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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인물 | 구단주 구광모 | 대표이사 김인석 | 단장 차명석 | 감독 염경엽 | 주장 김현수 | ||
경기장 | 1군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 2군 LG 챔피언스 파크 이전 동대문야구장 · 구리 LG 챔피언스 파크 | ||
우승 | 1990 | 1994 | 2023 | ||
역사 정보 | 구단 역사 | 트레이드 | 1983년 한국시리즈 | 1990년 한국시리즈★ | 1994년 한국시리즈★ | 1997년 한국시리즈 | 1998년 한국시리즈 | 2002년 한국시리즈 | 2023년 한국시리즈★ | 역대 감독 | 사건·사고 | 암흑기(453566, 6668587667) | ||
주요 정보 | 팀 특징 | 선수단 | 등번호 | 유니폼 | 상대전적 | 팀 응원가 (서울의 찬가 · 서울의 모정) | 응원단장 | 엘튜브 | 치어리더 | 제휴카드 | ||
지역 연고 | 경기고등학교 | 경동고등학교 | 덕수고등학교 | 배명고등학교 | 배재고등학교 | 서울고등학교 | 서울디자인고등학교 | 선린인터넷고등학교 | 성남고등학교 | 신일고등학교 | 장충고등학교 | 중앙고등학교 | 청원고등학교 | 충암고등학교 | 휘문고등학교 | 제주고등학교 | ||
역대 시즌 | 역대 시즌 | ||
현재 시즌 | LG 트윈스/2025년 | ||
영구 결번 | 9 이병규 33 박용택 41 김용수 | ||
팬덤 정보 | LG 트윈스 갤러리 | I love Twins | 유광잠바 | ||
라이벌전 | 잠실 시리즈 | 엘 꼴라시코 | 통신사 시리즈 | 엘키라시코 | ||
기타 | 방화신기 | 간채골 | 보루갈 | 빅5 | 사랑해요 LG | 엘롯기 | 엘넥한 | 엘롯한 | 헬로키티 | 탈쥐효과 | 추격쥐 | 쥐평 | 엘나쌩 · 엘상바 클럽 | 아워게임 : LG트윈스 | 이 팀은 솔직히 | 메가트윈스포 | 용택아 나는 무서운 진실을 깨닫고 말았다 | 박신홍문 | 오김박 | ||
무적 LG! 끝까지 TWINS! | }}}}}}}}} |
2002년 ~ 2011년까지의 순위 |
이 술의 뚜껑은 당시의 구단주인 구본무 회장이 사망한지 5년 반 후에야 열리게 되었다.[1][2] |
1. 개요2. 상세3. 역사
3.1. 2003년3.2. 2004년, 2005년, 2006년3.3. 2007년, 2008년, 2009년3.4. 2010년3.5. 2011년 : 30승 선착, 그 이후 DTD3.6. 2012년
4. 2013년 : 비밀번호 탈출5. 비밀번호 탈출 이후5.1. 2014년 : 2연속 플레이오프 진출5.2. 2015년 : 처음부터 끝까지 9위5.3. 2016년 : 2년만의 플레이오프 진출5.4. 2017년 : 막판의 DTD5.5. 2018년 : 느그프 LG판5.6. 2019년 : 3년만의 복귀5.7. 2020년 : 막판의 추락, 2연속 가을야구 진출5.8. 2021년 : 또 막판의 추락, 3연속 가을야구 진출
6. 문제점 분석5.8.1. 준플레이오프
5.9. 2022년 : 오랜만의 6할, 4연속 가을야구 진출, 그런데...5.9.1. 플레이오프
5.10. 2023년 : 5연속 가을야구 진출, 29년만의 통합 우승5.10.1. 한국시리즈
5.11. 2024년 : 창단 첫 6연속 가을야구 진출6.1. 부실한 마운드6.2. 프랜차이즈 베테랑 방출·전력에 보탬 없는 베테랑 수집6.3. 터지지 않는 유망주6.4. 인색한 신인지명6.5. 철밥통 코치진6.6. 무사안일 프런트와 나태한 선수단6.7. 팬들의 몰지각함
7. 유사한 비밀번호 사례7.1. 목록
8. 관련 문서9. 둘러보기[clearfix]
1. 개요
이병규, LG의 가을을 경험한 문화재[3] |
LG 트윈스의 2003년부터 2012년까지 하위권을 달리던 당시의 암흑기를 통칭한다.
2. 상세
박성웅, 내가 LG 팬이라고 밝힐 수가 없어.jpg |
지금 LG 트윈스에서 10년째 뛰고 있는 선수들은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야구 제일 못하는 선수들입니다. 10년간 가을야구 못 간 팀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4]
이용균 기자, 사사구에서.
롯데의 8888577와 한화의 5886899678에 버금가는 한국 야구계가 만들어낸 또다른 전설의 비밀번호. 참고로 이 기간 동안에 713패를 기록하였다.이용균 기자, 사사구에서.
2000년의 4위 성적과 2002년의 2위 성적을 합해서 6[5]-4[6]-6-2-6-6-6-8-5-8-7-6-6-7으로 하면 그래도 조금 체면이 세워진다. 그 기간 동안 7번이나 6위한 진정한 6G.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비밀번호가 시작된 뒤에도 5번이나 6위를 했다. 그런데 정작 별명은 칠지(7G)인데, 이 별명은 2009년 시점에서 붙은 별명으로 보이는데, 그 시즌에 7위를 했다. 게다가 그 시즌은 2011년과 맞먹는 DTD 시전이었다. 아무래도 2009년의 7위가 굉장히 임팩트에 남은 탓인 듯.
또한 이 시기는 베이징 올림픽에서 야구 국가대표팀과 WBC 야구 국가대표팀이 보여준 대승으로 야구 붐이 분 시기에 적절하게 해태 타이거즈 시절 이후 한물 갔다고 평가받으며 엘롯기로 조롱당하던 기아 타이거즈가 장타를 앞세워 좋은 성적을 내며 관중을 몰고 다녀 야구 팬 향상에 큰 기여를 한 것도 영향이 있다. 또한 롯데도 가을야구에 진출해 이 시기 크보는 아주 높은 수준의 경기력을 앞세우며 베이징 뉴비와 해태 타이거즈 시절 올드팬, 엘롯기 팬까지 모두 모여 대흥행을 맞이하게 된 것도 영향이 컸다. 얼마나 이 해 야구 인기가 컸는지는 한국프로야구/2009년 참고.
이 문서는 2009년 시즌 종료 이후인 6668587(비밀번호가 7자리이던) 시절부터 존재했다. 즉, 문서 이름을 3번 갱신했다는 소리. 사실 정확히 따지면 4번 갱신인데, 문서가 처음 만들어진 6668587 시절에는 비밀번호 관념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던 터라, 하이픈이 들어간 '6-6-6-8-5-8-7'로 생성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8888577과의 통일성을 맞추기 위해 하이픈을 제거하고 그 이후로 숫자가 3자리 추가되면서 갱신 횟수도 3번 늘어나 지금에 이른 것이다. 그렇기에 6668587이나 66685876, 666858766으로도 넘어올 수 있다. 실제로 비밀번호로 언급되기 시작한 건 본 문서보다도 빠른 666858 시절, 동아일보 기사에서 언급되면서부터이다. (동아일보 기사)
그래서 한화 이글스의 비밀번호 항목인 5886899678도 2013년에 6자리가 찍히자마자(588689) 항목이 생성되었고, 이후 숫자가 4자리 추가되었다. 해당 기사에서 당시 박명환, 이동현, 이형종의 사진을 볼 수 있는데, 이 당시 신인이었던 이형종은 투수로 뛰고 있었다.
2009년까지는 666-8587로 중국집 전화번호마냥 외우기도 쉬웠고, 10자리로 늘어난 2012년에도 666-858-7667의 데칼코마니 형태라 외우기 쉽다. 게다가 이미 미국에서 볼 법한 전화번호가 되고, 8개 택배 회사[7] 한정으로는 택배 운송장 번호가 되어버렸으며, 이대로 암흑기가 지속되다간 은행 계좌 번호나 바코드같이 될 지도 모른다는 추측까지 나왔다.
KBO 리그 비밀번호의 원조인 롯데 자이언츠는 로이스터 매직을 내세워 8888577의 저주를 해제하고 2008년부터 5년 연속 가을 야구에 성공(34434)[8]했지만 LG의 신(新) 저주인 6-6-6-8-5-8-7-6-6[9]-7은 10년간 이어져 왔다.
이 기간의 처참한 성적은 LG가 비밀번호를 끊은 뒤 몇 차례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고 있음에도 LG 팬덤이 젊어지지 못하게 하는 원인 중 하나다. 베이징올림픽 금메달과 WBC 준우승으로 한창 야구 붐이 일 때 LG의 성적은 비밀번호의 중간부분 87을 찍고 있었으니 젊은 사람들의 유입이 일어나기가 어려웠다. 2020년 설문조사에서 그때 학창시절을 보낸 20대 LG팬 비율이 처참하게 나오는 것이 그 증거였다. 그나마 2020년대 들어서는 나아지는 추세.
신기하게도, 이런 극심한 침체기 속에서도 10승 투수는 꼬박꼬박 배출했다. 비밀번호 역사상 처음으로 꼴찌를 했던 2006년조차 심수창이 10승을 거두었고, 또 한번 꼴찌를 한 2008년에는 봉중근이 11승을 기록했다.
2020년대 들어서는 비슷한 사례인 삼성 라이온즈의 암흑기인 99688과 비교되며 삼성이 정석적인 리빌딩으로 비밀번호 찍기 직전인 6년만에 암흑기를 탈출하자 LG도 느리기는 하지만 착실히 리빌딩을 하여 암흑기를 잘 탈출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실제로 똑같이 암흑기를 맞은 한화는 제대로 리빌딩이 되지 않은 상태로[10] 김성근 시대 이후로 이상군의 아주 짧은 리빌딩 이후 2018 시즌 반짝 3위에 등극해 KBO 준플레이오프/2018년에 진출했다가 9AAA를 기록하는 등 다시 암흑기로 접어들어 리빌딩 중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LG는 팀 시스템을 갈아엎어 선진적 시스템을 도입하는 데 성공하며 2013년 이후로는 강팀으로 취급된다. 보통 2021년 정도부터 우승후보급 팀이었으나, 류지현의 운용 실패로 2년간 우승을 못하다가 감독을 바꾸고는 2023년에 드디어 29년만에 통합 우승에 성공, 올드 LG팬들의 숙원을 풀었다.
현재는 암흑기 탈출 이후에 가을야구에 단골 출정하면서[11] 암흑기를 완전히 청산하는데 성공하였고, 결국 2023년 통합 우승까지 하면서 우승한 이후엔 이 암흑기는 그냥 어두웠던 과거로만 기억되고 있다. LG의 암흑기를 겪어본 적이 없는 팬들은 포스트시즌 단골팀이 된 LG를 보며 LG가 그렇게 긴 암흑기도 있었느냐며 놀라워하는 경우가 많다.[12]
3. 역사
3.1. 2003년
전화번호가 아닙니다. |
그렇게 2기 이광환 체제에서 맞이한 2003 시즌, LG는 주포 이병규의 시즌 아웃 등으로 인해 타선이 크게 약화되었다. 이 시즌 wRC+는 구단 역사상 최하위였고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뒤에서 13번째였다. 물론 같은 시즌 백골퍼의 롯데가 뒤에서 4번째인데다가 그나마 투수력이라도 2002년의 전력이 약간 남아 있어서 저런 처참한 타격성적으로도 6위를 찍기는 했다.
하지만 투수진에 확실한 연패를 끊을 수 있는 에이스 선발투수는 없었고, 이상훈도 전년도의 김성근의 혹사 여파[14]로 인해 이전과 같은 위압감은 없었다. 특히나 6월초 백골퍼의 롯데와 11승 39패의 두산을 상대로 연속 스윕패로 6연패를 당한 것과, 시즌 후반 대전 한화전 4연전 전패를 포함한 8연패를 당한 것이 결정타가 되어 6위로 떨어지게 되었다. 게다가, 2003 시즌 마지막에는 원정 경기 16연패라는 수모를 당했다.
3.2. 2004년, 2005년, 2006년
LG는 2003 시즌이 끝나고 이광환 감독을 2군 감독으로 강등하고[15] 바로 이순철 주루코치를 감독으로 선임하게 된다. LG 구단은 2004년 캐치프라이즈를 제 2 창단으로 내세울 정도로 강제적인 세대 교체를 준비했으나, 이는 암흑기의 서막이었다.부족한 팀 전력을 쥐어짜고, 갖은 혹사를 시키면서,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갔던 김성근을 경질하고 이광환을 선임한 것도 (그 당시에는) 절차 문제로 말이 많았지만, 그렇게 무리수를 둬가면서까지 선임한 이광환 감독을 고작 1년 만에 2군 감독으로 밀어내고 다시 이순철을 감독으로 올린 것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전개이다. 한마디로 프런트가 팀의 미래에 대한 장기적인 비전없이 즉흥적으로 사람을 짤랐다 세웠다 한다는 것이니.... 거기에다가 이때 기량이 뛰어난 중견급 선수들을 내치고[16] 그 대안 마련에 완벽히 실패 + 다른 선수들 중 기량이 하락하거나 재활을 하는 선수들이 나오는 원인 제공[17]+지명 삽질[18]이라는 초대형 무리수의 콜라보가 터졌다. 결국 이 과정에서 LG는 내부에서부터 완전히 무너졌다. 그 결과 이순철은 6-6-8을 찍으면서 LG 트윈스 갤러리를 비릇한 LG 팬들 사이에서는 아예 감독 취급조차 받지 못하는 금지어에 등극되었다. 2006년에는 이순철의 사퇴 시점에서는 7위였으나, 양승호 대행 체제에서 끝내 8위로 내려앉았다. 그리고 이는 LG 트윈스 역사상 첫 최하위였다.[19][20]
또한, 2006년을 기점으로 LG 트윈스의 투수진은 구단 역사상 최악으로 전락했다. 2006 시즌에는 선발 투수도 아닌, 마무리 투수 우규민이 2.70의 sWAR으로 팀내 sWAR 1위를 차지했으며, 리그 평균 ERA를 기록한 풀타임 선발 정재복이 팀 내 1선발이었다. 이 시즌 LG의 조정 방어율(ERA+)는 무려 83.9로 KBO 역사를 통틀어서도 최악의 투수진이었다.
