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양현종에 관한 여담을 정리한 문서이다.2. 여담
2.1. 야구 관련
- 초등학생 시절 야구부가 급식을 먼저 먹는 게 부러워서 야구를 시작했다고 밝힌 적이 있다. 하지만 2024 시즌 종료 후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서 밝히길, 야구부를 해서 급식을 빨리 먹게 되어 좋았다라고 말한 것이 급식을 빨리 먹기 위해 야구를 시작한 것이라고 와전됐다고 한다.
- KIA 타이거즈의 새 야구장인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의 첫 등판 투수이자 승리 투수이다. 그리고 2017년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완봉승을 하면서 포스트시즌 1호 승리 투수 + 완봉승이라는 기록도 세우게 되었다.[1] 그리고 무등 야구장의 마지막 선발 투수이기도 했다.
- 2019년 시즌 초반 부진했을 당시에 양현종 선수가 관련 인터뷰를 진행하다가 혹사 등을 포함한 여러 논란이 발생한 적이 있다. 선배 투수와 비교하여 혹사 의혹을 부정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같은 인터뷰에서 외부인 간섭은 삼가달라고 이야기 했다가 여론이 안 좋아져 팬들에게 비난을 받았던 적 있다. 이 논란은 인터뷰 이후에도 부진이 이어짐에 따라 양현종에 대한 비난이 더욱 심해지는가 싶더니, 반등을 하고 역대급 투구를 선보이자 언제 그랬냐는 듯 모두가 비난을 멈추고 칭찬 일색이었다.
- 2008시즌 KIA 타이거즈가 센터 내야수를 보강하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할 때 두산 베어스에서 이대수를 제시하면서 양현종을 내놓으라고 한 적이 있었다. 당시 양현종은 부진했지만 젊고 2차 1라운드로 뽑은 핵심 유망주였기 때문에 당연히 KIA 타이거즈 프런트와 구단은 펄쩍 뛰며 거절하였다. 물론 두산이 꼭 이걸 성사시키려고 했다기보단 아쉬운 놈이 손해 봐야지란 마인드로 혹시나 해서 찔러본 거겠지만. 결국 윌슨 발데스라는 용병을 데려왔지만 이마저도 실패했고, 다음 해인 2009시즌에는 2루수는 당시 고졸 루키였던 안치홍이 노쇠화가 명확했던 김종국을 밀어내고 주전을 차지했고, 유격수는 3루를 보던 이현곤을 유격수로 돌려 해결했다. 1루수는 우주의 기운을 받은 최희섭이 완벽히 부활해 부진했던 이재주를 밀어내고 홍세완이 백업으로 활약해 메꾸게 되었다. 남은 3루수는 현대 유니콘스의 정성훈을 FA로 영입해 찬밥이 된 LG 트윈스의 김상현을 강철민과 트레이드하는, 김상현, 박기남 ↔ 강철민 트레이드로 수혈해오면서 메꾸게 되었다. 강철민 자체도 1998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 병역면제를 받고 계약금을 5억을 받을 정도로 유망주였기 때문에 KIA 타이거즈에서도 부상이 있고 현재 재활 중인데 괜찮겠냐?며 살짝 돌려 말했지만 LG 트윈스는 내야가 부족한 KIA 타이거즈 사정을 저격하듯 박기남까지 얹어주겠다는 제안을 해 트레이드 성사. 그리고 이후 결과는 다들 알다시피 탈쥐효과가 제대로 터져 사랑해요 LG. LG 트윈스/2009년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이 김상현, 박기남 ↔ 강철민 트레이드가 없었으면 KIA 타이거즈는 2009년 정규시즌과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후 일본에서 복귀한 이범호까지 영입해 한동안 내야 걱정은 사라졌다.
- 2017년 경기에서 급소를 맞은 적이 있다. 다행히 보호대를 착용해서 누구처럼 되진 않았다. 이닝이 끝나고 확인해 보니 타구가 강해 보호대가 찌그러질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양현종은 번거롭다고 보호대 착용을 하지 않는 후배들이 많다며 보호대 착용을 권장했다. 허나 이미 이때 양현종은 1남 1녀를 본 상태였다. 현재는 아들 하나를 더 출산해 2남 1녀를 두고 있다.
- 2017시즌부터 새롭게 선보인 얼터 유니폼(러브투게더 2번째 버전, 광복절 기념 유니폼, 홈 최종전 유니폼, 카네이션 유니폼) 첫 번째 이벤트 경기에서 모두 선발 투수로 나섰다. 그리고 해당 얼터 유니폼을 입고 나섰던 경기에서 첫 경기인 러브투게더 데이를 제외한 나머지 세 경기에서 내리 연승을 거두었다.
- KIA 팬덤 사이에서의 인기도는 그야말로 타 선수들과 비교불가능한 수준인데, 구단이 밝힌 2019년 유니폼 판매 순위에서 무려 3만장으로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다. 2위부터는 천 단위에서 노는 마당에 혼자서 자릿수가 다르다.
- KIA 타이거즈 유튜브에서 나온 인터뷰 영상에서 은퇴 후의 자신의 이미지가 정말 열심히 던지고, 지기 싫어하던 선수로 기억에 남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해당 인터뷰는 여태까지 양현종의 대외적 인터뷰들과는 다르게 양현종이 정말 편안하게 임한 것이 느껴진다. 양현종의 팬이거나 KIA팬이라면 꼭 한번 보도록 하자 영상[2]
- 경기 중 후배들에게 투구 관련 조언을 하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데이터 주의)전상현과 박준표에게 투구 조언을 하는 모습. 가장 많이 신경쓰는 후배는 김기훈인 듯.# ## 심지어 함평까지 가서 2군 투수 코치를 겸업하고 있는 장면까지 목격됐다.#
- 류현진, 김광현과 좌완 트로이카로 불리고 있는데, 류현진이야 당연히 김광현과 양현종보다 훨씬 우위라는 건 결론이 내려진 상태라 언제부터인가 김광현과 양현종이 류현진의 뒤를 잇는 2인자 자리를 놓고 경쟁하였다. 국내 기준으로 양현종이 10의 능력을 18경기만큼 보여줄 수 있다고 하면, 김광현은 15의 능력을 12경기만큼 보여줄 수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상위 리그인 메이저 리그에서는 이닝 소화를 강점으로 발휘할 수 없기에 실력의 격차로 인한 차이가 드러나면서 김광현의 우위로 끝났다.
- 이닝소화에 대한 책임감과 자부심이 상당하다. 예전부터 이닝을 많이 소화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왔고 실제로도 KBO 리그를 대표하는 이닝이터 중 한 명이 되었다. 이닝소화를 중요시하게 된 계기로는 팀의 사정 때문인 부분도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데 양현종이 KIA 타이거즈에서 우승을 두 번 하기는 했지만 그 외의 다른 시즌들은 전체적으로 중하위권에 가까웠다. 불펜이 약했던 적이 많기 때문에 중간계투들의 부담을 줄여주고 최대한 팀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이유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오히려 무리해서 이닝을 소화하려고 하다가 추가 실점을 하는 등, 이런 부분이 좋지 않게 작용할 때도 분명히 있긴 하다.
- 2019년 말 이광용의 옐카3에 출연해 상대하기 쉬워 팀에 오지 않았으면 하는 선수로 당시 NC의 나성범을 뽑았다. 해당영상 18:29~ 그러나 2022 시즌 나성범이 FA로 KIA로 이적하고, 양현종은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복귀함에 따라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반대로 까다로운 상대로는 SK의 김성현을 뽑았는데 프로에서의 상대 전적은 양현종이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타석에 들어서면 광주일고 시절의 모습이 떠올라서 그렇다고 한다.
- 홈런을 맞고 난 다음에는 대다수의 투수들처럼 날아가는 타구를 바라보지 않고 계속 포수 쪽을 바라보는 습관이 있다.
Cool Guys Don't Look At Explosions많은 이닝을 소화해야 하는 선발 투수로서 이미 맞은 건 어쩔 수 없고, 다음 타자와 새로 승부를 해야 하기 때문에 생긴 습관으로 보인다.
- 상징하는 등번호는 54번. 사실 프로 데뷔 후 처음 사용했던 등번호는 37번이었고 54번은 입단 동기인 포수 이준수가 사용했었으나, 이준수가 양현종보다 먼저 방출당하자[3] 친구의 몫까지 뛰겠다는 의미로 54번을 물려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54번으로 변경한 후로는 계속 54번만 사용하면서,[4] 본인이 거절하지 않는 이상 타이거즈의 차기 영구결번이 매우 유력한 번호가 되었다.
- 양현종이 귀국한 후 친하게 지내던 포수 호세 트레비노가 양현종의 2차 FA 계약 소식을 보고 한국에서 부자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 한국인 어머니를 두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 투수 데인 더닝의 집에 초대되어 식사를 같이 한 적이 있다, 같이 WBC에 출전하길 희망한다고 한다. 데인 더닝은 SNS로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며 양현종의 메이저 리그 데뷔를 축하해 준 바 있다.
