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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9 13:23:52

김장훈

숲튽훈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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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3C481><colcolor=#FFFFFF> 김장훈
金壯勳[1]|Kim Jang Hoon
파일:김장훈-001.png
출생 1963년 8월 14일 ([age(1963-08-14)]세)
서울특별시 마포구
본적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2]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본관 김해 김씨 (金海 金氏)[3]
신체 187cm, 83kg, 285mm
혈액형 O형
가족 어머니 김성애[4], 누나 2명
학력 홍익국민학교 (졸업)
광성중학교 (졸업)
마포고등학교 (중퇴)
고등학교 졸업 학력 검정고시 (합격)[5]
경원대학교 인문대학[6] (영어영문학 / 명예졸업)
병역 대한민국 육군 상병 소집해제[7]
MBTI INFP
종교 개신교(예장중앙)[8]
직업 싱어송라이터, 방송인, 공연 기획자 및 감독, 수필가, 사회운동가[9], 배우, 유튜버, 강연가, 요식업자[10], 사업가(의류 및 화장품)[11]
소속사 FX솔루션
데뷔 가수: 1991년 정규 1집 〈늘 우리사이엔〉
집필활동: 2016년 〈나를 도발한다〉
유튜버: 2019년[12]
장르 발라드, 헤비메탈, , 댄스 팝[13]
별명 숲튽훈(김튽훈, 숲장훈)[14], 독도지킴이, 갤주님[15], 신생아[16], 기부천사[17]
특기 하모니카 연주, 무대 연출, 김국진 성대모사, 언어유희[18], 소리 내지르기, 발차기[19], 깡[20], 언변[21]
링크 김장훈 :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네이버 블로그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SOOP 아이콘.svg
숲튽훈 : 파일:네이버 카페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SOOP 아이콘.svg

1. 개요2. 나이3. 직업4. 생애5. 보컬 및 가창력
5.1. 기량 하락 이전5.2. 기량 하락 이후5.3. 부활
6. 숲튽훈, 밈으로 재탄생 하다.
6.1. 숲튽훈으로서의 유튜버 활동6.2. 버튜버 데뷔
7. 음반 목록8. 콘서트9.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10. 인간관계11. 논란 및 사건 사고12. 대표곡13. 연기 활동14. 저서15. 정치 성향16. 여담17.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22] 방송인, 공연 기획자,[23] 수필가, 사회운동가, 사업가.[24] 유튜버이자 스트리머, 요식업자[25], 강연가,[26] 집시[27]이기도 하다.

언더계에 머무르며 음악 활동을 하다, 가족의 빈곤을 버티지 못해 방송활동을 시작했다. 1998년 '나와 같다면', '사노라면',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등을 히트시켜 정상 가수 반열에 올랐다. 또 음악계에 몸담으며 음반 프로듀서와 싱어송라이터로도 활약했으며 그가 고안해낸 연출은 공연계에 큰 족적을 남기기도 하였다. 스스로의 공연을 연출하는 것을 시작으로 이소라, 최재훈 등의 가수 콘서트를 연출하였으며, 외국 뮤지컬의 특수효과 연출감독을 맡기도 하였다. 긴급조치 19호[28][29]라는 영화에도 출연한 경력이 있으며 그 이후 소박하지만 꽤 자주 주조연을 맡으며 연기 커리어를 이어나갔다.

2. 나이

노년층에 다다른 중년층으로, 환갑을 넘었다. 그러나 나이에 비해 젊은 이미지가 강하다. 버튜버 활동을 할 정도면 새로운 시류에 민감하다고 할 수 있다.

김장훈의 생년월일은 1963년 8월 14일로 현재 [age(1963-08-14)]세이나, 예전에는 1967년생으로 활동했었고 그 당시에도 이것이 실제 출생연도가 아니라는 것은 널리 알려졌었다.

예를 들어, 빠른 1968년생인 김건모[30]가 형이라고 불렀었고, 또 봄여름가을겨울1962년생인 김종진유희열의 라디오천국에 나와 '장훈이가 나보다 1살 어리걸랑요?'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31] 또한 김장훈 다음으로 기부를 많이하는 박상민이 1964년생인데 김장훈을 언급하며 "내가 기부하는게 알려지나 싶으면 그 형이 한번에 기부를 너무 많이 하잖아요"라고 말해서 1963년생임이 기정사실화 되었다[32]. 이승철만 하더라도 슈퍼스타K 심사 중 김장훈 얘기를 하며 자연스럽게 "장훈이 형"이라고 지칭했는데, 이승철은 한 살 많은 이승환에게도 형이라고 잘 안 할 정도로 자존심이 세다.[33] 김장훈이 몇 살 많다는 확신이 없으면 형이라고 할 가능성이 없다.

주민등록상으로 1966년생이나 본인 주장으로 1962년생이라고 하는 임재범의 경우 다른 1962년생을 형님으로 모시거나 몇 년마다 주장하는 나이가 수시로 바뀌어서 신뢰성이 다소 떨어지지만, 김장훈의 경우 다른 연예인들이 일관적으로 1963년생으로 대하는 걸 보면 방송용 나이만 다를 뿐 정확한(주민등록상) 출생연도가 1963년생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결정적으로 이 영상의 1분 18초를 보면 김장훈의 이름 옆에 49Y가 표시되어 있다. 병원에선 본인의 정확한 인적사항을 적는다는 점과 촬영시점인 2012년 8월 기준으로 49세라는 점을 미루어보면 1963년생이 확실하다.

2023년에 환갑을 맞으면서 방송에서 팬들이 이에 대해 언급하는데 김장훈 본인도 부정을 안 하는데다 버튜버 부캐로 활동할 때에도 은근슬쩍 자신이 환갑임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이면서 나이 이슈는 옛날 이야기가 되었다. 환갑을 기준으로 나이에 대한 생각을 내려놓은 것으로 보인다. 버튜버 기믹을 이용해 비밀이 많았던 이유를 얘기하기도 한다.

이제는 대놓고 환갑이라고 기사까지 났다. #

3. 직업

사회적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는 편이다. 우선 가장 주된 활동은 가수이지만, 한창 공연에 빠져 있을 당시에는 공연 연출가로서 활동하기도 하였고, 현재는 가수는 즐거운 일이며 돈은 사업으로 번다는 말을 할 정도로 사업체를 크게 굴리고 있다. 주로 의류 및 화장품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콘서트 도중 화장품을 소개하기도 한다. 이와 별개로 이태원에서 마라 집을 개점하며 요식업자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수필을 쓰거나 사회적인 활동(기부, 자원봉사 등)을 하거나 강연을 하는 등의 활동도 꾸준히 진행중이다. 또한, 부캐 '숲튽훈'으로 버튜버 활동을 시작하며 스트리머라는 직업도 가지게 되었다.

4. 생애

어린 시절 몸이 매우 약했다고 한다. 조그만한 감기에도 실신할 정도였다고 한다. 약한 몸 탓에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고 어릴 적부터 생각했고, 그로 인해 중학생 때부터 많은 싸움을 벌여왔다고 한다.[34] 이런 그의 생각은 그가 가수로 데뷔한 이후에도 가요계에서 잦은 문제를 일으키게 되는 원인이 된다.

고등학생 때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했다. 김장훈의 주장에 따르면, 김현식이 김장훈이 언더에서 데뷔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고 한다. 어머니끼리 지인이어서 두 사람이 가까워졌고, 형편이 어려울 때는 서로의 집에서 자기도 했을 정도라는데, 김현식 추모 열기가 강하던 당시에 김현식과 혈연 관계임을 내세우며 김장훈이 오버그라운드에 등장했지만 이미 김현식이 작고한 상황이라 그때든 지금이든 김장훈이 뭐라고 말해도 확인할 길은 없다.

1990년 10월 김현식이 작고한 후 김현식의 사촌 동생[35]으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여러 시상식에서 '내 사랑 내 곁에'를 대신 부를 인물로 선정되었지만, 스스로가 김현식의 이름을 팔아서 자신이 인기를 얻는 것이라고 생각해 방송을 펑크내면서 7년간 방송 출연을 금지당하게 되고, 결국 1991년에 1집 앨범 '늘 우리 사이엔'으로 언더에서 데뷔했다. 그렇게 방송 출연 금지가 풀린 1998년까지 언더에서 계속 활동하며 500여차례가 넘는 공연을 가졌다. 1998년 방송 출연 금지가 풀린 이후에도 계속 언더로 활동 하려다가[36] 어머니가 고생하는 걸 볼 수 없어 대중가수로 데뷔했다고 한다. 3집까지는 인지도가 낮아서 3집을 낼 때 기획사와의 합의로 직접 앨범 표지에 3집이라는 언급은 못했고 그 대신 그림으로 "삼(인삼)"과 "집(House)"으로 표시했다고 한다.[37] 3집의 타이틀 곡이 그 유명한 노래만 불렀지이다.

4집부터 가난한 가족을 돕기 위해, 그 외에 여러가지 이유로 언더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그래서 대중적인 가수들의 발라드를 받아 부르기 시작했고, 방송에 나가면서 웃긴 가수의 이미지를 쌓았으며, PD와 싸우거나 방송펑크내지 않기로 했다. 대중적인 음악을 할 것, 방송출연 할 것, 싸우지 말 것, 세 가지 약속을 한 후에야 하나음악과 전격 계약했고 이때부터 서서히 곡 인기와 인지도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1998년에 발표한 4집에 수록된 '나와 같다면[38]'이 흥행하면서 무명가수에서 벗어났다. 이 노래의 히트로 처음으로 메이저급 기획사에 들어가게 된다. 이때 받은 계약금 9억 원을 어머니가 활동하던 청소년 복지시설인 새소망의 집에 모두 줬다고 한다. 김장훈의 기부활동의 시작이라고 볼 수도 있다. 또한 4집의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역시 히트를 치며 큰 사랑을 받았다.

1999년 발표한 5집의 "오페라[39]"가 2000년 즈음에 라이코스병맛나는 광고에 삽입되면서 인지도가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5집 타이틀곡은 '슬픈 선물'이며 슬픈 선물 역시 크게 히트쳐 김장훈의 인기를 다시금 각인시켰다.

2000년 6집의 '혼잣말'과 유희열에게 의뢰하여 얻은 '난 남자다'[40] 또한 인기를 끌었는데, 이때 '혼잣말'이 김장훈의 노래 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지상파 방송에서 1위를 해서 화제가 되었다. KBS 뮤직뱅크에서 수상했고, 당시 상대는 S.E.S.의 <감싸 안으며> 였다.

2001년 7집 앨범은 대중적인 히트는 치지 못했지만 마니아 층을 상대로 꾸준히 사랑받았고, 2002년 7월에는 긴급조치 19호의 주연으로 출연하며 영화배우로도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렇게 활동하던 중 2002년 12월 크리스마스 연말 공연 '아듀'를 끝으로 UCLA로 유학을 떠난다 전하고 3년간 소식이 없었다. 그 유학이라는 게 공개 강좌한 과목만 들은 거지만 유학 시절 박경림과 자주 교류했다고 한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낸 곡들은 이전의 히트곡들처럼 단기간에 크게 히트를 치기 보다는 시간이 갈수록 인기를 얻는 편이었다. 그 중 허니소나기가 현재까지 명곡으로 회자되고 있으며 김장훈의 대표곡들로 여겨진다.

