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兄死娶嫂. 형이 사망했을 경우 남동생이 형수를 취하는 풍습. 한 발 더 나아가 아버지가 사망하면, 수계혼이라고, 상속을 받는 자식들은 생모를 제외한 아버지의 모든 처첩들을 모두 승계하는 제도도 있었다.고구려, 부여와 거기서 갈라져 나온 여진족 등 고대 한국 일부 왕조나 아시아 북방 유목민에게서 나타났고 고대 서양에서도 흔한 풍습이었으나, 현재 대부분의 문명 사회에서는 불법은 아니지만 근친상간이나 불륜에 가까운 인식이다.
그러나 과거에는 경제와 사회구조가 판이하게 달랐기 때문에 현대와는 달리 사회적으로 용인, 혹은 아예 의무로 요구되기도 했고 이걸 피하려는 자를 아버지를 져버리고 의무를 다하지 않는 놈으로 멸시받기도 했다.
형수를 아내로서 맞이하는 경우도 있고, 결혼 없이 형수와 성관계를 갖고 임신시켜서 형의 대를 잇게 하는 방법(쉽게 말해 씨내리)도 있다.
몽골족이나 차하르부, 튀메드부, 거란족[1] 등의 북방 유목민도 이런 풍습이 있었다. 고대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형사취수제를 레비라트(Levirate)라고 하였다.
기본적으로 형사취수 제도가 있으면 1명의 아내를 형제(부자)들이 공유하는 구조이다 보니 일처다부제에 얽이기도 한다.
때로는 일부다처제와 엮이기도 하는데, 2명의 형제가 각각 결혼을 했는데, 형이 사망한 상황에서 발생한다. 이 경우 동생이 형사취수를 하면 아내가 2명이 된다.
2. 상세
고대에 남성은 사냥이나 전쟁 등으로 일찍 죽는 경우가 많았고, 미망인이 되어 자녀와 함께 홀로 남는 여성을 사회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있었던 제도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여기에 몇가지 요소들과 상황이 더해지게 된다.이러한 제도는 가족의 중요한 인적 자원인 성인 여성을 배우자의 사망과 같은 사소한(?) 이유로 놓치지 않으려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고, 또한 결혼으로 이어진 두 집단의 유대 관계를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 행해진 경우도 있다. 부친의 처첩을 아들이 이어받는 수계혼의 경우에는 부친이 죽으면 처첩들이 의지할 곳이 없으므로 그 생계를 아들이 뒤이어 책임진다는 의미에서 행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본질은 출산 증감의 조절이다. 남자는 줄어도 여자가 그대로면 다음 세대 인구 수는 줄지 않기 때문이다. 조금 변형된 형태로 이름 그대로 형이 죽어서 형수를 취하는 경우는 용납이 되나 동생이 먼저 죽어도 형이 동생의 아내를 취할 수는 없는 경우가 있었다. 만주족이 이 경우에 해당해서 시동생이 형수를 취할 수는 있어도 그 반대는 불가능했다. 다만 지구상 형사취수제 모두가 그랬던 건 아니고 여진족의 경우 금나라 시대에는 형이 죽은 동생의 아내를 취하는 경우가 보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건 아니다.
대체적으로 형이 동생보다 먼저 죽는 경우가 많아서 형사취수제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대개 용납된다. 그 반대의 경우가 용납되지 않는 만주족의 케이스가 조금 예외적이다.
