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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9년 4월부터 2001년 4월에 걸쳐 활동한 정체 모를 투자자문회사 "BBK"가 촉발시킨 연쇄 금융사기극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1] BBK라는 회사는 2년이라는 그 짧은 생애 동안 ▲유령회사 설립 ▲거짓으로 투자운용 ▲사업보고서 날조 ▲회삿돈 횡령 ▲금감위 등록취소 등 곳곳에 눈부신 업적(?)을 남기고 장렬히 침몰하였다. 가라앉던 BBK를 버리고 탈출한 잔당들은 지난 2000년 12월부터 작전 대상으로 점찍어 뒀던 코스닥 상장사 "옵셔널 벤처스"[2]를 점령해 임시 숙주로 삼아 2001년에도 활동을 이어나갔다.[3][4]
작전세력의 마개조 끝에 "故 BBK"의 후계자로 새로이 거듭난 문제의 창업투자회사 "옵셔널 벤처스"의 경영진은 이후 2002년 3월까지 소위 "검은 머리 외국인"의 이름과 돈줄을 빌려 자사의 평판을 부당하게 높이는 방식으로 주가를 조작해 한몫 거하게 땡기고 야반도주를 감행했다. 코스닥 사상 초유의 사태였다.[5] BBK에 얽힌 여러 흥미로운 이야깃거리[6]가 많지만 일단 다른 것 다 제쳐두고 가장 덩어리가 큰 이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 사태만 봐도 5,000명 이상의 피해자, 1,000억 원대의 손실을 낳은 것으로 추산된다.
2007년에 제1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이명박은 매우 이상할 정도로 BBK 경영진과 금전적 접점이 많았다는 점에서 이 범죄 세력의 동업자, 방관자 내지 물주일지도 모른다는 대중의 의심을 샀다. 이명박이 BBK의 실소유주라는 의혹이 일파만파로 퍼져나가 결국 특검 조사까지 추진되었으나 당시에는 무혐의로 종결되었다. 사업 파트너였던 김경준이 이명박이 BBK의 실제 소유주라는 증언을 하기도 했으나 검찰과 특검은 모두 이명박이 무혐의라고 발표했다. #1 #2 당시 담당했던 부장검사는 최재경 박근혜 정부 민정수석이다.
논란은 2007년 6월에 제17대 대통령 선거 한나라당 대통령 경선을 앞두고 박근혜 후보 측이 처음 주장했다.[7] 이후 야당(대통합민주신당)이 가세하여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이명박의 주가 조작 등 범죄 혐의의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 검사까지 이루어졌으나 모두 무혐의로 사건이 종결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무혐의 종결에도 2017년 하반기에 다스 실소유주 논란이 불거지면서 다시 사람들의 관심에 오르게 되었다. 2018년 기준으로 BBK 사건에서 다스의 실소유주 찾기로 주제가 옮겨가는 양상을 띄었지만 결국 동일한 선상의 사건이다.
1.1. 의혹 전체 요약
DAS라고 하는 자동차 카시트 생산업체가 있는데 다스의 명목상 소유주는 이명박의 처남 김재정과 형 이상은이다. 그리고 도곡동에 땅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1995년에 포철에 도곡동 땅을 263억원에 매각했다. 그리고 다스는 이렇게 생긴 돈 190억원을 BBK에 투자했다.그런데 여기서 석연치 않은 점이 발생했다. 첫번째는 190억원이라는 돈은 당시 다스의 1년 수익이 30억원 가량이었기 때문에 6년치 수익과 맞먹었다는 너무 큰 돈이라는 점이고 두번째는 처남 김재정이 땅을 팔아 돈이 있을 텐데도 2년 후인 1997년에 빚 4억원과 2억 6천만원을 갚지 못해 집을 2번이나 가압류당했다는 점이다.
한편 1999년 4월에 설립된 BBK는 김경준이 최대주주인 투자회사로, 이명박과 김경준이 2000년 2월 세운 LKe뱅크의 자회사로 지목된 곳이다. 이후 2001년 4월 금융감독원이 펀드운영보고서를 허위 작성한 것을 적발해내 BBK의 등록을 취소시킨 것을 계기로 둘은 결별했다.
그리고 BBK는 이 190억원을 포함해 이명박의 지인 및 측근들로 이루어진 중견기업의 돈 등 다량의 자금으로 주가조작을 단행했다. 김경준은 2001년 4월 옵셔널벤처스(구 광은창투)라는 기업을 인수했는데 외국인 투자설을 일으키고 LKe뱅크의 계좌를 동원하는 등의 방법으로 주가를 400% 가량 띄워 놓았고 2001년 12월에 김경준은 BBK의 380억원을 들고 미국으로 빤스런했다.
이후 김경준은 미국에서 체포되어 미국 LA연방법원에서 소송전을 진행했다. LA연방법원은 크게 2가지 판결을 내렸다. 첫번째는 일반투자자 관련으로, 주가조작이라는 불법행위로 큰 피해를 줬기 때문에 일반투자자에게 300억원을 배상하라는 것이다. 두번째는 다스 관련으로, 다스가 이런 위험까지 감수하고서 했을 '투자'였기 때문에 190억원을 배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BBK의 김경준은 굳이 미국으로 도망가기 전에 50억과 소송 도중에 140억, 총 190억원을 송금했다. 일반투자자에게 돈을 돌려주는 것보다 먼저 한 것이었다.
이 모든 과정에서 도곡동 땅, 다스, BBK의 실소유주가 사실 이명박이었다는 의혹이 각각 도곡동 땅 실소유주 의혹, 다스 실소유주 논란, BBK 주가조작 사건이다.
한편 위 재판에서 삼성그룹이 이건희의 사면을 받아내는 뇌물로서 다스의 소송비를 대납한 것이 삼성 다스 소송비 대납사건이다.
2. BBK-LKe뱅크-옵셔널 벤처스
2.1. BBK
사명에 관해서는 B(Bobby:김경준의 친구 오영석의 미국 이름)B(Bora:김경준의 부인 이보라)K(경준:김경준)[8]라는 설과 B(박:이명박)B(백:김백준[9])K(김:김경준)라는 설이 있다.[10][11]BBK는 1999년 4월 비비케이캐피탈파트너스코리아(주)로 설립되었다. 같은 해 6월 9일 비비케이캐피탈파트너스(주)로 상호를 변경했고 10월 9일 비비케이투자자문(주)로 상호를 재변경했다. 1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이름이 3번 바뀐 것. 그리고 2001년 3월 2일 설립 당시 이름이었던 비비케이캐피탈파트너스코리아(주)로 상호를 다시 변경했고 같은 해 4월 27일 금융감독원이 업체 등록을 취소하여 이후 폐업하였다. 업체 주소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1002 코스모빌딩 8층에 사무실을 두고 있었다.
