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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삼성 라이온즈의 전·후반기 통합우승으로 한국시리즈가 열리지 않았다. [B]: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개최일 연기, 고척 스카이돔 중립경기 개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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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한국시리즈 우승팀 | |
현대 유니콘스 | |
MVP | 정민태 |
[clearfix]
1. 개요
현대자동차 아토스배 1998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 |
LG 트윈스 | 현대 유니콘스 |
인천광역시 연고 야구팀 사상 첫 우승으로 KBO 리그 출범 이후 1990년대 중반까지 17년간 만년 꼴찌의 서러움을 온몸으로 체감했던 인천광역시 거주 야구팬들에게는 삼청태 시절의 한을 풀어버릴 수 있었던 시리즈로 설명할 수 있다.[2] 물론 비인천지역 팬들 역시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다. 원년 시절부터 뿌리깊게 자리했던 약체팀의 이미지를 말끔히 씻어버릴 수 있게 되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페넌트레이스 당시 전력은 현대가 81승 45패로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LG도 전년 해태에 이어 해볼만한 게 현대에게 11승 7패로 유독 강했다.[3]. 특히 태평양-현대 입장에서는 LG의 류지현, 김동수가 상당히 얄미웠던 존재였다. 게다가 LG는 1997년 플레이오프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5차전까지 가는 바람에 힘을 소진한 상태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여 결국 준우승에 그쳤지만, 이 해에는 4차전에서 끝내고 어느 정도 힘을 비축하고 한국시리즈에 올라왔기에 재미있는 승부가 예측되었다.
흔히 2002년부터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중립구장 경기 규정이 완화되었다고 알려졌는데 사실 이 규정이 처음 적용된 해가 바로 1998년이다. 플레이오프 승리팀이 서울특별시 연고팀일 경우 1차전, 2차전, 6차전, 7차전을 페넌트레이스 우승팀, 3차전, 4차전, 5차전을 플레이오프 승리팀 구장에서 열리는 방식을 채택했다. 따라서 6차전은 잠실이 아닌 인천에서 치러졌다. 중립구장 규정은 이듬해 양대리그 때도 유지되었다. 그래서 2000년 한국시리즈 당시 두산 베어스가 올라와서 이 시리즈처럼 1차전, 2차전, 6차전, 7차전은 현대 유니콘스의 홈구장인 수원에서, 3차전, 4차전, 5차전은 두산 베어스의 홈구장인 잠실에서 열렸다. 그러나 양대리그가 폐지된 2001년부터 도로 이전 규정으로 회귀하면서 삼성은 정규시즌 1위면서도 원정 경기를 5번 치르는 해괴한 한국시리즈를 치르게 된다.
한국시리즈 하이라이트 |
2. 일정
현대자동차 아토스배 1998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LG 트윈스 VS 현대 유니콘스 | |||||||
<rowcolor=#fab93d> 경기 | 경기 시간 | 경기장 | AWAY | 결과 | HOME | 방송사 | |
1차전 | 10월 23일 18:00 | 숭의야구장 | LG 트윈스 | 2 | 11 | 현대 유니콘스 | |
2차전 | 10월 24일 14:00 | 1 | 5 | ||||
3차전 | 10월 26일 18:00 |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 현대 유니콘스 | 1 | 3 | LG 트윈스 | |
4차전 | 10월 27일 18:00 | 7 | 1 | ||||
5차전 | 10월 28일 18:00 | 5 | 6 | ||||
6차전 | 10월 30일 18:00 | 숭의야구장 | LG 트윈스 | 2 | 5 | 현대 유니콘스 |
3. 엔트리
3.1. 현대 유니콘스
현대 유니콘스 1998년 한국시리즈 엔트리 | ||
감독 | 1명 | 김재박 |
코치 | 6명 | 정진호, 김시진, 김일권, 김용철, 양승관, 신언호 |
투수 | 9명 | 정민태, 정명원, 김수경, 조 스트롱, 최원호, 위재영, 김익재, 조규제, 김홍집 |
포수 | 3명 | 박경완, 장광호, 이재주 |
내야수 | 7명 | 박진만, 김경기, 염경엽, 이명수, 박종호, 스캇 쿨바, 권준헌 |
외야수 | 6명 | 이숭용, 박재홍, 전준호, 김광림, 김인호, 장정석 |
3.2. LG 트윈스
LG 트윈스 1998년 한국시리즈 엔트리 | ||
감독 | 1명 | 천보성 |
코치 | 5명 | 김용달, 김인식, 이광은, 정삼흠, 서효인 |
투수 | 10명 | 김용수, 전승남, 최향남, 손혁, 차명석, 김기범, 송유석, 마이클 앤더슨, 최창호, 신윤호 |
포수 | 2명 | 김동수, 김정민 |
내야수 | 8명 | 류지현, 서용빈, 이준용, 손지환[4], 주니어 펠릭스, 이종열, 안상준, 허문회 |
외야수 | 5명 | 김재현, 이병규, 심재학, 김선진, 김종헌 |
4. 세부 내용
아이러니하게도 페넌트레이스 때 상대 전적은 LG 트윈스가 우세했는데, 한국시리즈에선 전혀 다른 양상이 되었다. 당시 현대 입장에서는 LG가 올라오지 않기를 내심 바랐었다.[5] LG에서 류지현, 김재현, 김동수 등 주축 선수들이 현대 戰에 유독 강했기 때문이었다. 1998 시즌 2위 삼성 라이온즈와 3위 LG 트윈스가 플레이오프에서 격돌하자, 현대 유니콘스는 삼성 라이온즈가 이기고 올라오길 바랐다고 한다.[6] 그런데 결국은 LG가 이겨버렸다.당연한 이야기지만 현대 유니콘스가 1위로 올라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LG보다는 더 오래 쉬었기도 하고. 애초에 LG의 성적이 승률 5할에서 1승 더한 기록이라 현대한테만 약간 강했을 뿐 그다지 강한 전력은 아니었다. 오히려 시즌 성적이 월등히 높았던 삼성이 플레이오프에서 떨어진 게 이변으로 받아들여질 정도였다.[7]
결국 4승 2패로 현대 유니콘스가 창단 첫 우승에 성공했다. 신인 김수경이 등판한 6차전 승리가 거의 굳어지자 현대는 정민태를 마무리로 냈고, 정민태는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플라이볼로 처리하며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사실 정규 시즌에는 마무리 투수가 용병인 조 스트롱이었지만 워낙 방화를 즐겨서(…) 포스트시즌 마무리 투수는 선발 투수인 김수경과 정민태 등이 분담해서 맡았다.
