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등장인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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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영 목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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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영 목록 전체 보기
- [ O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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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The Day)
박효신
2018. mm. dd.Part 2
슬픈 행진 (Sad March)
일레인
2018. mm. dd.Part 3
눈물 아닌 날들
김윤아
2018. mm. dd.Part 4
소리
이수현
2018. mm. dd.Part 5
좋은 날
멜로망스
2018. mm. dd.Part 6
My Home (Eugene's Song)
사비나 앤 드론즈
2018. mm. dd.Part 7
바람이 되어
하현상
2018. mm. dd.Part 8
이방인
박원
2018. mm. dd.Part 9
Shine Your Star (Prod. by ZICO)
오존 (O3ohn)
2018. mm. dd.Part 10
And I
뉴이스트 W
2018. mm. dd.Part 11
See You Again (Feat. 리처드 용재 오닐)
백지영
2018. mm. dd.Part 12
불꽃처럼 아름답게
신승훈
2018. mm. dd.Part 13
정인
세정
2018. mm. dd.Part 14
If You Were Me
벤
2018. mm. dd.Part 15
어찌 잊으오
황치열
2018. mm. dd.OST
Limited Edition Album
2018. mm. dd.
1. 총론
부족한 면이 없지는 않지만, 다양한 국가들의 근대 총기가 등장한 작품임을 감안하면 나름대로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할만 하다.1화의 광성보 전투에 등장한 소총이 좋은 예인데 당시 미군이 사용한 레밍턴 롤링블럭 소총과 비슷하게 생겼으나 가늠자와 가늠쇠도 없는 총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비슷하게 만든 모조 총기로 보인다. 기존 한국 드라마라면 그냥 아무 총이나 쥐어 줬겠지만 이 정도로 신경쓴 작품은 처음인 것으로 생각된다. 아무래도 진품 롤링블록 소총은 골동품으로 거래될 확률이 높고 그렇게 되면 소품으로 쓰기에는 터무니 없이 비싸다.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총기도 아니고 단 한 전투에서만 나오는 데다가 많은 인원이 사용해야 하니 적당히 잘 타협한 듯. 영상물 제작에 있어 예산과의 싸움은 제작 자체를 좌우하는 중요요소이며 고증 또한 적절한 타협의 산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다른 드라마에서는 멀쩡히 등장하던 일본군 총기 아리사카를 모신나강으로 대체했다든가,
다만 기획의도를 보면 역사가 단순히 로맨스의 배경으로 설정된 것이 아니라 (1) 이름없는 의병을 조명 (2) 구한말의 독특하고 다이나믹한 시대상을 조명하는 데 있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적어도 의병에 대한 부분은 좀 세밀하게 고증을 했어야하는 거 아닐까란 아쉬움이 드는 부분이 있다. 특히 구한말은 남아 있는 역사자료가 많이 있다.
그래도 발전한 것이 있다면 캐릭터에 맞추어 복식과 주무장을 설정한 것이다.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은 아니지만 포스터와 극중 대사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어느 정도 신경을 쓰기는 한 것 같다. 시티헌터 드라마 판에서 주인공이 시티헌터의 상징인 콜트 파이슨을 제대로 사용한 일도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한국드라마로서는 이례적인 편이다.
2. 무기 및 군사 관련
2.1. 등장 무기 및 방어구
2.1.1. 총기류
- 수제 화승총
1화 광성보 전투에서 발사용 화약을 장전하는 모습
1화 광성보 전투에서 꽂을대로 화약과 총탄을 눌러서 장전하는 모습[2]
1화 광성보 전투에서 등장한 매치록 화승총의 격발기구
1화 광성보 전투에서 장승구가 이완익에게 다리 부상을 입힐 때 사용한 화승총의 격발 기구. 플린트락을 대충 매치락으로 보이게 개조한 소품으로 당연히 엉터리 격발 기구다. 위의 사진처럼 격발 기구가 제대로 된 소품이 있었음에도 중요 장면에서 왜 이런 소품을 썼는지....
- 1화에서 조선군 병사의 무장으로 플린트록(수석식) 소총에 매치록 머스킷의 심지만 붙인 괴상한 물건이 등장하였다... 나선정벌에서 러시아의 수석식 소총 2정을 노획하거나 조선말 청나라를 통해 몇 정 구입한 적은 있으나 실제로 군인들이 사용하진 않고 연구용으로 쓰였다. 더구나 영상 속 물건은 수석식도 화승식도 아닌 어중간한 물건으로 나온지라... 화승에 불 붙여주는 보직의 병사를 등장시키고 방아쇠를 당기면 화약접시 부근에서 불꽃이 튀다가 총이 격발되는 것을 묘사하는 등 적어도 화승총처럼 보이게 하려고 한 흔적은 있지만 실물의 생김새가 문제.[3]
하지만 이건 제작진만의 잘못이라기보다, 한국 사극의 고질적인 소품 부족 문제 때문으로 보는 편이 맞다. 사실 조총의 격발 기구와 방식을 정확하게 재현한 소품의 수량이 절대 부족하다. 제대로 제작된 것은 우선 KBS의 드라마 추노에서 주인공 업복이의 1인 액션을 위해 정확하게 제작된 것 2자루. 그리고 KBS의 드라마 징비록을 찍을 때 방산업체인 풍산그룹의 협찬[4]으로 제작된 것이 10여 자루가량 있다. 이상이 제대로 된 조총 소품의 전부다. 그밖에 사극의 여러 장면에서는 그놈의 심지 꽂은 플린트락이 계속 나오고 있다. 비용도 문제고 작동 방식을 정확히 재현하면 총포법상 문제도 생기기 때문에 이 문제는 해결할 길이 요원하다.
- 광성보 전투에서의 화승총 발사 장면에서 보여준 진짜 문제는 발사할 때마다 화승에 따로 불을 붙이는 듯한 묘사이다. 본래 화승이란 한 번 불을 붙여놓으면 꺼지는 일없이 계속해서 불이 붙어 있게 하기 위해서 있는 것으로 화승의 불만 꺼뜨리지 않으면 사수는 발사용 화약과 탄약, 점화용 화약만 보충하면 불을 새로 붙일 필요 없이 재사격이 가능하다. 그래서 화승총 사수는 긴 화승을 팔에다가 둘둘 말고 다니기도 했고, 양쪽 끝에 불을 붙여서 한 쪽이 꺼지면 다른 쪽을 쓰는 등 각별히 신경을 썼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서는 마치 사격을 할 때마다 화승에 불을 붙이는 것처럼 연출하였는데 아무래도 주요 조연급인 장포수에게 뭔가 일을 시켜야 하니 화승에 불붙이는 심부름 시키는 역할을 주었고, 그 역할을 묘사하다보니 마치 화승총은 발사할 때마다 불을 붙이는 것처럼 묘사가 된 것이다. 이것이 연출 상의 실수라는 증거는 아래의 사진이다.
화승을 지속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여분의 화승을 총에 감아둔 것을 확인할 수 있다.[5] 불을 붙이는 것 자체가 오류라고 할 수도 있지만 화승에 붙인 불이 꺼지는 일이 드문 일은 아니었기에 사수들도 여러 가지 대책을 세웠으므로 오류라고 할 수 없다. 다만 어린 장포수의 역할을 강조하기 위한 연출.
- 22화에서 장포수가 이때 화승에 불을 붙일 때의 기억을 되살려 폭약에 불을 붙이는 연출이 있어서, 이를 노리고 넣어둔 장면일 수도 있다. 사실 폭약의 심지에 불을 붙일 때와 어릴 때 장포수가 불을 붙이는 장면을 겹쳐 보여주었기 때문에 고증을 의도적이든 아니든 무시하고 드라마적 연출을 살렸다고 생각해도 되겠다.
- 레밍턴 롤링블럭 소총
1화의 광성보 전투에서 등장한 소품용 롤링블록.
1902년의 미 공사관 경비병이 사용하는 모조품 롤링블록. 주역이 아닌 단역 미군의 경우 미군 소총으로 쥐어주는 듯하다.
광성보 전투에서 미군이 사용했다. 다만 실총이 아닌 비슷하게 만든 모조품으로 보인다. 실총과 비슷하게 보이지만 가늠자와 가늠쇠가 없다. 이후 1902년의 미군 장면에서도 간혹 등장한다.
- 윈체스터 M1894
애신의 주무기로 평소에는 조준경을 달고 있지 않으나 화월루 저격과 제물포 작전에서 애신이 윈체스터 1894에 조준경을 달고 사용했다. 그러나 이 총에는 조준경을 고정할 장치가 설치되어 있지 않으며 제작진이 대충 만들어 붙인 뒤 천으로 둘둘 감아놓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렇게 사용하면 조준점이 계속 이동해서 조준경은 무용지물이다.[6]
총의 오른쪽 면. 급탄기구 때문에 고정장치를 달 수 없다.
총의 왼쪽면 역시 고정장치를 달 수 없는 구조다.
실총 소품이 부족해서인지 장승구와 같은 총을 쓰면서 아닌척 한다. 애신이 사용할 때에는 천을 칭칭 감고, 승구가 사용할 때는 감지 않는다.
외부대신 처단 작전에서 윈체스터 1894를 사용하는 장승구
애신이 사용하는 총을 만져보고 싶다고 청하여 살펴보는 유진
- 엔필드 1917 소총
미서 전쟁신에서 엔필드 1917을 들고 돌격하는 카일
미서 전쟁신에서 엔필드 1917을 조준하는 유진
미서 전쟁신에서 유진 초이와 카일이 사용했으며 조선에 주둔한 미군 등장신에서 리-엔필드와 섞여서 나온다. 당연히 이름처럼 1917년에 만들어진 총이라 타임워프 고증오류다.