2.2. LKe뱅크
주식회사 등록명칭은 이뱅크증권중개. L(리:이명박)K(김:김경준)e.[12] 이명박은 2000년 2월 18일 LKe뱅크를 김경준과 5:5 지분으로 설립하고 같은 해 10월 13일 가칭 이뱅크증권중개 설립허가를 받아 금융업 진출을 시도했다. 이 회사는 자본금 1백억 원에 이명박이 35%의 지분을 보유해 1대 주주로 참여하였다. 이명박은 상근 대표이사를, 상근 대표이사는 현대종금 대표를 지냈던 김백준을 하기로 예정했다. 여기에 김경준이 2대 주주로 참여했으나 2001년 4월 6일 이뱅크증권중개의 회사 설립허가 신청을 취소했다. 그리고 4월 28일 BBK도 폐업했다.2.3. 옵셔널 벤처스
2001년 4월 27일 김경준은 옵셔널 벤처스(광은창투)를 인수하고 대표로 취임했는데 이 과정에서 LKe뱅크가 MAF펀드의 전환사채를 이용하여 150억 원을 투자하면서 회사 주식 매입가가 30%나 급등했다. 하지만 2001년 12월, 김경준이 옵셔널 벤처스의 돈 380억을 횡령하고 미국으로 도주했다. 이를 기점으로 옵셔널 벤처스 주가는 수직하락하고 결국 상장폐지되었다.[13]2.4. 다스와 BBK의 관계
BBK의 가장 큰 투자 지분을 가진 곳이 '다스'라는 회사였는데 그 액수가 190억 원이었다. 그런데 BBK 투자 당시 다스의 유동자산은 480억, 유동부채는 790억, 순 자산은 127억으로 도저히 190억 원을 짜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 과정에서 이명박의 큰형인 이상은과 처남 김재정의 명의로 된 도곡동 땅의 매각 대금 중 157억이 다스의 출자금으로 빠져나갔고 도곡동 땅은 이상은과 김재정의 것이 아니라 이명박이 차명 보유하고 있던 땅이라는 주장이 나와 파문이 일었다. 도곡동 땅 판 돈 다스 거쳐 BBK로? 안원구 “‘도곡동 땅은 MB것’ 문건 나 말고도 3명이 더 봤다”안 그래도 이 도곡동 땅은 이명박 대통령이 국회의원이었던 시절인 1993년 3월 27일 세계일보에 '이명박의 차명재산'이라는 보도가 나와서 엄청난 파문이 일었던 전적이 있었다.93년 언론들 "도곡동땅 이명박 소유" 이 기사의 내용대로라면 다스는 이명박이 차명으로 갖고 있는 회사가 되는 것이고 다스는 BBK에 투자를 한 것이 되기 때문에 '도곡동 땅과 다스와 BBK와 LKe뱅크의 주인은 모두 이명박'이 되는 결론이 나온다.
심지어 2000년 10월 16일자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이명박은 증권사인 이뱅크 증권중개의 대표로 소개되었으며 인터뷰에서 “올초 이미 새로운 금융상품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LK이뱅크와 자산관리회사인 BBK를 창업한 바 있다. 이뱅크증권중개는 이 두 회사를 이용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주로 외국인을 큰 고객으로 삼을 작정이다. BBK를 통해 이미 외국인 큰 손들을 확보해 둔 상태다. 물론 사이버 트레이딩도 한다. 국내 기관들에 대한 파생상품 활용 조언 업무도 한다.”는 발언까지 했다. 물론 이명박은 이에 대해 “김경준과 함께 인터넷 종합 금융사업을 하기로 약정한 상태에서 제휴업체인 BBK 대표 김경준을 홍보해주려고 위와 같은 말을 한 것이지 자신이 BBK 실제 소유자라는 취지는 아니었다”고 진술했지만 의혹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3. BBK 주가조작 사건 경과
3.1. 17대 대선 이전
2002년 당시에는 1997년 외환 위기의 여파가 아직 남아 있었지만 그나마 경제 상황이 많이 호전되어 사람들의 주식과 펀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었다. 이 상황에 당시 투자자들의 눈길을 끈 회사가 있었는데 이 회사가 바로 옵셔널벤쳐스다. 영업이익이 100억 정도 한다는 회사가 주식거래금액이 낮았던 것도 있었고 거기에 미국 명문대 출신의 유명 펀드매니저 김경준 씨가 옵셔널벤쳐스를 인수했다는 소식에 주가상승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커졌다. 또한 외국인투자자가 전체 투자자의 30%가 넘는다는 수치에 주가는 상승세를 이어갔고 투자자들은 이 회사가 우량회사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증권거래소의 공시정보뿐 아니라 주식 고수들의 입에서 퍼져나온 또 다른 솔깃한 정보도 믿음을 더했는데 현대건설 사장까지 역임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옵셔널벤처스의 대표라는 소문이 바로 그것. 즉, 옵셔널벤처스 = BBK였다는 소문이였다.그렇게 2,000원대에서 시작한 주가가 8,000원대까지 올랐던 BBK는 이후 공시정보가 달라진 점이 없음에도 갑자기 주가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옵셔널벤처스가 돌연 사무실 폐쇄 후에 잠적해 버렸고 투자자들이 설마설마하던 사이에 옵셔널벤쳐스의 주가는 150원대까지 곤두박질쳐 버려 옵셔널벤쳐스의 주식은 그야말로 휴지조각이 되어 버렸다.
당시 이 주가조작 사건의 피해자들은 5,252명이며 피해액은 1,000억에 가까운 것으로 추정된다. 옵셔널벤쳐스 주식의 거래중지로 인해 자신의 모든 돈을 날린 소액주주들 중에는 대출까지 받아 주식을 산 사람도 있었고 자신의 모든 재산을 날린 사람도 있었다. 이에 어떻게 해서든 잃은 돈을 찾아 보려 옵셔널벤처스 사무실로 달려간 소액주주들은 회사에서 주주 명단 리스트를 발견했다. 제일 주식투자를 많이 한 사람 순서대로 되어 있던 리스트였지만 이상한 것은 아무리 찾아도 주주 명단에 외국인은 한 명도 없었다는 점과 피해자들이 전부 소액주주들뿐이었다는 점이다. 이에 검찰이 조사에 착수 하였고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다. 요약하자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미 주식을 다 판 상태였는데도 회사가 공시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으며 회사를 인수했다던 김경준은 대표이사직을 사임하고 319억이란 거액을 횡령하여 미국으로 출국한 뒤였다는 것이다. 게다가 대표이사로 오른 외국인들은 대부분이 위조여권으로 만든 허구의 인물이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결국 5개월 뒤 회사는 상장폐지가 결정되었다.
이렇게 명백한 허위 공시를 벌인 주가조작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던 와중 2007년 11월 김경준이 돌연 귀국했는데 그때는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불과 한 달 앞둔 시점이었다. 김경준이 귀국하자 피해자들도 소송을 준비했지만 사건이 해결될 거라는 피해자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이 사건은 피해자들에 초점이 맞추어지지 않았고 BBK 실소유주에 대한 논쟁만 계속되었다. 지루한 공방 끝에 검찰은 이명박 당시 대통령 후보가 BBK 사건과 관련이 없다고 발표했다. 한편 소액주주 피해자들은 김경준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했지만 투자전문가인 김경준의 집요하고 복잡한 변론으로 인해 대부분 패소했다. 그렇게 피해자들의 시위와 탄원에도 아무런 대책이 세워지지 않았고 이 사건은 점점 잊히는 듯했다.
