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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범/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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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VS 양준혁2. 94 이종범 vs 14 강정호3. 야구
3.1. 투명드립3.2. 사구와의 악연3.3. 지역드립의 최대 피해자
4. 가족
4.1. 7남매 중 막내아들4.2. 결혼 및 야구집안
5. 흑역사
5.1. 기쎈비타5.2. 금종범5.3. 음반 발매 : 투앤원
6. 기타 이야깃거리

1. VS 양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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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94 이종범 vs 14 강정호

강정호MLB로 진출하여 적응에 성공함으로서 포지션 불문 김하성과 함께 KBO 출신 야수들 중에서는 최고임이 증명되었으나[1] 다만 역대 KBO 기록으로 단일 시즌 최고의 유격수는 누구였는가라는 떡밥은 아직도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2]

2014 시즌 강정호: 타 0.356 출 0.459 장타 0.739[3] 안타 137 홈런 40[4] 타점 117 득점 103 도루 3. ||

고전 스탯으로 보면 타율, 도루만 빼면 타격 부분에서 강정호가 확실히 좋아보인다. OPS도 1.198 vs 1.033으로 강정호가 앞선다.

파크팩터를 계산하고 리그 평균치를 100으로 해서 조정한 조정 OPS를 보면[5] 이종범이 OPS+가 195이고 강정호는 193으로 이종범이 크게 차이가 안 나는 이종범의 근소 우위. 자, 그럼 이제 공격 부분 세이버메트릭스 스탯상 가장 대표적인 wOBA(가중 출루율)을 보자. 강정호 0.504, 이종범 0.463으로 강정호가 좀 우위다.[6]

이 wOBA를 가지고 득점생산력을 계산한 wRC를 다시 리그 기준을 100으로 계산한[7] wRC+를 보면 이종범이 193, 강정호가 189으로 이종범이 근소 우위라는 걸 알 수 있다. 세이버메트릭스 지표상 94 이종범이 근소하게 우위이므로 이종범의 손을 들어주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순수하게 압도적인 출루율+장타율이 높은 강정호의 손을 들어줄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도루지표인 wSB가 이종범이 11.1으로 단순히 도루 갯수만 많은 게 아니라 득점으로도 연결을 많이 했다는 걸 보여주고 있으므로 도루지표 때문에 이종범에게 무게가 실릴 수도 있다.

수비는 당시 에러 산출 방식의 문제가 있었고, 90년대 보살 및 자살 기록이 전무한 상황이라 수비지표에 딱히 확답을 내리기 어렵다. 수비라는게 실책 갯수로만 판단하기 어려운 점이 많은 바[8], 정확한 수비에 대한 부분은 영원히 판단을 내릴 수 없다. 라고 적혀있으나 당시 이종범은 3시즌 동안 실책수 1위이자 일본 진출 후 유격수 불가 판정을 받았고, 이에 비해 강정호는 미국 진출 후에도 유격수 수비에서 합격 판정을 받은 것을 감안하면 수비는 강정호의 우위로 둘 수 있다.

그러나 WAR이 94 이종범이 역대 야수 WAR 1위[9]임을 생각하면 이종범이 유격수이자 야수로서 더 낫지 않은가라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

복잡하게 설명했지만 딱 잘라 말해서 둘 다 KBO에서 1, 2등하는 역대 유격수임은 틀림 없다. 세이버메트릭스상 타격지표는 비슷하므로 취향대로 뽑으면 된다.

그래도 누적은 강정호가 위가 아니냐라고 할지도 모르는데 이종범 유격수 5년 누적 WAR이 강정호 유격수 누적 WAR보다 높다.

3. 야구

파일:이종범_이치로.jpg
파일:attachment/1000000001.jpg

3.1. 투명드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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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시인사이드 국내야구 갤러리 등지에서 틈만 나면 까이고 있으며, 투명드립필수요소로 쓰이고 있다. 단, 선수 본인의 잘못은 전혀 없다. 게다가 세이버스텟이 국내에 보급되면서 고전스텟으로 "보이지 않는 스텟"을 세이버스텟이 증명하고 있다는 점이 재밌다.

본인도 안다는 듯. 이종범을 만나서 싸인받은 어떤 팬이 슬쩍 운을 떼 봤는데 현역 때부터 넉살 좋기로 유명했던 이종범답게 능글능글하게 웃으며 안다고 했다는 말이 있다.

