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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인 메이저리거의 목록.2. 도전사
이미 1970~80년대부터 이원국, 박철순 등의 선수들이 미국 무대에 도전장을 내민 바 있지만, 이들은 끝내 빅리거가 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1] 한국 야구사에서 길이 남을 족적을 남긴 최고의 투수 최동원도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계약금 1만달러에 계약까지 하고 [2] 최초의 메이저리거가 되는가 했는데 당시 문제가 된 병역법[3]에 걸려 포기를 한 전례가 있을정도.[4]이원국의 리턴 이후 한국인 야구선수의 메이저리그 도전 역사가 멈추는가 했던 1994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가 한양대 2학년 투수 박찬호를 입단시키면서 새로운 역사가 열리게 된다. 박찬호는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로서 성공시대를 열었는데 박찬호의 성공을 계기로 수많은 한국인 야구 유망주들, 소위 '박찬호 키드'들의 미국 진출 붐이 일어나게 된다. 특히 박찬호가 대박을 터뜨린 이후 이 당시 야구 좀 한다고 이름이 알려진 고교생 선수들에게는 외국인 스카우터들이 줄을 섰고 너나할것 없이 연이어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러나 박찬호 이후 특출나게 성공한 메이저리거 사례를 꼽자면 마무리 투수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김병현과 한국인 야수 사상 최고의 메이저리거라는 평을 받는 추신수 등 극소수를 제외하면 극히 드물었다. 뉴욕 메츠 시절 단일 시즌 9승을 거뒀던 서재응, 한국인 야수로서는 최초로 메이저리그에서 홈런을 때려낸 최희섭, 무려 쿠어스 필드에서 완봉승을 따낸 김선우 등이 그 다음으로 꼽히는 성공사례로 볼 수 있지만 박찬호, 김병현, 추신수에 비하면 몇 수 아래였다. 이외에 아마추어 시절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미국행 비행기를 탔던 이들 중에는 아예 빅리그 무대도 밟아보지 못한 채 소리소문없이 한국으로 돌아온 선수들도 많았다.
어쨌든 박찬호의 성공은 한국인 선수들도 메이저리그에서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지만, 정작 시간이 흐른 후에도 KBO 리그에서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사례는 나오지 않고 있었다. KBO 리그를 평정했던 진필중과 임창용 등의 선수들이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미국 진출을 시도하긴 했지만 빅리그 구단들의 냉랭한 평가와 함께 무산되었고 기대를 모았던 이승엽은 단일 시즌 최다홈런 아시아 신기록을 세운 직후인 2003년 시즌 종료 후 미국 진출을 타진했으나[5] 여의치 않자 일본프로야구 도전으로 방향을 틀었다.[6] 겨우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선수들은 구대성이나 이상훈처럼 일본 리그를 거친 좌완 원 포인트 릴리프급 선수 정도였다.
이후 2011년 말 SK 와이번스에서 뛰던 정대현의 볼티모어 오리올스 입단이 유력시되면서 드디어 한국프로야구에서 MLB로 직행하는 선수가 나오는가 싶었지만, 메디컬 테스트에서 문제가 생겨 결국 진출에 실패했다.[7] 그리고 입단 첫 해부터 KBO 리그를 그야말로 씹어먹었던 류현진이 마침내 2012년 11월 포스팅 시스템을 통한 MLB 진출에 성공하면서 한국프로야구에서 최초로 MLB로 직행한 선수로 이름을 올리게 된다. 2014년에는 윤석민이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입단했으나 마이너 계약을 한 상태에서 메이저리그로 승격하지 못해 트리플A인 노폭 타이즈에서 활동하다가, 2015년 바로 친정팀인 KIA 타이거즈로 복귀한 바 있다.
이어, 2015년 1월에는 강정호가 야수 포지션으로는 최초로 한국프로야구에서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선수가 되었다.[8] 같은 해인 2015 시즌 종료 이후에는 박병호를 시작으로 김현수, 오승환, 이대호가 차례로 유니폼을 입게 됐고[9] 마이너 리그에 머물렀던 최지만이 룰5 드래프트를 통해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으로 이적하며 메이저 리그에 서게 되었다.[10] 그러나 이대호는 2017년, 박병호, 김현수, 황재균은 2018년에 모두 국내로 복귀했다.
2018년 9월 하순 기준으로 총 5명(추신수, 류현진, 오승환, 최지만, 강정호)의 한국인 선수들이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활약하게 되었다. 전 시즌을 끝으로 세인트루이스를 떠나 FA가 된 오승환은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계약이 파토난 뒤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극적으로 계약을 성사했다. 최지만은 2018년 1월 15일 밀워키 브루어스와 계약을 했지만 스플릿 계약이어서 40인 로스터 안에 들지는 미지수였다. 2018년 3월 29일 나온 개막전 액티브 로스터에 포함되었지만 새 불펜투수 영입 작업이 늦어진 데에 따른 임시 등재로 결국 3월 31일 AAA로 내려갔다. 5월 18일 라이언 브론의 부상자 명단 등재에 따라 MLB로 올라왔지만 연이은 부상자 발생에 따른 임시 승격의 성격이었으며 브론이 5월 24일 복귀하면서 다시 AAA로 내려갔다. 5월 31일에 다시 올라왔는데 정황상 옵트아웃이 예정된 6월 15일까지는 로스터에 머물 가능성이 높았으나 결국 6월 10일 탬파베이로 트레이드된 뒤 우선 AAA에 배치되었다가 7월 10일에 콜업되어 플래툰으로 뛰었다. 9월 말 강정호가 전격적으로 복귀했다.
오승환은 2018년 10월 17일 귀국하면서 국내 복귀를 암시했지만 옵션 실행으로 콜로라도에서 계속 활약했다. 시즌 막바지에 극적으로 복귀한 강정호는 옵션 행사를 거절당하며 FA가 됐으나 다시 피츠버그와 1년 계약했다. 최지만은 그럭저럭 가능성을 보이기는 했지만 적지 않은 나이에 풀타임 1년차 플래툰이라는 불안정한 위치에 병역 문제[11] 등 여러 문제들이 겹쳐 앞으로 계속 메이저리그에 머물지는 미지수였다.
