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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살인면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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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살인면허 (1989)
Licence to Kill
파일:license_to_kill_ver2_xxlg.jpg
장르 드라마, 범죄, 스릴러 액션
감독 존 글렌
출연 티모시 달튼
캐리 라월
로버트 다비
탈리사 소토
안소니 저브
데이비드 헤디슨
웨인 뉴턴
앤서니 스타크
에버릿 맥길
데스몬드 르웰린
로버트 브라운
각본/각색 마이클 G. 윌슨
리차드 마이바움
제작 알버트 R. 브로콜리
마이클 G. 윌슨
촬영 앨릭 밀스
편집 존 그로버
음악 마이클 케이먼[1]
제공사 파일:미국 국기.svg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제작사 파일:영국 국기.svg 이온 프로덕션
파일:아랍에미리트 국기.svg 댄잭
수입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UIP 코리아
배급사 파일:미국 국기.svg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파일:세계 지도.svg MGM/UA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UIP 코리아
스트리밍 프라임 비디오
개봉일 파일:영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1989년 7월 14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9년 12월 30일
화면비 2.35 : 1
상영 시간 133분
제작비 3200만 달러
북미 박스오피스 $34,667,015 (1989년 9월 4일)
월드 박스오피스 $156,200,000 (2004년 4월 21일 발표)
상영 등급 파일:영등위_12세이상_2021.svg 12세 관람가
파일:PG-13 로고.svg
링크 홈페이지
1. 개요2. 예고편3. 제작 과정4. 줄거리5. 등장인물6. 흥행 및 평가7. 기타8. 제작이 무산된 작품 《The Property of A Lady》

[clearfix]

1. 개요

How many times can one man leave you breathless...?

James Bond is out on his own and out for revenge.

His bad side is a dangerous place to be.
영문판 홍보 전단 문구

007 시리즈의 열여섯번째 작품이자 티모시 달튼의 마지막 007 작품이다.

2. 예고편


3. 제작 과정

이언 플레밍의 원작이 아닌 오리지널 스토리이다.[2] 펠릭스 라이터를 위한 사적인 복수로 남미에서 활동하는 마약왕을 제거하는 것이 주요 내용. 꽤 파격적인 작품으로 초반에 M이 본드에게서 살인 면허를 박탈하며[3] 제임스 본드는 국가의 명령까지 어겨가며 사적인 복수를 위해 적과 대치한다.

원래 시나리오는 동남아시아의 마약왕이 악역으로 중국에서 올로케할 계획이었으나 천안문 사태로 인해 이스무스라는 중남미의 가상 국가로 무대를 수정했다. 마약과 돈세탁으로 악명 높은 마누엘 노리에가가 실권을 쥐고 통치한 이스무스(지협)의 나라, 파나마의 상황을 따왔다는 설이 있다. 재미있는 건 제작비를 아끼자고 멕시코에서 올 로케이션을 했더니만, 생필품 보급 및 촬영 시설이 열악해 재건축하는 문제로 별로 절약하지 못했다고 한다.[4]

4. 줄거리

제임스 본드의 절친한 CIA 친구 펠릭스 라이터의 결혼식 날, 최대의 마약범 산체스가 근처에 있다는 연락에 본드와 펠릭스는 그를 잡으러 간다. 도망가는 산체스의 경비행기를 헬리콥터로 낚은 본드와 펠릭스는 식장으로 곧장 낙하해 간다. 결혼식이 행해지는 동안 호송되던 산체스는 매수당한 경찰 간부의 도움으로 탈출하여 펠릭스 부부 앞에 나타난다.

아내를 살해한 일당은 펠릭스의 다리를 상어에게 뜯어 먹히게 하는 잔인한 보복을 한다. 이 사실을 안 본드는 분노하며 원수를 갚을 것을 맹세하고 임무를 져버린 채 산체스를 찾아 나선다. 상관 M이 본드 앞에 나타나 그의 마음을 돌리려 하나 본드는 정보원을 사직하고 살인 면허를 반납한다. M의 마음 속 격려를 받으며 계속 조사를 하는 본드는 산체스와 연관이 있다 그에게 쫓기게 된 팜이라는 여성을 알게 되어 연합 전선을 편다. 산체스에게 접근한 본드는 그를 제거할 기회를 갖지만 무산되고 오히려 그의 신임을 얻는다.

