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BOACスチュワーデス殺人事件1959년 일본에서 발생한 의문의 살인 사건. 쇼와 시대 최대의 미제사건으로 불리며 갖가지 논란을 낳았던 사건이었다.
2. 스튜어디스의 죽음
사건 당시 사체 발견 현장인 젠푸쿠지 강
오늘날의 사체 발견 현장 모습
1959년 3월 10일 아침 도쿄도 스기나미구의 젠푸쿠지강(善福寺川)에서 어떤 여자의 변사체가 발견되었는데 옷을 입은 상태로 하늘을 보고 강물에 떠 있는 상태였다.
일본 경찰은 처음에는 사건을 자살로 생각하고 처리하려고 했으나 사체가 발견된 장소가 문제가 되었다. 센푸쿠지천은 폭은 10여m 정도고 어린이들이 들어가서 놀아도 문제가 없을 만큼 수심이 얕기 때문에 과연 이런 곳에서 익사하거나 자살할 수 있는지 의문이 일었다. 결국 경찰은 타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시신을 게이오기주쿠대학으로 옮겨서 부검을 실시했다.
부검 결과 피해자의 사인은 목이 졸려 죽은 교살로 드러났으며 피해자의 성기 안에서 O형 남자의 정액이, 팬티 부분에선 A형과 AB형 남자의 정액이 발견되었다. 피해자가 사망하기 약 10시간 전쯤에 남자와 성관계를 맺었다고 추정되었다.
피해자 타케가와 토모코
피해자의 신원은 27세 타케가와 토모코(武川知子)로 드러났는데 BOAC[1], 즉 영국해외항공회사 소속의 스튜어디스였고 죽기 1년 전인 1958년 12월에 BOAC가 코밋 항공기 항로를 개설하면서 고용한 일본인 스튜어디스 8명 중 1명이었다. 타케가와를 비롯한 일본인 스튜어디스들은 이듬해까지 영국 런던의 본사에서 교육을 받은 후 1959년 2월 27일에 귀국했고 3월 13일에 비행기에 탑승해 첫 업무를 시작할 예정이었다.
경찰이 파악한 타케가와의 행적은 사체로 발견되기 이틀 전인 3월 8일 오후 3시경 세타가야에 있던 스튜어디스들의 숙소에서 외출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타케가와는 동료들에게 "코마고메에 있는 숙부 다카하시 고로의 생일잔치에 초대받았다."고 말한 뒤 외출했다고 하지만 경찰이 확인해 본 결과 코마고메에 다카하시 고로라는 숙부가 살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생일잔치는 사실이 아니었다고 한다. 시신의 성기 안에서 발견된 정액 등으로 미루어 보면 타케가와가 숙부의 생일잔치를 핑계로 남성을 만났던 게 아닌가 하고 경찰은 추정했다.
3. 용의자는 가톨릭 신부?
용의자 루이즈 벨메르쉬(Louis Charles Vermeersch, 루이 샤를 베르메르쉬, ベルメルシュ・ルイズ)
3.1. 용의자 지목
경찰이 수사를 진행해 나가면서 유력한 용의자가 떠올랐는데 놀랍게도 38세 벨기에 가톨릭 사제 루이즈 벨메르쉬 신부였다. 벨메르쉬는 살레시오 수도회[2] 소속의 가톨릭 신부로, 1948년 신학생 신분으로 일본에 도착해 1953년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이후 살레시오 수도회의 사회선교 기관인 돈 보스코사에 배속되어 재무담당으로 일해 왔다. 돈 보스코사는 이탈리아에 있는 살레시오 수도회 총 본원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가톨릭 전교를 위한 출판과 판매사업을 하는 곳이었다.벨메르쉬에겐 그다지 좋지 않은 소문이 떠돌았는데 살레시오 수도회 소속 유치원의 보모, 간호사들과 연애를 한다거나 성관계를 맺는다는 것이었다. 묘하게도 타케가와 토모코도 스튜어디스가 되기 전 살레시오 수도회 산하의 성 오델리아 유치원에서 간호사로 일했고 그 과정에서 벨메르쉬와 아는 사이가 되었음이 밝혀졌다.