- 미국에서 싸인볼을 수집해왔다. 텍사스 레인저스, 라운드 락 익스프레스의 모든 선수들은 물론, 원정길에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시카고 화이트삭스, 휴스턴 애스트로스 등 다른 팀 선수단의 싸인도 받았다고 한다. 추가로 아드리안 벨트레, 스즈키 이치로, 이반 로드리게스의 싸인까지 받았다고 한다. 이외에도 KBO 리빙 레전드들의 물품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는데 집에 있는 창고에 야구용품들이 엄청나게 쌓여있다고 한다.
- 팀이 좌완 투수를 많이 지명하면서 김기훈, 이의리, 최지민, 윤영철 등 후계자 후보가 늘어나고 있다.
- 2013년에 김상수에게 홈런을 맞고 옆구리 부상을 당한 뒤부터는 홈런성 타구를 맞으면 뒤를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얼음이 되는 습관이 있다.
- 평소 동료 선수들이 기록을 세우거나 축하해야 할 일이 있으면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축하를 해주는 편이다. 큰 통에 물을 잔뜩 담아서 뿌리는 게 기본이고 황동하가 데뷔 첫 승을 거뒀을 때는 하이드로펌프를 시전하기까지 했다. 그러다 KBO 리그 통산 최다 탈삼진 기록을 갱신했을 때에는 벼르고 있던 팀 동료들에게 역대급으로 뜨거운 축하를 받았다.
- 텍사스 레인저스 시절,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의 경기에서 투구를 하다 나로호를 발사한 적이 있는데 워낙 인상적인 투구라서 해야갤 계열 갤러리에서는 이러한 투구를 양현종의 별명인 붉은청룡을 줄인 '붉청'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서 부른다.
- 고등학교 1학년 때 미니홈피에 동성고 유니폼 사진을 올려두고 "2년 동안.... 이 유니폼 입고..... 롯데 유니폼으로 웃으면서.. 갈아입자.. 후회하지 않고.. ㅋ"라는 코멘트를 날린 바 있다. 당시 롯데 자이언츠가 구단 역사상 최악의 암흑기에 빠져 있었기에 1라운드 1순위로 지명받고 프로에 입단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공교롭게도 2006년에 롯데가 7위, KIA가 8위를 하면서 양현종은 2차 1라운드 1순위로 고향팀에 입단하게 된다.[5]
-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국내로 복귀한 후부터는 등판할 때마다 마우스 피스를 착용하고 등판하고 있다. 다만 꽤 불편하다고 하며 그래서인지 이닝이 종료될 때마다 마우스 피스를 입밖으로 꺼낸다. 팀 후배이자 본인의 후계자로 꼽히는 이의리에게도 등판할 때 마우스 피스를 해보라고 권했다고 한다. 2024시즌 중 제임스 네일이 타구를 맞고 턱관절 골절을 당한 뒤 한국시리즈 무대에 복귀하며 마우스피스를 착용하며 두려움을 떨쳐냈다고 말하기도 했다.
- 리그를 대표하는 삼상바로 유명하다. 대구 삼성전에는 특히 약한데 2024시즌 기준으로 통산 평균자책점 6.68에 7승 11패를 기록 중이다.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로 홈구장을 옮긴 뒤에는 평균자책점 6.99에 3승 6패로 더 좋지 않다. 본인이 인터뷰에서 밝히길,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 마운드에만 서면 타자와의 거리가 굉장히 멀게 느껴진다고 한다. 2024시즌에도 삼성 라이온즈 상대로 여전히 약하지만 어째서인지 등판한 경기의 팀 승패는 3승 1패로 좋은 편이다.
- 대구고등학교 야구부 출신 동명이인 내야수가 있다. 주 포지션은 3루수로, 2023년도 봉황대기에서 7경기 타율 20타수 10안타 17타점, 타율 0.500 출루율 0.607 장타율 0.900 OPS 1.507을 기록하며 최다 타점상과 대회 MVP를 수상했고, 2025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키움 히어로즈에 6라운드로 지명되었다. 2006년 생으로 양현종이 지명받은 년도 출생자이다.[6]
2.1.1. 김광현과의 라이벌리
2014시즌 부진에서 탈출한 후 동갑내기 좌완 에이스인 김광현과 라이벌리가 형성됐다. 두 투수 모두 상위 라운드에서 지명된 좌완 강속구 투수이며 소속팀의 유력한 영구결번 후보, 국가대표 에이스, 통산 160승 선발투수라는 등의 공통점이 있다. 2013시즌까지는 정규시즌 MVP에 국가대표 에이스이기까지 했던 김광현에 미치지 못했으나 김광현이 2011년부터 부상과 부진이 겹치고 양현종은 2014시즌 최동원 상을 수상하며 부활하면서 라이벌로 언급되기 시작했다.2007년~2013년까진 김광현의 압도적인 우위였다. [7]2007년에는 두 투수 모두 신인의 한계를 드러내며 다소 고전했지만 김광현은 2007년 한국시리즈에서 보여준 압도적인 투구로 먼저 앞서 나갔다. 이 기세를 바탕으로 김광현은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맹활약하며 군 문제까지 해결했고 정규시즌 MVP에 우승반지까지 획득한 반면, 양현종은 조범현의 양아들 소리를 들으며 마운드에서 불이나 지르고 홈런 맞은 뒤 덕아웃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2009년은 두 투수가 함께 잘했던 첫 시즌으로 김광현은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의 부진이 있었지만 ERA 타이틀을 획득하며 여전히 리그 최고의 선발투수였고 양현종은 팀의 3선발로 성장하며 타이거즈의 12년 만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크게 기여했으며 2010년에는 다승왕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2011년과 2012년은 두 투수에게 모두 힘겨운 해였다. 김광현은 뇌경색과 어깨 부상으로 커리어 로우 시즌을 보냈으며 양현종 역시 어깨 통증과 함께 밸런스가 무너지며 선발 자리에서 밀려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2013년에는 두 투수 모두 부활의 가능성을 보이며 팬들을 기대하게 했다.
그렇게 맞이한 2014년. 양현종은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내며 화려하게 부활했고 김광현 역시 토종 선발투수 ERA 2위에 이름을 올리며 두 투수가 최동원 상 유력 후보로 꼽혔고 양현종이 최동원 상을 수상했다. 더불어 데뷔 후 처음으로 두 투수가 국가대표로 선발돼 대표팀의 금메달을 함께 이끌었고 시즌 후에는 동시에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메이저 리그 진출을 시도했으나 아쉽게 이뤄지진 못했다. 이후 몇 년 동안은 양현종이 우위를 가져갔다. 양현종은 2015시즌 ERA 타이틀, 2016년 200이닝, 2017년 20승-골든글러브-정규시즌 MVP-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하며 커리어 최고의 시기를 보낸 반면, 김광현은 팔꿈치 부상으로 이전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2017년에는 수술까지 받으며 1년을 아예 쉬면서 두 투수 간의 간격이 상당히 좁혀졌기 때문이다. 이 즈음부터 KIA 타이거즈 팬들을 중심으로 양현종과 김광현의 라이벌리가 본격적으로 격화되기 시작했다.[8]
김광현이 복귀한 2018년. 김광현은 수술 여파로 인해 제한된 이닝만을 소화하면서도 sWAR 전체 4위, 국내 투수 1위에 이름을 올리는 압도적인 시즌을 보냈고 양현종도 막판에 페이스가 다소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리그 정상급 선발투수의 기량을 유지했다. 한편 2017시즌에는 KIA, 2018시즌에는 SK가 두산을 상대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는데 공교롭게도 두 팀의 우승 순간을 양현종과 김광현이 각각 세이브로 장식하는 인상적인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2019년은 두 투수의 기량이 절정에 올랐던 시기로, 양현종은 시즌 초반 상당한 부침을 겪었지만 그 뒤 경이로운 페이스로 개인 통산 두 번째 ERA 타이틀을 획득했으며, 김광현 역시 조쉬 린드블럼과 함께 리그 최고의 선발투수로 군림하며 2번째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다.
2020년에는 김광현이 숙원이었던 메이저 리그 진출에 성공하면서 두 투수는 처음으로 다른 리그에서 뛰게 됐다. 그리고 이 시점부터 두 투수의 격차가 다시 벌어지기 시작한다. 김광현은 2020년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다소 힘겨운 시간을 보냈지만, 마무리로 출발했다가 팀의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해 맹활약하며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고[9] 2021년에도 괜찮은 성적을 올리며 메이저 리그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냈다.[10] 양현종 역시 2020시즌 종료 후 메이저 리그 진출을 선언했으나, 새롭게 장착한 커브와 끌어올린 구속으로 인해 밸런스가 무너지며 커리어 로우 시즌을 보냈고 미국 진출 과정 역시 순조롭지 않았다. 다행히 텍사스 레인저스와 스플릿 계약을 맺었고, 팀 선배인 윤석민과 달리 메이저 리그 데뷔에는 성공, 초반에 호투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으나 이후 마이너 리그에서도 부진하며 미국에서의 시간은 도전에 의의를 두는 것에 그치고 말았다. 김광현은 이전부터 슬라이더라는 확실한 무기가 있다는 점 등에서 호평을 받으며 상위 리그에서의 경쟁력을 인정 받았으나 양현종은 20-80 스케일에서 모든 구종이 애매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두 투수가 동시에 메이저 리그에서 뛰었던 2021년에 이같은 모습이 사실임이 드러나며 두 투수의 격차는 극복하기 힘든 수준으로 벌어졌고 둘 간의 경쟁은 김광현의 승리로 굳어졌다.
