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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3 21:11:25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II/평가

라오어 2/평가에서 넘어옴
파일:tlou2.jpg
스토리 · 등장인물 · 자원 및 보급품 · 유물
평가 (유사 작품들과 비교) · 사건 사고 · 발매 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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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1. 개요2. 제작진 인터뷰3. 언론 및 평론가들의 평가
3.1. 긍정3.2. 부정
4. 유저 평가
4.1. 스토리에 대한 평가
4.1.1. 거부감을 유발하는 구성4.1.2. 기존 게임 시스템의 답습4.1.3. 캐릭터 간 형평성4.1.4. 개연성이 부족한 부분4.1.5. 양면을 보여주는 연출4.1.6. 결말에 대하여
4.1.6.1. 긍정4.1.6.2. 비판
4.1.7. 단독 작품으로서4.1.8. 메시지 전달에 관련된 논란
4.2. 캐릭터에 대한 평가4.3. 게임 시스템에 대한 평가
4.3.1. 그래픽 및 OST 평가
4.4. 예술적 가치에 대한 평가
4.4.1. 해체주의의 도입4.4.2. 해체주의의 한계4.4.3. 시대착오적인 해체주의 답습4.4.4. 불완전한 해체주의 답습
4.5. 정치적 올바름의 오용과 핑크워싱4.6. 평론가 평가와의 괴리4.7. 커뮤니티 반응
5. 다른 유사한 작품과의 비교6. 왜 이렇게 됐는가?7. 평가 조작 의혹
7.1. 평론가 평가7.2. 유저 평가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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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015년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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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Station 4
메타크리틱 MUST-PL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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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일:
2024-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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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들의 평가와 일반 유저들 간의 평가가 극단적으로 엇갈리고 있는데, 이는 평론가와 대중이 추구하는 방향의 괴리 때문이다. 또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도 극단적인 평가가 오가는 중이다.

평론가 메타크리틱은 PS4 전체 게임 중 5위[1], 독점 게임들 중 4위[2]의 점수를 기록했으며, 메타스코어의 MUST-PLAY 기준점인 90점을 넘어선 93점이라는 매우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발매 이후 유저 메타크리틱이 평론가 메타크리틱에 비해 매우 낮은 점수를 기록하면서 플롯 유출 사태에서부터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스토리가 유저들에게 극도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게임 커뮤니티에서는 전작의 엔딩과 인물을 뒤집는 스토리에 대한 불쾌함을 표하는 플레이어들이 많다.[3]

미국 아마존의 경우 2020년 6월 22일 시점에서 별 5개짜리 긍정적 평가가 51%로 높은 수준이지만, 5개짜리 만점을 준 평가들을 보면 게임 속의 PC 메세지, 주인공이 레즈비언이라서 증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쓰고 있다. 그러나 별 1개짜리 혹평을 보면 이 리뷰가 도움이 되었다는 평가가 별 5점 긍정적 평가의 리뷰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그 밖에 구매자들만 평가할 수 있는 PSN 상품 평가 별점도 폭락하기 시작했다. 또한 웬만하면 구매자들이 박한 평가를 안 하는 일본 아마존에서조차 별점 1개의 분노 어린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일본 아마존 측에서는 작성 규칙 위반을 이유로 별점 1개 혹평을 광역 삭제하고 있어서 원래 혹평은 훨씬 더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4] 얼마나 지워대는지 하루 간격으로 별점 1개짜리 베스트 리뷰가 바뀌고 악평 숫자도 줄어들고 있다. 그래도 양심은 남아있는지 북미판에 비해 삭제된 요소들에 대한 불평은 안 지우고 있다. 참고로 일본판은 유혈 효과와 적의 부위별 피격 반응을 축소한 버전이며 애비의 성행위 장면도 삭제되어 있다.

반면 영국 아마존 구매자 리뷰를 보면 진짜로 마음에 드는 건지 조작으로 보기가 힘들 정도로 긍정적인 평가가 높다. 다만 여기도 별점 1점의 부정적인 평가가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은 댓글로서 최상위에 고정되어 있다는 건 동일하다. 긍정적인 평가에서 남성우월주의자들이 이 게임을 공격한다는 식의 멘트가 자주 보이거나, 0점 테러를 당해서 저평가가 되었다거나, 몇몇 리뷰에서 공통적으로 OLED TV를 언급하거나, 아예 배송이 빨라서라며 별점 5점을 준 리뷰도 많다.

이후 라오어 2가 골든 조이스틱 어워드에서 GOTY를 포함한 5개 부문에서 상을 타자[5] 너티 독은 감사의 트윗을 올렸다. 게다가 골든 조이스틱 어워드의 경우 평론가들의 최다 득표는 하데스인 반면 유저들의 투표로 라오어 2가 뽑힌 것이라 평론가들만 고평가한다는 기존의 반론이 금이 가는듯 했다.[6][7] 다만 위의 영국 아마존 구매자 리뷰나 메타크리틱의 유저 점수 상승처럼 극성 팬들이 몰표를 던지거나 사거나 플레이하지 않은 사람들이 투표를 했을 가능성도 크다.[8] 또한 메타크리틱 유저 평가와 달리 해당 시상식 같은 경우 부정 투표가 반영되지 않고 오로지 긍정 투표만 반영되기에 유저 투표의 공정성이 의심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며, 12월 10일에 열린 더 게임 어워드 2020에서 디렉팅, 각본, 음향, 연기[9], 접근성 혁신, 액션/어드벤처, 올해의 게임 부문에서 상을 타 7관왕의 자리에 올랐다. 참고로 해당 어워드에서의 유저 투표는 고스트 오브 쓰시마가 1등을 했으며 라오어 2는 2등에 그쳤다.[10] 이렇게 라오어 2는 대중의 평가와 평론가의 평가가 극명하게 나뉘는 대표 게임으로 각인되었다.

2. 제작진 인터뷰

발매 이후 라오어 2의 메인 디렉터인 닐 드럭만과 할리 그로스가 스토리에 대한 해설 인터뷰를 남겼다.#
【인터뷰 주요 내용 번역】
>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의 이야기는 거의 완벽히 대칭적이다. (중략) 게임의 두 반쪽이 서로를 비추듯이 구성한 이유가 있는가?

닐 드럭만: (중략) 1편을 통해 유저들이 엘리와 조엘에 대해서는 이미 몰입하고 있었으므로 그들을 비극적 사건에 밀어넣음으로써 복수를 향한 여정을 보여주었고, 그런 다음 애비의 시점으로 전환하여 엘리가 이루고자 하는 '복수'를 이미 이룬 그녀가 복수의 대상이 되어 몸부림치는 반대쪽의 이야기를 보여주고자 했다. 우리는 앨리 파트와 애비 파트의 평행성을 통해 정확히 맞지는 않지만 여전히 두 캐릭터가 다른 상황에서는 친구가 될 수도 있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조엘이 살해당하기 전에 잭슨에서 애비를 잠깐 조종하게 한 이유는 무엇인가?
할리 그로스: 우리는 시작부터 애비에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를 원했고 이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녀 입장에서 그녀와 시간을 보내며 무엇에 약하고 무엇을 두려워 하는지 보여주는 것이었다. 유저들은 그녀가 높은 곳을 무서워하고, 오언에게 무르고, 그의 연애에 정서적 갈등을 느끼며, 둘 사이를 갈라놓을지도 모르는 각자의 입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는 유저들이 그녀를 전형적인 '적'으로 인식하기 전에 그러한 것들을 전달하기를 원했다.
이러한 게임들은 플레이어를 잘 몰입하게 만들기로 유명하다. 1편은 플레이어들을 조엘에 몰입시킴으로써, 엘리를 지키기 위해 무고한 사람들을 살해하는 그의 행동을 정당화시켜 주었다. 2편에서는 마치 캐릭터들이 우리의 몰입에 역행하여 행동하려는 듯이 느껴진다. 우리가 엘리와 싸울 때 애비는 물러나기로 결정한다. 우리가 애비와 싸울 때 엘리는 그녀의 목숨을 살려주기로 결정한다.
드럭만: (중략) 유저들이 캐릭터에 몰입하지 않았을 때, 그리고 유저들이 원치 않는 것을 게임이 하게 만들 때 무언가 흥미로운 일이 일어난다. 수동적인 매체에서와는 달리 유저들은 그러한 결정들과 씨름하게 된다.
많은 유저들, 특히 부모들은, 1편 엔딩에서 조엘의 결단을 이해할 것이지만 2편에서 엘리 본인은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산타바바라에서 애비와 싸우기 전까지는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드럭만: 조엘은 엘리를 대신해서 그러한 선택을 내렸고 이제와서 그 선택의 결과를 감당해야 하는 것은 엘리다. 사람은 옳다고 느끼는 일을 하게 마련이므로 내가 조엘의 결단 자체를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조엘이 백신 대신 엘리를 선택했던 건 그의 캐릭터와도 일관적이다. 그는 1편 프롤로그에서 사라를 데리고 오스틴을 빠져나오면서 다른 가족을 태워주길 거부했던 그 조엘 그대로다. 자기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의지가 있는 사람이다.
게임의 가장 큰 반전은 조엘이 저지른 짓을 사실 엘리가 내내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의 죽음을 복수하러 떠났다는 것이다. 그러한 정보는 엘리와 유저들 간의 골을 더 깊게 만드는데.
그로스: 엘리는 살아남았다는 죄책감과 PTSD, 그리고 상실감에 시달린다. 애비가 빼앗아 간 것, 그리고 조엘이 밝힌 진실에 상처받은 후 조엘과의 관계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떠오르며 계속 고통받는다. 그러한 조각들을 조금씩 맞춰가면서 우리는 스스로를 잘 드러내지 않는 엘리의 내면에 함께 하고, 그런 기억들이 엘리에게 자꾸 떠오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느껴 볼 수 있다. 엘리를 이끄는 동기가 무엇인지 또한 보여준다. 처음에는 그저 "저 새끼들 좆까라 그래, 저들이 내 아빠같은 사람을 죽였어"처럼 보이지만 "엘리가 조엘의 죽음에 얼마나 죄책감을 느끼고 있을까? 조엘한테 뭔가를 빼앗은 것 같다는 느낌을 얼마나 받고 있을까?"를 점차 깨닫게 된다.
(중략)
드럭만: 몇 년 동안 사람들은 "엘리가 조엘의 거짓말을 알았을까? 몰랐을까? 거짓말이란 걸 알면서도 조엘에 대한 사랑으로 받아들인 것일까?"하고 논쟁해 왔다. 사실 다 어느 정도 맞는 것으로 밝혀진다. 엘리가 처음에는 진실을 부정하는 단계에 있었다가, 마음에 뭔가 걸리는 것처럼 되었다가,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가, 용서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계속 그녀의 내면을 잠식해가다가 결국 터져나오고 마는 모습을 각각의 기억들이 보여주기를 원했다. (중략)
조금씩 다른 시각에서 보게 만드는 그런 구조, 특히 마지막에 떠오른 기억을 보면 이 게임은 '왜 조엘이 자신을 구했는지를 엘리가 마침내 이해하고 용서하는 지점까지 고통스럽게 도달하는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그로스: 맞는 얘기 같다. 엘리가 조엘을 용서해보겠다는 마음이라도 먹게 된 데에 2년이 걸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애비를 용서하기 위한 엘리의 여정은 훨씬 더 힘들다. 애비는 엘리를 가장 깊은 방식으로 상처입혔다. 엘리가 "그래, 조엘을 용서해보려고 할 준비가 됐어" 하는 순간 아니, 니가 해내야 하는 것들은 더 가혹해져서 너 자신과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파괴할 정도가 될 텐데, 제 시간에 도착할 수나 있겠니? 하는 식이다.
아슬아슬하게 도착하더라. 엘리는 산타바바라까지 그 먼 길을 가서는 되려 애비의 목숨을 구해준다. 마찬가지로 애비가 레브의 말을 듣고 엘리를 살려주기로 한 것도 갑작스럽지만 이해할 만은 하다. 그런 핵심적인 순간들을 유저들에게 납득시킬 수 있을지 염려는 안 되었나?
드럭만: 오랫동안 확정나지 않은 감정적 요소들이 많았고 그것들을 잘 먹히게 하는 것은 매번 무척 어려웠다. 만들었다 불필요한 부분을 수없이 삭제하는 과정의 반복이었다. 먼저 생각나는 건 조엘의 죽음이다. 첫 편집본에서는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엘리가 붙들려 있는 걸 조엘이 바라보는데 우리는 "와 이 장면에선 조엘 머리가 너무 다쳐서 그가 뱉을 수 있는 말이라곤 자기 딸 이름 '사라' 정도일 거야'라고 생각했다. 강력하다고 느껴졌으나 조엘을 맡은 트로이가 "아무 말도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라고 제안했다. 두 버전을 비교해 보니 트로이가 옳았다. 대사가 빠졌을 때 장면이 더 강력했다.
그로스: 시애틀에서 3일이 아니라 5일 씩 머무르게 하기도 했다.
드럭만: 엘리가 세라파이트 섬에 가는 큼지막한 사이드 스토리도 있었고 거기서 지옥의 또다른 측면을 헤쳐나가는 것 같이 할 이야기도 많았다.
그로스: 조엘한테 여자친구가 있다는 설정도 있었다. 엔딩도 달랐다.
(중략)
드럭만: 가끔은 뭘 더하느냐의 문제다. 엘리가 애비를 익사시키려던 순간 기타 치던 조엘의 기억이 떠오른다는 아이디어...오랫동안 스텝들은 엘리가 애비를 왜 살려주는지 혼란스러워 했다. 우리는 "암시는 하되 딱 한 가지로만 해석되지 않도록 너무 노골적이지는 않은 수준"을 찾고 있었다. 인간이 내리는 모든 결정은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실제론 편집팀이 "이러면 어떨까요?"라고 제안했고 우리는 너무 감상적이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잘 맞아들었다.
엘리가 디나와의 전원 생활을 떠난다는 가슴 아픈 결정을 무릅쓰고 산타바바라로 향한 이유에 대해 얘기해보자. 이때 엘리는 여전히 애비를 죽일 생각이었나? 혹은 조엘에 대한 죄책감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었나?
그로스: 둘 다 같은 의미인 것 같다. 내 생각에 그 시점에서는 더 이상 애비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이 PTSD가 점점 심해져가서 뭐라도 하지 않으면 나는 말 그대로 더 살 수가 없어. 난 미쳐가고 있고 내 가족에 위협이 되고 있어. 이대로 어떻게 살 수 있을지 모르겠고 저쪽에 답이 있길 바라는 수밖에 없어. 여기 있는 건 자살이나 마찬가지야."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애비에 대한 심판이나 조엘을 위한 복수라기보다는 정신건강과 생존에 대한 것이었다. "내가 어떻게 인간으로 남아 있을 수 있을지조차 모르겠어" 같은 것이었다.
드럭만: 우리는 조엘의 폭력과 엘리의 폭력을 구분짓고자 했다. 조엘에게 폭력이란 현실적이며 실용적인 것이다. 그는 살인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으며 단지 무덤덤하다. 폭력은 그가 살아남기 위한 기술이다. 엘리의 경우 폭력은 (말콤 글래드웰이 말한) 명예[11]에 대한 것이다. 부당함을 겪은 그녀의 자아는 뒤틀렸고 그녀 스스로는 이것을 바로잡아야만 하며, 바로잡을 때까지 안식을 얻을 수 없다고 믿는다.
엘리는 조엘이 준 기타를 남겨두고 떠난다. 단순히 손가락을 잃어서 기타를 못 치게 되었기 때문으로는 보이지 않는데.
그로스: 내 생각에 엘리는 조엘에 대한 생각을 침대에 내려놓은 것이다. 그 시점에서 엘리는 조엘을 정중히 묻은 채, 어떤 것이 될지 모르는 인생의 새로운 장으로 나아간다. 조엘은 떠나는 엘리를 뒤에서 지켜본다.
드럭만: 여기서 우리가 무슨 말을 하든 궁극적으로는 중요하지 않다. 스토리에 대해 이해해야 할 것들은 게임 안에 다 있고 플레이어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든... 그 해석이 옳다. 적어도 우리가 다른 게임을 만들고 그에 대해 논쟁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나는 엘리가 마침내 그녀의 자아와 그 모든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던 것이라고 본다. 우리는 엘리가 복수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마약이고 엘리는 일종의 마약 중독자이며, 그것이 디나가 그녀를 떠나고 만 이유라는 비유를 자주 하곤 했다. 디나는 "이 애는 밑바닥을 찍고도 여전히 만족하지 못했어. 더 이상 내가 어떻게 해줄 수가 없어"라고 생각한 것이다.
제작 과정의 한 50% 이상까지는 엘리가 애비를 죽이는 것으로 결말이 났다. 완전히 다른 감정을 주는 결말이었고, 그러면 또 다른 캐릭터가 폭력의 순환을 멈춰내야 했다. 야라와 레브에 대해 얘기하다가 우리는 그런 방식이 엘리의 캐릭터에 진실되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앨리의 깊은 내면에는 선함이 있었다. 그녀가 다시 나아가서 삶을 재건할 수 있기를 바란다.
엘리가 디나와 다시 잘 될 가능성이 있을까?
그로스: 엘리가 겪어온 그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가 다시 사랑을 찾을 수 있길 바란다. 도움과 공동체와 안전감도 말이다. 라스트 오브 어스의 적대적이고,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모든 것이 취약한 세계에서 그것이 가능할지 나는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그녀가 그러한 것들을 얻을 수 있길 바란다. 그 애기도 무지 귀엽고.
아직 너무 이른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3에 대해 얘기해보자.
드럭만: 예상하다시피 답변이 좀 애매할 것이다. 나는 파트 2를 만들지 말지 결정할 때 했던 고민이 다시 필요하다고 본다. 파트 1을 만들었을 때는 아무런 기대치가 없었고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후엔 특정한 캐릭터와 주제와 방식이 이미 잡혀 있었고, 그래서 파트 2를 만든다면 팬들이 가장 편안해 할 무언가가 아니라 파트 1에서 찾아냈던 것 같은 어떤 감정의 정수를 자극할 만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것 없이 또 파트 3를 만들 이유는 없다. 파트 2까지 온 지금 그러한 것을 찾아내기는 더 어려워졌고 앞으로 더 어려워질 것이다. 플레이어들은 이미 그 세계에 대해 많은 것을 보았기 때문에, 지난 게임들에서와 같은 감정적 충격을 주는 새로운 경험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알아내야 한다. 그런 일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현재로선.

인터뷰를 본 유저들의 반응은 그다지 좋지 못하다. 1편 엔딩에서 엘리의 의미심장한 모습에 대해 팬들에게 해석을 맡겼던 부분은 완전히 뒤엎어 엘리를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로 만들어 버렸고, 게임의 분위기와 전혀 맞지 않는 사족을 붙이려던 정황도 있었던 데다가 엘리가 산타바바라에 가는 이유는 복수의 마무리가 아닌 복수의 연쇄를 끊기 위한 과정이라고 설명하는 등 1편이 명작이었던 것은 그저 우연의 산물이거나 2편 제작 전 퇴사한 제작진들의 브레이크가 사라져 닐 드럭만과 할리 그로스가 멋대로 폭주했기 때문이라는 평이 나왔다.Pgr21 라오어2 갤러리1 라오어2 갤러리2

3. 언론 및 평론가들의 평가

3.1. 긍정

The Last of Us Part 2 is a masterpiece worthy of its predecessor.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2는 전작에 못지않은 걸작이다.
IGN #
IGN은 모든 요소가 전작에서 발전된 PS4 최고의 걸작이라 극찬하며 전작에 이어 10점 만점을 줬고, 독자들로 하여금 큰 기대를 하도록 만들었다.

IGN 코리아는 편집장을 맡고 있는 이동헌이 직접 리뷰를 작성했으며# 본가와 마찬가지로 극찬을 했다. 인물들의 서사는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들며 그래픽은 PS4의 한계에 도전하는 수준으로 아름답다고 평했으며 한국어 버전의 번역 퀄리티도 뛰어나다고 호평했다. 그러나 발매 이후 직접 게임을 해본 소비자들의 반응은 냉담했고, 결국 이동헌 편집장은 6월 안에 추가적인 해설을 덧붙이겠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22일 올라온 추가 리뷰 또한 기존 입장에서 한 치도 달라지지 않았으며 구매할 가치가 충분하다며 오히려 옹호의 강도를 높였다.

당연하지만 이에 독자들의 반응은 매우 부정적이다. 기존 리뷰의 설득력 없는 옹호부터 큰 비판을 받았지만, 추가 리뷰를 첨삭하겠다는 전무후무한 예고가 나오자 자칭 평론가라는 인물이 어떻게 여론의 눈치를 보고 텍스트를 쓰냐며 IGN 코리아가 언론 매체로서 최소한의 작용마저 해내지 못한다는 지적을 피할 수는 없었다. 또한 추가된 분량에서는 "나는 늘 타 미디어처럼 대중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순전히 재미만을 노리는 것이 아닌", "이 정도의 메시지", "보다 사회적으로 역할을 해줄", "나는 21년 동안 어떤 게임도 만점을", "일반적인 게임 작법에서 절대 나올 수 없는" 등 오늘날 비디오 게임 소비자들 다수가 싫어하다 못해 극도로 혐오하는 부류의 개발자 및 평론가들의 자기변명 풀세트를 모조리 보여주었다. 결국 해당 기사의 댓글에서는 어이없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 심지어 마지막에는 화룡점정으로 "게임이 예술로 불릴 가능성"까지 언급하면서 끝. 실제 시장의 원동력인 소비자들의 니즈는 전혀 파악하지 못한 채 자신의 왜곡된 욕구와 완전히 다른 분야의 허황된 이야기만을 늘어놓는 모습을 보여주며 결국 독자들로부터 전형적인 골방 책상물림의 행태라는 비판을 이어지게 만들었다.

이후 IGN 코리아에서는 쏟아지는 비난에 자존심이 상했던 것인지 유세영 기자가 라오어 2를 호불호가 강한 작가주의 게임이라며 자신들의 주장의 당위성을 높이기 위한 기사를 내놓았다.# 내용은 안티가 많을수록 더욱 열렬한 팬덤과 상업적 이익을 얻게 된다는 것. 그리고 해당 기사에서는 라오어 2와 유사한 게임으로 데스 스트랜딩, 데몬즈 소울, 완다와 거상, 저니, 더 라스트 가디언 등을 들었다. 또한 게임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닐 드럭만이 그동안 무슨 공적을 이루었는지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이라며 폄훼하고 이 일로 드럭만의 인지도가 더욱 올랐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보편적인 대중성을 거부한 작가주의 작품들을 높게 평가하면서 이런 작가주의적 작품들은 대중들에게 쉽게 영향을 받고 규모의 한계를 가지고 있는 인디 게임들보다는 충분한 투자를 받은 AAA 게임들만이 이러한 시도를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계속해서 영화에 대해 반복적으로 언급하며 SIE는 토드 필립스 감독의 <조커>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같은 트렌드를 탔으면서도 상업 예술에 불과한 영화에 비해 예술성을 추구하는 데에 성공했고, SIE만이 닌텐도나 MS, 그리고 그 외 서드 파티와는 다른 가치를 갖고 있다고 주창했다. 마지막에는 이러한 작가주의 AAA 게임들을 서포트해주는 소니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를 적극적으로 응원한다면서 라오어 2를 작가주의 노선의 예술 게임이 인류를 계몽할 수 있는 수준의 미디어가 되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조커나 기생충에서 느낀 불쾌함이 '라오어 2'에도 있다.>
그것도 마냥 불쾌하거나 불편함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 분야의 거장인 알프레도 히치콕이 떠오를 만큼 능숙한 방식으로 주제 의식과 세계관을 표현했다. 감히 이야기하건대, 라스트 오브 어스 2는 이런 불쾌함을 통해 현세대 게임이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경험을 제공하는 작품이다.
혐오가 만연한 세상에서 새로운 시선을 제시한다
종합적으로 보자면 게임은 결점이란 걸 딱히 뽑아낼 만한 부분이 없을 만큼 완벽하게 구성돼 있다. 게임 플레이와 관련된 모든 요소와 등장인물의 행동과 사연, 즉 주제의식을 언캐니라는 개념을 통해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전작은 비교적 단순한 스토리 구조와 엘리와 조엘의 교감에 집중하느라 서브플롯을 소모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었지만, 이번 작품은 시종일관 충격적인 전개와 불쾌한 묘사로 하여금 주제 의식을 잃지 않고 올곧게 앞으로 나아간다. 굉장히 영리한 작품이다.
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들은 단 한 장면도 허투루 하지 않는다고 한다. 화면에 잡히는 모든 장면과 소품, 연출에 의미를 담아낸다. 라스트 오브 어스 2 역시 모든 컷신과 연출, 게임 플레이에 의미를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출시 전에 있었던 각종 유출사태와 논란으로 인해 생겼던 일말의 불안감은 기우에 불과했다.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는 재밌었고 엔딩 이후의 울림은 거대했다.
-이재오, 게임메카. "조커나 기생충에서 느낀 불쾌함이 '라오어 2'에도 있다."네이버 포스트판
또 다른 국내 게임 웹진인 게임메카의 이재오 기자도 극찬일색에 동참했다. 게임메카는 유세영 기자의 후속 기사에서는 똑같이 <조커>와 <기생충>을 언급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동헌 편집장의 첫 기사에서는 '타 미디어 콘텐츠'라며 최소한의 면피라도 뒤집어 쓴 IGN 코리아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아예 초장부터 <조커>나 <기생충>을 들먹이며 이 둘에게서 느낀 불편함이 라오어 2에도 존재한다며 단 한 장면도 허투루 사용하고 있지 않다고 극찬했다. 게임 리뷰에서 끝도 없이 영화를 언급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닐 드럭만을 그 세기의 천재이자 영화라는 한 분야의 작법을 다시 쓴 알프레드 히치콕과 동급이라고 하기까지 했다. 이후 독자들의 반발을 의식한 것인지 6월 22일에는 김미희 기자를 앞세워 라오어 2의 유저 평점이 바닥을 치고 있다는 후속 보도를 내보냈다. 이 기사에서는 스토리에 분노한 유저들이 낮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는 현상을 건조한 문체로 설명했다. 물론 라오어 2의 문제는 비단 스토리 뿐만이 아니라 온갖 것들이 산더미 같이 산재해 있기 때문에 후속 기사의 댓글에서도 게임메카가 본인들의 자존심 탓에 이번 사태를 스토리에 불만을 가진 악성 팬보이들의 문제로 일축하려 한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말았다. 7월에 들어서는 라오어 2의 구매율이 감소하고 중고 재고가 들어나 어려운 처지의 게임 가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기사와 라오어 2가 유저들의 성토를 받고 있어 성패를 결정짓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기사를 올리면서 기존의 라오어 2 찬양에서 한 걸음 물러선 모습을 보이고 있다.
The Last of Us Part II illuminates many complicated and difficult facets of humanity – a journey that tackles empathy, anger, and how we are defined by those around us. These philosophical considerations can be uncomfortable to wrestle with, but Naughty Dog conveys them with careful nuance and unflinching emotion, creating a narrative masterpiece with a unique power few games have ever achieved.
더 라스트 오브 어스 2는 인간성의 여러 복잡하고 어려운 측면을 명확히 한다. 이는 공감, 분노,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이런 요소들이 우리를 정의하는 방식에 부딪쳐 나가는 여정이다. 맞서기에는 불편하기도 한 이러한 철학적 숙고들을, 너티 독은 대부분의 게임들이 다다르지 못했던 특별한 힘을 가진 서사적인 걸작을 만들어내며 조심스러운 함축과 단호한 표정으로 전달한다.
Game Informer #
게임 인포머는 비디오 게임의 스토리텔링을 다른 경지에 끌어 올린 속편이며 모든 요소가 뛰어나다며 10점 만점을 줬다. 댓글 시스템의 부재로 독자 반응은 확인할 수 없다.
This intense game set in a post-disaster world poses moral questions about the motivations for violence and is brilliantly acted by its human contributors.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에 놓인 이 강렬한 게임은 폭력의 동기에 대한 도덕적 질문을 던지며 인간 연기자들의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다.
The Guardian #
더 가디언은 오직 비디오 게임에서만 할 수 있는 이야기이며,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작품이라고 평하며 10점 만점을 줬다. 물론 가디언 독자들의 평가도 게임 발매 이후에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The Last of Us Part II represents the pinnacle of what video games can be. It’s an unflinching, impeccable example of how the medium can be used to propel the art form forward by employing the same visceral storytelling techniques and disturbing imagery you’d see from Oscar-nominated films. Critics have been asking when video games would “grow up” for years. The real question is this: when will films catch up with video games like The Last of Us Part II?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는 비디오 게임이 다다를 수 있는 정점을 보여준다. 마치 오스카 시상식 지명 작품에서나 볼 법한 강렬한 서사와 충격적인 연출을 통해 게임이라는 매체가 어떻게 예술 형식을 진일보시킬 수 있는지 보여주는 당당하고 흠 잡을 데 없는 예시이다. 평론가들은 대체 게임이 언제쯤 "성숙"할지 수 년간 질문해왔다. 진짜 던져야 할 질문은 이렇다: 영화가 언제쯤이면 더 라스트 오브 어스 2 같은 게임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Hollywood Reporter #
할리우드 리포터는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작에서나 나올 법한 수준의 스토리텔링과 연출 기법을 게임이라는 매체에 훌륭하게 적용한 사례이며 이제는 "영화가 언제쯤에나 라오어2 같은 게임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져야 할 정도라는 평을 내렸다.

