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노벨상
{{{#!wiki style="margin:-10px" | <tablebordercolor=#fff,#1c1d1f><tablebgcolor=#fff,#1c1d1f> | 노벨상 | }}}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1px; background: #663334" {{{#!wiki style="margin: -7px" | <tablebordercolor=#663334><tablebgcolor=#663334> | }}}}}}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cd9f51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word-break:keep-all" | <rowcolor=#ddd> 이름 | 연도·부문 | 사유 | 비고 |
김대중 | 2000 평화 | 대한민국과 동아시아 전반의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공로 그리고 남북화해와 평화에 대한 노력 | 한국인 노벨상 최초 수상 · 평화상 최초 수상 | |
한강 | 2024 문학 | 역사적 상처에 맞서며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력한 시적 산문 | 문학상 최초 수상 · 아시아 여성 최초 수상 | |
* 대한민국 국적 인물만 기재함. |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분야별 노벨상 수상 현황을 정리한 문서.2. 수상자
한국에서 태어난 역대 노벨상 수상자[1] | |||
<rowcolor=#fff,#ddd> 이름 | 수상 연도·부문 | 수상 사유 | 비고 |
찰스 피더슨 | 1987년, 노벨화학상 | 크라운 에터 발견 | 출생 지역만 한국[2] |
김대중 | 2000년, 노벨평화상 | 대한민국과 동아시아 전반의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공로, 그리고 남북화해와 평화에 대한 노력 | 대한민국 국적자 최초의 노벨상 수상 |
한강 | 2024년, 노벨문학상 |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서정적 산문 | 아시아 여성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 |
노벨상은 국가별 집계를 공식적으로 내는게 아니고, 수상자의 국적도 적지 않으며 수상자의 출생지만을 표기하는데 이는 노벨상을 제정할 당시 '수상자의 국적을 고려하지 말라'는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을 받드는 것이 주된 이유다. 노벨상 개수가 은근히 국가 간 자존심 싸움이고, 귀화를 거듭한 수상자는 어느 나라로 집계해야 하는지 묘한 알력 다툼이 꽤 있기 때문도 있다.[4][5] 찰스 피더슨도 국적에 대한 별다른 언급 없이 한국 부산 출생, 미국 뉴저지 사망 정도로 기록되어 있다. #
대한민국은 선진국들 중에서는 드물게 노벨상 수상자를 과학 외 분야에서만 2명을 배출했다. 한국은 국력과 인구를 감안했을 때 노벨상 수상자 수가 상당히 적은 편에 속하는 나라 중 하나다.[6]
2.1. 노벨화학상
자세한 내용은 찰스 피더슨 문서 참고하십시오.찰스 피더슨은 1904년 대한제국 경상남도 동래군(현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났다. 8살에 일본으로 건너가 국제학교를 다니다 1922년에 미국 데이턴 대학교에 학부 유학을 간 이후 최종적으로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 그 후 MIT를 거친 다음 42년 간 연구에 전념하다가 1987년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한국에 태어났지만 엄연히 미국 국적을 받은 미국인이고, 노르웨이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한국인 혈통도 아니며, 한국어조차 전혀 익히지 못했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노벨위원회의 기준상으로는 한국 출생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이지만 한국에서는 한국 수상자로 인정하지 않는 편이다.[7]
2.2. 노벨평화상
자세한 내용은 김대중 문서 참고하십시오. 2000년, 한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김대중 제15대 대통령 |
2000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대한민국과 동아시아 전반의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공로 그리고 남북화해와 평화에 대한 노력”으로 노벨평화상을 받게 되었다.[8] 한국인이 받은 최초의 노벨상이다.[9]
노벨평화상은 노벨상 부문 중에서도 알프레드 노벨이 상을 만들게 된 의지와 가장 가까운 중요한 상인 데다 김대중이 받은 2000년은 새천년 최초 수상자이면서 동시에 20세기의 마지막 수상자 및 세계적 관심이 집중되던 노벨상 100회 수상자였기 때문에 시대적 상징성이 있다. 게다가 100년 역사상 최초로 위원회에서 반대 의견 없이 만장일치로 수상이 결정되었다. 당시 가이르 룬데슈타트 노벨위원회 사무총장은 인터뷰에서 "남북정상회담이 김대중 대통령 수상의 유일한 결정 요인이 아니었다. 우리는 수 년 동안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김 대통령의 투쟁 노력을 추적해 왔다"라고 언급했다.
동티모르에서 독립에 반대하는 친인도네시아의 민병대에 의해 1,400명이 학살당하는 사태[10]를 APEC 등의 국제 무대에서 주도적으로 막을 것을 건의해 결국 학살을 막아낸 것도 수상의 이유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국민의 정부/평가/긍정적 평가 문서 참고.[11] 즉, 남북화해 분위기 조성의 공 외에도 수상 사유에는 김대중이 젊은 시절 펼친 민주주의 운동부터 재임 시절의 업적까지 전반적인 삶의 궤적을 평가했다.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 문서에 서술된 것처럼 김대중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이미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민주주의 운동가로 세계적으로 상당히 주목을 받아 왔는데 1993년에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노력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넬슨 만델라와 함께 가장 유명한 민주주의·인권운동가였으며, 1987년부터 매년 14번이나 후보에 오를 정도로 명망이 높은 사람이었다.#
2.2.1. 수상 관련 논란
2.2.1.1. 보수 진영의 수상 반대 및 취소 공작
