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범죄 행각으로 인한 연예계 추방
이미 1986년에 영화 <납자루떼>를 감독하여 쫄딱 망한 바 있던 서세원은[1] 2001년에 조폭 마누라를 제작[2]하면서 대박을 거뒀다. 하지만 조폭 마누라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이 영화의 흥행은 상당한 거품이 끼어 있었고, 이러한 평가는 비단 후세의 평가에 국한된 것만이 아니라 개봉 당시인 2001년에도 제기되었다. 그 밖에도 이 영화를 촬영할 때 보조 출연자로 진짜 조폭을 썼다는 루머까지 돌았다.어쨌거나 당시 TV 쪽에선 서세원이 한창 끗발을 날리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TV 쪽에선 이 영화의 성공이 꽤 과장되게 묘사되었고, 서세원 본인도 꽤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였다. 예를 들면, 토크쇼 등지에서 "나폴레옹을 이해하겠다"거나, "내가 얼마나 대단한지 한국 영화계가 이제서야 알 만할 것"이라는 등의 발언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날렸다. 그리고 실제로 조폭 마누라는 관객 142만명[3]으로 꽤 흥행한 편인 건 사실이고, 서세원도 이를 통해 많은 돈을 벌어들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성공은 정말 잠깐이었다.
이듬해인 2002년, 서세원쇼는 상당한 논란을 겪게 되었다. 사실 서세원쇼는 잘 나왔던 시청률과 높았던 인기와는 별개로 태생적으로는 프로그램 자체가 일본 예능 프로그램의 설정을 표절한 것이어서 처음 탄생했을 때부터 제법 말이 많았던 프로그램이었고, 또한 진행 수준 역시 게스트로 출연한 다른 연예인들에 대한 서세원의 일방적인 갑질에 가까울 정도로 상당히 공격적이었기에 방송 기간 내내 논란이 뒤따랐다.[4] 국민 토크쇼 프로그램으로서 굴지의 인기를 누리는 한편 순 양아치 같은 프로그램이라는 비판도 받았을 정도로 빛과 그림자가 뚜렷하던 서세원쇼는 2002년 6월 말, 수습할 수 없는 문제를 일으켰다.
서세원쇼의 6월 25일 방영분에서 게스트로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이었던 김남일, 송종국 두 선수의 부모가 출연하였다.[5]
방영 불과 1주일 전인 6월 18일에는 16강전에서 한국과 이탈리아가 맞붙어 한국이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이탈리아를 2:1로 깨뜨리는 이변이 일어났는데, 이 엄청난 성과로 8강 진출에 성공한 덕에 거스 히딩크 감독과 히딩크호 선수들은 국민적 스포츠 영웅으로 등극하였다. 그런데도 서세원은 평소에 하던 대로 모욕에 가까운 토크를 이어 갔고, 특히 김남일 선수의 아버지를 상대로 한 조롱이 국민적 공분을 샀다. 자세한 전말은 서세원쇼 문서 참조. 이로 인하여 서세원쇼는 종영 청원까지 이어질 정도로 큰 위기를 겪었다.
한편 서세원쇼에서의 논란이 있은 지 1달도 되지 않은 시기인, 2002년 7월 19일 개봉한 긴급조치 19호가 그야말로 폭망했다. 감독은 다른 사람이지만, 서세원이 전작의 성공에 도취된 탓이었는지 지나치게 개입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내용을 보면 어차피 개입을 안 했어도 평작조차 될 수 없던 엽기 영화였다. 영화는 서세원쇼 극장판, 서세원식 징병제, 서세원의 인맥 자랑에 불과한 괴작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영화를 홍보하는 과정[6]에서 PD들에게 돈을 먹인 것과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급하여 세금과 제작비를 포탈한[7] 사실이 들통났다.
이때 영화계 쪽 사람들은 진작부터 전작인 조폭 마누라의 제작과 흥행에 대해 그리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세원의 이런 빠른 몰락에 대해 '그러면 그렇지...'라는 반응을 보이면서 서세원을 변호해주지 않았다. 사실 할 이유도 전혀 없었지만...[8] 결국 긴급조치 19호 이후 서세원의 극적인 몰락은 이전작인 조폭 마누라가 지나치게 거품이 끼어있었던 것에 대한 반등이자 당연한 업보이기도 했다.