플레이스테이션 전문 웹진인 Push Square는 너티독이 스스로 만든 허들에서 더 높은 허들을 만들어냈으며 지금까지 개발자들의 업적 중 가장 뛰어났다고 극찬했다. 불편한 점도 있으며 모든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런 요소가 궁극적으로는 이 게임을 매우 중요하게 만든다고 덧붙였다.# 발매 후 유저들의 반발이 극심하자, 이런 과도한 비추천 사태는 인터넷의 어두운 면을 보여줄 뿐이라며 유저들의 의견을 악플 취급하고 그런 의견에 휩쓸리지 말라며 자기들의 만점 리뷰나 보고 가라고 덧붙였다.# 댓글창에선 이런 점수는 게임이 실패했다는 것을 증명해줄 뿐이라며 우스워하고 있다.

국내 게임 관련 사이트인 루리웹의 중간평은 전작의 팬들은 화가 날 지점이 존재한다고 평가했고 리뷰어도 예약 구매한 게임을 환불할 뻔했다고 평했다. 그러나 그런 분노를 느끼기 때문에 강렬한 울림을 느낄 수 있었다고 평했다. 또한 팬덤의 일부는 너티독이 말하는 화두에 대해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르지만, 게임의 완성도는 별개라는 평가도 남겼다. # 이 리뷰 또한 실제 게임 발매 후 논란이 됐다.

칼럼니스트 위근우는 경향신문 문화란에 라오어 2를 '비극적 아이러니를 담아낸 위대한 속편'이라고 고평가하는 칼럼을 썼다. 여기서 위근우는 전작에서 엘리를 구한 대신 백신 개발을 포기한 것부터 비극적인 아이러니를 내포하고 있었다면서 구한 사람에게 죽음을 당한 조엘의 경우에서 사회계약론이 사라진 야만적인 세계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고 평했다. 또한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애비 앤더슨 플레이 파트가 애비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닌, 행동을 이해시키기 위함이라고 하며, 게임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허지웅이 지적한 '복수의 순환' 같은 진부한 가르침이 아니라 좋은 것이 전혀 없는 비극적인 세계에서 악마가 되지 않기 위한 영웅적인 반항이라고 말했다. 애비를 향한 분노가 정당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노보다는 다른 길을 걸으려고 했다는 점에서 고평가한 것.#

이밖에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실사영화 시리즈의 감독인 제임스 건 역시 호평을 하였다.

데몬즈소울 크리에이터 디렉터 게빈무어, 인섬니아 마일즈모랄스 크레이티브 디렉터 브라이언 휴톤,게릴라스튜디오 앤지스맷 또한 극찬하였다. #

파이널 판타지 7 리메이크의 공동 디렉터 토리야마 모토무는 라스트 오브 어스 2의 다양성(diversity) 추구가 게임업계의 새로운 표준이 되었다고 극찬하였다. 토리야마 모토무가 극찬했던 라스트 오브 어스 2의 다양성이란 장애인을 위한 UI 등 기술적인 요소뿐 아니라 LGBTQ+ 등 스토리 컨텐츠적인 요소까지 포함한다#.

3.2. 부정

マスターピースの前作を意識し過ぎたがために、さまざまな問題を抱え込んだ続編
명작이었던 전작을 너무 신경쓴 탓에 잡다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후속작.
IGN Japan #
IGN 재팬은 7점으로 다른 국가들의 IGN 지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했다. 장점으로는 수려한 풍경과 퍼즐이 어우러진 지형, 서정적 템포의 컷신, 정면 전투와 은신의 폭 등을 들었다. 단점으로는 전작과의 지나친 결별, 새로운 캐릭터 취급법, 와이드리니어 밸런스, 스토리텔링 방식 등을 들었다. 초기에는 이 리뷰어가 데라시네, 데스 스트랜딩 등의 게임에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줬다는 이유로 일본 게임에만 점수를 잘 주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도 있었으나, 게임이 발매된 이후 커뮤니티 등지에서는 몇 안 되는 양심이었다고 재평가 받고 있다.
Did you know murder is wrong?
살인은 나쁘다는 거 알고 계셨나요?
Polygon #
폴리곤은 라오어 2를 가장 크게 비판한 웹진 중 하나이다.[12] 리뷰 부제는 대놓고 "살인은 나쁘다는 거 알고 계셨나요?"이며, 게임에서 살인이 나쁘다는 걸 강조하면서도 정작 왜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지는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게임은 많은 주제를 말하고자 하지만 결국 "내 복수의 유일한 해법은 살인이다"라고 말하는 소녀의 얘기일 뿐이라고 지적했다.[13] 이후 폴리곤은 추가적으로 칼럼을 통해 현대의 AAA 게임들이 가지고 있는 모순을 비판하면서, 폭력적 요소로 대중들에게 어필하는 게임이 도리어 폭력이 나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추가적으로 지적했다.

리뷰어인 Skill Up은 게임이 던지는 주제에 전혀 몰입하지 못하겠고 새로운 캐릭터도 몰입이 안 되고 스토리상 구멍이 많다고 지적하며, 이는 스타워즈 시퀄 시리즈왕좌의 게임의 파이널 시즌에서 나타난 문제점들과 비슷하다고 비판했다.# 이후 해당 리뷰어의 평가가 옳고 다른 리뷰어들은 전부 돈을 받고 리뷰했을 거라는 얘기가 많아지자, "어떤 웹진도 돈 받고 리뷰하지 않으며 나는 그저 내가 느낀 걸 평한 것이니 다른 리뷰들은 모두 돈을 받은 것이라는 증거로 내 리뷰를 사용하지 마라"라는 트윗을 올렸다. # 후에 맨이터를 리뷰하며, "부모를 잔혹하게 죽인 사냥꾼을 쫓는 매우 솔직한 복수물이다, 후에 사냥꾼으로 플레이해서 그의 입장을 보고 싶다" 라고 트윗을 하며 라오어2를 돌려깠다.#
The Last of Us Part II tries to be profound. It fails.
더 라스트 오브 어스 2는 심오한 게임이 되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Wired 영국판
Wired 영국판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발언[14]을 인용하면서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는 영화처럼 심오해지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 이는 실제 플레이어들의 주된 여론과 일치하는 몇 안되는 평론 중 하나다.

폴리곤과 마찬가지로 평점을 매기지 않는 코타쿠는 독특하고 느리며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자연 경관은 극찬하면서도, 폭력과 고통이 그 이야기를 압도했고 단지 그것을 위해 잔인해졌다고 혹평했다. 또한 게임이 닐 드럭만 감독이 약속한 철학적인 질문을 나에게는 묻지조차 않았다고 평했다. 배틀필드 V에서 비슷한 논란이 일었을 때 제작진의 논란과 게임의 핍진성 논란이 있었음에도 제작진과 게임을 두둔한 사이트 중 하나가 코타쿠이다. 코타쿠는 현재는 퇴사한 제이슨 슈라이어 기자를 제외하면 기사의 보도력이 매우 낮은데다 SJW 성향에 동조하는 것으로 악평이 자자한 게임계의 대표적인 황색언론인지라 많은 게이머들은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라스트 오브 어스>가 생명의 가치를 저울질하는 오만함에 관한 이야기라면 속편은 복수의 순환에 관한 이야기다. 둘 다 인간성의 회복이라는 큰 주제 안에서는 합이 맞는다. 그러나 이 속편의 오만함을 인내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 전편이 미래에 살릴 수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보다 눈 앞에 단 한 명의 소녀를 살리는 게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했을 때 그건 도덕적 딜레마를 감수하는 용기있는 결말이었다. 그러나 속편은, 복수란 순환된다는 사실을 제작진을 제외한 모든 이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러므로 오직 제작진만이 특별한 심미안과 도덕적 판단 능력으로 세상을 정화할 수 있다는 듯 행동한다. 그런 태도로 전편의 주인공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이들을 모욕하고 깔보고 조종하며 설교한다. 요컨대 교조적이다. 그마저도 고작 게이머를 도덕적 상대주의의 늪에 자빠뜨려버리는 수준에 불과하다. 애비를 직접 조종하며 교훈을 배울 것을 강요하는 시점에서 이 속편은 선을 넘었다.
허지웅 #
영화 평론가허지웅은 본인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라스트 오브 어스 2>는 제작진의 선민의식과 오만함이 선을 넘었으며 굉장히 교조주의적인 작품'이라고 비판했다. 게임에 대해 간결하고 깔끔하게 정리했고 공감도 많이 가는 글이라 호평이 많이 보이고 있다.

영화 리뷰어로 유명한 제레미 잔스본작의 결말이 너무 허무하고 불만족스럽다고 비판했다. 마지막에 애비를 플레이해서 직접 앨리에게 죽는 장면을 찍고서 이게 진 엔딩이라 할 정도.

게임 리뷰어인 앵그리 죠는 본작의 스토리텔링 방식이 난잡하고 흥미롭지 않으며 게임 전체가 일종의 세뇌 교육처럼 느껴진다면서 최종 점수는 10점 만점의 6점을 매겼다. 리뷰 번역, 추가 리뷰 번역

전작을 혹평했던 전적이 있는 제로 펑츄에이션은 본작에 대해 굉장히 처참한 경험[15]이었다고 평했다. 게임플레이 자체는 잘 만든 편이지만 기존의 잠입 액션 게임들과 차별화되는 점이 거의 없고 선형적인 루트를 강제하고 있으며,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방식 또한 형편없었다고 못박았다. 두 주인공 모두 옳지 않다는, 너무나도 뻔한 주제를 강조한다는 것. 이후 라오어 2와 자주 비교되는 스펙 옵스 더 라인 얘기를 꺼냈는데[16], 주인공을 강렬하게 만들지 않는 4가지 요소[17]를 들면서 캐릭터가 발전하는 스펙 옵스의 주인공 워커 대위와는 달리 엘리와 애비는 보는 재미도 없고 발전이 없다면서 혹평했다. 개발비와 갈려나간 개발진들이 낭비되었다고 까는 것은 덤. 번역된 영상 그리고 자신이 뽑은 2020년 최악의 게임 1위로 선정했다. #
(전략)
닐 드럭만과 제작진은 도저히 더 라스트 오브 어스를 이겨낼 방법을 찾을 수 없던 겁니다. 그것보다 더 나은 작품을 만들 수가 없었던 거예요.
때려 죽여도 전혀 떠오르지 않은 겁니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작품은 내야 합니다.
그래서 닐 드럭만은 최악의 선택을 합니다.
더 라스트 오브 어스를 넘어 설 수 없다면 그 작품을 부정하기로 한겁니다.
예, 그렇습니다.
그래서 닐 드럭만은 조엘과 엘리의 관계를 부정했어요, 엔딩을 부정했어요, 조엘의 선택을 부정했어요.
그리고 조엘의 캐릭터를 멍청이로 만들었습니다. 전작에서 그토록 사람을 무서워 하던 조엘, 조엘은 영리하고 뛰어난 인물이었는데....
사람을 감염자보다 더 경계하던 그런 인물을 멍청이로 만들고 골프채로 머리를 깨뜨려 죽였어요.
왜냐고요?
전작의 조엘을, 이 캐릭터를 넘어설 수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자신의 전작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패배감과 열등감이 이런 사태를 불러온 겁니다.
그래서 침까지 뱉었죠. 전작에 열광하는 팬들에게, 자신의 뒤틀린 열등감과 스트레스를 발산한 겁니다.
그래서 엘리를 그렇게 패버리게 만든 거예요, 나만 부정할 수 없으니까 플레이어들도 동참시킨 겁니다. 강제로, 너도 때려 우린 공범이야 이런 거죠. 자신의 후속작의 매력 없는 캐릭터 애비를 위해 유저의 손을 빌려 비열하게 엘리를 패배시키고 전작을 부정하고 엘리를 패배자로 만들었습니다.
조엘이 죽었는데도 복수에 미온적이거나 연애에나 신경 쓰는 인물로 격하시켰죠.
이런 캐릭터를 다시 만들 수 없다는 자신을 향한 실망을, 그 고통을, 위로받는 방법이 이토록 폭력적인 방식이었던 거죠.
(후략)
라이너의 컬쳐쇼크: 당신의 기분이 더러운 건 스토리 때문이 아닙니다
영화 리뷰어[18]라이너는 본작의 스토리가 엉망이 된 것은 전작을 뛰어넘기 힘들었던 닐 드럭만을 필두로 한 제작진들이 자신들의 한계점을 깨닫게 되자 결국은 전작을 부정하는 방법을 택하게 된 결과라고 분석하였으며, 대다수의 게이머들이 스토리에 분노하는 이유를 1편에서 조작했던 캐릭터와 정들었던 딸같은 존재를 플레이어 손으로 무너뜨려야 함에서 나오는 PTSD로 해석하였는데 해당 리뷰는 번역되어 레딧 등 해외로도 알려져 큰 공감을 받고 있다.#

게임 리뷰 만화를 그리는 하얀쥐의 경우 제작진들은 라오어2의 스토리가 현실의 일들처럼 받아들여지길 바란 것 같지만, 라스트 오브 어스 시리즈가 가지고 있는 태생적 한계와 제작진들의 설계 미스 탓에 유저들은 몰입이 깨져 버렸고 모든 것이 인공적으로 설계되었다는 것을 인식하여 제작진의 의도보다도 더 분노하게 되었다는 분석을 했다. 그러면서 게임을 일처럼 플레이하고 이것저것 분석하는 것이 직업인 사람들은 재미있게 플레이 할 것 같다는 말도 했다.#

4. 유저 평가

평이 크게 갈리는 평론가들의 평점과 달리 스토리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게임 커뮤니티에서 호평을 찾기 어렵다. 메타크레틱의 평론가 스코어는 93/100점으로 매우 높은 반면, 유저 스코어는 10점 만점에 2.4점으로 출발하여 5.7점대에 머무르고 있다. 요약하자면 전작보다 진보된 그래픽과 모션은 공통적인 호평이지만, 기대했던 스토리에 충분히 만족한 사람과 크게 실망한 사람들로 나뉜다. 유저 스코어에서 높은 점수를 준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은 이 게임이 스토리를 포함해 모든 것이 완벽한 걸작이라는 것이며, 낮은 점수를 준 사람들의 공통된 지적은 스토리가 너무 불쾌하다는 것이다.

차라리 조작성이나 밸런스 등이 문제였으면 업데이트 등 후속 지원으로 고치면 되지만, 스토리는 한 번 내놓고 나면 어떻게 개선할 수도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완전히 정이 떨어졌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픽과 게임 플레이 상의 장점을 압도하는 불쾌한 스토리 때문에 "2회차를 하고 싶은가? 혹은 지인에게 추천을 하겠는가?"라는 질문을 받을 때 선뜻 그렇다고 할 만한 사람이 많지 않은, 달리 말하자면 그러고 싶지 않다고 학을 뗄 법한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닐 드럭만과 너티 독의 전 작품들이 뛰어난 그래픽과 함께 무난하고 대중적인 스토리로 게임을 만들었던 것과 다르게 이번 작품에서는 이전과 너무 다르면서도 전작의 팬들에게는 매우 무례하게 보일 수도 있는 스토리 설정을 넣었기 때문이다.[19]

4.1. 스토리에 대한 평가

4.1.1. 거부감을 유발하는 구성

파일:드럭만일침.jpg
파일:드럭만일침2.jpg
닐 드럭만: 몇 년을 어떤 캐릭터와 세계에 빠져 지내다 보면 주말에 가족들과 식사를 할 때도 생각이 나죠. 자신의 일부가 되어 버려서 떠나 보내기가 참 어렵습니다.
전작에서는 아무 관련이 없던 조엘엘리가 만나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연출했다. 멸망한 세계 속에서 조엘과 엘리는 살아남기 위해 목숨을 건 싸움을 반복했고, 그 과정에서 전우나 동료를 넘어 가족이나 다름없는 관계로 발전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감동할 법한 스토리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본작에서는 복수와 증오의 연쇄라는 주제를 내세우며 조엘과 엘리가 살아남기 위해 저질렀던 업에 새삼스럽게 빚을 매기고 상환을 요구해 온다. 비록 업보라지만 전작의 등장인물들은 과도하게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되거나 살아남더라도 원래 성격에서 비뚤어져 전작과는 다른 캐릭터가 되어버린다. 새로운 등장인물인 애비는 초반부터 조엘을 이야기에서 제거하며 엘리와 유저들의 입장에서는 분노와 증오의 대상이었으나,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최악의 타이밍에 자기도 조엘에게 아버지를 잃은 피해자라는 걸 보여주고 복수 및 악행들을 정당화하며 중반부의 주인공으로 등극한다.

이처럼 이야기의 진행 순서와 구성은 유저들로 하여금 2를 이끌어가는 주인공 애비에 대한 심리적 거리를 좁히기는커녕 분노와 혐오를 느끼도록 악의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특히 전작을 플레이했던 사람들은 엘리에서 애비로 주인공이 전환될 때 내가 왜 애비의 과거를 알아야 하냐는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으며, 애비를 조작해 엘리를 공격하게 되는 시점에서 그런 불쾌함은 절정에 달한다. 그렇다고 애비가 몰입할 만한 매력적인 캐릭터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애비는 전작의 요소들을 철저히 부정하고 훼손하기 위해 기계적으로 작동하며, 그 과정에서 애비는 일반적인 유저들이 이해할 수 있는 캐릭터의 범주를 넘어서게 된다. 이런 작위적인 캐릭터와 유저에게 불쾌감을 주기 위한 구성은 일반적인 유저, 그중에서도 특히 전작을 플레이한 사람들이 받아들이기에는 거부감이 너무 크다.

4.1.2. 기존 게임 시스템의 답습

파일:466r25.jpg[20]
(컷신으로 NPC를 쏴죽이는 너티 독)
너네들 왜 그랬어?
아니 그리고 우리한테 선택지라도 줬냐 말야.
"조엘리만 사랑하는 너희들이 틀렸다는 걸 깨우쳐주마!"
이게 또 더 기분이 더러운게 뭐냐면요.
아니 그걸 니들이 심었잖아!

'주인공이라고 해서 꼭 선일까?'
'적들도 나름의 사정이 있지 않을까?'
'각자의 정의가 있지는 않을까?'
당신들이 언제 우리한테 이런 생각도 같이 들게 선택지를 줬었냐고?

이런 장르 싫어하는 사람들은 무슨 멸칭쓰는줄 압니까? 맹도견 RPG
결국엔 지들이 의도한대로 끌고 다녀 놓고는 '어? 너 나쁜곳으로 왔구나? 혼나야겠다!' 이러는 꼬라지야 이게~
기생집 앞에서 김유신한테 목 잘린 말은 안 불쌍하디?
김성회 살면서 가장 열 받았던 게임 라스트오브어스2
조엘이 나빴다고?
그거 X발 제작진 니네가 시킨거 잖아..
안 죽이면 진행이 안되잖아..
어휴 나는 게임 속 사람을 죽이지 못하겠어~ 당장 게임을 끄고 시디를 빨리 매각해야지~
이게 원하던 해피엔딩인가?
진짜 X나 어줍잖게 교훈을 안겨주려고 하고요.
김채호의 필름찢기 (욕설주의) 2020년 최고의 게임 라스트오브어스2
플레이어에게 몰입을 강요해 놓고는 이제 와서 그것이 나쁘다고 말하는 연출에 대해서도 이중적인 선민의식이라고 비판이 많다. 애초에 살인이 나쁘며 복수와 증오가 끝없는 연쇄 작용을 불러온다는 것을 플레이어가 모르겠는가? 그런데 플레이 도중에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21] 스토리를 진행하면서 살인을 하도록 강제해 놓고서는 이제 와서 그런 행동은 잘못된 것이고 그런 감정은 나쁘다고 설파하는 게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엘리의 시점이나 애비의 시점이나 자신의 길을 막는 감염체 뿐만 아니라 수많은 인간들을 살해하는 것이 강제되며, 그게 나쁘다는 인식이나 갈등하는 듯한 묘사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마지막에 가서 복수와 증오는 나쁘다는 결론을 게임이 일방적으로 내려버리니 황당하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엔딩만큼은 플레이어가 선택하여 그에 따른 결과를 보여주었을 수도 있다. 플레이어의 선택이 누적되어 최후에 엘리의 결단이 바뀌는 게임 디자인도 가능했다. 선택지마저 없는 일방적인 플레이를 강제로 시킬 거라면 적어도 엘리가 어떤 처절한 고심 끝에 복수를 포기하게 되는지를 설득력 있게 묘사했어야 한다. 그런데 엘리는 디나와 가정을 꾸린 뒤 안정된 생활 속에서 복수심을 잠시 내려놓았다가 토미가 던져준 애비의 단서에 복수를 고민하다가 끝내 디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애비를 찾아 떠났고, 여정 끝에서 그렇게 집착했던 애비를 드디어 만났지만 유리한 상황에서 단번에 그녀의 목숨을 끊지도 않고 오히려 애비의 목숨을 구하더니 조엘의 처참한 최후를 떠올리며 애비와 격투를 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기타를 치는 인자한 표정의 조엘을 떠올리며 다시 복수를 포기한다는 오락가락하는 전개 속에서 플레이어들이 복수는 허망하고 그 연쇄를 끊기 위해서는 상대를 용서해야만 한다는 이 게임의 메시지를 납득할 수 있을 리가 없다.[22]

또한 애비에게 공감하기를 바란다며 애비를 서브 주인공으로 내세워 게임 전체 분량의 반을 할당했는데, 문제는 애비가 유저들이 공감하기 굉장히 어려운 캐릭터라는 점이다.[23] 더군다나 애비를 직접 조작해서 애비 측의 스토리를 진행해야 한다는 건 유저 입장에서는 캐릭터에 대한 공감은 커녕 고통을 동반한다. 이 고통의 양상은 크게 두 가지로, 첫째는 자신이 사랑하는 캐릭터를 스스로 파괴함으로써 오는 심적 고통이고 둘째는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스토리를 보며 생기는 지루함에서 오는 고통이다. 이는 단순히 애비의 이야기를 다뤄서 발생하는 문제라기보다는 몰입하기 힘든 스토리와 함께 부정적인 시너지를 일으킨 결과이다. 심지어 엘리조차도 전작에서 구축한 캐릭터성이 2로 넘어오며 완전히 망가져 버려서 최악으로는 엘리, 애비 그 누구에게도 공감하지 못한 채 오직 전투하는 재미 하나로 플레이하는 유저들도 많다.

