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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이우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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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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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이우 전투
Бої за Київ[우]
Битва за Киев[러]
Battle of Kyiv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일부
2022년 2월 24일 ~ 4월 2일
장소
우크라이나 키이우주 일대
교전국

[[우크라이나|
파일:우크라이나 국기.svg
우크라이나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러시아|
파일:러시아 국기.svg
러시아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지휘관
파일:우크라이나 국기.svg 볼로디미르 젤렌스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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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Z 티그르-M 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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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
우크라이나군의 승리
영향
수도 키이우 사수 성공, 북부 전선 전황 역전 성공

1. 개요2. 배경3. 전개
3.1. 2월3.2. 3월3.3. 4월3.4. 6월3.5. 10월3.6. 12월
4. 러시아군의 패인
4.1. 러시아 내부의 반발 여론4.2. 우크라이나의 격렬한 저항4.3. 러시아의 부족한 전쟁 명분4.4. 러시아군의 보급난4.5. 러시아군의 전술적 실수 4.6. 시가전의 어려움4.7. 키이우의 상징성
5. 평가

[clearfix]

1. 개요

키이우 전투/키예프 전투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개전일인 2022년 2월 24일부터 2022년 4월 2일까지 벌어졌던 전투다. 우크라이나수도 키이우(키예프)[11] 점령을 시도하는 러시아군과 이를 방어하는 우크라이나군 사이에서 전투가 발생했다.

당초 러시아군이 불과 개전 9시간 만[12][13]에 키이우 북부 지역에 도달하면서, 키이우가 아무리 오래 버텨도 며칠에서 일주일 안에는 함락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수반이 모두 키이우에 남았고, 이에 우크라이나군과 키이우 시민들도 격렬하게 저항하면서 키이우 시 외곽에서 진격이 정지되었으며, 심지어 전 대통령인 페트로 포로셴코와 키이우의 시장인 비탈리 클리츠코까지 직접 총을 들고서 저항했다.

운명의 첫 주가 지난 후에는 전선이 교착화되었고, 러시아군의 산발적인 포격과 공습이 이루어지면서 첫 주만큼의 대규모 지상전은 발생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시 외곽에서는 여전히 치열한 전투가 다수 진행되었고, 러시아군이 지속적으로 키이우에 게릴라 공격[14]을 시도하였으나 대부분 실패하였다. 그리고 3월 셋째 주부터는 우크라이나군이 일부 부대들을 포위하는 등 역공을 가하면서 반격의 조짐을 보였다.

그리고 4월 2일, 러시아군이 키이우의 점령을 포기하고 동부, 남부 전선에 전력을 집중하도록 전략을 수정하면서 키이우와 근교 지역에서 모든 러시아군이 철수하였다.[15] 이로써 키이우 전투는 우크라이나의 승리로 종료되었다.[16]

2. 배경

일반적이었다면 러시아에서 서쪽으로 꽤 떨어진 키이우가 전쟁 개시와 동시에 최전선이 되지는 않았겠으나, 벨라루스가 러시아군에게 국경을 열어줬기 때문에 벨라루스 국경에서 불과 90㎞ 거리밖에 안되는 키이우가 개전일부터 최전선이 되었다.

키이우는 우크라이나의 수도이며 러시아라는 국체의 발상지이다. 게다가 다른 지역은 몰라도 수도만큼은 점령해야 전쟁을 원하는 대로 끝낼 수 있다.[17] 이것 때문에 러시아가 다른 전선보다도 키이우 쪽에 병력을 제일 많이 투입한 것이다. 실제로 전쟁 발발 직후 바실리 네벤자 러시아 대사는 러시아가 공격하는 목적은 키예프에서 권력을 차지한 괴뢰 정부("the junta that is in power in Kiev")를 몰아내는 것이라고 공식 석상에서 발언했고, 미국 ISW에서도 키이우 전선을 주공으로, 나머지 전선을 조공으로 평가했다.

