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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1 03:12:50

다둥이

1. 개요2. 아이를 많이 낳는 이유3. 한국
3.1. 인식3.2. 혜택
3.2.1. 중증장애인 부부의 경우
3.3. 불이익
4. 실존 인물
4.1. 다둥이 자녀를 둔 실존인물4.2. 본인 형제가 다둥이인 실존인물
5. 가상 인물6. 관련 문서

1. 개요

자녀를 많이 두는 가족을 뜻하는 말이다. 나라마다 기준은 다르며 한국에서는 3자녀 이상을 다둥이라고 보았지만 현재는 2자녀 이상부터 다자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2023년 8월, 정부는 극심한 저출산때문에 2인부터 다자녀 혜택을 적용하기로 하였다.

다둥이를 낳은 부부는 저출산 문제로 인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애국자라는 말도 듣는다.[1] 한국과는 달리 해외에서는 다둥이와 비슷한 의미를 가진 단어가 딱히 없는 듯 하다.

2. 아이를 많이 낳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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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국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가정은 자녀 3명 이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당시에도 산아제한정책이 실현되는 시기였지만 대체로 평균적인 가정의 자녀는 3명 이상이었다.[3] 때문에 1970년대에 태어난 아이가 3명이어도 자녀 수가 보통이라고 생각하는 부모들도 많았으며 4명 이상인 가정이라 해도 다둥이라는 단어는 거의 쓰이지 않았다. 예시로 1960년대생인 이재명, 원희룡의 경우만 하더라도 형제가 각각 7남매, 6남매인데 아무도 형제가 많다고 하질 않는다. 왜냐하면 이들처럼 해당 형제수를 가진 가정이 많았기 때문이다.[4] 또 1970년대생인 유재석도 형제가 3남매이지만 같은 사유로 형제가 많다고 생각하질 않았다.

하지만 1980년대에 들어서 전두환 정부에 의한 매우 강력한 산아제한정책이 실현되면서 한 자녀만 갖는 가정이 늘어났고 반대로 세 자녀 이상의 다둥이를 가진 가정의 경우 점점 줄어들었다. 물론 1990년대 초중반에는 산아제한 완화조치를 취해 출산율이 잠시나마 올랐으나 그것도 아주 잠깐이었다.

2000년대~2010년대 들어서는 셋째아 이상 비율이 약간 늘었는데 이는 정부의 출산 장려정책으로 인해 셋째아 이상 비율이 한시적으로 늘어났다. 다만 동 시기에 셋째아 이상 비율 증가폭보다 첫째아 비율 증가폭이 훨씬 컸기에 전체 출산율은 이보다 더 낮아졌다. 하지만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약빨이 다 되 2020년대 들어서는 셋째아는 커녕 둘째아 이상 비율이 큰 폭으로 하락했다.

그 결과 현재 국내에서는 3자녀 기준 다둥이 가정의 비율(10년차 이내, 3자녀 이상)이 10% 미만의 소수라 찾기 힘들다. 같이 저출산을 겪은 이웃나라인 일본의 경우에도 한국에 비해 3자녀 이상 가정(20%)이 한국에 비해 더 많으며[5] 심지어 중국도 한국보다 3자녀 이상 가정(15%)이 많은 편이다. 이건 타 선진국도 마찬가지다. 또한 아이를 키우기 힘들다는 생각이 흔하기 때문에 셋째에 대한 선호도가 적은 편이다. 외동자녀 비중은 전 세계에서 한국이 가장 높다.[6] 더불어 셋째아 이상 비중도 전세계에서 한국이 가장 낮다. 한국은 중국과 함께 30대 이하(1980년대 중반 이후 출생자)에 한해 외자녀 비율이 전 세계 기준 1, 2위를 다툴 정도로 흔하며 2000년대 이후로는 더욱 흔해졌다.

이로 인해 2020년대에 들어서면서 2명도 많다고 느껴지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2010년대 후반에 들어서부터는 출산율 하락이 급격해지고 2020년대 이후 0명대로 추락하는 등의 저출산 현상이 심화되자 2명도 다자녀라고 체감되기 시작하였다. 2023년 8월부터 정부에서도 다자녀 기준 혜택을 2명으로 추진함에 따라 2자녀 기준으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3.1. 인식

사실 한국에서는 예로부터 다자녀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다.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속담도 《장자》에 언급될 정도로 오래된 속담이다. 다자녀가 가난의 상징으로 묘사되는 경우도 많고, 옛날에는 많이 낳았다는 이야기 때문에 다자녀가 긍정적이었나보다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다둥이 집안을 두고 '애국자' 같은 소리가 나오는 것은 21세기에 들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삼강오륜에서 언급되는 '부자유친', '부위자강'이 아예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윤리로 여겨져, '아버지'로 언급이 되어 있지만 곧 '부위부강' 같은 윤리로 인해 어머니의 행위와도 연결이 되는 부분이기에 부모가 자식에게 모범이 되고 가능한한 끈끈한 관계가 이상적이었다. 흔히 유교가 저출산을 유도한다는 주장이 많이 나오는 것이 학력주의로 인한 부담과 더불어, 이렇게 자식을 키우는 대상의 역할을 이웃이나 적당한 친인척이나 보모 등에게도 주는 다른 문화권과 달리 부모로 한정짓는 경향(조부모 등이 키우는 모습은 있었지만 이것이 양육에서 크게 다루어지지는 않았다.)이 강하여 자식을 가지는 부모의 부담이 꽤 크기 때문이다.