3.2. 17대 대선 당시 논란
▲ 서로의 약점을 알고 있던 이명박과 박근혜는 서로에게 각종 의혹을 제기하며 피튀기는 경쟁을 벌였다. |
"다스가 BBK라는 실적도 없는 신생 투자운용사에 왜 190억 원이라는 거금을 투입했겠냐? 바로 뒤에 이명박이 있기 때문이다"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이 외에도 이명박이 LKE뱅크 사장 시절 자신의 명함에 ‘BBK 투자자문사’라는 문구를 넣은 점 등이 의혹을 증폭시켰고 이명박과 김경준의 LKE뱅크와 김경준의 BBK가 사실은 이명박이 소유한 지주회사 안에 묶여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의 연루사실을 부인하면서 BBK 사건은 17대 대선의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한편 공방이 이어지던 와중에 당시에 미국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김경준이 귀국했다. 그런데 당시 공항에 수갑을 차고 등장했던 김경준의 표정이 뜻밖에도 매우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은 상태여서 이상하다는 반응이 많았고 며칠 뒤 미국에서 김경준 부인 이씨의 기자회견에서 김경준의 여유 있던 모습의 이유가 드러났다.
바로 김경준의 부인이 미국에서 기자회견을 열면서 김경준과 이명박 전대 통령의 도장까지 찍힌 한글 이면계약서가 드러난 것이다. 2007년 김경준 송환 직후부터 구치소에 수감된 김경준 씨와 옥중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유원일 전 의원은 자신의 받은 편지에 의하면 이명박 전 대통령이 BBK 주식을 가지고 있다가 그 주식을 50억 원에 팔았다는 계약서가 있으니 원래 주식을 가지고 있던 이 전 대통령이 BBK의 실소유주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실제로 계좌 거래 내역에도 입금 내역이 찍혀 있어서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해 준다고 했다. 그러나 당시 한나라당에서는 즉각 반박에 나섰는데 한나라당은 김경준이 사무실을 같이 쓰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도장을 도용해 계약서를 위조해 만들었다고 주장한 것, 그러나 당시에 이 전 대통령의 인감 관리를 했던 것은 그의 비서인 이모 씨였다는 점이 의문이었지만 거기에 대해선 아무런 해명이 없었다.
심지어 비서였던 이모 씨는 법정진술 당시 자신이 김경준과 같은 사무실을 사용했다고 시인했으며 회장이었던 이명박 전대통령이 김경준 등과 회의를 하기도 했다고 하며 그 사무실이 있는 빌딩은 옛 삼성생명 빌딩 13층이라고 증언했다. 한편 그 빌딩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경준을 목격한 사람은 여러 명이 있는데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박영선 의원이다. 박영선 의원은 그것이 알고싶다의 인터뷰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직접 "금융으로 성공한 성공신화를 만들고 싶다"면서 자신과 인터뷰 요청을 했으며 이로 인해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시에 김경준과 자신이 하는 사업을 설명하는 인터뷰 영상이 남아 있다. 또 이명박 당시 회장이 직접 김경준을 'ARBITRAGE'(차익거래의 귀재)라면서 당시 주식시장이 안 좋은 상황이었음에도 자신들의 회사는 김경준 때문에 수익을 낸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또 다른 증인으로 이 전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이장춘 전 대사가 있다. 그는 BBK가 적힌 이 전 대통령의 명함을 공개하기도 했으며 그가 명함을 받은 날짜와 장소를 꼼꼼히 기록하는 습관 덕분에 증거가 남아있던 것을 언론에 폭로했고 이 폭로에 대해 이 전 대통령에게 서운함을 토로하는 전화도 받았다고 한다.[15]
당시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봉주 의원은 BBK 사건을 전담하고 있었는데 BBK가 LKE뱅크로부터 100% 출차받은 자회사라는 하나은행의 내부 자료를 공개했다. 만약 이 자료가 사실일 경우에 LKE뱅크의 대주주인 이명박이 주가조작 범죄를 일으킨 BBK와 무관치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파장이 매우 큰 자료였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이명박 후보나 LKE뱅크는 단 1%의 BBK 지분도 가진 적이 없다. 하나은행에 (투자 관련) 프리젠테이션을 한 사람은 바로 김경준이다. 하나은행은 김경준의 설명에 기초하여 LKE뱅크를 이해했을 것이고, 하나은행의 문건 작성자가 이를 오인해 품의서를 작성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BBK 저격수"로 불리며 활약했던 정봉주는 17대 대선 이후 선거법 위반, 허위사실 유포 혐의 등으로 기소됐고 징역 1년 실형을 살았으며 피선거권은 10년간 박탈당했다.
한편 한나라당에선 홍준표가 BBK의 대책팀장을 맡고 있었다. 후일 홍준표가 밝히길, 김경준의 변호사[16]와 박영선의 남편이 로펌에서 같이 근무했기에 입국에 모종의 묵계가 있을 것으로 보았으나 증거가 부족해서 검찰에 고발 대신 진상 규명을 위한 수사의뢰를 했다고 밝혔다.
이렇게 모든 증거가 계속해서 이 전 대통령을 가리키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전 대통령은 "그때 제가 무슨 이유로 또 무엇이 아쉬워서 주가 조작에 가담했겠습니까?", "대통령이 되더라도 BBK 관련된 문제가 있다면 저는 직을 걸로 책임을 지겠습니다"라는 발언을 계속하며 한결같이 자신과 BBK는 무관하다는 주장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리고 김경준이 한국에 송환된 지 불과 20여 일 만에 대한민국 검찰청이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수사를 맡은 김홍일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는 BBK 실소유주와 관련해 “김경준이 미국에서 주장했던 것과 달리 (검찰 조사에서는 자신이) BBK 지분 100%를 가지고 있으며, 이명박은 지분을 갖고 있지 않다고 진술했다. BBK 지분 100%를 유지한다는 김씨의 자필 메모도 발견됐다”고 말했다. 또 검찰은 이명박이 발기인으로 나오는 BBK 개정 정관도 김경준이 임의로 바꾼 것이며 BBK가 LKE뱅크의 자회사라는 하나은행 내부보고서도 김경준의 거짓말에 따라 작성된 것이라고 발표했다. 한글이면계약서에 대해 검찰은 “이명박의 서명이 없는 등 형식이 허술하고, 계약서에 찍힌 도장도 이명박의 인감도장과 다르다”면서 위조된 것으로 결론지었다.
