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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하는 수령동지/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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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목록
2.1. 북한
2.1.1. 김씨 부자 관련2.1.2. 군2.1.3. 당2.1.4. 정2.1.5. 기타 인물2.1.6. 단체
2.2. 한국2.3. 미국2.4. 소련/러시아2.5. 영국2.6. 중국2.7. 일본2.8. 기타

1. 개요

경애하는 수령동지의 등장인물을 정리한 문서다.

2. 목록

2.1. 북한

2.1.1. 김씨 부자 관련

2.1.2.

2.1.3.

2.1.4.

2.1.5. 기타 인물

2.1.6. 단체

2.2. 한국

한국 정재계 인물은 전두환노태우를 제외하고, 모두 가상인물이지만 현실의 인물과 성격, 성향이 동일하기에 법적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 가명을 쓴 것에 가깝다. 모두 실제 인물과 이름이 한 글자 이상 같다는 특징이 있다.

2.3. 미국

미국 인물들은 이름이 바뀌지 않았다. 다만 역사는 크게 바뀌어서, 원역사의 대통령이었던 클린턴, 아들 부시, 오바마 셋 모두가 김정환 한 명의 개입으로 운명이 변해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

2.4. 소련/러시아

작품이 소련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80년대 후반부터 시작한지라 소련/러시아와의 연관성은 별로 안 나오며, 원역사와 작중 인물들이 큰 차이가 없다.

2.5. 영국

2.6. 중국

2.7. 일본

작품에서 처음 등장하는 외국이자 초반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나라이다. 그 후에는 비중이 줄어들었으나, 개혁개방과 경제발전, 그리고 서방세계로의 편입을 목표로 한 북한에 본의 아니게 이것저것 많이 퍼주는(...) 좋은 이웃나라가 되었다.

