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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4 19:50:10

퓌러

나치 독일 총통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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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치 독일 퓌러기.svg
지도자 겸 국가수상
Führer und Reichskanzler
파일:아돌프 히틀러 사진1.jpg
<colbgcolor=#000><colcolor=#fff> 이름 <colbgcolor=#fff,#191919>아돌프 히틀러
취임일 1934년 8월 2일
퇴임일 1945년 4월 30일 (자살)
정당
관저 국가수상부
1. 개요2. 역사3. 용례4. 번역5. 매체에서6. 기타

[clearfix]

1. 개요

[[파일:나치 독일 퓌러기.svg
width=100%]]| 퓌러 깃발 겸 휘장
나치 독일최고지도자로 정식 명칭은 지도자 겸 국가수상이라는 뜻의 Führer und Reichskanzler(퓌러 운트 라이히스칸츨러)다. 보통 줄여서 퓌러(Führer)라고 말한다. 컴퓨터움라우트(변모음)를 적을 수 없을 경우 Fuehrer로 대체한다.

Führer(퓌러)라는 단어 자체는 독일어지도자, 영도자, 수령이라는 뜻이며 정확히는 독일어 동사 führen(이끌다)을 하는 남성[1]이라는 의미다.[2] 이 때문에 독일 패망 후 동독에선 이오시프 스탈린퓌러로 칭했다.[3]

한국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총통으로 의역하지만 퓌러는 의미를 볼 때 북한에서 쓰는 수령과 유사한 단어로 총통보다는 수령, 영도자가 더 정확한 번역이다. 지도자를 뜻하는 이런 식의 호칭은 파시즘 국가에서 쓰였다.[4]

2. 역사

정치적 의미에서의 퓌러는 1920년대 독일오스트리아대독일주의자들에게서 처음 나타났다. 정치적 의미에서 퓌러로 칭해진 최초의 사례는 오스트리아극우 대독일주의자 게오르크 폰 쇠네러(Georg von Schönerer)로, 그의 추종자들이 그를 '퓌러'라고 칭하고 로마식 경례까지 행한 바 있다고 한다.

1920년대 초반 아돌프 히틀러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에서 입지를 굳히자 히틀러의 추종자들도 이러한 풍조의 영향을 받아 그를 퓌러(Führer)라고 칭했다. 히틀러는 당 총재 같은 직위는 맡지 않았지만 당 내에서 절대적인 입지를 굳혔고 루돌프 헤스 같은 히틀러 추종자들이 독일 민족을 구원할 영도자 또는 지도자라며 Führer라고 불렀다. 히틀러가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독일 노동자당)의 창시자 안톤 드렉슬러와 견해 차이로 다투고 탈당 협박을 할 때 그를 달래기 위해 나치당의 전권을 주었고 이때부터 그는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에서 공식적으로 퓌러라고 칭해졌다.

1933년 1월 30일 히틀러는 총리에 취임했다. 당시 독일에서 총리는 라이히스칸츨러(Reichskanzler)라고 칭해졌으므로, 나치당원들은 그를 퓌러 운트 라이히스칸츨러(Führer und Reichskanzler), 즉 지도자 겸 국가수상이라고 칭했다. 히틀러는 3월에 수권법을 제정해 입법권을 장악하는 식으로 민주주의를 말살하고 독재 정권을 완성했다.

1934년에는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해 준 파울 폰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사망하였다. 이에 히틀러는 독일국 국가원수에 관한 법률(Gesetz über das Staatsoberhaupt des Deutschen Reiches)을 제정하여 대통령의 권한을 자신에게 부여했다. 이로써 히틀러는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대표, 정부수반(총리), 국가원수(대통령) 직위를 모두 겸임했다. 이때부터 히틀러의 공식 직함은 지도자 겸 국가수상(Führer und Reichskanzler)이 되었는데 실제로는 '국가수상'은 얼마 못 가 떨어져나가 퓌러로만 칭해졌다. 기존의 바이마르 공화국 체제에서는 대통령은 상징적 국가원수, 그리고 총리는 정부수반을 맡는 내각책임제 형식[5]이었는데 히틀러는 아예 대통령과 총리직을 하나로 합치는 것과 동시에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대표직까지도 하나로 합쳤다. 즉, '퓌러'란 호칭은 대통령 + 총리 + 당대표를 포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법률은 국민투표에서 90%의 찬성률을 얻어 국민으로부터 추인을 받았다.
Gesetz über das Staatsoberhaupt des Deutschen Reichs.
독일국 국가원수에 관한 법률
Vom 1. August 1934.