3. 전개

3.1. 2월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2월 24일
러시아군의 공수부대가 키이우 외곽에 위치한 호스토멜 공항을 점령하기 위해 투입되었다.# 공수부대는 빠르게 공항을 장악하였으나 곧 우크라이나 육군의 제4신속대응여단의 강력한 반격에 부딪혔다. 공수부대를 지원할 병력이 예상보다 지연되는 상황에 빠지면서 이후 버틸 수 없었는지 우크라이나 정부 측은 러시아군 공수부대가 후퇴했다고 전했다. 사실상 전쟁 초부터 마켓 가든 작전과 같은 양상을 띄기 시작했다. 이후 벨라루스와 접경한 북쪽 국경에서 러시아군 기갑부대가 키이우를 노리고 진격하면서 본격적인 지상전이 시작되었다. 이들 중 일부는 체르노빌을 큰 손실 없이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러시아군은 키이우에 위치한 또다른 공항인 보리스필 국제공항탄도 미사일순항 미사일을 이용해 공격했다.기사 또한 도심에도 폭격이 가해졌으며, 키이우 저수지에 추가적으로 러시아군 공수부대가 강하했다.

이후 러시아군이 개전 9시간 만에 키이우 북부로 접근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으나 하루가 지난 25일, 우크라이나군의 완강한 저항에 가로막혀 러시아군의 키이우 조기 점령 시도는 무산되었다.

또한 젤렌스키 대통령이 후일 밝힌 바에 따르면 러시아군 특수부대가 키이우 대통령궁을 습격하는 참수작전을 시도했으나 경호 병력이 청사 입구에서 총격전을 벌여 격퇴했다고 한다.#

3.2. 3월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3월 1일
전쟁 이전에는 우크라이나가 이렇게 오래 버틸 수 있으리라 예상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기적과도 같이 나흘 이상 러시아의 전면적 공세를 막아내면서 러시아가 지난 2008년 순조롭게 승리한 남오세티야 전쟁이 나흘 걸린 것과 비교된다. 이쯤 되면 오히려 러시아가 당황할 정도로 우크라이나의 방어가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러시아는 당초 계획한 바와 다르게 조기에 수도를 점령하지 못하자 핵 투하라는 옵션을 꺼내 들었지만, 군사력이 2위인 러시아가 고작 우크라이나를 꺾지 못한다고 핵을 투하한다는 건 오히려 스스로 전쟁에 패했다고 자인하는 것으로 평가해도 무리가 없다. 장기전으로 가면 러시아가 불리하기에 군대를 수도로 집중하는 모습이 확인되었다.
파일:SSI_20220307225008_O2.jpg}}} ||

키이우 인근 이르핀에서 피난하던 일가족 4명 중 3명이 러시아군의 박격포 포격으로 사망하였다. 뉴욕타임즈는 사망한 일가족 사진을 1면 표지에 올렸는데 널브러진 일가족 시신들 사이에 있는 애견 이동용 케이지가 시선을 끈다. 시신 사진이 일간지에 그것도 1면에 올라오는 일은 드문 경우이다. #1#2#3
파일:AKR20220310147100009_03_i_P4.jpg}}} ||

3.3.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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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군이 무려 붉은 숲에 주둔하고 참호를 파는 짓을 한 탓에 방사능에 심각하게 오염됐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 벨라루스 쪽으로 퇴각한 탓에 벨라루스인들이 방사능 노출에 위협을 받고 있다. 러시아군 장비들과 병력들 모두 오염된 상태에서 후퇴하니 엄청난 피해가 예상될 수밖에 없으며 계속해서 후퇴한다면 북서부 쪽은 완전히 몰아낼 수 있어 보이는 상태다.
* 이반키우가 해방되었다. 교통 요지를 차지한 것은 물론, 지역주민들도 해방시켰다. # #
파일:환호하는 이반키우 주민들.jpg
<rowcolor=#fff> 우크라이나의 탈환에 환호하는 이반키우의 주민들
파일:FPQcEXZaAAEZeAS.jpg
<rowcolor=#fff> 현지 날짜 4월 1일 기준 키이우-체르니히우 전선 지도

3.4. 6월

3.5. 10월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기반시설 폭격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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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12월

4. 러시아군의 패인

4.1. 러시아 내부의 반발 여론

푸틴은 제2차 체첸 전쟁에서의 승전으로 인기를 끌면서 대통령에 오른 인물이며, 집권 이후에도 조지아를 상대로 한 남오세티야 전쟁시리아 내전 개입에서 좋은 성과를 올리고 유로마이단에 반발한 크림 반도 주민들을 끌여들여 크림 반도를 편입시키는 행적으로 본인의 지지율을 높게 유지했다. 따라서 이번에도 빠른 속도로 진격해 수도인 키이우를 점령함으로써 내부 결속을 다지고 지지율을 다시 상승시킬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격렬한 저항 때문에 러시아군의 피해가 생각 외로 커진 상황에서, 러시아는 키이우를 최대한 빨리 점령해야 승전을 주장할 최소한의 명분을 얻을 수 있다.