수상 발표가 있기 수개월 전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의 일부 인사들이 '노벨상 수상 저지 운동' 선언을 해 파문이 일었다. 매일신문 노벨상 수상자 결정 전이던 2000년 7월에는 한나라당 이신범 위원을 필두로 한나라당 원외 위원장들이 오슬로에 가서 김대중 대통령 노벨상 저지 시위를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 이에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나라의 위신이 깎일 수 있는 당내 일부의 모난 행동이 한나라당의 공식적인 입장인 것처럼 외부에 비쳐지는 것이 부담스럽다."라고 밝혔다. #[12]당시 김대중에게 노벨평화상을 주면 안 된다는 로비가 실제로 있었다는 의혹이 있다. # # 해당 의혹은 늦어도 2002년부터 제기되었는데 2002년 10월 10일 국회 대정부 질문 때 한나라당이 불법 대북송금 의혹과 함께 김대중 노벨상 로비 의혹을 제기하자 조한천 새천년민주당 의원은 "로비가 있었다면 극우단체와 이신범 전 한나라당 의원의 노벨상 반대 로비가 있었다고 합니다"라는 식으로 말했다.[13] 한화갑 새천년민주당 대표는 대정부 질문이 끝난 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노벨상 시상식 때 군나르 베르게(Gunnar Berge, 1940~) 노벨위원회 위원장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상을 주지 말라는 역로비만 있었다고 말했다며 "김 대통령 수상에 반대하는 시위도 있었고, 상을 주지 말라는 서신도 노벨위원회측에 수만통이나 접수됐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말했고[14], 박지원 대통령비서실장은 수석비서관 회의가 끝나자마자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대중 노벨상 로비 의혹을 반박하며 "김 대통령이 노벨상을 수상할 당시 노벨위원회 (군나르) 베르게 위원장은 오히려 '대한민국에서 (김 대통령에게) 노벨상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역로비가 많았다. 참으로 대한민국은 이상한 나라다'라고 말했다"는 식으로 언급했다.[15]
이로부터 4일 후 오마이뉴스에 작성된 손병관 기자의 기사[16]에서 구체적인 날짜와 장소, 행사(2000년 11월 초 노르웨이 베르겐에서 열렸다는 한반도 국제심포지엄)까지 언급됐다. 이후 이 루머는 살이 붙기 시작했다.[17] 김대중의 한 비서관도 전술한 루머들을 접했는지 한나라당이 황우석 노벨상 수상을 위해 해외 로비에 나설 때에 "한나라당이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상을 타지 못하도록 오히려 역로비를 했다는 소문이 있었다"고 언급했다. #
이는 가짜 뉴스일 가능성이 있다. 손병관이 주장한 노벨상 역로비가 언급되었다는 행사는 인터넷상으로는 구글 검색과 네이버 뉴스 검색 상에서 원문을 찾을 수 없는 행사이고[18] 노벨상 시상식에서 노벨위원회 위원장이 '노벨상 수상자에게 노벨상을 주지 말라는 로비가 있었다'고 직접 밝혔다는 것이 류샤오보 정도를 제외하면 없어서 국제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킬 만한데도[19] 수상식 당시 언론에서는[20] 이 의혹이 언급되지 않았다. 다만 베르게가 시상식 중에 뜬금없이 노벨상 수상자에 대한 노벨상 역로비 의혹을 말해 분위기를 깼을 리는 없을 것이고, 노벨상 시상식 당시 베르게 위원장이 시상 발표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언론과 따로 인터뷰를 하지는 않았으니 기자들에게 역로비 의혹을 언급할 수도 없었다. 증언자에 따라 앞뒤가 안 맞는 내용도 있다.[21] 노벨평화상 수상 당해에 김대중 노벨상 로비 의혹이 외국인[22]까지 알 정도로 국제적으로 인지도를 쌓았다는 것은 시간관계가 전혀 맞지 않기 때문에 의혹이 제기된다.[23] 군나르 스톨셋 전 노벨위원회 부위원장도 2016년 NRK의 김대중 전 대통령 관련 뉴스 중 인터뷰에서 노벨상 반대 로비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인터뷰의 주제가 김기삼이 노벨상 로비를 했다는 주장#을 다룬 뉴스에서의 대한 인터뷰였으며 기자가 던진 3개의 질문에 답변한 것이었다. #
다만 여기서 근거들은 모두 정황 근거로서 당사자들로부터 직접적으로 부정된 바가 없으며[24] 직접 들었다고 밝힌 복수의 인사들이 모두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인터넷상으로 검색이 안 된다는 등의 근거도 직접 근거로서는 빈약한 것이 인터넷 검색의 대명사인 구글도 당시에는 차고에서 창업한지 2년밖에 되지 않은 작은 기업이었다.
이러한 의혹 제기를 논외로 치더라도 노벨위원회에서 직접 언급할 만큼의 정도와 규모였냐의 차이이지, 근본적으로 보수 측에서 김대중 노벨상 반대 공작을 벌인 것은 카더라성 주장이 아니라 구체적인 증거까지 발견된 빼도 박도 못하는 사실이다.
이보다 더 전인 문민정부 때는 김영삼이 노벨평화상을 수여받기 위해 외교관을 동원해서 김대중의 노벨상 수여 방해 공작을 펼쳤다는 증언도 나왔고# 이명박 정부 때는 국가정보원이 김대중 사망 이후 노벨평화상 취소 공작을 벌였으며, 국정원이 김대중 노벨평화상 취소 청원을 계획했다는 것이 밝혀져 파문이 일었다. # 사전 공작으로 라프토 상 수상을 취소시키려던 정황도 포착되었다. # 국정원은 한 보수단체 간부를 통해 서신을 작성해 노벨위원회에 부치기까지 했다. 이 과정에 사용된 비용은 전부 세금으로 충당됐다. 전자는 첫 폭로 이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잊혀졌지만 후자는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25]
국정원 개혁위 산하 적폐청산 TF에서 관련사항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010년 3월 심리전단은 김대중의 노벨평화상 수상 취소 요구서한을 노벨 위원회 위원장에게 발송한다는 계획을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 등 지휘부에 친전 형태로 보고했다. 이후 ‘자유주의 진보연합’ 대표 명의로 수상 취소를 요구하는 서한을 작성해 노벨위원회 위원장 게이르 룬데스타트 앞으로 영문 서한을 발송했다. #
2.2.1.2. 노벨평화상 로비 주장
2002년 10월 16일 뉴스위크 한국판에서 최규선의 ‘M 프로젝트 추진계획’과 ‘프로젝트 블루카펫 추진계획’ 문건이 보도되면서 노벨상 로비를 했다는 주장이 나온 적도 있다. 해당 문건의 내용의 내용이 실제 진행과정과도 일치하는 면이 있었고[26] 노벨 위원회 주요 인물들과 만나는 사진도 보도됐다.하지만 이에 대해 가이르 룬데슈타트 노벨위원회 사무총장은 2002년 10월 14일 오마이뉴스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나는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 노벨평화상을 비합법적인(illegitimate) 방법으로 받았음을 암시하는 어떠한 주장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노벨위원회가 그에게 상을 주는 대가로 돈을 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은 매우 무례하며(outrageous), 위원회의 심사절차 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 # 2020년 최규선의 인터뷰에서는 본인이 독자적으로 기획했으나 청와대에서 거절했음을 밝혔다.
다만 애초에 남북정상회담이 노벨평화상 당해 6월에 열렸기 때문에 그것만으로 수상 자격을 심사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수이며 1980년대부터 국제 앰네스티에서 구명 활동을 전개하는 등 김대중은 저명성 있는 한국 민주주의의 상징과 같은 인물로 여겨졌고# 최규선의 프로젝트 때문에 UN이 인권상을 시상하거나 당시 최고의 위치였던 마이클 잭슨이 대한민국 공연을 할 정도의 인물이 아니라는 반론이 있다.
