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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02:44

설민석/논란 및 사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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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전문성 논란
2.1. 전공 관련2.2. 단편적인 해석 및 오류, 포퓰리즘적 경향
3. 사실 오류 및 왜곡 논란
3.1.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 논란
3.1.1. 나치 독일편 관련3.1.2. 이집트편 관련3.1.3. 일본 전쟁 범죄 편 관련
3.2. 민족대표 33인 룸살롱 발언 / 주옥경 열사 비하3.3. 5.16 군사정변 혁명 발언3.4. 히틀러 영상 노무현 합성물 사용 논란3.5. 《설민석의 삼국지》 오류3.6. 음악 장르까지 진출한 오류3.7. 그 외의 왜곡·오류 사례
4. 석사 논문 표절 사건

1. 개요

설민석의 논란 및 사건 사고를 정리한 문서.

2. 전문성 논란

설민석의 논란과 문제는 전문가의 자격 논란과 지식 수준으로 요약되는데, 근본적으로 학문에 대한 접근 방식이 가볍기 그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이는 설민석 본인과 이미 여러 차례 같은 문제를 일으킨 방송사 제작진의 공통된 책임이다.

논란이 된 대다수의 오류들이 구글링으로도 사실 확인이 되는 수준이다.

2.1. 전공 관련

설민석은 널리 알려진대로 학부전공이 연극영화과이고, 교육대학원에서 역사교육을 공부한 전공자다. 그런데 교육대학원의 교과교육 전공은 원래 그 교과의 현직 교사가 재교육을 위해 진학하거나, 아니면 학부 졸업생이 자신이 전공한 분야의 중등교육 교과목을 학교에서 가르치는 데에 필요한 교원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진학하는 곳으로, 그렇게 학부 수준의 전공과목을 1회 이상 복습 완료한 전공자들이 학부 레벨에서의 내용을 간단히 복습한 후 이를 교과교육에 어떻게 써먹을지를 논하는 교과교육론과 교육학으로 커리큘럼이 구성되어 있다.[1]

게다가 특수대학원들이 으레 그렇듯이 수업도 과목당 1주일에 80분만 하는 등, 학부 사범대학 수업보다도 밀도를 낮춰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학부에서 역사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가서 교육대학원 수업을 듣는 것만으로는 역사 전문가 수준의 역량을 기르기 어렵다. 일반대학원도 아니고 특수대학원인 교육대학원의 5학기짜리 커리큘럼은, 교육대학원의 과목당 수업 시수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밥 먹고 공부만 하며, 임용시험 합격을 지상의 목표로 삼는 사범대학 역사교육과의 8학기짜리 학부과정보다도 학습의 강도가 낮은 수준이다.

그 때문에 교육대학원 입학 당시의 설민석과 같은 '비전공자'는 교육대학원에 입학하여 해당 교과교육 석사학위를 취득한다고 해도 교원 자격증 취득이 불가능하며,[2] 자기가 학부에서 전공하지 않은 분야로는 학비가 비싸디 비싼데 교원 자격증조차 받지 못할 교육대학원 입학을 시도하지도 않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이런 설민석과 같은 '비전공' 교육대학원생의 경우는 교육대학원을 준비하면서 미리 편입이나 복수전공, 여의치 않으면 학점은행제독학학위제 등의 수단으로라도 해당 전공과목의 학위를 따거나 최소한 입시요강에서 (보통 36학점 이상으로) 요구하는 만큼은 학점을 이수한 뒤 교육대학원 원서를 쓸 때부터 교원 자격증 취득을 희망한다고 적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실제로 이런 식으로 교원 자격증을 취득하는 인원은 역사교육 외에도 중등교육과정의 주요 3과목인 국어, 영어, 수학을 비롯한 다양한 과목에 걸쳐 매년 적잖이 배출되며, 그들 대부분은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임고생이나 설민석과 같은 사교육계 종사자들이고 그들 중 설민석처럼 사교육계에서 스타 강사로 발돋움하는 이도 여럿이 있다. 본 위키의 교육대학원 문서에서 출신 인물 목록만 봐도 대부분 사교육계의 스타 강사들이다. 교육대학원 학생들끼리 서로 '선생님'이라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