여기에 더해 “김경준이 ‘계약서 작성 일자보다 1년 뒤에 사실과 다른 내용의 문안을 만들어 이명박의 날인을 받았다’며 진술을 번복했다”고 말했다. 또 검찰은 다스 실소유주 논란에 대해서도 “다스 임직원과 납품업자 등을 조사하고 계좌 추적도 했지만 이 후보 것이라는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서울 도곡동 땅 매각대금 가운데 17억 9,000여만 원이 다스에 입금된 사실을 확인했지만 이 자금이 이명박의 돈임을 입증하는 증거는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물론 이러한 검찰 수사발표에 대해 다른 대선 후보들은 일제히 유세 중단과 규탄집회에 나섰으며 정봉주는 수사검사의 탄핵을 주장했다. 청와대가 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자 '상당수의 국민들이 청와대와 이명박 사이의 일정한 거래가 있었을 것이란 의혹에 동조하고 있다'며 비난하기까지 했다.#[17]
결국 이명박 대선후보는 주가조작 혐의없음으로 불기소처분.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던 김경준이 갑자기 입장과 진술을 번복한 이유가 있었는데 유원일 의원에 의하면 정권의 힘에 저항할 수 없다고 생각한 김경준이 거짓 자백을 했다고 주장했다.[18] 실제로 검찰 발표가 났던 날에 협박에 회유당한 김경준의 메모가 공개되었는데 "BBK가 이명박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해주면 형사 책임을 경감시켜주겠다"고 회유하거나 "협조하지 않으면 중한 형이 선고되도록 할 것처럼 협박했다"는 내용이였다.
광운대 동영상
그러나 BBK 관련 핵폭탄이 따로 있었다. 대선을 얼마 남기지 않은 어느 날부터인가 자신이 BBK 관련 중요 자료를 갖고 있다며 여러 야당과 여당에 전화를 걸어 수십억에서 100억 원을 요구하는 협박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19] 그러나 다른 야당과 여당에서 거래가 거절당하자 협박범들은 마지막으로 한나라당 측에 전화를 걸었고 한나라당 측은 이 협박범과 호텔방에서 만난 후 1시간 20분간의 논쟁 끝에 호텔에 미리 대기시켜 놓은 경찰을 호텔방으로 불러오게 하여 협박범이 체포되었다. 그러나 이 자료는 당시 여당 의원들이 경찰에 압수된 CD가 사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날 새벽 피의자가 말해준 "한국 E-미디어" 사무실에서 동영상 원본을 확보했고 밤샘 녹취와 진위 확인 작업을 거쳐 영상이 결국 언론에 공개되었는데 협박범이 100억 원을 요구할 정도로 가치 있다고 판단한 물건은 일명 "광운대 동영상"이라 불리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광운대 강연 영상이었다. 이 영상에 이명박 전 대통령의 "금년 1월 달에 BBK라는 투자 자문회사를 설립을 하고"[20]라는 발언이 담긴 것이 확인되어 그동안 이명박 대통령이 혐의를 부인해 온 것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엄청난 영상이었다. 그렇게 대통령 선거를 3일 앞두고 이 영상이 공개된 이후 국회에서는 BBK 특검을 해야 한다는 여당과 이를 저지하려는 한나라당의 난투극이 벌어지게 되었다. 한편 당시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광운대 동영상에서 이 전 대통령이 말할 때 이른바 주어는 없다며 해당 스캔들을 부인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이러한 대치상황은 이명박 대통령이 특검을 수용한다는 성명을 냄으로써 이미 이전부터 진행되었던[21] 국회 공성전은 끝나고 BBK 특검법이 통과되었다.
정두언 전 의원의 말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박영선 의원과의 인터뷰 내용도, 광운대 강연 영상 내용도 결국 자기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BBK를 자기 것이라고 거짓말한 것이고 검찰에서는 그 거짓말을 인정하여 혐의없음을 선고했던 거라고 한다. 그러나 BBK 설립 자백영상에도 불구하고 이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건재했는데 당시에도 유명했던 경제 대통령의 이미지가 도덕성 논란보다 더 굳건히 자리잡았기 때문이였다. 이 과정에서 이명박과 이 선거에서 맞붙은 정동영과 이회창은 자신의 신념은 하나도 말하지 않고 유세를 다니거나 TV토론을 할 째 오직 이 사건만 언급하며 주야장천 이명박만 공격했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 후보는 역대 대선 중 가장 큰 득표수 차이인 5백만표 차이로 정동영 후보를 꺾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물론 이 기록은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이 홍준표를 이보다 더 큰 득표수 차이로 이기면서 깨졌다.
당선된 대통령을 상대로 된 BBK 특검의 결과 이변은 없었다. 진통 끝에 2007년 12월 28일 이명박 특검법이 공포됐고 정호영 특별검사가 재수사에 나섰지만 2008년 2월 21일 정호영 특검도 BBK 사건과 이명박은 관련이 없다는 내용의 수사 결과를 발표하여 사건을 종결했고 김경준은 횡령과 주가조작 혐의로 기소되었으며 대법원은 김경준에 대해 징역 8년과 벌금 100억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3.2.1. 이명박의 주가조작 연루 의혹
이명박 측은 BBK가 자신의 것도 아니고 투자만 했고 투자 과정에서 김경준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려 2001년 4월 18일 결별했고 LKe뱅크 대표직에서 사임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장춘 전 외교통상부 대사는 2001년 5월 30일 영포빌딩의 이명박 사무실에서 BBK 회장이라고 적힌 명함을 받았다고 주장했고 증거를 공개했다.[22]이장춘 전대사 “이명박 후보가 ‘BBK명함’ 직접 줘” 옵셔널 벤처스의 주가조작이 이루어진 시기는 4월 27일 이후이기 때문에 4월 18일 이전에 사퇴한 것이면 주가조작과 무관하지만 이장춘 전 대사의 주장대로라면 BBK-LKe뱅크 대표를 지내고 있던 이명박이 전환사채를 이용하여 옵셔널 벤처스의 주가조작에 관여했다는 얘기가 될 수도 있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5월까지 이명박이 회장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명박이 김경준의 이 같은 조작을 몰랐을 가능성도 있다.4. 수사결과
4.1. 검찰
이 사건을 수사한 검찰 특별수사팀은 김경준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횡령)[옵셔널벤처스 회사자금 횡령 혐의], 증권거래법위반[위 회사 주가조작], 사문서위조 및 동 행사[미국 여권, 네바다주 법인설립인가서 위조 등] 혐의로 2007년 12월 5일 구속기소한 한편[23], 이명박에 대해선 혐의 없음 처분을 받았다[24].상세는, 수사결과 발표 전문, 김홍일 차장검사 일문일답 등 참조.
4.2. 특검
2007년 12월 28일에는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이명박의 주가조작 등 범죄혐의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이 공포되어 정호영 특별검사가 이명박의 혐의를 재수사하였으나 특검팀 역시 2008년 2월 21일 기존 검찰 수사 결과와 다를 바 없는 수사 결과를 발표하였다.상세는 수사결과 발표 전문(1), 수사결과 발표 전문(2) 등 참조.