2.2.1.3. 수상이 합당한가의 논쟁
김대중의 노벨상 수상이 발표되자 대내외적으로 노벨평화상 수상이 합당한지에 대해서도 논쟁이 있었다.한나라당이 김대중의 노벨평화상 수상 저지 운동을 하고 이명박 정부 당시 국정원의 노벨상 취소 공작에서 근거로 든 것이 바로 국민의 정부 불법 대북송금 사건이었다. 2016년 군나르 스톨셋 전 노벨위원회 부위원장(2000년 당시의 직함)은 김기삼의 주장에 대한 NRK 뉴스에서의 인터뷰 중 “당시 노벨상 캠페인과 자신을 포함한 노르웨이 사회 지도자들의 구애가 김대중 대통령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확정짓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았으나, 불법 대북송금을 당시 알았더라면 그를 노벨상 수상자로 지목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 한나라당은 '돈 주고 산 노벨상'이라고 주장했다. 2020년 뉴욕 타임스는 지난 30년간 6번의 ‘의문스러운’ 수상자 중 한명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2000년 수상)을 뽑았다.[27] 당시 수상 이유 중 하나였던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를 현재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대한민국은 여전히 휴전 중이며 김정은의 통치 아래서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 등을 개발하고 있다는 점이 이유다. 조선일보
반면 미국 NYT와 달리 영국 BBC가 선정한 '논란의 평화상 수상자 6인'에 김대중은 없었다. '논란 많은' 노벨평화상…BBC, 오바마·수치 등 6인 선정
물론 김대중은 본인의 민주화 운동 경력으로 인해 1987년 독일의 빌리 브란트 수상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후 사민당 동료 의원 80여 명과 함께 김대중을 추천한 뒤 줄곧 해외의 여러 유력 인사로부터 총 15번이나 평화상 후보로 추천받은 인물이었으며(#) 주요 사유로는 꼽히지 않고 있지만[28] 동티모르 학살 문제[29]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 역시 수상 이유에 포함되었다.
2.3. 노벨문학상
자세한 내용은 한강(소설가)/노벨문학상 수상 문서 참고하십시오.2024년에 소설 〈채식주의자〉로 맨 부커 상[30], 메디치 문학상 등을 수상했던 소설가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노벨문학상을 예상할 때는 성별, 인종, 국가에 의한 배분을 고려하는데[31] 7년 동안의 암묵의 룰이 깨지지 않는다면 수상자가 여성 작가일 가능성이 높았으며 12년 간 아시아 대륙에서 수상이 전무하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제는 동양인이 수상할 때가 되지 않았냐는 의견도 존재했다. 그런 면에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 작가 호주의 제럴드 머네인, 동양인 작가로서 무라카미 하루키, 황석영, 김혜순, 동양인 여성 작가로서 중국의 찬쉐 등이 언급되며 한강 역시 후보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었고[32] 결국 한국 최초의 노벨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김대중 이후 24년 만에 2번째 한국인 노벨상 수상자가 되었다.
한림원은 수상 사유를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서정적 산문”이라 밝히며, 5.18 민주화운동을 주제로 한 〈소년이 온다〉 등을 발간한 한강 작가에게 역사에 대한 관점을 이유로 선정했다는 것을 밝혔다.
3. 공식 수상후보자
노벨상의 수상 후보자에 대한 정보는 무조건 50년이 지난 후 공개여부적합성 심사를 거친 다음에 공개 가능하다. 2024년 기준으로 공개된 모든 수상 후보자 중에 한국으로 분류[33]된 공식 후보자로는 1명이 존재한다. 노벨상 홈페이지그 주인공은 1938년에 노벨생리학·의학상 후보로 지명된 일본인 교수인 하자마 분이치(挾間 文一)[34]로, 1927년에 나가사키의과대학(현, 나가사키대학 의학부)을 졸업하고 조교수로 지내다가 1935년에 경성의학전문학교[35]로 전근하여 약리학 교수로 근무했다. 또한 같은 해에 경성제국대학[36] 교수를 겸임하였다고 한다. 1938년에는 국제약리학 및 치료학잡지 일본대표로 추대되었고, 1943년에는 발광동물 연구로 일본동물학회상을 받았다.
노벨상 수상 추천 후보로 지명될 당시에는 경성의학전문학교의 교원으로서# 오실로스코프를 이용한 내장의 운동에 의한 전기적 변동의 측정에 관한 연구를 주로 진행했다고 한다.
4. 수상 가능성
4.1. 노벨문학상
노벨문학상은 기본적으로 유럽 언어 외의 언어로 작품을 쓰는 문학인들에게 굉장히 짜다는 비판이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작품에 사용한 언어는 대부분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 스웨덴어, 이탈리아어와 같은 유럽 언어들이 대부분이며, 한자문화권 언어들의 경우 손에 꼽을 정도로 전무할 정도로 굉장히 적다.[37]2000년대 후반부터 노벨문학상은 형식적 파괴[38]나 형식의 재해석[39], 역사에 대한 관점[40] 등을 조명했는데 대한민국 문학에서는 이러한 흐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약점으로 꼽혔다.[41]
몇 년간 회의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가 마침내 2024년 작가 한강이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노벨문학상은 연속적으로 같은 국적 수상이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었고, 여러 국가 별로 수상이 잘 이루어진다는 점을 감안할 때 한강을 잇는 또다른 한국의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오려면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또다른 노벨문학상 후보로는 황석영, 김혜순 등이 언급되고 있다.
4.2. 과학상
과학상 같은 경우 당장 노벨상 바로 전 단계의 위상을 가지고 있는 래스커상, 울프상 등 받은 한국인조차 전무하다.인구가 어느 정도 있고 선진국으로 인정받는 나라들은 대부분 최소 1회 이상의 과학 분야 노벨상을 수상한 기록이 있다. 그 덕분에 과학 분야의 노벨상 수상 여부는 그 나라의 국가적 역량과 선진국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로서 인식되지만 유독 대한민국은 선진국이면서 인구도 충분히 많음에도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 기록이 거의 없다. 와닿기 쉽게 예를 들자면 IMF 기준으로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나라들 가운데 과학 부문 노벨상 수상자가 없는 나라는 그리스, 싱가포르, 아이슬란드, 그리고 대한민국밖에 없다.[42] 대한민국 체급의 선진국이 과학 부문 노벨상이 없는 것으로서는 사실상 세계에서 유일하다고 봐야 한다. 이는 식민지배 역사와 압축성장 역사에 기인한다.[43]
사실 노벨상뿐만 아니라 건축계의 노벨상 프리츠커상, 수학계의 노벨상인 필즈상 역시 수상자가 한 명도 없다.[44] 이와 유사한 수학상인 울프상(수학부문), 가우스상, 아벨상, 네반리나상 등에서도 수상자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만큼 대한민국이 압축성장을 위해 극도의 빠른 패스트 팔로어 전략을 취했음을 대변하는 증거다. 이런 상은 단순히 단기간의 뛰어난 실적을 보고 주는 상이 아니라 최소 수십 년 동안의 업적을 평가하여 주는 상이기 때문에 수십 년 전에 개발도상국이었던 대한민국이 지금 선진국이라고 성과가 바로 나오길 기대하는 건 무리가 있다.
