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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2.5px;" | <rowcolor=#ffffff> 연도 | 전당대회 | 선출 대상 | 결과 |
2021년 | 제1차 | 초대 지도부 | 대표 이준석 최고위원 5인 | |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 후보 경선|제2차 대선 경선 ]] | 제20대 대선 후보 | 후보 윤석열 | ||
2023년 | 제3차 | 제2대 지도부 | 대표 김기현 최고위원 5인 | |
2024년 | 제4차 | 제3대 지도부 | 대표 한동훈 최고위원 5인 | |
2025년 | [[국민의힘 제21대 대통령 후보 경선|제5차 대선 경선 ]] | 제21대 대선 후보 | 후보 김문수 | |
대선 후보 선거 | 부결 후보 김문수 복권 | |||
제6차 | 제4대 지도부 | 대표 장동혁 최고위원 5인 |
국민의힘 제6차 전당대회 | ||||||||||
| ||||||||||
{{{#!wiki style="margin: -7px -12px" | 2025년 5월 3일 제5차 전당대회 제21대 대선 경선 | → | 2025년 8월 22일 제6차 전당대회 | → | 2027년 제7차 전당대회 | }}} | ||||
장소 | 청주OSCO, 국회도서관 대강당[결선투표] | |||||||||
선출 대상 | 당대표 1명, 최고위원 4명, 청년최고위원 1명 | |||||||||
방식 | 예비경선: 선거인단 50%, 일반국민 여론조사 50%[역선택] 본선: 선거인단 80%, 일반국민 여론조사 20%[역선택] | |||||||||
링크 | ||||||||||
당선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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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표 장동혁 | ||||
<rowcolor=#fff> 수석최고위원 신동욱 | 최고위원 김민수 | 최고위원 양향자 | 최고위원 김재원 | 청년최고위원 우재준 |
1. 개요2. 배경3. 일정
3.1. 예비경선 일정3.2. 본경선 일정
4. 최종 후보 (가나다순)3.2.1. 본경선 진출자 발표3.2.2. 지역 합동연설회
3.3. 당대표 결선3.2.2.1. 대구광역시·경상북도 지역3.2.2.2. 부산광역시·울산광역시·경상남도 지역3.2.2.3. 충청권·호남권 지역3.2.2.4. 수도권·강원특별자치도·제주특별자치도 지역
3.2.3. TV 토론회3.2.4. 전당대회4.1. 당대표4.2. 최고위원
5. 서류심사 컷오프6. 투표율7. 결과8. 총평9. 관련 자료10. 논란 및 사건 사고11. 여담12. 관련 문서4.2.1. 김근식 (원외)4.2.2. 김민수 (원외)4.2.3. 김재원 (3선, 원외)4.2.4. 김태우 (전 초선 강서구청장)4.2.5. 손범규 (원외)4.2.6. 신동욱 (초선)4.2.7. 양향자 (초선, 원외)4.2.8. 최수진 (초선)
4.3. 청년최고위원1. 개요
2025년 8월 22일에 치러진 국민의힘의 제6차 전당대회. 이 대회에서 선출되는 당대표와 지도부는 2025년 4월 4일에 있었던 윤석열 대통령 탄핵과 2025년 6월 3일에 있었던 제21대 대통령 선거 패배에 따른 수습을 위한 당 운영과 2026년 6월 3일에 있을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지휘해야 하는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2. 배경
전당대회에서는 당대표 1인과 최고위원 4명과 청년최고위원 1명을 선출한다. 예비경선에서 당대표는 4인의 후보로 압축하고 최고위원은 8명, 청년최고위원은 4명의 후보로 압축해 본선에서 선출한다. 예비경선은 당원투표 50%와 일반 여론조사 50%를 반영하고 본경선은 당원 80% 국민 여론조사 20% 를 반영한다. 투표일은 8월 20일 모바일 투표로 투표하고 당대표 최다득표자의 득표율이 50%에 미달하는 경우에는 최다득표 1위, 2위를 후보로 결선투표를 실시한다.12.3 비상계엄의 여파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가 가결되면서 국민의힘에서 각종 반발이 일어난 가운데, 탄핵 찬성파들은 친윤 세력의 입김에 지도부에서 반강제적으로 물러난다. 그 후 윤석열이 파면된 상황에서 전당대회가 개최되는 만큼, 윤석열 정부와 윤석열 파면에 대한 스탠스가 이번 전당대회에서 당선 여부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친윤의 대거 당선이냐 또는 비윤의 대거 당선이냐에 따라 다음 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예전처럼 몰락할지, 기사회생하여 살아남을지를 가를 중요한 선거로 주목받고 있다. 중도~중도보수층 성향의 당원들은 대부분 반윤으로 돌아섰고, 강성 친윤들은 윤석열에 대한 확고한 지지를 보이니, 친윤과 비윤간의 치열한 이권 다툼이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국민의힘은 과거 새누리당 대표였던 황우여를 마지막으로 이제까지 전당대회를 통해서 출범한 지도부가 모두 다 정해진 임기를 채우지 못했는데[4] 이번 4기 지도부는 과연 정해진 임기를 다 채울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번 전당대회로 선출된 지도부는 2026년에 있을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까지 지휘하게 될 예정이다. 2025년 8월 현재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과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은 상승세인 반면 국민의힘 지지율은 하락세를 보이며 20%대가 붕괴된 여론조사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5] 그렇기 때문에 지도부 선출 시, 해당 지도부는 지지율의 반등을 위해 전통적 지지층[6]의 이탈을 막으면서 보수정당의 외연 확장도 이뤄내야 하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2025년 6월 16일, 친윤으로 분류되는 3선 송언석 의원이 원내대표로 선출됨에 따라, 비윤 후보들은 당선 가능성이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7]
3. 일정
국민의힘 제6차 전당대회 일정 |
|
| 국민의힘 제6차 전당대회 일정 안내 동영상 |
3.1. 예비경선 일정
3.1.1. 예비경선 진출자 발표
| '''{{{#fff 예비경선 진출자 발표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9px; background: #fff; font-size: .8em; margin-top: -10px" |
3.1.2. 비전 대회
3.1.2.1. 당대표 후보자
| '''{{{#fff 당대표 비전대회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9px; background: #fff; font-size: .8em; margin-top: -10px" |
3.1.2.2. 최고위원 후보자
| '''{{{#fff 최고위원 비전대회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9px; background: #fff; font-size: .8em; margin-top: -10px" |
3.1.2.3. 청년최고위원 후보자
| '''{{{#fff 청년최고위원 비전대회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9px; background: #fff; font-size: .8em; margin-top: -10px" |
3.2. 본경선 일정
3.2.1. 본경선 진출자 발표
| '''{{{#fff 본경선 진출자 발표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9px; background: #fff; font-size: .8em; margin-top: -10px" |
3.2.2. 지역 합동연설회
3.2.2.1. 대구광역시·경상북도 지역
| '''{{{#fff 대구·경북 지역 합동연설회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9px; background: #fff; font-size: .8em; margin-top: -10px" |
3.2.2.2. 부산광역시·울산광역시·경상남도 지역
| '''{{{#fff 부산·울산·경남 지역 합동연설회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9px; background: #fff; font-size: .8em; margin-top: -10px" |
3.2.2.3. 충청권·호남권 지역
| '''{{{#fff 충청·호남 지역 합동연설회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9px; background: #fff; font-size: .8em; margin-top: -10px" |
3.2.2.4. 수도권·강원특별자치도·제주특별자치도 지역
| '''{{{#fff 수도권·강원·제주 지역 합동연설회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9px; background: #fff; font-size: .8em; margin-top: -10px"[8] |
3.2.3. TV 토론회
| '''{{{#fff 국민의힘 제1차 당대표 후보자 토론회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9px; background: #fff; font-size: .8em; margin-top: -10px" |
| '''{{{#fff 국민의힘 제2차 당대표 후보자 토론회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9px; background: #fff; font-size: .8em; margin-top: -10px" |
| '''{{{#fff 국민의힘 청년최고위원 후보자 토론회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9px; background: #fff; font-size: .8em; margin-top: -10px" |
| '''{{{#fff 국민의힘 최고위원 후보자 토론회 (가조)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9px; background: #fff; font-size: .8em; margin-top: -10px" |
| '''{{{#fff 국민의힘 최고위원 후보자 토론회 (나조)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9px; background: #fff; font-size: .8em; margin-top: -10px" |
| '''{{{#fff 국민의힘 제3차 당대표 후보자 토론회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9px; background: #fff; font-size: .8em; margin-top: -10px" |
3.2.4. 전당대회
| '''{{{#fff 전당대회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9px; background: #fff; font-size: .8em; margin-top: -10px" |
3.3. 당대표 결선[9]
| '''{{{#fff 당대표 결선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9px; background: #fff; font-size: .8em; margin-top: -10px" |
3.3.1. 후보 (가나다순)
<rowcolor=#fff> 결선 진출 후보자 | |
| |
김문수 (金文洙) | 장동혁 (張東赫) |
3.3.2. TV 토론회
| '''{{{#fff 국민의힘 당대표 결선 후보자 토론회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9px; background: #fff; font-size: .8em; margin-top: -10px" |
4. 최종 후보 (가나다순)
4.1. 당대표
4.1.1. 김문수 (3선, 원외)[반]
<colbgcolor=#e61e2b,#e61e2b> | 김문수 (金文洙) |
| |
출생 | 1951년 9월 27일 (73세) 경상북도 영천군 |
현직 | 국민의힘 당원 |
국민의힘 김문수 당대표 후보 |
김문수 당대표 후보 소형인쇄물 |
||<tablebgcolor=#fff,#1c1d1f><width=50%><nop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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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제21대 대통령 선거 당시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비상계엄 사태로 인해 대통령 탄핵을 겪으며 그 패널티를 안고 치른 선거임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출구조사보다도 약 2%나 더 받아 41%의 득표율을 얻으면서 나름 선전했다.[11] 다만 이재명 후보의 사법 리스크에 대한 비토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하며, 양당 지지자들의 결집으로 투표율이 높았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단점은 1951년생으로 고령이라는 점이다. 본인이 당대표에 관심이 없다고 밝혔으나, 제21대 대통령 선거 때도 번복한 사례가 있기 때문에 당대표 불출마를 선언할 지는 조금 더 두고 봐야 하며, 만약 불출마하게 될 시 다른 후보를 지원할 가능성도 있다.