당시 정명원은 우승 기념 인터뷰에서 같이 고생했던 정현이랑 창호가 없어서 너무 아쉽다는 코멘트를 남기면서 눈시울 붉히기도 했다. 인천 연고팀 사상 첫 가을야구 진출 시즌이던 1989년 태평양 돌핀스의 주축이던 투수 3총사 중 정명원만이 유일하게 우승을 맛본 것. 아이러니하게도 최창호와 박정현은 1998년 페넌트레이스 트레이드 마감시한일 이전까지 현대 소속이었다. 그러나 최창호는 시즌 중 한국시리즈를 출전 대비하기 위하여 박종호와의 맞트레이드 때문에 LG로 넘어가 상대편 덕아웃에 앉아 있었고, 박정현은 부상 이후 재활불가 판정을 받고 가내영+6억 원과 묶여 조규제와의 맞트레이드로(사실상 현질) 쌍방울 레이더스에 넘어갔다. 힘든 시절을 같이 보냈던 세 사람의 운명은 이렇게 애잔하게 갈렸다.
한국시리즈 MVP는 1차전, 4차전에서 승리를 따내고 에이스 정민태가 수상했다. 정민태는 1차전에서 8이닝 2피안타 8삼진, 4차전에서 8이닝 5피안타 1실점 12삼진을 거두는 괴력을 선 보였는데 선발 2경기 16이닝 7피안타 20 탈삼진 1자책점에 6차전 1.1이닝 마무리까지 17.1이닝 1실점 평균자책 0.51의 괴력을 선 보였다. 4차전은 무려 선발타자 전원 탈삼진.
여담으로 이 한국시리즈에서 타선에서 가장 활약한 선수는 박재홍이었다. 한국시리즈 경기 직전에 입은 발목 부상으로 못 나올 줄 알았는데, 테이핑까지 하면서 지명타자로 출전했는데 4차전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좌측 폴을 맞히는 대형 홈런을 친 것이 화제가 되어 펄펄 날았다.
반면 LG는 정규시즌 주전 2루수로 활약했던 신국환이 병역 문제(명목상은 신장염)로 시즌 말에 전열에서 이탈한데 이어 손지환마저 플레이오프에서 부상을 당해 엔트리에 이름만 올리고 출전할 수 없는 등 전력 누수가 있었다.
5. 결과
5.1. 1차전
한국시리즈 1차전, 10월 23일 금요일, 18:00, 숭의야구장 11,465명 (매진) | ||||||||||||||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 |
LG | 김용수 | 0 | 0 | 0 | 0 | 0 | 0 | 0 | 0 | 2 | 2 | - | - | - |
현대 | 정민태 | 0 | 0 | 0 | 0 | 5 | 0 | 1 | 5 | - | 11 | - | - | - |
중계방송사: | 캐스터: 정도영 | 해설: 하일성 |
홈런: 이숭용 7회 1점, 스캇 쿨바 8회 1점 이상 현대
KBS 뉴스
한국시리즈 1차전 시구는 탤런트 채시라가 맡았다.
1차전 매치업은 한국시리즈 MVP 2회에 빛나는 투수 김용수와 한국시리즈 무승 투수 정민태의 대결이다. 그리고 정규리그 다승왕 1위 김용수(18승) 2위 정민태(17승)의 대결이기도 했다.[8][9]
정민태는 4년 전 LG와 경기에서 5이닝 동안 노히트노런을 기록, 4점차 리드를 지키면서까지 잘했는데, 불펜들[10]과 수비[11]가 대거 삽질해서 물거품으로 끝난 적이 있었다. 그리고 1998시즌 LG와의 상대전적이 약했는데 LG 타자가 투구 버릇을 읽혔다는 것을 간파하고 투구폼을 바꾸는 강수를 둔다.
1회초부터 정민태가 류지현, 김재현, 주니어 펠릭스를 3타자 연속 삼진을 잡으면서 압도적으로 기세를 눌렀다. 저때 승부는 이미 현대로 기울었다고 당시 LG의 전력분석관이었던 김정준 코치의 회고. 그리고 정민태는 평소에는 류지현과 승부할 때 풀카운트까지 갔는데 4구째 삼진을 잡고 LG 덕아웃에서 갑자기 왜 이렇게 잘 던지냐 말하는 것을 보고 이 경기는 무조건 잡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현대의 정민태는 아마시절 부터 사용하던 변화구 구종인 체인지업과 스플리터와 포크볼을 정규시즌 때 어느정도 사용하면서 한국시리즈 내내 LG 타자들을 제대로 농락 했다. 좌우상하 코너워크를 소름끼치게 구사한 속구도 최고 153km을 찍으며 LG타선을 농락했다.
승부는 5회말부터 시작 되었다. 현대의 클린업 타선들이 대거 5점을 뽑아 내면서 달아났다. 선두타자 박경완이 볼넷으로 출루한 뒤 이명수의 우익수 쪽 빗맞은 공이 심재학이 늦게 대쉬하여 2루타가 되며 무사 2루, 3루가 되자 김용수는 흔들린다. 그리고 박진만의 2루타로 현대가 먼저 2점을 올렸다.[12] 현대는 전준호의 희생번트 뒤 김인호가 스퀴즈번트를 시도했고 김용수가 홈으로 던지다가 빠지며 3:0이 됐다. 박재홍이 2루타를 쳐내고 이숭용의 땅볼로 1점을 더한 뒤 지칠대로 던진 김용수는 강판됐다. 현대는 바뀐 투수 송유석을 상대로 김경기의 적시타로 5회말에만 5점을 올렸다. 7회 현대는 선두타자 이숭용이 쐐기를 박는 솔로홈런을 기록했다. 그리고 현대는 8회 스캇 쿨바의 홈런으로 7:0까지 달아나는데다 상위타선에서 타자일순하며 5점을 더 얻어버린다. 거기서 8회초까지 잘 던지고 나간 정민태에 이어 루키 김수경이 등장했다.
그러나 LG가 김재현이 2루타, 펠릭스의 안타로 몸을 풀지 않은 루키 김수경에게 2점을 얻는다. 당황하던 김수경이 박경완의 리드를 잘 보면서 여차하면서 승부를 끝냈다. LG가 사실상 흐름을 잘 타고 가지 못한 것이 패착이 되겠지만, 이미 전력손실한 게 큰 타격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정민태는 8이닝 동안 삼진 8개를 잡으며 2피안타 1볼넷만 내주는 완벽한 투구로 김용수의 막판 추월에 다승왕을 놓친 아쉬움을 만회했다. 2회에 현대전에 유독 강한 심재학에게 안타를 맞았을 뿐 5회까지 계속 삼자범퇴로 압도적인 구위를 자랑했다.[13]
5.2. 2차전
한국시리즈 2차전, 10월 24일 토요일, 14:00, 숭의야구장 | ||||||||||||||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 |
LG | 최향남 | 0 | 0 | 0 | 0 | 0 | 0 | 1 | 0 | 0 | 1 | - | - | - |
현대 | 정명원 | 0 | 1 | 2 | 1 | 0 | 0 | 0 | 1 | - | 5 | - | - | - |
중계방송사: | 캐스터: 유협 | 해설: 정동진[타사중계2] |
홈런: 김인호, 박재홍 3회 1점 이상 현대
KBS 뉴스
현대 선발은 정명원, LG 선발은 최향남 2차전에서도 선발투수가 승부를 결정지었다.
