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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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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작지가 생기는 곳에 다른 기술예술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따라서 농부야말로 바로 인간 문명의 선구자이다.
대니얼 웹스터
[ruby(農者天下之大本, ruby=농 자 천 하 지 대 본)] (농업은 세상의 큰 근본이다.[1])

1. 개요
1.1. 농업인
2. 어형3. 역사 및 중요성4. 어려움
4.1. 체력4.2. 기술4.3. 자본4.4. 경영 능력4.5. 불안정성
5. 기타6. 인물
6.1. 농부 출신 유명인6.2. 별명이 농부인 이들
7. 농부 속성의 캐릭터

1. 개요

농부()는 농사짓는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농민'이라고도 부르며, 순우리말로 '여름지기'라고 한다.

인간이 사는 데 필요한 의식주 중 식(食)은 전적으로 이들이 없으면 해결할 수 없으니 '농자천하지대본'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어업에 종사하는 어부와 함께 산업의 단계 구분 중 원재료 생산에 해당하는 1차 산업을 대표한다.

1.1. 농업인

  1. 1천제곱미터 이상의 농지(「농어촌정비법」 제98조에 따라 비농업인이 분양받거나 임대받은 농어촌 주택 등에 부속된 농지는 제외한다)를 경영하거나 경작하는 사람
  2. 농업경영을 통한 농산물의 연간 판매액이 120만원 이상인 사람
  3. 1년 중 90일 이상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
  4. 「농어업경영체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16조제1항에 따라 설립된 영농조합법인의 농산물 출하ㆍ유통ㆍ가공ㆍ수출활동에 1년 이상 계속하여 고용된 사람
  5. 「농어업경영체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19조 제1항에 따라 설립된 농업회사법인의 농산물 유통ㆍ가공ㆍ판매활동에 1년 이상 계속하여 고용된 사람

2. 어형

농업 노동에 종사하는 자로서 남에게 고용된 임노동자가 아닌(즉 머슴이 아닌) 사람을 말한다. 대가를 주고 남의 을 빌려서 부쳐먹을 경우 소작농, 자기 땅을 가지고 농사를 짓는 경우 자작농이라 한다. 자작농 중 적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을 경우는 소농, 많은 토지를 소유하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경우는 부농 혹은 대농이라고 한다.

영어의 페전트(peasant)[2]라는 말은 가족단위 소규모 농업으로 자급자족할 정도의 농사를 짓는, 즉 자기가 농사지어 자기가 그 농산물을 먹고산다는 뉘앙스를 내포하고 있다. 이와 반대로 파머(farmer)는 큰 땅이나 농장(farm)을 소유한 상업적 중대농을 가리키는 말. 한국역사적/지형적 조건상 상업적 중대농보다는 소규모 농업 위주기 때문에 현대 한국의 대부분의 농업 종사자들은 파머가 아니고 페전트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에서도 공식영칭에 파머가 아닌 페전트를 사용하며, 소련군의 별칭인 '노동자 농민의 붉은 군대'에서 '농민'도 파머가 아닌 페전트를 의미한다. 소련에서 쿨라크라고 불린 파머들은 오히려 숙청과 탄압의 대상이었다. 보통 한국어로 번역할 때는 쿨라크를 부농이라고 한다.

3. 역사 및 중요성

농업을 시작한 신석기 시대부터 산업 혁명 이전까지 농업은 한 사회의 중심 산업이었기에 농부는 세계에서 가장 흔한 직업으로 이 시기 서민들은 대부분이 농민이었다. 농민은 동서양 막론하고 관리를 제외하고 국가의 동력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직업으로 인식되었다. 당시 농민은 생산력이자 국민 그 자체였다. 한중일에서 쓰이던 이른바 '사농공상', 즉 선비(일본은 무사) - 농부 - 수공업자 - 상인이라는 사회 계급 분류법과 농자천하지대본, 농업은 천하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근본이라는 말이 나온 것만 보아도 국가에서 농민을 중요하게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이 먹는 밥은 결국 농민들의 노고로 만들어지며 이는 미래에 인공 식량이 나오기 전까지 변치 않는 진리다.