그러나 이런 졸업생들은 학부에서의 역사 전공과목 이수 이력이 알려진 바 없는 설민석과 달리 사교육 업계에서 수강생들에게 공개하는 프로필이나 구직활동시 제출하는 이력서에서 2급 정교사라는 타이틀을 걸어놓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교육대학원을 다녔거나 준비하는 사람들은 교육대학원에 입학할 때는 이렇게 학부 전공과 일치하는 교과교육 전공으로 입학하고 교육실습 과정을 포함한 5학기에 걸쳐 투자함으로써) 교원 자격증을 받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다보니 자신들의 경험에 비추어 설민석 또한 연극영화과 전공 외에 따로 학사편입이나 시간제 학점이수를 거쳐 교육대학원에 가고 교원자격증을 땄을 거라고 지레짐작하는 경향마저 있지만, 설민석의 이력에서 그런 사항은 명확히 알려진 바 없다.

독학학위제는 아예 사학 전공이 없으며, 학점은행제 역시 현실적으로 미술사 같은 극히 일부 과목만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통해 사학 전공의 전공학점을 30학점 넘게 채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위의 설명은 역사교육 전공으로 입학한 설민석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 또한 학사편입을 해서 사학과를 나왔다면 역사 강사로서의 자격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공개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데, 그러지 않았다.[3]

그러므로 설민석은 어쨌건 역사교육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므로 형식적으로는 아예 비전공자로 보기는 어려우나, 실질적으로 학부 과정에서 사학 및 역사교육 전공을 이수하며 단련된 전공자들에 준하는 역량을 갖추었는지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할 여지는 있다. 이에 대하여 사학과 교수 중에서 학부 때 다른 전공을 한 사람도 많으니 설민석 또한 문제될 것은 없다는 옹호론이 있으나, 그런 타전공 출신 교수들도 대개 일반대학원 사학과에 진학해서 오랜기간 연구해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거나,[4] 아니면 인접학문의 학과에서 법제사, 정치사, 경제사, 사회사, 문화사, 외교사, 교육사, 철학사, 역사교육학 등 역사 관련 학제간 연구로써 학위를 취득한 케이스이므로[5] 설민석의 경우와는 다르다.

학원 업계에는 '특수대학원을 통한 (본인 강의 분야로의) 학력 세탁'은 종종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쪽 업계는 해당 학문의 깊은 전문성보다는 강의력 좋고 학생들 잘 다루며 수능 동향 파악 더 잘 하는 강사가 필요한 업계라고 봐야 한다. 설민석의 전공 문제는 그가 계속 수능 강사로만 머물렀으면 이렇게까지 논란이 되지 않았을 수 있다. 수능의 문제풀이는 대학생이 과외를 해도 어느 정도 가르칠 수 있는 수준으로, 해당 학문에 대한 탐구와 사료조사보다는 정해진 교과서 내에서 답을 명확하게 찾아내는 방법을 가르치는 일이다. 교과서 밖의 역사까지 연구하고 조사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수능을 넘어 TV에 나오고 대중 앞에서 고등학교 교과서 이상의 내용을 소재로 강연을 하는데 캐보니까 사실관계도 불분명한 강의가 수두룩한 와중에 학부 전공자도 아니고 심지어 석사 논문은 표절이라는 것에서 문제가 시작한다.

