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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낙서의 예시 [펼치기/접기] | |
일제강점기 당시 곳곳에서 발견된 낙서들[1][한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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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落書영어:Scribble, Doodles
일본어:落書き(라쿠가키, Rkgk)
아무 곳에 자신이 내키는 대로 무작위로 글을 남기거나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가리킨다. 이 문서에서는 주로 그림을 그리는 행위에 대해 다룬다.[3]
글을 베낄 때에, 잘못하여 글자를 빠뜨리고 씀을 낙서라고 하기도 한다.
2. 특징
아래의 사례들과 같이 아무 곳에나 낙서를 하고 다니는 소수의 몰지각한 사람들 탓에 사회 전반적으로 낙서에 대한 이미지가 나쁜 편이지만,[4][5] 사실 낙서는 인류가 문화활동을 시작한 시점부터 함께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문학과 미술은 지금은 디지털화 되어 컴퓨터로 그리는 사람이 많다고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종이와 펜으로 표현해 왔었다. 컴퓨터는 말할 것도 없고, 그나마 종이와 펜조차 탄생한 역사는 짧은 편이며, 그 이전에는 석판에 돌멩이로 새기거나, 동물 가죽에 남기거나, 그냥 땅바닥에 막대로 그리거나, 말 그대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이곳 저곳에 무언가를 남겼었다. 몇천년전 석판에 새긴 그림문자들이나 거북이 등껍질에 새긴 갑골 문자도 수없이 발굴되었는데, 실제 당시 시대에 인류가 얼마나 많은 낙서를 남겼을지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한마디로 무료함에 빠진 인류가 낙서라는 창작활동을 통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낸 것이다.
거기다 현대에 와서도 공공장소에 끄적거리는 범죄 행위가 아닌, 그냥 심심해서 자신의 노트에 소설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낙서를 하는 사람들은, 그 낙서가 수년에 걸쳐 지속될 경우 정식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들보다 더 잘 표현하기도 한다. 심지어 낙서만 해오던 사람이 4년제 대학교를 나온 사람들 보다 더 잘 표현하는 경우도 많이 나온다.
아기들도 어릴 때 낙서를 많이 한다. 이는 자신의 감정을 색연필로 표현하며 지능 발달에 도움이 되므로 낙서했다고 막 꾸짖지 말자.[6]
사람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좋은 그림 연습 방법으로 많이 추천하는 것이 의외로 낙서다. 그때그때 생각나고 보이는 대로 낙서를 습관화하도록 권장하는 이들이 많은데 실력파 일러스트레이터로 이름이 높은 테라다 카츠야 같은 사람이 그런 케이스. 이 사람은 본인의 낙서장을 추려서 '라쿠가킹'[7]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는데, 실제로 테라다의 그림 실력은 수만 장에 이르는 낙서가 밑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조금 다른 의미이긴 한데, 흔히들 취미나 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 중에서 '낙서 끄적끄적'등의 뉘앙스로 블로그 등에 러프한 느낌의 그림을 게재 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사실 이런 경우 본인이 정말 그런 그림을 위의 정의대로 낙서로 치부하는 사람은 극소수이며, 일종의 기만질로 취급되기도 한다. 그림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 쓰는 낙서는 작업 제출을 위해 그린 것이 아니라 본인이 스스로 그리고 싶어서 그린 그림을 뜻한다.
공중화장실 낙서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얘깃거리이며, 칸막이[8]에다가 화장실 유머나 야설을 쓴다거나 섹스 장면을 조악하게 묘사한 그림을 그린다거나 하는 게 대부분이다. 일명 화살표 낙서도 나름 유명하다. "← 오른쪽을 보시오" 라고 적어놓은 다음 왼쪽에다 "XX, 여기가 오른쪽이냐" 같은 글을 적어놓는 방식. 남 욕하는 낙서도 흔히 보인다. 밑도 끝도 없이 정부나 특정한 정당, 국회의원들, 대통령에 대한 욕을 하거나, 심지어는 음모론을 적어놓는 사람들도 간혹 있다. 또한 학교 화장실을 보면 본인과 앙숙인 어떤 동급생이나 선후배를 욕하는 낙서나 교사를 욕하는 낙서 등 하여튼 화장실에는 별의별 낙서들이 다 있다. 보다 보면 글쓴이가 피해망상이나 조현병, 마약중독이 아닌지 걱정될 정도로 지리멸렬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도 있다. 화장실 낙서는 어떻게 보면 사회의 뒷켠에서 하고 싶었던 말들의 집합이라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로 화장실 특유의 문화로 자리매김한 셈. 물론 낙서 금지와 적발 시 벌금을 물리겠다는 경고를 써 붙여 두고 출입구에 CCTV를 설치하면 어느 정도 해결된다.