- 모신나강 PU 스코프 장착버전 소총
화월루 저격신에서 모신나강 PU를 사용하는 유진
유진이 선물한 모신나강 PU로 사격연습을 하는 애신. 위의 총과는 다른 총으로 가늠쇠가 총구 부근에 달려 있다. - 화월루 저격신에서 유진은 모신나강 소총의 저격용 모델을 사용했으며 스코프의 모양과 위치에서 PU스코프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PU스코프는 1940년에 나왔다. 작중 연도인 1902년보다 무려 38년 후다. 애신은 레버액션 소총을 사용하는데 근거리 저격이라면 사용탄이 약한 레버액션소총도 저격에 사용가능하나 문제는 애신의 소총에는 스코프 마운트가 없음에도 헝겊으로 대충 둘러서 스코프를 고정했다. 이게 장포수가 지시한 것이라면 장포수는 명사수가 아니라 사격의 기본이 안 된 인물이 되는데 천으로 묶어놓으면 영점 조정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재장전동작이 큰 레버액션 소총이라면... 장전하면서 영점이 계속 바뀐다![7] 달리 보면 3화에서 미군에게서 소총을 훔치게 된 이유가 열악한 장비 사정 때문이라는 것도 되지만 이 정도 수준이면 무용지물이 될 듯하다.
- 스파이크형 대검을 장착한 모신나강 기본버전 소총
3화에서 등장한 일본군 츠다하사의 모신나강 기본형. 특유의 스파이크형 총검을 착검했다.
3화에서 애신을 희롱하기위해 총을 건네준 츠다하사의 모신나강을 츠다 하사에게 겨누는 애신.
일본군의 제식 소총으로 등장한다. 일본군은 모신나강을 러일전쟁 이후 노획품을 훈련용 소총으로 개조해 사용한 예를 제외하면 제식으로 채용해 사용한 일이 없고 이 시기에는 자국산인 30년식 소총을 사용하고 있었으므로 대표적인 고증오류 사례이다. 일제강점기 배경 영화, 드라마는 수도 없이 많기에 굳이 30식이 아니라 형태가 비슷한 38식, 99식이더라도 아리사카 소품은 많았을 것이고 본작에도 등장하는데 왜 굳이 완전히 관련이 없는 모신나강을 사용했는지는 의문이며 더 웃긴 것은 본작에서 30식은 아니지만 38식 소총의 모의소품, 심지어 실총프롭까지 나온다! 즉 촬영 당시 아리사카 소품이 없었던 것도 아니며, 게다가 한국 국군은 소품이 아니라 진짜 실총인 아리사카도 치장물자로 좀 갖고 있다. 왜 모신나강을 쓰는지 의문이 더욱 커지는 부분.
- 리-엔필드 No.4 MK I 소총
3화에서 장승구에게 총을 도난당한 미군이 애신의 몸을 수색하려고 할 때 사용한다.
장승구가 미군에게서 훔쳐간 소총이 바로 이 리-엔필드다. 사진은 총을 분석해 달라고 전 번사창(무기공장) 훈도 대장장이에게 맡기는 모습인데... 이때 설명하는 총을 훔친 이유가 '잘 맞는다고 하길래 궁금해서'였다...이 총은 명중률이 아니라 속사 속도가 빨라서 유명한데요??그리고 이렇게 복제한 리엔필드는 극 후반 이 대장장이가 요긴하게 사용하며 유진과 애신을 구해준다. - 1902년에 조선에 주둔하게 된 미 해병대원들이 영국군의 리-엔필드 소총을 사용하고 있다. 미 해병대는 영국제 무기를 사용한 경우가 종종 있었지먼 리-엔필드 소총을 사용한 적이 없다. 영상에 나오는 리-엔필드 소총은 2차대전으로 인한 급격한 수요증가에 대응 위해 기존 소총을 간략화시킨 모델(Lee-Enfield No 4 Mk I)로 1941년부터 생산되었으므로 시대적으로 거의 39년의 차이가 있다.[8] 바른 고증은 스프링필드 M1873이나 리-네이비 소총이다.[9][10] 작중 시점이 이미 1902년 이후라면 리-네이비나 크라그-에르겐센이 등장하는 편이 더 자연스럽지만 미 해병대는 육군에 비해 2선급 부대 수준으로 항상 장비 갱신이 늦는 편이라서 스프링필드 M1873도 영 말이 안되는 선택지는 아니다.
다만 리-메트포드 라이플의 대용품이면, 어느정도 맞다. 1902년에 베이징에 주둔한 미해병대의 사진을 보면, 이들은 리-메트포드 라이플을 장비하고 있다.
- M1 개런드
3화에서 대한제국 경무대 대원들이 휴대하고 있는 소총. 12화에서도 유진이 연병장을 도는데 들고있는 소총이 M1 개런드다. 3화에서 대한제국 경무대 대원들이 들고 있었던 소총의 재탕인 모양이다. 또한 18화에서 고종의 명으로 시위대 병사들이 고사홍과 선비들을 투옥하는 장면에서도 개런드를 장비하고 있다. 참고로 이는 고증 오류로 이 총은 미국에서 1924년에 개발, 1936년에 제식화된 총이라 작중 시점에서는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총이다. 총몸 자체가 비뚤어진 총이 여러 정인 것으로 보아 6.25 전쟁용 소품을 대한제국군 화기로 쥐어준 듯 하다.
12화에서 벌로 연병장을 도는 유진의 손에도 들려있다.
- 38식 소총
8화 제물포 작전에서 구동매 일당을 유인하기 위해 발포하는 의병
제물포 작전에서 38식을 사용하는 의병
제물포 작전에서에 38식을 사용하는 의병
하야시 공사의 부하가 애신의 사격에 쓰러지자 그가 소지하던 38식을 줍는 구동매.
애신의 다리를 맞춘 직후의 구동매. 38식 소총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소품용으로 만든 모의소총으로 보이며, 기존 사극에서 사용하던 것으로 보인다. 실총프롭도 있는데 왜 클로즈업되는 사격장면에서 모의소총을 썼는지는 미스테리....
38식 소총은 1905년에 개발되어 1906년부터 생산된 총이므로 1902년인 작중 시점에서는 고증오류다. 다만, 대한제국이 30식 소총과 탄약을 면허 생산했으므로 30식 소총의 대용품으로 쓰였다면 아주 틀린 건 아니다.
- 마우저 C96 권총
1화 이완익 암살 미수 장면에서 일본에서 의병으로 활동하던 애신의 어머니가 사용.
1화 이완익 암살 미수 장면에서 일본에서 의병으로 활동하던 애신의 아버지가 사용
1화 이완익 암살 미수 장면에서 일본에서 의병으로 활동하던 애신의 아버지를 이완익이 살해할 때 사용
제물포 작전에서 주일공사 하야시의 부하가 사용한다.
유진의 방에서 매복하던 배신자 김용주가 사용한다. 1화에서도 이 총을 사용했다.
마지막화에서 애신이 사용한다. 단, 이 소품은 위의 것들과 달리 총신모양이 부자연스러운데, 아마도 막바지에 촬영된 것이라 총기대여허가가 만료되어 실총을 개조한 초반부와 달리 자체제작한 소품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1화 도중 1875년 일본 육군의 무장이 모신나강 소총과 마우저 c96권총이라는 아주 심각한 고증오류의 형태로 등장한다.... c96권총은 1896년 개발되었으며 모신나강 소총은 1891년 부터 실용화되었다. 연도뿐만 아니라 19세기말 일본군이 사실상 적국이였던 러시아의 장비를 제식 무기로 체택했을 리는 없다. 문헌에 따르면 당대 일본 육군은 보신전쟁 당시 쓰였던 드라이제, 샤스포 소총 등의 종이탄피 소총을 애용하였으며 게베어 1871, 스나이더, 윈체스터 소총 등 금속탄피 소총도 사용하였다고 한다.
이완익 암살시도를 하려던 극중 진구, 김지원이 사용한 권총이 C96 마우저 권총이다. C96마우저 권총은 무려 1896년 독일에서 개발된 자동권총이다.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온 것이 아니라면 대체 어떻게 설명이 가능할까? 극중에서 묘사된 1871년 ~ 1876년 당시 암살사건에 사용될 주력권총이라면 리볼버 권총이었을 것이다. 적어도 C96 마우저 권총이 동양에 유통될 시기는 아무리 빨리 잡더라도 1910년대 염석산 등의 군벌이 마우저 권총을 대량으로 무단 복제생산하던 시대 이후 일 것이다.
- 레밍턴 M1858 권총
유진의 개인무장으로 평소에도 휴대하고 다닌다.
유진의 총은 금속탄피를 사용하는 컨버전 킷을 사용하고 있지 않다. 즉, 한발한발 화약과 탄두를 실린더에 채워넣고 뒷쪽에 퍼커션 캡을 씌우는 초기모델 그대로인데, 이 시기에는 이미 도태된 방식이다. 어차피 탄약을 재장전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 아니면 큰 문제는 없지만 묘하게 고증이 어긋난 부분이다.
1) 화약장전 막대를 젖힌다.
2) 실린더 축을 빼낸다.
3) 실린더를 총에서 분리한다.
13화에서 총기점검을 받는 유진이 총을 분해하는 장면에서 어이없게도 탄피식 탄약과 구형 실린더라는 조합이 나왔다. 저 실린더에는 탄피식 탄약을 장전할 수 없고 아래 사진과 같은 컨버터를 장착해야 사용이 가능하다. 참고로 이 권총에는 5연발과 6연발 두가지 버전이 있는데, 놓여진 탄의 숫자로 볼 때 5연발로 설정되어있는 듯 하다. (실제로 옛날 리볼버방식은 해머를 당기지 않아도 실수로 툭 치는 것만으로 발사되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서 공이랑 닿아있는 약실 한 칸을 비워두기도 했다.)
레밍턴 M1858권총의 컨버전 킷.
총의 모양 자체는 콜트 SAA와 많이 달라서 서부극 냄새가 없기는 하다. 총잡이이자 서부극쇼기획자인 버팔로 빌이 애용해서 유명하기도 하고.
난동을 부리는 일본군 하사관을 저지하기 위해 애신이 유진에게서 빌려서 사용했다.