3.3. 2007년, 2008년, 2009년
2006 시즌 최하위 이후, 구단은 김재박 감독을 비롯해 현대 유니콘스의 스탭을 통째로 데려왔다. 당시 현대에서 코치는 물론이고 트레이너, 스카우터, 프런트까지 대규모로 김재박을 따라서 LG로 이동했다.[21][22] 당시 팬들도 'LG 유니콘스냐?'라는 푸념을 했을 정도였다. 또한 4년 40억원이라는 총액에 두산 베어스의 토종 에이스 박명환을 영입했고, 국내로 유턴한 메이저리그 출신 봉중근이 1차 지명으로 합류했다. 그러나 프랜차이즈 스타 이병규는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즈에 진출했다.2007년에 비밀번호를 끊어낼 수 있었지만, 주포 역할을 해 주리라 기대했던 마해영이 부진하고[23][24] , 또한 김우석[25]의 히 드랍더 볼을 기점으로 막판 뒷심 부족으로 5위를 했다.
2007년의 선전으로 인해 2008년 시즌을 기대하는 팬도 많았지만, 사실 꼴찌에 가까운 기대승률과 전력에 비해 실제 성적이 잘 나왔던 시즌이라 불안 요소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런트는 팀 전력을 오판하며 아무런 보강에 나서지 않았다. 결국 2008 시즌에는 좋지 않은 시나리오가 속출하면서 46승 80패로 구단 역사상 최악의 승률을 기록하며 다시 꼴찌를 기록했다. 무엇보다도 2008 시즌은 공중분해 위기 속에서 전지 훈련도 가지 못한데다가 분위기도 개판이던[26] 우리 히어로즈에도 밀린 최하위라 충격이 더욱 컸다. 팀 내 sWAR 1위를 기록한 타자가 반 시즌 뛴 지명타자 로베르토 페타지니라는 것에서 볼 수 있듯 야수진이 완벽하게 망했다. 박용택 마저도 WAR 0점대를 기록하는 커리어 로우를 보냈다. 봉중근과 옥스프링이 원투펀치로 분전했지만 소용없었다. 또한 박명환은 부상으로 인해서 완전히 망가졌고 이후로 끝 없는 내리막을 탔다.
결국 2008 시즌을 마치고 구단 내부적으로 대대적인 감사에 들어갔고 수많은 프런트 인사들이 갈려나갔다. 그리고 FA로 정성훈과 이진영을 영입하며 의욕적인 오프시즌을 보냈다.
2009 시즌은 5월초까지는 8연승으로 2위에 오르며 잘나갔다. 그러나 곧바로 급추락하면서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를 제대로 증명했다. 외부 FA 영입 + 박용택의 각성 + 페타지니의 대활약이 더해져 타선은 지난해에 비해 훨씬 강해졌으나 국가대표 에이스 봉중근을 제외한 투수진이 종잇장 수준의 뎁스로 너무나도 허약하여 성적 추락을 피할 수 없었다. 박명환은 복귀한 지 얼마되지 않아 다시 드러누웠고, 지난해 봉중근과 원투 펀치를 이루었던 옥스프링은 WBC 참가 여파로 팔꿈치 부상에 시달리다가 웨이버 공시. 대체 영입한 바우어도 실패, 그의 대체영입 존슨도 실패했다. 후반기에는 조인성과 심수창 배터리의 경기 도중 언쟁 사건, 2군에서 서승화의 후배 이병규 폭행까지 사건사고까지 겹쳤다. 특히나 2009년 한국시리즈에서 KIA의 우승에 가장 크게 공헌한 것이 LG였다. 3위 두산은 13승 6패로 압도적 우세[27]를 점했고, 추격G 본능이 발동되어 SK의 19연승 기간에서 유일하게 무승부를 선사했으며, KIA에는 2승 1무 16패를 당해 승점자판기 노릇을 한 것도 모자라 사이버 투수를 받고 김상현, 박기남을 조공했다. 김상현, 박기남 ↔ 강철민 트레이드 참고. 참고로 LG는 7위보다는 6위를 훨씬 많이 했는데 7G라는 별명이 생긴 것이 바로 베이징과 WBC 및 롯데 자이언츠와 KIA 타이거즈의 호성적 이 세 박자의 여파로 야구팬이 대량 유입된 이 시즌 7위를 한 것이 매우 크게 작용했다. 실제로 한국 프로야구를 통틀어서 6위를 가장 많이 한 구단=LG, 7위를 가장 많이 한 구단=한화, 8위를 가장 많이 한 구단=롯데다.
결국 김재박 감독도 풀지 못하고 재임기간 동안 5-8-7의 망신스런 모습만 보여주다 3년 임기를 마쳤고 8888577에 버금가는 비밀번호인 6668587이 완성된다. 그나마 여기서 마무리 지었으면 좀 나았을 텐데 밑에는 더 밑이 있다는 걸 보여주게 된다.
3.4. 2010년
김재박 감독의 뒤를 이어 두산 베어스 2군 감독 출신의 신임 박종훈 감독이 취임하였는데[28] 2010 시즌에는 이 저주를 풀 수 있을지 주목되었으나 역시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 그리고 2010년에 6위로 마무리. 이로써 KBO 최초 8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가 확정됐다. 종전 기록은 1982~1988년 삼미-청보-태평양과 2001~2007년 롯데의 7년이다.3.5. 2011년 : 30승 선착, 그 이후 DTD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 | 참고로 3위를 기록한 현대 유니콘스도 페넌트레이스에서는 2위였다. |
2011 시즌에는 공동 1위도 하면서 "유광잠바 준비하세요"라는 설레발까지 쳤다. 유광잠바가 뭔고 하니 최종우승팀을 가리는 포스트시즌 시기쯤(가을)엔 날씨가 쌀쌀하기 때문에 다들 긴팔이나 잠바 입고 오고 특히 열성적으로 응원하시는 분들은 자기가 응원하는 구단의 잠바를 입고 오며 LG 트윈스는 구단 잠바에 광을 넣었기에 특별히 유광잠바라고 칭하는 것이다. 키움 히어로즈가 2019년 포스트시즌부터 유광잠바를 판매하고는 있지만 보통 유광잠바라고 하면 대부분 LG의 유광잠바를 말한다.
5월까지만 해도 2위와 3위를 하다가 6월이 되면서 5위와 승차가 크지 않은(3게임 안밖) 4위를 하며 루징시리즈를 4번 기록하였다. 그리고 8월 3일 SK 와이번스전, 어느 욕만 먹었던 로또에게 역전 끝내기 홈런을 맞으면서 그날 경기를 치르지 않은 롯데와 5위 자리를 바꾸면서 추락…결국 9월 24일 SK 와이번스에 패배하면서 트래직 넘버 소멸. 9자리수 비밀번호를 찍는 것이 확정되었다.
앞서 언급한 유광잠바 자체가 프로야구 비시즌기에 따로 사회인 야구라도 챙겨보지 않는 한 일반인들은 시즌 말에나 잠깐 입어보고 마는 옷인데 이거 미리 사놓으란 얘긴 '너님들 가을에도 야구 볼 수 있음여'라는 뜻. 원래 그렇게 까일만한 얘긴 아니었는데 하필 찬물을 뿌리시는 그분께서 언급하시는 바람에 큰 인기와 더불어 잠바산 호갱들의 원망을 이끌냈었다. 참고링크
가을야구는 어차피 물건너간 상황에 5위 자리라도 지켜서 체면치레를 하고자 했건만 이마저도 하위팀인 두산[29]과 한화의 맹추격[30]으로 결국 지켜낼 수 없었다. 10월 2일, 한화와 두산의 연이은 선전. 그리고 4강 최종 패배의 후유증으로 인해 사기가 극도로 떨어진 LG의 연패로 5~7위간 승차도 줄어들면서 결국 두산이 단독 5위에 올라섰고, LG는 6위로 추락. 한화가 공동 6위로 넥센과 LG 사이에 있기 때문에 서울 연고 3팀이 하위권 5, 6, 8위에서 붙어있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2011년 10월 3일 7점 먹고 두산에게 3연패 스윕 당하며 7위로 추락. 급기야 7G까지 내려가 버리고 말았다. 이날 경기가 끝나기 전부터 카운트다운(…)을 세던 야구 갤러리는 결국 폭발했다.[31] 더불어 7의 향연에 세븐 갤러리가 안 털렸을 리가 없다.
두산은 마지막 경기 상대가 최하위 넥센이고 LG는 매직넘버 찍고도 SK를 절대 봐주지 않은 삼성이었다. 결국 류중일 감독의 봐주지 않는 총력전 때문에 2011년 마지막 3연전을 1승 1무 1패로 마감했다. 그나마 한화가 롯데에 3연패를 당해[32] 양 팀 승률은 동률이 되었고, 덕분에 공동 6위로 마감했다. 666858766 비밀번호 완성. 박종훈 감독도 이 날을 마지막으로 사임하면서 미션 실패. LG의 흑역사 감독 계보를 잇게 되었다. 가을야구의 임무는 결국 김기태에게 넘겨졌고 김기태는 한 시즌의 시행착오를 거쳤다.
참고로 9시즌 연속 포스트시즌 실패는 KBO 최초[33]. 30승 선착하고 포스트 시즌 탈락한 것도 KBO 최초[34]. 공동 1위 하다가 7위로 추락한 것도 KBO 최초.[35]최초로 10승 투수 3명 보유하고도 7위로 시즌을 마감할 뻔 하기도 했는데 다행히 그건 면했다. 하지만 10승 투수 3명 보유하고도 가을야구 실패는 2002년 두산 베어스 이후 9년 만의 일이자 KBO 역대 11번째 일이다. 한 시즌 만에 1위부터 7위까지 전부 경험하신 그분들께 애도를 표한다. 넥센이 없었거나 잘 했다면 당시의 모든 순위인 1위부터 8위까지를 다 경험할 뻔했다. 시즌중에 1위를 경험하고도 DTD에 걸려 결국 비밀번호 연장이 확정되자 답답한 마음을 몰락 패러디로 표현한 영상도 있다.
300만원 내기를 한 사람도 있다. 이 글 쓴 사람은 LG의 최종 순위가 한화보다 위가 된다에 걸었고 상대는 그 반대에 걸었는데 댓글들이 일품이었다. 이 내기는 결국 LG와 한화가 133전 59승 2무 72패(승률 .450)로 동률이 되어 공동 6위를 기록함으로써 아무도 이기지 못했다.[36][37]
3.6. 2012년
2011 시즌 후 FA 자격을 얻은 3인방(송신영, 이택근, 조인성)이 각각 한화, 넥센, SK로 이적한 데다가[38]그나마 신임 감독 김기태의 리더십으로 시즌 초 5할 승률을 계속 수성하기도 하며 정말로 이제는 달라진 모습을 보이나 했지만 6월 22일부터 롯데 자이언츠와 KIA 타이거즈에게 연속 스윕패를 당하면서 5할 승률마저 무너지고, 그 결과 6월 29일에는 7위까지 떨어지고 말았다. 이 연속 스윕패가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 셈. 그래도, 7월까지는 반등할 가능성이 있었으나, 기회를 좀처럼 잡지 못하고 계속 하위권을 맴돌았다.
8월 들어서 계속 하락세를 유지하더니, 9월 초에 이르러 당시 4위인 두산과 게임차가 벌어지면서 대부분의 팬들은 비밀번호 갱신이 사실상 확정되었다고 낙담했다. 심지어, 9월 중순에는 당시 꼴지인 한화와의 게임차가 2.5게임까지 줄어들면서 8을 붙이는 거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결국 2012년 9월 24일에 트래직 넘버가 소멸했다.[39] 이날 LG는 SK를 상대로 승리했으나 두산이 한화에 승리하는 순간 LG의 트래직 넘버는 0이 되었다.[40] 이날 기준으로 한화와는 3게임 차이밖에 나지 않아 꼴찌로 떨어질 걱정까지 했지만, 한화의 탈꼴찌 트래직 넘버가 10월 1일 소멸함에 따라 일단 8이 붙는 것은 모면하게 되었다. 그러나, 역시 6위 넥센을 뒤집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어 비밀번호의 10번째 자리는 7로 확정되었다. 6668587667이 완성되었다. 결국 전력 출혈로 생긴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면서 시즌을 마감했다.
이로써 LG 트윈스는 KBO 30년 역사 동안 최초로 10자릿수 비밀번호의 대기록을 수립하였다.
4. 2013년 : 비밀번호 탈출
4.1. 정규시즌
2013 시즌이 개막하고 4월까지는 5할 승률 및 4위권 언저리에서 놀며 봄의 LG는 여전하다는 걸 증명했으나, 5월이 시작하자마자 부진한 성적으로 일찌감치 비밀번호를 한 자리 더 늘리는 것인가 하는 여론이 팬들 및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드리웠다. 그러나 여름이 오면서 진격의 LG를 시전, 드디어 비밀번호 봉인이 해제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특히 6월에는 위닝시리즈를 반복하면서, 한화와 넥센을 스윕하기도 하는 등 대단히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그리고 운명의 8월, 무려 18년 만의 6할 승률과 더불어 선두 삼성을 0~2게임 차로 바짝 쫓으며 2위까지 올라섰다. 큰 이변이 없는 한 LG의 포스트시즌 진출은 확정적이다. 그리고 이 항목의 이름이 바뀌는 일은 2013년을 마지막으로 드디어 끝났다.
8월 20일에는 넥센과의 경기에서 승리하고 기존 1위였던 삼성이 SK에게 패배했다. 그리고 삼성을 누르고 단독 1위를 탈환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일일천하라고 했던가, 8월 21일에 넥센에 패하고 삼성은 SK에 승리하여 하루 만에 2위로 떨어졌다.
