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도쿠라 켄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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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도쿠라 켄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2005년 센트럴리그 최다 탈삼진 |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
2010 |
{{{#!wiki style="margin: -5px -10px" |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2561> | KBO 리그 2010~2015 월간 MVP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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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시즌 | ||||||
카도쿠라 SK 와이번스 | 류현진 한화 이글스 |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 류현진 한화 이글스 |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 송승준 롯데 자이언츠 | |
2011 시즌 | ||||||
박용택 LG 트윈스 | 이병규 LG 트윈스 | 가르시아 한화 이글스 | 윤석민 KIA 타이거즈 | 최형우 삼성 라이온즈 | 오승환 삼성 라이온즈 | |
2012 시즌 | ||||||
정성훈 LG 트윈스 | 박병호 넥센 히어로즈 | 박석민 삼성 라이온즈 | 최형우 삼성 라이온즈 | 이호준 SK 와이번스 | 서재응 KIA 타이거즈 | |
2013 시즌 | ||||||
양현종 KIA 타이거즈 | 옥스프링 롯데 자이언츠 | 손민한 NC 다이노스 | 최형우 삼성 라이온즈 | 손아섭 롯데 자이언츠 | 박병호 넥센 히어로즈 | |
2014 시즌 | ||||||
유희관 두산 베어스 | 박병호 넥센 히어로즈 | 찰리 NC 다이노스 | 강정호 넥센 히어로즈 | 강정호 넥센 히어로즈 | -[a] | |
2015 시즌 | ||||||
안영명 한화 이글스 | 이호준 NC 다이노스 | 김태균 한화 이글스 | 박병호 넥센 히어로즈 | 해커 NC 다이노스 | 정의윤 SK 와이번스 | |
[a]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으로 인한 브레이크로 MVP 미선정 | ||||||
}}}}}}}}} |
SK 와이번스 등번호 54번 | ||||
존슨 (2009~2009.4.12.) | → | 카도쿠라 (2009.4.17.~2010) | → | 매그레인 (2011~2011.7.8.)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6번 | ||||
채형직 (2010) | → | <colcolor=#074ca1> 카도쿠라 (2011) | → | 김정혁 (2012~2017)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88번 | ||||
오치아이 (2010~2012) | → | 카도쿠라 (2013~2015) | → | 조규제 (2016~2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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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도쿠라 켄 [ruby(門倉, ruby=かどくら)] [ruby(健, ruby=けん)] | Kadokura Ken | |
출생 | 1973년 7월 29일 ([age(1973-07-29)]세) |
일본 사이타마현 이루마시 |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세이보가쿠엔 고등학교[1] - 도호쿠후쿠시 대학 |
신체 | 193cm, 90kg[2]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 입단 | 1995년 드래프트 2순위 (주니치) |
소속팀 | 주니치 드래곤즈 (1996~1999)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 (2000~2003)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2004~2006) 요미우리 자이언츠 (2007~2008) SK 와이번스 (2009~2010) 삼성 라이온즈 (2011) |
지도자 | 삼성 라이온즈 2군 투수 인스트럭터 (2013) 삼성 라이온즈 2군 투수코치 & BB Ark 육성위원 (2014)[3] 삼성 라이온즈 1군 불펜코치 (2015) 주니치 드래곤즈 2군 투수코치 (2019~20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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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前 야구 선수, 코치, 해설자. 대한민국에서는 SK 와이번스, 삼성 라이온즈에서 활약해 잘 알려져 있으며, KBO 리그를 거친 외국인 선수에서 KBO 리그 팀의 지도자가 된 케이스다. 등번호는 25(주니치), 23→17(킨테츠, 2000~02→03), 24(요코하마), 27(요미우리), 54(SK), 16(삼성)번을 거쳤다.한국프로야구에 외국인 선수 제도가 도입된 이래 5번째 일본인 선수였으며[5], 아마도 한국 야구팬들이 일본인 용병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릴 선수이고[6], 성적 및 인품 양면에서 모범적인 모습을 보인 선수다. 이 때문에 2011 시즌 중 웨이버 공시되어 일본으로 돌아갔을 때 많은 한국 팬들이 안타까워했는데, 그래서인지 삼성 팬들은 카도쿠라의 인스트럭터 취임을 환영했고 오치아이 에이지가 투수코치를 그만둔 점까지 겹쳐 카도쿠라가 제 2의 오치아이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릭 밴덴헐크가 2군으로 내려가 그에게서 사이드 스텝을 보완해 각성했으며, 큰 경기만 가면 멘탈이 무너지던 심창민이 2014년 한국시리즈에서 완벽투를 펼쳤고, 서동환이 집중 조련을 받은 후 시범경기에서 괜찮은 모습을 보여 주면서 지도자로서도 좋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
