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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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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fff> 이현도
李賢道|Lee Hyeon-do
파일:external/img-khan-co-kr.cdn.ampproject.org/ii/w820/s/img.khan.co.kr/news/2017/01/16/l_2017011601002058200167881.jpg
본명 이현도 (李賢道)
예명 D.O[1]
출생 1972년 9월 5일 ([age(1972-09-05)]세)
신체 키: 172cm, 몸무게: 74kg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아르헨티나|]][[틀:국기|]][[틀:국기|]]
가족 아버지 이환범[2], 형 이태균(1971년생)
배우자(2020년 결혼)
(2019년생)
학력 서울서초국민학교 (졸업)
방이중학교 (졸업)
상문고등학교 (중퇴)
안양예술고등학교 (문예창작과 / 졸업)
소속사 D&D코퍼레이션[3]
데뷔 1991년 현진영과 와와 2기
종교 개신교(침례회)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1. 개요2. 최종 학력3. 가족4. 비주얼5. 과거의 행적6. 최근의 행적7. 대한민국 음악사에 남긴 의의8. 논란 및 사건 사고
8.1. 표절 논란8.2. 영주권과 병역 문제
9. 신정환, 고영욱과의 에피소드10. 룰라와의 관계11. 방송 활동12. 음반 목록13. 기타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가수프로듀서. 듀스의 멤버로 데뷔하였으며 해체 후 프로듀서로 여러 음반에 참여했다.

2. 최종 학력

안양예술고등학교[4]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는데 원래는 상문고등학교를 다녔으나 당시 상문고에서는 이사 비리사건으로 시끄러웠고, 친구 김성재가 학교에서 담배를 피우다 걸리는 등의 일을 겪자 학교 생활에 회의감을 느껴 자퇴했다.

이후로 서울예대에 지원을 했으나 자신이 다룰 수 있는 악기를 실기고사 때 연주하지 못해서 불합격했으며 그 이후로 그냥 고졸로 남게 되었다. 그래서 의외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현도는 정식으로 음악을 전공한 인물이 아니다. 하지만 안양예고 문예창작학과에서의 배움이 작사 활동에는 충분히 도움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에 작곡가/작사가에게 필요한 관련 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다. 듀스의 곡 모두를 비롯해 수많은 곡들의 가사를 직접 쓴 그이다.

그가 작사한 곡이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오기도 했을 정도로, 작사가로서도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3. 가족

이현도의 부모님은 꽤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두 분 다 실향민 출신이자 서울대학교 출신이다.[5] 그러나 정작 아들인 이현도는 대학을 들어가지 못한 고졸이다 보니 자서전 '스물네 살의 사자후'에서는 대졸 서울대 출신의 부모님 밑에 고졸 아들이라고 자신을 자조적인 어투로 언급한 바가 있다.[6]

2023년 5월 7일 모친상을 당했다. #

4. 비주얼

파일:이현도 솔로활동 신문기사.png
솔로 활동 당시의 기사.

전 그룹 듀스의 멤버였던 김성재에 비하면 잘생긴 건 아니지만, 듀스 시절 카리스마적 눈빛에 여자처럼 묶어놓은 헤어스타일로 김성재만큼 괜찮은 외모 평가를 받기도 했다.

1996년 솔로 활동 때부터 선글라스를 착용하기 시작했는데, 2000년대 이후로는 항상 착용하고 나온다.

5. 과거의 행적

파일:external/mnetimg.mnet.com/0959090000.jpg
듀스 시절
파일:lee hyun do.jpg
1996년 1집 <Do It> 활동 때 사진
파일:힙합구조대.jpg
2004년 4집 <힙합구조대> 자켓 사진

연예인, 음악인으로서의 이현도의 등장은 1990년으로 현진영과 와와 1기로 활동했던 클론강원래구준엽이 입영하게 되자 친한 동생사이였던 이현도, 김성재를 이수만에게 소개해서 김성재와 함께 현진영 밑으로 들어가 '현진영과 와와'에서 활동한 것이 처음이다.[7]

그러다가 1991년 부산의 야외무대에서 현진영과 와와가 공연을 하는 도중에 갑자기 건장한 남자들이 무대 위로 뛰어올라 현진영을 무대 아래로 끌어내리는 모습을 지켜본 이현도와 김성재는 현진영의 모습에 큰 실망을 했다. 뉴스를 통해 알고보니 현진영이 구속된 이유가 대마초 때문이었고 그 여파로 최진열, 정해익 등의 SM 직원들이 경찰에게 수사를 받아 큰 고초를 겪었으며 이 과정을 지켜본 이현도는 현진영의 무책임한 행동에 크게 분노했다. 당시 현진영의 대마초 사건으로 SM기획이 경찰의 수사를 받아 회사의 모든 활동이 정지되었고 와와의 활동도 중단되었다.

이 때 이현도는 현진영의 대마초 사건으로 댄서 활동이 중단되면서 현진영에 대한 분노와 갑작스러운 활동정지로 인한 좌절감으로 고통스러워하다가 이대로 댄서로서 끝날 수 없다고 마음을 먹게 되면서 음악을 만들고 싶은 강렬한 열망과 창작욕구에 불타올라 신디사이저를 구입하면서 본격적으로 곡을 쓰기 시작했다.

그 후 진로를 고민하기 시작한 김성재는 대학진학을 목표로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이현도는 다시 문나이트(클럽)에 다시 출입을 하면서 춤을 추게 되는데 이 때 춤을 추면서 울분을 풀고 있는 이현도를 지인이 안타까워 하면서 오디션을 권유했다. 그래서 가수로 데뷔하기로 마음 먹고 김성재와 함께 코어의 김광수에게 오디션을 봤지만 합격하지 못 했다. 미안해진 이현도의 지인은 다시 뮤즈기획을 소개했는데 이 기획사는 환경이 매우 열악해서 사무실이 없었고 안무를 연습할 무용실도 없어 무용실을 빌려 연습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난 후 현진영이 교도소에서 출소한 다음 자신의 첫곡인 "너에게만"을 완성해서 현진영에게 들려주었더니 매우 좋다면서 곡을 달라고 했다.

이에 반신반의하며 이수만에게 들려주었는데 이 곡을 극찬하면서 현진영의 "New Dance 2"의 앨범에 수록했다. 이때 현진영이 와와를 다시 하자고 제안을 하지만 큰 자신감을 얻은 이현도는 거절했다. 그 후 김성재는 한양대에 진학했고, 이현도는 실용음악과에 응시를 했으나 떨어지면서 더욱더 작곡활동에 매달리게 되었다. 그리고 악기만으로는 편곡까지 완성한다는 게 무리여서 유대영[8]의 작업실을 빌려 작곡을 하게 된다.

