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인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프로그래밍에서 스스로를 출력하는 소스 코드에 대한 내용은 콰인(프로그래밍) 문서 참고하십시오. 서양 철학사 현대 철학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wiki style="margin:-16px -11px;" | <tablewidth=100%> 고대 철학 | 중세 철학 | 근대 철학 | 현대 철학 | }}} | |||
<colbgcolor=#545454><colcolor=#fff> 현대철학 | |||||||||
현상학 | 후설 · 셸러 · 레비나스 · 앙리 | ||||||||
하이데거 | |||||||||
실존주의 | 사르트르 · 보부아르 · 메를로퐁티 · 야스퍼스 · 마르셀 | ||||||||
해석학 | 가다머 · 리쾨르 | ||||||||
서구 마르크스주의: 루카치 · 블로흐 · 그람시 · 코르쉬 · 르페브르 · 드보르 / 구조 마르크스주의: 알튀세르 · 발리바르 · 랑시에르 / 기타 공산주의: 바디우 · 지젝 · 네그리 / 포스트 마르크스주의: 라클라우 · 무페 | |||||||||
비판 이론 | 호르크하이머 · 아도르노 · 벤야민 · 마르쿠제 · 프롬 · 하버마스 · 호네트 | ||||||||
구조주의 | 소쉬르 · 야콥슨 · 레비스트로스 · 바르트 · 라캉 · 푸코 · 부르디외 | ||||||||
데리다 · 들뢰즈 · 가타리 · 리오타르 · 보드리야르 · 아감벤 · 버틀러 | |||||||||
21세기 실재론 | 브라시에 · 메이야수 · 하먼 | ||||||||
실용주의 | 퍼스 · 제임스 · 듀이 · 미드 · 굿맨 · 로티 | ||||||||
20세기 전반 수학철학 | 프레게 · 괴델 · 브라우어 · 힐베르트 | ||||||||
무어 · 화이트헤드 · 러셀 · 램지 | |||||||||
비트겐슈타인 | |||||||||
슐리크 · 노이라트 · 카르납 | |||||||||
옥스퍼드 학파 | 라일 · 오스틴 · 스트로슨 · 그라이스 | ||||||||
언어철학 | 콰인 · 촘스키 · 크립키 · 루이스 · 데이비드슨 · 더밋 / 피츠버그학파: 셀라스 · 맥도웰 · 브랜덤 | ||||||||
심리철학 | 설 · 퍼트넘 · 포더 · 차머스 · 김재권 · 데닛 · 처칠랜드 | ||||||||
20세기 과학철학 | 푸앵카레 · 라이헨바흐 · 포퍼 · 핸슨 · 쿤 · 파이어아벤트 · 라카토슈 · 해킹 {{{#!folding ▼ 비분석적 과학철학(대륙전통) | ||||||||
기술철학 | 엘륄 · 라투르 · 플로리디 · 보스트롬 | ||||||||
미디어 철학 | 매클루언 | ||||||||
정치철학 | 자유주의: 벌린 · 롤스 · 슈클라 · 노직 · 라즈 · 누스바움 · 레비 / 공동체주의: 매킨타이어 · 테일러 · 왈저 · 샌델 / 공화주의: 아렌트 · 스키너 · 페팃 / 보수주의: 랜드 · 아롱 · 크리스톨 · 스트라우스 · 푀겔린 · 커크 | ||||||||
윤리학 | 슈바이처 · 맥키 · 헤어 · 프랭크퍼트 · 레건 · 싱어 · 블랙번 | ||||||||
인식론 | 게티어 | ||||||||
법철학 | 드워킨 | ||||||||
종교철학 | 부버 · 슈타인 · 니부어 · 지라르 · 큉 · 월터스토프 · 플란팅가 | ||||||||
탈식민주의 | 파농 · 사이드 · 스피박 | ||||||||
페미니즘 | 이리가레 · 나딩스 · 길리건 · 해러웨이 · 오킨 · 프레이저 | ||||||||
생태주의 | 레오폴드 · 요나스 · 네스 · 북친 | ||||||||
관련문서 | 대륙철학 · 분석철학 | }}}}}}}}} |
<colcolor=#fff><colbgcolor=#000> 윌라드 밴 오먼 콰인 Wilard Van Orman Quine | |
출생 | 1908년 6월 25일 |
미국 오하이오주 애크런 | |
사망 | 2000년 12월 25일 (향년 92세) |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모교 | 오벌린 칼리지 (수학 / B.A.) (1930년) 하버드 대학교 (철학 / Ph.D.) (1932년) |
경력 | 하버드 대학교 교수 |
직업 | 철학자 |
분야 | 언어철학, 인식론, 과학철학, 논리학 |
지도교수 |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 |
지도학생 | 데이비드 루이스 대니얼 데닛 |
[clearfix]
1. 개요
