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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23 02:22:41

리버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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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순위 이름 중심 도시 구성국 인구
1 그레이터 런던 런던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10,558,797
2 그레이터 맨체스터 맨체스터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2,720,316
3 웨스트 미들랜즈 버밍엄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2,590,363
4 웨스트요크셔 리즈/브래드포드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1,860,546
5 그레이터 글래스고 글래스고 파일:스코틀랜드 국기.svg 스코틀랜드 1,026,688
6 리버풀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891,211
7 사우스 햄프셔 사우샘프턴/포츠머스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888,145
8 타인사이드 뉴캐슬어폰타인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790,636
9 노팅엄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762,786
10 셰필드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688,981
11 브리스톨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680,981
12 벨파스트 파일:북아일랜드 국기.svg 북아일랜드 622,000
13 레스터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559,017
14 에든버러 파일:스코틀랜드 국기.svg 스코틀랜드 529, 580
15 브라이튼 앤 호브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518,745
16 본머스/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485,976
17 카디프 파일:웨일스 국기.svg 웨일스 464,635
18 코번트리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388,758
19 티사이드 미들즈브러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383,613
20 스토크온트렌트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380,351
21 레딩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355,514
22 선덜랜드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332,932
23 버컨헤드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331,588
24 프레스턴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328,924
25 킹스턴어폰헐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323,634
출처: 2021년 인구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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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Liverp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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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us Nobis Haec Otia Fecit
신이 우리를 위하여 평화를 창조하셨다
<colcolor=#fff><colbgcolor=#532F90> 지역 노스웨스트 잉글랜드 머지사이드
설립 년도 1207년
시청 소재지 머지사이드주 리버풀 하이스트리트 8403
면적 111.8 km²
광역 면적 199.6 km²
인구 <colcolor=#fff><colbgcolor=#532F90> 도심 498,042명
교외 864,122명
광역권 2,241,000명[1]
인구
밀도
도심 4,424/km²
교외 4,329/km²
인종 구성 88.8% 영국인, 4.1% 아시아계, 2.6% 아프리카계, 2.5% 혼혈, 1.8% 기타[2]
시장
조앤 앤더슨
(Joanne Anderson)
시장경
안나 로서리
(Anna Rothery)
시의회 여당
70석
야당
12석

4석

3석


[[무소속(정치)|
무소속
]]
1석
국회의원
5석
시간대 UTC+0 (GMT)
GDP $51,500,000,000
1인당 $34,082
지역 전화번호 0151
ISO 3166-2 GB-LIV
GSS 코드 E08000012
NUTS 3 코드 UKD72
교통 국도 M62
철도 리버풀 센트럴, 리버풀 라임스트리트, 리버풀 모어필즈, 리버풀 제임스스트리트, 리버풀 사우스파크웨이
공항 리버풀 존 레논 공항
홈페이지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리버풀 비틀즈 동상.jpg
파일:anfield2024.webp
중심지 광장에 위치한 비틀즈의 동상과 리버풀 FC의 홈구장 안필드

1. 개요2. 역사3. 교통4. 생활·문화
4.1. 교육4.2. 방언4.3. 스포츠
5. 관광지
5.1. 도시 경관
6. 정치7. 매체8. 출신 인물9. 우호협력도시10. 기타

[clearfix]

1. 개요

There are places I'll remember, All my life
살면서 추억할 장소들이 있어요
Though some have changed.
몇 곳은 변해 버렸지만
Some forever not for better,
몇 곳은 영원하죠, 더 나아졌다고 할 수는 없지만
Some have gone and some remain.
몇 곳은 사라졌지만 그대로 남아 있는 곳도 있죠

All these places have their moments
이 모든 곳은 나름대로 중요한 의미가 있어요
With lovers and friends I still can recall.
지금도 생각나는 친구들과 연인들의 기억과 함께
Some are dead and some are living,
몇 사람은 세상을 떠났지만 살아 있는 사람들도 있어요
In my life I've loved them all.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나는 그들 모두를 사랑했어요
비틀즈, In My Life[3]

잉글랜드 서부 머지사이드주에 위치한 공업 도시이자 항구 도시. 맨체스터에서는 서쪽으로 50km 떨어져 있다. 지도에서의 위치만 본다면 맨체스터가 서울, 리버풀은 인천과 비슷한 입지에 있다.

