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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4 21:48:44

리어왕

리어 왕에서 넘어옴
윌리엄 셰익스피어 작품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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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5f5f5,#191919> 4대 비극 햄릿 · 리어왕 · 오셀로 · 맥베스
5대 희극 말괄량이 길들이기 · 베니스의 상인 · 뜻대로 하세요 · 한여름 밤의 꿈 · 십이야
기타 율리우스 카이사르 · 아테네의 티몬 · 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 · 로미오와 줄리엣 · 잣대엔 잣대로 · 템페스트 · 헛소동 · 코리올라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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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노르웨이 노벨연구소는 전 세계 54개국의 유명 작가들을 대상으로 "세계 문학사에서 가장 훌륭하고 가장 중심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책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1위는 50%의 이상의 표를 얻은 돈키호테이며 나머지 순위는 밝히지 않았다. 가장 많은 책을 올린 작가는 표도르 도스토옙스키(4권)이며, 프란츠 카프카, 윌리엄 셰익스피어, 레프 톨스토이는 각각 3개의 책을 올렸다.
1984
조지 오웰
인형의 집
헨리크 입센
감정 교육
귀스타브 플로베르
압살롬, 압살롬!
윌리엄 포크너
허클베리 핀의 모험
마크 트웨인
아이네이스
베르길리우스
안나 카레니나
레프 톨스토이
빌러비드
토니 모리슨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알프레드 되블린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불안의 책
페르난두 페소아
욥기
작가 미상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
토마스 만
캔터베리 이야기
제프리 초서

프란츠 카프카
우리 동네 아이들
나기브 마푸즈
픽션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시선집
자코모 레오파르디
단편집
프란츠 카프카
단편집
에드거 앨런 포
제노의 의식
이탈로 스베보
죄와 벌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죽은 혼
니콜라이 고골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데카메론
조반니 보카치오
오지에서의 곤경
주앙 기마라에스 로사
광인일기
루쉰
신곡
단테 알리기에리
돈키호테
(1위)
미겔 데 세르반테스
수상록
미셸 드 몽테뉴
동화집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파우스트
요한 볼프강 폰 괴테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프랑수아 라블레
길가메시 서사시
작가 미상
금색 공책
도리스 레싱
위대한 유산
찰스 디킨스
걸리버 여행기
조너선 스위프트
집시가집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햄릿
윌리엄 셰익스피어
이야기
엘자 모란테
굶주림
크누트 함순
백치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일리아스
호메로스
해방된 민중
할도르 락스네스
보이지 않는 인간
랠프 엘리슨
운명론자 자크와 그 주인
드니 디드로
밤의 끝으로의 여행
루이페르디낭 셀린
리어왕
윌리엄 셰익스피어
풀잎
월트 휘트먼
트리스트럼 섄디
로렌스 스턴
롤리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콜레라 시대의 사랑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보바리 부인
귀스타브 플로베르
마의 산
토마스 만
마하바라타
브야사
특성 없는 남자
로베르트 무질
마스나위
잘랄 웃 딘 루미
메데이아
에우리피데스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변신 이야기
오비디우스
미들마치
조지 엘리엇
한밤의 아이들
살만 루시디
모비 딕
허먼 멜빌
댈러웨이 부인
버지니아 울프
냘의 사가
작가 미상
노스트로모
조지프 콘래드
오디세이아
호메로스
오이디푸스 왕
소포클레스
고리오 영감
오노레 드 발자크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백년의 고독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과수원
세이크 무스하리프 웃-딘 사디
오셀로
윌리엄 셰익스피어
뻬드로 빠라모
후안 룰포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시선집
파울 첼란
악령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라마야나
발미키
샤쿤탈라
칼리다사
적과 흑
스탕달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셀 프루스트
북으로의 이주 시절
타옙 살리흐
단편집
안톤 체호프
아들과 연인
D. H. 로렌스
음향과 분노
윌리엄 포크너
산소리
가와바타 야스나리
이방인
알베르 카뮈
겐지모노가타리
무라사키 시키부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치누아 아체베
천일야화
작가 미상
양철북
귄터 그라스
등대로
버지니아 울프
소송
프란츠 카프카
몰로이
말론 죽다
이름 붙일 수 없는 자
(3부작)
사뮈엘 베케트
율리시스
제임스 조이스
전쟁과 평화
레프 톨스토이
폭풍의 언덕
에밀리 브론테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출처 1 출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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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
2.1. Leir of Britain
3. 줄거리4. 등장인물5. 대중 매체에서6. 기타