20세기 미국의 수학자이자 철학자. 언어철학, 형이상학, 인식론 등 여러 분야에서 수많은 업적을 남겼고 분석철학적 전통이 미국 철학계의 주류가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1]을 하며 지금까지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2. 생애
1908년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태어난 콰인은 오벌린 칼리지에서 학부를 졸업한 후 하버드 대학교에서 화이트헤드의 지도하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에는 직접 오스트리아를 방문하여 논리 실증주의자들과 교류하기도 했다. 이후 1978년까지 하버드 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아 도널드 데이빗슨, 데이빗 루이스, 솔 크립키, 대니얼 데닛 등 수많은 철학자들을 직간접적으로 지도했고, 많은 저서와 논문들을 발표했다. 은퇴한 이후 고령의 나이에도 연구를 계속하며 저서들을 냈고 2000년 크리스마스에 사망한다.3. 주요 업적
3.1. 언어철학
- 1951년에 발표한 "경험론의 두 독단(Two Dogmas of Empiricism)"에서 크게 다음과 같은 주장들과 논증들을 제시함으로써 논리 실증주의에 막대한 타격을 가했다.
- 칸트 때부터 내려온 분석명제와 종합명제 간의 구분은 불가능하다. 분석명제에 대한 유력한 정의는 '순전히 말의 의미 때문에 참인 명제'(예를 들어 '모든 총각들은 미혼이다')인데, 이런 정의는 근본적으로 순환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명제의 유의미성을 따지는데 '경험적 검증가능성'을 주된 기준으로 삼는 논리 실증주의는 실패한다.
- 곧 유의미한 명제 일체를 오직 직접 경험적인 명제들만으로 환원하려 하는 경험주의적 환원주의는 실패한다. 오히려 수학 및 논리학을 막론하고 모든 명제 일체는 총체적으로 경험에 의해 반증될 수 있다.
- 1960년 출판한 『단어와 대상(Word and Object)』에서 두 개의 다른 언어 간의 유일하며 객관적으로 올바른 번역 편람을 구축하는 것이 원리상 불가능하다는 '번역 불확정성 논제'를 제시한다.[2] 이를 보이기 위해 제시한 다음 사고실험이 유명하다."가바가이" 사례한 언어학자가 원시부족의 언어를 연구하기 위해 오지로 들어갔다. 말이 통하지 않는 원주민과 함께 있는데, 마침 토끼 한 마리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원주민이 "가바가이"라고 말했다. 언어학자는 "가바가이"라는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상식적인 대답은 이때 "가바가이"가 한국어의 "토끼"와 의미가 같은 것으로 해석하는 게 맞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근거는 무엇인가? "가바가이"가 "토끼의 이데아"와 의미가 같다고 보지 못할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원시부족이 플라톤주의 철학에 깊은 조예가 있어서 "저기 토끼의 이데아가 뛰어가고 있다!"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고 단정할 근거가 있는가? 이게 너무 극단적이라면 "토끼의 귀"가 아니라고 단정할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fMRI를 동원해서 "가바가이"라는 말소리가 한국어 "토끼"와 생물학적으로 동등한 신경 신호를 유발하는 것을 확인한다 한들, 이는 "가바가이"와 "토끼"의 의미가 같다는 것을 보장해주지 못한다.이 문제를 돌파하기 위해선 "토끼", "토끼의 이데아", "토끼의 귀" 등을 구별할 수 있는 상황에서 다시금 원주민이 무슨 말을 하는지를 들어봐야한다. 하지만 문제는 결국 다시 반복된다. 이를테면 "가바가이"와 "토끼"가 의미가 같은지 다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한국어 "~의 이데아", "~의 귀"와 의미가 같은 원주민 언어 단어가 결정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즉 순환이 발생하는 것이다.따라서 주어진 경험적 데이터만을 근거로 삼아 "가바가이"가 "토끼"와 의미가 같은지 결정하는 것은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
- '가바가이' 사고실험을 토대로 콰인은 여러 언어철학적 견해를 전개했다.
