는 등 단점이 있었다.[4]

구조에 대해서 살펴보면, 각궁류는 일반적으로 크기가 작은 탓에 드로 웨이트(Draw weight)도 작고, 길이에 비해 드로 렝스(Draw length)가 길다. 그래서 드로 웨이트를 보충해주기 위해 리커브 보우 형태로 만들어 준다. 이렇게 하면 초기 장력이 0인 롱보우에 비해 초기 장력이 어느 정도 붙은 상태에서 당길 수 있으므로 전체 에너지 면에서 유리하다. 또한 드로 렝스가 길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목궁용 화살에 비해 화살의 길이가 길 수밖에 없었는데, 이런 문제를 도구를 통해 짧게 줄여 시속을 극단적으로 높인 것이 애기살. 반면 영국이나 일본의 장궁은 큰 드로 웨이트를 확보하기 위해 활의 형상이나 재질을 바꾸기보단 크기를 늘리는 쪽을 택하여 장력과 크기가 무지막지한 활이 나왔다. 그러나 재질 때문에 리커브가 아니라 직선형에 가까워 장력이 0에서부터 시작하고, 크기 때문에 시위의 각도가 과도하게 크기 때문에 힘을 전달하는 효율성은 떨어진다.[5] 따라서 일본의 장궁은 궁수 본인보다 더 큰 2.2m으로, 즉 지면이라는 한계 때문에 아랫장보다 윗장을 더 크게 만든 기형적인 형태까지 확장했으면서도, 실질적 유효사거리가 30m 내외인 반면, 각궁의 최대사거리는 140m이고 기록에 따르면 잘 쏘면 최대사거리 200m도 거뜬히 넘기는 궁수도 있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고구려 시대의 유적에서 이미 각궁의 활채가 출토한 바 있으며, 재료는 소의 갈비뼈를 사용했다. 반면 몽골 지역에서는 활에 산양이나 염소 뿔을 주로 사용했다. 고구려의 경우 건국 시조부터가 로 유명하기도 한 인물임과 더불어[6] 222년(산상왕 26) 고구려 산상왕오나라 손권에게 황제 즉위에 대한 호의의 표시로 각궁을 선물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을 단순 제식무기일 뿐만 아니라 권위를 상징하는 도구로 활용할 정도로 특별한 의미를 담아 사용한 것으로 추정한다.

이후 북방민족의 영향을 받아 현재 물소뿔을 붙인 흑각궁(黑角弓)이 조선 시대 대표적 활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흑각궁은 핵심재료인 물소뿔을 전량 수입해야 했다. 이 때문에 명과 청에서 공무역을 하기위해 노력하였고 후반기에 들어서는 계를 설립하여 일본에서 수입하려고 했다. 그러나 15세기 화약무기 발달과 명,청에서 물소뿔 수출 금지 등으로 인해 점차 흑각궁의 숫자는 줄어들게 되었다.
한편 물소뿔을 자급자족을 시도했지만 야생화된 물소가 사람에게 상해를 입히는 사례가 나왔고 대다수의 소가 가축화에 실패하여 결국 중종때 사육을 포기하고 물소 뿔을 수입했다.
한편, 소뿔은 향각궁으로, 물소뿔은 흑각궁으로 불렀다. 이외에도 철로 만든 군용 철태궁 등 여러 종류의 활이 있었으나, 현재는 흑각궁만이 제작법이 전해지고 있다.

2. 대한민국 각궁



조선 시대의 일반 습사용 각궁은 물소뿔, 산뽕나무, 대나무, 참나무(대림), 벚나무껍질(화피단장), 소의 힘줄, 민어 부레 풀 총 7재로 제작하며, 전투에 사용되었던 전시용 각궁은 대나무를 뺀 6재를 쓰며 옻칠을 하고 매우 두껍게 만들어 내구성과 장력을 증대시켰다. 그러나 갑오개혁 이후 전통 군사용 국궁의 제작기술은 모조리 실전되었고, 현재까지 전해지는 것은 습사용 각궁이다.