또한 러시아 시민들도 당초 국지전 수준에 그칠 것으로 생각했지만, 푸틴이 전면전을 일으켜서 징집병들도 전장에 끌려갈 지경이 되자[24] 친푸틴 인사들도 전쟁에 반발하는 성명을 잇따라 내는 등 반전 여론이 고조되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아예 탄핵 서명 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에 푸틴은 러시아 방송 매체에서 일방적으로 러시아군에게 유리한 내용만 발표하고 반정부 언론과 서방 언론을 통제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러시아 본국에서는 진짜로 전면전이 아니라 국지전 정도로 아는 사람이 많아서 전쟁 찬성 여론이 높은 편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에 친구나 친척을 둔 러시아인들이 워낙 많은 데다가, 2014년 크림 반도 병합 당시와는 달리 여론이 미묘하게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4.2. 우크라이나의 격렬한 저항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점령하면 친러 정권을 세우는 한편 부차 학살 등 가는 곳마다 학살을 저지른 사례에서 보듯이 반러 인사들에 대한 대규모 숙청을 자행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25] 우크라이나의 민·관·군이 힘을 합쳐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있는 상태다. 게다가 아무리 수도를 점령해도 광활한 우크라이나 전역을 장악하지 않는 이상 전투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게릴라로 항전한 아프가니스탄의 상황과 유사한 것이다.

이미 우크라이나는 국민들에게 화염병을 만들어 직접 싸우라고 독려하는 등 전국민이 반러 감정으로 격앙되어 있으며, 따라서 마지막 순간까지 저항할 가능성이 높다. 그중에서도 특히 우크라이나 서부의 르비우를 비롯한 갈리치아 3주 지역은 전통적으로 반러 성향이 매우 강한 지역들이라 수도가 함락된다고 해도 끝까지 죽기살기로 러시아군에게 맞서싸울 가능성이 크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키이우 함락 및 이후 전쟁에서 완전히 패하면, 러시아군이 한동안 우크라이나에 주둔하며, 친러 괴뢰 정부가 수립되고, 친서방 정책은 자동 폐기되며, 계엄령 상태에서 자유를 통제 당하고, 국민 생활 수준 향상은 기대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3월 3일, 러시아는 평화협의 여부와 관계없이 우크라이나의 군사 시설을 계속 파괴하겠다고 발표하여 사실상 우크라이나를 무장 해제시키겠다고 선언하면서 우크라이나인들의 저항 의지를 더욱 자극했다.#

물론 수도의 상징성이 크기 때문에 수도가 함락된다면 지도부가 다른 곳으로 위치를 옮기지 않는 이상 우크라이나의 저항이 약해질 수 있으나, 이것도 기존에 비해 꺾인다는 것이지 러시아의 행위와 추후에 일어날 일들을 생각해보면 헤어날 수 없는 수렁이 되는 건 마찬가지다.

이미 점령된 지역에서도 우크라이나인들이 시위 및 저항을 지속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러시아군의 병력이 부족한 탓에 점령한 지역을 통제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렇다고 병력을 추가하기엔 보급 능력이 떨어져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며 오히려 게릴라 전술과 기습에 계속해서 노출되는 상황이다. 즉, 주요 도시를 점령해도 완전히 점령할 수 없으며 오히려 병력 부족으로 인해 통제조차 못 하는 수준이라 계속해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점령지를 통제할 병력을 늘리면 반대로 진군할 병력이 줄어드는 등 진퇴양난이라고 볼 수 있다.

