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glia |
1. 개요
포드 앵글리아 주행 영상. 영상의 썸네일만 봐도 알겠지만 순정이 아닌 성능 튜닝이 되어있는 차량이다. |
2. 제원
Ford Anglia | |
모델명 | 포드 앵글리아 |
제조사 | 포드 |
최초생산년도 | 1939년[1] |
엔진형식 | I4 overhead valve |
미션형식 | 4단 수동 |
구동방식 | FR |
배기량 | 997cc |
승차인원 | 4명 |
3. 역사
3.1. 1세대 (1939~1953)
3.1.1. 앵글리아 E04A (1939~1948)
1946년식 포드 앵글리아 E04A |
같은 시기, 비슷한 디자인의 프리펙트(Prefect)와 달리 2도어 차체만 제공되었으며, 스페어휠을 바닥에 평평하게 실은 덕분에 트렁크 공간이 넓어졌지만 트렁크 공간을 키우느라 뒷좌석 다리 공간이 좁아지기도 했다. 기본 엔진은 1933년부터 쓰던 933cc 직렬 4기통 사이드 밸브 엔진이 쓰였으며, 1948년부터 제공된 북미 사양을 비롯한 수출 버전에는 텐(Ten)에서 가져온 1,172cc 직렬 4기통 엔진과 텐 7W의 유선형 그릴도 장착되었다. 또한 빔 전조등와 주차등, 이중 후미등에도 커버를 씌웠다. 1947년 12월에는 디자인 변경을 통해 "Angila" 엠블럼이 측면 그릴 안에 삽입되었다.
또한 앵글리아에는 2단과 3단 사이에 싱크로메시가 적용되는 3단 수동변속기를 장착했고, 64km/h 이하로 속력이 내려가면 속도가 낮아지거나 동작을 멈추는 진공 와이퍼가 쓰였으며, 와이퍼에 진공 리저버(vacuum reservoir)가 적용되어 차량이 가속할 때 와이퍼가 완전히 멈추는 경향을 일부 보이기도 했다. 당시 시승기에 의하면 변속기의 최종 단수에서 8~10km/h 부근의 속도로 움직일 수 있었다는 점을 좋게 평가했으며, 의무적인 운전면허 시험이 도입된 지 얼마 안 되었던 당시의 영국에서 고객들은 정규적인 운전 강의 없이도 탈 수가 있었다. 첫 판매는 1940년에 처음 시작되었는데 1942년 초에 2차 세계대전 발발을 이유로 단종되었다. 1945년 중반에 생산이 제개되어 1948년까지 55,807대의 앵글리아 E04A가 생산되었으며, 호주에서도 1940~1945년 동안 2~4인승 로드스터 버전이 생산되었다.
3.1.2. 앵글리아 A54A (호주 시장용, 1946~1948)
1948년식 포드 앵글리아 A54A 4도어 세단[3] |
3.1.3. 앵글리아 E494A (1949~1953)
1953년식 포드 앵글리아 E494A |
3.1.4. 앵글리아 A494A (호주 시장용, 1949~1953)
1951년식 포드 앵글리아 A494A 투어러(Tourer)[4] |
3.2. 2세대 (100E, 1953~1959)
1954년식 포드 앵글리아 100E |
실내에는 PVC로 마감된 독립식 앞좌석과 앞으로 젖혀지는 등받이가 제공되었고, 속도계와 연료계, 전류계는 스티어링 칼럼 주변에 배치되었으며 플로어시프트 방식의 변속기가 적용되어 바닥에 설치되었다. 히터와 라디오는 선택사양이었으며, 1956년과 1959년에 각각 계기판이 변경되어 처음에는 3개 다이얼로 구성된 계기판이 2개로 줄어들어 양쪽에 설치되었고, 나중에는 계기판과 라디오 등이 하나의 제어판 안에 통합되었으며 글로브박스(수납장)가 추가되었다.
한편 기술적으로는 여전히 구식인 면이 있었고, 기존의 사이드 밸브 엔진을 개량해 출력을 36마력으로 늘리고 크기를 키운 베어링, 흡입 밸브, 폄프식 냉각장치가 적용되었다. 변속기는 기존의 3단 변속기가 쓰였으며 일부 차량에는 "매뉴매틱(Manumatic)" 반자동변속기가 적용되었다. 2개짜리 앞유리 와이퍼는 무료 옵션이었으나 기존의 진공식 와이퍼가 그대로 쓰여 가파른 고개를 넘을 때 와이퍼가 느려지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대신에 차체와 차대가 분리된 바디 온 프레임 구성 대신 유니 바디 차체 구조가 쓰이고, 앞바퀴 서스펜션도 당시에는 대중화되지 않았던 맥퍼슨 스트럿 서스펜션이 적용되었으며, 뒷바퀴에는 안티롤바와 반타원형 리프 스프링이 적용되었다. 휠베이스는 초대 앵글리아보다 짧아진 대신 앞뒤 부분에서 길이를 늘리면서 스티어링의 록투록[6]이 2바퀴밖에 되지 않아 반응이 빠르고 운전하기가 쉬워진 대신, 건조한 도로에서 언더스티어가 발생하기도 했다. 1957년부터 1958년 사이에는 변속 중에 클러치가 필요없는 뉴톤드라이브(Newtondrive) 선택 사양이 제공되었다. 참고로 전압 시스템은 12V였다.
