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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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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서(蜀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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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대장군(五虎大將軍)
노당익장(老當益壯)
황충 | 黃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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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호 <colbgcolor=#ffffff,#191919>강후(剛侯)
작위 관내후(關內侯)
최종직위 후장군(後將軍)
성씨 (黃)
이름 (忠)
한승(漢升)
생몰 기간 ? ~ 2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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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표 중랑장(中郞將) → 비장군 대행(裨將軍 代行)
촉한(유비) 토로장군(討虜將軍) → 정서장군(征西將軍) → 후장군(後將軍) }}}}}}}}}

1. 개요2. 생애(정사)3. 삼국지연의4. 평가5. 여담6. 대중매체에서

[clearfix]

1. 개요

老將說黃忠(로장설황충) 노장이라면 황충을 말하니
收川立大功(수천립대공) 서천을 얻을 때 큰 공 세우네
重披金鎖甲(중피금쇄갑) 쇄갑을 엄중히 걸치고
雙挽鐵胎弓(쌍만철태궁) 양팔로 철태궁을 잡아당기니
膽氣驚河北(담기경하북) 담력은 하북을 뒤흔들고
威名鎮蜀中(위명진촉중) 위명은 촉에 가득하네
臨亡頭似雪(림망두사설) 죽을 때 머리는 눈처럼 희건만
猶自顯英雄(유자현영웅) 영웅의 모습이 더욱 드러나네
후한 말, 삼국시대 촉한의 인물이자 유비 휘하의 무장.

형주 남양군 사람으로서, 는 한승(漢升).[1] 시호는 강후(剛候)[2]다.

익주 정벌과 한중 공방전에서 엄청난 활약을 하여 유비의 영토 확장에서 가장 많은 공을 세운 명장으로 항상 앞장서서 적을 깨부수고 점령하여 그 용맹이 전군의 으뜸이었다고 한다. 그 용맹함과 사람됨, 높은 공로 덕분에 항장 출신이란 한계를 극복하고 만인지적이라 일컬어진 관우, 장비와 동렬에 서며 당대와 후대를 가리지 않고 큰 명성을 떨쳤다.

촉한의 인물들 중에서도 조운과 더불어 굳세고 강직하면서 인정이 두텁고 온화한 인품을 지녔기에 편입된 장수임에도 불구하고 유비의 남다른 신임을 받았다. 동시에 《삼국지연의》를 통해 최고의 명궁이자 노장(老將)의 대명사로 알려진 인물.

2. 생애(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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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삼국지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훨씬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촉장들이 늘 그렇듯 수많은 적장들을 쓰러뜨린 인간병기 역을 맡고 있으며, 정사에서 보여준 강인한 모습이 한층 강화되었다.

유비와의 만남도 보다 극적으로 묘사되었다. 형남정벌전은 적벽대전이라는 큰 이벤트 이후 유비세력이 형남 4군을 유비군의 간판급 명장들이 각각 정벌한다는 쉬어가는 전개이다. 대략적으로 남만정벌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그런 때 갑자기 황충이라는 맹장이 나타나 유비군 최강의 장수 관우를 상대로 선전하는 것이다. 즉, 형남 4군 정벌은 연의에서 황충이라는 새로운 스타 캐릭터의 데뷔전을 위한 포장이라는 것.(덤으로 위연도 합류.)

관우가 한현이 있는 장사성으로 침공하자 관우를 막기 위해 상대하다가 말에서 떨어졌는데도 자신의 패배을 인정하고 목을 치라고 하지만 관우는 다음에 말을 바꿔 타고 오라고 물러가줬다. 장사로 돌아온 황충을 한현이 활이면 간단히 끝날 것을 왜 굳이 일기토를 하냐고 꾸짖고 다음에는 활로 승부를 내라고 한다.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나 연의에서 찌질이 같이 묘사되는 한현은 의외로 자신이 아끼던 명마를 황충에게 아낌없이 내주는 모습을 보인다. 황충은 무장으로서의 은혜와 도리를 갚기 위해 또 다시 관우와 승부를 낼 때 활 꺼내 들었는데 처음 두 번은 헛발을 날리고, 이에 방심한 관우가 쫓아오자 일부러 그의 투구 장식를 활로 맞추었는데, 그제서야 관우는 황충의 궁술이 소문대로 대단하며 앞서 자신을 맞추지 않은 것은 은혜를 갚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를 본 한현이 황충이 관우와 내통한다고 의심하여 그를 가두었다. 그러나 위연과 평소 황충을 흠모하던 백성들이 봉기하여 한현은 위연에게 죽임을 당하고, 장사성은 그대로 함락된다. 그 이후 위연이 한현을 처단했음을 알리고 유비군에 투항할 것을 권유하였으나 오히려 위연을 꾸짖고 자택에 근신하였다. 이를 안 관우와 제갈량 등이 반드시 황충을 설득해 수하로 삼아야한다고 거듭 권유, 유비가 친히 황충을 찾아가 스스로를 낮추며 함께해줄 것을 간청하자 그의 인품과 대의에 감화된 황충은 유비군에 귀순하였다.