자식을 성숙할 수 있는 존재로 간주하지 않다보니 부차적으로도 금전적 부담이 큰데, 예를 들면 영어권의 부모는 아이가 금전적으로 너무 많은 것을 원하면 아이가 성취감을 느끼도록 부모가 어떤 일에 따라 용돈을 주는 식으로 관리를 하고, 정해진 날에 사준다는 식으로 관리를 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는 아이가 그것을 못 접하게 하는 대처까지만 허용되고, 정말 못 사주면 부모가 안타까워하는 경우가 많으며, 자식은 부모보다 미성숙하고 부모가 이끌어준다는 관념이 강하여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결핍'이 온다는 속설이 유행하기도 한다. 아이가 자신의 힘으로 무엇을 이루어내면서 기뻐하는 것을 대신에 더 좋게 평가한다. 성숙한 아이를 두고 다른 유교 문화권이 아닌 지역과는 달리 다소 부족한 환경에서 철들면 너무 철이 빨리 들었다며 안타까워하는 인식도 있다. 어떻게 다른가하면, 미국 등지의 문화권에서는 자식이 고난에 대한 회복탄력성이 길러졌다며 좋아하는 인식까지 있다. 그러니까 유교적인 가치관에서는 자식을 키우면 돈과 시간이 전반적으로 많이 들 수밖에 없게 된다.

흥부전에서도 가난한 흥부는 '원찮은 자식'을 묘사하며 9명은 낳았지만 놀부는 무자녀, 딸 하나 정도로 묘사될 정도다. 다만 피임 기술이 발전하지 못해 '능력도 없이 낳는다'라는 관념이 통하지 못할 시기였고, 어쩌다보니 아이가 예상치 못하게 생기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였다보니 당시 사람들은 어렵사리 자식을 키웠다. 대를 이어야 한다는 인식이 아주 강했지만 의도적으로 자식을 많이 가지는 것과는 별개의 이야기였다.

일제강점기 시절에도 경성부등 도시지역을 중심으로 아이를 3명 이하로 적게 낳아야 한다 라는 인식이 퍼져 있었으며, 의외로 당대 인물들 중에 영아사망률을 제외하더라도 3명 이하의 자녀수를 가진 인물도 적지 않았다. 당시 일본 대도시 지역보다 경성 지역의 출산율이 약간 적은 이유도 이에 기인한 것으로 보여진다. 또한 도시 지역이 아니더라도 일제의 착취나 강제징용 등으로 비자발적으로 아이를 적게 낳은 경우도 종종 있었다.

다만 한국 전쟁이 터지지면서 사망자도 많이 속출했고 전쟁고아까지 생겨나면서 정부는 다자녀를 권장했으며 이로 인해 1955년생부터 1970년생까지의 사람들은 북한과 함께 역사상 가장 형제수가 많은 세대가 되었다.[7]

한국은 1970년대 이전에는 3명 이상의 자녀를 둔 가정이 대부분이었지만(1970년 당시 출산율이 4명대 중반이었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매우 강력한 산아제한 정책으로 출산율이 급속히 줄어든 탓에 1980년대 중반 이후 다둥이 가정은 드물어졌다.

산아제한의 폐지로 출산율이 올라간 첫 해인 1991년에도 이미 미국이나 일본보다 한국의 출산율이 낮으며, 노령화가 한국처럼 빠른 나라가 없다는 말이 있었다. # 그런데 당시엔 자식을 더 잘 키우기 위해 자발적으로 산아제한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이미 퍼져 있었다. 과외 금지 정책 같이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정책이 아니라, 이 시기쯤 되면 나름 호응이 있던 정책이었다. 위의 출처에 실린 1983년의 글을 보면 49세의 사업가는 요즘은 노력하면 먹고 살 수 있는데 산아제한이 이상하다고 하지만, 18세 여고생은 물질만능주의 시대라 많이 낳으면 늙어죽을 때까지 기운 옷 입고 살아야 한다는 말을 한다. 지표상으로는 6%~12%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였으나, 양육 비용도 이에 맞추어 증가했고, 대졸만 되어도 인텔리였던 시대에서 대졸이 너무 많은 시대로 바뀌어갔다. 교육을 많이 시켜야 하는 등 출산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많다는 소리[8]가 들렸고, 3명씩 낳아도 야만인으로 보는 분위기가 생겼다. 이는 조금은 수그러들었지만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셋째 이후를 가졌다고 그 가정을 욕하는 사회상은 의외로, 오래되었다.[9] 1979년 발표된 박완서의 단편 소설 <옥상의 민들레꽃>에도 나와 있다. 심지어 친구들이나 친척들한테 셋째 가졌다 하면 아직도 "미쳤어?" 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그 정도로 아이를 키우기 힘들다는 생각이 흔하기 때문에 셋째에 대한 선호도가 적은 편이다.

