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키 이치로 관련 틀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스즈키 이치로의 수상 경력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NPB 일본시리즈 우승반지 |
1996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c7bc69 우승반지}}} | |
2006 | 2009 |
2006 WBC ALL-WORLD TEAM AWARD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OF | OF | O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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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B | P | 1B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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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bordercolor=#3fb1e5> | 퍼시픽 리그 역대 최우수선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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벳토 카오루 마이니치 / 외야수 | 야마모토 카즈토 난카이 / 내야수 | 유키 스스무 난카이 / 투수 | 오카모토 이사미 난카이 / 내야수 | 오오시타 히로시 니시테츠 / 외야수 | |
<rowcolor=#fff> 1955 | 1956 | 1957 | 1958 | 1959 | |
이이다 토쿠지 난카이 / 외야수 | 나카니시 후토시 니시테츠 / 내야수 | 이나오 카즈히사 니시테츠 / 투수 | 스기우라 타다시 난카이 / 외야수 | ||
<rowcolor=#fff> 1960 | 1961 | 1962 | 1963 | 1964 | |
야마우치 카즈히로 마이니치 / 투수 | 노무라 카츠야 난카이 / 포수 | 장훈 토에이 / 외야수 | 노무라 카츠야 난카이 / 포수 | 조 스탠카 난카이 / 투수 | |
<rowcolor=#fff> 1965 | 1966 | 1967 | 1968 | 1969 | |
노무라 카츠야 난카이 / 포수 | 아다치 미츠히로 한큐 / 투수 | 요네다 테츠야 한큐 / 투수 | 나가이케 아츠시 한큐 / 외야수 | ||
<rowcolor=#fff> 1970 | 1971 | 1972 | 1973 | 1974 | |
키타루 마사아키 롯데 / 투수 | 나가이케 아츠시 한큐 / 외야수 | 후쿠모토 유타카 한큐 / 외야수 | 노무라 카츠야 난카이 / 포수 | 카네다 토메히로 롯데 / 외야수 | |
<rowcolor=#fff> 1975 | 1976 | 1977 | 1978 | 1979 | |
카토 히데지 한큐 / 내야수 | 야마다 히사시 한큐 / 투수 | 찰리 매뉴얼 킨테츠 / 외야수 | |||
<rowcolor=#fff> 1980 | 1981 | 1982 | 1983 | 1984 | |
키다 이사무 닛폰햄 / 투수 | 에나츠 유타카 닛폰햄 / 투수 | 오치아이 히로미츠 롯데 / 내야수 | 히가시오 오사무 세이부 / 투수 | 부머 웰즈 한큐 / 내야수 | |
<rowcolor=#fff> 1985 | 1986 | 1987 | 1988 | 1989 | |
오치아이 히로미츠 롯데 / 내야수 | 이시게 히로미치 세이부 / 내야수 | 히가시오 오사무 세이부 / 투수 | 카도타 히로미츠 난카이 / 외야수 | 랄프 브라이언트 킨테츠 / 외야수 | |
<rowcolor=#fff> 1990 | 1991 | 1992 | 1993 | 1994 | |
노모 히데오 킨테츠 / 투수 | 궈타이위안 세이부 / 투수 | 이시이 타케히로 세이부 / 투수 | 쿠도 키미야스 세이부 / 투수 | 이치로 오릭스 / 외야수 | |
<rowcolor=#fff> 1995 | 1996 | 1997 | 1998 | 1999 | |
이치로 오릭스 / 외야수 | 니시구치 후미야 세이부 / 투수 | 마츠이 카즈오 세이부 / 내야수 | 쿠도 키미야스 다이에 / 투수 | ||
<rowcolor=#fff> 2000 | 2001 | 2002 | 2003 | 2004 | |
마츠나카 노부히코 다이에 / 외야수 | 터피 로즈 킨테츠 / 외야수 | 알렉스 카브레라 세이부 / 내야수 | 조지마 켄지 다이에 / 포수 | 마츠나카 노부히코 다이에 / 외야수 | |
<rowcolor=#fff> 2005 | 2006 | 2007 | 2008 | 2009 | |
스기우치 토시야 소프트뱅크 / 투수 |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닛폰햄 / 내야수 | 다르빗슈 유 닛폰햄 / 투수 | 이와쿠마 히사시 라쿠텐 / 투수 | 다르빗슈 유 소프닛폰햄 / 투수 | |
<rowcolor=#fff> 2010 | 2011 | 2012 | 2013 | 2014 | |
와다 츠요시 소프트뱅크 / 투수 | 우치카와 세이이치 소프트뱅크 / 외야수 | 요시카와 미츠오 닛폰햄 / 투수 | 다나카 마사히로 라쿠텐 / 투수 | 카네코 치히로 오릭스 / 투수 | |
<rowcolor=#fff> 2015 | 2016 | 2017 | 2018 | 2019 | |
야나기타 유키 소프트뱅크 / 외야수 | 오타니 쇼헤이 닛폰햄 / 투수, 외야수 | 데니스 사파테 소프트뱅크 / 투수 | 야마카와 호타카 세이부 / 내야수 | 모리 토모야 세이부 / 포수 | |
<rowcolor=#fff> 2020 | 2021 | 2022 | 2023 | 2024 | |
야나기타 유키 소프트뱅크 / 외야수 | 야마모토 요시노부 오릭스 / 투수 | 콘도 켄스케 소프트뱅크 / 외야수 | }}}}}}}}}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91db><tablebgcolor=#0091db> | 일본프로야구 역대 외야수 베스트나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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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fff> 1940 | 1947 | 1948 | 1949 | |||
키토 카즈오 라이온군 야마다 덴 한큐군 나카지마 하루야스 도쿄교진군 | 오오시타 히로시 토큐 카네다 마사야스 오사카 츠보우치 미치노리 킨세이 | 아오타 노보루 요미우리 벳토 카오루 오사카 츠보우치 미치노리 킨세이 | 코즈루 마코토 다이에이 카네다 마사야스 오사카 오오시타 히로시 토큐 |
}}}}}}}}}}}} ||
1994~2000년 일본프로야구 퍼시픽 리그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 |
1994~2000년 퍼시픽 리그 수위타자 |
1995년 퍼시픽 리그 최다 타점 |
1995년 퍼시픽 리그 최다 도루 |
1994~1996, 1999, 2000년 퍼시픽 리그 최고 출루율 |
1994~1998년 퍼시픽 리그 최다 안타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 | |||||||||
2001 | 2002 | 2003 | 2004 | 2005 | 2006 | 2007 | 2008 | 2009 | 2010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bordercolor=#0c2c56> | 시애틀 매리너스 명예의 전당 | }}}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앨빈 데이비스 | 데이브 니하우스 | 제이 뷰너 | 에드가 마르티네즈 | 랜디 존슨 |
댄 윌슨 | 켄 그리피 주니어 | 루 피넬라 | 제이미 모이어 | 스즈키 이치로 | |
펠릭스 에르난데스 |
Mariners Hall of Fame 시애틀 매리너스 명예의 전당 헌액자 | |
스즈키 이치로 鈴木一朗 | Ichiro Suzuki | |
<colbgcolor=#fff> 헌액 연도 | 2022년 |
헌액 순번 | 10번째 |
포지션 | RF |
소속년도 | 2001~2012, 2018~2019 |
2001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MVP | ||||
제이슨 지암비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 → |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 → | 미겔 테하다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
2001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신인왕 | ||||
사사키 가즈히로 (시애틀 매리너스) | → |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 → | 에릭 힌스키 (토론토 블루제이스) |
마이클 영 (텍사스 레인저스) | → |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 → | J.D. 드류 (보스턴 레드삭스) |
2001~2010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외야수 부문 골드 글러브 | ||||
저메인 다이 (캔자스시티 로열스) | → |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 → | 닉 마카키스 (볼티모어 오리올스) |
초대 수상자 | → |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 → | 알렉스 리오스 (토론토 블루제이스) |
프랭클린 구티에레즈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 → |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 → | 저스틴 업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
2001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타격왕 | ||||
노마 가르시아파라 (보스턴 레드삭스) | → |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 → | 매니 라미레즈 (보스턴 레드삭스) |
2004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타격왕 | ||||
빌 밀러 (보스턴 레드삭스) | → |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 → | 마이클 영 (텍사스 레인저스) |
2001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안타왕 | ||||
대린 어스태드 (애너하임 에인절스) | → |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 → | 알폰소 소리아노 (뉴욕 양키스) |
2004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안타왕 | ||||