따라서 그의 전공 문제가 논란이 되는 이유는 단순히 역사 전공을 하지 않았다는 것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거기서부터 붙기 시작하는 의문부호가 사실상 아래의 여러 비판 단락에까지 큰 줄기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한 사람의 역량을 평가하는데에 그가 관련 전공을 했느냐 안했느냐 하는 문제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부차적인 사항이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비전공자라 할지라도 상당한 경력 또는 실력을 갖춘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전공자들에게까지 존경을 받는 전문가로 대우받는 경우도 있다. 아마추어로서 학계에 크게 공헌했던 인물로는 아마추어 고생물학자 그레고리 폴이 유명하다. 이외에도 동물, 식물, 버섯들을 다루는 생물학계에서는 마니아들과 학자들의 협업이 많이 일어나는 편으로 학자들의 논문에 마니아들이 찍은 사진들을 게시하거나 같이 생태 탐사를 가기도 한다. 또한 학자들은 비전문가 생물 유튜버들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며 적극적으로 정보를 제공한다.

그러나 설민석이 활동한 업계는 역사학, 즉 학계이다. 학계는 어느 대학에서 어느 교수에게 어느 정도 전문성 있는 교육을 받았는지, 그 사실 자체가 곧 그 사람의 경쟁력과 전문성을 나타낸다. 설민석은 정통 역사 전문가라기보다 강의를 잘 하는 것으로 인기를 얻은 사람인데, 이런 사람에게 세계사의 그랜드 마스터 따위의 명칭까지 붙여대며 방송에 대거 출연시킨 시점부터 발언의 공적영향력이 상당한 인물이 역사적으로 논란의 소지가 있는 발언을 연쇄적으로 이어간 것에서부터 논란의 싹이 튼 것이다.

2.2. 단편적인 해석 및 오류, 포퓰리즘적 경향

역사적 사실을 단순화하고 왜곡하거나 엉뚱하게 설명하는 경우가 있고, 강의 내용을 사전에 검토하지 않았다가 잘못 말한 적도 여러 번이다. 인터넷에 돌아다닐 법한 낭설을 진짜처럼 말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심지어 전문가 자문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엉터리 방송을 내보내는 경우가 있다. 대략 1990~2000년대쯤의 역사적 통념에 MSG를 가미해서 전달하는 식인데, 학자가 아니니 독자적인 연구까진 바랄 수 없지만 선행 연구 검토조차 안 하는 건 문제라는 시각이 대두되는 중. 게다가 내용의 적절함과는 무관하게 말솜씨를 앞세운 전달력이 좋아서, 사학이 상대적으로 낯설 수 있는 문외한 대중들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쉽게 말하자면 <먼나라 이웃나라>를 비롯한 이원복 학습만화가 비판받는 점들과 비슷한 셈.

게다가 많은 이들이 수능이나 공무원 시험 준비를 위해 그의 강의를 듣다 보니 친숙해져서 실더가 많아진 것도 문제. 강의력과는 별개로, 사실 관계에서 틀리는 건 분명히 비판받아야 할 점이다. 수능이나 공무원 시험 위주의 강의는 국사 교과서에서 나온 내용만 제대로 전달 해주어도 논란이 일어날 거리가 없어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고, 시험문제 이의신청할 때도 문제지문의 오류가 교과서와 어긋 나는 경우 이의 신청을 받아주는 경우가 많다. 방송에서 주된 논란이 많았던 이유는 교과서 밖의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하면서 벌어진 일들이다.

결국 설민석 강의로 역사를 배운 사람이 가짜뉴스나 루머를 믿듯 이상한 주장을 하다 망신당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이 점에서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 관계를 무시한다는 점에서 역사 선생 자격이 없다는 말도 많이 나온다. 문제는 앞서 이야기한 실드들이 "역사에서 사실관계는 중요하지 않다"라는 주장을 양산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주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일 뿐이며 해석의 각자의 몫이다"라는 주장을 펼치며 설민석의 해석을 옹호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주장하면서도 정작 실더 본인들은 설민석의 해석이 아닌 다른 사람의 해석에 대해서는 역사왜곡이라고 비난하고 있다.[6] 역사 커뮤니티에서도 이젠 포기했는지 강사는 비즈니스적인 관계일뿐 스승이나 전문가로 봐선 안 된다는 의견이 압도적인 주류를 차지했다.