2019년 8월 시점에서 보면 추신수는 택사스 레인저스에서 외야와 지명타자를 번갈아가면 1~2번에서 활약했고, 류현진은 1점대에 가까운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후보로 거론됐다. 이와는 반대로 오승환은 팔꿈치 뼛조각이 자라는 바람에 9점대 평균자책점으로 부진했고 결국 국내에서 수술을 받기로 함에 따라 콜로라도 로키스에서 방출되어 삼성 라이온즈로 복귀했다. 강정호는 장타력은 괜찮았으나 1할대 타율로 타격이 부진했고 결국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서 방출되었다. 이전 도박으로 징계가 확정된 오승환과는 달리 국내복귀를 해도 장기간의 징계가능성이 있어서 국내복귀가 어렵고 결국은 밀워키 브루어스 마이너리그 계약을 했으나 다시 비자문제가 불거지면서 계약이 무산되었다. 최지만은 초반에는 활약이 좋았으나 시즌을 진행할수록 기세가 꺾였고 결국은 이전에 주전경쟁을 했던 헤수스 아길라가 탬파베이에 오면서 또다시 주전경쟁을 해야하는 위치에 놓였다.
2019 시즌 종료 후 김광현이 포스팅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면서 한국인 메이저리거가 추가됐다. FA가 된 류현진은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이적했고 추신수는 텍사스와의 7년 계약 마지막해를 맞게 됐다. 최지만은 2020시즌을 온전히 소화하면 연봉 조정 신청 자격을 얻게 된다.
마이너리그 소속 한국 선수들 중, 2018년을 A+에서 보낸 박효준은 2019년에 AA로 올라갔지만 생각 외로 성장이 더뎠으며, 2020시즌에는 AAA 로스터에 등재되긴 했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여파로 마이너리그 시즌 전체가 취소된 데다 2020시즌에 특별히 적용되는 60인 택시 로스터에 들지 못하며 중요한 시즌을 통으로 날리게 되었다. 루키리그와 A-를 2년째 오르내린 권광민은 거듭 부진을 보인 데다가 비시즌 동안 뛰었던 호주 프로야구 리그(한국인 팀 질롱 코리아 소속)에서 장타 빼고는 부진한 성적을 남기면서 결국 2019년 스프링 캠프가 막바지로 접어든 시점에서 방출된 뒤 귀국해 병역 의무를 수행했다. 배지환은 루키리그 1년차에 유망주 30위 안에 드는 성장세를 보였지만 실책이 너무 많고 개인적인 문제(데이트 폭력) 때문에 2019년 4월 17일 30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 그래도 징계에서 풀린 뒤 무난히 시즌을 마쳤고 2020시즌 60인 택시 로스터에 포함되었다.
2020 시즌은 코로나로 인해 60경기 단축 시즌으로 열렸다. 선발투수인 류현진, 김광현은 에이스급 피칭을 이어가며 활약한 반면 타자 메이저리거인 추신수와 최지만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추신수는 시즌이 끝난 뒤 FA가 됐지만 결국 메이저리그 생활을 마감하고 KBO 리그로 들어왔다.
2021 시즌을 앞둔 시점에서 2020 시즌 종료 후 포스팅 자격을 획득한 나성범, 김하성이 차기 메이저리그 진출자로 꼽히고 있고, 두 선수 다 미국진출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양현종도 미국 진출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김하성만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계약에 성공해 입단했을 뿐 나성범의 미국행은 불발되었으며, 양현종은 모든 조건을 다 포기한 끝에 텍사스와 스플릿 계약을 맺었고, 시즌 시작은 마이너리그에서 했으나 4월 말 콜업에 성공했고, 동월 27일 경기에 등판함에 따라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시즌이 끝난 뒤 KIA로 복귀했다.
2021년에는 박효준이 어렵사리 메이저리그 무대 데뷔에 성공했으나 양키스에서 한 타석만 서고 피츠버그로 트레이드 되었고 합류 직후에는 그런대로 괜찮은 활약을 보였으나 이내 한계를 드러냈다. 2022시즌에는 메이저리그와 AAA를 오르내리고 있으며 양쪽 모두 뚜렷한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류현진은 팔꿈치 통증에 시달리다가 2022년 6월 1일 시카고 화이트삭스전 등판을 마지막으로 2번째 토미 존 서저리를 받기로 결정하면서 2023시즌 복귀 여부도 장담하기 힘들게 되었다. 최지만은 플래툰을 철저히 적용 받는 가운데에서도 그럭저럭 괜찮은 활약을 보였으나 올스타 브레이크를 기점으로 타격 감이 급격히 떨어진 상태다. 김하성은 꾸준히 기회를 받는 가운데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가 약물 검사에 적발되어 시즌 아웃되면서 주전 유격수 자리를 사실상 굳혔으며, 타격에서도 지난 시즌 보다 발전한 모습을 보였으며, 특히 수비에서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최고급으로 평가받는 등 나름 순항 중이다.
2022년에는 피츠버그의 배지환이 메이저리그에 콜업되면서 새로운 메이저리거가 탄생했다. 1999년생으로 아직 꽤나 어린편임에도 불구하고 빨리 콜업되었기 때문에 앞으로가 기대된다.
2022시즌 종료 후 최지만이 피츠버그로 트레이드 되었으며 박효준은 2번이나 DFA 처리(피츠버그, 보스턴)된 끝에 애틀랜타에 새로 둥지를 틀었으나 향후 진로가 매우 불투명하게 됐다. 2023년에 최지만은 중간에 샌디에이고로 트레이드 되었고 연이은 부상과 부진으로 급격히 가치가 하락한 가운데 FA를 맞아 뉴욕 메츠와 스플릿 계약을 했으며 박효준은 애틀랜타의 두터운 벽을 뚫지 못한 채 AAA에 머무르다가 시즌 종료 후 팀을 나와 오클랜드와 마이너 리그 계약을 하며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
2023년 시즌 종료 후에는 키움 히어로즈 외야수 이정후가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서 MLB 진출을 시도했고 역대 포스팅 시스템 기반의 한국인 메이저리거 진출 사례 중 최고대우 조건인 6년 1억1300만달러의 조건으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그리고 이정후의 친구이자 처남인 LG 트윈스 투수 고우석도 2년 450만달러 조건에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유니폼을 입게 됐다. 그리고 2024년 2월 류현진이 11년여의 미국-캐나다 생활을 정리하고 고국으로 돌아가게 됐다.