3. 역사
중국 정사 등의 북적 열전에 북방 민족들의 형사취수제가 곳곳에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삼국시대에 만주 지방에서 일어난 부여와 고구려에서 행해졌다는 기록이 있으며, 고구려 산상왕은 형수 왕후 우씨에게 선택되어 결혼하고 왕위를 얻었다. 동아시아에서는 만주 지역 북방 기마민족들의 경우 계속 행해졌다. 고구려 동명성왕과 소서노의 결혼도 형사취수의 일종으로 보는 해석이 있다. 소서노의 전 남편도 부여의 왕족이라는 것이다.청나라도 이러한 풍습이 있었다. 병자호란 이후 아이신기오로 도르곤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조선 출신 의순공주에게 공식으로 결혼요청을 해 부인 중에서 으뜸인 암바 구룬, 즉 정실부인이 되었는데, 남편이 갑자기 과로사로 죽은 뒤 형사취수로 다시 한 번 결혼했다. 2번째 남편도 죽은 후로 의순공주는 조선에서 송환해달라 요청을 해서 그 요청을 들어주었다. 조선과 혼략이 좌절되자 더 이상 조선과 혼략은 포기하고 이후 청나라는 1627년에 링단 칸과 아이신기오로 슈르하치의 딸과 결혼동맹을 맺고 1632년에 망해서 흡수된 몽골과 주로 혼략을 맺는다. 만주족이 432번 공주를 복속된 몽골에게 시집보냈고, 몽골은 163번 공주를 만주족에게 시집 보냈으니 오히려 청나라가 더 많이 시집보냈다.
성경을 보면 유대인 사이에서 이러한 제도가 최소한 예수가 활동했던 시대까지 존속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여러 형제가 함께 살다가 그 중의 하나가 아들 없이 죽었을 경우에 그 남은 과부는 일가 아닌 남과 결혼하지 못한다. 시동생이 그를 아내로 맞아 같이 살아서 시동생으로서의 의무를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난 첫아들은 죽은 형의 이름을 이어받아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 가운데서 사라지지 않게 해야 한다.
그런데 만일 그 사람이 형수를 아내로 맞지 않으려 할 경우에는 형수는 성문께로 장로들에게 올라가서 이렇게 호소해야 한다. '나의 시동생이 형의 이름을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어가게 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래서 시동생으로서의 의무를 이행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성읍의 장로들이 그를 불러다가 타일러도 굽히지 않고 그를 아내로 맞고 싶지 않다고 하거든
형수가 장로들 면전에서 그에게 다가서서 그의 발에서 신을 벗기고 얼굴에 침을 뱉으며 욕해 주어라. '제 형의 가문을 이어주지 않는 사람은 이 꼴이 되어라.'
그 후로 이스라엘 가운데서 그는 '신 벗긴 집안'이라는 별명으로 통할 것이다.
신명기 25:5~10
그래서 난 첫아들은 죽은 형의 이름을 이어받아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 가운데서 사라지지 않게 해야 한다.
그런데 만일 그 사람이 형수를 아내로 맞지 않으려 할 경우에는 형수는 성문께로 장로들에게 올라가서 이렇게 호소해야 한다. '나의 시동생이 형의 이름을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어가게 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래서 시동생으로서의 의무를 이행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성읍의 장로들이 그를 불러다가 타일러도 굽히지 않고 그를 아내로 맞고 싶지 않다고 하거든
형수가 장로들 면전에서 그에게 다가서서 그의 발에서 신을 벗기고 얼굴에 침을 뱉으며 욕해 주어라. '제 형의 가문을 이어주지 않는 사람은 이 꼴이 되어라.'
그 후로 이스라엘 가운데서 그는 '신 벗긴 집안'이라는 별명으로 통할 것이다.
신명기 25:5~10
"오나니즘"의 어원이 되는 오난 역시 이 풍습과 관련되어 있다. 오나니즘은 자위행위라는 뜻이지만 오난의 행동은 피임이며, 좀 더 복잡한(?) 뒷사정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내용 참조.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물었다. "선생님, 모세가 우리에게 정해 준 법에는 '형이 자녀가 없이' 아내를 두고 '죽으면 그 동생이 자기 형수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아 형의 대를 이어야 한다.' 하였습니다. ... 칠 형제가 다 그 여자를 아내로 삼았으니 부활 때에 그들이 다시 살아나면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 마르코 복음서 12:18~23
그리고 이에 대한 예수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 마르코 복음서 12:18~23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다음에는 장가드는 일도 없고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처럼 된다."
