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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6 23:55:00

사찰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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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불교 종교표지(흰색).svg파일:1px 투명.svg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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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대승 불교3. 상좌부 불교4. 기타

1. 개요

불교사찰에서 발달한 요리. 불교에는 여러 종파가 있기 때문에 사찰 요리는 지역별, 국가별, 종파별로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만, 대한민국을 비롯한 대승 불교권에서는 과거 양무제 소연이 발표한 단주육문(斷酒肉文)에 따라 육식을 금하고 있어 사실상 채식주의 식단의 표본으로 불리고 있다.

다만 원칙적으로는 시주받는 대로 뭐든지 남기지 않고 먹는 것이 올바르다. 그래서 육류라고 먹지 않는 것 또한 그다지 바람직한 행동은 아니다.[1] 오히려 육식 금지는 자급자족을 원칙으로 하는 대승 불교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상좌부 불교권에서는 육식을 금하는 내용이 없으며 시주받은 것을 그대로 먹기 때문에 사찰 요리라고 하더라도 육식이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다.[2]

티베트몽골은 대승 불교에 속하는 티베트 불교가 성행하지만 채소 재배에 적합하지 않은 혹독한 기후 탓에 육류유제품 위주의 음식을 섭취한다.

일본의 경우 대승 불교가 성행하며 채소 재배에도 적합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승려가 자유롭게 육식을 할 수 있다. 다만 수행을 할 때는 육식이 금지이며 자신의 절에 있을 때만 가능하다.

2. 대승 불교

사찰 음식은 궁중 음식과 함께 한식의 양대 산맥
식객 27권 팔도 냉면 여행기 '승소(僧笑) 냉면' 中

사찰 요리는 일반적으로 동아시아 대승 불교권에서 발달했다. 그 이유는 탁발 금지 문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동아시아에 불교가 막 유입되었을 때는 상좌부 불교가 특별히 수정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수입된 만큼 승려들은 상좌부 불교와 동일하게 탁발을 행했다. 본디 탁발은 인도 문화권에서는 전통적으로 브라흐민 혹은 고행자들 같은 사회에 존경을 받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공덕을 나누어주기 위해 행하는 성스러운 행위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별 탈 없이 수행되어 왔다. 그런데 점차 시간이 흐르며 불교가 중국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탁발이 원래의 긍정적인 의미를 잃어버리고, 웬 정체불명의 외국인들이 구걸을 한다는 이상한 행위로 받아들여지면서[3] 오히려 불법을 포교하는 데 방해가 되었다. 이러한 문제로 인해 중국의 불교 승려들은 탁발 대신 다른 여러 가지 방법으로 먹을 것을 조달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권력자들이 아닌 민중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탄생하고 발전해 온 상좌부 불교와는 달리 대승 불교는 본디 엄연한 외국의 종교를 당대 지도층들이 자신들의 통치적 정당성 확보를 목적으로 주도적으로 수입한 만큼 각국의 황실들이 사원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했기 때문에 굳이 승려들이 탁발에 나설 이유가 없었으며 선종에서 탁발 대신 승려들이 직접 농사를 지어 자급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면서 탁발 풍습은 갈수록 희미해지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선종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선종에서는 노동 또한 수행의 일부라고 하여[4] 스스로 일하지 않고 남한테 의지하며 사는 탁발을 매우 부정적으로 보았다. 그래서 승려들이 직접 밭을 갈고 농사를 지으며 직접 음식을 요리해 먹도록 했기 때문에 사찰 요리가 더욱 발달했다. 반대로 상좌부 불교권에선 승려들이 탁발을 하기 때문에 독자적인 사찰 요리가 거의 없다시피하다. 그래서 승려들도 일반인들과 비슷한 음식을 먹는다.