이렇게 몰락한 서세원은 2002년 8월에 이미 검찰의 수사를 피하여 도피 수순을 밟고 있었다. 이로 인해 서세원쇼는 더 이상 참다 못한 시청자들의 분노로 인해 짐짝처럼 버려져 8월 6일에 5년 10개월 간의 길었던 역사를 마감하고 종영되었고, 이 와중에 국외 도피 중 마카오에서 도박을 했다는 의혹까지 기사화되었다. 2003년에는 홍콩을 거쳐서 미국으로 도피했다가 국제형사경찰기구에 수배까지 되었다. 결국 궁지에 몰려 귀국.[9][10] 판결은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이 소송은 대법원까지 간 끝에 2006년에야 최종 확정되었다.[11]
참고로 이 시기 해외 도피로 서세원쇼를 펑크내고 강제 종영시킨 것에 대해 KBS로부터 미운털이 제대로 박혔고, 이는 2009년에 행정안전부가 그에게 KBS와 SBS에 출연정지를 내리는 영향을 주기도 했다. 그 때문에 KBS 미디어에서는 서세원쇼의 자료 판매조차 하지 않으며, 서세원쇼에 나왔던 게스트들도 이 프로그램에 대한 언급을 금기시하는 편이다.
이 소송이 진행되는 와중[12]인 2004년, 도마 안중근을 제작했다. 하지만 평과 흥행 모두 망했고, 프리미어 엔터테인먼트 인수 과정에서 또 다시 비리 혐의가 드러난 데다 이후에는 공식적으로 출연정지 처분까지 내려지면서 방송 출연이 어렵게 되었다.
2010년 서세원이 각본과 감독까지 담당한 영화 젓가락이 개봉되었다. 하연주, 박무영 주연에 이수근이 조연, 남희석이 특별출연으로 나왔던 이 영화는 혹평마저 받지 못함은 물론 "이런 영화도 있었나?"라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로 철저하게 묻혔다. 전국 관객이 고작 488명[13]에 불과했으니, 단순 계산을 해도 400만원[14]이 안 되는 수익이다. 결국 영화 질이 떨어지니 그에 걸맞은 결과가 나왔다고 할 수 있다. 덤으로 얼마나 망했는지 VOD로는 커녕 DVD 같은 2차 매체조차 단 한 개도 안 나와서 이젠 보고 싶어도 볼 방법이 없다. 2010년대 이후 상업영화 중에서는 거의 유일한 케이스다.
이렇게 한 때 코미디 스타였던 서세원은 스스로 저지른 각종 범죄들로 인해 처참하게 몰락하게 되었다.
2. 목사 자격 논란
이후 신학대학에 다녀 목사가 되었으며[15], 서울특별시 강남구 청담동에 솔라그라티아 교회를 세웠다.[16] 하지만 2014년 4월 13일 교회가 문을 닫았다고 한다. 헌금으로는 교회를 운영하기에 턱없이 부족해서 매주 재정적인 어려움을 보게 되었는데, 그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교회를 그만 두었다고 한다. 비싼 강남을 떠나 강북으로 교회를 이전할 계획이었으나, 2014년 5월 아내 폭행 사건이 불거지고 강단에서 막말을 일삼으며 담배를 끊지 않는 점으로 인하여 소속 교단에서 목사직을 박탈 당하며 제명 당했다. 관련 기사.서세원이 목사가 되는 과정과 해당 교단이 어디인지도 관심사였는데, 서세원 본인은 미국에서 공부했다고 했으나 "목사 안수는 개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공식적인 발언을 하기가 힘들다"며, 끝내 어느 신학교에서 교육받았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 안수를 받았다는 장로회 군소 교단도 한기총이나 한교연에 가입되지 않은 교단으로 밝혀졌다. 해당 교단은 교세 확장이나 금전적 동기로 서세원이 유명인인 데다가 보수층에서 서세원을 정치적으로 키워주니 목사 안수를 특별히 준 것으로 보인다.[17]
서세원이 목사가 될 당시 이를 우려하며 훗날을 내다보는 칼럼이 있었다. (강만원 칼럼) 서 아무개의 간증집회... 목회는 '개그'가 아니다![18]
위 영상이 서세원 前 목사의 실제 방언 영상이다.