- (마르코 복음서 12:25)
- (마르코 복음서 12:25)
의외로 옛날 출애굽 시절에도 형사취수제가 있었다. 역시 형이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사망했을 시 동생이 대신 형수를 아내로 맞아 대를 잇도록 했다. 훗날 예수가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가이인들에게 이 문제로 태클을 맞았는데 오히려 사두가이인들이 철저히 논파당했다. 내용인즉 사두가이 인들이 예수를 망신주려고 '선생님.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맞아 형의 대를 잇게 하라고 합니다. 선생님은 사람은 죽으면 천국에서 부활한다고 하지요? 그럼 예를 들어서 7형제 중 형이 죽어서 동생이 형수를 취했고, 그 동생도 죽어서 그의 동생이 대를 이었다고 칩시다. 그럼 나중에 천국에서 모두 부활했으니 이 7형제 중 누가 이 여자의 남편이 되는 것입니까?'라고 함정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예수는 '그건 너희들이 천국과 부활의 개념을 제대로 몰라서 그런 질문을 하는거다. 부활하면 장가도 시집도 가지않으며 그저 천사와 같이 영이 되는 것이다'라고 간단히 답변했다.
동양의 경우 문화적으로 앞선 농경민족이 문화적으로 뒤쳐진 기마민족을 변태, 미개인이라고 조롱하는 소재로 쏠쏠하게 써먹었으며 결국 중화주의와 유교의 확산으로 유목민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점차 소멸되었다.
다만 한족이라고 해도 북방민족들과 가까이 살면서 그들과 혼혈되어 피가 섞인 한족 주민들 사이에서는 어느 정도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몽골계의 선비족의 피를 이어받았다고 거의 확실시되는 당나라 황실의 경우는 형사취수의 존재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당태종의 후궁이었던 측천무후가 감업사(感業寺)로 출가한 뒤에 환속해서 태종의 아들인 당고종의 황후가 되었다거나, 당현종의 후궁인 양귀비가 원래는 현종의 며느리였다거나 하는, 그러니까 아버지가 죽고 아들이 아버지의 첩을 아내로 맞거나 혹은 그 반대 사례도 있었던 점을 보아 형사취수도 아예 없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심지어 대명률에서도 형사취수를 금지하는 법이 있는 것으로 보아, 명나라 초기까지 형사취수가 한족들 사이에서 꽤 널리 퍼져 있었음은 틀림없다. 굳이 금지한다고 쓰는 것은, 그런 일이 있으니까 금지하는 것일 테니.
당연히 현재 대한민국 민법상 자기 형제/자매의 배우자였던 사람과는 결혼할 수 없다. 이혼을 했든 사별을 했든 마찬가지다. 불가능한 이유는 중혼이 되기 때문이 아니다. 이혼을 하거나 사별을 하면 혼인관계가 소멸되기 때문이다. 결혼할 수 없는 이유는 근친혼 등의 금지를 규정하고 있는 제809조에 걸리기 때문이다. 제809조 2항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6촌 이내의 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6촌 이내의 혈족, 배우자의 4촌 이내의 혈족의 배우자인 인척이거나 이러한 인척이었던 자 사이에서는 혼인하지 못한다." 여기서 형제/자매의 배우자는 6촌 이내의 혈족의 배우자인 인척이었던 자에 해당하여, 혼인이 불가능하다.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극히 드물겠지만, 현행 일본 민법상으로는 형사취수가 가능하다. 일본 민법상 혼인이 금지되는 경우는, "직계혈족 또는 3촌 등 내의 방계혈족(§734)"(자신의 부모 등(직계혈족) 또는 형제/자매 또는 형제/자매의 자식 등(3촌 등 내의 방계혈족)), "직계인척 간(§735)"(배우자의 직계혈족) 등인데, 형제/자매의 배우자는 방계인족(배우자의 방계혈족과 방계혈족의 배우자)으로, 이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혼인이 가능하다.