1995년에 쓰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어머니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설명을 한다. '현대의 어머니는 자녀의 교육과정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더 한층 책임이 무거워지고 있다. 치열한 사회경쟁에서 늠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을 만들기 위하여, 어머니들은 유아교육으로부터 최고학부에 이르기까지 힘을 다하여 정성을 쏟는다.' # 1996년쯤 되자 '다음 세기 초가 되면 우리나라가 G7의 반열에 오른다더라. 2020년의 한국은 일류국이 된다고 하니 자식들이 좋은 세상을 살게 되어 기쁘다. 그런데 저출산, 성비 불균형은 걱정이다'라는 주장이 등장했다. # 그러나 이때도 출산 장려는 꺼리는 인식이 있었다.

2020년에 와서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0.8명대 출산율을 보이고 있다. 이제는 자녀가 2명 있는 집안을 봐도 부러움을 사거나 애국자라는 칭호를 얻기가 쉬워졌다. 다문화 가정이 이 수치가 낮아지는 것을 막고 있다. ## 한국인 토박이의 출산율 감소보다 다문화 가정의 출산율 감소가 늦어 다문화가정 출신 신생아의 비중이 늘고 있다.# 한 몽골 출신 대학원생은 다문화가정은 한국은 선진국이니까 지원이 잘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자식을 가진다든가, 한국 사회에서 경쟁이 중시되는 이유를 못 들어 동조하지 않고 있어 "내 주변에 있는 많은 다문화 가정의 자녀 수는 평균 3명 정도인 듯하다."라고 증언하기도 했다. #

치안과 복지 체계가 붕괴한 극빈국의 경우 한국보다 출산율은 훨씬 높고, 국민 대부분이 다자녀 가정이라는 점이 주목받는다. 합계출산율 1명 후반~2명 초반인 중진국 수준의 출산율을 보이는 북한 정도가 유일한 예외인데, 이쪽은 비효율적 정치체제나 부패 등이 경제가 발전하지 못하는 원인으로 꼽힌다. 또한 예로부터 이어져온 한민족의 종특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여러 민족이 사는 미국에서도 한국계가 0.8명대로 가장 낮았고, 중국에 사는 조선족 또한 한자녀 정책 대상이 아닌데도 정책 대상인 한족보다 출산율이 낮았다.

물론 한국도 세계 최악의 빈곤국이던 시절에는 그만큼 출산율이 높았다. 다만 한국은 자식을 안 줄인 것이 아니라 '못' 줄였던 것이다. 피임 기술이 부족해 어쩌다보니 아이가 예상치 못하게 생기는 경우가 많았고 애절양 같이 자식을 갖고 스스로 거세를 했다든지, 간장을 사발로 마셔 낙태를 하려고 했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내려오고 있다.

사실 '다산으로 인한 문제점'이 어느 정도인가는 문화적 가치관에 의해 결정되어, 한국은 경제적으로 살 만해질 때도 사람들이 자식을 가지면 경제적으로 힘들었기 때문에 산아제한 폐지가 늦었다. 한국인의 시선으로 이해가 힘들고, 서구적인 시선[10]으로도 동양인을 이해하기 어렵기는 하지만, 영국 같이 집값이 너무 비싸 청춘이 보트 하우스로 밀려나도, 한국보다 자식에게 무언가를 줄 수 없는[11] 나라들이 한국보다 출산율이 높다. 선진국이든 개발도상국이든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기능하던 지역에서는 여론 문제로 함부로 산아제한정책을 시행하기 어려웠지만, 한국은 산아제한정책이 펼쳐지던 시기에 집단주의적 가치관으로 상명하복 등을 중시하던 사회 분위기가 있어 1970년대에는 둘만 낳아 잘살자라는 구호를 외치며 산아제한정책을 밀어붙였고, 1980년대엔 인구가 1천만으로 줄어야 한다, 2020년대에도 출산장려 같은 것이 필요하겠느냐는 관료사회의 여론이 존재했다. 게다가 당시에는 정부에서 남북통일 문제를 지나치게 염두에 두었다. 통일이 되면 그만큼 국가에서 부양해야 할 인구가 늘어나기에 출산율이 크게 줄어도 문제 없을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2000년대 들어 세계 최저 수준으로 출산율이 가까워지자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만약 다른 나라 중 한국 같은 나라가 많이 있거나 자식을 한국보다 많이 낳는데 소득이 한국보다 높은 나라가 거의 없었다면 산아제한 폐지가 더 늦춰졌을 수도 있다.