Die Reichsregierung hat das folgende Gesetz beschlossen, das hiermit verkündet wird:
국가 정부는 다음과 같은 법률을 통과시켰으며 이에 따라 공포된다.

1. Das Amt des Reichspräsidenten wird mit dem des Reichskanzlers vereinigt. Infolgedessen gehen die bisherigen Befugnisse des Reichspräsidenten auf den Führer und Reichskanzler Adolf Hitler über. Er bestimmt seinen Stellvertreter.
1. 국가대통령의 직위는 국가수상의 직위와 통합된다. 결과적으로 국가대통령의 이전 권한은 지도자 겸 국가수상 아돌프 히틀러에게 이양된다. 그는 그의 대리인을 임명할 수 있다.

2. Dieses Gesetz tritt mit Wirkung von dem Zeitpunkt des Ablebens des Reichspräsidenten von Hindenburg in Kraft.
2. 이 법은 힌덴부르크 국가대통령이 사망한 때부터 효력을 발휘한다.

이 법의 특이한 점은 국가원수, 정부수반으로서의 권한을 특정 직책을 가진 자가 아니라 아돌프 히틀러 개인에게 이양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히틀러는 원한다면 죽을 때까지 종신 퓌러로 있을 수 있게 되었다. 나치 독일의 견해에서 퓌러는 관직 이름이라기보다는 '독일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 히틀러를 수식하는 것이었고 '퓌러라는 수식어를 가진' 히틀러를 독일과 동일시하였다. 따라서 퓌러라는 직책은 법리적으로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대통령직과 총리직을 합친 것이지만 퓌러는 대통령과는 달리 임기가 만료되는 일이 없으며 총리처럼 의회 신임에 의존하지도 않았다. 나치 독일은 정부가 입법권을 가지고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독재국가였으나 퓌러가 가지는 구체적인 권한이 명시된 법을 제정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들이 생각하기에는 히틀러가 곧 독일이므로, 그런 법률은 오히려 히틀러의 신성성을 해치는 것이었다.

당대표와 총리, 대통령을 모두 겸한 히틀러는 일단 자신의 공식 직함을 이전의 "국가수상(Reichskanzler)"에서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내부 직함이었던 "지도자 겸 국가수상(Führer und Reichskanzler)"으로 변경하였으며 1934년 8월 2일 독일 내무부 장관 빌헬름 프리크에게 보낸 법령에서 공식 및 비공식 직함을 "모든 미래를 위해(für alle Zukunft)", "지도자 겸 국가수상"으로만 언급하기로 결정하였다. 따라서 "국가대통령(Reichspräsident)" 직위는 공식 직함으로 사용하지 않았는데 이는 후술하듯 파울 폰 힌덴부르크가 국가대통령 직위에 "특별한 의미(eine einmalige Bedeutung)", 즉 군주제의 황제에 상당하는 다양한 특권을 부여하였기 때문이었다.[6]

아돌프 히틀러는 국가대통령직(Reichspräsident)을 다시 채우지 않고 자신과 병합하여 공식적으로 폐지했다.[7] 이는 군주제를 극도로 혐오한 그가 정부 수반으로서 국가대통령의 특권에 공식적으로 의존하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다.[8] 국가대통령과 국가총리 집무 기관의 합병은 1934년 8월 19일의 국민투표에 의해 확인되었다.[9]

1934년 이후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외부의 직위에 대한 "퓌러" 사용은 엄격하게 제한되었다. 대표적으로 독일노동전선(DAF)의 대표는 "DAF의 지도자(Führer der DAF)"에서 "DAF의 참모장(Stabsleiter der DAF)"으로 변경되었다. 이어서 1939년 1월 독일 언론은 더 이상 히틀러를 "지도자 겸 국가수상(Führer und Reichskanzler)"이라고 부르지 말고 "지도자(Führer)"라고 부르라는 엄격한 지시를 받았다.[10]

한술 더 떠 1942년 1월 22일의 지시에서는 "지도자 및 독일 국방군의 최고 사령관(Führer und oberster Befehlsherr der Wehrmacht)"이라는 용어를 "지도자(der Führer)" 뒤로 물러나게 해야 한다고 아예 명시하였다. 목표는 당연히 널리 퍼진 "Führer"라는 공식 명칭을 히틀러의 고유 이름으로 "재해석"하려는 것이었다.[11]