하지만 8월 23일에 SK를 상대로 역전승을 거두며 시즌 60승 고지에 선착했다. 프로야구 역사상 60승 고지를 선점한 팀이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리고 30승 선착하고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던 2011년의 일이 재현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힘이 빠졌는지 6~7월의 대진격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추락하지도 않았다.
9월 4일 SK에 이병규의 끝내기로 승리하고 삼성이 KIA에 2연속 고춧가루 세례를 당하며 15일만에 다시 1위에 등극했다. 그 1위는 9월 20일 두산과의 경기 전까지 유지했다.
9월 18일 SK를 이기면서 SK를 6위로 다시 끌어내린 동시에 LG의 4강 매직넘버가 2가 되어서, 가을야구에 한걸음 더 다가서고 6668587667을 끝내버릴 기회를 잡게 되었다.
9월 20일 두산 베어스에게 패배해서 1위에서 밀려나고 다시는 올라가지 못했지만, 이틀 뒤인 9월 22일, NC를 이기고 넥센이 5위 롯데에 승리하면서 4강 매직넘버가 전부 소멸되었고,[41] 11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이 확정되면서 11년 동안의 기나긴 암흑기가 끝이 났다.
하지만 그 이후의 부진으로 인해 2013년 LG는 70승에 선착하고도 우승을 하지 못한 기록을 4번째로 세우게 되었다.[42][43]
10월 5일 두산과의 최종전에서 5:2로 승리하고 같은시각 한화가 넥센을 2:1로 잡으며 정규시즌 2위가 되어 16년만에 플레이오프에 직행하였다!!!
4.2. 플레이오프
하지만 6668587667의 뒤를 잇는 수는 2013년 10월 20일 LG가 두산과의 PO 4차전에서 패배하여 시리즈 전적 1승 3패로 KS 진출이 좌절되어, 두산이 한국시리즈에 진출해서 최소 최종 순위 2위를 확보함에 따라 3이 되었다.[44]그래도 10년의 암흑기를 탈출하여 가을에도 야구를 한 것은 큰 성과이며 향후 강팀으로 나아갈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기에 2013년은 성공적인 시즌이라 할 수 있겠다.
5. 비밀번호 탈출 이후
비밀번호를 탈출한 2013년 이후 LG는 11년 동안 349468444313의 최종 순위를 기록, 9번의 가을야구를 경험함으로써, 가을야구에서 경험치를 풍부하게 쌓은 상위권의 팀이 되는 데 성공하였으며, 이때 쌓은 경험치는 오랜 한을 푸는 밑거름이 되었다.다만 가을야구를 간 2014년과 2016년은 4위라는 순위와는 별개로 승률이 썩 좋은 편은 아니었는데, 2014년에는 0.492의 승률로 5할이 되지 않았음에도 9팀 중 4위를 기록하였고, 2016년에는 딱 5할의 승률로 10팀 중 4위를 기록하였다. 2013년 두산이 0.568의 승률로 9팀 중 4위, 2012년 롯데가 .511의 승률로 8팀 중 4위를 한 것을 생각해보면 2014년과 2016년 LG의 정규시즌 4위에는 운도 분명 따랐음도 부정할 수 없다.
실제로 2014년 시즌과 2016년 시즌 모두 1, 2위가 압도적으로 치고나갔으며[45], 그 때문에 중위권의 승률 디플레이션이 일어나서 중위권끼리는 서로 물고 물리며, 중위권 중 간발의 차이로 높은 승률을 기록한 LG가 가을야구에 진출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중위권에서 혼전이 일어났을 때 간발의 차이로 이긴 것이 실력이라면 실력이라 할 수 있지만, 그것보다는 최소 5할 3푼정도의 승률로 6위와의 충분한 거리를 벌리며 안정적으로 가을야구를 가는 것이 훨씬 더 강한 팀이라는 것은 이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물론 그 이후 두 번 모두 업셋을 해서 플레이오프까지 오른 걸 보면 운이 아니라 실력이라는 것이 증명이 되었다
물론 그 이후 2017년엔 막판에 DTD를 하면서, 2018년엔 두산전 1승 15패란 불명예를 만들며 DTD를 했지만, 그 이후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연속으로 가을야구 진출을 하며 강팀에 안착하였고 2023년에는 통합 우승을 함으로써 10년간의 암흑기는 어두운 과거로만 기억이 되게 되었고 2019-2023 5년동안 가장 높은 승를로 20년대 최고의 강팀으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2024년에도 가을야구에 진출하면서 6연속 가을야구에 진출하는 게 확정, 이제 명실상부한 강팀이 되었다.
5.1. 2014년 : 2연속 플레이오프 진출
전년도 페넌트레이스 2위라는 호성적을 바탕으로 겨울 FA 시장에서도 거물급 매물의 영입은 없었지만 온전한 전력 보전에는 성공했기 때문에, 전문가들이나 야구 팬들이나 2014년의 LG를 더욱 기대하는 사람이 많았다.[46]하지만 스프링캠프 외국인 선수 인선 과정에서 다소 삐걱하는 등 복선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시즌이 개막하자마자 LG는 끝없는 패배로 순식간에 최하위로 굴러떨어졌다. 전년도 LG의 돌풍의 주역이었던 김기태 감독은 4월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도 무책임하게 자진사퇴를 해버렸고, 선수단은 사령탑 없이 5월 초까지 어떻게든 버텨야 했다.
그런 와중 5월 신임 감독으로 양상문이 부임된다는 소식이 밝혀지고, LG는 조금씩 달라졌다. 부임 초창기에는 여전히 다소 삐걱거리며 -16이라는 승패마진을 기록하며 포스트시즌은 고사하고 최하위 탈출부터 해야 하는 처지였지만, 그 이후부터 거의 3주 간격으로 순위를 한 계단씩 끌어올리며[47] 8월 21일 결국 4위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 이후 롯데, 두산, SK의 맹렬한 추격을 받았지만 4위 자리를 한번도 내주지 않았고, 추가로 10월 9일 KIA전에서는 0:6을 7:6으로 뒤집는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며 5할 승률까지 맞췄었다. 이후 최종전인 10월 17일 LG는 롯데에게 패배했으나 5위인 SK도 넥센에게 패하면서, LG는 2년 연속으로 가을야구 초대권을 받았다.
이해 가을야구에 성공한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비밀번호 탈출 이후 다시금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기록을 쌓고 있는 2018년 이후 롯데나 2019년 이후의 한화의 행보를 LG가 먼저 했을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5.1.1. 준플레이오프
10월 17일 최종전 이후 이틀 뒤 곧바로 준플레이오프가 진행되었기에 서울로 돌아가 휴식하지도 못한 채 창원에서 3위 NC를 만났는데, 예상외로 LG가 경험 부재를 안고 있었던 NC를 3승 1패로 꺾으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5.1.2. 플레이오프
2위 넥센을 만나서 2차전까지는 매우 대등한 경기력을 선보여 목동에서 1승 1패를 했으나, 정작 홈으로 돌아온 뒤에는 타선의 파괴력 차이가 드러나 내리 연패, 1승 3패로 패하며 끝이 났다.5.2. 2015년 : 처음부터 끝까지 9위
감동의 2014 시즌이 끝났고 2년 연속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지만 그 이면에는 차기 시즌을 위한 선택의 기로가 기다리고 있었다. 더 높은 성적을 위해 올라갈지, 아니면 노쇠화된 팀을 바로 잡는 리빌딩을 선택할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 해의 LG는 그렇게 높은 평을 받지는 못했다. 게다가 kt의 1군 합류로 10구단 체제가 되어 9구단 시절의 휴식일이 사라지고 월요일 빼고 144경기를 치르는 혹독한 일정이 되면서 베테랑 의존도가 높은 팀에 대한 전망은 좋지 않았다.그리고 시즌이 시작하자 예측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그동안 팀을 지탱해준 이진영, 이병규, 박용택, 봉중근 등이 줄줄이 부상 및 부진하는 모습을 보이고, 류제국과 우규민도 시즌 전 부상 치료를 위해 팀 전열에서 이탈한 것. 또한 지난해 4번타자였던 작은 이병규가 담 증세 여파로 제 컨디션이 아니었고, 외국인 선수는 소사가 에이스 노릇하며 중심을 잡아줄 뿐 나머지는 아쉬웠다. 한나한은 부상에 시달렸으며 탱킹팀 휴스턴 10승 경력의 루카스는 시즌초 구위는 뛰어나나 제구와 멘탈이 아쉬워 팀의 골칫거리는 한둘이 아니었다. LG는 개막부터 4월까지는 5할 승률을 유지하며 근근히 버텼지만 5월이 시작하자마자 내리 7연패를 기록하며 결국 팀은 강제적으로 리빌딩에 나섰다.
하지만 그 과정도 마냥 쉽지는 않았다. LG는 이미 10년이나 지속된 암흑기를 탈출한지 얼마 안된 상태라 여전히 팜 시스템은 박살이 나있었기 때문에 리빌딩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여름을 거치면서 양석환, 유강남, 서상우, 윤지웅, 임정우, 오지환, 트레이드로 영입한 진해수와 임훈 등이 확실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외국인 선수들인 소사, 루카스, 히메네스도 평균 이상의 활약을 보이며 성적은 9위로 마치면서 굴욕적인 시즌을 기록했지만 팀이 꽤 짜임새가 있어지며 리빌딩에 대한 조그마한 희망은 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2차드래프트에서 주장이었던 베테랑 이진영을 kt에 내주며 이별을 고하고 큰 이병규를 다음해 팀 구상에서 배제하며 팀의 리빌딩 기조를 확실히 했다. 그리고 다음해 마무리투수로 임정우를 낙점했다.
5.3. 2016년 : 2년만의 플레이오프 진출
이미 전년도에 리빌딩을 선언한 팀 사정상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LG거 높은 순위를 기록하지는 못할 것으로 예측하고 당시 사령탑인 양상문도 투타에서 새로운 옥석을 발굴하는 것을 주 목적으로 스프링캠프를 진행했기에 이 해 LG의 스토브리그는 상당히 조용했다.그리고 9년 만의 홈 개막전으로 시즌을 시작한 LG는 4월과 5월 내내 5할 승률을 철저히 마크하며 나름대로 선전하는 흐름을 보여왔다. 그러나 6월부터 전력의 밑천이 드러나기 시작하며 4위에서 8위까지 굴러떨어진 채 후반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 때 극성 LG팬들은 양상문 감독의 선수 기용에 반발해 퇴진 현수막까지 들고 왔을 지경.
그런데 8월부터 신진급 선수들의 성장과 기존 전력의 부활, 거기에 단단해진 마운드를 바탕으로 14년 만의 9연승을 질주해 순식간에 포스트시즌 경쟁에 뛰어들었으며, 그 와중에도 여러가지 시행착오들이 이어졌으나 9월 들어 중요한 경기에서 승리를 연달아 따냈고, 결국 -14라는 승패마진을 완전히 극복하고 5할 승률 및 정규시즌 4위를 기록하며 극적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5.3.1. 와일드카드
KIA와의 1차전에서 2-4로 패한 뒤, 2차전에서 9회초까지 0-0 팽팽한 승부를 하다가 막판에 희생 플라이를 치면서 준플레이오프에 들어왔다.5.3.2. 준플레이오프
3위 넥센과 붙어서 3승 1패로 이기면서 업셋, 2년 전의 복수를 하는데 성공했다.5.3.3. 플레이오프
2위 NC와 만나서 1승 3패로 패하면서 가을야구를 마무리했다. 다만 이긴 3차전이 졸전이였다.5.4. 2017년 : 막판의 DTD
지난해 후반기의 호성적으로 기적을 만들어낸 것에 고무된 LG는 차우찬을 거액에 FA로 영입하며 양상문 감독의 임기 마지막 해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개막 이후 파죽의 6연승을 달릴 때만 해도 기세가 좋았으나 수많은 악재들이 연쇄적으로 발생하면서 LG는 표류하기 시작했다. 슈퍼에이스 데이비드 허프와 지난해 마무리 임정우의 부상 이탈, 지난해에 활약한 젊은 야수들의 집단 부진, 외국인 타자 히메네스의 부진과 부상 끝에 웨이버 공시, 대체자 제임스 로니의 무단이탈 사태, 윤지웅의 음주운전 등 악재들이 끊이지 않았다. 여기에 양상문 감독조차 임기말 성적에 대한 조급증 때문인지 집단 마무리 및 이닝 쪼개기를 고집하면서 전반기에 잘 버티던 불펜들도 후반기 들어 방화범 집단이 되었다. 시즌을 치르면 치를수록 LG는 순위싸움을 이어갈 동력이 떨어졌으며 결국 팀 ERA 1위를 찍고도 6위로 포스트시즌조차 나가지 못하는 최악의 결말로 시즌을 마치게 되었다. 한국 나이로 40이 코앞인 박용택이 시즌 내내 홀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17홈런을 기록한 유강남 정도를 제외하면 젊은 야수들의 성장세는 더뎌 팬들에게 지난 수 년간 외쳐온 리빌딩의 성과에 대하여 의문이 들게 하였다. 양상문 감독의 임기는 이 해로 끝났지만 시즌을 마친 뒤 단장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류중일 체제가 막을 올리게 되었다.그리고 양상문이 단장이 되자마자 팬들에게 준 프랜차이즈 선수 대우를 받는 베테랑 정성훈이 방출 통보를 받고, 2차 드래프트에서 손주인 등이 팀을 떠나면서 많은 팬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선사했다. 물론 LG 트윈스의 운명을 뒤바꾸는 영입이라고 평가받는 김현수를 FA로 115억 원이라는 거액에 영입했지만..