산체스는 자신의 대규모 마약 공장에 아시아 구매상들을 초대하고 이곳에 본드도 데리고 가는데, 정제된 마약을 휘발유에 용해시켜 공급하려는게 이들의 계획이었다. 본드를 알아본 산체스의 부하와 격투 중 공장은 화염에 휩싸이고 본드는 산체스를 추적한다. 산체스는 휘발유를 뒤집어 쓴 채 본드에게 칼을 겨누고 본드는 펠릭스 부부에게 선물 받은 라이터로 산체스의 몸에 불울 붙힌다. 모든 일이 끝나고 본드와 팜은 환희의 키스를 나눈다.

5. 등장인물

6. 흥행 및 평가

1980년대 들어 조금씩 하락세인 흥행 성적이 살인면허에서 최저로 내려가[20], 이로 인해 영국측 제작사 EON 프로덕션과 배급사이자 미국측 제작사 MGM/UA간의 알력을 가져왔다. 게다가 1990년에 MGM/UA가 1차 도산하는 바람에 저작권이 사분오열되자 후속작 제작은 무기한 연기되다 무산되어 골든 아이까지 약 6년 간의 공백기와 배우들의 전면 교체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21]

한국은 서울 관객이 겨우 16,000명대를 동원해 흥행에 크게 실패했다. 사실 1980년대 한국에서 007은 유어 아이스 온리가 서울 관객 약 50만 명으로 성공한 이후 옥토퍼시가 약 33만 명[22], 뷰투어킬이 약 29만 명을 동원한 뒤 본드가 로저 무어에서 티모시 달튼으로 바뀐 리빙 데이라이트에서는 약 16만 명을 동원하여 흥행세가 제대로 꺾이더니 살인면허에서 바닥을 찍었다. 티모시 달튼의 본드가 이전과 달리 상당히 진지하면서도 냉혹한 이미지를 내세워 나름의 호평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23] 한국에서는 로저 무어, 피어스 브로스넌, 다니엘 크레이그 등에 밀려 그다지 회자되지 않고 애매하다며 저평가를 받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있는 것이다.

한국 흥행 부진엔 또다른 원인도 있는데 직배 영화라 상영하는 극장들이 별로 없었다. 007 시리즈의 첫 한국 직배 영화이나 1989년 개봉 당시 한국 영화인들이 엄청나게 반발하여 직배 영화 상영관에 을 풀어버리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래서 극장들이 직배 영화인 살인면허 상영을 꺼려 서울에서조차 전문 상영관이 아닌 재개봉관에서 개봉했다. 부천시에서도 지금은 건물 채로 사라져 없는 소사극장이나 중앙극장 같이 가장 큰 극장들은 이런 반발 분위기 때문에 상영을 거부해, 비디오 영화나 정말로 흘러간 영화만 재개봉하는 변두리 200석도 안되는 재개봉관에서 개봉하였을 정도이다.[24] 살인면허가 한국에 개봉한 지(1989년 12월 30일) 1년도 안된 1990년 11월 24일에 개봉한 사랑과 영혼이 당시 어마어마한 흥행 성적을 거두자 이때부터 할리우드 영화사가 직접 배급하는 영화들이 차례로 정식 개봉관에서 상영하게 되었다.

개봉 시기가 냉전이 종식되던 시기라 007은 한물 갔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고, 당시 1980년대 할리우드 액션물에 영향을 받아 007 시리즈 고유의 느낌과 분위기가 옅어진 점, 007이 사적인 복수를 한다는 스토리 때문에 팬들은 못마땅해 했다. 반면 평론가들에게선 전작 리빙 데이라이트보다 훨씬 좋은 평가를 받았다. 로저 이버트는 전작 리빙 데이라이트를 별 2개로 평가한 반면 살인면허는 별 3개 반의 후한 점수를 주었다.

여타 007 시리즈보다 고난도 스턴트가 많이 등장하는데 오프닝 시퀀스에 비행 중인 헬리콥터 크레인에 매달려 아래쪽에서 비행 중인 비행기 꼬리 부분에 올라타거나, 올라탄 후에 스카이 다이빙을 하거나 맨발로 수상스키를 타기도 하고[25], 수상스키를 통해 맨몸으로 이리저리 흔드는 비행기에 매달리며, 켄워스 W500B 대형 디젤 트럭을 측면으로 세워 운전하거나 수직으로 세워 곡예 운전을 하는 등 어려운 스턴트를 많이 보여주어 관객을 즐겁게 해준 것은 훌륭한 점이라 하겠다. 또한 시리즈 중 최초로 PG-13 등급을 받은 영화인데, 사람 머리가 터진다던가 분쇄기에 갈리는 등 잔혹한 묘사가 많아 이전작들보다 폭력과 액션 수위가 높다.