1. 개요

"Who is it that can tell me who I am?”
“내가 누구인지 말해 줄 수 있는 자가 누구란 말이냐?”
─Act 1, Scene 4

<King Lear>

윌리엄 셰익스피어비극. 1606년 집필되어 1608년에 처음 출간되었다.

영국을 다스리는 리어왕과 그의 세 딸들,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국왕에게 충성을 다하는 신하들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처절한 비극성이 돋보이는 걸작이다.

2. 상세

셰익스피어의 다른 4대 비극이 인간적인 관계에서 생겨나는 갈등과 몰락을 다루고 있다면, 리어왕은 매우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극의 중심에는 리어왕과 그 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들 이상으로 강렬하게 빛을 발하는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일종의 군상극과 같은 양상을 띤다. 즉, 셰익스피어의 다른 희곡들이 주로 몇몇 인물의 갈등을 중심으로 했던 것과는 달리 본작에서는 다양한 인물들이 다층적인 갈등 관계를 맺으며 공간적 배경 또한 여러 영지를 오고 가기 때문에, 매우 스케일이 크고 권선징악적이며 장엄한 이야기가 되었다.

셰익스피어의 주인공들은 타인의 악덕이나 내부의 갈등으로 몰락한다. 그러나 리어왕은 자신의 실책이 있었기는 하지만, 정치적 문제가 결정타로 작용하여 몰락한다는 차이가 있다. 작품은 왕이기에 앞서 인간이었던 한 늙은이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집중한다.

햄릿이나 오셀로가 인간관계에서 온 비극으로 죽었다면 그의 죽음은 성격이 다르다. 맥베스 또한 정치적 목적을 이루려다 죽고 말지만(왕이 된다는 목적) 그는 어디까지나 부와 명예에 대한 욕구 탓에 멸망하는 것이다. 리어왕은 오히려 부와 명예에 대한 집착이 적다. 다만 혈육의 정과 안락한 노후를 요구할 뿐이다. 그러나 그는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었고, 자신이 언제나 권력 투쟁의 위험에 노출된 존재임을 간과했다. 그는 모든 권력과 재화를 포기하고 편안한 삶을 원하였지만 결국 광야를 헤매다 비통한 죽음을 맞는다.

작중에서 리어왕과 정말 유사한 캐릭터인 글로스터 백작이 등장한다. 켄트 백작처럼 리어왕에게 충신인 글로스터 백작은 세 딸 대신 두 아들을 뒀지만 사악한 자식에게 속아 자신에게 효심을 다하는 자식을 내치고,[1][2][3] 그리고 그 사악한 자식에게 배반당해 자신도 비참하게 몰락하는 등 두 인물은 매우 비슷한 행보를 밟는다. 해석에서도 리어왕의 이야기를 주된 플롯으로 보고 글로스터 백작 일가의 이야기를 부플롯으로 간주하는 해석들이 있다.

현대의 문외한들에게는 햄릿과 함께 고전 막장 드라마라고 폄하되기도 하지만, 사실 이 두 작품의 스토리는 중세 시대에 실제로 벌어졌던 귀족들의 온갖 추악하고 야비한 싸움에 비하면 오히려 크게 순화된 수준이다. 셰익스피어 당시 영국에서는 '잔혹극(revenge play)'이라고 불리는, 요새로 치면 19금 영상물에 해당되는 자극적이고 잔인한 내용의 연극이 유행했는데[4],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당시의 잔혹극에 비해 선정성과 자극성이 상당히 많이 다듬어지고 순화되어 있다.