향후 메이저리그 진출 유력 후보로는 키움 히어로즈의 토종 에이스 안우진과 마찬가지로 같은 팀 동료인 김혜성이 꼽히고 있다. 다만 2018년에 데뷔한 안우진이 해외 진출의 자격요건을 채우려면 아무리 빨라야 2028 시즌 종료 후가 돼야 하기 때문에[12]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3. 한국인의 메이저 리그 진출 경로
한국인의 메이저 리그 진출 경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고졸이나 대학 재학 중 신분으로 KBO 리그를 거치지 않고 바로 국제 아마추어 자유 계약을 통해 메이저 리그로 직행하는 방법이다.3.1. 국제 아마추어 자유 계약을 통한 진출
역대 한국인 메이저리거 중 최고로 꼽히는 박찬호와 추신수가 이 방법을 통해 성공하여 부와 명예를 거머쥔 것을 보면 본인의 실력이 뛰어나다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박찬호의 메이저리 그 진출 이후 약 10여 년 넘게 특급 아마추어 유망주가 많이 미국행을 택했다. 이는 KBO 리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 신인 계약금 규모에서 KBO 리그 구단이 메이저 리그와 비교해 당연히 밀릴 수밖에 없었고[13] 1997년 외환 위기 여파로 인해 국내 구단이 구단을 운영하는데도 빠듯한 상황에서 많은 유망주를 많이 뺏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방법이 요구하는 실력의 기준은 MLB 주전급이라는 것으로, 한국인 유망주 중에서 이 기준을 만족하는 유망주는 정말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정말 실력이 뛰어난 유망주가 최상위 마이너 리그인 AAA를 졸업하여 MLB 1군 무대에 진출했다고 해도 그곳에서 주전급의 성적을 기록하지 못하면 그 유망주는 아무 의미 없이 허송세월을 하게 되는 것이다. 2007년 해외파 특별 드래프트로 KBO 리그에 입단한 선수가 대략 이 정도 수준의 선수였는데 이들은 마이너 리그에서 수년을 날리고도 KBO 리그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을 정도로 대단한 유망주였다. 만약 이들이 KBO 리그에서 시작했으면 지금보다 훨씬 대단한 선수가 되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14]
실력 외의 심리적인 요인이나 문화 차이, 언어 장벽 등도 무시할 수 없는 장애물이다. 10대 후반~20대 초반의 어린 청년이 하루 아침에 전혀 다른 문화의 나라에서 말도 안 통하는 코치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데, 이는 어린 나이의 유망주에게 엄청난 심리적 부담감으로 작용한다. 참고로 마이너 리그는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유망주들을 여러 단계의 등급별로 나눠 놓고 턱없이 적은 봉급을 줘 가면서 낙오되는 유망주는 버리고 살아남는 유망주만 추려내는, 잔인할 정도로 철저한 적자생존의 리그다.[15] 입단할 때는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띄워주지만 아니다 싶으면 냉정하게 내치는 것이 이 바닥의 생리다. 당연한 것이 프로 스포츠 구단들은 사업자이지 자선 단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이었으면 특별 대접을 받았을 유망주들이 미국에서 전성기를 낭비하다 실패하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성공한 박찬호와 추신수는 정말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유망주의 해외 진출을 막기 위한 KBO 규약도 걸림돌이다. KBO 규약에는 유망주의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한, 정확히는 나가는 것 자체는 막지 않지만 KBO 리그에서 뛰려고 할 때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도록 하는 조항들이 있다. 해외 리그 최종 소속 팀과의 계약이 종료된 시점부터 2년 동안 KBO 리그에 입단하지 못하여 해당 기간을 무적 상태로 지내야 하며[16], 해외 진출 선수의 모교는 5년 간 지원금을 받지 못한다. 또한 지명받고 입단해도 계약금을 받지 못하고 첫 시즌은 최저 연봉으로 뛰어야 한다.[17] 2021년 5월 25일 규약이 개정되어 신인 드래프트 대상이 되었으나 지명 받지 못하고 나간 경우에는 이 제약을 적용 받지 않는다.[18]
이러한 현실 속에서 아마추어 신분으로 메이저 리그에 직행하는 유망주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2020년에는 고교 최대어로 꼽히는 장재영의 미국행이 유력했으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여파로 미국 현지 사정이 나빠지자 국내에 남기로 결정했고 타자 최대어인 나승엽도 미국 진출을 선언했으나 역시 코로나 여파로 국내에 남게 됐다. 2021년 2월 포철고 출신 투수 이지태가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계약했으나 계약금이 고작 1만 달러인 것을 봐서는 로또성 계약으로 봐야 한다. 뒤이어 서울컨벤션고 외야수 조원빈이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구두 계약에 합의한 채 시간을 보내다가 정식 계약이 가능한 시점인 2022년 1월 15일에 정식으로 계약을 했다. 2022년에 고교 최대어로 꼽히는 심준석이 스캇 보라스와 에이전트 계약을 하면서 미국행 가능성이 커진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으나 2021년 4월 첫 등판 이후 부상으로 6개월 동안 공백기가 이어졌고, 이후로도 몇 경기를 제외하고 제구 불안으로 부진한 투구 내용이 이어지면서 평가가 급격히 떨어졌다. 심준석은 신인 드래프트 신청 마감일인 2022년 8월 16일에 미국 진출을 공식 선언했으나 최소 계약금 100만 달러를 원하는 그의 바람과는 달리 어느 팀에서도 계약 제의가 들어오지 않았고 결국 해를 넘긴 2023년 1월에 기대치에 못 미치는 금액에 피츠버그와 계약했다.