단, 당시엔 인구 대부분이 농부라, 수공업자나 상인이 천대받았지 농민에겐 딱히 특권 같은 건 없었다. 또한 곡식세금으로 낸 산업화 이전 사회 특성상 역사적으로 지배층이나 관리들에게 수탈과 착취를 많이 당해온 직업이기도 하다.

하지만 산업화가 진행돼서 다른 직업들이 늘어나고 농업도 사람보다 기계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개량 종자, 비료 등도 개발되면서 적은 인력으로도 많이 생산할 수 있게 되자 농민의 비중은 서서히 낮아져 갔다. 영국인클로저 운동이나 한국의 저곡가 정책 등 산업화를 위해 농민이 희생당하는 일도 많았다. 한국 역시 1970년대 이전에는 대한민국 인구의 다수가 농업에 종사해 농민이 인구에 있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지만 산업화에 따른 이촌향도로 도시로 인구가 몰리면서 농업에 종사하는 비중이 매년 급속히 줄어들었고 1990년대 이후로는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10% 이하로 떨어지면서 농민은 사회적으로 소수자가 되었다. 현재 세계 곳곳의 농촌은 노동력 부족과 고령화 문제를 겪어 외국인 노동자들이 농촌으로 와 농부들을 돕고 있다.

2008년 전 세계 원자재 값이 폭등, 이나 등의 생필품 재룟값도 함께 뛰었고 이는 빼고는 변변한 자급작물 하나 없는 대한민국에 폭탄과도 같은 충격이었다. 이 일은 국가적으로 농업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계기가 되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구조적인 체제의 농촌 지역이 선거에서 과대하게 대표된다. 예를 들어 미국이나 유럽, 한국 같은 선진국들의 경우 1차 산업인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매우 적지만 정책이나 작물 보조금과 같은 형태로 최저 가격을 보존해 줌으로써 지지를 얻는다. 이런 정책으로 인해서 미국과 유럽의 식료품 가격이 소득 대비로 치면 매우 싸다, 물론 미국과 서유럽 국가의 경우에는 외식비가 비싸기 때문에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식료품비가 몇배씩 올라가니 그런면이 강하기도 하다. 한국의 경우에는 식료품 가격이 상당히 비싸지만 이런 보조금 정책이 없으면 신선식료품을 외국에서 비싸게 주고사야될 판이다.

그와 반대로 독재 국가의 경우 일반적으로 개발도상국이 많아서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수는 훨씬 많다. 정치적으로 중요하지 않다는 말도 있지만 그건 틀린 얘기이다. 프랑스 나폴레옹 3세도 주 지지기반이 농촌이었고, 이승만박정희, 전두환도 도시보다 농어촌에서 더 많은 지지를 얻었다.[3] 심지어 중국공산당도 농촌 민심은 꽤 신경써서 세금면세하는 식으로 지원을 많이 내준다. 그러할 여촌야도라는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니다. 대표적으로 카카오 수출국인 가나는 농수산물 판권을 이용해서 카카오의 가격을 정부에서 결정하여 헐값으로 거둬들인 후 훨씬 비싼 가격으로 해외에 수출해 차익을 남긴다. 지하 자원이 별로 없는 독재국가는 이렇게 농수산물을 가지고 국민들을 착취하는데, 이에 대한 영향으로 농업에 종사하는 수가 줄어서 갈수록 농부의 비중이 줄어들게 된다. 이는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전근대 농민이나 농노로 착취한 것과 유사하다.

4. 어려움

그 실질적인 중요함에 비해 대한민국에서는 전근대적인 이미지로 무시를 받고 있다. 예로 "도시에서 실패하면 시골에 내려가 농사나 지어야지"라는 도시 촌놈다운 말을 들 수 있다.