마침내 앨범을 완성해서 듀스를 결성했고, 1993년 4월에 데뷔 앨범인 <DEUX>를 발표했다. 타이틀곡은 나를 돌아봐. 그러나 앨범을 발표한지 한 달이 지나도 방송국에서 불러주지 않아 방송 활동을 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 때 듀스의 곡을 높게 산 SBS의 가요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얻게 되었고 이후 듀스는 대한민국 힙합계에 매우 큰 족적을 남기게 되었다. # 원시적이긴 하지만 한글 랩으로 라임을 구사한 선구자적 입지에 있기도 하고, 일단 랩 음악으로 주목도를 모은 뒤 본연의 락음악 비중을 늘려나간 서태지와는 달리 정말 흑인음악 외길을 팠다.[9]

1994년에 '너 하나만을 위해'라는 곡을 작업하였고 이 곡은 듀스의 다음 앨범에 수록될 예정이었으나 당시 신인가수 였던 구본승에게 타이틀곡[10]을 넘겨줬다. 특히 멜로디가 듀스의 스타일이 상당히 짙다.

이후 1995년에 소속사의 입김에서 벗어나 더 듀스다운 활동을 하자는 취지에서 해체 선언을 했고, 김성재솔로로 내세운 뒤 자신은 뒤에서 음악적인 지원을 하는 식으로 활동 범위를 넓히는 원대한 계획을 세우게 되었으나 김성재가 SBS에서 첫 컴백 무대에 오른 바로 다음 날 호텔에서 싸늘한 시체가 된 채 발견되었고, 유력 용의자였던 김성재의 여자친구가 무죄를 선고받고 사건이 미궁으로 빠지면서 심경에 큰 변화를 겪게 되었다. 김성재의 장례식에 참석한 뒤 그는 곧바로 미국으로 가서 1년 여 간 칩거 아닌 칩거를 했다. 그 뒤 친구를 잃은 아픔을 딛고 새로이 솔로 활동을 시작하기로 하면서 1996년에 '사자후'를 타이틀곡으로 한 1집 <Do It>으로 재기를 했고, 이후 2000년까지 2집 <The Saga Continues>, 2.5집 <D.O Funk>, 3집 <완전 힙합> 등 총 4장의 LP를 냈다. 또한 1집 활동 중에 열린 콘서트 실황을 라이브 앨범 <Still A Live>로 발표했고, 봄여름가을겨울의 곡을 리메이크해 <사랑해> 싱글 앨범[11]을 발표했다. 싱글을 제외한 모든 솔로 앨범에는 김성재를 그리워하는 곡을 실었다.[12] 이 외에도 2000년대 초반까지 각종 힙합 컴필레이션 앨범에 참여하였다.

다만 김성재의 죽음 이후로는 자신이 직접 무대에 오르기보다는 후배 가수들의 음악을 만들어 주는 등 프로듀서로서의 활동에 더 무게를 두게 되었다는 것이 특징. 가장 대표적인 앨범으로 룰라의 4집(타이틀곡: 3!4!)[13], 지누션의 1집[14](후속곡: 말해줘), 유승준의 3집(타이틀곡: 열정), 4집(타이틀곡: 비전, 후속곡: 연가)이며 이들 모두 엄청난 대박을 터뜨렸고[15], 타이틀곡의 멜로디나 가사 또한 이현도의 손길이 느껴지는 곡들이라 할 수 있다. 댄스 가수 이외에도 김범수, 휘성 등 R&B 가수들과도 두루 작업을 하였고 디베이스, 제인 등 본인이 직접 프로듀싱한 가수들도 데뷔시켰다.

그의 이름을 내건 앨범은 일단 2004년 말경 힙합 가수들을 총집합시켜 만든 프로듀싱 앨범 <The New Classik>이 마지막이다. 이 이후로는 완전히 프로듀싱에만 전념하게 되었다.

6. 최근의 행적

2008년영화 쿵푸 팬더의 삽입곡인 Kung Fu Fighting의 리메이크를 담당했고, 이 과정에서 의 음악 지도를 하기도 했다.[16] 또한 간미연, 휘성 등의 음악을 작곡해 주기도 하는 등 한국과 한국 외의 국가의 글로벌 프로듀서로 활동 중이다.

과거 낸 모든 앨범들의 작사 작곡에서도 알 수 있듯이 프로듀서로서의 능력이 출중한데 1990년대 초 구본승의 히트넘버인 《너 하나만을 위해》를 제공해 준 것을 시작으로 지누션[17], 엄정화, 유승준 등의 가수들 타이틀곡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마이더스의 손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정작 본인이 전력을 다해 키우려고 했던 D.BACE는 그다지 반향을 끌어내지 못했다.

일본에서 반짝하다 망한 AKB계열 아이돌인 SDN48에 <愛よ, 動かないで> 악곡을 제공한 적도 있다. 그나마 SDN의 악곡들 중에서는 건질만한 축에 속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2013년부터 듀스 20주년 헌정 음반을 준비하고, MnetSHOW ME THE MONEY 2에 출연하는 등 다시 활동하고 있다. 다만 가수로서는 더 이상 활동할 계획이 없는 듯. 인터뷰에서 홍명보에 비유하며 이제는 더 이상 선수(가수)가 아닌 감독(프로듀서)을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고.

대한민국에서 활동하지 않은 기간 동안 외모가 많이 변해서 못 알아본 사람이 많았다고. 서태지처럼 비활동기에는 소식을 알기 힘든 인물이지만, 이현도는 국내 방송에도 자주 출연했고 대중매체에 계속해서 노출되어 온 인물이기에 신비주의라는 평가는 잘 안 듣는 편이다.

2014년 기획사 원포원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다.#

2016년 7월 성추행 논란이 있었으나 2017년 1월 16일에 무혐의 처분되었다.#

한동안 싱글들을 제외하곤 음악 활동이 잠잠했으나 최근들어 다시 활동을 재개하고 있다. 베이빌론의 새 정규 타이틀곡을 프로듀싱하며 여전히 빼어난 뉴잭스윙을 과시하기도 하고[18], 최근에는 딥플로우와 합작 앨범을 계획하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8월 14일 딥플로우와의 합작인 Dry Season이 발매될 예정이라고 한다! 앨범 단위 작품으로는 무려 19년 만의 컴백이다.