미국 도전을 마친 뒤 2022년, 두 투수 모두 100억대 계약을 성사시키며 나란히 친정팀으로 복귀했다. 두 투수 모두 이제는 선수 생활의 황혼기에 접어들었고 어느새 팀의 최고참급 선수가 됐기에 선수 생활 말년을 어떻게 보낼지도 관심이었다. 김광현은 2022시즌 안우진과 함께 리그 최고의 선발투수로 활약하며 팀의 사상 첫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이끌며 개인 통산 5번째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를 획득했다. 양현종은 확연히 전성기에서는 많이 내려온 모습을 보였지만 팀 내 최다 이닝을 소화하며 팀을 4년 만의 가을야구로 이끌었다. 2023년에는 둘 다 다소 고전했지만 여전히 팀의 1선발로 맹활약했고 각종 대기록을 갱신해나가며 KBO 리그 전설의 반열에 함께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한편 두 투수의 선발 맞대결은 총 8번 성사됐다. 2007년 5월 25일, 첫 선발 맞대결을 포함한 4경기에선 김광현이 모두 우위를 가져갔다. 그리고 2015년과 2023년에 각각 2번씩 맞대결이 성사됐는데 이 4경기는 모두 양현종이 승리를 가져갔다. 둘 간의 맞대결은 양현종이 4승 2패 2ND, 김광현이 2승 5패 1ND를 기록하고 있다. 특이사항으로는 두 투수 모두 리그 최고의 선발투수가 된 2015년 이후 8년 간은 애매하게 로테이션이 엇갈리거나 1명이 로테이션을 거르는 등의 사유로 맞대결이 성사되지 않았다. 2021년에는 둘 다 메이저 리그에 진출하면서 미국에서 맞대결이 성사되지 않을까하는 기대감도 있었으나 김광현은 내셔널리그, 양현종은 아메리칸 리그에서 뛰며 맞대결이 성사되진 않았다.
국가대표 단골멤버이자 에이스인 양현종과 김광현이 함께 출전한 국제대회는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2019 WBSC 프리미어 12,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 있다. 2008 베이징 올림픽과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은 양현종이 한창 불을 지르던 시절이라 출전하지 못했고, 2015 WBSC 프리미어 12에는 양현종의 몸상태가 좋지 않아 출전이 불발됐다.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2017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에는 김광현의 몸상태가 정상이 아니라 출전하지 못했다. 두 투수가 모두 불참한 대회는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과 2020 도쿄 올림픽으로,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은 두 투수 모두 이전 시즌에 커리어 로우를 찍었던 시절이었고 2020 도쿄 올림픽은 둘 다 메이저 리그에 뛰고 있었기 때문에 출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11]
-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 두 투수가 처음으로 함께 출전한 국제대회로, 팀의 원투펀치로 호투하며 대표팀의 금메달을 이끌었다. 김광현은 태국전과 결승 대만전에 선발 등판했고 양현종은 조별리그와 결승전 모두 대만을 상대로 등판했다. 둘 모두 결승전에선 시원찮은 모습을 보였고 오히려 둘을 구원 등판한 안지만의 하드캐리 덕에 구사일생했다.
- 2019 WBSC 프리미어 12 : 제 2의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낸 뒤 열린 국제대회이고 해외진출 쇼케이스 무대라는 분석도 있었기에 둘에게는 매우 중요한 대회였다. 양현종은 호주와 미국을 상대로 연이어 승리투수가 됐지만 결승전인 일본전에서 무너지고 말았고 김광현 역시 캐나다를 상대로는 호투했지만 대만과의 슈퍼라운드에서 크게 무너지며 아쉽게 대회를 마무리했다.
-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 두 투수 모두 나이가 30대 중후반에 접어든 만큼 사실상 마지막 국제대회일 확률이 높았다.[12] 그리고 그 마지막 대회의 결말은 양현종, 김광현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비극 그 자체였다. 양현종은 조별리그 호주전에 구원등판해 0이닝 7구 3실점이라는 충격적인 피칭을 선보이며 추가 등판없이 대회를 마무리했다. 김광현은 그 경기 직후, 급하게 일본전 선발 등판을 통보받았다, 일본전에서 2회까지 5삼진을 뽑아내며 일본을 막아냈지만 결국 3회에 무너지며 패전투수가 됐고 이후, 2023년 WBC 대표팀 음주 논란에 휘말리기까지 했다. 대회 이후 김광현은 개인 SNS로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으며[13] 양현종은 이에 대해 언급하진 않았으나 최근 국가대표팀이 세대교체에 목숨을 걸고 있는 만큼 마지막 국제대회일 확률이 높은 상황이다.
2.1.2. 류김양
자세한 내용은 류김양 문서 참고하십시오.2.2. 인간관계
- 양현종은 2008~2009시즌 동안 칸베 토시오 코치의 가르침을 받았는데,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원정 경기 호텔에서까지도 경기가 끝난 후 옥상으로 올라가 훈련을 했다는 사실을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 후로도 칸베 토시오 코치와 인연은 이어져 현재까지도 자주 연락하는 사이로 알려져 있다.[14] 2017년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칸베 토시오 전 코치를 초대해 122구 완봉승을 거두며 성장한 자신의 모습을 스승에게 제대로 보여줬다. 2023년에도 여행 겸 칸베 토시오 자택에 방문한 것으로 보인다. KIA 타이거즈 유니폼과 양현종 본인이 같이 찍은 사진을 선물한 것을 SNS에 올렸다.
- 2008년 외국인 투수 호세 리마가 방출되었을 때 매우 아쉬워하며 울기도 하였으며 2010년 5월 23일 호세 리마가 사망하자 미니 홈페이지에 호세 리마와 같이 찍었던 사진을 올리며 그를 애도했다. 시간이 꽤나 흐른 2017년도에도 100승을 거두자 고인인 호세 리마 이야기를 꺼냈다. 정말로 친하게 지냈던 모양. 양현종은 호세 리마에게서 마운드에서의 운영과 자신감, 야구 외적인 행동가짐에 대해서 배우게 되었고 잘할 때도 있고 못할 때도 있다며 다독여줬다고 회고했다. 게다가 양현종은 2008시즌 부진한 성적으로 인해 팬들에게 정신없이 까이는 등 굉장히 힘든 시기를 보낼 때인지라 더욱 그런 듯하다.
- 호세 리마를 각별하게 여겼던 또 다른 사례로 그가 KIA에 있었을 때 서로 아버지 아들 할 정도로 친했다고 한다. 양현종이 2010년 6월 2일에 완봉승을 기록했을 때, 인터뷰 중 가장 떠오르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그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난 호세 리마가 생각난다'고 답변했을 정도.[15] 2015년 5월 23일 삼성전에서 134구 선발승을 거두면서 호세 리마를 기리면서 세레모니를 펼치기도 했다.
- 2012시즌 후, 2차 드래프트로 이적해온 이두환이 KIA 타이거즈에서 뛰어보지도 못하고 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모자에 이두환의 이니셜인 DH를 써넣으며 그를 기억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2015년, 평균 자책점 타이틀과 2017년, 생애 첫 골든글러브 수상 후 친구 이두환을 기리는 소감을 남겼다. 개인 페이스북을 통해 이두환에게 보낸 쪽지는 덤. 그리고 2019년 시즌 개막을 앞두고 이두환의 생일인 3월 16일에 다시 쪽지를 남겼다. 2021시즌 3월, 메이저 리그 진출을 향해 미국으로 가게 되었을 때도 다시 쪽지를 남겼다. 2023년에 한 두산 베어스 팬이 본인보다는 친구가 가지고 있는게 의미있을 것 같다면서 오래전 이두환에게 받았던 손목아대를 양현종에게 넘겨주며 훈훈한 상황이 연출되었고 양현종은 겨울에 잘 전달해주겠다고 답을 남겼다.
- 김기훈에 대한 애정이 장난 아니다. 군 전역후 데뷔전에서 1사 만루를 KK로 막고 내려온 김기훈을 보며 엄청 자랑스럽고 뿌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같은 좌완 영건인 이의리도 잘 챙겨주고 있지만 광주동성고 후배에 대한 깊은 애정은 숨길 수 없는 듯 하다. 2024시즌에는 마찬가지로 동성고 후배인 김도영에게도 무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 웨스 벤자민과 매우 친하다. 텍사스 레인저스, 라운드 락 익스프레스 시절에 롱릴리프, 대체 선발 등 맡는 보직이 비슷해 콜업과 강등이 자주 겹쳐 함께 있는 시간이 길었다보니 친분이 두터워진 듯 하다. 휴식일에 통역과 함께 셋이서 시간을 보냈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이다. 한국에서 재회하게 되면서 여전히 우정을 이어가고 있다.