6월 18일 여론조사에서 20.3%로 1위를 했다. #
7월 10일에는 김문수 전 대통령 후보의 국민의힘 당대표 추대 혹은 김 후보의 경선 출마를 촉구하는 209인의 전직 의원들[12]의 지지 선언이 있었다. #
7월 20일 당대표 출마를 선언하였다. #
4.1.2. 안철수 (4선)[찬]
<colbgcolor=#e61e2b,#e61e2b> | 안철수 (安哲秀) |
<bgcolor=#fff,#1c1d1f> | |
출생 | 1962년 2월 26일 (63세) 경상남도 부산시 부산진구[14] |
현직 | 제22대 국회의원 (경기 성남 분당 갑) |
국민의힘 안철수 당대표 후보 |
안철수 당대표 후보 소형인쇄물 |
||<tablebgcolor=#fff,#1c1d1f><width=50%><nop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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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 당시 윤석열과의 단일화를 통해 당에 들어왔고, 윤석열 정부 출범 후로는 비윤 계열 중진이 된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 당시 찬성 표를 던진 대표적인 '찬탄파'이다. 1차 탄핵소추안 표결 당시, 국민의힘 의원 중 가장 먼저 표결에 참가한 후 홀로 국민의힘 의석에 남아있어서 화제가 되었다.[15]
단점은 당내 입지가 약하다는 것. 안철수가 국민의힘에 입당한 후, 친안 상당수가 힘을 잃고 수가 줄어든 탓이 크다. 국민의힘 제21대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안철수 캠프에는 현역 국회의원이 없었다. 여론조사 결과 친윤 후보 나경원에게 밀려 5위로 탈락하나 싶었지만, 의외로 1차 경선을 통과했고, 2차 경선에서 홍준표와 함께 탈락했다.
그동안 당내 주류와 뜻이 일치하지 않았음에도 21대 대선 당시 공동선대위원장으로서 선거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섰으며, 열세였던 출구조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지도부 중 홀로 국민의힘 당사를 지킨 점 등으로 인해 예전과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았다.[16] 그러나 아직도 탄핵 찬성으로 인한 반탄 성향 국민의힘 지지자들의 비토가 존재하기는 하다.
최근, 전국 민심 투어에 돌입했고 특보단을 위촉하면서 일각에서는 본격적으로 당권 도전에 시동을 걸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 하지만,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에 선임되며 전당대회 출마 가능성이 불투명해졌다.[17] 인터뷰에서 "혁신위 활동 기간을 60일로 보장해 줘야 한다"며 "현재는 전당대회가 8월 중순에 마치면 신임 당 대표와 겹치는 부분이 있어 전당대회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불출마 의사를 밝힌 상황이다.#
2025년 7월 7일 당 지도부의 혁신위원회 인선에 반발하여 혁신위원장을 사퇴하고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했다. #
4.1.3. 장동혁 (재선)[반]
<colbgcolor=#e61e2b,#e61e2b> | 장동혁 (張東赫) |
| |
출생 | 1969년 6월 2일 (56세) 충청남도 보령군 |
현직 | 제22대 국회의원 (충남 보령·서천) |
국민의힘 장동혁 당대표 후보 |
장동혁 당대표 후보 소형인쇄물 |
||<tablebgcolor=#fff,#1c1d1f><width=50%><nopad>
||<width=50%><nop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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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사 출신 정치인으로 미래통합당 시절 입당해 한차례 낙선했지만 재보궐선거로 원내에 입성하고 이후 재선도 성공했다. 과거에는 온건파이자 친한계 핵심 인사로 분류되었고, 계엄 당시 한동훈 대표와 계엄해제에도 참여했으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친한계 지도부 붕괴에도 일조하고, 친윤으로 노선을 180도 전환했다.
2025년 7월 9일, 출마 결단을 앞둔 것으로 보도되었다. #
2025년 7월 21일, 출마 선언을 하였다. #
4.1.4. 조경태 (6선)[찬]
<colbgcolor=#e61e2b,#e61e2b> | 조경태 (趙慶泰) |
파일:조경태 프로필2.png | |
출생 | 1968년 2월 8일 (57세) 경상남도 고성군 |
현직 | 제22대 국회의원 (부산 사하 을) |
국민의힘 조경태 당대표 후보 |
조경태 당대표 후보 소형인쇄물 |
||<tablebgcolor=#fff,#1c1d1f><width=50%><nopad>
||<width=50%><nop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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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부터 정당 활동을 시작해 1996년에 정계에 입문한 6선 중진 의원으로, 민주당계 정당에서 친노 인사로 활동하다 2016년에 새누리당에 입당하면서 보수 정치인으로 탈바꿈하였다. 이후 친홍을 거쳐 2024년 하반기에 친한 인사가 되었다.
7월 6일, 출마를 선언하였다.#
7월 29일, 여론조사에서 전체 국민 대상으로는 조경태가 23.5% 1위를 기록했으나 국힘 지지층에서는 1위 김문수 34.9%에 한참 밀리는 11.0%를 기록해 당원 80프로가 반영되는 전당대회 본선에서 상당히 불리해 보이는 수치를 보였다.#
민심 1위를 수성하고 있으나 국힘 지지층 내에서는 고전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이전 전당대회들에서 유승민 전 의원과 양상이 비슷하다. 이번 전대에서는 본인이 민심 100% 비율을 주장했는데,# 과거 전당대회를 앞두고 조경태가 당심 비율을 높이는 룰 개정에 반발하는 유승민에게 당원들의 선택을 두려워한다며, 100% 당원 투표가 상식이라며 날을 세웠던 것을 고려한다면 이른바 자승자박의 상황이 실현될 수도 있다. #
4.2. 최고위원
4.2.1. 김근식 (원외)[찬]
<colbgcolor=#e61e2b,#e61e2b> | 김근식 (金根植) |
| |
출생 | 1965년 3월 31일 (60세) 전라북도 남원군[21] |
현직 | 국민의힘 송파 병 당협위원장 |
국민의힘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 |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 소형인쇄물 |
||<tablebgcolor=#fff,#1c1d1f><width=50%><nop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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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월 26일, 최고위원직 출마를 선언했다. #
4.2.2. 김민수 (원외)[반]
<colbgcolor=#e61e2b,#e61e2b> | 김민수 (金玟秀) |
| |
출생 | 1978년 5월 16일 (47세) 부산직할시[23] |
현직 | 국민의힘 당원 |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 후보 |
김민수 최고위원 후보 소형인쇄물 |
||<tablebgcolor=#fff,#1c1d1f><width=50%><nopad>
||<width=50%><nop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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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1일, 출마를 선언했다. #
4.2.3. 김재원 (3선, 원외)[반]
<colbgcolor=#e61e2b,#e61e2b> | 김재원 (金在原) |
| |
출생 | 1964년 11월 26일 (60세) 경상북도 의성군 |
현직 | 국민의힘 당원 |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 후보 |
김재원 최고위원 후보 소형인쇄물 |
7월 29일, 출마를 선언했다. #
이준석, 김기현, 한동훈 대표 체제에서 모두 최고위원에 당선되었다가 중도 사퇴하였다.
4.2.4. 김태우 (전 초선 강서구청장)[반]
<colbgcolor=#e61e2b,#e61e2b> | 김태우 (金泰佑) |
| |
출생 | 1975년 8월 6일 (49세) 강원도 양양군[26] |
현직 | 국민의힘 당원 |
국민의힘 김태우 최고위원 후보 |
김태우 최고위원 후보 소형인쇄물 |
||<tablebgcolor=#fff,#1c1d1f><width=50%><nopad>
||<width=50%><nop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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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9일, 출마를 선언했다. #
4.2.5. 손범규 (원외)[반]
<colbgcolor=#e61e2b,#e61e2b> | 손범규 (孫範奎) |
| |
출생 | 1968년 12월 7일 (56세) 서울특별시 |
현직 | 국민의힘 남동 갑 당협위원장 |
국민의힘 손범규 최고위원 후보 |
손범규 최고위원 후보 소형인쇄물 |
||<tablebgcolor=#fff,#1c1d1f><width=50%><nop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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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9일, 최고위원직 출마 의사를 밝혔다.#
이후 7월 30일, 출마를 선언했다. #
4.2.6. 신동욱 (초선)[반]
<colbgcolor=#e61e2b,#e61e2b> | 신동욱 (申東旭) |
| |
출생 | 1965년 7월 25일 (60세) 경상북도 상주군 |
현직 | 제22대 국회의원 (서울 서초 을) |
국민의힘 신동욱 최고위원 후보 |
신동욱 최고위원 후보 소형인쇄물 |
||<tablebgcolor=#fff,#1c1d1f><width=50%><nop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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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1일, 출마를 선언했다. #
4.2.7. 양향자 (초선, 원외)[찬]
<colbgcolor=#e61e2b,#e61e2b> | 양향자 (梁香子) |
| |
출생 | 1967년 4월 4일 (58세) 전라남도 화순군 |
현직 | K-디아스포라 세계연대 상임대표 양향자 반도체 아카데미 대표 |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 후보 |
양향자 최고위원 후보 소형인쇄물 |
||<tablebgcolor=#fff,#1c1d1f><width=50%><nopad>
||<width=50%><nop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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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시 고졸 출신으로 삼성전자에 입사해 상무까지 역임한 여성 기업인으로,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정계에 입문했으나, 지역사무소 성폭력 사건으로 제명당한 이후 한국의희망이라는 정당을 만들어 활동하다가 개혁신당과 합당해 원내대표로 활동했다. 그러다 국민의힘 제21대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하기 위해 개혁신당을 탈당하고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7월 28일, 당대표 출마를 선언했다. #
7월 31일, 최고위원 출마로 선회했다. #
4.2.8. 최수진 (초선)[반]
<colbgcolor=#e61e2b,#e61e2b> | 최수진 (崔秀珍) |
| |
출생 | 1968년 4월 16일 (57세) 서울특별시 |
현직 | 제22대 국회의원 (비례대표) |
국민의힘 최수진 최고위원 후보 |
최수진 최고위원 후보 소형인쇄물 |
||<tablebgcolor=#fff,#1c1d1f><width=50%><nopad>
||<width=50%><nop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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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월 31일, 출마를 선언했다. #
4.3. 청년최고위원
4.3.1. 손수조 (원외)[반]
<colbgcolor=#e61e2b,#e61e2b> | 손수조 (孫受祚) |
| |
출생 | 1985년 4월 8일 (40세) 부산광역시 사상구 |
현직 | 국민의힘 당원 |
국민의힘 손수조 청년최고위원 후보 |
손수조 청년최고위원 후보 소형인쇄물 |
||<tablebgcolor=#fff,#1c1d1f><width=50%><nopad>
||<width=50%><nopad> 파일:손수조 소형인쇄물2.jpg ||
파일:손수조 소형인쇄물3.jpg | |
7월 24일, 출마를 선언했다. #
4.3.2. 우재준 (초선)[찬]
<colbgcolor=#e61e2b,#e61e2b> | 우재준 (禹在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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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88년 5월 4일 (37세) 대구광역시 북구 |
현직 | 제22대 국회의원 (대구 북 갑) |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최고위원 후보 |
우재준 청년최고위원 후보 소형인쇄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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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1일, 출마를 선언했다. #
5. 서류심사 컷오프
내부 심사 결과, 당대표와 청년최고위원 후보들에 대해선 컷오프 없이 전원 예비경선 진출, 최고위원 후보 4명의 컷오프가 결정되었다. # 다만 황시혁 후보는 컷오프 후 이의를 제기하였고 수용되어 경선에 다시 참여하게 되었다.===# 최고위원 #===
====# 강성현 (원외) #====
<colbgcolor=#e61e2b,#e61e2b> | 강성현 (姜聲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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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65년 5월 12일 (60세) 전라남도 신안군 |
현직 | 국민의힘 당원 |
슬로건 | 강성현, 약하고 작으나 당신의 가슴을 뛰게할 희망의 불꽃이 될게요. 희망으로 새국힘을! |
총선, 지선 등에 출마를 여러 차례 하여 전부 낙선했던 전적이 있다. 2022년 대선에선 국민의힘으로 출마하려다 서류심사에서 컷오프되었다가 항의한 전적이 있고 이에 불복하여 탈당해 국민의당으로 가서 유일한 안철수의 상대로 등판하려다 경력을 누락했다는 이유로 부적격 통보를 받아 최종 탈락했다. 이후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합당으로 다시 국민의힘 소속이 되어 또 다시 얼굴을 비추고 있다.