수사결과 발표 후에는 기자들과 특검보 및 파견검사와의 질의응답도 이어졌다. <1> <2> <3>
5. 관련 재판
5.1. 김경준에 대한 형사사건
사건 장본인인 김경준은 사건이 두 개가 되어 각각 기소되었다. 1심의 선고결과는 먼저 기소된 사건에서는 징역 10년, 벌금 150억 원이# 선고되었고 나중에 기소된 사건에서는 공직선거법위반에 대해 징역 1년, 위조사문서 행사에 대해 징역 6월 등 징역 1년 6개월이 선고되었다.#[25]김경준은 위 판결들에 대해 모두 항소하였고 검사도 앞 사건에 대해 항소하였는데 항소심은 이를 병합하여 심리하였다. 결국 공직선거법위반 부분(징역 1년)은 1심 판결을 유지하고 나머지 부분은 징역 7년, 벌금 100억 원을 선고하였다.(서울고등법원 2009. 2. 5. 선고 2008노1143,2008노1759(병합),2008초기765,1020,2008초기770,2008초기943 판결)
이에 대해 김경준이 다시 상고하였으나 대법원은 2009년 5월 28일 상고를 기각하여 2심의 형이 그대로 확정되었다.#
김경준은 2007년 11월부터 구속되었기 때문에 총 징역 8년(7년+1년)에 벌금 100억이라 2015년 11월에 징역이 끝났지만 벌금 100억의 극히 일부밖에 내지 않아서 일당 2,000만 원의 황제노역을 거의 500일 동안 하게 되었다.
2017년 3월 28일 만기출소로 청주외국인보호소에 인계되어 강제퇴거대상이 되었으며# 미국으로 출국하였다.
5.2. 정봉주에 대한 형사사건
이 사건으로 정봉주는 이명박 후보자에게 불리하도록 이명박 후보자에 관하여 허위의 사실을 공표하였다는 이유로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명예훼손) 등의 죄목으로 기소되어 1심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08. 6. 17. 선고 2008고합198 판결).대법원종합법률정보 링크판결의 핵심 내용은 이 사건은 김경준이 저지른 것일 뿐이고 이명박은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위 제1심 판결에는 사건 관계자들이 익명처리가 되어 있어서 얼핏 읽어서는 누가 누군지 잘 눈에 들어오지 않으나 당사자들의 실명은 이미 언론에 공개된 바 있으므로 독해의 편의상 판결문상의 관계자들 이름을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다[26].
(1) 김경준 (3) 박수종 (4) 옵셔널벤처스코리아 (5) BBK투자자문 (6) 다스 (7) BBK캐피탈파트너스 (8) LKe뱅크 (9) 이뱅크증권중개 (10) 김백준 (11) 삼성생명 (13) 이보라 (24) 홍종국 (26) 이캐피탈 (29) 옵셔널벤처스코포레이션 (31) 워튼스트레티지스 (33) 교보생명 (50) 권경현 (90) AM파파스
이에 정봉주는 불복해 항소하였으나 서울고등법원은 항소를 기각하였고(서울고등법원 2008. 12. 11. 선고 2008노1607 판결) 다시 정봉주가 불복해 상고하였으나 대법원 역시 상고를 기각하여(대법원 2011. 12. 22. 선고 2008도11847 판결) 제1심의 형이 그대로 확정되었다.
이때 당시 변호사였던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 대한 의혹으로 BBK 사건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5.3. 시사인과 주진우에 대한 손해배상소송
주간지 시사인의 주진우 기자가 '이 사건 수사검사들이 김경준을 회유·협박하여 허위진술을 하도록 강요하였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는데 이에 대해 최재경 등 해당 검사들 10인이 시사인[27]과 주진우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제1심 법원은 원고들(검사) 일부 승소 선고하였으나# 항소심은 원고 선고하였으며 대법원 역시 상고를 기각하여(대법원 2012. 8. 23. 선고 2011다40373 판결) 원고 패소 판결이 그대로 확정되었다.
5.4. 정봉주에 대한 손해배상소송
이 사건을 수사한 검사들 중 8인은 정봉주를 상대로도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는데 이 사건도 제1심에서는 원고 일부 승소 선고하였으나 항소심은 원고 패소 선고하였고 대법원 역시 상고를 기각하여(대법원 2013. 6. 28. 선고 2011다40397 판결), 원고 패소 판결이 그대로 확정되었다.6. 여담?
6.1. 주어는 없다
이명박은 그동안 BBK 대표라는 명함을 뿌리고 신문기사를 통해 자신이 BBK라는 투자회사를 세웠다는 과거의 인터뷰 기사들이 속속 발굴되었다. 후보 캠프 측에서는 명함은 BBK 측에서 자신들의 홍보효과를 노린 가짜이고 과거 인터뷰 기사들은 오보라고 대응하였다. 그런데 대선 직전에 결정적인 "BBK라는 투자자문 회사를 설립했습니다."라는 발언을 한 동영상이 발표되었다.이때 나경원 당시 대변인이 이명박 후보를 감싸기 위해 그러나 "주어는 없었습니다."라는 변명을 한 것이 두고두고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6.2. 정봉주의 몸짱화
정봉주는 이 사건으로 인해 실형을 선고받아 복역하게 되었는데 교도소에서 운동을 열심히 하여[28] 몸짱이 되었고 그 경험을 계기로 출소 후 《골방이 너희를 몸짱 되게 하리라》라는 책을 출간하기까지 하였다.6.3. 특검 수사진 후일담
6.3.1. 특검보의 부적절한 행보
훗날 노컷뉴스의 취재에 의하면 특검이 해산된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특검보 중 한 명인 이상인 변호사가 다른 변호사들과 함께 영포빌딩에 법률사무소를 차렸는데 하필 영포빌딩은 이명박 소유이다. 이 변호사는 이듬해에 한나라당 추천으로 KBS 이사까지 역임했다. 노컷뉴스 취재진이 이 일들에 관해 이 변호사에게 해명을 요구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6.3.2. 파견검사 보은인사 의혹
정호영 특검팀에 파견되었던 검사들이 이명박 정부에서 좋은 보직을 받아 보은인사 의혹이 제기되었다. 박정식 검사(당시 수사팀장. 2017년 1월 기준 부산고검장)는 대검 중수부 2과장으로, 차맹기 검사(2017년 1월 기준 수원지검 1차장)는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실 연구관으로, 조재빈 검사(2017년 1월 기준 대검 연구관)는 법무부 정책홍보관리실로 각각 발령을 받은 것. 박 검사는 훗날 박연차 게이트에서 박연차를 구속하기도 했다.#2018년에 이명박을 구속 기소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도 정호영 특검팀 파견검사인 BBK 검사들 중 1명이었고 이명박 정부에서 대검찰청 중수1과장·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1부장 등 핵심보직을 연이어 역임했다.
그러나 후일 윤석열은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 사건을 총지휘하는 중앙지검장이 되었고 이명박에 대해서 29살 김경준한테 네다바이당할 정도로 어리숙한 사람이라고 평가절하했다.