5.5. 2018년 : 느그프 LG판
초반의 선전과 후반의 추락으로 요약이 된다. 사실 초반부터도 8연승 후 8연패를 기록하는 등 경기력 자체가 기복이 심했다가 초여름 들어 안정세를 기록했는데, 후반기에 기야말로 기록적인 DTD를 기록하며 8위까지 떨어졌다. 그리고 두산전 1승 15패란 불명예까지 만든 건 덤이다.[48]5.6. 2019년 : 3년만의 복귀
많은 전문가들에게 하위권 예상을 받았었던 것과는 달리 시즌 내내 중위권에서 순항했다. 투수진의 기량이 돌아오자 투타 밸런스가 자연스럽게 맞아가면서 팀이 안정됐고, 여름에도 추락하지 않고 버티는 원동력이 되었다. 시즌 말미에는 투수진이 불안해지자 야수진이 힘내주기도. 정규시즌 4위 및 팀 역대 단일 시즌 승수 2위를 기록하며 가을야구에 넉넉히 진출했다.5.6.1. 와일드카드
NC와의 1차전에서 1-3으로 승리를 거뒀다.5.6.2. 준플레이오프
3위 키움을 만나서 또 1승 3패를 거두면서 가을야구를 마무리 했다.5.7. 2020년 : 막판의 추락, 2연속 가을야구 진출
LG에게 가장 아쉬웠던 시즌인데, 막판 SK와 한화전에서 적어도 1경기라도 이겼다면 적어도 3위는 지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판에 2경기를 모두 패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이뤄지면서 결국 가을야구에 진출은 했으나, 와일드카드에서 시작을 해야 했다.5.7.1. 와일드카드
키움과 와일드카드 전에서 만나서 13회까지 간 끝에 끝내기 안타로 승리를 거뒀다.5.7.2. 준플레이오프
3위 두산을 만나서 0승 2패로 피스윕을 당했다.5.8. 2021년 : 또 막판의 추락, 3연속 가을야구 진출
위의 2020년과 같이 LG에게 아쉬웠던 시즌, 막판까지 삼성과 kt와 같이 정규리그 우승 쟁탈전을 했으나, 10월 28일 한화를 상대로 무승부를 거둠으로써 정규리그 우승 실패가 임박했고 그 뒤 롯데 자이언츠에게 이겼으나 그 다음날 롯데에게 짐으로써 1.5게임차 3위로 끝이 났다.5.8.1. 준플레이오프
와일드카드에서 키움을 격파한 4위 두산을 만나 1승 2패를 하면서 업셋당했다.5.9. 2022년 : 오랜만의 6할, 4연속 가을야구 진출, 그런데...
최종성적 87승 2무 55패로 27년만의 6할을 만드는 건 물론, 9년만의 2위도 성공하였고, 잠실 라이벌 두산 상대로 10승 6패를 하면서 두산 상대의 열세를 극복하는 데엔 성공을 하였다.5.9.1. 플레이오프
4위 kt와 5차전까지 간 3위 키움을 만나서 또또 1승 3패를 하면서 업셋당했다.5.10. 2023년 : 5연속 가을야구 진출, 29년만의 통합 우승
2023년에는 2020년대부터 두각을 드러낸 홍창기, 박해민, 문보경, 문성주 등이 굳건했고 FA로 거포포수 박동원 영입, 주전 2루수 신민재의 발견, 그리고 오스틴 딘이 고질병이었던 외국인 타자 부진 징크스를 떨쳐내고 대활약하면서 10월 3일, 29년만의 정규리그 우승 + 29년만의 한국시리즈 직행 + 21년만의 한국시리즈 진출을 일궈냈다. 2014년 넥센 감독 시절과 2019년 SK 감독 시절에 이루지못한 염경엽 감독의 커리어 첫 KS 직행이기도 하다.5.10.1. 한국시리즈
어메이징한 상승 끝에 플레이오프에서 NC 상대로 리버스 스윕으로 꺾으면서 한국시리즈에 오른 kt를 만나게 되었다.1차전에선 kt에게 패했지만, 그 이후 4연승을 하면서 마침내 2023년 11월 13일 2023년 한국시리즈에서 결국 우승하면서 29년만의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49]
어쩌다 보니 예전 LG의 멸칭이였던 겨울쥐가 다시 주목받게 되었는데, 4연승을 내달린 2차전부터 절기상 겨울의 시작인 입동이어서 긍정적인 의미의 겨울쥐가 되어버렸다.(...) 이후에도 LG가 우승하려면 정규시즌 때 최대한 성적을 뽑아내고 포스트시즌때 입동을 넘겨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5.11. 2024년 : 창단 첫 6연속 가을야구 진출
한때 1위까지 올라갔지만[51], 후반에 5할에 약간 모자란 승률을 내면서 3위까지 내려갔다. 9월에는 4위에도 쫓기는 신세가 되며 DTD의 조짐이 보이기도 했지만 여기서 안정적으로 승수를 쌓은 덕분에 가을야구 진출은 물론 준PO 직행에 성공하였다.5.11.1. 준플레이오프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정규리그 5위 kt가 4위 두산을 업셋하는 이변을 일으키고 준플레이오프에서 LG를 상대하게 되었다.- 1차전에서는 9회말 2사 1루 김대원의 끝내기 도루실패로 kt에 3:2로 패배하며 첫 승을 내줬다.
- 2차전에서는 6회말 1사 만루 찬스에서 신민재의 적시타와 kt 좌익수 김민혁의 실책이 이어져 3점을 벌렸고, 그대로 2:7 승리를 거뒀다.
- 3차전에서는 초반 수비 미스가 발생하며 kt에게 끌려갔지만 5회 오스틴의 역전 3점 홈런으로 경기를 뒤집었고 그 점수차를 그대로 지키며 6:5로 승리했다.
- 4차전에서는 김현수-박해민의 백투백 홈런을 앞세워 준플레이오프를 조기결착 짓나 했지만 금세 kt에게 역전을 허용, 8회에는 끝끝내 동점을 만들며 희망을 이어갔으나 11회말 2사 만루에서 희대의 데칼코마니 수비로 인해 6:5로 패배하여 5차전까지 가게 되었다.
- 5차전에서는 임찬규의 6이닝 무실점 호투를 바탕으로 타선 또한 초반부터 부족함 없이 점수를 내어 4:1로 승리, 플레이오프 진출과 더불어 2002년 한국시리즈 이후 22년 만에 삼성을 만나러 대구로 떠나게 되었다.
5.11.2. 플레이오프
2021년 이후 3년 만에 정규시즌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직행한 삼성과 맞붙게 되었다. 하지만 거기서 1승 3패로 패하며 플레이오프에서 끝났다.- 1차전에서는 가을의 악몽 최원태가 여지없이 라이온즈 파크에서 두들겨 맞으며 경기가 완전히 꼬이며 10:4로 패배했다.
- 2차전에서도 선발 손주영을 포함해 삼성 타선에게 무려 홈런 5방을 허용하며 10:5로 패배하여 속절없이 2연패를 당했다.
- 3차전에서는 선발 임찬규와 에르난데스가 무려 9이닝 무실점[52]을 합작, 타선은 여전히 신통치 않았으나 5회말 홍창기의 희생플라이가 결승점이 되며 1:0으로 신승을 거두며 기사회생했다.
- 4차전에서는 선발 엔스가 6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9일 휴식 효과를 톡톡히 봤으나 적시에 터지는 타선의 부진으로 8회 강민호에게 결승 홈런을 맞고 1:0으로 패배해 시즌이 그대로 끝났다.
6. 문제점 분석
2009~2012 시즌 성적에 가장 큰 특징이 있다면, 4월에는 순위가 오르다가 5~6월 들어 순위가 내려가고 비밀번호를 연장한다는 점이다. 즉 처음에는 1위도 했다, 2위도 했다 그러다가 시즌 끝나면 순위는 잘 해봐야 5위고 보통 6~7위 정도. 이런 패턴이 10년 동안이나 쭉 이어져왔고, 특단의 조치가 없는 이상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2012년마저도 비밀번호를 찍으면서 미국과 일본에선 했지만 한국에선 그 누구도 달성하지 못한 대망의 열 자릿수 비밀번호 완성.그런데 미국에서는 1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팀 16개 중 20자리 비밀번호를 작성하지 않은 팀은 뉴욕 양키스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밖에 없다. 이유야 당연히 메이저리그 초창기에는 리그 팀 중 절반이 아니라 리그의 페넌트레이스 우승팀만 포스트시즌 진출권을 쥐어줬기 때문. 그래서 사실상 MLB의 20자리 비밀번호보다 이 10자리 비밀번호가 훨씬 불명예스러운 기록이라 봐도 무방하다.
6.1. 부실한 마운드
비밀번호가 만들어진 근본 원인이다. 비밀번호 첫 시즌인 2003년엔 팀 ERA 3.98로 전체 2위를 기록했으나 2004년부터 2011년 4위를 제외하고 단 한 번도 팀 ERA가 4위 안에 들어본 적이 없다. 비밀번호 기간 LG의 팀 ERA 순위는 2-5-8-8-6-8-7-7-4-7이다. 정규시즌 2위로 암흑기에서 탈출한 2013년 팀 ERA 3.72로 전체 1위를 기록한 것을 보면 마운드 부실이 LG 암흑기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단적으로 타격왕 박용택 + 로베르토 페타지니 + FA 영입생 이진영과 정성훈의 존재로 경쟁력 있는 타선을 갖췄던 2009년 마운드 부실 때문에 좀처럼 치고 올라가지 못했고 추격쥐만 양산한 채 DTD하면서 7위로 마쳐야했으며 큰 이병규의 복귀 및 이택근의 트레이드 영입으로 국가대표급 외야수 5명을 갖췄다는 빅5가 있던 2010년에 조인성의 몬스터급 시즌에도 불구하고 6위에 그친 이유 역시 마운드 부실이었다.팀 ERA 2위를 기록한 2003년에는 이닝 1위 + 탈삼진 1위를 기록한 큰 이승호를 축으로 장문석, 전승남, 김광삼, 김광수, 이동현 등 나름 괜찮은 투수진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2004년 이순철 감독의 부임과 함께 레전드이자 투수진의 버팀목이었던 이상훈을 SK로 트레이드로 내보내고 대신 FA로 영입한 진필중이 최악의 모습을 보이면서 이때부터 LG 마운드는 부실해지기 시작했다. 이동현은 2004 시즌 중반 팔꿈치 통증을 호소한 뒤 토미존 수술만 2번을 받으며 5년 동안 LG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토종 선발이 두 축이었던 큰 승호와 장문석은 2004년 이후로 더 이상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둘 다 FA 보상선수와 트레이드로 팀을 떠났다. 2001년 투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마운드의 신데렐라였던 신윤호는 나왔다 하면 불만 지르다가 2007년을 끝으로 방출되었다. 좌완 파이어볼러 서승화는 툭하면 사건사고를 일으키며 사고뭉치가 되었고 꼴랑 2승 23패만 기록하며 2011년을 끝으로 방출되었고, 전승남은 2004년을 끝으로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김광삼은 2005년까지는 그럭저럭 활약하다가 2006년 부상으로 개점휴업했고 타자로 전환해 3년을 보내다가 2010년에 다시 투수로 돌아왔다. 최원호는 2005년 13승을 거둔 것을 빼면 평범한 선발투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으며 유리몸 기질로 인해 1군에서 이탈한 적도 많았다.
2006년 LG가 8개 구단 중 유일한 4점대 ERA를 기록하며 창단 첫 최하위를 차지하는 굴욕 속에 심수창이 10승 투수가 되고 정재복이 ERA 3.58로 선전하며 LG 마운드의 희망으로 떠올랐으나 2007년 김재박 부임 이후 당장의 성적을 위해 마당쇠로 굴리기 시작하면서 꼬이기 시작했다. 결국 심수창은 그저그런 투수로 전락한 끝에 2009년 6월 이후 승리 없이 연패에 빠지다가 2011년 중반 트레이드되었고 정재복은 2009년 선발로 돌아와 두들겨맞은 뒤 부상 및 재활로 1군에서 사라졌다. 2006년 중반부터 마무리 투수가 되며 17세이브를 기록하며 해당 시즌 팀내 투수 WAR 1위에 오른 우규민인 2007년 30세이브를 기록했으나 후반기부터 블론세이브를 남발해 13블론세이브로 아쉬운 모습을 보였고 2008년과 2009년에도 끝내 부진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경찰 야구단에 입대했다. 다행히 우규민은 경찰청에서 선발투수 전환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으며 2012년 마당쇠로 활약한 이후 2013년부터 토종 선발의 한 축이 되며 암흑기 탈출에 앞장섰다.
2007년을 앞두고 두산의 에이스 박명환을 FA로 영입했지만 첫 해인 2007년에만 10승으로 활약한 뒤 2008년부터 부상 및 재활로 2년을 허비해버리며 먹튀로 전락했다. 2010년에 돌아와 4승을 기록한 뒤 부진해 2011년 신연봉제에 의하여 연봉 폭풍세일을 당했고 2012년을 끝으로 방출되었다.
2008년 정찬헌, 이범준, 이형종이 한꺼번에 입단했는데 정찬헌과 이범준은 무너져버린 마운드를 메우기 위해 입단 첫 해부터 억지로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해야 했으며, 정찬헌은 2009 시즌 불펜에서 노예로 혹사당하다가 결국 시즌 중반에 부상으로 이탈해 오랫동안 1군에서 볼 수 없었다. 이범준은 이렇다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다가군복무 이후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렸다. 이형종은 부상으로 2년을 방황하다가 2010년 박종훈 감독과 트러블을 빚은 뒤 잠시 1군에 올라왔다가 부상으로 재이탈했다. 이후 "힘들어 못해먹겠다"는 글을 올리고 잠적해버리며 임의탈퇴 신분이 되었다가 군 복무를 마친 뒤 2013년 LG에 복귀했고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했다.