이처럼 순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등장인물들의 감칠맛 나는 대사와 복잡한 스토리, 온갖 암투와 음모가 난무하는 이 연극은 귀족 사회의 혼란상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당시의 일반 대중에게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다만 작중 대부분의 선역들이 사망하는 처참한 내용이 대중들의 반감을 샀고, 이런 대중의 열망을 반영해서 결말을 뜯어 고친 수많은 극본이 자리를 메우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한동안 셰익스피어의 원작은 거의 공연이 안 되었고 개작본들만 무대에 올랐던 부끄러운 시기가 있었다.

물론 이 개작 버전들은 작품성 측면에서 원작의 근처에도 가지 못하기 때문에 현재는 거의 상연되지 않는다. 현재의 관점에서 리어왕의 가장 큰 매력은 오히려 끝을 모르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비극성에 있는데, 정점에 올랐던 한 인간이 몰락해 가는 과정을 정말 훌륭하게 표현했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2.1. Leir of Britain

영국의 전설 속 인물인 레이르(Leir)왕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였다. 레이르왕 전설이 기록된 문헌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몬머스 제프리의 브리타니아 열왕사[5]인데 이는 셰익스피어의 리어왕과 스토리에 차이가 있다.

레이르왕이 3녀 중 두 딸에게 땅을 물려주었다가 이 딸들에게 괄시를 받은 것까지는 리어왕의 스토리와 같지만, 이후 열왕사 속의 레이르왕은 잉글랜드에서 도망쳐 프랑크족에 시집간 코델리아에게 몸을 의탁하게 되고 코델리아의 남편이던 프랑크족의 왕으로부터 군대를 지원받고 프랑크족은 레이르왕을 복권시키기 위하여 잉글랜드를 침공한다. 그 전투에서 고네릴과 리건의 군대는 프랑크족의 군대에 처절히 패배하여 고네릴과 리건, 그리고 그들의 남편까지 전부 사망한다. 이후 다시 왕위를 되찾은 레이르왕은 3년간 나라를 통치하다가 사망하고 코델리아가 레이르왕의 뒤를 이어 나라를 통치하게 된다. 그러나 5년 후 코델리아의 조카들, 즉, 고네릴의 아들인 '마르가누스'와 리건의 아들인 '쿠네다기우스'가 군대를 이끌어 코델리아를 공격하고, 코델리아는 전투에서 패하여 감옥에 갇힌 채 비통하게 자결한다. 이후 마르가누스와 쿠네다기우스는 브리튼 왕위 계승권을 놓고 내전을 치르고 결국 쿠네다기우스가 최종 승리자가 된다. 이후 쿠네다기우스는 수 대에 걸쳐 브리튼을 지배한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은 레이르왕 전설의 작중 배경[6]을 중세 후기로 바꾸고 등장인물을 추가하는 동시에 스토리를 각색하고 주제 의식 등을 넣어 창작한 것이다.

참고로 열왕사 스토리에 기반을 둔 레이르왕 전설에 관한 연극이 셰익스피어 이전 영국에서도 인기를 끌었는데, 이 연극에서는 상술하였듯 코델리아가 죽지 않으며 리어왕이 왕위를 되찾은 뒤 코델리아에게 왕국을 물려준다.[7]