대한민국을 비롯한 대승 불교권에서는 중국의 양나라 황제 소연이 내린 포고령 단주육문에 따라 술과 고기를 금하는데, 무제는 불교에 대한 반발이 쉽게 그치지 않을 것을 알았다. 교단이 부패하고 승려가 존경받지 못하면 아무리 황제가 옹호해도 걷잡을 수 없기 때문이라서 스님이 술을 마시면 지혜의 종자가 끊기고 스님이 고기를 먹으면 대자비의 종자가 끊긴다는 이유로 내린 포고령 단주육문에 입각하여 , 고기, 오신채를 금하는데 이때 당시 많은 승려들이 반발했으나 양무제는 답변으로 논파했다. 도살하는 사람에게 고기를 사는 것은 재물로 고기를 잡는 것이며 현실에 소비되는 고기 중 자연사한 것은 없다고 논파했다.

저절로 죽은 것까지도 식용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며, 고기를 먹는 승려는 백성에게 죄를 짓는 도적이라는 논리로 혹독하게 처벌했고, 명망 높은 고승들을 본보기로 처벌하는 한편, 금육에 관한 내용을 담은 경전을 발행하였다. 이는 도교의 영향이라는 설도 있지만 인도의 자이나교 식문화와의 공통점 및 아유르베다에 나온 식이요법과 흡사한 부분이 많아 꼭 중국식으로 현지화되었다고만 하기도 힘들다. 자이나교와 아유르베다의 식이요법 역시 육류 및 마늘, 양파, 파 같은 민간요법으로 원기를 돋우는 관련된 식자재 섭취를 금한다.

하지만 육류를 섭취하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단백질이 결핍된다. 인도문화권에서는 채식을 하는 사람들도 버터의 일종인 기(Ghee)치즈 등의 유제품을 먹는 것으로 단백질 결핍 문제를 해결했다. 대승 불교에서도 유제품 자체는 허용 범위에 속하지만, 정작 대승 불교 문화권인 동아시아에서는 유제품을 접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대승 불교에서는 대체제인 이나 버섯 등을 먹어 이를 해결한다. 흔히 콩고기로 불리는 대두단백도 고기 대신 단백질을 섭취하기 위해, 또 고기 맛을 흉내내기 위해 만든 것이다. 두부 요리도 많이 활용되는데, 스님들 중에서 손두부를 굉장히 잘 만드는 사람들이 꽤 있으며 사찰 음식을 많이 해 본 사람들 또한 두부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경우가 많다. 고기 뿐 아니라 오신채도 금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대승 불교권의 사찰 요리들은 일반인들이 흔히 먹는 음식에 비해 맛이 담백하다.

맵고 짠 맛에 익숙한 한국인들 입장에선 밍밍하고 싱겁다는 느낌이 강하고 돼지고기 섭취를 즐기는 중국인들 입장에선 뭔가 배가 허전하고 덜 먹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에 반해 일본인들 입장에서는 일반 요리와 사찰 요리 사이의 위화감을 잘 느끼지 못하는데, 이유를 말하자면 일본 요리 자체가 불교의 영향이 강하고 달짝지근한 맛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모도키(がんもどき)'나 '고마도후(胡麻豆腐)', '켄친지루(けんちん汁)'처럼 사찰 음식이 일반 가정식으로 전파된 사례도 있다.

다만 한국과 중국, 일본에선 전통적으로 채식주의가 불교, 도교와 결부된지라 채식요리도 주로 사찰을 통해 발달되었고[5] 그래서 사찰 요리가 채식주의 식단의 표본으로 인정받는다. 지금은 한국에도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식당이 늘어났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한 편이라 채식주의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 사찰 요리 전문점이다.