일본으로 돌아간 후 2021년 5월 26일, 갑작스런 실종 소식이 전해졌다. 다행히 6월경에 발견되기는 했으나 7월에 또 가출하는 등, 개인사 문제가 복잡하게 얽힌 듯한 모습을 보였다.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중학생 때 이미 190cm를 넘긴 체격 조건으로 인해 주목을 받았으나, 코시엔 출장은 없었다.[7] 대학 시절 모교인 도호쿠 복지대학[8]을 준우승까지 올리는 데 일조하며 일본프로야구 스카우트들의 눈에 들었고, 그 후 1995년 주니치 드래곤즈에 드래프트 2차로 지명받으며 일본프로야구에 발을 들인다.2.2. 주니치 드래곤즈
데뷔 시즌인 1996년에는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를 상대로 7월 28일에 프로 데뷔 첫 승을 올리며 7승을 거두고, 1997년[9], 1998년에는 두 자릿수 승수를 기록한다.2.3.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
그 후 2000년에 트레이드를 통해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로 이적, 2001년에는 8승 6패를 거두기는 했지만 평균자책점 6.49를 기록하며 부진한 성적을 거두었다. 그래도 선발과 중간계투를 오가며 긴테쓰의 마지막 리그 우승에 공헌하였다. 하지만 당시 프로 2년차 선수였던 이와쿠마 히사시에게 밀려 일본시리즈에 등판기회를 갖지 못했다.2.4.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2003년 오프시즌 후 요코하마 베이스타즈로 이적, 2005년에는 시즌 최다 탈삼진인 177개를 잡아내며 데뷔 후 첫 삼진왕 타이틀을 따냈다. 같은 팀의 미우라 다이스케와 공동으로 따낸 삼진왕 타이틀이며, 요코하마 베이스타즈는 3위를 거두며 A클래스에 진입한다.2.5. 요미우리 자이언츠
2006년 시즌 후 2년 2억 엔+성과급이라는 조건으로 요미우리 자이언츠(보상선수는 구도 기미야스)로 이적했다. 그러나 2년 간 23경기에 등판하여[10] 1승 7패로 부진하였다. 결국 2008 시즌 후 방출되었는데, 여기에 대해서 요미우리 상대로 강한 성적을 거둔 그를 돈지랄로 영입한 뒤 고의로 기용하지 않았다는 음모론적 해석도 있다.요미우리에서 방출된 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 도전, 시카고 컵스와 입단 계약을 맺고 스프링캠프 연습경기에서 6경기 3실점의 호투를 보였지만, 나이 때문인지 갑작스레 마이너리그로 내려갈 것을 통보받는다. 그 전에 김성근 감독이 먼저 SK 와이번스 행을 제의했지만, 이 시기에는 정중히 거절했다고 한다.
NPB 13년 통산 302출장(190선발) 76승 82패 10세이브 2홀드. 통산 방어율 4.36.
이후 한국에 왔는데, 한국프로야구에서 2년 이상 활약한 최초의 일본인 선수이자, 팀의 스프링캠프부터 훈련에 참가한 첫 외국인 선수이기도 하다. 팀에 대한 애정과 성실한 인성 등을 겸비한 선수로 팀의 후배들이 외국인임에도 형님이자 선배로 따를 정도라고 하며, 소속 팀이었던 SK나 삼성 뿐만 아니라 타 팀 팬들로부터도 사랑받았다.
2.6. SK 와이번스
2.6.1. 2009 시즌
마이너리그행을 통보받은 후 여러 구단을 물색하다, 2009년 마이크 존슨과 크리스 니코스키가 연속으로 부도난 SK 와이번스와 시즌 중에 계약을 맺고 입단했다.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5번째이자, 와이번스에서는 2006년 시오타니 가즈히코 이후 2번째로 들어온 일본인 선수.시즌 성적은 8승 4패, 평균자책점 5.00로 좋아 보이지는 않았으나, 갑작스런 방출로 인해 강훈련으로 소문난 SK 특유의 스프링캠프에서 몸을 만들지 못한 점, 도중에 중간계투로 보직 변경되었을 때 엄청나게 불을 지른 게 반영된 결과였다. 하지만 시즌 후반과 2009년 한국시리즈에서 150km대의 공을 뿌려 호투하면서 부활, 재계약에 성공해 2010 시즌 선발 투수로 활약했다.
2.6.2. 2010 시즌
시즌 초에 개막 7연승을 질주하며 20승을 목표로 하겠다고 했는데, 20승에는 실패했지만 30경기에 출장해 14승 7패, 평균자책점 3.22로 매우 준수한 성적을 기록하며 2010시즌 전체 투수 중 3위에 올랐다.[11] 그리고 이는 개인 한 시즌 최다 승수다. 일본에서는 두 자리 승수는 4번이나 기록했지만 탈삼진왕 타이틀을 딴 요코하마 시절의 11승이 최다승이었다.2010년 올스타전 팬 투표 투수 부문에서 1위를 달리다 막판에 조정훈에 밀려 2위를 했다. 하지만 조정훈이 부상으로 시즌 아웃된 상태였기 때문에 출전, 동군 선발로 나왔다가 떡실신당한 김광현에 이어 2이닝을 던지고 내려왔다. 그에게 있어서는 일본 시절을 포함해서 처음 출전하는 올스타전이었고, 한국프로야구 사상 첫 올스타전 출전 일본인 선수란 기록도 남겼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1경기 2이닝 3피안타 4볼넷 1몸에 맞는 공 1탈삼진 1실점 1자책점 평균자책점 4.5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승으로 우승했다.
