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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1 00:35:22

사슬 갑옷

쇄자갑에서 넘어옴
파일:Chainmail_Hauberk.jpg

1. 개요2. 어원3. 역사
3.1. 사용
3.1.1. 유럽3.1.2. 동아시아3.1.3. 중동인도반도
3.2. 쇠퇴3.3. 현대
4. 형태5. 제조6. 잘못 알려진 사슬갑옷들
6.1. 밴디드 메일(Banded mail)6.2. 링메일(Ringmail)6.3. 그 외
7. 미디어에서8.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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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슬 갑옷의 제작 과정을 설명하는 영상[1]


철사 따위로 만든 고리를 엮은 사슬 형태로 된 갑옷이다. 옛날부터 여러 나라에서 오랫동안 사용한 대표적인 철제 갑옷이다.[2] 한국어로는 사슬 갑옷, 쇄자갑(鎖子甲) 등으로 표현한다. '쇄자갑'이란 한자 표현에서 쇄자(鎖子)가 쇠사슬이란 뜻이다.

2. 어원

현대는 '체인 메일'이라는 표현이 일반적이나, 사실 chain-mail이란 영단어는 대략 18세기에 고안된 신조어로 역전 앞, 족발처럼 동어반복이다. mail이란 단어가 '사슬로 만든 갑옷'을 뜻하기에 그냥 mail이라고 해도 되었다. 영어에서 mail은 무조건 사슬 갑옷이나 그 친척이다.

영어의 mail은 라틴어 macula가 이탈리아어 maglia를 거쳐 불어 maille로 변화한 것이 영어로 건너와서 mail, mayle, 또는 그냥 chain으로 정착한 단어이다. 로마시대에는 이 갑옷을 macula라고 불렀고, 노르만 인들은 그물(net)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his war-net, woven by cunning of smith' 같은 식이 된다. 즉 역사적으로는 chain-mail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적이 없다. 오늘날 chain-mail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는 현대 영어에서 mail의 의미가 우편으로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사슬갑옷이 널리 사용되던 시절에는 우편이 없었고, 우편 시스템이 생겨난 시대에는 사슬갑옷이 사라진 후였기에 혼동이 없었다. 따라서 오늘날 사슬갑옷을 지칭할 때는 우편이 아님을 확실히 드러내고자 chain을 덧붙이는 것이다. 이 때문에 현대의 역사학자나 도검갑주의 연구가들은 영단어 mail보다는 프랑스어 단어 maille을 더 애용한다.

3. 역사

사슬 갑옷은 고대 유럽의 켈트족이 최초로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사슬갑옷은 동유럽에서 발굴한 갈리아인 혹은 이탈리아에서 발굴한 에트루리아인의 사슬갑옷으로, 학자들은 대략 기원전 3~4세기경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후 유럽 전역과 북아프리카,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인도 등지로 퍼져나갔으며 동아시아에는 8세기경 중앙아시아를 통해 사슬갑옷이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3.1. 사용

3.1.1. 유럽

파일:external/2.bp.blogspot.com/Knight_1190_2.jpg
12세기서유럽 기사의 무장

유럽의 갑옷은 크게 고대 그리스고대 로마의 소위 '전통적인' 청동로 만든 갑옷과, 로마의 적인 '야만족'이 만든 가죽사슬로 만든 것으로 나뉜다.

유럽 문화의 기초인 그리스와 로마에서 발달시킨 형태의 갑옷들은 중세 유럽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후대 르네상스 등에서 로마시대 갑주의 형태를 모방하는 일은 있었지만, 그 제조기술과 형태가 그대로 전수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오히려 로마의 적들이 사용하던 사슬 갑옷이 그리스와 로마의 것을 누르고 그대로 이어져 중세를 평정했다.

일단 현재 유물 중에서는 기원전 3~4세기 갈리아인이나 에트루리아인의 사슬 갑옷이 제일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스에서도 사슬이 사용되었다고 추정할만한 사료가 약간 있으며, 이집트 파라오의 복장 그림에서도 사슬 비슷한 것이 보이고, 사르마티아인과 페니키아인들도 썼을 가능성이 있지만 명확한 유물은 나오지 않았다.

확실한 사실은 사슬 갑옷은 철기시대 이후 등장했고, 이집트 19왕조 이전 왕조 군대처럼 청동기시대 군대는 사슬 갑옷을 입지 않았다는 것이다. 청동을 사슬 형태 갑옷으로 만들면 청동의 연성 때문에 사슬이 휘어지거나 뚝뚝 끊어질 수 있다. 사슬이 쉽게 끊어지지 않으려면 사슬을 철 같은 튼튼한 금속 재질로 만들어야 하므로, 청동기 시대 청동 재질 갑옷은 대부분 판금이거나 청동판을 가죽에 덧대거나, 작은 청동판들을 끈으로 엮어서 찰갑이나 어린갑의 형태로 만들어 입었다. 따라서 누비아 왕조 이후라면 모를까 그 이전 이집트 왕조의 파라오가 사슬갑옷을 입었을 가능성은 없다.

로마인은 기원전 1세기 즈음부터 현재의 북부 이탈리아 지방에서 골(Gaul)족과 전투를 치른 뒤 사슬갑옷을 사용했다. 쓸 만한 것이라면 뭐든지 받아들이던 로마의 전통대로 골족의 사슬갑옷을 받아들여 로리카 하마타(lorica hamata)라는 형태로 채용했다. 로리카 하마타 시절부터 이미 리벳링을 사용했는데, 내경 5 mm 외경 7 mm짜리 철제 규격 링을 3만 개 정도 사용해서 한 벌을 제작했다. 로리카 하마타는 그 후 3세기 말의 군제 개혁 때까지 로마군의 표준 갑옷으로 오래동안 널리 사용되었다.[3]

그리고 이때 전파된 사슬갑옷이 13세기까지 계속 유럽에서 사용되었다.[4] 사실 4세기 고트족이 사용하던 것이나 12세기 십자군들이 사용하던 것이나 기본구조는 같다고 봐도 무방하지만, 시대에 따라 세부적인 차이가 있었다.

3.1.2.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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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사슬갑옷.jpg

한국사에서는 삼국사기 보장왕 본기에 당태종이 고구려를 칠 때 요동성에 있는 동명성왕의 사당에서 쇄갑을 모셨다는 기록이 첫 사슬 갑옷 관련 내용이다. 그러나 동명성왕 사당에 있었다는 갑옷이 정말로 동명성왕이 사용했던 것인지,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사슬 갑옷이 맞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비슷한 기록은 세계적으로도 많고, 만주나 한반도에서 발굴한 비슷한 시기 유물도 없다. 한반도에서 본격적으로 찰갑이 아닌 쇄자갑을 사용함은 고려시대부터이다. 한국에서는 철판을 잘게 잘라 끈으로 엮은 찰갑이 영상물로 자주 나와 사슬갑옷은 잘 쓰이지 않았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고려 말기나 조선 전기에도 백성들이 군역에 소집될 때 갖추어야 할 갑옷으로 쇄자갑이 있었다. 그래서 여말선초의 병사들의 갑옷을 위 사진에서 왼쪽에 있는 갑옷으로 복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국에서는 전진의 황제 부견이 서역원정을 나섰을 때의 기록으로는 구원에 나선 서역의 회호국 병사들은 사슬갑옷을 입어 화살을 쏘아도 죽지 않았으며, 올가미를 던져 전진하던 병사들을 끌고 가버려 공포의 대상이었다고 전한다. 이 기록을 반대로 말하면 이때 중국에서는 사슬갑옷을 쓰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후 쇄자갑 기록이 없으므로 사슬갑옷을 만드는 기술을 가져오지는 못한 듯하다. 이후 당나라 때 당현종이 서역에서 쇄자갑을 선물받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쇄자갑이 등장하므로 중국에서 사슬갑옷을 쓰기 시작한 때는 당나라 시절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 이후 명나라 시절부터 사슬갑옷이 본격적으로 사용되었고, 명나라의 군사백과사전인 무비지에는 사슬로 만들어진 투구로 추정되는 삽화도 있다.