2.8.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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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때 벌었던 돈이 약 130억 달러 이상. 물론 대부분은 북한의 성장에 쓰여서 본인은 '다른 독재자들은 국고를 사재로 옮기는데 나는 개인 재산을 국고에 붓고 있군.' 이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2] 노환으로 인한 사망으로 알려졌으나 일차적인 이유는 김정일이 김일성이 좋아하는 보르시치에 비소를 탔다.[스포일러] 직접적인 사인은 김일성과 항일 빨치산 활동을 같이 했던 수구 세력이 김일성의 이름을 판 쿠데타를 모의하고, 그가 살아 있으면 이런 일이 더 일어날 것을 짐작한 김정환 본인이 유혜림을 통해 약물로 죽인다.[4] 이미지 관리 때문에 하는 소리가 아니라 전생에서부터 실제로 마이클 잭슨의 팬이었고 스타크래프트를 즐겼던 듯하다. 새벽에 유혜림 몰래 스타크래프트를 하다가 걸려서 뻘쭘해하는 개그신도 나온다.[5] 변동된 세계에서는 이정환 대신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딸 하나를 뒀다.[6] 기본적으로는 북한의 국회의원 뱃지와 비슷하지만 만장일치로 김정환의 얼굴이 뱃지에 새겨졌다. 본인은 '아들의 얼굴이 새겨진 국회의원 뱃지를 받는 아버지는 난생 처음일 겁니다.' 라고 자평.[7] 김일성 생일 파티 때 그래서 프룬제 일파를 알아챌 수 있었다. 물론 '러시아어를 한다' 정도만 아는거라면 그 정도 학습기간이라도 무리 없었을 것이다.[8] 작중 김정환은 자신의 현재 모습을 알아보려고 남파간첩을 시켜서 가족들의 근황을 알아오게 하는데, 자신의 존재가 삭제되었다는 것을 알고 씁쓸해 하는 부분이 있다. 즉 김정환이 가서 변화한 세계와 우리 세계는 서로 평행세계라는 것인데 사실 외전이기 때문에 자세하지는 않은 열린 결말.[9] 보위부가 추측한 금액은 1억 달러였으나, 무려 1억 3천만 달러를 바쳤다.[10] 하지만 실제로는 그 돈은 주인공 전재산의 1%도 안 됐고, 나머지 99%는 미국과 일본에 분산 은닉되어 있었다.[11] 사실 이것은 원래는 김일성은 상징으로 살려두고 김정일만 암살하려고 했던 주인공의 계산과는 달리 두 사람을 모두 죽이려고 성급하게 폭탄을 터뜨린 백승철의 잘못이 컸다.[12] 이는 김정환의 의도가 아니었다. 김정일만 죽이고 김일성은 상징으로 남겨둘 계획으로 폭탄을 세팅했는데, 폭파스위치를 갖고 있던 백승철이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둘 다 죽이려고 일찍 버튼을 눌렀기 때문.[13] 이는 김정일이 김일성 사후에 벌인 유훈정치의 오마주이다.[14] 그가 야합을 결심하게 된 이유가 유일하게 있는 자식에게 좋은 물건을 사 주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자괴감 때문이었다.[15] 철직 후 편안한 교화소에서 10년 정도 지내고 가족들과 면회도 허용해줄거라고 했다.[16] 작품 초기에 김정환의 나이는 '스물을 갓 넘었다'고 언급되고 대학생 신분이며 유혜림은 25세로 명확히 언급되고 이미 대졸자이다.[17]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실제로 이런 케이스. 심지어 이 쪽은 혹시 자신의 자식이 독재에 빠질까 싶어서 이혼까지 한 케이스이다.[18] 장성택은 이런 속내는 짐작도 못하고 김정환의 애인이 분명한 유혜림이 결혼을 안 하는 이유가 유혜림이 불임이라서라고 짐작하고 자기 딸과 김정환을 결혼시키려는 수작을 부리려다가 숙청당해 죽을 뻔했다.[19] 외전 이후에는 김혜인[복선] 특별편에서 유혜림의 부모가 북한의 유력 기업인 북명그룹으로부터 "파텍 필립" 남성용 시계를 선물 받는데, 그녀는 이 사실을 고백하고 시계에 이름을 새겨서 김정환에게 선물한다. 이때 자신의 월급으로 이름을 새겼다고 하는데, 여기 3명의 이름을 새겼다고 한다. 또, 작중 유혜림이 싱가포르에 임무를 띠고 파견되어서 자리에 없다는 언급이 나오는데 이 때쯤 유혜인을 출산하러 간 것으로 추정된다.[21] 유혜림과 김정환이 연인 관계인 것은 공공연한 비밀인지라 그녀가 왜 하필 싱가포르로 갔을까? 라는 것을 시작으로 뒤진 끝내 나왔다고 한다.[22] 통일을 위해 민주화의 초입을 밟고 있는 상황에서 '백두혈통의 자식'은 여전히 다른 정치세력들의 허수아비로서 가치가 있었기 때문.[23] DC인사이드의 안티태제인 듯한 사이트로 좌익 성향이며 성소수자, 페미니즘 등에 우호적인 커뮤니티라고 한다.[24] 북한 독재자의 조카라는 특수성 때문에 주목받기 쉬웠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인디밴드가 부도칸 공연까지 할 정도라면 실력으로도 일본 내에서 손꼽히는 기타리스트라고 봐야 한다. 실제로 김정철의 기타 연주를 들어봤던 태영호의 말에 의하면 김정철의 기타 실력이 너무 출중해서 깜짝 놀랐으며, 북한이 아닌 곳에서 태어났다면 일류 기타리스트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해서 안타까웠다고 증언했다. 