11월 5일 대만과의 클럽 챔피언십 2차전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 7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는 호투를 펼쳐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6회에서 견제로 2아웃을 잡는 모습이 일품. 게다가 연륜의 힘으로 2사 만루 위기상황에서도 미소를 보이고 결국 이닝을 종료시키는 포스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2010년 시즌 후반부터 왼쪽 무릎에 통증을 느꼈으며, 한일 클럽 챔피언십 이후의 검사에서 수술이 불가피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이 결과가 나오자 SK 와이번스에서 재계약하지 못하고 나오게 되었다. 일단 수술 없이 재활만 하면 괜찮다는 모양이며 삼성 쪽에서도 메디컬 테스트 결과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2.7. 삼성 라이온즈
2.7.1. 2011 시즌
결국 2011 시즌에는 연봉 30만 달러에 삼성 라이온즈와 계약하였다.[12] 순수 일본인 최초의 삼성 용병이 되었다.[13] 2010 시즌 후반엔 구위가 떨어져서 14승도 SK의 팀 전력의 도움이 컸다고 하지만 기록은 기록이다. 14승 투수가 다른 팀으로 옮겨간다는 것은 구단 입장에서는 모르겠지만 팬 입장에선 확실히 아쉬운 결과. 앞으로 그의 턱을 보고 싶다면 대구로 가자!원래라면 SK 구단도 당연히 아쉬워해야 하지만 무릎 통증의 정도에 대해 카도쿠라 본인과 구단과의 입장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구단 입장에선 2010 시즌 14승 투수라는 것을 알면서도 통증이 2011 시즌에 큰 장애가 될것이라 판단했고 본인은 투수라면 누구나 달고 다니는 정도의 문제라는 것.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였다.
삼성의 경우 원래 카네무라 사토루를 데려올 생각이었지만, 카도쿠라가 SK 와이번스에서 풀리자 입단 테스트를 거쳐 바로 계약했다. 대신 삼성에서 방출 조치된 박진만이 SK로 가면서 박진만과 카도쿠라의 암묵적인 트레이드 아니냐는 얘기도 있었지만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
삼성에 와서는 팀 내 최고령이었지만 나이차 나는 어린 선수들과도 스스럼없이 지내 인기가 많았다.
시즌 첫 등판인 4월 3일 KIA전에서 2이닝 동안 김상현의 만루 홈런을 포함해 홈런 2개, 총 5개의 안타를 맞으며 8실점을 기록했다. 이걸 보면 아주 엄청나게 털린 것 같지만 김상수의 실책과 같은 에러 덕에 자책점이 겨우 1점이었다. 카도쿠라는 지난 시즌 KIA를 상대로 6경기에 등판해 4승을 챙겼는데, 가코도 부진하고 삼성은 또 외국인 선수를 잘못 뽑은 걸까? 하는 의문을 남겼다.
4월 15일 삼성 대구 홈경기에서 두산 베어스를 상대로 등판, 저번에 시원하게 털린 것과는 달리 6이닝 4피안타(탈삼진 4개, 사사구 2개) 1실점으로 호투하며 퀄리티 스타트를 끊으며 그날 승리 투수가 되었다. 일단 삼성 팬들로서는 그의 안정적인 투구 내용에 외국인 선수 또 잘못 뽑았나 하는 불안감을 조금 해소할 수 있었다.
4월 22일에는 넥센전에 선발로 등판, 6회까지 1실점으로 잘 막다가 7회가 되자 체력이 다했는지 제구가 마구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결국 주자를 2명 남겨두고 정현욱에게 마운드를 넘겨줬는데, 이 상황에서 김민성이 친 타구를 신명철이 잡았는데 병살 상황에서 잡은 공을 떨어뜨리고 또 그게 발에 닿아 굴러가는 치명적인 에러가 작렬해서 동점을 허용하고, 급기야 강정호가 역전타를 뽑아내면서 덕아웃에 앉아서 패전투수가 되고 말았다. 하필이면 개인통산 100승 달성이 눈앞이었기에 카도쿠라 입장에서는 너무나 안타까웠을 듯.
4월 29일 한화전에서 다시 한번 통산 100승 달성을 노렸지만, 그가 6이닝 2실점으로 호투했음에도 불구하고 불펜진의 퐈이야로 또 다시 승이 날아갔다.
5월 1일에는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부친이 위독하여 일본으로 가야 했기 때문이다.
5월 7일, LG전에 앞서 귀국. 선발진에 복귀했다. 인터뷰시 불펜 피칭 컨디션이 좋다고 했지만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5월 12일 SK전에 선발 등판했으나, 7이닝 4실점 3자책으로 ND가 되었으며 유독 SK전에 약하다. 아무래도 그전에 있던 팀이다 보니 전력분석팀에게 간파가 되었다.
5월 18일 넥센전에 선발 등판, 5회까지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는 등 9이닝 무실점 호투하며 완봉승을 거뒀다. 게다가 이 1승은 한 달 간의 노력 끝에 마침내 이룬 한일통산 100승이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
6월 11일 7이닝 5피안타 2볼넷 3탈삼진 3실점(1자책)을 기록하며 5승을 거뒀다. 그리고 이 승리로 김선우를 제치고 KBO 방어율 수위에 오른다. 평균자책점 2.28. 몇년만에 제대로 성공한 삼성 용병 투수라 삼성 팬들은 말 그대로 부왘을 울리는 중이다. 그런데 6월 17일 경기에서 KIA 상대로 2⅔이닝 11실점(17일 경기 평균자책점 37.125)으로 무너지면서 평균자책점 순위가 1위에서 10위로 급락했다.