대륙에서 일본에 사슬 갑옷 기술을 전파한 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일본에서 발굴한 유물들을 보면 시기적으로 원나라의 일본 원정 이후부터 사슬 갑옷을 쓰기 시작한 듯하다. 그러나 일본은 원래 사슬갑옷을 주된 갑옷으로는 사용하지 않았고, 팔을 방어하는 고테(籠手)나 종아리를 보호하는 스네아떼(臑当) 따위 보조방호구 철판의 틈을 연결하기 위한 보조도구로 사용했을 뿐이었다. 타다미구족이라고 하여 경번갑 같은 것이 있기는 하나, 이조차도 철판을 연결하기 위한 도구였을 뿐이었다.

일본은 에도시대에 들어서 사슬갑옷을 본격적으로 주된 갑옷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평복 아래에 간편하게 입을 수 있으면서도 칼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다는 점 덕에 당시 사무라이들로부터 각광을 받았다[5]. 특히 막부 말기의 험악한 치안 하에서 쇄자갑이 크게 유행하였다. 신선조도 사슬갑옷을 애용했다.

3.1.3. 중동인도반도

중동인도반도는 더운 기후에서 통풍이 잘 된다는 장점 때문에 메일을 굉장히 애용했으며 플랫&리벳링에서 관둔 유럽과는 달리 리벳을 2개를 박는 등 한수 높은 강화를 하기도 하고, 더 나아가 사슬과 철판을 연결한 경번갑 또한 많이 사용했다. 오스만 제국은 유럽과 지속적인 전쟁을 벌여 높은 방어력의 유럽 갑옷에 대항하기 위해 벙어리장갑 건틀렛을 사용하는 등 이슬람 세계에서도 특별히 방어력을 신경썼는데, 그런 오스만 제국도 사슬 갑옷과 경번갑을 많이 쓰는 것은 똑같다.

3.2. 쇠퇴

확실히 사슬 갑옷은 통풍이 잘되고 착의와 탈의가 쉬우며 때에 따라선 보온 효과가 있는 갑옷이었지만 금속제련 기술발전으로 점차 그 한계가 나타난다.

12세기 연대기기록자 웨일스의 제랄드가 남긴 일화에 따르면, 당시 12세기 후반 웨일스의 국경선에서는 영국인 남작 윌리엄 드 브라오스가 보낸 병력과 웨일스인들 간에 산발적인 전투가 잦았는데, 웨일스의 장궁병이 말에 타고 있는 영국인 맨앳암즈를 쏘아맞추었더니 허벅지를 관통해서 말까지 죽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화살은 우선 그 맨앳암즈의 호버크를 뚫고, 그 아래의 쇼스를 뚫고, 그 아래의 가죽옷과 맨앳암즈의 허벅지를 관통해서, 가죽으로 된 말안장을 뚫어서, 말 몸통에 박혔다고 알려져 있었다. 다만 이는 과장된 것으로, 당시 대퇴부를 보호하는 갑옷은 쇄자갑이었으며, 반대편 다리에 화살 한 대가 또 박힌 것으로 확인된다.[6]

하지만 장궁만이 전장에서 두려운 것은 아니다. 도끼, , 할버드 같은 무기들은 충분히 사슬갑옷을 상대할 위력이 있었고, 실제로 이런 무기를 가진 하층민이 기사들을 물리친 예는 여럿 있다. 1302년 플랑드르에서 벌어진 코르트레이크 전투에서는 할버드나 구텐탁 같은 류의 무기를 가진 플랑드르인 민병대가 완전무장한 다수의 프랑스 정규군과 플랑드르 귀족 기사들을 물리친 적이 있고, 1315년 모르가르텐에서 스위스의 농민들은 할버드로 오스트리아 맨앳암즈를 박살내버렸다. 영국에서도 1314년 바낙번 전투에서 초기형 파이크 등으로 무장한 로버트 브루스의 군대가 영국왕 에드워드 2세의 군대를 물리치는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이 사건들이 사슬과 판금갑옷의 교차기에 있었던 중요한 전투란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지만, 이러한 전투들이 사슬갑옷 때문에 이기고 졌다고 말하는 것은 좀 넌센스고 전술, 사기, 각종 정황적인 요소가 훨씬 중요하다. 이는 유럽권의 경제성장에 힘입어 강화된 보병대가 기병대를 물리친 사례이지, 사슬갑옷이 취약점을 드러낸 사례가 보기는 어렵다. 사슬이 쇠퇴하고 판금이 등장하는 일련의 과정은 이미 13세기 초반부터 서서히 이루어져가던 일이다. 사슬갑옷을 사용하면서도 팔다리의 보호를 위해서 판금으로 만들어진 트랜지셔널 아머, 그러니까 판금 갑옷을 도입한 과도기적인 시대를 Transition Period라고 한다.

판금 갑옷이 보편화되던 시대에 이르면 손이 많이가는 사슬갑옷의 제조비용이 판금의 가격을 뛰어넘는 일도 발생하게 된다. 거기다 체인메일이 판금갑옷 수준의 방어를 갖추려면 사슬을 더 촘촘하게 해야하는 비용도 문제지만 촘촘해진 체인메일은 체인메일의 장점인 통풍과 쉬운 착의와 탈의를 불가능하게 하기때문에 체인 메일의 장점이 없어졌다. 때문에 판금이 보급되기 시작하면 사슬갑옷은 도태될 수 밖에 없었다. 다만 높으신 분들 일부가 판금갑옷과 천갑옷에 사이에 끼어 입는 경우는 있었다.

이렇듯 플레이트 아머가 더 가성비 좋고 방어력이 뛰어났지만, 체인메일만의 장점도 있고 해서 플레이트 아머가 쓰이던 시대에도 근근히 이어가다가[7], 갑옷의 사장과 함께 기나긴 체인 메일의 역사 역시 종지부를 찍는다.