- '가바가이' 사고실험은 특정한 경험적 상황(예. 숲 속에서 토끼가 뛰어가는 상황)과 특정한 언어적 표현(예. "가바가이")의 의미가 일대일로 대응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곧 언어 표현의 의미는 바로 그 개별 표현 층위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 체계 전체를 참조할 때에만 비로소 결정될 수 있다.
- 예를 들어 한국어에서 관용적인 표현, '그 녀석 참 진국이야'라는 문장을 생각해보자. 어떤 외국인이 한국어 언어체계에 대한 이해 없이 감각경험 만으로 이 문장의 의미를 추론하고자 한다면, 그 추론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어 언어체계에서 '진국'이라는 표현이 어떤 맥락에서 사용되는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 언어학자의 현 과업은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이 원주민 부족과 함께 생활하면서 원주민들의 언어 체계를 밝혀내는 것이다("원초적 번역(radical translation)"). 그런데 원주민들이 사용하는 언어 체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가바가이' 등 개별 표현의 의미를 먼저 밝혀내야 한다. 곧 순환이 발생하는 것이다.
전체를 알려면 부분을 알아야 하는데, 부분을 알려면 전체를 알아야 하고 그러면 다시 부분을... - 콰인은 번역 불확정성을 타개할 수 있는 돌파구로 자비의 원칙을 제안한다.
- 비형식 논리학에서 자비의 원칙은 다음과 같이 거칠게 요약될 수 있다: '저 논증을 보니까 허점이 많군. 하지만 저 논증을 제안한 사람이 바보는 아닐 거야. 그러니까 내가 최대한 저 논증의 허점을 메꿔줄 필요가 있어.'라고 거칠게 요약될 수 있다.
- '가바가이' 상황에서 자비의 원칙은 다음과 같이 응용될 수 있다: '원주민 부족 사람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고, 같은 생리학적/심리학적 기전을 띠고 있어. 그리고 이런 공통점을 고려하면 "가바가이"라는 말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토끼"라는 의미를 띠고 있다는 게 합당해.'
- 물론 이 방법은 번역의 불확정성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 것은 아니고, 콰인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여기에 대해 콰인은 그러한 상황이 안타깝지만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같은 것으로 간주한다(bite the bullet). 더 정확하고 세부적인 논쟁이 궁금하다면, 데이빗슨과 콰인의 논쟁을 찾아보자.