2011년 벤자민 주키치와 레다메스 리즈 전까지 외국인 투수 중 성공작은 2007년 대체선수로 들어와 2008년 봉중근과 원투펀치를 이루었던 크리스 옥스프링 하나 뿐이었다. 2004년 에드윈 후타도와 대체 외국인 브라이언 쿠퍼, 2005년 레스 왈론드는 실패작이었으며 2006년 아마우리 텔레마코와 매니 아이바는 그야말로 최악의 선택이었다. 텔레마코는 전혀 외국인 투수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방출되었고 마무리 투수로 낙점했던 아이바는 부상을 숨긴 채로 들어와 아예 1군에서 1경기도 등판하지 않고 팀을 떠났다. 대체선수로 버디 카라이어와 라이언 베로커가 들어왔는데 카라이어만 그나마 활약했고 그거마저도 불펜에서의 활약이라 한계가 있었다. 2007년과 2008년을 앞두고 삼성에서 재계약에 실패한 팀 하리칼라와 제이미 브라운을 영입했으나 둘 다 기대 이하의 활약을 보이며 시즌 도중 웨이버공시되었다. 하리칼라의 대체선수로 들어와 활약했던 옥스프링은 2년 연속 재계약에 성공하며 2009년에도 뛰게 되었지만 WBC 대회에서 입은 부상 때문에 개점휴업하다가 결국 웨이버 공시되었으며 그의 대체선수로 영입된 릭 바우어도 부진한 모습을 보이다가 부상으로 퇴출, 그의 대체선수인 제레미 존슨 역시 이렇다할 모습을 보이지 못한 채 팀을 떠났다. 2010년에는 에드가 곤잘레스를 1선발로 낙점하며 영입했으나 0승 6패의 최악의 모습을 보인 채 웨이버 공시되었고 그의 대체선수인 필 더마트레는 국내 선수만도 못한 모습만 보이며 '더맞드레', '쳐맞드레' 라는 별명만 양산했다. 오카모토 신야는 불펜에서 나름 괜찮은 모습이었으나 구위가 뛰어나지 않아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서 재계약에 실패했다.
이 기간 꾸준히 활약했던 선발투수는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년 연속 10승으로 에이스로 활약한 전직 메이저리거 봉중근이었다. 그러다가 2011년에 외국인투수 듀오 주키치와 리즈의 동반 성공에 2010년 트레이드로 영입한 박현준이 토종 에이스로 활약하면서 선발 마운드에 숨통이 트였다. 그 박현준이 2011년 중반 트레이드로 영입된 김성현과 함께 승부조작 혐의로 방출되면서 LG 선발진은 다시 약해지게 되었다. 수술로 2011년 중반 시즌아웃되었던 봉중근은 2012년 선발이 아닌 마무리 투수로 LG에 복귀했다. 그러다가 2013년 리즈가 에이스로 활약하는 가운데 우규민이 사이드암 토종 선발로 자리잡고, 류제국의 등장과 함께 신정락과 신재웅이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토종 선발이 리그에서 경쟁력을 갖추었고 암흑기 탈출의 열쇠가 되었다. 안타까운 점은 에이스로 활약해야 했던 벤자민 주키치가 태업 논란 끝에 최악의 모습을 보이면서 눈앞에 다가온 정규시즌 1위를 아깝게 놓친 점이다.
6.2. 프랜차이즈 베테랑 방출·전력에 보탬 없는 베테랑 수집
2003년 LG 프런트는 이광환 감독에게 구단과 척을 진 이상훈과 김재현, 류지현을 정리하라고 압박했다. 이광환이 이를 거부하자 성적 부진을 빌미로 시즌 후 2군 감독으로 내려보내고 주루코치였던 이순철을 감독으로 내세워 눈엣가시 정리에 나섰다.2003년에는 비록 부진했지만 아직 나이가 32세에 불과했던 류지현은 2004년에는 거의 전력외로 취급되었고 후배들 앞에서 배팅볼을 던져주는 굴욕을 당하며 은퇴를 종용받다가 바로 은퇴했다. 비록 SK와 한화의 오퍼가 있었으나 LG 프랜차이즈로 남겠다며 이적 대신 은퇴를 선택했다. 이상훈은 기타 사건을 빌미로 SK로 트레이드됐다. 이순철이 이 일로 가장 크게 욕먹고 있으나 근본 원인은 이들을 정리하라고 압박을 가한 프런트다. 선수협 활동 및 고관절 각서 사건으로 인해 구단과 마찰을 빚은 김재현은 2004년을 끝으로 FA를 선언했고, 결국 SK로 떠나 왕조를 세우는데 앞장섰다.
이들의 대안이라도 있으면 다행이겠지만 안타깝게도 당시 LG에는 육성 메뉴얼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트레이드 대상자와 FA 보상선수를 선택하는 안목도 꽝이어서 전력에 보탬이 되지 않았다. 또 유망주들의 성장이 더디면서 당장 전력에 활용하기 위해 타 팀에서 퇴물 취급받은 나이 든 선수는 데려오는 우를 범했다. 전성기에서 두 번 이상은 내려온 강상수와 마해영, 최상덕 등을 데려온 것이 대표적이며 이들은 전력에 거의 보탬이 되지 않았다. 위에 언급된 세 명만 하더라도 모두 1~2년도 버티지 못하고 LG를 떠났다.
6.3. 터지지 않는 유망주
6668587667이라는 암흑기 동안 LG에서 부진에 시달렸던 선수와 코치들은 모두 다른 팀에서 빵빵 터졌는데, 대표적으로 이용규, 김상현, 박병호, 박기남,물론 이 선수들은 모두 '언제든 크게 터질 수 있다고' 평가될 정도의 기본 실력을 갖고 있었던 선수들이지만 LG에서는 터지지 않고 1~2군을 오가는 백업으로 머물거나 아예 2군 생활을 주로 하다가 타 팀에 가자마자 터졌다.
혹은 박경수, 정의윤처럼 1군에 머물더라도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성적을 보이다가 팀을 옮기자마자 대폭발한 경우도 있다. 심지어 저 둘은 팀을 탈출한 뒤로, 각각 2021년과 2018년에 우승반지까지 받았다.
한 두번이면 우연이라고 하겠지만, 오랜 암흑기 동안 이런 사례가 반복된다는 것은 LG 트윈스의 신인 육성 및 선수 기용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2002년의 박용택을 끝으로 신인이 데뷔 시즌에 1군의 주요 전력으로 자리 잡는 경우가 없었다.[55]
리빌딩인지 윈나우인지 불확실한 팀의 스탠스와 함께 긴 호흡을 가지고 기다려주어야 했던 유망주들에게 1군에서 당장의 성적을 요구했다.[56] 그들이 성장하는 동안 1군에서 버텨주고 유망주들에게 큰 조언을 줄 수 있었던 주축 선수들은 프런트와 척을 지거나 조금만 부진해도 가차 없이 내쳐버리면서 올바른 육성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거포를 영입해놔도, 소총수로 만들어버리는 짓거리들을 저지르고, 결국 영입은 죄 다 장타 가능성 없는 소총수들로만 채웠다(...) 오죽하면, 김용의처럼 이 시절 트윈스의 상징을 보여준 타자도 있고, 일발장타 기대하기에는 무리에 가깝던 삼진왕 오지환도 있었다.
그래도 고무적인 것은 2020년대 이후로 유망주 육성이 빛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 팀을 꾸준히 강팀으로 유지하고 2023년에 통합우승까지 올려놓는 초석이 되었다.
6.4. 인색한 신인지명
그리고 LG는 2군 선수층이 얇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었는데, 1군 주전 선수들이 부상당하거나 부진할 때 자리를 메꿔줄 수 있는 선수들이 부족해서 리그 중반을 넘어서면서 뒷심이 달리는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물론 후술할 코치진의 능력 등 육성의 문제도 있지만, 신인 지명에 인색했기 때문이기도 하다.2000년대 중반 신인 지명회의에서 LG는(각 년도마다 편차는 있지만) 5라운드 선에서 신인 지명을 그만두다시피하곤 했는데, 심지어 08년 신인 지명회의에서는 4라운드에서 연세대 진학이 확정된 나성범[57]
6.5. 철밥통 코치진
그리고 이 당시 무능한 코칭스텝들이 LG에 있는지라 유망주 성장이 더디고 선수들 실력 하락이 되었다고도 볼 수가 있다.제일 먼저 이순철 감독시기의 1군 메인투수코치는 한화에서 공무원 소리를 듣던 이상군이고 1군 타격코치는 KIA에서 무능하다고 욕을 먹는 것이 연례행사였던 이건열이다. 이 둘 다 크보 최악의 코치로 유명하며 수비코치 김용국 역시 2011년 전까지는 무능한 걸로 한 몫했던 인물로 코치진의 질이 상당히 낮았다.
다만 이순철 초기까지는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던 황병일, 박상열, 박철영 같이 유능한 코칭 스태프들이 있었다. 2005 시즌부터는 그런 거 없었다. 이순철 감독이 껄끄럽다고 친히 2군 투수코치였던 김용수를 잘랐는데, 김용수는 능력이 미묘한 코치이긴 하지만[62] 팀의 레전드를 내치는 게 모양새가 좋지 않을 뿐더러 그 와중에 이순철보다 연배가 높은 코치진들이 싸그리 내쳐졌다. 말년에 구단이 데려온 수석코치 양승호 정도를 빼면 이순철의 코치진들은 하나같이 악평을 받았다.
결국 김재박으로 감독이 바뀐뒤엔 코치들이 또다시 물갈이 되며 육성 시스템이 왔다갔다 하기 시작했다.[63] 2군 감독 김영직, 타격코치 김용달 주루코치 송구홍, 외야수비코치 윤덕규, 투수코치 양상문, 성영재 배터리코치 서효인, 2군 투수코치 김용수. 그러나 이 인물들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무능했다는 점이다. 양상문은 8위 하고서 롯데 2군 감독으로 가버렸지만 대신 올라온 인물이 김용수였다. 김용수도 사람만 좋지 2군 코치 하면서 키운 선수가 없다는 점에서 영 좋지 않았다. [64]
그나마 이 시기에 유능한 코치가 없던 것은 아니다. 배터리 코치인 전종화나 일본인 투수코치인 다카하시 미치타케[65] 정도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소수의 능력자를 제외한 주요 코치진들은 말 그대로 무능했는데, LG 내부사정을 어느 정도 아는 주요 코치진들은 오히려, 선수들을 강하게 지도하지 못하고 순하게만 지도하며 무능함을 보여줬다.[66]
1군만 답이 없는 것은 아니여서, 2군 타격코치 서용빈, 2군 수비코치 유지현으로 유망주들을 못 키우는 인물들이 2군 코치를 하고 있었다.[67] 이 정도면 한화의 코치진 소위 칰무원들하고 다를바가 없다. 특히 김영직, 노찬엽, 서효인, 송구홍은 코치진에 오랫동안 이름을 올렸지만 실적은 아예 없었다. 이제는 쥐무원이란 멸칭으로 불리고 있으며 박종훈으로 감독이 바뀌면서 정진호, 김용수, 김용달, 윤덕규가 잘렸지만 그게 그거라 봐도 무방했다.[68]
거기에 운영팀장에서 현장으로 온 염경엽 수비코치[69], 권명철 투수코치, 윤학길 투수코치가 가세를 해 무능한 코치들로 가득 채워져있었다.
참고로 이 시기에 명 투수코치로 유명한 차명석은 이 시기에 윤학길, 성영재에 밀려서 2군과 재활군을 오가던 코치여서 존재감이 없었다. 그 외에도 허문회 역시 2군코치로 있었는데 구단이 좋아하던 서용빈에게 밀려서 1군에 못 올라왔다.[70]
박종훈 2년차에 윤학길이 롯데 수석코치로 간 것과 김정민이 은퇴하면서 1군 배터리 코치가 되면서 서효인 코치가 잘린 것 까지는 좋았다. 그리고 메인 투코도 최계훈이 새로 부임했다. 그런데 불펜 투코가 권명철이었다.[71]
결국 김기태로 감독이 바뀌면서 염경엽은 넥센 3루코치로 가버렸고 권명철이 두산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성영재가 프런트로, 서용빈이 2군으로 쫓겨났다. 그리고 차명석이 1군 투코로 왔으며 롯데에서 김무관을 1군 타코로 영입했다.
그리고 이걸로는 모자랐는지 김기태 2년차에는 계형철, 신경식, 이홍범, 김민호(전 두산) 등의 능력있는 코치들을 대거 영입하면서 1, 2군 모두 훌륭한 코칭스탭들로 채워졌다.[72] 동시에 김영직과 최원호가 물러났으며[73] 이것이 어찌보면 LG의 4강 진출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74]
23년에 LG가 통합우승할 수 있었던 데에도 선수들의 기량 향상에 도움을 준 유능한 코치들이 있었고 특히 이호준 타격코치의 영입은 팀의 타격 뎁스를 끌어올리는데 기여했다.
6.6. 무사안일 프런트와 나태한 선수단
여기에 LG 트윈스의 진정한 문제점은 감독이 아니라 무사안일한 프런트와 나태한 선수단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실제로 LG에서 부진했던 김재박 전 감독 같은 경우에는 프런트의 적극적인 지원과 더불어 선수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등에 업고 현대 왕조를 건설한 바 있으며 역시 같은 이유로 중도사퇴한 박종훈 전 감독도 두산 화수분 야구의 중심으로 유망주 육성 능력이 탁월한 감독이었다.[75] 2011시즌이 끝나고 방영된 이광용의 옐로우카드에서 한 번 대놓고 특집으로 LG를 디스하는 방송을 내보냈는데 디스의 90%, 아니 99%가 프런트를 향한 것이었다. 방송 내내 비판의 강도가 아주 높았다. 과장 좀 하자면 패밀리 가이와 맞먹을 정도. 더 큰 문제는 방송된 내용 또한 프런트가 저지른 잘못들의 단지 일부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애시당초 이광용 아나운서가 최대한 조심스럽게 말한 거라고 했으니 말 다했다.요약하자면 이재국 스포츠동아 기자[76]의 평이었다. "LG사장은 뭐하러 오는 사람인지 모르겠다. 최소한 야구는 봐야 되는 거 아니냐?" 위에 언급된 야구도 안보시는 LG 트윈스 사장님은 바로 이 분 되시겠다.
위 영상에서 언급된 문제들은 한두가지 문제가 아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바로 프런트라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아래는 위의 영상 요약본.
- 프런트가 문제다. 이재국 당시 LG 담당 기자는 당시 8개 구단중 가장 심각한 프런트라고 평했다.
- 역할분담이 안되어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화보 촬영 문제. 운영팀과 홍보팀이 서로 발이 맞지 않아 헤맸고 애꿎은 선수들만 욕을 먹었다.