이처럼 스토리에 몰입하게 함으로써 주제 의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설계되었을 게임 시스템은 오히려 몰입을 더 방해하는 상황이다. 더 무서운 건 스토리에 몰입할 수 있게끔 잘 만든 부분은 손에 꼽을 정도이고, 그 외 대부분의 요소들이 스토리의 몰입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의도하지 않는 이상 이 정도로 공감하기 어려운 스토리텔링은 게임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라 제작자가 일부러 유저들에게 엿을 먹이기 위해 이 게임을 만들었다는 추측이 큰 공감을 얻고 있다.[24]

4.1.3. 캐릭터 간 형평성

(중략)조엘을 죽인 애는 원래 이렇게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좆까는 소리좀 하지 마세요 제발!

지네 NPC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기 힘드니까
이젠 조엘을 죽인 년으로 플레이하게 만들어?

심지어 전작에서 죽인 새끼들까지 예토전생 시켜선
걔네들도 착한놈이었다고 감성팔이까지?
메탈킴, 라스트 오브 어스 2는 쓰레기만도 못한 폐기물이다

애비 파트를 플레이하다 보면 작품 외부의 유저가 애비에게 느끼는 절대적인 반감과 달리 작품 내부에서는 애비를 은근히 띄워주는 전개가 지속되어 묘한 위화감을 경험하게 된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애비는 여느 남성보다도 전투 기량이 뛰어나 본인의 능력으로 상당한 규모를 가진 군사 집단의 실세 자리에 오른다. 그녀가 차버렸지만 아직도 그녀를 잊지 못하는 소꿉친구도 있고, 우연히 만난 스카 소녀와 유대를 맺어 자신의 편견을 벗어 던지고 WLF로부터 진정으로 해방된다는 줄거리를 갖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엘리와 달리 애비는 자신의 복수에 대해 반성하거나 성찰해 본 적이 없음에도 더 만족스러운 결말을 맞는다.

그리고 애비 앞에 놓인 문제들은 편리하게도 상당수가 알아서 해결된다. 레브의 어머니가 살아있었다면 애비는 매우 곤란했을 테지만 레브가 실수로 죽였고, 애비는 WLF와 정을 떼지 못했는데 야라아이작 대장을 죽인다. 또 애비와 오언을 두고 삼각관계에 빠졌는데 엘리가 마침 둘을 죽여버린다. 멜과 오언이 살아있었다면 애비는 참 꼴사납게 여정에 올랐어야 했을 것이다. 애비는 불륜을 저질렀고 WLF를 배신했지만 다 해결되었고 엘리에 대한 피해자 역할만 남는다. 반면 엘리는 애비를 해방시켜 주는 장치처럼 쓰인다. 엘리의 마지막 복수를 해내지 못하는 장면조차 애비가 레브에게 조엘 같은 존재가 되었음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조금 더 멀리서 보면 엘리보다 애비에게 정당성을 실어주기 위해 교묘히 설계해 놓은 구도가 나타난다. 조엘을 무참히 살해하기는 했지만 직접적인 복수의 대상이 아닌 토미와 엘리는 살려보낸 애비와, 조엘의 죽음을 복수하겠다며 노라를 고문한 후 살해하고 멜과 오언까지 살해한 엘리가 대비된다. 애비 역시 마을 사람들을 고문해 조엘의 정보를 캐낼 생각까지 했었으나, 운 좋게도 조엘이 알아서 굴러들어옴으로써 그럴 필요가 사라진다. 애비는 임신한 디나를 살려준 반면 엘리는 임신한 멜을 죽이고 만다.[25][26] 애비의 선택은 레브의 만류에 의한 것이고, 엘리의 선택은 실수에 의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엘리만 태아 살해라는 반인륜적인 업보를 쌓게 된다. 이런 우연찮은 상황을 자꾸만 조성하면서 애비의 복수는 절제된 것이고, 엘리의 복수는 무차별적 학살이라는 대비를 은근슬쩍 주입하려는 시도에 플레이어는 부당함을 느끼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플레이어에게 선택지가 없기 때문.[27]

자기 생명을 바쳐 인류를 구할 수 있는 기회를 없애버렸다며 엘리가 조엘을 비난하는 장면 역시 간접적으로 애비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한다. 전 인류가 구원받을 수 있었지만 조엘에 의해 그 기회가 박탈당했고, 그런 인류의 배신자 조엘이 처단당하는 건 어느 정도 마땅하며 엘리는 사실 희생되었어도 나쁘지 않았을 존재였다는 거의 전체주의적인 전제를 깔면서 말이다.[28] 전작에서 이름 없는 엑스트라에 불과했던 의사는 갑자기 백신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권위자 제리 앤더슨으로 둔갑해서 애비의 복수를 정당화해주고 조엘의 죄를 더 무겁게 만든다. 문제는 다짜고짜 엘리의 뇌를 해부해서 백신을 만든다는 설정은 의학적으로 말도 안 되는 소리라서 전작부터 무리수로 지적받은 부분이다. 조직 생검은 뇌를 통째로 들어낼 필요없이 샘플 채취가 가능하고, 설령 그럴 기술이 없다고 한다면 더욱 유일한 면역자를 소모품 쓰듯이 대해서는 안 된다. 그렇기에 기존 유저는 이 돌팔이 의사로부터 엘리를 구해냈다고 느끼지 조엘이 죄를 지었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심지어 라오어 2에서 추가된 권위자 설정은 뇌를 해부하자는 미친 소리와 결합되어 더욱 돌팔이 사이코 의사로 보이게 하고 목적과 반대로 조엘의 무고함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여기에 마를렌이 "네 딸이 면역자였다 하더라도 해부할 거냐"라고 질문했고, 이에 대답하지 못함으로써 제리의 정당성은 더욱 멀어졌다.

사소하게는 애정 관계에 있어서도 애비에 대한 편애를 엿볼 수 있다. 디나는 엘리의 연인으로 잘 되나 싶더니 남의 아이를 가져 엘리를 좌절시키고, 엘리가 다시 복수를 떠나려 할 때는 조엘에 대한 고인 드립성 발언까지 하며 엘리와 심하게 갈등한 후 결국 아이와 함께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반면 애비의 첫사랑인 오언은 부인이 임신한 상황에서 뜬금없이 애비에게 다가와 그녀와 불륜 관계를 맺기까지 한다.

정리하자면 파트 2는 엘리의 실패담이자 애비의 성공담이라고 할 수 있다. 엘리는 시작부터 아버지나 다름없는 조엘을 잃고, 친구인 제시도 죽고, 삼촌 격인 토미는 불구가 된 채 엘리에게 실망하며 떠나고, 최후에는 연인인 디나마저 엘리를 떠나버린다. 거기다가 애비에 의해 손가락이 두 개나 잘려서 자신마저 불구가 되고 기타조차 칠 수 없게 되면서 조엘과의 유일한 연결고리마저 끊어져 버린다.[29] 반면 애비는 복수에 성공하고 첫사랑의 애정을 얻어냈으며, 끝까지 멀쩡하게 생존하고 자기가 지켜낸 소녀와 조엘-엘리 같은 유대 관계를 형성하고[30] 파이어플라이에 입사까지 예정되어 있는 메리 수 같은 성공담을 보여준다.

게임 시스템 상으로도 엘리는 현실적인 한계가 뚜렷한 능력치로 근접전에서 밀리고 무장도 상당히 빈약한 수준이다.[31] 반면 애비는 스토리에서 언급하듯이 황소와도 같은 체력과 근력으로 좀비들을 주먹으로 갈아버리고 적에게 여러 대 맞아도 버텨내는 떡대를 자랑한다. 거기다가 무장도 풍족하며 심심할 때마다 루팅하면서 화력을 몰아줘서 애비 파트를 하다가 엘리 파트를 하면 답답함을 느끼게 구성되어 있다.

게다가 애비 파트 초반부에 새라파이트에게 쫓기는 구간에서는 딱히 반격을 하지 않아도 진행이 된다. 동일한 추격 구간이 있는 언차티드의 경우 난이도에 따라 다르지만 근본적으로 적극적인 반격을 안 할 경우 게임 오버가 된다는 걸 생각하면 이는 제작진이 의도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3일 차에 엘리와 마주치는 구간에서도 극장에서는 딱히 엄폐를 안 해도 총을 안 맞는다. 엘리가 멀쩡히 지켜보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어서 나오는 무대 뒤편에서 엘리는 샷건과 소총을 갖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허접한 나무 판자로 애비를 기습하는데, 이런 어이없는 장면은 실소를 자아낸다. 애비는 세라파이트 마을을 탈출하던 중에 무기가 들어있는 배낭을 잃어버렸는데, 이런 애비가 총기로 무장한 엘리를 억지로 이기게 하느라 이런 우스꽝스러운 연출이 들어간 것이다.

게다가 꼴에 중립적으로 보자라는 식으로 공식적으로는 트레일러 한 편 정도로만 나온 인물을 서브 주인공으로 넣어서 분량의 반을 할당해 줬으면서 정작 그 적으로 나오는 세라파이트는 그냥 광신도 꼴통 집단으로밖에 묘사를 안 해 놓는다. 이런 노골적인 차별은 조엘과 엘리에게 감정 이입을 하던 전작의 유저들에게는 매우 불합리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전작의 유저들을 의도적으로 엿먹이는 구성이라고 봐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닐 드럭만이 전작을 전면 부정하고 자신이 창조한 캐릭터를 앞세워 새로 시작하고 싶었다는 추측도 있다.

비판 측에서는 라오어 2는 공식이 내놓은 파트 1에 대한 헤이트물로서 시리즈뿐만이 아니라 파트 1마저 시궁창으로 처박아 버린 문제작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유저는 이제는 파트 1을 다시는 마음 편히 플레이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토로한다. 원래 헤이트물이 팬픽에서 비롯되었듯이 게임 및 애니메이션, 영화, 소설의 경우 공식적인 후속작은 이전 작품의 주인공이 홀대를 받더라도 헤이트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는 사람도 있으나, 헤이트물 항목에 나오듯이 원작 기반의 공식 미디어믹스물 중에서도 제작진이 특정 캐릭터를 푸쉬하면서[32] 상대적으로 다른 캐릭터들의 비중을 줄이거나, 다른 캐릭터들을 너프를 먹이거나, 원작에 없던 설정을 넣는 등으로 푸쉬하는 캐릭터를 제외한 다른 캐릭터들을 나쁜 쪽으로 변질시키는 등의 경우도 공식 헤이트물이라는 말을 듣는 사례가 이미 존재한다. 헤이트물은 크게 캐릭터 헤이트물, 커플링 헤이트물, 메인 히로인 헤이트물, 작품 헤이트물로 나뉘는데, 라오어 2의 경우 캐릭터 헤이트물과 작품 헤이트물에 해당한다. 캐릭터 헤이트물은 특정한 캐릭터를 안티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는 헤이트물로 간혹 특정 캐릭터 하나가 아닌 안티하는 캐릭터가 여러 명 또는 그 여러 명이 공통된 집단에 소속되어 있는 경우, 그 집단을 안티하기 위해서 쓰는 경우도 있다. 라오어 2에 나온 캐릭터 중에서는 조엘과 엘리와 토미가 이에 해당된다.

4.1.4. 개연성이 부족한 부분

제작진이 전하고 싶은 다소 무리한 스토리를 끼워 맞추기 위해 개연성을 포기하고 편의주의적으로 전개한 부분이 많다. 그래서 게임 내에서 회상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자신들의 스토리가 개연성과 설득력이 떨어져 회상 장면으로 때우려 했다는 의견도 있다. 이하 게임 플레이 장면 순으로 나열한다.
이 모든 개연성 문제는 오직 전작을 플레이했던 유저를 최대한 불쾌하고 좌절하게 만들기 위해 남용되었다. 물론 이러한 방향성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고, 게임메카가 비교 대상으로 삼았던 조커기생충 같은 영화도 관객을 불쾌하고 좌절하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작품들은 납득할 만한 전개를 통해 묵직한 주제의식을 던졌기에 그토록 찬사를 받은 것인데, 본작은 개연성이 바닥을 친다는 것이 문제다.

4.1.5. 양면을 보여주는 연출

게임의 연출은 해체주의적 사고를 깔고 들어가고 있다. 전작의 주인공으로, 1편 플레이어들의 감정 이입 대상이었기에 1편 플레이어들이 절대선으로 보았던 조엘과 엘리를 중립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고 조엘을 잔인하게 죽여 절대악으로 보였던 애비의 시점을 보여주며 이해의 여지를 던져주는 중립적 시선을 야기한다.

오프닝 후 엘리디나의 풋풋한 로맨스가 깔리고, 조엘이 우연히 만난 애비를 구해주었다가 갑자기 그녀에게 살해당함으로써 유저들은 '살인마 애비에게 아버지를 잃은 엘리'에게 감정이입하게 된다. 중간중간 엘리와 조엘의 회상씬은 이러한 이입을 강화시킨다.

이후 복수에 오른 엘리노라를 감염시킨 후 심문하는 장면에서 조엘이 노라의 동료들과 애비의 아버지를 살해한 '학살자'라는 것이 드러난다. 죽어가는 노라의 시점에서 그녀를 고문하고 무참히 살해하는 '복수귀 엘리'의 이미지가 비춰진다.

이후 오언, 과의 일전에서 오언이 엘리에게 반격당하여 죽고, 이에 분노한 멜이 엘리에게 달려들었다가 역시 살해당한 직후 엘리는 멜의 임신 사실을 깨달음으로써 '반인륜적인 죄를 저지른 복수귀'가 된다.

마침내 엘리애비와 마주친 직후부터는 애비 시점으로 전환되어 '인류를 구원할 수 있었던 희망이자 애비의 소중한 아버지 제리'가 '냉혹한 학살자' 조엘에게 살해당하는 회상 장면이 나온다. 그 직후 '학살자' 조엘을 애비가 처단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동시에 애비와 오언과 멜의 사적이고 인간적인 면모를 제시하여 엘리에게 무참히 살해당한 이들의 비극성을 강조하고 '첫사랑 오언을 엘리에게 살해당한 피해자 애비'가 분노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애비의 플레이 과정에서 하지 않으면 진행을 할 수 없는 개와 노는 시간을 준다. 하지만 엘리의 입장에서는 그 개는 적대적이며, 무조건 죽여야 하는 대상이다.

이후 전개되는 애비의 스토리에서 그녀는 '레브의 보호자'로써 유사 조엘의 입지까지 끌어올려진다.

엘리 시점으로 복귀한 후 디나와의 행복한 한 때에 토미가 복수를 종용하는 장면과 토미와 언쟁을 벌이는 디나를 통해 '복수와 일상 사이에서 갈등하는 엘리'와 '소중한 일상을 지키려는 디나', '상실된 관계에서 내면의 변화를 겪은 토미'의 모습을 보여준다. 엘리가 복수를 결심하자 디나가 그녀를 떠나게 함으로써 '복수에 대한 의무감으로 일상까지 잃어버리는 엘리'를 보여준다.

엔딩에서는 '조엘을 향한 복수를 통해 결국 레브밖에 남지않은 비참한 애비'와 '모든 것을 잃고 뒤늦게나마 무분별한 복수를 포기한 후 조엘에 대해 안좋은 기억만을 떠올리게 하는 기타를 두고가며, 좋은 기억만을 가져가려는 새로운 시작을 하려는 엘리'의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4.1.6. 결말에 대하여

4.1.6.1. 긍정
1편부터 이야기의 큰 줄기는 사랑과 구원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가가 설명했듯이 엘리는 조엘만큼 잔인해질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41] 실제 인간들의 삶에서도 아버지와 딸의 성격이 일치하지 않는다. 2편의 주인공은 엘리이므로 엘리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것이 맞다. 엘리의 마지막 부분은 '복수는 부질없다'를 테마로 가진 것이 아니라, '상실감 등의 내적갈등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려는 것'에 가깝고, 제작진이 인터뷰로 인정했다.

엘리의 행동을 이해해 보려면 우선 산타바바라 시점에서 엘리가 정신적으로 피폐한 상태라는 걸 감안해야 한다. 작품 전반부 내내 애비를 죽이려고 노력했지만 끝내 실패했고 도리어 원수한테 자신과 디나, JJ의 목숨을 빚졌다. 친구 제시는 죽었고 토미는 눈과 다리를 잃었다. 본인과 디나의 고통을 감내하면서 애비를 쫓았고 그 과정에서 생면부지의 사람을 숱하게 죽이고 또 죽였으며, 심지어 임산부까지 해쳤는데 결국 물러나야만 했다. 이러니 멘탈이 버틸 리가 없었을 것이다. 엘리가 입은 거칠어도 갓 19살이 된 미숙한 성인임을 간과하면 안된다. 그래서 마을로 돌아오긴 했지만 마음 속 응어리를 풀지 못해 넋이 나간 사람처럼 의욕없이 살았고 PTSD로 인해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불면증에 시달렸다. 디나와 살면서 그럭저럭 견디는 듯 했으나 그 와중에 토미가 애비 이야기를 꺼내며 트리거를 당겼고 PTSD가 다시 재발했다. 결국 애비에 대한 단서를 접하자 오랜 고민 끝에 집을 나선 것이다. 산타바버라까지 가는 과정에서 엘리가 중얼중얼 애비 이름을 되뇌이는 모습을 보면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보일 지경이다.

게임 내내 엘리가 사람들을 죽여오면서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는 점은 묘사되고 있다. 엘리는 생존을 위해서 덤벼드는 적들(게임적 구성상)을 죽이긴 했어도[42], 직접적으로 복수를 위해 고문하면서 죽이는 성미는 아니었다고 볼 수 있다. 일단 노라를 고문하고 죽이면서 엘리가 힘들어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다음에 임신을 한 멜 및 오언까지 죽여버리므로서, 임신한 디나와 겹쳐보며 엘리의 마음이 성급해졌다는 것 역시 나타내고 있다. 결국 엘리는 디나가 무사했기에 무리한 복수를 끌고 가며 더 이상 자신의 소중한 인물들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 멈춘 것이다.[43] 이러한 복수 과정 및 연쇄에서 모든 걸 잃어버린 것은 다른 인물들의 일지 및 토미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다. 심지어 애비만 무사히 유유히 빠져나갔다는 평가조차도 뒤집어보면, 애비는 주변 인물들을 다 잃고 기존의 지위조차도 잃어버리고 레브밖에 남지 않았다. 즉 애비는 조엘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는 애비가 조엘을 대체하는 괘씸한(?)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 1편의 플레이어들이 감정을 이입하고 정의 구현을 했다고 생각했던 조엘도 누군가에게는 악인이었고, 애비 역시 누군가에게는 악인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선한 면이 있는 보통의 인물이라는 묘사이다.

마지막 엔딩에서, 제작진이 말했듯이 엘리의 마지막 여정은 조엘에 대한 죄책감의 발현이다. 엘리는 조엘의 죽음을 극복하지 못하고 PTSD에 시달렸고, 결국 다른 인물들처럼 기존의 가족(디나, JJ)을 버리면서까지 자신의 평정을 찾고자 한다. 엘리가 불효녀라는 비판은 옳지 않다. 복수를 원하는 것은 엘리이지, 과연 조엘이 그것을 원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오히려 엘리를 단순히 조엘의 복수를 위한 도구로만 생각해야 불효녀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마치 딸은 아버지의 복수를 당연히 해야하며, 그것을 위해 목숨까지 바쳐야 한다는 식의 해석을 하여 오히려 엘리를 위험으로 내던지는 것이 진정으로 보통의 아버지가 자식에게 바라는 감정인지와 사랑하는 자식을 위한 길인지는 생각을 해봐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엘리가 복수를 안하러 간 것도 아니다. 엘리는 목숨을 걸고 두번이나 복수의 여정에 올랐다. 이미 한번은 완전히 패배한 것임에도 말이다. 엘리가 조엘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면 복수를 하러 가지도 않았을 것이고, 엘리가 애비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주변인물들과 계속 갈등을 일으키지도 않았을 것이다. 또 정말로 조엘의 죽음에 개의치 않았다면 PTSD로 고통받을 이유가 없다. 묘사되는 PTSD는 단순히 잔인한 광경을 봤다고 터지는 수준의 PTSD가 아니다. 엘리는 조엘의 죽음에 무척이나 고통스러워 하고 후회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복수를 달성하기 위한 마지막 부분에서 레브와 애비의 관계를 보면서 조엘과 자신의 관계를 겹쳐보아, 조엘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며, 애비를 죽이는 것이 곧 조엘을 또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닫게 되어 보내준 것에 가깝다. 계속 과거를 회상하는 연출은, 조엘과 엘리의 관계에 대한 갈등 및 얼마나 깊은 사이였는지를 보여주는 것도 있지만, 조엘과의 과거 상황이 현재와 겹쳐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게임의 주제는 비판자 또는 불호에서 말하는 복수의 허무함이 아닌, 진정한 용서이다. 디나의 유대교에 대한 언급, 레브의 종교에 대한 언급, 양을 붙잡으려다가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엘리, 세례를 모티브로 한 마지막 전투, 외적으로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감독 등을 보면 확실하게 이어지고 있다. 이 용서의 모티브는 레브와 애비, 애비와 엘리, 엘리와 애비, 그리고 마지막으로 엘리와 조엘의 엔딩까지 전체적인 내용을 관통하고 있다.

또 다른 정황적 근거로는 애비에서도 나타난다. 아버지의 복수가 불러온 애인과 친구들의 죽음. 그것의 복수를 위해 임신한 디나와 엘리를 죽일 기회를 애비는 한 번 가졌었다. 그러나 레브가 애비를 부르며 만류하자 깨끗이 포기하고 엘리마저 살려두고 떠나는데, 애비에게 있어서 레브를 아끼는 마음이 커졌음을, 또 그로 인해 내적 갈등이 해소되었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산타바바라로 떠나는데 내적 갈등을 해소하지 않고서야 하기 힘든 결정이다. 기둥에서 풀려났을 때 역시 더 이상 싸우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내적갈등을 극복해 나간다는 코드는 비단 복수뿐 아니라 화해(조엘), 연민(애비), 동성애인과의 교제(디나), 성정체성 고민(레브)등의 요소로도 작품 전체에 표현되고 있다. 극장에서 애비와의 싸움에서 엘리의 원론적인 복수는 끝났다. 하지만 PTSD가 남았고 그때문에 조엘의 피묻은 얼굴이 계속 떠오르는 것이다. 이는 애비가 계속 죽은 아버지의 악몽을 꾸는 것과 같다. PTSD 때문에 자살 직전의 심리 상태가 되어 이를 벗어나기 위해 산타바바라로 가는 두번째 복수가 시작된다. 하지만 조엘의 멀쩡한 얼굴이 떠오르며 조엘에게 가진 죄책감에서 해방되었고 애비를 죽이는 것이 더 이상 의미가 없기에 애비를 그냥 보내주는 것이다.

마지막 엔딩에서 조엘에게 하는 말인 '용서할 수 없지만 노력해보겠다'는 것은 애비에게도 하는 말이기도 하다. 조엘과 엘리의 인생관은 서로 평행할 수밖에 없었다. 엘리는 1편부터 혼자 남겨지는 것을 두려워했고, 의미있는 죽음을 찾아왔다. 자신의 생명이 백신을 포기한 댓가라는 것을 안 이후로 엘리는 삶의 의미를 찾지 못했었다. 엘리의 이런 심리는 1편 엔딩에서도 예고된다. "전 언제나 자기차례를 기다리고 있어요." 2편에서 진실을 알았을 때 "나를 그때 죽게 내버려뒀어야 한다"고 조엘에게 화를 낸 것으로 나타난다. 반대로 1편의 조엘은 삶의 목적없이 그저 되는대로 생존을 위해 살아가던 인간성을 잃어버린 자였으나, 엘리를 구하므로서 인간성을 회복하고 엘리가 삶의 이유가 되어서 계속 살아오게 되었던 것이다. 이 점에서 보면 조엘은 엘리의 의미있는 죽음을 빼앗은 자이다. 그래서 엘리가 '자신의 삶에 간섭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하지만 조엘이 "신이 두 번째 기회를 줘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라는 말을 떠올리며 조엘이 엘리를 구한건 엘리가 백신으로 희생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삶을 살기 바래서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또 조엘은 엘리가 동성애자임을 알고도 디나에게 행운이라고 하는 등, 엘리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와 믿음, 사랑을 표현했다. 엘리가 아무리 원망해도 그의 마음을 느꼈을 것이고 부정할 수 없는 진심이기에 엘리는 그를 용서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이는 다시 농장으로 돌아갔을 때 엘리의 기록에 조엘을 그리워하며 기타를 치는 조엘이 그려져 있는 것에서 이해할 수 있다.

결국 실질적으로 조엘과 엘리의 관계는 제대로 된 화해에 도달하지 못했고, 그 안타까움이 엘리를 미치게 하였으나, 엔딩에 와서 엘리의 마음은 조엘에 대한 죄책감을 내려놓았다. 그래서 조엘의 상징인 기타를 두고 가는 것이다. 그리고 기타를 앵글 안에 잡아주는 엔딩은 조엘의 일은 과거에 묻어두었지만, 여전히 조엘이 그녀를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까지 한다.
4.1.6.2. 비판
게임이 예술로서 평가되려면 유저의 감정에 유의미한 감동을 주는 '작품'이어야 한다. 게임은 '게임'으로서 평가되어야 한다. 또한 작품을 예술로써 평가하는 주체는 평론가가 아니라 유저들이다. 편의주의적으로 해석하며 애써 예술로써 포장하고 일반적인 유저들은 뭔지도 모를 철학적인 용어들을 미사여구로 붙여대며 구구절절 포장해봤자 돌아오는 것은 유저들의 비판과 비난이다.