3. 범죄행위에 해당하는 낙서
2007년 서울 삼전도비 스프레이 훼손 사건 |
2018년 베를린 장벽 훼손 사건 |
간단한 스크래치 표현부터 정교한 벽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당사자의 허가 없이 자유롭게 글이나 그림을 남기는 것. 아무곳에나 낙서를 하면 기물파손, 재물 손괴로 경범죄 처벌을 받거나 반달리즘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199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미디어 작품에서는 그래피티를 하는 모습이 자주 묘사된다. 흑인 힙합 문화에서 출발한 그래피티는 낙서를 근간으로 만들어진 문화로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장미셸 바스키아나 뱅크시와 같은 유명 인사들이 출현하고, 패션으로도 적용되다 보니 어느 정도 양지로 떠오른 모습이다. 다만 범죄의 성격도 아직 갖고 있기 때문에 논란을 빚고 있다.
낙서가 '한국인의 종특'이라는 식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종종 있으나, 타국의 사정을 모르는 상황에서 무작정 하는 비방에 가깝다. 냉정과 열정 사이 덕분인지 피렌체 두오모에 일본어 낙서가 늘고 있다는 사실이 보도된 적이 있었고, 타나카 요시키는 창룡전에서 '해외 유적지에 낙서하는 인종은 일본인 밖에 없다'라는 말로 까면서 바티칸에서 낙서하다가 걸려 입국 금지당한 일본인의 실화를 언급하기도 했다. 2014년 연말에는 프라하에서 오밤중에 스프레이로 문화재인 프라하 국립극장 벽에 낙서를 하다 발각된 일본인이 경찰의 테이저건을 맞고 체포되는 일도 있었다. 기사[9] 일본 내에서도 마찬가지라 1960~70년대부터 낙서하지 말자는 공익광고[10]를 방송했을 정도.
또한 중국의 경우, 2013년 5월 이집트 아랍 공화국 룩소르 유적에선 중국인 10대 꼬마가 무려 3천여년전 부조물에 띵진하오 왔다가 간다라는 낙서를 새겼다! 이집트 당국은 몰랐다가 되려 중국 인터넷에서 이걸 퍼올린 그 띵진하오라는 15살 소년 덕분에 중국 방송이 대서특필하고 나서야 분노했으며 해당 부모는 사과했지만 이로 인하여 이집트 당국은 중국인 여행자 특별주의보를 내렸다. 2013년 9월엔 10미터가 넘는 불상의 4m까지 올라가 낙서를 하던 경우도 중국에서 드러났다. 이에 세계 관광지에서 중국인 낙서가 속속히 드러나자 2013년 10월 중국 정부는 낙서하다가 걸리면 엄청난 벌금 및 처벌로 응징하겠다고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럼에도 2015년 9월, 베이징 고궁박물관에 있는 300년이 넘는 구리 항아리에 칼로 연인 이름을 쓰고 하트를 친 낙서를 기어코 한 사건이 벌어졌다...이 과정에서 낙서에 대하여 겨우 200위안(3만 6천 원 정도)밖에 벌금을 내는 처벌이 약하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중일 뿐만 아니라 다른나라 사람들 역시 낙서로 잦은 문제를 일으킨다. 특히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는 오래된 도시나 지하철마다 그래피티가 향연을 펼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피렌체 두오모에도 일본어 뿐만 아니라 영어, 프랑스어, 한국어, 중국어 등등 그 탑을 방문했던 온갖 나라 사람들의 낙서가 한가득 있다. 즉, 감시가 삼엄하지 않은 낙서를 할 만한 '포인트'라면 장소를 불문하고 낙서들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이 생기면서 이에 대한 반감으로 대놓고 배려석에 X자를 긋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이 역시 공공기물 파손죄에 해당된다.