정명원은 6이닝 동안 6안타 2볼넷을 내주면서도 실점을 1점으로 최소화하며 승리투수가 된 반면에 최향남은 3.1이닝 동안 홈런 두 방을 맞고 자멸했다. 3.2이닝 4실점하는 부진으로 패전을 안았다.
이 날도 선취점은 현대가 먼저 기록했다. 현대는 2회말 김경기의 우측 담장 맞는 2루타 이후 이명수의 중전안타로 1:0으로 앞서 나갔다. 3회말, 김인호와 박재홍의 역대 KBO 한국시리즈 최초의 백투백 홈런을 기록하며 점수를 3:0까지 벌렸다. 결국 최향남은 4회말 2사 만루에서 강판되고 여기서 바뀐투수 김기범을 상대로 전준호의 밀어내기 몸에 맞는 공이 나오면서 현대가 1점을 더 추가했다.
LG는 6회초 김재현과 주니어 펠릭스의 연속안타, 심재학의 볼넷으로 만루의 천금 같은 찬스를 잡았다. 하지만 이병규의 라인드라이브가 2루수 이명수의 글러브에 빨려들어가며 더블아웃. 7회초 무사 1루·3루에서도 이명수가 병살을 처리하면서 기회를 날려먹었다. 그러나 1점은 만회하였다. 7회부터 구원으로 나온 김수경은 깔끔하게 경기를 마무리, 한국시리즈 최연소 세이브를 기록했다.
5.3. 3차전
한국시리즈 3차전, 10월 26일 월요일, 18:00,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 ||||||||||||||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 |
현대 | 조규제 | 0 | 0 | 0 | 0 | 0 | 0 | 0 | 1 | 0 | 1 | - | - | - |
LG | 손혁 | 1 | 0 | 0 | 1 | 0 | 0 | 1 | 0 | - | 3 | - | - | - |
중계방송사: | 캐스터: 양진수 | 해설: 허구연[타사중계3] |
홈런: 김동수 4회 1점 이상 LG
KBS 뉴스
인천에서 1차전~2차전을 내준 LG가 위기에 몰렸다. 결국에는 경기 내내 전력이 손실됐던 LG는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의외의 깜짝 호투로 팀 승리를 이끌었던 선발투수 손혁을 올려 보냈다. 현대는 가을야구 경험이 있는 구원투수 조규제를 이 날 선발투수로 투입했다. 그러나 이것이 현대의 패배가 될 줄 누가 알았던가?
손혁은 이날 경기에서 7이닝 동안 6안타 1볼넷 7삼진 무실점으로 역투, 팀을 벼랑 끝의 위기에서 구출했다. 1차전·2차전에서 투수력을 모두 소모한 LG는 궁여지책으로 내보낸 손혁이 대성공을 거두며 기사회생했다. 이날 손혁이 기록한 최고구속은 144km/h였다.
LG는 선발 라인업을 우타자 대거 몰빵으로 1회말 공격부터 반드시 이기겠다는 투지를 보였다. 류지현이 몸이 덜 풀린 조규제를 상대로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출루한 뒤, 1사후 2루 도루에 성공했다. 여기서 박경완이 악송구를 범하며 주자는 1사 3루. 이어 펠릭스의 좌전안타가 나와 1:0, LG가 시리즈 들어 첫 선취득점에 성공했다.
현대는 선발투수를 좌완 조규제를 올렸다.[16]
4회에는 이날 좌완 조규제에 맞춰 4번으로 기용한 김동수가 솔로 홈런을 터뜨렸다.[17] 바깥쪽 높은 직구를 잡아당겨 만든 115미터짜리 좌월 1점 홈런. 천보성 전 LG 감독은 이날 조규제를 겨냥해 1루수에 좌타자 서용빈 대신에 우타자 김선진을, 중견수 이병규 대신 김종헌을 선발 라인업에 기용하는 파격을 시도했다. 7회에도 LG는 심재학이 2-3 풀카운트에서 스트라이크 아웃 낫아웃으로 1루에 진출한 뒤, 대주자 이병규가 2루 도루에 성공해 무사 2루 찬스를 잡았다. 이어 이종열의 희생번트와 안상준의 좌익수 희생플라이 등 팀 배팅이 이어지며 점수는 3:0.
착실하게 득점에 성공한 LG와 달리 현대는 좀처럼 찬스를 살리지 못하고 끌려갔다. 5회초 박경완의 볼넷과 이명수의 안타로 만든 1사 1루·3루에서는 딜레이드 더블스틸을 시도하다 3루 주자가 아웃되며 기회가 무산됐다. 7회에도 이숭용과 김경기의 연속안타에 박경완의 희생번트를 묶어 1사 2루, 3루를 만들었지만 이명수가 2루수 뜬공으로, 왼손 대타들로 내세우지만 박종호가 삼진, 9회 1사 1루, 2루에서 마지막 타자인 김광림이 병살타를 쳐서 득점실패. 8회초 구원 등판한 마이클 앤더슨을 상대로 스캇 쿨바가 좌전 적시타를 쳐내 김인호가 홈을 밟은 것이 이날 현대의 유일한 득점이었다.