일본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 패전 후 수많은 아이 있는 과부들이 생겨나자, 시동생들이 자신의 집안과 조카를 위해 기꺼이 형수와 결혼했다. '역연혼'이니 '인연 고치기' 등으로 불렀는데, 당연히 시대가 낳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고, 지금은 당연히 볼 수 없는 현상. 문제는 전사한 것으로 알려졌던 원래 남편이 귀가하면서 집안이 콩가루가 되는 일도 발생했다는 것이다. 일본 해군 출신 와타나베 기요시의 <산산조각난 신>이라는 수기를 보면, 형의 전사 소식을 들은 이후 가족들에 의해 동생이 마지못해 형수와 결혼하는 일화가 나온다. 형의 아이들이 있던 부인은 그렇게 부부관계를 맺고 동생의 아이까지 임신하는데, 전사한 것으로 알려진 형이 패잔병 몰골로 집에 돌아온다. 아내의 임신한 배를 보고 격노한 형은 미쳐 날뛰다가 사건의 전말을 알고는 '동생만 아니었으면 모조리 죽였을 것'이라고 울분을 토하며 부모까지 뿌리치고 집을 나간다.
4. 매체
모 개그 만화에서는 이걸 이용한 개그를 선보인 적도 있다. 왕소군의 이야기를 각색한 것인데, 모략에 휘말려서 후궁으로 들어가 냉궁에서 황제에게 한 번도 눈에 띄인 적이 없던 절세미녀였던 그녀가 흉노족 왕에게 자진해서 시집을 가자 기다리고 있던 왕이 미남이었고, 그 뒤를 따라오는 형제들도 하나같이 미남이었는데, '자신들의 풍습으로 말하길 형이 죽으면 형수는 동생이 받는다'라 하여 평생 미남들과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얘기다.형이 살아있는데 형수를 취하는 경우는 형사취수라고 하지 않는다. NTR이라 부른다. 영국 영화 러브 액츄얼리에 나온다.
5. 형사취수를 실천한 인물들
역사적으로 권력자들 사이에서의 결혼은 99% 정략결혼이었으므로, 기껏 맺어놓은 결혼동맹이 깨지지 않게 하기 위해 형사취수는 실제로 아주 흔한 일이었다. 형의 사망 후 형의 약혼녀와 결혼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 경우는 혼인 전이므로 형사취수로 보기는 힘들다. 사회 통념상 형사취수혼이 근친상간의 일종이 된 후에도, 헨리 8세와 아라곤의 카탈리나의 경우처럼 교황을 통해 관면을 받으면 어렵지 않게 이루어졌다.[2]다만 이 시기에는 이미 형사취수에 대한 관점에 약해진 이후였기 때문에, 헨리 8세와 아라곤의 카탈리나의 혼인무효의 핑계거리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리고 결혼할 때도 헨리 8세의 형이자 캐서린의 첫 남편인 아서가 죽었을 당시 "캐서린이 처녀였기에 문제가 없다"는 논리를 내밀어야 했다.[3] 당시에는 첫날밤을 보내지 않으면 진정한 결혼의 시작으로 보지 않는 관습이 있었다.
5.1. 실존/전설 인물
- 산상왕 - 신대왕의 4남. 둘째 형인 고국천왕의 왕후 우씨를 아내로 맞이함.
- 시마즈 타다츠네 - 형 시마즈 히사야스가 병사한 후 그의 아내이자 사촌이었던 카메쥬와 혼인했다. 그러나 이 쪽은 원해서라기보다는 가문의 내분을 막기 위해 억지로 한 결혼이라 부부 사이는 매우 나빴다.
- 헨리 8세 - 첫번째 왕비 아라곤의 카탈리나가 원래는 친형 아서 튜더의 아내였는데, 아서가 병으로 요절한 후 과부가 된 카탈리나와 결혼했다.
- 아이신기오로 도르곤 - 형수 효장문황후와 혼인했다는 야사가 유명한데 일설에 불과하다는 얘기도 있다.