센트레일리아 문서에 나온 동영상만 봐도 버려진 이 도시 도로 곳곳에 영어로 한가득 온갖 낙서가 적혀져 있다. 물론 낙서, 특히 오래된 유적에 낙서를 하는 건 지고의 유산을 훼손하는 중대한 범죄 행위다. 들키면 벌금은 물론, 입국 금지나 추방 조치 또한 당할지 모르니 하지 말자.
2023년 6월 27일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 남성 관광객이 이탈리아 로마 콜로세움의 벽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고 씨익 웃었다. 해당 관광객이 이름을 새기는 모습은 영상으로 찍혀서 레딧에 퍼졌고, 이탈리아 문화부 장관은 해당 관광객의 행동이 "반달리즘"이며, 법에 따라 처벌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경복궁 영추문 및 담장 훼손 사건이 벌어졌는데 그 외에도 돌과 나무 부분을 파내어 새긴 낙서도 있다. #
3.1. 공통점
국적을 불문하고 낙서의 상당수는 욕설이나 어그로가 목적이다. 대부분의 낙서는 자신과 타인의 이름, 그 관계를 표현하는 아주 짧은 기호[11], 비속어 등 저급하고 무가치한 내용을 표현한다.욕설 상당수가 생식기, 성행위, 대소변에 관련된 말초적이고 자극적이듯 낙서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낙서에도 공통 패턴이 있어서 sex, fuck you 또는 기타 욕설이 적힌다. 예를 들면 영어로는 Sex, 한국어로는 섹스. 영어로는 Fuck, 한국어로는 씨발 등.
여담으로 해외에서 길을 잃었는데 자기 나라 말로 적힌 낙서를 보게되면 반갑다고 한다.
4. 문화재로서의 낙서
낙서가 옛 사람들의 생활상과 생각, 여론 등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낙서가 발굴되면서 그 시대에 대한 새로운 학설이 제시되는 경우도 있다.기자의 대피라미드에 새겨진 고대 이집트 일꾼들의 낙서. '쿠푸의 친구들'이라는 익살스러운 내용이다. 그 외에도 일꾼들이 쓴 걸로 추정되는 낙서에는 그날 받은 임금이 적다고 투덜거린 것, 일이 힘들어서 그만둔다고 하며 감독관과 싸운 것, 임금이나 지급되는 생필품을 더 달라고 시위했다[12]거나 누구의 어떤 행동이 싫다는 등의 내용이 쓰여 있었고 이게 해독되면서 국제 고고학, 역사학계에서 난리가 났다. 그동안 피라미드 건설 현장에 대해서는 헤로도토스가 주장하던 대로 노예들에게 강제 노동을 시켰다는 게 통설이었는데 이게 뒤집어져서 급여나 음식, 생필품을 주고 정식으로 사람을 모집하여 고용했다는 근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절 갈라티아인들이 1000년 전 파라오의 묘벽에 사냥한 여우를 여기 바칩니당ㅋ하거나 누구 누구 누구 여기 왔다감 수준의 낙서를 한 사례도 있다. 게다가 이런 낙서를 통해 수천 년 전 그 시절에도 가이드가 돈을 더 받아 챙기려 했다, 관광지는 왜 이리도 바가지요금을 받느냐고 비판하는 등 관광과 돈에 얽힌 추태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음을 알게 되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에서는 1세기 사람들이 남긴, 욕설과 음란함으로 가득한 외설적인 낙서들이 가득 발견되어 후세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자신의 테크닉이 여성들이 절로 신음하게 한다고 자랑하는 검투사의 낙서나 매춘굴에 다녀간 프라이토리아니의 낙서, 창녀 아무개는 얼마 주면 무슨 행위까지 한다고 광고하는 낙서, 여기저기에 노상방뇨를 하지 말라고 써놓은 경고문이나 노상방뇨를 했다고 자랑하는 낙서, 술집에서 사기 도박이 들통나 도박꾼들이 싸우고 주인이 말리는 내용을 그린 만화 등등에서 로마인들의 저속한 서민 정서를 가감 없이 볼 수 있다. 심지어는 바실리카에는 "이렇게 (벽에 새겨진) 낙서가 많은데 네가 무너지지 않는 게 신기하구나!"라고 벽면에 새긴 낙서도 있다.