한글을 못읽는 애신이 '자신의 편지를 무시했다'고 화가 나서 유진의 총을 빼앗아 유진에게 겨누는 애신. 해당 장면은 연인간의 애정 싸움 중인데, 권총이 격발 상태가 아니어서 유진이 여유를 부리는 와중, 작중 싱글 액션 리볼버를 처음 만져본다는 애신이 이리저리 만지는 과정에서 해머 코킹을 해서 격발 준비, 즉 장전 상태가 되자 당황하는 장면[11]이다. 당시의 권총은 싱글 액션[12] 방식이라 공이치기가 전진하기 위해서는 수동으로 뒤로 잡아당겨줘야 했다. 안 그러면 공이치기가 전진이 안 돼서 방아쇠가 안 당겨지기 때문에 격발이 불가능하다[13]. 서부영화에서 카우보이들이 권총을 쏠 때 손으로 권총 뒷부분을 빠르게 두드리는 듯한 동작을 보이는 것이 바로 공이를 뒤로 당겨주는 것이다.
* 유진 초이가 사용하는 권총은 레밍턴 M1858이다. 남북전쟁때도 사용된 권총으로 금속탄피를 사용하는 리볼버가 아닌 약실에 일일이 화약을 재어넣고 탄두를 장착한 뒤 퍼거션캡을 씌워서 장전하는 구세대의 설계를 가진 권총이다. 물론 개량된 실린더로 교체하면 금속탄피를 사용할 수 있으나 재장전이 무척 복잡하다.[14]* 이미 스윙아웃리젝터를 채용한 리볼버를 군에 보급하고 있던 미군 장교가 굳이 불편한 이 권총을 사용할 이유는 없지만, 추측컨대 시그니처 웨폰의 개념으로 주인공에게 쥐어준 것 같다.
- 남부 권총(14년식 권총)
제물포 작전에 투입된 하야시 공사의 부하가 사용했다.
일본군 츠다 하사가 7화에서 술에 취한 상태로 난동을 부리며 사용했다. 참고로 작중 등장한 남부 권총은 정확히는 14년식 권총의 2차대전 말기 모델인데 14년식 권총은 아무리 빨라야 1920년대에나 나온 모델로 시기가 너무 맞지 않다. 남부권총 시리즈 중에서 그나마 비슷한 시점에 나온 거라면 1902년에 개발된 남부 대형 권총인데 이것도 일본 해군에서만 제식으로 사용된 물건인데다[16] 실제 생산이 이루어진 시기는 갑형모델 기준 1903년/을형모델 기준 1906년이었기 때문에 고증오류인건 변함이 없다. 그래도 총 사격 회수는 9회로 8+1(+1은 약실 장전시)의 장탄수 고증을 잘 지켰다.참고 이후에도 계속 등장했는데 9화에서 외부대신 이세훈이 유진의 계략에 걸려들어 장포수에게 저격당하자 호신용으로 남부권총을 꺼내들었다가 총기를 처음 만져보는 터라 조작 미숙으로 오발사고가 나 옆에 서 있던 하녀가 맞아 죽을뻔 했다가 겨우 살아난다.
9화에서는 유진의 계략에 걸려든 외부대신 이세훈이 사용한다.
12화에서는 화월루에서 난동을 부리던 일본공사관 인원인 스즈키가 사용한다.
이후에는 모리 타카시를 비롯한 일본군들이 주로 사용한다.
- 콜트 싱글 액션 아미
카일 무어가 사용한다. 사진의 장면은 홍파를 살해하고 시신을 능욕하던 모리 타카시가 이끄는 일본군과 대치하던 중 유진 초이의 팔에 총격을 가한 일본군에게 총을 겨누는 모습이며 '움직이지 마, 내가 왼손은 서툴러서 네 대가리를 날려버릴지도 모르니까'라는 말로 상대를 침묵시킨다.[17]
14화에서 유진 초이가 사용한다. 실총 대여허가가 끝난 이후에 촬영하여 본래의 시그니처 웨폰인 레밍턴 1858을 사용할 수 없기에 기존의 소품 중 하나인 이 총을 촬영에 사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 S&W M40
11화에서 쿠도 히나가 사용한다. 작은 고증오류가 있다면 이 장면에서 해머를 당겨 장전하는 달그락 소리가 났는데, 이 총은 해머가 없는 총이다. 또한 최초 제작된 시기가 1952년이니 50년 후에 만들어진 총이기도 하고.
22화에서 남대문 전투 당시 군의 강제해산에 반발한 시위대와 이들을 지키려던 민간인들을 학살하고 있는 일본군을 향해 사격하여 3명을 사살한다.
이 총은 크기가 작고 해머가 없어 호신용으로 쓰기 좋은 총이며, 쿠도 히나는 가방 안에 늘 휴대하기도 하고 베개 아래 두고 잠자리에 드는 장면도 나왔다.
박승환 자결씬에서도 등장하는데, 대한제국 육군참령 박승환이 이 총으로 자결한다.
- 루거 P08
18화에서 모리 타카시가 부관 사사키를 죽일때 사용한다. 작중 시점이 1904년임을 감안하면 루거 1900이나 루거 1902가 나왔어야 한다. 게다가 흑색 그립을 장착한 버전은 몇십년 후의 독일의 한 친위대가 사용하는 버전이다.
고종황제에게 황위를 선양할 것을 요구하며 이완익이[18] 사용했다.
하세가와 요시미치가 사용하는 모습. 작중시기가 1907년이라 확실한 고증오류. 게다가 주로 등장하는, 그립 부분이 검은색인 루거는 나치 독일 내에서도, 슈츠슈타펠 전용 장비로만 생산했지 다른 나라에 푼 적은 없다. 여담으로 이 슈츠슈타펠용 루거가 소량 생산된 희귀품이란 소리도 있는데(이 문서의 이전 버전에도 희귀품이라고 써 있었다), 실제론 꽤 흔하다. 루거 p08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저 버전의 루거는 총번 표기방식 자체가 소량생산인 것처럼 오해될 여지가 있다.
유진 초이가 3년 복역을 마치고 출소한 이후부터 개인화기로 들고 다닌다. 들고다니던 레밍턴 M1858은 불명예 전역과 동시에 군에 반납됨에 따라 사제 총기류로 루거를 구입했다는 설정인 듯. 최종화에선 이 총으로 열차 연결부도 끊는다. 사실 이 부분은 명백한 고증 오류로 열차연결부는 권총탄따위의 사격으로는 절대 풀리지 않는다. 영화에서 흔히 나오는 클리셰가 열차연결부위를 간단하게 분리하는 것이지만 실제 연결부를 분리하려면 열차를 정차한 뒤 여러명이 들러붙어야 가능하다. 실제로도 클리셰처럼 연결부가 그렇게 쉽게 부서진다면 주행 중 열차가 분해되는 등 대참사가 여럿 터졌을 것이다.
- 개틀링 기관총
2화에서 미서전쟁 당시 스페인군이 엘 카네이 전투에서 등장한 개틀링 건. 탄창이 제대로 꽂혀있다. 이외에 사용하는 모습이 잠깐 등장한다.
22화에서는 남대문 전투에서 일본군이 사용한다. 22화에서 등장한 개틀링 기관총의 캡처화면으로 전체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위력적인 것으로 묘사했으며 장승구에 의해서 사수가 사살될 때 까지 군관학교 학도들을 몰아붙인다.
남대문 전투에 등장한 개틀링기관총은 일본군이 사용했던 사진의 1874 Colt Gatling Gun을 모델로 제작한 소품으로 보이며 실물이 황동으로 된 몸체와 철로된 육각형의총신을 가진것과 달리 플라스틱 파이프와 플라스틱 판으로 만들어 도색만 한 것으로 보인다.
이 개틀링 기관총 등장씬의 오류는 외형이 아니라 사격씬 자체에 있다. 탄창을 장착하지도 않았고 부사수도 없는데 핸들만 돌리면 발사되는 엉터리 기관총 사격 묘사를 보여주고 있다. 아무리 잠깐 등장하는 소품이지만 최소한 탄창은 끼워놓은 상태여야...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에 등장한 1874 Colt Gatling Gun의 사격 장면. 급탄하는 모습과 부사수의 역할이 제대로 묘사되었다.
더불어 남대문 전투에서 일본군은 호치키스 기관총을 6.5mm로 개조한 보식 기관총을 사용했다. 이 시기에는 이미 개틀링건은 구식화된 상태였던 것이다.
2.1.2. 냉병기
- 우치가타나, 와키자시
3화에서 애신에 대한 음담패설을 하는 일본인 2명을 우치가타나로 살해하는 구동매. 허리춤에는 와키자시를 패용하고 있다.
12화에서 애신 부모의 위패앞에서 무장해제하여 풀어놓은 구동매의 우치가타나. 겨울매화가 그려져 있다. 와키자시는 풀어놓지 않았고 이는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다.[19]
3화에서 유진의 사격에 우치가타나를 놓친 구동매의 부하 유조가 와키자시를 빼들었다.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 때부터 이어져온 '다이쇼 코시라에'[20]다.
- 플뢰레
쿠도 히나가 사용하며 펜싱복장까지 갖춰 입고 오랫동안 수련한 듯 하다.
- 레이피어
이완익의 집에 걸려 있던 장식용 도검으로 화려하게 세공된 레이피어로 추측된다. 쿠도 히나가 사용하여 멋진 결투씬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보통 영화,드라마에서 자주 범하는 오류이지만 레이피어는 저렇게 휘두를 수 있는 무기가 아니다.[21]
- 환도
이세훈을 호위하던 시위대원들이 사용한다. 조선의 환도는 주변국인 일본의 영향을 받아 일본도와 비슷한 형태를 띄는 것이 많았으며, 일본도 특유의 자루 매듭 형태인 '츠카마키'가 나타나지 않고 어피로 마감 처리한 것을 보아 환도일 확률이 높다.