- 제11대 던디 백작 헨리 스크림거-웨더번 - 동생 데이비드와 사별한 그의 아내 패트리샤 몬타구 더글라스 스콧과 결혼했다. 이때문에 형사취수라긴 보단 제사취수다.
- 오난 - 자위행위를 뜻하는 오나니의 어원이 된 사람이다.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유다의 차남으로, 형인 엘이 죽자 형수인 다말과 결혼하였다. 그런데 오난도 죽어서 다말은 유다의 3남인 셀라와 결혼할 예정이었으나, 여차저차하여 이 2단 콤보(...)는 실현되지 않았다. 오난은 형사취수제에 따라 형수인 다말을 아내로 맞았으나, 체면상 형수와 동침은 하지만 자식은 안 낳아주려고 체외사정을 한다. 왜냐하면 당시 유대인들 풍습상 형사취수로 형수가 낳는 첫 아들은 생물학적으로는 자기 아들이지만 제도상으로는 형의 아들이 되어 결과적으로 자신의 유산 지분이 줄어들게 되기 때문이었다.[4] 한마디로 쾌락만 얻고 의무는 거부한 것. 이 일로 인해 오난은 하느님에게 천벌을 받아 죽는데, 엘과 오난이 모두 자식 없이 죽었기 때문에 다말은 막내인 셀라와 결혼해야 했지만 유다는
엘과 오난이 죽은 게 다말 때문이 아닌데 그건 생각 안 하고셀라도 죽을까 봐 다말을 친정으로 돌려보내고 이후 다말이 창녀로 분장하고 고의로 유다와 성매매를 핑계로 근친상간하여 유다의 아이를 임신하여 낳는 참사를 낸다. - 데이포보스 - 형 파리스가 필록테테스의 화살(헤라클레스가 가졌었던, 히드라 독이 묻은 화살.)에 죽자 형수인 헬레네를 아내로 맞으나 얼마 안가서 트로이가 멸망한다. 그리고 헬레네의 원래 남편이었던 메넬라오스의 칼을 맞고 죽는다.
- 로버트 F. 케네디 - 존 F. 케네디 사후 그의 형수인 재클린 케네디와 진지한 관계였으며 둘이 성관계를 맺는 장면이 여러번 포착되었다는 증언도 있다.# 그러나 로버트 케네디의 전기작가들은 두 사람의 관계가 연인 관계는 아니었으며 가족간의 유대 그 이상은 아니었고 음모론자들이 과장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케네디 가문의 관계자들은 이것을 단순 음모론 혹은 자신이 모르기에 단언할 수 없는 모호한 영역으로 치부한다.
헬레노스: 네오프톨레모스 사후 형수였던 안드로마케와 재혼한다는 전승이 있으나 네오프톨레모스의 어머니 데이다메이아를 아내로 맞는다는 전승도 있고, 안드로마케 역시 네오프톨레모스와 결혼해 끝까지 잘 산다는 전승도 있고 해서 일단 취소선 처리.조지 5세: 조지 5세의 왕비인 테크의 메리는 원래 그의 친형 앨버트 왕자와 약혼한 사이였지만, 결혼하기 전에 죽는 바람에 조지 5세와 결혼하게 되었다.알렉산드르 3세: 위의 조지 5세와 마찬가지로 황후인 덴마크의 다우마는 원래 알렉산드르 3세의 친형인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황태자와 약혼했지만, 니콜라이 황태자가 마리아와 결혼하기도 전에 병사하면서 알렉산드르 3세가 그녀와 결혼했다. 참고로 위의 조지 5세의 큰 이모부이다.