영국에서는 다섯 번째로 큰 도시권이다. 사실 외국인들에게는 그런 것보다 연고 축구단이나 비틀즈의 도시로 더 유명할 것이다.

2. 역사

산업혁명의 발상지인 맨체스터면직물을 시작으로 기계, 식품, 화학, 전자 등 전 세계 상공업의 중심 도시로 성장, 바다를 둔 인접 도시 리버풀이 그 외항으로 사용되면서 함께 성장하였다. 19세기에는 세계 물동량의 절반이 리버풀 항구를 거쳤을 만큼 세계적인 무역항을 갖춘 도시였다. 21세기 지금의 유럽 최대 물동량 항구인 네덜란드 로테르담에다 유럽 2위인 독일함부르크를 합친 것보다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래서 19세기가 배경인 문학 작품에서는 배로 이동할 때 리버풀을 거치는 경우가 많이 보인다. 쥘 베른의 소설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예로 들면, 대서양을 건너 영국으로 돌아갈 때, 런던에서 더 가까운 브리스톨이 아닌 리버풀로 가려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 좋은 예다. 이 당시 리버풀은 런던보다 부유했으며 "대영제국은 리버풀 덕에 가능했다"라는 말까지 돌았을 정도로 찬란한 역사를 가진 도시였다.

또한 흑인 노예 무역의 메카이기도 했다. 아프리카~유럽~아메리카를 잇는 삼각 무역의 성황에서 리버풀은 흑인 노예의 집결지 역할을 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도 레트 버틀러는 자신의 재산의 대부분이 이 도시에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런지 '국제 노예 박물관'이 위치한다.

미국뉴욕시로 첫 출항했다가 빙산과 충돌해 대서양에 침몰하면서 다시 돌아오지 못한 RMS 타이타닉의 모항이다.

인구는 1931년 84만 명을 기록했지만 이후 계속 줄어들어 2007년엔 44만 명까지 떨어졌다. 산업혁명 때부터 영국 공업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으나 제2차 세계 대전독일 공군의 폭격으로 시설이 많이 파괴되었고 전후 복구도 더뎠으며, 당시 리버풀의 아이들은 폭격 후 박살난 건물의 잔해 사이에서 뛰어 놀 정도였다. 공업의 대세가 석탄에서 석유로 옮겨간 20세기 중반부터 급속하게 쇠퇴했다. 공업 물자의 수송을 담당한 것은 리버풀과 맨체스터를 잇는 '리버풀-맨체스터 철도'였는데, 이 노선은 세계 최초로 전 구간에 기관차를 이용한 여객 및 화물 운송을 수행, 근대적인 철도 운송 시스템의 시발점이 되었다.

그러나 운송 비용을 줄이기 위해 맨체스터가 직접 바다로부터 맨체스터까지 이어지는 운하를 판 이후로는 철도 운송이 중단. 이로 인한 리버풀의 박탈감 때문에 두 도시 간의 지역 갈등은 꽤나 심하다. 맨체스터를 연고로 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리버풀을 연고로 하는 리버풀 FC잉글랜드 내 최고의 라이벌로 꼽히는 것도 그러한 지역감정에 기반한 점이 있다. 물론 지역감정뿐 아니라 빅클럽인 두 팀이 타이틀을 놓고 경쟁했던 경험 또한 두 팀의 라이벌 의식에 한몫했다.

상기했듯 주요 산업이 침체하면서 20세기 후반엔 잉글랜드에서 가장 쇠락한 도시 중 하나로 꼽혔을 정도로 처량한 암흑기를 보냈다. 이곳에서 당시 유학한 유학생들의 증언에 따르면 머리를 자를 돈이 없어 바리깡을 구매해 스스로 머리를 깎고 다니는 청소년들을 제법 볼 수 있었다.