전 세계적으로 유교 문화가 가장 뿌리 깊게 박힌 한국 특성상 예로부터 가정을 중시하기 때문에 이혼, 재혼에[12] 대한 인식이 좋지 못했고 부끄러운 일로 여겨지곤 했다. 특히 남성보다는 여성이 더더욱 그랬다.[13] 재혼가정의 경우 이복형제, 이부형제와 같이 사는 전제하에 기본적으로 형제자매수가 평균보다 많은 케이스가 많은데 대표적으로 조성모, 조정석, 은지원, PULLIK 등이 있다. 물론 박기량이나 러너, 원태인의 사례처럼 2명인 케이스도 있지만 대체로 3명 이상이 많았다.[14] 다만 현재는 극심한 저출산으로 인해 재혼 가정이라 할지라도 2명 이하인 가정이 일반화되었다.

젊은 세대로 갈수록 출산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1980년대생 초반 이전 세대인 기성세대까지만 해도 결혼을 하면 자녀 3명은 낳지 않아도 무조건 1~2명은 낳아야 된다는 인식이 있었지만[15] 자율주의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자란 1990년대생 이후 세대의 경우 결혼을 해도 출산을 하지 않은[16] 케이스가 급증했다. 이들 세대에서 3명 이상 자녀를 가진 비율은 출산 문화의 틀이 크게 바뀌지 않은 이상 가임기가 지난 40대가 되어서도 100명 중에 세 손가락 안에 들 확률이 높다. 아래 실존인물 중에도 해당 세대에서 세 자녀 이상 둔 인물은 국내를 한정하면 최민환, 율희부부가 유일하다. 하지만 이들 부부조차도 이미 둘째까지 있는 상태에서 세 번째 임신을 한게 아니라 두 번째 임신 당시 쌍둥이를 얻어 다자녀 가정이 된 케이스다. 연예인은 아니지만 비글부부도 해당 케이스에 속한다.

동아시아 사회가 서양 사회에 비하면 부모의 자식에 대한 헌신을 강조하고 좋은 직업을 추구하는 경향이 커 교육 경쟁이 심하여 인구압에 민감한 편에 가까운 것인데, 이런 가치관이 과거에는 고속 경제 성장을 이끌었으며 내부의 과잉경쟁으로 인한 폐해를 알고 있고 경쟁을 하지 않고 자식을 키우는 것은 아예 요령을 모르거나, 세계가 다 자신과 자신들이 같거나 가장 우월한 정책을 폈던 것이라고 여기거나 서구처럼 공부하지 않는 사람은 그냥 경쟁을 않고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경향은 그런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안 믿거나 윤리적이지 않다고 여겼기에 그 당시를 겪었던 사람들은 아직도 대한민국의 이상적인 인구 규모에 대해 잘 모르고, 인식 자체도 좋지 않다. 실제로 80년대만 해도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는 출산 장려 움직임도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이런 나라를 두고 특이한 뉴스거리로 삼았다. 남유럽도 동아시아와 마찬가지 인식으로 인해 서구치고는 저출산인 편이다. 엄밀히 말하면 친밀함이 중시되는 편이라 동아시아와는 살짝 다른 면은 있다.

북미권, 유럽권 사회의 혼외출산 문화나, 영국의 차브족이나 일본의 마일드 양키족 같은 문화, 한국보다 매우 빠른 수면 교육 등을 알게 되면 놀라는 시선을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이들이 자녀를 너무 많이 가진다고 비난받게 되는 문턱은 한국에 비해 높다. 이스라엘, 영국은 민주주의 국가이므로 차브족, 하레디가 유지된다는 것 자체가 한국에 비해 이런 부작용에 무관심하다는 근거가 될 수 있다.

미국의 기업인 일론 머스크는 8명의 자식을 가지고 있으며, 그는 1.8명에 가까운 미국의 출산율에도 우려를 표하고 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또한 자녀가 8명인데도 다소 비난은 있었으나 총리를 못하게 할 정도로 정치적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반중 정서가 극에 달하는 2020년대에도 출산을 포기하는 탕핑족 같은 모습을 보면 이때만큼은 동정 여론이 생기기도 한다.

가정을 중시하는 한국인의 가치관 때문에 다둥이 관련 기사나 뉴스 영상에는 비난댓글이 다수다. 이런 비난 대상은 법적으로 정해진 양자 입양 자격도 못 채우면서 국가, 정부나 지자체에서 지급하는 육아 관련 보조금만 노리거나, 자기만족만을 위해 대책 없이 아이만 잔뜩 낳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출산 자체가 드문데다, 그렇게 출산을 한 사람끼리 비교해도 한국은 아동빈곤율이 OECD 회원국과 비교해도 그 평균의 절반 수준이다. # 프랑스나 일본보다 아동이 덜 빈곤하다고 평가받는다. # 서유럽, 이스라엘 등의 지역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수십 배는 많지만, 정치적·사회적 차원에서 다산 자체를 문제시하지는 않는다. 한국 같은 곳에서 하레디 같은 사람들이 생긴다면 각종 법적 규제를 각오해야 할 수 있다. 미국에서도 아시아계 이민자는 자식을 많이 낳는 것이 버거운 가치관을 가지는 등의 영향으로 백인보다 출산율이 낮다.#