초창기 무명 시절을 거쳐 다양한 곡이 히트하며 뮤지션으로 대우 받았고, 여기에 잦은 기부 활동을 통한 기부 천사 이미지와 독도 지킴이 활동 등의 사회운동으로도 유명해져 소위 말하는 개념 연예인이자 안티가 거의 없는 국민 호감 연예인이었다. 음악과 공연 연출, 호탕한 퍼포먼스, 사회 운동, 예능 등 전 범위에서 활동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41] 허나 다양한 구설수와 기행으로 점차 부정적인 이미지가 늘어났고, 이러한 것들이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퍼지면서 이미지가 추락했다. 특히 과거의 김장훈이라고 느끼기 힘들 정도의 라이브 영상이 퍼지면서 숲튽훈으로 조롱받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나 본인도 이를 포용하는 긍정적인 면을 보여주어 여론이 좋아졌고, '숲튽훈' 개그 영상과 본인의 호탕한 모습으로 10~20대에게 이름을 알리며 재기하는 모양새다.

인터넷상에서는 숲튽훈[42]이라고도 불린다. 그가 노래를 잘하던 시절에는 가수 김장훈, 못하는 현재에는 농담삼아 '숲튽훈'이라고 한다. 요새는 '차에 타봐', '', '어디가요 오빠' 등의 괴곡으로 재주목 받은 가수 , '비단길', '이 노래 웃기지' 등으로 흥한 김준수와 더불어 젊은 층 사이에서 인터넷 밈이자 개그 요소로 쓰이기도 한다. 실제로 유튜브를 이용하는 어린 층이 댓글을 수백 개씩 달며 핫한 컨텐츠화가 되어가는 중이다.

숲튽훈 영상의 유행으로 김장훈의 이미지가 바닥까지 추락했었지만, 김장훈 본인은 크게 기분 나빠하는 것 같진 않다.[43] 또한 자숙 이후 방송 출연을 적게 하며 공연에 대한 홍보 부족을 인식했는지 유튜브 계정을 생성하여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로써 유튜버로 데뷔하였으며 "숲튽훈" 컨셉의 인기로 여러 영상이 히트하였다.[44] 또한 숲튽훈 컨텐츠로 마리텔2에 출연하기도 했다. 이후 숲튽훈은 김장훈에 대한 조롱보다는 단순한 드립으로 인식되는 비중이 커졌다.[45]

2019년 유튜버로 데뷔하여 진행한 유튜브 생방송[46]에서 어떤 시청자가 "숲튽훈에 대해서 알고 있냐"라고 물어본 것에 대한 답변으로 "알고 있으며, 처음에는 조롱조로 시작했으나 이 때문에 몰려온 팬들 덕에 이미지가 좋아진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좋게 생각한다"라고 발언했다. 유튜브의 밈인 "김장훈vs숲튽훈"으로 발성을 선보이기도 하였으며[47] 숲서트"라고 이름붙인 숲에서의 콘서트도 열 정도이니 10대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킨 "숲튽훈"밈에 대해 진심으로 고맙게 여기는 듯 하다. 그러나 본인에 관련된 밈을 100% 숙지한 조혜련과 달리 완벽히 아는 것인 아닌지 나중에 채팅창에 올라온 "으락캬!!" 등의 유행어는 몰라보았다. 또한 방송내내 "숲튽훈"을 "숲장훈"이라고 칭했다. 그러나 점점 그 밈에 대해 정보가 늘어가는지 현재는 "숲튽훈" 컨텐츠에 대해 꿰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5. 보컬 및 가창력

한계까지 내지르는 특유의 창법[48]
▲ 김장훈의 가창력을 깔 때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클립
▲ 김장훈의 전성기 시절 언급되는 대표적인 클립

소위 말하는 레전드를 포함해 모든 가수들은 나이가 들거나 건강상 이유로 어느 정도씩은 가창력이 하락하지만, 김장훈은 특히나 기복이 심하기 때문에 전성기 시절과 그 이후 기량이 극단적으로 차이나는 케이스이다. 따라서 '김장훈의 가창력'을 평가하려면 2009년과 그 이전 정도로 구분하는 것이 용이하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2009년 이전까지는 테크닉적으로는 떨어지지만 타고난 피지컬과 표현력으로 준수한 기량이던 가수가 나이에 따라 점점 기량이 하락하는 자연스러운 곡선을 그렸다면, 2010년대부터는 좀 거칠게 표현하면 김장훈과 목소리가 비슷한 일반인이 웃기려고 코믹하게 성대모사하는 것 같은 수준으로 극단적으로 하락했다. 다만 2020년대부터는 무리한 고음을 줄이고 창법을 자연스럽게 바꾸는 방식을 통해 가창력을 상당 부분 회복했다.

5.1. 기량 하락 이전

이미 데뷔 시절부터 가창력 면에서 그렇게 호평을 듣지는 못했으나, 그래도 전성기 당시에는 뛰어난 피지컬에서 우러나오는 웅장한 성량과 감미로운 음색, 특유의 감성, 뛰어난 퍼포먼스로 레전드급 공연을 여럿 만들어냈다. 특징으로는 오로지 진성으로만 노래하는 가수라는 것이며,[49] 가성구가 손상되어 가성은 거의 쓸 수가 없다. 사실 테크닉적으로 봤을 때는 발성이 안정적이지 않아[50] 소위 말하는 생목 목소리가 나기도 한다. 유희열이 2009년 명랑 히어로에서 말하기를 '김장훈 씨 노래를 머리나 테크닉으로 들으면 안 와닿죠. 대한민국에서 가슴으로 노래하는 사람들이 몇 명 없잖아요. 다들 선생님들한테 레슨받아서 기계적으로 부르지만 김장훈씨는 노래를 정말 마음으로 하시잖아요. 사람들이 마음으로 받아들이죠. 그럴 수 있는 가수가 대한민국에 또 있나요?'라는 언급이 있었는데, 이게 김장훈의 전성기 끝물이었던 2009년에 유희열이 발언한 시점에서는 틀린 말이라고 할 수는 없다.

사실 가수로서의 피지컬은 매우 좋은 편이었다. 분명한 굵직하면서 듣기 좋은 음색을 가졌고 폐활량도 좋았으며 음역대도 저음에서 고음까지 매우 넓었다.[51][52] 성량도 큰 편이라[53] 관객들을 다 사로잡을 정도였다. 사람들은 이때의 김장훈을 '킹장훈'이라고 부른다. 예시1[54], 예시2[55] 예시3[56], 김장훈의 무대 장악력과 퍼포먼스를 가장 잘 보여주는 라이브로 꼽힌다.[57], 전성기 시절 그의 가창력을 보여주는 영상.

문제는 발성이 나쁜 발성의 전형인 인골라[58]라서 음이 올라갈 때마다 목을 조이게 되었다는 거고,[59] 거기에 술담배까지 즐긴 탓에 늙어서는 타고난 피지컬을 잃어버렸다.

김장훈의 강점이라면 감정전달력으로 이 부분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다. 발성이 나쁘지만 이것을 이용해서 슬픈 곡에서는 더욱 구슬프게 울부짖는 느낌으로 노래를 불렀고, 웃기는 곡에서는 일부러 악 소리를 내는 등 우스꽝스러운 느낌으로 꾸미면서 더 웃기게 불렀다. 여기에 표정 연기나 손짓, 춤도 더해서 가사의 감정을 살리는 데에 엄청난 소질이 있었다. 특히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 부른 소나기와 허니는 감정표현면에서 극찬을 받은 라이브중 하나다.#, #

데뷔 초기~ 중반기였던 2000년대 초반까지는 타고난 음색과 젊음에서 나오는 피지컬이 받쳐주었고, 또 영향받은 가수가 에어로스미스스티븐 타일러 등의 해외의 락커들과 김현식[60], 전인권[61] 권인하[62] 등의 국내의 철금성(쇳소리)나는 가수들이어서 가성을 거의 구사하지 않는 스타일을 무기로 꽤 특색있고 괜찮은 가창을 들려주었다. 2000년대 중반까지는 특유의 반가성과 가성도 나름 안정감 있게 나왔다. 사실 위에 나온 데뷔 때부터 가창력이 좋다는 평가가 없었다는 말은 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일단 김장훈의 기본기와 발성법이 프로 수준에 못 미치는 것은 확실하며, 그는 교과서적인 발라드를 소화할 수 있는 가수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전성기 시절 그 잘못된 발성으로도 공연장 전체를 울리는 성량과 넓은 음역대를 자랑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표현력까지 지니고 있었다. 음정이나 박자도 안정적으로 공연하는 걸 보면, 테크닉을 비롯한 기본기가 뛰어난 본좌급 보컬들에 비하면 모자라지만 발라드 가수로서 전성기 시절의 전체적인 노래실력은 좋은 편에 가깝다. 사실 발성 문제가 크다곤 하지만 가수로선 꽤나 늦은 나이인 40대 초반까지 기량을 유지했고, 40대 중반까지도 괜찮은 편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그리 빨리 하락세를 탄 것도 아니다.[63] 문제는 일반인들이 알만큼 유명해진 시점이 30대 후반(1990년대 후반에 유명해졌다. 오버그라운드 데뷔도 1990년대 초반으로 30살이 다 된 시점이라 빠르지 않은 편.)이어서, 너무 늦게 스타가 된 부분때문에 대중들에게 장기간의 전성기를 못 보여줬다는 것이고, 나이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모호하게 가져가는 전략의 흐름 속에서 하락세를 너무 극단적으로 타면서 말도 안 되게 무너진 것이다.

팬들이나 안티들이나 김장훈 가창력의 최전성기는 대체로 2001년에서 2008년으로 보고 있다.[64] 이때 라이브 앨범에서 보여준 슬픈 선물과 노래만 불렀지의 라이브는 그의 인생 라이브로 꼽힌다.[65] 9집의 Honey (Mania Ver)에서는 반가성을 사용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66]

사실 기량 저하 이후에도 고음 없이 노래를 부르면 2000년대 음색이랑 큰 차이는 없고 그렇게 샤우팅을 해대는데도 아직 노래 부르는 게 가능하긴 한걸 보니 목소리가 망가진 것은 성대 노화가 주된 원인으로 보인다. 2007년, 고음이 깔끔했던 '사노라면' 라이브를 보면 지금과 엄청 다른 것을 알 수 있다.[67][68] 영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2009년 이전까지는 저음에서의 좋은 음색이 2옥타브 중반 이상의 고음에서도 유지되어서 평이 좋았다.[69]

사실 망가진 이후 김장훈의 충격이 워낙 커서 원래부터 김장훈은 노래를 못 부르는 가수이자 음치라고 깎아내리고 저평가하는 이들이 많은데, 사실 유튜브에 대충 쳐 봐도 나오는 그의 전성기 시절 라이브만 들어봐도 피치만 조금 틀어질 뿐이지 음원 그대로 안정적이고 훌륭하게 음정 박자 모두 잘 맞추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비록 신승훈이나 김연우, 이승철처럼 테크닉적으로 빼어난 탑급 보컬리스트는 아니었지만 발라드 가수에게 요구되는 박자감과 음감을 다 갖춘 가수였으며, 다소 부족한 기본기를 타고난 성량과 매력적인 음색으로 커버하는 좋은 보컬이었다. 그러므로 원래부터 못 부르는 가수는 절대로 아니었다. 성대 노화, 최악의 관리, 목상태와 자기 기량 신경 안 쓰는 말도 안 되는 고음 지르기, 혼자 신나서 반주는 무시하고 맘대로 튀어나가기까지 조화를 이뤄 현재의 숲튽훈이 탄생하고 만 것이다.