- 권위와는 거리가 먼 성격인지라 어린 후배들과도 친구처럼 잘 어울리는 편이다. 주로 전상현, 장현식, 임기영 등 90년대 초중반 생 투수들과 특히 친하며 임기영과는 부부끼리 등산을 갈 정도로 친하다.
- 현재 소속팀 감독인 이범호와는 아예 2011년부터 2019년까지 9시즌을 동료로 뛰었다 보니 양현종의 교체를 코칭 스태프에서 고민할 때 감독이 직접 양현종의 의사를 묻거나 강판당한 양현종을 달래주는 등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 본인의 전성기의 대부분과 우승을 함께 했던 김기태 감독이 자진사퇴한 후 있었던 수훈선수 인터뷰에서는 이례적으로 울먹이면서 눈물을 참는 모습을 보였다.
- 2년 선배인 윤석민과는 서로 얼굴 못 생겼다는 디스를 주고 받을 정도로 친하며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뛰느라 윤석민의 은퇴식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자 구단 공식 유튜브에 업로드 된 윤석민의 헌정 영상에 댓글을 남겨 은퇴를 축하했다.
2.3. 모자의 이니셜들
[오!클릭] 양현종 모자에 새긴 특별한 이니셜…뭉클한 사연- DH : 2012년에 떠나 보낸 친구 이두환의 이니셜 'DH'를 모자 앞 부분에 새기고 있다.
- Doo hwan : 모자 안쪽에도 이두환의 이름을 새기고 있다.
- TRUST CCR : 2010년, 암으로 세상을 떠난 한 여성 팬의 이니셜을 새기고 있다.
- DJ 87 : 2010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투병 중인 前 KIA 타이거즈 김동재 코치의 이니셜과 등번호를 새기고 있다.
- LIMA TIME : 2010년에 세상을 떠난, 본인이 신인 시절에 거의 아버지처럼 따르며 우상으로 삼았던 호세 리마를 상징하는 문구를 새기고 있다.
2.4. 선행과 미담
- 팬서비스가 아주 좋은 선수이다. 퇴근길에 다른 선수들은 그냥 쌩하고 가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적어도 손이라도 흔들어주고 인사를 해준다. 싸인 요청도 어지간해선 해주는데 안 해주더라도 최소한 모자 벗고 목례하는 예의는 보여준다. 오랜 KIA 팬이 싸인 받고 싶다하면 "KIA팬인데 아직도 제 싸인 없으신 분이 있나요?"라고 농담할 정도로 싸인을 잘 해준다.심지어 직접 싸인 요청법을 알려주는 영상도 있다# 2020년 홈 구장 마지막 경기에서 KIA 선수들이 팬들에게 인사를 하지 않아 논란이 되었을 때도 국내 선수 중에서 양현종과 박찬호, 그리고 김태진 이렇게 세 선수만 팬들에게 예의를 갖춰 인사를 건넸다.
- 2013년, 밝은안과 21 병원 4월 월간 MVP를 수상하고 상금 100만원 중 50만원을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기부했다.#
- 2013년부터 일명 '88둥이'라고 해서 김광현, 이용찬, 김강, 이재곤, 이상화, 이준수, 임태훈, 임익준, 이천웅, 이웅한, 김재율, 김남형, 김정후, 김선빈, 전준수, 황인권 등 2006년 청소년 대표팀 멤버들과 함께 암환자 치료 기부금을 마련하는 일일호프 행사를 열기 시작했다. 사실 2012년부터 시작하기로 한 행사였지만 행사 전날 이두환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고 다음해인 2013년부터 기일 전날인 12월 20일에 맞추어 이두환을 기리며 선수들이 직접 서빙도 하고 자선경매도 하여 모인 수익금을 이두환의 부모님께 드리며 행사가 시작되었다.# 2013~2015년, 2017년에는 일일호프 행사를 열었고 2016년에는 연탄배달 봉사활동, 2018년에는 당진에서 야구레슨장을 운영하고 있는 2006년 청소년 대표팀 멤버였던 이웅한의 권유로 당진시에서 ‘프로야구 선수와 함께하는 야구재능기부 교실’을 열어 재능기부를 했다.# 2019년에는 행사를 잠시 쉬었고 2020년과 2021년에는 코로나 19로 인해 다같이 모이지는 못했지만 88 멤버들 개인적으로 납골당을 찾고 메신저 등을 통해 서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10주기인 2022년에는 다시 한번 모일 수 있었다.# 2023년에도 작게나마 만남을 가졌다.#
- 2014년, 최동원상을 수상하고 상금으로 야구공을 기부했다. 본인의 모교인 광주학강초등학교, 광주동성중학교, 광주동성고등학교에 100박스, 폐교 위기를 이겨내고 전국대회 우승까지 차지한 양산 원동중학교에 30박스, 최동원의 모교인 경남고등학교에 40박스, 총 170박스, 2040개를 기부했다. 본인은 조용히 기부했으나 학교 측에서 감사 인사를 전하는 과정에서 외부로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 2015년, 밝은안과 21 병원 3·4월 월간 MVP를 수상하고 상금 100만원 중 50만원을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기부했다.#
- 2016년, 밝은안과 21 병원 4월 월간 MVP를 수상하고 상금 100만원 중 50만원을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기부했다.#
- 2017시즌 FA로 해외진출을 추진했고 실제 NPB에서 좋은 오퍼가 들어왔다는 썰도 있었으나[17]KIA 잔류를 결정했다. 이때 KIA는 이미 100억 계약의 최형우와 40억 계약의 나지완과 계약한 상황으로 모기업의 돈을 다 쓴 상황이었다. 양현종은 놀랍게도 1년 22.5억으로 잔류하였다. 김광현이 4년 계약이나 1년을 재활로 다 쉰다 합의했기에 사실상 3년 85억 계약을 한 시장 상황을 봤을 때 최소 100억, LG 트윈스 등이 참전하면 120억(실제로 LG는 양현종의 통산 성적의 절반 정도 밖에 안되는 차우찬과 95억 계약을 했다.) 얘기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홈 디스카운트로 헐값에 계약한 것이다. 이후 3년간 연봉 22.5억을 줬지만 선수들은 FA시 계약금을 많이 주는 것을 압도적으로 좋아한다. 금리가 아무리 낮아도 화폐 가치는 계속 낮아지고 혹여라도 부진 혹은 부상으로 2군에 갔을 시 연봉은 50%가 삭감되기 때문이다.
- 2017년, 모교인 광주동성고등학교에 1억 7천만원 상당의 40인승 최신형 성능의 리무진버스를 기증했다. 야구부 선수들이 인터뷰를 하면서 모두 이 버스에 대해 양현종에 감사를 표현했다. #[18]
- 2017년, 밝은안과 21 병원 7월 월간 MVP를 수상하고 상금 100만원 중 50만원을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기부했다.#
- 2017년 한국시리즈 우승 당시 자신이 사는 아파트 같은 동에 있는 모든 집을 직접 돌며 싸인볼을 나눠주었다.
- 2017년, KIA 타이거즈 장내 아나운서인 MC이슈가 진행하는 소외계층을 위한 나눔활동에 연탄 1000장을 기부했다.#
- 2018년, 소아당뇨 환자가 본인과 이범호의 팬이라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청와대의 요청에 싸인 글러브와 아동용 특별 제작 글러브까지 선물했고 대통령에 의해 전달되었다.##
- 2018년, 모교인 광주학강초등학교에 야구장 전광판을 기증했다.#
- 2019년, 밝은안과 21 병원 6월 월간 MVP를 수상하고 상금 100만원 중 50만원을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기부했다.#
- 2019년, 위아자 나눔장터에 싸인 유니폼을 기증했다.#
- 맷 윌리엄스 감독이 2020시즌 주장을 정할 때 이례적으로 투수인 양현종을 지정한 이유로, 본인의 훈련이 끝나면 투수조의 훈련을 보며 조언을 계속해주고 투수조의 훈련이 끝날 때 야수조의 훈련이 진행 중이면 본인도 피곤할 텐데 집에 가지 않고 지켜보며 화이팅 하는 모습을 보며 '이 선수는 항상 팀을 위하는 선수구나' 라는 생각을 해 지명했다고 한다.
- 2020년, KIA 타이거즈 선수단 상조회와 이화원 대표이사가 함께 코로나 19 극복 성금으로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에 3000만원을 기부했고 양현종은 개인적으로도 1000만원을 더 기부했다.#
- 2020년, 밝은안과 21 병원 8월 월간 MVP를 수상하고 상금 100만원 중 50만원을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기부했다.#
- 2020년, 위아자 나눔장터에 아이싱 티셔츠를 기증했다.#
- 미국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기 전, 텍사스 레인저스와 라운드 락 익스프레스의 모든 코칭 스태프, 트레이너, 프런트, 구단 직원, 선수단에게 손편지를 전했다. 또한 선수단과 코칭 스태프에게는 개개인의 등번호와 이름이 한글로 마킹되어있는 KIA 타이거즈 유니폼을 선물했고 트레이너, 프런트 및 구단 직원에게는 한글로 이름이 새겨진 모자를 선물했다.# 양현종의 공을 주로 받던 포수 호세 트레비노는 후에 선물받은 유니폼을 입고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하기도 했다.
