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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디부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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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épublique de Côte d'Ivoire
Republic of Côte d'Ivo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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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국장
Union, Discipline, Travail
통일, 규율, 노동
국가 <colbgcolor=#ffffff,#191919>아비장의 노래(L'Abidjanaise)
면적 322,463km²
인구 28,873,034명(2023년) | 세계 51위
민족구성 아칸족 42.1%, 구르족 17.6%, 북방 멘데족 16.5%, 크로우족 11%, 남방 멘데족 10%, 기타 2.8%
종교구성 이슬람 38.6%, 기독교 32.8%, 토착신앙 11.9%
수도 야무수크로 (Yamoussoukro, 정치)
아비장 (Abidjan, 경제)
최대 도시 아비장 (Abidjan)
공용어 프랑스어
정치 체제 대통령제
민주주의 지수 4.22점, 혼합된 체제(2023년)
(167개국 중 105위)
대통령 알라산 와타라
(Alassane Dramane Ouattara)
부통령 티에모코 메이옛 코네
(Tiémoko Meyliet Koné)
총리 로베르 뵈그레 맘베
(Robert Beugré Mambé)
통화 CFA 프랑/서아프리카
GDP 명목 $750억 7,500만 (2022), PPP $1,731억 8,800만(2022)
1인당 GDP 명목 $2,646(2022), PPP $6,103(2022)
HDI 0.550(2021)
여행경보 여행자제: 적색경보 지정 지역을 제외한 전지역
출국권고:라이베리아ㆍ기니와 국경을 접한 서부 지역(뎅겔레주, 몽타뉴주, 바핑주), 초로고, 붕카니 지역 [1]
남북수교현황 대한민국: 1961년 7월 23일
북한: 1985년 1월 9일
주한 대사관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55 부영태평빌딩 19층
위치
파일:코트디부아르 위치.svg

1. 개요2. 국호3. 역사4. 사회와 경제 상황5. 정치6. 문화
6.1. 언어6.2. 식문화
7. 군사8. 스포츠9. 외교10. 창작물에서11.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아프리카 서부 대서양 연안에 있는 국가. 동쪽으로는 가나, 서쪽으로는 라이베리아, 서북쪽에는 기니, 북쪽에는 말리, 부르키나파소와 인접해 있다. 행정 수도아비장(Abidjan). 법적 수도는 야무수크로(Yamoussoukro)이다.

2. 국호

코트디부아르(Côte d'Ivoire, [kot d‿i.vwaʁ])는 프랑스어로 '상아해안(象牙海岸)'을 의미하는 국호이다. 특이하게도 이 나라의 이름은 서양 국가에서는 의미를 번역해서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영어로는 아이보리코스트(Ivory Coast), 독일어로는 엘펜바인퀴스테(Elfenbeinküste), 이탈리아어로는 코스타다보이로(Costa d'Avorio), 스페인어로는 코스타데마르필(Costa de Marfil), 포르투갈어로는 코스타두마르핑(Costa do Marfim), 현대 그리스어로는 악티엘레판도스투(Ακτή Ελεφαντοστού)이다. 에스페란토로는 의미를 직역한 에부르보르도(Eburbordo)지만 프랑스어 국호에서 유래한 코트디부아로(Kotdivuaro)도 병용되고 있다. 중국어로는 음역해서 과특적와(科特迪瓦, Kētèdíwǎ, 커터디와)로 부른다.

코트디부아르 국민은 이부아리앵(Ivoirien, 영어로는 Ivorian)이라고 한다. 이는 그야말로 아프리카 초원에서 사냥한 아프리카코끼리상아유럽으로 반출하던 항구에서 유래한 것이니, 식민지 시절 국명이 그대로 전래된 것이라 보면 된다.

참고로 코트디부아르 정부는 1986년에 세계 각국에 코트디부아르를 자국어로 번역하지 말고 그대로 사용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래서 코트디부아르 정부는 영어 문서에서도 Côte d'Ivoire를 사용하며, 중국어에서도 음차한 커터디와(科特迪瓦, Kētèdíwă)라고 부른다.[2]

이전에는 영문명인 “아이보리 코스트’” 라고도 많이 불리었다.