심자어 러시아군의 민간인 학살과 약탈로 인해 동남부의 친러 지역들까지 러시아에 등을 돌리면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체를 점령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4.3. 러시아의 부족한 전쟁 명분

러시아군의 기계화 군단과 포병 전력, 항공 전력을 바탕으로 체첸 전쟁 때처럼 열압력 탄두나 소이탄, 백린탄 등을 사용해서 키이우를 갈아버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내부 사정이야 어찌되었든 대외적으로는 테러리스트 소탕과 국내 안정화가 명분이었던 체첸 전쟁과, 일단은 러시아의 평화유지군이 먼저 공격을 당했다는 논리로 전쟁 명분을 정당화했던 러시아-조지아 전쟁 때와는 다르게 현재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는 물론이고 국제사회에서도 명백한 침략자의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량살상무기로 키이우를 공격해서 엄청난 민간인 사상자가 나온다면 우크라이나의 복수심만 불태울 것이고, 국제사회에서 악랄한 전범 국가로 낙인 찍혀 제재의 강도도 높아질 것이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전략 폭격을 감행하는 것은 자칭 "네오나치를 척결하겠다"라는 러시아의 전쟁 명분을 퇴색시켰다.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칠 적절한 명분이 없어서 일부 반데라주의자들의 활동을 부풀려 유대계인 젤렌스키도 네오 나치라며 선동하고 있는데, 젤렌스키는 러시아어를 모어로 사용하여 친러 성향 주민들의 지지를 압도적으로 많이 받아 당선되었다. 그리고 그가 창당한 집권당인 인민의 종도 급진 친서방 정당과 친러 정당 사이의 중간에 위치하는 중도적인 스탠스를 가지고 있었다.

젤렌스키가 미숙한 정치력과 외교력, 구설수로 전쟁 직전에는 지지율이 20~30%대에 머물 정도로 국민들의 신임을 얻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푸틴은 젤렌스키의 반대 세력 중 상당수가 친서방 정당 지지자임을 간과한 채로 어설프게 계략을 짜다 보니 네오 나치라는 말도 안되는 흑색선전을 내세우면서 명분적으로 철저하게 실패한 것이다. 오히려 지금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과거의 나치 독일과 비교되는 경우가 더 많다.[26]

다만 유로마이단 과정에서 스보보다 같은 네오 나치 정당들이 장관직을 차지하는 등 세를 보였던 적이 있었으며, 현재도 우크라이나 의회에서 의석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지나치게 과격한 주장을 하고, 이것이 동부의 친러 세력을 자극하면서 결국 군소 정당으로 전락한 상태이다. 러시아가 이들을 전쟁의 명분으로 삼기에는 근거가 너무 부실했다. 이런 논리라면 러시아에서 극우 정당인 자유민주당이 10%대의 지지율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서 러시아 침공을 감행해도 정당화가 된다.[27]

4.4. 러시아군의 보급난

러시아군의 당초 예상과는 다르게 우크라이나군의 거센 저항으로 애초 계획한 작전 기간보다 시일이 더 오래 걸리게 되면서 보급에 차질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또한 우크라이나 측은 수시로 러시아군 수송대를 습격해 보급을 끊어대는가 하면, 민간인들에게도 이왕 약탈당할 바에야 연료에 설탕을 넣어 못 쓰게 하라고 지침을 내리는 등 보급물자의 현지 조달도 어렵게 만들고 있다.

3월 중순 들어서 라스푸티차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기동이 둔화되 보급의 어려움을 겪고있다. 그렇다고 라스푸티차를 피하기 위해 포장도로에만 의존하기에는 게릴라들의 기습에 매우 취약해진다.

4.5. 러시아군의 전술적 실수


마치 베트남전 당시의 미국처럼 러시아가 자만하다가 오히려 엄청난 피해를 받고 있다.

애초에 러시아군은 남부, 동부, 북부, 3개의 전선에서 동시에 밀고 들어오고, 무엇보다 벨라루스를 우회해서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를 급습하는 계획을 세워 전쟁을 단기간에 끝내려고 했다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개전하자마자 러시아군은 키이우에 도달했고, 무리하더라도 키이우를 점령한 후에 젤렌스키를 생포 혹은 사살하면 승리할 것으로 여겨졌다. 문제는 정작 키이우에서 진격이 막혔고, 참수작전도 경호병력에게 막힌 데다가 수도를 강습할 지원 병력도 호스토멜 공항 전투에서 격퇴되었다는 것. 거기다 젤렌스키는 끝까지 키이우에서 버틴 덕에 러시아의 안일함이 되려 우크라이나의 사기와 국제적 지지만 끌어올려준 셈이 되었다.