도시가 쇠락하며 슬럼가도 생겨났다. 이곳에서 태어나 자란 악동계의 끝판왕 조이 바튼이 회고하기를,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공격성이 있어야 된다고 했을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리버풀에서 자란 축구 선수들은 대부분 억세고 파워풀한 스타일을 가졌다. 리버풀 FC의 은퇴한 레전드 축구 선수스티븐 제라드는 아예 악동 축구 선수로 유명한 조이 바튼과 동네조차도 똑같은 곳에서 태어나 자랐다. 역시 로컬 출신인 제이미 캐러거가 태어나고 자란 부틀 지역이나 웨인 루니가 태어나고 자란 리버풀 교외 크록세스 지역 역시 치안 상태가 그닥 좋진 않았다. 그러나 당시의 리버풀이 아프리카나 아시아 오지, 미국의 후드 마냥 엄청난 낙후된 지역이었다는 것은 아니다. 1970~80년대의 암흑기라고 하는 리버풀도 결국 영국 내 6위권의 경제력을 자랑했다.

어쨌든 리버풀은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이런 상황을 주도한 것이 대처 정부였기 때문에, 많은 리버풀 사람들은 지금도 대처 하면 치를 떤다. 덤으로 힐스버러 참사도 이 시기에 일어났기 때문에 리버풀 FC 팬덤은 독보적으로 대처를 싫어한다. 이 당시 경찰들이 참사의 원인을 관중들에게 전가하고 언론플레이를 했다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훗날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공식 사과했을 정도이니 당시 정부에 책임이 없다는 소리는 못한다. 2013년 마가렛 대처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마녀가 죽었다!"'라며 환호했을 정도였다. 리버풀 시 의회가 대부분 노동당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또한 힐스버러 참사 당시 황색언론The Sun(더 선)이 보여준 태도 때문에 더 선에 대한 반감이 도시 전체적으로 강한 편이다. 심심찮게 'DON'T BUY THE S*N'이라는 문구가 보이며 몇몇 신문 판매점이나 가판대에선 아예 더 선을 팔지 않기도 한다.

리버풀이 이런 암흑기를 벗어난 건 21세기에 접어들면서부터이다.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을 포기하면서까지[4] 이른바 도시재생 사업을 진행하면서 2000년대 이후 인구도 많이 늘었고, 경제도 대폭 성장하게 되었다. 현대에는 문화 관광 도시로 자리잡았으며, 'Liverpool One'이란 시티 센터가 생기면서 영국 내 치안도 손꼽힐 정도로 좋아졌다. 과거의 악명과 비교하면 말 그대로 환골탈태 수준. 다만 외곽 지역인 스피크(Speke)나 크록세스(Croxteth), 안필드(Anfield) 지역은 지금도 치안이 조금 불안한 편이다.

이외에도 2019년 넷볼 월드컵을 개최한 데 이어 2021년 12월 11일~12일 G7 외교 개발 장관 회의를 개최했다. 또한 2023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개최지로 선정되었다.

3. 교통

철도교통사에서 매우 큰 의미를 지니는 리버풀-맨체스터 철도가 있으며, 당연히 현재도 주요 교통으로 쓰인다. 중앙역 역할을 하는 역은 리버풀 라임가역으로, 여기서 맨체스터, 런던, 리즈 등 도시간 열차를 타고 내릴 수 있다.

공항으로는 리버풀 존 레논 공항이 있다. 영국 내에서는 처음으로 사람 이름이 공항에 붙은 사례라고 하니, 리버풀 사람들이 얼마나 비틀즈를 사랑하는지 알 수 있는 일이다. 과거에는 망해가던 공항으로 연간 승객 수가 100만 명도 넘지 못하는 공항이었으나, 민영화 이후 탑승객 수가 폭증해 개항 이후 처음으로 500만 명을 돌파하기도 하는 등 잘나가고 있다. 다만 2020년에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다시 200만 명대로 떨어져 1990년대 이후 가장 저조한 실적을 보였다.