- 2024년 9월 7일 키움전 당일, 한 일행이 표를 구하지 못해 인터넷으로 중고거래를 해 현장에서 표를 받기로 했으나 확인해보니 사기였던것으로 드러나 주차장에서 망연자실하던 중, 양현종을 마주쳤다. 양현종은 이들의 사정을 듣더니 야외석으로 들여보내줬다고 한다.
2.5. 개인 관련
- 마운드에서 표정변화가 거의 없이 진중한 이미지를 보여주어 평소 성격도 조용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애교도 많고 장난도 많은 편이다. 10살 넘게 차이나는 후배들과도 장난을 치며 잘 지낸다.
- 모교인 광주동성고등학교 앞 동성분식에 가끔 출몰한다고 한다. 다만 동성분식이 사장님의 건강문제로 인해 없어지는 바람에...
- 차우찬만큼이나 정이 많고 착한 성격으로 유명하다.
- 스포하는 걸 정말 엄청 싫어한다...
- 야구를 안 했다면 우주과학자가 되는 게 꿈이었다고 한다.[19]
- 키움 히어로즈의 내야수 최주환이 그의 초-중-고 1년 선배인데, 프로필상 생일은 겨우 이틀 차이다. 그런데 사실 최주환은 2월 29일 출생이다. 하지만 부모님께서 아들의 생일을 4년에 1번씩 챙길 수는 없으니 출생신고를 2월 28일로 했다고 한다. 사실상 생일 하루 차이로 선후배가 갈린 것이다.
- 일상 생활을 할 때에는 뿔테 안경을 쓰고 경기할 때는 무테 안경을 쓴다. 조성환의 말을 빌리면, 무테 안경을 착용하면 시야에 방해를 받지 않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 때 안경이 떨어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끈으로 머리에 고정시키는데, 뒤통수에서 삐져나온 끈이 마치 꽁지머리같이 보이기도 한다. 색깔도 딱 검은색이라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공식 홈페이지에 게재된 프로필 제출용 사진.
안경 착용 이유는 물론 시력이 좋지 않아서였지만, 라식 수술로 시력이 개선된 이후에도 여전히 일상생활이나 경기 중에도 안경을 쓰고 있다. 이유는 안경 안 쓰면 전혀 다른 얼굴이 된다고 해서... 2017 스프링캠프 인터뷰에서 소원 세 개[20]를 다 이루면 다음 시즌부터 안경을 벗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그리하여 2018시즌 시범경기에서 처음으로 안경을 쓰지 않고 던졌으나, 경기 내용과는 별개로 반응이 좋지 않아서 시도를 접었다.- 그리고 라디오볼에서 언급된 바로는 안경을 착용하고 썬크림을 과도하게 바르는 이유가 "스타성" 때문이라고 한다. 프로야구에서 선수를 상징하는 무언가가 필요한데 자신은 썬크림과 안경이 그 상징성이라고. 그 외에도 프로야구 선수로서 팬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스타성에 대해 항상 진지하게 생각하는 선수 중 한 명이다. 백탁현상이 눈에 보일 정도로 선크림을 충분히 바르는 습관 덕에 40대를 바라보는 나이에 하루종일 야외에서 활동하는 야구 선수임에도 피부가 잡티나 주름 없이 깨끗하고 탄력있다.[21] 다만 2024년 구단 유튜브에서 선크림 바르는 방법영상 촬영할때 밝히기로는 어렸을때 피부가 탈때 다른 선수들처럼 골고루 태닝이 안되고 드문드문 태닝 되다보니 남들처럼 될수 없다면 아예 하얀 피부를 만들어보자라고 밝혔다.
- 모르는 사람들이 많지만 의외로 오른쪽 어깨에 문신이 있다.
- 육전을 매우 좋아하는 듯 하다. 구단 유튜브에서도 육전을 추천했고 심지어는 NC 다이노스의 유튜브 채널에 짤막했지만 두 번이나 출연해 광주 육전 부심을 드러내며 육전을 추천했다. 다만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로 본인 입이 짧은 탓에 많이 먹지는 못한다고 한다.
- 입이 짧은 반면 탄산음료와 과자는 엄청나게 좋아하는 것으로 보인다. 구단 유튜브에서 삼겹살 먹는 양으로 대식가와 소식가를 가리는 질문에 대해 다른 선수들은 2-3인분이 기본인 반면 본인은 1인분밖에 못 먹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탄산음료는 4리터(!)도 마실 수 있으며, 과자류도 셀 수 없이 많이 먹을 수 있다고 답했다.
양초딩 - 엄청난 애처가다. 경기장에서 관람하러 온 아내가 보이지 않으면 매우 불안해한다고 할 정도로 애처가다. 2017년 정규시즌 MVP 수상 이후 부상으로 받은 벤츠를 아내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2.6. 별명
한창 방화를 해대던 시절에는 숨만 쉬어도 별명이 양산되는 수준이였다. 에이스로 거듭난 지금은 대투수라는 가장 대중적인 별명과 야갤의 붉은청룡, 갸갤에서 부르는 붕개나 안쪼, 양쪼가 가끔 나오는 것 빼고는 거의 사장되었다. 이 당시 양산된 별명으로는 아래와 같다.- 대투수: 양현종을 상징하는 별명으로, 보통 언론에서 가장 자주 칭하는 별명이다. 다만 양현종이 부진할 때는 타 팬들이 그들(KIA 팬들)만의 대투수[23] 라고 부르기도 한다. 2010년대 즈음까지만 해도 이런 그들만의 대투수 느낌의 비하적 표현으로 쓰이기도 했으나 2020년대 시점에서는 비록 다소 아쉬운 해외 리그 기록과 국대 기록이 있기는 하나 상당수의 누적 지표에서 역대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성적을 남겼기에 리그 전체 차원에서도 대투수로 평가되는게 일반적이다.[24]
- 운현종: 2010 시즌의 폭발적인 타선 지원과 기록되지 않은 각종 행운으로 16승을 달성하며 붙은 별명이다.
- 햄종이: 햄스터+현종이. 움짤로도 만들어졌다. 양현종 햄스터 드립이라 불린다. 이 때문인지 여러 야구만화에서는 햄스터로 묘사된다.
- 막내딸: 아무리 방화를 해도 지역 프랜차이즈 출신에 팀 역사상 몇 안되는 좌완 선발형 파이어볼러였기 때문에 코칭스태프, 팬들 모두 애지중지해서 생긴 별명. 보통 모지리 막내딸로 불린다.
- 양소퀴: 소덕이라서.
- 퀄뭐: 조범현 감독이 질책하자 그래도 퀄리티 스타트했다며 개드립 시전. 이에 열받은 조 감독이 '퀄뭐?'라고 답해 그대로 양현종의 별명이 되고 말았다.
- 안경쪼다: 이걸 줄여 안쪼라고 한다.
- 양쪼: 안쪼의 파생형.
- 붕괴: 2011년 4월 3일 광주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양현종이 볼넷, 쓰리런 홈런을 기록하자 다음 중계에 양현종 붕괴라고 떠서 생긴 별명이다.
- 붕개: 붕괴 + X새끼. 사람으로 거듭난 2013 이후로도 붕괴하는 기미가 보이면 갸갤은 붕개로 뒤덮인다. 이후 KIA 타이거즈의 토종 프랜차이즈 투수 라인인 윤석민, 양현종, 한승혁은 각각 석개, 붕개, 슝개의 개자 돌림(무등 개씨) 별명이 붙게 되었다. 익숙해진 나머지 잘할 때도 붕개로 불린다.
- 내이투: 2011년 7월 31일 광주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4이닝 4실점하자 스포츠조선에서 내가 이런 투수란 말인가라는 타이틀의 기사가 뜨면서 생긴 별명이다.
- 어둠의 피쳐: SK 와이번스전 6이닝 2실점하자 어려운 팀을 구하는 어둠의 피쳐라는 기사가 뜨면서 생긴 별명이다.
- 지온이: 양현종의 딸(첫째) 이름이다. 파생형으로는 '큰지온이'가 있다.
- 양서운: 2021년 12월 14일 FA자격으로 KIA 타이거즈로 복귀하기 위해 구단과 협상하다가 첫번째 협상에서 결렬되고 양현종 측이 '서운하다'라고 언플하여 생긴 별명. 이후에도 열흘이 더 지난 24일이 돼서야 4년 총액 103억에 합의하여 도장을 찍어 복귀했다. 이런 답답한 행보에 '붕개'의 뒤를 잇는 새로운 부정적 별명이 생겼다. 다만 FA는 선수의 권리로, 선수 입장에서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 것 뿐이고 잘못한 것은 없다.