4.1. 체력

무엇보다 체력이 정말 중요하다. 기계가 많은 일을 대체해 주었다곤 하나 아직도 농사는 사람 손이 많이 필요하고 정말 힘든 일이다. 집 마당에서 관상용 화초 한 개 키우려고 해도 물 주고 비료 주고 해충 잡고 제초 하고 등등..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데 그것보다 더 어려운 상품성 작물을 적게는 수만, 많게는 수백만, 수천만 개 키우는 게 바로 농사다.[4] 이것이 전근대 시기에 비만율이 낮았던 이유였다. 그 대신에 농한기 때는 길게 쉴 수는 있지만 비닐하우스 농사를 하는 경우에는 해당 사항이 없다.

4.2. 기술

다른 직업처럼 농사는 상당한 숙련을 요구하는 엄연한 기술이다. 땅, 작물, 날씨, 시세, 농기계 등의 폭넓은 지식 + 일정 규모 이상의 땅, 과 같은 기초 자본 + 부지런함과 체력 + 농사 요령 + α'가 필요하며 땅과 돈이 있더라도 지식, 근면함, 체력을 채우려면 5년은 고생해야 한다. 농사를 지어 최소한 손익 분기점을 넘기려면 예상외로 오랜 수련 기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제 갓 귀농한 사람이 첫해부터 이익을 보기 어렵다. 심지어 출타 전에 농사를 지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귀향 후 이전의 감각을 되살리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된다. 농업은 공업 못지않게 노하우와 기술이 매우 중요하며 실제 농사지어보니 '차라리 도시 생활이 낫더라' 하고 다시 역 귀향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작물의 종자 종류와 각 작물의 생육환경, 수확 시기, 비료의 성분별 배합비율이나 시비 시기, 약제 살포 시기와 분량 등에 대한 지식은 기본이며, 트랙터콤바인이 밭 한가운데서 고장을 일으켰을 때 일정 수준 이상의 대처는 할 수 있어야 한다.[5] 시설농업을 경영하는 농부라면 온실의 온도조절장치 유지 보수, 수경재배 배양액의 제조 등도 기본적으로 꿰차고 있어야 한다. 시골에서 대농을 하고 계시거나 혹은 했던, 중장년층, 어르신들과 진지한 대화를 할 기회가 생긴다면 알 것이다. 그들이 겉보기엔 일 처리를 대충대충 하는 것처럼 보여도 뭔가에 대해서 물어보면 이 작물에 이 타이밍에는 비료를 얼마만큼, 짓는 방식과 농산물 거래 방식 및 현 상황에 대해서는 일 처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훤하게 꿰차고 있다.

4.3. 자본

농사를 지으려면 최소한 5년은 수업료를 내는 셈치고 손해를 감수하며 살 각오가 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그 5년이 지났을 때 빚이 천만 단위에 이를 수 있다.

현대의 농업은 비유동자산의 비중이 높아지고 기계화가 고도로 진전되고 있기 때문에, 대대로 물려받은 토지를 경작하는 자영농이 아닌 이상 신규로 농업을 하려면 막대한 자본금도 필요하고 농업 관련 정보나 기자재를 운용할 수 있는 능력도 보유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점은 농기계값이 천만 단위다. 일반적으로 트랙터 하면 생각나는 커다란 바퀴 4개에 유리가 달려 있고 앞에서 보면 왠지 몬스터 트럭을 연상하게 하는 그 트랙터가 중고가 1,000만 원대고, 좋고 오래가는 것이라면 최소 3,000만 원대다. 거기다 트랙터 하나만 가지고서 농사를 지을 수는 없다. 크게는 콤바인, 대형 이앙기, 작게는 경운기, 관리기, 소형 이앙기, 건조기, 저온 창고, SS기 등 백 단위, 천 단위로 돈 들어갈 농기계가 끝이 없다.[6]