모든 유저가 라오어1에 열광했던 이유는 이야기의 주인공인 조엘과 엘리에게 공감하고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라오어1의 프롤로그에서 사라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에 빠져들었고, 마지막 스테이지에서 총격이 빗발치는 곳에서 엘리를 찾아내고, 한치의 망설임 없이 마를렌을 쏴버렸다. 또한 엘리 역시 조엘이 철근에 몸이 뚫리자 직접 나서서 치료방법을 구하고, DLC에서도 조엘을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웠다. 이과정에서 그 어떤 유저들도 조엘, 엘리의 선택에 의심하지 않았다. 조엘과 엘리의 선택에 공감하고 응원했다. 조엘이 유저였고, 엘리가 유저 였다.

하지만 라오어2는 그러지 못했다. 라오어2선민의식에 빠져 멋대로 유저들을 가르치려 들었다.

그 결과 유저들은 조엘과 엘리의 선택에 의구심, 황당함, 더 나아가 짜증과 분노를 느꼈다. 라오어1에서 쌓아올린 캐릭터들의 정체성을 박살냈고, 그 결말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며 편의주의로 해석하여 개연성조차 밥말아먹었으며, 유저들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조엘을 납득이 안되는 행동으로 개죽음을 당하게 하고, 엘리조차 이해가 안되는 행동을 반복하게 하며 결말에서 조차 납득하기 힘든 행동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이 대신 던져준 것은 애비라고 하는, 그들만이 선호하는 사상으로 점철된 캐릭터였다.

또한 최후반부에 엘리가 애비를 찾았을 때 보면 애비는 스테로이드뽕이 빠졌는지 고생을 많이 한 건지, 그동안의 근육질에서 삐쩍 마른 상태였다. 나름 비참한 처지였기에 애비에 대한 복수심을 거둘지 말지는 플레이어에 따라 다를 것이다. 애비가 충분한 응보를 받지 않았다고 판단한 사람들은 당장에 애비가 조엘에게 했건 것처럼 샷건으로 무릎을 따고 머리를 후려 갈기고 싶었을 테고, 한편으로는 이쯤하면 됐다고 생각하면서 그냥 보내고 싶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전개는 이 두 입장을 모두 엿먹이고 있다. 복수한다는 인간이 멀쩡한 총 놔두고 칼부림하는 것도 어처구니가 없는데, 겨우 복수를 달성하는가 싶더니만 말도 안되는 회상씬을 보더니 바로 포기해버린다. 복수하고 싶으면 시원하게 복수하든가. 용서할 거면 쿨하게 용서하든가. 쓸데없이 육탄전 걸다가 손가락 잘리는 엔딩이라니,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인가?라는 생각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성이다.

옛말에 복수를 하려면 두 개의 무덤을 파라는 말처럼 처절한 복수극을 만들려면, 그 테마에 맞춰지는 무드와 캐릭터가 필요하지만 이번 작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결국 라오어 2는 플레이어에게 복수의 카타르시스도, 복수에 대한 교훈도 없이 애매하게 끝나버림으로써 복수의 대상을 유유히 떠나보내는 모습을 보는 엘리처럼, 플레이어에게 비참함을 남긴다.

위 엔딩 문단에서 닐 드럭만의 인터뷰 내용을 빌어 작성한 문장을 해체해본다면, 매우 많은 문제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보인다.
엘리는 조엘과 닮은 구석이 많지만 그의 범죄적 성향까지 닮은 건 아니라며 작가가 인터뷰로 밝혔다. 조엘은 살기 위해 무슨 짓이든 저질렀고 이것은 1에서 조엘의 입을, 2에서는 엘리의 입을 통해 언급된다. 조엘은 후환을 없애기 위해 살려달라고 애원한 마를렌까지 죽이는 냉혹한 면모를 보여주지만 엘리는 노라를 고문하고 난 후, 임신한 멜을 죽이고 난 후 죄책감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둘의 다른 면모는 병원에서 엘리를 구한 사건으로 충돌하는 모습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조엘은 엘리를 살리기 위해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지만, 엘리는 자신을 살리기 위해 파이어플라이를 몰살시킨 조엘을 이해하지 못한다. 스토리 작가는 이에 대해서 엘리가 조엘을 따른 건 맞지만 조엘의 범죄적 성향까지 따른 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이것은 제작자의 주장이지만, 라오어2의 본질은 액션/어드밴쳐 게임이다. 게임플레이 자체도 플레이어가 소위 잡몹을 잡아가면서 진행을 하는 구조다. 위 인터뷰를 역으로 해석하자면 계속해서 해치워 나가는 잡몹들은 인간이 아니며, 세세하게 묘사되는 NPC만이 인간이라는 말이 된다. 엘리가 여지껏 아무렇지 않게 수백 명을 학살하다가 임산부 하나 죽였다고 그제서야 무너지는 묘사를 하는 것은 너무 모순적이고 작위적이다.[44]
엘리가 애비를 죽이러 두 번째 복수를 떠나는 것은, 조엘의 복수가 아니라 PTSD로 괴로워하는 자신의 삶이 자살과 마찬가지로 여겨져 생존을 위해 떠나는 것이라고 작가인 할리 그로스와 닐 드럭만이 인터뷰로 밝혔다.

이 주장은 말이 되고 또한 플레이어에게 잘 전달이 됐다.[45] 또한 많은 플레이어들은 애비를 죽임으로서 끝을 맺고 싶었다. 허나 이 다음 주장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애비를 찾아내지만 초췌한 몰골로 레브를 안고 탈출하려는 애비의 모습에서 엘리는 자신이 미처 보지 못했던 과거 조엘의 모습을 본다. 처절한 혈투 끝에 애비를 죽일 수 있는 우월한 위치에 놓이지만, 기타를 치는 평온한 조엘의 모습이 떠오른다. 결국 엘리는 애비를 죽이지 못하고 아이를 데려가라며 보내주고는 허탈한 뒷모습을 보인다.

드럭만은 위와 같은 주장을 설파하려 했지만, 오히려 플레이어들은 반대로 받아들였다. 플레이어들은 오히려 이 컷씬을 아버지 회상씬 버프로 인식하고 처참하게 죽은 조엘의 모습을 떠올리며 더 죽이려 하였지, 용서하려고 하지않았다.[46] 결국 플레이어들은 이 장면의 조엘을 보며 "아저씨 이제 복수를 이루었어요" 같은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손을 놓는 엘리를 보고 완전히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 메세지를 더 잘 전달하려 했다면, 그냥 조엘이 기타치는 장면 하나가 아니라, 회상씬이나, 애비와 레브을 둘다 컷신에 등장시켜 조엘과 엘리를 겹쳐 보이게 하는 게 그나마 설득력 있었을 것이다.
인터뷰에 의하면 엘리의 마지막 부분은 '복수는 부질없다'를 테마로 가진 것이 아니라, '상실감 등의 내적갈등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복수 일념으로 산타바바라로 떠나던 앨리는 조엘이 참혹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자신의 곁을 떠났음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당연히 가해자인 애비에 대한 증오와 복수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복수가 실현 되려던 찰나 고통 속의 애비 얼굴을 보며 엘리가 떠올린 것은 평온한 모습의 조엘이었다.

게임의 테마의 복수가 아니라 상실감으로 정했다고 하는 것은 홍보한 내용과 거리감을 두게 만든다. 게임의 발표부터 꾸준히 이 게임은 복수극으로 마케팅되었다. 트레일러의 엘리가 모두들 죽인다는 말과, 조엘이 '널 혼자 가게 두겠어?' 라는 말, 파이어플라이의 사인 남발과 닐 드럭만 본인이 # 이 게임은 엘리가 복수를 하러가는 내용이라 한만큼, 플레이어들은 복수물을 기대했다. 그러나 플레이어가 받은 것은 개연성따윈 하나도 없는 닐 드럭만의 사상 뿐이였다. 라오어2 자체의 게임플레이는 절대로 닐 드럭만이 원하는 메세지를 전달 할 수 없는 방식이다. 사람을 죽이는 TPS에 ‘상실감 등의 내적갈등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려는 것’이라면서 잡몹 수십명을 눈 깜짝안하고 죽이는데 공감이 될 리가 없다.
이런 심리를 반증하듯 농장으로 돌아온 엘리가 조엘의 기타를 꺼내 연주하고는 다시 케이스 속에 '넣지' 않고 '바깥'에 기대어 세워 놓고 떠남으로서 표현이 된다.

위의 메세지 전달에 실패하면서, 플레이어들은 조엘의 기타를 버리거나, 아예 과거를 끊어버리는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이 되었다.
아버지의 복수가 불러온 애인과 친구들의 죽음. 그것의 복수를 위해 임신한 디나와 엘리를 죽일 기회를 애비는 한 번 가졌었다. 그러나 레브가 애비를 부르며 만류하자 깨끗이 포기하고 엘리마저 살려두고 떠나는데, 애비에게 있어서 레브를 아끼는 마음이 커졌음을, 또 그로 인해 내적갈등이 해소되었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산타바바라로 떠나는데 내적갈등을 해소하지 않고서야 하기 힘든 결정인 샘. 기둥에서 풀려났을 때 역시 더 이상 싸우지 않을 것을 이야기 함으로써 이미 갈등은 풀렸음을 반증한다.

플레이어의 시점에서는 먼저 애비가 친구들을 데려와 조엘을 죽이고, 엘리가 복수로 친구들과 애비를 죽이러 왔는데, 애비가 역으로 제시를 죽이고, 토미를 불구로 만들고 디나와 엘리는 반죽음 만들고, ‘나 이제 복수 끝냈으니까 너네 따라오지마’라고 말하는 게 말이 되는가? 애비의 내적갈등만 풀렸지, 엘리를 조종하는 플레이어의 입장에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그리고 애비는 이미 본인의 진영도 배신했는데 갈 곳이 산타바바라 말고는 딱히 없었다. 애비 문서에도 적혀있듯이, 게임의 사건들은 애비 편향적으로 진행이 됐고, 애비에게 걸린 복잡한 문제들은 알아서 풀린다.
2. 떠올려진 조엘의 얼굴이 마지막 대화를 나눌 때의 모습으로 엘리는 이때 처음으로 조엘이 자신을 어떤 마음으로 구한건지 짐작하게 된다. 조엘이 엘리를 구한건 엘리가 백신으로 희생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삶을 살기 바래서였다. 엘리는 조엘의 그 마음을 비로소 이해하고, 그러기 위해선 복수를 그만두고, 복수의 이유였던 죄책감을 갖는 자신을 용서해야 한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문제는 위에 논리는 애비를 죽이고도 실현 가능한 시나리오다. 플레이어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미 애비 하나 죽이자고 래틀러 수십을 죽인 상황이니 모순적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3. 극장에서 애비와의 싸움에서 엘리의 원론적인 복수는 끝났다. 하지만 PTSD가 남았고 그 때문에 조엘의 피묻은 얼굴이 계속 떠오르는 것이다. PTSD 때문에 자살 직전의 심리 상태가 되어 이를 벗어나기 위해 산타바바라로 가는 두번째 복수가 시작된다. 하지만 조엘의 멀쩡한 얼굴이 떠오르면서 조엘에게 가진 죄책감에서 해방되었고 애비를 죽이는 것이 더 이상 의미가 없기에 애비를 그냥 보내주는 것.

여기서 문제는 오히려 원론적인 복수가 끝났긴 커녕 늘기만 했다는 점이다. 제시는 죽고 토미는 불구가 됐다. 갑자기 조엘의 멀쩡한 얼굴이 떠오르고 애비를 놓아주면서 죄책감 및 책임감에서 해방되기에는 묘사가 부족하다.

차라리 엘리가 애비를 구하는 시점에서 조엘을 떠올리고 곱게 보내줬다면 나름대로 납득이 가는 결말이 됐을지도 모른다. 애비를 도와준 이유가 조엘을 투영했기 때문이며 같은 상황을 겪어왔던 엘리로썬 애비에 대한 복수심이 누그러드는 장면이였다. 그런데 그걸 바로 직후에 부셔 버리니 의미 있는 장면조차 무의미하게 소모 되어 버렸다. 가뜩이나 등장인물에게 공감하기 힘든 내러티브가 잔뜩인데, 개발진이 말하고자 하는 결말조차 스토리와 맞물린다는 느낌이 없다.

결말에서도 황당함을 느낀 플레이어들이 많다. 엘리애비를 찾아갔을 때 피골이 상접한 그녀를 보고 복수를 포기하는듯 하더니, 다시 고통받는 조엘의 환상에 분노하여 애비에게 싸움을 거는 모습은 대체 엘리가 복수를 하고 싶은 건지 복수에 회의감을 느끼는 건지 이해할 수 없게 만든다. 결국 용서와 복수 사이에서 줄타기하던 앨리가 애비에 대한 복수를 완수하기 직전 조엘의 얼굴이 스쳐지나가며 충동적으로 살려주는 황당한 전개가 등장한다. 조엘이 갑자기 살해당함으로써 엘리의 충격과 증오, 복수의 개연성을 제공하고 애비가 속한 조직을 학살하게 한 뒤에 끝에 가서는 증오와 복수는 연쇄를 부르는 허튼 짓이니 멈추어야 한다고 불현듯 깨달았다며 마무리지은 것이다. 애비를 미워하고 엘리를 응원하던 플레이어들은 이러한 결말로 한순간에 증오와 복수에 빠져 용서를 모르는 미개인 취급을 당하게 되었다. 정작 자기 복수는 깔끔히 끝냈으며 온갖 위선적이고 비도덕적인 짓을 저질러온 애비는 끝내 승리자가 되는 뭐 같은 결말인데도.

제작진의 이러한 훈계식 결말이 어리석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복수는 순환해서는 안 된다' 라는 메시지를 적용할 경우 가장 비판받아야 할 인물은 당연히 애비이기 때문이다. 애비는 복수를 한답시고 조엘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사람들을 상처입히고 죽이고 다녔으며, 거기에 배신 및 불륜 등 온갖 비도덕적인 행동을 저지른 인물이다. 그런데도 좋은 결말을 선사받았으니 제작진은 자신들이 내세운 메시지를 스스로 부정하고 박살내는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애비엘리가 맞은 결말을 비교해 보면 애비의 경우 복수도 시원하게 해냈고, 몸 멀쩡히 생존했고, 여전히 자신을 받아줄 동료들이 존재한다. 반면 엘리의 경우 조엘의 복수에는 실패했고, 연인이었던 디나는 떠나갔고, 제시는 죽었으며, 토미는 장애인이 되는 등 가까웠던 모든 사람들이 죽거나 상처입고 떠나갔고, 마지막 결투에서 손가락 두 개를 잃어 조엘이 남긴 기타마저도 제대로 칠 수 없게 되어 결국 버리고 떠나게 되었다. 즉 모든 것을 잃기만 했다. 제작진은 '복수는 나쁜 것이며 계속 이어져선 안 된다'라고 해놓고, 복수를 만끽한 애비에게는 여전히 많은 것을 누린 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미래를 준 반면, 복수를 그만 둔 앨리는 외로움과 고통만을 맞닥뜨리게 만든 것이다. 이 게임을 플레이한 그 누구도 이런 결말을 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유저의 카타르시스를 위해 애비를 죽이더라도 복수에 대한 허망함을 표현하는 방법은 많이 존재한다. 애비에 의지하고 있던 레브가 혼자 남은 것을 깨닫고 돌보기로 결심한 뒤 디나와 함께 지내던 집으로 돌아와 텅 빈 집을 보며 레브를 끌어 안고 사과와 후회를 하는 연출을 넣는다던가 여러 방식으로 표현할 수가 있다. 혹은 굳이 애비를 용서하겠다는 연출을 만들려고하면 엘리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사람을 구해준다던가 납득이 갈만한 이유를 제공했어야 했다. 그러나 결국 자기 동료들만 챙기는 모습을 가지고 이 녀석도 사실은 좋은 녀석이었어라는 걸 주입시키는 듯한 연출과 너도 고생 많이 했지만, 애비도 고생 많이했으니 이제 그만 용서해라 라는 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또한 더욱 골때리는 점은, 제작진이 캐릭터성을 완전히 박살내버린 이번 작의 엘리가 복수하겠답시고 갑자기 애비를 찾아나서서 막바지에 놓아주는 헛짓거리를 하지 않고 그냥 남은 친구, 가족과 있기를 택했다면 애비와 애비가 아껴 마지않는 레브는 모두 기둥에 묶여 굶어 죽어버렸을 거고, 엘리는 기타로 조엘을 추억할 수 있었을 것이고 친구, 가족들과 함께할 수 있었을 거란 사실이다. 차라리 그걸 보여주는 게 복수가 부질없다는 낡디낡은 주제의식을 보다 제대로 전달할 수 있었으리라는 시선도 있다.

결론적으론 유저들은 이 게임을 설교라 느낄 수밖에 없으며, 개발사는 유저들의 선택이 모두 잘못되었다고 주장 했지만 그에 대한 정당성은 전혀 갖추지 못한채 유저들의 선택을 부정했다.

엔딩 크레딧 이후 2회차가 가능하다고 뜨는 마지막 능욕은 덤이다. 플레이어가 선택권 하나 없이 정해진 결말만 강요당한 채 게임에서 바랐던 그 어떤 경험도[47] 얻지 못한 상태에서, 그리고 오직 씁쓸함과 허망함만 느끼고 있을 상황에서 2회차를 권하는 것은 굉장히 모욕적이다. 이 게임을 플레이한 인터넷 방송인들도 국내외를 막론하고 이 부분에서 분노를 표출하거나 불만을 표하는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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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7. 단독 작품으로서

1편을 플레이하지 않은 유저 입장에서는 몰입하기 힘든 이야기일 수도 있다. 우선 초반 파트의 주인공인 엘리가 아버지 격인 조엘을 잃은 슬픔에 공감하며 애비에게 분노하는 사람들이 태반일 것이다. 하지만 1편을 플레이하지 않았거나, 했더라도 조엘에게 동감 및 감정이입을 하지 않았던 플레이어들이라면 조엘의 죽음이 그렇게까지 충격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조엘의 죽음으로 촉발되는 엘리의 분노에 감정을 이입해야 하는데, 그 감정 이입이 어려워진다.

애비 시점으로 엘리를 폭행하는 장면 또한 애비가 거의 일방적으로 폭행하는 것으로 연출되기 때문에 애비에게 공감보다는 반감이 들기 쉽다. 근육질에 어마어마한 체구를 가진 캐릭터로 신체 능력이나 체구 측면에서 상대도 되지 않는 여자아이를 피투성이가 되도록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죽기 직전까지 몰고 가야 하고, 이 과정은 전부 다 플레이어가 쥔 패드를 통해 수행되도록 거의 악의적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심적인 부담이 클 것이다.

4.1.8. 메시지 전달에 관련된 논란

Look... I get it. You love these fictional characters... but... they’re not real. You do know that, right?
Guys... don’t be scared of therapy. Think of it like working out for your brain.
좋아요... 알겠어요. 여러분은 이 가상의 캐릭터들을 정말 사랑하시는군요... 하지만... 이들은 진짜가 아닙니다. 아시죠?
여러분, 그러면 한번 심리 치료를 받아보세요. 두려워하지 마시고요. 두뇌를 위한 운동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닐 드럭만이 게이머들이 해당 게임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자 트위터로 말한 발언.#
라오어 파트2가 스토리를 통해 유저들에게 중요한 무언가를 전하고자 하는 바는 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많은 유저들은 전혀 납득하지 못했다. 정확히는 납득하려 하지 않았다. 이는 앞서 지적된 시나리오 구성의 실패, 캐릭터 구성의 실패, 플레이 방식의 실패, 개연성 부여의 실패, 결말의 실패가 종합적으로 작용한 것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플레이어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제작진의 태도가 지나치게 오만했기 때문이다.

큰 줄기를 볼 때 라오어 파트 1은 엘리를 구함으로써 조엘이 본인 스스로를 구원하는 이야기이며 이를 이루기 위한 악행이 정당화 될 수 있느냐는 메시지를 유저에게 던진다. 인류에게 있어선 큰 죄업을 저지른 조엘이지만 유저들은 조엘의 선택을 비난할 수 없었다. 비록 이기적이지만 조엘이 보여준 모습은 세상 어디에나 있을 법한 아버지의 모습이었고, 그런 보편적인 정서를 건드렸기에 많은 유저들은 라오어 파트 1의 스토리에 별 무리없이 공감할 수 있었다. 파트 1처럼 파트 2도 복수와 용서라는 인류 보편적인 정서를 다루고 있지만, 그 전달 방식은 파트 1에 비하면 거부감을 느낄 만한 요소가 많다. 파트 2에선 엘리와 애비 또 그 주변인물들을 통해 복수는 증오를 낳을 뿐이고 이를 끊기 위해서는 복수의 대상을 용서 해야한다는 메시지를 작품 내내 강조한다. 정말 문자 그대로 작품 내내 다양한 에피소드로 이 메시지를 환기시키는데, 그 과정에서 전작의 등장인물들은 기존의 캐릭터성이 붕괴되어 버린다. 단순히 지난 세월과 환경의 변화라기엔 그 변화가 전작을 플레이한 유저들로 하여금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자연스럽지 않다. 거기다 전작의 요소들을 의도적으로 파괴하며 전작 유저를 조롱하는 듯한 연출이 눈에 띄는데 애비와 엘리의 극장씬이 대표적이다. 이런 점들로 유저들이 분노하고 있을 때, 너티독의 게임 디렉터 닐 드럭만은 트위터를 통해 라오어 파트 2를 비판하는 유저들에게 과몰입하지 말고 심리치료나 받으라며 조롱하는 등, 불난 집에 기름을 들이부으면서 게임의 재미와 완성도는 제쳐두고 불쾌해서 못하겠다는 유저들도 많다. 하물며 파트 2가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전작의 캐릭터 성격을 붕괴 시키고 과격하고 잔혹한 연출을 통해 반복적으로 유저에게 주입해야 할만큼, 유저들이 이해하기 어렵거나 새롭고 대단한 철학 같은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것을 마치 대단한 진리인 양 유저에게 가르치려드는 스토리텔링은 파트 1을 플레이하고 후속작을 손꼽아 기다린 많은 유저들의 준비된 찬사를 비난으로 바꾸기에 충분했다.

한편으로 이런 유저들의 반응은 디렉터인 닐 드럭만의 발언에서 이미 예고된 바 있다. '전작의 테마가 사랑이었다면 이번 작의 테마는 증오가 될 것이다'라고 발언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증오를 그만두자면서 인터뷰에서는 '전작 팬들 일부는 이 게임을 싫어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차라리 열렬히 증오해주길 바란다(passionately hate it)'고 답했기 때문. 그 말이 정말 정신승리가 아니고 기획의도였다면, 그 의도는 결과적으로 성공했지만 유저들 입장에서는 정도를 넘어섰다는 게 중평이다.

4.2. 캐릭터에 대한 평가

모든 캐릭터들은 다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엘리의 주변인들과 애비의 주변인들이 각자 비슷한 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대칭되는 느낌을 준다.

새 주인공인 애비조엘을 살해함으로써 플레이어들에게 극도의 반발심을 불러 일으키며 등장한다. 우직한 군인 캐릭터로서 그녀는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흔히 갖춘 유머러스하다든가, 쿨하다든가, 연민이 간다든가 하는 '정 붙이기 쉬운 요소'들과 거리가 멀게 만들어졌다. 가장 얄팍하게는 외모라도 곱상하게 만드는 법이 있었겠지만 그런 것 역시 고의에 가깝게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조엘이 그녀를 구해줬음에도 그에 대해 단 1초도 고민하지 않았지만, 그동안 살인을 수없이 해왔음에도 갑자기 며칠 본 애들 생명이 소중하다면서 정작 오랫동안 고락을 함께 해온 동료들은 아낌없이 죽인다. 엘리를 희생시키려 했던 건 생각도 안 하고 자기만 정당하다는 것처럼 복수를 해내고, 다시 복수를 위해 찾아온 엘리를 보고는 "널 살려줬는데 어떻게 감히!"라 외치는 사이코패스같은 뻔뻔함을 보인다. 심지어 임신 중인 친구의 남편과는 불륜까지 저지른다. 이딴 식으로 온갖 배신과 내로남불로 점철된 캐릭터에 대해 몰입이고 뭐고 혐오감이 집중되는 건 당연하다.

기존의 주인공들 역시 전작에서 보여준 매력을 거세당했다. 조엘은 1편의 신중함과 조심성을 잃어버리고 초면인 애비 앞에서 서로의 이름을 부르거나 애비의 안내에 순순히 따라간다.
엘리는 파트 1에서 주관이 명확하고 당찬 성격으로 사랑받았다. 엘리가 조엘에게 묻히지 않고 당당히 주인공으로써 많은 사랑을 받은 이유는 나이에 맞지 않게 친화적이고, 적극적이고, 그러면서도 나이에 맞게 감성적이었기 때문이다.[48] 그런데 파트 2에서는 인간관계에서 주도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고 연인과 친구 사이에서 망설이며, 조엘의 복수를 완수할 수 있는 순간 화풀이로 싸움을 걸었다가 애비를 차마 죽이지도 못하고 돌아오고는 조엘의 유품을 버리고 떠나버린다. 파트 1 엔딩에서 엘리가 조엘에게 파이어플라이 본부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물어보는 장면은 곧 세계의 구원을 포기할만큼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지 물어보는 장면이었고, 조엘의 거짓말에 미묘하게 시선이 흔들리던 엘리의 표정은 그런 거짓말이라도 받아들이겠다는 결단을 보여주었다. 후일담에서도 조엘이 그간 자신에게 거짓말을 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엘리가 조엘을 서먹하게 대하자 조엘이 사과의 뜻으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들려주고, 그걸 들은 엘리는 조엘과 화해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파트 2에선 갑자기 조엘을 용서할 순 없지만 노력은 해보겠다고 할 만큼 조엘과 큰 갈등을 겪는 원인이 된다. 이처럼 파트 1에서 어려운 결단을 내린 엘리의 모습이 파트 2에서는 전부 부정되었다.