2020-21 오프시즌 김하성의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입단을 통해 고등학교 1년 후배인 박효준과의 처지가 비교되기도 했다. 김하성은 2015년 풀타임 시즌을 치른 이후 2020년까지 매년 꾸준한 성장세를 보여주며 어느덧 국대 유격수이자 KBO리그 S급 유격수로 성장했고, 추가적으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금메달로 병역까지 해결했지만, 박효준은 뉴욕 양키스 산하 마이너리그 루키팀으로 진출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오히려 그 소속팀이 유망주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양키스이고, 박효준 본인의 성장세가 기대보다 따라와주지 못한 데다, 결정적으로 2020년 COVID-19로 인한 마이너리그 시즌 미개최로 인해 1년을 공쳐버린 바람에 더 이상의 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2021년 어렵게 AAA로 진입해 폭발하긴 했지만 성적 자체가 플루크일 가능성이 높은데다가 브라이언 캐시먼 양키스 단장이 당장 승격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태도를 보이면서 MLB 데뷔 여부가 불투명한 상태다. 2021년 7월 16일 승격이 되기는 했지만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에 따른 임시 콜업이었고 결국 단 한 타석만 들어선 채 5일 만에 AAA로 돌아갔다. 이후 피츠버그 파이리츠로 트레이드 되어 재승격을 이루었고 초반에 맹타를 휘둘렀으나 이내 한계를 드러내면서 2할에 못 미치는 타율로 시즌을 마쳤다. 2022년에는 4번이나 승격과 강등을 반복했고 결국 시즌이 끝난 뒤 DFA 처리된 뒤 보스턴으로 트레이드 되었으나 다시 DFA → 애틀랜타로 트레이드 → DFA → AAA로 이관이라는 과정을 거쳤고 2024년에는 오클랜드와 마이너 리그 계약을 했지만 팀의 전력 구상에서 사실상 배제되었고 병역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이제는 미국 커리어 지속 여부가 불투명한 처지가 되었다. 아무리 초특급 고교 유망주라도 무리해서 메이저 리그에 진출한다 해도 결국 용의 꼬리보다 뱀의 머리가 오히려 더 낫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19]
남아 있는 마이너리거들도 상황이 그다지 좋지 못하다. 2019년에 다저스에 입단한 최현일은 마이너리그에서 착실히 성장해 빠르면 2022시즌 데뷔가 예상되었으나 부상의 덫에 걸리며 장기 결장하다가 리햅 등판 한 차례를 끝으로 시즌을 마쳤고 시즌 후 열린 애리조나 가을리그에서도 부진을 보였으며 2023 시즌 역시 부상에 시달리는 등 High A에 머물렀고 2024년에는 AA와 AAA를 오르내린 가운데 AAA에서 더 좋은 기록을 보이기는 했지만 소속 리그가 극악의 타고투저임을 감안해도 우수하다고 하기는 힘들며 결국 시즌 종료 후 룰5 드래프트(마이너리그 페이즈)로 워싱턴으로 이적했다. 조원빈은 첫 두 해 동안은 성장세를 보였으나 3년 차인 2024 시즌에 삼진이 급격히 증가하고 공격 지표 대부분이 하락하면서 상위 레벨에서 한계에 부딪힌 듯한 모습을 보였다. 심준석은 이미 고교 2학년 때부터 부상에 시달리면서 제구 난조를 보였고 평가가 깎이는 와중에도 미국 현지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았으나 미국 진출 첫 해인 2023년 역시 두 차례 IL에 오르는 등 고작 8이닝만 소화한 채 끝냈고 2024년에는 아예 시즌 시작 전부터 IL에 올랐다가 마이애미로 트레이드 되었다. 캔자스시티에 입단한 엄형찬 역시 험난한 경쟁을 뚫어야 하는 처지다. KBO 신인 드래프트 미지명 후 미국 대학에 진학했다가 MLB 드래프트에서 지명 받고 입단한 케이스인 신우열과 최병용 역시 인상적인 활약을 보이지는 못하고 있다. 2024년에 장현석과 이찬솔이 미국으로 진출했지만 장현석은 높은 탈삼진율에도 불구하고 극악의 ERA를 기록하며 첫 해부터 미국 무대의 벽을 실감 중이며 이찬솔은 루키리그 개막 후 두 달 넘게 지나서야 뒤늦게 미국 무대 데뷔전을 치렀다.
3.2. 포스팅 시스템, FA를 통한 진출
두번째는 KBO 리그에 입단한 후 FA 연차 7시즌을 채우고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거나 FA 연차를 모두 채운 후 FA를 통해 MLB에 진출하는 방법이다. 류현진이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특급 대우를 받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자 각광받은 방법으로, 이후 강정호, 박병호, 김광현, 김하성이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한다. 김현수, 양현종의 경우에는 FA 연차를 모두 채우고 자유계약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케이스.비록 KBO 리그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기에 전자의 방법보다 메이저리그 데뷔가 늦을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볼 때 전자보다 안전한 방법으로 여겨진다. 류현진이나 김하성처럼 리그에 데뷔하자마자 만 25세 시즌까지 리그 S급 성적을 매년 찍고 올림픽 메달, 아시안게임 금메달 등으로 병역이 해결되어 포스팅 시스템으로 진출하는 방법이 가장 이상적인 방법으로, 이도 엄청나게 낮은 확률이긴 하나 전혀 불가능하지 않은 방법인 것은 확실하다.
사실 냉정하게 볼 때 한국인 유망주 중 메이저리그 주전급인 선수는 몇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수준이다. 그런 극소수의 확률에 야구 인생을 내맡기는 것보다는 한국에서 안정적으로 실력을 쌓은 후 실력이 된다면 메이저리그 진출을 도전할 수 있고, 비록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실력이 안 된다고 하더라도 그럭저럭 KBO 리그에서 주전을 할 실력이 된다면 보다 편한 환경에서 고연봉을 받으면서 안정적인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는 후자의 방법이 더 안정적인 것이다. MLB 구단들은 과거와는 달리 국제 유망주 계약에 쓸 수 있는 금액이 제한되어 중남미 지역 외의 유망주에게 계약금을 퍼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며[20] 이마저도 고액 계약은 야수들에게 치우쳐 있고 평가가 떨어지는 선수들에게는 낮은 금액만 줄 뿐이다.[21] 여기에 각종 부대 비용이 빠지기 때문에[22] MLB에 데뷔해 풀 타임으로 뛰지 않는 이상 금전적인 이득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여전히 대한민국이 징병제 국가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기나긴 마이너리그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20대 중반이 되어 버리면 바로 병역문제가 걸림돌이 되어 국내로 돌아오는 사례 때문에라도 아무리 뛰어난 재능이라도 메이저리그에 직행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인식이 자리잡히고 있다.
한 가지 예로 이학주는 김상수, 안치홍, 오지환, 허경민 등 동년배 유격수 유망주 경쟁자들과는 달리 국제 아마추어 자유계약을 통해 해외 진출을 했는데, 결국 부상과 부진 등으로 실패하고 2년 유예를 거친 후 만 29세가 되어서야 KBO 리그로 왔으며, 다른 동기들이 FA로 거액을 만질 때 별도 계약금 없이 최저 연봉을 받고 첫 시즌을 뛰어야 했다. 5년차로 접어 든 2023년 연봉은 7,200만 원에 불과하며 퍼포먼스 옵션을 채워도 최대 1억이 안 된다. 이학주가 이들 중 가장 잠재력이 뛰어나다고 평가받은 것을 고려하면 메이저리그 진출 실패의 대가로 금전적으로나 커리어로나 막대한 손해를 본 것. 물론 이학주는 기대치에 걸맞은 성장세를 보이며 콜업을 눈앞에 둔 상태에서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중상을 당해 커리어가 꼬인거라 불운하기도 했지만.[23] 일본프로야구에서 두 시즌을 보내면서 한국 돈으로 5억이 넘는 연봉을 받았던 이대은 역시 위와 같은 문제 때문에 미국 재진출설을 흘리는 등 간을 지속적으로 보다가 결국 KBO 리그에서 뛰는 길을 택했다. 이대은은 불과 3년 만에 은퇴를 택했고 뒤에 금전적인 문제로 은퇴를 택했음을 시인했다.