그는 목사 재직 기간 중 일명 '신 들린 언어'라고 불리는 방언을 남발해 논란이 되었다.[19] 이에 대한 댓글 반응은 좋지 못하다.
그리고 심지어 돈만 밝히는 부패한 목사임이 밝혀지게 된다.
결국 서세원은 자신이 목사로서 저지른 헌금 욕심 등 악행과 탐욕 때문에 완전히 목사 이미지에서도 처참하게 몰락하게 되었다. 완전히 목사 이미지에서도 까인 셈이다. 한마디로 목사로서의 경건하고 착한 이미지 관리를 제대로 못 한 셈.
3. 영화계 복귀 논란
그러다 난데없이 다시 영화계로 복귀한다며 2014년, 《건국대통령 이승만》이라는 영화의 감독을 맡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후 '건국대통령 이승만' 시나리오 심포지움에서 "3,000만 관객을 동원해야 한다"며 "'빨갱이'들에게서 국가를 지켜보자"고 외치면서 그의 정치적, 민주주의적 인식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말았다. 3.15 부정선거를 '작은 실수'라고 말한 것은 덤.[20][21][22] 여담으로 서세원을 '건국대통령 이승만' 영화의 감독에 앉힌 사람은 전광훈 목사[23]라고 한다. #게다가 이 자리에서 하던 말을 들어보면 '나를 욕하는 사람들은 종북이자 쓰레기'라든가 자신을 두려워한 나머지 영화계가 자신을 매장했다느니, 극장들이 외면했다느니, 칸 영화제에서 밀양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전도연과 변호인에서 주연을 맡은 송강호는 마귀라는 되도 않는 망언들을 이어간 것은 물론[24] 미국 영화는 60%가 예수 영화라면서 "한국 영화는 예수 영화로 돌아가야 한다", "이승만 영화로 예수 한국을 세우자"는 식의 종교 편향적인 말까지 늘어놓으면서, # 그야말로 심형래가 하던 과대망상과 허세를 능가하고 있다.[25]
또한 할리우드 배우들을 동원하겠다느니, 등장할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등 배역에 대해선 할리우드 스타들을 캐스팅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가서 무릎을 꿇고라도 사정을 할 것이다. 제작비는 걱정 안 해도 된다"면서 "해외 영화제도 모두 휩쓸 것이다"라고 자신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나친 수준으로 미화한다는 논란도 논란이지만, 워낙 서세원의 이미지가 나쁜 데다가 그가 좋은 소재들을 이용하여 영화들을 F급도 아닌 산업 폐기물 수준으로 만들다 보니 이승만을 긍정적으로 보는 측에서조차 "왜 하필 감독이 서세원이냐", "안중근 의사를 모욕한 작자 아니냐?"는 식으로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공교롭게도 안중근과 이승만은 독립운동가로서 일본 제국에 저항했다는 공통점이 있으니, 만약 건국대통령 이승만 제작이 무산되지 않았다면 서세원은 독립운동가를 2명이나 모욕했다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26]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제작비 10억 원을 모으겠다며 호언장담했으나, 2015년 2월 28일 부로 종료된 시점의 금액은 불과 143만 원으로 목표 금액의 0.1% 수준. # 당연히 영화의 제작 가능성 자체가 불투명해졌다. 지원자도 10명 정도밖에 안 됐다고 해서 '얼마나 가치가 없으면 같이 사진 찍은 사람들한테도 돈을 못 받냐' 라고 비아냥을 들었다.
게다가 후술할 아내 폭행 사건까지 겹쳐지면서 결국 영화 감독직에서도 하차했다.
2020년 9월 5일에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 1230회에서 제작진들이 전광훈 관련 및 <건국 대통령 이승만>의 제작 포기와 관련된 인터뷰를 요청하자 거부했다.
먼 훗날인 2024년에, 결국 이 영화와 같은 소재인 건국전쟁[27]이라는 영화를 보수 성향의 김덕영 감독이 제작해서 개봉했다.
4. 이혼 - 강제결혼과 가정폭력 가해자
자세한 내용은 서정희 문서 참고하십시오.2014년 5월 10일 아내 서정희를 폭행했다는 가정폭력 혐의로 입건되었다. 그러자 당뇨 및 혈압 같은 여러 질병을 하소연했고, 서정희는 법원에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그동안 사이가 좋은 부부라고 알려졌지만 실상은 아니라는 온갖 소문이 사실로 밝혀진 셈.