디나는 처음에는 마을 사람의 반대에도 개의치 않는 엘리의 연인이면서도 제시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어장관리를 하는 인물이다. 이후 엘리와 아이를 키우며 엘리에게 살아가는 힘을 주지만, 결국 엘리를 떠나 엘리에게 상처를 준다.

토미엘리가 복수를 위해 떠나려고 할 때는 엘리를 붙잡아두라고 아내에게 부탁할 정도로 배려심이 깊은 캐릭터였지만, 나중에는 이미 복수를 포기하고 정착해 있던 엘리를 다그치며 복수를 강요한다. 토미는 오언과 비슷한 성격을 가진다. 온건한 태도가 결국 자신의 파멸을 불러 일으키는 것까지 똑같다.

제시는 엘리의 믿음직한 파트너이면서도 엘리의 애정관계에 있어서 라이벌이기도 하다. 극장에서 애비에게 대사없이 너무 허무하게 사망해버린다. 이 부분은 제시는 애비의 동료인 매니와 대칭되게 만들어져 있다.

오언 또한 그저 애비-오언-멜의 삼각 관계를 보여주기 위한 도구나 살해당함으로써 엘리를 멘붕시키고 애비가 복수하게 만드는 도구에 불과하다[49]. 오언은 애비와 사귀다가 애비가 자기 마음을 받아주지 않자 삐져서 멜과 사귀어 그녀를 임신시키고, 나중에는 다시 애비와 불륜 관계가 되는 바람둥이일 뿐이다. 멜은 오언의 아이를 임신하고 나서 애비와 오언이 불륜 관계가 되자 애비와의 관계가 냉각되었다가, 엘리와 싸울 때는 또 애비의 위치를 불지 않고 엘리와 싸우다가 죽는다. 이는 제시-디나-엘리의 삼각관계를 떠오르게 한다.

야라레브는 그저 애비가 곤란할 요소들을 대신 해결해주는 도구일 뿐이다. 애비가 아이작을 죽인다면 애비는 명백한 WLF를 배신한 쓰레기가 되기 때문에 야라가 한 손으로 총을 쏴서 아이작을 죽이고 자신은 죽어줘서 애비가 배신자라는 오명을 쓰지 않게 해준다. 레브 또한 자기 어머니와 애비가 만나는 곤란한 상황이 오면 안되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어머니를 죽여 그 곤란한 상황을 해결한다. 그 외에는 전체적으로 조엘-엘리의 관계를 재현하기 위한 도구로써 쓰일 뿐, 이 두 남매는 캐릭터라기보단 애비를 비춰주기 위한 조명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애비의 아버지인 제리는 딸과 동물들을 사랑하고 유능한 백신 개발자로 미화되지만, 자기 딸이었다면 절대로 하지 못했을 해부를 자기 딸이 아닌 엘리한테 행하려고 한다. 제리-애비의 시나리오는 1편의 조엘-엘리 시나리오를 떠오르게 하는 면이 있다. 조엘이 애비의 입장에서 무참한 살인자인 것처럼, 제리 역시 조엘의 입장에서는 딸같은 엘리를 빼앗어 가려는 무참한 살인자에 불과하다. 그의 입장을 보자면, 1편 병원에 있는 쪽지를 보면 분명히 기술개발에 차도가 있었으며, 본인은 어느정도 확신을 하고 있었다. 이 지옥같은 좀비 아포칼립스를 끝낼 수 있다는 희망, 세계에 단 한명뿐인 면역자를 찾았다는 기쁨, 본인의 기술개발에 대한 확신이 섞여 주변을 보지않고 일을 추진시키려 했다. 그는 만인에게는 구원자가 될 수 있었던 인물이었을지 몰라도, 개인에게는 너무나 잔인한 인간이었다.

4.3. 게임 시스템에 대한 평가

게임 시스템에만 집중한 라오어 2 평가

트레일러 사기에 대한 의혹이 있다. 최초 게임플레이 공개 트레일러에서는 엘리와 주변 사물들과의 훌륭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상호작용을 보여준다. 자연스럽게 엄폐물인 자동차나 벽에 손을 가져다 대거나, 총알을 피해 건물 안으로 숨으려 뛰어가는 도중 유리가 깨져 엘리에게 유리파편이 튈 때 팔 전체를 사용해 막으면서 움츠리는 동작을 하거나, 주변 사물을 집어들고 적을 처치하고 적의 가방에서 떨어진 화살을 자연스럽게 주워 사용하는 등 전대미문의 환경 상호작용 모션을 선보였으나 매우 제한적인 상황에서만 몇가지 안되는 액션을 구경할 수 있음이 드러났다.[50] 파트 2의 트레일러를 보고 여러 개발자들이 "현 수준에서 다양한 모션은 스크립트 노가다가 아닌 이상 불가능하다"고 한 의견이 옳았다고 봐야한다. 효율적인 플레이나 암살 위주 전투를 포기하면 트레일러를 어떻게 재현할 수는 있다. #실제 유저가 플레이한 뒤 만든 움짤[51]

전투 AI의 경우 다양한 적들의 전략이 존재한다는 언급과는 달리 파밍-퍼즐-전투의 반복적 플레이로 구성되어있다. 적들의 대화에서는 플레이어의 위치를 아는지 모르는지만 알려줄 뿐이다. 흔적을 찾아서 수색 범위를 변경한다던가, 수색 방식을 바꾼다던가, 재결성해서 다시 계획을 짜는 것은 없다. 다만 플레이어가 적을 죽일 경우에 죽은 캐릭터의 이름을 외치며 플레이어에게 복수하겠다는 등의 리액션이 추가되어 이러한 부분이 일부 리뷰어에게 호평받았다. 다만, 실제 플레이에 있어서 이러한 단순 스크립트 반응이 플레이어에게 정말 와닿는가는 미지수이다.

파트 1도 사실 냉정히 따져보면 시스템의 완성도나 디테일과는 별개로 파밍-퍼즐-전투를 반복하는 단조로운 구성을 뛰어난 스토리와 흡입력 있는 연출로 견인하는 게임이였고, 그 임팩트 있는 스토리가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요소들을 잘 가려주어 평가와 흥행 모두 잡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파트 2는 스토리가 애비 파트부터 그만한 파워를 가지지 못하여 파밍-퍼즐-전투의 반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버리는 와중에 파트 1에 비해 시스템 상의 개선점이 크지도 않고, 반감이 심한 애비 파트가 굉장히 길게 짜여있기까지 해서 집중력이 떨어지기 쉽다. 그나마 스토리가 끌고 가는 시늉은 해주는 엘리 파트를 진행 중인 유저는 '화가 나긴 하지만 이 정도면 게임은 할 만한데 왜들 그러냐'라는 의견을 내다가, 애비 파트를 겪고(?) 나서부터 한 마음으로 게임을 까기 시작하는 흐름이 대다수다.

여기에 더해 1편부터 연출적인 면 이외에는 아무 메리트가 없던 근접공격 시스템은 아무 개선도 없이 똑같이 적용되었으며, 후딜레이가 거의 없이 무제한 사용 가능한데다 모든 동작을 캔슬 가능하고 무적프레임까지 있는 회피 시스템의 존재는 장르와 어울리지 않는데다 게임을 더욱 재미없게 만드는데 한몫 하며 자원 파밍에 있어서도 고난이도 상태여도 1편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자원 수급이 원활하기 때문에 탄약관리의 의미가 떨어진다. 그뿐만 아니라 동일 장르에서는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부위별 사격이나 사격, 근접공격에 의한 추가 동작이나 상호작용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위와 같은 이유들로 같은 숄더백 3인칭 슈터 게임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훨씬 오래된 바이오하자드 4데드 스페이스 2, 디 이블 위딘 보다도 슈터 게임으로서 전투 완성도와 구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한편 정형화 되어버린 너티독식 게임 플레이에 대한 지적도 있다. '언차티드 2 - 언차티드 3 - 라오어 1 - 언차티드 4 - 라오어 2'에 걸쳐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되는 '은신 - 암살 - 발각 - 총질'이라는 구성이 벌써 다섯번에 걸쳐서 답습되기 때문이다. 흔히 정형화된 게임 시스템의 대명사로 꼽히며 비판을 받는 '유비식 오픈월드'와 다를바가 없지 않냐는 평가도 나온다. 더군다나 본작에서는 언차티드 4와 마찬가지로 맵 여기저기에 은신 가능한 수풀이 추가되었기 때문에 수풀에 숨어서 바로 앞에 있어도 눈치를 못채는 멍청한 적들을 암살하면 그만인 게임이 되어버렸다는 의견도 많다. 이런 부분을 만회하기 위해 후각으로 은신한 플레이어를 추적하는 신규 적인 가 등장하였으나 게임 전체를 통틀어 한 손에 꼽을 만큼 적게 등장하야 뱔 의미가 없으며, 이번작은 소음기를 직접 제작하여 소음무기를 상시 보유 가능하기에 이런 단점이 더욱 극대회된다.

그럼에도 전작의 견실한 게임성을 이어받아 이번작도 스토리의 충격을 제외하면 기본은 한다는 의견도 존재 한다. 전투에 있어서 크게 3가지로 아예 전투를 회피하거나, 은신 전투로서 임하거나, 전면전을 꾀하는 전략을 취할 수 있으며, 전투 중에 능동적으로 전략을 바꿀 수 있다. 주위에 있는 클리커를 적들에게 유인하는 등의 전작에서 보여줬던 기믹도 그대로 남아있다. 다만 이로 인해 전투난이도가 너무 하락했다는 평가도 있고, 학살 위주의 전투 자체가 스토리의 주제와 섞이지 않는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하지만 디테일한 모션 애니메이션 만큼은 동종 tps중에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전작에 비해 조금 더 긴 인풋 딜레이가 있어 유저들의 화를 돋우고 있다. 캐릭터 조작이 뭔가 한 박자씩 느리고 움직이는 것도 굼뜨다 보니 3D 멀미가 없는 사람조차 멀미가 일어날 정도이고, 즉각 반응을 못 하다보니 좀비나 인간형 적들의 공격에 대항하기가 살짝 불편한 느낌이 있다.

4.3.1. 그래픽 및 OST 평가

게임성은 다소 아쉬운 소리가 있긴 하지만 그래픽과 OST는 매우 고평가를 받고 있다. 대체적으로 전작에서 더욱 발전한, PS4 황혼기에 걸맞은 그래픽이라는 호평이 우세하다. 특히 배경 그래픽이 호평받고 있는데, 인트로 부분에서 조엘이 말을 타는 장면은 본작을 플레이하는 게이머들의 마음을 시작부터 사로잡은 명장면으로 칭찬받고 있다.[52]

OST는 전작의 작곡가가 그대로 맡아서 상황에 걸맞은 음악을 연출했다. OST를 비롯해 효과음도 사실적인 음향 효과와 영화적인 연출로 호평받고 있다. 오히려 이런 음악들이 본작의 불쾌감을 가중시킨다는 비판 아닌 비판이 있을 정도. 때문에 유튜브에서 OST 영상의 댓글을 보면 음악은 좋은데 자꾸 인게임 장면이 떠오르는 것 때문에 음악에 집중 못해서 짜증이 난다는 댓글이 많이 보인다.

이렇게 좋은 그래픽과 OST를 묻는 스토리와 연출 때문에 안타깝다며 차라리 Grand Theft Auto Online이나 엘더스크롤 온라인처럼 온라인 게임으로 나왔으면 어땠냐는 의견이 있다.

4.4. 예술적 가치에 대한 평가

해체주의로 본 더 라스트 오브 어스 2 리뷰

위 글과 비슷한 글에 대한 반박

4.4.1. 해체주의의 도입

우선 제작진이 시도한 행위가 예술적으로 새롭고 참신한 시도였다고 보긴 어렵다. 그냥 현대예술의 해체주의를 게임에서 시도해 본 것일 뿐이다.[53] 해체주의란, 모더니즘의 한계를 지적하며 이에 대해 비판하고자 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등장한 예술 경향의 하나다.[54] 시간상으로 보면 1970년대쯤부터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라고 본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대표하는 특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크게 개념주의해체주의가 대표적인 경향이나 현상으로 많이 언급된다. 개념주의는 실제 자연적, 물질적, 물리적으로 관찰되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개념을 예술로 다루는데 집중하는 경향을 말하고,[55] 해체주의는 기존에 존재하던 어떤 것, 특히 이성중심적 사고에 기인하여 만들어진 것을 해체하고 전복하고 파괴하여, 그 이성중심주의에 밀려 무시되어 왔던 것들을 재조명하고, 그렇게 하여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보려는 경향이다.

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모더니즘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개념주의와 해체주의 경향이 짙어지게 되었는가 하면,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모더니즘 시대에 합리, 이성, 효율 등을 강조하는 태도가 결국 제국주의, 전체주의, 환경파괴 등의 부작용을 낳는 원인이 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시기상으로 보면, 이 모더니즘 시대는 대략 19세기부터 시작해서 1960년대까지로 보는데, 이 시기에 유럽의 벨 에포크, 미국의 광란의 20년대골든 에이지, 두 번의 세계대전, 냉전, 베트남 전쟁 등이 있었다. 경제적, 문화적으로 호황이어서 희망이 가득하던 시절 뒤에, 그 희망이 좌절과 절망으로 바뀌는 사건이 일어나던 때였다는 말이다. 당연히 지식인들 입장에서는 "왜 잘나가다 이렇게 안 좋은 일이 벌어지는 거지?"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사용해 온 인식이나 방법에 뭔가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닐까?", "그 동안 우리가 지나치게 합리, 이성, 효율만을 중시한 나머지 간과하고 무시한 것들이 있던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문화계 쪽에서는 기존의 주류였던 이성중심주의, 구조주의 등을 재검토하는 움직임이 있었고, 그 결과가 저 개념주의와 해체주의 경향의 대두다. 자연적 사실주의에 기반한 구체적인 형상이 광고프로파간다나 지배자 우상화를 위해 악용된 전례가 있었기 때문에, 이에 염증을 느낀 예술가들은 모더니즘 시기에 추상예술에 천착하였고, 이후에 "굳이 형상을 표현할 게 아니면 그냥 개념만 표현하면 그만 아니야?"라는 생각이 퍼지면서 개념주의가 현대예술계의 지배적인 흐름으로 정착된다.[56] 그리고 앞서 말한 것처럼 기존에 존재하던 어떤 예술 작품을 '차용'하여 이를 해체, 전복하는 해체주의 예술이 늘어난다.[57]

그리고 이런 해체주의가 팽배해지면서, 감상과 해석의 과정에서 중요한 변화가 일어난다. 모더니즘과 모더니즘 이전 시기처럼 관객, 관람자, 감상자가 이미지에 이입하거나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거리를 두고 관조하며 그것을 건조하게 바라보는 태도를 견지하도록 비판에 간섭을 일으키는 불필요한 요소들을 차단하는 전략을 취한 것이다. 이런 전략은 원래 연극계에서 먼저 나온 것인데,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제안한 소격효과(낯설게 하기)가 그 예시이다. 브레히트는 아리스토텔레스파가 연극에서 주장한 카타르시스 이론에 비판적이었는데, 극중 등장 인물이 비극적인 상황에서 벗어나는 걸 본 관객은 일시적으로 쾌감, 희열, 전율 같은 감정은 느낄 수 있을지 몰라도 지속적인 승화나 해소의 단계에까지 이르진 못한다고 본 것이다. 관객이 비판적인 자세를 견지하며 극중 상황을 감정 이입하지 않고 동떨어진 상황에서 바라보아야 비판적인 시각을 유지할 수 있고, 그런 비판적인 시각 하에서만 어떤 지배 이데올로기프로파간다에 선동 당하는 결과를 막을 수 있다고 보았다. 브레히트가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건 그가 나치가 지배하던 독일에서 태어나고 활동했기 때문이었다. 파울 요제프 괴벨스를 비롯해 나치가 행하는 각종 선동과 황색선전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이런 소격효과는 그대로 시각예술 분야에도 도입되었고, 콘스탄틴 브랑쿠시처럼 인물 얼굴에 이입하지 못하도록 조각상에서 얼굴 묘사를 없애고 아예 형태와 물질성 그 자체만 남기거나, 조셉 코수스처럼 인물 모습이 아예 없고 글 텍스트만 남긴 작품들이 나타난 것이다. 네모난 입방체를 늘어놓아 물질성과 위상 관계만 보여주는 미니멀리즘 작가 중에는 아예 인간형태주의(anthropomorphism)를 배격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이유는 앞서 말한 것처럼 그것이 전체주의 같은 부작용을 강화하는데 오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탈린 동상이나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보는 것처럼 대상을 우상화, 신격화하는 일이 없게끔 만들려 했던 것이다.

4.4.2. 해체주의의 한계

이렇게만 들으면 포스트모더니즘식 방법론이 다 옳은 것처럼 보이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다. 우선 이 해체주의가 나온 지도 40년이 넘었는데 그 동안의 성과를 되돌아 보면 효과가 미미하다.

가장 큰 이유는 우선 모더니즘과 모더니즘 이전 유산의 영향력이 너무 막강하다. 아무리 그런 이미지가 선동에 오용되고 무비판적 사고를 조장할 수 있어 나쁘다 해도, 완전히 인간 형태를 없애거나 자연적 사실주의를 배격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사진과 컴퓨터 그래픽이 이런 사실적 재현과 복제의 역할을 대신 맡게 되면서 인간이 직접 사실적인 그림을 그려야 할 필요는 없어졌지만, 대신 오늘날 매체 환경 속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재현적 이미지가 범람하게 되었다. 기성 대중의 반발은 차치하고, 이런 방대한 재현적 이미지를 다 해체, 전복, 파괴한다는 것 자체가 애초에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또한 본래 인간은 생리적으로 이런 기성 이미지를 선호한다는 점도 해체주의가 실현되기 어려운 이유다. 생물학적으로 인간은 250만년 동안 자연의 재현 이미지에 노출된 상태로 진화해왔다. 이걸 고작 수십 년 만에 해체, 전복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설탕이 비만당뇨를 유발한다고 해서, 설탕을 모두 없애고 모든 사람들이 설탕의 단맛을 싫어하도록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느니 아스파탐 같이 당뇨는 유발하지 않으면서 맛도 좋은 다른 대체 감미료를 개발하는 게 훨씬 현실적이다. 마찬가지로 재현 이미지가 나쁘다고 아예 재현 이미지를 없애느니, 그 재현 이미지와 효과는 비슷하면서도 오용될 가능성은 적은 이미지를 찾아내는 게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무엇보다 해체주의의 한계는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설령 해체주의의 방법론대로 그런 재현 이미지를 다 없앤다 해도, 사진이나 SNS 등으로 쉽게 복제, 전파가 가능한 오늘날에는 그렇게 남은 추상 이미지나 메시지도 오용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 문제다. 그리고 해체주의의 궁극적인 목적은 결국 문화수용자의 비판 의식을 고양시켜 문화를 향유할 때 분별력을 가지게끔 하는 것인데, 과연 거리를 두고 원전을 해체, 전복, 파괴한다고 비판적인 시각이 배양될지는 의문인 것이 사실이다. 연극계에서 행해졌던 소격효과 실험은 극장 안에서만 작동했으며, 시각예술은 갤러리 화이트 큐브 안에서만 작동했다. 극장이나 미술관을 나가는 순간, 관람객은 그냥 대중이 되고 다시 대중매체에 노출되고 비판적인 시각을 거두게 된다. 그래서 수많은 예술가들이 기존 예술 제도권에서 벗어나 대중예술의 판 안에서 이런 해체주의 시도를 해보려 했다. 노골적으로 해체, 전복, 파괴하진 않았지만, 한국 출신 예술가 중 가장 유명한 예술가인 백남준이 했던 작업도 결국 새로운 매체 환경을 주관을 가지고 수용하여 주도적으로 향유하자는 목적이 담긴 것이었다. 하지만 백남준이 했던 <굿모닝 미스터 오웰>(1984) 같이 대개 이런 작업은 대안이 되기엔 지속성이 없는 단발성 이벤트로 끝나기 일쑤였다.

이런 이유로 요즘은 포스트모더니즘도 한계가 왔다는 시각이 팽배해서, 포스트-포스트모더니즘이 나와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상술되어 있다시피 근본적으로 포스트모더니스트 해체주의는 파시즘과 스탈린주의라는 전체주의적 광기를 한번 몸으로 겪어본 세대가 가지게 된 회의감과 목적불문하고 정치적 우상화 그 자체를 지극히 경계하는, 즉 너무나도 확신에 가득찬 사람들이 한번 생지옥으로 만들었던 세상을 살았던 사람들의 시대적 경험과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있다. 반면 현대인, 특히 게임 같은 최첨단 기술을 통한 대중매체를 즐기는 주로 청년층 게이머들에게 있어 이런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반작용을 불러 일으킨 전체주의적 광기의 시대는 서양권에선 이제 슬슬 돌아가실 때 다 된 2차대전 겪은 할아버지 시절이고, 그나마 이런 '모더니즘의 고통'이 더 가까운 역사적 경험인 한국 같은 경우에도 지나간 세대의, 개인적으로 공감하기 힘든 과거이다. 오히려 게이머들의 주류를 이루는 현대 청년층은 차라리 무슨무슨 주의던, 전통 사회의 종교던, 전시대 자본주의 체제의 경제 성장의 약속이던 간에 믿을게 너무 없어서 가다가 가짜뉴스와 정치적 극단주의에 빠지는 등 전형적인 사회적 아노미 상태의 피해자에 가깝지, 모더니즘적 예술이 상징하고 포스트모더니스트 사조가 해체하려고 한 전체주의적 '거대 서사'는 아예 겪어보지도 못한 세대이다.

세상이 그만큼 나아져서 해체주의의 필요성이 없어졌다는 낙관적인 소리가 아니라, 현대 사회에선 심지어 중공이나 탈냉전 후 공산주의의 나쁜점만 충실히 계승한 동유럽 독재국가들도 고전적 전체주의적 체제들과 달리 어디 가만히 있는 동네 청년들한테 쓸대없이 오글거리는 제복이나 입히고 사열이나 시키고, 이런 강력한 모더니즘적 신념에 기반한 사회 통제방법 자체를 버렸다. 현실에서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그나마 집단지도체제였던 근래까지의 중국 공산당이 시진핑 1인 독재로 굳으면서 농민공 비롯한 전형적인 자본주의 산업화의 폐혜를 비판하는 공산주의, 마오주의 노동 운동가들을 오히려 때려잡는 것이 전형적인 예이다. 자유민주주의가 정착한 나라든, 여전히 정치적 독재가 현실인 나라든 간에 문화예술을 통한 현대 사회에서의 정치사회적 헤게모니 장악과 체제 유지는 특정 체제에 대한 열광 등 모더니즘적 신념이 아니라 오히려 소비문화란 달달한 마약과 이를 통한 정치적 무관심의 무기화를 양분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의도한 것과 달리 이러한 소위 고전적 '거대 서사'의 해체는 인류를 그닥 더 우상에서 자유롭게 만들지도 못하고, 우상 없는 세상에서 행복하게 만들어주지도 않았다. 애초에 데리다, 들뢰즈 같은 학자들이 세상 모든 역학, 권력 관계를 텍스트간의 관계로 해석하는 와중 실제론 '텍스트'하곤 전혀 상관도 없이 지극히 냉혹하고도 실리적인 통계적 이익관계로 돌아가는 정치, 경제, 사회적 권위구조들은 포스트모더니즘에 의해 '해체'되기는 커녕 오히려 대중들이 이를 우상이라고 알게 되도 늘 존재해왔고, 대안이 없다는 학습된 무기력과 체념을 통해 더욱 공고해졌다. 바로 이런점 때문에 비단 새로운 경향도 아니고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비롯한 고전적 좌파나, 소위 '서구문명의 고전' 운운하며 해체주의, 포스트모더니즘 자체를 말세적 현상으로 간주한 문화적 우파 양쪽 모두 예전부터 포스트모더니즘적 해체주의는 쓸대없이 현학적이기만 하고, 우상이던 아니던 간에 어쨋든 실제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이나 믿음, 가치를 부여하는 종교든 사상이든 간에 '거대 서사'의 가치를 지나치게 폄하하며, 특히 좌익쪽에선 실제로 정치사회적으론 기존 체제를 '해체'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여기 봉사하는 기만적 조류라고 비판해왔다.