3. 줄거리

브리튼 왕국의 리어왕은 늘그막에 재산을 정리하기 위해, 슬하의 세 딸들을 불러모아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느냐고 묻는다. 장녀 고너릴 공주는 아버지를 무척 사랑한다며 갖은 아부와 아양을 다 떨어서 재산의 ⅓을 받는다. 차녀 리건 공주도 고너릴의 행동을 모방해서 똑같이 ⅓을 받는다. 마지막으로 왕의 총애를 받는 막내딸 코델리아 공주만 남았다. 그녀는 언니들의 말이 거짓말이며 아첨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자신만은 정직하게 말하기로 마음먹고 "드릴 말이 없습니다"라고만 하며, 당황한 리어왕은 몇 번의 기회를 더 주었으나 코델리아의 답은 변함이 없고 이렇게 덧붙인다.
"아버지는 저를 태어나게 해 주셨고, 키워 주셨고,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 은혜를 당신에게 복종하고, 사랑하고, 존경함으로써 되갚는 것이 온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언니들이 당신을 그리 사랑한다면 어찌 남편을 두었을까요? 만약 제가 결혼한다면, 저의 남편은 제 사랑의 반과 함께 책임과 의무 또한 가져갈 것입니다. 확언컨대, 저는 당신만을 사랑하기 위하여 언니들처럼 결혼하지 않을 것입니다."
"Good my lord, you have begot me, bred me, loved me: I return those duties back as are right fit, obey you, love you, and most honour you. Why have my sisters husbands, if they say they love you all? Haply, when I shall wed, that lord whose hand must take my plight shall carry half my love with him, half my care and duty: Sure, I shall never marry like my sisters, to love my father all."
라고 말한다. 이에 심기가 불편해진 리어왕은 크게 역정을 내며 재차 "정녕 네 뜻이 그리하다는 것이냐?"(Doth your heart goes with this?)라고 묻는다.[8]

이에 코델리아는 끝까지 그렇다고 답하고, 리어왕은 코델리아가 끝내 자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자 배은망덕한 후레자식이라고 욕을 하며 코델리아의 몫으로 예정된 재산을 언니들에게 각각 나눠 줘 버리고 한 푼도 주지 않는다.[9] 이때 코델리아에게 동시에 구애하여 경쟁하던 구혼자들이 둘 있었는데, 버건디[10] 공작은 유산이 없으니 떠나 버리고 코델리아를 진심으로 사모하던 프랑스 왕이 데리고 가 결혼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

막내를 내쫓아 버린 왕에게 직언을 하던 충신 켄트 백작은 덩달아 미움을 사 영국에서 영원히 추방당하는 벌을 받는다. 사실상의 사형 선고를 받은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든 리어왕을 다시 보필하기 위해 광대 카이어스라는 신분을 위장하고 그의 시중을 들며 살아간다.

또한 리어왕의 신하 중 한 사람인 글로스터 백작의 서자인 에드먼드는 충분히 능력이 있음에도 서자라는 이유로 적자보다 차별을 받는 것에 불만을 품고 음모를 꾸며 적자인 형 에드거를 제거[11]하려 한다. 에드거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도망쳐 톰이라는 가명을 쓰며 미치광이로 위장해 살아간다.

한편, 애초에 자신들이 받을 재산에만 관심이 있었고 아버지에게는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던 고너릴과 리건은 유산을 받자마자 아버지를 점점 홀대하며 괴롭히고, 결국 대놓고 아버지를 비난하기 시작한다.[12] 믿었던 두 딸이 자신을 홀대하자 얼마 남지 않은 기사들과 함께 밖으로 쫓겨난 리어왕. 왕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후회하고 또 후회하다 못해 그만 미쳐 버리고 만다.[13]

글로스터는 에드먼드의 음모에 휘말려 두 눈을 잃고 나서 죽고 아버지의 소식을 들은 코델리아는 이미 프랑스 왕가에 속했음에도 광야 속에 비참하게 죽어가는 아버지를 구하기 위하여 영국에 선전 포고를 하고 목숨을 바쳐 전투에 참전하나 결국 우세한 영국군에게 패한 후 포로로 잡혔다가 에드먼드에 의해 감옥에 갇혀 자살로 위장된 타살로 허무하게 죽어 버린다. 리어왕의 장녀 고네릴과 차녀 리건은 에드먼드를 두고 연적이 되어 싸우다가 결국 고네릴이 리건을 독살하고 고네릴은 자살해 버린다. 에드먼드는 자신의 신분을 속여 가며 이를 갈던 에드거의 손에 죽는다.

리어왕 역시 막내딸 코델리아의 죽음을 접한 후 충격과 슬픔에 빠져 죽고 만다. 늘 그렇듯이 모든 것이 끝난 뒤 살아남은 선인들인 켄트 백작[14]과 에드거, 리어의 맏사위 올버니 공작[15]이 서로를 위로하고 뒷일을 수습한다.