최근에 일리스타일 이현도표씩 프로듀서 색다른 모습을 뉴진스와 김성재 미친듯 콜라보를 리믹스 음악을 보여주고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D89y-jvA1Q https://www.youtube.com/watch?v=foeA4L1kbtM https://www.youtube.com/watch?v=xpeBW1in8kg

7. 대한민국 음악사에 남긴 의의

90년대 가요를 기억하는 대중들에게는 '랩'하면 듀스보다 서태지와 아이들 쪽이 먼저 떠오를 테지만, 사실 처음부터 흑인음악에 몰두했던 이현도와는 달리 서태지는 학창시절부터 지독한 메탈헤드였고 그 자신이 록커이자 메탈 베이시스트였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그의 흑인음악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한 외도였을 뿐. 애초에 아이들 시절 히트곡들 대부분이 댄스/힙합을 가장한 록음악이었을 정도로[19] 두 사람은 음악적 색깔이 전혀 달랐다. 즉 흑인음악에 애정을 가지고 더 깊게 파고든 건 이현도였다는 것. 이후 그가 뿌려놓은 음악적 성취들이 후배들에게 적지않은 유산이 되었고 특히 2000년대 들어 힙합이 대세가 되면서 평가가 점점 올라가게 되었다.[20]

이 외에도 펑크(펑크 록과는 동음이의어다. 펑크 록은 Punk, 이 펑크는 Funk.), 부갈루 등 당시 한국 대중들에게 익숙하지 않거나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다른 흑인음악 장르로 영역을 확장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고장난 신디사이저를 음악에 활용하거나 각종 콜라보를 시도하는 등 여러 창의적인 시도를 하였다.

보코더(vocoder)를 곡에 적절히 활용하여 독특한 사운드를 만들어내기도 했는데 듀스 3집의 '굴레를 벗어나(Tuff Ruff ver.)' '다투고 난뒤', 김성재 1집 '말하자면', 이현도 1집 '사자후', 이현도 2집 '미래' '네가 떠나면' 이현도 2.5집 '폭풍' '왜', 이현도 3집 'Goody 구리' 등 여러 앨범에 사용했다. 이미 90년대에 보코더를 곡에 적용시킨 선구자이며 이후 다른 뮤지션들이 힙합음악을 만드는데 있어서 보코더, 토크박스를 널리 사용하게 하는데 영향을 끼쳤다.

분야의 공적도 무시할 수 없는데 당시 대중들에게 '그냥 빠르게 지껄이는 것'이라고 여겨졌던 랩 수준을 정말 랩답게, 즉 플로우를 살리면서 적절하게 라임을 배치하는 등 우리가 생각하는 기준에 걸맞은 랩을 선보였다. 이에 따라 정통 랩의 라임을 살려내어 한국 문학계에서 한시 이후 맥이 끊겼던 운자를 부활시켰다. 민중서림의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서도 그의 <비틀린 세상>의 가사 일부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작사가로서의 평가도 좋은 편이다. 역시 문예창작과 출신답다.[21]

그의 가사중 백미는 3집 '完全HIPHOP'의 '삐에로'인데 가사를 잘 들여다보면 ㄱ부터 ㅎ까지 차례로 삽입한 것이다.[22] 그만큼 문장이 전체적으로 자연스러웠다.[23]

정리를 하자면 힙합은 물론, 뉴 잭 스윙, 훵크 등 흑인음악의 문법을 우리 대중음악에 맞게 이식, 대중화한 큰 공로가 있다고 하겠다.

8. 논란 및 사건 사고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8.1. 표절 논란

그가 대중 음악계에 남긴 영향력이나 발자취에 대해 언급할 때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는데 그건 바로 본인만의 확고한 음악적 스타일이 없다는 것이다. 시기적으로 유행하는 프로듀서의 사운드를 소름끼칠 정도로 완벽히 카피해내곤 하는데, 좋게 말하자면 음악적 수용력이 뛰어난 것이지만 반대로 말하면 독창적인 스타일을 구축하는 능력이 없다는 비판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2000년도 초반에 미국에서 승승장구하던 프로듀싱 듀오 넵튠스의 사운드를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카피했다. 넵튠스의 초기 사운드를 완벽히 집대성한 Kelis의 Wanderland, Kaleidoscope 등의 앨범 사운드와 이효리의 2집 앨범 수록곡 Do Me를 비교하면 넵튠스 특유의 스네어 샘플도 그대로 가져다 썼고, 사용한 사운드 모듈도 넵튠스의 것들과 모두 같다. 거기에 웬만한 리듬의 작법이나 드럼의 운용 방식도 완전히 카피를 했다.

그 외에도 대표적으로 알려진 넵튠스 카피로는 이현도 본인이 직접 인정한 Clipse의 Grindin'을 베낀 주석의 Ballin' 2k3[24], Noreaga의 Superthug의 사운드를 가져온 What Da Fxxx U Want?![25]

이외에도 이현도가 스타일을 완전히 참고한 아티스트가 한 둘이 아니다. 당장 듀스 시절의 뉴 잭 스윙 곡들도 뉴 잭 스윙의 창시자 격인 테디 라일리의 스타일을 완전히 흡수했었기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바비 브라운의 "We're back"[26]와 듀스의 데뷔곡 "나를 돌아봐" 또는 프린스의 'If I was your girlfriend'와 흡사하다는 의견이 있으며 2집 타이틀곡 "우리는"은 키스 스웨트(Keith Sweat)의 ''I really love you"와 흡사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2집의 수록곡 "빗속에서"는 키스 스웨트(Keith Sweat)의 "In the Rain"의 전반적인 무드와 멜로디를 모방했다. 제목부터 대놓고 같으며, 빗소리로 시작하는 것 또한 같다. 2집의 "무제"는 푸-시니큰스(Fu-Schnickens)의 "What's Up Doc? (Can We Rock)"과 유사하다.

심지어는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곡에서 표절해 왔다는 제보도 유명한 건이 여럿 있다. 대표적인 것이 다윈 4078의 메인 BGM을 표절한 것으로 알려진 미래.

근래의 곡들도 이런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데 휘성의 Girls와 T-Pain의 Chopped N Skrewed를 비교해서 들어보면 그 영향을 확인할수 있다.

이에 대해 이현도 본인은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밝혔다.
제 프로그래머도 그랬어요. 휘성 곡('Girls')이 너무 똑같은 것 아니냐고. '나도 한번 그런 스타일을 해 보자. 휘성의 목소리를 오토튠으로 꾸며 보면 재미있겠다.'라는 생각에 시도해 봤는데 그걸 표절이라고 하면 너무 편협한 거죠. 어떻게 보면 오마주라고 할 수도 있겠죠. 편협하게 보자면 티 페인(T-Pain)에이콘(Akon)을 표절한 거라고 할 수밖에 없잖아요. 유명 프로듀서 중에도 마음먹고 샘플을 따서 결국에는 자기 것으로 만든 사례도 많아요. 하지만 그런 것을 표절이라고 하지는 않죠. 비슷하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런 풍으로 만들고 싶었을 뿐이에요.