4.6. 시가전의 어려움

키이우 정도 규모의 대도시를 완전히 함락하려면 반드시 시가전을 치러야 한다. 하지만 해당 문서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아무리 군사력이 강한 국가라도 대도시에서의 시가전만큼은 최대한 피하려고 한다.[28] 당장 러시아가 겪어봤던 스탈린그라드 전투만 해도 엄청난 출혈이 있었으며[29], 현대전이라 해도 이라크 전쟁팔루자 전투러시아가 고전했던 체첸 전쟁그로즈니 전투도 있다.

게다가 키이우는 도시 규모부터가 팔루자나 그로즈니와는 차원이 다르다. 전쟁 이전 키이우의 인구는 무려 295만 명으로, 팔루자의 27만 명, 그로즈니의 32만 명에 비해 무려 10배 수준이었다.[30] 소련 시절에도 키이우는 인구수 기준 제3의 도시였으며, 이에 걸맞게 소련은 핵전쟁을 상정하고 엄청난 숫자의 벙커지하철역을 포함한 지하 통로를 곳곳에 지어서 키이우를 요새화했다. 그 지하 벙커들이 소련 해체와 함께 우크라이나의 수도가 되면서 박아둔 군수물자들과 함께 고스란히 사용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현재 남아 있는 시민들과 정부, 그리고 군대가 일치단결하여 죽음을 각오하며 항전하고 있으니 러시아군의 인적·물적 손실은 그로즈니 전투가 애교로 보일 정도로 늘어나게 될 것이다.

물론 기존과는 달리 러시아가 대량살상무기들을 대규모로 집결시켰고, 공세 전 이것들을 쓰거나 대규모 포격, 미사일 폭격으로 뭉개고 돌입해 오면 피해가 상당히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독소전쟁 당시 수많은 시가전이 이야기하듯 작정하고 건물을 박살내려 해도 건물은 쉽게 완파되지 않으며, 이런 남겨진 부분과 건물 잔해들은 천연 벙커와 대전차 장애물이 되어 공격 측에게 독으로 작용할 수 있다.

4.7. 키이우의 상징성

상대가 그 러시아군이기도 하다 보니 2차 체첸 전쟁 당시의 그로즈니 시가전 사진을 거론하며 잘못하면 키이우도 이렇게 되는 거 아니냐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다. 그러나 그로즈니와 키이우는 도저히 동일시하기 어렵다. 그로즈니는 고화력 병기로 완전히 도시를 초토화시키고 들어갔지만, 키이우는 그렇게 화력으로 밀어버릴 수가 없었다.

그로즈니는 그 넓다는 러시아에서도 진짜 듣보잡에 가까운 도시였다. 사실 체첸의 중심지라는 것 빼면 러시아에게 그다지 중요한 곳도 아니었다. 인구가 적기 때문에 일단 인지도에서부터 밀리는데, 그렇다고 블라디보스토크(인구 60만)나 무르만스크(인구 28만)처럼 전략적으로 중요한 도시도 아니었다. 물론 인구 30만 명으로 인근 지역에서는 꽤 큰 도시긴 하지만, 이 정도로는 러시아 도시들 중에서 인구로 50위 내에도 못 들어간다.[31] 게다가 역사적으로도 러시아에 편입된 건 비교적 최근인 1818년이고, 외지인이나 다름 없던 무슬림 체첸인들이 주축인 도시다 보니 대다수의 러시아인들에게는 상당한 거리감이 드는 도시다.

반면에 키이우는 모든 면에서 그로즈니와 전혀 다르다. 우선 인구만 300만 명으로 인천광역시와 비슷한 수치이며,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합병된다고 가정할 경우 161만 명인 노보시비르스크를 훌쩍 뛰어넘어 3위를 찍게 된다. 물론 지금은 피난민이 대거 빠져나가 3분의 1로 감소했다고 쳐도, 빠져나간 인구가 살던 건물까지 없어지는 건 아니며 남아 있는 인구가 모두 시가전 펼치고 결사 항전을 외치면 러시아도 답이 없다.