한국인들에게는 낯선 국가고, 그나마 알려진게 축구선수 디디에 드록바라서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주로 드록국이라고 불린다.[3] 나라 이름도 많이들 헷갈려, '코르디부아르, 코르티부아르, 코드티부아르, 코트디브아르'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흔하다.

3. 역사

오늘날 코트디부아르의 영토에 걸쳐 여러 아프리카 부족 왕국들이 그들 나름의 국가를 세웠다. 가나, 송가이, 갸만, 콩, 아샨티, 바울레, 산위 등이 주요 국가들이었다. 15세기부터 포르투갈,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등 유럽인들이 내항하여 여러 무역을 했는데 주로 노예와 상아를 무역해서 상아해안이란 이름이 붙는 계기가 됐다.

1890년대서아프리카 국가(세네갈, 기니, 가봉)처럼 프랑스식민지배를 받았는데 당시에는 프랑스령 서아프리카의 일부였다. 그리고 프랑스의 문명화 정책으로 인해 공용어는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1960년, 식민지배는 종지부를 찍었고 이후에 정치적 막장 가도를 달리기는 해도(펠릭스 우푸에부아니독재) 경제적으로 농산물 수출과 원자재값 상승으로 1960~1978년의 황금기에는 8.5%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는데 이 때의 경제성장률은 아시아의 네 마리 용과 비슷한 수준이었고 한창 경제발전이 절정이었을때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는 남아공, 나이지리아, 콩고민주공화국에 이어 네번째로 경제규모가 큰 경제대국으로 등극했을 정도였다.[4]

그래서 한동안 코트디부아르는 ‘평화의 섬’, ‘경제 기적’, ‘프랑스어권의 맏형’으로 불렸으며 독립 이후 20년간은 카카오와 커피 등 열대작물을 수출하면서 식민지에서 벗어난 대표적 모범국가로 성장했다. 이 당시 아비장은 고도경제성장에 따라 여러 고층건물들이 속속 들어서 화려한 모습을 뽐냈기에[5] 서아프리카의 파리라는 별칭이 붙여졌고, 내전기간 중에 인프라 상당수가 파괴되었기는 했지만 기초적인 인프라는 갖춰져 있었다. 현재도 코트디부아르의 인프라 수준은 타 아프리카 국가에 비해서 낫다는 평을 듣고 있다.

그래서 현지인 가운데서 코트디부아르가 계속 안정적으로 성장했었으면 아프리카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잘 살았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많다.[6] 그 덕에 이웃 가난한 나라들에게 부러움을 많이 받아 주변국에서 일하러 온 노동자들이 워낙 많았고, 당시 코트디부아르 당국에서도 민족갈등의 여지를 줄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외국인들을 받아들였으며 현재도 코트디부아르 인구의 25% 가량이 주변국에서 온 이주민 계통이라는 통계가 나올 정도다. 이 당시를 살았던 코트디부아르인 노년층들의 회고에 의하면 이때는 각종 먹을거리들이 넘쳐나서 영양실조는 주변국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었고 시골 곳곳에까지 인프라 공사가 활발히 진행되던 시절이었다.

허나 경제의 핵심부문을 여전히 프랑스에게 상당부분 의존하는 등 기초체력이 그리 탄탄치 못했기 때문에 1978년부터 농산물 가격이 떨어지고, 석유값이 폭등하는 사태가 일어나면서 세수가 급감하는 바람에 경기침체를 겪기 시작했다. 거기에 더해서 농산물 가격이 높게 유지될 것이라고 낙관하면서 농산물 수출로 벌어들인 돈으로 산업화를 진행하겠다고 외국으로부터 막대한 돈을 꾸면서까지 투자한 상태였는데 산업화가 생각보다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아 결국 그 돈이 부채로 되돌아오고 말았고, 이렇게 경제가 침체되어가던 와중에 1973년 당시 OPEC의 전략을 따라해서 카카오 가격을 올리려고 했지만 가격통제에 실패하여 결국 초콜릿회사들에게 굴복하는 굴욕을 겪어야 했다. 또한 코트디부아르의 경제상황이 지속적으로 악화되어나가자 외국기업들이 코트디부아르에서 철수해서 대규모의 자본유출까지 일어났다. 그렇게 각종 지표가 마이너스를 향해 달려갔고 결국 1987년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국가파산을 선언하고야 말았고, 코트디부아르의 기적은 말 그대로 신기루가 되었다.