작중 김정철의 음악 재능은 나름 현실 반영인 셈이다.[25] 이때의 앙금으로 당대회 때 김정환에게 냉랭한 면모를 보이며 수령이 될 그에게도 불손한 탣도를 보이지만, 김정일 처형을 결정하는 그의 단호한 모습에 무언가 느낀 바가 있었는지 태도를 분명히 하라는 김정환의 압박에 승복했다.[26] 본인은 떫은 표정을 지었지만 그래도 애국전선 구성원들은 이름값 높은 그 홍계성이 자신들의 명예 총재가 된다는 결정에 호의적인 반응이었다.[27] 그러나 이때도 생각이 아예 없진 않아서, 쿠데타를 모의할 때 김정환이 미국과 붙으면 박살난다고 하는 말에 반발하는 부하를 닥치게 만들어서 김정환이 다시 봤다는 듯 이채를 띄는 장면이 있다.[28] 파병군의 최대 목적은 석유 채굴 기술을 배우기 위해 파견한 유전 기술자들을 구하는 것이었는데, 노먼 슈워츠코프 장군이 가장 가까이에 있는 대한민국 파병군에게 그 임무를 맡겼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정치적으로는 사망선고를 받게 생겼으니 백승철도 똥줄이 탄 것.[29] 사실 대한민국 파병군의 전 소령이 고심 끝에 공중지원을 요청한 것이었고, 그는 나중에 대통령까지 된다![30] 김정환과 한때 불편한 관계였던 것은 당내에서 널리 알려진 사실이어서 언제고 숙청당할 것으로 예측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인민군 화력종합시범 때 백승철이 무례를 무릅쓰고 무기 개발 중에 과로로 사망한 연구원들에 대해 청원하자 김정환이 그 부탁을 들어주면서 그의 군부 1인자로서의 지위를 다시 한번 공인해줬다.[31] 작중에선 왠지 이름이 '원흥희'로 표기[32] 이름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작중 시대 배경을 보면 현영철은 아닐 것으로 보이나, 최소 1세대 원로로 추정[33] 장성택이 현영숙과 김정환이 성관계를 가진 것으로 의심하는 묘사도 나오는데, 유혜림과의 연인이 되었을 때도 자세한 묘사 없이 넘어간 것을 보면 초안에서는 성적 관계까지 가는 사이였을 수도 있다.[34] 김정환이 20대 초반이었을 때 현영숙은 이미 30대 중반이었으니 10살 이상 연상이다. 유혜림을 질투 하는 묘사도 나온다.[35] 자신이 이런 책을 쓴 적 없다고 하자 김정환 曰 : "그럼 이제부터 동지가 쓴 걸로 하세"[36] 장성택은 소수정예 교육, 김용건은 전인교육을 주장하는데 백승철은 전자를, 최승일은 후자를 편 들었고 과거 김정일로 인해 고초를 겪은 최승일이 김정일의 최측근이었던 장성택에게 심통을 부려서 분위기가 냉각된 상황이었는데, 김영남은 "평소 김정환의 성향이라면 소수정예 교육을 지향할텐데 그걸 이미 한번 숙청됐었던 장성택의 편을 들기 싫다"는 의중까지 눈치챈다.[37] 여담이지만 이 타협안에 가장 가까운 의견을 낸게 현영숙이었는데, 그래서 그녀가 김정환의 후임 총서기가 됐을 것이다.[38] 사실상 당의 1인자[39] 현실 역사에서 사이가 안 좋았다는 아내 김경희도 쿠데타 성공 후 정신병원으로 보내버렸다.[40] 당 조직지도부장을 노린 현영숙의 밀고로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나 바뀐 북한에서 김정환은 예전 같은 혹형을 원치 않았고, 아오지에 1개월 쯤 보내서 기를 죽여놓은 다음 고위 간부 전용 교화소에 수감했다. 현실에서도 공산권 국가들은 체제 초기엔 정치 투쟁은 그야 말로 목숨이 걸린 투쟁이었다가, 안정화된 다음에는 목숨은 살려주고 한직으로 내쫓거나 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서 극단적인 정치투쟁을 지양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41] 물론 자기도 김정환이 이룩한 업적이 어마어마함을 알고, 그 업적을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자신이 총서기가 되면 절대 납득할 사람이 없는 것 또한 알고 있다. 그래서 김정환에게 은퇴하고, 현재 딸을 북한으로 다시 데려와 후계자로 키울 것을 요구한다. 물론 그 후계자를 키울 후견인은 장성택 본인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자신이 북한의 지도자가 되는 것이다. 또한 이 내용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공개하여 다른 고위층을 흔드는 것도 그가 영상통화를 건 목적에 들어갔다.[42] 원역사의 인물이 사망한 연도랑 비슷하며, 시체를 건지지도 못한 처참한 최후를 맞이한 것이 비슷하다.[43] 외신에선 박종철이나 이한열이 살아나서 운동권을 비난하고 신군부를 지지했을 때의 충격에 비유한다. 김정환은 처음엔 그가 전생의 절친과 이름이 같다는 것에 관심을 가졌지만, 교화소에서 그를 관찰하며 그의 신념과 굳은 심지가 방향을 바꾸면 체제에 크나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그의 전향에 공을 기울였는데 그 판단은 적중했다.