4. 등장인물



5. 대중 매체에서

대다수가 명작, 못해도 수작 취급을 받는 셰익스피어의 희곡들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한 작품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1905년 독일의 무성 영화를 시작으로 현대를 배경으로 각색한 영국의 2018년작까지 총 십수 번이 넘도록 영화화되었으며 이외에도 드라마부터 라디오, 소설, 그림, 음악까지 리어왕을 모티브로 다양한 형태의 작품들이 여럿 쏟아져 나왔다.

리어왕을 원작으로 한 영화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은 일본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만든 '(1985)'이라는 영화인데 일본 센고쿠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딸이 아니라 아들이 나오도록 각색하였다. 물론 결말은 동일하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엑토르 베를리오즈, 클로드 드뷔시는 리어왕을 주제로 한 음악을 작곡했다.

비틀즈의 앨범 Magical Mystery Tour에 수록된 노래 I Am the Walrus 마지막 부분에 존 레논이 리어왕의 구절을 그대로 녹음했다.

파이어 엠블렘 풍화설월금사슴반 귀족 학생들의 가문명이 리어왕의 등장인물들에게서 따왔다.

6. 기타


[1] 착하고 효심 깊지만 아버지들에게 내쳐졌던 자식들(코델리아, 에드거)이 돌아와 아버지를 몰락시킨 사악한 자식들(고네릴, 리건, 에드먼드)과 대립하는 것도 비슷하다.[2] 다만 오랜 정치에 지쳐서 안식만을 원했지만 외적인 이유로 불행에 처한 리어왕과는 달리, 글로스터 백작은 한 인간으로서의 관점으로 봐도 매우 문제적인 인물이다. 아무리 서자라지만 엄연히 자기 자식인 에드먼드의 출생을 동료 조신과의 대화에서 농담거리로 삼거나, 혹은 별자리 이야기로 자주 안 좋은 이야기를 듣는 에드먼드에게 별자리 점 이야기를 굳이 꺼내는 등 아버지로서 상당히 부정적인 태도만을 보인다.[3] 사실 아버지를 위해서라면 양심 대신 다른 방법의 대응이 가능했던지라 리어왕과의 대담 당시 양심에만 충실했던 응답에 대한 해석이 다양하게 존재하는 코딜리어와는 달리, 본인이 뭘 어떻게 해 볼 여지조차 없이 첫 등장부터 이복동생 에드먼드의 음모에 휘말려 본인의 안위를 위협받는 이 작품에서 순수한 선의의 피해자 에드거는 상반된 운명을 마주하게 된다. 또 두 인물은 본인 아버지에 대한 감정도 그만큼이나 상반되기에 두 아버지들의 행동과 심리가 비슷한 듯 또 다른 것처럼 두 명의 아버지 각각의 선역 포지션의 자식들의 행동도 비슷한 듯 또 다르다. 육체적 고생을 겪고 본인 손으로 자신의 권리를 되찾으며 탄생의 정통성에 능력을 겸비한 등장인물로 거듭난 에드거는 엄정한 평가를 모두에게 내리는 냉철한 모습으로 본인 아버지의 부도덕한 잠자리와 비참한 결말과의 인과 관계로써 평가하며 본인의 정당한 권리를 음모로 침해한 에드먼드에게도 본인의 정체를 밝히며 정통성이 본인에게 있음만 주장하고 더 이상의 비판을 하지 않으며 '서로 자비를 주고받자'는 언급을 하며 매우 재능이 출중했지만 출신 성분의 제약과 아버지의 무신경한 언행에 노출되어 성장했던 에드먼드가 심리적 안식 속에서 눈을 감도록 배려를 해 주는 등 본인 자체가 명백한 선의의 피해자임에도 시종일관 냉정을 잃지 않고 이성에만 입각하여 행동한다. 반면 코딜리어는 본인의 아버지를 향한 진심 어린 사랑에만 충실하다. 그렇기에 민음사판에서 리어왕-코딜리어의 대담에는 그 근저에 깔린 부녀 상호 간의 심리적 감정적 욕구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주로도 달리며 작품 해설에서도 심층적인 분석이 되지만 글로스터 노백작-에드거의 관계는 오히려 글로스터 노백작-에드먼드의 관계보다 주목을 적게 받는다.