밭에 농약을 칠 때도 1,000평 2,000평 같은 부업 정도의 소형 농가라면 등짐펌프나 동력 살포기로 온종일 개고생하면 어떻게든 되겠지만, 농사로 제대로 돈을 벌려면 그 정도 면적으론 안 되고 1만 평은 되어야 한다. 이만한 범위를 1~2명이서 하려고 하면 기계를 안 쓰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약을 치는 것도 다 정해진 시기가 있는데 한정된 시간 내에 1만 평이 넘는 밭에 등짐펌프나 살포기 하나 들고 다 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양을 줄이면 그냥 주변 사람에게 나눠주기나 할 수준이지 돈을 벌긴 어렵다. 실제로 시골에서 소농을 하는 어르신들은 이런 식으로 농사를 짓는 경우가 많다. 대규모로 농사를 지어 돈을 버는 농가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사람을 고용해서 농사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렇게 되면 번 돈의 상당 부분이 사람 고용하는 인건비로 들어간다. 시골에서 고용할 땐 일당만 주는 게 아닌 2~3끼 식사에 새참까지 다 사주고 해야 하기에 더 비싸다. 일당 자체도 꽤 비싼 데다 요즘은 일용직이라도 월 8일 이상 근무 시 4대 보험 가입이 의무다. 일이 상당히 고되기에 새참 역시 비싸며, 새참으로 빵, 튀김, 음료를 엄청나게 먹는데 양이 거의 식사와 맞먹는다.

농부들이 이런 큰 자본을 만지다 보니 사기꾼도 농부를 타겟으로 삼는 경우가 적지 않다.

4.4. 경영 능력

영업채널도 꿰고 있어야 한다. 즉 가락동 도매시장이나 강서 도매시장의 어느 중도매인과 직접 계약을 할 것인가, 농업회사법인이나 영농조합법인 같은 농업 법인을 설립하여 추진할 것인가, 아니면 농협 채널을 이용할 것인가의 의사결정과 실천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농작물을 판매하는데 소량이면 시장에서 팔면 되지만, 크게 하면 도매시장이나 농협과 계약을 해서 하는데, 도매시장에 하면 과일을 본인이 선별하고[7] 박스를 사서 포장을 하고[8] 개인 차량에 실어서 도매시장에 가서 직접 물건을 내리지 않으면, 돈을 운송료, 포장비, 박스값 등등 엄청나게 가져가고, 그렇다고 농협과 계약을 해서 한다 해도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도매시장 값의 반 조금 더 된다.[9] 그리고 도매시장의 경우 인맥도 크게 작용한다. 정리하면 사람을 고용해서 하는데 도매시장에 과일만 가져다주면 손에 떨어지는 돈은 거의 없다. 농부도 엄연한 개인사업자라 내가 생산한 상품(농산물)의 판로를 개척해야 돈을 벌 수 있는 것이다.

경제 관련 지식도 꿰고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농부는 한 달마다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수입이 없고 1년에 한 번, 많으면 두세 번 큰 대금을 지불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지출은 당연히 매일 꼬박꼬박 나갈뿐더러 농사라는 게 큰 변수가 많아서 현금이 필요하면 한 달만 버티면 되는 다른 사회인들보다 현금 관리가 훨씬 더 중요하다. 대부분 농사하다가 손해를 크게 보는 사람들은 자연재해나 그런 여타 상황 외에도 현금 관리가 부실하여서 더 큰 손해를 본다.

4.5. 불안정성

천재지변 등의 환경적 요인에 따라 수입이 심각할 정도로 크게 좌우된다. 비가 많이 와도 병충해 피해가 심각해져서 작물의 60~80%를 버려야 하고 나머지도 상태가 개판인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반 이상을 버리고 나머지도 상태가 개판이 되면 돈이 안되기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갈아엎는다. 특히 고추는 습도가 높으면 탄저병에 걸려서 가지에 달린 채로 썩어들어가고, 따놓은 것들도 말리는 도중에 썩어들어가는 꼴을 보기 십상이며 이런 상황에서 손해를 안 보려면 옵션 계약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종류의 계약은 그야말로 헐값에 가깝다. 배추가 산지에선 2천 원도 안 되는 값에 거래되는데 시장에선 만원 가까이 나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고 한다.