그 외에 사슴 뿔을 쓴 녹각궁, 황소 뿔 3개를 이어 만든 향각궁,[7] 백색 알비노 뿔을 사용한 백각궁[8] 등이 있으나, 현대에도 사용하고 있는 것은 거의 물소 뿔을 사용한 흑각궁 뿐이다. 사실 녹각궁이나 향각궁은 조선 시대에 물소 뿔이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해서 대체품으로 삼으려고 했다가 실패한 사례에 가깝다. 우선 녹각궁의 경우 사슴 뿔 역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갈 수 없어 완전히 대체하기 어려웠다. 향각궁은 물소 뿔에 비해 황소 뿔이 짧아서 뿔 셋을 이어 붙여 써야 한다는 점,(물소 뿔은 양쪽에 하나씩 총 두 개면 끝.) 흑각궁처럼 여름이 되면 부레풀이 습기를 먹어 활채가 더 쉽게 부러지거나 떨어져 버린다는 점, 강도가 물소 뿔에 비해 떨어진다는 점, 농사를 짓는 데 매우 중요한 소를 잡아야 한다는 점 때문에 쓰기가 어려웠다.

성능이나 제작 편의만 놓고 따지면 흑각궁이 제일임에도 향각궁이 꽤 널리 쓰였다는 해석도 있다. 녹각이나 흑각에 비하면 수급이 압도적으로 쉬웠고, 어차피 쇠심줄이나 아교 때문에 활을 만들기 위해선 소를 잡아야 했으며, 흑각만은 못할 망정 소뿔이라도 대서 만든 활과 그렇지 않은 활 사이에 성능 격차가 크게 존재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파운드 수만 크다고 센 활이 아니라 활몸이 가진 탄성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화살의 운동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고, 짧은 활을 길게 당기는 재료의 곡률이 큰 조건에서도 파괴되지 않고 버틸 수 있어야 좋은 활인데 당대에 구할 수 있던 재료 중 이런 조건을 가장 잘 만족시키는 건 그래도 소뿔이었다.

한반도에 물소가 없는 탓에 조선 초기부터 물소 뿔을 중국, 일본, 류큐 등지에서 수입했지만 공급에 비해 수요가 많았고 특히 후기에는 청나라가 조선을 견제하기 위해 일부러 전략 물자로 취급하여 반출을 제한하였다. 때문에 일본에서 수입해야 했다. 향각궁이니, 녹각궁이니 하는 것도 수입물자를 대체하려는 피나는 노력의 결과이었다.
물소를 자생시키려는 노력은 세조 7년(1461년) 일본에서 물소 암수 한 쌍을 보내와 사복시(司僕寺)에서 기르게 했는데 성종 때까지 무려 70여 마리까지 불어났다고 한다. 이후 물소를 지방 각관에 보내고 키우게 하고 잘키우는 고을에게는 상을 주게하자는 기록까지 있으며 이후 농사일에 사용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성종 24년(1493년) 들판에 풀어놓은 물소가 사람을 다치게 하여 제주도로 보내지고 연산군때 다시 가축화를 시도하였으나 이 또한 실패하게 되었다 이후 중종 4년 각 고을의 청원에 따라 물소가 섬에 방목되게 되고 버려지게 되었다. 또한 조선은 1583 니탕개의 난 1592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기존에 잘 쓰던 화포와 그 소형화/개인무장화 차원인 조총 등 "화약 무기" 쪽으로 관심이 쏠리고 주재료인 물소를 키우는데 실패한 각궁과 달리 화약은 숙종조에 역관이 번역햐 선진자초방등의 도서를 바탕으로 채취법과 제조법이 발달하게 되어 조선 초기 화약의 부족한 현상을 다소 개선하는데 큰 성공을 하였다 이로인해 무기로서 각궁은 조선 전기에 비해 예전과 같은 큰 관심을 보이지 않게 되었다.

