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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1 06:37:10

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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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1년 개벽에서 조선인들을 대상으로 설문한 10개 부문별 위인의 선정자 및 차점자 명단이다.
<rowcolor=#ffffff> 사상 정치 군사 문학 미술
이황 이이 이순신 최치원 솔거
- 을파소 을지문덕 박지원 담징
<rowcolor=#ffffff> 종교 과학 산업 교육 사회개선
최제우 서경덕 문익점 최충 유길준
원효 정약용 흘간(屹干) - -
※ 응답수 100명 미만의 차점자는 공개하지 않음.
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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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三國史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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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신라 1권 (新羅 一)」 2권 「신라 2권 (新羅 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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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석문 및 문헌기록상 신라 최초로 성씨를 사용한 왕은 진흥왕임
* 29~31권까지 연표
* 32~40권까지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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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기록3. 여담

1. 개요

率居 (생몰년대 미상)

신라시대의 화가로, 삼국사기 열전에 적혀 있다. 언제 태어나고 죽었는지는 기록에 없으므로 조상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미천한 출신이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현재 한국사 기록에 남은 화가들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사람.

2. 기록

그림 실력이 뛰어나 황룡사 벽에 그린 나무 그림이 너무 진짜 같아 새들이 날아가다가 진짜인 것으로 착각해서 앉아서 쉬고 가려다가 부딪힌 이야기가 있다. 그 이후 벽의 소나무 그림의 색상이 바래졌는데도 새들은 계속 부딪혔다. 그러다 어떤 승려가 다시 색을 칠했는데, 그 이후로는 새들이 찾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 나무 그림은 아쉽게도 현존하지 않는다.

조선시대의 역사서 동국통감에는 진흥왕 27년(566)에 황룡사가 완성되자 솔거라는 자가 벽에 그림을 그렸다는 내용이 있으므로 진흥왕 시대의 사람으로 보인다.[1]

역사의 기록만으로 보면 미천한 출신이라 따로 전문적인 미술 교육은 받지 못했거나 그에 준하는 수준이었을 것이기에 솔거는 한참 뒤 서양에서 유행할 극사실주의 화풍을 스스로의 재능으로 터득한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새들이 그림을 실제로 착각해 날아오다 부딪히는 이야기는 과장이 아니라 충분히 현실성이 있는 이야기이다. 당장 유튜브 등에서 동물들이 사진이나 TV의 영상을 보고서 진짜라고 착각하여 빠르게 움직이다 부딪히거나 하는 장면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새들은 그림이나 유리창에 머리를 들이받아 스턴 상태에 걸려 날지 못하고 멍하게 떨어지는 일도 도시에서 생각보다 흔하다.[2] 새들의 판단력은 종마다 다르긴 하지만 마냥 좋지는 않아서, 다른 예를 들면 농촌에서 허수아비를 괜히 세워놓는 게 아니다.

3. 여담


[1] 엄밀하게는 그가 어느 시대 사람이었다고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기록은 없다. 동국통감은 어떤 사건이 일어난 정확한 연대를 모를 경우에는 그냥 그 사건이 일어난 왕대 마지막 재위년에 써붙여놓는 경우도 많았다. 또 삼국사기 솔거열전에서는 황룡사의 노송도 말고도 분황사관음보살상과 진주 단속사의 유마거사상도 그의 작품이라고 했는데, 두 절은 모두 진흥왕 사후 백 년, 2백 년이 지난 후대에 세워진 절이다. 물론 담징의 사례에서 보듯 분황사나 단속사 쪽이 후대에 와서 솔거의 이름을 가탁해서 지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2] 이를 방지하기 위해 벽이나 유리창에 독수리 등 맹금류 스티커를 붙여놓아 새들이 다가오지 않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효과는 전혀 없다는 게 팩트. 황조롱이 문서 2번 문단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