4. 한국인 메이저리거 명단(데뷔순)
나무위키에 개설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 진출한 선수 명단이다.이름이 굵게 표시된 선수는 MLB 26인 현역 로스터에 포함된 한국인 선수다. 이들에 대한 세부 사항은 현역 메이저리그 진출 선수 참조
순번 | 이름 | MLB 데뷔일 | 데뷔 당시 소속팀 | 비고 |
1 | 박찬호(투) | 1994년 4월 8일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거 한국인 최초 MLB 올스타 선정 아시아 출신 메이저리거 최다승 투수[24] 한국인 최초 MLB 규정이닝을 충족한 투수 한국인 최초 MLB FA자격 취득 (5년 6500만불) 한미일 1군에서 모두 뛰어본 4번째 선수[25] |
2 | 조진호(투) | 1998년 7월 4일 | 보스턴 레드삭스 | |
3 | 김병현(투) | 1999년 5월 29일 |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 한국인 최초 월드 시리즈 우승 경험 선수 아시아인 최초 MLB 양대리그 우승 경험 선수[26] 아시아인 최초 월드 시리즈에 등판한 선수 한국인 역대 2번째 MLB 올스타 선정 |
4 | 이상훈(투) | 2000년 6월 29일 | 보스턴 레드삭스 | 한미일 1군에서 모두 뛰어본 최초의 선수 |
5 | 김선우(투) | 2001년 6월 15일 | 한국인 유일의 쿠어스필드 완봉승에 성공한 선수 | |
6 | 봉중근(투) | 2002년 4월 23일 |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 아마추어 시절에는 야수였으나 메이저리그에 가서 투수로 전향[27] |
7 | 서재응(투) | 2002년 6월 21일 | 뉴욕 메츠 | 두 번째로 MLB 규정이닝을 충족한 한국인 투수 |
8 | 최희섭(내) | 2002년 9월 3일 | 시카고 컵스 | 최초의 한국인 메이저리그 야수 한국인 유일의 MLB 올스타전 홈런더비 참가 경험 |
9 | 백차승(투) | 2004년 8월 8일 | 시애틀 매리너스 | 2005년에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시민권 취득 (법적인 처벌은 못하지만) 병역법 위반 상태 |
10 | 구대성(투) | 2005년 4월 4일 | 뉴욕 메츠 | 한미일 1군에서 모두 뛰어본 2번째 선수 |
11 | 추신수(외) | 2005년 4월 21일 | 시애틀 매리너스 | 한국인 메이저리거 최초 규정타석 충족 타자 한국인 MLB WAR 통산 1위, 단일시즌 1위 한국인 MLB FA 최고액 보유자(7년 1억3000만불) 한국인 역대 3번째 MLB 올스타 아시아인 MLB WAR 통산 3위[28] 아시아인 MLB 최초의 20-20클럽 가입자[29] 아시아인 MLB 홈런 통산 2위[30] 아시아인 최초의 사이클링 히트 기록 보유자[31] 텍사스 레인저스 구단 연속경기 출루 기록 보유자 |
12 | 류제국(투) | 2006년 5월 14일 | 시카고 컵스 | |
13 | 류현진(투) | 2013년 4월 2일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 최초로 KBO 리그의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MLB에 진출한 선수 최초로 메이저 리그로 직행한 KBO 선수 한국인 최초로 월드 시리즈 선발 등판한 투수 한국인 최초로 MLB 올스타전 선발 등판한 투수 아시아인 최초로 MLB에서 ERA 타이틀 홀더가 된 선수 아시아인 최초로 사이 영 상 1위 득표 획득 아시아인 최초로 워렌 스판 상 수상 아시아인 역대 좌완 투수 MLB WAR 통산 1위 아시아인 4번째로 사이 영 상 득표 3위 이상 등극[32] |
14 | 임창용(투) | 2013년 9월 7일 | 시카고 컵스 | 한미일 1군에서 모두 뛰어본 5번째 선수 |
15 | 강정호(내) | 2015년 4월 8일 | 피츠버그 파이리츠 | 최초로 KBO 리그의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MLB에 진출한 야수 한국 리그에서 타리그를 거치지 않고 미국으로 건너간 첫 야수 |
16 | 오승환(투) | 2016년 4월 3일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토론토 블루제이스 이적으로 한-미-일-캐 4개국팀 1군에서 뛴 첫 선수 최초로 한미일 각각 시즌 평균자책점 1점대를 기록한 선수[33] |
17 | 박병호(내) | 2016년 4월 4일 | 미네소타 트윈스 | |
18 | 이대호(내) | 시애틀 매리너스 | 한미일 1군에서 모두 뛰어본 7번째 선수 한미일 1군에서 각각 시즌 두자릿수 홈런을 기록한 최초의 선수 | |
19 | 최지만(내) | 2016년 4월 5일 |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 한국인 메이저리거 최초 금지약물 적발(2014) 한국인 야수 최초 월드시리즈 진출 |
20 | 김현수(외) | 2016년 4월 10일 | 볼티모어 오리올스 | |
21 | 황재균(내) | 2017년 6월 28일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
22 | 김광현(투) | 2020년 7월 24일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
23 | 김하성(내) | 2021년 4월 2일 |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 한국인 메이저리거 2번째 규정타석 충족 타자 아시아인 내야수 최초 골드 글러브 수상 |
24 | 양현종(투) | 2021년 4월 26일 | 텍사스 레인저스 | 한국인 메이저리거 데뷔 선발 최다 탈삼진 기록[34] |
25 | 박효준(전) | 2021년 7월 16일 | 뉴욕 양키스 | |
26 | 배지환(전) | 2022년 9월 23일 | 피츠버그 파이리츠 | |
27 | 이정후(외) | 2024년 3월 29일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역대 아시아 야수 포스팅 최고액 경신[35] 한국인 메이저리거 데뷔시즌 최장 경기연속 안타[36] |
- 당시 40인 로스터에는 포함됐으나, 실제 MLB 경기를 뛰지 않은 비 26인 로스터는 제외된 명단이다.