산업화가 이루어지는 초기엔 이전 세대가 해온 것처럼 관습적으로 다산을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경향이 줄었다.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영국도 1000명당 조출산율은 하락하는 추세며,# 차우셰스쿠의 인구정책 같은 강압적인 출산 장려 정책도 효과가 없거나 사람들이 적응하여 사문화되는 일이 생긴다. # 루마니아의 경우, 뇌물을 의사에게 주어서라도 낙태를 하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했다. #

선진국치고 합계출산율이 3명대로 상당히 높은 이스라엘은 자식을 보는 관점이 한국과 정반대다. 자녀를 일종의 신입 사원, 노동력으로 보는 인식이 강하다. 교육열이 높다는 것, 가족 중시 문화가 몇 안되는 공통점이다. 3명을 다자녀 기준으로 삼으면 거의 유일하게 다자녀가 주류를 이루는 선진국이다. 지원은 북유럽 수준에는 못미친다고 여기며, 현지에서는 수천 년간 내려온 문화적 규범이 다산을 이끈다고 생각한다. 종교성이 다산에 영향을 끼치지만, 이스라엘인들은 종교성이 없는 사람이라도 최소 2명은 낳는다. 거기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생존과 종교적 이상 실현을 위해 전세계에 디아스포라를 쥐어짜서 모은 인위적 국가다. 그 때문에 문화적 기반이 다른 여러 민족들이 잡채처럼 모여있고, 이들 중 수적으로 다수인 동유럽계 빈민 출신 아슈케나지들은 살아온 환경 때문에 다산을 장려했고 이들이 하레디의 모태가 되었다.

물론 한국에서도 한국전쟁 이후 1970년대까지는 다둥이가 흔했다. 전후세대 문서로.

통일교 신자들이 자녀를 많이 낳는 것으로 유명하다. 통일교를 믿는 사람들 중에 한국에 와서 국제결혼한 일본인 신부의 경우 세 자녀 이상 둔 케이스가 흔하다. 그도 그럴 것이 당장 문선명 일가만 봐도 자녀 3명은 기본이고 4명 심지어는 6명씩 둔 후손도 있다.

그 외에 미국에서는 몰몬교 신자들이 자녀를 많이 낳는 걸로 유명하다. 이들의 평균 출산율은 평균 3.5명을 웃돈다고 한다.

이복형제이부형제가 있는 경우에는 본인 형제가 다자녀인 집안이 꽤 있다. 하지만 이는 좀 애매한 측면이 있는데, 본인 형제를 한쪽 부모에 한해서 두었느냐 아니면 양쪽 부모에 한해서 두었느냐에 따라 엇갈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복, 이부형제와 같이 살지 않은 경우 대체적으로 한쪽 부모에 한해서 생각하는 케이스가 대부분이다. 반면 이복, 이부형제와 같이 사는 경우 서로 형제라고 생각하는 케이스도 흔히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는 주로 이복형제 지간보다는 이부형제 지간이 훨씬 많다.

3.2. 혜택

다자녀 가정은 여러 사회적 제도로부터 혜택을 받기도 한다.
대한민국/출산육아지원정책 문서를 참고하는 것도 좋다.

3.2.1. 중증장애인 부부의 경우

중증장애인은 "근로능력 없음"에 해당된다. 이게 부부 모두 그러니 당연히 기초생활수급자가 된다.

일단, 기초생활수급자 상태에서 아이를 낳으면 해산급여와 함께 생계, 의료, 주거, 교육급여도 1인 늘어난 기준으로 적용된다. 이들과 별개인 영아수당, 아동수당, 양육수당도 따로 받을 수 있다.

6명을 낳아서 8인 가족을 이룰 경우, 최저생계비 270만 원, 주거비 130만 원, 아동수당/부모급여/가정양육수당 등 기타 수당 100-200만원을 받게 된다. 못해도 월 500만 원 이상이며, 어린 자녀가 많을 경우 월 6-700만 원까지 나라에서 돈을 받는 셈이다.[18]

기초생활수급자 신분인 만큼 통신비 감면, 전기요금 감면, 수도요금 감면, 가스요금 감면, 아동급식카드, 문화누리카드는 물론 나라미도 8인 기준으로 매달 80kg을 구입할 수 있다. 이것까지 생각한다면 지원 폭은 상상을 초월할 수밖에 없다.

최저생계비에 미달돼서 기초생활수급자의 일종인 조건부수급자가 되는 다둥이 가정은 드물다. 다둥이 규모가 10남매 이상이 아닌 경우, 부모 모두 일하면 최저생계비를 넘어가기 때문이다. 중증 장애인들이 같은 상황일 경우, 재산이 기준보다 많아서 기초생활수급자에 실패하는 경우라 이런 케이스는 드문 편이다.

다만, 재산 기준은 가구 규모에 상관없이 그대로이기에 이 점을 주의하면서 진행해야 한다. 그래서 광역시들은 다른 시군에 비해 출산장려금이 적은 편이다.[19] 어느 정도 머리를 굴릴 수 있는 장애인이라면 광역시로 이사온다.[20]

3.3. 불이익

위의 혜택과는 반대로 다자녀 가정이 오히려 불이익을 받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의도적인 것은 아니고 행정처리상 허점에 가깝다.

