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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개인적 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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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상2. 가족3. 친분4. 일화5. 성격6. 외모7. 기타

1. 사상

정치적으로 리버럴, 사회자유주의, 진보주의를 옹호했기 때문에 강남 좌파로 불리기도 했다.

울산대 교수 시절 반국가단체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산하의 이적단체 남한사회주의과학원(사과원)에 가입하여 활동한 바 있으며 이로 인해 1993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1] 조국은 법무부 장관에 지명되었을 당시 이에 대해 "자랑스러워하지도 않고,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이후 참여연대 사법개혁센터 소장으로서 꾸준히 사법시험 폐지와 로스쿨 도입을 주장하였다. 때문에 로스쿨의 폐해를 지적하면서 사법시험 부활을 주장하는 측[2]에서 많이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국 사태 이후 딸 조민을 위조된 서류로 의전원에 입학시켰다는 의혹에 이어 자신의 아들인 조원마저 위조된 인턴 증명서 등을 통해 로스쿨에 입학시키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그가 로스쿨을 적극적으로 주장한 의도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다.

비동의간음죄에 반대한다. 비동의간음죄 신설 같은 구호가 '투쟁의 요구 사항으로 간명'하다는 점은 인정하되 현대 민주주의에서 형법의 핵심은 '절제'이며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사법의 대원칙 또한 폐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 그의 성향을 확인할 수 있는 논문

법무부장관 지명 이후 법무혁신 정책의 일환으로 재산비례벌금제를 추진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법조계에서 해당 제도에 논란이 있었다. 조국이 던진 ‘재산비례 벌금제’...법조계 “33년 묵은 논란거리, 또다른 불평등 낳는다"

1.1. 검찰개혁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검찰개혁/문재인 정부 문서
3.2번 문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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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2. 가족

부인은 서울대학교 동문인 (영어영문학 전공) 정경심으로, 동양대학교 교양학부 교수이다. 2019년 9월 6일 사문서위조 혐의 등으로 검찰에 구속 기소되었고 11개 혐의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아 징역 4년을 선고받고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다가 2023년 9월 27일 가석방되었다.[3]

아들(조원)이 전전임 민정수석인 우병우의 아들(우주성)과 같은 대학교(조지 워싱턴 대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하여 화제가 되었다. 다만, 서로 친분은 없다고 한다.# 조원은 대학을 졸업한 뒤 2018년에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대학원에 입학했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알려진 바에 따르면, 국내 로스쿨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일이 있다고 한다.[4] 이중국적인데, 부친의 인사청문회 당시 입영을 연기한 상태였고, 당시 인사청문회 준비단은 조원이 2017년에 외국 국적 불행사 서약을 한 상태로서 2020년 중에 입대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2020년에 아들 입대 문제가 다시 거론되자, 조국은 아들이 아직 대학원 재학 중이어서 졸업하면 입대 예정이라고 말을 바꿨다.#

한편, 딸(조민)은 고려대학교 농대의 후신인 환경생태공학부를 졸업했으며, 부산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그리고 2019년에는 유명해졌다.

조국 본인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산하의 이적단체 남한사회주의과학원 활동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바 있는데, 종조부 조맹규 씨도 연합좌익단체인 민주주의민족전선[5]에서 중앙위원을 역임했으며 광복 이후에는 남조선로동당 노동부장을 했다는 사실을 지상욱 바른미래당 의원이 밝혀냈다. 박삼득 국가보훈처장은 "2006년 국가보훈처에 서훈을 신청했지만 탈락한 바 있다"고 지 의원의 질의에 답했다.[6] #1 #2 #3

3. 친분

다수의 민주당 진영/진보 인사와 알고 지내는 사이이다. 이는 사노맹 활동 전적의 역할이 큰데, 대학생 시절 사노맹에서 알게 된 유시민은수미와는 현재까지 돈독한 사이를 유지 중이다. 문재인과 조국의 경우 알게 됐을 접점이 전혀 없었음에도 민정수석으로 내정된 것은, 유시민이 연결시켜주었던 덕분이라는 게 정치계에서 기정사실화되어 있다.