1942년 4월 26일의 대독일 의회 결의안(RGBl. I p. 247)에서도 마찬가지로 "지도자(Führer)"가 주장한 권리가 확인되고 "지도자(Führer)"라는 명칭이 "지도자 겸 국가수상(Führer und Reichskanzler)" 대신 여러 번 사용되지만 "히틀러"라는 이름은 사용되지 않는다.[12] 1942년 8월에는 아예 의회에서도 "지도자(Führer)"로 직위가 바뀌었다.[13]

1945년 그의 유언장에 히틀러는 공식 거주지에서 "지도자 겸 수상(Führers und Kanzlers)"이라고 쓰고 "국가 지도자(Führer der Nation)"로 서명했으며 자신의 사후 자신의 직무를 국가대통령(Reichspräsident)과 국가수상(Reichskanzler)으로 다시 나눌 것을 유언으로 남겼고 이에 따라 국가대통령은 카를 되니츠에게, 국가수상은 파울 요제프 괴벨스에게 나누어졌다.[14] 국가대통령 카를 되니츠는 국가대통령 외에 국방군 최고사령관, 전쟁부 장관, 해군 총사령관을 겸하도록 하였다. 이 중 국방군 최고사령관직은 나치 이전 국가대통령 파울 폰 힌덴부르크가 역임하였던 대통령이 당연직으로 겸직하는 직책이었다. 이를 히틀러가 대통령직을 흡수하며 승계한 후 히틀러 사후 대통령직 분리로 되니츠가 승계했다. 그러나 괴벨스는 가족과 동반자살했고 루츠 폰 크로지크가 총리 자리를 이어받았으며 되니츠가 대표하는 독일 정부연합군무조건 항복했다. 히틀러는 일찍이 후계자로 헤르만 괴링을 차기 지도자로 선포했었고 1939년에는 이를 법률로도 못 박았지만 전쟁 말기 괴링이 마르틴 보어만의 정치 공작에 의해 히틀러에게 오해를 사 제명되면서 이 후계자 자리는 공석이 되었다.

히틀러는 군주제를 엄청나게 혐오했기 때문에 이 표현을 무척 긍정적으로 여겼다고 한다. 히틀러는 무능한 인간도 지도자에 오를 수 있다면서 세습제에 대한 막대한 불만을 저서에서 여러 번 표출했으며 히틀러가 자식을 낳지 않은 것도 그런 생각에서였을지 모른다. 이러한 사고 방식에는 빌헬름 2세의 무능함도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3. 용례

퓌러는 지도자(리더)라는 뜻이기 때문에 어느 조직의 수장이든 다 사용 가능한 단어이며 나치 독일은 퓌러라는 말을 히틀러에게뿐만 아니라 나치당 산하 정치단체의 수장 직함에도 붙였다. 예를 들면 슈츠슈타펠의 최고지도자는 라이히스퓌러-SS(Reichsführer-SS, 국가지도자-SS)라 칭해졌다.

'퓌러'는 남자인 히틀러 하나뿐이었으므로 정치적 의미에서 여성형인 '퓌레린'을 단독으로 칭할 일은 없었으나 퓌레린은 합성어로는 이곳저곳에 쓰여서 나치 독일 시절 나치당 산하 여성 정치단체인 국가사회주의여성동맹의 수장은 라이히스프라우엔퓌레린(Reichsfrauenführerin)으로 칭해졌다.

나치와 관계가 깊은 단어인 탓에 이 단어는 이제 독일에서 잘 쓰이지 않지만 독일어의 언어학적 특성상 다른 단어와는 혼합되어서는 아직도 잘 쓰인다. Lokführer(철도기관사), Führerstand(조종석), Führerschein(운전면허증[15]), Bergführer(산악 가이드)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점 때문에 Chef, Leiter 등으로 바꾸는 경우가 많으며 아예 '지도자'라는 단어는 안퓌러(Anführer)로 바꾼 지 오래다.