5.2. 가상 인물
☆: 형사취수 대상이 된 여성- 파르페 -쇼콜라 세컨드 브루-의 스기사와 에마☆
- 햄릿의 거트루드☆
- 신부 이야기의 탈라스☆, 탈라스의 시어머니☆
- 야연의 황후 완씨☆
- 약탈 신부의 아다르☆[5]
- 식인종 영화인 움베르토 렌지 감독의 작품 'Eaten Alive(한국명' 홀로코스트 2)'의 어느 원주민 여자☆. - 행방불명된 언니를 찾아서 인도네시아의 깊은 정글로 들어간 미국인 여주인공. 그녀는 어떤 미국 남자를 경호원으로 고용해 동행하는데, 그들이 찾아간 곳에는 미국의 유명한 사이비 종교인 '다윗파'를 닮은 사이비 교주 존스가 있고 언니는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때마침 마을 광장에는 어느 남자의 장례식이 열렸는데, 화장을 끝낸 후에 갑자기 그 남자의 아내가 옷을 벗더니 광장의 제단에 눕는다. 그리고 갑자기 3명의 남자와 같이 성행위를...... 여주 일행의 옆에 있던 남자가 넌지시 말하기를..... "죽은 저 남자에게는 3명의 남동생이 있는데, 그들과 다시 재혼하는 것이죠." 그러자 그 경호원 남자는 "가족이 지킨다는 말이군"
- 팔남이라니, 그건 아니지!의 아말리에☆ - 이쪽은 주인공의 동정을 떼어주기 위한 알선녀로부터 시작해서 조카의 지원 등으로 정부로 발전한, 정치적(?)으로 여러가지가 복합된 경우이다.
- 후궁: 제왕의 첩의 화연
- 브리저튼(드라마) - 마리나 톰프슨☆- 전 연인 조지가 사망한 이후 조지의 동생 필립과 결혼했다. 당시 마리나가 조지와의 사이의 자녀들을 임신하고는 있었으나 조지와 정식 결혼을 치르기도 전에 조지가 사망해 버린 경우라 형사취수라기엔 조건이 맞진 않아 일단 취소선을 쳤다.
- 마기의 연옥염☆
아직도 죽지 못한 사람(만화)의 카와라자카 마유코☆-형의 장례식에서 큰 충격을 받아 혼절한 자신의 형수인 마유코를 걱정한 주인공(만화가). 급기야 그녀가 걱정되어 형의 유품을 회수한다는 핑계로 마유코의 집(죽은 형 부부와 살던 집)을 방문하는데, 순간 그녀는 주인공에게서 죽은 남편의 환영을 보게 되고....... 원래 형수인 그녀를 사모했으나, 그 대상이 다름 아닌 형수인 관계로 그 마음을 가슴에 묻은 주인공은 그녀의 앞에서 죽은 남편의 행세를 하면서 검열삭제를 하며 그녀를 안심시킨다. 다만, 정신이상인 것처럼 보이는 마유코에게는 무슨 비밀이 있는 것 같지만.....(결말이 아직 끝나지 않아, 어떻게 이어질 지는 미지수이고, 마유코는 남편의 환영을 보면서 대리만족으로 주인공을 좋아하는 것 같아, 몸으로는 형사취수가 맞지만, 마음으로는 아니기에 일단 취소선)- 외모지상주의(웹툰)의 박소미(박태준 유니버스)☆
[1] 거란은 수계혼[2] 애초에 중근세 유럽에서는 기독교적 윤리에 따라 근친혼을 강하게 금지해야 했겠지만 왕족쯤 되면 같은 왕족끼리 결혼하느라 근친혼이 매우 잦아 3~4촌 수준에서의 결혼도 많았다.[3] 그러다 보니 혼인무효를 넣으려고 할 때 발목이 잡혔다. 처녀라서 문제없다고 결혼해놓고 형사취수니 혼인무효라고 하니 앞뒤가 안 맞았던 것.[4] 유다가 오난에게 이르되 네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형수와 동침하여) 남편의 아우의 본분을 행하여 네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 오난이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형에게 아들을 얻게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매(= 체외사정) 그 일이 여호와 목전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시니 (한글개역성경 창세기 38:8~10)[5] 원작 한정. 원작에서는 남편이던 라이칸의 생부가 승하한 뒤 남편의 동생과 재혼하여 그 사이에 하칸을 낳았다고 언급된다. 웹툰판에서는 라이칸과 하칸 둘 다 친형제로 각색되면서 형사취수에 해당되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