진중권과 막역했다. 진중권이 중앙대학교에서 잘리자 경향신문에 중앙대를 비판하는 칼럼을 게시하기도 했다. (해당 칼럼) 이후 진중권은 "조국은 공부도 잘하고 키도 큰데, 그럴 경우 성질이라도 나빠야 신은 공평한 거지만, 너무 착하다"고 주장하며 "짜증 나는 놈"이라는 농담을 했다. 진중권은 조국의 부인 정경심 교수와 함께 동양대 교양학부의 동료 교수이기도 했다. 그러나 조국 사태 이후 진중권은 조국을 비판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매우 악화되었다. 결국 조국 사태가 한창 전개되는 2019년 9월 23일 진중권은 정의당데스노트에 조국을 집어넣지 않자 탈당을 선언했고, 얼마 후 동양대에도 사표를 냈다.[7] 조국의 막역한 친우 사이로 알려져있던 진중권이라 그 여파는 더욱 컸다. 2020년 3월 28일에는 조국에 대해 “웅동학원 탈탈 털어먹었죠? 동양대도 자녀들 대학입시 허위증명 발급의 수단으로 잘도 이용해 먹었죠? 내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그보다 더 파렴치한 일도 있었다”라고 언급했다. # 2020년 말 현재는 진중권이 조국을 가리켜 "이제는 이 친구가 좀 모자란다는 생각이 드네..."라며 매우 한심스러워 할 정도이다.#

민정수석비서관을 맡기 전까지는 국회의원 노회찬 후원회의 회장을 맡았었다. 노회찬 의원은 "저는 훌륭한 후원회장을 잃었지만, 문재인 정부는 최고의 민정수석을 얻었습니다."라고 덕담했다. 그리고 2018년 노회찬 의원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빈소로 직접 찾아와 노 의원의 아내를 안고 오열했다. 민정수석직에서 물러난 직후 노회찬 1주기 행사에서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다.

천정배 민생당 의원과도 친분이 있다. 조국이 사노맹 사건에 연루되었을 때 천정배가 조국의 변호인을 맡은 바 있으며, 천정배는 조국보다 앞서 참여정부에서 법무부장관을 지내면서 '검찰개혁'을 추진한 바 있다. 그러나 조국이 법무부장관이 되자 "개인적으로 조 장관이 잘되길 바란다"면서도 "사법개혁의 적임자라는 말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평가한 바 있다. #

현재는 정치적 반대편에 있는 나경원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는 서울대 법대 82학번 동기로, 대학 시절 친하게 지냈다고 알려져있다. 동기들에 따르면 대학 시절에 조국은 남학생 중 잘생긴 걸로 유명했고 나경원은 여학생 중 예쁜 걸로 유명했다고 한다. 나 원내대표는 2012년 한 방송에서 조 장관의 대학 시절 별명이 ‘입 큰 개구리’였다고 소개했으며, 조 장관은 2010년 저서 '진보집권플랜'에서 나 원내대표에 대해 "저와는 생각이 다른 친구였지만 노트 필기를 잘해 노트를 빌려 시험공부를 하기도 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또다른 서울대 법대 동기인 국민의힘 소속 원희룡 국토부장관과도 친구 사이이다. 원희룡이 국회의원이던 시절에 같이 SBS 스페셜에 출연하기도 했다. # 이후 문재인 정부에서 조국에 대한 각종 의혹들이 터지자 원희룡은 "친구로서 조국 후보에게 권한다. 더는 동시대의 386을 욕보이지 말고 이쯤에서 그만둬야 한다"고 비판한 바 있다. #

실제로 조국, 나경원, 원희룡을 비롯해 서울대 82학번이 정계, 재계, 관(官)계 등에서 매우 유명한데, 그의 동기들 중 정치계에는 더불어민주당 김한정 의원(국제경제학),[8] 이용우 의원(경제학), 미래통합당 송언석 의원(법학), 조해진 의원(법학), 이혜훈 전 의원(경제학), 새누리당 강석훈 전 의원(경제학) 등이 있다.