관우와 황충의 의기를 강조하는 일화지만 이것 때문에 훗날 관우가 황충을 대하는 태도에 모순이 생기기도 한다. 연의에서도 촉의 사방장군 임명 에피소드는 그대로 나오는데[3] 이때 관우가 황충과 같은 취급을 안 받겠다며 화내는 장면도 정사와 똑같기 때문이다. 분명히 장사에서는 서로를 동등한 적수로 인정하다가 나중에 오호장군에서 같은 대열에 서게 되자 정사와 똑같이 "황충 따위와 나를 세트로 묶다니!"라는 발언을 하기 때문에 현대인인 독자가 보면 어리둥절할 수 있다.

다만 이것은 '장수로서는 그 역량을 충분히 인정하지만 그 외 부분에서 자신과 동급으로 놓는다는 걸 인정할 수없다'라는 의미다. 한왕조는 고대왕조고 당연히 그 시대 사람들은 신분질서에 대한 의식이 강하다. 황건적의 난 등으로 신분질서가 뒤흔들리는 시대이기는 해도 원소의 예처럼 명문가는 명문가의 혈족이라는 이유로 높은 사회적 지위를 보장받는 시대라는 것을 생각해보자. 관우나 장비는 비록 신분이 미천하지만 같은 개국공신이자 군주의 의형제로서 유비군 입장에서는 최고급 귀족이다. 마초의 집안도 한왕실에서 대대로 한 지방을 맡은 높은 관직생활을 해온 혈통귀족이다. 따라서 마초가 유비군에 참가해온다면 오히려 마초 쪽의 눈치를 봐야할 정도로 무게추가 마초 쪽으로 기운다.

그러나 황충은 지방관의 부하 무관이라는 미관말직에 불과하므로 형주 토착귀족을 회유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해도 자신과 같은 반열에 놓는다는 것을 관우가 고깝게 볼 이유는 충분하다. 실제 해당 일화에서 오호대장군의 자격을 논할 때 관우는 '장비는 내 아우, 조운도 오랫동안 형님과 함께 하였으니 아우와 다름없는 존재, 마초는 명문가 자제이니 나와 동격으로 취급할만 하다'고 무력이나 능력이 아닌 신분을 기준으로 삼았다. 관우가 고압적이며 권위에 매우 민감한 성질을 가진 것은 오나라와의 외교관계에서 모멸적인 외교적 언사로 화를 자초하는 모습에서도 반복적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인간적인 단점은 연의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므로 개연성이 없는 전개가 아니다. 다만 이런 자부심에 따르는 지휘력과 무력이 그럴만한 자격이 있음을 증명해주므로 귀족적인 영웅상으로 그게 단점으로 보이지 않는 것일 뿐이다.

혹은 장사 전투 이후 일어난 사건 때문에 관우가 황충한테 삐졌다는(...) 주장도 있다. 장사를 장악한 후 관우가 황충을 찾아갔으나 황충은 병을 핑계로 만나주지 않았고, 이후 유비가 직접 방문해서야 황충이 출사한 일이 있는데 관우가 이것때문에 황충에게 불만을 가졌으리라는 추측이다. 약간 어이없는 이유 같지만 관우 입장에서는 나름 인재라고 예를 갖추어서 방문했는데 문전박대를 당했으니 자존심 높은 관우 성격상 화가 났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서촉정벌에서도 활약했고 위나라가 한중 부근 국경을 집적거리자, 70대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역시 고령의 엄안과 책사 법정과 함께 원군으로서 출진한다. 이 때 성도에 있던 촉장들도 한중에 나가 있던 유봉&맹달 등도 '원군이랍시고 온 게 늙은이들이라니'라며 그들은 물론 명령을 내린 제갈량까지 비웃었고, 황충 역시 이를 알고 있었기에 엄안과 함께 '늙은이의 진면목을 보여주자'라며 교병계와 반객위주[4] 등의 계책을 이용해 위의 군단장 하후연을 참살하는 큰 공을 세운다. 다만 아쉽게도 정사에서는 엄안과의 노익장 듀오가 등장하지 않는다.