5.4. 4차전
한국시리즈 4차전, 10월 27일 화요일, 18:00,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 ||||||||||||||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 |
현대 | 정민태 | 2 | 1 | 0 | 1 | 0 | 0 | 0 | 1 | 2 | 7 | - | - | - |
LG | 김용수 | 0 | 0 | 0 | 0 | 0 | 0 | 1 | 0 | 0 | 1 | - | - | - |
중계방송사: | 캐스터: 정도영 | 해설: 하일성 |
홈런: 이명수 2회초 1점, 박재홍 9회 1점 이상 현대
KBS 뉴스
4차전 현대는 선발 정민태가 또 한 번 경기를 지배했다. 고작 사흘을 쉬고 선발로 등판한 정민태는 4차전에서 8이닝 동안 5안타 1볼넷 1실점하고 LG의 선발타자 전원을 상대로[18] 삼진 12개를 잡아내는 역투로 시리즈 2승째를 기록했다. 많은 관계자들은 “설마 또 1차전 때처럼 던질 수 있겠냐”고 의구심을 보였지만, 결과는 1차전 때보다 더욱 압도적인 무서운 호투. LG 타자들은 정민태의 반포크볼과 체인지업 그리고 코너웍을 동반한 최고시속 153km의 속구 구위에 힘없이 나가 떨어졌다. 반면 LG는 선발 김용수가 4.1이닝 7안타 4실점으로 떡실신 당하며 시리즈 2패째를 안았다. LG를 한국시리즈까지 몰고 온 일등공신이었던 MVP였지만 이미 지칠 때로 지친 몸이었다.[19]
현대는 1회부터 앞서갔다. 1회초 2사후 발목에 테이핑을 한 박재홍이 중전안타로 출루한 뒤 쿨바가 풀카운트 승부 끝에 볼넷을 얻었다. 이숭용도 볼넷으로 나가면서 2사 만루. 여기서 김경기가 좌전안타로 주자 두 명을 불러들였다. 2:0 2회초에도 선두 이명수가 풀카운트에서 김용수의 몸쪽 높은 직구를 받아쳐 좌측 담장을 넘는 115m짜리 1점 홈런을 터뜨렸다. 3:0. 정민태의 구위를 감안하면 결승점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현대의 물량 공세는 멈추지 않았다. 4회초 박경완이 3차전까지 무안타 부진을 씻는 3루선상 2루타를 때려냈다. 전준호가 볼넷으로 걸어 나가며 2사 1루·3루. 김인호 타석에서 현대 벤치는 LG 내야의 허점을 파고드는 기습 더블스틸을 감행했다. 당황한 김동수의 송구가 2루 베이스에서 약간 왼쪽으로 치우쳤고, 베이스커버를 들어온 선수는 유격수 류지현이 아닌 2루수 이종열이었다. 잡을 수가 없었다. 점수가 4:0으로 더욱 벌어졌다. 현대는 8회에도 2사후 박진만이 볼넷으로 나가 2루 도루에 성공한 뒤 전준호의 우중간을 가르는 2루타로 1점을 보탰다.
LG는 뒤늦게 1득점을 시작하였다. 9회에는 선두타자 박재홍이 비거리 125미터짜리 대형 좌월 풀대를 맞추는 솔로포로 6:1을 만들었고, 이숭용과 김경기가 연속볼넷으로 나간 뒤 박경완의 좌전안타로 7:1로 승부를 결정지었다. 6안타에 허덕인 LG 타선은 8회말에 1점을 뽑는 데 그쳤다. 반면 현대 박재홍은 발목을 절뚝이면서도 5타수 4안타 1홈런 1타점 2득점을 기록해 팀 승리를 이끌었다. 3승째를 거둔 현대는 시리즈 우승까지 1승만을 남겨두게 됐다. 이날 양팀 23개의 삼진이 나와 한국시리즈 최다 삼진 신기록을 경신했다.[20]
5.5. 5차전
한국시리즈 5차전, 10월 28일 수요일, 18:00,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 ||||||||||||||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 |
현대 | 정명원 | 1 | 0 | 2 | 0 | 0 | 0 | 0 | 2 | 0 | 5 | - | - | - |
LG | 최향남 | 1 | 3 | 2 | 0 | 0 | 0 | 0 | 0 | - | 6 | - | - | - |
중계방송사: | 캐스터: 유협 | 해설: 정동진[타사중계5] |
홈런: 주니어 펠릭스(LG) 1회 1점
시구: 신낙균 전 문화관광부장관
심판: 주심 허운/1루 김호인/2루 김찬익/3루 이규석/좌선 임채섭/우선 조종규
9이닝짜리 경기였지만 4시간에 걸친 혈전이었다. LG가 최향남의 호투와 타선의 폭발에 힘입어 6:5의 신승을 거뒀다. 최향남은 6이닝 5안타 3볼넷 3실점으로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했고,[22] 6:5로 앞선 8회초 1사 만루에서 나온 송유석은 팀 승리를 끝까지 지켜냈다. 하지만 경기 내용은 실책과 볼넷, 각종 신경전과 빈볼시비가 난무하는 졸전에 가까웠다.
시작은 현대 쪽이 좋았다. 현대는 1회초 선두 전준호가 볼넷으로 나간 뒤 김인호의 번트와 박재홍의 우전 안타로 1점을 먼저 냈다. 하지만 추가점을 내지 못하고 1회말 곧바로 펠릭스가 중월 솔로 홈런을 터뜨리며 경기는 1:1 동점, 흐름은 LG 쪽으로 향했다.
시리즈 내내 잠잠하던 LG 타선은 2회 들어 폭발했다. 선두 김동수가 좌월 2루타로 정명원을 흔들었다. 이어 서용빈의 희생번트 때 정명원이 1루로 악송구 실책을 저지르며 주자 모두 세잎. 평정심을 잃은 정명원은 이병규를 볼넷으로 내보낸 뒤 이종열 타석 때 폭투까지 범해 2:1 역전을 허용했다. 투수교체 타이밍을 놓친 현대 벤치가 뒤늦게 땅을 치고 후회했지만, 이미 경기는 LG쪽으로 기운 상태. 무사 2루·3루 위기가 계속됐다. 여기서 시리즈 9타수 무안타였던 안상준이 우전안타로 1점, 류지현이 희생플라이로 1점을 보태 점수는 순식간에 4:1이 됐다.
하지만 시리즈 우승을 앞둔 현대의 집념은 무서웠다. 현대는 3회초 전준호가 이종열의 실책으로 출루한 뒤, 김인호의 2루타와 포수 김동수의 패스트볼, 스캇 쿨바의 중전안타로 2점을 추격했다. 4:3. 그러자 LG는 3회말 반격에서 1사후 펠릭스의 우중간 2루타로 곧장 응수했다. 뒤이은 심재학의 번트 때 투수 김홍집이 3루로 뛰는 펠릭스를 신경 쓰다 1루 송구가 늦어지며 주자 올 세이프. 서용빈의 몸에 맞는 공이 나오면서 상황은 1사 만루로 더욱 악화됐다. 시리즈 12타수 무안타의 이병규 타석. 이병규는 언제 부진했냐는 듯이 깨끗한 안타를 쳐내며 3루 주자를 불러들였고, 후속 이종열도 안타를 기록하며 다시 점수가 6:3으로 벌어졌다.
엎치락뒤치락하던 경기는 6회 들어 과열양상으로 흘러갔다. 6회초 1사후 이숭용이 최향남의 공에 맞은 뒤 마운드로 뛰쳐나가려는 자세를 취했다.[23] 양 팀 선수들이 덕아웃에서 모두 뛰쳐나왔고, 잠시 경기가 중단됐다. 곧이어 6회말 LG의 공격에서도 2사후 김재현이 위재영의 공에 오른발을 맞고배트를 집어던지며 분노를 표했다. 이미 경기 시작 전부터 현대 측이 잠실운동장 관리소 측에 ‘3루 불펜 마운드를 높여달라’고 요구하면서 한바탕 신경전을 벌인 양 팀이었다.양 팀 선수들이 덕아웃에서 나오며 결국, 팬들이 보는 앞에서 어이없는 경기가 결국엔 벤치 클리어링으로 이어졌다.