그리고 포퓰리즘적 경향이 있다는 비판이 있는데, 정확하게는 흥미를 끌기 쉽도록 대중의 선호를 받는 자극적인 내용 위주로 말한다고 보는 게 적절하다. 유명한 EBS 간도 강의때도 마찬가지고 민족주의 사관이 들어간 말을 꽤 하는 편이지만, 3.1 운동의 민족대표 33인 비하 논란에서는 그 반대의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김구에 대해서는 민족주의 사관이 들어간 잘못된 사실을 강의하였다. 당시 시대적 흐름에 따라 대중이 원하는 것을 따라 말하는, 다시 말하면 사학 전공자라기보다는 연예인같이 보이는 포퓰리즘적 성격이 강하다. 광해군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 역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영화 광해와 연관이 있어보인다.

뿐만 아니라 역사를 학문적 분석이 아니라 감성 중심의 해석을 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자신이 역사 부문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뮤지컬 명성황후를 보고 감명을 받은 것이라고 설명한 것도 이러한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중전 민씨가 역사상으로 많은 잘못을 저지른 인물이지만, 단지 일본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대중적인 동정을 받고, 항일과 애국의 화신처럼 과분하게 미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2020년 12월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 방송이 비판을 받으면서 이 문제가 크게 불거지고 본인이 직접 사과하게 되었다.

3. 사실 오류 및 왜곡 논란

3.1.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 논란

사실 이전부터 설민석의 전문성과 정확성 논란은 많았다. 하지만 역사 전문가나 역덕들 사이에서나 논란이 되었지 대중들에게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고, 오히려 설민석은 더 많은 방송에 출연하고 더 많은 책을 출판하는 등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역덕들 중에서 특히 팬층이 두터운 제2차 세계 대전, 고대 로마, 삼국지 시대를 잘못 건드리면서 그 논란도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된다.

하나의 사건을 가지고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게 아니고 흥미와 자극적인 요소들로만 이루진 사건들로 구성을 했다. 문제는 같이 참여하는 제작진들도 시청률에 얽매여 서로 보완해 주지 못할 망정 무엇이 문제인지 모른다는 점이다. 우려되는건 현대사에서 사건의 흐름에 대한 배경설명이 중요한데 생각보다 너무 빈약한 편인데다 편집 때문인지 빠진 부분도 너무 많다. 논란이 된 소재부터 MBC "신비한TV 서프라이즈" 수준의 조악함을 보여주었다. 유대인 비누, 레벤스보른(아기 공장) 모두 "서프라이즈" 소재였으니 정말 아류작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

황교익 논란, 그외 숱한 쇼닥터와 마찬가지로 방송국은 전문성과 정확성보다 흥행성, 대중성, 편의성만 따진다는 또 하나의 사례로 남았다. 제작총괄인 김형오 PD가 "렛츠고 시간탐험대"를 연출한 역사 덕후인데 의외인 점이다.

3.1.1. 나치 독일편 관련

1회 히틀러 편에서 제2차 세계대전 도발 등 히틀러의 실정 전반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유대인 학살에만 너무 치중했고, 너무 잔혹한 내용에 초점을 맞춰 선정적으로 다루지 않았느냐는 비판이 있다. 첫회부터 흥미와 자극에 매몰된 프로그램 제작진의 패착을 여실히 보여주었다는 것.

한마디로 역사도 아닌 미스터리 블로그 수준의 총체적 난국을 보여주었다.