3.2. 사구와의 악연

몸에 맞는 공으로 부상도 많고 헤드샷도 많이 당한 선수. 끝내기 헤딩골 헤드샷을 맞은 적이 있다면 믿겠는가.

3.3. 지역드립의 최대 피해자

전성기 때는 화려한 성적으로, 전성기가 지난 후에는 KIA 타이거즈의 정신적 지주라는 점과 여러 가지 사건으로 유명한 이종범이지만, 특히 2009년부터는 야갤구 정사갤을 중심으로 퍼진 홍어드립을 비롯한 지역드립의 최대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항목에서 나열한 여러 가지 이야깃거리를 살펴보면 이종범이 잘못한 부분은 거의 없다. 오히려 피해자인 경우도 있을 정도.

4. 가족

4.1. 7남매 중 막내아들

파일:20191206_051228.jpg
1997년 부모님(左 어머니 김귀남, 右 아버지 이계준)과 함께

4.2. 결혼 및 야구집안

파일:다운로드 - 2019-12-06T051010.015.jpg
2001년 6월 20일 김포국제공항에서 가족들과 함께

5. 흑역사

이종범의 3대 흑역사는 기쎈비타 TV광고, 금종범, 선동열/ 양수경과 같이 Two&One으로 낸 음반이 있다(...)

5.1. 기쎈비타

2016년 MBC 스포츠플러스엠스플 텔레비전 9화에 이종범이 출연하여 직접 이 CF의 제작비화를 설명했다. 시즌 중 CF촬영을 너무 싫어했던 김응용 당시 감독의 눈을 피해 올스타 브레이크 기간에 새벽 5시부터 24시간 동안 촬영했다고 한다. 출연료는 5,000만원이었고 구단이 절반인 2,500만원을 떼갔다고 한다. 김선신과의 깨알같은 재연은 덤.
2017년 MBC every1비디오스타에 출연해 김숙과 또 한 번 재연했다.1분 19초부터 나온다. 뭐라구우우~기쎄에엔?
2023년 2월 전설의 타이거즈에 출연한 前 해태 타이거즈의 문성록[20]김태완[21]이 출연하여 CF 촬영비화를 추가로 설명했다. 스튜디오 촬영버전과 목동 야구장 촬영버전 두 가지가 있는데 목동 야구장 촬영 시 문성록은 심판, 김태완은 포수, 박종하가 투수 역할을 맡았다. 이들은 출연료를 아끼기 위해 얼굴을 가리고 찍었고 이종범은 음료수를 마시는 척 하지 않고 촬영 당시 무려 50병 이상을 마셨으며 광고 촬영 후 2일이 지난 시점까지 얼굴이 누런 상태였다고 한다. 스튜디오 촬영 시에는 시청자들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와이어를 매달고 움직이는 장면을 찍었다.

5.2. 금종범

파일:attachment/1000000002.jpg
파일:attachment/이종범/invisible.jpg
1995년 신년 특집 이벤트로 신문사에서 기획해서 촬영한 것. 금박 칠하는 데만 4시간 이상이 걸렸다고.
금종범 사진 중에서 다이빙 캐치하는 사진은 일간스포츠 해태 타이거즈 전담 기자였던 박승현[22]의 조력으로 탄생했다.
금종범은 불암콩콩코믹스에 소재로도 나왔다. 그것도 4번씩이나. 2009년 8월 20일, 2010년 6월 10일[23] 6월 16일, 이종범 은퇴만화(옷을 벗기는 남자 편), 마구마구 레전드 열전 은퇴 기념 레전드 카드 발매만화.
2020년 아들 이정후키움 히어로즈가 우승하면 금정후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5.3. 음반 발매 : 투앤원