- 또한 프런트가 특정인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특히 수장 문제가 심각한데 외부 인사들이 배치가 되고 또한 자주 바뀌는 경향이 심각해 팀의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또한 야구를 모르니 잘못된 정보를 접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사장이 술 먹고 감독에게 주사를 벌이는 어처구니 없는 짓을 저지르는 상황도 연출이 될 정도로 문제라고 한다.
- 이용균 기자에 따르면, 벤자민 주키치의 계약과 관련해 감독은 일주일 시간을 뒀다가 기자들에게 발표를 해 달라는 구단의 요청에 승낙했지만 정작 엉뚱한 데서 먼저 누설하는 바람에 졸지에 감독만 바보[77]가 된 사건이 있었다. 이는 프런트 간에 손발이 안 맞는 걸 의미하기도 하지만 감독의 권위가 얼마나 땅바닥에 떨어졌는지 알 수 있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이용균 기자는 "아무래도 감독은 왕따구나."라고 평했다.
- 수석코치와 감독직에 대해 몇몇 코치진과 프런트와의 커넥션이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의문도 제기했다. 정치적인 분위기가 가장 강한 팀이 LG 트윈스다. 즉 모 기업, 프런트와 코칭스탭에 파벌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 감독에 대한 권위가 없다. 프런트 인사들이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XX아!"거리는 팀이 LG가 유일하다고 한다. 이에 이광용은 삼성이 감독을 존중하는 분위기[78]라 LG는 삼성이 하는 거 반대로 하는 거 아니냐[79]면서 대차게 깠다.
- 이러한 덕아웃, 프런트의 분위기는 선수단에게도 영향을 끼친다고 보인다. 다음시즌에 FA가 되는 모 선수[80]는 100억을 줘도 이팀에선 못뛰겠다라고 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마지막 이광용 아나운서의 마지막 멘트가 굉장히 의미심장했다. LG 트윈스 관계자가 말했다. "LG 트윈스에는 두가지 검은 세력이 존재한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감독을 언제든 갈아치울수 있는 선수단 내의 세력, 역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사장과 단장을 바꿔 끼우려는 프런트 내의 세력. 그 두 세력이 사라지지 않는한 LG 트윈스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 매번 감독에게 전권(全權)을 부여한다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점도 비판했다. 이용균 기자는 이를 두고 전권(前權)과 후권(後權)이 나뉘어져 있다는 식으로 비판했다.
6.7. 팬들의 몰지각함
다수의 LG팬들은 위에서 설명한 문제들만 중요하고 자신들에게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LG가 암흑기를 겪은 데에는 팬들의 지분 역시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김성근 감독 시절인 2002년에 LG팬들은 공식 홈페이지 쌍둥이 마당에 김성근 감독이 기존 스타들이나 박용택 등 엘리트 유망주 대신 최동수, 권용관 같은 무명을 쓴다고 감독과 해당 선수를 계속 욕했다. 특히 유명한 여자 팬은 최동수 등이 뼈가 부러지라는 저주를 쌍마에 올릴 정도였다. 그리고 이들은 매일 같이 '신바람 야구', 'LG 다운 야구', '이기는 것보다는 지더라도 납득이 되는 야구', '예상 가능한 오더[81]의 야구'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승리하나 패배하나 앵무새처럼 떠벌렸고, 준우승을 한 후에도 그런 비판이 전혀 수그러들지 않았다.
당시는 쌍마는 김성근 감독 옹호파와 비난파(반대파)가 매일 피터지게 싸웠으나, 대체적으로 비난파가 더 강했다. 그래서 어윤태가 새로 프런트 수장으로 부임하면서 이들 LG팬의 의견을 받아들여, 그들이 그렇게 원하고 노래부르던 이광환 감독을 기용한 것이다. 그때 김성근 반대 LG팬들은 자기들이 그렇게 원하는 신바람 야구가 구현되게 되었다며, 어윤태와 이광환 감독 체제를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그리고 당시 LG팬들 중 김성근 찬성파들 중 많은 수가 LG에 실망해 떠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LG 10년 저주의 가장 큰 원인은 2002년 무리한 혹사로 투수진을 박살낸 김성근[82]과 또한 이 시기 두각을 나타낸 최동수 등의 무명 출신 선수들을 증오한 LG팬들이다. 최동수가 그 뒤에 서용빈이 하락세를 탐과 동시에 유명 선수로 성장하고서 다른 박병호 같은 2군급 선수가 1루에서 삽질을 하면 똑같은 상황이 일어나기도 했다.
LG의 암흑기가 길어지면서 결국 프런트는 현대 유니콘스 계열의 김재박 사단을 영입하게 되는데 기존에 있던 LG 코치진들과 융화가 잘 되지 못한다는 소문이 돌고, LG팬들 사이에서는 코치들 내에서 파벌이 있다는 루머까지 나돌기 시작했고, 그렇게 되면서 프런트가 팀에 적합한 선수단을 구성하기 보다는 팬들의 눈치를 보면서 여론을 의식하기 시작하면서 암흑기를 더 길어지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의 정점이 된 사건이 염경엽과 김기태 감독 부임 초기의 정치설 논란. 물론 이쪽도 프런트의 책임이 아주 없는 건 아닌게, 이순철 감독 시절에 팀의 레전드를 내친 이후 LG 팬들의 프런트에 대한 불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다행히 2013년 이후로 2시즌 동안 가을야구를 하게 되면서 당분간은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지만 2015년 9위 추락으로 비밀번호 재림을 두려워하는 팬들이 많아졌다. 그러나 투수층이 두터워지면서 보직 재배치만 제대로 해준다면 반등의 여지를 지니고 있으며, 15시즌 가장 큰 문제로 부각된 야수진 고령화 문제는 언젠가는 터질 문제였고,[83] 이들을 대신할 야수 자원들이 본격적으로 나타날 2016년 이후가 도약이냐 추락이냐의 기로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그 뒤로 극성팬들은 프런트를 쥐고 흔들기 보단 맘에 들지 않는 감독이나 단장, 선수에 대한 악플을 달며 스스로 무너지게 만들기도 했다. 2016시즌 채은성, 이천웅 등 기존자원의 발견과 김용의의 각성 등으로 인해 라뱅은 2군에서 4할을 침에도 시즌 마지막까지 1군에 못 올라왔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리가 없어서였다.[84] 2013년 마지막 불꽃 이후로 나름 많은 기회를 받았으나, 그의 OPS는 6할이 간당간당했고 타율은 2할 초반에 그쳤다. 이 정도의 타격 성적이면 2루수나 유격수여도 욕을 먹을 마당에 그는 지명타자로, 타격으로 모든 걸 보여줘야 하는 선수였다. 이렇듯 팀 체질 개선 및 본인의 노쇠화로 라뱅의 자리가 1군에 없었지만 극성팬들은 여전했다. 이병규를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잠실 외야에 '상문아 우리는 네가 부끄럽다'라는 현수막을 걸었고, 이에 당시 주장이던 류제국은 부담스럽다고 인터뷰를 할정도였다. 어처구니 없게도 이 사건 이후로 엘지는 급격히 반등해서 4위를 마크했고 이 극성팬들은 이 해의 성과를 자신들이 선수단과 감독을 정신차리게 했다고 자화자찬하는 중이다. 더욱 어이없게도 이 극성팬들은 이병규가 한창 1군에서 삽을 푸던 2015년엔 양상문이 이병규를 기용한다는 이유로 신나게 깠다.
해가 가도 이들은 변하지 않았는데, 이번엔 정성훈이 처참한 성적을 기록하며 주전 경쟁에서 밀렸지만 이들은 팀의 4번타자인 양석환을 못 마땅해하며 정성훈을 쓰도록 강요했다. 더불어 주전 2루수인 손주인의 나이가 많아서 새로운 자원을 시험하기 위해 강승호, 정주현 등을 테스트했지만 극성팬들은 손주인을 왜 벤치에 두냐고 한탄했다. 덤으로 이들 눈에 띈 또 하나의 선수가 있었는데, 바로 이형종. 2017시즌 4월, 4할이라는 엄청난 성적을 보여주며 리그에서 제일 잘나가기 시작하자, 이들은 당시 소포모어 징크스+삼재+금단현상이라는 극단적 상황에 시달리던 채은성을 2군에 박아놓으라고 악플을 일삼았다. 물론 당시 채은성의 성적은 예년에 비하면 재앙이었던건 맞지만 채은성이 홈런을 치는 날조차 칭찬 한마디 없었으니 그 도가 너무나도 지나쳤다. 이 외에도, 원 포인트 릴리프인 진해수를 왜 우타자 상대 안 시키냐고 까는 등 이진영, 이병규, 정성훈, 손주인 등으로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양상문을 어떻게든 무슨 이유를 들어서든 까는데에 앞장섰고, 그에 대한 평가는 4번의 시즌 중 2번의 가을야구와 팀에 새로운 얼굴들을 비추게 했음에도 이순철과 동급 취급을 당했다. 물론 팀 사기는 박살나서 신나게 롤코를 타다가 DTD로 추락했다.
2018년, 정성훈이 방출되어 KIA로 가고 허프는 일본으로 떠났으며 손주인이 2차 드래프트로 삼성으로 떠나자, 팬들은 그야말로 폭발했다. 이들은 단장으로 영전한 양상문이 김현수의 영입을 성공하던 말던 소사 재계약을 하든 말든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85] 이들은 신임 감독 류중일에게도 불만을 품었다. 부상당한 이형종은 그렇다쳐도 이천웅이 아니라 양상문의 양아들이자 적폐로 둔갑한 채은성이 시범경기 주전 우익수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채은성이 시범경기에서 매 경기 안타행진을 하며 무력시위를 함에도 이들은 채은성에게 꾸준히 악플을 달며 저주를 했고, 실제로 4월까지는 퐁당퐁당으로 좋지 않은 성적을 기록하며 이천웅 주전설이 퍼졌지만 정작 이천웅은 1달 내내 3안타를 치며 부진의 끝을 달렸다.
결국 이 해 채은성이 각성을 하며 팀 역사를 싹다 갈아치웠지만 언제나 이 극성팬들은 이형종과 이천웅이 먼저였다. 덤으로 유강남도 까였는데, 존재조차 하지 않는 투수리드를 탓하며 신나게 터져나가는 투수들을 대신해 까였다.[86] 이 투수진은 LG 팬들에게 그야말로 신과 같은 존재인 차명석에게 키워진 존재들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주전포수인 유강남이 모든 책임을 지고 있으니 정상호를 쓰면 된다는 논리를 폈다. 참고로 16~17시즌 정상호의 WAR은 약 -2였다. 거기에 3루수로 낙점된 가르시아가 드러누워만 있자, 주전 1루수인 양석환이 3루수를 맡게 되었는데 이렇게 되자 팀의 1군급 중 1루를 볼 수 있는 선수는 4명뿐이었다. 김현수, 김용의, 서상우, 김재율. 하지만 서상우의 수비는 극혐이었고, 김재율은 2군에서조차 부진했다.
마침 김현수, 이천웅, 이형종, 채은성 모두 리그에서도 손꼽히는 성적을 기록하자 타선의 화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김현수를 1루로 돌렸다. 하지만 이 일 역시 극성팬들의 타겟이 되었는데, 이는 단순히 국대 좌익수를 1루수로만 쓴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현수가 좌익수로 나가면 1루를 김용의가 보고 이천웅, 이형종, 채은성 중 1명이 벤치를 지켜서 타선의 주포가 한명 사라지고 식물이 하나 들어가는 참사가 발생하는데도 이들은 꾸준히 김현수의 좌익수 기용을 외쳤다. 물론 결과적으로 시즌 막판에 김현수가 1루 수비도중 시즌아웃 되며 이들의 말이 맞았지만 이들은 대안없이 김현수의 좌익수 투입을 주장했다. 그리고 김현수의 부상 이후 서상우와 김용의가 1루를 봤지만 한명은 눈이 썩는 수비를, 한명은 눈이 썩는 타격을 보여주며 또 DTD였다.
2019년에는 양상문 대신 새 단장 차명석이 오자 급속도로 팬들은 프런트의 편을 들었다. 이런 충성심은 백순길, 송구홍, 양상문 시절에도 없었는데, 투수코치로서 능력을 입증했었던 차명석이 아무것도 안 해도 ‘믿습니다 차단장님 충성충성^^7’을 외치며 프런트에 힘을 실었고, 프런트는 장원삼, 심수창, 전민수 등 타팀에서 방출된 선수들을 영입하며 보답했다. 물론 이 중 잘 영입했다 싶은건 전민수와 이성우 뿐. 장원삼은 5선발 후보로 나와 불만 질렀으며 심수창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민수는 다행히도 대타로써 쏠쏠한 활약을 했지만 외야자원이 차고 넘치다 못해 썩는 엘지 입장에선 잉여로운 감이 없잖아 있었다.[87] 이성우는 사람수준도 못 되는 정상호 대신 백업으로써 좋은 활약을 했지만, 이는 또다른 불씨가 되었다. 유강남이 잠시 손 부상으로 자리를 비웠다가 다시 돌아왔지만 타격에서 병살을 양산하고 투수들의 실점이 조금 늘자, 유강남의 리드가 잘못이라 투수가 터지니까 유강남 갖다 팔고 주전으로 39살인 이성우를 쓰자는 극단적인 주장이 힘을 얻었고, 이에 위축된 유강남의 성적은 점점 나락으로 파고 들기도 했으며 정주현 역시 까였는데, 손주인의 뒤를 잇는 주전 2루수인데다가 기복에 따라 5툴과 무툴을 오가는 정주현인데, 결국 못 하는 것만 부각되며 역대 최악의 선수라는 평가를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참고로 19시즌 정주현의 WAR은 양수이지만 18시즌 손주인의 WAR은 -1점대. 채은성은 올해에도 부당하게 까였는데, 전반기 팀내 셋 뿐인 3할타율을 치지만 여전히 4옵션으로 전락한[* 공인구 변화에도 홈런을 9월 18일 기준 지난해와 동일한 13홈런을 기록할 정도로 장타력이 있지만 문제는 클러치 능력. 외야 주전 4인방 중 유일하게 득점권 타율이 3할 미만이다.