전성기 시절 안정적으로 훌륭히 라이브를 소화하던 이 동영상에서도 3:54초 경에 훗날 숲튽훈 시절을 연상케 하는 고음이 나오자 댓글 중 "김장훈이 부르는 도중 내면의 숲튽훈이 주도권을 뺏으려 하다 실패했다"는 드립이 나오고 있다. 택도 없는 고음 욕심은 노래 잘 부르던 시절에도 여전했던 듯하다.[70]

5.2. 기량 하락 이후

문제는 전성기 이후 여러 차례 목이 망가지면서 어느 순간부터 가성을 구사하려고 해도 소리를 뽑아내기가 쉽지 않아지면서 가창력이 완전히 망가졌다는 거다. 2집 활동 중후반부터 목상태가 나빠지기 시작했으며 본격적으로 목이 망가진 것은 90년대 말부터로, 그는 이미 1998년 성대결절 판정을 받았지만 안타깝게도 이때가 김장훈이 가장 유명해진 시기[71]라서 활동을 멈출 수가 없었다. 성대에 혹이 나 있어서 그 혹을 떼어 내야 했는데, 김장훈은 소리를 심하게 지르면 떨어질 것이라 생각하고(…) 수술을 거부하고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결국 이로 인해 2000년대 후반에 들어가며 가성을 못 낼 정도로 성대가 상해버렸다.

슬슬 목 관리에 들어가기라도 해야겠지만 본인의 과한 음주, 흡연 습관까지 더해져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 거기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9집 활동과 2009년부터의 목소리 변화이다. Honey가 수록된 9집 활동 때 목에 무리가 가는 창법을 자주 구사한 바람에[72] 목이 심하게 망가졌고, 후술하듯이 결국 2009년부터는 성대 노화로 인해 고음부에서 목소리가 억지로 내는 것처럼 얇아지게 되었다.[73][74] 이러한 상태로도 2011년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은 라이브를 선보였으나 2012년~2013년 즈음에는 목이 더 망가졌고 라이브가 많이 불안해졌으며 2014년부터는 아예 고음의 음색이 흔히들 말하는 소리로 변해버렸다. 이은미가 '언더 시절에는 음 하나 더 내보고 노래 좀 더 잘해보려고 선배들한테 묻고 다니던 게 방송에 맛 들려서 노래 연습 안 한다'고 디스했다가 김장훈이 인터뷰에서 '목이 망가질대로 망가져서 노래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이라고 받아쳤을만큼 목이 심각하게 망가진 것을 자신도 인지하고 있는 모양이다. 성대가 망가지며 가창력으로 승부하기에는 한계를 본 김장훈은 2000년대 중후반부터 노래실력보다 퍼포먼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에 올라온 여러 영상들[75]을 보면 정말 가수인데도 불구하고 심한 겉멋과 프로답지 않은 무대 퍼포먼스[76]로 엄청난 호불호가 생겼고, 게다가 위에서 설명했듯이 목 상태까지 맛이 가버리며 노래실력 자체는 정말 참담한 수준이다. 27년차 가수 김장훈이 가창력 논란이 생기는 이유는 자신이 핫하기 때문이라 하지만 노래를 정말 못 하는 가수라는 표식어가 맞다는 평이 주를 이루고 있다. 예전 라이브를 접한 사람들의 평마저도 옛날에는 잘 했지만 지금은... 혹은 같은 사람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심하게 변했다고 할 정도로 상태는 굉장히 심각했다.

음정을 못 맞춘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마도 고음병이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음감 자체는 굉장히 좋지만[77] 허구한 날 지르는 것 때문에 '음을 못 맞춰서 저러는 것이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애초에 음감이 좋지 않았다면 보정조차도 비존재했던[78] 90년대에 레코딩 작업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2010년대부터 고음을 낼 때에 목소리가 기괴하게 변하는데[79] 2000년대 라이브에서는 비슷하게 지르는데도 갈라지지 않고 수월하게 나왔던 것을 보면 성대 노화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가장 상태가 심각했던 시절은 2014~ 2016년이다. 특히 2016년에는 신생아 창법(떼쓰기 창법), 그리고 일렉기타 창법을 보여줬을 만큼 사실상 가수라고 말하기도 힘들 정도로 처참한 라이브를 보여주었다. 거기에 욕설이나 여러 구설수 등 여러 사건사고와 안 좋아진 이미지까지 더해졌기에 상황이 더욱 악화된 것이다.

음정보다도 문제인 것이 엇박을 심하게 타는 건데, 2008년부터 시작된 문제로 점점 심해지더니[80] 2016년 라이브에서는 반주가 김장훈에게 맞춰야 하는 상황까지 되었다.[81] 반주고 뭐고 그냥 막 부르는 수준이다.

또한 목 관리를 잘 하지 않는 가수로도 매우 유명했으며, 이미 고등학생 시절부터 노래를 잘 부르기 위해 매일 같이 산에 올라가 소리를 질렀고, 이는 가수 데뷔 후에도 이어졌다. 이런 좋지 않은 습관은 김장훈의 성대를 망가뜨렸고, 거기에 골초, 주당인 특성까지 더해져 목이 완전히 망가지게 된 것. 현재도 목 관리를 크게 하지 않는 건 여전해서, 목을 상하게 하는 잘못된 발성을 기반으로 한 샤우팅을 계속 지르거나, 공연 중간중간 담배를 피고 술을 마시는, 성대 건강에 최악인 습관들을 더러 가지고 있다. 동년배 가수 이선희나 까마득한 선배 조용필, 심지어 그 조용필보다 선배 나훈아 같은 가수들이 철저한 목관리로 현재도 좋은 사운드를 내는 것과 대비될 정도다.[82] 물론 재즈나 블루스 혹은 실험적인 밴드음악 같은 경우 보컬들이 목관리에 큰 관심을 두지 않고 공연 중간에 담배를 피고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이 장르의 보컬들은 자기가 낼 수 있는 한계를 억지로 넘지 않으며, '표현'에 집중하는 보컬들이다. 그러나 김장훈은 주된 장르가 락발라드인 가수이고 락발라드는 보컬의 한계를 늘 넘나들어야 하는 장르다. 블루스 보컬들이 담배를 물고 '필'에 취해 노래하는 것과는 확실히 다르고, 깨끗하고 건강한 성대, 탄탄한 발성과 피지컬로 압도해야 하는 장르인 것이다. 즉, 아무리 좋게 봐도 김장훈의 이런 태도는 겉멋이라고밖에 설명하기 힘들다. 차라리 저음을 중점으로 노래했다면 평가가 나아질 수도 있었겠지만, 노화와 관리 실패, 그리고 불안정한 발성 상태에서도 높은 음역대의 노래만을 과하게 고수하니까 이 상황이 되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음역대에 맞지 않은 노래를 하고는 한다. 예를 들어 전인권의 '그것만이 내 세상'을 부르는데[83] 자신의 음역대보다 높은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고음을 구사하는데 듣기가 매우 거북하다는 평이 많다. 여기에 위에서 언급한대로 고음병까지 걸려서, 자기 음역대에 맞는 노래까지 애드립으로 샤우팅을 넣는데, 이 음역대를 소화를 전혀 못 하기 때문에 노래가 아니라 소음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음역대를 맞춰서 고평가를 받은 노래가 바로 불후의 명곡에서 부른 '아니야'와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에서 부른 '지금은 알 수 없어'. 물론 이 곡들도 고음이 조금 나오긴 하지만, 편곡이 잘 되었고 김장훈의 음색에 맞게 노래했기에 평가가 긍정적이다.

관객들에게 마이크를 항상 넘기는 것도 큰 문제다. 물론 이게 나쁘다고 볼 수는 없지만, 관객들은 가수의 노래를 듣기 위해 콘서트나 공연을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다른 가수들은 마이크를 넘기더라도 하이라이트 부분은 마이크를 거두며 자신이 받아 부르거나 하이라이트 부분이라도 후크송처럼 반복되는 구절에서 한번씩 주고 받는 형식으로 마이크를 넘기고 거두는데 김장훈은 거의 모든 공연에서 하이라이트 부분을 관객들에게 마이크를 넘기고 그 상태로 계속가다 보니 가수 자체의 역량을 의심받는 경우가 많다. 이 덕분에 김장훈 콘서트를 세상에서 제일 비싼 노래방이라며 비꼬는 사람들도 있다.[84] 유튜브에 돌아다니는 몇몇 라이브에서는 대놓고 흡연음주를 한 것도 있다.[85][86]

이렇게 태도 면에서도 문제인데, 나아가 성대가 더 망가졌던 2016년에는 일명 아기 우는 소리인 신생아 창법, 떼쓰기 창법[87]으로 발전하기까지 했다. 이전의 음색 깡패 이미지는 우주 너머로 날아가 버린 셈이다.

사실 김장훈이 이렇게 된 것은 본인의 자만과 관리실패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SNS로 많은 논란을 만들기 전인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부족한 기본기를 보완할 수 있는 음색으로 대중들에게 어느 정도 평판을 유지했으나,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자기 관리 실패와 자만으로 목 관리를 심각하게 못 하고 자기 음역대에 맞지 않는 노래에 치중하게 되면서 결국 이 지경까지 가버렸다.

결론적으로 대중들과 팬들은 기부 활동들은 할 만큼 했고, 잘 하고 있으니 이제는 제발 좀 본업에도 충실하라고 비판하고 있다.

숲튽훈 드립이 어느 정도 인지도를 얻고 나기 시작한 후에는, 숲튽훈과 김장훈은 별개의 존재라는 농담이 나돌고 있다. 이 드립 또한 야갤세이콘 드립의 변형이라 할 수 있다.[88] 실제로 "김장훈" 모드는 좋은 음색과 좀 제대로 된 라이브에 많이 비유되며 흔히 말하는 "숲튽훈" 모드는 친환경 보컬 소리를 듣는 닭소리를 내는 라이브에 비유된다. 이 동영상이 대표적으로 두 모드를 비교하는 좋은 예시다.