물론 사찰 요리가 반드시 몸에 좋은 다이어트 식단은 아니다. 사찰 요리는 어디까지나 금기 사항이 좀 있는 식단일 뿐이지, 다이어트 식단이나 건강식을 목적으로 개발된 요리가 아니다.[6] 특히 기름이 대표적인데 돼지기름 같은 동물성 기름은 당연히 금기 사항이지만 식물성 기름을 사용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에 채소를 기름에 부치거나 튀긴 고칼로리 음식이 많다. 물론 이런 고칼로리 음식도 고기가 안 들어갔으니 채식은 맞지만 이런 고칼로리 음식을 자주 먹으면서 운동을 안 하면 당연히 살이 찐다. 육식을 오랫동안 금지한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로 튀김 요리가 많이 발달했는데 이런 튀김 요리들을 자주 먹으면 당연히 비만이 되기 십상이다. 승려들은 매일 절을 하고 불경을 외우는 등의 다양한 활동들을 하기 때문에 그나마 덜 찌는 것이다.
그리고 먹는 것을 좋아하는 스님들을 보면 밀가루, 설탕, 기름을 좋아하는 경우가 많은데 스님들도 먹는 즐거움을 100% 포기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이어트를 할 때는 저 셋을 최대한 피해야 하며, 오히려 저지방 생선 또는 육류를 먹는 것이 영양적인 측면에서 훨씬 좋다.

그 밖에 대승 불교권 사찰 요리의 특징을 들자면 국수류가 굉장히 발달했다는 것인데 이러한 특징 역시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중국 북부 지방은 농사권, 남부 지방은 농사권이었기 때문에 북부 지방에선 주로 국수, 만두, 이 발달했고 남부 지방에선 , 등이 발달했다. 한국은 지리적잇 특성 상 중국 북부 지역과 육로로 연결되었기 때문에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 중국에 유학을 갔다 온 스님들을 통해 국수가 전래되었는데 이 국수는 '스님의 미소(僧笑 / 승소)'[7][8]라고 부르며 굉장히 즐긴다. 엄격한 수도 방식으로 유명한 일본의 선불교에서도 국수를 먹을 때는 격의 없이 후루룩 소리를 내며 먹을 수 있다고 할 정도다. 불교식 패스트푸드라고나 할까?[9] 사찰 요리에도 만두가 있는데 국수와 마찬가지로 만두 역시 '스님의 미소(僧笑)'라고 부르는 음식이다. 다만 이 만두도 일반적인 만두와는 다르다. 당연히 고기는 들어가지 않으며 두부버섯 위주로 소를 채운다고 한다.

또한 가 굉장히 발달했는데 역시 마찬가지로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 본래 중국 요리는 기름을 사용하여 굽고 튀기고 부친 느끼한 맛의 요리들이 많다. 게다가 중국은 수질이 나쁜 국가라서 물을 그냥 마시지 못하고 끓여서 마시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10] 그래서 끓인 물에 찻잎을 띄워서 차를 많이 만들어 마셨는데 차의 재배나 다례는 주로 사찰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한국에선 삼국시대에 중국에 유학을 갔다 온 승려들이 차를 들여왔고 그 시절부터 사찰을 중심으로 차 재배가 이루어졌다. 다만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숭유억불 정책으로 인해 차를 마시는 문화가 쇠퇴하고 말았다. 조선에서는 차를 마시는 문화를 불교 풍습으로 여겨서 차 대신 숭늉을 마시는 것으로 대체하도록 했다. 그 흔적이 명절에 지내는 제사차례라고 부르는 것이다. 원래 조선 이전의 차례상에서는 이름 그대로 차를 올렸는데 조선시대에 술을 올리는 것으로 바뀌었다. 현대에도 한국은 숭늉이 커피로 대체되면서 한중일 중에선 가장 차를 덜 마시는 국가가 되었으며 일상에서도 차가 크게 보편화되지는 못한 채로 남아 있다.

사실 한과도 사찰 요리에서 발달한 것이다. 불교를 국교로 지정했던 고려 왕조에선 제사상에 어육(魚肉)을 올리는 것을 금했는데 이 어육을 대신하여 과자를 만들어 올렸다. 이 때 발달한 대표적인 과자가 바로 약과인데 후에 몽골로도 전파되어 고려병(高麗餠)이란 이름으로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고려가 무너진 후에 건국한 조선에서는 앞서 말했듯이 숭유억불을 국시로 삼아 불교 문화를 지우려고 했고 이로 인해 조선시대부터는 제사상에 다시 어육이 올라가게 되었다.

다만 승려 문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성장기 동자승[11][12] 환자에게는 육류 섭취가 허용된다.