역사적 배경도 전혀 다른 게, 키이우는 동슬라브 민족 최초의 국가라는 키예프 루스의 발상지이자, 키예프 루스의 수도라는 엄청난 역사와 정통성을 지닌 도시다. 가령 키이우에 있는 성 소피아 대성당만 해도 1037년 키예프 공국 시절에 공국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야로슬라프 1세가 지었을 정도로 긴 역사를 자랑하는 건축물이다. 유사한 사례로 일본교토가 있다. 오랫동안 해당 민족의 수도였고 21세기에도 대도시인 점에서 교토와 키이우가 상당히 유사하다. 히로시마나가사키미국핵무기를 날릴 때도 결국 교토에 핵을 날리지 않은 것은 키이우와 같이 정통성이 있는 도시이기 때문이었다. 정통성이 있는 도시를 함부로 날려버릴 경우 해당 국민들의 거센 저항을 촉발해 다 이긴 전쟁조차 수렁에 빠질 수 있다.

러시아인들에게도 키이우는 전혀 낯선 도시가 아니다. 전쟁 터지기 전에 러시아인들의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에 허구한 날 올라온 게 키이우 관광 인증 글, 키이우에 있는 친지들 보러 간 글이었다. 소련 시절까지만 해도 키이우는 러시아 국민의 자존심이자 영혼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곳이었고 이는 소련 해체 이후에도 비슷하며, 21세기에도 많은 러시아인은 키이우에 친척이 있기에 혈연으로도 맺어져 있다.

5. 평가

전쟁이 진행 중이라 향후 이 평가가 어떻게 바뀔 지는 모르지만, 키이우 전투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미래를, 하다못해 최소한 2022년의 전황을 완전히 바꾸어버린 전투가 되었다. 당초 러시아군은 키이우 전투에서 승리하고 젤렌스키를 사살하거나 생포하여 서방 지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단기간으로 승기를 잡는다는 계획이었는데, 키이우에서 패배하면서 전쟁이 장기전으로 갔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도 중요한 한 수였던 것이, 자국의 수도를 성공적으로 지켜냄과 동시에 자국 대통령을 보호함으로서 우크라이나군의 대대적인 붕괴를 막았기 때문이다.[32]

키이우 전투는 우크라이나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젤렌스키 대통령이 직접 언급할 정도로 중요한 분수령이었기 때문에, 전투가 매우 치열할 것으로 보였다. 우크라이나는 장기적인 항전을 위해, 러시아는 전쟁의 주도권을 굳히기 위해 반드시 승리할 필요가 있었다. 우크라이나가 최종적으로 승리함으로써 이번 전쟁에서 우크라이나는 조금 더 유리한 위치로 올라섰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군이 키이우에 들어오는 순간 키이우는 스탈린그라드로 변할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속뜻은 키이우가 독소전쟁 시기 스탈린그라드 같은 인세의 지옥이 되는 것과 동시에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처절한 진흙탕 싸움에서 고통 받은 나치 독일군처럼 러시아군도 그 전철을 밟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군이 전부 키이우 외곽에서 격퇴당하고 결국 철수하면서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서방 국가들은 키이우 전투 이전까지는 군수물자를 지원했다가 우크라이나가 항복하면 물자가 고스란히 러시아군에 노획될 것이라는 우려하에 적극적인 물적 지원을 하지 않았다.[33] 키이우 전투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승리함으로써 젤렌스키 대통령과 우크라이나군은 서방에 러시아군을 몰아낼 수 있다는 확신을 주었고, 이를 통해 5월 이후부터 서방 세계의 물적 지원을 본격적으로 받기 시작했다.