최후마저도 이릉대전에서 관우의 원수인 반장을 공격하여 달아나게 만드는 등 용맹을 과시하며 활약하다 전장에서 멋있게 마무리지었다. 관흥장포가 공을 세우고 오자 유비가 "나를 보호하던 충성스러운 장수들은 모두 늙어 쓸모가 없어졌지만 두 조카가 큰 공을 세우니 기쁘구나"라는 발언을 했는데, 이 발언이 황충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 이에 황충은 약간의 군사만 데리고 동오군을 공격하여 사적을 3합도 안 걸려 베고 반장을 패퇴시켰으나 관우의 원수를 갚는다고 관흥과 장포의 귀환 청을 거절했다가 이튿날 반장을 쫓다 복병에게 포위당해 화살을 맞아 중상을 입었고, 관흥&장포의 구원을 받아 돌아오긴 했으나 위독했다. 유비가 황급히 찾아와 자신의 실언에 눈물을 흘리자, '이미 천수를 충분히 누렸다, 참된 주인을 만나서 기뻤다'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둔다. 그리고 유비는 "짐이 벌써 오호대장군 중에 세 사람을 잃었거늘 그 원수를 갚지 못 했다"며 통곡하고는 계속 진군하여 원수를 갚긴 하나,[5] 손권까지 죽이겠다는 집착이 화근이 되어 촉장 대다수가 전사하고 유비 자신도 무리하는 바람에 얼마 못 가 죽는다.

수하에게 암살당한 장비나 노환과 병으로 죽은 조운마초와 비교했을 때 오호대장군 중에선 유일하게 관우와 맞먹을 정도로 장수다운 장렬한 죽음이었다. 실제로는 이릉전투가 일어나기 전에 죽었고 사인에 대한 별다른 언급은 없다. 아마 노환이었을 가능성이 제일 높을 듯하다.

4. 평가

파일:정군산 황충 동상.jpg
정군산에 위치한 황충의 동상
황충, 조운은 굳세고 사납고 씩씩하고 용맹하여 아울러 조아(爪牙-발톱과 어금니. 임금 호위무사, 용맹한 심복 등을 뜻 함)가 되었으니 (灌), (滕)의 무리로다.
진수정사 삼국지
장군(將軍, 황충)은 돈후하고 웅장하여, 적군의 선봉을 부수고 난국을 극복하였으며, 공업을 세운 당대의 재간꾼이었다.
양희 《계한보신찬》, 황한승을 찬하며(贊黃漢升)

정사 삼국지의 저자인 진수는 황충과 조운을 유비의 발톱과 어금니(爪牙)라 평하며 황충을 고조 유방의 최측근이었던 관영하후영에 비유하며 고평가를 내렸다. 촉의 신하인 양희의 계한보신찬에서도 황충은 성정이 돈후하고 웅장했으며 위기를 극복하고 공업을 쌓아 올린 인물이라 평했다.

이처럼 황충의 용맹과 무예, 그리고 무엇보다 그 높은 공적에 관해서는 당대 인물들은 물론 후세 역사가들까지 이견이 없다. 또한 사령관으로서는 그다지 검증된 바가 없는 조운과 달리 황충은 한 전선을 맡아 하후연을 참살하고 촉의 영토 확장에 누구보다 큰 활약을 펼친 명장이었다.[6] 여기다 진수가 인물에 대해 평가할 때 매우 중요하게 여겼던 인품에 있어서도 전혀 비판하지 않았으며, 양희가 그의 성정을 극찬한 것을 보면 인품 또한 완성된 덕장이었다고 볼 수 있다.[7]

당시 편입된 장수들은 아무리 높은 공을 세워도 적정선 이상은 출세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황충은 예외적으로 본인의 군공과 인품만으로 유비 휘하 최고의 장수들이었던 관우, 장비, 마초와 동렬에 서며 천하에 위명을 크게 떨쳤다. 제갈량이 직접 '황충의 공을 직접 본 장비와 마초라면 이에 승복할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니 정사에 언급된 대로 익주와 한중에서 전군의 으뜸가는 공을 세웠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한 가지 특기할 점은 어떠한 사료에서도 패배한 기록을 찾을 수 없다. 드넓은 익주 땅을 점령할 때, 항상 선봉으로 서서 가장 큰 활약을 선보였으니 수많은 전투를 치렀을 것은 당연한데, 그러한 기록들 중에서도 단 한차례의 패배나 후퇴 기록마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정사 삼국지의 촉서 황충전 뿐만 아니라 선주전이나 방통법정전 및 위서 장합전에서도 교차 검증이 되는 사실로 그가 전투에 있어서 얼마나 무신에 가까운 존재였는지를 여실히 알려주는 대목이다.