은근히 길거리 이름에 노예 상인들의 이름이 많이 붙어 있어 논란이 되기도 한다. 당장 비틀즈의 명곡으로 유명해진 페니 레인 거리부터 노예 상인 제임스 페니의 이름을 딴 것이었다. 이 때문에 2020년대 초 BLM 시위가 한창이었을 당시 리버풀 내에서도 거리 이름을 바꿔야 한다는 여론이 상당수 존재했다. 리버풀 시의회에서도 상기했듯 2천년대부터 이미 노예 상인들의 이름이 붙은 거리의 이름을 개칭하는 안건을 통과시키곤 있는데, 페니 레인 거리는 리버풀이 사랑하는 비틀즈 노래 제목이다 보니 예외로 둔 바 있다.

4. 생활·문화

파일:리버풀 비틀즈.jpg
1964년 리버풀 거리의 비틀즈
좌측부터 존 레논, 링고 스타,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5]

세계적인 밴드 비틀즈의 고향으로 유명하다. 다만 비틀즈 멤버들도 리버풀에서 바로 떴다기보단 여러 우여곡절을 겪고, 독일 함부르크 등 여러 곳을 전전하다 뜬 케이스. 사실 비틀즈 멤버들이 모두 전형적인 리버풀 노동 계급 가정 출신의 아이들이다. 그래서 깔끔한 외모와 달리 성격은 마초적인 부분도 꽤 있었다고 한다. 링고 스타의 경우 처음 밴드에 나타났을 때, 리젠트 머리의 테디 보이 패션을 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링고 스타 스스로가 말하길, "나는 다른 멤버들과 달리 체구도 작고 싸움도 별로여서 강하게 보이지 않으면 리버풀에서 살아남기 힘들었다."라고 얘기했다. 인기가 많아진 뒤에는 어찌 보면 당연하게도 수도권인 런던에서 활동했다.

비틀즈가 최초로 라이브 공연을 했던 캐번 클럽 등을 위시한 관광업은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비틀즈 팬들로 인해 현재도 리버풀에서 제일 잘나가는 수익 산업 중 하나다. 2009년 '리버풀 호프 대학(Liverpool Hope University)' 석사 과정에 '비틀즈 학과'가 개설되었다. 리버풀 도시 재생 사업 당시 비틀즈 관광 사업이 큰 도움이 된 것은 물론, 노동 계급 출신의 하층민들이 세계적인 음악가가 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리버풀 내에서 비틀즈 멤버들의 위상은 지금도 대단한 편이다. 멤버들 모두 대중음악인으로써는 최초로 1965년 5등급 대영제국 훈장 (MBE)을 수여받았다. 또 생존 멤버인 링고 스타와 폴 매카트니가 기사 작위를 수여받아 이름 앞에 Sir이 붙는다. 오죽하면 영국 교통 시설 최초로 사람의 이름이 붙은 시설이 리버풀의 관문인 '리버풀 존 레논 공항'일 정도였으며 2006년 리버풀 시의회에서 노예 상인들의 이름이 붙은 거리의 이름을 개칭하는 안건을 통과시켰을 때도 예외적으로 비틀즈 노래 제목 중 하나인 페니 레인가는 제외시켰다.

다만 근처의 맨체스터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음악이 생겨난 것에 비해, 리버풀은 머시 비트라는 특유의 음악이 1960년대 초반~중반 떴던 이후부턴 새로운 문화 트렌드를 이끌진 못한 도시로 남았다. 실제 1970년대 초반 근처의 위건을 위시한 맨체스터 인근과 영국 북부 지역에서 소울 음악 열풍이 불어 영국 특유의 노던 소울(Northern Soul) 무브먼트가 일어났을때도 조용히 손가락 빨고 있었다.

이곳 음식은 맛없기로 유명한 영국 요리의 산실인 그 영국에서조차도 맛없기로 유명하다. 리버풀 사람들을 놀릴때 '랍스카우스(lobscouse)'라고 부르기도 한다는데, 랍스카우스는 영국 선원들이 배에서 해먹었던 요리로, 염장고기건빵을 갈아 넣어 섞고 끓인 죽 비슷한 것을 말한다. 당연히 맛은 최악이다. 그래서 리버풀 음식의 맛이 없다는 걸 표현하고자 항구도시인 리버풀 사람들이 '배 타고 다니면서 저런 괴식이나 해먹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에서 랍스카우스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안 그래도 영국에서 지역드립을 많이 당하는 도시 중 하나이다. 정치적 성향 때문에 보수 진영에게 조롱당하는 건 차치하더라도, 비슷한 성향의 타 도시들에서도 축구 라이벌리 등의 이유로 조롱을 많이 당하는 편이다.