2011 시즌 KIA전 3경기에서 한 번도 3이닝을 넘기지 못하면서 평균자책점 23.82를 기록했다. 상위권 싸움과 포스트 시즌을 대비해야 하는 팀 입장에서 특정 팀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건 신경쓰이는 부분이었고, 전반기 마지막 날인 7월 21일, 구단 측에서 웨이버 공시했다.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었을 때 모두들 잠시 쉬는구나 생각했으니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 부진한 성적과 무릎 통증, 특히 KIA와의 상대 전적이 좋지 않은 것 등의 여러 사정이 겹친 듯. 결국 2011 시즌 5승 6패, 평균자책점 4.07의 성적을 남기고 일본으로 떠나게 되었다.[14]
2.8. 일본 복귀 후
일본으로 돌아간 후에도 야구에 대한 미련은 끝까지 버리지 않았다. 몸 상태를 회복한 2012년 초에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에 잇달아 입단 테스트를 신청했을 정도. 하지만 2번의 기회에서 모두 쓴 잔을 마셨다.이후 홋카이도 소재 한 병원의 소속 사회인야구 팀에 입단했다.[15] 도시 대항전 예선에서 선발로 나와 7이닝 퍼펙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2012 아시아 시리즈 결승전에서는 일본 방송에서 해설을 맡기도 했다. 비슷하게 대한민국 (당시 우리 히어로즈, 現키움 히어로즈) 에서 뛴 적이 있는 다카쓰 신고 또한 몇몇 경기에서 해설을 맡았다.
사회인 야구 팀에 입단한 이후에도 프로 팀 트라이아웃을 계속 시도하였으나 더 이상 그에게 현역 연장의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고, 결국 2012년 말 은퇴를 선언하며 17년 간의 프로 선수 생활을 마감하였다.
3.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 |||||||||||
<rowcolor=#ffffff>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ERA | 피안타 | 사사구 | 탈삼진 |
1996 | 주니치 | 14 | 72⅓ | 7 | 3 | 0 | - | 3.11 | 63 | 30 | 65 |
1997 | 34 | 160 | 10 | 12 (공동 3위) | 0 | - | 4.73 | 173 (2위) | 106 (1위) | 143 (3위) | |
1998 | 26 | 153⅔ | 10 | 9 | 0 | - | 3.40 | 133 | 75 | 115 | |
1999 | 15 | 49 | 2 | 4 | 0 | - | 5.69 | 61 | 20 | 38 | |
<rowcolor=#ffffff>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ERA | 피안타 | 사사구 | 탈삼진 |
2000 | 킨테츠 | 23 | 117⅓ | 7 | 9 | 0 | - | 3.91 | 108 | 50 | 109 |
2001 | 32 | 123⅓ | 8 | 5 | 0 | - | 6.49 | 136 | 51 | 122 | |
2002 | 16 | 29⅓ | 0 | 4 | 0 | - | 3.68 | 25 | 12 | 32 | |
2003 | 20 | 98⅓ | 6 | 4 | 0 | - | 4.21 | 102 | 49 | 103 | |
<rowcolor=#ffffff>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ERA | 피안타 | 사사구 | 탈삼진 |
2004 | 요코하마 | 42 | 76⅓ | 4 | 8 | 10 | - | 4.60 | 84 | 29 | 86 |
2005 | 29 | 197⅔ (3위) | 11 (공동 5위) | 8 | 0 | 0 | 3.37 (4위) | 175 (5위) | 82 | 177 (공동 1위) | |
2006 | 28 | 154⅓ | 10 | 9 | 0 | 0 | 4.84 | 187 (4위) | 54 | 114 | |
<rowcolor=#ffffff>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ERA | 피안타 | 사사구 | 탈삼진 |
2007 | 요미우리 | 12 | 31⅔ | 1 | 5 | 0 | 0 | 5.97 | 36 | 14 | 26 |
2008 | 11 | 12⅔ | 0 | 2 | 0 | 2 | 3.55 | 13 | 6 | 16 | |
<rowcolor=#ffffff>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ERA | 피안타 | 사사구 | 탈삼진 |
2009 | SK | 28 | 126 | 8 | 4 | 0 | 1 | 5.00 | 141 | 60 | 98 |
2010 | 30 | 153⅔ | 14 (4위) | 7 | 0 | 0 | 3.22 (3위) | 146 | 58 | 143 (4위) | |
<rowcolor=#ffffff>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ERA | 피안타 | 사사구 | 탈삼진 |
2011 | 삼성 | 16 | 86⅓ | 5 | 6 | 0 | 0 | 4.07 | 92 | 36 | 62 |
<rowcolor=#373a3c><colbgcolor=#ffff88> NPB 통산(13시즌) | 302 | 1276 | 76 | 82 | 10 | 2 | 4.36 | 1296 | 578 | 1146 | |
<rowcolor=#373a3c> KBO 통산(3시즌) | 74 | 366 | 27 | 17 | 0 | 1 | 4.03 | 379 | 154 | 303 |
4. 지도자 경력
4.1. 2013 시즌
삼성의 투수 인스트럭터로 계약했다. 애초엔 투수코치로 온다는 얘기가 있었지만 아무래도 코치로서 경력이 없다 보니 인스트럭터로 계약했다고 한다.관련 기사 다만 김태한 1군 투수 코치가 미숙하다는 지적이 있어서 일부 삼성 팬들은 김태한 대신 그가 1군 메인 투수 코치를 맡아 주기를 바랐다. 2013 시즌 초 부진했던 릭 밴덴헐크가 잠시 2군에 있었을 적에 카도쿠라에게 지도를 받아 기량을 키웠다는 게 돋보인 점.4.2. 2014 시즌
