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임한 직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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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제10대 문부과학대신 | |
제25-26대 일본 참의원 의원 스즈키 무네오 鈴木宗男 | Muneo Suzuki | |
<colbgcolor=#808080><colcolor=#fff> 출생 | 1948년 1월 31일 ([age(1948-01-31)]세) |
일본 홋카이도 니시아쇼로마치[1] |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가족 | 딸 스즈키 다카코 |
학력 | 타쿠쇼쿠대학 (정치학 / 학사) |
현직 | 제26대 일본 참의원 의원 신당대지 대표 |
정당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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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참의원 의원이다. 딸 스즈키 다카코도 외무성 부대신을 지낸 현역 4선 의원으로서 정치를 하고 있다.2. 생애
홋카이도(현 아쇼로마치) 출신이다. 타쿠쇼쿠대학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하고 나카가와 이치로의 비서로 활동하기 시작해 1983년 나카가와 이치로가 사망하자 그의 뒤를 이어 중의원으로 당선되었다.[2] 1997년 하시모토 류타로 내각에서 홋카이도 개발청•오키나와 개발청의 장관으로 임명되어 이듬해까지 재직했고, 오부치 게이조 내각에선 내각관방부장관으로 임명되었다.2002년 알선수재 혐의로 체포되어 차기 총선거가 있었던 2003년까지 중의원으로 재직했다. 논란이 있던 3월에 중의원 운영위원회에서 민주당을 대표해 다카키 요시아키 의원이 스즈키 무네오에 대한 의원직 사퇴 권고 결의안의 취지 설명을 했다.
2004년 무소속으로 홋카이도 선거구의 참의원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1년 후인 2005년 신당대지를 창당, 다시 중의원으로 당선되었다. 2009년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당선되었으나 2010년 알선수재 혐의가 유죄 판결을 받고 의원직을 잃었다.
2011년 약 1년만에 가석방되고, 재기를 시도하다가 처음으로 피선거권을 회복한 2017년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신당대지의 비례대표 후보자로 출마했다. 개표 초중반 10% 남짓한 정당득표로 당선의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일본공산당에게 뒤져 낙선.
자기 딸 스즈키 다카코는 현재 중의원 최연소 의원으로,[3] 신당대지 → 민주당 → 민진당을 거쳐서 2017년 현재 자민당에 있다. 자민당 청년 정치인으로 완전 정착해서 현재 4선 의원이고 방위대신 정무관을 거쳐 기시다 내각에서 외무부대신에 취임하는 등 잘나가는 중이다.
2019년 참의원 통상선거에선 일본 유신회의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했다. 아무래도 간사이 외에는 딱히 다른지역에서 기를 못펴는 일본 유신회와 어떻게든 원내진입이 간절한 스즈키 무네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인 듯하다. 결국 2010년 이후 10년여만에 참의원으로 당선되어 원내진입이 성사되었다.
2023년 10월 2일, 소속 정당인 일본 유신회에 통지 없이 러시아에 도항해 러시아측 외무차관과 회담하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일본 국회의원이 러시아에 방문한 것은 처음이라 주목받는 중. 통지 안한 것에 대해 실수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방러 후 현지에서 러시아 국영 통신사 스푸트니크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100% 승리할 것을 확신한다'라는 발언을 한 사실이 물의를 일으켰고, 결국 당윤리위원회에서 제명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러나 스즈키 의원이 결국 10월 10일에 유신회를 탈당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
3. 정치 성향
아무래도 자신의 정치 기반인 홋카이도가 미개발된 낙후 지역이다 보니 친러 성향이 강하다.[4]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며, 홋카이도의 자립을 주장하는 편이다. 자민당 시절에는 노나카 히로무와 친밀했다.4. 소속 정당
소속 | 기간 | 비고 |
| 1983 - 2004 | 정계 입문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004 - 2005 | 뇌물 사건으로 탈당 |
| 2005 - 2019 | 창당 |
( ) | 2019 - 2023 | 입당 및 창당[5]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 2023 - |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실언 논란으로 인한 탈당 |
5. 기타
- 나카가와 이치로 의원 비서시절 김대중 납치사건이 발생했는데 이때 한 TV 토론회장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도와주던 우쓰노미야 도쿠마 의원과 나카가와 의원이 말 다툼이 일었고 여기에 스즈키는 한술 더 떠서 우쓰노미야의 넥타이를 잡고 꽉 조이는 등의 과격한 행동을 한 적도 있다.
- 자신보다 아래라고 생각하면 바로 반말에 막말을 퍼붓기 일쑤였는데 과거 의원 시절 국제교류기금에 전화를 걸어서 전화상대를 향해 평소처럼 갑질을 했는데.. 문제는 이때 전화를 받은 사람은 당시 촉탁으로 근무하던 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 친왕이였고 나중에 자신의 전화 상대가 황족임을 사실을 안 스즈키는 노리히토 친왕을 만나 사과하려고 했으나 스즈키는 끝내 사과하지 못했다고 한다.[6] 하지만 이러한 사건을 겪고 나서도 지금까지 이러한 성격은 고쳐지지 않고 있다.(...)
- 스즈키가 1994년 총리 투표에서 가이후 도시키를 찍어 파벌에서 고립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누카가 후쿠시로가 스즈키를 옹호해줘서 스즈키가 지금도 누카가에게 감사하고 있다고 한다.
- 2001년, 김정남이 출입국관리법 관련 위반으로 도쿄 입국관리국에 구속되어 있었다. 당시 외무대신이었던 다나카 마키코가 "이런 인간을 일본에 두면 북한에서 미사일이 날라 온다. 빨리 돌려보내지 않으면 큰일난다. 빨리 쫓아내라"라고 발언해 중의원에서 스즈키가 질문했었으나, 당시 중의원 의장 마치무라 노부타카는 그런 발언은 찾을 수 없다고 대답했다.
- 코로나19 역대 최대치 기록 경신 중에 렌호 입헌민주당 대표 대행과의 설전에서 2020 도쿄 올림픽 개최 반대한다면 TV 볼 자격없다는 식의 발언을 했다.#
6. 같이 보기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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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토 겐이치로 | 이하 요이치 | 다카라 데츠미 | 스즈키 무네오 | 하마다 사토시 | |
히로타 하지메 | 렌호 | }}} }}}}}} |
[1] 現 아쇼로마치[2] 당선 동기로는 니카이 도시히로, 아마리 아키라, 오시마 다다모리, 노로 아키히코, 마치무라 노부타카, 다나카 나오키, 나카가와 쇼이치, 이부키 분메이 등이 있다.[3] 반대로 중의원 최고령 의원은 이부키 분메이 전 중의원 의장이다.[4] 2022년 부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발발하면서 러시아와 미국등을 비롯한 서방권의 외교 대립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스즈키는 그의 블로그에 젤렌스키와 우크라이나를 비판하고 푸틴과 러시아를 실드치는 글을 올리는 등 대중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친러시아 행보를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5] 신당대지 창당.[6] 스즈키는 해당 사건 이후에 주기적으로 노리히토 친왕측에 사과를 하기 위하여 접견을 신청했으나 계속 반려되었고 그러던 와중에 2002년 노리히토 친왕이 급사하면서 사실상 영원히 사과가 불가능 해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