3.2. 경찰 조사
이 점을 파악하자 경찰은 벨메르쉬를 타깃으로 두고 수사를 진행해 나갔다. 탐문을 진행하던 중에 벨메르쉬와 토모코를 닮은 남녀를 하라주쿠에서 목격했다는 목격담을 듣게 되었고 곧 하라주쿠의 키쿠후지 호텔에 두 사람이 들어갔다는 사실을 밝혀내었다.이어 결정적인 목격담이 나왔는데 토모코의 시신이 발견된 3월 10일 오전 5시 센푸쿠지 강 인근에 살던 한 주부가 "밖에서 차 소리가 나서 내다보니, 하얀색 소형 승용차가 센푸쿠지 강 옆 둑길을 내달리고 있었다"고 제보했다. 경찰이 주부에게 그녀가 본 차량을 지목하도록 차량 카탈로그를 보여주자 그녀는 하얀색 르노 차량을 지목했다. 그런데 벨메르쉬의 승용차는 하얀색 르노였으며 동네의 다른 주부들도 일관되게 "하얀색 르노 차량을 목격했다"고 진술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일본 경찰은 벨메르쉬를 중요 참고인으로 조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티칸 및 살레시오 수도회와의 교섭 끝에 변호사와 주일교황대사관의 일등서기관이 심문에 입회하기로 하고 조사가 시작되었다. 벨메르쉬에 대한 심문은 제국은행 사건과 요시노부 유괴 살인 사건을 해결해 유명해진 히라츠카 하치베가 맡았다.
경찰은 발견한 정액의 혈액형이 O형 남자의 것임을 이미 확인했기 때문에 벨메르쉬의 것과 맞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타액을 채취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심문실에 커피, 주스 등을 들여보내 찻잔에서 벨메르쉬의 타액을 채취하려고 했고 소변도 채취하려 했지만 벨메르쉬는 이미 사전에 누군가에게 코치를 받았는지 경찰이 권하는 커피와 주스 등에는 입도 대지 않았으며 심지어 화장실에도 가지 않을 정도로 심하게 경계하는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날 같으면 특히 한국에서는 압수수색 중 우리가 흔히 아는 물건에 대한 압수수색 말고[3] 신체에 대한 압수수색인 이른바 '신체 압수수색'이라는 것을 강제로 시행할 수 있다. 즉, 이게 발동되면 경찰관 입회하에 경찰관이 피의자의 옷을 강제로 벗겨 성기를 비롯한 온 몸을 수색하고 검사할 수 있다.[4] 당시 일본에도 이런 제도가 있었다면 정액과 소변도 본인이 거부해도 강제로 채취할 수 있겠으나 당시에는 그런 법이 없었는지 강제로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벨메르쉬에 대한 심문은 5월 11일에서 13일, 20일에서 21일 5회에 걸쳐 30여 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정황증거들로 봤을 때 벨메르쉬의 혐의는 유력한 것으로 보였으나 벨메르쉬는 토모코와의 성관계를 완강하게 부인했으며 알리바이가 있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토모코의 사망 추정시간인 3월 9일 오후 9시에서 12시 사이의 알리바이를 추궁하자 벨메르쉬는 알리바이를 제대로 대질 못했으며 하라주쿠의 호텔에 투숙한 것도 처음에는 완강하게 부인하다가 경찰이 증거를 들이밀자 "단지 쉬러 들어갔을 뿐"이라고 진술을 번복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경찰은 어떤 방법을 썼는지는 알 수 없으나 벨메르쉬의 혈액형을 알아내고 정액의 혈액형과 일치함을 밝혀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경찰이 벨메르쉬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할 새도 없이 6월 11일 오후 7시 30분 벨메르쉬는 갑자기 로마 본부로 전속되었다면서 도쿄 국제공항을 통해 에어 프랑스 비행기를 타고 로마로 떠나고 말았다. 경시청은 "아무 통보를 받지 못했다"면서 "유감"이라고만 밝혔을 뿐 이후 수사를 더 진행한다거나 하지 않은 채 사건은 그대로 유야무야 묻히고 말았다.
3.3. 공소시효 만료
결국 1974년 3월 10일 15년의 공소시효가 종료되면서 사건은 영원히 해결될 가능성을 잃고 말았다. 벨메르쉬 신부는 사건 이후에도 활발히 사목활동을 하다가 2017년 3월 캐나다의 뉴브런즈윅에서 선종했다. 너무 오래 전 사건이라 이제 와서 조사도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에 신부가 죽은 게 새삼스러운 건 아닌 듯하다.4. 토모코는 왜 죽었는가?