13세기에 노브고로드 공화국에 살던 온핌(онѳиме)이란 소년의 학교숙제는 자작나무로 만든 목피로 되어 있다. 거기에다가 숙제가 워낙 지루했는지 대부분 낙서들이 빼곡하게 그려져 있기도 했다. 대표적인 내용이 위의 199번 목피이며 앞면엔 글라골 문자[13]를 외울 목적으로 빼곡하게 써 놓았는데 뒷면엔 불을 뿜는듯한 야수와 "나는 괴물이다(Ѧ звѣрє)"라고 써놓은 낙서인데 친구에게 보여줄 목적으로 그린건지 괴물 옆에 상자를 그려놓고 안에 '다닐로야 안녕! — 온핌이(Поклоно ѿ Онѳима ко Данилѣ)'이라고 써놓았으며, 그 외에도 기병이 되어 적들을 무찌르는 내용이나 성경의 시편을 패러디한 듯한 “주님, 당신의 종 온핌을 도우소서.”를 써 놓는 등 동심이 넘치는 낙서를 써놓아 먼 미래의 후손들을 훈훈하게 만들었다. 기사,[14] 링크
한국에서는 화랑들이 '아무개 왔다 감' 형태의 낙서로 유명하다. 울주 천전리 암각화나 제천시 점말동굴[15] 등 전국 각지에 화랑의 주요 성지순례 장소가 발견되기도 했는데 당시 여러 화랑들이 직접 새긴 이름이 남겨져 있다. 참고로 이 화랑들의 이름을 화랑세기에 있는 인명과 교차검증해 보았으나 놀랍게도 전혀(!) 들어맞지 않아 이것이 화랑세기가 위서라는 근거로 쓰이기도 했다.
천연기념물 155호인 울진 성류굴만 봐도 내부에 무려 1240년전 정도 전, 즉 신라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낙서가 발견되기도 했다. 한자를 해석하니 '아무개 다녀왔다. 아무개 구경했다' 형태로, 옛날에도 낙서에 이 레퍼토리는 단골이었음을 알 수 있다. 금강산을 비롯한 한반도의 여러 명승지에는 이런 식으로 귀족이나 사대부가 자기 이름을 남긴 낙서들이 많이 남아 있어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료가 되기도 하는데, 이를 제명(題名)이라고 한다. 제명은 당시 한자문화권에서 상당히 흔한 관습이었다.
정림사지 오층석탑에서는 당나라의 장수 소정방의 명으로 새긴 명문이 있다. 철수할때까지 시간이 촉박한 까닭에 비를 세우지 못하고 석탑에다 새긴 것으로 보인다.
추사 김정희는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 비문을 해독하고는 기뻐서 비 옆면에 낙서를 새긴 적이 있다.
윌리엄 로원 해밀턴이 사원수군(四元數群)을 발명했을 때 근처 다리 난간에 칼로 낙서를 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며 후술하듯이 아이작 뉴턴도 캠브릿지 대학교에 다니던 시절, 난 이름을 널리 알리겠다며 학교 곳곳에 자기 이름을 새겨 놓았다.
성 소피아 대성당 2층 내부 대리석 난간엔 출처를 알 수 없는 어떤 문양이 새겨져 있었는데 이후에 밝혀진 바론 바이킹들의 언어 중 하나인 Norse Futhark 룬 문자로 여기 왔다 감 이라 적힌 것이 밝혀졌다. 이 낙서는 Halfdan carved these runes 혹은 Halfdan was here으로 해석되는데 즉, 'Halfdan이 쓰고 감 혹은 왔다 감'이라는 의미라고. 정황상 바이킹 출신으로 구성되어 동로마 제국에 복무하던 바랑인 친위대가 기나긴 성찬예배의 지루함을 견디다 못해 새긴 듯한 룬 문자 낙서라고 추측된다. 당사자들은 지루해서 쓴 낙서이지만 고대 노르드어[16]로 된 귀중한 사료로서, 게르만어파 계열 언어를 연구하는 언어학자들의 지대한 관심을 모은 바 있다.