2022년 플레이오프에서 최악의 졸전으로 1승 후 3연패로 키움에 업셋을 당해 구본능 구단주 대행의 극대노를 유발하여 류지현과 재계약을 하지 않고, 염경엽을 새로운 감독으로 임명하자 이에 극성팬들은 LG 야구 망했다며 저주를 퍼부었다. 11년 전인 2011년 자신들이 퍼뜨린 온갖 악성 루머로 LG에서 떠나게 만든 염경엽 감독을 상대로는 커뮤니티 등을 통해 온갖 악담을 퍼붓기도. 심지어 LG가 선두 경쟁을 하고 단독 선두를 달리고 있어도 주루&작전 미스 등으로 조금이라도 꼬투리 잡히면 온갖 비난을 퍼부어댔고 과연 진정 LG팬이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팀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88] 패배주의적인 글들을 마구 생산해냈다. 그러나 염경엽 체제의 LG가 시즌 중 맞이한 온갖 악재들을 극복하고 강력한 전력을 기반으로 강한 뒷심과 위닝 멘탈리티를 동원해 2023년 29년 만에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이룬데 이어 한국시리즈에서 1패 후 4연승으로 통합우승까지 성공시키면서 진정한 야알못은 극성팬이라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심지어 2023년 한국시리즈 우승 후 선수단의 우승 축하 행사에도 일부 몰상식한 관중이 난입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7. 유사한 비밀번호 사례
7.1. 목록
- 롯데 자이언츠의 8888577과 7A78877: 한 때 LG의 비밀번호와 쌍벽을 이뤘었던 비밀번호이자, 2024년 현재는 한화의 비밀번호와 쌍벽을 이루는 비밀번호. 1992년 마지막 우승 이후 암흑기 이전인 2000년까지만 해도 가을야구에 3번 진출해 그 중에 준우승을 2번[89]한 어느 정도 강팀이였고 2008년 1차 암흑기 청산 이후만 해도 5연속 가을야구 진출에 플레이오프만 2번 두드린 가을야구 단골팀이였지만, 그 이후 2013년-2023년까진 11년 동안 단 1번만 가을야구에 나가는 약팀이 되었고, 결국 2차 비밀번호까지 만들어냈다. 게다가 이 중에서 유일하게 우승 공백이 30년을 넘고, 한국시리즈 진출 공백도 20년이 넘는 팀이다.
- 한화 이글스의 5886899678: 2023년 현재 기준 위의 롯데와 같이 쌍벽을 이루는 비밀번호, 한화는 1999년 첫 우승 이후부터 암흑기 시작전인 2007년까지만 해도 가을야구에 4번 나가고, 그 중에 1번은 준우승을 했던 어느 정도 중상위권 팀이였지만, 10년 간의 암흑기 청산 이후 가을야구 진출이 단 1번밖에 없으며, 그 뒤엔 9위 - 3연꼴 - 9위란 성적을 만들어 내며 2차 비밀번호가 유력한 구단이다. 그나마 롯데보다 다행인 건 21세기에 한 번이라도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는 점 정도밖에 없다.
8. 관련 문서
9. 둘러보기
KBO 리그 역대 비밀번호 목록 | ||
구단 | 비밀번호 | 기간 |
태평양 돌핀스 | 6366677 | 1982~1988년 |
롯데 자이언츠 | 8888577 | 2001~2007년 |
LG 트윈스 | 6668587667 | 2003~2012년 |
한화 이글스 | 5886899678 | 2008~2017년 |
롯데 자이언츠 | 7A78877 | 2018년~진행 중 |
[1] 1995년산 오키나와 아와모리 소주로, 43도로 꽤 독하다. 증발과 오염에만 신경써준다면 100년 이상 보관 가능하다. 자세한 내용은 증류주 참조. 그런데 2020년 중앙일보 기사에 따르면 보관을 잘못했는지 술이 거의 증발해 버려서 2017년에 새로 채웠지만 2023년 시점에선 대부분 증발해버렸다고 한다.[2] 다행히도 술은 어느 정도 남아있었고, 우승 직전 LG에서 오키나와로 급파한 직원이 추가로 두 병을 더 사왔다고 한다. 기사 그리고 11월 17일에 열린 축승회에서 뚜껑을 뜯고 축배를 들었다. 무려 29년만에![3] 여담으로 LG 트윈스의 2002년 한국시리즈 출전 엔트리에 포함된 선수 27명 중 LG 트윈스의 2013년 플레이오프 출전 엔트리에 포함된 선수는 이병규, 박용택, 이동현, 권용관, 류택현까지 총 5명이다. 정현욱, 현재윤의 경우 2002년 당시 삼성 소속으로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있었으며 류지현의 경우 2002년 한국시리즈 당시에는 주장이었으나 2013년 플레이오프에서는 코치가 되었다.[4] 이후 2008~2017년 한화가 2번째로 기록을 달성했다.[5] 매직 3위[6] 매직 1위. 드림 2위였던 두산에 PO에서 패퇴.[7] 경동택배, CJ대한통운, 한덱스, 한진택배, 현대택배, 편의점 택배, DHL, KGB. 참고로 9자리였던 시절엔 일양로지스도 있었다.[8] 페넌트레이스 성적으로는 34424 한국시리즈 비 진출팀은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건 못했건 정규시즌 성적 그대로 최종 성적이 매겨진다.[9] 2011년 순위는 한화와 더불어 공동 6위.[10] 한대화나 김응용이 뭔가를 해 보는 듯 했으나 결국 애매하게 끝내서 평가하기도 미묘하다.[11] 2019년 이후로는 5년 연속 진출하고 있다.(44431)[12] 중학생, 초등학생 엘린이 자녀를 둔 LG팬 부모와 자녀 간 대화나 최근 LG팬으로 유입된 사람과 오래 전부터 응원해 온 LG팬들 간 대화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는 1990년대 세 번씩 최하위를 하며 '꼴비'라고도 불리던 OB 베어스 시절부터 두산을 응원한 두산의 올드 팬덤과 2000년대 가을야구 단골이 되며 리그에서 꾸준한 강팀이 된 두산 베어스의 젊은 팬덤의 사이의 입장이 다른 것과 똑같다.[13] 다만 관리 야구 자체는 1999년 말부터 시작된이광은 시절부터 이어지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광은이 어설픈 경기 운영과 선수단 관리 실패 등으로 인해 조기에 해임되고 관리 야구로 유명한 김성근이 취임하면서 그 색채가 짙게 굳어진 것이다.[14] 2002년 5월 중순에 복귀하여 52경기에 등판하여 85이닝을 던졌다. 거기에 더해 이상훈은 포스트 시즌에서도 계속 던졌다. 30대 중반의 불펜투수를 이 정도나 굴렸으니 혹사 맞다.[15] 명목상 이광환 감독의 자진 사퇴 후 2군 감독 임명이었지만, 실상은 구단이 못 미덥다고 생각한 이광환 감독을 자르고 선동열을 새 감독으로 세우려고 했기 때문에 이 감독이 알아서 사의를 표명한 쪽에 가깝다. 또한 이광환 감독은 신인 3인방 정리 문제 등으로 프런트와 갈등이 있던 상황. 정작 선동열은 삼성 수석코치로 가면서 LG 프런트는 두산 프런트와 함께 뒷 목을 잡는다.[16] 이상훈(쫒겨나다시피 SK로 트레이드), 김재현(FA 때 구단의 고관절 부상 관련 각서 제시에 반발해 협상 거부 후 이적), 유지현(구단과 감독의 은퇴 종용으로 은퇴)[17] 박용택(어깨 부상으로 송구능력 저하), 이동현(토미 존 수술을 받고 재활 중이었는데 8개월만에 등판시킨 결과 팔꿈치 인대 수술과 2번째 토미 존 수술을 받고 장기간 재활), 박병호, 정의윤, 이성열(유망주였으나 셋 다 너무 성급하게 콜업해서 타격 기술과 멘탈을 모두 망가뜨림), 추승우(잘못된 육성 방식으로 기량 하락)[18] 대표적으로 2007년 사이버투수 김유선 1차 지명.[19] LG는 2004년이 마치는 시점까지 통산 승패 마진이 +로 통산 승률이 5할 이상은 되는 팀이었으나 2005년을 기점으로 승패 마진이 마이너스로 바뀌었다. 비밀번호 때 대폭 깎인 승률 때문에 2021년이 종료된 시점까지 통산 승패 마진은 -96에 통산 승률은 .490이다. 실제로 이순철이 부임했던 2004년 초까진 언론에서 LG는 강팀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었으나 666을 찍은 이 시점부터 약팀의 대명사가 되었으며 그나마 2012년 .482까지 떨어진 뒤 가을야구에 자주 나가며 2020년을 기준으로 .490로 올렸다. 2022년 구단 최다승인 87승을 찍으면서 통산 승패마진 -64에 .494가 됐고 2023년 정규리그를 우승하고 86승을 기록하며 통산 승패마진 -34에 .497이 됐다. 2024년이 마쳤을때는 통산 승패마진 -24에 .498이 됐다. 이 추세대로라면 늦어도 2026년엔 승패마진이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20] 전신 MBC 청룡도 성적이 시원찮던 80년대 내내 꼴찌는 안 했다.[21] 이 때 김시진을 비롯한 일부만 현대에 잔류했고 이후 히어로즈로 이어진다.[22] 이 당시 현대 출신 인물들 중 일부는 지금도 LG에 남아 중요한 역할을 수행 중인데 대표적인 인물이 스카우터 백성진으로, 스카우트팀 차장을 거쳐 2017년 말 기존의 스카우트 팀장이던 김현홍의 후임자로 임명되어 본격적으로 신인 스카우트를 이끌기 시작하더니 지명된 유망주들이 2군에서 가능성을 보이며 1군에서 포텐을 터뜨리며 성공적으로 팀에 자리잡는 등의 성과를 보이며 LG의 유망주 팜을 재건하는 데 1등 공신이라는 평을 받으면서 2024년 현재도 일선에서 활약 중이고, 스카우트와 운영팀장을 거쳐 1군 수비코치로 활동하다 넥센으로 자리를 옮긴 염경엽은 2023시즌을 앞두고 LG의 감독으로 부임했고 팀의 29년 만의 우승을 이끈다.[23] 사실 마해영의 성적 하락과 노쇠화를 보면 큰 기대를 하는 것이 어려웠다. 다만 LG 팬들은 타격왕까지 차지했던 그의 과거를 생각하면서 희망을 걸어버린 것이다.[24] 결국 마해영은 11경기 나와서 7푼을 치다가 2군으로 내쫓겼고 그대로 은퇴로 몰린다.[25] 김성근이 실업야구에서 뛰던 김우석의 수비력만 보고 강력하게 요청해서 2차 1라운드로 지명을 했다. 알려지지 않은 LG 시절 김성근의 흑역사 중 하나.[26] 구단주(이장석) - 프런트(박노준) - 선수단 - 코칭스태프(이광환 계열, 이순철 계열, 강병철 계열, 옛 현대 출신) 등이 서로 융화되지 못 했고 구단 측의 행보로 인해 분위기가 굉장히 흉흉했었다.[27] 2000 시즌 이후 무려 9년 만의 상대전적 우세[28] 두산 화수분 야구의 상징으로 꼽히던 인물이었다. 항목 참고.[29] 이 쪽도 모 영견 투수가 스캔들을 터뜨려서 분위기가 흉흉했고, 김경문식 투수 운용으로 인해 투수진이 박살났다.[30] 당시 한화는 피타고리안 승률로 보면 압도적 꼴지였다. 그럼에도 분전한 것.[31] 여담으로 이 사태 때문에 그날 있었던 SK:삼성의 경기는 묻혀 버렸다. 정규시즌 2위를 SK랑 롯데가 경쟁 중인 상황이었던지라 중계 사이트에 SK팬들도 많이 몰려오고 롯데팬들도 삼성팬들보다 더 많이 몰려올 정도로 후끈 달아오른 경기였는데, 7G란 단어 한방에 훅 갔다.[32] 첫 경기를 스코어 20:2로 헌납하면서 롯데의 2위를 확정시켜줬고, 이후 두 경기에서 롯데가 거의 1.5군, 2군으로 경기를 치렀지만 그 경기들도 졌다.[33] 2012년 여기에 한 발짝을 더 나아가서 10시즌이 되었고, 2013년에 김기태가 이 기록을 끝냈다.[34] 정리하자면 처음 두 달 동안 30승을 거두고 나머지 네 달 동안 29승을 거두는데 그쳤다. 세세히 따지면 첫 두달 30승은 한달에 15승이나 했다면, 나머지 네 달은 한달에 정확히 7.25승, 약 7승으로 무려 절반을 깎아먹었다[35] 웬만해선 깨지지 않을 거 같은 기록이었지만 불과 2년 후, 타어강으로 대표되는 KIA 타이거즈의 대삽질(1위에서 8위로 추락)로 기록 경신했다. 만약 LG가 2011시즌에 8위를 했다면 KIA는 타이기록이었다. kt와 NC가 17시즌과 18시즌에서 1위에서 10위로 곤두박질친것이 나와서 아무 상관 없다. 메이저리그에도 초반 반짝하다가 급추락하는 팀들은 차고 넘친다. 애초에 DTD 여부와 리그 수준을 엮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36] 공식 순위로는 공동 6위이지만 순위를 가려야 할 경우, 예를 들어 신인드래프트 지명 순서를 정할 때에는 다승-상대전적-다득점 순으로 순위를 정하는 KBO 규정에 따라 LG가 6위, 한화가 7위를 차지하게 된다.[37] 이 사건이 없었다면 한화가 6위, LG가 7위였을 수도 있다.