- 양부기: 팀이 승리시에 타선수들과 다르게 입에 물을 채워 선수들에게 뿌리면서 붙여진 별명이다. 2024 한국시리즈 우승했을땐 응원석 팬들에게 직접 뿜어주는 팬서비스를 선사했다...
- 그 외에 양모지리, 양시구, 양삼밀, 볼넷쓰리런[25], 양볼넷, 붕개나이트, 양민폐, 양멸망, 양현종말, 선크림귀신, 가부키 배우, 임동귀신, 양폭탄, 미백의 안경남[26] 등.
KIA 타이거즈 갤러리에서는 2013년 시범경기 직후부터 한 야갤러가 "양현종 대투수님 올해는 정말로 부활하실거 같지 않냐?" 식의 꾸준글을 도배하며 대투수님이란 별명을 밀었는데, 이후 양현종이 정말로 리그 최고의 토종 투수가 되면서 어지간한 KIA 팬 커뮤니티에서는 주로 대투수, 머투수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 2017시즌 대활약과 함께 해설위원, 선수, 팬들의 대투수 언급이 잦아졌다. 못하면 비틀어서 '소투수'라 부르기도 한다. 사실 소투수는 약과고 더 비틀면 대주는 투수라고 조롱당할 때도 있다.
야구 관련 갤러리 계열 커뮤니티에서는 붉은청룡이라는 별명이 쓰인다. 국내야구 갤러리에서 한 어그로가 관심을 끌 목적으로 유명 야구 선수들에게 오글거리는 억지 별명을 밀며 개념글을 주작했는데[27] 그 중 거의 유일하게 흥한 별명. 당연하게도 청룡은 이름부터가 이미 푸른색인데 붉은 청룡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작명을 당당하게 밀어서 그 이상함에 오히려 유명세를 탔다.[28]
흔히 붉은청룡갑, 줄여서 붉청갑, 청룡갑 등으로 불리며 이젠 국내야구 갤러리에서 투수 떡밥이 돌 때마다 붉은청룡이 안 나오면 야갤러들이 댓글로 붉은청룡갑은 어딨냐며 아우성치는 수준이 되었다. 하도 인기가 좋아서 타자 관련 주작을 할 때도 꼭 사진이 들어가는 야갤스타. 2019년에는 아예 검은백호, 하얀현무, 푸른주작 병맛 사신도를 만들었다.[29] 야갤이나 해야갤 등 디시인사이드에서만 많이 쓰이고 디씨 밖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는 별명이었으나 비디오머그에서 이 별명을 인용하면서 대중들에게도 알려졌다. 이후 야갤의 야, 코를 붙이는 문화에 힘입어 야은코룡이라는 파생형도 간혹 쓰이는 편.
이에 몇몇 키움 히어로즈 팬들은 이 별명을 응용하여 양현에게 붉은청, 대투 등의 별명을 붙여주었다. [30] 양기현은 대기투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양지율로 개명했다.
한 팬이 양현종 마킹 유니폼을 주문했는데 받아보니 양종현으로 잘못 마킹된 일이 있었다. 그리고 문제의 유니폼 사진을 올리자 대수투라는 드립이 쏟아져 나왔다.
타팀 팬들은 ‘대투수’라는 별명에는 그다지 공감하지 못한다. 과거 ‘국민타자’, ‘조선의 4번 타자’ 등 그 선수의 위대함을 드러내는 별명은 국제 대회에서 좋은 활약을 붙인 선수에게 가능했다. 단순히 한 팀의 선수가 아닌, 한국 야구를 대표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양현종은 2023 WBC 0이닝 3실점 등 최근 들어서는 국제 대회에서 영 힘을 못 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때문에 대투수라는 별명은 KIA 타이거즈 갤러리 등 양현종의 팬이 많은 곳에서 주로 쓰인다. 타 갤이나 해야갤, 퓨마갤 등에서 쓰일 때는 보통 ‘그들만의 대투수’라는 식으로 조롱의 뉘앙스가 섞여있다.
보통 KIA 타이거즈 갤러리 등 인터넷상의 KIA 팬들이 양현종을 친근하게 부를 때 가장 많이 쓰이는 별명은 붕개이며, 비하 발언과 욕설이 난무하는 디씨 특성상 타 팀 갤러리에서는 안쪼, 양쪼라는 별명이 주로 쓰인다. 붉은청룡, 붉청갑은 인터넷상에서 중립적으로 부를 때 자주 쓰이며, 앞서 언급한 별명들이 방송에 쓰기엔 좀 진지하지 못한 뉘앙스인지라 방송 등 오피셜한 자리에서는 KIA의 대투수 같은 별명이 가장 자주 보인다. 양현종이 MLB를 가기 직전 경기에서 엠스플이 ‘대투수의 마지막 경기’라는 자막을 띄운 것이 그 예시.[31]
2020시즌에는 다른 선발 투수들이 3점대 ERA를 찍는 와중에도 아직 ERA가 4점대였을 때가 있어 5선발이라는 드립도 생겨났다. 본인도 이를 알고 있다. 사실 시즌 초만 해도 단순 농담으로 쓰는 말이었는데[32] 도저히 반등할 기미를 보이지 못하면서 팬들이 제발 좀 쉬라고 말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부진이 이어지자 KIA 타이거즈 갤러리에서는 아예 '대만 국적의 괴투수 야옹 후옌 주옹', '빨강 안경', '그 안경'으로 부른다. 대투수라는 별명에서 파생된 중투수, 소투수 등의 별명도 붙었다... 다행히 시즌 중후반 반등에 성공하며 이 별명은 사용 비율이 줄었다. 공교롭게도 어느 팬이 '문어지지마요 양현종'이란 플랜카드를 들고 오자마자 반등에 성공하면서 '문어좌'라는 별명도 추가.
특이하게도 일본 5ch 스포츠 스레에서는 '우호홍구'(ウホホング) 라는 별명이 있다. 2016시즌 FA 자격을 얻고 해외 진출을 추진할 때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입단이 유력해지자 "하필이면 요코하마라니 우헝헝"이라는 국내 반응이 일본으로 그대로 퍼졌기 때문. 훗날 요코하마 출신의 투수 조 윌랜드가 KIA로 입단하게 되자 "대신에 우호홍구 줘" 라는 반응도 나왔다.
참고로 선수들 사이에서는 '양양'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성이 양씨이기도 하고 중국의 前 쇼트트랙 선수 양양을 닮아서 그렇다.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메이저 리그 첫 선발 등판 이후 현지 팬들로부터 ‘양갱’이라는 별명을 선사받았다. 성씨인 양(Yang)과 갱스터(Gang)를 결합한 별명으로, 영어로 성씨가 같은 앤드루 양의 지지층 이름 역시 Yang Gang이어서 이와 연관된 것 같다.
2.7. 기행
윤석민을 노리는 날카로운 눈빛
안치홍은 내꺼 우유빛깔 양현종[33]
로페즈를 괴롭히는 양현종[34]
두피 관리인 양현종
최희섭 혼삿길 막는 양현종(최희섭 옆에 있는 선수가 안치홍이다)
이종범 앞에서 대놓고 이종범의 아들 이정후에게까지..[35]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강정호에게.
약사님에게도
해맑은 현종이
- 2024시즌 들어 선수들의 기록 달성이나 우승 세리머니 등에서 물과 샴페인 등으로 하이드로펌프를 난사하고 있는데, 최초 피해자는 황동하이며 정규시즌 우승 축승회에서는 무려 심재학 단장에게 샴페인 하이드로펌프를 시전하는 간 큰 모습을 보였다. 물론 그 뒤에는 합심한 후배들에게 본인이 하이드로펌프를 얻어맞으며 반격당했다.
2.8. 한때 열성 소덕에 탱빠
2009시즌 두산 베어스와의 개막전에서 공연하는 소녀시대의 태연을 보고 침을 질질 흘리는 모습이 카메라에 찍혔고, 그 이후 기자를 통해 싸인을 받아달라고 요청했다.태연은 양현종에게 사인 외에 10승 달성~! 좋은 소식 기다릴게요^^ 파이팅!!이라는 문구를 써 주었는데, 이 사건이 기사로 나가자 이강철 투수코치에게 엄청나게 털렸다는 뒷이야기가 있다. 팀 선배들도 엄청나게 놀려댔다고.
그리고 진짜로 10승을 달성했다. 무려 12승을 기록, 팀도 우승시켰다. 그해 다승왕은 아쉽게 놓쳤는데 다승왕이 된 사람은 동 시즌 14승 투수인 아킬리노 로페즈였다.
게다가 KBS N SPORTS 야구 프로그램인 야생야사에서는 '자신의 10승 달성과 팀 우승은 태연 덕분'이라고 발언하기까지 했다. 제대로 소덕에 탱빠 인증한 셈.