결국 서세원은 상술한 대로 영화 제작에서 하차하게 되었고, 서정희의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에 불복하고 5월 21일 서울가정법원에 이의를 제기했다. 2014년 5월 22일, 해당 사건이 검찰에 송치되었다.
그러다가 2014년 7월 24일, MBC에서 방송된 리얼스토리 눈에서 서세원이 그동안 아내를 폭행해 왔다는 사실이 CCTV를 통해 공개되었다. 영상을 보면 저항은커녕 몸도 못 가누고 쓰러진 서정희의 왼쪽 다리를 잡고 땅바닥에 질질 끌고 다니는 서세원의 모습이 공개되었다. 또한 서정희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서세원이 딸 또래의 내연녀와 외도를 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주장까지 하면서, 안 그래도 위의 사건들로 인해 추락하던 서세원의 이미지는 더 바닥까지 가고 있다. 게다가 증거가 담긴 CCTV까지 공개되었으니 빼도 박도 못하게끔 확인사살된 셈. 그 뒤 법원은 서정희에게 임시 보호 명령을 내렸다. #
둘의 결혼이 사실은 정상적인 결혼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리얼스토리 눈에서 밝혀졌는데, 당시 인기 개그맨으로 활동 중이던 서세원이 연예인이 되고 싶었던 고등학생 서정희를 연예인 시켜주겠다는 조건하에 지속적으로 성폭행했고 결국 서정희는 19살의 나이에 서세원의 아이를 임신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서세원과 결혼하게 되었다고 한다.[28] 아동 청소년 보호에 더욱 더 관심이 있는 2010년대 이후였다면 서세원은 미성년자 위력간음[29]으로 감옥에 들어갔을 것이다.
서세원이 양원경에게 "박현정이 더 성공하기 전에 붙잡으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붙잡으라는 말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리 로맨틱한 뜻의 단어가 아니었다. (자세한 것은 양원경 문서에서 확인.) 업계 관계자들은 암묵적으로 다 알고 있던 사실이었던 듯 하다.
2015년에 앞에서 서술한 폭행 관련 형사 소송에서 서정희는 충격적인 내막을 털어놨다. 증거 1, 증거 2. 서정희가 내세운 주장은 이렇다. "19살 때 서세원한테 강간을 당했는데, 그것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서세원과 결혼했다. 남편이 무서워서 이혼할 엄두조차 못 내고, 32년간 서세원에게 붙잡혀 살았다."
한 여성 월간지에서 인터뷰한 서정희는 "서세원이 목사가 되면 그래도 달라질 줄 알고 참았지만, 전혀 달라진 게 없더라"며 분노했다. 서정희 역시 전도사이자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서세원이 "그동안의 가정폭력과 사회 범죄 생활을 마감하고 새롭게 목사가 되어 살겠다"고 변명하여 마지막 기회로 여겨 교회까지 차리면서 같이 목회 활동을 한 것이었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사람은 변하기 어렵다는 말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2014년 8월 사문서 위조 혐의로 피소됐다. # 검찰은 서정희 폭행혐의 대해 서세원을 불구속 기소했다. # 2015년 5월, 재판부는 서세원에 대해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
상황이 이 지경이 되자 1990년대 과거 영상들이 새삼 주목 받게 되었다. 아내인 서정희가 어색해하고 불안해하는 방송 출연 장면들이나 "신혼 때는 말 잘 듣더니 요즘엔 안 지려고 한다"는 등의 서세원의 농담이 매우 의미심장하게 이해되며, "가정에서 줄곧 권위주의적이었다"는 자녀들의 폭로 등이 이어졌다. #, #
2015년 8월 21일, 합의 이혼했다. 법정에는 서정희 측은 서정희 본인, 서정희 측 변호사가 모두 참석한 반면, 서세원 측은 서세원 측 변호사만 참석했다. 재산 문제가 깔끔하게 해결되면서 서세원 부부는 장장 32년 만에 드디어 가족에서 남이 되었다. 이 법정에서 서정희의 표정이 의미심장했는데, 마치 오랜 기간 동안 붙잡혀 있다가 석방된 전쟁포로와도 같았으니...