버논 웰스 (토론토 블루제이스) | → |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 → | 마이클 영 (텍사스 레인저스) |
2006~2007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안타왕 | ||||
마이클 영 (텍사스 레인저스) | → |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 → |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더스틴 페드로이아 (보스턴 레드삭스) |
2008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안타왕 | ||||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 → |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더스틴 페드로이아 (보스턴 레드삭스) | → |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
2009~2010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안타왕 | ||||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더스틴 페드로이아 (보스턴 레드삭스) | → |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 → | 아드리안 곤잘레스 (보스턴 레드삭스) 마이클 영 (텍사스 레인저스) |
2001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도루왕 | ||||
조니 데이먼 (캔자스시티 로열스) | → |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 → | 알폰소 소리아노 (뉴욕 양키스) |
로저 클레멘스 (2004) | → | 스즈키 이치로 | → | 로베르토 클레멘테 (2006) |
스즈키 이치로의 보유 기록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MLB 보유 기록[1] | |
데뷔 시즌 최다 안타 | 242안타[2] | |
한 시즌 최다 안타 | 262안타[3] | |
최다 연속 시즌 200안타 | 10시즌[4] | |
통산 최다 시즌 200안타 | 10회[5] |
NPB 보유 기록[6] | |
최다 수위타자 | 7회[7] |
1경기 최다 2루타 | 4개 |
연속 경기 출루 | 69경기 |
연속 타석 무삼진 | 216타석 |
스즈키 이치로의 역대 등번호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오릭스 블루웨이브 등번호 51번 | ||||
야기 마사요시 (1988~1991) | → | 이치로 (1992~2000) | → | 준영구결번[8] | |
시애틀 매리너스 등번호 51번 | |||||
랜디 존슨 (1989~1998) | → | 스즈키 이치로 (2001~2012) | → | 결번 | |
뉴욕 양키스 등번호 31번 | |||||
하비에르 바스케스 (2010) | → | 스즈키 이치로 (2012~2014) | → | 그레고리오 페팃 (2015) | |
마이애미 말린스 등번호 51번 | |||||
데릭 디트릭 (2013) | → | 스즈키 이치로 (2015~2017) | → | 벤 마이어 (2018) | |
시애틀 매리너스 등번호 51번 | |||||
결번 | → | 스즈키 이치로 (2018~2019) | → | 결번 |
}}} ||
<colbgcolor=#0c2c56> 시애틀 매리너스 인스트럭터 | |
스즈키 이치로 鈴木一朗[9] | Ichiro Suzuki | |
출생 | 1973년 10월 22일 ([age(1973-10-22)]세) |
아이치현 니시카스가이군 토요야마정 |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아이치공업대학 메이덴 고교[10] |
신체 | 180cm, 77kg, B형 |
포지션 | 우익수[11] |
투타 | 우투좌타 |
프로 입단 | 1991년 드래프트 4라운드 (오릭스) |
소속팀 | 오릭스 블루웨이브 (1992~2000) 시애틀 매리너스 (2001~2012) 뉴욕 양키스 (2012~2014) 마이애미 말린스 (2015~2017) 시애틀 매리너스 (2018~2019) |
프런트 | 시애틀 매리너스 구단 특별 보좌관 (2018~)[12] |
지도자 | 타코마 레이니어스 타격코치 (2019) 시애틀 매리너스 인스트럭터 (2021~) |
국가대표 |
|
응원가 | I'm A Yankee Doodle Dandy[13][14] |
가족 | 형 스즈키 카즈야스, 아내 후쿠시마 유미코(1999년 ~ 현재) |
[clearfix]
1. 개요
노력하지 않고 무언가를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천재라고 한다면, 저는 절대 천재가 아닙니다. 하지만 피나는 노력 끝에 뭔가를 이루는 사람이 천재라고 한다면, 저는 천재가 맞습니다.
천재의 손끝에는 노력이라는 핏방울이 묻어 있기 마련입니다. 제가 일본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일본에서) 저보다 많이 연습한 선수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단 한 번도 저 자신과 맺은 약속을 어긴 적이 없습니다.
스즈키 이치로. "스스로를 천재라고 생각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일본의 전 야구 선수. 성보다는 일본 활동 당시 등록명이었던 '이치로(イチロー)'로 널리 알려져 있다.[15]천재의 손끝에는 노력이라는 핏방울이 묻어 있기 마련입니다. 제가 일본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일본에서) 저보다 많이 연습한 선수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단 한 번도 저 자신과 맺은 약속을 어긴 적이 없습니다.
스즈키 이치로. "스스로를 천재라고 생각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1991년 일본프로야구의 오릭스 블루웨이브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해 9시즌 동안 NPB를 초토화시킨 뒤, 2001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의 시애틀 매리너스로 이적하여 한 시즌 최다 안타[16]를 위시한 수많은 대기록들을 써내려갔으며 아울러 MLB 역사상 최초로 3000안타-500도루-골드 글러브 10회 수상[17]을 달성한 선수이기도 하다.[18] MLB 단일 시즌 안타 기록에 이치로가 2004년이 1위, 2001년이 10위에 등극되어 있다.[19] 또한 세계 프로야구 역대 최다 안타 기록도 가지고 있다.[20] 2022년 8월 시애틀 매리너스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은퇴 5년 후 시점이 되는 2025년에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투표에 입후보 자격을 얻게 되며, 성적과 MLB 한 시즌 최다 안타 기록 갱신으로 따졌을 때는 첫 턴 입성이 거의 확정적[21]이라 역대 최초의 아시아 출신 MLB 명예의 전당 입성 선수가 될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면 시애틀 매리너스의 영구 결번 조건[22]을 충족하므로 MLB 최초의 아시아 출신 영구결번 선수가 될 것이다.[23]
2. 선수 경력
스즈키 이치로의 선수 경력 | ||||||
통합 선수 경력: 스즈키 이치로/선수 경력 | ||||||
아마추어 시절 | 1992~2000년 | |||||
2001년 | 2002년 | 2003년 | 2004년 | |||
2005년 | 2006년 | 2007년 | 2008년 | |||
2009년 | 2010년 | 2011년 | 12 SEA | 12 NYY | ||
2013년 | 2014년 | 2015년 | 2016년 | |||
2017년 | 2018년 | 2019년 | 은퇴 | |||
2006 WBC | 2009 WBC |
3. 은퇴 후 경력
2019년 현역 은퇴 이후 회장 특별보좌라는 직함은 일단 가지고 있었는데, 코로나로 2020년은 아무것도 못하고 놀았고 2021년에는 시애틀 매리너스 회장 특별보좌 겸 인스트럭터로서 다시 시애틀 매리너스에 복귀함으로 장래는 프런트 쪽이 아니냐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2022년 일본시리즈 오릭스 버팔로즈의 우승을 축하하였다.
4. 평가
자세한 내용은 스즈키 이치로/평가 문서 참고하십시오.5. 명예의 전당 입성 여부
메이저리그 3000안타 달성, 단일 시즌 최다 안타, 10년 연속 200안타 및 골드 글러브 10회 수상, 신인왕 및 MVP 등의 커리어를 보유하고 있다. 때문에 알버트 푸홀스, CC 사바시아, 미겔 카브레라 등과 함께 명예의 전당 첫 턴 입성이 확실시된다. 다만 만장일치로 입성할지 귀추가 주목 될 뿐.첫 후보 등재는 2025년에 예정되어 있다. 입성에 성공할 경우 아시아인 최초의 명예의 전당 입성자가 되며 쓰고 가게 될 모자는 전성기를 보낸 시애틀 매리너스일 것으로 보인다. 등번호인 51번은 현재까지 시애틀에서 결번이며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시 영구 결번이 유력하다.[24]
5.1.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블랙잉크 | 그레이잉크 | HOF 모니터 | HOF 스탠다드 | |
스즈키 이치로 | 43 | 142 | 235 | 44 |
HOF 입성자 평균 | 27 | 144 | 100 | 50 |
- JAWS - Right Field (17th)
career WAR | 7yr-peak WAR | JAWS | |
스즈키 이치로 | 60 | 43.7 | 51.9 |
우익수 HOF 입성자 평균 | 71.1 | 42.4 | 56.7 |
6. 독특한 타격 매커니즘[25]
일단 위의 영상을 반드시 볼 것.
타격 매커니즘이 상당히 특이하다. 물론 각자에게 맞는 타격 매커니즘이 있기 마련이고 그렇기에 특이한 매커니즘이 당연히 있을 수 있지만 이치로의 매커니즘은 그 중에서도 상당히 특이한 편으로 꼽힌다. 야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대개 타격 시에 간결한 스윙을 가져가길 당부하고 퍼져나오는 스윙을 지양하라고 하지만 이치로는 특이하게도 퍼져나오는 스윙을 하고 있다. 즉, 이치로의 타격 이론은 기존의 타격 이론을 완전히 반(反)하는 이론인 것.
위 영상에서도 보이듯이 이치로는 그립 위치를 뒤에 남겨놓는 것이 좋다고 했는데 이렇게 되면 히팅 포인트를 다양하게 가져갈 수 있긴 하지만 스윙이 퍼져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면 당연히 배트 스피드가 느려질 수밖에 없고 특히 사회인 야구인 같이 근력이 기본적으로 낮은 사람이라면 공을 맞히더라도 배트가 밀려 땅볼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이치로가 이런 스윙으로 메이저리그에서 3000안타를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말 그대로 피나는 노력과 선천적으로 타고난 손목 힘에 기반한 것이다.