4. 일화

교수 연구실에 이상한 기념 엽서를 간직하고 있는데, 어떤 여성 2명이 나체로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장면이 찍힌 사진이 있는 엽서이다. 사실 이것은 조국이 음란물 매니아라서 들고 있는 건 아니고, 캘리포니아 대학교/버클리 캠퍼스 유학 시절에 그 학교에서 발행한 기념 엽서라고 한다. 그가 유학을 가기 몇 해 전에 있었던 일이었다. UC 버클리에 재학 중이던 여학생 2명이 나체족이라, 등교할 때에도 완전히 나체 상태로 등교를 하고, 수업도 그렇게 나체로 들었다고 한다.(다만 신발은 신었다.) 그러자 교수님들이 민망해서 그 학생들에게 "옷 입고 다녀라."라고 했는데 그 여학생들은 당돌하게도 "우리 학교 교칙에 학생은 반드시 옷을 입고 수업에 참여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으니, 우리는 나체로 수업을 들을 수 있다."고 반박했다고 한다. 그 때문에 UC 버클리에서는 교칙을 수정해 "학생은 반드시 옷을 입고 수업에 들어와야 한다."고 적시했다고 한다. 그때를 기념해서 발행한 엽서라고 한다.#

상당한 야빠로 유명한데 부산에서 나고 자랐기에 고향팀 롯데 자이언츠를 응원하고 있다. 과거 한때 본인의 꿈이 롯데 구단주였을 정도로 열혈 팬을 자처하고 있다. 여담으로 경남 거제시 출신으로 부산에서 성장한 문재인 前 대통령도 롯데 팬으로 알려져 있는데, 정작 문재인 대통령은 과거 1992년 한국시리즈 이후 한겨레신문에 "롯데 우승과 삶은 무관"이라는 글을 실은 바 있다. 야구에 목숨건 꼴리건들의 분노가 들린다. 당연히 야구를 문제 삼은 게 아닌 지역감정을 타파하자는 거였지만, 그게 롯데의 마지막 우승이 되면서 재평가받았다.

5. 성격

역대 민정수석들과 비교해봤을 때 조국은 꼼꼼하지 않고 허술한 성격이라는 평이 있다. 그래서 이러한 성격으로 인해 빈 곳이 생겨 각종 공직자 인사 문제를 불렀다는 평가 또한 있다. # 이에 대해선 공수처와 같은 굵직한 설계에만 관심을 가졌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멘탈이 상당히 강하다는 평도 추가됐다. 조국 사태를 시점으로 가족과 관련된 온갖 비리와 입학비리 의혹 등등 여러가지가 터지고 과거 자신이 올린 SNS글로 조로남불, 조적조 등등 안 좋은 의미의 별명이 붙여지며 진중권을 비롯한 반 친문 진보인사들[9]조국흑서를 출판하는 등 날선비판을 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SNS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2021년 5월 말에는 자신의 회고록 조국의 시간을 출판 여기에서도 "나는 죽지 않았다. 죽을 수 없었다.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 나의 흠결을 알면서도 응원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는 발언에 조국흑서 제작자 중 하나인 서민교수는 "나도 멘탈 강하기로 자부하지만, 조국에 비하면 내 멘탈은 깃털보다 가볍고, 모래알처럼 흩어지고, 금방 녹아없어질 아이스크림 같은 것"이라며 소감을 내놨고 진중권은 "하여튼 이 친구(조 전 장관)의 멘탈은 연구대상이다. 또 책을 써야 하나?"라고 할 정도로 인정하였다.