다만 유교에서 의례를 행할때 대사례와 같은 군례에 있어 활은 필수적인 존재였으며, 또한 무과 시험의 필수 과목으로 여전히 기추와 더불어 유엽전과 철전은 남아있었고 보병과 달리 기병의 경우 화약무기 휴대에 제약이 있어 편전을 활용했던것으로 보인다. 또한 영조때에 청에서 물소뿔 교역을 금하자 일본에 수입하기위해 계를 모으는등 조선시대 후기인 1830년대에도 계에 대한 기록이 있어 각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계속된다. 조선말 이후 무과시험의 폐지와 시대적 혼란이 깊었던 일제 강점기 시기에도 다양한 이해관계가 맞물려 각궁의 제조기술은 보존되어 왔으며 6.25 한국전쟁 이후에도 개량을 거듭하면 보존하고 있다.

개량궁이 개발되자 입지를 다소 위협받고 있다. 황학정 국궁 교본에서는 개량궁 등장으로 인해 각궁과는 맞지 않게 활을 배운 궁사들이 각궁을 부숴먹는 일 때문에 대림이 낮아지고 각궁이 점차적으로 개량궁 모양과 비슷해져 전통적인 각궁의 규격이 틀어지고 있다며 개탄하는 구절이 있다.
그러나 각궁에 비해 보존하기가 쉽고 활이 뒤집어지는일이 드물며 보존이 잘되기에 국궁의 보급에 큰 힘을 준 활인것은 자명하며 소재의 개량화를 거듭해 발전하고 있다.

파일:朝鮮総督府鉄道局広報葉書「朝鮮の弓道」.png파일:106174714_270785247570125_6674334179848859041_n.jpg

최근 100년도 넘은 오래된 각궁 유물을 원형을 훼손하지 않은채 실제 사용이 가능한 수준으로 기능을 복원한 각궁이 등장했다. 서울각궁공부방과 활쏘기 전문채널 SSODA TV 운영자 김세랑씨는 100년이 넘은 활 유물을 수개월에 걸친 '리컨디셔닝' 작업을 통해 복원, 실제로 시위를 걸고 당기는 영상을 게제했다. 이렇게 오래된 활에 시위를 걸고 당긴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케이스라서 화제가 되었고, 다시 한번 우리 활의 우수성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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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년전 서울 장궁방 장문환 공 제궁 각궁 (서울각궁공부방 김세랑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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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마산궁방 각궁(서울각궁공부방 김세랑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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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유튜브 전통 활쏘기 채널 SSODA TV #

전통 각궁. 줌통의 실루엣을 결정하는 대림 부분이 요즘의 것 보다 많이 안으로 들어가 있고 고자 부분이 목소에 거의 직각으로 붙어 있어서 평소엔 하트 모양, 활시위를 걸면 3자 모양, 당기면 거의 완벽한 직사각형 형태를 띄는 게 특징이다. 현대 각궁이 (개량궁의 영향을 받아) 대림의 각이 줄어들어 평소엔 펑퍼짐한 원형, 활시위를 걸면 평범한 리커브 보우 모양, 당겼을 때 3자 모양이 나오는 것과 대비된다.

파일:고구려각궁보관.jpg
파일:104321944_264646428184007_4683907010264876330_n.jpg

참고로 이런 전통 각궁 형태는 고구려 시대 예맥궁[9]과 굉장히 흡사하게 생겼는데,[10] 이는 한국의 각궁이 고구려 예맥궁의 직계 후손임을 의미한다.

대한민국 전국 각지의 장인들이 각궁을 생산하고 있으며, 대한궁도협회의 가격 제한을 따라 70만원을 넘기지 못한다. 어찌보면 당연하게도 딱히 남는 장사는 아니라고 한다. 라디오에 출연한 12대째 각궁을 만들어 온 장인의 말에 따르면 재료가 비싸서 별로 남는 게 없다는 모양. 소 힘줄, 소 뿔은 말할 필요가 없고 민어 부레도 생각보다 구하기 힘들다.