2014년에는 삼성과 정식 2군 투수코치로 계약했다. 삼성 라이온즈가 유망주 육성을 위해 BB 아크를 만들면서 BB 아크의 육성위원도 겸하였다.2013년에 입증한 투수 조련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4월 15일 두산전에서 1회 만에 어깨 부상으로 자진 강판하고 2군으로 내려온 릭 밴덴헐크의 밸런스를 찾아 주었다. 그리고 릭 밴덴헐크가 2014년 5월 8일 SK전에서 최고 156km/h를 찍는 직구를 앞세운 7이닝 무실점 호투를 펼치는 데 조력했으며, 관련기사 2013년 2차 드래프트로 이적해 온 두산 출신의 서동환을 집중적으로 조련하였다.관련기사
4.3. 2015 시즌
성준 전 SK 와이번스 수석코치가 2군 투수코치 겸 BB아크 지도위원으로 오면서, 1군 불펜 코치로 보직 변경되었다. 2014년 불펜의 기량 저하가 눈에 띄게 늘어난 상황에서 그가 릭 밴덴헐크를 에이스로 지도하였던 경험으로 인해, 삼성 팬들은 망해 가고 있는 삼성 불펜을 카도쿠라가 살릴 수 있는지 기대하는 중이다. 그리고 김태한의 삽질이 갈수록 답이 없어지는 중이라 내친 김에 1군 투수코치를 카도쿠라가 맡기를 기대하는 삼팬도 많다.그러나 2015 시즌을 마치고 계약이 만료된 후 삼성과 재계약하지 않았다고 하며, 조진호가 1군 불펜코치로 보직 변경되었다. 삼성 팬들은 뒷목을 잡는 중. 그리고 2016년 삼성 투수들은 김태한과 조진호 아래에서 궤멸적인 성적을 보여 주고 있는 중이다.
시즌 후 삼성 라이온즈와 재계약하지 않으며 한국을 떠났다.
5. 근황
요코하마에 있는 리틀야구 팀인 쓰즈키 주오 보이즈의 코치로 일했었고, 한때는 TBS의 해설자로 마이크를 잡았다가, 2019년부터 주니치 드래곤즈의 2군 투수코치로 현장에 복귀했다.2019년엔 주니치 2군을 맡는 와중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한국야구 경험에 대해 이런저런 술회를 털어놓기도 했다. 꽤 객관적으로 한국 야구 경험자 입장에서 통찰력 있는 코멘트를 남겼다. 3분 50초 가량부터 한국은 일본에 비해 수준이 낮고 포크볼에 약한 경향이 있다, 한국 선수는 상대의 커리어를 보고 사람을 가려가며 말을 듣는 경향이 있다, 한국인은 성형한 여자가 대부분이다 등 아픈 팩트폭력부터 야구 스타일이 메이저리그 지향적이고 파워가 있다, 옆의 라커를 쓰고 있던 박경완이 먼저 야구를 가르쳐 달라고 말을 걸어오는 등 일본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배척하는 것이 아니었다, 일본 선수가 해외야구를 잘 보지 않는데 한국선수는 NHK 등으로 일본야구를 보며 연구에 열심이다, 국제대회에서 이기고자 하는 선수들의 의욕이 강하다, 인프라의 개선이 빠르다는 등 장점도 칭찬하며, 과거에는 일본야구에서 퇴물이 되어서 한국에 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렇겐 안 되고 즉전력감이 되지 않으면 외국인 선수로서 힘들 것이라며 굉장히 객관적인 시선으로 한국야구를 돌아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담으로 한국에서 술집에 갔던 일화를 털어놓기도 했는데 텐프로였던걸로 보인다. 물론 본인은 일본으로 치면 고급 클럽 같아 보이는 곳이었다고 잘 모르는 상태에서 설명했는데, 시스템 설명을 하는 것을 보면 정황상 빼박이다. 일본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러한 멘트를 우익이니 혐한이니 오해를 하는 경우도 적잖게 있었는데, 정황을 보면 술집 이야기에 이어 응원문화, 치어리더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성형 이야기를 했는데 카도쿠라가 먼저 꺼낸 화제도 아니었을 뿐더러 실제로 모델이나 치어리더 등의 업계는 성형을 많이 하는 것은 사실이고 일반인도 일본에 비하면 엄청나게 많이 성형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오히려 카도쿠라는 "그게(성형) 뭐가 나쁘다는거지?" 하는 식으로 성형 문화를 중립적으로 보았으며 MC의 한국야구 인프라는 역시 일본보다 좀 뒤쳐져있지 않냐는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고 (그렇기에)오히려 인프라 발전이 빠르다는 식으로 가능한한 한국의 긍정적인 면만을 말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즉 한국 생활에는 그런대로 만족을 했고, 카도쿠라 본인 또한 한국 야구를 겪으면서 스스로 굉장히 많은 것을 배웠다고 볼 수 있다.[16]
6. 가출 소동
6.1. 1차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후배들을 양성하는 일에 몰두하며 조용히 지내는 듯 했으나, 2021년 5월 일신상의 이유로 갑작스럽게 팀에서 탈퇴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주니치 측에서는 카도쿠라가 5월 15일부터 무단결근했다고 하며, 다음날인 16일에는 카도쿠라의 가족들이 경찰에 실종 신고를 넣었다. 이후 20일에는 2군 매니저에게 직접 손으로 쓴 편지를 소인이 찍힌 우편을 통해 전달, 일신상의 이유로 퇴단을 밝혔고 가족들을 통해 카도쿠라의 친필인 걸 확인한 뒤 26일에 주니치 구단 측에서 공식적으로 카도쿠라의 퇴단을 수용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퇴단 수용 발표와 동시에 언론에서 일제히 보도가 시작되고 본격적으로 공론화가 시작됐다. 휴대전화를 집에 두고 간 탓에 위치추적도 불가능한 상태라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하다고 한다. #5월 말이 되어도 긍정적인 소식이 들리지 않자 일본 언론에서도 카도쿠라의 실종사건을 비중있게 보도하고 있다. '스포츠 호치'에서 주니치 드래곤즈의 카토 대표와의 인터뷰 내용을 공개했는데 "14일까지는 평범하게 훈련에 임하고 있었고, 의심스러운 언행과 행동도 없었다"고 한다. 카도쿠라 코치는 구단에 무단결근하기 이틀 전까지 자신의 블로그에 일상생활 사진을 올려왔다.