4.1. 교육

4.2. 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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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리버풀 토박이 4인방의 억양 들어보기[6]

리버풀 방언은 괴이하기로 영국 내에서도 유명하다(스카우스, Scouse). 외국인들은 못 알아듣는 경우도 많으며, 영국의 타지 사람들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 편이다. 심지어 리버풀 사투리는 영어가 아니라 리버풀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 제이미 캐러거의 선수 시절 인터뷰를 들어보자. 독일어네덜란드어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랩하는 것처럼 들리는 빠른 속도 때문에 더 알아먹기가 힘들다. 방송인이 된 지금은, 선수 시절에 비하면 그나마 낫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나마다. CNN의 대표 기자 중 한 명인 리처드 퀘스트(Richard Quest)가 그나마 영어를 외국어로 쓰는 사람들도 쉽게 알아들을 만한 리버풀 억양을 구사하는데, 미국인들에게는 굉장히 이질감이 심한 영어 취급받는다. 궁금하면 유튜브에서 검색하면 된다. Nostalgia Critic배트맨과 로빈을 리뷰하면서, 얼리샤 실버스톤이 극중에서 런던에서 대학 다니다 온 배트걸 역할을 맡았는데 억양이 너무 강해서 "리버풀 출신인 게 틀림없군!"이라고 깠다.

리버풀도 원래는 주변 지역과 마찬가지로 랭커셔 방언을 사용하는 지역이었으나, 산업혁명 이후 인접한 아일랜드웨일즈 등지에서 들어온 이주민의 영향으로 19세기 중반 독자적인 억양이 생겨난 것이 한 원인으로 보여진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거나 혹은 영어가 익숙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스코틀랜드 억양 수준의 신세계를 맛볼 수 있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지 않는 외국인들 사이에서 스코틀랜드 억양은 매력적으로 들리긴 하지만 뭐라 하는지 알아듣는 건 꽤 힘들어한다. 당장에 알렉스 퍼거슨의 인터뷰를 유심히 들어보면 된다.

한국인 유튜버 KoreanBilly(채널)가 이 지역 억양을 관심 있게 다루었다. 아래 영상은 지역 방송국과의 인터뷰.

4.3. 스포츠

축구 종주국 잉글랜드 중에서도 축구 열기가 가장 뜨거운 대표적인 도시 중 하나이며, 맨체스터와 함께 잉글랜드 북부 축구를 상징하는 도시이다. 리버풀은 잉글랜드 명문 구단인 리버풀 FC에버튼 FC의 연고지이며, 머지사이드 더비라고 불리는 이 두 구단의 치열한 라이벌리에 의해 축구 리그의 태동기부터 상당히 발달된 축구 문화를 자랑해왔다. 양 팀은 20세기 초반부터 잉글랜드 리그의 강자로 떠올라 전국구급 명성을 쌓았으며, 1970~80년대에 엄청난 전성기를 달리며 잉글랜드 축구의 헤게모니를 리버풀로 가져오기도 한 잉글랜드의 대표적인 전통 강호로, 현재까지도 리버풀 FC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트로피를 들어올린 구단이자 유럽 대항전에서 최고의 명성을 쌓은 최고급 위상의 구단이며, 에버튼 FC는 잉글랜드 1부 리그에 최장기간 머무른 구단이자 강등 없이 가장 오랜 연속 잔류 시즌을 보내고 있는 역사적인 기록의 구단이다. 특히 1980년대는 리버풀을 비롯한 잉글랜드 북부 도시들이 마가렛 대처 시절 중앙 정부의 엄청난 차별과 탄압을 받으며 경제적으로 상당히 고통받고 있던 시기였기에, 두 로컬 구단들이 축구 리그를 지배하던 전성기는 도시의 희망과도 같은 것이었고 자연스럽게 리버풀에선 축구가 종교에 가까운 수준의 문화적 매개체로 자리잡았다. 축구가 상업화된 이후에는 두 구단의 명성에 힘입어 축구 관광이 많이 발달했으며, 실제로 전세계급 인기를 자랑하는 리버풀 FC의 홈구장 안필드는 도시를 찾는 방문객들의 필수 방문 코스이기도 하다. 이에 축구 문화는 현재까지도 리버풀을 상징하는 요소 중 하나이자 도시의 원동력으로써 계속해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한 축구가 발달한 도시답게 수많은 로컬 축구 스타들을 배출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8번 문단을 참고. 또 다른 특징으로는 스코틀랜드, 웨일스는 물론 북아일랜드아일랜드와도 인접한 도시의 지리적 특성상 잉글랜드 외 다른 영연방 출신 및 아일랜드 출신 스포츠 스타들의 활약이 두드러진 도시라는 것이다. 리버풀 FC에버튼 FC의 초대 감독인 윌리엄 바클레이가 아일랜드인이었으며, 양 팀의 레전드들 중에서도 스코틀랜드와 웨일스 출신 인물들이 다수 있다. 대표적인 인물들이 빌 샹클리, 케니 달글리시, 이안 러시, 알렉스 영, 네빌 사우스올, 그레이엄 샤프 등이다.