이로 인해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으며 농촌에 지급되었던 보조금은 없어지고 보건소에 다녀올려면 돈을 내야되게 바뀌어 버렸다. 국영기업 역시 대다수가 민영화되어서 대규모 구조조정이 실시되고 외국회사에게 헐값에 팔려나간 것은 덤이었으며 한때 아프리카에서 상위권이었던 1인당 국민소득은 내려앉는 등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이러한 경기침체가 장기화되어 을씨년스러운 상황이 지속되어가면서 분노가 헐값으로 일하던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향했고 이로 인해 1980년대 후반 외국인 추방 움직임이 벌어졌는데 이게 폭동으로 번져 많은 외국인들이 구타 및 살해당했다. 대다수가 불법 노동자라서 지금까지도 정확한 사망자 및 피해자 인적사항을 모른다. 그래서 차드라든지 여러 이웃 나라에서는 코트디부아르로 일하러 갔다가 이때 영원히 소식이 끊긴 사람이 꽤 된다고 한다. 덕분에 이들 나라에 가면 부모를 그 때 잃은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코트디부아르의 경제의 부흥과 쇠락은 다음 글을 참고하면 좋을 듯하다. 선진국이 될 뻔한 아프리카 나라, 코트디부아르

33년동안 권력을 차지한 펠릭스 우푸에부아니1993년 사망하자. 이후 그의 후임으로 앙리 코낭 베디에가 권력을 차지했다.

그러나 혼란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1999년 투오 포지에가 이끄는 부대가 쿠데타를 일으켰고 로베르 게이가 군부의 지지를 얻으며 대통령이된다. 이로 인해 우푸에부아니 대통령의 후임인 앙리 베디에는 프랑스로 도망가기에 이른다. 그러나 2000년, 로베르 게이와 로랑 그바그보의 대통령 선거를 실시하고 이틀 후, 지역별 득표 현황을 발표하는 중 로베르 게이를 추종하는 군인들이 발표를 중단시키고 로베르 게이가 당선자라고 발표했다(지금도 코트디부아르는 대선 결과 발표가 한국처럼 당일에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이에 3일동안 민중봉기가 일어나 로베르 게이 장군이 쫓겨나고 그바그보 대통령이 취임했다. 이어 2002년, 대통령 자리를 두고 2000년에 취임한 로랑 그바그보(Laurent Gbagbo)와 로베르 게이 (Robert Guéï)의 군사반란(쿠데타) 및 내전이 벌어져 정부군과 반군간의 치열한 싸움이 펼쳐졌다. 결국 반란군이 패하여 로베르 게이는 사살당하고 4년이나 시체가 영안실에 처박혀있다가 나중에 장례를 치르게 된다.

파일:/image/038/2007/07/17/news1200707172100180.jpg

물론 내전이 끝난 상황이 아니여서 반군과 정부군의 교전은 계속되었고 국토를 정부와 반군이 나누고 있는 코트디부아르에서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가 양측의 전쟁 자금원으로 이용되고 있는데 이게 엄청난 수준의 자금으로 코트디부아르 정부와 반군이 2004년 이후 카카오로 거둔 이익은 각각 5,800만달러와 3,000만달러에 달했을 정도로 엄청났다.

현재까지도 전 세계 카카오 생산량의 약 40%를 차지하는 코트디부아르는 2006년 카카오 수출로 10억달러의 이익을 얻었는데, 카카오 생산과정에서 벌어지는 인권 유린이 크게 문제가 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12 ~ 14세의 어린이 280,000여명이 카카오 농장에서 인신매매와 혹사,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코트디부아르 정부와 반군을 비판했으며, 코트디부아르 야당은 정부와 반군이 카카오 뿐 아니라 커피와 목화, 원유 등을 통해서도 자금을 끌어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시에라리온에서 수출되는 다이아몬드처럼 카카오 수출에 제재조치를 취하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는 주장, 좀 더 구체적으로, 코트디부아르 지역전문가인 대니얼 배린트 쿠르티는 “카카오 생산 근로자 3,000,000 ~ 4,000,000명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해서 카카오 제제조치를 취하기도 뭐한 상황이 되었다.