17세기에 들어 일시적으로 동유럽에서는 쇄자갑을 약간 쓰긴 했다. 판금갑옷이 총기에 의미있는 방어력을 가지려면, 3 mm 이상으로 두꺼워져야 했기 때문에, 총탄 방어는 포기하고 칼이라도 막기 위해서 무겁고 비싼 판금갑옷 대신 보다 가볍고 편한 갑옷이 기병들 사이에서 유행했다. 그러나 서유럽에서는 소가죽으로 만든 코트가 유행했다. 폴란드에서는 셰프니케(쇠를 입은 자)라 불리는 중산층 징집 기병들이 체인메일 슈트를 입었고, 러시아도 마찬가지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이것도 잠깐이었을 뿐이고, 보병화력이 증가하는 17세기 후반에는 다시 퇴출된다. 이렇게 된 이유는 총을 맞으면 총탄이 박히는 충격 탓에 사슬갑옷의 사슬이 부서져서 파편처럼 몸 깊숙히 박힌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렇게 박힌 사슬의 파편은 외과수술을 해도 100% 제거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큰 문제를 일으킨다. 당장 보신 전쟁에서 사슬갑옷을 입은 막부군 정예 병력은 총탄을 맞을 경우 갑옷을 입지 않은 근왕측 병사보다 생존확률이 더 떨어졌는데, 일단 현장에서 과다출혈로 죽는 것은 기본이고, 현장에서 살더라도 사슬 파편 때문에 파상풍에 걸려죽었다. 게다가 천운으로 살아남더라도 몸 안에 있는 사슬 파편 탓에 육체적 노동을 요하는 일을 못하니 사실상 전투능력을 상실했다. 덕분에 전장에서 살고 싶다면 사슬갑옷 따위는 벗고 다니라는 격언이 퍼지게 된다.

그래서 17세기 후반 이후에는 총탄에 맞아도 갑옷파편으로 인한 부상이 상대적으로 드문 판금을 이용한 갑옷을 사용했고, 그 이후에는 갑옷 자체가 더 이상 방어력을 보장하지 못해서 쇠퇴하게 된다. 이런 와중에도 인도만이 19세기까지 실전 갑옷으로 쇄자갑을 이용했는데, 인도는 근대적인 군대와 포병을 운용하면서도 여전히 방패나 검, 갑옷을 애용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이는 전근대 냉병기 부대를 상대할 때가 잦았기 때문이다)

3.3. 현대

파일:6c76c5674fc54b4de72fa669722fd425.jpg 파일:attachment/사슬갑옷/c0063102_496a035778d8a.jpg
파일:neptunic-sharksuit-sharkproof-chainmail-dive-suit-xl.jpg
파일:external/img.ltn.com.tw/600_phpwqmGty.jpg
2016년 독일 경찰특공대 SEK에서 방검복으로 사슬갑옷을 착용한 모습.

이렇듯 근현대에도 체인메일의 수요층은 존재한다. 리인액터를 비롯하여 산업 현장의 안전장구로도 사용되고, 멋있어서 사는 사람들까지 다양한데 과거의 군용과는 다른 점이 몇 가지 있다.

리인액트 계열에선 벗티드 메일(Butted mail)의 비중이 굉장히 높다. 이는 더 이상 체인메일로 실전을 뛰지는 않지만 사슬갑옷은 가지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특별한 강화 처리가 없어 가격이 싼 체인메일을 제공하기 때문인데, 방어력은 낮은 AR값[10]과 더불어 칼로 확 베면 링이 우수수 떨어지는 절망적인 수준이다. 촘촘하게 만들면 방어력은 검의 찌르기까지는 막아낼 수 있지만, 이 경우 무게가 역사적 무게보다 5kg이상 무거워진다는 게 큰 문제다. 현재는 이 문제 때문에 Get Dress For Battle라는 업체에서 인장강도가 굉장히 강한 스프링강으로 만든 벗티드 메일이 나오고 있지만 그래도 메이커측에서 격투는 삼가도록 하고 있는 정도다. 중세의 갑옷보다 덜 촘촘하다.

오늘날에는 기존의 강철로 된 체인메일을 대체하는 스테인리스 체인메일이 나왔다. 원래 체인메일은 쇠로 만드는 특성 상 녹이 상당히 잘 스는 물건이며, 이를 세척하기 위해서는 천 옷보다 복잡하고 특수한 세탁법을 해야만 했다. 과거엔 모래가 가득 찬 통에 식초를 채운 후 마구 굴려서 모래에 갈려 녹을 떨어지게 하는 세탁법을 했고, 세탁이 끝나면 기름칠도 따로 해줘야 했다. 녹이 떨어지는 만큼 사슬도 점점 갈려나가서 장기적으로는 전투용으로 입을 게 못 되니 바꿔줘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 그러나 취미 삼아 갑옷을 사는 현대인들이 갑옷에 녹이 슬 때 일일이 청소하기도 버거우니 아예 녹 걱정이 없는 스테인리스로 만든 것들이 출시되었다. 보통 현대 체인메일들은 연강 혹은 철로 만들어지는데, 스테인리스 체인메일은 이것보다 보다 튼튼하다는 장점도 있다. 그래서 좀 더 비싸다.

4. 형태

사슬갑옷의 기본은 '사슬로 만든 셔츠'다. 유럽인들은 hauberk(호버크)라고 불렀던 사슬로 만든 셔츠는 보통 무릎에 닿을 정도로 길게 만들어서 상체와 하반신을 두루 보호했는데, 다리의 활동성과 말에 탈 때를 대비해서 앞과 뒷부분은 밑자락에서 가랑이까지 세로로 갈라놓았다. 짧게 만든 것은 haubergeon(호버젼)이라고 불러야 옳지만 호버크와 호버젼을 서로 혼동해서 쓰는 일이 많은 편이다.

반소매 티셔츠마냥 짧고 헐렁하게 만들던 팔(소매) 부분은 1100년대에 이르면 손목까지 길게 이어지고 몸에 잘 맞는 형태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1175년 이후부터는 팔 부분이 손목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루 모양에 엄지만 따로 나와있는 벙어리장갑(mufflers)을 사슬로 만들어서 손을 덮을 수 있게 해놓았다. 벙어리장갑은 팔과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연결이 되어있는 형태이고, 손바닥 쪽은 덮지 않기 때문에 벗기면 사슬갑옷의 손목에 매달려있게 된다. 머플러는 전투에 임박했을때에만 끼는 것이다. 나중에는 가죽장갑과 사슬을 꿰매어붙인 완전한 건틀렛 형태도 고안된다.

1250년 이전까지 사슬로 된 후드(머리를 덮는 부위)는 호버크에 붙어있는 것이었지만, 1250년대부터 이 부분은 분리형으로 만들어지게 된다. coif는 중세에 쓰던 머리가리개의 일종이므로 사슬로 만든 것은 mail coif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하다. 호버크와 코이프 둘 다 마찬가지로 목 부분은 끈이나 버클 따위로 단단하게 조여서 빈 틈이 없도록 단속했다. 사슬의 유연성 때문에 메일 코이프로만 머리를 보호하는 일은 드물었고 대개 코이프 위에 노르만 투구, 그레이트 헬름, 슈거로프 헬름, 케틀햇, 배시넷 등등의 투구를 썼다. 처음에는 코이프와 투구를 겹쳐서 사용했지만, 투구로 충분한 방어를 얻을수 있는 상태에서 굳이 투구가 가려주는 부분까지 사슬을 덮을 필요는 없기 때문에 투구에 사슬의 드림을 달아놓는 camail 또는 aventail 방식으로 변해간다. 사슬로 만든 목 주변을 덮어주는 방어구는 pixane이라고 한다.