이러한 타격 스타일 때문에 하나의 그만의 타격 지론이 있는데 바로 "상대 투수의 가장 느린 볼을 노리고 속구에 대응하는 점이다" 이유는 어떤 리스크에도 대응할 수 있는 타격법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선 선수들마다 상대법이 다르긴 하지만 일반적인 접근법과는 반대이다. 일반적인 경우 느린 볼을 기다리다가 치면 갑작스러운 속구에 손도 못 쓰고 당해버리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2015년 216안타를 기록한 아키야마 쇼고한테 이치로 스타일에 대해서 물어봤더니 "기본적으로 속구를 기다리고 변화구에 대응하는 게 이상적이지 않을까요? 변화구를 기다리다 치면 전 변화구밖에 못 칠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그럼에도 이치로는 상대의 브레이킹 볼에 중점을 맞춘다.[26] 그리고 속구는 그의 타격 지론대로 그립위치를 남겨서 타이밍을 맞추는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헛스윙 비율이 급감한다고 본인은 생각한다고 한다. 본인이 인터뷰에서 밝히기를 "속구를 노리면 좋은 체인지업이나 스플리터에 손도 못쓰고 당해버리기 때문이다"라는 대답을 했다.
그래서 PD가 "만약에 공이 너무 빨라서 대응 못하면 어떻게 합니까?"라고 하자 이치로는 "스트라이크 존을 지나간다면 못 치는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 컨디션이 나쁘면 못 치겠지만 노멀(컨디션이 정상)이라면 속구에 못 쫓아간 적은 거의 없습니다. (그립을 뒤로 남기기 때문에)아무리 빨라도 아슬아슬하게 파울로 만들 수 있습니다."
또한 일반적인 단타형 타자들이 보통 배트를 짧게 잡아 컨택에 더더욱 힘을 실어주는 반면 이치로는 특이하게도 슬러거 유형의 타자들처럼 배트의 노브 부분에 새끼 손가락을 걸쳐서 잡는다. 다른 단타 유형의 타자들과는 매우 차별화된 부분이었다.
다만 이렇게 변화구를 노려서 때리는 슬랩히터 유형의 선수가 구위와 구속이 전부 급상승한 그 반작용으로 타자들이 풀히팅으로 배럴을 양산해서 맞부딪히는 현 메이저 판도에서는 통하기 많이 힘든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즉, 이치로가 2011년부터 내리막을 빨리 타게 된 이유엔 단순히 본인의 노쇠화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타격론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정도로 투수 풀이 급격하게 좋아진 것도 한 몫 한다. 하지만 사실 당시 이치로는 일반적으로는 거의 은퇴에 가까운 만 38세였기 때문에 언제 급격하게 하향세를 타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긴 했다. 구속의 증가는 매년 점진적으로 이루어져왔는데 11년의 하향세는 갑작스러웠던데다가 이후로도 3년 정도는 약간 반등에 성공했다.
7. 수상 내역
7.1. MLB
스즈키 이치로의 MLB 수상 경력 |
아메리칸 리그 MVP (2001) 아메리칸 리그 신인왕 (2001) 올스타 10회 (2001~2010) 올스타전 MVP (2007) 아메리칸 리그 외야수 골드 글러브 10회 (2001~2010) 아메리칸 리그 외야수 실버 슬러거 3회 (2001, 2007, 2009) 아메리칸 리그 타격왕 2회 (2001, 2004) 아메리칸 리그 도루왕 (2001) 아메리칸 리그 최다안타 7회 (2001, 2004, 2006~2010) MLB 커미셔너 역사적 공로상 (2005) |
8.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한민국의 야구 경기 중계 방송에서 선수들의 이름이 나올 때 다른 일본 선수들은 후쿠도메, 조지마처럼 성만 나오는데 비해 스즈키 이치로만 이치로라고 이름만 나오는데, 등록명 자체를 이치로로 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스즈키라는 성이 워낙에 흔하기 때문에 오기 아키라 감독이 특이하게 이름을 등록명으로 하길 권했고 이걸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도 그대로 썼다. 물론 이치로라는 이름도 매우 흔하다.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을 상대로 명성에 걸맞지 않는 부진한(?) 모습을 보여 많은 한국인에게 그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는 입치로, 입치료 등으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한일전에서는 땅볼만 친 것[27][28][29]으로 봐서 '츤데레가 아니냐'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여담으로 이치로의 망언은 일본 대표팀에게 매우 큰 디버프로 작용한다는 특징이 있다.(30년 망언 후의 WBC 1회 대회에서 2연패 등)
앞으로 30년 동안 일본 야구를 이기지 못하게 해주겠다.
2006 WBC 지역예선 중에 나온 말이다. 사실 이치로가 한 인터뷰 전문은 다음과 같다.ただ勝つだけじゃなく、すごいと思わせたい。戦った相手が “向こう30年は日本に手は出せないな” という感じで勝ちたいと思う。
단순히 이기는 게 아니라 엄청나다는 생각이 들게 해주고 싶다. 대결한 상대가 "앞으로 30년은 일본의 상대가 안 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기고 싶다.
사실 저 발언은 딱히 한국을 대놓고 비하한 것은 아니고 "우리 일본은 이렇게 강하다." 정도로 가벼운 도발성 멘트를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일본인들은 상대방이 실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내릴 때 "너희들이 우리에게 도전하려면 몇 년은 이르다." 같은 표현을 일종의 관용어처럼 사용한다. 한국에서 비슷한 표현 중에 "너 같은건 한 손가락만 쓰고도 이겨" 같은 표현이 진짜 손가락만으로 상대하겠다는 뜻이 아니고 "아이고, 죽겠다"처럼 힘들다는 표현이 진짜로 죽는다는 뜻이 아닌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이 말이 한국의 언론을 거치는 과정에서 그 뉘앙스가 왜곡되면서 "30년 동안 한국 야구가 일본을 이기지 못하게 해주겠다."라는 식으로 와전된 것이다. 그리고 김병현은 이치로의 말을 듣고 "그냥 만화를 많이 봐서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은데..."라고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게다가 "나도 일본 만화 재미있어서 많이 본다"라는 농담은 덤이었다.정작 이치로 본인은 이 발언을 한 것에 대해 계속 마음이 걸렸는지, 2012년에 오릭스 버팔로즈에 입단한 이대호한테 인사를 하면서 "한국 팬들이 나를 안 좋아할 것 같다. 아직도 나를 미워하지 않느냐?"라고 질문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대호는 깜짝 놀라서 어떻게 대답을 할지 고민하다가 "승부의 세계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한국인들도 이해해 주실 것이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이치로는 기분 좋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30] 그리고 그 대가로 배영수에게 아주 혼쭐이 났다.[31][32][33]단순히 이기는 게 아니라 엄청나다는 생각이 들게 해주고 싶다. 대결한 상대가 "앞으로 30년은 일본의 상대가 안 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기고 싶다.
한국을 이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WBC 1회 대회 준결승에서 일본과 한국의 3차전이 성사되자 이치로가 한 말. 한국 대표팀 감독이었던 김인식은 저 말을 듣고 "인생에서 강하게 나가다 보면 자기가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가 많더라"라며 응수했다. 그리고 그 준결승은 우에하라 고지의 호투를 앞세운 일본이 6:0으로 승리, 그대로 일본이 2006 WBC 우승을 차지했다.
WBC 1회 대회 준결승에서 일본과 한국의 3차전이 성사되자 이치로가 한 말. 한국 대표팀 감독이었던 김인식은 저 말을 듣고 "인생에서 강하게 나가다 보면 자기가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가 많더라"라며 응수했다. 그리고 그 준결승은 우에하라 고지의 호투를 앞세운 일본이 6:0으로 승리, 그대로 일본이 2006 WBC 우승을 차지했다.
없어. 그런 거 없어.
2009 WBC 2라운드 한국전을 앞두고. '한국과 함께 아시아 야구 수준을 높여갈 의식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 실제로 그리 답변한지는 알 수 없지만 보도된 바로는 상당히 비아냥거리는 말투(ね~よ)다. 하지만 이 발언은 박동희 기자의 취재에 따르면 현장에 있던 기자들 중 아무도 이 말을 들은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그냥 이 기사를 올린 산케이 신문 기자의 날조라고 밝혀졌다.
WBC 2회 대회 2라운드 한국과의 경기에서 봉중근의 견제 모션에 슬라이딩을 하는 걸 보고 아래의 망언 논란, 당시 한일전 해설 특유의 반일 감정 등이 겹쳐 '원숭이 조련', '이치로의 굴욕' 등으로 조롱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렇게 귀루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플레이다.[35] 오히려 투수가 빠르게 견제 모션을 취하는데 신경쓰지 않거나 설렁설렁 귀루하는 게 안일하고 잘못된 플레이다. 실제로 이치로를 보나 한국 선수들을 보나 웃음기 없이 담담한 걸 볼 수 있다.(관련 자료2009 WBC 2라운드 한국전을 앞두고. '한국과 함께 아시아 야구 수준을 높여갈 의식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 실제로 그리 답변한지는 알 수 없지만 보도된 바로는 상당히 비아냥거리는 말투(ね~よ)다. 하지만 이 발언은 박동희 기자의 취재에 따르면 현장에 있던 기자들 중 아무도 이 말을 들은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그냥 이 기사를 올린 산케이 신문 기자의 날조라고 밝혀졌다.