2005년엔 코트디부아르 최초로 월드컵[7]에 진출하게 되었는데, 2006년 독일 월드컵 본선 진출을 자축하고 있던 도중 디디에 드록바가 자신에게 다가온 중계방송사의 카메라 앞에 무릎을 꿇은 후 "여러분, 우리 모두 서로를 용서하고 무기를 내려놓읍시다."라고 호소했다.# 이런 드록바의 호소 이후 코트디부아르에서는 일주일 동안 총성이 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2007년 협정(와가두구 평화합의)을 통해서 2007년 7월 내전을 종식시켰다.[8] 다만 아직 반군의 무장해제가 완전히 이루어진 것은 아닌 상태였으며, 여전히 국토의 절반을 차지하는 북부지역에 대해서는 정부가 통치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특히 2002년 내전 이후 코트디부아르 북부를 장악하고 있는 포스누벨은 처음에는 주민들로부터 환영을 받았지만 폭력, 재산갈취, 부패 등으로 지금은 주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보복을 우려해서 얼굴을 가리고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은 포스누벨의 행패를 증언했는데 다음과 같은 증언이 나왔다.
"형의 시체가 시장 뒤편에서 발견됐는데 왼쪽과 오른쪽 다리에 총 자국이 있었다. 강제로 포스누벨에 가입시키기 위해 총을 쐈는데 마지막에는 머리를 쏴 죽였다. 이 땅에는 정의라는 것이 없다."
"처음엔 주민들을 위해 일한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무조건 자신들의 지시를 따르라고 협박하고 있다. 그들은 돈과 보석을 빼앗아 간다."
"돈이 없다고 하니까 부인과 딸을 강간하고 나를 폭행했다."

그래도 내전이 일어나는 때보다는 상황이 좋아졌고 2007년 이래 2012년까지 코트디부아르에는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임명한 최영진 전 외교차관이 코트디부아르 담당 유엔사무총장 특별대표로서 현지에서 UN 평화유지군 11,000명을 지휘했다. # 이후 박근혜 정부 취임과 함께 주미대사로 발령.

한편 코트디부아르의 로랑 그바그보 대통령의 임기가 종료된 2005년 10월 이후 몇차례나 대선 투표를 실시하려고 했으나 그때마다 정국의 불안과 준비 부족 등을 이유로 연기되어서 점점 독재의 싹수가 보이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좀 조용해지나 싶던 중 2010년 12월, 로랑 그바그보 대통령이 2010년에 치러진 대선에서 공화당의 후보이자 북부 반군인 포스누벨과 북부의 무슬림 세력들의 지지를 받는 와타라 후보가 54.1%의 표를 얻어 45.9% 득표에 그친 로랑 그바그보 대통령을 제치고 대선에 승리했다고 발표해서 이제 정권 교체를 하나 싶었지만, 로랑 그바그보는 코트디부아르 대선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선거결과에 불복하고 대통령 취임을 선언하는 막장 짓을 저질렀고 선거에서 승리한 와타라 전 총리도 대통령 취임을 선언해 한 나라에 두 대통령 취임이라는 사태가 벌어져 다시 내전의 암운이 드리워졌다.

코트디부아르 보안군은 수도 아비장 교외의 야당 사무실에서 최소 4명 이상을 사살했다고 주장했으며, 로랑 그바그보 대통령 지지자들도 와타라 후보 주도 반군의 공격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정부군은 2010년 12월 2일 오후 8시부터 국경을 무기한 전면 봉쇄하고 인적, 물적 교류를 차단했다. 또 프랑스 등 외국 언론사의 TV와 라디오, 뉴스 송출도 차단했다. 2010년 10월 말에 이미 1차 대선 투표가 진행됐지만 이 역시 폭력사태로 얼룩지면서 그동안 다수의 사망자를 냈었기 때문에 내전은 이미 일어날 기미가 있었던 상황이기는 했다.

