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닉의 주요 선정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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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617C97><colcolor=#fff> 패닉 PANIC | |
왼쪽부터 김진표 • 이적 | |
그룹명 | 패닉 |
PANIC (영문) | |
장르 | 락, 발라드 |
리더 | 이적 |
활동 기간 | 1995년 10월 1일 ~ 현재 |
데뷔 | 1995년 정규 1집 'PANIC' (데뷔일로부터 [dday(1995-10-01)]일, [age(1995-10-01)]주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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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남성 듀오. 이적(본명 이동준)과 김진표가 1995년 결성한 그룹이다.2. 활동
1995년 발표된 1집 타이틀곡 '아무도\'는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지만[1] 팬들이 발견한 '달팽이\'가 공전절후의 대히트를 기록하면서 여러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했고 후속곡이자 비주류의 감성[2]을 노래한 '왼손잡이\' 또한 10위권 안에 들며 히트했다.다소 즉흥적으로 결성된 그룹이기도 한데, 엄친아의 대표주자 이적이 솔로 1집을 준비하던 시절 친분이 있던 김진표에게 샘플곡을 들려주다가 '너 같이 할래?' 라는 권유를 통해 패닉이라는 듀오가 탄생하게 되었다. 사실 이적의 솔로 1집으로 준비되던 것이 패닉 1집이라, 김진표는 양념 정도로만 기여했다고. 때문에 방송 활동 당시에 김진표를 위한 파트 배분을 위해 달팽이의 간주 부분에서 색소폰 연주를 맡게 했다. # 따라서 김진표가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된 앨범은 2집부터라고 볼 수 있다.
패닉 1집이 성과를 거두자 후발주자로 참여한 김진표는 기고만장해서 흥청망청하고 다녔는데, 이를 보다 못한 이적이 '너, 나 없이도 패닉 할 수 있냐?'고 꾸지람을 했다고 한다. 이에 과거의 음악 활동을 돌아보고 패닉 1집에선 자기가 빠져도 별 일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새삼 충격을 받은 김진표가 적극적으로 자신의 음악성을 반영한 앨범이 이듬해인 1996년 발표된 패닉 2집 밑이다. 이 2집은 '벌레\', 'Mama\' 등 스승과 어머니를 대차게 까는 내용으로 19금 판정을 받아도 할 말 없을 정도로 자극적이고 파격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3] 하지만 김진표가 원하는 대로 참여 비중을 확 늘린 데다가 특유의 미치광이 같은 페이소스는 패닉이라는 듀오를 규정하는 요소로 작용했다.[4]
2집 '밑'에서는 'UFO\'로 활동하면서 가요 차트에서는 중위권까지 들면서 선전했지만, 더욱 파격적인 모습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패닉이 변했다'면서 떠나간 팬들도 상당수 있었다. 반면, 1집 때는 '그냥저냥 괜찮은 가수네' 정도로만 알고 있다가 2집의 파격적인 모습에 삘이 꽂혀 극렬 패닉 신자로 편입된 사례도 의외로 많이 있었다. 근데 패닉 1집도 잘 들어보면 꽤 파격적인 것들이 많다. 반면 패닉의 팬이었다가 뒤늦게 2집을 알게 되고 충격과 실망을 느꼈다는 어린 팬들도 많다. 다만 패닉 이후 김진표의 솔로 1집을 들어보면 알 수 있듯이, 패닉 2집 당시의 취향이 이적과 잘 맞았던 듯하다.
이적은 2005년 패닉 4집과 관련된 인터뷰 중 지난 1~3집을 더듬으며, "우리가 패닉이라는 이름으로 하고자 했던 음악은 2집이 가장 가깝다"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패닉의 시작부터가 이적의 원맨 밴드에 가까웠고, 해보고 싶었던 날카로운 성향의 음악을 패닉을 통해 충분히 제시했다고 생각했는지[5] 이적의 솔로 앨범에서는 사회비판적인 색은 간간이만 드러났다. 다만 솔로 앨범에 실리는 곡의 가사로 볼 때 이적이라는 가수의 작사/작곡의 입힐 수 있는 색의 관심사가 단순한 사회비판에서 철학적인 생각으로 변화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패닉 1집과 2집은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각각 71위, 89위에 랭크되어 있다. 패닉 1집 쪽이 순위가 더 좋은데, 당시 평론가들이 대중성을 좀 더 고려한 결과로 예상된다. 큰 차이가 나는 순위는 아니다. 100대 음반 선정 기념으로 이적의 인터뷰가 실려있는 기사를 볼 수 있다. 인터뷰를 보면 20대 초반에 음반 제작을 하면서 어떤 생각으로 음반 제작에 몰입했는지 확연히 범상치 않은 생각의 소유자임을 드러낸다. # 이후 2018년 개정판에선 조금 더 실험적, 파격적인 음악을 선보인 2집이 61위, 2집에 비해 대중친화적인 1집이 91위를 차지했다.