이상과 같이 황충은 훌륭한 인품과 더불어 항상 병사들보다 먼저 적진에 돌격하는 솔선수범함, 병졸들을 고무하며 이끄는 참된 지휘관으로서의 태도, 장수로서 마땅히 갖춰야 할 용맹함과 과단성, 끝으로 최고의 군사적 업적까지 보유한 조운과는 다른 의미에서 비판할 요소를 찾아볼 수 없는 난세를 이끈 명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5. 여담

6. 대중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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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태평어람》에 인용된 송본에 따르면 한숙(漢叔)으로 한승은 오자라고 한다. 그러나 정사 삼국지, 계한보신찬 등 그 외 모든 사료에서는 일관되게 한승으로 기록되어 있다.[2] 시법에서 강은 '수의불굴(守義不屈=의리를 지키며 굴복하지 않음)', '치과살적(致果殺敵=용감하게 적을 죽임)'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3] 차이점이 있다면 여기에 은근슬쩍 조운을 밀어넣어 오호대장군으로 만들었다는 정도다.[4] 손님인 척하면서 주인을 치는 것. 하후연 앞에 진을 치고서 우주방어로 일관하며 하후연 측을 피곤하게 만들다가, 법정의 신호에 따라 방심한 하후연을 급습했다. 다른 사례로는 유장의 손님으로서 들어왔다가 이런저런 갈등을 이용해 그대로 촉을 손에 넣은 주군 유비가 있다. 연의에서는 같은 유씨 운운하지만 정사에서 보면 효웅이 따로 없다.[5] 반장은 관흥에게 참살되었지만, 마충은 수하인 미방&부사인에게 암살당하고 그 미방&부사인은 다시 촉에게 항복하려고 찾아왔다가 끔살, 장비를 죽인 범강&장달마저 손권이 화해의 선물(…)로서 잡아보내는 등 원수를 갚았다기보단 떠먹여줬다는 측면이 은근히 강했다.[6] 조운은 기본적으로 군영 감독관과 수도 방위군 및 황실 친위대 지휘관, 후방 군영 담당 및 최고사령관의 최측근이자 직속 돌격대장 등으로 활약했다.[7] 진수는 같은 촉나라 1세대 대표장수들인 관우와 장비를 만인지적이라고 그 능력과 공훈을 칭찬하면서도 각각 오만한 성격, 지나치게 부하를 엄하게 대하여 화를 자초했다고 비판했다. 사실 그 성격적 결함들 때문에 스스로의 몰락을 자초했으니 당사자들도 할말 없다.[8] 참고로 라이벌 이미지가 있는 하후연 역시 삼국지 시리즈에서 궁술 쪽으로 조명받고 있다. 또한 하후연도 역사서에는 딱히 명궁이었단 언급이 없다. 지나가는 이벤트 수준인 조조군 장수들의 활쏘기 대회에서 다른 장수들이 과녁 가운데에 맞힌 것을 다시 맞혔다는 기록 정도가 전부다. 역사서에 활을 잘 쐈다거나, 활로 적군의 장수를 참했다는 기록이 적혀있는 삼국지의 장수는 여포, 태사자, 방덕, 감녕 정도다.[9] 삼국지에 수두룩한 남양군 출신이고 젊다고는 못하는 추정 나이에도 혈연, 지연, 혼맥 등으로 황충과 얽히는 다른 인물이 나타나지 않았으니 자수성가 확률이 높다.[10] 삼국지에서 중랑장으로 임명된 인물들 중 대표적인 케이스가 황건적 토벌 당시 노식, 황보숭 등이 있다. 또한 유비 세력이 조조 밑으로 잠시 들어갔을 때 조조가 장비를 포섭하기 위해 준 벼슬이 중랑장이었는데, 이때 조조가 유비 본인에겐 무려 좌장군 벼슬을 줬다는 것을 생각하면 중랑장이란 벼슬이 꽤 무게 있는 관직임을 알 수 있다. 20대 후반에 중랑장에 오른 장료의 경우 여포가 패망할 당시 자신의 군을 이끌고 조조에게 투항한 인물이었으므로, 이 공헌도가 인정되어 높은 벼슬을 받은 특이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저런 특별한 사연이나 인맥이 있다는 기록이 없는 황충이 자신의 전공만으로 중랑장 직위에 올랐다면, 202년 당시 절대 젊은 장수였을리는 없었을 것이다.[11] 그냥 늙은 놈, 쓸데없는 놈이라는 중의적 의미로 언급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12] 후손들이 기록한 조상의 행장 등은 조상을 공적을 부풀리기 위한 허풍과 과장을 감안하면서 비판적으로 읽을 필요는 있지만, 어릴적 개인사 같은 부분은 다른데서 구하기 힘들고 인용할 가치가 있는 1차 사료이다.[13] 물론 황충을 자극시키기 위한 말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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