6. 외모

파일:조국 고등학교 졸업사진.jpg
파일:조국 대학교 졸업사진.jpg
왼쪽부터, 고등학교 졸업사진, 대학교 졸업사진

젊을 때도 잘생긴 외모로 유명했다고 하는데, 본인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괴로웠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남학교만 다녀서 크게 신경 쓸 일이 없었는데, 대학 입학 후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화장실에 갔다 오면 본인 자리에 여학생들이 놓고간 쪽지, 편지, 캔커피 같은것이 잔뜩 쌓여 있었다고 한다.[10] 그는 이에 큰 충격을 받고, 오히려 자기 외모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에 약간 소심해지기까지 했다고 한다. 아내를 만난 건, 그런 쪽지를 보낸 여학생들과 달리 아내는 직접 다가와서 "커피 한 잔 하자"고 한 것이 인연이 되어 교제가 시작된 것이라 한다. 여담으로 아내 쪽이 더 연상이다.

문재인 정부의 초대 민정수석으로 지명받고 두 사람이 함께 찍힌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오자, 김어준을 포함, 인터넷에서는 얼굴패권이라고 지탄하였다. 김어준은 파파이스(김어준의 파파이스157화)에서 '문재인 정부의 신뢰를 흔들 방법이 있다. 미인계를 투입해서 조국 수석이 바람나게 만들면 된다.'라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비교적 동안이기도 한데, 현재 60이 다 되어가는 것을 감안하면 회색 머리를 제외하면 상당히 동안이라고 볼 수 있다.

이치조 마사토, 오타니 료헤이, 홍명보 와 닮았다.

7. 기타



[1] 대법원 판결[2] 특히 법무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민정수석으로 임명된 이후.[3] 부부의 금슬이 좋은지, 정경심이 카카오톡에 남편의 대화명을 "꾸기"라는 애칭으로 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4] 조국이 청문회 답변에서, 아들이 지원한 로스쿨연세대는 아니라고 밝혔으나 어디를 지원했는지는 "아들의 프라이버시 문제"라고 답변을 거부했다. 그런데, 청문회 후에 실시된 압수수색 보도에 의하면 아주대, 충북대에 지원했던 것으로 보인다.[5] 여운형, 허헌, 박헌영, 백남운, 김원봉이 이 단체의 공동의장이다.[6] 조국의 종조부와 비슷한 사례로 손혜원 의원의 부친 손용우가 있다. 손용우 씨는 공작선을 타고 월북해 북한의 밀명을 받은 인물이다. # 다만 조국 종조부는 서훈을 받지 못한 반면 손혜원 부친은 서훈을 받았다는 게 차이점.[7] 정의당 측이 간곡히 만류하여 한때 탈당을 철회했었지만 정의당이 계속해서 조국을 옹호하자 끝내 탈당했다.[8] 특히 김한정 의원은 조국과 절친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9] 다만 진중권을 제외한 저자들은 2020년대 들어 친윤 성향의 보수로 전향하였으며 이중 서민은 완전히 친윤이 되어 보수진영을 대변하고 있다. 진중권도 대선 당시 보인 행보때문에 친명, 친문계에게는 비공식적으로 보수 취급 받는 형편이다. 그러나 진중권은 진보측 지지를 할 만큼 친윤/반문/반명 성향의 진보성향 인물에 가깝다.[10] 조국 본인이 직접 언급한 내용이다. 그런데 정작 같은 서울대 동문들은 "도서관에서 본 적은 거의 없고, 시위 현장에서 더 자주 봤다"고 한다.[11] 음치여서 노래를 잘 못 부르니 주의할 것.[12] IMF 외환위기를 논외로 하면 1994년[13] 실제로 이것과 최전성기에 진입한 한류를 '근거'삼아 '눈 떠보니 선진국'이라는 말이 지지층들 사이에서 유행하기도 했다. 물론 김영삼 ~ 김대중 시기 '눈 떠보니 선진국'이 되었다고 하면 명백한 사실이다.[14] ,물론 한국은 타 국제기구에서는 그보다 훨씬 전부터, 최대한으로 늦게 잡아도 2006년경부터 선진국으로 분류되었다.[15] 물론 윤석열 정부의 실정과 사건사고와는 별개로 한국은 선진국이 맞다. 2024년 IMF 통계 기준 일본보다 1인당 GDP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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