대한민국은 기초과학이 부족하기 때문에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는다는 의견이 있지만 청색 LED를 개발한 아카사키 이사무, 아마노 히로시, 나카무라 슈지와 MALDI를 발명한 다나카 고이치가 노벨상을 수상했듯이 노벨위원회는 과학 기술 개발 업적에 상을 수여하고 있기 때문에 이같은 주장은 다소 어폐가 있다. 노벨상을 받으려면 기초과학 기술(Fundamental Technology)을 개발했는가가 중요한데 대한민국은 이러한 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하기엔 기초과학에 투자한 역사가 다른 선진국에 비하면 매우 짧은 게 현실이다.
이는 대한민국이 산업화 이래 기초과학 기술을 다지기보다는 빠른 압축 성장을 위해 선택한 패스트 팔로어 전략에 부합하는 검증된 기술을 개량시키는 학문 쪽이 발달하였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상당히 좋은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2차 전지를 개발하고 생산하여 세계 시장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지만 기존에 개발된 기술을 개선시킨 것으로 새로운 과학 기술을 원천적으로 고안해낸 것이 아니라는 한계가 있다. 이같이 패스트팔로워 전략을 취하는 기조가 세계 시장을 석권하는데 도움이 될지라도 기초과학을 발전시키는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여겨지는 과학기술[45] 역시 기초과학으로부터 발생하기 때문에 기초과학이 부실한 대한민국의 노벨과학상의 전망은 아직 멀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대한민국은 일찍이 근대화나 과학 기술을 발전시킨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굉장히 늦었고 그 역사도 짧았다. 당장 북미/유럽/일본 등의 경/중공업 기업들 중 상당수가 긴 역사를 자랑하는 데 비해 대한민국의 공업 기업들은 대부분이 1950~1970년대 설립되었다. 대한민국의 공학기술 역사는 1960~1970년부터, 기초과학은 빨라도 1990년부터 시작했다. 대한민국이 처한 상황(신흥독립국, 전쟁 후, 빈곤)은 당장 실생활에 활용할 수 없는 기초과학과 기초 과학 기술보다는 검증된 기술을 이용한 빠른 추종자 전략을 취해 그에 부합하는 공학기술의 발전을 우선할 수밖에 없었다. 그 덕분에 세계적인 공업기술을 갖추고 전자산업, 자동차, 조선, 건축, 경공업 등의 부문에서 후발 주자로서는 이례적으로 세계 무대에 (그것도 상위권으로) 안착하는 데 성공했으며, 공업력 면에선 여러 유럽 국가들을 뛰어넘게 되었다.
2020년 기준으로 10년 간 노벨상 수상자 77명(물리학상 26명·화학상 27명·생리의학상 24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평균 37.7세에 핵심 연구를 시작해 55.3세에 완성하고 69.1세에 수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핵심 연구 시작에서 노벨상 수상까지 걸린 기간은 평균 32년이다. 심지어 해가 갈수록 수상자 평균 연령이 상승하고 있다.## 2020년을 기준으로 생각해 봐도 32년 전의 대한민국은 개발도상국이었다. 노벨상 주요국 중에서 가장 기초 과학 육성이 늦은 일본을 살펴보면 1949년 유카와 히데키의 첫 노벨물리학상 수상 이후 일본 과학자가 노벨상을 다시 받게 된 것은 그로부터 무려 16년 후인 1965년(도모나가 신이치로)이었고, 21세기 이전까지는 과학 분야 노벨상을 거의 5~10년에 한 번 꼴로 수상하다가 2000년부터 간격이 점점 좁아지더니 2014년부터는 매년 한 명 꼴로 배출하고 있다. 이는 일본의 기초과학력이 21세기 들어 갑자기 상승한 게 아니라 이미 쌓아온 성과가 축적되어 상으로서 인정받는 경우가 흔해진 것이다.
대한민국은 기초과학은커녕 이공 계열로의 투자조차 1980년대 말부터 시작한 수준으로 그 역사가 아주 짧아 기초과학 연구 내공이 부족하여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불리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옹호적인 의견도 종종 제기된다. 좋은 예로 대한민국보다 1인당 GDP 순위가 바로 한 단계 높은 국가는 이탈리아인데 대한민국과 이탈리아의 기초 과학에 대한 역사는 당연하게도 비교 자체를 할 수 없다. 이런 연구일수록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드는데, 투자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누적 투자 총액이 크지 않고, 노벨상을 수상할 만한 큰 결과물도 아직 충분히 나오지 않은 이유도 있다.[46] 그런 기억들을 고스란히 가진 중노년층이 아직은 사회 전반에 있어 많은 영향력을 지니다 보니 당장의 결과에 집착하게 되고, 전반적인 교육 방향도 그런 가시적 결과를 내놓을 수 있는 쪽으로 이루어지는 편이다. 이는 빨리빨리 문화의 영향도 있다. 노벨상을 받기 위해 필요한 가치관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셈이다.
정리하자면 대한민국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빠르게 경제를 성장시키고 이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빠른 추종자 전략을 취했으며, 따라서 경제 성장이나 관련 산업을 성장시키는 데 있어서 기초과학 기술에 대한 투자는 자연히 뒷전일 수밖에 없었다.