이혼 후 서정희는 전 남편 서세원에 대한 입장을 모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가 있다. 서정희 단독인터뷰 "서세원, 이젠 완전히 용서했다"
[1] 그나마 <납자루떼>를 말아먹은 건 이경규의 복수혈전처럼 본인 쇼에서도 자학개그 소재로 써먹을 만큼 별 것 아닌 일이었고, 나중엔 패널들이 서세원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서세원쇼나 세상만사)에 찾아와 이걸 언급할 정도였다. 배우들과 일부 개그맨들이 "제가 그때 섭외 요청 받았던 영화가 납자루떼였..."이라고 하자마자 서세원이 화를 내며 "납자루떼 하지 마! 하지 말라고!"라고 소리 치는 기믹. 참고로 이 영화의 주제가를 불렀던 사람이 바로 이수만이다.[2] 감독은 아니다. 영화를 감독한 것은 조진규라는 감독.[3] 525만명 설은 논란이 있다.[4] 게스트의 흑역사나 약점 등을 붙잡고 늘어져서 당사자를 철저하게 바보로 만들고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웃는다.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이지메 코메디다.[5] 김남일이 손수 출연한 것으로 와전되는 경우도 있는데, 진짜로 실제로는 두 선수의 부모가 출연하였다. 선수들은 같은 날인 6월 25일 치러진 한독전 경기에 출전 중이었다. 방송 시기가 아닌 촬영 시기로 보아도 이미 한창 경기 준비에 여념이 없을 시기라서 특정 경기를 앞둔 대표팀 선수가 TV 프로에나 나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6] 이는 긴급조치 19호에 대한 것이라는 이야기와 조폭 마누라라는 이야기가 공존한다. 아니면 둘 다 했을지도 모른다.[7] 조폭의 자금을 돈세탁해준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조세포탈 및 배임증죄 혐의. 훗날 알려지기로는 이 시기에 실제 조폭 자금이 한국 영화에 많이 유입됐다고 한다.[8] 사실 조폭 마누라의 성공도 서세원의 방송계 쪽 인맥빨이 제법 크게 작용한 것인데, 영화계 쪽에서 볼 때 이런 행위는 같은 시기 개봉한 경쟁작들에 대한 상도의에 어긋난 짓이었다. 또한 한국 영화의 발전에 <조폭 마누라> 같은 질 낮은 영화의 성공은 악재가 될 것이라는 인식 또한 존재했다. 우려대로 <조폭 마누라>의 성공 이후엔 고만고만한 조폭 코미디들이 극장가를 휩쓸었다.[9] 명목은 허리디스크 악화로 인한 수술의 필요성이었지만, 사실은 여권이 만료되고 국제형사경찰기구에 수배 중인 상황이었기 때문이다.[10] 당시 병상에 누운 상태로 귀국하는 모습이었으나, 이마저도 동정표를 얻으려는 행동으로 보는 사람도 있었다. 당시 뉴스보도[11] 같은 시기 이수만 역시 비슷하게 연예계에서 일으킨 횡령 사건으로 인터폴에 수배되고 귀국했다.[12] 구속되어서 구치소에 들어간 지 20일 만에 보석으로 일단 석방됐다. 이후 중국으로 건너가서 도마 안중근을 찍었다.[13] 요즘 영화는 평타만 쳐도 자리 500개짜리 극장을 10번 정도는 채워준다. 즉, 488명이면 상영관 갯수는 고사하고 상영관을 단 한 번도 꽉 채울 수가 없다는 얘기다.[14] 2010년 영화 표값 평균 7851원. #[15] 원래는 안수집사였다.[16] 그런데 방송에 나와서 교회 홍보를 지나치게 많이 했다가 역시 죽도록 까였다.[17] 처음 목사가 되길 권유한 것은 놀랍게도 전처 서정희였는데, 권유한 이유가 목사가 되면 인성적인 문제가 해결될 것 같다는 생각 때문. 하지만 오히려 역효과만 났다.[18] 중반부부터는 한국 개신교 목사들의 문제점을 다수 거론하면서 이들의 부패상을 지적한다. 여기서 훗날 커다란 논란의 중심이 된 전광훈 목사가 거론되는 것이 몹시 의미심장하다.[19] 본래 정신 똑바로 박힌 크리스천들은 자칫하면 "나 방언 받음! 부럽지?"