축구 이외에는 선술하였듯이 넷볼 월드컵이 열린 바 있고, 럭비도 즐기는 편이다. 그러나 워낙 축구가 압도적인 열기를 보이는 지역이기에 축구 외의 다른 스포츠들은 크게 발달하지 못한 편이다.

5. 관광지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영국/관광 문서
번 문단을
리버풀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리버풀은 영국에서 런던 다음으로 미술관과 국립 박물관, 문화유산이 많은 도시이다. 주요 관광지로는 알버트 독에 있는 '테이트 리버풀', '비틀즈 스토리'[7] '리버풀 박물관'과 성공회 리버풀교구의 주교좌인 '리버풀 대성당', 그리고 가톨릭에 속한 '리버풀 메트로폴리탄 대성당'이 있다.

축구 팬이라면 리버풀 FC의 홈구장 안필드에버튼 FC의 홈구장 구디슨 파크도 방문해볼 만하다. 두 구장이 상당히 붙어 있기도 하고.

이곳을 본거지로 하는 관현악단인 왕립 리버풀 필하모니 관현악단 또한 유명하다. 과거에는 이곳에서 도자기 제조업이 성행해 다소 무겁고 불투명한 연질자기를 생산하기도 했다.

또한 관광지는 아니지만 세계 최초로 열대 지방의 의학을 연구하기 위해 창설된 'Liverpool School of Tropical Medicine'이 자리한 곳이기도 하다.

5.1. 도시 경관

리버풀의 경관
파일:external/www.slatergordon.co.uk/liverpool.jpg
파일:external/target-markets.co.uk/city-1.jp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Victoria_Street,_Liverpool.jpg
파일:리버풀 비틀즈 동상.jpg
파일:anfield2024.webp
위쪽부터 순서대로 라이버 버드로 유명한 로얄 리버 빌딩, 구 리버풀 항구, 리버풀의 번화가인 빅토리아 스트리트, 중심지 광장에 위치한 비틀즈의 동상, 리버풀을 연고지로 하는 리버풀 FC의 홈구장 안필드

6. 정치

파일:리버풀 시의회 로고.svg
리버풀 시의회의 원내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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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맨체스터, 셰필드 등과 함께 손꼽히는 좌파 도시로, 유럽으로 넓혀봐도 좌파 성향이 매우 강한 도시 중 하나다. 이 지역에서 보수당은 15%만 넘겨도 대단히 선전했다는 평을 듣는다.[8]

지역 의식에 의거한 투표보다는 세대 의식, 계급 의식에 의거한 투표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영국에서 80% 이상의 몰표가 나오는 지역은 리버풀의 몇몇 선거구를 제외하면 거의 없다시피 하다. 이를 입증하듯 노동당 텃밭인 레드 월이 붕괴한 2019년 총선에서도 영국에서 가장 노동당 몰표가 많이 나온 지역구 4개가 모두 리버풀에 몰려있었다. 리버풀 월튼(84.68%), 논슬리(80.77%), 부틀(79.44%), 리버풀 리버사이드(77.99%). 거기다가 이 정도 나오는 것도 녹색당, 자민당 등 다른 진보 정당이 표를 빼앗아가서 그렇지, 범진보로 따지면 리버풀 선거구의 득표 비율은 무려 90%를 넘기도 한다. 그나마 리버풀 존 레논 공항이 위치한 가스턴, 스피크, 헤일우드 지역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이라고는 하지만 이 지역 역시 보수당의 득표율은 13.04%에 불과하다.