푸코, 데리다 같은 사람들의 '진짜 저의'를 의심하며 포스트모더니즘을 무슨 정치경제적 신자유주의의 지적 끄나풀 정도로 취급하는 건 좀 지나친 시각이라 보일 수 있어도, 복잡한 사상적 이야기 정리하고 본 게임에 있어서 핵심적인 문제는 이거다. 이 게임 제작자들과 시나리오 작가들은 이를 인지하지 못한 듯하지만, 2020년대 와선 이 모든게 너무나도 이미 진부한 옛날 이야기일 뿐이다. 상술했듯이 현대인들은 이미 포스트모던한 현실에서 살고 있고, 거대 서사에 대한 불신과 해체주의로 인한 학습된 비판의식/무기력화는 이미 널리 퍼진 사회정서적 현실이며, 애초에 본 게임이 채용한 해체주의적 요소는 많은 현대인들은 이 게임 하기 한창 이전 이미 해체주의의 영향을 받은 영화, 문학, 예술 작품 등, 소위 '순수 예술'에 가까운 다른 매체를 통해 접한 상태이다. 그리고 이미 서술된 대로, 그나마 실제로 전후세대 프랑스, 독일 지식인들이 실제로 해체주의적 사조를 펼치던 60-70년대야 전체주의적 우상의 재발 방지란 그 윤리적 목적의식이라도 철저하게 공감되면서도 지나치게 강조해도 부족한 교훈이었지, 라오어2가 그래서 이런 해체주의란 '깨는' 방법을 통해서라도 꼭 보여줘야 했었던 윤리적 메세지라는 게 뭔가? '폭력 나빠요'?

해체주의던 아니던간에 기본적으로 모든 예술 작품은 해당 장르 안에서 이전 작품들이 쌓아놓은 스토리텔링의 '정석'을 염두에 두고 이런 '정석'을 더 매력적으로 강화하던, 아예 까뒤집던간에 어쨌든 이런 검증된 왕도에 뭔가 수정을 가하는 걸로 창작자만의 독창적인 색을 부여한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스토리텔링의 정석은 진부할 수 있어도 안정적이기 때문에 정석이다. 아무리 인터넷에선 사람들이 관객을 멍청하게 만든다니, 비윤리적이니 욕해도 천날만날 똑같은 볼륜, 출생의 비밀, 바람 등등의 내용을 똑같은 구조로 다루는 막장 드라마들이 여전히 잘 팔리고, 우정, 노력, 끈기, 성공을 다루는 소년만화가 팔리는 이유이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관객들은 특정 작품이 이런 정석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적어도 그 비정석적인 내용 전개 방식의 가치가 있는 반전이나 교훈, 메세지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라오어2 제작진들의 관점은 몰라도 대부분 현대 게이머 관중들에게 본 게임이 이리 스토리텔링 방법에서 난리부르스를 치며 기어코 관중들에게 가르쳐야만 하겠다는 메세지인 '폭력의 연쇄는 나쁘니깐 폭력 자체를 배격해야된다'는 무슨 그리 대단하고 의미심장한 메세지가 아니다. 해체주의 자체도 2020년대 관점에선 무슨 대단하게 참신한 스토리텔링 방식도 아니다.[58]

게임과 예술 항목에서도 자세히 다뤄진 내용이지만, 게임이란 매체는 그 성격 자체가 문학은 물론이고, 심지어 영화에 비해서도 더 상업주의적 성격과 제약이 본질적으로 더 강할 수밖에 없는 매체이고, 반면 긍정적으로 보자면 이런 상업주의적 영향으로 인한 저평가에도 비교적 덜 취약한 장르이기도 하다. 마이클 베이는 한명이면 됐지 기본적으로 줄거리, 교훈, 서사 구조에서 아무런 특출난 점도 없이 그냥 뭔가 펑펑 터지고 눈만 즐거운 영화들은 2009년 영화 아바타 정도가 아니면 높은 평가를 받기 힘들지만, 옛날에 이 나왔을 때 그 누구도 스토리가 진부한 짱쎈놈이 외계인 때려잡는 얘기라고 욕하지 않았고, 아무도 대난투 시리즈를 두고 스토리에 교훈이 없네 서사구조가 없네 욕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게임은 직접 플레이어가 잡고 상호작용을 하는 게임성 자체를 최고의 판단기준으로 두고, 스토리와 서사구조는 중요하긴 해도 이보다는 더 부차적인 요소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렇기에 이런 포스트모더니즘 담론 운운할만한 순수예술적 내러티브, 문화비평의 관점에서 게임은 본질적으로 서사구조란 측면에서 다른 매체보다 앞선 선두주자가 되기 힘들다. 무슨 일론 머스크급 억대 갑부가 혼자서 즐기고 공짜로 배포할 인디게임이 아닌 한 캐릭터들의 행동과 선택을 통해 스토리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첫번째로 기술적, 시스템상 구현가능성, 두번째로 상업성이란 제약이 다른 예술장르에 비해 훨씬 더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드럭만과 라오어2 제작진들과 기대와 달리, 대부분 게이머들은 라오어2의 스토리텔링 방식을 전혀 참신하고 실험적이고 도전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전작 주인공과 적대하는 캐릭터 시점에서 진행이니, 알고보니 선역 우리편 짱짱맨인줄 알았던 전주인공의 처참한 몰락이니, 증오의 연쇄니 전부 다 이 게임 하기 이전 다른 문화 매체를 통해 접해본 주제이고, 사실 게임 중에서도 저런 내용 다룬 게임 이미 많았다. 그리고 드럭만과 제작진들이 추구한 진중한 메세지나 예술적 표현법 같은건 일반적인 게이머들은 게임이 아니라 그냥 현실에서 책을 읽거나 관련 고전 영화 명작을 보던가, 메세지 표현에 훨씬 더 적합한 방식의 매체를 통해 방법은 비슷하지만 훨씬 더 양질의 결과물들을 이미 접해본 상태이다. 결국 본질적으로 크게 보자면 '해체주의적 스토리텔링을 게임에 접목해봐야징!'이란 유치하고, 얄팍하고, 진부한 기획을 드럭만과 제작진들 혼자서 무슨 대단한 예술적 시도를 접목해 보는양 자아도취에 빠져있다가 막상 팬덤에선 진솔하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니 본인들의 '예술혼'과 자존감이 상처받아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있는 모습이다.

4.4.3. 시대착오적인 해체주의 답습

다시 라스트 오브 어스로 돌아가서,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는 방법론 상으로 보면 이 해체주의 방법론을 답습하고 있다. 기존에 이미 있던 전작 라스트 오브 어스의 서사가 전형적인 구조주의 서사였다면, 파트 2는 전작의 요소들을 차용하지만 이를 그대로 계승, 발전시키지 않으며, 그것을 해체하고 전복하는 해체주의 방식을 택한다. 그러나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에서 구현된 해체주의는 매우 시대착오적으로 답습된 것이면서 동시에 불완전하게 답습된 것이다.

해체주의 답습이 시대착오적인 이유는 위에서 언급한 해체주의의 한계와 맥락을 같이한다.

우선 라스트 오브 어스 1편의 영향력이 너무 막강하다. 1편의 구조가 전형적인 로드무비 구성이고, 주제가 사랑이었지만 그 기저에는 조엘의 폭력적 행위가 깔려 있었다는 문제의식은 그렇다 치자.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를 했다 쳐도 대중은 여전히 외부집단에게는 폭력을 행사하지만 자기 내부집단에게는 관대한, 이기적이고 선별적인 사랑을 용인할 것이다. 그게 나쁜 고정관념이라 쳐도 이를 해체, 전복, 파괴한다는 것 자체가 애초에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리고 게임 이용자들은 기존의 이야기 방식을 원한다. 비단 게임 이용자뿐 아니라 영상매체든 인쇄매체든 이는 마찬가지다. 인간은 최소 수만 년 동안 기존의 이야기 방식에 노출돼 있었다. 겉으로는 뭔가 혁신적인 것을 원한다 말할 수는 있지만, 대중이 원하는 혁신은 어디까지나 기존의 이야기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수준에서 혁신하는 것이다. 기존 이야기 방식이 나쁘다고 아예 기존의 이야기 방식을 없애느니, 그 기존의 이야기 방식과 효과는 비슷하면서도 오용될 가능성은 적은 이야기 방식을 찾아내는 게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무엇보다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의 한계는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가 해체주의 방식을 택한 건 궁극적으로 문화수용자의 비판 의식을 고양시켜 문화를 향유할 때 분별력을 가지게끔 하려는 것일 텐데, 과연 거리를 두고 1편을 해체, 전복, 파괴한다고 비판적인 시각이 배양될지는 의문이다. 사실 배양할 필요가 있나 싶다. 이미 대부분의 이용자들은 폭력과 복수가 나쁘다는 걸 안다. 우리는 도덕적으로 황금률이 낫다는 걸 알지만 현실에서는 팃포탯 전략을 취한다. 그러나 기성 윤리의 테두리 안에서, 법의 테두리 안에서 그렇게 한다. 간절히 복수를 하고 싶더라도 마음속으로 삭히고 참으라고 강요하는 건 그냥 다들 아는 도덕 원칙을 상기시켜주는 것밖에 안 된다. 이미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지 않은가? 뭔가 혁신적으로 화병을 참는 방법이라도 스스로 고뇌할 수 있게 비판적인 시각의 사례를 제시했다면 평가가 달라졌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의 등장 인물들은 그런 사례로 삼을 수 있을만큼 심도있게 고뇌하는 모습을 보여주진 않는다. 역으로 그런 '고뇌하지 못하고 너무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반면교사로 삼아보라고 강변할 수는 있겠다. 그런 면에서는 비판 의식을 고양시키긴 했다. 비판 의식을 고양시킬 목적이 없었다? 그럴 거면 왜 해체주의 방식을 택했는가?

4.4.4. 불완전한 해체주의 답습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의 해체주의 답습이 불완전한 이유 중 하나는 해체주의를 게임 내 이야기 부분에만 적용하고 다른 부분에는 해체주의를 적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그 부분이란 게임 외적인 부분과 게임 내적인 부분으로 나뉜다.

게임 외적인 부분은 마케팅 등 각종 상업적 행위와 결부된 문제이다. 물론 기성 예술계도 입장료든 관람료든 돈을 받기도 한다. 공연예술의 경우 당연히 게임보다 비싸지만 이는 직접 무대에 오르는 배우에게 지불하는 비용 등 관련 인건비가 반영된 결과다. 영상매체예술의 경우 영화는 2시간에 1만원 정도의 비용인 입장권을 팔고, 드라마나 기타 영상물의 경우 요금을 내거나 광고로 비용을 충당한다. 특정 시각예술 작품이 경매에서 수십-수백억 원에 낙찰되는 모습은 대중이 보이게 위화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적어도 시각예술에서 작품을 구입하기 위해 돈을 내는 사람은 작품 소유자 단 한 명이다. 물론 단순히 자기 만족이나 투기를 위해 사는 사람도 있지만, 작품 구입비를 내는 사람은 그 작품의 소유권뿐 아니라 전시에 작품을 빌려줄 수 있는 권한, 해당 작품을 출판물에 실을 수 있는 권한 등도 사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비싼 값이 붙는 것이다. 정작 일반 관람객의 입장에서 시각예술 전시 관람료는 2만원을 넘는 경우도 적은 편이다. 현대예술 전시 쪽은 아예 무료인 경우도 많다.

물론 관련 상품이나 도록 등으로 수익을 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현대예술 운영은 후원금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애초에 입장료를 받으려 해도 관람객 수가 예상한 만큼 나올 전시는 인상주의나 그 이전 고전미술 작가들의 작품 전시회밖에 없기도 하다. 대형 미술관이 아닌 이상 보통 미술관들도 전시회를 열기도 벅차고, 대안공간이라고 다른 방안을 모색하는 경우도 운영에 어려움이 많다. 하지만 그래도 예술가들은 작품을 따로 경매를 통해 팔지언정 전시는 무료로 보여주려 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기본적으로 예술가들에게 작품은 상품이 아니라 내 예술을 선보이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예술가는 후원자를 구하든, 작품의 규모를 줄이든, 공이 많이 들어가는 요소를 줄이고 개념만 강조하든 제작비용을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는 그런 현대예술이 아니다.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는 셀 수 없이 많은 주주들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 거대 주식회사인 소니의 직속 제작사에서 제작한 게임이고, 제작에 들어간 비용도 거대하다. 당연히 이를 회수하기 위해 그 과정에서 경제적 논리가 개입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예술성은 희생될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제작사 스스로도 자신들이 파는 게임에 6만원 풀프라이스 가격을 책정하고, 예약 구매 특전도 판매한 것을 보면 자신들이 만든 것이 작품이 아니라 상품인걸 알았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그런 상품은 시각예술처럼 작가-작품 소유자-관람객의 구조가 아니라 제작사-유통사-고객의 구조를 통해 유통된다. 직접 고객에게 돈을 받는 방식을 채택했으면 그에 걸맞은 형식과 방법론을 택했어야 했다. 정말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 제작사가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에 전위적인 해체주의 방법론을 도입하고 싶었다면, 선별적 해체를 하지 말고 그러한 상업적 행위도 같이 해체했어야 하지 않을까?

게임 내적인 부분에서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는 유감스럽게도 21세기 오늘날, 해체주의 자체가 해체되어 뭔가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져야 할 때, 식상하게도 그 과거의 해체주의를 답습하고 말았다. 해체주의를 비롯한 포스트모더니즘이 과거의 것으로 평가 받는 이유는 이미 여러 번 여러 작가들에 의해 동어반복적으로 시도되었기 때문이다. 동어반복이 되지 않게 게임만의 해체주의를 구현하는데 성공했다면 모를까, 단순히 시각예술계나 영화계 등에서 기존에 했던 해체주의를 게임계에서 처음 따라 했다고 그것이 새로운 예술적 시도가 되는 것이 아님을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 제작진은 인식하지 못한 듯이 보인다. 현대예술의 목적은 기본적으로 새로운 예술을 모색하는 것이다. 새롭지 않다면 그것에 어떻게 '현대'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단 말인가? 이미 과거에 있던 것을 반복해서 제작하는 건 예술이 아니라 공업이 할 일이다. 이는 그런 공업에 종사하며 상품을 만드는 장인들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예술과 공업은 그 목적이 다르다는 점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우선 이야기를 해체, 전복, 파괴하기로 결정했으면 그에 수반되는 게임 플레이 또한 해체, 전복, 파괴했어야 마땅하다. 그래야 완벽하게 해체주의 방법론을 적용하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게임 플레이 시스템 측면에서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는 1편의 구조를 그대로 답습한다.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의 게임 플레이는 그냥 기존 액션 어드벤처 게임의 문법 그대로이다. 게임 안을 돌아다닌다, 재료를 모은다, 무기나 소모품을 제작한다, 전투를 한다, 특성을 찍는다, 영상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를 본다, 이런 요소들은 이전에도 이미 있던 것들이다. 그런 면에서는 차라리 데스 스트랜딩이 더 전위적이고 해체적이다. 데스 스트랜딩은 생존을 위한 물품 배달과 이를 통한 관계망의 복원이란 주제의식에 맞추기 위해 과감하게 전투 플레이 요소를 변두리로 몰아냈다. 반면 라스트 오브 어스의 전투 플레이 요소는 1편의 폭력이 그대로 남아있으며, 그 결과 이야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비폭력'과 상충된다. 이야기와 전투 플레이가 겉도는 현상은 비단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만의 문제도 아니고 심지어 바이오쇼크 같은 게임에서도 있던 현상이지만,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는 그 괴리가 주제와 맞물리면서 더 심하게 벌어진다. 심지어 게임 플레이에서 이 문제를 우회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전술한 데스 스트랜딩의 제작자 코지마 히데오메탈 기어 솔리드 시리즈부터 이미 폭력적 스토리텔링 속에서도 게임 플레이 상에서 유저의 폭력적 해결 방식을 효과적으로 억제하는 다양한 장치들을 고안해낸 바가 있고 이러한 제한 속에서도 게임으로서의 재미와 상품성을 잃지 않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메탈 기어 솔리드 시리즈의 영향을 매우 강하게 받은 게임이 폭력성의 문제를 해결하기 힘든 난제처럼 제시하고 있다는 것은 오히려 논의의 수준을 후퇴시켜버리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가 답습하는 것이 또 있다. 바로 영화를 비롯한 여러 영상매체의 선형적인 이야기 전개방식이다.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는 게임으로서 선택의 자유도를 제공할 수 있었다. 비선형적인 분기점을 만들어 유저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는 만족감을 제공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일방적인 플레이 강요보다 더 강력한 효과를 거둘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 제작진은 영화처럼 선형적인 전개방식을 답습했다. 전투 플레이 측면에서는 자유도가 높아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같은 인터렉티브 시네마 장르보다 비선형적으로 보이지만, 이야기 측면에서는 일방적이고 결말이 바뀌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도리어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보다도 훨씬 선형적이다. 사실상 이용자가 할 수 있는 건 제작진이 정해둔 상호작용만을 하는 것이며, 기타 연주 등 다양한 상호작용을 선택할 수 있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결국 답은 하나로 정해져 있다. 이럴 거면 굳이 게임으로 만들 이유가 없었다. 차라리 영화로 만드는 것이 쓸데없는 요소에 정신이 빠지지 않도록 해주는 게 소격효과를 높이는 측면에서도 더 유리했을지 모른다는 평가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누군가는 "영화가 언제쯤이면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 같은 게임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라고 거창한 평가를 내렸다. 하지만 냉혹하게 평가하면, 그런 평가가 무색하게도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는 게임이 영화의 요소를 피상적으로 베끼는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해주는데 그쳤다. 단순히 영화처럼 컷신을 남발하고 영화의 미장센을 따라 한다고 영화를 능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로 전락했다. 게임에 깊은 이야기와 영화 같은 화면 연출을 구현하려 할수록 이야기는 선형적이 되고, 게임의 미덕이라 할 수 있는 비선형적 플레이는 사라진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게임에 영화처럼 심도 있는 서사와 방대한 대사를 넣을수록 게임의 조작성은 단순히 영화를 볼 때 재생/정지 버튼을 누르는 수준으로 전락하고, 반대로 게임의 조작성을 높일수록 영화적 서사는 사라진다. 앞서 언급했지만, 이 딜레마 때문에 이야기와 게임 플레이, 특히 전투 플레이가 겉도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런 두 요소가 겉도는 현상은 사실 전작 라스트 오브 어스도 마찬가지였다. 두 요소는 융합되지 못하고 직렬 연결되었다. 영화적 이야기 진행-게임 플레이-영화적 이야기 진행의 반복이 계속됐다. 라스트 오브 어스 제작진은 둘을 어떻게 융합시킬지에 대해 근본적으로 깊게 고민하지 않았고, 그저 그 연결고리들을 윤색하는 데에만 신경 썼다.

물론 이는 근본적인 한계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라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예산, 인력, 기술, 시간, 방법론 다 한계가 있다. 향후 인공지능이 발전해 자동적으로 고도의 서사구조와 정교한 게임 조작성을 자동으로 구현해낼 수 있게 된다면 모를까, 일일이 상황에 맞는 대사가 나오게끔 스크립트를 마련해야 하는데 이는 현재로선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때문에 현재로서는 이런 딜레마 때문에 게임은 이야기 측면에서 영화와 비견될 수 없다. 적어도 연극에서 기원하여 계승된 서사방식을 기준으로 평가하면 게임은 항상 저평가 받을 것이다. 사실 기존 예술의 기준으로 평가하면 게임은 항상 저평가 받을 수밖에 없다. 게임과 예술 관련 논쟁의 측면에서, 게임은 '예술일 수는 있으나 기존 예술 같은 예술은 아닌 무언가'이다. 이 때문에 예술계에서 구체적으로 게임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심도 있게 탐구한 사례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이미 기존 예술 방식에 익숙해진 기성 예술계 종사자들에게 게임은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아직 아무도 모르는 미지의 영역일 뿐이다. 현재로서는 게임계가 예술계에 관심이 있는 이유는 아카데미 시상식에 오른 영화가 VOD 시장에서 잘 나가는 것처럼 그 칭호가 명성과 판매량을 높이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일 뿐이고, 예술계가 게임계에 관심이 있는 이유는 그저 게임이 단순히 관념적인 상호작용을 넘어 신체적으로 지각할 수 있는 물리적 상호작용을 선사한다는 이유 때문일 뿐이다. 게임만의 비선형적, 창발적 경험은 기존 예술매체가 제공하지 못했던 경험이기에 자연스럽게 호기심을 끌기 충분하고, 활용 가치도 매우 높고, 탐구할 부분도 많은 것이 사실이나, 현재 게임업계의 그 누구도 이런 게임만의 예술적 가치를 심도 있게 탐구하지 않았다. 라스트 오브 어스 2 제작진은 물론 말할 것도 없다.

4.5. 정치적 올바름의 오용과 핑크워싱

오만하고 작위적인 데다가 구닥다리로 가득 차 있는 주제에 관객을 가르치려 들고 있기 때문이지.

오직 자신 없는 자들만이 결과물이 아닌 의도를 평가받고자 합니다.
그래서 결과물을 비판하면 마치 그 의도에 반대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죠.

그냥 못 만든 거예요!
부기영화 139화: 평론가들이 극찬했지만 솔직히 별로인 이 영화 中[59]
난 사람들이 우리들을 이용해 먹는 거에 질렸어. 난 게이고 내 남자친구는 라오어 1편에 대한 모든 것을 사랑하는 진정한 팬이였어.

너흰 그가 사랑한 모든 것을 앗아 가버렸지. 1편을 환상적인 게임으로 만들었던 모든 부분을 전부 없애버렸어.

1편 제작자들의 등에 업혀가는 입장이면서 그들에게도 못할 짓을 해버렸지. "공식" 평론가들의 점수를 믿지마.

이 게임은 절대 1편에 비견되지 못할테니까. 네 60달러를 아껴. 제발 게이 커뮤니티를 너희들의 수단으로 이용하지마. 불쾌하니까.

IGN 유저 평가 중 한 게이 게이머의 평가.출처

정치적 올바름(PC)이 문화계 전반에 침습한 이후로 많은 유명 시리즈들에서 기존 캐릭터에 대한 취급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보통 PC 논란을 보면 PC 요소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PC에 기반한 이분법으로 접근해서 자꾸 유저를 계몽하려 하고, 그러면서 내로남불, 원천봉쇄의 오류, 역차별을 저지르며, 기존 프랜차이즈 컨텐츠의 신작에 PC 요소를 투입하는 경우 PC를 부각시키기 위해 그 프랜차이즈가 원래 가지고 있었던 중요한 가치관을 밀어내고 기존 캐릭터를 소모해 버리는 등의 몰상식한 행위들이 유저들의 분노를 일으키는 패턴이 정형화되어 있다. 이번 라오어 파트 2에서 제작진과 평론가들의 태도가 정확히 이러하다.

일단 전편의 주인공 조엘을 다루는 방식에 정치적 올바름이 개입되어 있다. 조엘은 백인 + 중년 + 남성 캐릭터로 이 세 가지 속성은 PC주의자들 및 페미나치들이 가장 주된 비판을 가하고 공격을 일삼는 대상이다. 이러한 조엘을 소위 '여성서사' 및 '여성 위주의 스토리'를 위한 도구로 소모시켰다는 시각이 존재한다.[60] 조엘은 불필요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잔혹하게 살해당한다.

반면 애비는 PC에서 선호하는 탈코르셋, 강한 여성, 알파걸로 대표되는 거구의 근육질 숏컷 여성이며, 그녀가 돌보아주는 레브는 사이비 종교 피해자이자 트랜스젠더이자 동양계 미국인이자 청소년으로 소수자 중의 소수자다. 애비는 조엘-엘리의 가부장제적 결합을 해체하고 레브와 시민동반자적 결합을 형성한다.

애비의 악행에 대해서는 작중에서 정당방위라는 메시지를 계속해서 던지는 반면 엘리는 복수에 미쳐서 지켜야 할 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복수귀로 연출하고 있다. 이러한 연출에 대해 전작부터 조엘과 앨리에게 이입하던 유저들은 애비를 PC를 옹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피해자 코스프레 캐릭터로 보며, 애비를 세탁하기 위해 엘리마저 복수에 미친 인간쓰레기로 연출했다고 인식한다. 반면 PC주의 성향의 평론가들은 유저들을 조엘과 엘리에게 과몰입하고 '복수의 연쇄'라는 게임의 기본적인 메시지조차 못 읽는 사람 취급하는 것이다. 게다가 '정치적으로 올바른' 애비를 세탁하기 위해 전작의 서사를 망가뜨린 플롯이 전부 중요한 스포일러라는 점을 이용하여 스포일러 얼럿을 운운하거나, 정치적으로 올바른 요소가 많은 게 뭐가 문제냐며 유저들을 차별주의자라고 공격하는 모습까지 볼 수 있다.

이밖에도 지나친 PC요소 때문에 아포칼립스 세계관이 뭉개졌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사실 PC는 미국 인문학도들 사이에서 기본 소양에 해당하는 부분이고 제작진과 평론가들은 교육/채용 시 그러한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반면, 게임이라는 장르를 주로 소비하는 계층은 특별히 고학력, 여성, 소수인종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두 집단 간의 긴장 관계는 늘 존재하는데 그러한 갈등이 갑자기 폭발하는 경우는 흥행한 시리즈물의 후속작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 시리즈물들의 초기 작품이 남성 취향적일 때 문제는 배가 된다. 이를테면 "아임 유어 파더"로 대표되는 현대적 오이디푸스 서사시인 스타워즈 때 그랬던 것처럼, 종말론적 상황에서 유사 부녀 관계를 통한 "부성애"가 강조되었던 라오어 역시 마찬가지이다. 파트 1에서 플레이어들은 자연스럽게 조엘에 감정이입하게 되고 그런 조엘이 살해당했을 때 엘리가 복수귀가 된다는 것을 당연한 전개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전작을 통해 유입된 유저들에게 정치적 올바름 요소를 강매한 것 자체가 문제라는 의견도 있다.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로이더 헬창들을 중심 플롯에 넣어 그걸 굳이 보고 싶어하지 않는 유저층에게 억지로 떠먹이는 것은 이름난 스테이크 하우스에 갔더니 인기 있던 메인 디쉬의 후계작이랍시고 비건 고기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콩 덩어리를 먹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속은 손님들에게 채소가 몸에 좋다는 말은 전혀 해명이 되지 않는다. "채소가 좋다"는 공익광고의 취지를 비난하려는 게 아니라, "저번에 왔던 고깃집에서 새로운 고기 요리가 나왔다고 해서 사 먹었는데, 그 때 그 맛이 나지 않는 엉뚱한 무언가를 내놓았다"는 게 문제이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최근 PS4에서 검열 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소니의 행보와 겹쳐서, 소니에 PC가 너무 만연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61][62]

한편으로는 PC요소가 오히려 보여주기식으로 이용당한 것이라고 보는 의견도 있다. 파트2는 PC요소를 옹호하는 듯이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저가 가장 거부감을 느낄 위치에 작위적이고 악의적으로 배치하고 있다. 먼저 대부분의 유저가 혐오할 만한 행보를 보이는 주인공 애비부터 '강한 여성 서사'적인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 엘리와 디나의 동성 간 로맨스 장면 역시 조엘이 애비 일행에게 린치당하는 장면이나 조엘의 복수를 실패한 직후에 배치하여 '이 시국에 대체 쟤네 뭐 하냐'는 반발심을 느끼도록 구성했다. 엘리가 동성이 아니라 이성과 애정을 나누는 장면이 들어갔더라도 거부감이 드는 것은 마찬가지였을 위치에 말이다.