여러 정황증거로 봤을 때 벨메르쉬가 가장 유력한 용의자인 것은 분명한 걸로 보인다. 하라주쿠에서의 목격담과 호텔 투숙, 발견된 O형 혈액형과 일치하는 벨메르쉬의 혈액형, 센푸쿠지 강 인근에 사는 주부들의 목격담, 사망 추정시간의 알리바이를 대지 못한 것과 진술을 번복한 것 등을 종합해 보면 그러하다.물론 A형 및 AB형 남자의 정액도 발견되었기 때문에 다른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일본 경찰의 당시 조사에 의하면 토모코는 평소 여러 남자들과 관계가 있었으나 죽기 전에는 벨메르쉬 외의 다른 남자를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으로 미뤄 볼 때 벨메르쉬에게 여러모로 혐의가 두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어 보인다. 만약 당시 DNA 검사기술이 있었다면 정액의 DNA와 벨메르쉬의 타액 등에서 채취한 DNA 대조를 통해 명확하게 증거를 잡아낼 수 있었을 테지만 1950년대 말의 상황에선 혈액형만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다.
사건의 동기로 치정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벨메르쉬와 토모코의 사이가 틀어져서 토모코가 이별을 통보하자 분노한 벨메르쉬가 교살했을 가능성, 가톨릭 성직자라는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정결의 서약을 어긴 벨메르쉬의 약점을 토모코가 이용해 협박을 가하려고 하자 교살했을 가능성도 있다.
한편으로 일각에서는 돈 보스코사가 토모코의 살인에 개입한 게 아니냐는 추정을 내놓기도 했다. 본래 살레시오 수도회 소속의 유치원에서 일하던 토모코가 갑자기 BOAC의 스튜어디스가 된 것부터가 뭔가 수상하다는 것이다. BOAC의 스튜어디스는 적정 연령이 20세에서 25세로 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보다 나이가 2살 위인(27세) 토모코는 규정으로만 따지면 BOAC의 스튜어디스가 되는 것이 어려웠으며 시험 성적에서도 그녀는 썩 우수하다고 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뽑혀서 의혹을 샀다. 런던 본사에서 교육을 받을 당시 동료 스튜어디스의 증언에 의하면 "단독 행동이 많았고, 이른 아침이면 어디론가 나가곤 했다. 편지 같은 것을 지니고 다니는 걸 여러 번 목격했다. 무엇인가 초조하고 무서워하는 것 같은 기색이었다"고 한다. 어렵게 스튜어디스가 된 토모코가 두려워했던 건 대체 무엇이었을까?
당시 돈 보스코사는 가톨릭 포교를 위해 위법을 서슴치 않았는데 달러를 밀수해 정상 환율보다 더 높게 환전해 부당이득을 취하거나 소위 구원물자라고 하여 외국에서 들여온 구호물자를 암시장에 내다파는 사건들이 심심찮게 벌어졌고 BOAC의 홍콩 경유 극동항로는 돈 보스코사의 최대 자금 밀수로였다고 전해진다. BOAC는 승무원들의 밀수와 불법자금 수송 등으로 골머리를 앓았으며 심지어 1960년에는 이런 밀수에 연루된 승무원 127명을 대량해고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기도 했을 정도로 밀수는 매우 심각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돈 보스코사의 재정 담당인 벨메르쉬의 애인인 토모코를 BOAC의 스튜어디스로 들어가게 해서 유럽에서 일본으로 비밀리에 달러를 밀수하는 운반책을 맡기려 한 게 아닌가라고 추정한다. 토모코가 런던에서 보인 이상 행동도 이런 밀수 운반책으로서의 교육을 받거나 지령을 받는 것이 아니었고 토모코가 뭔가 반항하거나 밀수한 달러를 빼돌리거나 하는 짓을 저질러서 벨메르쉬 본인이나 돈 보스코사에서 그녀를 살해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정황에 따른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
5. 기타