3.2. 인식론
- 「자연화된 인식론(Epistemology Naturalized)」에서 과학을 비롯한 여러 지식에 해당하는 명제들을 순수하게 경험적인 명제들로 환원하는 경험주의적 환원주의가 실패하므로, 곧 지식 일체에 대한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고자 하는 전통적 인식론이 성공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3.3. 과학철학
- 콰인이 제시한 인식론적 전체론은 상기한 바처럼 어떤 명제든 모종의 경험에 의해 반증될 수 있다는 함축을 갖는다. 이는 반대로 그 어떠한 경험적 데이터가 주어진다 한들, 적절한 (혹은 Ad Hoc한) 보조가설을 추가하기만 한다면 그 어떤 과학적 가설이든 여전히 반증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을 함의한다. 즉 경험적 데이터가 아무리 쌓인다 한들, 무엇이 참된 과학적 이론인지는 논리적으로 결정될 수 없다(혹은 "과소결정된다(underdetermined)"). 이는 일찍이 피에르 뒤엠이 지적하기도 했던 사항이므로, 흔히 두 사람의 이름을 함께 따서 "뒤엠-콰인 논제"라고 불린다. 그리고 뒤엠-콰인 논제는 토머스 쿤의 과학철학에 핵심적인 기틀 중 하나가 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콰인의 인식론적 전체론이 과학철학에서 갖는 영향을 이해하려면, 칼 포퍼의 반증주의를 살펴봐야 한다. 칼 포퍼는 논리 실증주의자들과 달리 과학 지식이 반증될 수 있을 뿐, positive한 의미에서 입증될 수 없다고 보았다. 종종 포퍼를 논리 실증주의자와 동일시하는 견해가 있는데, 전혀 다르다. 다음의 추론을 보자.
(전제1) 어떤 가설 H가 참이라면, 현상 P가 관찰될 것이다.
(전제2) 현상 P가 관찰될 것이다.
(결론) 따라서, 가설 H는 참이다.
포퍼는 과학이론의 정당화를 위와 같은 형태로 단순화한다. 그리고 논리 실증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바도 다르지 않다. 그들은 위와 같은 방식으로 과학이론이 감각경험에 의해 입증된다고 보았다. 문제는 위의 추론이 후건긍정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류가 아닌 타당한 논증으로 바꾸어서, 즉 (전제1)의 전건과 후건을 위치를 바꾸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것은 정당화의 문제를 (전제1)의 정당화 문제로 바뀌는 것에 불과하다. 즉, (전제1)의 주장을 '현상 P가 관찰되면, 어떤 가설 H가 참이다'로 바꾼다고 하더라도, 현상 P가 관찰되면, 가설 H가 필연적으로 참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부담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에 포퍼는 논리 실증주의를 비판하면서, 과학적 추론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추론만이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전제2) 현상 P가 관찰될 것이다.
(결론) 따라서, 가설 H는 참이다.
(전제1) 어떤 가설 H가 참이라면, 현상 P가 관찰될 것이다.
(전제2) 현상 P가 관찰되지 않는다.
(결론) 따라서, 가설 H는 거짓이다.
포퍼의 형식화가 의미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현상 P가 관찰된다면, 가설 H는 반박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H가 참이라는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그런 판단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후건긍정의 오류를 저지르는 것이다. 따라서, 만약 현상 P가 참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다면, 가설 H는 논박된다. 가설 H가 논박된다면 과학자들은 논박되지 않는 새로운 가설을 고안해야 할 것이다. 포퍼는 현재 우리의 가진 과학 지식이 수많은 논박의 시도로부터 살아남은, 신뢰할 만한 지식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과학이 이러한 추측과 논박의 과정을 통해서 성장해왔다고 주장한다. (전제2) 현상 P가 관찰되지 않는다.
(결론) 따라서, 가설 H는 거짓이다.
그런데, 콰인의 인식론적 전체론의 측면에서 포퍼의 주장은 불완전하다. 실제로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어떤 현상을 예측하는데 단순히 가설만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설에서 사용되는 용어를 정의하고 있는 과학이론 T,[3] 그리고 보조가설들(h1, h2, ... )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가설 H를 전자(electron)의 본성에 대한 명제라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현상 P를 관찰하려면, 가설 H가 가진 의미를 오독하지 않도록 가설 H에서 사용되는 용어와 개념들을 정의하는 과학이론 T가 있어야 한다. 또한, 현상 P를 관찰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관측장비들도 필요하다. 그리고 그 관측장비를 사용하는 실험절차가 오류없이 꼼꼼하게 이루어져야할 것이다. 그러면, 위의 추론은 다음과 같이 변화한다.