2집 이후 김진표가 각자 자신의 솔로 활동을 시작해서 1997년에 1집 "열외"로 활동했고, 이적은 김동률과 '카니발'을 결성해서 "Carnival"을 발표했다. 후자의 경우 '그땐 그랬지'가 방송 활동이 뜸했음에도 가요 차트에서는 중위권까지 들었고, 지금도 꾸준히 사랑받는 곡이자 가수 인순이가 리메이크한 '거위의 꿈'도 같은 앨범에 수록되었다. 그러다가 1998년에 패닉 3집 "Sea Within"이 발표됐고 타이틀 곡인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와 후속곡 '숨은 그림 찾기\'가 히트했다.
3집 활동 이후에 이적과 김진표는 다시 각자 솔로로 활동했고, 이적이 공익근무요원 복무 중이던 2001년에 발매된 김진표의 솔로 3집에선 '2001 PANIC - 분노, 왜'란 패닉 신곡을 실어 패닉을 기다리던 팬들에게 기쁨을 주었다. 이적은 김진표의 3집을 패닉의 3.5집이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타이틀곡인 "믿을진 모르겠지만" 역시 이적이 만든 곡이다.
2003년 음악캠프 상반기 결산 특집[6]으로 이적과 김진표가 만나 왼손잡이를 불렀다. 활동 시기가 같기도 했다. [7]
3집 앨범이 발매되고 7년 만인 2005년에 4집인 "Panic 04"를 발표했다. 타이틀곡은 '로시난테\'로 정해졌고, 당시 증기기관 열차를 사용하는 뮤직비디오 컨셉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후 후속곡 '정류장\'으로 활동을 이어나갔으나, 김진표의 이혼 탓인지 급작스레 활동을 마무리한 감이 없지 않다. 그게 아니더라도 김진표는 부정맥 때문에 긴 활동을 하기는 힘든 상황이긴 했다. 하지만 팬들을 위해 단독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이 앨범이 '패닉'으로 발매한 마지막 앨범이며 공식적인 해체는 하지 않았으나# 예전과 같은 활발한 활동은 없다. 그래도 딱히 해체한 것은 아닌지라 '언젠가는 새 앨범이 나오겠지'하는 마음으로 기대하는 팬들이 많다.
그 사이에 김진표가 음반을 발표했고, 소집해제한 이적이 개인 솔로 앨범을 발표하는 동안에도 윤도현의 러브레터 같은 음악 프로 등에서는 두 사람이 곧잘 듀엣 무대를 선보였고 그 즈음에도 두 사람이 늘 하던 소리가 "각자 바빠서 그렇지 해체는 아님"이었기 때문이다.
2007년 '숲으로 자란 노래' 콘서트에서 게스트로 김진표가 김동률과 함께 나왔고, 2008년 그룹 카니발로서 김동률과 함께 했던 THE CARNIVAL 콘서트에서도 JP는 서동욱과 함께 나와서 무려 '내 오랜 친구들', '그녀를 잡아요' 등 4명이서 함께했던 노래들을 라이브로 선보였다. 그 이후로도 각자의 콘서트나 여러 무대에서 서로를 빛내주었고. 데뷔 20년인 2015년 이적 소극장 공연 앵콜 무대에서도 둘은 한 무대에 섰다. 20주년이라고 거창한 건 하지 않아도 무언가 흔적은 남기고 싶었다고.