여담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의 모스크바 전투와 매우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두 전투 모두 국가의 수도를 놓고 벌인 전투이며, 모두 향후 벌어질 전쟁의 향방을 완전히 뒤바꾸어놓았다. 게다가, 두 전투 모두 방어하는 측의 수뇌부와 그 휘하 내각이 수도를 버리지 않고 결사항전을 택했으며 시민들과 군인들도 이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였고, 결국 승리하여 성공적으로 수도를 사수하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게다가 두 전투 모두 전투 직전까지 방어하는 입장이었던 소련과 우크라이나가 대단히 절망적인 상황에 몰려 있었던 것 역시 비슷하며, 라스푸티차가 전투에 상당부분 관여하였다는 것, 시가지가 아닌 도시 외곽에서만 전투가 벌어졌다는 점까지 유사하다.

2022년 9월, 워싱턴 포스트가 키이우 전투를 다룬 기사를 실었다.# 이후 한국어 번역이 나왔다. 아래 링크에서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그대로 느껴볼 수 있다.
#1편 #2편 #3편 #4편 #5편(完)


[우] 우크라이나어[러] 러시아어[3] 우크라이나 대통령[4]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5] 우크라이나 육군 총사령관 및 키이우 방위군사령관[6] 러시아군 총참모장[7] 러시아 국가근위대 북캅카스관구 부사령관[8] 러시아 국가근위대 체첸부 사령관[9] 부차 학살을 일으킨 부대[10] 전투로 인한 사망자는 264명이고 부차 학살로 인한 민간인 사망자는 410여 명에 달한다.[11] '키예프'는 러시아어 명칭이며, '키이우'는 2022년 3월 1일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의 표기 변경 요청 후 한국방송공사국립국어원이 합의한 우크라이나어 한글 표기이다.#[12] 이는 우크라이나와 서방이 예상한 것보다도 더 빠른 진격이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러시아군이 방사능으로 오염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지역을 그대로 뚫고 왔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나 서방은 당초 러시아가 방사능의 오염을 피하기 위해 체르노빌을 우회할 것이라 예상했다.[13] 생각해 보면 이 판단도 오판이었다고 볼 수 있는데, T-72 등 냉전 시절 소련군의 산물이었던 러시아군의 전차들은 모두 핵전쟁 상황에서의 운용을 가정하고 화생방 방호 시설이 완비되어 있다. 해치를 모두 닫아버리면 방사능에 오염된 구역도 돌파가 가능하다.[14] 공수부대 투하, 젤렌스키 대통령 암살을 목표로 체첸 부대 파견, 시내에 민간인으로 위장한 스파이 침투 등.[15] 5월까지 소수의 낙오 병력이 분산된 채 계속 도주 중인 걸로 추정된다. 간간이 이쪽에서 새로 파괴된 러시아군 차량이 보고되기 때문.[16] 다만, 키이우 전투의 승리와는 별개로 키이우시에 대한 러시아군의 대규모 미사일 공습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17] 개전은 어느 한쪽이 침공을 하면 침공당한 쪽은 원치 않더라도 싸울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종전은 양쪽이 그만하기로 합의를 봐야 가능하다. 때문에 적의 전투의지를 꺾어야 출구전략을 쓸 수 있는데 수도를 점령하고 지도자를 확보하거나 죽이는 것이 적의 항전의지를 꺾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래서 전면전이 일어나면 어떤 전쟁이든 예외없이 수도점령은 최우선 목표다.[18] 대한민국은 UTC로 +9시간, 우크라이나는 +2시간이므로 오후 5시면 한국 시간으로 자정(7시간 차)이다.[19]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소련 침공 시기에 모스크바 전투에서 완패했던 이유 중 하나는 독일이 완전한 포위망 형성을 못한 상태에서 반격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러시아도 나름대로 과거 전훈을 뒤져보며 작전을 수정하고 있을 수 있다.[20] 하다 못해 젤렌스키 대통령이 주장한 영공 봉쇄도 이루어 지지 않고 있으며 미국은 폴란드의 구형 미그기를 우크라이나에 건네주는 것도 확전 우려 때문에 주저하고 있는 상태다.[21] 종류만 보면 다양한 장비들이 있는 게 오히려 보급이 잘 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 전쟁은 게임과 달리 장비의 표준화가 중요하다. 