업계의 거의 모든 작곡가, 프로듀서들은 다른 이들의 음악을 들으며 영감을 얻는다. 이는 곧 이전의 음악들을 참고한다는 말인데, 완전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내기 위한 참고일 뿐이다.

위에서 설명한 프로듀싱 집단 '넵튠스'의 경우도 수많은 음악가들의 스타일을 답습했으나 그들은 그것이 샘플링이라는 사실을 항상 밝혔으며, 해당 곡들의 크레딧에도 원작자의 이름을 실었다. 그리고 그들은 샘플링한 음악을 자신들의 독자적인 스타일로 재해석하므로써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자질 논란을 미연에 방지했다.

이현도가 위에서 예로 든 티페인과 에이콘은 물론 같은 음악 스타일을 공유하고, 때로는 협연하기도 하는 관계이지만, 그들은 적어도 서로의 음악을 완전히 배껴내지는 않으므로 '작곡가 고유의 영역'을 침해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현도는 위에서 다루었듯 항상 다른 음악가들의 스타일과 고유의 것들을 지나치게 유사하게 가져왔다.

때문에 이현도의 음악이 가지는 독자적인 것, 고유의 요소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비판적 시각이 많다. 그가 만든 음악이 그의 음악임을 알아차릴 수 있는 요소는 그가 사용하는 모듈과 악기의 음색 등의 기술적인 것들 뿐, 구조적인 특징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들을 참고는 했지만 재해석은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듀스 초창기 테디 라일리의 카피본이었던 모습이나, 클럽튠을 추구하다가 뭔가 크게 뒤틀려버린 지금의 모습만 보고 이현도의 모든 작업물을 아류로 매도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한상원과의 합작인 'D.O FUNK'나 3집 '完全 HIPHOP'은 각각 훵크와 힙합이라는 커다란 틀 아래에서 다양한 시도를 보여줬던 앨범이며, 2집에 수록됐던 'Accorade (Of Hiphop)'[27]을 한국 힙합 최고의 곡으로 꼽는 올드팬들도 심심찮게 있다. 다만 이런 '모험'을 감행한 작업물들은 대중들의 인기와는 꽤 거리가 있는 경우가 많았기에 이런저런 방황 끝에 지금의 스타일이 되어버린게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추측을 내세워볼뿐이다.

이현도 사자후 https://www.youtube.com/watch?v=hSQaykFILro 이현도 '사자후'(이현도 작곡/듀스) 표절아닌 유사성 비교, Free style 'Don’t stop the rock' 표절의혹을 받고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s0eC0en5yw 스 - 사랑하는 이에게 + Gleen Frey The - One You Love #레퍼런스 표절 아닌 유사성 #우라까이 표절의혹
https://www.youtube.com/watch?v=Bf7dWCXoMmk 듀스 '나를 돌아봐' (이현도 작곡) 표절아닌 유사성 논란, 바비 브라운Bobby Brown 'We're Back' ("Ghostbusters II" Soundtrack) 표절의혹

https://www.youtube.com/watch?v=fFfmG8b4pqQ 듀스-떠나버려 + 2 Raff-Don't Stop The Music #레퍼런스 유사성 표절아님 유사곡으로 받고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xHVQV9Ugx8 표절의혹 (듀스 - 듀스의 Theme) 이현도 작곡

https://www.youtube.com/watch?v=Bc1huVQykZY 듀스 - 영웅에게 + 좌회전 - 마법이 필요해 + EYC-Feelin Alright #레퍼런스 유사성 표절아님 유사곡

https://www.youtube.com/watch?v=Q99FH3WbGyc '작사 작곡을 한 문나이트 출신 이현도 그의 음악시작은 저는 처음부터 흑인음악을 시작해 허비행콕이라는 재즈뮤지션이 계신데 전자음악을 시도했던 rock it 듣고 음악을 시작을 했으나 그의 호기심으로 자극한 독특한 악기와 사운드를 뚜껑이 버튼이있는데 누르면 소리가 나면서 드럼머신이었고 혼자서 상상을 하면서 동경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자기 고등학교를 전학을 왔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친구가 저를 보면서 김성재 듀스 맴버랑 너랑 잘 맞는거 같다고 가장 절친한 친구 2명이 듀스가 되었다고 했으며 음악세계를 흑인음악이라는게 이제 알게되었다고 깨닫았으며 문나이트 클럽을 즐기기위해 강원래 구준엽 현진영 김성재 김송이랑 알게되었으며 현진영과 와와 구준엽 강원래형이 군대를 가게되며 성재한테 물려준셈이며 성재가 기럭지도 길어 뭔가해도 멋지다고 이야기도 하며 성재는 sm예약이라고 할 정도로 극찬했다.

'저는 애따 어따쓰지'라는 이런느낌으로 그사람들한테 인정을 못받을정도로 묘한 느낌 상실감 현질적인 자괴감 이를 악물고 나를 인정하는 내 머리속에 열망이 있었죠 원동력 결국 이 건반을 사면서 이게 최초 이게 자기 악기로산 신더사이저 01wd이라고 하며 '어쨌든 악보를 못보니까 코드이름도 모르니까 단절이되어서 혼자가 되었다 편곡자가 따로 있었는줄 몰랐다' , '춤을 맨땅으로 헤딩하면서 짜나가면서 늘었듯이 음악을 하나하나 해본거라고 말했다.

최측근 이현도 1집 프로듀서 최민혁은 'CMT 뮤직스쿨 컴퓨터음악학원이 그당시 강남역에 최초 생겼으며 제가 4개월동안 컴퓨터음악을 배운걸 듀스 이현도는 작곡 프로듀서를 4일만에 배웠으며 음악에 대한 열정을 급속히 성장한 이현도가 그게 탄생한게 듀스 1집 음반이 탄생했다고 말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0nydJmTE3-Y&list=PLtqYizcPqxZT1Zp5NGodTgf_gZA_OfNWF&index=7 이현도 라디오스타 나를 돌아봐 곡 탄생 배경 비하인드 The Radio Star, DEUX Special #07, 힙합의 전설 듀스 특집 20130807

8.2. 영주권과 병역 문제

음악적으로는 레퍼런스 논란은 있어도 작곡천재라 평가를 받는 그지만, 병역 문제를 매우 논란이 있는 방법으로 대처해서 현재까지도 비판이 많다. 그가 평생 감내해야 할 꼬리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이현도는 듀스 결성 이전 가족과 친지들이 모두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가게 되면서 아르헨티나 영주권을 취득했고, 이후 듀스 활동을 위해 귀국하면서 한국과 미국[28], 아르헨티나를 오가며 생활하게 되었다.