사슬의 시대 초창기에는 다리는 그냥 가죽이나 리넨의 바지로만 보호를 했으나, 1100년대 이후부터는 완전무장하는 맨앳암즈는 사슬로 된 스타킹 같은 형태의 다리 보호구를 입어서 발까지도 보호를 했다. 이 스타킹은 chausses라고 부르는데 허리에 맨 벨트에 가터벨트로 연결해서[11] 고정을 했다. 현재는 다리 부분의 사슬 방어구는 쇼스라고 통틀어서 말하지만, 허벅지 부분은 chaussons, 무릎부터 그 아래 부분은 chausses라고 분리했던 시절도 있었다. 호버크가 대개 무릎길이까지 오기 때문에 chaussons를 보기는 어려운 편이고, 둘을 합해서 그냥 쇼스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구조 상 쇼스나 코이프 같은 분리되는 부분을 제외하면 하중이 어깨에 실리게 되는데, 셔츠같은 유연성덕에 벨트를 착용해 무게를 골반으로 분산시킬 수 있었다. 메일의 무게는 보통의 갑옷 수준이며 유연하고 통기성이 좋기 때문에 행동을 제약하는 면은 없지만, 하중이 모두 어깨에 실리는 것은 착용자의 피로도를 높이므로 벨트를 꼭 착용했다.

처음에는 호버크 바깥에 뭔가를 입는 일은 없었으나, 1190년 경부터는 호버크 밖에 느슨한 외투 - jupon이나 surcoat를 걸치기 시작했다. 서코트는 소백의(cotta) 위에 입는다는 의미의 프랑스말에서 온 것이며, 사실 대부분의 복장과 마찬가지로 기사 전용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중세에 일반적이던 보통의 외투 종류다. 대개 소매가 없거나 짧고, 다른 옷 위에 겹쳐입는 오버코트 형태이고 남녀가 모두 착용했다. 사슬과 마찬가지로 말에 탈때를 대비해서 앞뒤가 가랑이까지 트여있는 것이 보통이다. 사슬갑옷 위에 입은 서코트는 원래 비나 습기가 사슬에 바로 닿는 것을 막아주고 태양광선이 바로 사슬에 닿아서 달아오르는 것을 막아주는 외투의 역할에 충실했는데, 후에는 여기에 자신의 문장을 넣기도 한다. 이게 와전되어서 그냥 문장을 넣는 옷인 것으로만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그 반대이다.

사슬은 베기에 대한 저항력이 우수하지만, 매우 유연한 갑옷이라 찌르는 공격이나 타격에 의한 충격력을 흡수할 수 없었기에 이에 의한 부상을 피할 수는 없었다. 다만 일단 갑옷이기 때문에 통념처럼 찌르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은 아니었다. 사슬을 촘촘하게 만들어 둔 웬만한 제대로 만들고 정비 잘 한 사슬 갑옷은 그 당시의 화살 등의 찌르는 공격이 사슬 틈 안에 잘 박히지 못했다.[12] 그러나 찌르기에 치중한 검이나 보드킨 촉처럼 매우 뾰족한 날붙이는 사슬의 틈새로 밀려 들어가서 박히기 때문에 찌르기에 약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또한 맨살 위에 입으면 피부가 사슬에 긁히고, 둔기 공격을 맞으면 둔기 타격에 더해서 부러진 사슬이 살에 파고 들어버리니 사슬 밑에는 거의 반드시 가죽으로 된 옷을 입거나(고전 시대의 로마의 적이 쓰던 방식) Wambais, Aketon, Gambeson 등으로 부르는 패드를 넣은 천 갑옷을 먼저 입고 그 위에 사슬을 걸쳤다. 이것을 입으면 충격을 어느정도 흡수해줄 수는 있으나, 그래도 공격을 몸으로 완전히 받아낼 수는 없으니 방패로 막거나 움직여서 피해야 한다. 본래 갑옷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부상을 덜 입기 위해서 쓰는 것.

중세의 병사들에게 있어 사슬갑옷은 대체로 우수한 방어도구이며 있으면 아주 좋은 것임은 확실하다. 사슬갑옷을 전신으로 한벌 다 맞추고 투구와 방패를 구비하면 다른 갑옷 부러울 것이 없었다. 하지만 전신 세트를 한벌 맞추는 것은 몹시 비쌌기 때문에 부유한 맨앳암즈나 기사계급 만이 사슬 갑옷 한 벌을 다 맞출 수 있었고, 가난한 하급 전사나 보통 병사들은 상의만 걸치거나 그냥 천으로 된 누빈 갑옷을 입을 수 밖에 없었다.

도검이나 철판 등 다른 금속에 비해 무게당 공기와의 접촉면적이 엄청나게 넓은 탓에 녹 또한 매우 잘 스는 물건이었고, 식초를 들이부은 통 안에 모래 따위와 함께 넣고 굴려 모래로 겉을 갈아내는 방식으로 녹을 제거하고 손질했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녹슨 부위가 갈려나가며 사슬 자체가 작아지는 거라서, 오래되면 처음에 비해 얇아지고 방어력과 내구도도 저하되었다고 한다.

5. 제조

철사를 링으로 만들어서 갑옷으로 만드는 과정
재련된 철을 늘려서 철사로 만드는 과정

사슬갑옷의 제조 기법은 사슬끼리 어떻게 엮느냐의 '패턴'과, 각 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가 핵심이다.

유럽에서 제일 흔한 패턴은 4-to-1(4-in-1으로 표기하기도 한다)인데, 하나의 링이 다른 4개의 이웃링과 연결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이 제일 쉬우면서도 사슬갑옷의 기본이다.

이웃하는 링의 수를 늘리면 좀 더 촘촘하고 튼튼해지는데, 6-in-1, 8-in-1, 형태는 4-in-1과 같지만 하나의 링이 아니라 링을 두개씩 겹치는 이중겹침 방식인 double mail(king's mail) 같은 방식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 촘촘해지는 만큼 무게가 늘어나기 때문에 사실상 4-in-1이 거의 지배적이다.

대개 링은 연철로 만들었기 때문에 매우 물렀지만 후대에 나온 링 중에는 열처리가 가능할 정도의 탄소함유량을 가진 연강이 쓰인 것도 있었다. 일정한 규격의 링을 만들때는 철사를 봉에 감아서 같은 크기로 절단해서 만드는데, 그냥 양 끝단을 연결하지 않고 맞붙은 상태로만 두는 것은 butted ring이라고 한다. 이 형태는 충격을 받으면 링이 죄다 분리되어 와드득 뜯어져서 방어력이 형편없기 때문에 잘 사용하지 않았고 대개 이미테이션에서 쓰이거나, 역사적으로는 행사용으로 만든 것이라고 여겨진다.

둥근 철사로 링 형태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와셔처럼 단면이 평평한 형태로 만들어진 플랫링(Flat ring)도 있는데 플랫링은 둥근 철사링보다 구조적으로 더 강도를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대개는 양 끝단을 겹치고 납작하게 누른 다음 리벳을 박아 연결하는 리벳티드 링(Riveted ring)이 쓰였는데, 리벳링은 로마시대 로리카 하마타부터 사용되었을만큼 오래전부터 사용되어온 방식이며 약점인 틈이 벌어지는 것을 방지하는 그나마 나은 방식이다. 그냥 리벳이 아니라 쐐기 형태의 것으로 리벳팅하는 wedge riveted는 보통의 리벳보다 강력했고 보다 높은 방어력을 위해 리벳을 두개 박아서 고정하기도 했고 스테이플(Staple: U자 모양 못)을 쓰는 경우가 드물게 있었다.