3.1.2. 이집트편 관련

3.1.3. 일본 전쟁 범죄 편 관련

3.2. 민족대표 33인 룸살롱 발언 / 주옥경 열사 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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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그는 저서와 강의 중에서 "3.1 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이 '룸살롱'인 태화관링크에서 낮술을 마셨고 손병희는 마담 주옥경과 사귀었다."라는 발언을 한 적 있다. 링크 게다가, 민족대표 33인은 대부분 친일로 변절했다고까지 하였다. 링크 이 일로 인해 '3·1운동 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설민석 측에 발언 내용 시정과 사과를 요구하는 공개 질의서를 띄웠다. 추진회는 첫째로 "민족대표들의 회합장소에 대한 폄하를 바탕으로 민족대표의 역할을 축소하고, 그분들을 비난하기 위해 왜곡한 것"이라며 "태화관이 ‘요릿집’이었다고 해서, 거사의 의의가 축소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둘째로 주옥경 열사는 손병희 선생의 부인으로 민족대표들 간의 연락과 안내를 맡은 분이며 독립선언의 주역인데 이를 마담으로 폄하하였다는 비판을 했다. 천도교 여성회 역시 주옥경 여사는 3.1운동 3년 전에 손병희와 결혼해 태화관에 업무한 것도 아닌데 모욕적 허위사실을 나열한 설민석의 의도가 의심스럽다며 비판했다. 실제로 주옥경은 당시 천도교 여성들의 사회운동단체인 내수단을 조직한 여성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 출신의 인물로 민족대표 33인이 만난 당시에 태화관에서 업무를 한 것이 아니라 이들을 모은 역할을 했다.

이 일로 인해 민족대표 유족들은 진실을 왜곡했다면서 설민석을 상대로 사자명예훼손죄로 고소했다. 하지만 조사 결과 검찰은 "룸살롱과 마담은 현대식 표현으로 말한 것이며, 낮술 운운한 것은 다소 과장되어 말한 것이므로, 고의성이 없다"라는 이유로 고소를 기각했다. 그 후 2018년 11월 14일 민족대표 33인 유족회에서 설 강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해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25부(부장판사 이동욱)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2017가 합 526348). 유족회 측은 "설 씨가 지난 2014년 민족대표 33인에 대한 명예를 훼손했다"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당시 상황을 기술한 일부 역사서 중에선 당시 민족대표들의 처신에 대해 일부 비판적 관점을 가진 경우도 있어서 그런 취지 발언이 설민석만의 독자적 역사 인식이라고 단정 짓기도 어려운 만큼 부득이 허용할 수밖에 없는 범위 내에 있다는 것이라고 판단을 하지만, 민족대표들이 1920년대 대부분 친일로 돌아서게 된다고 언급한 데 대해선 명예훼손이라고 보았다.

당시 33인 중 3명을 제외하곤 3.1운동 가담으로 인해 옥고를 치렀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각자 나름대로 독립운동을 펼쳐 나갔거나 적어도 친일반민족 행위라고 평가할 만한 행위는 하지 않았다. 거사 당일 이완용 단골집인 룸살롱에 갔다고 표현하는 등 새롭게 건설한 대한민국으로부터 건국훈장까지 추서, 수여받은 인물에 대해 심히 모욕적 언사로서 필요 이상으로 경멸, 비하 내지 조롱하는 등 역사에 대한 정당한 비평의 범위를 일탈해 그 후손들이 선조에게 품은 합당한 경외, 추모 감정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지적하였다.

재판부는 설 강사가 손 아들에게는 200만 원, 손자에게 150만 원, 증손자에게 100만 원, 현손자(증손자의 아들)에게 50만 원, 그 밖의 민족대표 유족들에게 위자료를 1인당 25~100만 원으로 해서 총 1,4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하였다. 링크 정확하게 이 판결은 형사가 아닌 민사이며, 형사건은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어쨌든 재판부가 설민석에게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한 것은 33인의 행동에 대한 비판 문제가 아니라, '이완용의 단골집인 룸살롱에 갔다.', '술에 취해 난동을 부렸다.', '33인 대부분이 친일파로 돌아선다' 등 과격하거나 과장하여 표현한 부분을 명예훼손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3.3. 5.16 군사정변 혁명 발언