봉중근의 공은 정말 치기 어렵다고 인정하기도 했다.[36] 실제로 이치로는 2009 WBC에서 봉중근을 상대로 9타수 1안타를 기록하며 매우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37] 하지만 2009 WBC 결승 연장 10회에서 임창용을 상대로 결승 2타점 2루타를 때려내며 일본의 우승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8.1. 그 외 망언 논란과 실상
위와 같은 인터뷰들이 이어지면서 이치로 = 망언 제조기라는 공식이 따라 붙게 되었다. 그 때문에 이후에 인터뷰가 왜곡되어 전해지는 경우가 있다. 말하자면 이치로가 망언을 안 했는데 언론이 했다고 하는 사례들이다.대표적인 사례로 2013년 6월 20일 "류현진의 공을 눈감고 홈런쳤다." 라고 했다는 기사가 떴는데 이건 전형적인 왜곡 기사다. 우선 산케이스포츠와의 인터뷰를 보자.
「(七回、左前に2点適時打)何もアイデアはなかった。振ったら?たった。(狙い打ったように見えたのは)普段の僕がそう見せているということ。(八回の好捕は)?後ろの打球だったので難しかった。点差があったので(積極的に)いってみようと。そしたらうまく入ったという感じ」
(7회 좌전 2타점 적시타) 아무 생각없이 휘둘렀는데 맞았다. (노려친 것처럼 보인 것은) 평소의 내가 그렇게 보인다는 것. (8회의 호수비는) 바로 뒤로 날아가는 타구여서 어려웠다. 점수차가 있었기 때문에 포구를 적극적으로 가져갔고 그 결과 잘 들어간 느낌.
이다. 여기에선 어디에도 눈을 감고 쳤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데, 기자가 떡밥을 문 "눈을 감았다"라는 표현은 MLB와의 인터뷰에서 등장한다.(7회 좌전 2타점 적시타) 아무 생각없이 휘둘렀는데 맞았다. (노려친 것처럼 보인 것은) 평소의 내가 그렇게 보인다는 것. (8회의 호수비는) 바로 뒤로 날아가는 타구여서 어려웠다. 점수차가 있었기 때문에 포구를 적극적으로 가져갔고 그 결과 잘 들어간 느낌.
"I haven't changed anything," Suzuki said through a translator. "I haven't done anything different. To be honest, I just closed my eyes and swung."
"바꾼 것 없다". 이치로가 통역사를 통해 말했다. "난 달리 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냥 눈을 질끈 감고 스윙했을 뿐이다.'"원문 출처
하지만 여기서 "closed my eyes"는 표현상 "운에 맡기고 혹은 마음을 비우고" 정도의 뜻이다.[38] 눈을 감고 칠 정도로 쉬웠다는 뜻이 아니라, 치기 힘들 것 같아서 '눈 딱 감고' 스윙했는데 운이 좋아서 칠 수 있었다는 워딩으로 보는 것이 맞다. 오히려 인터뷰 내용은 국내 기자들이 쓴 내용과는 전혀 다른 것. "바꾼 것 없다". 이치로가 통역사를 통해 말했다. "난 달리 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냥 눈을 질끈 감고 스윙했을 뿐이다.'"원문 출처
이치로 망언 논란의 시작은 97년 마늘냄새 발언이다. 1997년 10월 31일 인터콘티넨탈 호텔의 한·일 골든시리즈 기자회견에서 양군의 감독 4명(천보성, 김재박, 오오기, 호시노)과 선동열, 이치로, 야마모토, 이종범, 이상훈, 김동수 등이 참여한 기자회견 자리에서 기자가 한국에 대한 인상을 물어보자, "공항에 내리자 마늘 냄새가 진동했다."고 대답한 것이 그 시초이며, 거기에 덧붙인 발언이 "금년('97) 올스타전 때의 일입니다. 선동열 선배와 대결을 하였는데, 마운드에서 뿜어대는 선 선배의 마늘 냄새는 타석에 있는 나를 혼수상태에 빠지게 하여 볼카운트를 잃어버릴 정도였어요."라고 말하였다. 이에 당시 통역을 맡았던 조희준 씨는 "이치로가 농담을 할 의도였다는 부분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는 의사를 몇 차례 밝힌 적이 있다. 기사 일본에선 '~~냄새가 난다'가 장난으로 많이 쓰이는 관용구이기도 하지만 이는 한국인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을 하지 않은 경솔한 발언이고, 마늘 냄새 발언은 혐한들이 한국인을 비하하는 소재로 사용하는 경우도 빈번한 만큼 이는 큰 실수였다.
정리하자면 예전에 무심코 실언을 내뱉은 것은 사실이고, 이후에 그 일 때문에 까이는 것도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별개로 미쉐린 쓰리스타 쉐프 안성재가 일식당을 그만두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는데, 유명 일식당에서 일하던 그의 앞에서 "한국팀 에 져서 기분이 너무 나쁘다. 한국팀을 죽여버리겠다."라고 이치로가 욕설을 했는데, 이때 기모노를 입고 나막신을 신은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자신만의 가게를 만드는 계기가 된다.
9. 여담
-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일본에서는 イチロー, 미국에서는 ICHIRO 라는 등록명으로 선수 생활을 하였고, 실제로도 그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리고 '스즈키'라는 성과 '이치로'라는 이름은 둘 다 일본에서 흔하기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흔한 성과 흔한 이름이다. 원래 一朗라는 이름은 일본에서 자식을 많이 낳던 시절에 첫째는 이치로, 둘째는 지로(次郎), 셋째는 사부로(三郎), 넷째는 시로(四郎), 다섯째는 고로(五郎) 같은 식으로 짓던 이름이라 장남을 뜻하는 이름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일본 형제의 명명과는 달리 스즈키 형제는 한 일(一)자를 돌림자처럼 쓰는 형제라서 장남은 형 스즈키 카즈야스(鈴木 一泰)고 이치로는 차남이다. 형 카즈야스는 기업 상표나 로고, 캐릭터 등을 만드는 디자이너다. 이치로의 트레이닝복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 이치로는 1999년 TBS 아나운서였던 8살 연상 후쿠시마 유미코와 결혼했다. 유미코는 게이오기주쿠대학을 졸업한 인재이며, 유창한 영어로 이치로의 빅리그 진출을 도왔다. 슬하에 자녀는 없다.
- 한국인 메이저리거 상대로 매우 강했는데 박찬호와의 상대전적은 35타석 .387/.457/.484이며 류현진과의 상대전적은 4타석 .667/.667/1.667이다.[41] 박찬호는 이치로에게 3타수 3안타를 얻어맞고 화풀이로 머리에 빈볼을 던져버렸을 정도.
- 반면에 라이언 보겔송은 이치로의 천적이다. 상대전적이 18타수 2볼넷 1 희생플라이 무안타로 이치로가 상대한 10타석 이상 투수 중 유일하게 안타를 치지 못했다.
* 시애틀의 ABC 가맹 지역방송사인 KOMO-TV의 Komo News 4 건물에는 이치로의 타격 사진이 크게 새겨져 있으며 시애틀 시내의 명물 중 하나로 알려져있어 관광객도 많이 찾는다. 이외에도 시애틀 곳곳에 이치로의 사진이 붙어있는데가 있다.
- 그의 등번호 51번은 사실 투수들이 많이 쓰는 번호. 그런데 오릭스 블루웨이브 시절 감독이었던 오기 아키라가 이치로의 컨택 능력과 빠른 발을 보고 반하여 이치로를 응원할 때 'Go いち'라는 말을 주로 했는데 이후 5는 일본어로 고(ご), 그리고 1은 이치(いち)라는 말에서 그의 등번호가 유래됐다. 또는 이치로가 신인 시절 동경했던 타자인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마에다 토모노리의 등번호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도 있다.올스타전에서 마에다를 만난 이치로의 모습[42] 한편 한국에서는 이치로를 평생의 롤 모델로 삼고 있는 이정후가 51번을 달고 있다.
- 시애틀의 홈구장인 세이프코 필드에서는 그의 이름을 딴 '이치롤'이라는 스시가 잘 팔린다고 한다.
- 성격은 일본 내에서조차 전부터 말이 많다. 일단 이미지와는 달리 절대 과묵한 남자가 아니다. 선수이면서 파벌을 만들려 한다든가 대표팀 내에서도 독불장군이라 선수들 사이에서도 평은 안 좋은 편.[43] 심지어는 감독조차 제어하지 못할 수준이라고. 한국에선 일본팀의 리더 정도로 인식하지만 리더로서의 자질은 같은 일본 선수들조차도 평가가 제각각. 워낙에 인기가 많아 묻히곤 하지만 일본 야구팬들 사이에선 오히려 자주 까이는 선수다. 하지만 연이은 WBC 참가와 애국심을 고취하는 듯한 발언, 그리고 2009년 WBC의 활약으로 인해 안티는 많이 줄어든 상태.
- 이치로는 메이저리그 데뷔후 고작 10번째 타석에서 중전안타로 타율 3할을 넘겼고 그후 메이저리그 통산 타율이 3할밑으로 떨어져본 적이 없다.