====# 김소연 (전 초선 대전시의원) #====
<colbgcolor=#e61e2b,#e61e2b> | 김소연 (金素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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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81년 8월 3일 ([age(1981-08-03)]세) 충청남도 대전시 중구[33] |
현직 | 국민의힘 당원 |
슬로건 | 언제까지 맞고만 살래? 공세적 상상력! |
국민의힘 김소연 최고위원 후보 30초 소개 영상 |
7월 30일, 등록 첫날 최고위원 후보 등록을 마쳤다. #
7월 31일, 대전시의회 기자실에서 회견을 갖고 "계엄과 탄핵을 겪은 당은 재건하고 치유하기가 어렵다. 당을 파괴하고 새로 만드는 창조적인 작업이 필요하다"며 개혁 의지를 드러냈다. #
====# 류여해 (원외) #====
<colbgcolor=#e61e2b,#e61e2b> | 류여해 (柳汝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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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73년 8월 1일 (51세) 경상남도 진해시[34] |
현직 | 국민의힘 당원 |
==# 예비경선 컷오프 #==
===# 당대표 #===
====# 주진우 (초선) #====
<colbgcolor=#e61e2b,#e61e2b> | 주진우 (朱晋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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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75년 5월 25일 (50세) 경상남도 진주시 |
현직 | 제22대 국회의원 (부산 해운대 갑) |
===# 최고위원 #===
====# 장영하 (원외) #====
<colbgcolor=#e61e2b,#e61e2b> | 장영하 (張永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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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58년 4월 9일 (67세)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
현직 | 국민의힘 성남 수정 당협위원장 |
국민의힘 장영하 최고위원 후보 |
장영하 최고위원 후보 소형인쇄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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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0일, 출마를 선언했다. #
====# 함운경 (원외) #====
<colbgcolor=#e61e2b,#e61e2b> | 함운경 (咸雲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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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64년 3월 18일 (61세) 전라북도 군산시[35] |
현직 | 국민의힘 마포 을 당협위원장 |
이후 7월 31일, 출마를 선언했다. #
====# 홍석준 (초선, 원외) #====
<colbgcolor=#e61e2b,#e61e2b> | 홍석준 (洪碩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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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66년 5월 17일 (59세) 경상북도 성주군 |
현직 | 국민의힘 당원 |
====# 황시혁 (원외) #====
<colbgcolor=#e61e2b,#e61e2b> | 황시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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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82년 11월 30일 (42세) 대구광역시 |
현직 | 국민의힘 당원 |
==# 사퇴 #==
===# 청년최고위원 #===
====# 박홍준 (원외) #====
<colbgcolor=#e61e2b,#e61e2b> | 박홍준 (朴洪俊)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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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82년 7월 19일 (43세) 충청북도 청주시 |
현직 | 국민의힘 당원 |
국민의힘 박홍준 청년최고위원 후보 |
박홍준 청년최고위원 후보 소형인쇄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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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3일, 출마를 선언했다. #
8월 18일, 탄핵 반대 후보인 손수조 후보와 단일화하며 사퇴했다. #
====# 최우성 (원외) #====
<colbgcolor=#e61e2b,#e61e2b> | 최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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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95년 12월 (29세) |
현직 | 국민의힘 당원 |
국민의힘 최우성 청년최고위원 후보 |
최우성 청년최고위원 후보 소형인쇄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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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8일, 출마를 선언했다. #
8월 17일, 탄핵 찬성 후보인 우재준 후보를 지지하며 사퇴했다. #
==# 불출마 선언 #==
===# 당대표 #===
====# 김용태 (초선) #====
<colbgcolor=#e61e2b,#e61e2b> | 김용태 (金龍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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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90년 10월 21일 (34세) 서울특별시 |
현직 | 제22대 국회의원 (경기 포천·가평) |
이준석 의원으로부터 당대표 출마 제안을 받았으며,# 6월 18일 여론조사에서는 6.1%로 4위를 기록했다. #
6월 25일,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
====# 나경원 (5선) #====
<colbgcolor=#e61e2b,#e61e2b> | 나경원 (羅景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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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63년 12월 6일 (61세) 서울특별시 동작구 |
현직 | 제22대 국회의원 (서울 동작 을) |
본인이 3번[36] 도전했었던 서울특별시장 선거가 내년에 있어서 내년 지방선거에 중점을 두고 불출마할 수도 있으나, 올해 전당대회에 도전한다고 해도 당대표에 선출되지 않는 한 내년 서울특별시장에 도전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7월 20일,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
====# 장성민 (초선, 원외) #====
<colbgcolor=#e61e2b,#e61e2b> | 장성민 (張誠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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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63년 9월 5일 (61세) 전라남도 고흥군 |
현직 | 국민의힘 안산 갑 당협위원장 |
7월 31일 끝내 후보로 등록하지 않았다.
====# 한동훈 (원외) #====
<colbgcolor=#e61e2b,#e61e2b> | 한동훈 (韓東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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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73년 4월 9일 (52세) 서울특별시 중랑구 |
현직 | 국민의힘 당원 |
비대위원장으로 정계에 입문했으나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참패했고, 특히 비례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가 부진을 겪었으나[37][38], 여러 요인들[39]을 고려해야 한다는 반론도 있었다. 총선으로부터 불과 약 3개월 후에 치러진 제4차 전당대회에서 총선 참패 책임론이 먹히지 않고 63%의 높은 득표율로 당대표에 당선되었다.
당대표 재임 중 치러진 2024년 하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윤석열 정부와 집권여당 지지율이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보수 텃밭인 금정구청장·강화군수를 사수했고[40] 진보 텃밭인 호남에서는 패배했다. 이후 12.3 비상계엄 당시 빠르게 계엄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자당 의원 일부를 계엄해제 표결에 참여시킨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되었지만,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에 대해서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바꿨다는 주장이 있으며 이에 대한 반론 또한 있다.[41] 결국 최종적으로 탄핵에 찬성하면서 구 야권(현 여권)의 '내란동조' 프레임으로부터 자유롭게 된 대가로, 친윤에게는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히게 되었고 선출직 최고위원 전원 사퇴로 지도부가 붕괴하면서 강제적으로 대표직에서 사퇴하게 되었다.
탄핵 반대론이 절대다수였던 당에서 탄핵 찬성으로 '배신자' 프레임이 씌워졌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 제21대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8명의 후보들 중 김문수와 함께 2위권 내에 들어가서 결선투표에 올라갔고, 최종적으로 반탄 VS 찬탄의 대결구도에서 57% : 43%라는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내면서 상당히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경선 경쟁자였던 김문수는 현재 고령이라는 점도 호재이다. 다만 아직도 친윤 성향 국민의힘 지지자들에게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혀있다는 점은 악재이다.
2025년 6월 16일 치러진 원내대표 선거에서 친윤 출신 송언석이 당선된 이후, 친한계 인사들 가운데서는 "불출마가 낫다"는 의견이 우세해지는 분위기이다. ▲ 당대표가 되어봤자 송언석 원내대표 등 친윤계의 방해로 당 개혁을 하기도 힘들다는 점[42] ▲ 당대표로서 지휘해야 할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이재명 정부 출범 1년 뒤에 치러지는 허니문 선거 성격이라서 국민의힘이 승리하기도 어렵다는 점 ▲ 총선과 달리 지선은 중앙당에서 공천권을 행사하지 않기에 친윤계가 지도부에 협조할 유인도 없다는 점 ▲ 내란 특검, 김건희 특검, 채해병 특검 등 3대 특검으로 국민의힘이 대대적인 수사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는 점 등이 출마 반대론의 근거로 거론된다. 그리고 불출마 발표하기 며칠 전 여론조사에서도 한동훈 등 찬탄 진영이 김문수 등 반탄 진영에게 크게 밀리는 것으로 나와 당선 유무 자체도 고민이 됐을 가능성도 있으나, 한 전 대표 측은 당선 가능성과는 무관한 결정이라는 입장이다. # # #
7월 24일 불출마를 선언했다. #
일각에서는 조경태 등 다른 후보를 지원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하지만, 계파 활동으로 비칠 수도 있어 중립을 지킬 가능성도 있다.