이러한 용법의 연장선상에서 브이 포 벤데타영화 버전에 등장하는 가공의 독재자 아담 서틀러의 직책은 한국어 자막에서 오역된 "의장"이 아니라 "총통"이나 최소한 "총리"로 번역되어야 맞다는 의견도 있다. 복돌이 자막으로는 "대법관"이라고 번역됐다. 영국 어휘에서 "the Lord(High) Chancellor"는 정관사가 붙어 단수로 쓰이며 의미는 "(영국의) 대법관"이나[16], "Chancellor"는 독일의 수상을 부를 때 쓴다. 스타워즈 프리퀄에 등장하는 최고 수상직, 예를 들어 팰퍼틴도 마찬가지다. 나치를 연상시키는 경례에서도 혐의는 짙다.

4. 번역

한자를 사용하는 한국, 일본에서는 Führer를 '총통'으로 번역한다. 한국에서 히틀러의 직위를 지칭할 때 쓰는 표현인 총통은 당시 일본의 언론에서 히틀러를 총통이라 표기하였던 것이 굳어진 것이다. 총통을 단순히 공식적인 지위로만 쓰자면 히틀러가 무명 시절부터 정권을 잡기 직전에도 Führer로 불린 것이 설명이 안 되긴 하지만[17] 1934년부터 히틀러의 직책을 일본에서 총통으로 지칭했기 때문에 계속 그렇게 쓰고 있다.

이 단어가 오늘날 대만 국가원수인 '총통'과 겹치기 때문에 종종 오해를 초래하기도 한다. 중국어에서는 '대통령'을 총통이라고 번역하기 때문이며 중국어에서는 Führer를 원수(元首)라고 번역한다.

한국에서는 한때 Führer를 '영도자'로 번역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이내 묻히고 말았다. 일례로 영국의 전쟁사학자 존 키건 경의 <2차세계대전사> 한국어 번역본에서는 "Führer"를 '영도자'로, 종래의 "총통 지령" 또는 "총통 명령"을 '영도자 지령'으로 번역했다.

영어권에서도 나치 독일의 퓌러는 워낙 특이한 지위라서 Führer라는 독일어 단어를 번역하지 않고 "독일 제3제국 총통"이라는 의미 그대로 쓰는 학자들이 많다. 영어에서 발음할 때는 독일어 '위(ü)' 발음이 영어에 없다 보니 영어권 사람들이 발음하기 어렵기 때문에 보통 원어 발음을 보존하지 않고 '퓨러' 혹은 '푸러' 정도로 발음한다.

한편 독일어에서는 1979년 이후 이란최고지도자라흐바르(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알리 하메네이) 직위를 Führer로 번역한다. 정확히는 Religionsführer(종교 지도자), 더 정확하게는 Oberste Religionsführer(최고 종교 지도자).

5. 매체에서

실제 퓌러는 아돌프 히틀러 단 한 명뿐이었지만 나치 독일의 승리를 가정하는 대체역사물에서는 히틀러 사후에도 후임 총통이 계속 등장하기도 한다. 작품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히틀러는 1950~60년대에 사망한다. 패전하고 자살하지 않았더라도 히틀러는 워낙 건강이 좋지 않았고 생활 태도도 개판이어서 장수하기는 무리였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 후의 2대 퓌러는 보통 암살에서 살아남은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취임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워낙에 권력욕이 강하고 능력도 뛰어난 인물이기에 계속 살아남아서 10여년 이상 괴링, 힘러, 괴벨스, 보어만 따위의 결함투성이 인간들과 권력 다툼을 했다면 실제로 2인자가 되거나 히틀러를 허수아비로 만들었을 가능성도 높다.

반면 나치 관련하여 가장 유명한 대역물인 높은 성의 사나이에서는 하이드리히가 힘러와 괴링을 제거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명색이 갈색의 배후자인 마르틴 보어만을 꺾지는 못한 것으로 나온다. 제2대 총통 보어만이 사망한 이후 제3대 퓌러의 자리는 대중연설을 통한 프로파간다로 파울 요제프 괴벨스가 차지하게 된다.

그 외에는 하인리히 힘러, 아르투어 자이스잉크바르트 등이 언급되며 특히 힘러는 높은 성의 사나이의 TV판에서 원작과 달리 생존해 괴벨스와의 경쟁에서 승리해 총통직에 오른다.