그리고 제일 강도가 우수한 링은 철판을 찍고 구멍을 뚫어서 만들거나 양끝 단을 용접해놓은 solid ring(또는 close ring)이지만, 솔리드 링은 애초에 끊어진 부위가 없으므로 제일 우수한 강도를 낼 수 있는 반면에 링끼리 연결할 방법이 없으니까. 실제로는 리벳링과 솔리드링을 한줄씩 번갈아서 결합했다. 사슬갑옷 중에서는 이 타입이 가장 강력한 것이고 제대로 된 전투용 사슬갑옷이라 할 수 있다.

사료에서 종종 언급되는 "double mail"은 현재로서는 유물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그 정체를 확신할 수가 없다. 호버크를 두겹 겹쳐입은 것일 수도 있고, 링을 2개 더 사용한 것(6-in-1)일 수도 있고, 링을 두배 사용한 것(8-in-1)일 수도 있고, 링 두개를 겹쳐 하나의 위치에 끼워넣어 만드는 king's mail(킹스 메일이란 표현도 현대에 만들어낸 것이다) 8-in-2 패턴일 수도 있다. 그 형태야 어쨌든 문건에서 더블 메일은 무거운 만큼 방어력이 확실히 우수해서 화살과 랜스에도 잘 뚫리지 않았다는 기록만은 확실히 존재한다.

십자군 전쟁 시대의 이슬람 연대기 기록자인 우사마흐 이븐 문퀴드(Usamah ibn Munqidh)는 아랍계 시리아인 전사가 프랑크인 기사를 마상창으로 찔러 떨어트린 일화를 소개했는데, 그 아랍 전사는 상대가 분명 죽었으리라 생각했지만 이후 죽은줄 알았던 인물이 멀쩡하게 살아서 돌아온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고 한다. 그 프랑크인 기사는 더블 메일을 입고 있었던 것이다.

동로마 역사가 안나 콤네나는 쇄자갑을 입고 카이트 실드를 든 노르만 기사는 거의 불사신이나 마찬가지라서 투르크인들의 활은 물론 거인이 당긴 활로도 상처입힐 수 없을 것이라고 묘사했으며, 살라딘의 연대기를 쓴 바하 앗딘은 아르수프 전투에서 두꺼운 천갑옷에 사슬갑옷을 껴입은 십자군 보병들이 화살을 열댓발씩 꽂은 채 멀쩡하게 서서 대열을 지키고 있는 반면 십자군의 쇠뇌는 궁기병들에게 상당한 위협이 되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판금갑옷 뿐만 아니라 사슬갑옷에도 프루프는 있었고, 이것을 가리키는 "haute cloueur", "demi-cloueur", "botte cassée", "botte" 등의 다양한 용어가 있었다. 이러한 용어들의 정확한 정의는 모호하지만, 일단 프루프에 동원된 공격의 타입이나 사슬의 등급을 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botte는 검의 일격을 말하는 것으로 보이고, haute나 demi-cloueurs는 각 사슬을 물리는 리벳이 하나냐 두개냐를 말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보통의 사슬은 리벳 하나로 물려놓지만 더 큰 강도를 얻기 위해 리벳 두개를 사용한 유물도 존재한다. "de toute botte"는 검과 도끼, 화살과 쇠뇌에 대응하는 토탈 프루프를 표현하는 것 같다.

프루프 기록에서는 보통의 쇠뇌와 권양기로 장전하는 고위력의 쇠뇌를 구분하고 있으므로, 열처리를 거친 솔리드링과 리벳링으로 만든 것을 더블 메일로 두텁게 만든 사슬 갑옷이라면 화살에 대한 방호가 불가능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열처리가 화살의 방호에 이득이었을지는 확실치 않은게, 오히려 연철을 사용한 메일이 보드킨화살을 방호하는 실험 결과가 나온것도 있다. # 숱한 사료들에서 나온 체인메일 역시 모두 열처리를 했다고 보기 어렵고. 여러모로 조사와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사슬갑옷의 방호력 문제가 역사학자들 관심 밖의 영역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주로 아마추어들에 의해서 실험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비용 문제로 리인액트에 사용되는 사슬갑옷의 대부분이 실전용으론 쓰이지 않았던 벗티드링을 사용한 사슬갑옷이며, 유투브 등지에 올라오는 방호력 실험도 그걸 이용한 게 대부분이다. 이런 영상까지 올라올 정도. 역시 체계적인 실험이라 보긴 힘들지만, 솔리드링과 리벳링을 이용한 실험에서는 화살과 투창에 꽤 방호력을 가진 모습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사슬갑옷의 방호력에 대한 실험과 주장은 조금 비판적으로 접근해볼 필요가 있다.

단 사슬갑옷의 유지보수 문제를 감안하면 착용자의 경제형편이나 전장상황에 따라 방어력 편차가 꽤 심했던 건 확실하다. 위에서 설명했듯 공기에 노출된 면적이 넓은 특성상 녹이 매우 쉽게 슬어 자연히 식초를 끼얹은 모래에 굴려 자주 제거해야 했으며 링이 얇아지거나 찢어져 못 입게 되면 해당부위를 다시 교체하는 건 필수였다. 그런데 이런 과정엔 비용 및 시간이 드므로 착용자가 돈이 없거나 전장터가 습한데 적군이 바로 코앞이라 모래통에 넣을 시간이 없는 등등 오만 변수로 인해 그냥 입는 경우도 비일비재했을 것이고 화살이나 칼날이 재수없이 보수 못한 취약부위를 관통하거나 베는 일이 가끔씩 있었을 것이다. 당대의 사료마다 뚫었다. 튕겨냈다 등등 상반되는 진술을 하는 이유가 있는 셈이다.

6. 잘못 알려진 사슬갑옷들

Samuel Rusu Meyrick 같은 19세기 학자는 중세의 그림이나 조각을 통해서 갑옷의 형태를 문자... 아니, 그림 그대로 재현해보려는 시도를 했다. 그러니까 보통의 유럽식 4-in-1이 아닌, 그림에 보이는 패턴을 그대로 재현을 해보려고 용을 썼던 것이다. 19세기 학자들의 연구는 우리 연구의 기초를 제시해주는 소중한 것들이지만, 그림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사실 좀 무리가 있는 시도였다. 중세 그림에서 보여지는 특이한 무늬의 갑옷들은 대부분 별달리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냥 사슬 그림을 단순화/패턴화해서 그린 것인 경우가 많았다는게 문제다.

예를 들어 바이외 태잎스트리에서 보이는 갑옷들은 그냥 사슬갑옷이 아니라 링메일, 밴디드 메일처럼 보이는 것이 많지만, 거기 나오는 거는 전부 다 그냥 체인메일이다.