이 무대에서는 패닉 노래 중 김진표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라고 말한 3집의 '태엽장치 돌고래'를 불렀다. 랩 부분은 둘의 당시 상황에 맞춰 개사했다. 토크 시간에는 김진표가 사진 찍는 걸 허락해줘서 검색하면 사진을 찾아볼 수 있다.[8] 그 외 김진표의 솔로곡인 '시간을 찾아서(feat. 이적)'[9]도 함께 불렀다. 또한 이적의 솔로곡인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라는 곡도 이적이 혼자 부른 버전도 있으나 김진표가 피처링한 버전도 있다. 사실상 패닉의 곡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2013년에 Mnet 방송의 적에서 김진표와 패닉의 이야기를 했는데 꽤나 진솔하게 이야기하였다. '서로 신나게 디스하는게 포인트.' 이때 나오는 여성 가수는 랩퍼 치타다.
2014년 무한도전 라디오스타 편에 게스트로 나온 이적이 패닉은 god처럼 아직 해체되지 않았으며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다고 밝혔다. 사이가 나쁜건 아니니 언젠가는 패닉으로 다시 뭉칠지도 모르는 부분.
그러던 중 2020년 이적이 먼저 자신의 6집의 '돌팔매'의 피쳐링을 김진표에게 부탁했으나 처음엔 랩을 꽤 오래 쉬었단 이유로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하지만 패닉 25주년을 이유로 흔적을 남기기 위해 결국 돌팔매는 '왼손잡이'의 25주년 기념곡이자, 25년 뒤인 현대의 시점을 그린 후속곡으로 사실상 패닉의 곡으로 발표되었다. 이후 김진표는 다시 음악 쪽에 손대기 시작해서 자신이 몸담았던 노바소닉에 다시 객원으로 참가해 녹슬지 않은 랩 실력을 선보였다.
그리고 2020년 11월 13일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패닉이 출연했으며, 유희열 역시 패닉을 이곳에서 만나게 될 지 몰랐다며 반가워 했다.[10]
3. 수상경력
1996 KMTV 가요대전 : 인기가수상4. 음반
볼드체로 표기되어 있는 노래는 타이틀1집 PANIC (1995.10.01 발매)
01. Intro : Panic Is Coming [intro]
02. 아무도
03. 너에게 독백
04. 달팽이
05. 다시 처음부터 다시
06. 왼손잡이
07. 더...
08. 기다리다
09. 안녕
10. Outro : 다시 처음부터 다시
2집 밑 (1996.09.01 발매)
01. 냄새 [intro]
02. UFO
03. 혀
04. 강(江)
05. 어릿 광대
06. 그 어릿광대의 세 아들들에 대하여
07. 벌레
08. 불면증[13]
09. Ma Ma
10. 사진
11. 패닉
3집 Sea Within (1998.05.01 발매)
01. Panicillin Shock [intro][15]
02. 숨은 그림 찾기
03.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
04. 태엽장치 돌고래
05. 뿔
06. 희망의 마지막 조각
07. 단도직입
08. 오기
09. 여행
10. Red Sea Of Red Tea
11. 미안해
12.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 (Edit)
Best Of Panic (2000.12.01 발매)[16]
01. Panicillin Shock [intro]
02. UFO
03. 달팽이
04. 아무도
05. 내 낡은 서랍속의 바다
06. 벌레
07. 왼손잡이
08. 태엽장치 돌고래
09. 단도직입
10. 그 어릿광대의 세 아들들에 대하여
11. 기다리다
12. 숨은 그림 찾기
13. 여행
14. 강
15. 다시 처음부터 다시
16. 미안해
4집 Panic 04 (2005.12.07 발매)
01. 재회 [intro]
02. 균열
03. 태풍
04. 눈 녹듯
05. 길을 내
06. 나선계단
07. 종이나비
08. 뭐라고?
09. 정류장
10. 로시난테
11. 추방
5. 기타
데뷔 전, 몇 가지 곡이 담긴 데모테이프를 들고 소속사 '다음기획'을 찾았다가 퇴짜를 맞았다. 당시 다음기획에는 윤도현이라는 걸출한 신인도 있었다. 대표는 전 '노래를 찾는 사람들' 멤버였던 박상준 대표.그리고 이 때 그 데모테이프를 듣고 별로라고 깐 인물 중 한 명이 신해철인데, 훗날 고스트스테이션에서 말하길 자기의 안목이 잘못됐던 게 아니라 그 당시 데모에는 패닉 1집에 실리게 된 곡이 없었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하였다. 참고로 김진표와 신해철의 사이는 상당히 좋다. 이적을 포함해서 이 당시 음악 한다는 사람들은 죄다 PC통신에서 활동하던 시절이었고 신해철과 김진표는 PC통신에서 죽이 잘 맞았다는 후문이 있다.