욕설 사건 이후로 1년 넘게 자숙[89]하다가 다시 복귀하면서 소극장 콘서트를 열었는데[90], 과거처럼 심하게 고음에 집착하는 모습은 버린 듯하다. 하지만 성대와 목소리 상태는 더욱 심각해졌다. 목소리가 매우 탁해져서[91] 현재는 2옥타브 미(E4) 이상으로만 올라가도 쉰소리가 나고, 닭 창법은 거의 그대로여서 가수로서의 장점은 사실상 없다시피 하다. 그나마 사람들에게 인정받았던 음색조차도 예전 느낌과는 다른 탁한 느낌으로 변해서 지지받지 못한다. 또한 음역대 자체가 좁아져서 저음도 예전처럼 낮게 못 내고, 고음은 2010년대 중반까지는 지르면서라도 음에 맞게는 냈는데 지금은 아예 못 내고 있으며 내더라도 쉰 소리가 나며 심하게 갈라진다. 심지어 '노래만 불렀지'의 1절에서의 '어느덧 나의 그 방황에 익숙해있기 때문이'[92] 부분을 전성기 시절엔 10초 동안 끌었던 것에 비해[93] 2018년엔 겨우 3초~7초밖에 끌지 못하고 있고 10초를 끌더라도 음정이 심히 불안하며 심지어 가끔은 끝부분에는 갈라지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장훈의 페이스북에서 올라온 라이브 영상에서 들을 수 있다. 그래도 '나와 같다면'과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소나기' '난 남자다' 등의 거의 모든 노래를 1키 내려서 노래하는 것을 보았을 때[94] 고음에 집착하는 모습은 버린 듯 하지만, 특유의 거북한 내지르기와 샤우팅은 그대로여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성대 건강만 상하게 하고 있다. 여전히 담배를 즐기고 공연 중간에 술을 마시는 등, 목 상태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사실상 마지막 탈출구는 창법을 바꾸는 방법인데 창법을 바꾸지 않는 이상 2000년대와 같은 포스를 내기엔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2018년 10월 인스타그램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이미 성대결절 상태라고 한다. 의사는 100회 콘서트를 진행하지 말라고 거듭 말렸지만 본인이 이를 무시하고 소리 지르면 해결된다고 생각해서 결절이 났다고 한다. 본인은 공연이 진행될수록 소리를 더 질러서인지 목이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물론 이 방법은 목을 더 상하게 만드는 지름길이다. 명백히 27년차 가수가 그걸 모른다는 것은 성대 상태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조차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Love Of My Life + Bohemian Rhapsody + Radio Ga Ga를 부른 영상을 보면 눈물이 다 날 지경이다. 그래도 요즘에는 무리하게 고음을 내지만 않으면 이전보단 안정적으로 부르는 편이다.

5.3. 부활

그런데 2021년 현재 놀랍게도 상태가 굉장히 좋아졌다. 자신의 목 상태에 대해 인지하고 과도한 허세성 퍼포먼스와 괴성을 줄인 효과로 보인다. 전성기 시절 만큼은 아니더라도 상태가 매우 좋아졌다. 콘서트 도중 토크 시간에 성대결절에 걸리면서 저음 중음의 소중함을 깨닫고 앞으로는 중저음에 힘을 쓸 것이다라고 밝혔으며 그 덕에 무리한 샤우팅도 많이 줄었으며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현재는 유튜브에 있는 채널을 찾아서 성악 발성을 배우고자 노력하는 중이라고 한다.[95] 우직하게 "악"하고 소리지르는 방법으로 목에 있는 혹을 떼며 "득음"하는 치료 방법을 사용하던[96] 그로서는 장족의 발전이다. 두 차례의 성대결절 이후 겁이 나서 예전처럼 미친 듯이 소리지르는 것은 못하겠다는 듯하다.

그리고 그 성과가 나타났는지 2019년 8월에 오랜만에 MBC쇼! 음악중심에 나타나서 사노라면을 불렀는데, 전성기만큼의 기량을 다시 보여줬고, 2018년에 키를 낮춰서 불렀던 노래들도 원키로 부를 수 있게 되었다. 확실히 목 상태가 굉장히 좋아졌다.

최근 영상을 보면 후두를 내리려고 노력하고 호흡을 바꿨다고 한다. 실제로 목이 좀 좁아서 그렇지 두성을 써서 노래하는 경우가 많아졌다[97]. 괴성, 극단적으로 좁은 소리는 숲튽훈 콘텐츠로만 한정하는 방향으로 가는 듯하다.

참고로 김장훈의 음역대 자체는 매우 넓어서 최저음 -1옥타브 레(D1)[98] ~ 최고음은 3옥타브 솔♯(G♯5)이다.[99]

2021년 발매한 싱글 '낮은 소리'에서는 아예 고음을 빼고 음색을 살리는 곡을 발매했고, 무대영상에서 외국인들에게도 음색이 매력적이라는 칭찬을 듣게 되었다.


2022년 식목일 딩고 킬링보이스에 출현해 오케스트락을 강조하며 안정적인 가창력과 성대가 완전히 회복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고질적인 엇박 창법이 조금 줄어들고, 옛 김장훈 시절 정박을 보여줬으며 전성기 그대로까지는 아니더라도 많이 좋아진 기량에 호평이 많다. 하지만, 딩고 킬링보이스 측에서 믹싱(음정 보정) 작업을 매우 잘 해서 그렇게 좋게 들린다는 비판 의견도 적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모든 가수들이 라이브에서도 음정 보정 이펙터는 꼭 사용하기 때문에 이 의견은 억까에 가깝다. 애초에 김장훈의 가창력이 회복된 것은 음정 보정 작업한 영상 뿐 아니라 여기 링크 달려있는 다른 라이브 영상에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2023년에 버츄얼 유튜버 활동을 하면서 종종 라이브로 노래를 들려주기도 하는데 기량이 돌아온 것을 넘어서 제2의 전성기라고 봐도 될 정도로 가창력이 더 좋아졌다. 나와 같다면을 라이브로 부른 동영상. 방송에서 특유의 내지르기[100]를 기대한 트수들이 오히려 놀라서 감동했을 정도. 2023년 10월에는 아예 원키로 '나와 같다면' 전곡과 'Honey' 일부를 소화했는데 그야말로 전성기 쌈싸먹는 보컬을 선보이며 관리를 시작한 김장훈이 어떤 괴물인지를 몸소 증명했다. 특히 힘을 빼며 부르는 법을 터득한 건지 '나와 같다면'의 마지막 후렴구 부분은 원곡과 달리 음을 더 높여서 불렀는데도 이게 그 김장훈의 고음이 맞나 싶을 정도로 깔끔하게 올라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60세라는 나이를 생각하면 가히 기적에 가까운 회복.

가수에게 있어 생명과도 같은 목관리를 소홀히 하고 그로 인해 여러 불명예를 안고 무너진 시기가 있으나 그래도 가수로서의 커리어는 성공적인 편이다. 모범적인 발성과 테크닉은 없으나 본인만의 감정 표현과 특유의 음색으로 관객을 사로잡은 인기 가수였고 한 번뿐이지만 지상파 가요 프로에서 1위를 차지한 적도 있다. 히트곡도 많으며 남에게 받은 곡만 있는 것도 아니고 직접 작사 작곡한 곡도 많다. 세월에 따라 굴곡은 많았으나 여러모로 의미 있는 족적을 남긴 가수.

6. 숲튽훈, 밈으로 재탄생 하다.

Q: 숲튽훈을 만들어 준 야갤러들에게 한마디 한다면요?

김장훈: 제가 지금 나눔을 하고, 스스로 잘 살려고 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그것에 대한 감사함이에요. (중략) 정말 고마워요.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돈 줄 수도 없고. 잘 살아야겠더라고요. ‘숲튽훈으로 생기는 걸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자, 하나님이 주신 기회니 이걸 더 좋은 데 쓰고, 좋은 사람 되려고 노력하자’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디시人터뷰 숲튽훈(김장훈)을 만나다
이렇게 가창력 손실과 즉석 내지르기 등으로 그를 처음 접한 대중들은 이런 퍼포먼스를 황당하다고 여겨, 2018년 전후로 몇 가지 공연 영상들이 유튜브에 올라왔다. 그리고 이런 김장훈 영상들은 점차 많아져 김장훈을 비판하는 성격에서 그의 특이한 창법에 대해 평하고 적절한 드립을 다는 하나의 콘텐츠로 자리 잡은 추세다.

이와 더불어서 모창하는 사람들도 꽤나 많이 나왔다. 이문세나 임재범처럼 음색을 비슷하게 하여 재주로 선보이는 느낌보다는, 심히 희한하고 심오한 김장훈의 창법을 패러디하는 데에 중점을 둔다. # # '숲튽훈' 콘셉트로 모창해서 유명해진 것도 있다. 아리랑 콜라보레이션도 있다 그런데 이 김장훈왕팬이라는 유튜버는 진짜로 김장훈 공연에서 콜라보를 했다! 분위기를 더 띄우려고 샤우팅 하는걸 보면 현재는 김장훈 본인도 자기 고음 창법을 재밌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모창자 덕에 김장훈의 이미지가 좋아지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식에서 욕설을 한 뒤 구설수에 올라 1년간 자숙을 했던 김장훈은 그의 전성기 시절 대중이었던 3040세대를 비롯한 전 세대에게 비치는 이미지를 스스로 깎아먹었을 뿐더러,[101] "숲튽훈"으로 그를 접한 1020세대에게는 그저 괴성만 질러대는 웃긴 사람 정도였다. 그러나 이 모창자를 비롯, 그를 어떻게 보면 "놀리는" 영상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음에도 그에 대한 불편함보다는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인 것이 상당히 신선하게 다가왔다는 반응이 많다. 콘서트장에서 그는 불편한 내색 없이 쿨한 태도를 유지했고 오히려 모창자를 격려해주며 재미있는 상황을 유도했다. 댓글들을 보면 전부 칭찬 일색. 이와 비슷한 사례로는 조혜련과 태보의 저주로 인기를 끌어 이미지가 좋아진 조혜련과 한때는 엄청난 비판을 받은 이 사람들에게 온갖 조롱을 받으며 컬트적인 인기를 끌 때 오히려 유쾌한 대처로 화려하게 복귀한 가 있다.

최근엔 김장훈이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을 시작했는데, 이미 숲튽훈의 의미와 현재 반응에 대해서도 인지하고 있다는 걸을 보여준다. 또 자신의 영상을 자주 보는지 자신의 공연 영상 댓글에 적힌 내용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그것만이 내 세상'의 '가꿔왔던 모든 꿈'이라고 하는 부분을 '카카오톡 노무쿤'이라고 부른다거나, '익숙해있기 때문이야'에서 때문이야 부분을 "대물이야!~~~~~ 으아앙!"이라고 드립쳤다는 것까지 알고 있다.

정리하자면 유튜브에 떠도는 모창, 콘셉트 영상이 그를 웃긴 이미지로 만든 측면도 있지만, 다른 면에서는 친근하고 호탕한 이미지를 구축하는데에 기여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실제로 이게 효과가 있었는지 콘서트에 청소년 관객들이 늘었다고 한다. 김장훈이 숲튽훈 영상에 나오는 창법으로 부를 때 이들의 반응이 정말 좋다고 한다. 그래서 '숲튽훈 가자/숲 한번 간다' 하면서 일부러 망가지는 고음을 예고할정도이다.[102]

김장훈은 안 좋아하지만 그를 광대 이미지로 만든 야갤에서는 숲튽훈에 대해 호의적으로 평을 내리는 유튜브 짤이 개념글에 올라오면서 "갤주의 품격."이라며 찬양 일색이었다. 김장훈이 복면가왕에 출연하자 과거 이종범 출연 때처럼 미친 화력을 자랑했다. 떨어진 건 숲튽훈이니까 김장훈 다시 한번 더 불러와라 같은 드립까지 나올 정도다.

참고로 숲튽훈은 일종의 야민정음. 쇠 김(金)에 길 장(長)과 훈을 조합한 金長훈[103] 한자의 모양이 한글과 비슷해서 입력하기 더 편한 숲튽훈이 되어버린 것이다. 국립 국어원에서 발표한 표준 발음법에 의해 발음은 [숩튼춘]으로 부르는 것이 맞지만 김장훈 역시 숲튽훈을 [숩튼훈](혹은 [숩트눈])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숩튼훈]으로 사실상 굳혀졌다.