요미우리 시절 룸메이자 미·일 통산 100승-100홀드-100세이브를 기록한 우에하라 코지는 "카도쿠라씨 도대체 어디에?"라며 "무사하기를 바란다"고 전했고, 후지TV의 MC 타니하라 쇼스케도 "나쁜 결과가 나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걱정했다.
이후 일본 매체의 단독보도에 따르면 카도쿠라가 한국에 있을 당시 강남에 위치한 카지노에 자주 출입했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한다. 또한 일본에 있을때도 집이 저당잡히거나 한국계 은행을 통해 대출을 하는 등[17] 채무관계에 있어서도 의혹이 많다고 한다. # 그러나 주니치 드래곤스에서는 이에 대해 함구중이다.
6월 2일 일본의 한 매체에서 카도쿠라가 요코하마 시내의 한 공원에서 발견되었다는 증언을 뉴스로 다루면서 "상습적이다. 이런 일이 4번째이며, 사라질 땐 집에 휴대폰과 지갑을 두고 나간다. 짧으면 2-3일에서 길면 2주 이상 일 때도 있다." 라고 밝혔다. 도쿄스포츠 일본어 기사 링크
6월 3일, 주간지 프라이데이 인터넷판에서 실종되었던 카도쿠라 켄이 요코하마의 어느 공원에서 노숙 상태로 발견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각 언론사의 기사를 종합하여 밝혀진 바를 간략히 정리하자면 이하와 같다.
①카도쿠라가 카나가와 현에 거주중인 기혼 여성과 불륜관계를 가지고 있었음.[18]
②여자측 남편이 이 사실을 파악하고 주니치 구단에 항의를 했고, 불륜사실이 구단 수뇌부에 알려짐.
③구단측에서 카도쿠라에게 사실관계 여부를 질문함.
④카도쿠라는 불륜을 인정함
⑤카도쿠라의 부인이 이 사실을 파악하고 격노함
⑥카도쿠라, 사랑의 도피를 감행한 채 그대로 며칠간 실종
⑦요코하마의 어느 공원에서 노숙인 상태로 발견
일본의 SNS에서는 불륜에 대한 비판이 대부분이나 노숙 상태로 발견되었다는 점을 들어 약간의 동정적인 눈길도 있다. 한편 "저런 턱으로도 불륜을 할 수 있다니 역시 전프로야구 선수라는 휘광은 대단", "턱이 크면 그곳도 큰 건가" 등의 농담이 잇따르고 있다.
기존의 언론보도대로 채무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추측되는 규모 가지고 카도쿠라 정도 되는 사람이[19] 몸을 숨길 필요까지는 없다는 듯 하다. 대체로 불륜이 주요 원인이었다는 쪽으로 추측이 모아지고 있다. 아무튼 본인 가정 뿐만 아니라 남의 가정에서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는 행동을 했고 이 사실이 언론을 통해 일본은 물론이고 한국을 포함한 외국에도 전부 알려졌기 때문에 향후 인생이 고달파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4일 카도쿠라의 아내가 카도쿠라의 블로그에 남편의 발견에 대해 그런 내용은 들어보지 못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6월 7일, 아내 타미에의 이름으로, 카도쿠라 켄 본인이 전날(6월 6일) 밤에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고 밝혔다. 아내가 작성한 글
요지는,
①남편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여러분(보도 관계자, 그리고 팬들)께 걱정 끼쳐서 대단히 죄송하다. 진심으로 사죄드린다.
②우리들 가족은 무사히 돌아와준 것에 무척 기뻐하고 있으나, 의사의 치료가 필요한 상황인 것 같았기에 오늘 의사 진단을 받았고, 울병(鬱病)이라고 진단 받았다. 당분간 치료와 요양이 필요한 상황이다.