7. 이후
김경준은 만기출소 후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과 만나 "정권이 교체돼 진상이 밝혀졌으면 좋겠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주가조작 유죄다"고 밝혔다.이 사건을 끈질기게 추적하던 의원들인 박영선[29] 등이 10여 년이 지난 뒤 나름 정계에 자리를 잡으면서 대선이 끝난 후 의혹이 다시 재점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당시 BBK 대책 팀장이었던 홍준표 측에서 이러한 막말을 하여 이후 큰 파장이 예상되기도 했다. 당시 검찰조사에서 무혐의가 나서 종료한 사건임에도 홍준표 자신이 BBK를 막아 줬다고 발언하며 개입을 주장하였기 때문. BBK 관련설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실체가 존재하던 BBK 사건을 홍준표 본인이 막아준 것이며 정치권의 개입이 있었다는 것을 명백하게 폭로한 발언이라고 보고 크게 환영했으며 이명박을 지지하는 측에서는 BBK는 이미 무혐의가 난 사건이라서 홍준표가 간섭할 껀덕지는 아무것도 없었는데도 홍준표다운 막말과 거짓말을 말한 것이라는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JTBC가 BBK 건을 다시 건드리면서 아예 추가 보도까지 예고했다. 다만 한동안 조용하다가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BBK 주가 조작 사건에 대해 방영되었고 이후 JTBC에서 다스에 관한 의혹들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설사 다스가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점이 이명박 전 대통령이 주가조작 사건의 공범이라는 사실로 바로 연결할 수는 없다. 회사 직원이 회사 돈을 가지고 도망가서 회사가 망한 사례는 아주 많다. 즉, 이명박 전 대통령도 주가조작의 피해자일 가능성이 있다. 더구나 다스가 그의 것이고 그가 주범이라면 김경준이 다스의 140억까지 들고 튄 것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 주진우에 따르면 MB가 청와대를 동원해서 김경준에게 140억을 받아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어쨌든 MB가 140억을 사기당한 것은 맞다. 9월 초까지는 김어준과 주진우도 각종 방송을 통해서 둘이 공모를 해서 주가조작을 한 것인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사기를 당한 것인지 아니면 같이 사기를 치고 잠시 미국으로 피해 있으라고 했는데 김경준이 다스 돈까지 돌려주지 않았는지 불분명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어떤 증거의 추가도 없이 이명박 전 대통령도 같이 주가조작을 했다고 주장했다.
현재까지 사기꾼 김경준의 증언 외에 이명박 전 대통령이 주가조작 사건의 주범이라는 증거는 전무하다. 김경준으로서는 이명박을 주범으로 몰아 가벼운 형을 받거나 최소한 국민여론에 호소할 이익이 있기 때문에 이같은 증언을 유지할 이유가 있다. 또 김경준은 다스로부터 돌려주지 않은 140억에 대해서 소송하고 있었기 때문에 2007년 시점에는 더더욱 이명박을 공모자로 몰아 다스의 140억은 투자금이므로 다스에 돌려줄 이유가 없다고 주장할 상당한 이유가 있다.
물론 실제로 다스가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것이었기에 단순히 주가 조작만의 문제로 끝나는 게 아니게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다스 실소유주 논란 문서 참조.
7.1. 청와대 개입 논란
BBK 사건을 계속해서 추적해 온 주진우 기자가 그동안 받아온 제보와 증거에 따르면 다스가 김경준에게 140억을 받아내기 위해서 청와대, 외교부, 대한민국 검찰청이 공조했다고 주장했다. 주진우 기자가 공개한 문건에서 청와대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국가공권력이 아니면 알아내기 힘든 내용이 많은 것이 사실이며 제보자에 따르면 이 문건의 작성자는 이명박 전 대통령 당시 BBK 언론 모니터링 담당자였던 청와대 민정수석실 법무행정관이였다고 밝혀 파장이 벌어졌다.7.2. 특검 검찰 소환
다스 전 관계자가 정호영 특검이 다스의 120억 원대의 비자금을 파악했지만 이를 덮어 버린 후 다시 다스 계좌로 입금하라고 지시했다고 폭로했다.# 이 주장이 사실일 경우 특검이 이명박 정권 비호를 위해 수사 대상자와 동조하여 불법을 저지른 것이기에 논란이 되었다.2018년 2월, 당시 수사가 법적으로 부실했다는 의혹을 받아 정호영 당시 특검이 소환되었다.
검찰은 결국 정 특검의 특수직무유기 혐의에 대해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혐의 없음 처분을 했으나 '120억' 건을 처음 보도한 한겨레는 제보자(전직 검사) 등 관계자의 입을 빌려 "법적 책임을 벗었다고 해서 양심도 자유를 얻었을까. 그분들이 부디 부끄러움을 알았으면 좋겠다."라고 보도했다.#
2018년 검찰 재수사 결과 특검은 법원이 압수수색 영장을 모두 기각해 버린 상황에도 대통령 당선인을 상대로 다스의 비자금으로 의심되는 자금 일부를 발견해 적극적으로 수사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120억원에 이르기까지 밝혀내었다. 결국 여직원이 횡령한 자금으로 특검, 검찰 재수사에서 확인되었지만 이 수사로 인해 다스 내부에서는 자중지란이 발생했다. 사장, 전무가 해고되었고 결국 2018년 재수사가 시작되자 이들이 자신들만 알고 있는 비자금 조성 등을 밝히면서 다스와 관련된 진실이 드러났다.
2008년 특검이 1개월 정도 수사하고 반환한 수사기록은 그대로 특검 수사를 지켜보던 검찰 수사팀에 넘어갔다. 당시 특검은 법률상 수사 대상이 아닌 여직원 개인의 횡령비리를 특검의 수사결과로 발표하지 않은 것은 법률을 위반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다스의 의심스런 자금 120억원을 수사한 특검이 양심이 없고 잘못한 것인지 살아있는 권력을 상대로 용기 있게 수사한 것인지는 역사가 평가할 것으로 보인다.
사주나 경영진이 비자금 1억을 만들어 오라고 지시하면 담당 직원들도 그 못지 않은 액수를 해먹는다. 그게 기업 비자금 세계의 불문율이다. ‘네가 빼먹는데 나라고 못 하냐’는 심리에다, 비밀을 공유했으니까 문제가 생겨도 못 자를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검찰 관계자의 설명.
검찰 관계자의 설명.
백보 양보해서 특검이 그 120억만 봤다고 칩시다. 시한에 쫓겨서 더는 수사를 할 수 없었다는 말도 사실이라고 합시다. 그러면 그럴수록 검찰에 넘겼어야죠. 그런 경우에 대비해서 특검법에 서울중앙지검으로 넘기라고 돼 있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특검이 왜 이 사건을 권한에도 없는 내사종결로 끝내 버리고 쉬쉬했을까. 나는 당시 특검이나 파견검사들이 이번에 드러난 ‘오너’ 비자금의 더듬이든 꼬리든 봤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최초 제보자가 제기한 의문.
최초 제보자가 제기한 의문.
검찰 다스 수사팀이 이번에 확인한 다스 비자금은 크게 세 덩어리. 이 세 덩어리는 모두 경리직원 조아무개 씨의 손을 거쳤다. 검찰은 조씨가 이 세 덩어리에 모두 관여돼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같은 사람의 손을 거쳐 비자금 세 덩어리가 동시에 굴러가는 상황에서 ‘우리는 딱 한 덩어리만 봤다, 나머지 두 개는 본 적이 없다’는 게 정 전 특검의 변명이다.