트랜스젠더 캐릭터인 레브미스젠더링이나 데드네이밍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장면 역시 트랜스젠더가 겪는 폭력이나 트라우마를 구경거리로 전락시킨다는 의견도 제시되었다.#

작중에서 내로남불 사례가 발견되었는데, 동양인 홀대/혐오 표현을 아무 여과 없이 그대로 나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63]#

이외에 맥락과 동떨어진 PC 요소가 알게 모르게 삽입되어 있는 것이 유저들의 비난을 사고 있다. 스토리는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맵 곳곳에 PC 요소를 집어넣는 데나 신경 쓴 것에 분노하는 것. 게임을 하다 보면 맥락과 아무 관련 없이 성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메모를 발견하거나, 세계가 멸망한 지 25년이 다 되어가는데 성소수자의 상징인 무지개색의 다리와 깃발이 선명한 색깔로 이상할 만큼 자주 나온다. 사실 이는 시애틀의 실제 거리를 재현한 것이나 시애틀이 동성애자를 위한 도시 1위에 선정된 곳이란 기사 링크 도시의 상징성을 고려하면 이는 앞서 얘기한 PC요소와 맞물러 논란을 가중시킬 수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게임 내에서 내세운 PC 요소는 결국 진정한 PC가 아니라 닐 드럭만 사단 그들만의 페티시(취향)일 뿐이라는 것이다.

PC적인 요소가 본질은 아니라는 평가도 있으나, 이렇게 캐릭터 구성과 스토리에 PC적인 의도가 강하게 의심되는 만큼, 이런 말은 문제를 지적하는데 혼란만 일으킨다. 물론, 사람에 따라 PC적인 요소가 큰 문제는 안된다고 볼 수는 있지만, 지적하는 쪽에서는 스토리나 세계관 분위기가 연결되는 만큼 상당히 치명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4.6. 평론가 평가와의 괴리

파일:라오어2점수_포챈에디션.png
게임 평론가들의 호평 세례가 마치 북한 방탄훈장 도배와도 같다며 비판하는 합성물.
참고로 윗부분에 나오는 평론가 리스트는 비꼼을 위해 지어낸 평론가가 아닌 라오어 2에 만점을 준 실제로 존재하는 회사들이다.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로 리뷰어와 게이머 사이의 간극이 보여졌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이는 최근 문화시장의 흐름이기도 하다. 루리웹의 중간 리뷰에서 전작을 플레이한 유저들이라면 분노할 파트가 존재한다고 언급하면서도 '게임의 완성도는 별개'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평가를 보고 유저들은 "게임은 결국 즐기기 위해서 존재하는데 전작을 한 유저가 재미가 아닌 불쾌함을 느끼면 그건 플레이어를 배려하지 않은 것이다" 라는 의견을 개진하였다. 즉, 게임에서 재미가 아닌 다른 불쾌한 감정을 느끼면 그건 게임으로서의 기본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리뷰어와 게이머의 의견 대립은 과거에도 가시화 된 적이 있었는데 이때도 마찬가지로 게임의 전체적인 만듦새를 따지는 리뷰어와 게임의 본질적인 재미를 따지는 유저와의 대립, 즉 관점의 차이로 인한 대립이었다. 리뷰어가 쓴 장문의 비평이 일반적인 시각과 다른 것이야 문제가 없겠지만 점수가 일반 유저와 괴리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비록 게임이 아니라 영화 비평에 관한 글이지만, 참고할 만한 기사로 [곽한주의 영화와 삶]비평과 관객의 괴리가 있는데, 내용을 대충 요약하자면 평론가 집단과 대중 집단이 지지하는 영화가 다를 수밖에 없지만,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저널 비평에는 영화가 돈과 시간을 투자할 만큼 재미있는 영화인가라는 정보를 실어야 하며, 별점 같은 경우는 대중에게 좀 더 다가가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게임 리뷰 역시 별 다를 게 없을 것이다.

작품 발매 직전∙직후 나오는 리뷰 점수를 보는 이유는 이 게임을 살만한가 아닌가를 판단하기 위해서이다. 리뷰어의 개인의 감상과 분석 역시도 중요하지만, 대중에게 공개되는 점수는 게이머에게 이 게임에 돈과 시간을 들일만한가를 검토하기 위한 정보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 작품이 대중에게 먹힐까 아닐까를 생각해서 점수를 매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IGN 코리아 리뷰 정책 안내 중 하나가 당신이 이 콘텐츠에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는지이다. 그렇게 보면 리뷰어 점수와 유저 점수가 지나치게 차이 나는 것은 리뷰어나 리뷰어의 점수를 집계해서 보여주는 시스템이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는 이러한 핵심 주제전달에 있어서 게이머들을 불쾌하게 만드는 경험을 주고 있다. 많은 유저 리뷰에서 이야기하듯이 전작 캐릭터를 망가뜨리고, 새로운 캐릭터의 행동계기를 유저들에게 납득하기를 강요하는 과정, 즉 핵심주제를 전달하는 과정이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전체적인 완성도를 따지고, 제 3자의 입장에서 비평하는 리뷰어의 경우 전작 캐릭터들의 허무한 결말은 주제를 전달하기 위한 방식에 불과하며 따라서 이를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며, 전작과 연계한 평가가 아닌, 독립된 작품으로써 평가가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나 게이머에게는, 특히나 전작을 즐기고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형성되어왔던 게이머는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캐릭터를 망가뜨리는 행위, 즉 유저들이 1편을 플레이하며 받아온 감동, 추억을 무참히 파괴하도록 강요를 받게 되는 것이다. 관점의 차이 이전에 게이머들이 가장 기대해온 핵심가치, 1편 주인공들에 대한 애정과 뒷이야기를 부정해버린 셈이다. 이는 위의 스타워즈와 비교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며, 유저들은 전작에 대한 전통의 파괴, 하나로 이어지는 작품으로써 평가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64]

비판 측에선 발매 전, 이 게임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내린 웹진들에 대해 호평하고 있다. 이들이 전작을 플레이한 유저가 싫어할 것이라고 공통적으로 언급했기 때문에 발매 후에 유저들이 느낄 심정을 헤아리고 적절하게 리뷰해줬다고 호평한다. 특히 일본 IGN의 평론가 중 한 명의 글이 적절했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이렇게 정직하게 리뷰한 결과 정작 자기 나라에서 만든 플스5의 시연회에 초대받지 못했다.#

4.7. 커뮤니티 반응

루리웹, 중세게임 마이너 갤러리 등 게임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이는 한국뿐만 아니며 동서양 할 것 없이 대다수의 게임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라오어 2를 줄기차게 까고 있는 중.

플빠 성향이 짙어 플스 게임이면 정말 웬만해선 커버쳐주는 루리웹 플정게나 플스 게임 이야기 게시판에서조차도 까는 의견이 절대다수를 차지할 정도이고[65] 4chan레딧 r/TheLastOfUs2에서는[66][67] 이번 사태를 풍자하려고 조엘 밀러의 머리를 골프공에 합성시켜서 사이트 배경 일러스트로 사용하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온건한 분위기를 지향하는 레딧마저 This garbage(이 쓰레기)라고 직설적으로 욕하며 불타오르는 중이다.[68] 간혹 일부 라오어2 팬들이 라오어2에 대한 반감은 아시아권만이 유독 심하다며 여론조작을 시도하는 경우가 있으나 근거도 없거니와 서구권에서도 혹평이 대다수라는 점은 자명한 사실이다. 서구권 커뮤니티만 보더라도 혹평이 대다수 였던게 그저 발매 후 시간이 흐르며 2편도 좋다는 사람들만 남았을 뿐이다.

국내외 게임 커뮤니티들의 날선 비판은 결국 발매 직후 유저 평점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발매 하루 후인 6월 19일 기준 메타스코어의 유저 평점은 10점 만점에 3.2점으로 100점 만점에 95점을 받았던 평론가 평점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혹평을 날린 유저 리뷰 모음. 전작의 유저 평점이 9.1점을 받으며 평론가와 유저 모두에게 찬사를 받았던 것과 비교하면 씁쓸하기 짝이 없는 점수다.

/v/를 위시한 해외 게이머 커뮤니티에서는 조엘이 골프공이 된 것이나# 애비오언의 정사신이 끔찍하다면서# # 밈으로 만들었고, 중갤에서는 닐 드럭만의 종교인 유대교 성전에 엘리가 기름을 훔치러 들어가는 전개를 일부러 만들어서 해당 오브젝트들에는 총을 쏘지 못하게 만든 것을 비꼬았다.#

발매 전 스토리 유출 사태를 일으킨 범인은 게이머를 구하기 위해 한 몸 희생해 돈을 아끼게 해준 다크 나이트로 칭송받고 있다. 일명 유출좌.

트위치 스트리머 크랭크는 조엘이 애비에게 살해당하는 장면을 본 이후 바로 게임을 꺼서 삭제해버리고 원래 웬만하면 게임은 어느정도 하고 나서 평가를 하지만 이건 아니나는 식으로 언급하곤 디스크를 꺼내 라오어 2 처형식거행했다. 상당히 감정적으로 타격을 받은 모습을 내비췄는데 해당 스트리머가 플레이 11개월 전에 부친을 여의였고 그래서 더욱 격정적인 반응을 보인 듯 하며 본인도 그점을 언급을 했다. 이런 퍼포먼스가 해외의 모 게임 커뮤니티에도 알려지면서 영웅 대접을 받고 있다.[69] 심지어 혐한 여론에 호의적인 미국 대안 우파들조차 그의 기개를 높게 살 정도.[70]

심지어 라오어 2의 저질 스토리와 용두사미식 결말에 환멸감을 느낀 게이머들은 아예 Nice boat를 빗대 'Nice golf'(나이스 골프)[71]라는 신조어를 창조하기에 이르렀다. 이것 말고도 '2013: GOTY / 2020: GOLF', 'Golf Of The Year', 'Game Of Laughing Fxxk', 'what the GOLF', 'Nice Shot'[72], '골프닦이' 등의 바리케이션들이 유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데이즈 곤데스 스트랜딩에 대한 재평가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라스트 오브 어스 2의 스트리밍을 진행하던 스트리머들 중에서도 조엘의 허무한 사망씬을 보고선 끝까지 보고 판단하자라고 했던 스트리머들마저 이런 사람들도 결국 공감하기 싫은 애비만을 계속 비추는 게임 때문에 모두 끝까지 가지 못하고 욕을 퍼붓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라오어 파트 2 제작자와 평론가들은 영화에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만드는 게임도 영화처럼 예술로 인정받길 원한다. 그래서 짝퉁 영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 짝퉁 영화가 완벽한 게임보다 훌륭하다고 말한다. 영화의 관점에서 보면 허술한 플롯이다. 개연성도 없다. 캐릭터도 설득력이 없다. 관객을 납득시킬 수도 없다. 영화라면 편집되었을 쓸데없는 장면들을 여기저기 집어넣었다. 이게 영화였다면 볼 거 없을 때 보는 킬링타임용 C급 영화로 분류됐을 것이다. 그런데 이건 게임이다. 묻혀버렸을 C급 영화가 게임에서는 마스터피스가 된다. 훌륭한 게임제작자가 훌륭한 게임을 만들려고 하면 훌륭한 게임이 나오지만, 예술가로 인정받고 싶어서 게임을 만들면 짝퉁 영화가 나온다. 그리고 예술가임을 인정받지 못한 열등감 덩어리들이 그 짝퉁 영화를 예술 작품이라면서 추앙한다. 열등감 덩어리들이 모여서 스스로 예술가라 자위하는 환각파티.

여담이지만 국내에서는 IGN 코리아의 라오어2 리뷰에 달린 한 댓글이 "라오어2에 대한 진정한 리뷰"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앞서 언급된 루리웹 라스트 오브 어스 2 게시판의 경우 라오어 2가 11월 24일 골든 조이스틱 어워드에서 고티를 포함해 5개 부분에서 수상하자 그동안 숨죽이고 있었던 너티 독, 라오어 팬들이 들고 일어나 재평가하고 그동안의 비판 여론에 반박하는글을 올리고 있으며, 이에 반발하는 여론과 충돌하여 난장판이 되고 있다.

이후 커뮤니티의 분위기는 커뮤니티의 종류에 따라 다소 다른데 루리웹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 게시판의 경우 게임을 호평하며 까는 글은 배척받는 분위기이다. 플스 정보 게시판에서는 빠와 까과 엉켜서 난장판이 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라오어2 이야기는 아직도 나오기만 하면 글이 불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플스 게임게시판은 상대적으로 얌전한 편이라 호 의견 불호 의견 서로서로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도 있으나 빠와 까가 싸우는 모습은 종종 볼 수 있다. 사실 이건 단순히 라오어 게시판만의 문제라기보단 루리웹 게임게시판 전반에 걸친 문제점으로 해당 게임에 대한 비판에 논리를 벗어난 대응을 보이는 경우가 매우 많다. 예를 들어 2021년작 게임 중 자타공인 최악의 망겜으로 취급받았던 Biomutant의 경우에도 왜 재밌게 하는 자신들 기분나쁘게 자꾸 혹평하냐는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이 나와 잠시 이슈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사실 본작이 워낙 똥겜소리를 들어서 사이트 내에서 이슈가 되었지 이런 논리 결여된 저격과 여론몰이가 신작 나올 때마다 발생하는 곳이 루리웹 게임 게시판이다. 반면 디시인사이드의 라스트 오브 어스 게시판의 경우 디시의 커뮤니티 분위기가 어디 가지 않아 정상적인 호평과 비판보다도 서로에 대한 인신공격과 논리를 벗어난 옹호와 비난의 주제가 많은 편으로 서로가 선을 넘어서 갈 때까지 가고 있는 모습이다.

5. 다른 유사한 작품과의 비교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평가/다른 유사한 작품과의 비교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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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왜 이렇게 됐는가?

이 사태의 최대 원인으로는 디렉터인 닐 드럭만이 지목된다. 과도한 PC주의와 전작과의 과도할 만큼 완전한 결별을 목표로 삼은 결과 전작을 모욕하는 후속작이 탄생해 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파트 2의 스토리텔링은 파트 1과 비교하면 너무 달라졌다. 파트 1은 주연인 조엘과 엘리는 물론이고 테스, 빌, 헨리와 샘 등 조연에게도 각각 매력적인 캐릭터성을 부여하고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를 보여주었으며, 심지어 악역인 데이빗까지도 훌륭한 연출을 통해 플레이어들이 더욱 몰입하게 해주는 반전의 캐릭터성을 보여주었다. 그렇기에 등장인물들의 죽음은 무의미한 불쾌감이 아니라 좋은 의미의 충격을 선사할 수 있었다. 반면 파트 2의 경우 주인공 2명을 비롯한 어떤 캐릭터에게도 몰입하기 어려우며 기존의 캐릭터성마저 깎아버렸다. 조엘이 죽는 장면에 대한 감상은 다른 게임들의 비슷한 장면들처럼 '주인공의 죽음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다'가 아니라 \'불쾌감이 들어서 다신 보고 싶지 않다\'는 것이 대부분이다. 파트 1에서 파트 2 초반에 이르기까지 어필해 온 엘리의 캐릭터성은 엔딩에서 갑작스럽게 붕괴되며 엘리가 복수를 포기한 이유는 조엘이 자신의 친아버지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패륜아 밈까지 생겼다. 그리고 스토리상 전면으로 부각되는 애비는 닐 드럭만이 의도했던 '이 게임을 증오해라'의 중심부에서 대놓고 미워하라고 만든 캐릭터를 미워하는 게 뭐가 잘못인가 하는 평가를 몰아서 받고 있다.

이러한 부분을 특히 이상하게 생각하는 유저들이 많은데, 닐 드럭만은 자신의 전작인 언차티드 시리즈에서는 주인공 네이선 드레이크의 캐릭터성이 4편 내내 일관성 있게 묘사되는 시나리오를 보여줬으면서 라오어 시리즈에서는 단 2편 만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근본적인 원인은 파트 2의 공동 작가인 할리 그로스에게 있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존재한다. 파트 2 발매 전 닐 드럭만은 새로 합류한 할리 그로스가 제안한 아이디어를 들은 후 기존에 구상했던 엔딩을 수정했다고 밝혔다. 그래서 파트 1의 스토리텔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할리 그로스의 잘못된 아이디어가 원인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총괄 프로듀서의 영향력이 크다고는 하지만 총괄 프로듀서가 군대처럼 까라면 까는 식으로 개발자들의 의견을 묵살하며 지휘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할리 그로스의 아이디어처럼 개발 도중에 제안되는 의견들도 무시할 수는 없기에 닐 드럭만 혼자서 게임을 이렇게 작살내기는 힘들다. 가능성은 낮지만 자금원인 SIE에서 PC하게 만들라거나 이런저런 스토리 변경에 대한 압력이 들어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73] 하지만 결국 최종 책임자는 닐 드럭만이며 본인의 입으로 말했듯 할리 그로스의 아이디어를 최종 컨펌한 것도 그다. SNS를 통해 어그로를 잔뜩 끌고 출시 후 게이머들의 분노를 수습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 실제로 다른 곳에 원인이 있었을 가능성은 없다. 이 게임의 디렉터이자 너티 독의 부사장이 닐 드럭만인데 그가 아니면 누구의 책임이겠는가?

위의 전문가 리뷰 항목에서 소개된 라이너의 분석처럼 닐 드럭만 입장에서는 도저히 원작을 뛰어넘을 자신이 없었기에 전혀 다른 방향으로 후속 파트의 방향성을 정한 것이라는 관점도 있다. 즉 원작을 철저하게 파괴하면서 닐 드럭만이 말하는 예술의 또 다른 모습인 파괴를 선보였다는 것. 예술의 세계에서는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그림이 엄청난 고가인 경우가 허다한 만큼 대중과는 상당히 괴리감이 있는 분야이다. 즉 예술적으로 추구하는 전문가나 평론가 측에서는 전설적인 작품이라고 평하는 전작의 철저한 파괴로써 파트 2를 짠 예술성을 높게 평가한 반면, 일반 팬들은 예술보다는 스토리의 몰입도를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평점이 상이한 경우다. 실제로 닐 드럭만은 사전 인터뷰에서도 "기존의 팬들은 실망할지도 모를 것"이라고 미리 밝혔다. 다만 게임으로서 즐기기에는 너무 무겁고 부담스러웠던 주제이며, 팬심을 무시했다고 느낄 수도 있는 처사이기에 팬들의 반응 역시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다. 게임 회사를 먹여살리는 건 전문가와 평론가들이 아닌 플레이어와 팬들이다. 또한 해당 리뷰는 PTSD나 원작 모독, 정신승리 등에서는 한국인 시청자들은 물론 레딧을 통해 퍼져나가 양덕들에게도 많은 공감을 받았으나 이런 구상을 한 계기 자체는 캐릭터에 대한 열등감과 파괴의 미학 같은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라오어 1 시절부터 닐 드럭만은 복수 플롯을 주장해 왔지만, 그와 함께 일한 브루스 스트레일리는 생존 자체가 버거운 포스트 아포칼립스 환경에서 복수하겠다고 거대한 대륙을 다니며 혈안이 되어있는 부분이 개연성이 떨어진다고 여겼으며 스토리가 지나치게 어두워진다는 이유로 닐 드럭만의 주장을 번번이 기각했다는 것이다. 결국 1편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으나 닐 드럭만의 머릿속에는 그 아이디어를 실행해 보고 싶은 욕망(+거부당한 자신의 아이디어로 만든 게임으로 전작을 뛰어넘어 자신이 옳았다고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존재하고 있었으며, 단순히 브루스라는 억제 요인이 사라지자 이제 거칠 것이 없어진 닐 드럭만이 그것을 실행에 옮긴 것일 뿐이지 무슨 고차원적인 예술적인 고려가 들어갔다는 건 도리어 확대해석이라는 것. 조엘과 엘리를 필요 이상으로 참혹하게 대하고 짓밟은 건 브루스 개인에 대한 열등감의 발현과 능욕의 표현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차라리 2017년에 퇴사한 브루스가 너티 독에 존속했더라면 라오어 2가 까이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반응도 나온 상태다. 사실 닐 드럭만과 라오어 2가 까이는 것은 브루스가 2017년에 라오어 2 개발에서 빠지고 너티 독을 떠나면서 닐 드럭만의 폭주를 제어할 조력자는 이제 너티 독에 사실상 없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존재한다.[74] 즉 전작은 총괄 게임 디렉터를 맡은 브루스 스트레일리가 총괄 지휘를 했고 닐 드럭만은 각본가 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각본을 쓰고 마케팅, 기획을 담당했을 뿐이었던 것이다. 각본의 내용이 좋기도 했지만 폭주하는 닐 드럭만을 브루스가 잘 제어했기에 성공을 했다는 것.

여담으로 "예술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우선 창작물으로서의 기본적인 원칙부터 제대로 준수해야 하며, 특히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격언은 다른 교육적인 창작물과 창작물 업계에서의 수많은 반면교사[75] 등에서 입이 마르도록 자주 언급되어 있다. 닐 드럭만의 현 행보는 이런 원칙을 제대로 숙지하고 있는지부터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이번 사태가 벌어진 원인은 닐 드럭만의 과도한 게임 개발에 대한 개입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닐 드럭만은 라오어 2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담당했는데 게임 디렉터가 따로 있는데도 게임 개발에 지속적인 간섭을 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크리에티브 디렉터와 게임 디렉터의 차이는 게임 디렉터의 하위 개념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있다. 게임 디렉터(Game Director)는 게임 제작을 총괄 관리하는 담당자이며 프로젝트를 구상해야 하는 직업으로, 하위 직업으로 아트 디렉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테크니컬 디렉터가 있다. 이 중 닐 드럭만이 맡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광고계에서 온 용어로, 제작물을 총괄하고 기획을 담당하는 책임자로 기획 파트에 속해 마케팅과 플래닝적인 요소가 혼재되어 기획자는 게임의 기획과 제안, 개발 시작, 마케팅 담당으로 이를 총괄하는 책임자를 말한다. 참고로 라오어 2의 게임 디렉터는 앤서니 뉴먼(Anthony Newman)과 커트 마지노(Kurt Margenau) 두 사람으로, 닐 드럭만은 이들의 하위 부서에 속하는데 문제는 부사장으로 영전해서 이 2명을 게임 디렉터로 앉힌 게 닐 드럭만이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자신들을 그 자리에 꽂아준 이가 자신들의 하위 부서에 속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닐 드럭만인데 그가 부사장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비록 닐 드럭만이 하위 부서 담당자지만, 부사장이라서 인사권을 쥐고 있었기에 게임 개발에 감 놔라 배 놔라 지시를 했을 때 이들은 무조건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어서 라오어 2는 닐 드럭만과 래디컬 페미니스트로 알려진 할리 그로스[76]의 극단적인 각본에 의해 대중의 공감을 받지 못해 추락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문제였다.

결국 라오어 2의 실패는 전작을 성공리에 총괄 지휘한 감독을 배제하고 그보다 급이 낮은 감독들을 앉혔으며, 할리우드 내에서도 극단적인 래디컬 페미니즘을 작품에서 전파하여 기피되는 각본가 할리 그로스를 영입하는데도 게임 디렉터인 앤서니 뉴먼과 커트 마지노는 눈치만 보느라 아무런 제동을 걸지 않는 등 문제가 종합적으로 있었기에 스토리와 엔딩 유출 사태로 인해 실패가 조금 앞당겨졌을 뿐 게임 개발 기획 단계부터 이미 실패가 예정되었던 것으로 그 모든 것은 현장을 좌지우지한 닐 드럭만의 책임이 크다. 최소한 할리 그로스를 각본가로 영입하지만 않았어도 각본이 이상하게 되지는 않았을 거라는 주장도 있지만, 이미 래디컬 페미니스트로 알려진 할리 그로스를 각본가로 영입한 것과 게임 발매 이전과 이후의 대응을 보면 닐 드럭만도 래디컬 페미니스트로 봐도 이상하지 않다. 한 마디로 극단적인 페미니스트 남녀가 만나 대작이 될 수 있었던 작품을 철저히 망가뜨린 것이다.[77]

7. 평가 조작 의혹

7.1. 평론가 평가

중국, 대만, 홍콩을 비롯한 중화권의 리뷰어들이 호평을 내린 게 소니 측의 압박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다. 이 사태와 게임의 혹평 등을 포함해서 중국, 대만, 홍콩인들이 역사상 최초로 의견합치를 보이며 게임을 까고 있는 중이다. #, ##

또한 소니가 미디어 그룹 Vice 소속의 리뷰어에게 직접 연락을 하여 부정적인 리뷰 내용에 대해 항의를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 이 사실을 처음 폭로한 폴리곤의 기사에 대해 제이슨 슈라이어는 맞장구를 치면서 리뷰어에게 가해지는 외부적 압박이 만연한 작금의 세태를 비판하는 트윗을 올리기도 했다. #, ##, ###

이 논란에 대해서 평론가들이 게임 평가와 별개로 쓴소리를 좀 하는 편인데, 게임덱후들에서도 대놓고 '소니 협찬 bye'라고 풍자할 정도였다.