-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때마다 올스타전 당일 같이 소집된 올스타전 선수들을 모아 놓고 일장 연설을 한다고 한다. 평소 언론에 등장할 때면 말실수를 줄이기 위해 무조건 일본어-영어 통역을 대동하지만 이날만큼은 기자들도 보는 자리에서 거침없는 영어로 상대팀인 내셔널리그를 비하하는 욕설과 저주를 퍼붓는다. 2001년부터 시작한 그의 스피치 덕인지 AL은 이후 7년간 올스타전에서 NL에게 7년 연속 올스타전 무패 (6승 1무)를 기록했다. 이젠 올스타전에 모이는 선수들도 하나의 독특한 "의식"으로 여기며 즐기는 수준. 또한 카를로스 페냐, 미겔 카브레라 등 히스패닉계 1루수들에 따르면 못 알아들을 줄 알고 스페인어로 뭐라 했더니 영어로 표현도 못할 스페인어 욕설이 돌아왔다는 등의 흉흉한 소문[44]이 전해지는등 흔히 영어를 못해서 통역 쓴다고 하는 오해와 달리 상당한 외국어 내공을 갖고 있다. 한 번 이치로의 영어실력을 감상해보자기자: "가장 좋아하는 미국 속담이 뭐죠?"이치로: "음... '캔자스 시티의 8월은... 면양말 안의 쥐새끼 두마리보다도 더 씨X스럽게 덥다.'" (August in Kansas City... it, it, it's hotter than two rats in a fucking wool sock).[45]기자 & 촬영장 스태프: (모두 경악을 하며 미친듯이 웃는다)이치로: "짓궂은 팀동료가 가르쳐 줬죠. ㅎㅎ"
- ESPN의 토드 그리섬은 이치로의 3000안타 달성 기자회견 후 트위터에 “이치로의 3000안타는 놀라운 일이지만. 근데 왜 이치로는 15년 간 미국에서 야구를 하면서 영어를 배울 의지가 없었는가? 나에게는 그것이 놀랍다.”라는 것을 썼다. 그리섬의 발언에 영어우월주의자냐?라는 항의가 ESPN에 다수들어왔다. 근데 사실 그리섬은 제대로 알지 못하고 글을 쓴 것이다. 실제 이치로의 영어 실력은 수준급이다. 현지인과 대화도 가능하며 준수한 문장을 구사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치로가 통역을 쓰는 이유는 미묘한 차이로 자신의 발언이 오해가 될까봐. 그리섬은 이치로를 잘 모르고 썼다면서 사과하면서 “미안하다. 이치로가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봤을 때는 항상 통역이 있었다”라고 항변했다. 이런 글에 대해서 뉴욕 포스트는 “이치로를 15년 동안 취재한 우리들은 그의 언어(일본어)를 배우려고 한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되는가? 아마도 이치로는 영어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을 처음으로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섬과 같은 교만하고 어리석은 말을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라는 조롱을 했다.
-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첫 한일전에서 배영수 선수가 던진 공에 엉덩이에 맞은 일이 있었다.
이치로: 아야! 왜맞혀요! 배영수: 찰지구나이로 인해 디시인사이드의 필수요소로 인정되었다.# 일명 이치로의 굴욕.
- 미국의 밴드 '데스 캡 포 큐티' 소속의 벤 기버드가 2012년 이치로가 양키스로 트레이드 될 당시 작곡한 'Ichiro's Theme'라는 노래가 있으며 이는 디 애슬레틱스 선정 역대 최고의 야구송 TOP30로 뽑혔다.#
- 기자와 인터뷰했을 때 그가 "텐션이 올라온다"라고 말하는순간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게 캡처되었는데 그 잔상이 남는게 필수요소화 되어서 보통 2ch나 니코동에서 "テンション上がってきた"의 설명이나 태그가 붙은 건 머리를 흔드는 잔상이 남는 그림을 의미한다.#
- 원빈 덕에 굴욕적인 경험(?)을 한 일도 있다고 한다. 대충 내용을 이야기하자면 2000년대 초 이치로가 일본에 와서 호텔로 가던 중인 이치로가 원빈을 보기 위해 몰려있는 팬들을 보고 장난기가 발동해서 타고 있던 차의 창문을 열고 얼굴을 보였는데, 고급차가 지나가니까 원빈이겠거니 하고 몰려들었던 팬들의 반응은... "뭐야. 이치로잖아.." 그리고 우루루 이치로의 차에서 떠나버렸다.
원빈 의문의 1승.이 일화는 2006 WBC 우승 후 출연했던 일본 방송에서 이치로가 직접 했던 이야기다. 시애틀 마리너스 시절 팀 동료이기도 했던 사사키 가즈히로와 함께 했던 토크 프로그램에서 나왔던 이야기로,. 일본 여성팬들이 기다리고 있던 한류스타라고 이치로가 말하니 사사키 가즈히로가 욘사마?라고 묻는다. 2006년보다 몇 년 전에 있었던 이야기라고 이치로가 설명했으니 2004년 태극기 휘날리며 일본 프로모션 시기로 추정해볼 수 있다. 사실 저 이야기는 농담으로 생각해도 되고, 이치로 전성기 시절, 일본에서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해서 이치로에 관한 안드로메다급 농담도 굉장히 유행했었다. [46]
- '이치류'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일본의 국민밴드 미스터 칠드런의 팬이라고 밝힌적이 있다.
- 후루하타 닌자부로라는 일본 드라마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인지, 메이저리그 진출 후 오프시즌을 이용해 이 드라마의 파이널 시리즈(3부작) 중 제 2화 '공평한 살인자(フェアな殺人者)'에 출연하였다. 당당한 주연 타이틀롤로 등장하며, 이치로의 연기력(?)을 볼 수 있다. 2006년 1월 4일에 일본에서 방영되었으며, 원래 인기 있는 드라마인 이유도 있고 해서 27.0%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로 메이저리그 시즌이 60경기로 단축되자[47] 메이저리그측에서 60경기 역대 최고 기록들을 소개했는데 안타 부문에서 이치로는 2004년 60경기 동안 무려 121안타를 기록했다.[48][49]
- 2011년 2월, 니코니코 동화에 다음과 같은 VOCALOID 오리지널 곡이 업로드되었다. 【第6回MMD杯本選】#51# MMD 및 VOCALOID 오리지널 곡 분야에서 나름 알려져 있는 스트리크P(ストリ?クP)[50] 作. 제목도 #51이고 영상이나 가사 자체가 이치로 응원가 내지 찬양가. 상기 설명된 바 있는 필수요소 및 경기영상을 MMD로 완벽하게 재현한, 그야말로 재능의 낭비가 무엇인지 잘 보여주는 PV이다.
- 대부분의 야구팬들이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에 실제로 이치로의 플레이를 접했고 일본프로야구 시절엔 그냥 이치로라는 엄청 잘 하는 선수가 있다더라.....수준으로만 알았던 터라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엄청난 바람둥이다. . 일본에 있을 때 7년 연속 수위타자를 차지하고 심지어 MLB에서 조차 방망이를 거꾸로 잡아도 3할은 너끈한 수준이다 보니 야구에 대한 동기를 잃고 여자 꼬시는 데 몰두했다고. 여자에게 "헤어져도 그 어떤 뒷얘기가 나오지 않게 한다"는 각서도 쓰게 하고 그 각서가 법적 효력을 갖게 하기 위해 변호사와 상담하기도 했다는 일화도 있다. 염문설이 나온 여배우들로 이치로 마키와 하즈키 리오나 등이 있고, 불륜으로 확정적인 증거가 나온 경우만 2차례로 MLB진출을 앞둔 98년에는 유부녀와 바람을 피다가 남편에게 재판을 하지 않는 대가로 1,250만엔의 위자료를 지불하였고[51] 2001년도에는 샌프란시스코 거주 유학생과의 불륜 섹스 비디오가 걸려서 역시 큰 곤욕을 치렀다.[52] 불륜설 정리. 참고로 아내가 불임이라 보상심리로 불륜
합법을 저지르는 것 같다는 분석도 있다. 물론 불륜과 불임은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어떤 이유로든 불륜이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 NPB 기록인 장훈의 3085안타를 넘은 날 장훈이 직접 메이저리그 경기장을 찾아갔다. 배트를 모으는 것이 이치로의 취미인데 자신이 현역시절 썼던 배트에 직필 사인까지 해줘서 3085안타를 기념해 선물을 해주었다. 그날 이치로는 안타를 때려서 3086안타를 기록해서 장훈의 기록을 넘었다. 경기가 끝난 후 촬영 카메라를 대동하고 장훈이 또 다시 찾아가 역사적인 순간을 축하했다. 호통 발언으로 유명한 장훈의 방송 은퇴에 영상편지를 보냈는데, 마지막으로 그의 호통을 듣고 싶어서 일부러 '하리, 고마웠다. 언젠가 어디에선가 (다시 보자).'는 내용의 반말을 남겼고, 역시나 장훈은 '어디 선배에게 반말이야'라고 호통을 쳐 주었다. 어디까지나 존경하는 선배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의 발언이었다.#
- 한국에서는 잘 언급이 안 되지만,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을 조리있게 잘 전달하는 달변가다. 방송에도 가끔씩 나오면서 미국에 일본인들이 오면 즐겁게 맞이해주며 NPB에서 활약한 선배들에게 예의바르게 행동하고 후배들에게 잘해주는 모습도 보인다. 한국인 선배인 장훈에게도 깍듯이 대한다. 이렇듯 메이저리그에서도 롱런할 수 있었던 자기관리를 포함해 야구인으로써 본받아야할 모범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메이저리그에서의 역대급 개인 성적에 비해서 가을 야구 운은 없는 편이다. 2001년 압도적인 승률로 시즌을 마감한 시애틀 매리너스에서도 결국 지구 우승은 했지만 월드 시리즈까지는 가지도 못했고, 그 뒤로 뉴욕 양키스와 마이애미 말린스로 팀을 옮기는 동안에도 팀이 가을 야구와는 거리가 먼 상태였다. 본인의 MLB에서의 가을 야구는 신인왕을 차지했던 데뷔 시즌과 전성기를 지난 시즌 도중 양키스로 트레이드 된 2012년이 전부이다. 그 두번의 출전에서 월드 시리즈 목전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까지는 경험해봤지만 월드시리즈는 경험하지 못했다. 다만 일본에 있을 때 1996년에 소속팀 오릭스 블루웨이브가 일본시리즈를 제패한 적이 있어 1차례 우승 경험이 있다.