2020년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방송에서 5.16 군사정변을 군사정변과 군사혁명을 혼용해서 사용해 논란이 되었다. 예전 국정 교과서에서는 당시 박정희 정권의 영향으로 군사혁명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고, 그때 배운 사람들은 아직도 그 이미지가 남아 있어서 군사혁명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기도 하지만 최소한 강의를 하는 입장에서는 혁명, 정변, 운동, 쿠데타 등에 대한 용어 정의는 학생들이 많이 보고 듣는 만큼 교과서를 기준으로 최소한 정확하게 사용했어야 하는 게 맞는 말이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서술이 자주 바뀌는 단어들이기에 설민석이 제대로 접근하기 힘들었을 수도 있지만, 5.16 군사정변은 엄연히 군사정변이라는 정식 명칭이 존재한다. 군사혁명이라는 용칭은 이미 학계, 교과서에서 대개 쓰이지 않으며 현재 중·고등 교과서에는 군사정변으로만 표현되어 있다. 이는 네이버 정도에 검색만 해봐도 나오는 내용이다.

3.4. 히틀러 영상 노무현 합성물 사용 논란

히틀러에 대해 다룬 영상에서 과거 히틀러가 연설하는 장면을 사용했는데, 이 영상이 노무현 대통령의 목소리가 들어간 합성물이라는 것이 밝혀져 논란이 되었다. 해당영상

설민석 채널의 원본영상에서는 현재 해당 부분을 삭제하고 재업로드하였다.

3.5. 《설민석의 삼국지》 오류

3.6. 음악 장르까지 진출한 오류

전술했듯이 설민석의 역사 사실 오류는 이미 차고 넘친다. 이번 오류의 문제는 이러한 안일한 접근이 여타 비전공 역덕, 사이비 전문가처럼 전문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경계를 초월해 "입담"으로 넘나들다가 그 바닥을 드러냈다는데 있다.

2020년 12월 자신의 유튜브 영상[삭제됨]에서 노동요 이야기를 하다가, 재즈, R&B, 힙합에 대한 설명으로 넘어가는데 그 설명들이 하나같이 허위사실에 가까워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닌 음악의 역사를 공부해온 것이지만, 대체 어디서 공부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틀린 설명들이 많다.

"흑인 음악이 기반인 재즈가 백인이 즐기는 백인 음악으로 진화하자, 흑인들이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르네상스를 일으킨게 R&B다"라고 설명을 했는데, 이에 대해 음악 평론가들이 일제히 비판에 나섰다. 유튜버 '재즈기자'는 기자 출신으로서 재즈계 소식을 다루고 플레이리스트 영상을 올리는 채널로, 2021년 기준으로 10만 이상의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유튜버인데 "남부의 흑인들이 대거 북부로 이주하는 과정(The Great Migration)에서 정통 블루스가 북부의 대도시에 유입됨에 따라 '리듬앤블루스'로 지칭되게 되었고, 여기에 재즈의 흑인다움의 상실이나 백인의 개입에 의한 맥락은 없다"고 댓글로 이의를 제기했고,# 뒤이어 배순탁 작가가 "재즈, 블루스, 일렉트릭 블루스, R&B, 초기 로큰롤에 대한 역사를 다룬 원서 한 권이라도 읽었다면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는 할 수가 없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재즈피플의 김광현 편집장은 "원초적 블루스들이 흑인이 모여 있는 대도시에서 불붙어 좀 더 춤곡으로 정리된 게 R&B"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힙합에 대한 설명도 너무 단편적이었는데, 힙합을 단순히 사회 비판적인 음악 장르로 치부했다. 하지만 힙합 최초 싱글로 평가받는 Rapper's Delight가 보여주듯 힙합의 시초는 클럽 음악이다. 이 역사가 이어지면서 랩을 하는 사람들 중에 사회 비판 가사를 쓰는 사람이 있어왔고, 이런 랩을 컨셔스 랩(conscious rap) 내지는 폴리티컬 랩(political rap)으로 보통 일컬어진다. 한국에 힙합이 들어오던 1990년대 말에 미국에서 컨셔스 랩이 유행했었고, 이 영향으로 한국에서도 컨셔스 랩을 하는 래퍼들이 많았던 것이 사실로 MC 스나이퍼나 DJ DOC, 싸이 등이 이에 해당된다. 그러나 이미 컨셔스 랩이 한국에서조차 주류가 아니게 된 지는 2020년 기준 거의 10년이 됐다. 보통 2011년 일리네어의 등장부터가 컨셔스 랩 하향기의 시작으로 평가한다.