[44] 안기부 블랙리스트에 등록될 정도로 무게감 있는 인물이다. 숙청의 원인이 된 투자도 존버했으면 오히려 압도적인 이득을 보는데 김정일이 암중에서 김일성의 사람들을 쳐내는 시기가 운 나쁘게 겹쳐서 숙청당한 것이다.[45] 교화소에서 고초를 겪은 과거에서 배운 것으로, 자신이 뛰어난 건(...) 특별한 교육 덕분이 아니고 학교는 단순히 지식만을 배우는 것 뿐만 아니라 친구들과 과제를 함께 수행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며, 이걸 미리 알았다면 그 고초를 안 겪었을 거라고 생각한다.[46] 만일 한 명이 죽고 나머지 한 명이 살아남아 교화소를 나가면 남은 가족들을 책임져주기로 약속했다 한다.[47] 남한에서 온 사기꾼에게 모든 것을 잃어서 남한 말투만 들리면 이성을 잃고 이미 2명을 죽인 전력이 있지만 정신병 때문에 심신미약이 인정되어 병원에 들어가 있었다.[48] 유공자 가족들이 주로 사는 서평양 지역을 개발해야 하는데 정치적 부담을 대신 져줄 희생양이 필요했기 때문.[49] 중국 정부에서 처음에는 의심했으나 남한에서 주사파 활동을 한 전력과 마오쩌뚱 어록을 줄줄 외우는 모습 때문에 경계를 푼다.[스포일러2] 박이삼은 박세황의 메세지를 받은 후 북한의 오일머니를 선택하고, 박세황은 군 수뇌부의 쿠데타 모의에 회유 제안을 빙자한 납치를 당한다. 하지만 이것을 예상한 김정환이 박세황을 구출, 15대 대선 토론회장에 출석시킴으로서 쿠데타 모의를 까발린다. 이후 박이삼은 김준필을 비롯한 군 세력을 일망타진하고 전두환, 노태우도 석방해주지 않는다. 실제 김영삼과 같은 성격으로 다른 참모들이 다음 대통령에게 선택을 넘기라고 종용하는 참모들에게 다음 대통령에게 무거운 짐을 넘기지 않기 위해 자신이 모든 욕을 먹겠다고 선언하고 북한측 채권을 빌리는 것에 합의했다.[51] 작중에서는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붙지 않았으므로 둘 사이의 관계도 원역사보다는 훨씬 나은 것으로 보인다. 당장 이 회담도 북한과 관계를 파탄낼지도 모르는 팀 스피릿 훈련을 앞두고 야권 지도자인 그에게 지지를 끌어내내기 위해서 이뤄진 것이다.[52] 김정환은 유민중의 성향과 맞지 않는 음모에 호응해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북한이 바뀐 만큼 유민중도 북한에 대해 계산적으로 생각하게 된거 아니겠냐고 추론하고, 이후부터 자신으로 인해 바뀐 역사에 좀 더 신경쓰기 시작한다.[53] 오히려 보수 대통령인 이현창이 남북철도를 개통하는데 기여했다.[54] 총선직전 고려일보가 김정환보고 유신드립을 치는 바람에(...) 국민의 역린을 제데로 건드렸다.[55] 민주화 운동권 세력이지만, 한국 운동권에 비해 훨씬 세력도 약하고 멍청해서 해체 수순을 밟다가 탈북 후 제2차 한국 전쟁을 일으켜달라고 청하면서 비슷한 운동권 세력이지만 전쟁은 해선 안되는 민주당, 정확히는 그 대표인 노윤현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훗날 조선민주사회당을 창설하게 된 학총련 출신자도 이 때의 일을 흑역사 취급하면서 그때 그건 지금 생각해 봐도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56] 현실과 비슷하게 당 내부에서 흔들 목적으로 의견 표명을 요구했다고.[57]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입장이라 악수가 될 수 있다는 예측들이 있었으나, "전쟁은 말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북한에 넘겨주는 건 안 될 일이다"는 여론이 의외로 컸기 때문.[58] 전생에 부동산 정책으로 집이 어려움을 겪어서 감정이 좀 있었고, 마냥 친미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사람이라 자신의 구상에 방해가 될 수 있어서 애초에는 안 밀어주려고 했었다.[59] 작중 민주당도 영남에서 어느 정도 의석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대충 원역사의 더불어민주당 정도 되는 듯 하다.[60] 탄핵이 없었지만 원역사와 달리 그가 당선된 해는 2007년 말이고 총선이 바로 다음해였으니 유권자들이 여당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보인다.[61] 여담이지만 현실에 빗대보면 전씨 성을 가진 군인이라면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호의를 얻기 어려울텐데 민주당 대통령이라는 설정이 특이하다. 현실적인 추측을 해보면, 작중 한국은 북한이 개혁개방의 길을 걸으면서 극우-극좌가 무력화되고, 14대 대선에서 김대중이 불출마하면서 지역감정이 극단으로 치닫지 않고, 1997년 위기 때 발생한 쿠데타로 인해 전직 대통령들이 사면되지 못하면서 보수-진보 갈등이 현실의 그것만큼 극단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62]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받았는데, 실제로 이것이 정주영이 대통령에 도전했던 이유이기도 하다.