파일:66532.jpg
93년 우승 당시 모기업 해태는 우승을 해도 포상금을 두둑하게 챙겨주지 못했고 결국 이상국 단장이 김응용 감독 몰래 추진한 일이 음반 발매였다. 연습과 녹음을 병행하느라 서울-광주를 왕복했고 코피가 날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김응용 감독은 "쟤들이 나 몰래 특별훈련을 하나?" 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판매량은 딸랑 20장에 재고만 무려 3만장 넘게 쌓였고, 김응용 감독에게 앨범을 몰래 냈다는 사실을 들키자 당연히 노발대발하면서 두고두고 까였다고 한다. 결국, 선동열, 이종범이 부상을 당하거나 성적이 안 나올 때마다 "야, 이새끼들아! 나이트나 가!" (나이트 가서 노래나 불러!), "돈 벌려고 그거 한 애들이니 다쳐서 훈련 못 할거 그냥 밤무대 행사나 보내!" 라고 타박을 놨다고 한다. 그래놓고서 김응용 본인은 앨범을 10장을 사주는 츤데레 기질을 보이기도.... 그룹 이름은 'Two&One'이다. 당시 인기 가수였던 양수경이 같이 한 앨범이다. 앨범 보기.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조.

6. 기타 이야깃거리





[1] 추신수는 곧바로 직행한 케이스므로 논외[2] 역대 KBO 기록으로 놓고 보는 것이므로 이종범의 일본리그 진출을 언급한는 건 부당하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최고의 타자였던 이종범조차 힘들어했을 정도로 리그 격차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 걸로 당시 최고의 야수였던 이종범을 폄하하면 당시 KBO 타자들 기록 역시 같이 폄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3] 역대 2위였으나 15 에릭 테임즈가 1위가 되며 2위를 헌납했다.[4] KBO 유격수 최초 40홈런[5] Baseball lab 기준.[6] 당연하다면 당연한 게 그냥 출루율만 봐도 강정호가 우위다.[7] 타고투저 시대와 타저투고 시대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기 위해서.[8] 수비율로만 판단한다면 수비범위가 좁은 선수가 오히려 수비에서 고평가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오기 때문이다. 수비범위가 그 예로 자주 언급되는 것이 홍세완박진만.[9] KBO, Baseball Lab 및 구 스탯티즈 전부 포함 94 이종범이 단일 시즌 야수 WAR 1위인 건 똑같다.[10] 즉, 당시 왼손 글러브가 있었어도 좌투우타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11] 이종범이 좌타보다 우타에 소질이 있었다지만, 우타자가 좌타자보다 1루에 멀기 때문에 내야안타가 될만 한 타구가 간발의 차로 땅볼아웃 되는 경우가 많아서 피해보는 일도 생겼다.[12] 김종국은 고교, 대학 시절 군기반장을 했지만, 선배인 이종범이 구타 문화를 없애면서 폭력을 쓰는 일은 없었다.[13] 코미디언 정준하2011년 무한도전 '타인의 삶' 기획에서 이숭용과 역할을 바꿔 넥센 히어로즈 선수로 뛰면서 마침 녹화 당일 경기 상대였던 KIA 측 식당을 방문했는데, 선후배가 뒤섞여 이야기를 나누며, 심지어는 팀 내 최고참(의 대역 정준하)에게 농담도 치며 식사하던 넥센 식당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대선배인 이종범이 혼자 독상을 하고 다른 선수들도 별 대화 없이 묵묵히 식사하는 모습을 보고 팀 간에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며 놀라워하기도 했다. 이후에 서재응이홍구를 불러다가 갈구는 장면이나 얼차려 장면이 기사로 나가면서 여전히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탈피하지 못했음을 보여주었다. 이런 보수적인 분위기는 2010년대 들어 최형우가 최고참이 되고 그 밑 고참라인으로 탈권위적 모습을 보이는 양현종, 김선빈, 나성범 등이 들어오게 되면서 완전히 사라졌다.[14] 거꾸로 말해요 아하~ 시절[15] 지금도 일본 넷상에선 1대 한국이치로라면서 2대 한국의 이치로라는 이병규와 함께 고통받고 있다(...) 그리고 현재는 아들이 한국의 스즈키 이치로 별명을 물려받았다[16] 사실 이종범의 플레이 유형은 이치로보다 마쓰이 가즈오의 타입에 가까운 편. 