이에 낙담한 두 사람은 다른 소속사를 이곳저곳 찾아갔는데, 한 소속사에서 '몇 곡을 더 가지고 와 달라'는 부탁을 받았고, 이 때 가져간 다른 데모 테이프에 '달팽이'/'왼손잡이' 등의 노래가 들어 있던 것. 그 소속사 사장이었던 전 '들국화' 멤버 최성원은 바로 계약을 했다. 그 곳이 바로 신촌뮤직.[19] 훗날 박상준 대표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달팽이'를 들으며 땅을 치며 후회했다고.
그리고 라디오에서 윤도현은 이 이야기를 하면서, 당시에 박상준 대표한테 "이적은 저렇게 대박났는데, 믿고 스카웃한 너는 타잔으로 대학 행사나 다니냐?"라는 농담 섞인 타박을 들었었다고 한다. 당시 윤도현은 4집의 '너를 보내고'가 제대로 대박나기 전까지는 묻힌 무명이었다. 너를 보내고를 포함해서 1집의 곡이 나중에 크게 역주행해서 성공하긴 했는데, 문제는 윤도현의 고집 때문에 1집은 쭉 '타잔'으로 활동하는 바람에 다른 곡이 싹 묻혀버린 것.
슈퍼스타K 시리즈가 낳은 최고의 스타 중 한 팀인 버스커 버스커가 생방송에서 부른 곡 중에 패닉 4집의 정류장이 있었다. 당시 정류장 노래가 만들어지게 된 계기와 슈퍼스타K에서 소개된 장범준의 개인사가 얽혀서 화제가 되었다.
6. 관련 문서
7. 둘러보기
[1] 멤버들이 농담삼아 "우리 데뷔곡은 사실 아무도인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아무도 모르게 달팽이로 바꿨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달팽이 가사에도 "아무도 못 봤지만"이라는 가사가 있다는 걸 생각하면 재미있는 부분.[2] 동성애자들이 방송에서 자신들을 그저 왼손잡이 정도로 생각해 주면 안되겠냐는 말을 한 것을 보고 이적이 왼손잡이 가사를 썼다고 했다.[3] 벌레라는 곡 때문에 이적은 자신의 모교인 반포고등학교의 블랙리스트에 올라서 한동안 학교를 방문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김진표라고 다를 건 없어서 당시 상문고등학교와 큰 갈등을 빚었다. 김진표는 이후 상문고를 모티브로 한 말죽거리 잔혹사의 곡에 참여하기도 했다.[4] 그 때문인지 KBS에선 2집의 4곡이 방송 금지 판정을 받아서 2집 활동을 하지 않았다.[5] 실제로 패닉의 대부분의 곡은 이적이 작사, 작곡을 했다.[6] 김진표가 일일 MC를 봤다.[7] 김진표는 솔로 4집, 이적은 솔로 2집을 냈다.[8] 소극장 공연이었던지라 본 사람은 많지 않다.[9] 뮤직비디오가 영화 늑대의 유혹을 편집한 것으로 유명했었다.[10] 김진표가 유일하게 출연했던 방송이다.[intro] 앨범의 인트로 곡[intro] [13] 무려 러닝타임만 12분 가까이 되는 곡이다. 삐삐밴드의 이윤정이 피처링했는데, 이윤정이 소리 막 지르는 게 압권.[intro] [15] 원래 있는 단어인 Penicillin를 일부로 Panicillin으로 고쳤으나 디자이너가 오타인줄 알고 자꾸 고쳐서 애먹었는 후일담이 있다.[16] 3집까지의 기준으로 대중성이 있는 노래 위주로 모은 앨범인데, 김진표 및 이적과의 상의 없이 발매되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두 사람은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하기도 했다.[intro] [intro] [19] 위엔터테인먼트의 위명희 대표가 신촌뮤직에서 일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