라디오스타에 게스트로 출연해서 밝히길 예전엔 노래할 때 절제하면서 불러야 해서 많이 예민했는데 숲튽훈이 빵 뜬 이후에는 내려놓고 노래를 해도 반응이 많이 괜찮아서 뭔갈 해야한다란 부담감이 많이 줄어들어서 되려 마음에 든다고 했다. 덧붙여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못할 일인데 고등학교 행사에도 섭외되는 일도 있다고 한다. 김장훈과 친분이 있는 윤종신김구라는 세상 모를 일이다며 경악하기도 했다.[104]

그 이후에는 과거 몇 년간 입과 키보드로 여러 번 구설수에 오르던 시기에 내뿜었던 '저 사람이 왜 저러나' 싶었던 분위기도 많이 사라졌고, 평판도 나아졌다. 아예 정치 쪽에는 엮이지 않도록 노력을 하는 듯. 그리고 마이 리틀 텔레비전 V2에 출연해서도 대놓고 숲튽훈을 콘텐츠로 내걸고 방송을 하드캐리하고 있다.

심지어는 심영물과의 콜라보레이션까지 나왔다.

6.1. 숲튽훈으로서의 유튜버 활동

2019년에 들어서는 유튜버로서도 활약하고 있다. 2018년을 전후로 하여 음지에(주로 남초 커뮤니티) 묻혀있던 "숲튽훈 놀리기"가 웃긴 포인트와 중독성을 무기로 양지로 올라오기 시작했는데, 그가 이를 포용함으로써 더욱 큰 히트를 쳤다. 그 즈음에 시작했던 유튜브 채널 역시도 덩달아 주목을 받았다. (전에도 운영은 했었지만 한정적으로 활동했다.)

라이브 방송의 경우 첫 회부터 "숲튽훈"이나 안티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이를 본인 콘서트 홍보에도 적극 활용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이 시험 방송이 꽤나 괜찮은 반응을 얻어서인지 레귤러한 스케줄로 방송을 키게 되었다. 대체적으로 내용은 여타 유튜버들과 다를 바 없이 썰 풀기, 고민 상담, 노래 등 다양하게 진행하는데, 거의 매회 "숲튽훈" 관련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본인의 인지도를 다시 올려준 "숲튽훈" 컨텐츠를 상당히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다. 또한 정치 이야기라든지 본인의 독특한 인생관을 이야기 하는 면모가 많이 줄어 들어서, 팬이 아닌 사람들이 보기에도 큰 부담이 없다는 평이 대다수다. 그에 대해 대개 부정적이거나 빈정조로 여기던 커뮤니티에서도 재미있게 받아들일 정도다.

유튜브 채널 운영에 재미가 붙은 모양인지 요새는 거의 매일 유튜브 방송을 틀며 소통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6.2. 버튜버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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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음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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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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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서트에서 발차기 등 특이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강심장에서 이러한 퍼포먼스를 시작한 이유를 밝혔는데, 콘서트에서만큼은 자본주의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러다가 한 여학생의 자살시도를 막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계속해서 이러한 퍼포먼스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발차기 퍼포먼스는 방송에서도 자주 선보였는데, 현재 나이가 환갑에 가까운데도 공연이나 방송에서 계속 발차기를 보여주고 있다. 발차기가 격해서 오죽하면 팬들이 김장훈의 다리 관절을 걱정할 정도다.

한 번은 제대로 된 콘서트 장비가 없어서 상당수를 대여하면서 사용해야 했던 현실과 이공계 기피 현상에 열받은 김장훈이 직접 카이스트를 찾아가서 선물용 케이크난초를 들고 휴보를 빌리는 일을 진행하였다. 교수가 계속 반대하다는데도 김장훈이 계속 조르니까 "그러면 나 말고 다른 연구원들과 교수들을 설득시켜봐라."고 하자, 자기가 가수인지도 모르는 연구원들과 술을 마시며 30분 동안 그들을 설득시켰다. 그러자 교수는 "우리들만 설득시키면 안 되고 정부의 산업자원부도 설득시켜야 한다."고 두 번째 퀘스트를 준다. 또 선물을 들고 산업자원부까지 가서 설득을 하자, 담당자가 교수에게 김장훈의 공연을 도와주라고 전화를 걸었고, 마침내 휴보와 합동 콘서트를 했다.

이 콘서트 덕분에 카이스트는 물론 여러 이공계 교수들이 김장훈을 좋게 보았는지, 회식 자리에서 수십 명의 교수들이 김장훈에게 콘서트에 자기 분야에서 필요한 게 있으면 연락달라고 명함을 줬다고 한다. 또한 카이스트 기계과에는 4학년 필수 교과목 중 "창의적시스템구현" 이라는 교과목이 있는데, 이 과목에서 잠깐이지만 김장훈의 콘서트 장비를 만드는 내용을 다룬다고 한다.[105] 이 때문에 카이스트에서 김장훈의 인지도는 제법 높은 편이다.[106]

2015년 12월 21일에는 청주교도소에서 콘서트를 진행했다. 참고로 이 콘서트는 청주교도소 108년 역사상 최초의 콘서트이자, 대한민국 콘서트 역사상 최초의 가수 단독 교도소 콘서트이다. 게스트로는 전직 국가대표 선수들로 구성된 대한민국 스포츠합창단도 참가하고, 교도소 수용자들로 구성된 중창단과 밴드까지 준비를 많이 한 듯하다.

와이어 퍼포먼스도 자주 선보이는데, 2002년 7월 100일 공연을 하던 중 와이어가 끊어져 추락하면서 어깨가 부서지는 큰 중상을 입은 적도 있었다.[107] 어깨 부상 이후 장애인이 되었으며 이 후 3년 정도는 와이어를 기피하다가 2005년 8월 스스로 극복했다고 선언하고 와이어를 다시 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식 사건이 발생한 후, 1년 자숙기[108]를 거쳐 현재는 100회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다.

9.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rowcolor=#fff> ▲ 그대 내 품에 ▲ 지금은 알 수 없어
2019년 6월 23일, 7월 7일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105차 경연에서 가왕, 무슨 형? 꽃미남형! 꽃미남 뱀파이어 라는 가명으로 참가하여 방송에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으며, 가왕석, 얼마면 되니? 금수저 아랍왕자와 함께 부른 1라운드 듀엣곡은 유재하그대 내 품에, 가왕석에... 떴~다 떴~다 종이비행기 상대로 부른 2라운드 솔로곡은 김종서지금은 알 수 없어 였다. 1라운드부터 개성 강한 특유의 음색과 창법 때문에 정체를 들켰지만, 2라운드에서 오랜만에 대중들 앞에서 되살아난 모습을 보여줘서 호평을 받았다. 참고로 개인기 시간에는 본인의 성격과 똑같게 "이거 방탄 유리야." 대사를 "이거 방탄소년단 차야" 라고 센스 있게 바꾸는 등 예능 면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여담으로 개인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정체를 들켜서 "발차기"를 보여 달라는 요구가 나오는 등 웃음 포인트가 있기도 했다.
<rowcolor=#fff> 가왕, 무슨 형? 꽃미남형! 꽃미남 뱀파이어
<rowcolor=#fff> EP. 방송 날짜 곡명 원곡자 VS. 득표수
105-1 2019년 6월 23일 그대 내 품에 유재하 가왕석, 얼마면 되니? 금수저 아랍왕자 52
105-2 2019년 7월 7일 지금은 알 수 없어 김종서 가왕석에... 떴~다 떴~다 종이비행기 41

10. 인간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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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논란 및 사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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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대표곡

13. 연기 활동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 커리어 때문인지 다른 분야와 달리 꾸준히 활동하지 못하고 단발성 출연에 그치는 양상이다.

14. 저서

2016년 12월, <나를 도발한다.>를 출간하며 수필가로 데뷔했다. 책을 쓴 이유는 '왜 몇 십년 째 나눔(기부)을 하는 것일까?'에 대한 대답이라고 한다.

2017년 1월 7일 광화문교보,1월14일 강남교보에서 싸인회와, 따로 2월에 북콘서트를 열 예정이라 했으나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2017년 1월 17일 인세 1억을 기부하겠다 주장했다.#
가수 이전에 참 넉넉한 남자다. 그것도 ‘얼토당토않은’ 일을 태연히 하는 남자다. 그는 이웃을 사랑하고 어두운 곳에 불을 밝히고 싶어 하는 남자다. 그 일들은 대개 다른 사람이 하고 싶어도 해내지 못하는 일들이다. 그리고 그걸 내세우지도 않는다. 나는 그게 늘 고맙다. 솔직히 ‘아주아주’ 미안하기도 하다.
전원책의 추천사
그의 책은 에세이라기보다 소설에 가깝다. 그만큼 극적이다. 책을 읽는 내내 그의 인생에 서린 눈물과 환희에 공감할 수 있었다. 거칠지만 그의 노래가 감동을 안겨주듯 그의 글에는 진심이 담겨 있다. 그의 삶과 음악이 어우러진, 한 편의 뮤지컬 같은 책이다.
김수로의 추천사

15. 정치 성향

정치 문제와 관련해서 소극적으로 일관하는 연예인이 대다수인 대한민국에서 몇 안되는, 자유롭게 정치적 발언과 행동을 하는 연예인이었다. 민중가요 진영이나 과거 1960~80년대의 군사정권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는 사회비판에 적극적인 음악가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지만[116], 2010년대 들어서도 적극적으로 사회비판을 하며 자신의 신념을 드러낸 대중적인 연예인은 김장훈을 제외하면 드물었다. 대표적으로 2014년 세월호 사고 이후 유가족 편에서 직접 단식 시위를 한 적도 있으며, 세월호 집회에서 노래하기도 했다. 때문에 대중적으로 친민주당 성향이라는 인식이 많았으나, 김장훈 자신은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발언을 한 적이 없다.

대표적으로 리즈 시절명랑히어로에 출연해서 MC들이 17대 대선에서 누구 뽑았냐고 물었는데 도저히 찍을 인간들이 없어서 투표 안할까 하다 자신이 투표홍보대사라서 어차피 안될거 알지만 그렇다고 1번 찍기는 죽어도 싫어서 소신껏 3번을 찍었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 또 대통령 취임식에는 참여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진짜 싫어하긴 하지만 대통령 취임식은 국가의 중대한 행사라 참여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란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20대 총선에서는 김찬영 새누리당 예비후보에 대한 공개 지지를 선언하였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김장훈이 김찬영 예비후보의 제20대 총선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진보 세력에게 비난받은 바 있다.

이때는 "야당이 여당보다 잘하고 있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서 내가 여당 지지자로 돌변할 이유도 없다"고 밝혔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분열되기 보다는 하나로 통합을 이루었으면 좋겠다고 한 적이 있다.

독도 지킴이와 기부 등의 사회활동은 특정 정치 성향과 연관성이 없으므로 다수의 대중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쌓을 수 있었고 김장훈의 이미지를 개념 연예인으로 만들어주었지만, 위에 언급한 세월호 관련해서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는 행보, 그리고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하는 행보로 인해 보수당 지지자와 민주당 지지당 양쪽에서 비난을 받았다. 우파로부턴 빨갱이 소리를 듣고, 좌파로부턴 변절자라고 까였다. 이 때문에 숲튽훈이 유행하기 전에도 이미지가 많이 안좋아졌다. 하지만 위에 언급하였듯이 김장훈은 특정 후보가 아닌 정당을 지지한다는 발언을 하지 않았으며, 일관성이 없다는 것은 곧 한쪽으로 편향된 정치 성향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으므로 김장훈 입장에선 다소 억울한 측면이 있다.