하지만 2011년 충주무술축제에 전시된 송무궁의 각궁은 120만원이었고 다른 업체들도 비슷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비공인 궁방의 각궁으로 비공인 궁방은 궁도협회의 가격에 매이지 않는다. 대회에 들고 나갈 수 있는 공인 궁방의 각궁은 여전히 70만원으로 동결되어 있다. 그러니 대회 따위 관심 없다면 비공인 궁방에서 본인에게 맞는 제작을 웃돈을 주고서라도 제작하는 것이고 대회에 관심이 있다면 공인 궁방으로 가서 맞춰야 할 것이다.

3. 각궁 관련 명칭[11]


파일:활과 화살의 명칭 2024.jpg
파일:영집궁시2006활내기 화살의 구조(조선의궁술변형2).jpg 비교자료1
파일:영집궁시 2006 활내기 각궁명칭(조선의 궁술 변형1).jpg 비교자료2

4. 재료 쓰임


5. 각궁 올리기(얹기)

각궁은 다른 병장기 처럼 필요할 때 꺼내서 즉시 사용할 수 있는 무기가 아니다. 매일 사용할 때마다 활을 점화장에서 꺼내어 화살을 쏠 수 있게 시위를 올려야 하는데 몇 가지 과정을 거쳐 활 모양을 만들어 시위를 걸어야 한다. 이를 활을 얹는다고 표현한다. 활을 얹기 위해서는 몇 가지 장비가 필요한데, 열을 가할 화톳불, 도지개, 궁틀, 그리고 보궁 혹은 삼지라는 도구가 있어야 한다.

각궁을 얹는 데는 아래와 같은 과정이 소요된다.

1. 활을 점화장에서 꺼내어 외부 온도와 비슷해질 때까지 일정 시간 식힌다.
2. 궁틀에 활을 걸어 한쪽부터 반대로 활을 굽힌다. 굽힌 상태에서 활 모양대로 틀이 되는 도지개를 물리고 줄을 묶어 고정한다. 활의 한쪽에 도지개를 물리면 반대쪽에도 도지개를 물린다. 솜씨가 좋은 숙련된 사람은 궁틀 없이 발 끝과 두 손으로만 도지개를 물리기도 한다.

3. 도지개 2개가 활의 윗장과 아랫장에 묶인 상태에서 활의 한쪽 끝, 고자에 시위의 한 끝을 물리고, 시위의 다른 끝은 입으로 문 상태에서 활의 양 끝을 두 손으로 단단히 잡은 뒤, 양반 다리로 앉은 상태에서 활의 한쪽 끝 고자를 한쪽 무릎 위에 눌러 잡고 활의 줌통을 반대편 다리 아래에 집어 넣어 무릎으로 누른다. 이렇게 하면 반대쪽 고자에 시위를 걸 수 있게 된다.

4. 그 상태에서 활의 양쪽 끝 고자와 시위를 두 손으로 견고히 잡은 상태에서 활이 어느 쪽으로 넘어가려 하는지 가늠한다. 위 아랫 장 중 강한 쪽은 펴지려 하고 약한 쪽은 더 굽어 지게 되는데 펴지려 하는 쪽을 화톳불이나 곤로에 가까이 가져다 대어 그 힘을 누그려 뜨려 균형을 잡는다. 활의 외측에 겹겹이 발려져 있는 소심줄을 잡고 있는 민어 부레풀이 열에 녹으며 장력이 약해지는 것이다.

5. 활을 이러 저리 살피며 소심줄과 부레풀이 뻣뻣한 부분을 화톳불에 가져다 대어 부드럽게 풀어주고 비틀어진 부분을 바로잡는다. 충분히 열을 가해 균형을 잡지 않으면 활이 뒤집어지거나 튀어오르게 되므로 극도로 집중해야 한다. 활이 뒤집어 지면 활이 부러지거나 쓸 수 없을 만큼 비틀어질 뿐 아니라 사람이 다칠 수도 있다. 대개 새로 받은 활은 첫 해에는 항상 주의 해야 하나 몇 년간 활을 얹고 부리기를 여러 번 반복한 활은 길이 나서 뒤집어질 가능성이 적고 빨리 수월하게 얹을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활은 오래된 활이 좋고 화살은 새 화살이 좋다고 한다.