4. 실존 인물

4.1. 다둥이 자녀를 둔 실존인물

1. 한국인 중에서는, 1960년대 이후 출생자이면서 자녀를 셋 이상(1950년대 이후 출생자는 넷 이상) 두는 사람에 한하여 서술한다.[21]
2. 외국인 중에서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아직 다산다사(多産多死)가 일반적인 저개발국 출신의 사람은 기재하지 않는다.

4.2. 본인 형제가 다둥이인 실존인물

위 문단에서 제시된 원칙들을 지켜서 서술하자.
90년 이후 출생자는 3남매(80년 이후 출생자는 4남매)이상 한해서 기재

5. 가상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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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관련 문서


[1] 그러나 이 경우는 책임감을 단단히 가져야 한다. 무책임 하고 그렇지 않으면 인간형 바퀴벌레빈대 소리 듣는게 기본이다.[2] 그래서 동북아시아인이 이런 사람들을 두고 왜 책임감이 없냐고 주장하기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저쪽 부모나 기타 양육자의 입장에서도 사회 전체가 혼자 일을 많이 해내는 것을 중시해서 그렇게 키워야 하고, 조상 대대로 그렇게 교육 받았다며 가장 아이가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키운 것이라며 억울하다고 생각할 확률이 높다. 인류 자체가 자식에게 교육을 안 시키려는 모습은 없으며, 그 교육의 양상이 다른 것뿐이다.[3] 산아제한 정책은 1960년대에 와서야 시작되었고 1970년대에 와서는 두 자녀 운동을 해왔지만 1970년대 당시에도 두 자녀만 낳는 가정은 많지 않았다.[4] 오히려 같은 세대인 윤석열, 오세훈의 경우 둘 다 여동생 한 명뿐인데 해당 세대에서는 굉장히 희귀한 케이스다.[5] 밑에 실존인물 사례에서도 나오듯이 4자녀 이상인 집안도 생각보다 꽤 많다.[6] 중국이 가장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계획생육정책 당시 한자녀 권유는 한족에만 한정되어있었다. 거기다 한족이어도 농촌지역 거주자의 경우 둘째 출산도 허용했기에 한자녀 정책 수혜자는 생각보다 많지는 않다. 폐지 후인 2020년대인 지금도 전체 출생아 수 중 한국보다 첫째아의 비중이 낮으며 더불어 셋째아 비중도 한국보다 훨씬 높다.중국사례한국사례[7] 당시 출산율이 4.5~5명이었다.[8] 경제학계에서는 이를 설명하는 이론이 존재한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그 여윳돈으로 둘째에게도 첫째와 같은 정도의 투자를 하는 것보다 첫째의 자질을 늘리는 것이 더 비용이 적게 들고, 자질을 키우는 데 더 유리하다는 것이다. # 1인당 구매력 평가지수(PPP)와 출산율의 음의 상관관계(영문)[9] 20세기 극초반 대한제국시대 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농업으로 대표하는 1차산업에서 2차, 3차 산업으로 빠르게 바뀌면서, 농사일때문에 노동력충족을 위해서 자녀를 많이 가질 이유가 없게 되었다는 예가 있다.[10] 기독교적인 사고 방식은 태어난 사람은 어떤 '소명'을 갖고 태어난다는 것이지 부모가 자식을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아이가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도록 교육을 받는 경우가 많다.[11] 영국/교육, 유치원/외국 등의 문서를 보면 알 수 있듯 영국 등의 외국에서도 유치원에서는 사회성을 가르쳐야지 한국처럼 글자를 가르치면 잘못된 교육법이라며 지적을 해야 한다는 시각도 존재한다.[12] 다만 사별 후 재혼은 제외.[13] 이혼이나 재혼에 대한 인식이 그나마 관대해진 것도 길어봤자 20년 전으로 얼마 되지 않았다. 재혼가정은 한국에선 흔치 않다. 이에 대한 근거는 옛날 전래동화에서도 나타난다. 등장인물에서 계모, 계부, 새어머니, 새아버지 하면 100% 안 좋은 사람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계모한테 구박받았다는 스토리는 실제사례나 가상사례나 굉장히 흔한 사례.[14] 재혼을 하게 되면 당시에는 가임기에 재혼을 하는 케이스가 많기에 이복 또는 이부형제가 생길 확률이 높은데 한국에서는 외국에 비해 이복형제, 이부형제간 사이가 안 좋을 확률이 높은 것도 이에 기인한다. 때문에 이복, 이부 형제가 있는 사람에게 형제가 몇 명이냐? 하고 물을 때 대체로 이복, 이부형제는 제외하고 대답하곤 한다.[15] 결혼과 출산을 해야 성인으로서 자립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집안 어르신의 강요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행하는 경우도 많았다. 