정확히는 활동할 때만 한국에 들어오고, 그렇지 않을 때는 외국에서 프로듀싱을 주로 맡았다.[29] 병역법상 재외 국민이 국내에서 경제 활동을 하면 외국 거주로 인한 병역 면제가 해제되기 때문.

90년대 말 이에 관한 기사가 나오고 구설수에 잠시 오른 적이 있었는데, 이에 대해서 이현도는 본인의 홈페이지를 통하여 글을 남긴 적이 있다.[30] 요약하면 '이현도의 외가식구는 모두 아르헨티나에 거주 중이고 초청을 받아 듀스 결성 1년 전부터 이민 수속을 밟아 이미 이민 예정 중이었는데 듀스 활동을 하게 되면서 국내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었고, 94년 연예인들 병역기피가 문제 되었을 때 자진출두해서 무혐의 판정으로 상황 끝.'

한편 솔로 3집 활동을 하던 2000년 기준 이현도의 나이는 만 27~28세였고, 당시 병역법으로도 징병 검사 후 현역 판정이 가능한 시기였다. 그러나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아무도 이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 없었고, 2004년 송승헌, 장혁, 한재석 등의 병역비리 사건으로 인해 연예계 병역비리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시기가 되어서야 이현도의 병역비리 문제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이현도 역시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해 아르헨티나 영주권을 딴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퍼졌고, 이것은 일부 팬들이 싸이월드 방명록에 병역비리 문제로 그를 까는 글을 올리면서 특히 문제가 커졌다. 이에 이현도는 욕설을 써 가며 이들을 물리쳤고 #일명 '존만한 씹새지원' 사건[31], 이로 인해 기존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은 채 앨범 활동을 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되었다.[32] 이 사건에 관해 오인용에서 이현도를 '아르헨도'로 출연시켜 간접적으로 비판한 바가 있으며, 수많은 네티즌들이 이현도를 '아르헨도'라고 부르며 두고두고 까게 된다. 싱하형 VS 아르헨도

덧붙이자면 이현도 때는 아르헨티나 영주권만으로도 면제가 가능했지만 2001년 개정된 병역법대로면 연간 60일 이상 국내에 체류하며 영리활동을 하는 국외 이주 연예인은 국적변경을 하지 않는 이상 병역의무가 부과되게 된다. 물론 이현도는 바뀌기 이전에 이미 병역면제였기 때문에 바뀐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쉽게 말해 이현도는 요즘 언급되는 병역법 문제랑 전혀 상관없는 상황이라는 말. 당시의 많은 연예인들이 지금의 기준으로 군 면제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 (3대, 4대 독자, 중졸, 영주권 등) 사유로 군 면제를 받았음에도 지금와서 번복되지 않기에 이현도 역시 동일하게 판단해야 함이 옳다. 법률불소급의 원칙 참조.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때 한국이 아르헨티나와 조별 경기를 벌일 당시 네이버 지식IN에서 "이현도는 한국을 응원할까요? 아르헨티나를 응원할까요?"라는 질문이 오가기도 했었다.

2013년, 듀스 20주년을 맞아 방송에 복귀하면서 병역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는데, 병역의혹이 공소시효가 만료되는 것과 같이 해소된 것이라고 했다. 현재 병역법의 경우 해외 영주권를 얻으면 37세까지 병역을 연기 할 수 있으며 병역의무는 41세에 종료된다.

즉, 법적으로 문제될 것은 없고 스스로 입대 하겠다고 하지도 않았으나, 영주권 취득과 관계없이 입영을 해도 전혀 문제되지 않을 상황이었기 때문에 계속 비판받게 될 듯하다.[33]

이 문제 때문인지 구 연예인 지옥에서 '아르헨도'로 패러디되어 나왔다. 연예인지옥이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현도는 오인용에게 유감을 표했고, 비슷한 시기에 오인용이 문희준 측에 의해 고소당하는 상황까지 닥쳐와서 구 연예인 지옥은 강제 종영되었다. 문희준의 행적이 재평가되면서 오인용 영상 관련 의견에서 문희준에 대해 미안해하는 여론이 대다수가 되었지만, 아직도 연예인지옥 유튜브 영상 등에서의 이현도에 대한 여론은 썩 좋지 않다.

9. 신정환, 고영욱과의 에피소드

이현도가 신정환고영욱LA로 초대했는데 정작 초대해놓고 자기는 박찬호[34]와 놀러다녔다고 신정환과 고영욱이 라디오 스타에서 밝힌 바있다. 결벽증 같은 게 있어서 TV 각도를 조금만 틀어놓은 것과 스타워즈 포스터를 조금 구겼다고 신정환을 엄청나게 깠다고 한다. 그래서 신정환이 분한 마음에 "나 정말 이현도보다 잘 될거야"라고 울분을 터트렸다고 한다.

하지만 이상민이 타 프로그램에서 말하길 이현도가 신정환과 고영욱을 LA로 초청한 게 아니었다. 룰라 멤버 중 이상민은 회사운영에 바빴고 김지현은 솔로활동했고 채리나는 디바로 한창 잘나가던 시기에 어중간하게 붕 떠버린 고영욱과 제대 후 할일 없이 놀고 있던 신정환을 묶어서 그룹을 결성하려했던 이상민이 그 둘을 이현도에게 보낸 거라고 이야기한 적 있다. 여기서 이현도 집에 놀러간다는 의미를 잘 생각해봐야 하는데 이현도 LA 집에 놀러간다는 건 그 당시 정말 잘나가던 작곡가 이현도에게 곡을 부탁한다는 의미로 해석해야한다. 표절논란으로 망해가던 룰라를 이현도가 LA 집으로 초대해서 3!4!라는 노래를 만들어주고 룰라와 이상민을 재기하게 만든 것처럼 이상민은 신정환과 고영욱을 이현도에게 놀러보내서 좋은 곡 받아와서 그룹 활동하길 바라고 보냈던거라 볼 수 있다. 막말로 지누션 대박곡 중 하나인 `말해줘` 같은 노래가 신정환 고영욱에게 갔을 수도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신정환 고영욱은 본인들이 아쉬운 소리하러 갔다는 생각도 없었던 걸로 보이고 손님 대접받으려다 그 사단이 났고 작곡 이야기는 꺼내보지도 못하고 쫓겨난 걸로 보인다.

그리고 고영욱두시탈출 컬투쇼에서 한 말에 따르면 게임하다가 지면 쿠션을 찢고 난리를 피우기 때문에 꼭 져줘야 한다고 한다. 라이머도 같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자기가 지면 후배들이 보는 앞에서 게임 CD를 꺼내서 부수고, 패드를 박살낸다고 한다. 그래서 집에 게임기 패드가 잔뜩 있다고 한다. 후에 이현도는 어쩌다가 같은 CD가 3장이나 있어서 장난으로 하나 깨봤다고.