결국 코트디부아르에서 다시 준내전 사태가 일어나, 수백 명의 용병 부대가 돈을 받고 들어와 전투를 벌이고 있다. 게다가 양측 다 내전 와중에서 서로 학살을 벌이고 있어서 국제사회가 누구 손을 들어주기도 뭐한 상황이 되었다.기사[9]

파일:/image/038/2011/04/03/alba01201104032323130.jpg

특히 이 내전에서 가장 유명한 사건은 코트디부아르 서부도시 두에쿠에에서 최대 1,000명의 사람들이 학살된 사건이 가장 유명하다.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외신들은 가톨릭구호단체 카리타스가 전했던 말을 전했는데 2011년 3월 30일 두에쿠에에서 총에 맞거나 칼로 토막난 시신 수백구를 발견했다고 밝힌 내용을 보도했는데, 카리타스의 패트릭 니콜슨 대변인은 "3월 27~29일 전투 결과 도시 전체가 시체로 가득 찼다. 직원들이 도시와 덤불, 공동묘지에서 시체를 목격했다"며 사망자수가 1,000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도로테아 그리밋사스 대변인도 "수많은 시체에 충격을 받았다. 적어도 시체 800구가 있었다"고 말했다. 기사

한편 코트디부아르의 경제도시로 꼽히는 아비장에서는 이 날도 대통령궁과 군사기지 등지에서 대포와 기관총을 쏘며 양측이 격렬한 전투를 벌여댔다고 하며, 유엔은 아비장에 있는 직원 200명을 모두 피신시켰다.

전황은 계속 그바그보에게 불리해져갔다. 결국 2011년 4월 초, 수세에 몰린 코트디부아르 전 대통령인 로랑 그바그보프랑스 대사관을 통해 항복의 뜻을 밝혔으나 돌연 종적을 감춰버렸고, 다시 UN군을 공격했다. 이에 UN군은 프랑스군 헬리콥터와 연합해 다시 그바그보 세력을 공격했다. 이 공격은 성공해서 4월 11일, 前 대통령인 그바그보가 프랑스 특수부대에 생포되면서 일단 선거에서 승리했던 알라산 와타라(Alassane Ouattara)가 정식 대통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선 이후 이미 100만명이 집을 버렸고 13만명 이상이 라이베리아 국경을 넘어갔다고 하니, 사후 처리가 더 문제일 듯.

또한 기독교계였던 로랑 그바그보를 축출한 와타라가 이슬람계이기 때문에 기독교계에 심각한 탄압과 학살을 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고 이미 내전 중에 와타라측 군인들이 기독교계 주민들을 학살한 혐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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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산 와타라 현 코트디부아르 대통령

한편 내전에서 승리한 알라산 와타라 대통령은 내전으로 작살난 경제를 회복시키는데 성공한 수준을 넘어서 상당한 고도성장을 기록했기에 2015년 10월 25일에 코트디부아르 대선에서 와타라 대통령이 약 84% 지지를 확보하며 재선에 성공했다. 매우 우려했던 폭력사태나 투표 방해행위 없이 평화롭고 공정하게 진행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와타라도 코트디부아르 내전에서 상당히 많은 전쟁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추정되는지라 국제인권단체들은 현 코트디부아르 정부와 와타라 대통령을 전범 혐의로 조사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2020년 7월 8일에 코트디부아르의 아마두 쿨리발리 총리가 사망했다.# 7월 30일에 신임 총리로 국방장관인 하메드 바카요코가 임명됐다.#

코트디부아르에서 알리산 와타라 대통령의 3선 출마를 두고 시위가 발생했고, 찬반 시위대가 충돌해 최소 4명이 사망했다.# 와타라 대통령 3선 이후 야당 지도자들을 소요·테러리즘 등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

아비장에서 10대 여성이 에볼라에 감염되자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2022년 4월 13일에 파트릭 아치 총리가 자신과 내각의 총사퇴서를 제출했다고 알라산 와타라 대통령이 밝혔다.#

그러나 며칠 뒤 내각 개편과 함께 파트릭 아치 총리는 다시 임명되었다.