==# 변수 #==
===# 당심 대 민심 반영 비율 #===
당심 대 민심 반영 비율이 어떻게 결정날지와 역선택 방지조항을 넣을지 안 넣을지 여부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당심을 높게 반영하고 역선택 방지조항을 넣는다면 친윤 후보에게, 민심을 높게 반영하고 역선택 방지조항을 넣지 않는다면 비윤 후보에게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이후 지난 지도부를 뽑았던 4차 전당대회처럼 역선택 조항은 포함이 되며, 본선에서는 당심 8: 민심 2로 유지가 되고 예비 경선에서만 당심 5: 민심 5를 반영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 단일지도체제 vs 집단지도체제 논쟁 #===
당대표 경선과 최고위원 경선을 따로 하는 단일지도체제를 유지할지, 당대표 경선과 최고위원 경선을 같이 해서 1등이 당대표가 되고 2등~5등이 최고위원이 되는 집단지도체제로 전환할지 역시 쟁점이다.
한나라당~새누리당 시절에는 집단지도체제로 당대표와 최고위원을 선출했지만, 집단지도체제로 선출한 3대 지도부에서 비박계 김무성 대표와 친박계 서청원 최고위원이 매일같이 최고위원회의에서 설전을 벌이는 모습이 방송을 타면서 결국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새누리당 패배에 영향을 미쳤다. 이로 인해 제4차 전당대회에서 단일지도체제로 바뀌었고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이때의 당선인이 보수정당 최초의 호남 출신 당대표 이정현이었다.
단일지도체제는 당대표에게 권한이 집중되며, 당대표 경선에 비해 최고위원 경선의 주목도는 떨어진다는 특징이 있다. 반면 집단지도체제는 당대표와 최고위원에게 권한이 분산되며, 당대표 못지않게 최고위원의 주목도가 높다는 특징이 있다.[43]
이를 송언석 원내대표 등 원내 지도부에서 언급하며 띄웠으나, 안철수, 한동훈, 김문수 등 유력 당권주자들이 전부 반대 입장인 데다 친윤 진영의 꼼수로 보는 비판론도 있다.#
이후, 단일지도체제를 유지하는 형태로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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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투표율
국민의힘 새 지도부를 선출하는 8·22 전당대회의 최종 선거인단 투표율이 44.39%를 기록했다.국민의힘 당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 선거관리위원회는 21일 공지를 통해 책임당원 선거인단 75만3076명 중 33만4272명이 당대표 및 최고위원 선거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전날인 20일부터 이날 밤 10시까지 이틀 동안 진행한 모바일(온라인) 및 ARS(자동응답시스템) 투표를 합산한 수치다.
이는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선출됐던 지난해 7·23 전당대회 최종 투표율보다 4.12%포인트(P) 낮은 수준이다. 당시엔 당원 선거인단 84만1614명 중 40만8272명이 투표에 참여해 최종 투표율 48.51%를 기록했다. 다만 지난해 전당대회 투표 기간은 2024년 7월19일부터 22일까지 총 나흘이었다.
앞서 국민의힘은 전날인 20일 37.51%의 투표율을 기록해 지난해 전당대회 첫날 투표율(29.98%)보다 7.53%P 높은 수치를 기록하며 흥행 기대감을 모으기도 했다. 다만 지난해와 달리 투표 기간이 나흘에서 이틀로 단축된 점 등이 최종 수치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
결선 투표율은 최종 46.55%로 집계됐다.
25일 국민의힘 선거관리위원회는 결선투표에 선거인단 75만3076명 중 35만590명이 투표했다고 밝혔다.
전날(24일) 모바일 투표에 이어 이날(25일) 오전부터 진행한 자동응답조사(ARS) 투표 결과를 합산한 수치다.
이는 본경선 투표율(44.39%) 대비 2.16%포인트(p) 높은 수치이다. #
7. 결과
|
국민의힘 당기를 흔드는 장동혁 신임 당대표 |
|
결과 발표 후 기념촬영을 하는 당대표, 최고위원, 청년최고위원 당선인 |
7.1. 당대표
국민의힘 제6차 전당대회 당대표 선거 | ||
후보(가나다순) | 1차 투표 | |
<rowcolor=#00b5e2> 이름 | 득표수 (선거인단 / 여론조사) | 순위 |
<rowcolor=#00b5e2> 득표율 (선거인단 / 여론조사) | 비고 | |
김문수(金文洙) | 131,785 (101,233 / 30,552) | 2위 |
31.54% (30.28% / 36.56%) | 결선 | |
안철수(安哲秀) | 58,669 (39,599 / 19,070) | 4위 |
14.04% (11.85% / 22.82%) | 낙선 | |
장동혁(張東赫) | 153,958 (132,030 / 21,928) | 1위 |
36.85% (39.50% / 26.24%) | 결선 | |
조경태(趙慶泰) | 73,427 (61,410 / 12,017) | 3위 |
17.57% (18.37% / 14.38%) | 낙선 |
국민의힘 제6차 전당대회 당대표 선거 | ||
후보(가나다순) | 결선 투표 | |
<rowcolor=#00b5e2> 이름 | 득표수 (선거인단 / 여론조사) | 순위 |
<rowcolor=#00b5e2> 득표율 (선거인단 / 여론조사) | 비고 | |
김문수(金文洙) | 217,935 (165,189 / 52,746) | 2위 |
49.73% (47.11% / 60.18%) | 낙선 | |
장동혁(張東赫) | 220,302 (185,401 / 34,901) | 1위 |
50.27% (52.88% / 39.82%) | 당선 |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았다. 8월 24일 ~ 8월 25일 결선투표를 거쳐 8월 26일, 장동혁이 근소한 표차(2,367표, 0.54%p 차)로 당대표로 당선되었다.
7.2. 최고위원
국민의힘 제6차 전당대회 최고위원 선거 | ||
후보(가나다순) | 결과 | |
<rowcolor=#00b5e2> 이름 | 득표수 (선거인단 / 여론조사) | 순위 |
<rowcolor=#00b5e2> 득표율 (선거인단 / 여론조사) | 비고 | |
김근식(金根植) | 98,384 (80,425 / 17,959) | 5위 |
12.04% (12.30% / 10.99%) | 낙선 | |
김민수(金玟秀) | 154,940 (123,059 / 31,881) | 2위 |
18.96% (18.83% / 19.51%) | 당선 | |
김재원(金在原) | 99,751 (84,701 / 15,050) | 4위 |
12.21% (12.96% / 9.21%) | 당선 | |
김태우(金泰佑) | 79,051 (60,553 / 18,498) | 7위 |
9.68% (9.26% / 11.32%) | 낙선 | |
손범규(孫範奎) | 28,603 (17,998 / 10,605) | 8위 |
3.50% (2.75% / 6.49%) | 낙선 | |
신동욱(申東旭) | 172,341 (142,878 / 29,463) | 1위 |
21.09% (21.86% / 18.30%) | 당선 | |
양향자(梁香子) | 103,957 (79,462 / 24,495) | 3위 |
12.72% (12.16% / 14.99%) | 당선 | |
최수진(崔秀珍) | 80,024 (64,565 / 15,459) | 6위 |
9.79% (9.88% / 9.46%) | 낙선 |
7.3. 청년최고위원
국민의힘 제6차 전당대회 청년최고위원 선거 | ||
후보(가나다순) | 결과 | |
<rowcolor=#00b5e2> 이름 | 득표수 (선거인단 / 여론조사) | 순위 |
<rowcolor=#00b5e2> 득표율 (선거인단 / 여론조사) | 비고 | |
손수조(孫受祚) | 200,740 (160,479 / 40,261) | 2위 |
49.52% (49.49% / 49.66%) | 낙선 | |
우재준(禹在埈) | 204,627 (163,815 / 40,812) | 1위 |
50.48% (50.51% / 50.34%) | 당선 |
8. 총평
8.1. 당대표 후보자
- 장동혁: 대표적인 반탄파이자 친윤, 친길 후보로, 본인이 당대표가 되면 윤석열 전 대통령의 면회를 가겠다거나 찬탄파 의원들을 출당시키겠다고 말하는 등[44]의 언행으로 강성 친윤의 지지를 받았고, 결국 여론조사(39.82%)에서 크게 밀리긴 했으나 당원 투표로 뒤집어 당선되었다.
- 김문수: 친윤 후보로, 반탄파지만 전한길보다 한동훈에게 공천을 주겠다고 하거나 찬탄파 후보들까지 다 품고 가겠다고 하는 등 반탄파 중에서는 유한 스탠스를 보였다. 직전 대선후보에 여론조사에서도 쭉 1위를 달리던 유력 후보였음에도 결선에서 석패하면서 정치적 동력을 크게 잃었다고 평가받는다.[45] #
- 안철수: 찬탄파로 선거에 나섰지만 또다시 낙선하게 되었다. 심지어 지난 경선과 똑같이 2차 경선에서 낙선하였고 둘다 4위로 낙선한게 특징이다. 지난 대선때 홍준표는 3강이었고 안철수는 1중이었기 때문이다. 찬탄 후보들중에서도 조경태와는 달리 반탄파후보들을 출당시키겠다 이런식의 센 말은 안했기 때문이며 찬탄파중에선 유했다. 대선 기간에 선거 캠프에서 제일 열정적으로 임하는가 하면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에는 강한 비판 메시지들을 자주 내면서 광복절 기념식때는 조국-윤미향 사면을 비판하는 현수막을 펼치며 적극적인 투쟁 모습을 보였지만 당내 강성 지지층들에게는 찬탄의 모습이 오히려 더 부정적으로 느껴지면서 결국 낙선했다. 다만 안철수의 정치행보에 있어 패배(또는 양보) 때마다 '명분도 실리도 얻지 못했다.'는 꼬리표가 있어왔으나, 탄핵 표결-제21대 대선-제6차 전당대회까지 보여준 모습은 이전보다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는 평이다. 김문수와 장동혁의 결선이 확정된 다음날, 김문수의 러브콜을 받아 회동하며 여전히 낮지 않은 존재감을 입증했다.