일본의 대표적 가톨릭 소설가인 엔도 슈사쿠는 이 사건에 대한 일본 가톨릭 교계의 대응을 맹비난했다. 엔도 슈사쿠는 "가톨릭 신부가 여자와 호텔에 갔다는 건 매우 충격적인 사실이다. 만약 이게 사실이 아니라면 당당하게 결백을 밝혀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아서 가톨릭 교회에 가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비판했으며 벨메르쉬가 도망치듯 일본을 떠난 것에 대해서는 "갑작스런 귀국으로 일본인들의 의심만 더 키웠다"고 비판했다.그런데 이는 틀린 사실도 일부 있는데 사실 일본은 이 사건이 있든 말든 에도 시대 초기 (큐슈의 일-화간 무역을 제외한) 쇄국령과 천주교 선교 탄압 때문에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 인구가 적은 국가였다. 더 엄밀히 말하자면 이웃나라인 한국과 달리 국민들의 상당수가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 특히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에 대해선 무관심에 가까웠기 때문에 이 사건과 일본 국민들이 일본 가톨릭을 안 믿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일본의 기독교 인구, 그러니까 개신교+가톨릭+정교회 합쳐서 기독 빅텐트 단위로 쳐도 전체 인구의 5% 미만의 참담한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5] 하지만 한편으로 "일본 언론들이 무죄추정의 원칙을 지키지 않고 벨메르쉬를 범인인 것처럼 단정해서 보도한 것도 문제"라고 양비론적 시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회파 추리소설 작가인 마츠모토 세이초도 이 사건을 집중 취재했고 이를 바탕으로 <검은 복음>이라는 소설을 집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마츠모토 세이초는 이 사건을 담당했던 저명한 경찰 히라츠카 하치베와는 제국은행 사건과 시모야마 사건 등에서 의견이 갈렸던 것과는 달리 이 사건에선 서로 의견이 일치했다고 한다.
6. 미디어
스튜어디스가 살해되고 중요 용의자가 가톨릭 성직자라는 점 때문에 세간의 큰 주목을 받았고 이런 세간의 주목 덕에 사건이 일어난 바로 그해 10월에 바로 이 사건을 다룬 영화가 나왔다. 이노마타 카즈히토라는 감독이 "살해당한 스튜어디스, 흑과 백"이란 제목으로 내놓은 영화였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일본 가톨릭교회의 거센 항의로 문제가 된 부분[6]을 삭제했음에도 항의와 협박이 끊이지 않아 결국 일주일 만에 극장에서 내려야 했으며 심지어 원본 필름도 분실되어서 전모를 알기 어려워졌다.이 사건을 다룬 가장 유명한 미디어믹스는 바로 상술한 마츠모토 세이초의 <검은 복음>으로, 이 사건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미디어믹스가 되었다. 마츠모토 자신이 설립한 안개 프로덕션이 1975년 이 작품을 드라마화해 방영했으며 2014년 아사히 TV가 창사 55주년을 기념해 기타노 다케시 주연의 TV영화로 만들어 방영하기도 했다.
[1] British Overseas Airways Corporation. 현 영국항공(British Airways)의 전신이다. 영국항공은 이 BOAC와 BEA(영국유럽항공)를 합쳐 1974년에 만들어진 항공사다.[2] 이탈리아인 돈 보스코 신부가 설립한 수도회. 주로 청소년과 청년들을 위한 활동을 한다. 살레시오 수도회(남자)와 살레시오 수녀회(여자)가 있다. 1955년 한국에도 진출하여 광주광역시에서 살레시오 학교들을 운영하는 등 여러 가지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3] 기업, 정치인 비리 터질 때 뉴스에서 박스에 물건 담아 압수하는 것.[4] 당연히 남자 피의자는 남자 경찰관이, 여자 피의자는 여자 경찰관이 조사한다.[5] 물론 신토와 불교는 그래도 전국민 상당수가 믿고 있으나 이는 두 종교가 역사가 그나마 오래되었고 신토는 국가신토의 영향 이래 단순한 종교 이상의 일본 문화 중 하나로 완전히 녹아들어서 그런 것이다. 사실 신토와 불교는 일본 역사적으로도 사이가 나빠 티격태격했지만 그러면서도 민간에서는 신토 신에 불교-인도 신화 신이 편입되거나 하는등 소위 신불습합 현상도 지속적이었기 때문이다.(신토를 믿는다는 건 사실상 무종교나 마찬가지인 것처럼 되었다.)[6] 가톨릭 신부와 스튜어디스의 성애 및 가톨릭 신부의 스튜어디스 살해 장면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