③원래라면 카도쿠라 켄 본인이 스스로 관계자 여러분께 사정을 설명하고 사죄 말씀을 드려야 하겠으나, 우리들 가족조차 실종 이유나 지금까지의 경위를 묻지 못하는 상태다. 향후는 당분간 의사의 지도에 따라 치료에 전념코자 한다.
④이번에 각방면의 여러분에게 폐를 끼치고 걱정을 끼친 점을 본인이 크게 신경쓰고 있으며, 일단은 본인의 회복을 기다린 후, 거듭 그 기회를 마련토록 하겠다. 여러분의 이해와 협력을 부탁드린다.
6.2. 2차
그러나 다시 한번 가출해 실종됐다. 이번에도 집에 폰을 놓고갔다고. #7월 29일 집에 무사히 돌아와서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사과영상을 게시했다. 기자회견을 하려고 했는데 코로나로 인해 유튜브에 사과영상 게시로 방향을 틀었다고 한다.
6.3. 3차
또 다시 가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8월 이후 행방불명이라고 한다. #2022년 1월에 한 리틀야구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내어 시구를 하였다고 하며, 현재 부인과는 이혼 소송 진행중, 야구계로의 복귀를 원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7. 여담
개인 블로그와 홈페이지를 지극정성으로 꾸미는 것으로 유명한데, 사진과 근황을 수시로 업데이트하며 몇몇 이모티콘은 자신이 직접 도트를 찍어서 만들기까지 했다. 블로그를 통해 일본 야구 팬들이 한국프로야구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어 그를 보기 위해 직접 문학 야구장에 찾아오는 일본인 관광객들도 생겼다. 아예 한국프로야구 관광 패키지 상품이 등장했을 정도. 현재 홈페이지는 접속이 불가능하다.매우 크고 아름다운 턱으로 일본에서도 유명했다. 오죽하면 별명이 '모아이', '아고쿠라(턱의 일본어 '아고'+카도쿠라)였을까… 심지어 일본의 한 사이트에서는 히다마리 스케치의 교장이라는 말도 나왔다. '턱형제'로도 유명했는데, '턱형'이 카도쿠라, '턱동생'이 우치카와 세이이치[20] 버라이어티에 출연하여 안토니오 이노키 흉내를 내기도 했다.
대한민국에 와서도 별명이 카턱이다. 참고로 가도쿠라의 블로그 닉네임은 JAW N KEN...그러니까 턱&겐...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는 듯. 게다가 블로그 사진에선 턱을 만지고 있다! 그렇지만 스스로 만진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방문한 일본인 팬이 턱을 만지고 있는 사진이 잘린 것이다. 참조 같은 크고 아름다운 턱을 가진 홍성흔, 조성환과 함께 턱 삼형제로 대동단결했다.
그리고 셋이 같이 찍은 사진을 블로그에 올렸다.
주니치 시절이던 1997년 11월, 한일 친선야구 경기를 위해 방한한 적이 있다.#[21] 그리고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2차전에 선발투수로 등판했다.[22] 참고로 이 경기에서 10년뒤 요미우리 시절 동료가 되는 이승엽과도 대결했다.
위에도 나와 있지만 한국 야구에 대해서 일본에 돌아가서도 긍정적인 발언을 많이 했고 한국에서 야구하면서 본인도 배운 점이 있다고도 이야기했는데, 이는 단순히 립서비스가 아니라 실제로도 그렇게 생각했다고 볼 수 있는데, 단적으로 SK 시절 자신의 아들을 한국에 데려와 훈련시키기도 했다. 아들이 일본 야구 뿐만 아니라 한국 야구에 대해서도 배우길 원했고, 특히 SK 선수들의 근성을 배우기를 바랬다고 말하기도 했다.
윤석민의 턱 형제 조성환, 홍성흔을 향한 잇단 빈볼 사건으로 마지막 타겟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선동열, 이종범 등과는 주니치 시절 동료였다. 광주 원정 때 이종범의 집을 방문한 뒤, 방문기를 블로그에 올리기도 했다. 여담으로 부인 타마에 씨는 재일교포다. 또한 이종범이 2020년에 주니치에 연수코치로 가면서 다시 한솥밥을 먹게되는 등 끈끈한 인연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한일 프로통산 100승 한 이후 장미 100송이를 받았고, 이를 블로그에 게재했다. 옆에서 증정하는 사람은 박석민.
대한민국의 외래어표기법을 따르자면 가도쿠라 겐이라 KBO에서 이름 순으로 배열할 때 가득염보다 더 앞에 있어야겠지만, KBO에는 카도쿠라로 등록이 되어 있다.
자녀로는 두 아들과 딸 하나가 있다. 장남인 유키도 야구선수다. 그리고 딸 리오 양도 여러 번 방한(?)을 해 잘 알려져 있다. 2010년 8월 11일 시구도 했고, 2011년 5월 27일에도 시구를 했다.
여담이지만 중국의 영화배우이자 감독인 장예모와 닮았다. 다만 못 할 때는 톰 션의 이름을 따서 턱션 등으로 까였다.
2017년 10월 7일 오릭스 버팔로즈와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전에서 시구를 했다.
2017년 10월 24일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가 19년만에 일본 시리즈 진출에 성공한 뒤에 열린 승리 축하회에서 인터뷰를 맡았다.
출신지역이 사이타마현이어서 그런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팬이기도 하다.