- 조경태: 안철수와 마찬가지로 찬탄파 주자로서 당의 쇄신과 함께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와의 단절을 적극적으로 외치는 등 개혁파의 이미지를 보여주었으나, 강성 지지층들에게는 마이너스 요소로 받아들여졌다. 본인이 당대표가 되면 전한길과 친윤후보들을 강제로 출당시키겠다고 말하였고 김어준과 전한길중 김어준의 방송에 나가겠다고 말하는등 친윤파를 완전히 손절하자고 말하는 모습에 친윤당원들이 표를 주지 않은 듯 하다. 친한계의 좌장이며, 중도 및 온건성향 당원들에게는 제법 소구력이 있다고 여겨지며 당원들을 한정하지 않은 여론조사에서는 나쁘지 않은 중량감을 보여주었으나 역시 8:2 룰의 벽을 넘는 이변을 연출하지는 못했다. 여전히 적지 않은 영향력을 지닌 잠룡 한동훈의 지원사격이 있을지 여부가 이목을 끌었고 조경태 측도 지원을 요청하여 조금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였지만 본격적이지는 않았다는 평이다.[46]
8.1.1. 예비경선 탈락자
- 주진우: 초선의원으로서 당대표 후보자 중 정치적 체급이 가장 낮다고 평가받았고, 실제로 예비경선에서 탈락하였다. 중립을 표방하는 후보였던 만큼, 당대표가 아닌 최고위원에 나섰다면 경쟁력이 있었을 것이라는 평가가 있다.
8.2. 최고위원 후보자
- 신동욱: 기자로서 SBS, TV조선 등 메인뉴스 앵커를 십수년 맡아왔고, 정계 입문 이후에도 대변인을 지내는 등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낙승, 수석최고위원에 당선되었다.
- 김민수: 반탄파 대표 주자로서 그들의 지지를 업고서 전체 2위로 지도부 입성에 성공했다.
- 양향자: 입당한 지 불과 4개월 만에 최고위원 당선에 성공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그것도 4위가 아닌 3위로서, 여성할당 혜택 없이 김재원보다 더 많은 득표를 하게 되면서 국민의힘 지도부의 반탄 및 계엄 옹호 치우치기를 어느 정도 견제할 것으로 보이지만, 나머지 최고위원들이 반탄파라 힘들 것으로 보인다.
- 김재원: 무려 4연속 최고위원 당선이라는 진기록을 쓰는 데 성공했다. 다만, 이전 2번의 결과에서 수석최고위원으로 당선됐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4위로 턱걸이 입성을 하게 되면서 당원들도 계속된 출마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대표 선거 결과를 참고하면 김재원이 김문수계로 분류된 것 역시 이전보다 순위가 낮아진 것의 원인 중 하나로 보인다.
- 김근식: 간발의 차로 아깝게 낙선했는데, 선거인단에서는 김재원에게 밀렸지만 여론조사에서는 앞서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8:2 비율의 특성 때문에 결국 낙선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여론조사 결과에서 한정하여도 김재원 후보에게는 앞섰지만 결국 5위에 그쳤다.
- 최수진: 최고위원 중 여성이 최소한 1명이 포함되기 때문에, 양향자 후보에 대항하여 '반탄' 여성후보로 출마한 것으로 보이지만, 현역 의원임에도 불구하고 낙선하였다.
- 김태우: 전체 7위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낙선했다. 반탄파임에도 7위라는 결과물을 얻은 원인은 비슷한 이미지의 김민수 후보로 표심이 쏠린 것으로 보인다. 다만,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패배한 이후 1년 반 이상 유튜브 활동에만 전념하다 정치에 복귀해 영향력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점[47]을 감안해야 한다. 또한 현역 국회의원이나 당협위원장과 달리 야인이라 지원 조직이나 당협이 거의 없었고[48] 그렇다고 당대표 후보와 간접적인 러닝메이트를 이루었던 것도 아니었던 상태였음에도 여론조사에서 '김태우'라는 이름 하나로 김근식, 김재원, 손범규, 최수진 후보를 앞선 것으로 볼 때 추후 박민식 전 장관의 사퇴로 공석이 된 강서구 을 당협위원장에 공모하여 본인의 단점인 당협 조직력을 보완한다면 차후 총선이나 최고위원 선거에 재도전해 훗날을 도모할 가능성이 있다.
- 손범규: 반탄파. SBS 앵커 출신이긴 해도 마지막 TV 방송 진행이 2020년일 정도로 오래되었던 데다가 정치인으로서는 무명신인이라 꼴찌로 낙선.
8.3. 청년최고위원 후보자
- 우재준: 양향자와 함께 이변의 주인공. 찬탄파와 반탄파 모두 단일화를 하면서 1:1 구도로 맞붙었고, 이 상황에서 현역 프리미엄 일정부분 작용하였다 할지라도 반탄파인 손수조가 당내 인지도와 함께 반탄파의 지지를 업고서 유리해보이는 열세를 깨고 신승을 거두는데 성공했다.
- 손수조: 반탄파, 반한동훈을 가치로 박홍준 후보와 단일화하여 전당대회에 임하였으나, 선거 결과 약 1%p의 차이로 석패하며 지도부 입성에 실패하게 되었다. 물론 표면상으로만 석패이고, 반탄파 당대표 후보 2명이 모두 생존하여 결선 투표에 진출하는 매우 유리한 선거 구도 속에서도 당심, 민심 모두 우재준 후보에게 패배한 것은 사실상의 참패에 가까운 결과로 해석되며, 위태롭게나마 유지하고 있던 정치 생명이 아예 끊어질 위기에 놓였다. 당대표 선거 1차 투표 결과를 보면 반탄파 김문수 후보, 장동혁 후보의 지지율을 합했을 때 약 70%에 육박했는데, 같은 반탄파인 손수조 후보의 지지율은 과반에도 못 미쳤기에 산술적으로 김문수, 장동혁 후보에게 투표한 반탄파 지지층 10명 가운데 3명 정도가 이탈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만큼 국민의힘 내 반탄파 지지층도 손수조 후보의 인물 경쟁력에 의문을 표했다는 뜻이기에[49][50] 손수조 후보에게는 이번 선거 결과가 치명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8.4. 국민의힘측
8.4.1. 찬탄파
최고위원 선거에서 양향자 전 의원이, 청년최고위원 선거에서 우재준 의원이 당선되었으나, 당대표 선거에서 안철수, 조경태 의원이 모두 결선투표에도 올라가지 못하며 씁쓸한 성적을 거뒀다. 단일화를 했으면 결선투표에 올라갈 수 있었다고 아쉬움을 표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당심 대 민심 반영 비율이 8:2인 마당에 단일화를 했어도 결선투표에 올라갈 수 있었을 지는 미지수였으나 결선에서 수치가 공개되면서 단순 합산시 득표율 31.61%로 31.54%를 기록한 김문수 후보를 가까스로 제치고 단일화 후보가 결선에 진출할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51] 물론 단일화의 효과는 단순 합산시의 결과보다는 낮은 경우가 일반적이다. 쉽게 생각해서 안철수, 조경태 단일화시 0.1%만 김문수로 이동했어도 잡음 없이 바람을 일으키지 않는 이상 단일화 효과는 안 하느니만 못했던 것이다.오히려 전략적 모호성을 택한 '찬탄' 후보였던 양향자, 우재준[52] 후보는 생존하였다. 양향자 후보는 전한길, 김문수 후보가 모두 참석했던 투게더 포럼에 참석한 적이 있고 #, '반탄' 후보를 지지하는 유튜버 고성국[53]과 특별 대담을 가진 바 있다. # 우재준 후보는 전한길과도 역시 언젠가는 같이 갈 날이 오길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전한길과 적극적으로 대립한 김근식 후보가 결국 낙선한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더욱 극명해진다.
상대적으로 통합을 내세웠던 김문수 후보가 낙선하고 장동혁 후보가 당선되면서 찬탄파의 당내 입지는 크게 좁아졌다. 김문수는 한동훈 전 대표가 페이스북을 통해 사실상 지지를 표명하고 #, (지지 선언에는 선을 그엇지만) 안철수 의원과 회동을 가지며 # 찬탄파의 표심을 흡수하려 했지만, 당원들은 가장 강경파였던 장동혁 후보의 손을 들어주었다. 김근식 후보의 낙선에서 볼 수 있듯이, 순수한 찬탄파의 표심으로는 당내에서 최고위원 한 명을 당선시키는 것마저도 어려워졌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8.4.2. 반탄파
이번 전당대회 후 반탄파, 그중에서도 특히 친길 내지 윤 어게인으로 대표되는 강경파가 당내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당의 극우화에 대한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탄핵 이후에도 강경보수가 당권을 다시 잡은 모양새가 됐는데, 선출 직후 장동혁 대표가 이재명 정부를 향해 투쟁을 선언함으로써 2019년 자유한국당 시절 당대표였던 황교안, 원내대표였던 나경원을 필두로 한 강경보수파가 문재인 정부를 향해 패스트트랙 반대 시위 등 극한 대치를 이어갔던 시절과 비슷한 형태가 되었다.
9. 관련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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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당대회 생중계 (1차) | 전당대회 생중계 (2차) |
10. 논란 및 사건 사고
10.1. 전한길의 대구·경북 합동연설회 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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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식 최고위원 후보의 연설 중 비토 여론을 선동하는 전한길 |
- '기자석' 전한길에 물병 던지고 항의…난장판된 국힘 TK연설회 - 중앙일보
- 찬탄·반탄 분열한 당원들에 전한길까지…아수라장 된 국힘 첫 연설회 - 머니투데이
- 국힘 연설회 휩쓴 전한길…찬탄 후보에 "배신자" 구호 선동 '난장판' - 동아일보
- 국힘 윤리위, 14일 전한길 징계 결론…"가볍지만은 않을 것" - 뉴스1
- 전한길, 윤리위 '경고'에 "친한파 몰아내고 당 뭉치게 할 것"
8월 8일 대구광역시 EXCO에서 열린 대구경북 지역 합동연설회가 소위 '찬탄파'와 '반탄파' 간의 고성·물병 투척·몸싸움으로 난장판이 되었다. 특히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 즉 '전한길뉴스 발행인'으로 참석한 전한길이 이런 분위기를 과열시키면서 큰 소란이 벌어졌다.