- 활
1화에서 희성의 조부가 유진의 아버지를 살해할때 사용했다. 점잖은(?) 양반집에 뜬금없이 왠 활이냐고 할 수도 있으나 조선은 주무기가 활인 나라였으며 활쏘기는 사대부뿐만 아니라 여인들도 즐기는 오락거리였다.[22] 다만 엄지를 활용하는 몽골리안 사법이 아니라 화살 자체를 잡는 핀치 사법으로 활을 쏘니 아쉬운 부분. 게다가 소품도 각궁이 아니라 개량궁이다.급하게 쏘려고 했다고 하면 안될 것도 없긴 하다만
활쏘기를 즐기는 애신의 큰어머니. 실제로 기록 사진에는 당대의 여성들도 즐기던 모습이 나온다.
1화의 광성보 전투에서는 화승총 못지 않게 활도 대량으로 등장했다. 자세히 보면 중앙 병사가 엄지가 아닌 검지 중지 약지로 활줄을 당기는 지중해식 사법으로 쏘는 것으로 보인다. 5화에서는 제대로 구현했으니 아쉬운 부분.저 시기엔 이미 조총이 대세인데?[23]
2.1.3. 방어구
- 면제배갑
구한말 사용된 갑옷으로 광성보 전투에서 등장
1화 광성보 전투에서 등장한 면제배갑. 특유의 부적문양을 재현했다.
1화 광성보 전투에서 등장한 면제배갑. 더운 6월에 치러진 전투에서 두터운 솜옷을 입고 있다. 작중에서는 총탄이나 파편에 대한 방어 효과가 크게 두각되지 않으며 이 장비로 인해 목숨을 건졌다는 묘사도 없다.
2.1.4. 군사 관련
- 극중 등장하는 광성보의 돈대에 기와지붕이 올려진 누각이 나오는데 실제 돈대에는 누각이 없었다.
2.2. 그 외
- 민중사관으로 인해 신미양요와 대원군 관련 부분에서 잘못된 고증을 했다. 대원군이 자신의 권력을 위해 강화도에 최소한의 병력만 보내고 모자란 병력은 조선의 민초들로 채우는 것으로 설정했는데, 실제 당시 강화도에는 대원군의 주도 하에 방어력을 충실히 갖추고 수백 문의 오밀조밀한 화망을 구성해 놓았다. 전근대 조선의 한계로 홍이포조차 부족해 소형 불랑기가 대부분이라 미군에 피해를 주지 못했지만 같은 전근대시대 군대라면 엄청난 피를 보는 구조였다. 그리고 광성보 한 곳에서 미군이 노획한 조총만 6천 정에 불랑기 400문이 넘는데 어떻게 대원군이 방비를 게을리 했다는 설정이 나올 수 있는가? 또 광성보 일대 방어 병력은 조선 최정예 중앙군인 삼군문(훈련도감, 어영청, 금위영) 병력이 파병되고 여기에 지역 민병대가 포함되었는데 이 지역 민병대는 흔히 생각하는 분연히 들고 일어난 의병 같은 게 아니고 현대의 주방위군이나 예비군에 더 가깝다. 전근대 국가가 대규모 상비군을 상시 유지하면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사전에 지역 유지들과 조율해서 유사시 즉각 동원 가능한 민병대 조직으로 편성한 조밀한 전시 동원 체제를 벼슬아치들이 버린 나라를 지키려 의연히 일어난 민초들로 포장하고 있는 전형적인 구식 민중사관이다. 그리고 신미양요 당시 참전한 민병대에는 양반들, 그것도 공신이나 충신의 자손들도 무척 많았다. 전후 포로 관련 협상에서도 당시 조선 조정이 "수치스럽게 살아남은 자들은 알 바 아니다." 라고 표면적으로 외면하며 협상을 거부한 것은 것은 사실이나 풀려나온 포로들을 맞아 논공행상을 하여 포상을 받은 자도 있고 포로 모두에게 구휼미와 필요한 치료 등을 제공했다. 앞에서야 국가 대 국가의 외교에서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뻗대었으나 뒤로는 참전용사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는 갖춰 준 셈. 드라마에서 처럼 헌신짝 보듯이 외면했던 것은 아니다. 장승구 캐릭터 빌드업을 위해 고의적으로 왜곡된 부분.
- 유진 초이가 착용한 미 해병대 군복 고증은 꽤나 준수하다. 예를 들어 유진이 착용한 정모의 경우 방송이 제대로 나와야 알겠으나, 모양만 봐서는 1917년에 도입된 군모를 어레인지 한 것으로 보인다.
일단 색깔도 맞지 않다모델로 추정되는 1917년 버전은 1912년 겨울 근무복 군모를 어레인지 한 버전이다.1902년인 설정상 연대에 착용했을 법한 1894년이나 1904년 버전의 군모와 달리 군모의 높이가 조금 높다. 그리고 드라마의 배경이 된 1800년대 후반~1920년대에는 미 해병대 근무복 재킷에 가슴 주머니가 없었다. 또 실물에는 있는 파이핑도 없다. 유진이 착용한 것은 현 미 해병대의 장교용 예복(Dress Blues) 상의를 약간 고친 것이다. 게다가 양쪽 칼라에 단 EGA(Eagle Globes and Anchors; 미 해병대 엠블렘) 배지의 좌우가 바뀌어 있다.
극 중 일본군 육군 대좌 모리 타카시가 군복을 입은 모습 | 육군 보병 소위 시절의 도조 히데키 |
* 초반부 한정으로 모리 타카시가 쓰고 나온 군모는 고증이 잘못 된 군모다. 저 당시 메이지시대 일본군 군모의 경우 졸병과 하사관은 줄이 쳐져있지 않은 반면, 위관급 장교는 1줄, 좌관급 장교는 2줄이 쳐져있어야 하는데 사진 속 모리 타카시는 계급이 대좌인데도 불구하고 졸병과 하사관들이 쓰는 군모를 쓰고 있다. 하지만 제작진측에서 고증오류라는 걸 알아냈는지 그 이후로는 고증에 맞는 2줄이 쳐진 군모를 쓰고 나오긴 한다.
- 애신의 사격 훈련에 깨진 도자기를 사용하는데, 사격훈련의 기본은 표적지 사격이다. 탄착군과 영점을 확인할 수 있으며 설치도 쉽고 뒷처리도 간단하다. 깨지는 물건은 재미삼아 하는 사격이나 일부 클레이 사격등 이동표적에 대한 사격 등에 사용된다. 제대로 고증했다면 나무둥치 같은 걸로 해야한다.
- 3화의 보트신에서 유진이 애신에게 '독일제보다 무겁고 반동이 세지만 명중율이 높은 러시아제 소총'을 권하는데 그 시점에서 독일제보다 좋은 러시아제 소총은 본인이 암살에 사용한 모신나강 소총이다. 물론 당시 독일군이 채택한 게베어 1898은 모신나강과 별 차이 없는 성능을 가지고 있지만, 독일군에 배치된 시점이 1901년으로 작중 연도인 1902년에 애신이 입수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므로 문제가 많던 게베어 1888을 사용하고 있었다면 말이 되는데... 극중에서 애신이 실제로 사용한 외국제 소총은 레버액션 소총인 Winchester Model 1894이다. 미국회사의 미국총인데다가 100년넘게 만들고 팔리는 전형적인 미국 사냥총인데... 미군인 '유진 초이'가 '독일제 소총'이라고...?
총 새로 할꺼면 독일제 말고 러시아제로 하라고 귀띔해 준 거지사격 장면에서 체구가 작은 애신이 반동을 못 느낀다고 지적받기도 하는데 사실 체구가 큰 미국인이 쏴도 반동이 좀 많이 있는 총이다. 공포탄을 하는 쵤영용 총기이니 반동이 실제없는 것이고, 반동을 표현하려면 총기 자체를 개조하거나 연기자가 움직임을 몸으로 표현해야 하는데, 연기지도에서 그런 부분은 빠진 듯하다. 참고로 공포탄을 사용하는 총기를 반동이 있도록 개조하는 방법은 없다.. 자동권총이나 기관총의 경우 총신을 개조하고 스프링을 약한 것으로 교체해서 자동기구를 움직이게 하는 경우는 있고 그 경우 슬라이드나 노리쇠의 운동에너지로 인한 반동은 있겠지만 실총보다는 반동이 약하다.
- 7화에서 싱글액션 리볼버의 특성을 제대로 살린 장면이 나왔다. 방아쇠만 당기면 발사되는 더블액션 리볼버와는 달리 싱글액션 리볼버는 공이를 젖혀주는 준비단계가 필요하다. 그것을 잘 아는 유진은 자신의 권총을 뺏어서 겨눈 애신에게 '사용할 줄은 아오?'라고 도발하지만 애신은 즉시 공이를 젖혀서 유진을 놀라게 한다.[24] 8화에서는 반대로 경무청 병력들이 오자 유진이 들고 있던 총을 내려놓고 투항하는데 이때 코킹 되어 있던 해머를 다시 앞으로 젖혀 디코킹 후 내려 놓는다. 오발상황이 발생하지 않기 위한 조치.
- 22회에 등장하는 박승환 참령의 군복도 꽤나 고증을 잘하였다. 영관급 장교였기 때문에 카라에 별이 두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고, 1900년에 제정된 상복임을 알 수 있다.
3. 시대 배경 관련
- 티저 영상(2차)에서 최초의 태극기인 이응준 태극기(1882)가 등장한다. 다만 같이 등장하는 성조기가 1882년 사용된 성조기(별 38개 성조기)가 아니다. 또, 2화에서 미군과 스페인군 간의 전투 장면에 등장하는 성조기는 별이 50개이다.(!) 참고로 전투 장면 중에 스페인 진영에서 펄럭이던 스페인 국기 중에 백색 바탕의 적색 X십자기는 부르고뉴 십자기로 1840년대 이전 스페인 제국이 사용하던 깃발이다. 적황색의 적심기는 국장이 없는 깃발이 걸려있다.