1958년식 포드 앵글리아 100E |
"브리티시 모터(British Motor)" 지가 1954년에 앵글리아 세단을 시승한 내용에 의하면 최고시속 113km/h에 97km/h까지 가속이 29.4초, 연료 효율은 리터당 약 10.8km/L이었으며, 당시 시승차 가격은 세금 포함 511파운드였다고 한다.
3.3. 3세대 (1959~1968)
3.3.1. 앵글리아 105E (1959~1968)
1967년식 포드 앵글리아 디럭스 105E 세단 |
이번에는 엔진도 새로 바꿔 997cc OHV(오버헤드 밸브) 구조의 "켄트(Kent)" 직렬 4기통 엔진이 적용되었다. 여전히 가속력이 떨어지기는 했으나 예전에 비하면 많이 개선되었으며, 상위 3단에 싱크로메시가 적용되는 4단 수동변속기도 장착되었다가 1962년 9월에 싱크로메시가 모든 단수에 들어가는 변속기가 1198cc 엔진 사양에 장착되었다. 진공식 와이퍼도 전동 모터로 작동하는 평범한 와이퍼로 대체되었고, 맥퍼슨 스트럿 서스펜션이 지난 세대에 이어 그대로 적용되었다. "브리티시 모터" 지에서 1959년에 앵글리아 세단을 시승한 내용에 의하면 최고시속 약 118.8km/h에 97km/h까지 가속이 26.9초 걸렸고, 연비는 약 14.6km/L를 기록했다고 한다. 당시 시승차는 세금 180파운드를 포함한 610파운드였다.
1962년 10월에는 당시 24세였던 토니와 마이클 브루크(Tony and Michael Brookes) 쌍둥이와 친구들이 앵글리아 105E를 구입한 뒤 포드 퍼포먼스 패키지(Ford Performance Kit)를 적용한 레이싱카를 타고 프랑스 파리 근처의 몽레리 경기장(Montlhéry Autodrome)에서 6개의 국제 클래스 G 세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4~7일차 경기에서 낮밤으로 각각 15000km과 20000km을 주행하는 동안 평균 주행속도는 약 134.33km/h였으며, 타이어 등의 소모품 교환 정도만 이루어지면서 앵글리아의 강한 내구성을 증명하기도 했다.
포드 앵글리아 105E 웨건 기본형 |
한편, 기존의 앵글리아 100E는 포퓰러 이름을 달고 판매되었으며, 4도어 프리펙트는 기존의 차체를 고수한 체로 107E로 개량되어 신형 앵글리아의 변속기, 엔진, 브레이크 등을 그대로 사용했다. 에스코트와 스콰이어 웨건도 1961년에 신형 웨건이 나오기 전까지는 그대로 생산되었다. 한편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앵글리아 슈퍼가 도입된 1966년 포반까지는 판매량이 신통치 않았다가 1967년에 최고 정점을 찍어 남아공 차량 전체 판매량 9위를 기록했다. 남아공에서는 후속차인 포드 에스코트가 나온 이후에도 제고처리 차원에서 계속 생산되어 1968년 말까지 판매되었다. 부품 교체가 수월하고 다양하게 튜닝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핫로드 차량으로서도 나름 인기가 있다.
한편, 밴 모델은 "탬스 307E 5cwt/7cwt"라는 이름으로 1961년부터 판매가 이루어졌고, 997cc 엔진이 적용되었다. 디자인이 비슷하나 문 디자인과 앞창문이 다르며, 좌핸들 버전의 수출 사양은 탬즈 308E라는 이름 하에 판매되었고 일부 시장에서는 앵글리아 이름을 쓰기도 했다. 1962년 10월부터 1198cc 엔진이 사용되었으며 모델명도 탬즈 309E로, 수출 사양은 310E로 개명되었다. 1965년 3월에는 탬즈 브랜드를 폐기하고 포드 앵글리아의 이름으로 통합되었으며, 1967년 11월까지 205001대의 밴 모델이 생산되었다.
3.3.2. 앵글리아 토리노 (Torino, 1965~1967)
1966년식 포드 앵글리아 토리노 105E |
3.3.3. 앵글리아 슈퍼 123E (1962~1967)
1966년식 포드 앵글리아 슈퍼 123E 세단 |
유럽 대륙에서도 판매된 이 차는 유럽 전용으로 "앵글리아 스포츠맨(Sportsman)"이라는 사양이 제공되었으며, 당시 미국차들처럼 뒷부분에 스폐어타이어가 설치되었다. 도한 크롬 도금된 범퍼 오버라이더와 넓은 화이트월 타이어, 측면 스트라이프 옵션이 적용되었다. 1966년에는 남아공에 상륙하면서 남아공에서 앵글리아의 위치를 바꾸는 데 기여했다. 생산 끝자락에는 "블루 밍크"와 "베네치안 골드"라는 2가지 메탈릭 페인트 도장을 시험 적용했으며, 파란색 250대와 금색 500대가 생산되었다. 단종 때까지 총 1,063,960대에 이르는 차가 앵글리아의 이름을 달고 생산되었다.