즉 기존 장비가 부족해서 궁여지책으로 다른 종류의 장비들까지 끌어모은 것이다. 엄청난 물량의 보급품 및 장비들이 제대로 보급이 안 되는 상황일 가능성이 높다.[22] 레흐 카친스키 전 폴란드 대통령의 형이다.[23] 디시 군사갤러리 라는 곳에서는, 신원 불명의 SNS를 근거로 사실 러시아가 폭파한 자업자득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뉴욕타임즈 기사에서는 우크라이나 주민들이 수공을 하기로 동의했으며 우크라이나 총참모부 지시로 수공이 이루어졌다고 보도한다.[[https://www.nytimes.com/2022/04/27/world/europe/ukraine-russia-war-flood-infrastructure.html|#] 신뢰성 있는 종군 기자 '일리야 포노마렌코'의 트윗에 따르면, 이르핀, 부차, 호스토멜의 러시아군이 역포위되어 포켓에 갇혔다고 한다.# 이후 영국 국방부, 미국 국방부에서도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의 포켓에 포위된 것이 공식 발표되면서 사실상 러시아군의 키이우 포위전은 실패했으며, 이후 키이우 전선이 확보된다면 남부나 동부 쪽으로 집중할 가능성이 높아진다[24] 러시아 군법상 해외 파병은 모병제를 통해 자원 입대한 인원들로만 진행되어야 하며, 징집병들은 해외 파병을 비롯한 국외 작전이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징집병들은 자기가 갈 의무가 없는 전장에 투입되고 있기 때문에 전투 의지가 낮은데, 이것이 철저하지 못한 준비와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키면서 러시아군의 고전에 기여하고 있다.[25] 다만 남오세티야 전쟁에서 러시아는 미헤일 사카슈빌리 정권을 숙청하거나 친러 정권을 인위적으로 세우진 않았다. 그런데 이것도 러시아가 조지아를 완전히 짓밟으려다가 미국의 제지로 관둔 사례이기에 직접 비교는 힘들다. 거기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완전히 밀어버린다고 해도 미국의 입김이 작용해 완전한 친러 정권 설립은 힘들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현재까지 러시아의 점령 후 의중은 정확히 밝혀진 게 없다.[26] 민간인 학살, 강압적인 징용, 포로에 대한 무자비한 대우.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의 만행과 거의 들어맞는다.[27] 푸틴의 책사 알렉산드르 두긴의 빅 픽처를 실행하기 위해선 네오 나치와의 공조는 필수다. 아울러 냉전기 동독의 슈타지 역시 공산 독재가 더 낫도록 보이기 위해 네오 나치 같은 강성 우파들에 많이 기댔다.[28] 시가전에서 지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손실만 떠안게 되고, 설령 이기더라도 꽤 큰 손실은 피할 수 없다. 한마디로 얻는 것에 비해 위험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에 수지타산이 안 맞는 것.[29] 애시당초 소련은 초장부터 독일 제6군을 스탈린그라드 한복판으로 끌고 들어와서 엄청난 인명손실을 입히는 전술을 펼쳤다. 그리고 이때까지도 전술적 숙련도 면에서 독일군에 못 미쳤던 소련군은 독일군보다 훨씬 많은 사상자를 냈다.[30] 인천광역시 인구와 비슷한 수준이다. 러시아 최대도시모스크바(1,238만)이고 그 다음이 상트페테르부르크(528만), 다시 그 다음이 노보시비르스크인데 여기는 인구가 160만 명밖에 안된다.[31] 2021년 기준 전체 러시아 도시들 중 57위에 해당한다.[32] 만약 키이우가 함락되었거나, 젤렌스키가 전투 초기 VDV에게 사살 혹은 생포당했다면 우크라이나 전체가 그대로 혼란의 수렁으로 빠졌을 것이고 러시아군의 승리는 한층 쉬워졌을 것이다.[33] 이는 2021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공세의 영향도 컸다. 돈과 장비들을 쏟아부어 키워준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이 정규 군대도 아닌 탈레반에게 허망하게 밀리고 각종 무기들을 고스란히 노획당하는 추태를 본 미국과 서방은 이 사건 이후로 타 국가의 물적 지원에 대해 더욱 보수적으로 돌아섰다. 게다가 키이우 전투가 시작된 시점인 2022년 2월은 탈레반의 대공세가 벌어졌던 2021년 8월으로부터 고작 반년밖에 안 되었던 시점이었기에 이러한 기조는 더욱 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