2019년 데뷔한 유튜브 방송에서 본인은 좌우파로 나뉘지 않는다는 소신을 밝혔다. 뉴스나 신문에서 정치면은 이제 보지 않는다고 한다.

이후 네티즌들에게 그의 여러가지 행적들이 발굴되어 정말로 정파 성향이 없음이 다시금 재확인되었다. 이명박에 투표를 하지 않았지만 그의 취임식에 참석했고, 이후 이명박 정부 기간에 한미FTA 반대 촛불시위에 참여했으며, 박근혜 지원유세도 나갔지만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에도 나갔다. 지지를 하든 안하든 당선된 대통령의 취임식은 국가의 행사고 뽑혔으니 잘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참석했다고도 할 수 있고, 역시나 지지와 상관없이 잘못한다 싶으면 비판을 아끼지 않는 것은 맹목적인 지지가 아닌 책임감 있는 모습으로 비춰진다.

김장훈은 스스로는 정치에 얽혀서 많은 손해를 봤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며, 좌우 모두 자신들에게 불리한 지표와 통계만 가지고 선동한다면서 국민들은 스스로 통계들을 찾아보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이게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일본과 한국의 GDP를 가지고 구체적인 수치로 설명을 해주며, 수치라는 것이 해석하는 방향에 따라 다르게 읽힐 수밖에 없으니 누군가 가공한 수치로만 세상을 바라보지 말라는 이야기를 했다.

16. 여담

파일:external/image.chosun.com/2017011002205_0.jpg
* 2017년 1월 7일, 분신하였고, 같은 달 9일 입적하신 정원스님을 애도하며 촛불 시위 참여를 독려했다.
파일:야붕이와 김장훈.png
* 김장훈은 국내야구 갤러리에 대해 일베저장소와 비슷한 곳이라고 생각해서 부정적으로 봤었으나, 현재는 자신을 갤주라고 환호해주면서 인기를 올려줘서인지 야갤러들에게 이벤트도 열어주겠다고 할 정도로 긍정적으로 보는 것 같다.