5. 역대 소속 구단별 선수
5.1. 내셔널 리그
5.1.1. 동부 지구
<rowcolor=#fff> 팀명 | 소속 한국인 |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 봉중근 (2002~2003) |
마이애미 말린스 | 최희섭 (2004) 김병현 (2007) |
뉴욕 메츠 | 서재응 (2002~2005) 구대성 (2005) 박찬호 (2007) |
필라델피아 필리스 | 박찬호 (2009) 김현수 (2017) |
워싱턴 내셔널스 | 김선우 (2002~2005) |
5.1.2. 중부 지구
<rowcolor=#fff> 팀명 | 소속 한국인 |
시카고 컵스 | 최희섭 (2002~2003) 류제국 (2006) 임창용 (2013) |
신시내티 레즈 | 봉중근 (2004) 김선우 (2006) 추신수 (2013) |
밀워키 브루어스 | 최지만 (2018) |
피츠버그 파이리츠 | 박찬호 (2010) 강정호 (2015~2019) 박효준 (2021~2022) 배지환 (2022~) 최지만 (2023)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오승환 (2016~2017) 김광현 (2020~2021) |
5.1.3. 서부 지구
<rowcolor=#fff> 팀명 | 소속 한국인 |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 김병현 (1999~2003, 2007) |
콜로라도 로키스 | 김병현 (2005~2007) 김선우 (2005~2006) 오승환 (2018~2019)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 박찬호 (1994~2001, 2008) 최희섭 (2004~2005) 서재응 (2006) 류현진 (2013~2019) |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 박찬호 (2005~2006) 김하성 (2021~) 최지만 (2023)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황재균 (2017) 이정후 (2024~) |
5.2. 아메리칸 리그
5.2.1. 동부 지구
<rowcolor=#fff> 팀명 | 소속 한국인 |
볼티모어 오리올스 | 김현수 (2016~2017) |
보스턴 레드삭스 | 조진호 (1998~1999) 이상훈 (2000) 김선우(2001~2002) 김병현 (2003~2004) |
뉴욕 양키스 | 박찬호 (2010) 최지만 (2017) 박효준 (2021) |
탬파베이 레이스 | 서재응 (2006~2007) 류제국 (2007~2008) 최지만 (2018~2022) |
토론토 블루제이스 | 오승환 (2018) 류현진 (2020~2023) |
5.2.2. 중부 지구
<rowcolor=#fff> 팀명 | 소속 한국인 |
시카고 화이트삭스 | 없음[37] |
클리블랜드 가디언스 | 추신수 (2006~2012)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 없음[38] |
캔자스시티 로열스 | 없음[39] |
미네소타 트윈스 | 박병호 (2016) |
5.2.3. 서부 지구
<rowcolor=#fff> 팀명 | 소속 한국인 |
휴스턴 애스트로스 | 없음[40] |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 최지만 (2016) |
애슬레틱스 | 없음[41] |
시애틀 매리너스 | 백차승 (2004) 추신수 (2005~2006) 이대호 (2016) |
텍사스 레인저스 | 박찬호 (2002~2005) 추신수 (2014~2020) 양현종 (2021) |
6. 연도별 선수
- 실제 경기 기록이 한 경기라도 있는 연도만 기재하며 한 연도에 여러 팀에 소속되었을 경우, 모두 기재.
1994-1997 시즌 | |||
No.61 | |||
박찬호 | |||
1998 시즌 | |||
No.61 | No.61 | ||
박찬호 | 조진호 | ||
1999 시즌 | |||
No.61 | No.61 | No.49 | |
박찬호 | 조진호 | 김병현 | |
2000 시즌 | |||
No.61 | No.49 | No.40 | |
박찬호 | 김병현 | 이상훈 | |
2001 시즌 | |||
No.61 | No.49 | No.62 | |
박찬호 | 김병현 | 김선우 | |
2002 시즌 | |||
No.61 | No.49 | No.47 | No.31 |
박찬호 | 김병현 | 김선우 | 김선우 |
No.30 | No.38 | No.19 | |
봉중근 | 서재응 | 최희섭 | |
2003 시즌 | |||
No.61 | No.49 | No.51 | No.31 |
박찬호 | 김병현 | 김병현 | 김선우 |
No.51 | No.40 | No.19 | |
봉중근 | 서재응 | 최희섭 | |
2004 시즌 | |||
No.61 | No.51 | No.31 | No.31 |
박찬호 | 김병현 | 김선우 | 봉중근 |
No.26 | No.25 | No.5 | No.32 |
서재응 | 최희섭 | 최희섭 | 백차승 |
2005 시즌 | |||
No.61 | No.61 | No.49 | No.31 |
박찬호 | 박찬호 | 김병현 | 김선우 |
No.51 | No.26 | No.5 | No.17 |
김선우 | 서재응 | 최희섭 | 구대성 |
No.54 | |||
추신수 | |||
2006 시즌 | |||
No.61 | No.48 | No.51 | No.64 |
박찬호 | 김병현 | 김선우 | 김선우 |
No.26 | No.40 | No.17 | No.16 |
서재응 | 서재응 | 추신수 | 추신수 |
No.20 | |||
류제국 | |||
2007 시즌 | |||
No.61 | No.49 | No.49 | No.38 |
박찬호 | 김병현 | 김병현 | 김병현 |
No.32 | No.23 | No.40 | No.17 |
김병현 | 김병현 | 서재응 | 추신수 |
No.11 | |||
류제국 | |||
2008 시즌 | |||
No.61 | No.17 | No.11 | |
박찬호 | 추신수 | 류제국 | |
2009 시즌 | |||
No.61 | No.17 | ||
박찬호 | 추신수 | ||
2010 시즌 | |||
No.61 | No.61 | No.17 | |
박찬호 | 박찬호 | 추신수 | |
2011-2012 시즌 | |||
No.17 | |||
추신수 | |||
2013 시즌 | |||
No.17 | No.99 | No.12 | |
추신수 | 류현진 | 임창용 | |
2014 시즌 | |||
No.17 | No.99 | ||
추신수 | 류현진 | ||
2015 시즌 | |||
No.17 | No.99 | No.27 | |
추신수 | 류현진 | 강정호 | |
2016 시즌 | |||