검찰에 넘기면 나머지 비자금이 속속들이 드러날까 봐 기록만 트럭에 실어 보낸 것은 아닐까? 정 전 특검은 한술 더 떠 특검 수사보고서에도 이 비자금 120억을 넣지 않았고,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알리는 수사 결과 발표 때도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기자의 해설.
검찰에 넘기면 나머지 비자금이 속속들이 드러날까 봐 기록만 트럭에 실어 보낸 것은 아닐까? 정 전 특검은 한술 더 떠 특검 수사보고서에도 이 비자금 120억을 넣지 않았고,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알리는 수사 결과 발표 때도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기자의 해설.
7.3.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 사건 이후
정봉주는 이명박이 구속되자 이명박이 기소되면 재심을 청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한편 BBK 사건 주범 김경준은 이명박 관련 의혹에 대해 증언을 하겠다며 변호사를 통해 대한민국 법무부에 입국 신청을 했지만 결국 거절됐다. 이어서 BBK의 실질적 최고경영자는 이명박이었다는 당시 BBK 직원의 증언을 자기 페이스북에 공개하는 등의 행보를 보였지만 별 관심은 못 받았다. 세계일보가 "새로운 증언이 공개됐다"며 단독이라고 내세운 이 기사의 실상은 김경준의 페이스북 글을 그대로 긁어온 것에 불과하며 그 내용 역시 전혀 새로운 게 아니라 11년 전 김경준이 재판받을 당시의 증인신문 조서에서 자기에게 유리한 증언이 담긴 내용을 일부 발췌한 것 뿐이다.
무엇보다 이명박의 혐의에 BBK 주가조작 혐의는 포함되지 않았고 前 BBK 검사들 중 한 명이자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 사건 당시 수사를 지휘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역시 2018년 10월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이에 대해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수사를 검토하겠다"면서도 "수사기록을 들여다봤지만 이 전 대통령이 BBK를 자기가 설립했다고 한 것은 조금 과장된 얘기이며, BBK 주인이라 하기에는 조금 어폐가 있다"고 답하여 결론이 뒤집힐 가능성은 낮아졌다. ##
2020년 이명박의 다스 관련 혐의의 형량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서 BBK 의혹을 제기해 유죄를 받은 정봉주의 재심을 촉구하는 의견이 일각에서 나왔다. #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 사건 수사 당시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수사팀은 정호영 전 비비케이(BBK) 특검의 특수직무유기 혐의에 대해서는 ‘혐의없음’ 처분했다. “면죄부를 줬다”는 일부 비판에도 이렇게 한 것은 애초에 은폐 의혹이 제기됐던 120억원을 다스 경리직원 조아무개씨의 개인 횡령으로 판단하면서다. 수사팀은 2008년 비비케이특검에서 다스를 수사했던 박정식 부산고검장 등 파견검사들은 조사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2018년 2월 21일 공소시효는 완료되었다.#
[1] 읽으면서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BBK 일당의 사기행각은 BBK가 서류상 망한 2001년 4월 이후에도 후속·연관 법인들을 통해 끊임없이 ― 최소한 2002년 3월까지는 ― 계속되었다. 다만 사기꾼 회사 이름을 다 알아둘 필요는 없는데다가 BBK라는 낱말이 워낙 입에 착 달라붙으니 그냥 관련 사건 모두를 한데 묶어 BBK라고 퉁치는 것이다.[2] 이름 변천: 광주은행창업투자→뉴비전캐피탈→옵셔널벤처스. 이 회사는 본디 새천년시대 개막과 함께 찾아온 벤처 캐피털 설립 붐을 타고 광주은행에서 야심차게 내놓은 창업투자 전문 자회사였으나... 잘 안 풀려 매물로 나온 것을 BBK 일당이 낼름 주워가 버렸다. BBK 일당이 가라앉는 BBK를 버리고 옵셔널 벤처스로 옮겨탄 과정은 다음과 같다: ▲2001년 3월 2일~13일 금감원, 비리첩보 입수하고 BBK 조사 ▲4월 26일 BBK 대표 김경준, 외국계 펀드로부터 "우연한 권유"를 받고 옵셔널벤처스 대표직도 겸하기로 함 ▲그 다음 날(27일) 금감원 조사결과 발표, BBK의 투자자문-투자일임업 등록 말소됨 ▲또 그 다음 날(28일) BBK 폐업(...)[3] 옵셔널벤처스 점령작전(2000.12~2001.04) 당시 김경준은 원 소유주 광주은행이 자신과 BBK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도록 또 다른 외국계 돈주머니를 만들어서(...) 그 이름으로 절차를 밟아나가는 치밀함을 보였다. 김경준은 광주은행이 경영권과 대주주 지위를 상실(2001.03.06)할 때까지 기다리며 간을 보다가 최대주주로 등극한 그 "외국계 돈주머니"의 권유로 옵셔널 한국지사의 CEO로 영입되었다.[4] 한편, "BBK와는 무관한 또 다른 프로젝트(LKe뱅크)"에서 김경준과 동업하던 이명박은 "BBK가 파투 나는 것(2001년 4월 금감원 결정)을 보고 김경준에 대한 신뢰가 깨져버려 김경준과의 모든 금전관계를 청산했다."고 주장했다. BBK든 옵셔널벤처스든 100% 김경준 회사고, MB 본인은 그 시점에 전혀 다른 프로젝트로 김경준과 엮여 있었을 뿐, 주가조작 사태는 모르는 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BBK와 LKe가 사무실을 공유했다는 점, ▲DAS가 BBK에 굉장히 무리한 투자를 해서 대주주 지위까지 얻었다는 점, ▲주변인(피고용인, 투자자, 거래처, 취재진 등)들이 내놓은 정황증거는 하나같이 MB의 주장과 대치된다는 점, ▲일반상식에 비추어 봐도 "투자자문업(BBK)"과 "사이버 증권중개업(LKe)"은 말미잘과 흰동가리 수준으로 공생 가능한 업종이라는 점 등을 들어 MB의 해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사람은 당시에도 매우 많았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2000년에 촬영된 "BBK는 내 회사" 영상이 2007년에 공개되면서 이명박의 논리가 뿌리째 흔들리는가 싶었으나... 수사당국은 MB의 손을 들어줬다.[5] 옵셔널 벤처스의 주가조작 행각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2002년 3월인데 회사 대표 김경준은 이미 미국으로 출국하고 없었다. 