4. 사회와 경제 상황

과거에는 위에서 보았듯이 수십년간 이어진 내전탓에 그리고 옆 국가들에서도 내전이 일어나 피난을 온 난민들도 계속 유입되기도 해서 치안이 매우 불안한 상태였으며, 불안한 사회상 탓인지 살인율이 엄청나게 높았다. # 또한 알카에다와 같은 테러조직도 테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2016년 3월 14일에는 코트디부아르 휴양지 호텔 알카에다 대원들이 총을 난사해서 민간인 14명과 군인 2명이 숨졌으며, 괴한 6명도 사살되기도 했다.

단 위와 같은 이야기들은 과거의 이야기로, 최근에는 경제, 정치 상황이 안정됐으며 테러 단체 또한 잠잠해짐에 따라 치안이 상당 부분 안정된 편이다. 단 여전히 라이베리아, 기니와 접해 있는 국경 지대는 위험하니 이 지역 출입은 가급적 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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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디부아르의 경제 상황
인구 29,388,150명 2021년
명목 GDP $750억 7,500만 2022년
GDP(PPP) $1,731억 8,800만 2022년
경제성장률 6.5% 2022년
1인당 GDP $2,646 2022년
1인당 PPP $6,103 2022년
GDP 대비 공공부채 비율 47%(추정) 2017년
고용률 54.2% 2017년
무디스 국가 신용등급 Ba3 2015년

세계 1위의 카카오 생산국가다. 세계지리 선택자들은 이 부분에서 친숙한 경우도 많을 듯 하다. 연 1,450,000t의 생산량은 전 세계 생산량의 40%를 차지하고 있고, 코트디부아르 입장에서는 외화벌이를 해주는 중요한 작물이다.

하지만 근무환경은 열약한 편인데, 취재에 의하면 코트디부아르의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당 3,000원을 벌기 위해 하루 종일 허리 한 번 펴지 못하고 고된 노동에 시달리며 남자들이 장대를 이용해 높이가 수 미터에 달하는 카카오 나무에서 열매를 떨어뜨리면 여자와 아이들이 재빨리 떨어진 열매를 주워 담는 중노동이라고 한다. 코트디부아르 주변국의 많은 어린이들이 중개업자에게 속아 코트디부아르의 카카오 농장에서 강제 노역을 한다. 한 언론사의 취재에 의하면 아이들은 카카오초콜릿의 맛조차 모르면서 일을 한다고 한다. 이러한 행위는 명백히 국제법에서 규정되는 범죄 행위나 마땅한 제재 수단이 없는 상황이였다. 최근에는 경제와 정치 상황이 안정되면서 이러한 아동 착취와 같은 범죄가 상당 부분 줄어든 상황이긴 하나, 완전히 사라진것은 아니다.

의료 인프라의 경우, 아비장과 같은 대형 도시의 경우엔 곳곳에 약국이 있긴 하나 많은 종류의 약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특별 질환자인 경우엔 따로 상비약을 챙겨야 한다. 이외 지역에도 기본적인 의료 인프라는 갖춰져 있으나 아비장과 마찬가지로 약의 종류가 부족한 편이다. 최근에는 열악한 보건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내전 종식 이후로는 사회가 어느정도 안정화되고 있기에 빈부격차와 2차산업의 부실과 같은 문제점이 여전히 있기는 하지만 경제가 매년 급속히 성장하고 있으며 평균 경제성장률은 7-8%대에 달하고, 국민 소득 또한 대폭 올라 서아프리카에서 1위를 달성했다. 또한 전체적인 수출량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중 4번째로 많고, 인플레이션이 안정되어 있는 상황은 긍정적인 부분.[10]

그리고 전체 상업부문에 있어서 약 9만명 가량으로 추산되는 레바논인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특히 유통체인점이나 수산업 부문은 레바논인이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틀린말이 아니며, 건설부문에 있어서도 레바논인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이들 레바논인들은 꽤나 오래전에 정착한데다가 2000년대 내전에서 살아남았다. 코트디부아르의 내전이 종식되고 고도경제성장을 이어가면서 최대 수혜층으로 손꼽히고 있으며 이익의 상당수를 이들이 차지하고 있다.

일반 단순 노동자 기준 2020년 기준 평균 시간당 임금은 300fcfa 수준이며 한달 만근시 200,000원 정도가 월급으로 지급된다. 회사에 따라 다르나 계약직의 경우 월 2회 나누어 급여가 지급되며, 정규직의 경우 월1회 지급하는곳이 많다.