이후 본인이 직접 라디오 스타에 출연, 신정환과 고영욱이 한 얘기에 대해 해명했는데[35], 1994년 당시 최고 크기의 브라운관 TV를 고가의 대형 장식장에 각도에 맞게 설치했는데, 신정환이 TV의 각도를 억지로 틀면서 600불짜리 장식장을 망가뜨려서 혼낸 것이라고 한다. 다만, 이현도는 자기가 좀 편하게 보려고 틀었을 것이라고 했는데, 당시 신정환의 말을 들어보면 캠코더를 연결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캠코더를 연결하려고 뒤에 있는 컴포넌트를 건들려다가 TV의 각도가 휘어졌다고 보는 게 맞는 듯. 당대 최고 크기의 TV랬니 60인치 언저리는 넘을 가능성이 있고, 그 정도면 어느 각도에서 보건 잘 보일 건데다 그 무거운 브라운관 TV를 자기 편하게 보자고 몇 도 돌리는 것도 무게 때문에 쉽지 않다.

장난감 좀 비틀린 거 가지고 쪼잔하게 식으로 언급한 것은 그 장난감이 시리얼 넘버까지 붙은 한정판 X-wing이었다고 한다. 신정환과 고영욱은 스타워즈 포스터 구긴 얘기만 했는데, 한정판 X-Wing이 더 비싼 걸 몰랐던 듯.

사실 박찬호가 고영욱과 신정환에게도 초대장을 줬는데, 당시 신인이던 박찬호를 잘 몰라 쇼핑을 간 것이라고 한다. 신정환이 1995년 초에 입대했고, 이 사건이 신정환이 제대하고 얼마 안 있어 간 여행이며, 박찬호가 한국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게 1997 시즌 중반이므로 얼추 시기는 맞아 떨어진다.

이 해명을 하면서 거짓말의 말로는 이렇다며 둘을 디스. 다만, 게임에서 졌다고 게임 디스크를 부순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티나게 져주면 일부러 져주지 말라고 화내고, 이기면 졌다고 화낸다고. 축구할 때 풀을 쥐어뜯는 등 국가대표급 리액션을 한다는 얘기도 공개되었다. 쉽게 자신에게 화를 내는 성격인 듯.

10. 룰라와의 관계

하지만 신정환, 고영욱 등 룰라 멤버와 이현도는 대단히 친분이 두텁다. 이들의 친분이 두터워지게 된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이현도의 분신과도 같았던 김성재 사망 사건에서 비롯된다. 사건 초기 김성재의 사망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을 때, 그의 팔에 주사바늘 자국을 보고 많은 언론들이 마약 복용 쇼크사가 아니냐는 추측성 보도가 판을 치고 있었고, 그로 인해 처음에는 김성재의 빈소에 그렇게 많았던 연예인 조문객들이 그 보도 이후 모두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룰라 멤버들만 김성재의 빈소를 이현도와 함께 끝까지 지켜주었고, 결국 마약 복용설은 사실 무근으로 밝혀져 김성재의 누명이 벗겨지게 되었다. 이현도를 비롯한 김성재 가족 및 측근들은 추측성 보도에 또 한 번 큰 상처를 받게 되었지만, 어찌보면 그 사건을 계기로 힘들 때 함께 해 준 룰라 멤버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당시 최고의 인기그룹이었던 룰라는 김성재 사건 이후 약 1달 뒤 3집 타이틀곡 '천상유애' 표절시비로 인기가 나락으로 떨어진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상민의 자살기도로 인해 그룹 자체가 와해되기 직전까지 갈 뻔 했던 최대 위기의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이현도는 룰라 4집에 타이틀곡 '3!4!'[36]를 비롯한 대부분의 수록곡을 프로듀싱하였으며,[37] 덕분에 룰라는 4집의 타이틀곡 '3!4!'를 통해 재기를 하게 되었다.[38] 이현도가 룰라에게 받았던 고마움을 가장 어려운 시기에 매우 큰 도움으로 보답해 준 것이다. 그만큼 이들의 관계가 돈독하고 얽혀진 사연이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정작 '3!4!' 녹음하는 동안 고영욱이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노래를 잘 못해서 프로듀서인 이현도에게 수없이 지적을 받았고, 계속된 비판과 재녹음 끝에 감정이 상한 고영욱은 이현도에게 "형은 그렇게 잘해? 형도 노래 못하잖아"를 시전했다고 한다.

미국에서의 에피소드의 경우 애초에 고영욱과 신정환이 본인을 만나기 위해 미국에 왔던 것도 아닌데, 미국 간다고 하자 호텔 잡지 말고 우리 집에서 자라고 했다는 것만 보아도, 그들의 관계를 오해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아무리 친해도 한번 싸운 적 없는 친구 없듯이.

이상민과도 친분이 있는데, 음악의 신에서 이상민 컨셉이 아무래도 허세다 보니 본인을 전설과도 같은 존재라고 드립을 치는 경우가 많은데 3대 프로듀서라며 본인과 더불어 김진표와 이현도를 언급하기도 했다. 물론 나중에 이현도가 이상민과의 전화통화에서 이현도가 "뭐 3대 프로듀서 누구? 뭐야 그거 너 그러다 형한테 3대 맞어"라며 짜증을 내기도.[39] 나중에 쇼미더머니 특집 비틀즈 코드에서도 그러지 말라고 짜증을 내기도. 물론 짜증 낸 뒤 곧바로 시키지도 않았는데 "형은 그래도 널 사랑한다."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11. 방송 활동

11.1. SHOW ME THE MONEY 2

2013년 Mnet SHOW ME THE MONEY 2에 출연했다. 그것도 D.O 크루의 수장 자격으로.

처음 소식이 알려졌을 때는 부정적인 여론이 많았다. 예나 지금이나 이현도의 랩 실력이 현역 MC들에 비해 좋은 편은 아니고, 2004년 이후 눈에 띄는 활동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현도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많았기 때문.

첫 방송 이후 여론이 반전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심해졌다. 참가자들을 심사하면서 했던 패션지적이나[40] 여러 언더 MC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나[41] 취향[42]처럼 방송으로 나간 부분은 비판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본선이 진행되면서 여론이 많이 달라졌다. MC 메타가 본인의 주관을 잘 꺾지 않고 거의 엄격한 모습으로 일관해 크루원들과 크고 작은 갈등도 많이 일으켰던 반면, 이현도는 크루원의 주관을 존중하는 모습, 인간적으로 좋은 모습도 많이 보여줬고,[43] 무엇보다 프로듀서로서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줬다.