- 드라마 정보에는 1900년도 전후의 구한말이 배경이라 알려져 있었는데, 미서전쟁이 끝나고 미국이 스페인의 영토를 얻었다는 언급과 함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나오는데, 이러한 연출 때문에 미서전쟁이 루스벨트 시기 일어난 전쟁이라 오해할 수 있지만 실제 미서전쟁이 발발하고 전후처리까지 완료한 것은 모두 전임 대통령 윌리엄 매킨리 때의 일이다. 당시 루스벨트는 해군 차관보였다. 1화에서 이병헌에게 암살된 로건의 사망년도가 1902년이었다. 또한 화면에서 한양에 노면전차가 다닌다. 한양에 노면전차가 운영을 시작한 해는 1899년이므로 고증에 맞다.
-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유진 초이를 직접 불러 미션을 부여한다는 장면은 매우 비현실적인 일이다. 당시만 해도 미국의 인종차별은 매우 심했고, 인종차별은 둘째친다 해도 설령 백인에다 사관학교 출신의 엘리트라 하더라도[25] 일개 대위를 무려 대통령이 직접 불러 임무를 내린다는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굳이 미국의 인종차별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와패니즈 수준의 일빠였던 점만 생각해봐도 유진 초이를 개인적으로 부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시어도어는 "조선은 미개하고 문명화되기 글러먹은 나라라 문명국인 일본에 의해 지배받아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극도로 조선을 싫어했으며, 반면 추신구라를 탐독하고, 사무라이에 심취했을 정도로 일빠였다.(물론 국익 등 공적인 문제에서는 꺼림없이 강경 대일정책도 병행했었지만.)
- 머나먼 타국에 혈혈단신 떨어진 유색인종 고아가 미군 장교가 되는 것은 극의 재미를 위한 설정으로, 적어도 20세기 초까지는 미군에서 유색인종이 장교가 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게다가 특히나 인종 문제에 극히 보수적이었던 해병대 장교로 등장하는 건 더욱더 현실성이 떨어진다. 실제 미 해병대 최초의 유색인종 장교는 1943년이 되어서야 나왔고, 백인 해병대원을 지휘한 최초의 아시아인종 장교는 1946년 임관한 중국계 미국인 커트 추엔 리(Kurt Chew-Een Lee, 呂超然)로 샌프란시스코 태생의 네이티브인데도 부대 내에서 극심한 인종차별에 시달렸다. 인종차별 사실은 스미소니언 채널의 다큐에서 다뤘을 정도. 차라리 인종 문제에서는 그나마 관대한 편이었던 미 육군이나 제정 러시아군의 장교가 그나마 어느정도 가능한 설정이었다.[26][27] 아무래도 미 군복 중 해병대 정복이 그나마 옛날과 크게 달라진 바 없이 구하기 쉽고 무엇보다 옷빨이 끝내줘서 일부러 해병대로 설정한 듯하다. 게다가 스토리 진행을 위해 실제로 재외 미국 외교공관의 경비를 담당하는 해병대로 설정할 필요도 있었을 것이다.
- 유진과 카일이 대화할 때는 물론 루스벨트 등의 순수 미국인들도 조선/대한제국을 Joseon(조선)이라고 지칭하며, 1화에 나오는 지구본에도 조선이 Korea가 아닌 Joseon으로 표기되어 있다. 카일은 유진과의 개인적 친분 때문에 영향을 받았다고 치더라도, 외국에서는 조선/대한제국을 거의 일관되게 Korea로 지칭하였지, 현대식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대로 Joseon이라고 표기한 예는 없었다. (심지어 대한제국 정부에서는 잠깐 'Empire of Dai Han'이라는 영문국호를 밀었던 적이 있으나, 다른 나라들이 거의 무시하고 그냥 계속 Korea라고 불렀으므로 어쩔 수 없이 Korea라는 영문 국호를 받아들였다.) 굳이 조선이라고 적을 것이라면 차라리 마지막화 유진의 묘비에 적힌 표기법처럼 'Chosen'이라고 적는게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 심지어 대한제국 성립(1897년) 이후에도 작충 초·중반에 한국인·일본인·미국인과 한국어·일본어·영어를 막론하고 모두들 대한제국을 그냥 '조선'이라고 부른다. 심지어 황제 앞에서나 황제 스스로도 '조선', '조선인'이라는 말을 쓰는데, 일반 백성들이 새 나라 이름을 잘 몰라서 옛 이름을 쓰면 몰라도 황제 앞에서, 또는 황제 스스로 왕국 시대에 쓰던 이전 국호를 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당시 사료에 따르면 공문서는 물론 모든 출판물이 매우 엄격하게 '대한제국', '한국', '대한'이라는 국호를 지켜 사용하였다.[28] 작중 후반으로 가면서 '대한제국', '대한'이라는 말을 (적어도 황궁에서는) 주로 사용하기는 한다.
- 유진의 미 공사관 집무실에 놓인 지구본은 한국만 Joseon이라고 적혀있을 뿐,[29] 당시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몽골이 표시되어 있는 등 어이없게도 현대 세계를 묘사한 지구본이다. 국내 정서를 고려하였는지 동해에는 아무 표기도 되어 있지 않다.
- 1화에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필리핀, 괌 등을 획득했으며 앞으로는 중국과 그 주변국이 미국의 미래"라는 발언을 한다. 실제로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미국의 태평양 진출에 관심이 많았고,[30][31] 고립주의로 대변되는 기존의 먼로주의자들과는 달리 당시 점차 영향력을 넓혀가던 알프레드 마한 등 제국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아 대외 영향력 확장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32][참고문헌] 다만 조선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일본의 몫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34] 별로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으나 이 또한 제국주의자로서의 신념에 기반한 것이었다. 당시 영국과 일본은 적극적인 로비를 통해서 러시아가 미국의 중국에 대한 이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반러 감정을 부추기고 있었고, 미국의 관심 또한 러시아 제국의 중국과 북태평양으로의 세력 확장 야욕을 견제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 일본의 러시아 강경책에 협조적이었으며[35], 나중에는 일본의 한국 지배를 인정하는 가쓰라-태프트 밀약(1905년)을 맺었던 것이다. 1903년부터 이미 루스벨트는 그런 움직임을 보였고, 1905년 을사조약 직후 주한미국공사관을 철수하라는 명령을 내린다.[36] 그러므로 극중 이병헌이 주한미국공사관에 주둔하는 장교로 조선에 온 것이라면 곧 철수를 명받게 될 것으로 보였다. 실제로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유진은 철수를 명받는다.[37]
- 1화에서 신미양요가 발발하는 때에 버젓이 미국인 선교사가 도자기를 사러 김갑수를 찾아오는데 이는 명백한 고증 오류이다. 조선이 하멜이나 벨테브레와 같은 서양인과 조우하는 등 서양과의 접촉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당시 조선은 흥선대원군의 집권기이다. 이미 1866년에 병인양요를 겪었고 이 2차례의 양요[38] 사이에 그 유명한 오페르트 도굴 사건이 있었다. 이미 한 차례의 양요와 왕가의 묘를 도굴하는 사건을 겪은 조선에선 당시 척화론을 지지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백주대낮에 양이(洋夷)가 조선의 거리를 활보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당시 조선에서 활동하던 가톨릭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프랑스인 사제들은, 조선 관리들과 비신자들의 눈을 피해 숨어 다녔다.[39] 그리고 무엇보다 당시 기준으로 조정의 허락 없이 양이와 물건을 교역한다는 것은 대역죄로 참형을 당해도 할 말이 없는 중죄였다. 제너럴 셔먼호 사건 당시 양이, 즉 서양인들이 평양 시민들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미루어 민중들의 당시 서양에 대한 거부감과 불안감을 생각하더라도, 팔도 전체에 척화비를 건립한다는 둥 조선 조정은 척화를 부르짖고 있었다. 서양인, 그중에서도 미국인이 자유롭게 조선의 거리를 활보할 수 있게 된 시기는 최소한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이후라고 할 것이다. 신미양요 때 조선을 상대로 한 포함(砲艦) 외교 시도가 실패한 이후, 미국은 조선을 개항시킨 일본의 방해로 수교가 여의치 않게 되자 청의 알선으로 조선과 수교하게 된다. 최초로 조선에 입국한 미국인은 호러스 뉴턴 알렌[40]으로, 그것도 1882년 조-미 수교가 이루어지고 나서 2년 후인 1884년의 일이었다. 즉, 신미양요 중 어디에선 미국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데, 다른 어디에선 미국 선교사가 버젓이 조선에 들어와 자유롭게 나돌아다닌다는 것은 심각한 설정 오류다. 게다가 미국인으로서 한국어를 작중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상당한 수준으로[41] 구사하려면 꽤 오랜 시간을 조선에 머물러야 가능한 일인데, 1866년 제너럴 셔먼호에 타고 있었던 토마스 선교사가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는 설정 정도가 아닌 한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 이미 17~18세기부터 원조 중국 도자기조차 일본 도자기에 밀려서 모양을 흉내내던 시기마저 지나고, 19세기는 유럽의 동양 도자기 붐이 끝나 그 상품 가치를 잃고 있었다. 당시 유럽 각국의 왕실마다 직속 도자기 제조 회사 등을 차려놓고 화려한 디자인의 제품을 쏟아내고 있었을 때였다. 병 모양을 넘어 도자기 조각상 등 모양과 장식 형태도 다양해졌었다. 독일에서 마이센 자기가 성공한 이후에는 일본에서 도자기 무역은 쇠퇴하고 일본은 생사를 주력 수출품으로 하게 된다. 이 생사 무역도 미국에서 나일론이 발명된 이후에는 사그러들게 되지만..[42] 즉 극중에서처럼 당시 서양인들이 도자기를 사러 목숨을 걸고 조선과 밀무역을 할 정도의 가치는 거의 없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서양에 조선의 도자기가 조금이라도 가치를 인정받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조선이 망한 후 일본인들의 도굴로 고분 속에 함께 부장품으로 묻혀있던 고려청자가 출토된 이후일 것이다. 개항 이후 조선에서 수출품은 생사나 인삼, 그중에서도 홍삼정도였다고 할 수 있다. 아니면 그나마도 운산 금광의 금이나 함경도, 강원도의 목재처럼 이권을 뺏기고 수탈되던 정도였다. 물론 상품으로 내놓기 위해 도자기를 사러왔다고 한다면 이상한 상황이지만, 미술품으로서는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실제 국외로 반출된 대다수의 조선의 백자, 분청사기, 청화백자 들은 상당수는 외국인이 조선땅에서 수집한 것들이다.