정명원 이후 김홍집, 최원호, 위재영, 조규제, 김수경 등 주력 투수진을 전부 쏟아 부으며 추격의 기회를 노리던 현대는 8회초 공격에서 1사 만루라는 절호의 찬스를 잡았다. 마이클 앤더슨이 난조를 보이며 몸에 맞는 공과 볼넷으로 밀어내기 2득점하며 6:5. 한 방이면 동점 내지 역전까지도 가능한 상황. 여기서 LG 벤치는 해태 타이거즈 시절부터 큰 경기 경험이 풍부한 ‘마당쇠’ 송유석을 투입했다. 현대의 선택은 LG출신으로 트레이드 되어 온 타격감이 좋은 대타 박종호.[24] 하지만 박종호가 송유석의 마당쓸기 병살타로 쓸려나가며 찬스가 끝이 났다. 기세가 오른 송유석은 9회초에도 1사후 장정석에게 내야안타를 허용했지만, 대타 장광호를 또 다시 병살로 잡아내며 경기를 마무리했다. 시리즈 2승 3패. 이제 우승의 향방은 새 중립구장 규정에 따라 현대의 홈 구장인 인천에서 가려지게 됐다.
5.6. 6차전
한국시리즈 6차전, 10월 30일 금요일, 18:00, 숭의야구장 | ||||||||||||||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 |
LG | 손혁 | 0 | 0 | 0 | 0 | 0 | 0 | 0 | 2 | 0 | 2 | - | - | - |
현대 | 김수경 | 0 | 0 | 0 | 3 | 2 | 0 | 0 | 0 | - | 5 | - | - | - |
중계방송사: | 캐스터: 양진수 | 해설: 허구연[타사중계6] |
홈런: 이숭용 4회말 2점, 스캇 쿨바 5회말 2점 이상 현대
정민태로 시작해서 정민태로 끝난 시리즈가 됐다.[27][28] 현대는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선발 김수경의 역투와 정민태의 마무리로 LG에 5:2로 승리했다. 경기 초반 매 이닝 주자가 나가면서도 점수가 나지 않던 공방은 4회말 현대 공격에서 한방에 결판이 났다.
현대는 4회말 3번 박재홍의 좌전안타로 기회를 잡았다. 쿨바의 잘 맞은 타구가 펜스 앞에서 중견수에게 잡히면서 찬스가 무산되는가 싶었지만, 이숭용이 볼카운트 0-1에서 손혁의 복판 높은 체인지업을 잡아당겨 우월 투런포를 터뜨렸다. 2:0 현대 리드. 카운터 펀치를 맞은 손혁은 김경기와 박경완을 연속 볼넷으로 내보내며 흔들렸고, 결국 일찌감치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2사 1루, 2루. 여기서 박진만이 다시 좌전안타를 때려내며 한 점을 더 보태 점수는 3:0.
5회말에도 현대는 박재홍의 볼넷으로 시작해 쿨바가 송유석의 3구째 슬라이더를 번개처럼 잡아당겨 좌월 2점포를 만들어냈다.[29] 이것이 쐐기포가 되었다. 5:0. 현대는 이틀간 휴식을 취한 정민태가 언제든 마운드에 올라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한다. 한편 지친 LG가 만회하기에는 벅찬 점수 차인 데다 흔들리던 김수경도 4회부터 안정을 찾아 호투를 펼치고 있었다.
LG가 5:1로 추격한 8회초, 1사 1루에서 현대는 투수를 정민태로 교체했다.[30] 정민태는 최원호가 남긴 주자를 불러들여 1점을 내주기는 했지만 남은 아웃카운트 다섯 개를 더 이상의 실점 없이 막아내며 경기를 마무리했다. 마지막 타자 류지현이 중견수 이숭용의 뜬공으로 글러브에 빨려 들어가 물러나며 그렇게도 꿈꾸던 인천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은 삼청태 이래 17년 만에 이뤄졌다. 그 순간 정민태는 마운드 위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17년을 한결같이 기다려 준 관중석의 팬들도 경기장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연안부두 노래와 함께 오열했다. 팀의 4승 중 2승을 혼자 따 낸 정민태는 별다른 경쟁자 없이 한국시리즈 MVP가 됐다. 다른 경쟁자는 타자 스캇 쿨바.
근데 마지막 카운트를 잡은 이숭용이 2011년 은퇴 전 인터뷰에서 당시 마지막 카운트를 잡자마자 너무 기분이 좋아서 관중에게 던졌다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러고 주장 정명원과 김경기가 대뜸 창단 첫 우승 공인데 관중에게 주면 안 된다고 핀잔을 줬으나, 결국은 그 공을 못 찾았다고 한다. 여담으로 역대 한국시리즈에서 현대가 우승한 총 4회 아웃 공 카운트는 1개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 이숭용이 잡았다. 이숭용은 이 해에는 중견수로, 1루수로 두 번 잡았다. 2000년 한국시리즈 마지막 아웃카운트 하나는 당시 주장이던 좌익수 김인호가 잡았다.
그리고 한국시리즈 처음으로 선발로 나온 김수경은 이날 7회 1사까지 4안타 볼넷 3개로 1실점(비자책)하며 한국시리즈 최연소(19세 2개월 10일) 승리투수가 되는 기쁨을 누렸다.
하지만 현대가 이후 인천에서 우승 팡파르를 울리는 일은 없었다. 현대는 거짓말같이 2년 후 수원으로 연고 이전을 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후 인천에서 다시 우승 팡파르가 울린 것은 9년 이나 지난 후, 새로운 인천팀에 의해 새 구장에서 이루어졌다.
여담으로 이 날 경기 시작 전 박찬호가 시구자로 나와 시구를 던졌다. 당시 메이저리그에서 15승을 거두며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기둥투수로 자리매김한 박찬호였기에 한국시리즈에서 시구를 할 것이라고 예상되기도 했다. 다만 언제 던지느냐가 문제였을 뿐. 이날 박찬호는 정장차림으로 마운드에 올라 깔끔하게 시구를 던졌다.
6. 총평
6.1. 우승: 현대 유니콘스
6.2. 준우승: LG 트윈스
7. 우승 반지
현대 유니콘스 시절 김수경의 우승 반지현대 유니콘스가 받은 첫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31]
8. 여담
- 6개 원년 구단이 모두 우승을 경험하게 되었다. 다만 삼성은 한국시리즈 없이 우승하였고, 2002년에 달성하게 된다.
- 1994년 한국시리즈 이후 현대 유니콘스는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하여 4년만에 양팀이 각각 대결하였다.