본선에서 대중들에게 재평가는 받았지만 방송 내에서의 결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는데, 크루 대결에서 계속 지기만 했다. 심지어 칼을 갈고 나와도 져서 이현도가 직접 "이래도 져?"라고 했을 정도. 그나마 유일하게 승승장구하는 스윙스는 소년가장 타이틀을 획득. 공연보다 프로듀싱적인 관점에서 멤버를 뽑았는데, 이것이 패착이 되었다. 본인도 방송을 하면서 잃은 것은 시간, 건강, 근육, 그리고 승리라고 하면서 농담조로 한 몸 바쳐 언더힙합의 승리를 이끈 논개라고 했다.

제작진과의 사이는 썩 좋지 않았던지 제작발표회도 제작진과 싸운 후 표정관리가 안 된다며 빠졌고, 쇼미더머니2를 까려고 안하던 트위터 계정을 파기도 했다. 방송을 속 썩이는 여자친구에 비유하기도 했다.

방송에 대해 MC 메타와 함께 힙합플레이야와 인터뷰를 했다. #1 #2 방송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둘의 가치관이나 향후 계획에 대한 내용도 있다.

방송에 사용했던 비트를 무료 공개하기도 했다.#

2015년 2월 MC 메타와 함께 언프리티 랩스타의 4화에서 1:1 배틀 심사위원으로 참가했고, 언프리티 랩스타2의 첫 트랙 프로듀서로도 출연했다.

11.2. SBS 슈퍼매치

2013년 8월 16일, 23일 방영된 SBS 슈퍼매치의 선배 측 가수로 출연했다. 여기서도 선호도 조사에서 하위권이 되고 순번 1번을 뽑는다. 김태우와 goDO라는 팀을 만들어서 "여행을 떠나요"를 불렀다. 이현도 본인은 프로듀싱만 하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무대에 섰다고 한다. 쇼미더머니2에서 본인의 크루였던 딘딘이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무대에 대한 평판은 썩 좋지 않다는 반응이다.

12. 음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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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참여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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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기타