6. 줌손을 비트는 습관이 있는 궁사는 양쪽 활끝 고자를 비트는 방향 반대로 정도껏 비틀어 조정한다. (우리 활은 사법 특성 상 줌통을 적절히 비틀어 쏘기 때문에 출전피 쪽으로 양쪽 고자가 살짝 휘어져 있다. 이는 개량궁도 마찬가지이나 각궁에 비해 정도가 덜하다. 이 때문에 활이 우궁/좌궁의 구분이 생긴다.) 활을 다릴 때 윗장 보다 아랫장이 많이 휘게 다리는 습관이 있는 궁사는 아랫장이 더 많이 펴지고 윗장이 더 굽어지게 조절한다. 각궁을 만든 후 몇 해 지나지 않고 활 주인이 줌을 많이 비틀거나 아랫장이 많이 휘게 당기는 습관이 있는 걸 감안해서 올린 각궁을 그 주인이 아닌 사람이 함부로 당겨 보거나 심지어 손만 대어도 활이 뒤집어 지고 부러지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활터에서 남의 활, 특히 각궁을 손대는 것은 철저히 삼가야 하는 금기사항이다.

7. 어느 정도 모양이 잡히면 가볍게 활을 당겼다 천천히 풀면서 시위가 윗고자와 아랫고자에 닿는 모양을 확인한다. 요즘은 궁도장에서 시위가 윗고자에 먼저 닿고 좀 더 시위를 보내면 아랫고자에 닿게끔 위 아랫장 균형을 맞춘다. 이렇게 하면 같은 조준점에서 화살이 더 위로 떠서 가서 멀리가게 된다. 카본으로 만든 개량 활의 경우는 공장에서 이렇게 이미 위아랫장 힘을 조절해서 나오게 된다. 원하는 대로 활이 다듬어 졌으면 활 시위의 약한 쪽에 보궁 혹은 삼지라 부르는 고리를 걸어서 뒤집어지지 않게 한다. 활이 다 식으면 보궁이 없어도 뒤집어 지지 않는다.

8. 궁대를 이용해 시위가 얹어진 각궁을 다시한번 감아 묶어서 혹시나 비틀어지거나 뒤집어 지지 않게 고정한다. 이 상태에서 화톳불에 의해 받은 열기가 다 빠질 때까지 일정 시간 놓아 둔다.

9. 활이 다 식어서 의도한 모양대로 유지하면 궁대를 풀고 사대에 올라 활을 낸다.

날씨가 덥고 습한 여름에는 활을 올린 뒤에도 조심해야 하는데, 활이 높은 온도와 습도에 늘어지면서 화살을 잘 보내지 못하게 되고 뒤집어 지기도 쉬워 진다. 비가 내리는 여름은 각궁을 올려 습사하는 것은 삼가는 것이 좋다. 한번 해보면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하면서 비가 와서 각궁을 못쓴다고 했던 말이 왜 맞는 말인지 확실하게 실감하게 된다. 단, 너무 건조한 상태에서 활을 쏘는 것도 좋지 않다. 때론 이슬을 머금은 풀밭에 활을 굴려 습을 먹이기도 한다는 모양.