[4] 셰익스피어의 초기작인 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가 바로 당시의 유행에 맞춰서 쓴 잔혹극이다.[5] 브리튼의 전설의 왕들을 정리한 것으로, 아서왕의 일대기가 처음으로 기록된 문헌으로도 유명하다.[6] 전설 속 레이르왕은 기원전 8세기경 인물로 추정한다.[7] 물론 실제 전설에 따르면 이후 코델리아는 조카에게 패배해 왕위를 빼앗기고 감옥 속에서 홀로 자살하는 지극히 비극적인 이야기가 되겠지만, 이 연극에서는 굳이 이후의 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하긴 셰익스피어의 리어왕도 너무 비극적인 스토리 때문에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바꾼 판본으로 자주 시연되었으니....[8] 리어왕은 이미 이전에 자신의 딸에게 결혼하는 귀족에게 땅을 주겠다고 명시했다. 즉, 리어왕이 왕으로서 공주들에게 내린 마지막 명령은 결혼하는 것이었고, 이에 코델리아가 결혼하지 않겠다고 하니 항명하는 것이냐고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9] 이는 절대적인 왕권에 대한 도전의 처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버지로서 코델리아의 정직하고 꾸밈 없는 성격을 몰랐을 리가 없었을 텐데, 아무리 명령을 거역했다지만 과도할 정도로 큰 벌을 내린 탓에 이 때부터 이미 왕이 노망나서 이성을 상실했을 가능성을 암시하기도 한다. 물론 리어왕이 늙은 마음에 코델리아가 자신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해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가 뜻대로 흘러가지 않으니 욱해서 그런 부분도 있다.[10] 부르고뉴를 영어식으로 부른 명칭이다.[11] 단, 죽이려고 하지는 않았다. 일을 벌이기 전에 직접 에드거에게 '아버지의 분노를 피해 멀리 피하라'며 귀띔까지 해 준 데다가, 아버지의 면전에서 도피하는 에드거를 놓치고 에드거의 칼에 맞은 듯한 자작극을 펼쳐서 에드거를 살려서 보낸 것이 에드먼드 본인이다. 에드먼드가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까지 했을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할 수 있지만, 일단 작중의 묘사대로라면 에드먼드의 목적은 태생 때문에 가로막힌 출세의 기회에 대한 한풀이 겸 본인에게 무관심한 아버지에게 보복하기 위한 백작위 계승일 뿐 에드거의 목숨까지 빼앗으려고 하는 묘사는 없었다.[12] 처음에는 잘 대접해 주는 듯했으나, 얼마 안 가 밑천이 드러나며 은근히 사람을 점점 못살게 군다. 처음에는 거느리는 기사 수가 많아 뒷정리가 힘들다는 핑계로 기사 수를 절반으로 줄일 것을 요구하다가, 나중에는 기사 자체를 없애 버리라고 압박하는 식으로.[13] 이때 비바람이 부는 들판에서 울부짖으며 외치는 광기 어린 대사는 말 그대로 정신 나간 이라 치부하기 어려운 자식 잘못 키운 후회와 비탄으로 장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14] 리어의 마지막 충신. 또 에드먼드가 적어도 유능하기는 하다는 것을 친부인 글로스터 노백작보다도 먼저 알아보고 나름대로 덕담을 해주는 등, 사람의 능력을 파악하는 눈과 배려심도 좋은 편이다.[15] 즉 고네릴의 남편. 이 사람은 앞에서도 고네릴의 행동을 옳지 않다고 말하는 등 그래도 아내와는 달리 상식인다운 모습을 보이지만, 아내가 공주라 그런지 적극적으로 말리지는 못한다. 반면 리건의 남편으로 올버니 공작의 동서인 콘월 공작은 아내와 다를 바 없는 악인이었다.