장애인, 범죄자, 성직자, 부모형제 없는 고아와 같이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나이가 찼는데도 결혼을 하지 않거나, 결혼을 했음에도 아이를 낳지 않으면 신체적/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문란하고 방탕한 사람이라고 바라보는 시선이 이 세대까지만 해도 강했다.[16] 1980년대생들이 소위 낀 세대 라고 부를 정도로 1990년대생들은 지금까지의 대한민국 세대들과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태어나서 권위주의적인 사회 분위기가 아닌, 탈권위주의적인 사회 분위기(ex.교내 체벌금지 등)를 보고 자라왔으며, 부모는 물론이고 교사, 선배 등 자신보다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당당하게 말하기 시작한 세대이다. 때문에 이전 세대와는 다르게 결혼은 필수라는 인식도 적은 편이고 결혼을 하더라도 자발적으로 딩크족으로 살아가는 비율이 높아진 첫 세대이며(물론 이전 세대에서도 있긴 하지만 일반적인 케이스는 아니다.) 이혼에 대한 생각도 이전 세대에 비해 자유롭다. 또한 출산율 하락의 가장 큰 원인도 이들 세대라는 전문가들의 분석도 적지 않다. 2010년대 후반부터 계속해서 출산율이 하락했는데 당시 20대 산모 비율이 매년마다 10%대로 감소했기 때문이다. 주의할 것은 당시 일부 부모 세대가 이를 그릇된 권위에 호소하기에 악용하여 1997년 IMF와 2000년대 교육 문제 책임을 90년대생한테 전가하는 20대 개새끼론을 고집하여 반감을 사기도 한다는 것인데 촌지 막장교육을 묵인한 당시 부모세대의 병폐에 직간접적 피해를 입은 90년대생 이하는 이러한 남탓에 비판적이다.[17] 이 때문에 계급 의식이 희박하여 사회가 수평적이라는 평이 많다. '계층 이동' 걱정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대신 수평성에 기인한 권위에 대한 도전에 대한 권장으로 기인한 '후츠파'라는 국민성 때문에 한국인들이 이들을 대하고 나면 뻔뻔하다는 평도 한다. 다만 아이가 일찍 성숙하게 하는 교육이기에 부모 입장에서 해 줄 일이 크게 줄어들게 되고, 이렇게 교육이 된 모습을 본 사람들은 자식이 불확실하고 척박한 사회를 잘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이 잘 되었다며 좋아한다.[18] 8~12년간 6명을 낳고, 부부 모두 중증장애인 신분을 유지한다는 조건이다.[19] 출산장려금은 나라에서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서 시행하기 때문에 소득이 인정되므로 그만큼 받는다면, 생계급여가 줄어드는 것이 보통이다.[20] 입주 순위 1순위, 좋은 환경 및 좋은 여건에 유리, 높은 주거비 지원이 주된 이유다. 재산 기준 또한 광역시가 1억 3500만 원으로 높은 편이다.[21] 그 이전 출생자(1940년대) 세대의 경우 둘 이하 자녀를 둔 사람이 흔치 않을뿐더러 오히려 셋 혹은 그 이상의 자녀를 두는 가정이 많다.[a] 2번 결혼해서 낳은 자녀들이다.[a] [b] 3번 결혼해서 낳은 자녀들이다.[a] [a] [27] 14남매의 현재 나이는 첫째([age(1990-01-01)]세), 둘째([age(1992-01-01)]세), 셋째([age(1993-01-01)]세), 넷째([age(1995-01-01)]세), 다섯째([age(1997-01-01)]세), 여섯째([age(1998-01-01)]세), 일곱째([age(2000-01-01)]세), 여덟째([age(2001-01-01)]세), 아홉째([age(2007-01-01)]세), 열째([age(2009-01-01)]세), 열한째([age(2010-01-01)]세), 열둘째([age(2011-07-23)]세), 열셋째([age(2012-01-01)]세), 열넷째([age(2016-07-01)]세)이다.###[28] 인간 극장에 나온 후로 시청자들의 엄청난 화제와 관심으로 11남매였던 시절에 나와 14남매가 될 때까지 한번 더 나왔다. 2021년 현재 근황으로는 14남매+부모 2명+할머니+2명의 며느리+4명의 손자들과 함께 산다고 알려져 있으며 가족원을 합치면 무려 23명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제법 인물이 좋으셔서 남매들이 전부 외모가 훌륭한 편. 실제로 첫째 아들은 방송이 나간 후 현재의 아내가 먼저 관심을 보여 집으로 찾아와 사귀게 되었고 결혼까지 골인했다고 한다.[29] 13남매의 현재 나이는 첫째([age(1999-01-01)]세), 둘째([age(2004-01-01)]세), 셋째([age(2005-01-01)]세), 넷째([age(2006-01-01)]세), 다섯째([age(2007-01-01)]세), 여섯째([age(2009-01-01)]세), 일곱째([age(2011-01-01)]세), 여덟째([age(2013-01-01)]세), 아홉째([age(2014-01-01)]세), 열째([age(2016-01-01)]세), 열한째([age(2017-01-01)]세), 열둘째([age(2017-01-01)]세), 열셋째([age(2020-01-01)]세)이다.