- 1화에서 어린 유진이 짐짝 속에 숨어 미국 뉴욕에 도착하는데, 유진이 탄 배의 창 밖으로 건설 중인 브루클린 교가 등장한다.[43] 드라마 초반을 통틀어 브루클린 교가 상징적으로 여러 번 등장하는데, 1화 오프닝에선 유진이 미국에 온 후 장성할 때까지 스크랩해 둔 신문 기사들 중 완공 시의 브루클린 교 주탑에서 불꽃을 발사하는 모습이 삽화로 등장, 두번째로는 앞서 언급한 어린 유진이 뉴욕에 처음 도착할 때 선창 밖으로 아직 건설중인 모습으로 등장, 이후 부둣가에서 온갖 잡일을 하면서 백인 아이들에게 인종차별로 괴롭힘 당하는 장면 등에서 배경으로 등장, 미군들이 지나가며 백인 소년들에게 괴롭힘 당하던 어린 유진에게 초콜릿을 던져주고, 이를 본 유진이 댕기머리를 자르고 미군이 되기로 결심하는 장면에서 배경으로 등장, 마지막으로 미 해병대 대위로 장성한 유진이 대한제국으로 파견될 때 뉴욕을 떠나고 한성에 당도하는 장면에서 브루클린 교가 독립문으로 바뀌는 연출로 등장한다. 아직 뉴욕과 시카고 등지에서 마천루 경쟁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이전 시대이고, 당시 미국(또는 뉴욕)을 상징하는 거의 유일한 랜드마크이다보니 자주 등장하는 듯. 아직 파나마 운하가 건설되지 않았는데, 남미를 빙 돌아 뉴욕까지 간 과정에 대해서는 9화에서 유진 초이가 애신에게 자신이 미국까지 가게 된 상황을 말하면서 "열흘쯤이면 미국에 도착할 줄 알았는데, 무려 한 달 동안 배 안에 있어야 했다."는 대사로 설명한다.
-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1화에서 유진이 뉴욕에 도착할 때 배의 창 밖으로 건설 중인 브루클린 교가 보이는데, 이때 당시 뉴욕의 전경을 보여 주는 다른 장면에서는 완전한 형태로 완공되어 있는 퀸즈버러 교(루스벨트 섬을 관통하여 맨해튼과 퀸스를 잇는 다리)가 보인다. 그런데 실제 브루클린 교는 1869년에서 1883년에 걸쳐 건설되었고, 퀸즈버러 교는 이보다 더 늦은 1901년에 착공되어 1909년에 완공되었다. 즉, 실제로는 퀸즈버러 교가 건설되기 이전에 이미 브루클린 교가 완공된 상태였으므로 1화에서 브루클린 교는 건설 중인데 퀸즈버러 교는 완성된 상태로 등장하는 것은 명백한 고증오류이다.[44]
- 1화에서 유진이 뉴욕 시내를 돌아다닐 때 고가철도로 증기 기관차가 다니는데 실제로 뉴욕 지하철 개통 이전에는 고가철도가 다녔었다. 뉴욕 지하철 항목 참조. 이 고가철도가 지하로 묻히는(?) 것은 1888년 뉴욕을 강타한 대 눈보라 사태 이후로, 1902년 개통하였다. 뉴욕 고가철도는 1860년대부터 성업중이었다.
- 극중 1875년 고애신의 부모로 출연한 진구, 김지원이 의병 활동을 하다가 죽은 것으로 나오는데, 구한말의 의병은 1895년 단발령으로 인해 일어난 것이 거의 최초였고 대개 양반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강화도 조약이 체결되고 조선이 개항하기도 전인 1875년에 친일파를 암살하려는 의병이 있었다는 것은 사실상 설정오류이다. 게다가 1875년이면 단발령은커녕 조선이 개항하기도 전이었으므로 극중에서 나오는 것처럼 의병의 복식과 행동이 서구식일 수 없다. 작중 나오는 복장은 오히려 1910~1920년대 일본에서 활동하던 유학생 지하 독립운동 단체를 연상시킨다. 아무래도 1905년 당시 기준으로 고애신이 어느 정도 나이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런 과도한 설정을 한 것 같다. 이런 시대적 오류 같은 경우 후술할 1920~30년대가 배경이었던 과거 시나리오에서 고치지 않고 그대로 주요 설정을 적용하다 보니 생긴 문제로 보인다. 실제로 배경을 약 20년 정도만 뒤로 미루면 언급된 고증 문제 상당수가 해결될 정도.
- 1화에서 이완익이 친일파로 갈아타며 이토 히로부미를 만나 나라를 바치느니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국가 간의 이익을 첨예하게 다투는 국제 외교 무대는 개인 한 사람의 언변만으로 좌우되는 것이 아닐 뿐더러, 1870년대 초중반 당시의 이토 히로부미는 아직 정치적으로 거물급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 그가 정계에서 출세하게 되는 시점은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 기도 다카요시가 사망한 이후로, 정확히는 1881년 규슈 출신인 오쿠마 시게노부를 아타미 회담에서 쳐내고 이토의 죠슈파와 사이고 츠구미치 등의 사츠마 연합이 정국을 장악한 후이다. 그리고 1885년 초대 일본 내각총리대신에 오른다. 1871년 당시 이토는 일본 공부성(오늘날 한국의 산업통상자원부에 해당)에 소속되어 식산흥업(산업진흥)에 힘쓰고 있었다. 그리고 5월부터 11월까지 재정정책 및 통화정책에 관한 거시경제에 대해 배우러 미국에 가 있었다. 11월 잠시 귀국했다가 바로 다시 미국에 갔고(이와쿠라 사절단), 그의 샌프란시스코 도착 연설인 '일장기 연설(日の丸演説)'이 한 때 일본 교과서에 실린 적이 있다. 1873년엔 베를린에 같은 목적으로 가는 등, 이토는 사실 군 경력보다는 재무·경제 분야 쪽으로 큰 사람이었다. 일본 극우들이 안중근 의사를 폄하하면서 온건파를 쐈니 어쩌니 하는 말을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 당시 일본 내의 정한론자들의 주장과 비교하면 이토의 입장은 사실상 그들과 반대였다.[45] 그러나 대체 역사물에서 이토의 인지도 정도면 극에 써먹기에 충분하다.
- 1화에서 김 판서가 김희성의 유학을 위해 소작으로 내놓았던 땅을 매각하려 하자, 소작농이 당장 먹고 살 길이 궁한데 소작하던 땅을 갑자기 매각하냐면서 김판서에게 항의하며 애걸복걸하는 장면이 있는데, 당시에는 땅을 팔더라도 소작농의 소작권은 그대로 유지되었으므로 시대정황에는 맞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소작농이 자기 땅에 경작할 권리는 도지권(賭地權)이라는 권리로 보호받았다. 지주가 땅을 팔더라도 지주만 바뀔 뿐이지 소작권이 팔리는 것은 아니고, 소작농이 자기 소작권을 가져다가 팔 수도 있고, 상속·증여도 가능했고, 심지어 저당을 잡히고 다른 현물이나 돈을 빌릴 수도 있었다. 소작권이 법적으로 공중분해되어 지주가 소작농이 껴있는 땅을 마음껏 내다팔 수 있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의 토지조사사업 이후의 일이다. 김 판서의 인정사정없고 못된 인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장면이지만, 당시 시대정황을 감안하면 소작농은 지주가 바뀐다고 해서 자기 경작권도 날아가는 것은 아니니 구태여 지주에게 매달리거나 애걸복걸할 필요가 없다. 소작농이 김 판서에게 빚이 있다는 묘사가 있는데, 차라리 소작농을 자작농으로 바꾸거나, 저당잡힌 땅과 소작권들을 모조리 압류한다고 했어야(그 정도는 되어야 손주 시계를 사주고 유학 보낼 돈을 마련할테니) 시대정황상 자연스럽다. 지주들이 소작농들의 경작권을 무시하고 처분하는 묘사가 작중 곳곳에 등장하고 이완익의 출생 배경에도 동일하게 사용되는데, 일제강점기나 해방 이후를 다룬 소설인 토지와 태백산맥 등에서 묘사되는 악덕 지주의 모습을 그대로 갖다 붙인 것으로 보인다.[46]
- 8화에서 구동매가 애신을 막기 위해 경성역에서 앉아 있는 장면에서 역 표지판에 적힌 '경성'의 영문 표기가 현재 우리가 사용중인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대로 '경성'을 그대로 적은 'Gyeongseong'이라고 쓰여 있고, '한성'이 영문 서신에서 수시로 'Hansung'이라고 적혀 나온다. 그러나 그 당시에 널리 쓰이던 한성/서울의 영문 표기는 현재와 같이 'Seoul'이었다. 일반 백성들은 '한성', '경성'과 같은 공식 한문 이름을 쓰기보다는 입말로 '서울'이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극에서도 일반 백성들이 말할 때는 '한성', '한양', '경성'보다는 '서울'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차라리 고증에 맞다. 서울특별시 문서 참조.) 심지어 일제가 한성부를 경성부로 개칭하면서 공식 영문표기를 'Keijo'로 바꾼 이후에도 'Seoul'이라는 표기는 쉬이 바뀌지 않았다. 동아일보 영문판 등을 보면 일제강점기인데도 발행지를 'Seoul'이라고 적어 출판하였음을 알 수 있다. 작중 기차역 표지판과 달리 한성의 노면전차에는 'Seoul'이라고 적혀있는데 실제 노면전차 사진을 고려한 고증에 맞다.