이러한 사실에 대한 무지로 역사적 사실과도 맞지 않은 설명을 해놓고, 한국에도 힙합이 있었다며 사설시조와 연결 짓는 소리는 덤. 의도를 굳이 파악해보자면 어느 나라나 사회적 약자들이 강자를 풍자하고 반항의식을 지닌 노래나 시를 만들어 내는 것은 당연히 일어나는 일이고, 시/노래에 운율과 라임이 있는 것 또한 지극히 당연한 소리다. 이 부분은 그런 의도로 한 말이라고 이해해 볼 수 있겠지만, 문제는 썸네일부터 "국힙의 시작은 선덕여왕 때?"라며 황당한 어그로를 끌어버린 것. 일부 겹치는 속성이 있다고 할지라도 사설시조와 힙합을 저렇게까지 동치하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장르에서 나타나는 큰 특징들을 간과한 채 어느 나라, 어느 음악에서나 모두 찾아볼 수 있는 특성만 가지고 둘을 비교했기 때문. 이렇게 비교하자면 사설시조는 락도 될 수 있고 팝도 될 수 있다. 심지어 이번 영상은 사과문을 올린지 며칠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올린 것이었고, 지적 후 별다른 해명없이 바로 영상을 비공개 처리했다.

3.7. 그 외의 왜곡·오류 사례

파일:themanwhotellhistory.jpg* 그의 저서 '역사 읽어주는 남자'에서 주지육림(酒池肉林)을 '땅에는 술, 숲에는 고기'라고 해석했는데, 원래 의미는 '연못에는 술, 숲에는 고기'라는 뜻이다. 연못 지(池)와 땅 지(地)를 혼동한 것으로 보인다. 바로 위에서는 못을 정확하게 적었기 때문에 교열하는 중에 실수한 것으로 짐작된다.