1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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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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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재 이름의 壯을 長(긴 장)으로 바꿀 예정이라고 한다. 개명할 시 실제로 '金長훈'이 된다. 뉴스에서 김장훈 말로는 긴 장이니깐 내가 커서 그런가 해서 긴장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2] 독도지킴이 활동을 하면서 옮긴 것으로 보인다.[3] 부친 성씨가 아닌, 모친 성(姓)씨다. 김장훈의 아버지는 김장훈이 태어나기도 전에 김장훈의 어머니랑 이혼했다고 한다. 따라서 김장훈 본인도 자기 부친의 성씨는 물론, 부친 얼굴도 아예 모른다고 한다.[4] 본관은 김해 김씨. 지금이야 기독교 목사지만 원래는 불자였다. 사업을 했었지만 가세가 기운 후 개신교로 개종하고 신학을 공부하여 목사가 되었다. 전도사 시절부터 유독 10대 청소년들을 많이 아끼고 챙겼고 현재도 청소년 위주의 사역을 하고 있다. 교회 이름도 십대교회이다. 유튜브 방송에서 자주 언급하는 편이다. 참고로 김장훈의 부모님은 김장훈이 태어나기 전에 이혼했는데, 그 때문에 김장훈 본인은 아버지의 모습을 전혀 모른다고 한다. 게다가 이것으로 인한 상처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5] 졸업 학력 검정고시 선택 과목에서 가사를 선택하여 바느질을 잘한다고 한다.[6]가천대학교 글로벌캠퍼스.[7] 두시탈출 컬투쇼 2012년 6월 4일 방송에서 직접 밝혔듯 병역은 방위병으로 마쳤는데, 예비군 훈련장 조교였다고 한다. #방위병 시절 사진[8] 예장통합이라고 잘못 적혀 있는 일부 위키들이 있는데, 어머니가 담임 목사로 사역하는 예배당부터가 예장중앙이므로 예장통합은 완전히 틀린 말이다.[9] 자숙 전에는 사회 운동가로서 자주 언론에 올랐던 것이 사실이나, 정치색을 빼고자하는 목적인지 자숙 후 첫 방송인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에서 "나는 사회운동가가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스타에 게재된 글들을 보면 실질적인 활동은 여전한듯. 독도 관련 운동도 꾸준히 진행 중이다.[10] 소림마라 이태원점을 개점하였다.[11] 대표적으로 므시뚜가 있다.[12] 유튜브 계정은 2011년에 만들었고 과거에도 자신의 라이브 영상이나 소통방송등의 영상을 가끔씩 올렸지만 본격적으로 활동한 년도는 2018년 이후이다.[13] 앞선 두 장르에 비해 그리 부각되진 않지만, "고속도로 로망스", "난 남자다" 등의 히트곡급 댄스 활동을 한 전적이 있다. 곡과 별개로는 춤을 꽤나 자주 선보이는 편.[14] 현 시점에서 공식 별명이자 2010년대부터 그를 대표하는 별명. '김장훈'의 '김'을 '숲(, 성 김)', '장'을 '튽(, 길 장)'으로 바꾼 것으로서, 그를 부정적으로 여기는 야갤발 유행어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이미지를 기사회생 시켜준 고마운 별명이므로, 현재는 그가 나서서 별명을 사용하고 있다. 인스타에도 "내가 숲튽훈이다!", 유튜브에도 "박경림을 울린 숲튽훈의 힘, 다른 유튜브에도 "숲튽훈"으로 출연하였다.[15] 비디시러들도 통용[16]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라이브로 선보인 '노래만 불렀지' 무대에서 내지른 높은 샤우팅 창법(신생아 창법)에서 비롯[17] 과거에는 그의 수식어와도 같은 대표적인 별명이었지만, 2017년 노무현 추모제 욕설 파문으로 인한 이미지 손상으로 사라져 가는 추세였다. 하지만 현재 이미지가 개선되면서 다시 불리기 시작한 별명이다.[18] 소위 말하는 튽훈체.[19] 한창 때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일명 독도킥[20] 나이가 들며 점차 사라졌지만, 젊을 때에는 무서움을 모르고 본인이 생각하는 정의를 위해서 저지르는 스타일이었다고 한다.[21] MC계의 달변가인 김구라와의 설전에서도 지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22] 본격적으로 뜨기 시작한 4집 이후부터는 작곡가들에게 곡을 받아서 부르기만 하는 말 그대로 '가수'로 변했지만 인디 시절에는 한 앨범에 본인의 자작곡을 못해도 2개 이상은 수록하는 엄연한 싱어송라이터였고 특히 3집에는 수록곡의 대부분을 자작곡으로 채워넣은데다 편곡과 프로듀싱까지 직접 하는 수준이었다. 허나 아쉽게도 제대로 뜬 자작곡은 '노래만 불렀지' 정도가 유일이다. '광화문' 이라는 곡도 오랜만에 본인이 작사, 작편곡을 한 노래이다.[23] 인스타에 직접 본인의 직업을 "콘서트 감독"이라고 언급했다.[24] 김장훈은 공인으로서의 직업 외에도 개인 사업 역시도 하고 있다. 의류와 화장품 쪽이다. 인스타그램에도 사업출장 사진을 자주 올리는터라 한창 가요 프로그램에 출연 하던 때에는 김장훈을 노래하는 CEO라고 소개하기도 했다.[25] 소림마라 이태원점을 개점하였다[26] 예전에는 대부분 거절했으나 요새는 강연을 자주 간다고 한다. 대체적으로 청소년들의 꿈이나 독도 관련 이야기를 많이 하며, 입담도 좋은 편이다.[27] 이 역시도 본인의 인스타에 기재되었다.[28] 김장훈의 몇 안되는 영화 커리어지만 괴작으로 손 꼽히는 영화다.[29] 사실 영화나 드라마에 이것저것 많이 출연했지만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이다.[30] 김건모는 신인때부터 30여년간 계속 1967년생 포지션으로만 활동해 왔다. 중년이 되고 미우새에 출연하던 시절에도 2016년부터 이미 자신이 스스로 오십살이라고 말하여 제작진들이 자막으로 "쉰건모"라고 칭했고, 2018년에는 52살이라는 자막이 나오게 했을 정도이다. 1968년생인 탁재훈에게도 형이라고 부르게 시켰다.[31] 물론 김장훈도 방송에서 봄여름가을겨울에 관련된 얘기를 할 때는 '종진이 형'이란 표현을 쓴 적이 있다.[32] 실제로 광성중학교 25회(1979년) 졸업생이라 1963년 생이 정설인 것으로 추측된다. 가수 이승환1965년 생인데, 라디오 방송에서 형이라고 불렀다가 혼났다는 얘기도 있다.[33] 이승환의 경우에는 본인 주장으로 1965년 12월생인 것이고 신분상으로는 1966년 1월생이다. 그래서 신승훈 하고도 친구사이다. 그러나 이승환은 그렇다고 쳐도 이승철은 라디오스타에서 김국진에게 형이라고 하다가 고작 한 살 많다는 걸 알고 "아 62나 63인줄 알았다"고 찜찜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개그긴 해도 이승철이 한 살만 많아도 깍듯이 형 대접하는 스타일은 아니란 걸 알 수 있다.[34] 몸이 약하다고 해서 모두가 폭력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러한 본인의 생각이 폭력의 원인이 되었을 수는 있다.[35] 실제 사촌은커녕 혈연적 관계가 전혀 없다. 김장훈 데뷔 초기에는 김장훈 스스로 혈연 관계를 암시했으나 언젠가부터 김현식의 어머니와 김장훈의 어머니가 친한 사이라는 식으로 바뀌었다. 김장훈 본인은 이런 식으로 알려지는 것을 꺼렸으나 소속사에서 계속 사촌동생으로 밀고 갔고, 친한 형인 김현식을 팔아 인지도를 얻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극에 달하면서 후술하는대로 신인이면서 방송 펑크를 내는 대형사고를 치게 된다.[36] 하지만 1996년에도 이소라의 프로포즈 같은 음악 전문 방송에 출연하기는 했었다.[37] 이는 KBS 스펀지 16회에서 소개되었으며 이때 그는 식당에 갔다가 인삼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38] 1995년 가수 박상태가 불렀던 곡을 리메이크했다. 당시 박상태의 원곡은 아쉽게도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김장훈이 불러 뒤늦게 빛을 본 사례.[39] 원곡은 가수 문관철의 1집 타이틀곡으로 전혀 코믹한 곡이 아닌데, 김장훈이 부르면서 코믹성이 들어갔다. 라이브 무대에서는 목을 앞뒤로 천천히 흔들며 점점 후렴구를 빨리 부르는 방식의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후렴구는 점차 빨라져 후로는 김장훈 본인이 아닌 관객이 부르는 스피드가 된다. 사족으로 밴드 멤버 중 베이시스트 박정현이 조용필, 나훈아 등의 가수들을 성대모사를 하는 부분은 매 무대마다 빠지지 않는다. 여담으로 문관철이 불렀던 해당 음반엔 먼저 녹음했음에도 불구하고 발매가 늦어져 김현식의 대표곡이 되어버린 비처럼 음악처럼도 수록되었다.[40] 현재 이 곡을 부를 때는 "쏴!"라는 추임새를 넣고 반주를 빨리 감는 방식으로 재편곡했는데, 곡의 퀄리티를 포기하는 대신 흥을 유도하는 전략을 택한 듯 하다.[41] 각종 유명한 연예인, 뮤지션들과 방송과 콘서트를 함께 하는 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010년대 초반만 해도 이미지가 나쁘거나 한물 간 연예인 취급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42] 김장훈 중에서 김, 장을 각각 金, 長으로 변형시킨 것. 왜 하필 長인가 할 수도 있겠지만 한자 상관없이 모든 장을 튽으로 바꾸는 게 야민정음의 변경이다.[43] 자숙(본인은 '자성'이라고 주장한다) 이후 오랜만에 출연한 뉴스 방송에서 본인을 소재로 한 유튜브를 본 적이 있다고 밝혔다.[44] 정작 본인은 이런 다양한 활약상이 부담스럽다는 이야기를 sns에 남겼다.[45] 이는 깡 유행과도 흡사한데, 깡 유행 초반만 해도 음악 활동에서의 성과와 연기 활동, 월드 스타 이미지로 전성기를 누렸던 가 이젠 완전히 한물 갔다고 조롱하는 분위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깡의 유행이 이어지고 비가 예능에 나와 이를 소재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여론이 반전되었고, 지금은 퇴물 이미지를 벗어났다는 평가를 받으며 그동안 일으켰던 논란과 언행, 그로 인하여 생긴 인터넷 밈을 받아들여 사실상 제 2의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46] 유튜버 데뷔 후 첫 라이브 방송이다.[47] '나처럼~ vs 나처르아악!!'을 선보였다.[48] 스페이스 공감 김장훈 편에서 나온 소개글에서 그의 가창 스타일을 표현한 문구. 하필 그날이 숲튽훈 밈으로써 매우 뜻 깊은 날이었던 터라 숲튽훈을 상징하는 문구로도 쓰이고 있다.[49] 가성 파트도 진성으로 바꿔 부를 정도인데, 가끔은 거북하게 들린다는 악평도 있다. 예외로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 부른 김범수보고싶다에선 가성을 사용한다.[50] 굉장히 심각한 인골라 발성을 구사한다.[51] 2001년 라이브 앨범의 노래만 불렀지를 들으면 그의 최저음(0옥타브 레(D2))부터 최고음(3옥타브 미(E5))까지 다 들을 수 있다.[52] 1~2집때는 훨씬 더 높았다. 3옥타브 레(D5)를 안정적으로 계속 부를 수 있을 정도였다. 다만, 저음은 현재보다 조금 떨어졌다.[53] 현재도 성량은 크다.[54] 라이브 앨범에 수록된 '슬픈 선물'의 라이브다. 2001년 크리스마스 공연에서 불렀다.[55] 그 유명한 허니 라이브. 2006년 라이브다.[56] 2006년의 오페라 라이브로 2옥타브 라(A4)의 음을 무려 11초간 끈다.[57] 2009년의 노래만 불렀지 라이브. 사실 무대매너와 별개로 이때부터 숲튽훈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평이 많다.[58] 목을 잡아먹는 소리[59] 여기에는 김장훈 본인이 노래 부를 때 입을 작게 벌리는 것도 한몫했다. 입을 작게 벌리면 목소리를 크게 내기도 어렵고 고음도 내기 힘들다. 그런데 이 상태에서 노래를 크게, 또 높게 부르니까 소리가 인골라에 빠지게 된 것이다. 특유의 울부짖는 듯한 느낌도 이런 발성 때문에 나온 것이라 감정표현에는 장점이 되었지만, 가수 생활에 점점 악영향을 끼쳤다.[60] 원랜 가성도 자주 쓰며 3옥타브 레(D5)까지 고음을 깨끗하게 내던 미성 보컬이었지만 블루스 음악을 좋아했던 보컬이라 후기로 갈수록 진성만 사용하게 되었다. 4집부턴 아예 허스키 보이스가 되었을 정도다.[61] 김현식처럼 원래는 하이톤의 미성이었다. 들국화 1집을 들어보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초미성임을 알 수 있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양희은의 모창이 가능했을 정도. 다만 전인권은 김현식과 달리 원래부터 허스키한 쇳소리도 섞인 목소리였다.[62] 별명이 '천둥호랑이'인데 그 별명에 걸맞게 고음부분이나 고음 애드리브는 마치 호통을 치는 듯한 수준으로 끓어오르는 듯한 진성 창법으로 소리를 낸다.[63] 김장훈이 숲튽훈으로 조롱당했던 당시의 영상들을 보면 김장훈이 이미 50줄에 접어들었음에도 30대 정도로 보일 정도의 동안이었기 때문에 빨리 나락을 갔다고 저평가당하는 것도 있다.[64] 단 2008년부터 성대 노화로 목소리가 얇아지기 시작했다. 소나기 라이브로 유명한 2008년 윤도현의 러브레터 출연분에서 이미 목소리가 다소 바뀐 것을 들을 수 있고(이 때 부른 고속도로 로망스에서 체감할 수 있다.), 2009년부터 이것이 심해졌다.[65] 특히 노래만 불렀지는 마지막에 3옥타브 레(D5)를 길고 깔끔하게 뽑아내는 것이 백미로 꼽힌다.[66] 사실 이것은 전국 콘서트 투어로 인해 목이 심하게 망가졌던 탓이다.[67] 이때 이문세, 성시경과 함께 공연했다.[68] 3년 뒤인 2010년에 싸이와 부른 것도 있는데, 이때부터 고음에서 목소리가 이상하게 바뀐 것을 들을 수 있다. 숲튽훈식 샤우팅은 덤이다.[69] 라이브에서 뜬금없이 내지르는 것은 옛날에도 변함 없었다.# ## ### 하지만 지금에 비해 목 상태가 좋아서 거북하게 들리지는 않았다.[70] 사실 이런 게 그의 가창력을 갉아먹었다. 거의 레전드급 라이브를 보여 줄때도 이런 버릇이 나오는데, 심지어 이때 김장훈은 아팠다고 한다. 다만, 중간에 "나와 같다면"에서 고음으로 올라가는 것까지는 매우 좋았지만 마지막에 후렴구를 한 옥타브 올리는 건 퍼포먼스에 불과했고 심지어 과하다. 