6. 문제점

수분이 침투하거나 을 받으면 민어 부레 풀의 특성상 즉시 풀려버리기 때문에 덥고 습해지는 여름, 특히 장마철에 사용이 까다롭다. 이 문제는 당연히 당시 군대도 인지했고, 이성계위화도 회군을 할 때 이 점을 구실로 삼은 기록도 있다. 이성계는 2차 요동정벌을 반대하면서 그 이유로 사불가론을 주장했는데 그중 네 번째가 '때가 장마철이니 활의 아교가 녹고, 군대에 역병이 퍼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조선 시대에는 옻칠을 하면서 최대한 습기에 대한 대비를 하고, 아예 장마철을 대비해 습기에 강한 다른 종류의 활도 예비로 구비해뒀다는 기록이 있다.[13]

때문에 전통 각궁을 사용한다면 사용한 뒤에는 반드시 국궁 활터 내에 비치된 궁방에 보관해야 한다. 보통 30도 내외의 아주 건조한 환경의 각궁 비치실이 활터마다 준비되어 있다. 현대처럼 자동으로 온도와 습도를 조절할 수 있는 기계가 없던 과거에는 건조한 온돌방에서 활을 보관했다고 한다. 이거랑 관련해서 "마누라는 윗목에서 재워도, 활은 아랫목에서 재운다."라는 속담도 생겨났을 정도.

또 성능과는 별개로 한반도에는 물소가 자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흑각궁의 주재료인 물소뿔을 수입했어야 했다. 때문에 흑각궁은 꽤 가격이 높고, 공급이 많진 않았다는 단점도 있었다.

또 부려놓은 활을 쉽게 얹기가 힘들다. 부레풀의 특성을 이용해 활을 궁사의 마음대로 주무르면서 자기에게 맞는 활로 만들어가야 하는데, 이것이 여간 쉬운 과정이 아니다. 어설프게 얹었다간 마음대로 튀어버려서 자신이나 주변 사람이 다칠 위험도 존재한다.[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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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2장의 활이 각궁인데, 끼워진 조그만 것이 보궁(삼지끈)이라는 물건이다. 얹어놓은 활은 모양이 어찌 변할지 몰라 힘이 약한 부분에 끼워 활의 모양이 변해 튀어나가지 않게 하는 일종의 안전장치이다.

실전에서는 역시 활을 얹는데 걸리는 시간이 가장 문제가 된다. 활이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습적으로 전투가 발생하면 그 자리에서 활을 사용 가능하게 할수가 없다. 특히 조선시대에 기습을 당한 조선군이 저항도 못하고 와해되는데에 가장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7. 기타

7.1. 만주족 활과 비교

7.1.1. 길이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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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두 개는 만주활, 아래 하나는 국궁이다. 보다시피 만주활이 국궁보다 훨씬 크다.

7.1.2. 형태 차이

활시위를 걸어매는 고자 부분으로 한해서 국궁이 특이한 편에 속하는데, 만주나 중국을 비롯한 상당수 나라들에서 쓰는 각궁의 고자는 고자를 걸기 편하도록 고자 부분만 몸체와 교차된 편평한 형태로 가공한 뒤 홈을 파 고정한 선고자인 반면, 국궁은 고자 부분을 두껍게 한 뒤 홈을 판 평고자 형태를 하고 있다.

선고자는 전투용, 평고자는 놀이용이란 주장이 있는데 이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각자 장단점이 있기 때문. 선고자는 무거운 화살을 날리기 좋지만 탄속이 느리고 사거리가 짧지만, 평고자는 탄속이 빠르고 사거리가 길지만 무거운 화살을 쏘지 못했다. 즉, 선고자는 근거리에서 무거운 화살을 날려야 하는 기마궁수용 활로 적합하고[15], 평고자는 보병이 매우 작고 가벼우며 탄속이 빠르고 사거리도 긴 애기살을 쏘는 데 적합했다. 한마디로 용도가 다를 뿐 실제론 둘 다 전투용으로 잘만 쓰였을 가능성이 높다. 만주활이 선고자가 주류로 자리잡고 국궁이 평고자가 주류로 자리잡은 것은 궁기병이 주력이었던 만주족과 보병(궁수)이 주력이었던 한민족의 차이점 때문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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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궁 고유의 양식인 평고자.[16] 만주를 비롯한 외국의 각궁의 양식인 선고자.