이는 1980년대 마거릿 대처 시절 보수당이 밀어붙인 이른바 신자유주의 정책이 리버풀이란 도시를 거의 몰락 직전까지 몰아붙였던 것에 대한 원한 등이 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힐스버러 참사 당시 총리의 적반하장식 대처 또한 리버풀 사람들의 증오심을 키웠다. 그리하여 현재 리버풀에서 보수당은 힘을 쓰지 못한다.

다만 시의회에서는 2000년대 자민당이 득세하기도 했다. 이는 2000년대 토니 블레어 내각 시기 노동당이 중도층을 사로잡기 위해 우클릭 행보를 보이며 진보 언론인 더 가디언까지 자민당을 지지하던 시절이라, 상당수 리버풀 시민들이 토니 블레어에 반기를 들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리버풀은 자유주의 좌파보단 좀 더 정통(?) 사회주의 좌파에 가까운 정치 성향을 보이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2007년 고든 브라운이 총리가 되고 다시 노동당이 좌경화하고, 자민당이 보수당과 연정을 맺는 리버풀 시민들 입장에서는 치명적인 판단 착오를 하면서 현재는 다시 노동당이 시의회에서 압도적인 다수 의석을 보유한다.

7. 매체

8. 출신 인물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분류:리버풀 출신 인물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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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우호협력도시

10. 기타



[1] 2001년 기준 영국 5위.[2] 전체 인구에서 아일랜드계 영국인은 단 1.4%에 불과하다. 비틀즈 멤버 전원이 아일랜드계 영국인임을 생각하면 다소 의외인 비율.[3] 존 레논이 어릴 적 살았던 리버풀의 향수를 다룬 곡이다. 그 외에 Penny Lane도 리버풀 교외의 거리를 묘사한 곡이다.[4] 2004년에 해양 무역 도시로 등록되었으나 개발로 2021년 7월 21일에 지위가 박탈당했다. 다만 세계유산 지정이 실제로 박탈당하자 리버풀 일부 시민들이 반발하는 기류도 있긴 했다.[5] 현재는 폴 매카트니링고 스타만 생존해 있다. 존 레논1980년에 정신병자 마크 채프먼에게 살해당했고 조지 해리슨2001년에 암으로 타계했다.[6] Yellow Submarine 영화 내의 장면이다. 참고로 비틀즈 멤버들은 전원 아일랜드계이기 때문에 아일랜드 억양도 약간 섞여있다는 점을 감안할 것.[7] 관람기 1, 2.[8] 이 때문에 1:1로 들어맞는 건 아니긴 하지만 광역권 인구도 200만 정도이고 지역드립을 당하는 것 등 한국에서는 광주광역시와 비슷하다는 말이 있다. 지역민들을 탄압한 특정 정치인을 증오한다는 공통점도 있다.(리버풀: 마거릿 대처, 광주: 전두환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링크, 링크 2. 심지어 리버풀 FC광주 FC의 로고가 서로 비슷하고, 유니폼이 노란색 바탕에 빨간색 조합으로 바뀌었을 때 광주 FC의 유니폼과 흡사해져서 관련 만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물론 일대일로 들어맞는 게 아니다보니 후술하듯이 부산광역시와도 비슷한 부분이 있다.
[9] 부산에서 롯데 자이언츠의 인기가 대단하고, 광주에서도 KIA 타이거즈의 인기가 대단하다.[10] Robert Banks Jenkinson, 2nd Earl of Liverpool,(1770-1828). 수상 재임 기간은 1812년-1827년, 재임 기간 중에 노동 운동을 강경 진압한 사건인 피털루 학살 사건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