실력은 물론 일본에서 역대급 유격수라는 평을 들으며 메이저리그까지 진출한 카즈오 마쓰이와의 비교는 무리지만, 그 플레이 스타일과 행보는 제법 유사한 편이다. 자국 리그 내에서는 훌륭한 피지컬을 이용해 뛰어난 호타준족 유격수로 활동했으나, 상위 리그에 진출하자 똑딱이로 전락하고, 자국 리그에선 좋은 평을 들었던 강한 어깨와 넓은 범위의 수비가 진출 당해년도에 상당한 혹평을 들으며 포지션까지 변경당했던 모습, 그럼에도 어찌어찌 빠른 발을 살려, 주전으로서 플레이오프까지 경험한 후 자국 리그에 복귀했다는 행보까지 어느 정도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17] 오히려 몇 가지는 현역 선수들과 비교당해서 저평가되는 감이 없잖아 있다. 만화에서는 최훈이 90년대 이종범의 펀치력을 최진행급이라고 했는데, 데뷔 해인 93년을 제외하면, 90년대 이종범 장타율이 최진행보다 높다. 주력이 이대형급이라는데, 90년대 이종범은 방위로 풀타임 못 뛰었던 95년만 제외하면 wSB값이 거의 3~7까지 차이가 날 정도로 더 높다. 다만 주력의 경우, 만화를 그릴 당시에 가장 빠른 선수가 이대형이어서 그 쪽으로 비교했다고 할 수도 있다.[18] 기사 중간쯤에 나온다.[19] 특히 2022시즌에는 사위 고우석이 42세이브로 리그 세이브왕을 차지하고 아들 이정후가 타격 5관왕에 오르게 되면서 겹경사를 맞이하게 된 터.[20] 문선재-문진제 형제의 부친이자 문승훈 심판의 형이다. 선수 시절에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고 오랜 기간동안 해태-KIA 프런트로 활동했다.[21] 이강철과 입단 동기로 1991년 한국시리즈에서 활약했던 해태 선수다. 군복무 후 현역복귀 대신 프런트 전직을 제의받아 해태 프런트로 활동했다.[22] 이국적인 외모로 오바마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해태 타이거즈의 클럽하우스에 드나들 수 있었던 몇 안되는 기자였다. MBC 스포츠플러스의 메이저리그 중계에서 가끔 해설위원을 한다.[23] 안영명을 환영하는 선수들 사이에 끼어있다.[24] 운동 선수들이 단백질 섭취를 한다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계란을 소금조차도 없이 그것도 흰자만 주구장창 먹는 경우가 많다. 심정수가 몸을 키우기 위해서 그랬던 것으로 유명하다.[25] 육전은 계란물에 고기를 담가 튀긴 음식이다.[26] 실력이 높은 선수에게 과거의 시합 기록에 기초하여 더해주는 것.[27] 다만, 이건 강호동이 방송계에서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일부러 져주는 기믹도 감안해야 한다. 강호동이 현역 은퇴를 한지 오래됐고, 전성기만큼 근육량을 갖고 있지 않기도 했지만, 50줄을 넘은 나이인 지금도 여전히 다부진 몸과 괴력을 소유하고 있다. 일부러 허당이나 당하는 역을 많이 맡아서 그렇지 현역 스포츠 선수들과 정말 제대로 힘대결을 할 때 그들조차도 놀라서 긴장할 정도다.[28] 비단 이종범 뿐만 아니라 김정수, 송유석, 정회열, 김종모, 김종국해태 타이거즈 OB들이 대부분 연고지 출신이라 서남 방언을 구수하게 구사한다.[29] 광주동성고등학교 학생들의 증언으로 가정해 보아 남구 진월동 한국아델리움에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광주동성고 바로 맞은 편에 그 아파트가 있다.[30] 심지어 군복무도 고향에 있는 제31보병사단에서 방위병으로 복무하였다.[31] 현재는 강남구 논현동으로 이사했다. 아들 이정후와 동반출연한 예능에서 이사한 집을 공개하기도.[32] 다만, 이종범 본인은 2군 코치인지라 따로 이천시에서 선수단과 생활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33] 사실 비단 이종범 뿐만 아니라 운동선수들은 학창시절부터 오로지 운동만 해 오고 다른 것들은 배울 시간이 거의 없는지라 다른 분야로 진출하려고 하거나 맞닥뜨리게 될 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흔하다.[34] 참고로 두 사람은 충장중 - 광주제일고 동기동창인 절친이다.[35] 참고로 개명 전의 이름은 정정민이었다.[36] 다만 김응용 감독이 따로 설득을 했던 것도 있었다고 한다.[37] 이종범을 은퇴시킨 선동열의 후임으로 선임된 김기태 감독이 KIA에서 함께하자고 제의했지만 고사했던 적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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