시간이 흐르면서 비판 여론이 누그러졌고, 현재는 티모시 달튼이 연기한 본드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명작으로 재평가받고 있다.

7. 기타


8. 제작이 무산된 작품 《The Property of A Lady》

티모시 달튼은 당초 세 작품의 주연으로 계약을 맺었는데, 그 중 The Property of A Lady가 마지막 편에 해당했다. 1991년 개봉 예정으로 시나리오도 완성했으나 배급사 MGM의 도산으로 제작이 무산됐다.[26]

개봉 당시 직배 영화에 대한 반발로 한국에선 살인면허를 본 사람들이 적었기에, 티모시 달튼의 이미지가 제임스 본드와 맞지 않아 제작사에서 달튼을 하차시켰다는 루머도 나왔으나 이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 애초에 공백기가 6년씩이나 된 터라 달튼이 액션을 할 수 있는 나이가 지난 것이 하차의 가장 큰 요인이다. 티모시 달튼은 1946년 3월생으로 각본 집필에 돌입한 1993년을 기준으로 해도 당시 47세였다. 촬영에 들어간 시점인 1995년 1월 16일을 기준으로 하면 약 48세였는데, 꾸준히 몸 관리를 하지 않은 이상 액션 연기를 하기엔 부담스러운 나이였다.[27]

그리고 골든 아이 제작에 착수할 당시 달튼에게 본드 역 제안이 갔는데 달튼도 한 편 정도는 다시 나와도 괜찮겠지 하며 맡으려 했다. 하지만 계약 조건이 골든 아이 뿐만 아니라 그 뒤에 제작할 본드 영화 4~5편까지 계속 연기하는 것이라 달튼은 부담감을 느꼈고, 1994년 4월 12일에 공식적으로 거절을 발표했다. 결과는 모두가 아는 대로 피어스 브로스넌이 5대 제임스 본드를 맡았다.[28]

EON 프로덕션은 살인면허의 하드한 폭력 성향이 괜찮다고 생각했던 모양인지 The Property of A Lady는 007 시리즈 중 미국 등급 기준 R등급을 받을 정도로 폭력적 장면이 많았으며[29], 제임스 본드가 살인 면허처럼 정부 요원이 아닌 사적으로 싸운다.정확히 말하자면 영국 국방성이 냉전 종식을 이유로 00 섹션을 없애버리려 하고 그 와중에 중국에서는 옛 국민당 잔당에 의한 공산정권 파멸 계획(핵 테러)이 진행되자 이를 저지한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시나리오 중 일부는 네버 다이스펙터에 차용되었다.