4. 석사 논문 표절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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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래서 타 전공자가 교육대학원에 가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현직 교사가 직무 경력을 위해 진학하거나 사범대 학부 졸업자가 교육 분야 연구를 위해 지망하는 경우가 전부이다. 교육대학원은 특정 과목 교육에 필요한 전공 지식을 배양하는 곳이 아니라 이미 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어떠한 교육공학기법을 적용하여 지식을 전달할 것인가를 연구하는 곳이다.[2] 사범대학 학부와 달리 교육대학원은 사범대 출신자로 지원자가 한정되어 경쟁이 낮고, 대학원에서 교원자격증을 무제한으로 발급할 경우 자격증의 질적 수준이 저하되기 때문이다.[3] 마지막 가능성이 연극과를 주전공으로, 사학과를 복수전공하는 경우지만 이 역시 알 수가 없는 부분이다.[4] 일반대학원 사학전공은 여타 전공들 중에서도 학위취득기간이 매우 긴 전공으로 꼽힌다. 부지런히 준비만 한다면 2년(4학기) 안에는 논문이 통과되는 다른 전공과 달리, 사학전공은 빨라야 2년 반(5학기), 3-4년은 예사로 준비한다. 이는 사학전공이 참고해야 할 레퍼런스의 양이 방대함은 물론 공정성과 객관성을 위해 오래 검증하는 점, 필요에 따라 발굴조사나 답사까지 곁들여야 한다는 점이 포함된다.[5] 학부 전공을 대학원 사학과로 가져와 그 전공 분과의 역사를 연구하는 일은 드물지 않다. 단, 예외적으로 언어학사(언어학의 역사)와 문학사(문학의 역사)는 사학과에서 거의 다루지 않고 어문계열에서만 다룬다. 물론 아예 안 배우는 건 아니지만 가령 겐지모노가타리에 대해 배운다면 일문과에서는 겐지모노가타리의 역사적 배경과 흐름은 물론 그 속의 문학적 내용과 당시의 고전문법까지 역사, 언어, 문학을 총체적으로 배우지만 사학과에서는 '이 시대에는 이러이러한 사회상이 나타나면서 겐지모노가타리라는 것도 나왔습니다.' 수준에서 끝난다. 그래서 언어학사나 문학사를 연구하고싶은 학생은 사학과 대학원이 아니라 어문계 대학원을 가야 한다. 학부 사학과에서도 사회과학 및 철학이 아닌 어문계열의 역사학은 사학의 영역이 아닌 어문의 영역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해서 거의 다루지 않는 편이다. 이유는 언어학사와 문학사를 제외한 역사들은 사회적, 시대적 배경 그 자체가 그 분과에 영향을 주고 그것이 하나의 역사로서 전개되지만 언어학사와 문학사는 사회 및 시대 배경이 어학과 문학에 끼치는 영향이 아주 미미하고 그것이 하나의 역사라기보다는 언어적, 문학적 이론으로 굳어졌기 때문이다. 역사를 연구하다보면 사회과학과 철학은 역사가 끼치는 영향이 막대해서 좋든 싫든 공부하지 않을 수가 없으니 같이 한 묶음으로 공부하게 되지만 언어학과 문학은 시대 흐름과는 별개로 독립된 학문으로 발전해왔으니 어문이라는 별도의 학문을 다시 공부해야 하므로 사학 전공자보다는 어문 전공자가 공부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뜻. 그래서 국어학사와 국문학사가 궁금하면 역사교사가 아니라 국어교사를 찾아가야 한다. 성균관대학교 사학과에서 국어사 전공으로 학위를 받고 성대 사학과와 한국외대 한국어교육과에서 국어사를 가르치는 정재환 교수 같은 사례도 없지는 않지만 이건 정재환 교수가 국어사라는 분야를 국문과가 아닌 사학과에서, 국어학의 범주가 아닌 사학의 범주로서 직접 개척한 케이스이기 때문에 아주 드문 예외에 속한다.[6] 남의 역사왜곡은 욕하면서 설민석이 자행하는 역사왜곡에 대해서는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니, 설민석의 새로운 해석이니 하며 눈물의 똥꼬쇼를 한다.[7] 프란츠 폰 파펜이 히틀러와 나치를 무시하여 이용하려던 것이 그 때문이었다.[8] 모용의 경우 정사에서는 등장하지 않고 연의에만 등장한다. 모용선비의 귀화 성씨인 모용은 후한이 멸망한 후에야 등장했으므로 실제 삼국지 역사에서 모용씨가 등장하지는 않는다.[9] 공손씨는 공손찬공손연, 제갈씨는 제갈근제갈량 형제, 사마씨는 사마의, 사마사, 사마소 삼부자, 하후씨는 하후돈 & 하후연 등이 있다.[10] 태사자, 관구검, 순우경, 황보숭 등.[삭제됨] [12] 실제로 최태성과 같은 강사 및 교수들도 이를 언급하며 해당 유적지에 방문할 때 관광 가이드도 이러한 취지로 설명을 하는 등 왜곡된 낭설이 널리 퍼져있다. 물론 졸속으로 진행하여 결과적으로 문화제를 훼손하였다는 것 자체는 사실이다.[13] 각종 매체를 통해 총성이 매우 크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는 현대인들도 실제로 총성을 들어보면 소스라치게 놀라고 움츠러든다. 심지어 사격장에서 처음 총성을 들으면 몇 번 들었더라도 소리가 날때마다 무의식중에 움찔움찔 할 정도로 크다.[14] 전 문단에선 소련군이 이런 식으로 운용했다고 서술돼 있었는데, 독소전쟁 당시 소련군이 여러 명이서 소총 1정을 같이 썼다는 건 영화 에너미 엣 더 게이트 때문에 널리 퍼진 오해로, 소련군의 개인화기 지급률은 딱히 부족하지 않았고 자동화기 지급률은 오히려 독일군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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