11월 9일에 열린 우승 축하행사에 소녀시대가 초대가수로 왔으나 막상 양현종이 감기 몸살을 앓는 바람에 병원에서 뒤늦게 와 선수들이 앉은 앞자리도 아닌 먼 발치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시리즈 우승 후 출연했던 출발 드림팀에서 "좋아하는 연예인이 누구에요?" 라는 질문이 나오자 태연을 언급한 후 태연에게 "언제 한번 밥이나 먹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디시인사이드 태연 갤러리와 국내야구 갤러리에 태연이 출연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열성적으로 시청하는 모습이 올라와 진성 탱빠 인증에 성공, 뭇 갤러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하였다. 이런 건들로 인해 그에게 붙은 별명이 양소퀴. 이후 다른 인터뷰에서는 최희로 이상형이 바뀌었다고 하는데...?
그러나 본인은 가정을 꾸리고 가장이 된 이후로는 상기한 일들 모두를 스스로 상당한 흑역사 취급한다. 2017년 인터뷰에서 관련 질문을 받았는데, 그게 언제적 일이냐면서 결혼도 했고 애도 있으니 이제는 그만 언급해 달라고 한다. 영상 해당 발언은 1분 42초부터.
2.9. 기타
- 로만 콜론이 큰 손을 이용해서 공을 한 손으로 다루는 묘기를 해보면서 양현종에게 해보라고 했는데, 전혀 하질 못하자 로만 콜론이 때리려고 했다. 물론, 양현종은 정말 쫄았다. 참고로, 로만 콜론은 KIA에 오기 전에 마이너 리그에서 제이슨 카너스를 폭행해서 당시에 뉴스에까지 나올 정도로 큰 폭력 사건을 일으킨 경험이 있다. 양현종이 위축되는 것도 당연하다.
- 온라인게임 마구마구에 나오는 자신의 투구폼이 실제와 다르다는 이유로 개발진에 직접 수정을 요구해 2009년 10월 28일 업데이트 때 반영되었다.기사 보기
- 그리고 몇년 후, 마구마구 2020에서도 똑같이 수정을 요구했는데, 이번엔 싱커 구종을 슬러브로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 2010년 광주MBC의 캠페인인 "무등산을 사랑하자"에 출연했다. 마운드에서 혼신을 다할 수 있었던 것은 제 뒤에 무등산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대사가 인상적.
- 2014시즌이 끝난 후 당시의 여자친구였던 지금의 아내와 함께 배구장에 관중으로 온 모습이 포착되었다.
- 2015시즌이 끝나고 유부남 대열에 합류했다. 여자친구와 식만 올리지 않았을 뿐 이미 예비 신부와 광주 수완지구에 신접 살림을 차렸고 2015년 9월 15일에 득녀를 했다. 이름은 '양지온' 12월에 결혼식을 올리고 태국의 코사무이로 달콤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결혼식 주례는 허구연이 봤다. 그리고 2017년 8월 23일에는 득남을 했다. 아들 이름은 '양시온'이라고 한다. 또 2018년 12월 4일에 득남을 했다. 셋째 이름은 '양태온'. 즉 2남 1녀를 두고 있는 다둥이 아빠다. 아내인 정라헬과는 2009년 야구장에서 당시 대학생이던 정라헬과 처음 만났는데 첫눈에 반한것인지 자신을 아느냐고 물어봤다고 하며 이후 2013년 친구의 주선으로 소개팅을 가졌고 같이 고기를 먹으러 가자고 했고 그날 같이 마트에서 장도 봤다고 한다. 아내의 말에 의하면 처음엔 유명한 야구선수라 부담이 많이 됐지만 좋은 사람이라 결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 이범호에게 꽃을 만들어준 적이 있다. #
- 2017년에는 모교인 광주동성고등학교 야구부를 위해 버스를 기증했다. 차종은 기아 뉴그랜버드 파크웨이.
- 20억대 연봉을 받는 입장임에도 옷은 항상 중저가 브랜드만을 고집할 정도로 검소하게 입는다고 한다. 오죽하면 에이전트에게도 이보다 더 비싼 옷은 절대 사지 말라고 부탁을 할 정도라고.[36]
2019시즌 후 아내와 함께 개그콘서트를 직관하러 갔다가 PD에게 정확히 잡혔다.
-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잠깐 언급된다. 주인공이 친구에게 "양현종보다 더 잘 던질수 있을까"라고 말을 했다.
- SBS 드라마 라켓소년단에 간접 출연했다. 작중 등장인물 중 한 명인 윤해강이 원래 야구부 출신으로 양현종이 우상이라는 설정. 해강의 방에도 양현종 유니폼이 걸려있다. 2021년 유니폼 버전. 후에 양현종 본인이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이 드라마의 감상평을 올리기도 했다.#
- 도구리의 매력을 알아본 모양이다. 2023 시즌 어린이날 주간에 창원 NC 파크 원정 3연전을 갔었는데, 아이들 어린이날 선물로 줄 목적으로 구장 샵에 들러서 도구리 인형을 포함한 물품들을 사 간 것을 올리기도 했다.#[37]
- 키움 히어로즈에 동명이인의 선수가 존재한다. 포지션은 내야수. 대구고등학교 야구부 시절, 2023년 봉황대기 MVP로 선정된 바 있고, 2024년 고교야구 첫 힛 포 더 사이클을 기록하였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2025 KBO 신인 드래프트 전체 51순위(6라운드 1순위)로 키움 히어로즈로부터 지명되었다.
- 딸 지온이가 반장선거에 출마했는데, 공약이 무려 '아빠 사인을 반 전체에 주겠다' 였고, 결과적으로 당선됐다.
광주에서 아빠가 양현종이라는 건 절대 권력이다
- 코골이가 매우 심해서 룸메이트였던 윤석민의 잔소리에 편도 수술까지 했다. 1년 동안은 코골이가 사라졌으나 1년 지나자 바로 부활했다고 한다. 얼마나 심했는지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당시 룸메이트였던 윤석민은 양현종의 코골이를 극복하려고 훈련소에서 입던 팬티까지 챙겨왔다고 한다.
3. 윤석민과 원투펀치?
KIA 팬들이 가장 바라는 우완 에이스 윤석민-좌완 에이스 양현종의 선발 원투펀치가 한 번도 이뤄진 적이 없다. 양현종의 포텐이 터진 2009년부터 살펴보면 양현종이 12승 투수를 하며 잘 나갈 때 윤석민은 정작 2009년에 초반 부진했다가 후반부에 호투를 이어나갔다. 실상 이 시즌은 구톰슨-로페즈의 용병선발 듀오가 더 대활약해서 KIA를 우승까지 이끌고 갔으니.2010년에는 양현종이 나올 때마다 팀의 연패를 끊고 승리를 챙기면서 다승그룹에 이름을 올리는(!) 무려 16승을 거두었다. 김광현이 17승을 기록해 다승왕은 놓쳤지만 팀의 에이스 역할을 수행했던 반면에 윤석민은 SK전에서 승리가 날아가며 락커룸에서 자해 부상을 입어 2군행, 이후 복귀 후에는 불펜 투수로 뛰며 롯데전에서 연속 사구 사건을 일으키며 바람잘날 없는 시즌을 보냈다. 결국 그 해 아시안 게임에서 국가대표에 뽑힌 양현종은 금메달로 병역면제를 받고 다음 시즌 기분 좋게 시작하나 했는데...
2011년, 둘의 처지는 정반대가 되는데 윤석민이 무려 17승을 따냈고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며 정규시즌 MVP까지 받는 등 완벽하게 부활하여 리그를 대표하는 오른손 선발투수로 이름을 날린 반면, 전해 다승 그룹에 있던 양현종은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시즌을 대차게 말아먹었다. 아시안 게임 이후 몸 관리를 제대로 못해서 투구 밸런스가 실종된 게 가장 큰 이유였다고 한다.
2012년에는 윤석민은 전년도의 특급 투수같은 면모는 보여주지 못했고 불운도 겹치긴 했으나 일반적인 A급 투수의 모습은 보여주었고, 양현종은 계속 부진한 모습을 이어갔다.
2013년에는 양현종은 겨우내 단내나는 훈련으로 좌완 에이스의 면모를 회복하는 듯했으나 결국 후반기를 말아먹으면서 추락. 양현종은 부상 후 선동열의 무리한 복귀 앞당기기로 말아먹었다고 평가 된다. 그리고 윤석민은 타이중 참사에 어깨 문제 등으로 최악의 한 해를 보내고 말았다. 특히 후반기에 윤석민은 사실상 강제로 마무리로 전환하지만 마지막 경기까지 별 재미를 못 보았다. 결국 둘 다 사이좋게 안 좋은 한 해를 보내버려 반비례 징크스는 깨진 셈. 무엇보다 2014년부터 윤석민은 미국으로 건너가서 이 반비례 관계는 따지기도 애매해졌다.
2014년 윤석민은 미국의 AAA에서 10경기 연속 피홈런 기록을 세우는 동안, 양현종은 팀의 토종 에이스로서 위엄을 보였다.
2015년 윤석민이 KIA로 리턴한 후, 마무리를 하게 되며 두 투수가 함께 선발로 터지는 모습은 보기 힘들 전망이다. 사실상 둘 다 잘 해주는 시즌이라고 할 수 있다. 양현종, 윤석민 둘 이 각각 WAR 1, 2위다. FIP는 중간에 합류해서 표본이 적은 에반을 제외하고, 윤석민이 팀내에서 1위고 양현종은 선발 에이스로서 잘 해주고 있다.