(전제1) 가설 H가 참이고, 과학이론 T가 참이고 관측장비에 오류가 없고 실험절차에도 오류가 없다면, 현상 P가 관찰될 것이다.
(전제2) 현상 P가 관찰되지 않는다.
(결론) 따라서, 가설 H가 거짓이거나, 과학이론 T가 거짓이거나, 관측장비에 오류가 있거나, 실험절차에 오류가 있다.
위의 논증은 타당하다. (전제1)의 전건은 '가설 H가 참이고, 과학이론 T가 참이고 관측장비에 오류가 없고 실험절차에도 오류가 없다'는 연언 문장이었으므로, 후건 부정에 의해서 전건이 부정되면, '가설 H가 거짓이거나, 과학이론 T가 거짓이거나, 관측장비에 오류가 있거나, 실험절차에 오류가 있다'는 선언 문장이 도출되기 때문이다.[4] 이것은 관찰을 통해 임의의 가설을 반증하려고 할 때, 무엇이 반증되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논증으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은 위의 전건을 구성하는 네 가지 명제가 동시 참일 수는 없으며, 적어도 네 가지 명제들 중 하나는 반드시 거짓이라는 것이다.(전제2) 현상 P가 관찰되지 않는다.
(결론) 따라서, 가설 H가 거짓이거나, 과학이론 T가 거짓이거나, 관측장비에 오류가 있거나, 실험절차에 오류가 있다.
토머스 쿤은 과학지식이 패러다임 의존적임을 주장한다. 이것을 콰인의 논제와 연결시켜서 생각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위의 추론에서처럼 경험이 반증되는 상황에서 당대에 참으로 받아들여지는 과학이론을 의심하지 않는다. 즉, 반증된 것이 이론인지 혹은 다른 보조가설인지 분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과학자들은 현재까지 참으로 인정하는 패러다임(과학이론 T)을 의심하지 않고, 시험 대상이 되는 가설 H나 보조가설이 거짓일 것(관측장비에 오류가 있거나, 실험절차에 오류가 있다)이라고 추론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천동설이 정설이던 시대에 지동설을 주장했다면 당대의 과학자들은 천동설의 의심보다는 지동설을 먼저 의심한다는 것이다. 이는 후대에 등장한 반박이론들이 동등한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닌 불리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5] 멀리 나갈 것도 없이 현대에 상대성 이론에 반하는 이론이 나온다면 과학자들은 이론의 합리성을 따지기보단 측정기기의 오류를 먼저 찾을 것이다.
3.4. 형이상학 / 수리논리학
- 1936년 논문 "규약적 참(Truth By Convention)"에서 논리적 참이 논리상항의 규약적 의미에 의해 참이 된다는 입장에 대한 영향력 있는 반론을 제시했다. 이는 이후 '분석-종합' 구분을 비판하는 것의 토대가 됐다.
- 1937년에 집합론의 한 형태인 "새 기초론(New Foundations)"를 제안했다.
- 1948년 발표한 「있는 것에 관하여(On What There Is)」에서 "[math(x)]는 있다" 혹은 "[math(x)]는 존재한다"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보는 것이 가장 합당하다고 주장한다: 이론 [math(T)]가 세계를 가장 잘 설명하는 이론(예. 최첨단 물리학)이라고 가정하고, [math(T)]의 모든 명제들을 1차 술어 논리 언어로 번역하자. 이때 "[math(x)]는 존재한다"는 것은 곧 [math(x)]가 [math(T)]의 각 명제들이 참이 되기 위한 변항의 값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 이를 두고 흔히 "[math(T)]가 [math(x)]에 존재론적으로 개입한다(ontologically commit)"고 표현한다. 그리고 이런 입장은 흔히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란 곧 변항의 값이 되는 것이다(To be is to be the value of a variable)"라는 말로 압축적으로 표현된다.