하이드리히도 사망한 이후의 3대 퓌러부터는 대부분 가상의 인물이다. 나치 독일과 나치당 자체가 1945년에 몰락하였기 때문에 하이드리히의 뒤를 이을 만한 실존 나치 관료는 역사에 기록될 수가 없었다. 하급직의 사회 초년생 무명인물이면 모를까. 실존 인물이면서 딱히 나치 관료가 아닌 인물을 등장시키면 굉장한 논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찾는다면 발두어 폰 시라흐쿠르트 발트하임, 굳이 더한다면 에리히 폰 만슈타인 정도가 총통 자리에 올라가는데 쿠르트 발트하임은 실제 오스트리아 대통령도 역임했으니 적절한 편. 그외엔 독일 사회주의 국가당이나 독일 민족민주당의 인사들 정도가 나와야 하는데 마이너한 인물이 많다.

아돌프 히틀러의 전기 영화로 수많은 패러디를 양산한 다운폴에서도 한스 크렙스아돌프 히틀러에게 'Mein Führer(마인 퓌러)'로 호칭한다. 한국어로 직역하자면 '총통 각하' 정도가 된다.

6.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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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독일어 직업명으로서 -er는 남자를 뜻한다. 남성명사이기 때문에 정관사는 Der(데어)를 사용한다.[2] 대상이 여성일 경우 뒤에 -in이 붙어서 Führerin(퓌레린)이 되며(움라우트를 적을 수 없을 경우의 대체 표기는 Fuehrerin), 정관사는 Die(디)를 사용한다.[3] 참고로 러시아어로 수령은 вождь(vozhd)로, 소련 내에서 레닌과 스탈린의 칭호로 쓰였다.[4] 베니토 무솔리니(두체), 프란시스코 프랑코(카우디요). 영어 단어 Leader에 대응한다.[5] 그러나 바이마르 공화국 대통령의 권한 자체는 내각책임제 국가치고는 상당히 강력한 편이었다. 심지어 의회해산권과 비상상황에 한해서 긴급조치권(즉 헌법 정지 명령권)까지 있었다. 힌덴부르크는 이걸 적극적으로 사용해서 말썽이었고 나치의 집권을 초래했다.[6] Erlaß des Reichskanzlers zum Vollzug des Gesetzes über das Staatsoberhaupt des Deutschen Reichs vom 1. August 1934 (Reichsgesetzbl. I S. 747) v. 2. August 1934, RGBl. I S. 751. Hitler wies hierfür auf „die Größe des Dahingeschiedenen“ hin.[7] So Andreas Dietz: Das Primat der Politik in kaiserlicher Armee, Reichswehr, Wehrmacht und Bundeswehr (= Jus Publicum; Bd. 210), Mohr Siebeck, Tübingen 2011, S. 356–357.[8] Vgl. Ian Kershaw, Führer und Hitlerkult, in: Wolfgang Benz, Hermann Graml und Hermann Weiß (Hrsg.), Enzyklopädie des Nationalsozialismus, 3., korr. Auflage, Klett-Cotta, Stuttgart 1998, ISBN 3-608-91805-1, S. 22–33, hier S. 28.[9] Verordnung zur Durchführung der Volksabstimmung über das Staatsoberhaupt des Deutschen Reichs (3. August 1934), in: documentArchiv.de.[10] Zitat bei Cornelia Schmitz-Berning: Vokabular des Nationalsozialismus. 2., durchges. und überarb. Auflage, Berlin 2007, S. 243 („mein Führer in der Wehrmacht“).[11] Zitat bei Cornelia Schmitz-Berning: Vokabular des Nationalsozialismus. 2., durchges. und überarb. Auflage, Berlin 2007, S. 243 („mein Führer in der Wehrmacht“).[12] Vgl. Cornelia Schmitz-Berning: Vokabular des Nationalsozialismus, 2. Aufl. 2007, S. 243; Beschluss vom 26. April 1942.[13] Siehe RGBl. I, Nr. 91 vom 29. August 1942.[14] 당시 독일은 정부가 법률을 제정할 수 있는 걸 넘어 총통 명령도 법률과 동일한 효력을 발휘했다. 히틀러가 명령을 내려 퓌러직을 없애고 대통령과 총리로 나누는 것도 가능했다.[15] 독일어 동사 führen은 앞서 설명한 것처럼 무언가를 이끄는(lead) 의미로 쓰이지만 탈것을 조종하는 의미로도 사용하기 때문에 Führer가 들어간다.[16] 의회가 개회 중일 때는 상원의장의 의미로 쓰인다.[17] 당시 일본에서 야당 지도자로서의 히틀러에 대한 직함 Führer는 수령이나 당수로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