그런 식으로 (아마도 실제 사용되지 않았을, 실존하지 않았을) 갑옷의 패턴이 잘못 알려진 것들이 있는데…

6.1. 밴디드 메일(Banded 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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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삽화의 사슬 무늬 묘사와 19세기 재현

중세 삽화 중 일부가 사슬갑옷의 무늬를 마치 띠처럼 길게 연결되어있는 것처럼 묘사한 것에서 착안해, 뭔가 띠처럼 무늬가 들어가게 고리를 엮어 만들어낸 형태다. 19세기 몇몇 학자들은 갑옷을 구성하는 보호판 또는 링을 띠처럼 연결해놓은 모양새라고 유추했는데, 이 형태로 갑옷이 만들어지려면... 가죽 천 두겹에 길게 박음질을 해서 띠 형태의 주머니를 만들고, 이 안에 체인링을 빼곡히 채우는 형태로 재현을 해봤다. 또는, 체인링을 엽전 꿰듯이 길게 꿰어서 만들어보기도 했다. 19세기만 하더라도 밴디드 메일이라는 것이 실제 형태라고 생각했지만 이후의 학자들은 이게 중세식의 그림을 잘못 해석했을 뿐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D&D의 영향으로 철판 사이를 사슬로 엮어 만든 갑옷인 경번갑(Splinted mail, Plated mail, Plate and mail)을 이렇게 칭하기도 한다.

6.2. 링메일(Ring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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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슬끼리 연결하는게 아니라 링을 천 갑옷 등에 꿰메어서 만들어 놓은, 스케일 아머 같은 갑옷이다. 이것 역시 빅토리아 시대의 학자들이 그림을 그대로 해석해 보려고 만들어 놓은 것이다.

밴디드 메일과는 달리 링메일은 실존하긴 했다. 단지 이것이 그림과 조각에 등장하는 만큼 보편적으로 중세 유럽에서 사용되지 않았던게 문제지. 그림을 그대로 읽는다면 사슬갑옷 만큼이나 흔하게 존재했어야 하는데, 유럽에서는 (아래 설명하는 다른 종류를 제외하면) 중세시대의 실물이 발견되지 않았으며 때문에 보통의 메일을 잘못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게다가 링메일이라는 용어도 문제가 있다. 링과 메일은 동어반복이며, 학자들은 체인메일의 변형 또는 메일을 부분적으로 사용하는 경우에 한해서만 메일이라는 표현을 허용하고 있다. 이 갑옷은 차라리 스케일 아머의 친척뻘에 가깝고 스케일 아머보다 덜 촘촘하고 더 유연하다. 따라서 링메일이 아니라 링 아머(ring armour)라고 하는 것이 옳다.

일단, 링 아머 형태의 갑옷은 동양에도 유럽에도 있었다. 16~17세기 기록에서는 eyelet doublet이나 eyelet coat이라고 불리고 독일에서는 "Schiessjoppe"라는 명칭으로 불린, 더블릿이나 외투에 링을 꿰메어놓은 형태의 갑옷의 기록과 유물이 남아있다. 이것은 확실히 링 아머라고 할 수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중세가 아닌 근세 시대의 갑옷이다. 카롤링거 시대 프랑크 족의 것 중에는 일반 천 옷 위에 링이나 디스크를 붙여서 보강하여 전투복으로 사용한 것이 있는데 (프랑스어로 broigne maclée라고 부른다) 이걸 사료의 그림을 해석해서 만든 링 아머와 같은 것으로 봐야할지는 조금 미묘한 감이 있다.

6.3. 그 외

이외에도 Meyrick은 자신이 연구 과정에서 실험해본 패턴을 tegulated mail, mascled mail, trelliced mail 등으로 명칭을 붙여서 의견을 제시했는데, John Hewitt나 Charles Ffoulkes 같은 학자들은 마이릭의 의견이 옳지 않다고 보았으며 20세기에 들어서서 최종적으로 Claude Blaire가 잘못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려서 이것이 도검갑주계에서 보편론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마이릭의 설을 지지하던 Charles Henry Ashdown, Eugène Emmanuel Viollet-le-duc 같은 후대 학자들의 의견이 판타지 롤플레잉 게임 등에서 채용된 탓에 실존하지 않는 갑옷, 잘못된 용어가 서브컬쳐계로 퍼져나가게 된 것이다.

밴디드 메일과 링메일 같은게 서브컬쳐 계열에서 알려지게 된 것은 던전 앤 드래곤에서 게임 상에 갑옷으로 등장시켰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무 갑옷에나 대고 냅다 mail이란 단어를 붙인 것도 댄디의 원죄다. 스케일메일, 밴디드메일, 링메일. 등. 때문에 AD&D 시절 드래곤 매거진에서도 이에 대한 논의가 있었던 적이 있다. 뭐, 결국 말쌈하던 사람들끼리 "판타지니까 가능하다." 하고 배째고 넘어갔고, 결국 4판 가서는 체인 플레이트로 통폐합되었다.

그런데 이건 말을 꺼낸 댄디도 문제지만, 게임책을 곧이곧대로 믿고 교차검증 안해보고 주워섬기는 놈도 바보다. 게다가 댄디에 나오는 밴디드 메일은 사실 엽전꿰듯이 사슬링을 꿰어놨다기보다는 패딩 위에 얇은 사슬 위에 작은 갑옷조각을 줄지어서 띠처럼 연결해서 보강해서 갑옷 형태를 만들었다고 표현해서, 마치 스플린트 메일이나 로리카 세그먼타타를 떠올릴랑말랑하게 만드는 요상한 느낌으로 표현해놓았다.

7. 미디어에서

서구권에서는 그나마 다른 문화권보다 사슬갑옷이 자주 등장하는 편이지만, 일단 판금 갑옷에 비해 인식이 떨어져 잘 등장하지 않는다. 판금 갑옷이 간지 면에서는 압도적이기 때문. 그래서 나온들 엑스트라나 조연이 착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십자군 전쟁에 관심있는 역덕후나 일단 철제 갑옷이라 튼튼해 보이고 판금보다는 가볍고 움직이기 편해보이는 인식 탓에 보다 민첩하고 맹습으로 즐겨 싸우는 전사나 검투사보다 자주 움직일 필요가 있는 원정대나 모험가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경갑과 중갑 사이의 특유의 이미지 탓에 소수 마니아가 존재한다. 움직일때다 찰캉찰캉 사슬끼리 부딪치는 효과음을 즐기는건 덤. 후자의 팬은 경갑 중갑 개념이 있는 RPG의 팬이거나 특히 반지의 제왕 실사영화 시리즈의 영향이 크다.

다만 주인공 세력이 바이킹, 노르만과 같은 북유럽 계열인 경우이면 마초성을 강조해서인지 맨살에 사슬반팔만 입는 연출이나 초짜 기사나 하급 성기사인 경우는 십자군의 사례처럼 타바드[13]라는 천옷 유니폼을 위에 입히거나 용병이나 모험가인 경우는 활동성을 강조해 평상복 사복차림 혹은 천, 가죽풍의 전투복 안에 이너아머로 입는 경우가 다수.[14] 그 외에는 고증에 충실한 작품에서나 등장하는 편.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만화 애니메이션 분야에선 천대 받는 정도가 아니라 시궁창인데 무엇보다 가장 천대받는 이유는 수 많은 쇠고리들과 사슬이 엮인 디테일을 몸뚱이에 맞춰 그리기 매우 어렵고 실력이 뛰어나도 작업량이 엄청나게 불어나니 일명 가성비가 매우 떨어지기 때문이다. 뽕빨물에서조차 수요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망사 스타킹을 입은 누님 캐릭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과 비슷한 이유, 그래서 만화에서 나오는 경우는 두 가지인데 최대한 디테일을 생략하고[15] 배경 엑스트라에게 입혀주거나 혹은 사슬갑옷이 필연적으로 나오는 십자군 전쟁 배경의 극화체 실사체의 전쟁만화. 후자의 경우에는 작품 자체가 귀하지만 그림 작가의 실력이 엄청나게 뛰어난 수준을 넘는걸 보장한다.