8. 관련 문서
[1] 만화 크게 휘두르며의 등장학교인 토세이 고교의 모델. 또한 만화 야마노스스메의 애니메이션판의 주요무대가 되는 학교의 모델이기도 하다.[2] NPB 공식 프로필[3] 시즌 시작은 2군 투코로 했지만, 시즌 중 BB Ark가 개막하자 투수파트 육성위원을 겸하게 되었다.[4] 시즌 도중 카도쿠라 켄의 갑작스러운 실종 사건으로 인해 보직 해임. 공식적으로는 일신상의 이유로 자진 퇴단.[5] 카도쿠라 이전에는 모리 가즈마(롯데, 2003년), 이리키 사토시(두산, 2003년), 시오타니 가즈히코(SK, 2006년), 다카쓰 신고(히어로즈, 2008년)가 있었다. 참고로 롯데의 모리는 시즌 전 퇴출. 대부분이 투수다.[6] 그도 그럴 것이 한국 야구의 수준이 점차 올라가며 구단들이 메이저리그 출신 용병들을 찾게 되면서 카도쿠라 이후로 KBO 리그 팀에 입단한 일본인 선수는 십여 년 동안 오카모토 신야(2010), 히로나카 시히로(국내 대학 졸업 후 육성선수 입단) 시라카와 케이쇼(2024) 세 명밖에 없었다. 일본계로 범위를 넓혀도 보 다카하시 한 명이 추가될 뿐이다.[7] 참고로 그의 모교인 세이보학원 고등부 야구부는 1999년에 처음으로 코시엔 본선에 진출했다. 카도쿠라가 졸업하고 약 7~8년 뒤의 이야기.[8] 이 학교 출신 OB로 사사키 가즈히로, 카네모토 토모아키 등이 있다.[9] 1997 시즌 후에 한일 골든시리즈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적이 있었다.[10] 심지어 선발 투수로 주로 뛰었음에도 불구하고 요미우리에서는 5경기밖에 선발로 나오지 못했다.[11] 1위는 류현진, 2위는 김광현.[12] 묘하게도 삼성은 다음 해인 2012년에도 SK와 재계약이 결렬된 투수 브라이언 고든과 계약을 맺었다.[13] 이전에 삼성에서 뛰었던 김일융과 송일수도 일본 국적이었지만 재일동포였다.[14] 여담으로 카도쿠라의 방출 후 몇 년 뒤에 팀당 외국인 보유 한도가 늘어났어도 일본인 용병 선수는 오랫동안 KBO에 나타나지 않았다. 일본계로 확장하면 그나마 2021시즌에 기아에 대체용병으로 잠시 뛰었던 일본계 브라질인 출신의 보 다카하시 정도. 이 점은 아시아 쿼터제가 KBO 리그에도 도입되어야 해결될 듯. 다만 아시아 쿼터제가 도입되어도 일본인 용병 영입은 이미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과 일본프로야구라는 상위 리그의 존재로 첩첩산중인데, 인성 문제 등으로 일본 리그에서 금지어 수준으로 찍히거나 일본 내 인지도가 없다시피 하거나 주전 경쟁에서 밀리는 위치의 선수어야 KBO 리그의 문을 두드릴 가능성이 있다. 결국 카도쿠라의 방출로부터 13년이 지나서야 부상 대체 외국인 선수 계약으로 시라카와 케이쇼가 KBO 무대를 밟았다. 대만리그(CPBL) 출신 용병 영입은 린즈성이 잠시 2015년 연말에 진출썰이 돌았다가 최종 대만리그에서 FA로 타팀 이적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고, 왕웨이중이 대만 출신으로는 최초 KBO리그 입성자이긴 하나 특이하게 미국에서 야구를 하다 KBO에 왔고 이후 몇 년뒤에 CPBL로 간 케이스라 현재까지 CPBL에서 데뷔한 대만리거가 KBO로 입성한 사례는 2023년까지도 없다.[15] 일반적인 일본의 사회인 야구단은 오전에는 소속회사 등의 업무를 보고, 오후에 야구 활동을 진행하는데, 카도쿠라 켄의 경우는 특이하게도 순수하게 선수로만 영입되었다고 한다.[16] 엄밀히 말하면 그가 겪었던 SK 와이번스는 당시에도 구장 인프라 개선을 가장 열심히 시도했던 구단 중 하나였기 때문에 인프라 발전이 빠르다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 그린존이 처음으로 개설된 해가 바로 그가 한국시리즈 우승반지를 획득한 2010 시즌이였다는 것이 그 증거. 물론 선수 말년과 코치로 그 말많았던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을 겪기도 했다.[17] 하술하겠지만 카도쿠라의 아내는 재일교포, 장인은 대한민국 국적자이다.[18] 이 여성이 주니치 드래곤즈 광팬이라 사적으로 어떻게 인연이 닿아 카도쿠라를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19] 현역 시절이 나쁘지 않았고 구단 코치라는 번듯한 직장에 가끔 지방방송국 출연도 할 정도였다.[20]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에서 같이 뛰던 시기도 있어서 더욱 부각되었다.[21] 주니치 드래곤즈와 오릭스 블루웨이브의 연합팀.[22] 상대는 해태 타이거즈와 삼성 라이온즈, 쌍방울 레이더스의 연합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