No.17 | No.99 | No.27 | No.26 |
추신수 | 류현진 | 강정호 | 오승환 |
No.52 | No.10 | No.25 | No.51 |
박병호 | 이대호 | 김현수 | 최지만 |
2017 시즌 | |||
No.17 | No.99 | No.26 | No.25 |
추신수 | 류현진 | 오승환 | 김현수 |
No.31 | No.36 | No.1 | |
김현수 | 최지만 | 황재균 | |
2018 시즌 | |||
No.17 | No.99 | No.16 | No.18 |
추신수 | 류현진 | 강정호 | 오승환 |
No.25 | No.26 | No.22 | |
최지만 | 최지만 | 오승환 | |
2019 시즌 | |||
No.17 | No.99 | No.16 | No.18 |
추신수 | 류현진 | 강정호 | 오승환 |
No.26 | |||
최지만 | |||
2020 시즌 | |||
No.17 | No.99 | No.26 | No.33 |
추신수 | 류현진 | 최지만 | 김광현 |
2021 시즌 | |||
No.99 | No.26 | No.33 | No.7 |
류현진 | 최지만 | 김광현 | 김하성 |
No.36 | No.98 | No.68 | |
양현종 | 박효준 | 박효준 | |
2022 시즌 | |||
No.99 | No.26 | No.7 | No.44 |
류현진 | 최지만 | 김하성 | 박효준 |
No.71 | |||
배지환 | |||
2023 시즌 | |||
No.99 | No.91 | No.91 | No.7 |
류현진 | 최지만 | 최지만 | 김하성 |
No.3 | |||
배지환 | |||
2024 시즌 | |||
No.7 | No.3 | No.51 | |
김하성 | 배지환 | 이정후 |
현역 한국인 메이저리거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No. | No.3 | No.51 | ||
김하성 | 배지환 | 이정후 | |||
▶ 현역 한국인 마이너리거 |
7. 관련 문서
- KBO 리그/리그 수준 차 논쟁: 박찬호의 메이저 리그 진출 이후 한국 야구 팬들의 메이저리그에 대한 관점 변화, 리그간 수준 차와 메이저 리그 도전자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들어 있다.
- 일본인 메이저리거
[1] 이원국은 멕시코 리그에서, 박철순은 밀워키 브루어스에서 최종적으로 활약하고 각각 1983년, 1982년에 한국으로 리턴했다.[2] 당시 메이저리그 1라운드 최상위 계약금은 약 10만달러 초반[3] 현행 법령은 병역특례(예술체육요원)시 4주 기초군사훈련 이수 및 2년 10개월 동안 국내든 해외든 해당 분야에 종사하도록 되어 있지만 1980년대에는 해당 분야에 5년 동안 국내에서만 활동해야 했다.[4] 선동열 또한 뉴욕 양키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서 계약금 50만달러에 오퍼를 받았다는 얘기가 있으나 당시 기사와 계약 문서가 메이저리그 오퍼 증거로 있는 최동원에 비해 선동열은 그런 증거를 해외에서도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에 신빙성이 현격히 떨어진다. 또한 당시 메이저리그 1라운드 최상위 계약금이 10만달러 초반이 였는데 그 네배에 달하는 액수를 오퍼 받았다고 하니 더더욱 신빙성이 떨어진다.[5] 참고로 2003년 치열한 홈런 경쟁을 벌였던 심정수와 함께 플로리다 말린스 스프링캠프에 초청되기도 했다.[6] 만약 커리어 하이 시즌이었던 2006년 이후 300억을 포기하고 메이저리그에 도전했어도 잘쳐야 2016시즌의 이대호처럼 됐을 확률이 높다. 1루수라는 포지션과 당시 이승엽 나이는 30대 중반을 향하고 있던 만큼 기회를 받기 힘들었을 거라는 게 중론이다.[7] 이때 볼티모어에서는 정대현의 건강 상태를 숨겨주려고 '아내가 반대해서'라는 이유로 계약 무산을 발표했는데, 이 때문에 엄한 정대현의 아내가 남편 앞길을 막았다며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미국과 한국의 문화 차이 때문에 생긴 촌극.[8] 강정호 이전의 역대 한국인 메이저리거는 14명이었는데 그 중 투수가 12명이었고 야수는 추신수와 최희섭 딱 2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강정호의 진출 이후에는 12명 중에서 오히려 투수는 3명 뿐이고 나머지 9명은 야수로 상황이 역전됐다.[9] 박병호와 김현수만이 KBO 리그에서 직행한 것이고 오승환과 이대호는 모두 일본에서 뛰다가 미국으로 향한 것이다.[10] 2006년 이후 10년 동안 고졸 선수 중 최지만 혼자 콜업됐을 정도로 실패하는 사례가 많았다. 기대를 모았던 이학주는 부상으로 KBO의 삼성 라이온즈에 복귀 했으며 이대은, 하재훈은 각각 kt wiz와 SK 와이번스의 지명을 받아 복귀한다.[11] 2019년 5월 초에 면제라는 기사가 떴으나 최지만 본인의 입이 아닌 김경문 국가대표팀 감독에게서 나온 말이라 정확한 사정은 알기 어려웠고 최종적으로 면제가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12] 데뷔 후 6년 동안 네 시즌밖에 채우지 못했다. 동년배인 이정후, 강백호, 고우석 등이 나란히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었고 이정후와 강백호는 예술체육요원 자격을 얻었지만 안우진은 고교생 시절 저지른 학교폭력 사건의 영향 때문에 대한체육회의 징계를 받아 국가대표 선발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었다. 결국 안우진은 2023 시즌 도중 토미 존 수술을 받았고 사회복무요원으로서 병역을 이행하게 됐으며 복귀 후 세 시즌을 더 채워야 한다.[13] 박찬호의 입단 계약금은 120만 달러(당시 약 9억 4600만 원 상당)로, 당시 초특급 유망주였던 롸동자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150만 달러(당시 약 11억 8300만원 상당)를 받고 시애틀 매리너스에 입단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박찬호도 엄청난 계약금을 받고 메이저 리그에 진출한 것이다. 박찬호의 당시 계약금이 9억 5000만 원 좀 안 되는 금액인데 2021년 현재 20억의 가치로 요즘도 KBO 리그 구단들이 초특급 신인에게 저 정도의 금액으로 계약금으로 제시하는 게 전무할 정도로 엄청난 금액이다. 참고로 KBO 리그 역대 최고 신인 계약금은 2006년 한기주의 10억으로 15년이 지난 현재도 깨지지 않고 있는 기록이다.