해금강 정방폭포 절벽에도 "서불 다녀감"(徐不過此)이라는 낙서가 새겨져 있었다고 전해진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딸인 프랑스 공주 마리 테레즈 샤를로트도 프랑스 대혁명 이후 왕족이라는 이유로 감옥에 갇혔을 때 감방 벽에 낙서를 남겼는데,[내용] 이 글 역시 그녀의 당시 심경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
그밖에 유명인이 한 낙서는 때론 아주 문화재 취급을 당하기도 하는데 유명한 경우가 바로 아이작 뉴턴. 학창 시절, 그는 책상이나 벽에 이름과 같이 세상에 이름을 알리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는데 그가 전설적인 천문, 과학자로 인정받으면서 이 낙서들은 370여 년이 넘게 지난 현재도 그대로 남아있다. 하지만 낙서하다가 걸려서 욕먹고 벌금을 내던 유명인도 있으니 바로 오노레 드 발자크. 나폴레옹 동상에 끌로 "이 사람이 칼로 벌인 것을 난 펜으로 하고 말겠다!"라는 포부를 밝혔다가 경관에게 걸려 벌금을 내야 했으며 이 낙서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발자크가 지인들에게 밝히지 않았더라면 알려지지도 못했을 일화다.
그밖에 일본에서는 유명한 고승이 유명한 화가가 그린 그림을 보고 그림에 그려진 말에 대하여 이 그림에 나온 말 잘 그렸다라는 낙서를 그림 구석에 한 적이 있다. 그림 주인은 기겁하였지만 이 낙서를 본 일본 왕족이 나도 공감이라고 그 낙서 옆에 글로 낙서해 버렸다고. 그런데, 오히려 왕족과 고승이 낙서한 그림이라고 하여 되려 그림값이 더 펑펑 올랐던 일화도 있다.
또한 조선 후기에 소설책 대여점인 세책점에서 대여된 책 뒤에 낙서된 음담패설이나 책에 쓰여진 불평들을 통해 책 대여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당시 독자들의 불만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기도 하다. 링크
일제강점기 시절의 조선인들이 낙서를 하면서 일제의 강압적인 지배에 울분을 나타내고 조선 독립의 의지를 표현한 낙서 기록들이 발견되어 잔잔한 재미와 감동을 주었다. 기사 또한 이 낙서들로 당시 일제에 대한 조선인들의 여론이 어떠했는지 추론할수있다.
하시마 섬의 징용공 합숙소에는 "어머니 보고 싶어요", "추워요", "배고파요", "죽일 왜놈들아, 죽어서 네놈들에게 저주를 내리겠다!"등 가슴 아픈 한국어 낙서들이 있다. 다만 해당 낙서들은 1965년에 조총련 쪽에서 제작한 영화 《을사년의 매국노》 촬영 당시 녹음을 담당한 여성 스태프가 연출용으로 새긴 것이며, 실제 당시 징용공들이 새긴 낙서가 아니다.
넓게 보면 동굴의 암각화같은 것도 일종의 낙서이다. 낙서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선정되는 사례도 있다.
공군 장병들이 출격하는 전폭기의 폭탄에 낙서를 남기는 일도 있다. 주로 'XX를 추모하며(출생일)~(사망일)', '나라를 위하여' 등의 문구지만 이따금 '게임오버', '왕좌의 게임을 못 보게 한 대가를 받아라!', '도조양반 스팸이나 처드쇼'(링크), '오사마, 미국은 건드리지 말고 이거나 먹어라', 'XX가 주는 라마단 선물이다' 등의 재미나고 재치있는 문구들도 있다.
미해군의 경우엔 다른 항모에 착함한 함재기[18]에게 조롱성 낙서를 하는 문화가 있었으나, 현재는 스텔스에 사용되는 도료가 성능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없어졌다.