- 1998년 LG 트윈스의 정규시즌 성적은 63승 1무 62패, 승률은 .504인데 이 기록은 역대 한국시리즈 진출팀들 중 최저 승률 기록이다. #
- 이 한국시리즈 준우승 이후 LG는 보너스 지급 문제 등으로 골머리를 앓다가 이듬해 드림리그 3위, 종합 승률 6위로 추락했다. 그 이후 LG는 중하위권 팀으로 추락하게 된다. 2000년과 2002년에 가을야구를 하긴 했지만 2000년 플레이오프 때는 서울 라이벌 두산 베어스에게 허무하게 2승 4패로 탈락했고[32], 2002년에는 삼성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의 희생양이 되었다.[33] 그리고 그 후 10년 동안의 장대한 삽질 후 2013년이 돼서야 가을야구를 하는 등[34], 이 시리즈는 이후 LG의 역사에 영향을 미쳤다.
- 한편, 현대는 다음 해까지만 숭의야구장을 사용하고 그 이듬해에 인천을 떠났다. 이유는 구장의 관중[35] 감소[36]. 사실 야구장 수입도 수입이지만 당시 숭의야구장은 무등 야구장,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과 함께 KBO 3대 최악의 야구장이었기 때문. 이걸 문제로 삼은 현대의 프런트 김용휘가 숭의구장을 뜯어 고치려고 했으나, 어처구니없게도 숭의구장은 애초에 무허가 건물이라 개조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유니콘스 구단은 인천광역시에게 화가 많이 났었다. 그리고 수원 야구장으로 이동하게 되지만 결국 해체 후 재창단되고 말았다.[37]
- 1999 시즌을 끝으로 재정난으로 해체한 쌍방울 레이더스를 대신하여 창단된 SK 와이번스가 현대의 기습적인 연고이전으로 무주공산이 된 인천광역시에 입성함에 따라 현대 유니콘스가 쓰던 숭의야구장을 물려받게 되었지만, 그 SK 와이번스도 2001 시즌을 끝으로 숭의야구장 사용을 끝내고 2002 시즌부터 문학 야구장으로 이전하면서 결과적으로 이 한국시리즈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숭의야구장에서 인천야구팀이 우승을 맛본 시리즈가 되었다.
- 현대도 시즌 이후 그룹내적과 야구판 내적으로 돈대, 양아치 등등 비아냥 욕을 왕창 먹었다. 실제로 현대 우승이후 야구판이 돈지랄이 되어 버리자 관중수가 2000년~2004년까지 5년간 200만 명대에 그치게 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 그리고 재계 라이벌 현대의 우승은 삼성 라이온즈에는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결국 삼성은 한국시리즈 뒤에 임창용을 해태에서 사오고, 푸른 피의 사나이인 양준혁과 황두성을 해태가 받는 무려 30억원의 현금 트레이드를 비롯해, 잇단 FA 영입과 현금 트레이드로 ‘쩐의 전쟁’에 나섰다.
- 상기했듯, 이 당시 LG 트윈스에서 중간계투를 맡고있던 최창호는 불과 여름까지만 해도 현대 유니콘스에서 뛰고 있었다. 청보 핀토스-태평양 돌핀스 시절을 거치며 인천야구의 단맛 쓴맛을 모두 경험해 본 산 증인인지라 역사의 아이러니인 셈. 최창호는 훗날 2006년의 인터뷰에서 "당황스러웠다. 나는 저쪽 팀에 있어야 하는데, 왜 여기에 이렇게 앉아있게 된 걸까 싶었다. 내가 가고 싶어서 간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의지로 만들어진 상황이 너무나도 화가 나더라"라고 당시 현대 구단에 섭섭했음을 회고하기도.
- 웃지못할 에피소드가 있다면 이상하게도 야구 게임인 마구마구에서는 최창호의 트레이드 상대였던 LG 트윈스 박종호. 이 두 선수 모두 현대 유니콘스로 소속 되어있다. 그런데, 박정현과 가내영, 김형남.[38] 이근엽[39]은 아쉽게도 쌍방울 레이더스 소속에 있다. 그리고 뜬금 없는 한 선수가 있는데 서한규[40]가 현대 소속이라는 점이 골때린다.
- 공교롭게도 현대가 우승한 1998년은 국내 최고 대기업들의 팀인 현대 유니콘스, 삼성 라이온즈, LG 트윈스가 나란히 1위·2위·3위를 기록한 시즌이자 자금난에 시달리던 해태 타이거즈와 쌍방울 레이더스가 5위·6위로 내려앉은 시즌이었다. 수많은 기업이 도산과 인수합병으로 사라지고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시작된 ‘IMF 경제위기’의 첫 해이기도 했다. 야구는 세상의 축소판. 당시 한국 사회를 지배하던 경제 법칙은 프로야구에서도 ‘부익부 빈익빈’의 극단적인 형태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현대 왕조’의 뒤에 숨겨진 그늘이다. 또한 아무리 재정난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해도 쌍방울 레이더스의 주전력이던 박경완, 조규제를 빼온 것 때문에 쌍방울 성적 하락의 주범 중 하나였고 지금도 과거 쌍방울 팬 출신들은 현대를 증오하고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인과응보인지는 몰라도 정몽헌의 투신자살 이후 재정난에 허덕이다 쌍방울 레이더스가 1999년 시즌을 끝으로 재정난을 이기지 못하고 해체한 지 8년 만인 2007년 시즌을 끝으로 쌍방울 레이더스와 같은 운명을 겪고 만다.
- 뭔가 의외지만 26년이 지난 현재까지 서군(現 나눔 올스타) 대 서군이 격돌한 마지막 한국시리즈다. 이 이후는 동군(現 드림 올스타) 대 서군이거나 동군 대 동군이다.[41]
- 이후 LG 트윈스는 계속된 하락세를 겪다가 9년 뒤인 2007 시즌을 앞두고 당시 상대 감독이자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인 김재박을 감독으로 영입했지만 결과는 5위-8위-7위로 포스트시즌 자체를 밟아보지 못하면서 비밀번호만 연장된 꼴이 되었다. 그 후 김재박은 다시는 프로구단 감독을 맡지 못했고, 13년이 지난 2022년 시즌 종료후 LG는 1998년 준우승 당시 상대팀 소속이였던 어느 백업 내야수를 감독으로 데려와 29년 만의 우승을 이뤄낸다.
- 정민태는 17승으로 김용수의 18승에 이은 다승 2위의 아쉬움을 한국시리즈 1차전, 4차전 호투와 이에 따른 한국시리즈 MVP,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 수상으로 달랬다. 당시 시즌 마지막에 김용수와 17승 공동 1위가 되자 김용수가 먼저 같이 공동으로 다승왕을 하자고 제안하여 정민태가 선발로테이션을 그쳤는데 시즌 마지막에 김용수가 승리를 거두면서 다승왕을 놓쳤다는 풍문(?)이 있다.