- 예를 들어 최선의 이론 가운데 '[math(\exists x (Fx \wedge Gx))]'라는 명제가 포함될 경우, 변항 [math(x)]에 할당된 것이 없으면 해당 명제는 참이 될 수 없으므로, 곧 [math(x)]의 값은 존재한다.
- 위와 같은 방법론에 입각하여 콰인은 오직 물리적 대상들, 그리고 집합만이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전통적인 '보편자'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유명론적 입장을 취했다.
- 그런 면에서 콰인은 솔 크립키, 데이빗 루이스 등 후대에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양상논리 및 가능세계 관련 논의들에 대해서 상당히 회의적인 입장을 취했고 그의 논문들에서도 그러한 시각이 드러난다.
- 같은 맥락에서 고전 1차 양화 논리를 제외한 다른 논리 체계들을 배격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고차 논리를 두고 "양의 탈을 쓴 집합론"이라고 부른 것이 유명한 사례.
4. 관련 영상
5. 여담
-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독서 파트에서 논리실증주의자, 칼 포퍼와 함께 나와서 매우 반가움을 선사하였다. 2020년도 PSAT 언어논리 제시문으로도 나와서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 대중과 유리된 최초의 유력 철학자로 보기도 한다. 철학적 성취나 철학계 내부에서의 영향력과 별개로 대중적인 영향력이 없고, 대중적인 인지도가 없고, 대중의 흥미가 별로 없는 분석철학의 특징을 최초로 보여줬다는 것. 슈퍼스타였던 비트겐슈타인과 그의 뒤를 잇는 논리실증주의, 빈 학파 등까지는 그래도 대중적인 인식이나 흥미가 어느 정도 남아 있거나 그들의 슬로건 정도는 알려져 있으나 콰인부터는 그들의 철학적 성취에 비해 대중적인 인지도나 영향력이 사실상 없다시피 하다는 것이다.일반인한테 물리학, 미생물학, 수학에서 다루는 문제 하나를 맥락 없이 따로 떼어서 들이밀어보면, 분명 그 목적을 모르겠다거나 이해가 불가능하다는 반응을 내비칠 것이다. 오직 전문가만이 그 문제가 보다 넓은 관점에서 갖는 의미를 헤아릴 수 있다. 철학 또한 과학과 연속적인 하에서 마찬가지로 진보해온 것이다 (...) 유기화학을 예로 들어보자. 나는 유기화학이 매우 중요하다고 보지만, 개인적으로 딱히 흥미는 없다. 같은 이유에서 내가 관심을 갖는 철학적 주제에 대해 일반인이 흥미를 가져야만 한다고 보지 않는다.[6]W.V.O. Quine (1979). "Has Philosophy Lost Contact with People?"
[1] 왜냐하면 그의 밑에서 분석철학적 전통을 받아들인 많은 제자들이 나중에 철학자가 되어 스승과 마찬가지로 미국 철학계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2] 두 언어 사이의 번역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아님을 주의해야 한다.[3] 여기에 과학이론 T를 기술하기 위해 필요한 특정한 수학이론까지 추가될 수 있다.[4] 후건부정식과 드 모르간의 정리에 의해서.[5] 그 당시에는 천동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무수히 나온 상태이고, 과학자들은 지동설의 오류를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켤 것이기 때문이다.[6] Problems in physics, microbiology, and mathematics divided into subordinate problems any one of which, taken out of context, strikes the layman as either idle or unintelligible; only the specialist sees how it figures in the wider picture. Now philosophy, where it was continuous with science, progressed too. (...) I think of organic chemistry; I recognize its importance, but I am not curious about it, nor do I see why the layman should care about much of what concerns me in philoso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