[16] 그를 모시고 다니면서 에드거가 저도 모르게 아버지라고 두세 번 부르는 실수를 하지만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는다.[17] 글로스터 백작에게 '글로스터 백작이 칭하는 '실수'의 멋진 결실'이라고 언급했다.[18] 하지만 후술 주에도 나오지만 이 효심은 철저히 이성에 의거한 효심이다.[19] 이러다가 리어왕이 몰락한 후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그를 알아본 에드거는 당연히 매우 가슴 아파한다. 한편 리어가 '너도 딸년들한테 버림받고 쫓겨났느냐?'고 하는 것이 참 웃지 못할 장면이다(...).[20] 에드먼드 본인은 점성술을 믿지 않았으나 이미 음모를 꾸미고 있었기에 점성술을 명상하는 연기를 하고 있었다.[21] 선술했듯이 에드먼드는 비과학적인 점성술로 인해 자주 구설수에 시달렸다.[22] 사생아는 후계자가 될 수 없다.[23] 더하여 본인의 출생에 대해 비아냥을 일삼는 글로스터 백작의 말을 들었는지는 민음사 번역본 기준으로는 나오지 않지만 본인을 동반했던 자리임에도 그 어느 조심성도 없이 이 등장인물의 본연의 능력 발휘 기회를 가로막는 출생을 동료 조신인 켄트 백작에게 농담의 주제로나 생각하는 글로스터 백작의 태도를 감안할 만하다. 물론 작중 안 좋은 쪽으로 본인의 좋은 머리를 썼지만 에드먼드 본인의 경우 글로스터 백작의 그 발언은 못 들었다고 해도 태도를 감지할 능력이 충분히 되는 출중한 능력의 소유자이다. 본인을 낳고 별 존재감 없이 죽은 친모에 대한 감정이 있다면 충분히 화가 날 상황은 맞다. 물론 그 분노의 선의의 피해자가 에드거가 된 시점에서 그 음모가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굉장히 불리한 상황에 더하여 본인에 대한 최소한의 명예가 존중받지 못하는데 대한 감정이 누적될 여지가 충분한 상황이다. 더하여 글로스터 백작은 본인의 아들인 에드먼드가 출생 별자리 때문에 근거 없는 비아냥을 듣는데도 그 상황에 대한 관심이 없으며 또한 에드먼드 면전에서 별자리 이야기를 일삼는 별자리 심리학의 신봉자이다. 그래서 아무리 점성술로 고결하다고 믿어지는 시간에 태어난다고 해도 본인은 현재와 같을 것이라고 독백한다.[24] 민음사 번역본 기준 엄밀히 자기 손으로 이복형을 직접 죽일 생각은 없었다. 물론 귀족집 아들이 노숙하면 쉽게 적응이 힘들어서 객사하기를 바랐을 수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주목표는 글로스터 백작 가문의 계승일 뿐이었고 이복형의 목숨을 자기 손으로 회수할 뜻은 없었다. 이 에드거에게 아버지를 피해 멀리 달아나라고 말한 사람도 에드먼드 본인이고 에드거를 잡다 본인이 다쳐서 놓치는 연극을 연출해 에드거가 살아서 도망치는 걸 글로스터 노백작 앞에서 연출해서 형을 살려서 보내준 것도 에드먼드 본인이다. 물론 에드거의 능력이 굉장히 출중해서, 이렇게 에드거를 산 채로 놓치는 장면을 연출한 이 자작극은 이후에 본인의 목숨을 빼앗기게 되는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다.[25] 코델리아의 죽음 후 슬퍼하는 리어왕의 대사에 나의 불쌍한 바보(fool)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것이 코델리아에게 향한 말이 아니라 여정 도중 죽어버린 광대에 대한 추모라는 해석이 있다.[26] '말 대신 직접 마차를 끈다는 건지 혹은 군에서 유용하게 쓰인 말을 다루는 재주를 군마를 타는 분야가 아닌 다른 쪽에 활용할 생각이 없다'는 의미인지 원문만 보면 알기 힘드나, 민음사 번역본에서는 '본인은 마차를 끄는 말이 아니다'는 주를 달아놓았다.[27] 역시 민음사 번역본에 따르면 농사를 짓는다는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