[14] 해당 선수의 연령이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반생들로, 국내로 복귀해서 통산 100승을 올린 송승준이나 마무리와 선발을 오고가며 에이스 역할을 했던 봉중근 등이 대표적인 사례.[15] 메이저 리그에서는 기본적으로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남미 출신 유망주를 찾는데, 그런 중남미 국가에서도 유망주들이 메이저 리그에 연착륙할 수 있도록 야구 아카데미를 운영해 야구 기술은 물론 언어와 문화를 가르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문제는 그런 유망주들이 마이너 리그에서 처절한 실패를 겪을 때인데, 결국 이도저도 아닌 유망주들은 미국에서 하층민이 되거나 갱단에 몸을 담는 경우도 적지 않게 있다. 이는 종목을 축구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는 현상으로, 미국을 유럽으로, 중남미를 아프리카로 치환하면 똑같은 현상이 유럽 내에서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16] 계속 뛰기 위해서는 규제 대상이 아닌 호주 리그 등에서 뛰거나 독립 리그(프로와 아마추어 사이에 어중간하게 걸친 경우가 대부분이라 정식 프로 리그로 간주하지 않는다)에서 뛰는 방법 말고는 없다. 대부분의 선수는 이 기간을 병역 의무 수행으로 채우는데 상무 입대도 가능하긴 하지만 퓨처스리그 출전은 불가능해 사실상 상무 합격은 불가능 하다. 국가대표에서 뛴 경우는 예외지만 현실적으로 이들이 대표팀에 발탁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대은이라는 예외가 있긴 했지만.[17] 2012년 김성민의 경우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대한야구협회의 규정을 무시한 접촉으로 인해 무기한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지만, 2014년에 해당 징계가 철회됐다. 위의 규정 때문에 김성민은 2013년 일본대학야구로 진출하여 졸업시즌인 2016년에 신인드래프트에서 SK 와이번스의 지명을 받게 된다.[18] 드래프트 당시에는 규약 개정 전이었으나 미국 팀과의 계약이 규약 개정 후인 신우열과 최병용의 경우는 미지수.[19] 빅효준보다 한참 잘 풀린 선수의 예를 들자면 2023년 오프시즌 기준 약 161억원 정도를 번 최지만이 있다. 그러나 이 최지만의 통산 연봉조차도 미국에서 대차게 실패한 박병호보다 10% 정도 낮다. 물론 최고 세율이 미국은 한국보다 10% 이상 낮으니 세후 실수령액은 둘이 별반 차이가 없거나 최지만이 오히려 더 많이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 차이가 미미하다는 점에서 미국 직행을 해서 꽤 잘 풀린 선수도 KBO의 스타플레이어보다 돈을 더 버는 것이 아니라는 현실을 실감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게다가 최지만은 약물 복용 적발이라는 지울 수 없는 흠이 있어서 더 이상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20] MLB 스카우트들의 국제 계약 우선 순위는 도미니카공화국, 베네수엘라, 쿠바 등 중남미 지역 유망주이며 아시아권(주로 한국과 대만. 일본은 고교 졸업 후 미국으로 직행하는 사례가 극히 드물다.)은 후순위이다.[21] 심준석이 기대치에 못 미치는 금액(추정 75만 달러)에 계약한 것은 2, 3학년 때의 연이은 부상 및 부진으로 평가가 내려간 것도 있지만 국제 유망주 계약의 특성도 크게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22] 미국은 물가가 비싼 축에 속하며 공공복지가 매우 취약한 나라다. MLB 사무국 차원에서 어느 정도 챙겨 주고는 있지만.[23] 야구에 만약이란건 없다지만 이학주가 2013년에 트리플A로 승격되어 좋은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빠르면 2013년, 혹은 2014년 정도에는 메이저리그 무대에 데뷔할 수 있었다. 그렇게되면 마이너에서 5시즌 가량 육성하고 만 22~23세에 빅리그에 데뷔하는건데 이정도면 메이저 리그 기준으로는 그닥 늦지도 않다. 물론 그동안 90년생 동기들 중에서 이미 KBO에서 스타가 된 선수들도 있었으니 결국 본인의 선택이고 결과론적으로는 아쉬울 따름이지만.[24] 124승[25] 메이저구단들-오릭스-한화 순이며, 한화 입단이 2012년이라 한국인 선수 순서상 3번째지만, 2008년 우리 히어로즈에서 뛰었던 다카쓰 신고의 존재로 4번째 선수가 맞다.[26] 보스턴 이적 후 한 번 더 우승[27] 여담으로 그때 스즈키 이치로를 존경해서 등번호 51번을 달았다고 한다.[28] 1위 스즈키 이치로, 2위 오타니 쇼헤이[29] 통산 3회, 오타니 쇼헤이가 2회 기록중[30] 1위 오타니 쇼헤이[31] 오타니 쇼헤이와 더불어 유일한 2인[32] 2019년 NL 2위, 2020년 AL 3위[33] 2014년 한신 타이거즈 66.2이닝 1.76, 2016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79.2이닝 1.92[34] 8K[35] 6년 1억 1,300만달러(약 1,500억원). 한국인 선수 중에서는 류현진의 포스팅 금액 6년 3,600만달러를 가뿐히 넘어선 것은 물론, 스즈키 세이야의 5년 8,500만달러, 요시다 마사타카의 5년 9,000만 달러(약 1,170억 원)를 경신했다.[36] 11경기 연속 안타[37] 이만수가 불펜 포수로 소속되어 있었다. 2000년에는 소속 팀의 트레이드 과정에서 포수 엔트리에 결원이 생기자 메이저리그 선수로 등록되기도 하면서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등록된 야수가 되었다.[38] 이 팀은 한국인 메이저리거 뿐 아니라 마이너리거 조차 경기에 뛴 선수도 없다. 이원국이 룰5 드래프트 마이너리그 페이즈에서 디트로이트에 지명되어 한국인이 잠시 소속된 적은 있었다.[39] 신진호가 2010년부터 뛰었으나 싱글A 레벨에서 머물다 2015년에 방출되었고, 진우영이 마이너리그 소속으로 뛰었으나 2021년 9월 17일 방출되었다. 2023년부터는 엄형찬이 마이너리그에서 뛸 예정이다.[40] 문찬종이 2010년부터 2016년까지 마이너리그에 속해 있었으나 메이저리그 데뷔는 하지 못했다.[41] 김성민이 마이너리그에 속해 있었으나 2015년을 끝으로 방출되었고, 2024년 현재 박효준이 마이너 계약으로 합류해 뛰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