지속적인 노벨상 수상자 배출을 위해서는 대한민국의 빠름 추종자 전략을 크게 수정하거나 최소한 첫 번째 동적 개시자 전략으로 변경하거나, 과학 기술 분야 전문인력의 양성 및 기초과학 기술 연구에 대대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 특히 가장 중요한 점은 대한민국 과학계를 견인하여 그 수준을 더 높이 끌어올리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세계 선도 수준의 대학이나 연구기관을 만들어 세계적인 석학을 배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노벨상 수상자나 권위있는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노벨상을 수상하기 위한 핵심 요소 두 가지는 어린이와 학생들에게 과학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것이고, 젊은 연구자들에게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연구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4.2.1. 노벨물리학상
노벨물리학상의 수상 경향은 원래부터 실험물리학 위주였고, 이론 및 전산물리로 받는 경우조차도 실험적 발견에 있어서 매우 지대한 역할을 했을 경우였다.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실험기기의 기술적 발전으로 인해 실험에 필요한 이론물리의 개척보다는 응용물리나 전자공학, 광학분야에 수상이 많아진 편이다. 2024년 현재까지 살아있는 아로노프-봄 효과를 정립한 야키르 아로노프나 베리 위상을 정립한 마이클 베리는 여타 실험물리학자들에게 밀린다.전자, 화학, 기계공학으로의 집중투자를 한강의 기적의 시기 내내 해온 한국의 과학기술계의 영향을 받아온 한국 물리학계 역시 전화기 위주 학풍에 영향을 받아 전화기와 관련이 밀접한 고체 및 응집물질물리[47]나 응용물리를 연구하는 학자의 비중이 매우 큰 편이다.
다만 과학기술분야 투자정책의 방향성을 최초로 결정할 당시 한국 과학기술인 중에 정치적으로 최고 거물이었던 최형섭 과학기술처 장관은 “노벨상을 수상할 것이라면, 자신의 말에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할 정도의 골수 공학자였다. 결국 한국의 물리학계도 그러한 영향을 받아 결과물에 대비하여 상당한 기간과 비용이 투자되는 기초연구를 배척하는 방향으로 발전되어 왔다. 현재의 한국 물리학계도 그 학풍이 고스란히 남아있어서 신분야를 개척하는 기초연구보다는 기초연구에 실용성을 더하는 연구가 매우 우세하고, 기초연구 조차도 수십 년 동안 전세계적으로 검증된 것들을 선택한다. 이렇다보니 한국 물리학계, 심지어 유학파 물리학자들 사이에서도 시도하지 않았거나 않고 있는 기초 분야들은 생각보다 많다.
하지만 한국인 물리학자 중 노벨물리학상 수상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진 학자는 한국의 학풍과 대조되었던 이론물리학자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수상 가능성이 있었던 작고한 후보로는 다음과 같다.
- 입자이론물리학 이휘소: 가장 대표적인 업적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자발 대칭 깨짐 이론의 재규격화"인데 이를 참고해서 전자기약력의 재규격화를 정립한 엇호프트와 펠트만이 1999년에 이 업적으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1977년 이휘소가 사망하지 않았다면 1980년대에는 수상했거나, 늦어도 1999년에 공동수상했을 것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이휘소가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지 않아 성공적으로 노벨상 수상자가 되었다면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미국 국적자이긴 하지만 혈통 뿐만 아니라 나고 자란 곳도 한국이며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던 한국인인건 맞기 때문에 미국인 수상자일 뿐만 아니라 한국인 수상자라고 할 수도 있다.[48] 참고로 이휘소는 1968년에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였다.
- 입자이론물리학 한무영: 강한 상호작용에서 물리적 정보에 관한 수학적 구성[49]을 난부 요이치로와 함께 소개했다. 소개할 당시 쿼크에 적용했으나, 이후 양자색역학이라는 모형으로 확장된다.
현재 물리학분야 후보로는 아래와 같은 인물들이 거론된다.
- 입자이론물리학 김진의 - 양자색역학의 이론적 보완을 실험적으로 밝힐 수 있는 가상 입자 모형인 KSVZ 모형을 정립했다. 강한 상호작용에서의 CP 불변성[50][51]의 취급은 양자색역학의 정립을 어렵게 만들었던 요소 중 하나였는데, 그 해결법으로 각광받는 액시온이라는 가상 입자 모형에서 질량을 작게 조절하여[52] 실험적으로 밝힐 수 있는 모형을 만들었다. #
- 고체물리학 임지순 - 모든 고체 화합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예측할 수 있는 모델을 최초로 개발했고 탄소나노튜브를 다발로 묶으면 금속 성질이 없어져 반도체 성질을 띤다는 것을 최초로 밝혀내어 해당 분야들의 발전을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 고체실험•재료과학 김필립 - AFM을 통해 그래핀을 합성할 수 있는 기술을 발명했다. 다만 안드레 가임, 콘스탄틴 노보셀로프를 필두로 한 맨체스터 대학교의 연구진이 흑연을 스카치테이프로 붙였다 땠다를 반복하는 매우 간단한 작업으로 그래핀을 합성해내어 결국 수상하지 못했고 수상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분석이 있다.
4.2.2. 노벨화학상
노벨상은 30대에 연구를 시작해서 50대 이후(빠르면 50대, 늦으면 80~90대)에 받는 사례가 가장 많다. 예를 보더라도, 2021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베냐민 리스트, 데이비드 맥밀런은 2명 모두 50대 나이로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화학상 분야 후보로는 아래와 같은 인물들이 거론된다.
- 유룡 - 2014년부터 톰슨로이터에서 노벨상 후보자로 예측한 기능성 메조나노다공성 탄소물질과 제올라이트 분야의 개척자이다. 후보로 거론될 당시에는 KAIST 교수로 재직 중이었다.
- 박남규 - 2017년에는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Clarivate Analytics·구 톰슨로이터)에서 노벨화학상 후보 중의 한 명으로 꼽았다. 페로브스카이트(perovskite)를 태양전지에 적용한 업적을 인정받았다. #
- 현택환 - 2020년에는 클래리베이트에서 물망에 오른 적도 있다.# 다만 양자점 연구가 2023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했기 때문에 같은 분야로 상을 주지 않는 노벨상 성격상 수상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분석이 있다.
- 석상일 -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의 이종접합 구조를 독자 개발했고 장기간 안정하게 작동하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세계 최초로 개발함으로써 세계 최고 효율을 갱신하는 등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분야에서 세계 최고 권위자로 불린다. 랭크 광전자공학상을 수상하였다.
- 김기문 - 초분자화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로 쿠커비투릴 분야의 개척자다. 2011년 세계 최고 권위의 초분자화학 분야 상인 아이자트-크리스텐슨상을 수상하였다.#
4.2.3. 노벨생리학·의학상
2021년,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가 한타바이러스를 발견한 이호왕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를 한국인 최초 수상 유력 후보로 선정한 바 있다. 생리학·의학 부문에서는 한국인 최초이다. # 하지만 이호왕 교수가 2022년 7월 5일 세상을 떠나면서 수상이 불가능해졌다.현재 노벨생리학·의학상분야 후보로는 아래와 같은 인물들이 거론된다.