하지만 소품을 만드는 수고의 별 차이가 없는 영화계나 텍스쳐 작업량이 별 차이가 없는 게임계[16]에는 꽤나 취급이 좋다. 반지의 제왕 실사영화 시리즈호빗 실사영화 시리즈의 주역들은 위에 옷을 입어서 잘 안 보이지만 전부 사슬갑옷 아니면 찰갑을 입고 있다. 게다가 어떻게 된 게 엑스트라에 가까워질수록 갑옷이 점점 좋아진다. 오히려 할디르같은 쩌리나 곤도르 병사들이 판금을 입고 있으며, 악역우루크하이나 전투트롤들의 갑옷도 투박하긴 하지만 상당히 중장갑이다. 아마 이러한 차이는 주인공 일행은 여정을 떠나는 입장인지라, 아무래도 사슬 갑옷이 판금갑주보다는 활동적이고, 간편해 보이는 '이미지'가 강해서 결정된 사항으로 보인다.[17] 근데 사슬이라고는 해도 가령 프로도가 받쳐입은 갑옷은 미스릴제 사슬갑옷이라서 판금보다 못하다고 할 수도 없다.[18] 저 강력한 갑옷 덕분에 죽을 만한 공격에서 목숨을 건지기도 했다.[19]

영상물이나 게임에서는 높은 확률로 미튼(손 보호구)과 배시넷(투구)이 누락된다. 즉 전신을 메일로 보호하고 있으면서도 가장 손상되기 쉬운 손가락과 머리를 위험에 노출시키고 있는 것이다. 투구를 착용하지 않으면 캐릭터의 얼굴이 보이기 때문에 누가 누구인지 알기 쉬워 그리 하는 듯. 허나 실제로는 반드시 메일 코이프 위에 살레나 배시넷을 착용해 머리를 공격으로부터 보호했다.

한국이나 중국 사극에서는 그냥 천옷, 두정갑이나 찰갑, 그리고 찰갑의 탈을 쓴 판금갑옷에 밀려 등장이 거의 없다. 거의 유일하게 주인공이 입은 경우는 천추태후(드라마). 재미있는 것은 이 사슬갑옷 소품은 반지의 제왕 제작진이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래도 특히 서구제 비디오 게임에서는 매우 자주 등장한다. 대부분 플레이트 아머를 가기 전에 거쳐 가는 단계이지만, 플레이트 아머보다 활동성이 좋다는 점(사실 사슬갑옷도 매우 무겁지만)을 이용해 사슬을 주로 입는 캐릭터나 클래스도 등장한다.

젤다의 전설 황혼의 공주젤다의 전설 스카이워드 소드에서 링크가 옷 안에 입고 등장한다.

왈도체로는 사슬편지라고 한다. Mail을 갑옷이 아닌 편지로 해석해 생긴 참사. 특히 엘프제 사슬갑옷(Elven chain mail)을 열한 개의 사슬편지(Eleven chain mail)로 해석한 것은 왈도체의 숨은 백미로 꼽히곤 한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네 가지 갑옷 분류, 천 - 가죽 - 사슬 - 판금 분류 하나로 영어로는 mail로 불린다. 착용 클래스는 사냥꾼, 주술사, 기원사가 있다. 하지만 방어구 유형 중에서는 상당히 홀대받는 유형으로 꼽히는데, 용군단 이전까지 단 둘만 입을 수 있었던데다 확장팩을 통틀어서 가뭄에 콩나는 몇몇 세트를 제외하면 정말 외형이 못 생긴 걸로 악명 높다. 위에도 언급한 '피부 위에 사슬 텍스쳐를 입히는 방식'을 쓸데없이 적극 활용하기 때문에 사슬 무늬의 쫄쫄이를 입히고 그 위에 유독 우스꽝스러운 투구 혹은 장식용 어깨갑옷 등을 더 달아준 모습으로 퉁쳐 타 클래스보다 괴상한 디자인으로 나올 때가 대부분이다. 그나마 주술사는 보통 자연현상을 테마로 디자인하다 보니 충분히 봐줄만한 편이지만, 사냥꾼 티어셋[20]은 호평을 받은 디자인이 손에 꼽을 정도. 이렇다 보니 이런 사슬룩을 잘 소화하는 종족은 얼라&호드를 통틀어서 적은 편이다.

중세 전쟁을 구현한 게임 마운트 앤 블레이드에서 중간 정도의 방어도를 지닌 갑옷들은 죄다 이러한 사슬 형태의 갑옷들이다. 이쯤만 갖춰입어도 베는 무기에 대해서는 상당한 방어력을 제공해준다. 플레이트보다 무게가 낮게 책정되어 활동성이 좋기도 하고, 바닐라 버전에서 딱 한 종류인 풀 플레이트에 비해 순수 사슬이나 금속판으로 보강한 사슬류를 합하면 입맛대로 선택의 폭도 넓다. 다만 둔기나 찌르는 무기에는 그다지 효과를 보지 못하며, 둔기는 기본 공격력 자체가 낮게 책정되었으며 풀 플레이트를 입어도 잘 막지 못하므로 그렇다 쳐도 화살과 투창에는 정말 얄짤없다. 사실 이 게임에서는 플레이트 아머가 멋 없다고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워낙 투박하게 생겨서. 장비의 차이가 어느 정도 방패와 실력, 그리고 병력을 통해 커버되기도 한다. 다만 플레이트가 방어력은 월등해서 아바레스트 계열 아니면 저난이도에서는 거의 무적이다. 다만 후속작인 배너로드는 시대적 배경이 더 앞이기 때문에 최상위 갑옷 자리에서 판금갑옷이 퇴출되고[21] 촘촘히 짜인 라멜라나 일부 문화권의 철편이 추가된 사슬갑옷이 최상위 갑옷 역할을 한다.

라이트 노벨 방패 용사 성공담에서도 주인공인 이와타니 나오후미의 초반부 장비로 등장하지만, 모종의 사건[22] 이후로 사슬갑옷은 거들떠보지도 않게 된다. 그 대신 가죽갑옷 베이스에 부분적으로 철판을 덧대어 방어력을 강화시킨 커스텀 갑옷을 애용한다.

고블린 슬레이어의 주인공인 여신관이 1권 초반에 고블린한테 혹독하게 당한 이후부터 고블린 슬레이어의 조언에 따라 옷 안에 사슬 갑옷을 입었으며 고블린 슬레이어는 사슬 갑옷 위에 가죽 갑옷을 덧대 입는다.

더 위쳐 시리즈의 괴물 사냥꾼들, 위쳐들의 복장으로 사슬 갑옷이 붙어있는 경우가 많다.

매그너스 체이스와 아스가르드의 신들 세계관 속 토르가 사슬갑옷을 입고 나온다.

전민희 작가의 소설 세월의 돌의 파비안 크리스차넨이 사슬갑옷의 가격을 깎기 위해 여명검의 손잡이를 대장장이에게 잡으라고 한다. 물론 여명검은 파비안을 제외하곤 뜨겁게 느껴지므로 대장장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명검을 잡는 파비안에게 가격을 깎아주게 된다.

