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W. 오대니얼 John W. O'Daniel | |
본명 | 존 윌슨 오대니얼 John Wilson O'Daniel |
출생 | 1894년 2월 15일 |
미국 델라웨어주 뉴어크 | |
사망 | 1975년 3월 27일 (향년 81세) |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 |
복무 | 델라웨어 주방위군 미국 육군 |
최종 계급 | 중장 |
복무 기간 | 1913 ~ 1955 |
최종 계급 | 델라웨어 칼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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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2. 생애
델라웨어 뉴어크에서 태어났으며 펜실베이니아 옥스퍼드에서 학교를 다녔다. 델라웨어 칼리지를 졸업하고 1913년 델라웨어 주방위군에 사병으로 입대했다. 1916년 뉴멕시코 국경에 배치되었으며 1917년 육군 보병 소위로 임관했다. 미국 원정군 제5보병사단 제11보병연대 K중대 소대장으로 배치되었고[1] 생미이엘 공세 당시 첫 날에 부상입었음에도 전공을 세워 수훈십자장, 퍼플하트를 받았다. 뫼즈-아르곤 공세에도 참가했다.종전 후 애리조나에서 복무하다가 보병학교를 수료하고 하와이, 메릴랜드에서 복무했다. 대공황당시 앨라배마, 테네시의 민간보존단을 지휘했으며 지휘참모학교를 수료했다. 1940년 중령으로 진급했다. 1941년 1월 제24보병연대 2대대장으로 루이지애나 기동훈련에 참가해 호평을 받았다.
전쟁이 발발하자 대령으로 진급했고 제3군 작전부참모장으로 임명되었으며 1942년 연합군 최고사령부에 배치되었다. 주방위군으로 편성된 제34보병사단에 속해있었다.[2] 횃불 작전으로 시작된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공을 세워 준장으로 진급했다.
1943년 시칠리아 전역당시 제3보병사단 부사단장이였고[3] 이후 프레드 L. 워커가 지휘하는 제36보병사단의 부사단장이 되었다. 이 당시에도 활약해 은성훈장을 받게되었다. 윌리엄 W. 이글스의 후임으로 제3보병사단 부사단장으로 복귀했으며 윈터라인까지 진입했다. 하지만 많은 사상자로 인해 잠시 후퇴했다.
안치오 상륙작전에서 독일군의 반격을 격파하고 로마까지 이끌어 소장으로 진급하고 육군수훈장을 받았으며 제3보병사단장으로 영전했다. 하지만 해럴드 알렉산더와 보고에 관련된 갈등을 빚었다.
이후 제3보병사단은 남프랑스 전역으로 배치되었고 지그프리트선까지 진격했다. 뉘른베르크를 해방하고 히틀러가 죽고 유럽전선이 마무리 되자 뮌헨을 점령했다. 전후 본토육군사령부에 배치되었고 보병학교장을 역임했다.
1951년 6.25 전쟁이 발발하던 한국에 배치되어 제1군단장이 되었다. 코만도 작전에 참가했으며 1952년 하와이로 배치되었다. 1954년 인도차이나군사고문단장으로 임명되어 베트남으로 파견되었고 1955년 새뮤얼 T. 윌리엄스 중장에게 인수인계하고 예편했다. 예편 후에도 민간신분으로 남베트남의 군사조언가로 활동했고 1975년 사망했다.
3. 여담
- 장남인 존 W. 오대니얼 주니어는 2차대전에 참전했으나 마켓 가든 작전 당시 아른험에서 전사했다. 차남 J. 앨리슨 오대니얼도 2차 대전 당시 항공사고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