- 유진이 한국에 돌아왔을 시점은 이미 갑오경장으로 궁내의 조선의 전통 복식과 장발을 모두 포기하고, 서양식으로 바꾼 후였다. (정확히 표현하면, 갑오경장 후에도 전통복식은 한동안 유지되긴 했다. 군신의 복식을 서양식으로 바꾼 것은 1900년의 일이다.) ~
게다가 대한제국이 수립되어 고종이 황제가 된 것도 1897년. 따라서 1902년의 고종 임금과 신하들은 모두 단발에 서양 복식을 입고 있어야 한다.~ 애초 위와 같은 글이 기재되어 있었으나 사실이 아니다. 대한제국 시대에도 황제와 중신들은 모두 전통 곤룡포와 조복을 서양식 예복과 겸용하였다. 외부대신으로 나오는 이세훈 또한 단발을 하고 조복과 예복을 겸용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것이 고증에 맞다. 7화 전까지는 조선 복색 일색이나 8화가 넘어가면서 서양 복식을 한 고종이 계속 등장한다. 10화에서 글로리 호텔에 유진을 등용하러 온 모습은 서양 신사의 복식을 한 모습이었다.
- 당시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는 공간상의 제약이 없는 이상 우종서(우측부터 세로쓰기)로 적는 것이 사실상 표준이었는데, 우횡서와 좌횡서(현대식 가로쓰기)도 꽤나 많이 나온다. 당시 존재할 수 없는 컴퓨터글꼴은 덤. (사실 이건 한국 시대극의 고질적 문제이기 때문에, 다른 시대극에 비하면 미스터션샤인은 그나마 준수한 편이긴 하다. 또한 유진은 미국에서 오래 지내 영어가 익숙할 것이므로 한글을 쓸 때 좌횡서로 적는 것은 그럴 만한 개연성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참고로 우종서(세로쓰기)의 경우 한국에서는 1970년대까지도 통용되었는데, 실제로 그 당시 출판된 책들을 보면 거의 다 우종서로 적혀 있다.
- 10화에서 히나가 글로리 호텔에서 일할 직원을 뽑는 광고를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영어 등 4개국어로 적어 게시하는데, 우횡서에 컴퓨터글꼴이다. 더 큰 문제는 중국어가 간체자라는 것. 당시에 간체자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우리가 흔히 중국어라고 생각하는 현대 중국어는 1919년 신문화운동 내지는 5.4 운동을 기점으로 해서 생겨난 백화문을 근간으로 하고 있으며, 이와 달리 작중 배경과 동시대인 당시의 청나라에서는 대한제국에서도 자주 통용되던 문언문으로 한자를 표기했었다. 일본어의 한자도 신자체로 적혀있는 것도 고증오류.[47]
- 극중 안창호가 나와서 "근데 미국이 가장 먼저 대한과 손을 잡아놓고, 그 손을 가장 먼저 놓고, 대한에서 공사관을 철수시켰고요."라는 언급을 통해서 미국이 가장 한국에서 먼저 철수했다는 사실이 나왔다.
- 공개된 쿠도 히나의 사진을 보면, 머리에 유녀들이 하는 장식을 꽂고 있다(...) 일본 유녀들의 삶을 그린 일본 영화 사쿠란에 잘 묘사되어 있다. 참고로 우리가 아는 게이샤는 우리 나라의 기생 황진이처럼 지적이고 예술적인 면이 부각된 일종의 예인으로 대접받으나, 유녀는 그야말로 매춘부이다. 작중 쿠도 히나의 사회적 지위를 생각한다면 고증 오류로 볼 수 있다. 첫 방송 이후, 사진뿐만 아니라 극중에서도 계속 유녀 스타일의 머리 장식을 꽂고 나온다. 이미 최종화 대본이 탈고된 상태인 만큼 사전 촬영도 상당히 진행되었을 것이다. 사실 이건 미스터 션샤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 근대 문화에 대한 무지로 인한 한국 사극의 고질적인 문제로 보는 것이 맞다.
- 3화에 미군이 조선에 주둔하게 되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는 역사적 사실이다. 다만 어디까지나 미국인과 미국 공관을 보호하기 위해 주둔한 것일 뿐이기 때문에 드라마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일본에 맞서기 위해 조선/대한제국의 일에 개입한다든지 하는 일은 일절 없었다. 실제로는 오히려 당시 미국과 일본은 외교적으로 상당히 우호적인 관계에 있었으며 미국은 1904년 러일전쟁이 터졌을 때도 일본을 지지했다. 이러한 정황은 당시 신문 일러스트에 잘 나와 있다. 그리고 이 시기 이렇게 일본 제국의 팽창을 방조한 미국은 40여년 후 태평양 전쟁에서 막대한 희생을 치르게 된다.
- 5화 초반부에서 부녀자들의 궁시(弓矢) 대련이 나오는데, 손가락과 활시위가 90도 각도가 되도록 검지와 중지로 꽉 쥐는 양궁식 사법(射法)이 아니라, 시위와 화살을 엄지와 검지로 쥐는 국궁의 파지법과 사법이 제대로 잘 고증되었다. 엄지 손가락에 손가락을 보호하기 위해 끼는 깍지도 끼고 있다. 가즉으로 된 깍지를 사용 하였는데 맨손으로 쏠 경우 활줄에 손가락을 다칠 수도 있고 잘못하면 손가락이 날아갈 수도 있다.
- 5, 11화에 짜장면이 나온다. 짜장면 항목에도 나와 있듯 1900년대 배경인 드라마에 짜장면이 나오는 건 문제가 없다. 다만 1960년대 이후에 나오는 한국식 짜장면의 형태인 것은 옥에 티이다. 고증을 살리고 싶었다면 색을 다르게 했어야 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파는 춘장은 99%가 단일 회사(화교 기업이다)에서 공급하고 있으며 1960년대 이후는 캬라멜을 첨가한 춘장만 팔고 있기 때문에 중국에서 면장을 수입해다 볶아먹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정 작장면과 비슷하게 하고 싶으면 상하이식으로 고기볶음을 얹은 로미엔을 만들어 먹는 방법이 있긴 있다.
- 7화에 빙수가 등장한다. 빙수 자체는 1900년대 초에도 존재했지만, 문제는 그 모양새가 현대의 파리바게뜨 빙수다. 각종 과일 등 빙수에 화려하고 풍성한 토핑이 올라가게 된 것은 1990년대 이후의 일로 그 이전에는 팥과 젤리 정도가 고작이었고 가격도 지금처럼 비싸지 않았다. 제작과정에는 대패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대패를 사용해서 저 정도 양의 빙수를 만들려면 시간이... 또한 빙수를 파는 제과점에 화려한 컬러의 일러스트로 인쇄된 포스터가 붙어 있는데 그정도 크기의 컬러인쇄물을 고작 제과점에서 인쇄해서 붙여놓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1902년은 필름인쇄술이 발명되기 훨씬 전의 시대이며 동판 인쇄 등의 비싼 방식이 아니면 컬러 인쇄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냥 PPL을 위한 이공간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불란서제빵소에서 꽃빙슈를 먹는 설정인데 이는 파리바게뜨 꽃빙수 PPL이다.
- 10화에 크라운 코르크로 밀봉된 맥주를 병따개로 따는 장면이 등장한다. 크라운 코르크 병마개는 1890년대에 개발되어 이미 상용화된 상태이므로 적절한 고증이나 병마개만을 딸 수 있도록 구멍에 블레이드가 달린, 지금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형태의 병따개가 등장한것은 1960년대 이후의 일이므로 굳이 병마개를 따는 장면을 넣는다면 쇠꼬챙이나 숟가락, 열쇠 따위로 따는 것으로 묘사해야 맞다. 23화에서는 유진이 이빨로(...) 병마개를 딴다.
- 13화에서 바다 구경을 간 유진과 애신이 전투식량으로 보이는 통조림을 먹는데, 이 통조림 뚜껑이 원터치이다. 원터치 통조림은 에멀 프레이즈(Ermal Fraze)에 의해 1959년에 이르러서야 발명되었기 때문에 극 중 등장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 시기는 아직 대검과 망치로 통조림을 따거나 현대의 몽키 스패너와 비슷한 크기와 인상을 가진 무식한 따개로 따던 시절이다. P38이니 51이니 하는
전투기간편한 따개도 아직은 없던 시절.
- 16화의 애신의 입궁 장면에서 함안댁이 일식을 보고 놀라는 장면 하단 부분에 궁궐 문이 나오는데 대안문(大安門)이라 쓰여 있다. 현재의 덕수궁 정문으로 쓰이는 대한문(大漢門)으로, 원래 이름이 대안문이었다가 대한문으로 개칭된 것이 1906년의 일이므로 작중 다루는 시기보다 후대의 일이다. 세세한 명칭 고증을 올바르게 한 점은 칭찬할 부분. 그런데 23화에서 1907년 시점에선 대한문(大漢門)으로 개칭되어야 하는데 여전히 대안문(大安門)으로 나온다.
- 20화에서 러일전쟁이 발발하고 유진 초이는 본국 귀국 명령서를 받게 되는데, 서류에 적혀 있는 미국 대통령 이름이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아닌 프랭클린 D. 루스벨트로 잘못 적혀 있다. 비중은 적지만 이 드라마에서 가장 큰 고증오류 중 하나.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체결하여 일본이 조선을 집어삼키는 것을 사실상 방관한 사람과, 제2차 세계 대전을 연합국의 승리로 이끌고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의 자주 독립을 명시하여 한국의 광복을 사실상 가능하게 만든 사람을 헷갈린 것이다. [48]
비록 일빠인 건 생략되었으나싱크로율 높은 시어도어 루스벨트 역 배우까지 캐스팅해놓고,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한 명언인 "Speak softly and carry a big stick"(말은 부드럽게 하고 큰 채찍을 들고 다니라)를 중요한 상황에서 명대사로 써먹은 드라마가 이런 실수를 했다는 건 꽤 의외.
- 쿠도 히나와 김희성 등 등장인물들이 필터가 달린 현대식 담배를 자주 피우는데 당시에는 필터 달린 담배가 없었고 전부 그냥 연초를 만 궐련 또는 파이프 담배였다.