이후 진행 상황은 다음과 같다: ▲2002년 3월 7일 코스닥 거래중단 ▲3월 13일 "1년 총투자액 211억 중 180억이 유령회사로" 중기청 조사결과 발표 ▲6월 21일 안진회계법인, 옵셔널 벤처스에 "한정" 감사의견 제시 ▲7월 3일 창투사 등록취소 ▲7월 8일 코스닥 상장폐지. 다만 법인 자체는 소액주주 피해자 구제기관 비슷한 것으로 바뀌어 존속 중이며 BBK 일당을 대상으로 한 소송업무에 전념하고 있다. ▲2023년 기준으로 법인명은 "주식회사 옵셔널캐피탈". 참고로 본 문서의 제목이기도 한 BBK는 2001년에 이미 망하고 없다.[6] 이명박과 김경준의 얽히고설킨 애증의 "비즈니스 파트너십", 듣보 비상장 외국계 투자자문사 BBK에 대한 한국 제조업체 DAS의 "기둥뿌리까지 뽑아넣은" 묻지마 투자, MB의 광운대학교 자폭 연설, 그 외 주어는 없다 드립 등 10년 넘는 세월 동안 전국민의 사랑을 받은 가지가지 유머소스[7] 경선이 끝난 이후에도 경쟁후보 측에서도 숟가락을 얹으며 해당 대선의 주요 떡밥으로 자리매김한 바 있다.[8] 2007년 고승덕 변호사의 BBK 사건 설명 동영상[9] 이명박의 집사로 알려진 이명박 정부 청와대 비서관 및 기획관을 지낸 인물이자 이명박 정부/자원외교 논란으로 유명한 메릴린치 피터김의 아버지.[10] TBS 뉴스공장 2017년 10월 9일자 방송 내용[11] 김백준은 이명박의 집사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사람이다. 전라도 출신으로, 이명박의 고려대학교 선배(전공은 서로 다르다)로 알려져 있으며 이명박보다 나이가 많다. 청년기에 한국외환은행 직원이었다가 현대그룹 금융사로 직장을 옮기면서 이명박과 처음 만나게 되고 친해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후에 그 현대종합금융의 부사장이 되었다. BBK나 LKe뱅크 때도 금융인이었던 그가 상당히 사업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명박의 서울시장 선거 당시 선거본부 총무팀장이라는 중요한 직책을 맡았으며 후에 서울메트로의 감사직을 맡았다. 또 다스의 자회사(홍은프레닝)의 감사를 맡기도 했다고 한다. 이명박이 대통령이 된 뒤에는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하다가 1년 뒤 대통령실의 지시로 총무기획관으로 승진 아닌 승진을 했다. 기획관은 원칙상 비서관과 동급이지만 실질적으로 그보다 높은 (수석과 비서관의 중간 정도) 대우를 받는 자리로 대통령실이 정하는 부서에 비서관 대신 넣을 수 있다. 김백준은 그렇게 4년 가까이 청와대 총무기획관(비서관)실에 재직하다가 이명박의 임기가 1년 남은 2011년 12월에 퇴임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비서관(기획관)으로서는 가장 오랫동안 안 잘리고 롱런하였다. 또 김백준의 아들 피터김(김형찬)은 메릴린치 소속으로 유명한 사람인데 원래 연세대 경영학과를 나와 삼성물산과 주식회사 승산 등에서 근무하던 사람이었다가 메릴린치로 갔다. 메릴린치는 이명박 정부에서 진행한 자원외교 당시 한국석유공사의 자문을 무려 4건이나 한 것으로 알려진 그 메릴린치다. 당시 그는 한국투자공사가 메릴린치에 20억 달러를 투자한 뒤 곧 상무로 특채되었다고 하는데 캐나다 하베스트 인수 관련해 관련이 없다며 본인과 정부가 모두 연관성을 부정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후 승승장구하며 상무에서 IBD부문(투자은행 부문) 대표까지 승진하여 지낸 뒤 2016년 10월에 그만두었다.[12] TBS 뉴스공장 2017년 10월 9일자 방송 내용[13] 단 이후에도 옵셔널 벤처스라는 회사는 옵셔널 캐피탈로 이름을 바꾸고 경영진도 전부 바꾼 뒤 남아 있기는 하다.[14] 이 논쟁에 가장 앞장선 사람이 친박이였던 최경환 의원으로 최경환 의원은 이명박 후보에게 BBK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재밌는 사실은 최경환 의원은 이명박 정부 시절에 장관을 하기도 했다는 점이다.[15] 이장춘 대사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친구끼리 이럴 수 있느냐? 또 경상도 사람끼리 이럴 수가 있느냐?"고 토로하자 "내가 내 자식이라도 뻔질나게 거짓말을 하면 내가 목을 쳐 버릴 사람이라는 걸 몰랐느냐?"는 말로 응수했다고 한다.[16] 원문엔 심모씨라고 썼으나 박영선은 당시 남편이 심씨 성을 가진 사람과 근무를 한 적이 없었다며 허위사실이라고 밝혔다.[17] 정봉주가 후일 나는 꼼수다이 나오면서 보인 행보를 생각하면 의외라고 여길지 모르나 당시 노무현을 진보 인사들은 우편향했다며 증오했고 열린우리당은 거대여당이 되옸어도 탄돌이들이 제멋대로 날뛰면서 당론이 분열되고 야당에 끌려다녔다. 결국 탄핵 실패는 국민의 여론을 보여줬지만 노무현은 레임덕에 빠지게 되었다. 게다가 노무현에 대한 비토 여론이 확고해지자 민주당계 정치인은 차기 총선과 대선을 위해서라도 노무현을 내쳤기에 '대통령이 야당 대표와 손잡고 부정행위를 저질렀다' 같은 수준의 악담이 탄돌이의 입에서 나온 것은 당시 노무현에겐 일상과도 같았다. 이렇게 노무현을 저주하고 흔적마저 지워 버리려 했던 진보인사들은 노무현 사후 태세를 전환해 친노를 자처하기 시작했다.[18] 증언에 따르면 누나하고 아내를 소환하겠다, 강제 구인하겠다는 협박도 들었다고 한다.[19] 증언에 의하면 정봉주 의원도 이 전화를 받았지만 거절했다고 한다.[20] 위 영상의 48초에 나온다.[21] 영상이 공개되기 전부터 여당과 한나라당 이외의 야당 의원들은 이미 특검법을 통과시키겠다면서 강제 통과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22] 이장춘 전 대사는 외교관으로 활동하면서 기록 습관을 들인 덕에 사소한 것까지 꼼꼼하게 기록해 놓았다고 한다.[23] 다스를 상대로 투자금 사기를 했다는 혐의는 혐의 없음 처분을 받았다.[24] 그 개요는 아래 머니투데이 기사 도표 참조[25] 공직선거법위반죄의 형을 별도로 정한 것은 그렇게 하도록 공직선거법에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26] 아래에서 (1)이라고 하면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사이트에 공간된 판결문의 "공소외 1"을 지칭하는 것이다.[27] 정확하게는 '시사인'을 발행하는 주식회사 참언론[28] 마지막 재판 전에 감옥에 갈 수 있겠다고 예감하고 운동 전문가에게 감옥에서 도구 없이 할 수 있는 운동들을 꼼꼼히 배우고 들어갔다고 한다. 그래서 감옥에 있던 1년간 여가 시간에는 항상 운동과 독서만 몰입했다고.[29] 저격수로 나와 의혹을 제기했는데 이로 인해 당시 한나라당에 명예훼손 및 10억 원의 손배소를 당하기도 했다. 본인 말로는 김경준의 기획입국설 관련해 BBK 수사가 남편에게까지 뻗치자 남편이 스스로 외국에 나가겠다고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