4. 기타
단종된 지 꽤 됐기 때문에 영국이나 호주에선 희귀차량으로 분류된다. 영국에서는 2015년 12월 기준으로 총 3475대가 등록되어 있으며, 찾아보면 방치된 차량들도 많은듯. 참고로 대한민국에도 헐리우드 모터쇼(2004) 당시 경품으로 추정되는 105E 1대가 들어와 있다.제레미 클락슨의 아버지가 이 차를 몰고 가다가 무릎뼈가 빠져서 비상제동대에 들어가야 했다고 깠다.
영국이나 호주에서는 대한민국의 현대 포니처럼 추억의 자동차로 여겨진다.
포드 코티나와 함께 1960년대에 미국으로 정식 수출되었다. 1965년 기준으로 105E 세단과 패널 밴이 도입되었으며 동 시기 코티나와 함께 영국 포드 제품(English Ford Line)으로 소개했다.#
5. 미디어
5.1. 영화/드라마
}}} ||}}}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에서 등장한 포드 앵글리아 105E |
탐지 불능 늘이기 마법이 걸려있어 실내가 포드 앵글리아 수준의 넓이가 아니다. 좌석이 공원 벤치 수준으로 늘어나있다고. 영화상에서는 이걸 표현하기가 어려워서 묘사가 생략된게 아쉬운 점. 또한 투명 부스터가 있어 작동시 투명화 되며 비행 기능도 있다. 그리고 마법을 걸때 어떤 마법을 걸었는지 알 수 없지만 감정이 있다. 상술했듯 후려치는 버드나무에 전신 마사지를 당하고 나서 탑승자와 짐을 내던지고 나 화났다고 시위하듯이 미등을 번쩍거리며 사라진다.
당연하지만 이런 개조는 마법 정부의 승인 없이는 불법이었고[12] 심지어 이걸 머글들에게 들켜 예언자 일보에 실리는 바람에 국제 비밀 유지 법령을 크게 위반했고 미성년 마법사인 해리와 론은 그저 교장 덤블도어와 교감이자 그리핀도르 기숙사 사감 맥고나걸에게 꾸중과 한번만 더 이런식으로 규칙을 어길 경우 퇴학 처분하겠다는 경고를 듣고 추가로 론은 엄마 몰리에게 큰소리로 호통을 치는 마법의 편지 하울러를 받는 선에서 끝났지만 성인 마법사이자 해당 차량의 개조자인 아서는 관련 부서에 불려가[13] 호된 문책을 듣고 50 갈레온의 벌금을 내야했다. 위즐리 가의 재정 상황을 보면 50 갈레온은 상당히 치명타다.
5.2. 만화
- 명탐정 코난
원작 에피소드인 시카고에 온 남자(원작 32권) 후편에서 팬더카의 유래에 대해 설명하는 코난의 얘기에서 배경으로 나온다.
5.3. 게임
- 포르자 호라이즌 시리즈
포르자 호라이즌 4와 5에도 등장. 한때 4에서는 쇼케이스 리믹스로 기차와 경주하는 4와 1/2 이벤트가 있었다.
6. 둘러보기
[1] 최초 세대 기준.[2] 장비가 훨씬 다양했고, 발판이 기본 사양이었다.[3] 영국 버전과 다른 그릴이 적용되었다.[4] 4인승 로드스터는 "투어러"라는 서브네임이 추가되었다.[5] 포드의 중형차. 여기서 코티나가 파생되었다.[6] 스티어링을 끝에서 끝까지 돌리는 바퀴 수.[7] 기본형 앵글리아는 페인트 도장이 된 좁은 그릴이 적용되었다.[8] 미국의 자동차 업체. 당시에는 가장 오래된 자동차 업체 중 하나였으나 경영난으로 1960년대에 사라졌다.[9] 당시 포드 산하의 링컨과 머큐리 차량에서도 쓰던 디자인이였고, 이후에는 시트로엥 아미에도 사용되었다.[10] 실제로 열받은 사람처럼 침 뱉는 소리까지 낸다...[11] 삭제 신을 보면 아라고그와 만나기 직전 이미 서로를 봤던 것으로 표현되었다. 원작에서도 아라고그 일가를 만나기 전에 한번 만나고 이후 아라고그 일가의 단백질 공급원이 되기 전에 난입해서 도와준다.[12] 탐지 불능 늘이기 마법은 정부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 언급은 안되었지만 투명화 마법과 비행 마법도 문제가 되었을게 뻔하다.[13] 아마도 마법 오남용 관리과및 마법 사법부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