연설회 내내 반탄 후보들은 찬탄 후보들을 "내부총질", "배신자"라고 비난하고 찬탄 후보들은 반탄 후보들이 "반헌법적인 계엄 사태가 발생했음에도 변화를 거부하고 윤석열을 비호한다"며 맞받아쳤는데, 전한길은 반탄 후보들의 연설 중에는 응원을, 찬탄 후보들의 연설 중에는 "배신자"라고 노골적으로 야유하며 분위기를 몰아갔다. 특히 찬탄 진영의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의 차례에서 자신을 비판하는 내용[54]이 나오자 "김근식이 나를 비난한다"며 김근식이 연설하는 도중 당원석 방향으로 달려가 자신의 지지자들과 함께 손을 뻗으며 "배신자!"를 연호하기도 하였다.[55] 여기에 더해 조경태의 연설 때는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 위에 올라서 한 손을 들고 항의하다가 제지를 당하는 등[56] 여러모로 후보들보다 더 주목받는 모습을 보였다.
당연히 찬탄 측 지지자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전한길을 향해 물병을 던지거나 아예 몰려가서 "기자석에 왜 있냐"며 항의하기도 했다.[57] 대표 후보들의 연설이 이어지는 동안 흥분한 지지자들끼리 가벼운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으며[58], 심지어 한 국민의힘 당원이 "나는 20년차 당원인데 한 달짜리 주제에 이런 난동을 피우냐"고 전한길에게 호통을 치자 전한길의 표정이 굳는 모습까지 보였다.
결국 국민의힘 지도부에서도 이 사태를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었는지, 향후 대의원 신분을 제외한 일반 당원들의 전당대회 행사장 출입을 금지하면서 전한길 역시 전당대회 전 일정에 출입을 금지당하게 되었다. # 전한길은 이에 대해 언론탄압이라고 반발했다. # 그러나 위에서 언급했듯이 전한길이 언론인으로서 정상적인 취재 활동 도중 송언석 지도부에 의해 부당하게 탄압받은 것이 아니라 찬탄 후보의 연설 상황에서 선동, 고함 및 욕설 등으로 전당대회 행사를 방해한 사실이 분명하고, 언론인이 아닌 당원으로서 징계 사유가 명확[59]하므로 전한길이 주장하는 언론탄압이라는 프레임은 상당히 억지스럽다. 특히나 전한길은 본인을 극단적이고 과격 성향으로 몰아가는 프레임이 억울하다고 줄곧 항변해 왔는데, 카메라에 잡힌 모습은 과격 시위에 등장하는 바람잡이들의 행동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이후 전한길은 전한길뉴스의 사설을 통해 "탄찬파들은 '전한길 때리기'로 불리한 세를 만회해 보고자 발버둥을 치는 것이고, 탄반(탄핵 반대)파에서도 장동혁 당대표 후보의 지지세 성장에 위협을 느낀 김문수 당대표 후보 및 김재원 최고위원 후보가 전한길 발행인을 견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8월 9일, 국민의힘은 전한길에 대한 징계안을 서울시당에서 중앙당으로 이첩해 징계 절차를 개시했다. # 그러나 전한길이 12일로 예정된 부산·울산·경남 합동연설회에도 전한길뉴스 발행인 자격으로 당연히 참석할 예정이라고 밝힘에 따라 추가적인 소요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60]
8월 11일, 전한길은 "김근식 후보가 먼저 나를 공격했고, 자신은 당원들 사이에서 '배신자' 구호가 나오자 따라외쳤을 뿐"이라며 도리어 중앙당사에 김근식에 대한 징계요구서를 제출했다. # 같은 날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는 11일 징계 절차가 마무리될 것이라는 기존의 예측을 깨고 14일에 2차 회의를 연다고 밝혔다. 친윤 성향의 강성 당원들을 의식해 시간을 끄는 것으로 풀이된다. # 그런데 국민의힘 선관위에 따르면 전한길이 언론인(PRESS) 비표를 본인의 이름으로 발급받지 않고 타인의 명의로 발급받은 것을 이용해 부정출입한 것으로 나타나[61] 중징계는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8월 14일, 상술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 윤리위원회는 "본인이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있다" 면서 가장 약한 수위의 징계인 '경고' 처분을 내리기로 결정했다. # '제명'까지 거론됐던 것을 고려하면 거의 솜방망이 처벌인데, 윤리위 회의에서는 심지어 "징계가 아닌 '주의' 조치를 해야 한다"[62], "징계할 거리도 안 된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한다. #[63]
10.1.1. 징계 반응
- 이 사건 당사자인 전한길은 윤리위 결정에 대해서 "국민의힘 윤리위도 내가 피해자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면서 내부총질과 해당 행위를 일삼는 친한파 세력들을 몰아낼 것이라고 밝혔다.#
- 안철수 후보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민의힘 치욕의 날", "난동을 부린 미꾸라지 같은 전씨는 소금을 뿌려 쫓아내도 모자란 존재"라며 "끊어내야 살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한 줌도 안되는 극단적인 유튜버와 절연도 못하면서 어떻게 당을 살리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것이냐"며 "속에서 천불이 난다"고 밝혔다.#
- 조경태 후보는 "제가 당 대표가 되면 바로 단칼에 제명"이라며 "형사 고발 건도 될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이어 "전 국민이 다 보는 상황에서 유세를 방해한 사람에게 내리는 징계 수위가 경고에 그친다는 것은 윤리위에 소속된 사람들이 같은 편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당 대표가 되면 당무 감사를 통해 윤리위원장과 윤리위원들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 김문수 후보는 관련 질문에 "어떻게 됐느냐. 나는 못 들었다"고 한 뒤 "윤리위 판단을 존중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윤리위가 결정한 데에는 판단 근거가 있을 것으로 본다"며 "규정이나 논의 과정을 모르기 때문에 언급하기가 조금 부족하다"고 했다.#
- 장동혁 후보는 "우리 당의 윤리위는 당과 독립적으로 결정을 하는 기구"라며 "그 결정에 대해 이 자리에서 의견을 밝히는 게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 국민의힘 지도부마저도 윤리위원회의 이 결정에 대해 "당초 예상보다는 가벼운 징계 조치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면서 사실상 전한길의 편을 들어주었다.#
- 더불어민주당은 박지혜 대변인을 통해 "전한길 개인에 대한 경징계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힘이 '윤어게인'을 앞세운 내란 세력과의 단절을 명시적으로 거부한 것" 이라고 비판했다.#
-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당대표는 "국민의힘은 어쩔 수 없는 정당" 이라면서 비판에 가세했다. #
10.2. 윤석열 전 대통령 복당 허용 논쟁
'尹은 수감돼 있는데'…국힘 당권주자 '尹계엄·복당' 공방 격화 - 연합뉴스'윤 계엄·복당' 논쟁…국힘 당권 주자 공방 격화 - SBS
"윤석열 복당 가능" vs "그들은 계엄 3형제"…보수 심장서 두 쪽난 국민의힘 - 매일경제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인 김문수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령은 잘못이지만 죽은 사람이 없으니 복당을 원하면 복당시킬 것이라고 말하자 찬탄파 후보 2명이 크게 반발했다. 안철수는 이재명이 파놓은 계엄 옹호정당, 내란 정당의 늪에 우리 당을 던져버리겠다는 거냐고 비판했고 조경태는 "폭력을 행사했지만 맞은 사람 없고 칼을 휘둘렀지만 죽은 사람 없어서 죄가 없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냐", "총칼로 국민을 대상으로 위헌, 불법 계엄을 저지른 자의 복당을 입에 담다니 제정신이 아니다"라면서 김문수에게 당장 당을 떠나고 정계를 은퇴하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 전당대회에 출마하지 않은 한동훈 역시 계엄을 막았기 때문에 유혈사태가 나지 않은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하였다.
11. 여담
- 원래는 5차 전대가 본 전당대회 역할을 할 예정이었으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인용으로 인한 조기 대선으로 인해 뒤로 밀려났다.
- 유력한 당대표 출마후보였던 나경원 의원과 한동훈 전 대표 모두 출마했다면 국회의원직 당선 경험이 없는 당대표 후보부터 6선 당대표 후보까지 모든 선수의 후보들이 경쟁하는 진기록이 나올 뻔했다.[64]
- 부산대학교 출신의 조경태 후보를 제외한 당대표 후보 전원이 서울대학교 출신이다. 다만 3기 지도부를 뽑았었던 4차 전당대회에서는 사회과학대학 출신인 윤상현 후보를 제외한 전원이 법과대학 출신이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전공이 모두 다르다. 김문수는 경영학과, 장동혁은 불어교육과, 안철수는 의과대학, 조경태는 토목공학과, 주진우는 법과대학 출신이다.
- 그동안 거대 정당의 전당대회는 줄곧 수도권에서 개최했는데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비수도권에서 개최한다. 청주OSCO를 전당대회 장소로 꼽는 이유는 경부고속선, 호남고속선 KTX, SRT가 정차하는 오송역과 경부고속도로 청주IC에서 가까워 전국 각지의 당원 수송(버스, 철도)이 원활하고, 여기에 청주국제공항이 가까워 제주도에서 비행기 타고 와야하는 당원들까지 수송하기 편리하기 때문이다. 앞서 2025년 6월 29일 더불어민주당 더민주혁신회의 2025 전국대회를 이곳에서 열었다. 국민의힘이 충북에서 당내 최고 행사를 치른 건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내부 결속은 물론 중도층 포섭까지 염두에 뒀다는 분석이다. # 하지만 행사 당일 행사장 외부에서 정치적 구호를 큰 소리로 반복 재생하면서 인근 아파트 단지 주민들에게 항의가 쏟아지기도 했다.#
- 강사 출신 유튜버인 전한길도 당 대표 출마 여부에 대해 추측이 많았으나, 김문수와 장동혁의 출마로 백지화되었다. # 사실 전한길은 입당 후 당비 최소 납부 기간 요건을 못 채웠기 때문에 예외[65]로 허용되지 않는 이상 애당초 출마가 불가능했다.