- 2008년 9월 28일 세이프코 필드에서 열린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와의 시즌 최종전이 끝나고 3일후인 10월 1일 일본에서 열린 기요하라 가즈히로의 은퇴경기에 직접 참석했었다. 미국과 일본의 시차 및 비행시간등을 고려하면 사실상 경기가 끝나고 바로 날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는 대선배에 대한 예우 및 자신의 예전 소속팀에서 은퇴하는 것에 대한 예우차원으로 볼 수 있다.
정작 시애틀은 그해 리그 최하위로 시즌을 마쳐서 굳이 포스트시즌 기간까지 미국에 있을 필요가 없어서 바로 왔는지도... - 야구만화 메이저에서도 나온다. 작중 이름은 쿄시로지만 시애틀 연고 팀의 리드오프를 맡는 슈퍼스타라는 묘사와 타격 전 준비 자세가 정확히 그의 시그니처.
- 김성근이 매번 스즈키 이치로의 이름을 언급하며 "이치로도 웨이트 트레이닝 기구를 해보고 쓸모 없다며 바로 버렸다."며 주장을 펼쳤는데 스즈키는 오히려 근육의 유연성을 기르기 위해 특별 제작된 웨이트 트레이닝 기구를 주문하여 비시즌 겨울에 지내는 일본 호텔 창고를 개조하여 개인 트레이닝 룸을 만들 정도로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다만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 이치로가 한 것은 건과 관절부의 지지를 보강하고 유연성을 유지하기 위한 트레이닝이고, 김성근이 쓸모없다고 말한 것은 당시 KBO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던 근육을 키워 장타력을 기르기 위한 벌크업을 위한 웨이트. 이치로도 이런 류의 벌크업을 위한 웨이트는 전혀 쓸모없다고 방송에 나와서 이야기한 바 있어서 기본적으로 김성근과 입장이 같다. 기구를 버렸다는 얘기는 근거가 없지만.
- 야구와 관계없는 대전 격투 게임에서도 오마쥬된 바 있다. 철권 7이 바로 그것. 야구방망이를 착용하고 인게임에서 사용하면 야구방망이를 휘둘러 상대에게 대미지를 주는데, 이 때 야구방망이를 휘두르기 전에 캐릭터가 이치로의 타격 준비 자세를 잡고 방망이를 휘두른다.
- 고등학교 일본어 독해와 작문 II 교과서의 본문에도 이치로의 이름 실려 있다. 이치로의 어릴 적 일화 등이 실려 있다. 초등학교 졸업 작문도 있다더라.
- 2018년 11월 13일 원클럽맨 마무리 투수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53] 이와세 히토키 선수의 은퇴식에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깜짝 등장했다. 이 자리에서 이치로는 선물상자를 건네며 그동안 수고했다고 하는듯 어깨를 토닥이곤 곧바로 자리를 떳다. 나중에 이와세의 언급으로는 이치로의 사인이 들어간 시애틀 유니폼을 선물받았다고. #
- 메이저리그 홈런 기록을 가지고 있는 배리 본즈는 최근 오타니 쇼헤이의 활약을 지켜보며 이치로 스즈키가 야구 역사장 가장 뛰어난 타격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고 앞으로 이치로만큼 뛰어난 타자는 나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타니의 활약을 보고 2021년 단일 시즌만큼은 이치로의 능력을 뛰어넘은 것 같다고 극찬했다고 한다. 미국보다 야구 역사가 늦은 일본에서 이치로나 오타니같은 타자들이 등장하는 것에 대해 궁금한 배리 본즈는 코로나-19 상황이 어느정도 해결이 되는대로 일본을 방문해 이치로나 오타니 같은 타자들이 일본에서 나오는 비밀을 밝혀내겠다고 한다. 특히 방문 목적 외에 스시를 마음껏 먹고 오겠다며 호탕하게 웃었다고 한다.
- 미국 MLB에서 선수로 뛰던 당시 한국팬들을 만나면 매우 친절하게 사인을 해줬다는 미담이 많다. 아무래도 WBC 인터뷰 내용의 와전으로 인한 오해를 풀고 자신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한듯 하다. 또한 마이너리그에 있는 아시아 출신 선수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야구 장비 후원 뿐만 아니라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도 많이 사주었다고 한다. 일본과 대만 선수들 뿐만 아니라 마이너리그 있던 한국 선수들에게도 항상 식사를 사주고 많은 조언을 해주었다고 한다. 한국 프로야구와 교류에도 관심이 많지만 WBC 이미지 때문에 어려운 상황인듯 하다. 한국 야구 원로들도 이 상황에 대해 매우 안타까워한다는 소식도 있다.
- 특히 한국 야구 선수들 중 선동열이나 이대호와 사이가 좋다고 한다. 같은 시기에 메이저리그에 있었던 박찬호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었다고 하며 본인은 타자였지만 일본 선수들 중 메이저리그의 선구자였던 노모 히데오를 매우 존경한다고 한다. 타격에 재능이 많은 봉중근이 투수를 선택하자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54] 실제로 한국과 일본의 라이벌 구도에도 불구하고 양국 메이저리거들 간의 사이는 대부분 좋고 리스펙해주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유럽파 축구선수들도 마찬가지다.
- 야구 만화, 애니메이션 캡틴을 즐겨 봤다고 한다. 동료들 말로는 이거 보라고 포교하고 다녔다고 한다.
- 2020 도쿄 올림픽 때 자신의 단골 초밥 레스토랑에서 박찬호와 저녁식사를 하려고 계획했었지만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무산 되었다고 한다. 추후에 박찬호의 일본 방문시 저녁식사 약속을 다시 잡기로 했다고 NHK 방송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 2021년 12월 4일 후배 마쓰자카 다이스케의 은퇴식에 팬들의 박수 속에서 마쓰자카가 야구장을 한 바퀴 돌며 마지막 인사를 하려는 찰나, 전광판에 이치로가 나타났다. 그리고 1루 더그아웃에서 꽃다발을 들고 깜짝 등장했다. # 꽃다발과 축하 인사만 잠깐 한 뒤 곧바로 퇴장했는데, 스포트라이트가 은퇴식을 하는 후배에게 쏠리게 하기 위해 칼같이 퇴장한 것으로 보인다.
- 2022년 2월 22일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 및 프로야구 스피리츠와의 콜라보 소식이 발표되며 약 23년만의 본가 파워프로 복귀가 확정되었다. 프로스피에서는 2009 WBC 이후로 14년만에 복귀. 4월 말에 발매되는 eBASEBALL 파워풀 프로야구 2022에서도 등장한다. 똑딱이란 인식이 강했던 메이저 시절이 아닌 5툴 플레이어 그자체였던 오릭스 시절의 성적이 더 많이 반영되어[55] 사기적인 컨택에 20홈런정돈 거뜬히 칠 높은 파워 스탯을 부여받았고 특능 역시 공수주 빈틈없을 정도로 좋은 특능을 받아서 사기캐 확정.
- 우리 시각 2022년 4월 17일 휴스턴과 시애틀의 경기에 앞서 시구를 했다. 유니폼을 제대로 갖춰 입고 나왔는데 현역시절의 체형을 그대로 유지한 모습이었다. 전력을 다해 패스트볼을 던졌으며, 구속이 84.5mph(약 136.0km)이 나왔다. [56]
- 메이저리그 역사상 통산 3000안타를 달성한 모든 타자들 중 장타율이 가장 낮다. 물론 주력, 수비력이 우수했다.
- 2006년 10월 사망한 니그로 리그 스타 벅 오닐#이 죽은 뒤 며칠 지나지 않아 엄청나게 큰 화환을 니그로 리그 야구 박물관에 보냈다. 또한 해당 박물관에 투어 후 선수로서는 가장 큰 금액을 기부했다.#
- 별의 커비 20주년 스페셜 컬렉션에 2번이나 언급된다. 1번째는 1994년 데뷔 시즌 200안타이고, 2번째는 2001년 아메리칸 리그 MVP와 신인왕을 수상한 것.
