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S. 키 William S. Key | |
본명 | 윌리엄 섀프터 키 William Shaffer Key |
출생 | 1889년 10월 6일 |
앨라배마주 더들리빌 | |
사망 | 1959년 1월 5일 (향년 69세) |
오클라호마주 오클라호마시티 | |
복무 | 조지아 주방위군 오클라호마 주방위군 미국 육군 |
최종 계급 | 소장 |
복무 기간 | 1907 ~ 1949 |
참전 | 멕시코 혁명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
학력 | 오클라호마 대학교 |
1. 개요
미국의 군인.2. 생애
앨라배마주 더들리빌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남북전쟁 당시 남군 소속으로 참가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조지아 주방위군에서 3년간 있었으며 오클라호마로 이주 후 오클라호마 주방위군 소속이 되었다. 1916년 판초 비야를 잡기 위한 베라크루스 원정대에 투입되었다.1917년 미국 원정군 제7보병사단[1] 병참장교로 배치되어 상파뉴 방어전, 생미이엘, 뫼즈-아르곤 공세에 참가해 전시계급 대령까지 올라갔다. 미국으로 귀국 후 주방위군으로 복귀해 사업과 군생활을 동시에 했다. 대공황 당시 청년들의 일자리를 위해 토목공사를 진행했다. 1936년 총선을 위한 경선에 참가했지만 패배했다.
1937년 소장으로 진급해 제45보병사단장을 지냈고 루이지애나 기동훈련에도 참가했다. 전쟁이 발발하고 유럽전선 군사경찰사령관이 되었다가 아이슬란드 무혈입성에 참가했고 유럽연합군사령관이였던 프랭크 맥스웰 앤드루스가 항공사고로 사망하자 3일간 권한대행으로 있었으며 제이콥 데버스에게 인수인계했다.
이후로도 군사경찰사령관을 계속하다가 밀턴 레코드 소장이 임명된 뒤 아이슬란드 기지사령관으로 연합군의 수송루트의 중간지점을 책임졌으며 종전까지 복무했다. 이 공으로 육군근무훈장, 바스 훈장, 미국 공로훈장, 동성훈장, 아이슬란드 매 훈장을 수여받았다.
종전 후 헝가리 연합협상회의장을 지냈고 이후 조지 H. 윔 준장에게 인수인계했다. 귀국 후 오클라호마 주방위군 소속으로 복귀해 오클라호마 천연가스사에서 중역을 지냈고 오클라호마 대학교에서 법학과를 졸업하며 지역사회에 봉사했다. 1949년 주방위군에서 예편했고 1959년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