광고에 등장하는 홍보원 특유의 창법과 손으로 모기를 잡는 리듬의 절묘한 조화, 몬더그린 가사의 CM의 쉬페르 티모르라는 모기약이 코트디부아르 제품이라고 한다. 참고로 인터넷에서 알려진 쉬페르 티모르의 광고는 1986년도 광고다. 최근에도 광고가 나오긴 하지만 그냥 그저 그런 평범한 모기약 광고이다.

코트디부아르에서 일상생활을 올리는 한국인 유튜버가 있으므로 관심있는 사람들은 한번 보는 것도 좋다.

코트디부아르의 카카오 생산 농장이 아동학대를 저지르고 네슬레, 허쉬 등 글로벌 식품기업들이 아동 노동착취를 묵인했다는 혐의로 미국에서 피소됐다.#

아프리카 국가 중 가장 먼저 컬러 방송을 시작한 나라이기도 한데, 코트디부아르는 1970년에 컬러 방송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 당시에 코트디부아르가 호경기였다고는 하지만, 가나와 1인당 국민소득의 차이가 크지 않았던 시점임을 감안해도 일찍 시작한 것이다.[11]

70년대에는 조만간 선진국이 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고도성장기였다. 1960년 147.3달러였던 1인당 GDP는 1972년 309.3달러였다가 1979년 1225.4달러로 7년 만에 4배나 성장했다. 특히 1978년에는 1025.9달러로 처음으로 1000달러를 넘겼고,[12] 중진국의 마지노선격인 세계 평균[13]의 절반도 가까스로 넘겼다.[14][15] 그러나 1983년까지 736.7달러, 1985년 700.3달러로 급락했고, 이후 겨우 800~900달러대로 돌아서는 듯 했으나 우푸에부아니가 사망한 직후인 1994년에는 1976년만도 못한 수준인 602.3달러로 전락했다. 2022년 현재 1인당 GDP는 2486.4달러로 방글라데시보다 낮고 인도, 니카라과보다는 높은 전형적인 아프리카 후진국 수준이다.

5.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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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디부아르의 정치 정보
부패인식지수 40점 2023년, 세계 87위
언론자유지수 68.83점 2023년, 세계 54위[16]
민주주의지수 4.22점 2023년, 세계 105위

6. 문화

서아프리카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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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 감비아 기니 기니비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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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언어


코트디부아르 프랑스어

공용어는 프랑스어이다. 코트디부아르내에도 소수민족들을 중심으로 토착어도 쓰이고 있다. 토착어의 영향력은 가나, 나이지리아보다는 작다. 국민 과반수가 아는 단일 토착어는 없다. 바울레어가 그나마 5백만이 넘는 화자를 가지며, 바울레어로 된 음악도 작곡되는 수준이다. 크루어, 만데어, 구르어, 아칸어(바울레어가 여기에 해당)로 분류되는 다른 분류 사이에서는 영어와 프랑스어 수준의 차이가 심한 토착어들이 쓰인다.

그리고 풀라어, 밤바라어, 모시어사용자도 존재하며 코트디부아르내에는 여러 소수 언어들이 많이 쓰이고 있고 일부 스페인어도 쓰인다고 한다.[17] 코트디부아르는 부르키나파소와 접한 지역을 제외하고는 가나라이베리아와 접해 있다보니 영어가 제1외국어로 지정되어 있다. 다만, 가나는 코트디부아르를 포함한 주변국들이 프랑스어권 국가들이라서 프랑스어가 주요 외국어이다.

코트디부아르가 무슬림들이 많다보니 북부 지역에서는 종교적 목적으로 아랍어를 배우는 학원들도 있다.

6.2. 식문화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코트디부아르 요리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7. 군사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코트디부아르군 문서
번 문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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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8. 스포츠

8.1. 축구

사실 아프리카의 변방 국가에 불과해서 유명한 나라도 아니었지만, 코트디부아르의 축구 영웅 디디에 드록바 덕분에 현재는 축빠라면 모를래야 모를수가 없는 나라가 되었다. 야야 투레, 콜로 투레 형제, 윌프리드 자하, 살로몬 칼루, 기성용의 스완지 시티 동료였던 윌프리드 보니, AS 로마 출신의 제르비뉴, 손흥민의 토트넘 동료였던 세르주 오리에가 유명하며, 최근에는 FC 바르셀로나프랑크 케시에라던지 아스날의 니콜라 페페 그리고 아마드 디알로도 있다

축구 국가대표팀에 관한 건 코트디부아르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 참조.