아주 드물게 농산물값이 폭등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이미 농사가 흉년으로 결딴난 상태라서 팔 수 있는 물량 자체가 거의 없다. 농산물값이 아무 이유 없이 폭등하지 않는다. 천운이 따라주어 특정 농산물이 다른 데서 흉작이 들어 가격이 폭등한 상태에서 본인만 해당 물량을 많이 수확했다면 로또 당첨금 부럽지 않은 돈을 만질 수도 있지만, 당연히 매우 낮다. 그래서 미국이나 호주에서 대규모 농장을 운영하는 농부들의 말 중에 "진정한 도박을 하고 싶다면 카지노로 가지 말고 농사를 지어라."라는 말이 있다.

이 때문에 농지면적이 적으면서 불안정성이 큰 기후를 가진 한국의 농업유통 사정은 매우 혼란스럽다. 혹자는 이 중간유통에서 다 해먹는 관행을 깨기 위해 대기업이나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 불안정성이 리스크 관리에 너무나 큰 장벽이라서 손도 못 대고 있는 형편이다. 중간유통업자들도 엄청나게 해먹는 것 같지만 순이익은 얼마 안 된다고 한다.

5. 기타

한국표준직업분류에 의한 직업코드는 61, 정식 명칭은 '농업 숙련 종사자'. 보통 '농부'라고 지칭하는 논이나 밭에서 곡물이나 채소류 등을 재배하는 유형은 직업코드 611인 '전답작물 재배 종사자'라고 한다.

과거에는 쌀의 생산량을 근거로 만섬을 거두면 만석꾼, 천섬을 거두면 천석꾼이라 해서 부의 척도로 봤다. 또한, 일본에서는 아예 고쿠다카라 하여 쌀을 얼마나 거두느냐를 판별하기도 했는데 이를 근거로 각 다이묘의 세력을 측정했다. 즉 160,000석을 거둔다면 120,000석 거두는 다이묘보다 세력이 크다는 논리[10] 아이러니하게도 만석꾼이라는 말의 유래는 직접 농사를 지어서 만 섬의 곡식을 얻는 농부가 아니라 고대 중국 시절 노동에 힘을 들이지 않고 오로지 세금만으로 만 섬의 곡물을 거둘 수 있는 광대한 농지를 가진 고위 관료를 뜻하는 말이었다.

대한민국은 대규모 기업형 농업이 불가능한 나라이다. 농지법상 자경이 불가능한 땅은 소유할 수 없고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법인이 땅을 소유해서 노동자를 고용하는 식으로 경작하는 것도 금지되어있다. 사실 국가도 농업생산성에 큰 기대를 하지 않기 때문에 농부는 법적으로 면세인 직업으로 경작물에 대한 세금을 내지 않는다. 세금을 내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막대한 보조금을 받는데, 전기 유류등 많은 분야에서 면세혜택을 받고 쌀농사 같은 경우 정부에서 수매하고 수매가 안되도 직불금으로 보조금을 준다. 이렇게 된 이유는 위의 정치력이 과대대표된다는 점 때문인데 국회의원을 많이 내기 때문에 농촌과 농부에 유리한 법들이 계속 제정되고 폐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차피 생산성이 높지 않아서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은 아니며, 일은 힘들기 때문에 신규인력을 유치하기 힘들고, 정부도 농사 짓다가 논 갈아엎으면 보상금을 줄 정도로 농업 진흥에 관심이 없다. 그 결과 고령화가 지속되고 농촌이 사멸되고 있기까지 한다. 지자체는 지자체 소멸을 우려해서 정착지원사업을 펼치기도 하는데 그러다보니 도시에서 적응하지 못하거나 나이가 많이 든 사람들 중에 귀농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는데 정부지원을 잘 받으면 도시에서보다 삶의 질이 높아질 수 있기도 하다.