2016년에는 양현종은 200이닝을 돌파했으나 시즌 막판에야 10승 투수가 되는 등 불운의 에이스가 되었는데 마무리 알바를 마치고 선발 투수로 복귀한 윤석민은 시즌 초부터 어깨 부상으로 드러누우며 얼굴도 거의 볼 수 없다가 2017년에는 수술로 사실상 전반기에는 출장을 하지 못하게 됐다.
2017년에는 양현종은 그야말로 커리어 하이, 20승이라는 어마무시한 승수를 찍고 완봉승을 비롯해 한국시리즈에서 큰 활약을 하고 리그 MVP까지 된 반면 윤석민은 어깨 수술을 받은 뒤 재활하며 복귀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결국 2017년 복귀에 사실상 실패했다는 기사가 나오며 먹튀의 정점을 찍었다.
2018년에는 드디어 윤석민이 복귀했으나 선발로 몇 경기 출장하여 거하게 털린 이유로는 계투 및 마무리로 전환하며 이번 해도 두 투수의 선발 공동 폭발은 보기 힘들게 되었다.
2019년에는 윤석민이 선발 투수로 복귀한다는 발표가 났으나 스프링캠프 기간 중에 어깨 통증이 재발하였고 결국 시즌이 끝날 때까지 나오지 못했다. 한편 양현종은 평균 자책점 2.29를 기록하여 리그 1위를 달성하였고 WAR 역시 투타 종합 리그 1위의 위엄을 달성하며 대활약을 보였다.
결국 윤석민이 2019년 시즌 후 은퇴를 선언하면서 두 투수의 원투펀치는 이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으로만 남게 되었다.
4. 어록
못 떠나겠어요. 내 최종 목표는 영구결번인데 그 꿈을 포기하고 싶지가 않아요. 그게 결코 소박한 꿈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KBO리그에서도 인정받고 싶지만 이미 어마어마한 선수들이 정말 많잖아요. 최소한 타이거즈 팬들에게만은 인정받고 싶거든요. 지금이 내 전성기겠지만 훗날 바닥에 떨어져있을 때도 타이거즈 팬들만은 나를 인정해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어요. 내가 내세울 것은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하고 싶은 야구를 잘 할 수 있다는 것이거든요. 사랑하는 가족과 태어난 곳에서 집도, 차도 사고 많은 연봉 받으면서 좋아하는 일로 인정받으면 최고로 성공한 것 아닌가요. 여기서 이렇게 사랑받았는데 다른 팀에 가서 감히 팀 우승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을 할 자신이 없어요. 그래서 KIA에 남겠다는 거예요.
2017 시즌을 마치고 KIA 잔류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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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의 가장 큰 적은, 경험하지 않은 자들의 경험이다.
곽도규의 프로 첫 홀드 기념구에 적은 글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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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포스트시즌 1호 등판은 헥터 노에시였지만 그 경기에서 패했다.[2] 은퇴 후 자신의 이미지 이야기는 4분 8초에서 언급된다.[3] 이준수는 방출된 후 한화 이글스와 kt wiz에서 뛰었고 은퇴 후에는 kt에서 지도자 생활 중이다.[4] 심지어 미국에 진출했던 1년간은 54번을 양현종의 복귀를 염두에 두고 비워놨었다. 비슷한 경우로는 김광현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자 김광현의 등번호인 29번을 비워놨다가 김광현이 복귀한 후 다시 돌려줬던 SK 와이번스-SSG 랜더스가 있다.[5] 다만 당시 양현종은 1차 지명감으로 평가받았음에도 2차 1순위로 밀렸는데 어차피 KIA가 1순위인 만큼 계약금 아끼려고 꼼수를 부렸다는 이야기가 있다.[6] 양현종은 2007 2차 1라운드 지명이지만 드래프트는 2006년도에 시행되었음으로 지명받은 년도는 2006년이다.[7] 이 기간에는 사실 양현종과 김광현이 라이벌로 언급되는 경우가 없었고, 오히려 류현진과 김광현의 라이벌리가 유명했다. 물론 이 라이벌리는 류현진의 압도적 우위로 끝났다.[8] 팬들 사이에서는 둘의 별명을 따 일명 쪼랄대전(쪼다 vs 오랄)으로 불렸다.[9] 이 해 김광현은 로테이션 합류 이후 첫 다섯 경기에서 ERA 0.33을 기록하며 맹활약하였다. 이 수치는 1913년 이후 메이저 리그에서 데뷔 첫 선발 다섯 경기 평균자책점으로는 2위 기록에 해당한다. 1위는 페르난도 발렌수엘라[10] 2020~2021년 2년동안 총 145.2이닝 ERA 2.97. 2년 중 1년 반 가량은 선발투수로 뛴 것 치고는 이닝 수가 부족해 보이긴 하지만, 2020시즌의 코로나 단축시즌을 고려한다면 꽤 성공적인 커리어임에는 분명하다.[11] 잘 알려졌다시피 메이저 리그 사무국은 자신들이 주관하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을 제외한 국제대회에 40인 로스터에 속해있는 메이저리거들의 출전을 금지하고 있다.[12] 실제로 양현종과 김광현이 대표팀 투수조 최고참이었다.[13] 김광현 외에도 양의지, 김현수 등도 은퇴 의사를 밝혔다.[14] 칸베 토시오 코치는 아직도 호사방등의 KIA 타이거즈 커뮤니티의 팬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데 이 시기에 꽃을 피웠던 투수진이 가히 엄청나다. 유동훈, 곽정철, 손영민, 이범석 등등.[15] 양현종은 이 답변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16] 양현종이 최고의 투수로 성장한 후, 54번은 28, 29, 47번과 함께 좌완 투수를 상징하는 번호가 됐다.[17] 아예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와 계약이 확정됐다는 오보까지 뜰 정도였다.[18] 기존 버스는 후원 받은 5,000만원으로 구입했던 2008년식 중고 버스로, 좌석도 좁고 에어컨도 제대로 안 나오는 애로사항이 꽃피었는데, 양현종이 누군가의 후원 없이 본인의 사비를 깨서 기증했다. 심지어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성공하면 버스를 기증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던 바 있다.[19] 3분 10초쯤에 나온다.[20] 한국시리즈 우승, 좌완 투수 신기록, 둘째 아이[21] 동갑인 김광현이 20대에 황태자라 불리던 외모가 어느새 주름이 보이는것과 구별된다(...)[22] 구단 유튜브에서 밝혔다.[23] 양현종은 미국 진출 전까지는 오로지 KIA 타이거즈에서만 활동한 원클럽맨이었기 때문에 부진 여부와는 관계 없이 이런 관점에서 보면 KIA만의 대투수라는 말 자체는 맞는 말이다.[24] 여담으로 양현종에서 이름 마지막 글자가 빠진 투수 양현은 같은 원리로 대투수에서 마지막 글자를 뺀 '대투' 또는 '붉은청'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25] 하지만 모 팀에서 이를 뛰어넘은 볼넷 그랜드슬램이 터졌다.[26] 2019 프리미어 12 도중 일본에서 붙여준 별명.#[27] 사신 김광현, 대부 최형우, 마이스터 이용규 등등. #[28] 공교롭게도 메이저 리그 진출 도전 후 입단한 팀인 텍사스 레인저스의 팀 상징색이 파란색과 빨간색이다.[29] 김상수가 왜 주작이냐면 동생이 음원 사재기로 차트를 주작했다는 의혹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는 윤성환에게 별명이 넘어갔다. 게다가 김상수는 상징색이 검은색인 kt로 이적해서 더 이상 푸른 주작이라는 드립을 칠 수가 없다.[30] 반대로 양현이 잘 하고 양현종이 부진했던 2020년 개막전에 한해선 대투수종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31] 정작 그 경기에서 대량 실점하며 웃음거리가 됐다.[32] 작년 시즌에 8점대 ERA를 기록했다가 점차 각성하여 평균자책점 1위를 기록한 적이 있다. 초반에 부진해도 어차피 후반에 살아날 것을 알고 있으니까 팬들도 5선발을 농담으로만 썼다.[33] 해당 사진에는 임태훈이 작성한 글이 있는데, 임태훈과는 벨트를 빌려주는 등 상당히 막역한 사이다.[34] 참고로 당시 로페즈의 나이는 이대진 다음으로 나이가 많았다[35] 과거 리그베다위키 시절 이 항목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이 부분이 '이종범의 아들 정후군에게까지'라고 서술되어 있었다. 대략 '어린애한테 무슨짓이냐'는 느낌의 뉘앙스였는데, 그랬던 이정후가 저 양현종과 함께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국가대표 외야수로 성장한 것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36] 사실 이것도 와이프가 얘기해서 이 정도일 가능성도 있다. 즉 원래 옷에 전혀 관심이 없다가 결혼하고 어느 정도 신경쓰는 듯.[37] 해당 경기는 3연전 모두 우천취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