또한 인터넷이 보급되기 이전에는 익명성 뒤에 숨어 있는 사람의 심리를 유용하게 알아볼 수 있는 자료이기도 하기에, 사회학자, 철학자, 심리학자들의 직접적인 연구 수단으로 널리 쓰였고, 프로이트와 동료학자들도 낙서를 수집해서 인간심리에 대해 연구해 보았다.
킬로이 다녀감도 유명한 낙서 밈인데, 본래 킬로이라는 제2차 세계 대전 때 미 해군 조선소 검사관이 체크용으로 하던 낙서가 미군 내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끌어서 미군이 주둔하는 모든 지역에서 이 낙서가 남겨지게 되었는데, 미군이 전 세계를 들쑤시고 다닌 덕에 전 세계에 이 낙서가 퍼지게 되었다고 한다.
5. 관련 문서
[1] 낙서가 발견된 장소, 낙서의 내용, 낙서가 쓰인 날짜와 낙서에 사용된 재료를 순서대로 설명하고 있다. 경성부 혜화정, 경성부 누상정 등 익숙지 않은 지역 이름이 보이는데 당시가 일제 강점기였던 만큼 행정명이 일본식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혜화동과 누상동에 각각 해당한다.[한자] 천내리역(川內里驛), 천수지수민야수(天愁地愁民也愁)/신년래도부자유(新年來到不自由): '하늘이 근심하고 땅이 근심하고 백성이 근심한다. 신년은 오는데 자유는 오지 않는다.' 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각서(刻書)는 칼이나 못 같은 걸로 벽에 글자를 새겼음을 의미한다. 상동(上同)은 위와 같은 날에 같은 재료로 쓰였다는 의미다.[3] 다만 창작 활동을 위해 (자기 소유) 원고지에 글을 쓰거나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것은 일반적으로 낙서로는 보지 않는다. 물론 원고지나 캔버스에도 그냥 심심해서 끄적거리고 있는 것도 낙서고, 창작활동 자체가 낙서에서 출발하는 경우도 적지 않으니 작품활동(의 시작)과 낙서 사이에는 어느 정도 교집합이 존재하기도 하며, 특히 컴퓨터를 비롯하여 그림의 수정이 쉬운 디지털 매체 상에서는 이러한 경계가 모호한 편이다.[4] 당장 낙서에 대한 소식이 들려오면 사람들은 낙서 한 사람을 인간 말종 취급한다.[5] 나무위키로 이전되기 전 리그베다 위키에서도 이 편집이 있기 전엔, 범죄로서의 낙서만 기술되어 있었다.[6] 다만 벽이나 공공장소 등에서 하지 못하게 충분히 교육시켜줘야 한다.[7] 라쿠가키(らくがき: 일본어로 낙서)+King. 의역하자면 '낙서왕'[8] 칸막이 이전의 조적벽+문 칸막이의 경우에도 낙서와 화장실 유머의 온상이었다.[9] 이 인간이 체포되고 나서 한 말이 황당한데, 원래는 다른 곳에 낙서를 하려고 했는데 그날따라 날씨가 너무 추워서 근처에 있던 프라하 국립극장 벽에 낙서를 한 것이라고 했다.[10] 落書きは貧しい心の現われです(낙서는 형편없는 마음의 표현입니다)[11] ♥ 등등[12] 기록된 것 중 가장 오래된 파업 사례이다.[13] 초기 키릴 문자로 고대 동슬라브어다.[14] 2007년 조선일보 기사이나 삭제되어 블로그 글로 대체.[15] 사실 제천 점말동굴은 석기시대 유적으로 더 유명하지만, 화랑들이 순례와서 새긴 글자가 여전히 남아있는 등 신라 때에도 영험한 성지였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16] 현대 스웨덴어, 노르웨이어, 덴마크어 및 아이슬란드어의 조상 언어다.[내용] '마리 테레즈 샤를로트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랍니다. 수천 번을 부탁해 보았지만 어머니를 만날 수도 없고, 소식조차 들을 수 없죠. 내가 가장 사랑하는, 그렇지만 소식조차 알 수 없는 내 어머니, 꼭 살아 남으시길! 아, 나의 아버지! 하늘에서 저를 지켜봐 주세요. 아, 하느님! 부모님을 고통받게 한 저들을 용서하소서.'[18] 돌아갈 항모가 없는 경우도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