8.2. 농구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농구에서도 아프리카 수준급 강호이다. 1978, 1980년 아프리카 선수권 대회(Africa Championship) 준우승(우승은 둘 다 세네갈)을 시작으로 1981, 1985년 대회를 우승했고 2009년 대회 준우승, 2011, 2013년 대회 4강을 비롯한 꾸준한 성적을 내고 있다. 한국프로농구에서도 코트디부아르 출신 용병이 뛴 적이 있는데 2005-2006 시즌 안양 KT&G 카이츠에서 뛴 허브 래미쟈나가 그 주인공.

8.3. 태권도

의외로 올림픽 태권도 금메달을 딴 국가 중 하나다. 아프리카 대륙 중에서 유일한 태권도 금메달 보유 국가이기도 하다. 코트디 부아르 최초의 올림픽 메달이자 금메달이 태권도에서 나왔다. 이집트와 함께 아프리카 대륙 태권도 최강국 중 하나이며 리우올림픽에서는 금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따냈고 도쿄 올림픽과 파리 올림픽에서도 동메달 1개를 추가하며 자국에서는 태권도를 "희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9. 외교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코트디부아르/외교 문서
번 문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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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10. 창작물에서

11. 관련 문서



[1] #[2] 중국 외부에서는 의미를 번역한 싱야하이안(象牙海岸, Xiàngyá Hăiàn)도 사용된다.[3] 프랑스 사람들이 한국을 이강인의 나라라고 강인국으로 부르는 셈이다.[4] 1인당 GDP는 산유국 가봉 같이 더 높은 나라도 몇몇 있었지만 이들 나라들은 인구가 적었기 때문에 전체적인 경제력은 코트디부아르가 더 컸다.[5] 이미 한국보다 1년 앞선 1969년부터 100m 높이의 마천루가 들어섰을 정도였다.[6] 실제로 절정기 당시 코트디부아르의 1인당 GDP는 약 1,200불 이상이었는데, 이는 대한민국의 1,700불과 비슷한 수준이다. 물론 작물 재배로는 한계가 있었을테니 실제로는 오늘날 말레이시아 정도의 10,000 ~ 15,000불 사이였다.[7] 2006 FIFA 월드컵 독일[8] 물론 이것이 드록바 혼자의 힘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드록바의 호소가 국제적인 관심을 끌고 코트디부아르 내에서도 내전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9] 전쟁 당사자들이 서로 학살을 저지르는 상황은 시리아 내전, 유고슬라비아 내전, 남수단 내전, 앙골라 내전, 콩고 전쟁, 우크라이나 내전,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을 비롯한 중동-아프리카, 동유럽 지역 분쟁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다.[10] 최빈국을 탈출해서 개발도상국 정도의 지위는 차지한 것으로 보인다.[11] 아이러니하게도 가나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늦은 것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캄보디아(1986)를 제외하면 가장 늦은 1985년에야 컬러 방송을 시작했다.[12] 어느 정도냐면, 한국이 처음으로 1000달러를 넘긴 게 그로부터 1년 전인 1977년이고, 현 시점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부국인 보츠와나가 처음으로 1000달러를 넘긴 게 그로부터 2년 후인 1980년이다.[13] 1978년 기준 2037달러[14] 이것도 한국, 보츠와나는 1976년/1987년 처음 달성했다.[15] 물론 1979년에는 그보다 낮은 수준으로 추락했다.[16] 수치가 높을수록 언론 자유가 있는 국가다. 언론 자유 최상은 100점, 언론 자유 최악은 0점이고 2013년 이전 자료는 수치가 넘어가는 것도 존재한다.[17] 출처는 프랑스어 위키백과[18] 마찬가지로 소국의 국가라서 그런지 관련 정보가 적다는 것이 특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