[38] 특히 송신영은 이적 과정에서 프런트 담당자가 욕설을 하면서 무시하는 바람에 아예 정나미가 떨어졌다는 후문. 반면 한화는 운영팀장이던 그 이상군이 직접 공을 들였을 정도였다.[39] 공교롭게도 2011 시즌에도 같은 날 트래직 넘버가 소멸했다. 재밌는 건 그 다음 년도엔 같은 날 포스트시즌 매직 넘버가 소멸되었다.[40] 2013 시즌 롯데의 트래직 넘버도 비슷한 방식으로 소멸되었다. 2013 롯데는 트래직 넘버 1인 상황에서 한화를 이겼지만, 4위 넥센이 LG를 이기면서 가을야구 무산.[41] 한편, 한화 이글스의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9위 확정도 이날이었다.[42] 여기에 해당하는 사례는 1995, 97년의 LG 트윈스와 2010년의 삼성 라이온즈였다.[43] 그래도 시즌 마지막 두 경기에서 유종의 미를 제대로 거두면서 정규시즌 2위로 진출했다. 사실 2013 시즌의 경우 2~4위 싸움이 마지막날까지 치열했었다.[44] 특히 그 두산이 넥센과의 준PO에서 5차전까지 간 데다, 연장전 3번 끝에 겨우 진출한 구단이라 더욱 아쉬움이 남았다.[45] 2014년엔 삼성과 넥센, 2016년엔 두산과 NC가 치고 나갔다.[46] 특히 2013 시즌 가을야구의 우승팀과 준우승팀인 삼성의 전력누수와 두산의 불안한 모기업 사정으로 인해 넥센과 더불어 당시 좋은 평을 받았던 SK와 함께 가을야구에 나갈 유력 후보로 평가받았다.[47] 9위에서 8위가 된 게 6월 13일이고, 7위가 된게 7월 1일, 6위가 된게 7월 26일, 5위가 된 게 8월 1일이었다.[48] 여담으로 느그프가 처음 나온 2016 시즌의 롯데 역시 NC 다이노스에게 15승을 퍼주었다. 즉 16시즌의 롯데와 18시즌의 LG는 지역 라이벌팀에게 15승을 퍼주면서 지역 라이벌팀의 한국시리즈 진출에 기여(...)하게 된다.(...) 심지어 지역 라이벌팀이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여 준우승까지 거둔 것도 똑같다.[49] LG가 정규리그에서 우승을 하는 데는 LG의 전력에 상향된 것도 있었고 무엇보다 작년 한국시리즈 우승팀과 준우승팀인 SSG와 키움의 부침과 몰락이 한몫했다. 어떻게보면 작년에 운이 상당수 따랐던 두 팀의 가려졌던 문제점들이 23년에 터진 결과인데 키움은 안우진, 이정후라는 팀의 핵심자원이 모두 부상으로 인한 수술로 시즌 아웃되면서 최하위까지 곤두박질치고 구단 사상 최저 성적을 기록하고말았다. SSG는 두산, KIA와 5위 경쟁까지 몰리다 극적으로 3위로 정규 시즌을 마감했지만 준PO에서 NC에게 셧아웃 패배로 마감했다. 이렇게 된 이유도 선수단 평균 연령이 높고 상대팀인 NC에 당장 김주원, 김형준, 서호철 같은 루키들이 주전으로 정착했는데 SSG는 신인발굴은커녕 아직도 김광현, 김강민, 추신수, 최정 등 노장들에 매달린 것이 뼈아팠고, 그 여파로 플레이오프 직후 김원형 감독까지 경질되었다. 또한 LG의 상위권 경쟁팀 중에서도 NC에게만 열세일 뿐, kt와 SSG 상대로는 우세 성적으로 마감한 것도 고무적이고 NC가 와일드카드부터 플레이오프 2차전까지 6연승을 달리다 11월 들어 체력저하로 리버스 스윕패하고 kt 역시 정규 시즌 2위로 PO까지 쉬는 시간이 있었지만 PO 5차전까지 치르면서 LG에 비해 부족한 체력과 정신력이 결정적이었다.[50] 두 번 모두 10월 말에 이뤄졌다.[51] 이마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스윕패를 당하면서 1위를 차지한지 일주일도 못채우고 내려왔다.[52] 임찬규 5.1이닝, 에르난데스 3.2이닝[53] 사실 스카우터로 능력이 좋은 편이었다. 당초 LG 트윈스로 온 것도 스카우터로 온 것이었고, 문제는 수비코치 시절로 이 시절 재수가 없었는지 파벌 설이 떠돌아서 오해와 의심을 받으면서 죽도록 까였다. 결국 넥센에서 명장이 되어 재기에 성공했으나 SK 감독 재임 때는 망했다. 하지만 4년 후인 2023년 LG 감독으로 부임한 후 첫 정규리그 우승, 더 나아가서 한국시리즈에서 29년만에 LG를 우승시켰다.[54] 서건창은 신고선수 신분이었고 부상 때문에 방출된 것이라 탈쥐효과의 사례로는 부적절하다. 공교롭게도 서건창은 친정 팀인 LG로 트레이드된 후 끝 없는 내리막을 타면서 입쥐효과가 발동해버렸다.[55] 당시의 대졸 신인과, 현재의 고졸 신인이 1군에 자리잡는 과정을 완전히 동일하게 볼 수는 없겠지만, 옆동네 두산만 보더라도 김현수처럼 대졸 1년차 혹은 고졸 2년차에 바로 주전 차지한 사람도 많고, 심지어 타 팀에서 필요없다고 방출당한 사람이 신고선수로 힘들게 입단해서 그 해 바로 도루왕을 차지한 이종욱의 경우도 있고. LG는 고졸 출신, 대졸 출신을 가리지 않고 박용택 이후 2013년까지 프로 입단 2년 이내에 1군에 주전으로 자리잡은 선수가 현 주전 유격수 오지환 뿐이다. 이러한 문제는 2019년 이후 고우석, 정우영, 문보경 등이 나온 이후에야 해결되는 모양새다.[56] 이정후나 강백호처럼 데뷔 시즌부터 자리잡는 고졸 야수는 극소수다. 대개 20대 중후반에 자리 잡는 경우가 많다.[57] 나성범의 경우는 기량과는 상관없이 집안 내에서 은퇴 이후의 진로도 생각해서 대학 진학을 건의해서, 어느 팀의 지명 여부에도 상관없이 대학 진학을 이미 결정한 상태였는데 프런트가 냅다 지명한 경우이다.[58] 양의지, 오재원, 한유섬, 문성주 등[59] 김현수, 박해민, 서건창 등 아이러니하게도 이 들은 2023년 현재 모두 LG 선수들이다 서건창은 방출당한 건 안 비밀[60] 특히 LG가 무려 115억이라는 거금을 주고 영입한 김현수 역시 신고선수 출신이다.[61] 이와 비슷한 문제를 겪은 팀이 한화 이글스로, 신인 지명에 인색했고 당장의 즉시전력감으로 활약할 수 있는 베테랑들을 주로 영입했다. 2007년까지는 어찌어찌 포스트시즌에 꼬박꼬박 갔지만 2008년부터 2017년까지 10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며 그 대가를 치렀다.[62] 1기 시절에는 평범한 이미지였는데, 정삼흠 - 이상군으로 이어지는 무능한 1군 투수코치들 때문에 반사 효과로 유능한 이미지가 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63] 사실 구단은 감독대행을 맡았던 양승호를 2군 감독으로 보내서 육성을 맡길 계획이었으나 정작 양승호는 고려대학교 감독으로 갔다.[64] 그나마 김용달은 잠깐이지만 이대형의 포텐을 터뜨린 공이 있고 타 팀에서도 적당히 철밥통으로 살아남았고, 윤덕규는 코치 경력이 너무 짧아서 평가하기가 힘들다. 그리고 LG 외야는 암흑기 시절에도 상위권으로 손꼽혔고 수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65] 다카하시는 LG와 주니치가 자매 구단이었다는 점 때문에 LG에서 거의 모셔오다시피 한 인물이었다. 이 쪽은 감독이 김기태로 바뀔 때 정리되었고 과거 주니치 시절의 제자인 선동열을 따라 KIA로 갔으나 폭망하고 한국을 떠났다.[66] 실제로 2009 시즌을 보면 양상문이 롯데 2군 감독으로 가고서 1군에 올라온 김용수 코치는 주전 포수인 조인성과 심수창이 신경질이나 부리며 싸우는데도 말리지도 못하고 당황한 모습만 보였다. 코치의 인품을 떠나서 코치가 선수들을 제대로 말리지도 못하는 그 자체가 충분히 문제 있는 것이다.[67] 뭐 적어도 유지현은 2013~2014년에 1군 수비코치로서 제 몫은 뒤늦게나마 해냈다.[68] 애초에 정진호, 김용달, 윤덕규는 김재박 사단이었으니 교체될 운명이기는 했다. 김용수는 프런트로 전출되었으나 중앙대 감독으로 가면서 바로 사직했고.[69] 원래 이 사람은 단장이나 주루코치에 어울리지, 염경엽에게 수비코치를 맡기는 건, 정현욱, 이대진에게 투수코치를 맡긴 꼴이라는 흉물취급 수준이였다. 이는 넥센 가서도 수비 능력이 하위권인 건 마찬가지.[70] 그리고 잘려서 상무로 갔다가 염경엽의 부름을 받아 넥센의 타격코치로 가버렸다.[71] 물론 메인투수 코치는 최계훈이었다.[72] 이 중에서 계형철과 이홍범은 김성근 사단으로 구분되는 인물들이고, 김기태 감독과 쌍방울 시절에 함께한 사이이다. 신경식도 쌍방울 시절의 인연이 있고, 김민호는 국가대표팀에서 함께한 사이.[73] 최원호는 피칭 연구소 개업을 하고 해설위원으로 일했다. 다만 최원호는 능력을 평가하기에 애매한 인물이기는 했다. 연수도 안 다녀오고 2년간 2군에서 일했던 인물이니... 이후 한화 2군 감독으로서 보여준 능력은 제법 준수했다.[74] 다만 계형철, 이홍범 코치는 김성근 감독을 따라서 한화로 갔고, 김민호 코치는 조계현 2군 감독과 같이 김기태 감독 따라 KIA로 갔다.[75] 그래서인지 2013년부터 NC 다이노스 육성이사로 있으며 좋은 평을 받았고, 2017년 한화 이글스 단장으로 취임한 뒤로도 2군을 재정비하며 여러 업적을 쌓아가며 호평을 듣는 중이다.[76] 당시 LG 트윈스 담당 기자였다. 본인이 이 방송에서 예언했듯이 방송 이후 2012년에 넥센 담당 기자로 보직 변경했다. 그리고 2013년 삼성 담당 기자로 6번째 우승을 경험했다. 동영상 내내 얼굴 붉혀가면서 분노 스킬을 시전하는 걸 보면 본인도 많이 답답했다.[77] 기자들이 계약 건에 대해 알고 물어봤지만 당연히 감독은 위에서 시킨대로 말했지만 이미 기자들은 구단 측에서 발표해서 알고 있었다는 것.[78] 자신이 감독보다 선배라 하더라도 존칭을 붙여 감독님이라고 부르는 것. 실제 삼성은 2011년 당시 류중일 감독보다 선배인 김성래, 장효조(같은 해 9월 간암으로 타계), 양일환, 성준 등의 코치들이 있었다. 그런데도 감독에 대한 예우를 갖추고, 존대했다.[79] 참고로 LG와 삼성간은 야구 외 적인 측면에서도 경쟁심리가 강해, LG가 MBC 청룡을 인수한 1990년 이래로 근 23년간 서로 트레이드도 하지 않았다. 2012년 시즌 후 김태완, 정병곤, 노진용 ↔ 현재윤, 김효남, 손주인 트레이드가 이루어지고 나서야 이 관례가 깨졌다.[80] 그다음 시즌 FA로 풀려서 더 적은 금액에 팀을 옮긴 이 분이라는 말도 있었으나 18년 2월 더그아웃 지에 실린 인터뷰를 보면 그건 아닌 걸로 보인다.[81] 즉 기존 유명 선수의 꾸준한 출장을 의미하며, 이는 최동수 등의 무명 출신 선수의 배제를 뜻한다.[82] 더불어 박용택의 어깨도 박살냈다.[83] 주전 야수들인 박용택이나 이병규(7), 이진영 등은 벌써 30대 중후반에 접어든 베테랑이다. 그리고 라뱅은 16년에도 반등하지 못한다면 시즌 끝나고 은퇴를 바라봐야 할 정도로 무너졌다. 결국 협상 테이블에서 구단과 싸우기 싫다며 은퇴했고 17시즌 중반 은퇴식을 치렀다.[84] 13시즌에 당한 햄스트링 부상으로 수비가 불가능한 라뱅을 기용하려면 리그 최고의 타자인 박용택을 좌익수로 보내고 당시 주전 좌익수이던 이천웅을 벤치에 앉히거나 이천웅을 우익수로 보내고 엘지의 주포인 채은성을 빼거나, 이천웅을 중견수로 보내고 리드오프이던 김용의를 빼는 등 자충수뿐이었다. 그렇다고 라뱅을 대타로 쓰기에는 당시 대타자원만 정성훈/양석환, 서상우, 이형종, 문선재 등 잔뜩 쌓여있었으며 서상우와 정성훈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은 최소 2개 이상의 포지션을 소화하는 멀티 선수들이었다. 그리고 냉정히 말해서 이병규는 설령 팀 내에 자리가 있었어도 쓸 이유가 없었다.[85] 매일같이 잠실구장 LG 사무실 앞에서는 양상문 퇴진 시위가 벌어지고 양상문 개인의 전화번호가 털려서 전화번호를 바꾸는 등,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86] 벤치 개입이 많은 리그 특성상 볼배합은 거의 무조건 벤치 사인을 따라간다. 또한 볼 배합대로 공을 던졌다고 안타를 안 맞는 것도 아니고 볼 배합 지시대로 100% 공을 찔러넣을 수 있는 투수는 MLB에도 없다.[87] 전민수의 영입으로 인해 퓨처스 4할타자로 차기 외야 세대교체의 대표 주자가 되어야 할 홍창기의 자리가 사라졌다.[88] 근거가 있는 비판은 팀에 도움이 되지만 지금까지 안돼왔으니 이번에도 안 될 거라는 자세는 올바른 팬의 태도가 아니다.[89] 1995년,199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