그런데 사실, 평고자 형식은 조선 중후기에 성립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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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보관되어 있는 여몽연합군의 일본원정 시절의 고려군의 활[17]이 분명히 선고자이고, 여말선초의 이성계의 활 또한 선고자였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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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성계의 활도 완전히 고전적인 선고자이진 않고 양낭고자(끝에 뾰족한 부분)은 오히려 평고자에 가까워서 이게 한국에서 옛날에 쓰이던 선고자와 현용 평고자의 미싱링크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조선 실학자들은 만주족들이 만들어 사용하는 활이 비 오는 날에도 쓸 수 있는 활이라는 점을 몹시 부러워했던 것 같다. 이덕무청장관전서에는 대청회전을 인용하면서 "육진 인근에서 만주족들한테 사온 활은 물에 아주 푹 담가 놓더라도 20일은 지나야 재료 붙인 접착제가 풀려서 못 쓰게 되더라. 우리나라 활은 날씨만 흐렸다 하면 활의 몸채도 아교도 다 못 쓰게 되어 버리는데, 적이 어디 비 오는 날만 피해서 오겠나"라고, 만주족 활보다 조선 활이 사정거리가 길다고는 해도 사정거리가 짧은 대신 화살의 힘과 명중률이 올라간다며 조선 활이 습한 날에는 제대로 쓰지도 못하면서 사정거리만 긴 건 별로 자랑할 것이 못 된다고 썼다. 오주연문장전산고 사예변증설에도 비슷한 내용이 실려 있다.


[1] 말 위에서 쓸 수 있는 작은 활이라 하여 마상궁(horse bow)로 부르기도 한다.[2]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뿔로 만든 활을 뜻한다.[3] 활에 따라서는 당기는 손 어깨 너머까지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4] 이는 유럽의 쇠뇌도 마찬가지였는데, 철갑상어 입 천장을 아교 재료로 사용하여 만든 유럽의 (합성궁채) 쇠뇌들은 비만 오면 파손되기 일쑤였지만 각궁보다는 훨씬 사정이 나았다. 재료와 종류에 따라 비가 와도 쓸 수 있었지만, 각궁처럼 백이면 백 습기에 못 쓸 정도는 아니었다. 이는 재료가 제한적이었다는 점이 크다. (중세 중기쯤 되면 합성궁채는 거의 도태되고 강철을 쓰는 강철궁채가 주로 남았다.)[5] 평행사변형법으로 합력을 측정하는 것을 떠올려보자.[6] 부여건국 시조도 비슷하다.[7] 고구려 하면 생각나는 수렵도를 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수렵을 하는 무사가 당기는 활을 잘 살펴보면 활의 줌통과 고자 사이에 묶음이 하나 더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당시의 맥궁이 향각궁의 형태였다고 보는 의견이 있다.[8] 당연히도 백각은 매우 귀했기에 주로 고위층이 쓰던 것이다.[9] 당시 중국에서는 고구려을 '맥궁(貊弓)'이라고 불렀다.[10] 예맥궁도 활시위를 걸었을 땐 3자 모양, 당겼을 땐 직사각형 모양이 나온다.[11] 출처[12] 이거 말고 활시위를 매는 부분을 뜻한다.[13] 사슴 뿔을 이용한 녹각궁이나 아예 나무로만 만든 단일궁인 목궁이 대표적이다.[14] 물론 이건 제대로 방법을 익히고 조심하면 그만인 부분이니, 단점이라기보단 주의점이라고 보면 된다.[15] 의외로 기마궁술은 기마창술과 가까웠다. 기마궁수 문서 참고. 즉 궁기병의 화살은 창기병의 창을 대신하는 것이었고, 당연히 창 만큼은 아니어도 상당히 무거워야 했다.[16] 정확히는 더 복잡하게 생겼다. 파일:활1.jpg 파일:활2.jpg 파일:c_253Ud018svc1t3zq5bgt7go2_bz1gip.jpg[17] 이 동영상의 5분 34초부터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