- TBS 테레비에서 제작 및 방영한 「イチローまとめ」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 일본 고교야구 선수들을 찾아가 재능기부를 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이 중 홋카이도에 위치한 아사히카와 고등학교(旭川東高學校)에 가서 타격 시범을 보이던 중 홈런으로 학교 건물 3층 교실의 유리창을 깨뜨려버리며(...) 여전히 녹슬지 않은 타구를 보여주었다. 관련 영상 이치로 본인은 놀라서 멋쩍은 반응을 보였지만 선수 및 학교 관계자들은 괜찮다며 열광하는 게 개그.
여담으로 이치로가 깬 유리창은 학교 측에서 원형 그대로 조심스럽게 회수 후 특수 제작된 액자에 넣어 사인 배트 & 자서전과 함께 전시하고 있다는 근황이 공개되었는데, 제작진을 통해 이 사실을 확인한 이치로도 껄껄 웃으며 좋아했다. #
- 전성기 이치로의 뛰어난 활약과 반비례하는 시애틀의 부진한 성적으로 인해, 일본의 MLB 팬들 사이에서는 이치로의 활약상을 다룬 일본 스포츠 뉴스 방송에서 자주 따라붙던 멘트인 "더불어 매리너스는 경기에서 졌습니다."(なおマリナーズは試合に敗れた)를 줄인 말인 '나오마'(なおマ)라는 밈이 있다. 불행히도 이치로를 이은 일본 야구의 슈퍼스타 오타니 쇼헤이가 속한 LA 에인절스도 오타니의 활약에 전혀 부응하지 못하는 부진한 모양새로 '나오마'는 '나오에'(なおエ)로 계승되었다.
- 건강 강장제 YUNKER를 시합 한 시간 전에 꼭 먹었다고 한다. 은퇴한 지금도 아침마다 챙겨 먹는다고. #
- 은퇴 이후 KOBE CHIBEN 이란 야구팀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여자 야구 대표팀과 친선 경기를 치루고 있는데, 여기서 이치로는 타자 뿐 아니라 투수로 나와 무려 완투를 한다. 2024년 경기에서는 141구 완투라는 어이없는 기록까지 세웠다. 은퇴 선수들도 이 경기에 참가하는데, 2024년 대회에서는 마쓰이도 참가해 홈런을 때려 많은 팬들이 추억에 잠기기도 했다.
10. 둘러보기
2004년 8월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이 달의 선수 상 | ||||
마크 테세이라 (텍사스 레인저스) | → |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 → | 블라디미르 게레로 (애너하임 에인절스) |
2001년 4~5월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이 달의 신인 상 | ||||
신설 | → |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 → | 조시 타워스 (볼티모어 오리올스) |
2001년 8~9월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이 달의 신인 상 | ||||
CC 사바시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 → |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 → | 카를로스 페냐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
[1] 그 외 나머지 기록은 참조.[2] 종전 기록은 로이드 워너의 1927년 223안타.[3] 2004년 시애틀 매리너스. 종전 기록은 1920년 조지 시슬러의 257안타.[4] 2001년-2010년 시애틀 매리너스. 종전 기록은 1894년-1901년 윌리 킬러의 8년.[5] 피트 로즈와 타이 기록. 단, 이치로는 10년만에 달성했다.[6] 그 외 나머지 기록은 참조.[7] 장훈과 타이기록이다.[8] 이치로가 오릭스를 떠난 후 해당 팀에서 이 번호를 단 선수는 아무도 없다.[9] NPB 등록명은 イチロー 이다.[10] 愛工大名電. 아이치현 지역의 야구 명문고등학교이다. 일본프로야구 200승 좌완투수 쿠도 키미야스가 선배다. '나고야 전기'가 세운 공대.[11] 주 포지션은 우익수이지만 일본 시절이나 메이저리그에서 사정상 간간히 중견수로도 뛰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2007년 풀타임을 포함해서 중견수로 약 330경기 출장.[12] 2018년 5월부터 잠시 선수 현역 생활을 중단하고 프런트로 이동했으나 2019시즌 개막 이전에 현역 선수로 복귀했다.[13] 走れ疾風のように 全速力で 塵巻き上げて 走れイチロー(달려라 질풍과도 같이 전속력으로 모래바람을 날리며 달려라 이치로)[14] 원래 이 응원가는 팀의 대선배격이자 대도였던 후쿠모토 유타카의 응원가였다.[15] 이 등록명을 권유한 건 당시 타격코치였던 아라이 히로마사였다. 스즈키라는 성이 너무 흔해 이름을 등록명으로 권유한 것. 이치로 본인은 이 제안을 처음 들었을 때 난감했다고 한다. 20살이 넘었는데 어린애처럼 이름을 쓰라고 했기 때문.[16] 2004년, 262안타.[17] MLB에서 3000개 이상의 안타와 10회 이상의 골드 글러브 수상을 달성한 야수는 이치로를 포함해서 윌리 메이스(3283안타 12GG), 알 칼라인(3007안타 10GG), 로베르토 클레멘테(3000안타 12GG) 단 4명뿐이고, 3000개 이상의 안타와 500개 이상의 도루를 달성한 야수는 이치로를 포함해서 타이 콥(4189안타 892도루), 호너스 와그너(3415안타 722도루), 에디 콜린스(3315안타 744도루), 루 브록(3023안타 938도루), 리키 핸더슨(3055안타 1406도루), 폴 몰리터(3316안타 504도루) 단 7명뿐이다. 참고로 여기에 언급된 모든 선수들은 전부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18] 적어도 MLB의 아시아 출신 선수들 중 이치로를 능가하는 선수는 오타니 쇼헤이 외에는 없다. 이치로의 경우 알버트 푸홀스, 미겔 카브레라와 더불어 명예의 전당 첫 턴 입성이 확실시되는 선수이며, 다른 선수들의 경우 한 턴을 버티는 것은 고사하고 입회 후보 추천을 받을 아시아 선수도 얼마 없다. 오직 MLB에서 투타 양면으로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자국 후배 오타니만이 이치로보다 우위에 있다. 오타니는 만장일치 MVP 3회, MLB 양대리그 MVP와 홈런왕이라는 독보적인 기록을 세우고 현지 언론과 관계자들에게서 GOAT 논쟁까지 언급되는 수준이기에 비교가 되지 않는다. 여전히 누적은 이치로가 앞서지만 그 격차가 많이 좁혀진 상태이며, 오타니의 4+년은 야구사에서도 길이 남을 퍼포먼스로 인식된다. 일례로 샌디 코팩스의 사례처럼 압도적인 고점과 임팩트로 부족한 누적을 상쇄하는 케이스도 존재하기에 2024년 현재 오타니가 이치로에게 밀리기는 커녕 비슷한 평가조차 받지 않는다.[19] 심지어 나머지는 쳐주라고 던지는 베팅볼을 던지던 1900년대 초반의(정확히 말하면 라이브볼 시대가 갓 시작했을 당시 타신투병 시즌들의) 기록이기 때문에 현대 야구에서는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셈이다.[20] NPB+MLB합산[21] 게다가 쓰고 갈 모자도 시애틀 매리너스로 확정적인 데다가 득표율도 90%는 아득히 넘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미국 언론에서는 이치로의 명예의 전당 입성에 대해 반대표를 던지는 자는 투표권을 빼앗아야 한다고 할 정도로 명예의 전당 만장일치 입성이 당연하다는 논조가 강하다.[22] 시애틀에서만 뛴 선수가 명예의 전당 후보에 이름을 올리거나 시애틀에서 10년 이상 뛴 선수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것.[23] 이치로 이전 51번을 달았던 랜디 존슨이 이미 첫 턴으로 입성했기에 51번은 공동 영구 결번이 될 것이다.[24] 이치로 이전에 51번을 쓴 랜디 존슨 역시 시애틀에서 제1의 전성기를 보냈으며 시애틀 구단 명예의 전당 헌액자이기에 이치로와 함께 결번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실 이치로의 시애틀 입단 이전에도 랜디의 51번은 준 영구결번이나 마찬가지였으며, 이치로가 랜디에게 51번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겠다는 편지를 보내고 그의 허락을 얻어 51번을 달 수 있었다.[25] MLB 시절 기준으로 위의 설명에서도 나오듯이 NPB 시절과는 타격 메커니즘이 다르다. 물론 NPB에서도 타격 메커니즘은 특이한 케이스였다.[26] 변화구 공략에 중점을 두었던 강타자들이 없는 건 아니었는데 행크 아론이 대표적이다. 아론 역시 무지막지한 손목 힘에서 나오는 어마어마한 배트 스피드와 속구 대응력으로 유명했다.[27] 물론 이것은 과장이다. 이치로는 2009 WBC 결승 한일전에서 그야말로 맹활약하며 일본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 외의 경기에서는 땅볼 타구 비율이 높기는 했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정말 땅볼만 쳤다고 받아들이면 곤란하다.