6. 인물

6.1. 농부 출신 유명인

6.2. 별명이 농부인 이들

7. 농부 속성의 캐릭터



[1] 者는 '사람' 말고 '것'으로도 해석하므로 農者는 농사짓는 사람뿐 아니라 농사짓는 것 전체를 뜻한다. 병자불상지기와 비슷한 어법이다.[2] 한국에는 '피전트'라는 음으로 잘못 알려져있다. 아무래도 워크래프트 시리즈의 영향이 커보인다.[3] 보수정당의 텃밭인 대구도 전두환 때까지는 민주당계 정당의 기반이 어느 정도 있었다.[4] 무한도전에서도 벼농사 특집 도입부에서 출연진들이 무조건 땅만 넓으면 좋은 것이라 여겨서 마을 이장님에게 엄청난 면적의 땅을 임대받았는데, 막상 시작하자마자 지쳐서 결국 임대받은 땅 크기를 줄여달라고 이장님께 하소연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5] 초기엔 이런 걸 자주 물어봐야 하기 때문에 농촌 생활의 기본은 이웃과 잘 지내는 것이다. 그런데 보통 대문이 바로 옆에 달린 옆집이라도 인사 한 번 안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도시 생활에 익숙한 도시민이 이런 농촌식 생활방식에 빨리 녹아들 리가 없다.[6] 어마어마한 농기계 값에 들어갈 돈에 조금이라도 보태기 위해 자가용을 팔아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시내나 타지에 나갈 땐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옆 동네에 놀러 갈 때는 대부분은 경운기, 간혹 트랙터나 콤바인을 자가용 삼아 타고 놀러 가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7] 선별하는 것도 상당한 기술이 필요하다. 또 먹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외관이 조금이라도 안 좋은 것들은 상품성이 없으므로 본인이 먹든지 버리든지 한다.[8] 포장하는 것도 요령이 있다, 포장할 때 같은 물건이라도 과일 같은 경우 배치에 따라 가격 차이가 난다.[9] 실제로 도매시장까지 직접 모든 걸 하시는 분의 말씀을 들어보면 농협의 두 배 정도 나올 때가 간혹 있다.[10] 물론 이것도 일부는 오차도 있는데 10,000석이 안 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다이묘로 인정해주기 위해 다이묘를 인정받기 위한 최소한도인 10,000석으로 인정해주는 사례가 있다.[11] 본인이 직접 네이버에 직업군에 농업인이 없어 기사를 내거나 메일을 보내는 등의 노력을 통해 한 국회의원이 이러한 노고를 보고 국정감사에서 네이버 측에 뜻을 전달, 이후 즉시 시정하여 '대한민국 최초의 네이버 포털사이트 등록 농업인'이 되었다고 한다. 현재 대한민국 내에 농업인이 약 230만명이 있는데 그중 최초로 네이버에 농업인으로 등록되었다고 한다.[12] 더 히든 소속 가수[13] 물론 개드립이겠지만, 타이베리움이 피해 행성에 끼치는 악영향을 보면 타이베리움을 재배하는 스크린 종족은 농담으로라도 선량하다는 말을 들을 자격이 없다.[14] 사실 입대한 이유도 판도라 박스로 인해 토지가 오염되어 더 이상 식구들 먹여 살릴 자금이 없어졌다.[15] 과거엔 비명굴 근처에서 밭을 일구는 농부였다. 그림시커의 성서에서도 ''죽음 곁에서 생을 일군 이''라고 표현했다.[16] 던전 앤 라이프에서 등장하는 농사 관련 활동 상점 NPC다.[17] 엔딩 시점에서 귀농으로 컨텐츠를 시작해서 농사 유튜버가 되었다.[18] 를르슈의 기아스에 걸려서 농부가 되었고, 프레이야에 휩쓸려 죽었다.[19] 제로 레퀴엠 이후 두 사람이 같이 귤 농장을 일구는 농부가 되었다. 다만, 여전히 나이트메어 조종 솜씨는 괜찮아서 부활의 를르슈시점에 잠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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