영국의 작가이자 탐험가인 팀 세버린이 쓴 소설 바이킹의 2권에는 바이킹들이 사슬 갑옷을 두고 벌이는 짧은 논쟁이 실려 있다.
덥고 무거운 사슬 갑옷인 비르니를 입고 훈련을 처음부터 되풀이하라는 교관의 지시에 우람한 덴마크 사내가 대담하게 의문을 제기했다. 교관이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우리더러 방패를 나무틀에 기대어 놓고 그 뒤에 돼지 시체를 두라고 지시했다. 그러고는 병기창으로 들어가 투창 하나를 꺼내 온 뒤, 스무 걸음 떨어진 곳에서 첫 번째 투창을 조준하고 던졌다. 그러자 금속 창날이 방패를 깨끗이 뚫고 돼지 시체에 한 뼘 길이만큼 꽂혔다. "이제 너희들이 앞으로 오딘의 그물인 비르니를 입고 훈련해야 하는 까닭을 알았을 게다." 교관이 짖어댔다.
바이킹 2권/ 팀 세버린 지음/ 이원경 번역/ 208쪽

마인크래프트에서도 나온다. 방어력은 가죽 세트보다 강하고 철 갑옷보다 약한 수준. 제작이 불가능하며 주민과 거래를 하거나 보통 이상의 난이도에서 이걸 입고 생성되는 좀비스켈레톤을 죽여야 얻을 수 있다. 특유의 희소성과 스킨이 비쳐 보이는 특성 때문에 패션아이템으로 쓰인다.

이런 사슬 갑옷도 있다.

8. 참고문헌

A Knight And His Armor by Ewart Oakeshott
Armour & weapons by Charles J. Ffoulkes
The armourer and his craft from the XIth to the XVIth century by Charles J. Ffoulkes
Rusu, M., “Das Keltische Fürstengrab von Ciumeşti in Rumänien”, Germania 50, 1969
Dragon Magazine issue 123(July 1987), 126(October 1987), 131(March 1988)
http://en.wikipedia.org/wiki/Mail_(armour)
http://en.wikipedia.org/wiki/Hauberk
http://en.wikipedia.org/wiki/Surcoat
http://en.wikipedia.org/wiki/Ringmail
http://en.wikipedia.org/wiki/Banded_mail
http://www.arador.com/articles/chainmail.html


[1] 중세 시대를 다루는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4의 인게임 다큐멘터리 영상이다. 게임 제작진은 매 캠페인마다 중세 시대의 정치 경제 및 군사, 문화 등 각 분야의 모습들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으며, 한국 정발판은 더빙 및 자막을 삽입하였다. 실제 당시의 사슬갑옷을 연구한 전문가들이 이를 재현 제작하여 방호력을 실험하는 장면이 나온다.[2] 밑의 사슬갑옷 역사 항목에도 나오듯 사슬갑옷은 철기 시대가 도래한 이후 등장한 갑옷이다. 간혹 청동기 시대 벽화에 사슬갑옷 비스므리한 게 그려졌다고 청동기시대에도 사슬갑옷이 존재했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이 있지만, 청동의 특성 때문에 청동으로 사슬갑옷을 만들기는 무리다.[3] 로마군하면 흔히 떠올리는 로리카 세그멘타타는 더 늦게 나타났고, 그마저도 하마타와 혼용해서 쓰이다가 얼마 안 가 사라졌다.[4] 특히 바이킹들이 중세 초기에 많이 사용하였다.[5] 오늘날까지 일본에서 사랑을 받고 있는 고전 추신구라의 아코 낭인들도 주군인 아사노의 복수를 하기 위해 키라 요시히사의 집으로 쳐들어갔을 때, 사슬 갑옷을 입어서 키라의 경호 무사들이 아무리 칼로 베어도 좀처럼 죽거나 다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6] Osprey Publishing, Weapon 030, The Longbow, 66 페이지 참고.[7] 귀족들이 옷 속에 입기도 했고, 전처럼 껴입지 않았을 뿐이지 플레이트 아머의 부분부분을 체인 메일로 보완했다.[8] 이 시절은 참호에서의 백병전 때문에 플레이트 아머를 연상시키는 방탄복이라든지, 메이스처럼 생긴 트렌치 클럽이라는 근접전 무기 따위가 나오기도 했다.[9] 사족으로 호빗: 다섯 군대 전투에서 바르드 역으로 출연한 루크 에반스는 하필 모조품이 모조리 떨어지는 바람에 5kg가량의 진품을 입고 촬영에 임했다고 한다. 덕분에 촬영 내내 고생한 건 덤.[10] 체인메일의 밀도를 구하는 공식. 체인메일의 링의 내부 직경÷링의 철사 두께=AR값. 벗티드는 AR값이 5밑으로 나와야만 검의 베기를 막을 수 있지만, 그래도 찌르기는 막기 어렵다. 중세 실전용은 AR값이 5이하, 정말 촘촘하게 만든 것은 4이하로 내려가는 괴물도 있지만. 이 벗티드 메일은 AR값이 6에 달하며 칼로 베기만 해도 링이 우수수 떨어지는 그냥 코스튬 용이다.[11] 스타킹이 본래 남자 귀족의 옷이었기 때문에 가터벨트 또한 남자의 물건이었다. 당시 기준으로 전혀 이상할 것이 아니다. 모양새도 위 그림과 같이 평범했다.[12] 노르만 기사나 바랑인 친위대 같이 특별히 두꺼운 사슬갑옷을 입는 병종은 화살로는 죽일 수 없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었다. 실제로 페체네그족의 멸망으로 이어진 베로이아 전투에서 페체네그 기병의 화살비는 동로마군의 보병과 기병을 모조리 돈좌시키는 위엄을 보였지만, 황제가 직접 인솔해 돌격한 바랑인 친위대에게는 전혀 피해를 주지 못했다.[13] 와우에서는 휘장이나 제복으로 번역되었다.[14] 골목쟁이네 빌보, 링크, 아스톨포, 그로구 등이 그 예시.[15] 이 경우 플라스마단의 유니폼과 비슷하게 그려진다.[16] 오히러 게임은 판금갑옷이 작업량이 많다. 사슬은 따로 모델링 만들지 않고 캐릭터 바디 위에 바디페인팅마냥 사슬 텍스쳐를 바로 올리는 방식을 써먹을 수 있기 때문.[17] 어느 정도는 사실이기도 하다. 특성상 대부분의 플레이트 아머는 아무리 인체공학적으로 설계했더라도 무거운건 어쩔 수 없는데다 체인메일보다 운동성은 떨어진다.[18] 소설 내에서 미스릴 갑옷은 매우 가볍고 방어력이 뛰어난 희귀한 갑옷으로 나온다[19] 원작 소설에서는 사실 사슬갑옷 말고는 별다른 갑옷에 대한 언급이 없으며, 화려하고 보기 좋은 트랜지셔널 아머 스타일의 영화판 갑옷들은 디자이너들이 따로 상상해서 만들어낸 것이다. 작중에서는 아예 갑옷(armor)이라는 단어 대신 사슬 갑옷(mail)가 대체 하다시피 하다. 아주 가끔씩 호버크가 언급되기는 한다.[20] 공격대(레이드) 컨텐츠에 드랍하는 상위 PVE 컨텐츠.[21] 아예 판금갑옷이 아직 개발 안 된 세계선이다.[22] 마인 스피아, 키타무라 모토야스 문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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