###[a] [b] [32] 여담으로 할아버지 프레드부터 본인까지 3대가 모두 똑같이 3남 2녀를 두었다.[a] [34] 10남매의 현재 나이는 첫째([age(2006-06-01)]세), 둘째([age(2008-01-01)]세), 셋째([age(2009-01-01)]세), 넷째([age(2011-01-01)]세), 다섯째([age(2013-01-01)]세), 여섯째([age(2016-01-01)]세), 일곱째([age(2017-01-01)]세), 여덟째([age(2018-01-01)]세), 아홉째([age(2021-12-01)]세), 열째([age(2023-08-01)]세)#[35] 50년대 출생자이지만, 자녀 수가 워낙 많아서 여기에 추가했다.[a] [a] [a] [a] [40] 10남매의 현재 나이는 첫째([age(2004-01-01)]세), 둘째([age(2006-01-01)]세), 셋째([age(2007-01-01)]세), 넷째([age(2009-01-01)]세), 다섯째([age(2011-01-01)]세), 여섯째([age(2012-01-01)]세), 일곱째([age(2014-01-01)]세), 여덟째([age(2019-01-01)]세), 아홉째([age(2021-01-01)]세), 열째([age(2023-05-01)]세)[a] [42] 3명은 입양하였다. 물론 친자녀만 쳐도 3명이라 원래도 다둥이 부모긴 하다.[a] [44] 딸들은 쌍둥이다.[45] 4명의 부인 사이에서 얻었다.[a] [a] [b] [49] 아들과 막내딸은 쌍둥이다.[50] 가족 관계가 복잡한 편인데, 첫째부터 여섯째까지는 첫 아내인 저스틴 윌슨 소생이고, 일곱째와 열째는 사실혼 관계였던 그라임스 소생, 여덟째와 아홉째는 현 파트너 시본 질리스 소생이다. 또한 원래 9남 1녀였으나 3남이던 재비어가 성전환 후 이름도 비비안으로 개명했다.[a] [52] 첫째([age(2004-01-01)]세), 둘째([age(2006-01-01)]세), 셋째([age(2008-01-01)]세), 넷째([age(2011-01-01)]세), 다섯째([age(2014-01-01)]세), 여섯째([age(2019-01-01)]세), 일곱째([age(2023-07-10)]세)이다. #[a] [a] [a] [56] 전처는 고현정.[57] 원래는 5남매였으나, 둘은 어릴 때 죽었다.[a] [59] 7남매의 현재 나이는 첫째([age(2006-01-01)]세), 둘째([age(2007-01-01)]세), 셋째([age(2009-01-01)]세), 넷째([age(2010-01-01)]세), 다섯째([age(2012-01-01)]세), 여섯째([age(2013-01-01)]세), 일곱째([age(2017-03-21)]세)이다.[60] 1남 2녀는 노소영 소생, 1녀는 내연녀 소생.[61] 딸 1명은 입양.[b] [63] 네 자녀 중 둘은 쌍둥이고, 셋 다 어머니가 다르다.[64] 2018년 8월 25일에 아들 쌍둥이를 출산하고 2020년 11월 29일에 딸을 출산하였다.[65] 2009년 후지 테레비 계열의 다큐멘터리 '더 논픽션'에서 '표류가족'이라는 제하에 방영되어 화제가 된 일가족. 다만, 이쪽은 다둥이 가정이라는 점으로 화제가 된 것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넉넉한 형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낭비벽이 심한데다 계획성 없이 즉흥적인 행동을 반복하는 무책임한 부모(특히 아버지) 때문에 나쁜 의미로 화제가 된 사례다.[a] [67] 장녀는 난소암으로 사망[a] [a] [70] 다만, 남동생 1명과 여동생 1명은 일찍 사망해 현재는 7남 5녀이다.[71] 고은아의 남동생. 고은아는 1988년생이므로 이 문서의 조건에 충족되지 않는다.[72] 취소선 처리된 이유는 아버지 슬하 4남매이기 때문인데, 아버지는 안현수의 생모와 한 번 이혼을 했고 재혼으로 생긴 아이 두 명. 즉 안현수에게는 이복형제이며, 안현수의 어머니(생모) 쪽으로는 여동생 한 명밖에 없다. 그러나 안현수의 어머니도 재혼을 했으나, 재혼한 남자 사이에 아이가 있는 것은 불분명하다.[73] 쌍둥이다.[74] 누나랑 쌍둥이 형이 있다.#[75] 조정석 역시 양친 슬하가 아니기에 취소선 처리되었다. 양친 슬하로 친다면 무녀독남이다.[76] 카코의 언니[77] 장남과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친자이며, 차남과 삼남은 입양했다.[78] 아버지 슬하 3자매 중 막내이지만, 어머니 쪽으로는 무남독녀이기 때문에 취소선 처리되었다. 그리고 이복자매들과 같이 자라 온 것이 아니면 본인도 다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79] 바로 상단에 있는 에간 이노우에의 딸이다.[80] 본인이 입양아 출신이라 취소선 처리.[81] 바로 아래 남동생과의 나이 차이는 무려 8살. 심지어 2018년에 6번째 동생이 태어났다.[82] 코무로 마코, 카코의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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