- 아와모리 소주와 함께 LG 트윈스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상징하는 물건인 롤렉스 데이-데이트에 대한 전설이 시작된 시리즈이기도 하다. 전년도 한국시리즈 준우승 이후 구본무 회장이 해외 출장을 다녀왔을 때 8천만 원 상당의 금액을 지불하고 구매해 다음 한국시리즈 MVP에게 선물로 줄 예정이었다고 하는데, 그 첫 시리즈인 이 시리즈마저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면서 주인을 찾지 못했다. 결국 25년 후에야 주인이 나타나게 된다.
- 현대는 팀 창단 후 첫 우승까지 17년으로 KBO에서 가장 오랜 기간이 걸린 구단이었지만, 2008년 현대를 해체 후 재창단한 키움 히어로즈가 2023년까지 한국시리즈 우승에 실패하면서 공동 1위가 되었고, 2024년에도 키움이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면서 최소 18년 무관을 확정지으며 현대를 제치고 단독 1위가 되었다.
9.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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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 정보 | 선수단|등번호|유니폼|재계 라이벌 시리즈 | ||||
경기장 | 숭의야구장(1996~1999)|수원종합운동장 야구장(2000~2007)|춘천공설운동장 야구장|원당 야구장(제2 홈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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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인물 | 구단주 구광모 | 대표이사 김인석 | 단장 차명석 | 감독 염경엽 | 주장 박해민 | ||
경기장 | 1군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 2군 LG 챔피언스 파크 이전 동대문야구장 · 구리 LG 챔피언스 파크 | ||
우승 | 1990 | 1994 | 2023 | ||
역사 정보 | 구단 역사 | 트레이드 | 1983년 한국시리즈 | 1990년 한국시리즈★ | 1994년 한국시리즈★ | 1997년 한국시리즈 | 1998년 한국시리즈 | 2002년 한국시리즈 | 2023년 한국시리즈★ | 역대 감독 | 사건·사고 | 암흑기(453566, 6668587667) | ||
주요 정보 | 팀 특징 | 선수단 | 등번호 | 유니폼 | 상대 전적 | 팀 응원가 (서울의 찬가 · 서울의 모정) | 응원단장 | 엘튜브 | 치어리더 | 제휴카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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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시즌 | 역대 시즌 | ||
현재 시즌 | LG 트윈스/2025년 | ||
영구 결번 | 9 이병규 33 박용택 41 김용수 | ||
팬덤 정보 | LG 트윈스 갤러리 | I love Twins | 유광잠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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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 LG! 끝까지 TWINS! |
[1] 현대가 삼청태의 기록을 계승했으므로.[2] 실제로 제1연고지 야구팀이 존재하지 않는 울산광역시를 제외한 6대 대도시(서울특별시, 부산광역시, 대구광역시, 인천광역시, 광주광역시, 대전광역시) 연고 야구팀 중 인천광역시 연고팀의 첫 우승이 가장 늦었다. 참고로 대전광역시는 1982년(당시 OB의 연고지는 대전광역시), 광주광역시 1983년, 부산광역시 1984년, 대구광역시 1985년(전후기 통합우승), 서울특별시는 1990년에 연고 야구팀이 첫 우승을 했다. 다만 한국시리즈 한정으로는 대구광역시의 삼성 라이온즈가 가장 늦었다. 한국시리즈 우승은 2002년에서야 이루어졌기 때문. 그 인천의 현대 첫 우승보다도 무려 4년 더 지나서였다.[3] 이게 현대 때만 그런 게 아니라서, 현대는 태평양 돌핀스 시절에도 유난히 LG에게 약했던 전통이 있었다. 그게 극단적으로 나타났던 것이 1994년 한국시리즈와 2002년의 준플레이오프.[4] 부상 때문에 엔트리에 이름만 올리고 출전은 하지 못했다.[5] 현대 유니콘스를 비롯한 삼청태현 프랜차이즈는 전통적으로 LG 트윈스에게 약했다. 현대 유니콘스의 12년간 대 LG 전적은 106승 8무 107패로, 현대가 5할 이상의 승률을 기록하지 못한 팀은 LG가 유일하다.[6] 그 해 현대는 삼성에게 14승 4패로 절대우위를 보였다.[7] 對 현대와의 시즌 전적을 제외하면 삼성은 62승 2무 44패, LG는 52승 1무 55패였다.[8] 여담이지만 LG가 한국시리즈를 두 번 우승할 때 MVP는 김용수였는데 선발, 마무리 모두 스윕으로 끝낸 경기이다.[9] 정민태가 17승 밖에 하지 못한 이유는,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한 달간 쉬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 이 해 현대는 총 126경기를 치르는 정규시즌에서 불과 111경기째인 1998년 9월 4일 수원 OB전에서 우승을 확정지었다. 정민태는 다승왕을 확정짓기 위해 몇 경기 더 등판했지만 패전만 쌓으며 그 사이 김용수가 추월했다.[10] 당시 믿었던 마무리가 무너진게 가장 컸다.[11] 6회초 깁갑중 만세와 7회초 유지현 좌전 안타 때 홈 승부 중에 김동기가 볼을 흘려 역전 주자까지 내준 것이 컸다.[12] 3루수 안상준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타구였으나 빠뜨리면서 2루타가 됐다. 페넌트레이스 내내 거의 나오지 않았던 선수였지만 신국환과 손지환이 부상으로 2루에 이종열이 나오면서 3루수로 출장했다.[13] 김재현의 안타성 타구도 호수비로 잡혔다.[타사중계2] KBS 제2라디오 캐스터 유수호 - 해설 이광권.[타사중계3] KBS 제2라디오 표영준-이광권.[16] 이유는 좌투수가 별로 없는 상황에 불펜은 조 스트롱 혼자만의 방화로 다른 선수들의 땜빵으로 메꿨다. 그리고 정규시즌에서 LG를 상대로 선발승을 거둔 전적이 있어 표적선발의 느낌이 강했다.[17] 이 홈런은 보통 홈런이 아닌데, 당시 스폰서였던 현대 아토스존에 떨어진 홈런으로 외야석에 실제 아토스를 놓고 해당 구역을 홈런존으로 운영했다. 