- 조장희 - 1975년 원형 PET 최초 개발을 시작으로 PET-MRI, 2.0테슬라 MRI을 개발한 뇌과학 분야에서의 세계적 권위자이다. 특히 MRI을 개발한 인물들이 모두 노벨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어 현재 노벨상에 가장 근접한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힌다.
- 김빛내리 - miRNA에 관한 독보적 연구로 마이크로RNA의 생성 과정과 메커니즘을 연구했다. 다만 마이크로RNA 연구가 2024년 노벨생리학·의학상을 수상하여 수상은 다음 기회로 넘어가게 되었다.[54]
- 이상엽 - KAIST 석좌교수로 미생물을 이용해 지속가능한 친환경 화학물질을 만드는 시스템 대사공학을 창시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찰스톰상, 제임스 베일리 상, 덴쿼츠 기념강연 상, 환경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에니상을 수상하였다.
- 한국계까지 포함한다면 Clarivate Citation laureates, 톰슨 로이터등을 수상한 게놈연구가인 찰스 리 교수가 있다.
4.3. 노벨평화상
지정학적으로 분쟁의 여지가 산재한 한반도의 특성과 북한과 대립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 상황에서 대한민국이 수상할 가능성이 제일 높은 부문 중 하나다.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되어서 전두환부터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되었다. "재임기간 중 몇 차례 안전보장상 중대위기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한반도 평화유지에 공헌했다"는 이유였다.
특히 2018년에는 2018 남북정상회담 및 2018년 북미정상회담을 모두 성공적으로 개최한 덕분에 북한이 전격적으로 비핵화 의지를 보이면서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점쳤다. # # 영국 도박업체 '나이서오즈'(Nicer Odds)는 문재인과 김정은의 공동 수상 배당률을 최저 1.53에서 최고 2.20[55]으로 내걸었으며, 또 다른 도박업체 '래드브록스'(Ladbrokes)도 문재인과 김정은의 공동 수상에 1.66의 배당률을 내걸어 가장 높게 전망했다. # 노벨 사이언스 역시 문재인은 노벨평화상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 물론 문재인/김정은/트럼프의 수상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도 있었다. 2018년 노벨평화상의 후보 추천은 2018년 2월에 마감했으므로 이후 남북정상회담 및 북미정상회담의 결과가 반영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결국 임기 후반 2019-2020년 북한 미사일 도발을 시작으로 남북관계과 극단으로 치닫고 문재인 퇴임 이후 김정은이 통일을 포기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노벨평화상 관련 이야기는 현재 거론되지 않는다.
그나마 훗날 남북 평화통일이 이루어진다면 노벨평화상을 수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반도가 중동, 대만, 발칸반도와 함께 제3차 세계 대전이 일어날 수 있는 세계의 화약고나 다름없다 보니 제3차 세계 대전의 발생 요소를 차단하는 공적을 세운다면 노벨평화상 수상 가능성이 있다. 남북통일을 제외한 다른 부분에서는 예측되는 후보가 없지만 노벨평화상 수상 이유가 다양하기 때문에 가능성은 노벨경제학상보단 높은 중간 정도이다.
4.4. 노벨경제학상
그나마 수상 후보라도 거론되는 과학계와는 달리 경제학계에서는 수상 가능성이 점쳐지는 학자들조차 거의 보이지 않는다. 사실 대상을 아시아 전체로 넓혀도 수상 가능성이 희박하다. 현재까지 아시아 출신 수상자로는 인도 출신의 아마르티야 센이 유일하며 수상 후보로는 신케인즈학파의 기요타키 노부히로만이 거론되는 중이다.[56]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일본조차 경제학상 부문 수상자가 없는 이유는 경제학 연구의 중심이 미국에 있는 데다 미국 연구자들 (혹은 영어권) 간의 강한 커뮤니티가 형성되기 있기 때문일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애초에 세계 경제의 중심이 미국인 이상 미국류의 경제학이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미국이 아닌 자국의 경제에 집중하는 각국의 경제학자들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기에는 불리할 수 있다.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을 수상한 학자도 전무한 데다 아시아 전체로 넓혀도 1965년 즈비 그릴리커스(이스라엘)과 2005년의 대런 애스모글루(튀르키예, 미국 복수국적) 밖에 없어서 논의하기에도 이르다고 볼 수 있다.
5. 결론
노벨상이 세계적으로도 최고의 권위와 가치가 있는 상이라고 인정받는 만큼 노벨상 수상자 발표 시즌이 되면 늘 대한민국에서 분야별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지에 관해 논쟁이 일었다. 2001년부터 2024년까지 매년 노벨상 발표 시즌만 되면 언론에서는 한국인 유력 수상 후보들을 거론하다가 수상자가 나오지 않으면 '왜 우리는 노벨상을 받지 못하나' 등의 자조성 기사가 나왔다. 이렇듯 한국인의 노벨상 수상 가능성 여부와 예측은 언론 뿐만 아니라 전문가, 인터넷, 위키 등지에서도 오랜 토론 주제였지만 이를 회의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한국인이 노벨상을 받아서 얻는 이득이 무엇인가?'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각국의 학문 및 기술의 발전에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기여가 작지 않기에 노벨상을 수상할 만큼의 업적을 지닌 과학자라면 분명히 훌륭한 국가적 인적 재산이기에 국가에 가져다주는 이익은 분명히 있지만 꼭 노벨상을 받아야만 국가 경쟁력에 기여할 수 있는 건 아니다.노벨상은 국가가 아니라 개인이나 단체에게 주어지는 상이고 올림픽과 같은 국가 대항전 스포츠 행사와는 달리 국가간의 경쟁을 표방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 사회에 대한 기여도를 보고 평가하는 차이가 있다.
아직까지 대한민국에서 과학 관련 노벨상이 나오지 않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게, 불과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일제강점기와 전쟁으로 빈곤에 시달리던 빈곤국가가 유례없는 경제 성장으로 초고속으로 선진국이 된 사례이기 때문에 한국이 타 선진국들이나 경제대국에 비해 한국의 노벨상 수상자 수가 적은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많이 늦긴 하지만 한국도 1990년대 말~2000년대부터 나라의 살림이 개선되고 과학 기술력에도 투자를 시작했기 때문에 언젠가는 과학 기술 분야 쪽의 노벨상 수상자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했더라도 해당 분야에서 의미없는 연구였다거나 업적이 전무했다는 뜻이 되는 건 아니다. 노벨상을 수상하지 않았어도 해당 분야 내에서 충분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연구 업적들은 얼마든지 존재하며 오직 노벨상 하나만을 평가의 유일한 척도로 삼는 건 막상 중요한 본질을 잊는 사고방식이라 볼 수 있다. 가령 과학 분야의 연구란 노벨상 수상이 목적이 아니라 인류 사회에 실질적인 실익을 가져다 주는 게 주된 목적이므로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한 연구라 해서 가치없는 연구가 되는 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노벨상을 타지 못했지만 장기적으로 좋은 결과를 가져온 업적들도 무수히 많다.