[1] 다이 하드 1, 2, 3편, 리썰 웨폰 시리즈의 음악을 맡았다. 그래서 그런지 해당 영화들에서 나온 음악들과 느낌이 비슷한 편.[2] 물론 영문 위키에 보면 Based on에 James Bond by Ian Fleming이라고 적혀있긴 하다.[3] 단, 이는 MI-6를 이끄는 수장으로써 공적으로 보인 반응이다. 내부 배신에 부상을 입은 펠릭스 라이터를 위해 본드가 복수하려는 것 자체는 막지 않는다.[4] 제작비는 3200만 달러로 전작 리빙 데이라이트보다는 줄었다.[5]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 초반에 암으로 죽는 샘(톰 행크스)의 부인 매기 역으로 나온다. 이후 드라마 로 앤 오더에서 지방검사보 제이미 로스 역을 맡았다. 리처드 기어와 결혼했으나 이혼했다.[6] 주로 악역으로 나온 배우로, 영화 구니스에도 악역으로 나왔고, 다이하드에서는 악역은 아니지만 테러범들의 농간에 휘말려 헬리콥터와 같이 폭발해 죽는 FBI 요원 역으로 나왔으며, 프레데터 2에서는 무능한 경찰서장, 매니악 캅 2편과 3편에서는 주연을 맡았다.[7] 미국에서 탈출 후 자신의 동업자이자 부하 크레스트는 후환을 없애기 위해 산체스를 탈출시켜준 미국 DEA 요원 킬리퍼를 바다에 빠트려 죽여버리자고 제안하지만, 산체스는 그자와 거래를 했다면서 약속한 2백만 달러를 깔끔하게 지불하며 탈출편까지 알아봐주는 모습을 보인다.[8] 방탄 유리창이다.[9] 홍콩 단속반은 산체스의 공장을 찾아 박살내려 했는데 본드 때문에 방해가 된 셈이다. 홍콩 단속반원들이 왠지 모르게 닌자 복장을 입었는데, 단속반장으로 나온 배우는 캐리 히로유키 타가와로 이 배우의 몇 안되는 선한 역할 중 하나다.[10] 집무실 유리창을 본드가 날려버린 건 몰랐고, 홍콩 단속반이 자신을 암살하려는 줄 알았다.[11] 007이 자신들의 부하를 의심하게끔 멘트를 넌지시 던지자 내 부하들은 절대 그럴리 없다며 자신만만해 하지만 크레스트를 의심해 죽이면서 부하들의 충성심에 대한 믿음에 금이 생긴다.[12] 상어가 살인 도구나 위협 요소로 등장하는 장면은 007 시리즈의 클리셰라고 할 정도로 많이 등장한다.[13] 1995년 영화 언더 시즈 2에서 마커스 펜을 연기했다.[14] 위기일발에서 케림 베이를 연기한 페드로 아만프리츠의 아들.[15] 007 스카이폴에서 오마주했다.[16] 그리고 Q에게는 팸을 사촌이라고 소개하자 Q는 "그럼 우리는 친척이겠구만~"이라고 개그를 선보인다.[17] 007 시리즈 여덟번째 영화 죽느냐 사느냐에도 펠릭스 라이터 역으로 출연했으며, 죽느냐 사느냐 이후 로저 무어와 함께 다른 영화에도 출연했다.[18] 무삭제판이나 블루레이를 보면 뜯겨나간 다리의 단면이 2초 가량 그대로 보인다.[19] 서양에서는 신부의 웨딩 가터를 신랑의 친구들에게 던지는 문화가 있는데, 이를 받은 친구는 결혼을 한다는 속설이 있다.[20] 제작비는 3200만 달러, 월드와이드 수익은 1억 5천 6백만 달러라 제작비 회수를 넘어서 흑자 달성에 성공했으나 007의 네임밸류를 생각하면 저조한 편이다. 미국에는 여름 블록버스터 시즌인 7월에 개봉했으나 리썰 웨폰 2배트맨이라는 당해 흥행작들이 주름잡은 시점이라 대진운이 나빴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 개봉한지 두 달이 넘어가던 끝물인 인디아나 존스와 최후의 성전에도 밀렸고,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라는 복병이 치고 올라오면서 완전히 확인 사살당했다.[21] EON 프로덕션은 티모시 달튼을 골든 아이의 주연으로 내정했고 출연 제안을 했으나 기타 문단에 후술되어있듯이 달튼이 여러 편에 출연해야 한다는 계약 조건에 부담을 느껴 사양했기에 본드 캐스팅을 전면 교체했다.[22] 다만 번외편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이 글로벌 성적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서울 관객 약 55만 5천 명을 동원했다.[23] 일각에서는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성공적인 다니엘 크레이그의 본드보다 앞서 진지한 본드 캐릭터를 추구했다는 평가를 받은 등 변한 시대상을 반영했다고 본다.[24] 비슷한 시기에 마찬가지로 이런 열악한 재개봉관에서 개봉한 죽은 시인의 사회는 서울 약 38만 관객으로 당시 기준으로 흥행에 성공했다.[25] 맨발 수상스키는 전문가들도 어렵다고 한다.[26] 오! 인천 때문에 MGM이 도산했다고 한동안 알려졌지만, MGM은 오! 인천이 개봉한 지 10년이 지나서 부도났다. MGM의 1980년대 히트작을 봐도 1억 달러를 넘긴 게 몇 편 안될 정도로 장기간 흥행 부진을 겪은 게 도산의 주된 원인이었다.[27] 전임 로저 무어가 11년동안 007을 한 걸 생각하면 6년의 공백은 굉장히 큰 것이다.[28] 피어스 브로스넌은 007 계약을 두 번한 유일한 배우이다. 원래는 리빙 데이라이트부터 출연하기로 했으나 당시 드라마 레밍턴 스틸 계약 때문에 성사되지 못했다.[29] 지금까지 007 시리즈가 R등급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다. 가장 폭력성이 강하다는 살인면허마저도 PG-13 등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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