[1] D.O는 솔로 활동 때부터 쓰고 있는 예명으로, 여권에 적힌 영문명 DO를 보고 그냥 지었다고 방송에서 밝혔다. Deux Lee HyundO라는 뜻도 있으며, 김성재잃은 후듀스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앞의 글자 D로 찌그러진 O를 표현한다고 한다. '도'가 아닌 '디오'라고 읽는다. 그러나 본인은 물론 힙합계에서도 주로 본명을 부르고 D.O는 별명쯤으로 취급하는 듯하다.[2] 어머니 백희숙씨는 2023년 5월 7일 작고.[3] 소비어스가 D&D코퍼레이션으로 사명을 변경하였다.[4] 당시 예술고 중에서 문창과가 있는 학교는 전국에 안양예고뿐이었다.[5] 어머니는 평안도, 아버지는 함경도 출신. 즉 이현도는 실향민 2세다. 2013년 라디오 스타에 출연해 부모님 얘기를 했는데, 아버지는 토목공학과, 어머니는 미대를 졸업했다고 했다.[6] 참고로 김성재의 아버지는 고려대학교, 어머니는 이화여자대학교 출신이다.[7] 이수만이 창립한 SM기획에서 구준엽과 강원래가 와와 1기로 활동하다가 군입대를 하게 되자 현진영은 박남정의 라이벌로 급부상했다.[8] 서태지와 아이들 1집의 제작자 겸 총괄매니저였으며 훗날 결별한다.[9] 후일 현진영은 이현도에 대한 이런 평가를 의식한 듯 스스로를 힙합 문익점, 레전드 등으로 칭하는가 하면 '내가 당시 한글 랩으로 라임을 쓰려면 쓸 수 있었지만 시대를 너무 앞서는 것 같아 그만뒀다'는 정신 승리격 발언에, 플로우나 멜로디를 차용해왔다는 의혹을 받는 몇몇 곡들에 대해서는 샘플링이었다고 변명하는 등 꽤나 찝찝한 행보를 이어나간다.[10] 지상파 가요프로 1위에 올랐다.[11] 물론 한국 CD 시장에는 1~2트랙이 실리는 싱글컷이라는 개념은 없었다. 이 앨범은 총 6트랙의 Maxi Single이다.[12] 친구에게(1집, 라이브), 여름은 가득히(2집), Sunshine(D.O Funk), Lifetime(3집)[13] 룰라에게 곡을 줬던 이유는 김성재 사망 당시 동료였던 룰라가 김성재의 빈소를 끝까지 지켜주고 발인까지도 함께 해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해 겨울 룰라는 3집 앨범을 발표했으나 얼마가지 않아 표절 의혹으로 인해 활동을 중단함과 동시에 그동안 얻었던 인기를 잃어 몰락을 겪게 된다. 이 상황을 지켜본 이현도는 친구의 장례식을 끝까지 지켜준 보답으로 룰라의 재기를 돕기로 마음을 먹고, 4집 타이틀곡 '3!4!'를 만들어줬다.[14] 팀 자체를 양현석과 공동 프로듀싱했다.[15] 열거된 곡들은 모두 지상파 가요프로에서 1위에 올라본 곡들이다. 이 당시 이현도는 본인의 앨범은 실험적으로 만들면서, 다른 가수들에는 대중적인 곡들을 써줬다.[16] 이 이후 비는 직접 제작한 앨범을 내게 되는데, 그 첫 작품이 <Rainism>이었다. 그러나 이 때까지도 JYP의 색깔에서 못 벗어 난듯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이후 <Back To The Basic> 앨범에선 완전히 달라졌다. 참고로, 이 때 몇몇 곡에서는 이현도의 곡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좀 있는데(특히 김성재의 스타일을 대놓고 오마쥬했던 'Hip Song'이 그랬다. #) 이게 이현도에게 받은 영향. 특히 이후에 나온 싱글 <부산여자>는 대놓고 뉴 잭 스윙이었다.[17] 서태지와 아이들과 듀스가 해체한 후 양현석과 이현도가 2인조로 돌아온다는 소문이 돌아서 많은 이들을 설레이게 했다. 이런 소문 속에서 이현도의 음악과 양현석이 마케팅이 결합된 지누션이 데뷔해서 대성공을 거둔다. 사람들은 지누션에게서 서태지와 아이들과 듀스의 흔적을 느낀 것이다. 킵식스의 대실패 이후에 미래가 불투명하던 YG는 지누션의 성공으로 기반을 다지게 된다.[18] 사실 EGO 90'S 앨범 자체가 90-00년대 한국의 알앤비-발라드를 의도한 결과물이니 당연하다. 이외에도 정연준, 휘성, 엄정화 등 수많은 당대의 음악 아이콘들과 협업한 앨범이다.[19] 하여가, 교실 이데아, 시대유감 등.[20] 사실 2000년대 초만해도 듀스가 무슨 힙합이냐며 평가절하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지금은 평론계나 리스너들이나 그의 공적을 대체로 인정하는 추세이므로 이런 소리를 하는 경우는 강경한 일부를 제외하곤 없다.[21] 후에 그가 소회하기를, 학창시절 때 '왜? 배째실라고 그려?(백제 신라 고구려)같은 말장난을 자주 쳤다고 하는데 이런 드립력이 후에 가사를 쓰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물론 친구들 반응은 안좋았다.[22] 난 이'겼\'어 부와 명예 모두를 지'녔\'어 어린시절 원하던 걸 다 이루게 '됐\'어 그러나 더 중요한걸 난 잃어버'렸\'어 새로움에 '맞\'서 자신을 단련함을 이미 '벗\'어나 작은 성공속에 안주하며 편히 '쉬\'었어 그건 내게 가장 크나큰 enemy'였\'어 이런 깨달음 속에 자신이 싫어'졌\'어 이제는 새로운 세기에 다시 발맞'춰\'서 꺼져가는 가슴 속의 불을 다시 '켰\'어 나의 뜻은 새롭게 불'타\'서 새 날개를 활짝 '폈\'어스스로 자부할 수있는 더 큰 나로 거듭나기로 '했\'어.[23] 여담이지만 비슷한 시기에 발매된 드렁큰타이거의 2집 '위대한 탄생'의 가~하를 이용한 가사와 비교되기도 했는데 이현도 쪽이 압도적으로 퀄리티가 높았다. 드렁큰타이거는 퀄리티도 퀄리티지만 카와 타를 바꿔써서 더욱 까였다. 당시 틀을 벗어난다는, 기성세대의 대한 반항으로 일부러 바꿨다고 했다.[24] 심지어 이현도는 자신이 만든 비트가 레퍼런스의 대상이 된 넵튠스의 비트보다 더 깔끔하다고 자평하기까지 했다.[25] 클럽 마스터플랜의 컴필레이션 앨범인 MP Hip-Hop 2002 풍류에 수록된 곡. 스퀘어가 불렀다.[26] 고스트 버스터즈 2의 ost[27] 1998년 초에 발매된 곡으로서 2016년 기준 무려 18년전 곡이다. 당시 힙합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는 힙합바지와 플로어댄스가 90%이상을 점유했던 시절이었다. 1997~1998년 대다수 미디어는 HOT의 늑대와 양, 신화의 해결사를 일컬어 '메세지를 담은 정통 힙합곡'이라고 표현도 하곤 했다.1999년 '1999대한민국', '드렁큰타이거'등의 등장으로 힙합뮤직은 본격적으로 수면위에 오르게 된다.[28] 한국에서는 아르헨티나로 직접 가는 비행기 노선이 없다. 남아메리카 노선도 직접 가는 노선은 아예 없었다가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이 개최되면서 서울발 상파울루행 직항로가 뚫렸는데 수요를 문제로 단항되면서 현재는 남미행 노선을 운항하고 있지 않다.[29] 1집 사자후부터 4집 힙합구조대까지 전부 미국에서 작업했고, 다른 가수들의 앨범 작업도 대부분 미국에서 했다. 지금은 시스템이 좋아졌지만, 그 당시에는 열악하였으며 미국이나 영국, 그리고 일본이 한국보다 시스템이 더 좋아서 원정을 가서 작업을 하였다고 한다.[30] 현재는 삭제되어서 원본글을 찾을 수 없다.[31] 당시 네티즌들은 이를 놓치지 않고 풍자화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게 오인용구 연예인 지옥 아르헨도 캐릭터. 그리고 아르헨도가 친 대사인 '존만한 씹새뇌중.' 그밖에 디시인사이드 합필갤에서는 어린이 특촬물스러운 포스터에 이현도와 '지원'이라는 이름을 쓴 죄 없는 연예인들을 등장시킨 짤을 제작하기도 했다(...).[32] 이현도의 싸이월드를 오래전부터 봤던 몇몇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처음에는 점잖게 답변했으나 몇몇 사람들이 '김성재에게 부끄럽지 않느냐' 등의 인신비방과 욕설을 계속 퍼부으며 끈질기게 악플을 달자 참지 못하고 막말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저런 발언에 면죄부가 주어지지는 않는다.[33] 10~30대 남성층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유명인의 병역에 대해서 상당히 민감한 게 대한민국 정서이다.[34] 의외의 인맥이지만 둘은 친분이 있다. 이후 D.O Funk 앨범에 박찬호가 나레이션으로 참여했다. 듣기. 박찬호는 지누션과도 친해서 지누션의 인기곡 'A-Yo'를 등장곡으로 사용했었다.[35] 이때 신정환은 모종의 사건으로 하차한 후였다.[36] 3번 쓰러져도 4번 일어난다는 의미이며, 듀스 고별 콘서트에서 이현도가 '상처'를 부르기 전에 외쳤던 구호이기도 하다.[37] 그로 인해 그의 솔로 1집 '사자후' 발매가 3개월 가량 늦어졌다고 한다.[38] 하지만 체감인기가 절정기에 비해서는 많이 못 미쳤으며, 4집에서 유일하게 이상민이 작곡한 '아자'가 다시 한 번 표절시비로 곤혹을 치르면서 활동을 일찍 접어야 했다.[39] 물론 진심으로 화가 난 건 아니고 어처구니 없다는 투로 얘기했었고, 음악의 신이 적힌 모자를 쓰고 사진을 보내줘서 전화통화 당시 음악의 신 쪽에서 사용하기도. 애시당초에 그 얘기를 들으며 얼굴이 뻘게지도록 껄껄대는 이상민 반응만 봐도 뭐.[40] 거기에 이현도 본인이 아저씨가 다 된 모습이었다.[41] 이 역시 어쩔 수 없이 알 수밖에 없던 스윙스를 제외하면 일부러 찾아보지 않았다고 한다.[42] 대표적인 게 프리스타일로 호평을 받으며 MC 메타에게 합격했던 지조나 마찬가지로 우수한 랩 실력을 선보인 제이켠을 본인은 취향 차이였다며 떨어트린 부분.[43] 다만 이는 대립 구도를 만들기 위해 7명 중 한둘과만 갈등한 것을 전체와 갈등한 것으로 편집한다든지 편집으로 과장된 면이 있다.[44] 하지만 이를 의식했는지 오인용측 에게 강한 유감을 표했다.[45] 휘성의 경우 YG를 나와 타 기획사로 옮긴 뒤 작업한 케이스다.[46] '마치 나와 친구같이 노는 NRG 동생들처럼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