7.2. 유저 평가

최근의 유저 평가 기록을 보면 0~4점의 빨간 딱지 점수들이 줄줄이 이어지는 가운데 특정 구간에서만 10점 만점이 잠시 도배되다시피 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식의 10점 폭격으로 평점이 0.1점씩 올라가 최근엔 평점 4점을 넘어 섰다. 6월 25일 저녁즈음엔 유저평 80,700대 4.5점에서 단체로 만점을 주었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있었는지 약 1,000개의 긍정리뷰를 제외하고 79,800대 4.4점으로 되돌려졌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원상태로 4.5가 되는등 난장판을 보여주었다.

결국 리뷰수 10만을 돌파하며[78] 현재는 유저 평점 5.7점을 찍었다. 여전히 리뷰창에는 높은 점수든 낮은 점수든 라오어 2만 평가한 리뷰들이 거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다른 분석도 있다, 이 분석에선 "완전히 같은 리뷰"는 대략 500개 정도이며, 가계정/조작 평점으로 의심되는 계정은 0점(부정적 평가)가 27.32%, 10점(긍정적 평가)가 36.37%이며 반대로 실제로 자신의 2개 이상의 게임에 평가를 남겨 실제 의견으로 보이는 계정은 0점 27.08%, 10점 28.77% 라고 한다. 메타크리틱 유저평가 집계한 사이트

종합적인 내용은 포브스 기사에 잘 나타나있다. 해당 기사: 포브스

이후 메타크리틱은 고스트 오브 쓰시마의 유저 리뷰부터 36시간의 시간을 두고 등록할 수 있게 시스템을 변경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을 도입해도 유저 리뷰의 조작 논란의 근본적인 해결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 1위는 레드 데드 리뎀션 2이며 2위는 GTA 5이다.[2] 원래는 96점으로 단독 1위였으나, 95점으로 하락하면서 페르소나 5 더 로열과 공동 1위가 되었다가 94점으로 떨어져 갓 오브 워와 함께 공동 2위에 위치했다가 93점으로 떨어지면서 4위가 되었다.[3] 유저 점수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올라가고 있는데(처음 점수보다 무려 3점이나 높아졌다.), 너티 독이 알바를 푼 것으로 추측된다. 하단 문단 참조.[4] 이 작성 규칙 위반이라는 것도 웃긴데, 어떤 점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그 점을 쓰면 스포일러로 간주해서 지워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라오어 2에서 주된 비판을 받는 부분이 전작의 팬들을 엿먹이는 스토리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스포일러라는 핑계로 주요 비판 요소를 지적하는 것을 틀어막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5] GOTY, 스토리, 비주얼 디자인, 오디오, 스튜디오.[6] 해당 고티 투표에서는 원신이 2위를 했는데, 라오어 2가 뽑힌 것보다는 원신이 2등을 했다는 것을 더 문제시하는 반응들도 있다. 해당 영상의 댓글들을 참조.[7] 원신 또한 수많은 표절 논란, 게임성에 거품이 꼈다는 평가가 꽤나 있었기 때문이다.[8] 이런 정황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게 라오어 2의 초동 판매량이 사실상 거짓말임이 밝혀지고 소매점에서는 악성 재고화가 됐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팔린 게임이면 표본이 느는 만큼 호불호의 이야기가 나올 수 있지만 라오어 2는 절대 다수가 불호를 하고 있다. 거기다가 평가 과정에 해당 게임을 해봤는지 입증이 안 되는, 표본이 명확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2021년 4월 판매량이 폭망했다는 게 밝혀지며 더더욱 의심될 수밖에 없어졌다.[9] 애비 앤더슨 역의 로라 베일리가 수상했다.[10] 사실 이 투표도 라오어 2가 1등을 달리고 있었으나 막판에 고오쓰가 뒤집기에 성공한 것이다.[11] 나와 내 가족의 명예를 건드렸으면 반드시 갚아 주어야 한다는 미국 남부식 문화.[12] 폴리곤은 1편도 비판적으로 리뷰를 했던 몇 없는 웹진인데다 언젠가부터 유명 게임 웹진임에도 불구하고 점수를 언젠가부터 매기지 않고 있는데 이번 라오어2에 몇 안 되는 유저평에 가까운 비판을 한지라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메타크리틱에 반영되지 못한 것을 아쉬워 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고 있다.[13] 후술할 허지웅 평론가의 의견에서 볼 수 있듯이 애초에 1편 메인 플롯 자체가 도덕적인 딜레마를 감수하고라도 가족애를 통해 엘리를 지켜내는 조엘의 일대기였는데, 플레이어가 자연스레 이입하며 공감하게 만든 전작의 강점은 싸그리 무시하고 '살인은 나빠요 그러니 살인을 저지른 당신은 악인입니다' 하고 손가락질하며 조엘의 머리통, 나아가 플레이어에게 손가락질하는 본작의 시나리오는 확연히 문제가 있는 것이다. 과연 1편을 플레이한 유저가 살인이 나쁜 행위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을까? 전작이나 본작이나 둘 다 플레이어에겐 선택지 하나 없는 일직선 시나리오인데, 2편의 설교적인 스토리에 공감조차 못 한 상태에서 그렇게 행동할 당위성마저 부여하지 못했으니 납득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14] 현재의 비디오 게임은 영화와 같은 수준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평하면서, 제아무리 컷신이 훌륭한 게임일지라도 컨트롤러를 잡고 게임에 들어가는 순간 단지 스포츠가 되어버릴 뿐이라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15] 초반 총평의 한 단락에서 직접 처참하다고 말하고, 이후 붙는 수식어는 없다고 못을 박았다. 변명할 여지가 없이 그냥 구렸다는 소리.[16] 얏지는 스펙 옵스 더 라인을 호평했지만, 유저들에게 선택지도 안 주고 비도덕적 행위를 강요하는 점은 비판한 바 있었다.[17] 주인공이 많이 다치는 것, 슬퍼하는 것, 비도덕적인 행위를 하는 것, 소수자 집단에 속하는 것. 엘리는 4가지에 모두 포함되고, 애비는 소수자 집단을 제외한 3가지에 해당된다.[18] 영상 첫말에 본인이 밝히길 처음에는 본인은 영화 리뷰어이다 보니 별로 생각이 없었지만 게임 채널 역시 운영하고 있고 하도 구독자들이 라오어2를 리뷰 해달라는 요청이 폭주하자 이례적으로 결국 리뷰하게 되었다고 한다.[19] 상술했듯 이번 더 라오어 2에는 파트 1과 다르게 작가에 할리 그로스가 추가되었다. 또한 처음과 다르게 엔딩이 바뀌었다는 언급도 있다.[20] 해당 짤방에 대해서는 에릭 안드레 문서 참조.[21] 만약 폴아웃 시리즈처럼 적을 한 명도 죽이지 않고도 엔딩까지 볼 수 있는 자유도가 있었다면 깊이 있는 구성으로 볼 수도 있지만, 라오어 2는 기본적으로 일방향 진행이고 전투를 피할 수가 없는 구간이 많다. 오히려 폴아웃 시리즈는 전투를 피할 수 있지만 싸운다고 플레이어를 비난하기보다는 플레이어가 이룩한 것과 파괴한 것을 엔딩에서 보여주면서 생각할 여지를 주고 2회차를 하고 싶게 만든다.[22] 에초에 복수를 하겠다고 죽인 적들의 숫자로만 벽을 쌓아도 집 한 채를 지을 수 있을 수준일 텐데, 마지막에 갑자기 복수는 나쁜 것이라면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로 애비마저 놓아주게 되는 것은 이해가 안 간다. 심지어 게임의 시스템 상 불살로 게임을 넘길 수도 없기에 무조건 사람(NPC)을 죽이면서 플레이를 해야 하는데, 마지막에 가서 복수는 나쁜 것이고 끝에는 허무함이 남는다고 한들 누가 납득하겠는가?[23] 다만 어렵지만 공감해 보라는 식으로 던진 거라면 작가의 의도는 성공한 것 같다는 평가도 있다.[24] 차라리 엔딩을 애비를 죽이거나 살려주거나 두가지 선택이라도 하게 해주었으면 그나마 욕을 덜 먹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25] 물론 멜은 애비가 조엘을 살해하는 데에 동조한 1인이며, 엘리와 토미까지 제거하는 데에 찬성하고 있었다. 또한 엘리는 애비의 위치를 알려고만 했었고 멜이 임산부인 것 또한 멜이 죽고 나서 알았다. 그리고 멜이 죽은 데에는 개연성 없이 애비를 보호하는 데에 앞장선 멜의 실책도 크다. 임산부 목구멍엔 칼이 안 들어가던가? 살고 싶으면 나대지 말 것이지 서로 죽이려 하는 싸움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놓고는 형편좋게 죽는다. 쉽게 말해 드럭만의 농간이다.[26] 게다가 멜과 오언을 죽인것은 의도한 것이 아닌 반격에 불과했다. 애초에 엘리는 애비의 위치를 묻기만 했으며, 이때 기습한것은 오언 이었다. 그래서 반사적으로 반격을 한것이고, 자신의 목을 찌르려는 멜한테 반격을 가한것이다. 물론 죽이지 않으면 스토리가 진행되지 않는다.[27] 여기까지 플레이했으면 이미 환불도 불가능하다.[28] 물론 엘리의 희생으로 백신이 반드시 개발된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에 조엘이 그런 불확실한 결과에 엘리의 생명을 내버리는 결정에 반발했던 것 역시 당연하다.[29] 특히 애비가 작품 내외적으로 제작진의 노골적인 푸시를 받는 캐릭터라는 점에서 애비가 엘리의 손가락을 잘라버린 전개가 제작진이 의도적으로 엘리에게서 조엘을 지우고 관계를 끊어버린다는 해석이 나올 정도이다. 그러나 관점에 따라서는 엘리 스스로 자신은 조엘 같은 사람이 될 수 없음을 깨닫고 기타를 두고 간다고 해석할 수도 있는 장면이다.[30] 작중 애비는 임신에 대한 두려움으로 오언과의 성관계를 망설였는데, 그런 어려움 없이 돌봐줄 아이를 얻었다.[31] 비슷한 수준으로 업그레이드 했을 때 애비의 장비가 더 고성능인 게 많다. 예를 들어 애비의 크로스보우는 엘리의 활보다 더 정밀한 조준경을 달 수 있으며 화살 회수율도 더 높다. 엘리의 사냥용 소총은 몸샷으로는 잘 안 죽지만 애비의 사냥용 권총은 웬만한 몸샷으로도 한 방에 적을 죽인다. 폭탄류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엘리의 설치형 폭탄은 발 밑에만 설치할 수 있어서 적이 주변에 있는지 모르고 설치했다가 자신도 폭발에 휘말리는 경우가 있다. 애비의 파이프 폭탄은 위력이 약간 떨어지지만 던질 수 있어서 비교적 안전하다.[32] 이 경우 높은 확률로 제작진이 편애하는 캐릭터일 가능성이 있다.[33] 이 대표적인 사례가 1에서 나왔던 헨리 형제와의 만남이다. 조엘은 그들이 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끝까지 이름을 말하지 않으려고 했고, 엘리가 먼저 자기 소개를 하고 나서야 마지못해 자기 이름을 밝혔다.[34] 디나: '왜 그들이 우릴 살려준 걸까? 정의감 때문일까?' 엘리: '그들은 실수를 했을 뿐이야.'[35] 전작에서 빌이 했던 '자동차 배터리를 만들 수 있는 곳은 정부밖에 없다'라는 대사를 미루어보면, 오히려 정부 쪽이 백신 개발 확률이 높지 않겠냐는 의견이 있다. 체온계처럼 이마에 잠깐 가져다대면 바로 감염 여부를 판별할 수 있는 판독기를 군인들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 이 의견을 뒷받침해준다.[36] 엘리가 살고 있는 잭슨 카운티는 전기를 돌리기 위해 수력 발전소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기름은 구할 방도가 없어서 말을 타고 다닌다. 데이즈 곤의 정착지들도 수력 발전소를 이용해 간신히 전기를 돌리거나, 기름을 최대한 덜 먹는 오토바이들을 타고 이동을 한다. 이런 다른 사례들을 살펴보면, WLF의 모습은 도저히 말이 되지 않는다. 이 구멍을 때우려고 했는지 어땠는지는 몰라도, 마을 안에는 풍력 발전기로 보이는 풍차가 여러 대 설치되어 있다. 문제는 이조차도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풍력 발전 항목의 단점 부분 참고.[37] 만약 2에서 나온 것처럼 순수하게 믿었다면 그렇게 뜸을 들일 이유가 없다.[38] 특히 앵그리 죠는 애기를 벽에 짓누르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39] 제작진이 직접 이 내용은 엘리와 조엘에게 보내는 작별 인사라고 설명했다. 즉, 파트 2 시점까진 이 내용이 라오어의 진엔딩인 것이다.[40] 어색해 하는 엘리와 조엘, 분위기를 풀기 위해 Future Days를 연주하는 조엘, 시계 관련한 개그까지. 뮤지컬에서 나온 내용을 그대로 담았다.[41] 애비가 모든 것을 얻었다고 애비 편애라고 하는데, 엘리를 악인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는 작가들의 인터뷰를 보면 엘리야말로 쉴드를 받고 있다.[42] 이는 중간에 디나와 엘리의 대화에서 나온다.[43] 엘리는 디나에게 너를 잃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44] 엘리가 여태까지 사람들을 죽여오면서 그러한 감정을 느낀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묘사했다면 논란은 덜했을 것이다.[45] 물론 그나마 잘 전달이 되었다는 뜻이지, 그 자체로 일리 있는 주장이며 게임 상에서 잘 전달됐다는 뜻이 아니다.[46] 게다가 애비-레브의 관계는 엘리-조엘의 관계와는 전혀 다르다. 레브는 애비가 일방적으로 케어하고 보호해줘야 하는 관계지만, 엘리와 조엘은 1편에서 봤다시피 서로가 서로를 구원하고 보호하는 관계였다. 단적인 예로 엘리는 겨울 파트 내내 조엘을 간호하고 보호했다. 본인도 식량 부족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데이비드를 만났을 때 제일 처음 요구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잘 떠올려보자.[47] 조엘의 죽음에 대한 복수, 여정의 끝에서 엘리에게 주어져야 할 보상, 만족할 만한 결말 등.[48] 파트 1에서는 조엘보다 엘리가 더 인간관계를 잘 풀어나간다. 파트 2의 아싸 엘리를 보고 있으면 불과 5년 전에 실없는 농담을 하면서 샘을 위로하고 욕설까지 내뱉어가며 조엘을 독려해 끝까지 살려냈던, 그리고 자기가 살 수 있었음에도 헨리를 따라가지 않고 조엘과 의리를 지켰던 그 엘리가 맞는지 의심하게 된다.[49]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언의 방황은 거의 한 챕터를 다 써서 길게 묘사하나, 이해하기 힘든 도피론에 불과하다. 병사들 지도자급으로 일하다가 애까지 버리고 떠나겠다는데 논리조차 빈약한 상황.[50] 다만 파밍에 있어서 플레이어의 캐릭터가 손을 대어 가방에 넣을 때까지의 모션을 취하기는 한다.[51] 물론 이 또한 최초작 부터 지적됐던 부분이다. 그때도 트레일러에 나왔던 수많은 기능들이 실제로 재현이 안된다는 게 밝혀졌지만 그걸 제쳐두더라도 워낙 뛰어난 작품이였던지라 묻혔었다.[52] 이 게임에서 조엘이 유일하게 좋은 대접받은 부분이었다고 호평 아닌 호평을 받기도 한다.[53] 이것을 극한까지 파고든 게임이 한때 스팀을 휩쓴 더 스탠리 패러블이다. 게임 방식의 특성상 단편화와 재조합에 조금 더 비중이 쏠리긴 했지만 꽤 성공적인 시도로 평가받았다.[54] ~주의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경향이라 부르는 이유는 특정한 사조가 아니라 일종의 메타담론이나 메타방법론에 가깝기 때문. 하스스톤에서 위니흑마와 위니덱의 관계를 비유로 들어 설명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전자는 작고 구체적이고 실체가 있는 것이지만, 후자는 '요즘 시즌 메타흐름을 보면 위니덱 계열이 강세다'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어떤 실체가 아니라 일종의 경향이나 방법론에 가깝다.[55] 조셉 코수스 작품처럼 아예 그림은 그리지도 않고 그냥 지시문이나 설명문같은 글자만 달랑 써놓는다거나 하는 예술이 개념주의 예술의 대표적인 예이다.[56] 소위 말하는 '썰' 위주의 예술이 바로 이것이다. 가장 이른 예를 본다면 마르셀 뒤샹의 <샘> 같은 작품이 있다. 점 하나 찍어 넣고 수억 원에 낙찰된 그림 같은 것이 그런 예.[57] 한 예로 리처드 프린스의 경우 과거 말보로 담배의 카우보이 광고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다 쓴 전력이 있다. 이러면 저작권에 걸리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는데, 리처드 프린스는 '상품 광고로 쓰인 말보로 카우보이 이미지에 초점을 맞춰 보여주어 미국인의 야성과 남성성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어떻게 자본주의 광고 이미지로 사용되는지를 보여준다'는 식의 해석을 덧붙였다는 이유로 법원에서 저작권 처벌을 빗겨갔다. 예술가의 재해석도 창작으로 인정받은 것이다.[58] 그리고 이런 면에서 자꾸 따라다니는 스펙 옵스: 더 라인과의 비교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스옵라가 표현하고 싶어한 메세지인 "현대 밀리터리 FPS가 유도하고 있는 고전적 할리우드식 전쟁영웅물에 대한 경각심" 자체도 훨씬 더 구체적이고 해당 게임과 여기 연관된 장르 내에선 활발하게 토의되며 현실적인 문제의식으로 지적 받던 문제였다. 무슨 두루뭉술한 교과서적 도덕얘기가 아니라, 실제 현실 뉴스에선 아프간 전쟁, 이라크전의 21세기 현대전의 게임과도 같은 모습을 보며 반대로 게임에선 하루가 멀다고 총기 소음, 반동 고증이니 너무도 현실적으로 변해가는 전쟁 묘사를 겪고 자란 2000년대 후반의 게이머들에겐 그 시대, 매체에 한정된 구체적이면서도 해당 게임 이전엔 딱히 그 문제만 집중적으로 다룬 작품은 없었던 문제였던 것이다. 반면 라오어2의 '복수와 증오의 연쇄는 나빠요'란 메세지 자체가 이리 구체적이지도 않고, 스옵라처럼 밀리터리 FPS란 그 게임의 장르상 아이덴티티 그 자체에 국한된 교훈도 아니다. 사실 "다른 밀리터리 FPS에 대한 저격"이란 구체적인 장르상 타겟이 있는 스옵라와 달리, 굳이 게임이란 형태 자체를 빌릴 필요도 없는 메세지이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거지같은 조작감 같은 게임 자체로서 부실한 요소들은 옹호하긴 힘들어도, 적어도 스토리텔링이란 측면에서 스옵라2의 게임 전개상 불쾌함은 나중에 보면 철저히 의도된 장치라는 걸 설득력있게 보여주고 있다.[59]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편에서 나온 대사. 해당 대사가 나온지 꽤 오래됐지만 작품성이 떨어지는 걸 정치적 올바름으로 어떻게든 덮어씌울려는 혹은 정치적 올바름에 집착하여 작품성이 떨어진 졸작들이 많아짐에 따라 이 대사 역시 지속적으로 인용되고 있다.[60] 이는 엄청난 논란을 불러 일으킨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에서 루크 스카이워커를 대하는 방식이나, 비슷한 논란이 일었던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에서 백인 남성 캐릭터인 존 코너를 완전히 쓰레기통에 쳐박아 버리는 방식과도 유사하다.[61] 공교롭게도 때마침 라오어 2가 발매되기 바로 하루 전인 6월 18일에도 푸른 저편의 포리듬이 PS4판만 검열되고 결국 패키지판의 발매가 중단되었다는 소식이 올라와서 논란이 되었다.[62] 이러한 행보는 경쟁 상대인 마소와 닌텐도에게는 호재이다. 실제로 소니는 이미 PS3 초기 시절에도 서드파티에 대한 감시와 게임 거부를 했다가 소비자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고 이 행동을 본 마소가 그대로 이런 소니로부터 버림받은 서드파티를 긁어모은 전례가 있다. 이 때 나왔던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아이돌 마스터. 이후 PS3 후기에는 검열이 중단되어 PS4 중반까지 소니에서도 게임이 자유롭게 출시되었던 것.[63] 농담삼아 한 이야기이지만 동양인이 아닌 흑인이라 표현했더라면 이런 논란은 가중되었을 것이다.[64] 라스트 오브 어스 2는 나름 기존의 드라마틱한 게임들 스토리의 클리셰를 부쉈다고 볼수 있지만 그 클리셰를 부수는 과정을 너무 허술하게 표헌하거나 억지전개를 너무 많이 도입했다. 능력이 있는 작가가 클리셰를 깨도 색다르고 재미있게 받아들여지기 힘든 건데 능력 없는 작가가 클리셰를 어거지로 깨면 그냥 괴작에 불과하다는 걸 보여준 것.[65] 다만 라오어2 게시판에는 그래도 재밌다는 유저들이 남아있었으나 모든 비판의 수용을 거부하며 조금만 지적이 나와도 역으로 온갖 비난을 가하는 악질 쉴더들이 형성되었다.[66] r/theLasstOfUs와 성향이 다르다. 원래 1이 메인이었는데 부정적인 반응들이 묻히거나 삭제되자 유저 절반 정도가 2로 옮겼다. 현재 게임에 대해 1쪽은 긍정적인 반응, 2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67] 다만 1년 이상 지난 이후 게임을 혐오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들만 남아서 여론이 안좋아졌다[68] 해당 스레드의 원제는 이딴 쓰레기를 17시간 연속 스트리밍한 이 전설을 기억하라이다. xQc는 트위치 세계 최초로 엔딩을 보았으며 엔딩 이후 본작에 10점 만점 중 3점을 매기며 혹평했다.[69] 그러다 리포지드 언급이 있었는지 워크래프트 3:리포지드와 비교할 게 아니라며 리포지드는 못 만든 것이지만 이것은 고의로 인간을 화나게 하려는 의도가 다분한 작품이라며 CD를 가위로 잘라버리고 나서도 아예 1편도 하지 말라고 하며 분노로 치가 떨려하는 반응을 보였다.[70] 해당 유튜버는 대안 우파성향의 와패니즈 인플루언서중 한명인 hero hei다.[71] 중간 컷신에서 애비가 조엘을 골프채로 죽이는 장면에서 유래.[72] 원래는 골프 용어로, 골프공이 정상적인 궤도로, 그것도 멀리 쳤을 때 캐디가 외치는 말.[73] 할리우드 영화도 이런 식으로 투자사가 간섭하는 일이 흔해서 영화인들이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샘 레이미스파이더맨 트릴로지 3편이 있다. 샘 레이미는 원래 벌처가 빌런인 작품을 구상했는데 소니 픽처스에서는 심비오트(베놈)를 넣으라고 압박하여 스토리에 대대적인 수정이 필요했고, 심지어 촬영 도중에까지 영화의 전체 내용이 결정되지 않은 채 촬영을 진행하다 보니 중구난방의 마무리가 되어버렸다. 조엘 슈마허배트맨 포에버배트맨과 로빈을 제작할 당시 원래 구상과 달리 워너 브라더스에서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온 가족이 좋아하는 액션물로 만들라'고 압력을 넣었다고 한다. 그 결과는 보다시피... 그래도 이 둘은 닐 드럭만과의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는데, 이들은 영화의 허술함에 대한 비평을 정신승리하지 않고 받아들였다는 것이다.[74] 상술한 The 3rd Birthday도 본래 패러사이트 이브 시리즈의 책임자였던 사카구치 히로노부의 퇴사 이후 노무라 테츠야의 폭주를 제어할 인물이 없어서 문제가 생겼다는 점에서 유사하다.[75]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예시로는 극우 미디어물, 펄프 픽션, 똥겜 등이 있다.[76] 할리우드 각본가로 맡았던 드라마 등의 내용이 페미니스트 등 PC주의에 관련된 내용이 많아 기피되던 인물이다.[77] 다만 수정이 가해지기 전 1편의 오리지널 설정을 보면 또 그런 것 같지도 않은데, 닐 드럭만의 원안에 따르면 원래 감염은 여성만 될 수 있었고 게임 내내 주체적으로 행동하던 엘리의 성격 역시 굉장히 수동적으로 설정되어 있어서 엘리의 담당 성우인 애슐리 존슨이 항의하고 나서야 지금의 모습으로 수정되었다고 한다.[78] 발매 한달도 안되는 기간에 이렇게 높은 리뷰수를 보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현재까지도 GTA의 리뷰는 5천을 조금 넘고, 갓 오브 워가 14,000, 전작이 11,000, 마블즈 스파이더맨이 5천, 호라이즌 제로 던이 8천개를 조금 넘는 등, 플스4 명작 타이틀 게임만 모아봐도 1만을 겨우 넘기거나 못 넘는 게 수두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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