12. 관련 문서
[결선투표] 당대표 결선투표 결과는 8월 26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발표하였다.[역선택] 국민의힘 지지층 및 무당층을 대상으로 한 역선택 방지 조항 포함.[역선택] [4] 김무성(제20대 국회의원 선거 패배로 인한 사퇴), 이정현(박근혜 탄핵 가결로 인한 사퇴), 홍준표(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참패로 인한 사퇴), 황교안(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참패로 인한 사퇴), 이준석(당원권 정지 6개월 및 비대위 전환으로 인한 대표직 상실, 사실상 축출), 김기현(2023년 하반기 보궐선거 패배로 인한 사퇴), 한동훈(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 찬성으로 인한 경질성 사퇴).[5] 전국지표조사 기준으로도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이 60% 초중반,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이 43~45%대에 안착한 반면 국민의힘 지지율은 16%까지 하락했다.[6] TK, 서부 경상남도, 강남구, 서초구 지역 및 60대 이상 고령자.[7] 이후 실제로도 결선투표에서 당심: 민심 비율이 8:2로 그대로 유지되었다.[8] 국민의힘은 당초 경기 일산 킨텍스에서 합동연설회를 열 계획이었지만, 집중호우로 인한 수해 피해가 발생하자 당사로 장소를 변경하고 온라인 생중계를 하기로 13일 밤 결정했다. #[9] 과반 득표자 부재로 1,2위 후보 결선[반] : 탄핵반대파(반탄파)[11]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 당시 국정농단 사태로 인해 박근혜의 탄핵소추 및 파면을 겪었던 자유한국당이 홍준표를 후보로 내세워 고작 24%의 득표율 얻은 것과 바른정당 후보였던 유승민과 합해도 겨우 30% 넘긴 것에 비하면 선전했다. 다만 ▲ 홍준표-안철수-유승민으로 분산되었던 당시에 비해 양당 구도가 더 강해져서 이준석을 제외하면 표 분산이 적었던 것 ▲ 성완종 게이트, 돼지발정제, 노자검 발언 등 홍준표 후보 본인의 논란이 당시에 컸던 것 ▲ 유권자들이 문재인 정부의 여러 논란들(부동산 정책, 조국 사태, 추미애-윤석열 갈등 등)을 경험하면서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거부감이 강해졌다는 것 ▲ 2017년의 문재인에 비해 2025년의 이재명에 대한 사람들의 거부감이 조금 더 컸다는 것 등 여러 요인을 고려해야 한다.[12] 강길부, 김정권, 박세환, 신영수, 이만우, 전석홍, 강성천, 김정록, 박승국, 신하철, 이명규, 전용원, 강신조, 김정부, 박승환, 신현태, 이방호, 정경희, 고조흥, 김정숙, 박신원, 심국무, 이상권, 정동윤, 곽성문, 김제식, 박원홍, 심규철, 이성구, 정문화, 구천서, 김종태, 박유재, 심대평, 이성배, 정미경, 권경석, 김종하, 박윤옥, 심재엽, 이수담, 정영희, 권영자, 김종학, 박재홍, 안교덕, 이신범, 정윤숙, 권정달, 김종훈, 박종희, 안대륜, 이애주, 정일영, 권태망, 김충환, 박찬숙, 안덕수, 이연석, 정창현, 김정, 김태원, 박창식, 안상수(창원 안상수로 추정), 이연숙, 정형근, 김광원, 김태환, 박철언, 안홍준, 이영일, 정화원, 김근태, 김한선, 박태권, 양경자, 이완영, 조명철, 김동욱, 김한표, 박헌기, 양창영, 이용경, 조부영, 김동주, 김호일, 박혁규, 오경훈, 이용택, 조익현, 김락기, 김홍만, 박희태, 오양순, 이우재, 조현룡, 김병호, 김황식, 배길랑, 오장섭, 이우현, 주영순, 김봉조, 김희국, 배영식, 오제세, 이운룡, 차명진, 김석준, 나종태, 배일도, 우신구, 이원복, 최경희, 김선동, 노승우, 백성운, 원광호, 이원창, 최교일, 김성수, 노인환(사망), 변우량, 원유철, 이윤성, 최구식, 김성태, 노철래, 변정일, 유승우, 이인제, 최병국, 김송자, 도종이, 서훈, 유용태, 이재영(1975년생 이재영으로 추정), 최형우, 김영덕, 문희, 서상목, 유한열, 이재창, 하순봉, 김영숙, 문정수, 서청원, 윤건영, 이춘식, 한이헌, 김용균, 민경욱, 성무용, 윤경식, 이한성, 한효섭, 김용덕, 민봉기, 성윤환, 윤명희, 이해구, 허천, 김용채, 박계동, 손범규, 윤석용, 이혜훈, 허대범, 김용태, 박근호, 손희정, 이계진, 이화수, 허세욱, 김용학, 박대동, 송광호, 이군현, 이희규, 현경병, 김운환, 박보환, 송병대, 이규택, 임인배, 홍일표, 김의재, 박상은, 송영근, 이근진, 임재훈, 홍희표, 김일윤, 박상희, 송영선, 이긍규, 장경우, 황인자, 김장실, 박성범, 신경식, 이덕모, 장석춘, 황진하, 김재원, 박성호, 신영국, 이덕호, 장정은[찬] : 탄핵찬성파(찬탄파)[14] 現 부산광역시 부산진구.[15] 김예지, 김상욱 의원도 표결에 참여했으나, 퇴장하지 않고 찬성 표결을 한 후 오랫동안 자리를 지킨 국민의힘 의원은 안철수가 유일하다.[16] 안철수처럼 비윤인 한동훈은 김문수 선대위의 공동선대위원장을 거부했고, 김문수에 대한 유세도 뒤늦게 시작했다. 이에 비하면 안철수는 선거 운동에 적극적인 편이었다.[17] 다만, 혁신위원장 임기가 새로운 당 지도부가 선출되기 전까지로 출마가 불가능해진 것은 아니다.[반] [찬] [찬] [21] 現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반] [23] 現 부산광역시[반] [반] [26] 現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반] [반] [찬] [반] [반] [찬] [33] 現 대전광역시 서구[34] 現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35] 現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36]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021년 재보궐선거때에는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에게 밀려 당내 경선에서 패배했고,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에서는 최종 후보로 선출되었으나 박원순 후보에게 패배하였다.[37] 비상계엄 후 탄핵 대선이었던 제21대 대통령 선거의 국민의힘 득표율와 비교해도 4.5% 정도 부족한 득표율이었다[38] 다만 21대 대선의 지역별 득표를 총선으로 환산할 경우 99석에 불과하다.중앙일보 기사. 그러나 제3지대 정당들이 지역구마다 후보를 내기 어려운 총선은 사실상 양자구도였고, 대선은 범보수 계열 후보였던 이준석 후보가 보수 계열 표를 나누어 가져갔기에 단순 환산 의석수만으로 비교하기는 어렵다.[39] ▲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임기 초부터 선거일 직전까지 수많은 악재들을 지속적으로 생성해냈다는 점 ▲ 한동훈 비대위원장 취임 이전에는 국민의힘이 100석도 안 될 것이라는 예측도 많았을 정도로 당 분위기가 상당히 어두웠다는 점 ▲ 김기현 전 대표의 기습적 사퇴로 인해 총선으로부터 불과 100일 전에 긴급하게 비대위원장으로 취임했고, 이미 한동훈 취임 이전부터 총선을 어떻게 치를지 틀이 상당부분 짜였다는 점 ▲ 한동훈 본인이 자발적으로 나선 게 아니라 당의 요청을 받고 비대위원장에 취임했다는 점 ▲ 한동훈이 비대위원장으로 취임한 후, 윤석열의 대파 발언, 이종섭 호주 대사 임명 논란 이전에는 국민의힘/국민의미래 지지율이 상승세 였다는 점 등[40] 그 중 금정구는 선거막판에 민주당 현역 의원의 엄청난 실언도 결정적으로 한몫했다.[41]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고.[42] 실제로 한동훈은 과거 당대표 시절에도 친윤계인 추경호 원내대표와도 마찰을 빚은 바 있다.[43] 더불어민주당/제1차 정기전국당원대회는 예외적으로 최고위원 경선의 주목도가 더 높았으나, 이는 당대표 경선에서는 이재명 후보가 워낙 확고한 지지율을 얻었던 반면, 최고위원 후보자 8인끼리는 대부분 당내 인기도가 비슷비슷했고 결과적으로 2~6위 간의 격차가 매우 촘촘해서 결과를 끝까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44] 단, 정말로 그럴 경우 국민의힘은 의석수가 100석 이하로 감소하여 개헌저지선이 붕괴되어 개헌을 막을 수가 없게 된다. 그리고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나면 출당된 의원들은 개혁 보수쪽인 개혁신당으로 가거나 무소속으로 활동, 혹은 아예 신당 창당을 하거나 최악의 경우 더불어민주당으로 넘어가기까지하며 의석은 유지할 것이며, 본인들을 출당시킨 국힘을 지지하며 개헌에 반대할 가능성은 낮다.[45] 일단 국민의힘 당원들의 경우 강성 친윤파들이 매우 많은 편이고 실제로 결선에서 이전까지의 여론조사를 뒤집고 장동혁이 당선되기도 하는등 현재 국민의힘은 강성 친윤파들이 매우 많은 편인데 이들과 대치하는 찬탄파들과도 함께 가겠다는 정책은 찬탄파를 매우 싫어하는 강성 친윤(반탄파)들에게 당연히 마이너스가 되버릴수밖에 없다.[46]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사실상 반탄 우위여서 한동훈의 직접 등판 또는 조경태를 향한 전폭적 지원 사격에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웠던 데다가, 겨우 신승하여도 친윤 및 반탄 성향 의원 및 당원들의 견제로 또 다시 기를 펴기 어려워 우선은 힘을 아끼며 비축하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이 있다. 당장 과거 한동훈 당대표 체제 및 선대위 체제에서 방향타를 잡았지만 윤석열과의 불화로 인한 친윤의 견제 속에 기를 못펴고 물러나야 했으며, 총괄선대위원장 직을 수행하면서도 윤석열과 친윤이 일으키는 설화와 악재로 불리한 선거를 치렀고, 종국에는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게 되어 정치적 위상에 몇 번 상처를 입은 적이 있다. 