3. 상좌부 불교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상좌부 불교에선 대승 불교권과는 달리 육식을 금하지 않는데 본래 석가모니는 살생을 금하라고 했을 뿐 육식을 금하라고 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인이 의도적으로 살생하여 고기를 얻지 않고 남에게서 얻은 것을 먹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본다. 오히려 상좌부 불교에선 탁발을 권장하기 때문에 '중생들이 시주한 것은 모두가 소중한 것이니 이것 저것 가리지 말고 아무 것이나 잘 먹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지역에선 육식과 유제품 섭취도 별 문제가 없다. 물론 승려 본인이 고기를 먹을 목적으로 직접 도축을 하거나 승려를 대접하기 위해 도축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지역의 사찰 요리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 사실 상좌부 불교권에선 사찰 요리라고 특별히 구분하여 부를 만한 메뉴가 많지 않다. 왜냐하면 상좌부 불교 승려들은 기본적으로 탁발을 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주는 것, 즉 일반인과 똑같은 음식을 먹으므로 따로 요리를 개발해야 할 필요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승 불교권에선 일찍이 승려들의 탁발을 금했으며 아유르베다의 오신채 금지 계율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 대안으로 사찰 요리를 만들었고 상좌부 불교권에선 현재까지 승려들이 탁발하도록 장려하기 때문에 따로 요리를 개발할 필요성이 없었다. 이것이 가장 큰 차이이다.

다만 상좌부 불교 인구가 많은 스리랑카의 요리 같은 경우는 일반인들이 먹는 음식도 탁발하는 스님들이 먹기 좋게끔 초기 불교 계율에 맞추어 조리하기도 한다. 자세한 내용은 스리랑카 요리 문서로.

4. 기타



[1] 석가여래께서는 살아서 음식에 대한 계율을 거의 하지 않았다. 단지 수행자는 오로지 탁발하여 시주받은 것만 먹을 수 있으며 그렇게 받은 것은 무엇이든 남김없이 먹으라 하였을 뿐이다. 심지어 석가여래 자신은 어린아이가 발우에 시주한 진흙경단을 먹은 적도 있다.[2] 이 때문에 불교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상좌부 불교 승려들이나 티베트, 일본의 승려들을 전부 땡중 취급하는 경우가 있는데 매우 무례한 발상이니 어디 가서 함부로 말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3] 오호십육국 시대 이전에는 불교 승려가 대부분 서역 출신 호승이었다.[4] 그래서 나온 말이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이다.[5] 물론 일반인들도 평상시에 채식을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것은 채식주의처럼 특정한 신념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단지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서일 뿐이었다. 여유가 있다면 고기를 먹는 경우가 많았다.[6] 애초에 비만이 문제가 된 것은 인류 역사에서도 근현대의 일이다.[7] 일반적으로 스님들과 사찰 음식점에 가는 경우 스님들이 원래 먹던 음식이기 때문에 그리 반기지는 않지만 국수집에 가자고 하면 좋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야 고기는 밑에 깔아 라는 농담을 들을 수도 있다 유명한 법정 스님은 아예 한 때 국수만 먹던 시절이 있었을 정도.[8] 성진 스님에 따르면 면 요리가 나오는 날은 발우공양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 그래서 면 요리가 나오는 날은 매우 좋아한다고(…).[9] 실제로 국수류는 재료만 준비하면 조리 시간이 짧은 경우도 많아서 엄연히 패스트푸드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들이 의외로 많다.[10] 중국에선 이런 습관이 현대에도 아직 남아 있기 때문에 콜라까지 끓여 마시기도 한다.[11] 다만 동자승 문서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현재 대한민국의 사찰에는 '엄밀한 의미로는' 동자승이 없다.[12] 이외에도 동국대 재학생들 사이에서 갓 출가한 20대 스님 학생들이 육류가 학식으로 나오면 그냥 잘 먹는다는 증언이 엄청 많다.[13] 기본 재료는 모두 같으나 동물성 기름 대신 식물성 기름을 사용하며 고기 대신 버섯을 넣어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