그런데 문제는 전성기 때 이런 엄청난 무리수를 실제로 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워낙 타고난 피지컬이 좋다 보니 관리를 거의 안 해도 최소한 40대 중반이나 거의 후반까지 이런 짓거리가 가능했고, 잘 부르다가도 이런 무리수를 두다 보니 성대에 무리가 가며, 관리는 커녕 더 무리수를 두면서 처음엔 가끔 튀어나오던 게 노래에서 비중이 점점 늘어나고, 처음엔 거의 깔끔하게 올라가던 것도 이상하게 들리게 된 것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기본기가 안 좋아 목에 굉장히 무리가 가는 창법+성대를 혹사하는 고음 퍼포먼스+지독한 술담배까지 하는데 40대 중반까지나마 기량을 상당히 유지했다는게 얼마나 피지컬을 잘 타고났는지 보여준다.[71] 1998 ~ 1999년 이 시기가 연예인 김장훈으로서는 진짜 절정의 전성기였다.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도 이상한 드립으로도 폭소를 미친듯이 뻥뻥 터뜨리고, 특유의 발차기로 엄청난 인기를 끌던 시기. 심지어 20대 때 김장훈의 여자친구 머리가 지저분하다며 시비를 건 불량배들 3명하고 혼자 싸움하다가 완전히 두들겨맞고 망신당한 이야기를 방송에서 직접 했는데도, 당시 코뼈 다칠까봐 손으로 코만 가리고 쓰러져서 양아치들에게 발로 밟혔다는 이야기가 웃기다고 호감도만 올라갔었을 정도이다. 2010년대부터는 그 발차기를 오버한다고 생각하는 시청자들도 많이 생겼지만,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는 그런게 없었고 재미있고 멋있다고 생각하는 시청자들만 매우 많았다.[72] '허니~ 오 허니~ 많이 보고 싶어' 부분에서 목을 심하게 긁으면서 내지르는 창법을 구사했다.[73] 처음에는 3옥타브 초반부터 얇아지기 시작했는데 그 범위가 점차 넓어졌고, 성대 노화가 심해진 2016년에는 2옥타브 솔(G4) 이상만 올라가도 목소리가 얇아지는 현상이 일어났었다.[74] 목소리의 변화가 확실히 티가 나기 시작한 공연이 싸이와의 완타치 2009 공연이다.[75] 주로 2010년 이후 콘서트나 공연[76] 뜬금없이 담배를 피거나, 갑자기 샤우팅을 하는 등의 행동들이 있다.[77] 노래 중에 피치가 떨어지는 경우는 있어도 노래를 하면서 음정 자체를 못 맞춘 적은 없다. 오히려 발차기 퍼포먼스 같이 과한 몸짓으로 음정이 틀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도 제대로 음을 맞추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면(노래만 불렀지 라이브에서 1절 벌스에서 사비로 넘어갈 때 이것을 볼 수 있다.) 음감은 진짜 좋다.[78] 오토튠이라는 만능 툴이 등장한 지금의 보정 편의성이 워낙 넘사벽이라 그렇지 과거 아날로그 레코딩 시절이라고 해서 키보정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처럼 남용되지는 않았지만 정말 어쩔 수 없는 경우에 음성의 피치 보정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고 음향 엔지니어가 수작업으로 테이프 속도를 조절해서 음정을 정확하게 맞추어 다시 녹음하는 방법을 썼다.[79] 흔히들 닭소리라고 하는 그것으로, 2009년쯤부터 고음에서 목소리가 억지로 내는 느낌으로 얇아지는데 그 상태에서 확 내질러서 성대가 부들부들 떨리며 나오는 소리다. 김장훈의 아리랑 영상을 보면 1분 18초, 2분 31초, 3분 12초에 나온다.[80] 사실 그의 전성기였던 시절인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중반에도 가끔씩 엇박을 타긴 했지만 이땐 그렇게 심하지도 않고 정박자로 자주 불러서 그렇게까지 불거진 문제는 아니었다.[81] EBS 스페이스 공감에 출연해서 노래만 불렀지를 불렀는데 이때 김장훈이 박자를 아예 무시하는 바람에 피아니스트가 박자를 놓치고 다시 연주하는 불상사가 벌어졌다. 노래만 불렀지 라이브 영상에서 1분 18초에 나온다.[82] 이선희의 경우 제자 이승기도 밝힌 바 있듯이 평소에는 필담을 하고, 반찬과 물 마시는 것조차도 극도로 조심할 정도로 목 관리를 철저하게 한다.[83] 링크, 이 외에 유튜브에는 1999년도에 부른 영상도 있는데 이때도 후렴구에서 자기 음역을 능가하는 고음역에 상당히 버거워하는 걸 볼 수 있다. 참고로 원곡에서 두 키를 올린 이 노래의 최고음은 3옥타브 레(D5)이고 후렴구 내내 2옥타브 시(B4)가 계속 나온다.[84] 김장훈을 비꼬는 사람들은 김장훈이 관객들에게 마이크를 넘기는 것을 '뷔페 창법'이라고 부른다. 뷔페에서 자신이 먹고 싶은 것만 골라서 먹듯, 김장훈은 자신이 부르고 싶은 것만 부르기 때문이라고 한다.[85] 2011년 중대축제 나와 같다면 2014년 홍대 트라이브 바 그것만이 내 세상[86] 과거 10년대 초~중반까지 라이브 영상을 보면 음주를 하는 걸 흔히 볼 수 있었다. 2019년 현재는 거의 하지 않는다.[87] 대중들에게는 일렉기타 창법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88] '숲튽훈의 혼이 김장훈에게 빙의되었다', '김장훈으로 돌아와 달라' 등의 드립을 예로 들 수 있다.[89] 참고로 본인은 이를 자성(自省)이라고 주장한다. 인터뷰 중에도 기자들에게 정정을 요구한 적이 있다.[90] 공식적인 복귀는 2018년 8월이지만 사실 작은 행사는 뛰고 있었다.[91] 저음에서도 음색이 예전 같지 않다.[92] 2옥타브 라(A4)[93] 2년 전인 2016년 스페이스 공감에서의 라이브에서도 음이 떨리긴 했지만 2옥타브 라(A4) 음을 10초간 유지했었다. 폐활량이 2년 동안 심각하게 떨어진 것이다.[94] 한 때는 2키 올리고 부른 적도 있었다.[95] 노화와 성대 망가짐으로 가창력이 쇠퇴해가던 김종서가 부활에 성공한 것이 성악 공부 덕분이다. 둘의 친분을 감안할 때 김종서가 미친 영향이 큰 듯하다.[96] 일부러 성대를 상하게 해 쇳소리를 내는 판소리에서나 먹히는 방법이지, 일반적인 상업 가수라면 당연히 쓰면 안 되는 말도 안 되는 자해 방법이다! 김장훈의 성대가 워낙 튼튼했기에 현재도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듯하다.[97] 애초에 평생을 좁은 목소리를 내왔는데 이제 와 목을 넓혀 부르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들 것이다.[98] https://www.youtube.com/watch?v=1-PSydmsrqA[99] 최고음 5옥타브 솔♯(G♯7)까지 낼 수 있다고는 하는데, 사실 5옥타브는 그냥 괴성이기 때문에 가창으로선 의미가 없다. 5옥타브 음을 제대로 구사하려면 휘슬 레지스터라는 창법을 써야 한다.[100] 2011년에 세종에서 선보인 그것.[101]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호불호를 막론하고 고인을 추모하는 자리에서 개인적인 경찰과의 분쟁에 대한 분풀이와 욕설을 한 것. 이 자리엔 어르신부터 어린아이까지 와 있었기에 진보와 보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비판을 들었었다. 이후 사과를 했지만 이미지가 회복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102] 나처럼!!!!을 하면 관객들이 열정적으로 노래를 따라부른다.[103] 사실 김장훈의 '장'은 '글 장()'인데 '장' 하면 떠올리는 대표적인 한자가 '길 장'이라 그냥 長으로 붙어졌다.[104] 꽤나 오래 전부터 아는 사이였고 윤종신과 김구라는 김장훈에 대해 투사, 파이터라는 평가를 내린 바도 있었다.[105] 방송에서는 마치 김장훈의 콘서트 장비만을 만드는 과목인 것처럼 과장해서 말했지만, 사실은 전혀 아니다. 참고로 해당 교과목은 교수와 학생들이 팀을 짜서 한 학기~두 학기 프로젝트를 한다.[106] 카이스트에도 자주 기부한다고 한다.[107] 어깨를 부상당하고 고통스러워 잠도 제대로 못 잤는데, 공연하고 싶어서 3주도 안 돼 공연하다가 부상이 도진 적도 있다고 한다.[108] 본인은 자성(自成)이라고 부르며, 인터뷰에서 기자들에게 정정을 요구하기도 했다.[109] 그 전설의 일렉기타 창법, 떼쓰기 창법을 다름 아닌 EBS에서 발동하게 만든 그 노래다. EBS에서 부른 라이브 버전이 TJ미디어 반주기에 등록되어 있다. 번호는 10554. 원곡 번호는 3597.[110] 김장훈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해준 곡이며 김장훈 본인도 큰 애착을 가진 곡이라 항상 콘서트의 엔딩곡으로 불러서 유명해졌다. 또한 김장훈의 자작곡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곡이며 자신도 이 곡에 대한 애정이 굉장히 많다. 대학 시절 5분만에 쓴 곡이라고 한다. 슈퍼스타K에서 홍대광이 경연곡으로 부른 후에 다시 유명해졌다. 또한 숲튽훈 밈이 생긴 데에는 이 노래의 지분이 상당히 크고 결과적으로는 이 노래도 숲튽훈 밈 덕분에 더 크게 알려졌다.[111] 박상태의 곡을 리메이크 한 곡이다. 허나 김장훈 버전의 인지도가 압도적이다 보니 김장훈이 원곡자인 줄 아는 경우가 많다.[112] 원곡자 쟈니 리.[113] 윤종신이 2001년 7월 6일에 발매한 '고속도로 Romance'가 원곡이다. 덤으로 숲튽훈 동영상에서는 '조금만 조금만 더 빠르게!!!↗↗↗' 부분과, '미!!쳐!!버!!렸!!어!!↗↗↗' 부분이 쓰인다.[114] 드라마 전우 OST.[115] 여기서 현실의 "김장훈"과 같은 역할로 출연했다. 설정상 주인공 최곤의 절친했던 후배 동생이었다가 스타가 된 가수 역할인데, 막상 김장훈은 주인공 최곤 역할의 배우 박중훈보다 나이가 더 많다. 화내는 연기가 너무 부자연스러워서 연기력은 긴급조치 19호때보다도 안 좋았다.[116] 노무현 정권 당시의 반미 열풍, 이명박 정권 초창기 광우병 시위 당시만 해도 사회비판에 적극적인 연예인들이 제법 있었다.[117] 나이가 나이인 만큼 건강 관리를 슬슬 해야할 때다.[118] 정작 담배는 목에 좋지 않다. 그런데 목소리를 내려앉고 걸걸하게 하기 때문에 목소리를 원하는 소리로 바꾸기 위해 담배를 피우려고 하는 경우가 은근히 종종 있다.[119] 사실 이런 식으로 만든 걸걸한 목소리는 가수생명에 굉장히 안 좋다. 일부러 상처를 내서 걸걸해진 거라 성대가 굉장히 약해지기 때문에, 성대의 힘이 떨어지면 목소리를 내는데 굉장히 지장을 주기 때문. 과도한 흡연과 음주로 걸걸해진 액슬 로즈는 전성기 때도 심하던 기복이 나이가 들면서 고음이 거의 안 나오는 수준으로 추락하기도 했다. 로니 제임스 디오는 노년까지 건강한 성대를 유지한 케이스였는데(정작 디오도 애연가이긴 했다), 이런 사람들은 평상시 목소리가 오하려 깨끗하지만 테크닉으로 raspy한 소리를 내는 케이스.[120] 99년 12월 5일부터 12월 19일까지 3주 연속 정신적 지주를 맡게 되었다.[121] 99년 12월 19일에는 Y2K에 유이치에게 주장선발전에서 패배하게 되자 정신적 지주를 "제꺼 주세요"라고 말을 한다.[122] 이 당시만 해도 김장훈은 호감 이미지였다.[123] 무명 생활을 벗어난 후 방송에 나와 노래 부르는 모습이 담긴 영상 댓글에 홍명보 닮았다고 하는 네티즌들이 은근 많았다. 그리고 우연히도 홍명보는 울산 HD의 감독직을 맡은 적이 있다.[124] 실제로 김장훈은 누나가 두 명 있다.[125] 이 링크를 들어가서 3분 25초부터 보면 영향받은 가수 중에 누가 있는지, 왜 그가 그렇게 고음에 집착하는지에 대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5분 55초부터 나오는 9단 고음도 하이라이트다.[126] 상술된대로 배우 나이는 영화와 반대이다. 김장훈이 더 나이가 많다.[127] 한국으로 귀화했으며 현 세종대 교수.[128] 예를 들어 대중교통을 타다가 불의를 못 참고 싸웠더니 정신을 잃었다는 일화처럼.[129] 과연 김장훈은 한 소속사에 오래 있던 적이 드물다. 자신은 직원들과는 사이가 좋았고, 사장의 횡포에 분연히 들고 일어난 것뿐이라고 한다. 실제로 당시는 지금처럼 가수의 권리가 강화되고 체계화된 시절이 아니었다. 하지만 매니저들은 좀 다르게 본다는 썰도 있다.[130] 실제로 김장훈의 옛 라이브 영상을 보면 지금과 다르게 얼굴과 체구가 상당히 핼쑥했음을 알 수 있다.[131] 아마 단수는 7단이 끝이다. 7단은 아마추어 전국대회 우승을 여러 번 해야 주어진다. 5~6단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언론마다 다르게 쓰고 있기 때문.[132] 사실 2009년 명랑 히어로에서 유희열이 우회적으로 김장훈이 보톡스를 많이 맞았다는 소리를 한 적이 있다. 김장훈이 꽤 늦은 나이에 인기를 얻은 것을 보면 4집 활동 이후부터 보톡스 시술을 받았을 확률이 높다.[133] 실제로 슬픈 선물로 활동하던 당시 여성 팬들이 따라서 떼창을 하는 동영상을 찾아볼 수 있다.[134] 알다시피 염색과 파마는 두피와 머릿결에 악영향을 미친다. 김장훈은 원래는 흑발 직모였으나 공중파 데뷔 이후로 지금까지 매번 머리색을 바꾸고 계속 구불거리는 파마를 유지하고 있다.[135] 김장훈의 팬들은 눈매가 바뀐 시점부터 숲튽훈으로 진화했다고 농담을 하기도 한다.[136] 똑같이 '갤주'로 불리는 윤서인과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평이 좋다. 애초에 윤서인은 일뽕 주작충에 의한 '억지갤주'에 가까운데다 인간적인 평도 나쁜데, 김장훈은 그냥 유머스러운 이미지라 비교당하는 게 모욕일 정도다. 사실 정확히 따지면 초대 갤주가 김장훈이었고, 그 이후 김제동이나 정준하, 윤서인 등이 갤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즉 다른 갤러리와 다르게 "논란이 된 인물을 까기 위해 갤주로 내세우는 행위"의 정통성으로 승부한다면 김장훈의 손을 들어줘야 하는 것이다. 최근 그의 행보로 정치색과 비호감 이미지가 많이 희석되어 갤주 드립의 발현지인 야갤에서조차도 욕을 줄이고 있는 것 뿐이었다.[137] 김장훈은 색맹이라 운전을 못 하기 때문에 매니저가 없는 상황에서 차를 빼고 싶어도 뺄 수가 없었다.[138] 이투스 개념때려잡기 확률과 통계, 06강 - 최단 경로의 수(1) 강의 9분경 참고[139] 그런데 노래 자체는 키를 낮춘 것을 감안해도 전성기가 떠오를 정도로 잘 불렀다. 마지막 곡인 노래만 불렀지도 후반까지는 고음을 내지르지 않고 '이렇게' 부분도 적당한 선에서 지르는 것으로 끝냈다. 진짜 숲튽훈 빙의는 최후반에만 나온다.[140] 63년생으로, 2023년 기준 환갑의 나이가 다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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