때문에 본인은 불출마 선택 및 조경태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사격을 포기하고 "상식적인 후보에게 투표해달라." 정도의 측면지원에 그친 것으로 보인다. 조경태의 낙선 이후로 언론에서는 캐스팅보트가 될 수도 있는 온건중도 또는 친한계 지지자들의 표심이 어디로 가는지에 주목했는데 친한계 신지호는 덜 미운 김문수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김문수와 장동혁 중 장동혁이 더욱 강경한 친윤이며, 무엇보다 장동혁은 친한이었다가 친윤으로 전향한 케이스라 친한계 지지자들 사이에선 배신자로 통하기 때문.[47] 3차 전당대회 당시의 민영삼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48] 전당대회의 경우 선거인단:여론조사의 비율이 8:2이기 때문에 당원협의회 조직의 영향력이 막강한 편이다.[49] 손수조도 이준석과 함께 박근혜의 전격적인 지원을 받아 정계 입문을 했지만, 늘 소장파 비주류를 자처해 '마삼중'이라는 비하까지 들어가며 낙선을 거듭했음에도 소장파로서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국민의힘 대표에 당선되고 개혁신당을 차려 국회의원에 당선되기까지 모든 것들을 스스로 일구어낸 이준석과는 너무나 다른 행보를 보여왔다. "이겨도 본전, 지면 망신"이라는 의도 하에 문재인을 저격하는 자객공천으로 등장했는데, 당시 친박에서도 갑툭튀 낙하산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왔고 문재인과 경합하여 패배한 이후에도 박근혜의 지속적인 편애를 받아 이에 대해서 고까워하는 여론이 적지 않았다. 박근혜에 대한 의존도가 심한 정치인으로 꼽혔고, 때문에 박근혜가 탄핵으로 힘을 잃자 손수조 역시 정치적 영향력이 덩달아 소멸했다. 그 이후에 몸을 낮추고 있다가, 이번 전당대회에서 당권파를 지지하는 입장으로 등장하니 또 다시 쉬운 정치를 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차가운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다. 손수조 본인의 의도가 어떻든, 장례지도사로 전업해놓고 뜬금없이 작년 초에 상대적으로 보수정당의 텃밭이자 수해 복구 망언 전적으로 차기 총선에서 공천 탈락이 유력하게 점쳐지던 김성원 의원의 지역구 동두천시로 이주해 청년 몫 전략공천 및 현역의 아웃만을 노리고 지역 활동을 했었는데, 바로 이러한 행보도 자꾸 본인에게만 쉬운 정치를 하려고 한다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정작 아웃될 거라 예상되었던 김성원이 무난하게 공천을 받고 연임에 성공했을 정도이니.[50] 손수조 후보가 절대 착각하면 안 되는 것이, 청년으로서의 배려나 당원들의 환영 같은 것도 아직 정치적으로 실패를 많이 경험해보지 않았거나, 험지 출마를 자처하는 등 당을 위한 희생을 했을 때나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손수조 후보는 이미 낙하산이라는 멸칭으로 이미지 소모를 감수해가며 당에서 부산 공천을 2번이나 줬는데도 전부 낙선한, 당 입장에서는 이미 실패한 정치인인 것이다. 부산에서 2번 낙선한 이후로 장례지도사로 전직하더니 뜬금 없이 보수 텃밭에서 현역 교체 전략 공천을 노리며 지역 활동을 하고, 이제는 진짜 보수를 자처하며 반탄파에 들러붙는데 당원들이 그 진정성을 알아줄 리가 만무하다는 것이다.[51] 21대 대선 당시, 이준석 후보와 김문수 후보의 득표율을 단순히 합치면 이재명 대통령의 득표율을 넘는 상황과 비슷하다.[52] 다만 우재준은 윤석열 탄핵에 반대표를 행사했기에 엄밀히 따지면 찬탄파는 아니다. # 개인적으로는 탄핵에 찬성하지만 지역구인 대구의 여론을 고려하여 반대표를 던졌다.[53] 비상계엄 이후 윤석열 대통령과 직접 통화한 바 있다.[54] "전 씨 같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저런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나"[55] 심지어 "내 욕하고 지X이야", "조용히 보고 가려 했더니만 대놓고 씹네", "씨X", "제정신이 아니지", "내가 가만히 있을 거 같아?"라는 등 대놓고 욕설 섞인 발언을 하기도 했다. #[56]
[57] 다만 기자석에 있는 이유는 전한길이 강사 출신으로 잘 알려져있기는 하지만 엄연히 전한길뉴스의 발행인 겸 기자라는 자격이 있기 때문으로 일단 적법하긴 하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기자 신분으로 참석하여 합동연설회 중 비토 여론을 선동한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58] "조경태는 빨갱이"라고 외친 당원이 '조경태 파이팅' 피켓을 든 다른 당원을 밀쳐내는가 하면, 장동혁 지지자가 김문수가 대선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 옹호에 적극 나서지 않았다는 이유로 "김문수를 처단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일도 있었다. #[59] 상식적으로 가입한지 몇 달 안 된 신입 멤버가 행사장에서 선동, 욕설, 고함을 지르며 행사를 방해하는데 이에 대해 문제가 없다며 조용히 넘어가는 단체는 거의 없다. 실제로 이제 신입 당원인 전한길이 자기가 무슨 평당원의 대표라도 된 것마냥 당대표 후보들의 연설을 대놓고 방해하는 것이 어이가 없었던 몇몇 선배 평당원들이 전한길에게 호통치며 강하게 꾸짖기도 했다. 그리고 설령 전한길이 가입일이 꽤나 오래된 고참 당원이더라도 문제인 것이, 기본적으로 전당대회와 같은 이벤트는 일종의 스포츠맨십과 페어플레이 정신을 존중하는 것이 암묵적 철칙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전당대회 등을 기점으로 감정의 골이 깊어져 세력이 분열된다는 아주 상식적으로 예측 가능한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다만 분위기가 다소 과열되며 후보자와 지지자 간의 충돌의 사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며, 이미 본 전당대회를 앞두고 내홍이라고 할 만큼 감정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전당대회를 대놓고 분열의 장으로 만든 행위는 결국 당의 통합을 이끌어야 하는 지도부를 자극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특히나 해당 시점에서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한길 세력의 과격성을 염려하면서도 우선은 지켜보자는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는데, 즉각적으로 격앙된 반응을 보이며 조치에 들어갈 정도로 전한길에게 중립적이거나 다소 온건한 입장의 당직자 및 당원들도 그냥은 넘어가기 힘든 소동이었다.[60] 그런데 전한길은 징계받을 위기에 처하면 본인이 언론인임을 내세우며 언론탄압을 하지 말라고 주장하고, 국민의힘에 실력 행사를 할 때는 당의 주인인 평당원으로서 당을 바꾸고자 한다고 주장하는 등 전당대회 행사 참여의 목적이 취재인지 아니면 국민의힘 당원으로서 당의 진정한 변화를 도모하기 위함인지를 명확하게 밝히지 못하고 있다. 전한길의 전당행사 참여 목적이 오로지 취재라면 본인이 찬탄 후보의 연설을 방해한 것이 언론인으로서 비판 대상이 되고, 오로지 당원 자격으로 참여한 것이라면 명백한 징계 사유라서 언론 탄압이라고 주장하기 어려운 딜레마에 빠지기 때문이다. 정치 및 언론 전문가들은 애초에 언론인들은 공정성을 위해 당적을 가지지 않고, 당적을 가지게 되면 언론을 그만두는 게 한국에서 상식인데 전한길이 자신이 당원이라면서 동시에 언론인이라는 게 몰상식한 주장으로 여기고 있다.[61] 즉 전한길은 본인이 전한길뉴스 소속의 언론인이므로 자신을 욕하는 것은 언론탄압이라고 주장해 놓고는 그 언론인 비표마저 타인의 명의를 빌려서 발급받은 것이다.[62] 국민의힘의 징계는 제명, 탈당권유, 당원권정지, 경고 순이다. 주의는 포함되지 않는다.[63] 이 주장은 당연히 말도 안되는 게 대구 경북 전당대회 참석 당시 전한길은 본인 이름으로 언론인(PRESS) 비표를 발급받은 것이 아니라 차명으로 받은 비표를 사용했기 때문에 애초에 해당 행사에 부정하게 참석해놓고 난동을 부린 것이다. 전한길의 이런 행동이 전혀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정당 행사에 규칙이나 질서따윈 전혀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이는 전한길을 맹목적으로 두둔하기 위한 편파적인 주장이다. 그리고 이러한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본인의 편파적인 주장에 매서운 다수의 비판이 들어올 것을 잘 알기에 보통 익명으로 주장한다.[64] 한동훈 0선, 주진우 초선, 장동혁 재선, 김문수 3선, 안철수 4선, 나경원 5선, 조경태 6선.[65] 일시불로 많이 내어 중앙당에서 특별히 출마 허가를 받았거나, 최초 입당이 아닌 복당으로서 이전에 납부 이력이 있는 등의 특수한 경우. 복당자도 공천 결과 불만이나 당내 갈등, 개인 비리 회피 같은 사적인 이유로 탈당했다 돌아온 사람은 출마 자격을 회복하기가 매우 어렵고 국회의장 당선이나 교육감 출마, 각종 정무직 및 별정직 공무원(감사원장, 국정원장, 안보실장, 대통령비서실장, 정책실장, 행정각부 차관, 처장, 청장, 수석비서관 및 기획관, 행정관, 정부위원 및 기타 정부 조직의 위원장, 국회사무총장, 국회의장비서실장, 국회도서관장, 광역자치단체의 정무부단체장 등) 임용, 기타 공공기관장 및 공직유관단체장 임명처럼 탈당이 불가피한 상황의 탈당이나, 국무총리 및 국무위원 임명, 대학교수 부임(교수는 초중등교사와 달리 당적 보유가 가능하다.) 등 당적 보유가 허용되더라도 공직자 및 연구자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자 탈당하는 등의 예외적인 상황이었을 때만 복당자도 출마 자격을 가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