[28] 이치로의 타격 자체가 컨택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MLB 기록에서도 내야 안타 비율이 다른 선수들에 비해 상당히 높다.[29] 실제로 이치로는 2009 WBC 당시 봉중근에게만 9타수 1안타로 매우 부진했다. 그러나 결승에서 봉중근이 내려간 뒤 불펜 투수들에게 3타수 3안타 결승 2타점까지 뽑아내며 일본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역대 WBC의 명장면을 꼽을 때 결승전 10회초 임창용을 상대로 터트린 결승 2타점 2루타는 아직도 회자될 정도로 굉장한 명장면으로 손꼽힌다. 그리고 당시 결승 자체가 게임 내용이 박진감이 넘쳤고 워낙 명경기인지라 그 끝을 맺는 결승타를 터트린 이치로는 당연스럽게 히어로가 될 수밖에 없었다.[30] 《스포츠동아》, 이대호 “이치로, 내 이름 외치며 환대 깜짝”[31] 후에 인터뷰를 통해서 구대성이 배영수한테 "화나는데 그냥 몸에 맞혀라"라고 이야기했고 고의로 몸에 맞는 공을 던졌다고 고백했다. 이치로의 발언 의도의 진위가 어쨌든 반칙을 한 것도 아닌데 고의로 몸에 맞는 공을 던진 행동이 잘한 것은 아니라는 견해가 있지만, 이것을 그저 몰지각한 행위라고 무작정 비판하는 것도 곤란하다. 배영수가 이치로를 맞힌 경기에서 이미 일본 선발 와타나베 슌스케가 2회 조인성과 이종범에게 몸에 맞는 공을 던졌고, 5회에 이종범을 재차 맞히며 총 세 번 한국 타자들을 맞혔다. 그러다 보니 한국 측에서도 우리 타자들을 더 이상 맞히지 말라는 의미로 일본 타자에게 공을 맞히려 했을 것이고, 마침 당시 30년 발언이 곡해되어 빈축을 사던 이치로가 일본 타자들 중 표적이 되었던 것이다. 이치로를 맞힌 것은 한국 타자들이 세 차례 맞은 후인 7회이다. 그러므로 구대성이 이치로에게 단순히 화가 났거나 이치로를 싫어해서 배영수에게 맞히라고 지시한 것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 단기전에서는 우리 팀 에이스가 맞으면 빈볼이든 아니든 상대 팀 에이스를 맞혀 더 이상 우리 팀 타자들을 맞히지 말라는 의미로 빈볼을 되돌려주는 관례 아닌 관례가 있다. 더군다나 우리 타자가 세 번이나 맞은 것이 선행되었기에 당일 일본의 에이스이자 국민 영웅이던 이치로가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언론이나 관계자의 비판 기사나 항의가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야구계의 관례와 단기전의 기싸움 측면에 입각해서 구대성은 몸에 맞는 공 지시를 내린 것이고 30년 발언이 그 사유였다는 것은 그에 더해지는 표면의 사유라고 보면 된다. 때문에 구대성과 배영수를 상대 선수의 단순한 인터뷰 입씨름에 집착해서 물리적으로 피해를 준 몰지각하고 동료 의식과 스포츠맨십이 결여된 선수라고 무작정 비판할 수는 없다.[32] 이는 스톡킹에서 나온 봉중근의 발언에서 더욱 확실해지는데, 봉중근은 당시를 회상하며 경기 중 불펜에서 구대성이 불펜 투수들에게 "야, 이치로 나오면 무조건 맞혀. 내가 뒤는 막아줄게. 상금은 10만 엔."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곧장 봉중근이 제가 맞히겠다고 자처하였으나 구대성이 "넌 됐어. 125km/h 가지고 맞아봤자 안 아파. 네 공은 느려서 안 아프니까(...) 공 빠른 영수가 나가서 맞혀라"라고 발언했다고 한다. 실제 당일 경기 계투진은 봉중근 - 배영수 - 구대성 - 박찬호 순으로 마운드를 이어받았으므로 배영수의 몸에 맞는 공은 경기 중에 논의되어 실행된 것이며, 이를 통해 볼 때 한국 타자들이 세 번 맞은 후 이치로를 향한 빈볼이 행해졌기에 정상 참작될 여지가 있다.[33] 또한 경기 시작 전에 미리 계획한 일이 아니라는 것은 배영수의 인터뷰에서도 확실해졌다. 경기 중에 데드볼을 돌려주는 기싸움 측면에서 이뤄진 이유도 있기에 여러모로 단순히 이치로의 발언 때문으로만 이치로를 맞혔다고 보기는 어렵다. 당시 배영수의 인터뷰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단호히) 일부러 그런 것 맞습니다. 실은 그때 덕아웃에서 구대성 선배님이 '이치로한테 한번 줘라. (봉)중근이가 때리면 별로 안 아프니까 (공 빠른) 영수 니가 넣어라' 하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선배님 (승부도 박빙인데) 맞히면 어찌합니까'라고 하니까 구대성 선배님이 '뒷처리는 내가 한다'고 답하시더라구요. 제가 이치로 맞히고 내려오니까 그 다음에 구대성 선배님이 등판해서 다 틀어막으면서 싹 정리를 하셨습니다. 그거 보고 전 정말 존경의 마음이 들었습니다. 선배님의 배짱은 대한민국 최고!."[34] 《중앙일보》, 이치로 "야구인생 최대 굴욕"[35] 특히 봉중근처럼 견제 동적이나 퀵 모션이 빠른 투수라면 더더욱 그렇다.[36] 2009년에 방영된 무릎팍도사 허구연 편에서 허구연이 밝혔다. 당시 이치로는 허구연에게 "정말 한국 야구 무섭다. 겁난다. 자신이 없다.", "봉중근은 스니키 패스트볼이라서 공을 알고도 못 치겠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치로 본인도 한국 야구를 상당히 인정하고 있었다는 것. 재미있는 점은 봉중근이 가장 존경하는 선수가 바로 이치로이며, 실제로 이치로의 등번호인 51번을 달고 뛰었다는 점이다.(봉중근은 원래 타자였으나 투구하는 모습을 보고 투수로 전향하였다. 그 때문에 국제 대회에서 구르고 팀에서도 자주 굴렀지만 원래 타자였던 탓에 뒤늦게 과부하가 온 케이스다.)[37] 정확히는 1라운드 순위 결정전 3타수 무안타, 2라운드 승자조 경기 3타수 무안타, 결승전 3타수 1안타였다.[38] close eyes 에 정립된 뜻이나 속어적인 의미는 없다. close eyes to 나 with eyes closed 에는 있지만.[39] http://news1.kr/articles/?1183858[40] 참고로 반박기사를 올린 사람은 한화 이글스와 류현진을 담당하는 이상학기자로 다른 기자들과 달리 개념있는 기사를 쓰는걸로 유명한 기자다.[41] 류현진을 상대로 양키스 시절 홈런을 친적이 있다. 이때 류현진의 상대 선발투수이자 경기 승리투수는 구로다 히로키였다.[42] 마에다는 2013년 시즌 종료 후 은퇴했다.[43] 이건 이치로의 선배였던 키요하라 카즈히로도 파벌을 만들면서 악행을 저질렀는데 그나마 이치로는 키요하라와는 다르게 심각하게 문제가 된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스즈키 이치로가 키요하라 파벌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으니...[44] 마이너리그 리햅을 뛸 때 아들뻘인 히스패닉 꼬맹이 동료가 홈런을 치자 스페인어로 축하해줬다는 훈훈한(?) 증언도 있다.[45] 원문은 "Kansas City in August is hotter than two rats fucking in a wool sock (8월의 캔자스 시티는 면양말안에서 씹질하는 쥐 두마리보다도 더 뜨겁다)."[46] 과거 2002년 월드컵 당시 국내에서 엄청난 인기를 구사하던 한국 대표팀 선수들에 대한 유머가 마구 돌아다녔던 것이랑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심지어 이중에는 아직도 진짜라고 사람들이 믿는 출처 불명의 유머들도 많다.[47] 본래 메이저리그 경기수는 총 162경기다.[48] 통계상 평균으로 매경기 멀티히트 이상을 쳤다는 것이다...[49] 참고로 2020시즌이 종료된 시점에서 mlb 양대리그 최다안타 1위는 트레이 터너가 기록한 78개이다.[50] 오늘도 졌다를 제작한 사람이다. 야빠.[51] 다만 이치로의 말에 따르면 "유부녀인 줄은 몰랐으며 남편에게 지불한 돈은 도리상 지불하였다"고 한다.[52] 유학생 쪽에서 테이프를 녹화하여 주간지에 팔아넘겼다고 한다.[53] 통산 1002경기에 등판해 59승 51패 407세이브 82홀드 평균자책 2.31을 기록했고, 또한 최다 등판, 최다 세이브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54] 이는 봉중근 본인도 아쉬워 하는 사항이다.[55] 사실 파워프로나 프로스피 시리즈의 OB 능력 책정 자체가 선수 커리어 중 가장 좋았던 시기의 성적을 반영하는게 일반적이다. 일례로 장훈의 데이터는 타율 .383을 쳤던 1970년, 오치아이 히로미츠는 3관왕을 차지했던 1985년 기준이다.[56] 94mph가 나왔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이는 트위터에서 마치 94mph처럼 보였다는 말이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