라는 의미로 들릴 수 있기 때문에, 정말 기도에 몰입해서 바깥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를 정도 빼고는 방언을 크게 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게다가 성경에서도 방언은 자신의 영혼이 하나님과 직통으로 소통하는 기도이며 이는 개인의 덕을 세우는 기도이지, 남에게 덕을 베풀고자 한다면 예언의 은사가 필요하며 방언 통역의 은사가 존재함을 명시하고 있다. 방언은 방언을 하는 본인조차도 통역의 은사가 없다면 알아듣지 못하므로 교회를 위해서는 육성 기도나 예언, 통역을 하는 게 맞다는 거다. 그러니까 남을 위한 기도를 하는 때에 자기도 못 알아듣는 하나님과 비밀 얘기를 하는 기도를 했단 얘기다. 기독교 외적인 관점으로는 서세원 자체가 개그계에서 20년간 말빨만으로도 개그계와 방송 진행계에서 탑을 찍었다 소리를 들었을 만큼 선천적으로 말빨이 엄청 센 사람이라, 일부러 그냥 생각나는 대로 즉흥적으로 미친 듯이 떠들고 나서 그게 방언이라고 우기고도 남을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어서 진짜 방언인지 말발인지 의심이 갈 수 있다는 것도 문제다.[20] 다만 장소가 장소이고, 본인도 그 발언을 한 후 김구나 김대중, 노무현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도 다 찍을 것이라는 발언을 한 것으로 보아 영화 감독을 맡은 것은 개인적 성향이라기보다는 그냥 본인의 과거 영광을 되찾는 것이 목표인 듯하고 해당 심포지움에서 한 발언은 그냥 립 서비스인 듯하다. 게다가 서세원은 의외로 진보 성향의 기자인 주진우하고도 친분이 깊은 사이.[21] 하지만 후술할 여러 발언을 봤을 때 거의 립 서비스 수준의 말일 가능성이 높다. 과연 후손들이 고인들에 대한 영화 제작을 허락했을 지도 의문.[22] 심지어 서세원은 안중근 의사를 서부 총잡이로 왜곡한 도마 안중근이라는 괴작을 만든 일이 있었다.[23] '건국대통령 이승만 영화 제작 추진위원회'의 추진위원장이었고, 서세원을 목사의 길로 인도했던 인물이기도 하다.[24] 우연의 일치인지 훗날 폭로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이창동 감독과 배우 송강호의 이름이 수록되어 있다.[25] 심형래는 적어도 자신의 영화를 정치적, 종교적 문제에까지 연결하지는 않았다.[26] 안중근과 이승만의 차이점이라면 안중근이 일제강점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죽었고 현재까지도 긍정적인 이미지 일색인 반면, 이승만은 8.15 광복 이후에도 계속 살면서 천수를 누렸고 독립운동가로서는 높이 평가 받지만 광복 후 반민특위를 강제 해산하여 친일반민족행위자 청산을 방해했고, 일민주의라는 유사 파시즘을 내세워 무지막지한 학살을 저질렀고, 6.25 전쟁이 터지자 방송에 대고 거짓말을 하고서는 빤스런을 했고, 종전 후에는 장기집권을 위해 사사오입 개헌과 3.15 부정선거 등등 온갖 편법을 쓰다가 결국은 4.19 혁명이 일어나 쫓겨나는 등, 말년의 독재 행각 탓에 현재까지도 호불호가 극과 극으로 갈리는 인물이라는 것이다.[27] 인터뷰어 중 전광훈 목사의 자유통일당 소속 류석춘이 있다.[28] 참고로 본관은 서로 달랐는데 서세원은 달성 서씨, 서정희는 이천 서씨였다고 한다. 그나마 결혼은 가능했던 조건. 하지만 이천 서씨에서 분관한 성이 달성 서씨라 족보에서 서로 멀지만도 않다. 참고로 과거에는 같은 성씨끼리는 본관이 같으면 결혼 불가였지만, 21세기부터는 법이 바뀌어서 본관이든 성씨든 결혼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29] 형법 제302조(미성년자 등에 대한 간음) 미성년자 또는 심신미약자에 대하여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간음 또는 추행을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