6. 기타
- 고려대학교, 포항공과대학교, 계명대학교, 민족사관고등학교, 연수고등학교, 경남과학고등학교, 한국과학기술원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 대전과학고등학교 등 대한민국의 몇몇 학교들에서는 미래에 나올 노벨상 수상자를 위한 좌대까지 설치해 놓고 있다.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기만 하면 그 사람의 기념 흉상을 놓기 위해 미리 좌대를 설치해 놓은 것이다. 그 정도로 한국인들의 노벨상에 대한 갈망과 상징성이 크다는 방증이라고 볼 수 있다. 정작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대한민국의 대학교는 이런 좌대가 따로 없는 연세대학교가 되었다.
- 2024년 기준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한국인들은 모두 전라남도 출신으로,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활동이 노벨상 수상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57]
[1] 노벨위원회의 수상자의 출생지 기재 기준에 따름.[2] 당시 대한제국 경상남도 동래군. 8살에 일본으로 이주했으며 학석사 학위를 미국에서 취득한 미국 국적자이므로 실질적으로는 미국인 수상자.[3] 김대중대통령은 2000년 12월 10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한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한국 역사상 두 번째 노벨상…DJ 평화상 이후 24년만[4] 1921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독일 태생이지만 수상 당시 스위스 국적을 취득한 스위스인이었고, 말년엔 미국 국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따라서 각국에서 '자국 과학자'라는 인식이 있고 서로 의견이 갈려 결국 출생지만을 기재하는 것으로 통일된 것이다. 실제로 노벨위원회 공식기록을 보면 아인슈타인이 어느 국적인진 적혀있지 않고 그저 독일 울름 출생, 미국 프린스턴 사망 정도만 적혀 있다. #[5] 1979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마더 테레사도 1910년 북마케도니아의 알바니아인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당시 북마케도니아는 훗날 튀르키예가 되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주 활동 지역은 인도였으며, 후에 인도 국적을 취득했다. 출생지, 민족, 주 활동 지역, 국적에 따라 각각 북마케도니아, 알바니아, 인도 3개국에서 그녀를 자국의 위인이라고 주장한다. 워낙 민감한 문제였던지 노벨위원회 공식 기록에 출생지와 사망지 외에도 특별히 '수상 당시 거주지: 인도'를 따로 적어놓았다. #[6] 노벨상 수상자를 과학 외 분야에서만 한국보다 적게 배출한 선진국의 경우 현재 아이슬란드(문학상 1), 싱가포르(0) 뿐이다. 다만 아이슬란드는 인구가 40만이 안 되며, 싱가포르는 약 6백 만으로 대한민국 인구의 1/10 정도다. 덧붙여서 선진국 중에서 과학 외 분야에서만 2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나라에는 대한민국(평화상 1, 문학상 1), 그리스(문학상 2)가 있다.[7] 한국인 노벨상 수상자[8] 수상자 발표는 2000년 10월 13일(서울 시각 기준)이었으며, 시상식은 2000년 12월 10일에 있었다.[9] 노벨위원회의 공식 기록으로 한국 출생의 최초 수상자는 표에 기재된 것처럼 1987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찰스 피더슨이다.[10] 참고로 동티모르는 1975~1999년 인도네시아의 식민지배를 겪으며 인구의 12~20%에 육박하는 10~18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11] 당연히 이 덕분에 동티모르에서는 대한민국에 대한 평가가 후하다.[12] 이후 한나라당 의원들의 노벨상 수상 반대 시위 계획은 흐지부지해졌다.[13] # 이것이 공개적으로 김대중 노벨상 반대 로비설을 최초로 거론한 발언이며, 위에서 언급한 이신범측의 노벨상 반대 시위 계획을 접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신범 측에서는 즉시 보도자료를 통해 이를 주장한 조한천 의원에게 로비에 대한 증거를 요구하라며 자신들은 노벨상 로비를 할 경비도 여유도 없었다고 반박했다. #[14] #[15] #[16] 기사 자체는 가이르 룬데슈타트(Geir Lundestad, 1945~2023) 노벨위원회 사무총장이 오마이뉴스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김대중 노벨평화상 수여를 위한 로비가 있었다는 의혹을 반박하는 내용이다.[17] 가장 대표적인 것만 하더라도 (AP=연합)에서 보도한 기사라며 노벨상 로비 주장이 대한민국에서 처음 언급된 지 바로 다음날인 2002년 10월 11일 노르웨이의 '스팔니치뇨'라는 교수를 노벨위원회 관계자라고 언급하며 그 사람이 노벨상 반대 로비에 분노하여 '더 이상 대한민국에게 노벨상을 주지 않겠다'고 말했다는 게 있다. 최초 출처[18] 다만 2000년은 인터넷이 전세계적으로 일상화되지는 않았을 때이다.[19] 반대 로비는 모르더라도 일단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나 밥 딜런, 헨리 키신저 등의 노벨상 수상에 대한 반대 여론이 거센 적은 많았다. 메나헴 베긴, 아웅 산 수치도 각각 레바논 침공/로힝야족 사태 묵인으로 인해 노벨평화상을 박탈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다.[20] 대한민국 언론이든, 노르웨이 언론이든, 제3국 언론이든[21] 김대중 노벨상 역로비설을 처음으로 언급했다는 사람과 언급 당시 시점만 하더라도 한화갑과 박지원은 군나르 베르게 노벨위원회 위원장이 김대중 노벨상 시상식 때(2000년 12월 10일)에 밝혔다고 주장했지만 손병관은 올라브 욜스타드(Olav Njølstad, 1957~) 연구실장이 베르겐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2000년 11월 초에 언급했다고 주장했고, 백무현은 김대중 노벨상 수상자 발표(2000년 10월 13일) 무렵에 언급했다고 주장했다. 첫 언급 시기도 무려 3개나 된다. 셋 다 사실일 가능성, 전해들은 사안에 대해 약간의 착오가 생겼을 가능성(일단 백무현은 이에 해당된다), 누군가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 셋 다 고려해야 한다.[22] 백무현은 서양 기자들이, 손병관은 독일 학자가 김대중 노벨상 로비 의혹을 노벨연구소 측에 물어봤다고 주장했다.