경기 중 선수가 차량 및 구조물을 직접 홈런으로 맞추었을 때 50만원을 지급했다. 여기에 4회에 홈런을 치면 아토스 홈런상으로 50만원을 지급하는 제도도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홈런이 4회에 아토스존으로 떨어져서(...) 결과적으로 김동수는 100만원을 받았다.[18] 선발타자 전원 탈삼진은 1984년 롯데 최동원, 1988년 해태 선동열 이후 세 번째다.[19] 한국시리즈 4차전이 김용수의 마지막 한국시리즈 경기다.[20] 기존에는 20개였다.[타사중계5] KBS 제2라디오 유수호-???.[22] 25년 후에 김윤식이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LG 국내 투수로 선발승을 기록하였다.[23] 최향남과 이숭용은 서로 실제로도 친한 친구 사이다. 그러나 그것과는 상관없이 이날 경기가 격양된 상태라는 상징적인 사건이기도 했다.[24] 그러나, 이해 박종호의 최종 성적 타율은 2할 3푼 언저리였다.[타사중계6] KBS 제2라디오 캐스터 표영준 - 해설 이광권.[26] 세이브라고 적혀있는 경우가 종종 있으나 엄밀하게는 세이브 요건이 안된다. 정민태 등판 때에는 4점차에 주자가 1명이었는데, 이 때는 3이닝 이상 투구해야 세이브가 기록된다. 만약 최원호가 직접 1점을 주고 내려갔으면 세이브 요건이 되겠지만, 정민태가 올라온 상황에서는 홈런을 맞아도 동점이 안되기 때문에 세이브 상황이 아니다.[27] 2003년에도 정민태로 시작해서 정민태로 시리즈가 끝났다.[28] 이후 새로운 인천팀이 우승한 2010년 한국시리즈가 김광현의 투구로 시작해서 김광현의 투구로 끝난 점이 이 시리즈와 비슷하다. 1차전 선발 등판, 우승 결정전 헹가래 투수 등판. 다만 정민태의 경우 1차전과 6차전을 홈구장에서 치렀고 김광현은 1차전을 홈구장에서, 4차전을 원정구장에서 치렀다는 점이 다르다.[29] 그런데 송유석은 사실상 한국시리즈 매 경기마다 등판했다. 정규시즌에서도 92이닝을 소화한 30대 중반의 불펜투수를 한국시리즈에서도 매 경기마다 혹사시킨건 LG의 병크였다.[30] 이는 정민태를 헹가래 투수로 만들어 주려는 의도로 그런 것도 있었지만, 보통 선발 투수가 헹가레 투수로 올라갈 때는 9회 이닝 시작할 때, 그러니까 주자 없이 큰 부담 느끼지 않을 때 올라간다는 걸 고려하면 불펜이 못미더워서 에이스를 올린 것도 있다.[31] 구단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KBO에서 제작했다. 1998년, 2000년 우승 반지도 있긴 하지만 어디서 제작됐는지 의문. 위 기사에 보면 현재는 현역에서 물러난 NC 다이노스 김수경 코치의 우승 반지를 차례대로 볼 수 있다.[32] 이때는 알 수 없는 막장 선수 기용[33] 이미 LG는 1998년처럼 똑같이 한국시리즈에 올랐지만, 선수들의 체력이 지칠대로 지쳤었다.[34] 김기태 전 감독의 집권 2년차.[35] 쌍방울이 치른 1999년 페넌트레이스 마지막 홈 4연전 중 세 번째 경기. 이날 쌍방울은 2:3으로 패했는데 이 패배로 세 가지 기록이 세워졌다. 하나는 1985년 삼미 이후 14년 만에 단일 시즌 최다연패 타이 기록(18연패)이 등장했고 그 다음은 1995년 이상훈 이후 4년 만에 등장한 정민태의 단일시즌 선발투수 20승 기록이었다. 마지막으로 역대 단일경기 최저 관중 "54명" 기록도 나왔으며 KBO 리그 역사상 한 경기 100명 이하의 관중이 들어온 네 경기 중 하나였다.[36] 2002년 당시 막장이였던 꼴데 라고 불릴 만한 가속화가 된 시점이다. 그 사직 야구장에서 2002년 10월 19일 한화전에서 69명이라는 대기록을 남겼으며 롯데는 공짜표도 준다는 홍보도 했으나 팬들은 개무시했다. 게다가 당시 롯데 감독은 악명높은 백인천. 이 시기 웃긴 점은 저 사직구장에서 자전거를 타고 몇 바퀴를 돌았다는 레전드설로 야갤에서 돌았다.[37] KBO 도감에는 서울특별시라고 표기되어 있다. 당시 현대의 공식 연고지는 서울특별시였지만, LG와 두산의 극렬한 반대로 인해 서울특별시로 오지 못하고 돈도 없이 불법 점거를 한 SK의 제2 홈구장인 수원구장을 '임시로' 사용하고 있는 상태였다. LG와 두산 측에서 극렬한 반대를 하는 것도 당연한데 당시 현대는 대책도 없이 '공짜로' 서울특별시에 입성하려 했기 때문이다. 서울특별시는 엄연히 LG와 두산의 프랜차이즈 보호구역인데 그 연고권을 침해하면서 구장 사용에 대한 계획도 없이(한 때 LG와 두산의 스케줄만으로도 벅찬 잠실야구장을 3팀이 같이 홈으로 쓰자는 황당한 제안도 했었다.) 자기들 사정으로 돈이 없다면서 일단 서울에 입성하고 프랜차이즈 보상금은 나중에 후불로 주겠다는 식의 태도라 두 구단이 반대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38] 김형남은 카드로 구현되어 있지 않으나 이 선수에 대해서는 1996년 한국시리즈 4차전 당시 정명원과 노히트 노런 합작 당시의 유망주 포수였다.[39] 이근엽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태평양 돌핀스에서 지명받은 선수였다. 키도 크고 수비는 잘했으나 문제는 심각한 물빠따였다. 현역시절 염경엽의 다운그레이드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키는 염경엽이 작지만, 공격력에서는 높다. 그래봤자 둘 다 1할대에 타격이다. 2013년 잠시 넥센 히어로즈 2군에서 코치로 오랜만에 프로에 복귀를 했었다.[40] 당시 롯데 자이언츠 선수였다. 실질적으로 현대에 온 것은 노승욱 투수와의 트레이드로 2002년에 건너왔다.[41] 2024년 현재 동군 대 서군이 붙은 마지막 시리즈는 2024년 한국시리즈, 동군 대 동군이 붙은 마지막 시리즈는 2021년 한국시리즈다. 그리고 현재까지 서군 팀의 마지막 우승은 2023년 LG 트윈스다.[42] 두 선수 모두 1998 방콕 아시안 게임에 발탁되어 금메달을 획득하여 병역면제를 하게 된다.[43] 다만 1990년 LG 트윈스를 우승시킨 백인천 전 감독의 경우는 MBC 청룡 시절 초기에 감독 겸 선수로 활동했기 때문에 선수 활동으로 따진다면 이쪽이 최초라고 할 수 있지만 순수 선수 출신으로 보면 김재박이 "최초" 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김재박은 소속팀으로 뛴게 아니다. 역사 승계만 소속팀으로 이관, 즉 현대의 전신인 태평양에서 선수생활과 지도자(주루코치) 생활만 했다. 김재박과 다르게 선수/코치/감독으로 따질시에는 류중일이 있고, 잠시 타팀에서 코치 생활을 하고 돌아온 김태형에게만 해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