[63] 이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던진 김정환에게 자기 계열사는 관련 없다는 것 같다며 내숭을 떨자, 김정환이 일부러 '왕국', '옥새' 같은 적나라한 어휘를 써가면서 그를 설득하는 장면은 본작의 백미 중 하나.[64] 안기부 요원이라는걸 증명할게 없다는 게 문제였는데, 박이삼이 임무를 잘 수행한 것을 치하하며 훈장을 수여했고 이를 이용해서 난입할 수 있었다.[65] 자부심이 강한 특수부대원이 붙잡히면 제네바 협약에 따른 전쟁포로 대우도 못 받을 용병 신분에, 주적으로 교육받았던 북한군의 지휘를 받아 전쟁에 뛰어들게 됐으니 군생활이 더럽게 꼬였다고 한탄할 만 하다. 그러나 '북괴', '빨갱이'라는 멸칭을 쓰는건 군인으로서의 말습관으로 보이며, 김정환과 그가 가져온 변화는 좋게 평가하고 죽더라도 이겨야 하는 이유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66] 천안문 사건이 작중 변화로 인해 더 참혹해지면서 무산된 북방정책을 대체한 것으로, 물론 통일 무드 조성으로 개헌을 통해 정권을 연장한다는 꿍꿍이도 있었지만 군사정권 출신 대통령이 무력도발을 유도하는 등으로 정권 유지에 유리한 적대적 공생관계를 연장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는 점은 평가할만 하다.[67] 실제로 그 의도대로 될 뻔했다. 남한은 특전여단 2개, 기계화사단 1개, 독립포병여단 1개, 의료지원단이라는 어마어마한 병력을 파병하려고 했으나, 국군보안사령부 민간인 사찰 폭로 사건로 인해서 원 역사랑 비슷한 규모만 보내게 됐다.[68] 소련의 정보에 대해서는 정보망이 잘 구축되어 있다고 거짓말을 했으나, 사실 회귀자인 주인공의 머릿속에서 나온 정보인 것.[69] 대처는 인터뷰에서 클린턴이 마리화나를 피우지 않았다는 거짓말을 하게 만들었고, 김정환은 피오니 홀딩스를 통해 로스 페로의 회사에 인수합병 공격을 해서 그를 중도 사퇴하게 만들었다.[70] 1993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을 중재했다가 실패하긴 하지만, 어차피 얼마 못 갈 협상이었던데다가 작중 미국은 북한이 산유국이 되면서 중동에 관심을 덜 기울였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었다.[71] 말이 '비공식적 지원'이지, 전자전과 군사정보를 제공하고 C-17까지 지원하는 등 참전국이나 다름 없다.[72] 사실 미국 정부가 머스크의 로켓 개발 계획이 군사적으로 전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걸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러니 미국과 북한을 오고가는 머스크에게 출국 금지를 안 걸었단 게 눈 감아줬다는 신호가 아니겠냐는 암시가 나오며, 정환도 머스크가 순수한 민간 목적의 로켓 개발을 믿겠냐며 서로 이용하면서 이용당해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군사용 목적의 궤도 진입 발사체를 만들지 않는다는 암묵적 약속 하에 성립된 순항 미사일 개발 허가라 할 수 있다.[73] 여담이지만 원 역사에서는 주북러시아대사관이 프룬제 일파에 대한 정보를 북한 정부에 넘겼다고 한다.[74] 사실 북한 같은 사실상의 전제국가에서 수령의 사생아가 자국 군부에 심은 스파이들을 알려달라며 거래를 제의했으니 목표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75] 물론 김정환이 그런 느낌을 주도록 작업을 하기도 했다.[76] 중국은 문화대혁명에 대한 진압이유중 하나로 제2의 문혁방지를 내세우고 있고 이거에 대해선 과거 천안문사태 참가한 지식인도 아무말을 못한다.[77] 초전에서 선양군구가 박살났으니 수도를 지켜야 할 베이징군구가 투입되어서 병력의 공백이 생긴 틈을 노렸으니 결국 북한이 그의 집권을 도와준 셈이다. 이미 시진핑이 숙청된 것을 보았고, 온건파를 대변하면서 보시라이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숙청을 암시하기까지 했으니 이판사판으로 일을 저지른게 성공한 것.[78] 김정환은 나카오를 총리로 만들 생각은 있었으나, 버블이 터질 때 총리가 된다면 사실상 정치인생이 끝장나기 때문에.[79] 원래 나카오는 김정환을 아랫사람 대하듯 했었으나, 김정환이 압박을 가해서 본인의 우위를 확실히 각인시키는 부분이 백미이다.[80] 어떻게 보면 처음 북한에서 접촉했을 때 김씨 일가의 하수인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표했던 게 다른 면에서 현실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