[23] 일단 노벨평화상 수상자 결정 직후인 2000년 10월 13일 베르게 위원장이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대한민국 언론 측에서 김대중 노벨상 로비 의혹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1 #2[24] 어떤 자리에서의 언급의 부재가 대상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25] 다만 두 시도 다 당시 대통령들의 지시, 연루 여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은 대통령과 독대하는 국가의 핵심 권력장치이므로 국가원수로서 해당 행각들을 인지했을 가능성은 높다.[26] 98년 4월 유엔 인권상 등 주요상들을 사전에 수상할 것을 컨설팅 받고 98년 6월 유엔 인권상 수상, ‘남북관계의 획기적 개선과 북한 어린이돕기 자선 콘서트’가 문건에 존재했는데 99년 6월 15일 서울에선 북한 어린이돕기 마이클 잭슨 공연 개최 등이다. #[27] 그 외 5번은 에티오피아 아비 아머드 총리를 포함해 아웅 산 수 치 미얀마 국가고문(1991년 수상), 이스라엘의 시몬 페레스 전 총리·이츠하크 라빈 총리·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의장(1994년 수상),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2009년 수상).[28] 노벨상 공식 홈페이지에서 보듯 대북 평화정책들과 본인의 민주화 운동 경력이 주요 업적으로 다뤄지며, 외신들의 보도와 김대중 본인의 노벨상 강연 역시 동티모르 건보다는 대북정책 쪽에 초점을 뒀었다.[29] 당시 동티모르에서 대량 학살이 벌어지자 미국, 일본 등을 설득해 APEC 의제로 올렸고, UN군과 함께 한국 평화유지군을 동티모르에 파병했다.[30] 2016년 수상.[31] 이는 노벨문학상이 지나치게 영미유럽어권, 백인 남성 문학에만 편중되어 있다는 비판 때문에 2017년 이후 남성, 여성이 번갈아 가며 선정되었기 때문이다.[32] 수상 직후 국내외 언론이 다들 '예상 밖의 결과'라고 헤드라인을 뽑아내고 있지만, 한강은 유력 후보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후보들 중 한 명으로 거론되고 있었다.# 메디치문학상, 부커 상 등 다양한 시상식 수상 경력이 있기 때문이다.[33] 후보자의 정보로는 당시 소속기관과 체류 국가 및 도시가 기록된다. 국적이나 인종 등의 정보는 일체 기록되지 않는다.[34] 요미가나: ハザマ ブンイチ, 영어: Bun-ichi Hasama[35] 경성의학전문학교는 해방 이후 서울대학교 제2부속병원이 되었다. 경성제국대학 의학부와 함께 현재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전신이 되는 기관이다.[36] 경성제국대학 의학부는 현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이 되었다.[37] 일본어, 중국어 소설을 작성하여 수상한 작가가 각각 2명, 한국어 는 1명이 수상했다.[38] 밥 딜런의 수상이나 페터 한트케 등[39] 루이즈 글뤽[40]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오르한 파묵, 가즈오 이시구로[41] 2000년대에는 고은의 시가 서양인들이 좋아할 만한 오리엔탈리즘 요소가 있어 노벨문학상 후보로 자주 거론되었으나 성추문 사건 이후에는 문학상 후보가 잘 언급되지 않았다. 다만 오리엔탈리즘 요소 때문에 상을 탈수 있다는 건 단순하다는 의견도 많았다.[42] 다만 노벨위원회의 공식 기록으로는 1987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찰스 피더슨이 있다.[43] 한국을 제외하면 과학 분야 노벨상이 가장 적은 메이저 선진국인 스페인도 1906년, 1959년 2차례 노벨의학상을 받은 바가 있다. 심지어 1906년 수상자인 카할 박사는 모든 교육과정을 모국 스페인에서 이수하고 평생 스페인 내에서 연구 활동을 이어간 인물이다. 마찬가지로 스페인 또한 한국과 같이 필즈상을 따지 못한 메이저 선진국 중 하나이다.[44] 허준이 교수는 유년 시절 대부분 및 석사까지 한국에서 취득했지만 미국 국적을 취득한 미국인이기 때문에 국적기준으로는 집계되지 않지만 한국에서 교육을 받았고 출신도 한국계이기 때문에 한국으로 중복 집계하는 것도 가능하다. 노벨상 같은 경우도 받을 당시의 국적 뿐만 아니라 출신 국가로 중복 집계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아인슈타인은 노벨상 수상 당시 스위스인이었지만 수상 집계에서는 보통 독일로 분류된다. 일본계 미국인 수상자들도 일본 수상 집계에 중복 포함되는 경우가 많다.[45] 사실상 응용과학 및 공학.[46] 아시아에서 가장 많이 수상한 일본조차 이공계 육성 시작으로부터 첫 노벨상 수상자 배출까지 최소한으로 잡아도 반 세기 넘게 걸렸다. 1949년의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인 유카와 히데키의 모교이자 교수로 있던 교토대학 이공학부 설립년도가 1897년이었고, 일본에서 제일 오래된 대학인 도쿄대학도 1877년에 설립했다.[47] 특히 고분자를 주제로 둔다.[48]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즈오 이시구로는 일본에서 일본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음에도 사실상 일본계 영국인 수상자로 보기도 하지만 미국으로 이민을 가 미국인 신분으로 노벨상을 받았음에도 일본 정부로부터 훈장도 받는 등 일본인 수상자로 여겨지는 슈쿠로 마나베(2021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도 있다.[49] 3차 특수 유니터리 군.[50] 전하 켤레성, 반전성[51] 더 정확히 말하면 강한 상호작용에서 게이지 이론을 적용할 때 CP 불변성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았던 것이다.[52] 자발 대칭 깨짐이 이루어지는 항에만 모델을 적용한 것이다.[53] 2021년 수 분 내로 단백질 구조를 해독하는 '로제타폴드(RF)'를 내놓은 뒤 2022년 원하는 대로 단백질을 생성할 수 있는 AI '로제타폴드 디퓨전'을 공개했다. 2023년 공개한 '로제타폴드 올 아톰'은 비단백질 화합물까지 설계할 수 있다.[54] RNA 연구는 2006년에도 노벨생리학·의학상의 주제였기 때문에 기회가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55] 가령 100유로를 건다면 최대 220유로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배당률이 낮을수록 수상 가능성이 높다.[56] 신케인즈학파의 노벨경제학상 수상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으며, 시상 분야가 거시금융으로 한정될 경우 기요타키와 무어가 유력자들이기 때문이다.[57] 김대중은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이, 한강은 소설 소년이 온다가 주요한 수상 요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