- 티저 영상 초반에 등장하는 전투 신은 신미양요의 광성보 전투를 묘사한 듯하다. 그런데 신미양요는 6월 한여름에 있었는데 영상 속 배경은 아무리 봐도 최소 가을이다.
2차로 공개된 티저 영상에 나오는, 신미양요로 추정되는 장면에서는 주변 산들의 신록이 푸르다. 여름 배경으로 제대로 그려낸 듯하다.
- 1화에서 신미양요 때 미 해군에게 포로로 잡힌 조선군을 조선 조정이 외면하기만 하는 것처럼 그리고 있는데, 미 해군에서 협상카드로 제시한 포로 교환에 조선 조정이 응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미 해군이 포로들을 석방한 뒤에는 조정이 정부 차원에서의 치료 등 포로들에 대한 최소한의 처우는 하였다.
- 경운궁(덕수궁)의 정전인 중화전이 현재와 달리 중층으로 나온다.[49] 작 중 배경인 1902년에는 중층으로 나오는 게 맞다. 다만 중층의 중화전은 1904년에 경운궁 대화재 사건으로 불타고 현재의 단층 건물로 재건되었으므로 1907년에는 단층으로 나와야 한다. 그러나 1907년에도 여전히 중층으로 나오므로 고증오류.
- 주 배경 중 하나인 글로리 호텔의 경우 1902년 문을 연 손탁호텔이 모티브로 보인다. 독일인 여성 손탁이 주한 러시아 공사 베베르의 추천으로 궁궐에 들어가 1895년 고종에게 정동에 있는 가옥을 선물로 받고 그걸 1902년에 호텔로 개조한 것. 1층은 보통실과 식당, 2층은 귀빈실로 운영한 것도 극중 글로리 호텔과 유사하다. 또한 손탁호텔의 건물 외관 사진을 봐도 글로리 호텔과 판박이다. 다만 글로리 빈관은 정동이 아닌 명동(진고개)에 있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 작중 김희성의 고뇌 신에서 자주 등장하는 시계. 김희성의 회상 속에서 마당에서 사람이 두들겨 맞고 있는 와중에 개화와 일본 유학 기념으로 조부에게 받은
오파츠쿼츠 시계는 이 당시에는 절대로 존재할 수 없다. 초침이 째깍째깍 1초씩 움직이는 (데드비트) 쿼츠 무브먼트는 1927년에 미국 벨 연구소의 연구원인 워렌 메리슨이 크리스탈 발진기를 응용해서 만들었고, 실용화된 것은 1967년에 발표되고 1969년에 만들어진 세이코의 아스트론(Astron)이기 때문. 작중 시점인 1902년 당시에는 전세계 그 어느 나라에서도 석영 발진기 (quartz oscillator) 장치에 전기를 흘려넣어 진동시키고 회로에 집적된 진동수를 계산할 소형 컴퓨터 IC칩(...)을 제작할 수가 없다. 미국의 IBM이 설립된 시기가 1911년이다. 저 시대의 회중시계는 당연히 기계식 무브먼트로 초침이 초당 6진동 수준으로 톡톡톡톡톡톡 흘러가는 저진동 기계식 무브먼트였다. [50]
- 유진 초이는 자신을 소개할 때 계급을 미 해병대 대위라고 하는데, 당시 한국에는 대위(大尉)라는 계급이 없었다. 대한제국군 문서에서 보는 바와 같이, 현대의 대위·중위·소위에 대응하는 계급의 명칭은 각각 정위(正尉), 부위(副尉), 참위(參尉)였다. 따라서 올바른 고증대로 하자면 유진 초이는 자신을 소개할 때 미 해병대 정위라고 하는 것이 맞다. 이러한 정·부·참의 계급 체계는 대한제국군에 이어 광복군에까지 사용되었다. 따라서 유진 초이가 활동할 당시에는 대위라고 하면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계급이었던 것이다. 다만 이는 시청자를 고려한 부분일 것이다. 당시에는 '대위'가 생소한 단어였겠지만 반대로 현대 한국인들에게는 오히려 '정위'가 생소한 단어일 테니.. 하지만 대사는 고증대로 '정위'라고 하되 자막으로 '현대의 대위에 해당하는 계급' 정도로 부연설명을 넣어 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51]
- 이완용이 일본어를 하지 못해 이토 히로부미에게 구박을 받는 모습이 나온다. 실제 이완용은 나라를 일본에 팔고도 정작 자기 자신은 죽을 때까지 일본어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고증에 맞다.
- 1907년 일제가 순종의 칙령 형식으로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하려 하자 박승환 참령이 권총으로 자결하였고, 이에 분개한 대한제국군과 일본군 사이에 벌어진 남대문 전투 장면이 역사대로 꽤 잘 재현되었다. 실제로 이때 살아남은 대한제국군 잔여 병력의 상당수가 정미의병에 가담하였다.
- 21화 및 22화 초반 애신과 유진이 작별인사를 나눈 후 낭인들로부터 습격을 받아서 도망칠 때 시모노세키 항에서 몇 시간 만에 달려서 도쿄의 주일미국공사관에 도착하는 걸로 묘사되는데, 일본의 지리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당연히 말도 안되는 장면임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이 당시 도쿄의 주일미국공사관은 지금의 도쿄 아카사카에 위치한 주일미국대사관 자리에 있었다. 게다가 작중에서는 뉴욕 행 여객선 또한 시모노세키 항에서 출항하지만 시모노세키는 부산항에서 가까워 우리에게만 익숙할 뿐 일본 5대 항구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현재도 시모노세키를 오가는 여객선은 주로 한국·중국행이다. 게다가 이 마저도 중국행 여객선은 오사카, 고베, 모지(門司)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미국에 의해 개항한 일본의 대표적 항구는 요코하마 항이며, 현재도 일본 제1의 항구이다. 물론 작중 애신과 유진이 여객선 출항 2시간 전에 도쿄에 있는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고 시모노세키 항에서 작별하는 등, 실제로는 도쿄에서 981 km 떨어진[52] 시모노세키 항 자체가 아예 도쿄의 부속 항구
요코하마쯤 되는 걸로 묘사되는 것 같기도 하다.그냥 극 중 고애신과 유진이 초능력을 써서 순간이동을 한 듯이쯤되면 평행세계.
- 작중에서는 뉴욕행 여객선이 일본에서 아무렇지 않은 듯 출항하나, 아시아에서 태평양을 건너 뉴욕으로 가는 데 필수적인 파나마 운하는 1914년에서야 완공되었다. 기실 일본뿐만이 아닌 한국이나 중국 등 동아시아권 국가들은 지리적으로 태평양을 끼고 있기 때문에 당시 아시아에서 뉴욕 등 미국 동부로 가려면 같은 태평양을 끼고 있는 서부의 샌프란시스코까지 여객선을 타고 간 다음 철도를 통해 미국 대륙을 횡단하여 동부로 이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53] 이러한 이유로 유진이 처음으로 미국에 발을 디딘 곳은 사실 뉴욕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가 되어야 하는 것이 시대상을 감안할 때 좀더 자연스럽다. 다만 유진의 첫 정착지가 뉴욕으로 설정된 이유는 아무래도 드라마 스토리 전개상 '이역만리 타국에서 서양인들 사이에 홀로 덩그러니 있는 동양 이방인 꼬마'의 그림을 만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 당대 샌프란시스코에서는 특히 중국인을 포함한 동아시아인의 모습을 찾아보기 쉬웠기 때문.[54]
- 22화에서 히나가 모친의 묘소를 찾으러 강원도 교우촌에 방문하는데 수녀를 만나는 성당 내부 구조가 십자고상, 제대, 감실이 따로 노는 전형적인 현대식 성당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런 성당 구조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바오로 6세식 미사가 정착된 후에나 나타날 수 있고, 당연히 대한제국 시대에는 존재할 수 없다. 트리엔트 미사에 적합한 전통 제대가 설치된 모습의 성당(명동성당이나 약현성당을 연상하면 된다)이 있어야 하는데 강원도에도 횡성에 19세기에 지어진 풍수원성당이 있고, 그곳이 실제로도 교우촌이었으니 그곳을 참고하면 좋았을 것.
- 작중에서 황제를 알현할 때 공사들, 이완익, 유진 초이가 절을 한 번만 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경우도 많은데, 예로부터 삼궤구고두례 타령하며 서양인들을 금수 취급하던 청나라도 이 시기쯤 되면 외국 사절들에게 더 이상 이를 강요하지 않고 공사들이 허리숙여 인사하면 황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례하는 식으로 바뀐 지 오래라 고증이 틀린 게 아니다. 조선 신하들이야 얄짤없이 절을 올리겠지만 황제를 알현할 때는 현재 남아있는 초청장 기준으로 대례복 착용이 일반적인데, 외국 공사도 대신들도 소례복을 착용하고 있다. 다만 비공식적으로 만나는 경우가 더 많으므로 크게 틀린 일도 아니다. 조선에서 참찬 벼슬로 정2품에 오르고 훗날 주한미국공사를 지낸 알렌도 조대비, 명성황후, 고종을 자주 만나며 궁에 드나들었는데 초청장을 받아 대례복은커녕 왕진으로 자주 출입했다.
- 13화에서 이덕문이 관수를 매혹하려 시도할 때 등장하는 지폐는 당시 발행된 갑호태환권 권종으로, 시대 고증에 잘 맞추어 활용했다.
- 러청은행에서 발행한 문서가 극 초반부의 중요 소품으로 등장하는데, 당시에 러청은행이 영업한 것은 맞지만 문서에 적힌 러청은행의 프랑스어 이름은 고증에 맞지 않는다. Banque Russo-Asiatique라 적혀있는데 이 이름은 1910년 러청은행과 북방은행(Banque de Nord)이 합병하여 탄생한 '러아은행'의 프랑스어 이름이다. 고증대로라면 'Banque Russo-Chinoise'로 적는 게 맞다.
4. 기타 배경 관련
- 정동 경운궁(지금의 덕수궁)과 경희궁을 연결하던 돌다리, 홍교(虹橋)가 극중에 등장하는 것이 확인되었다. 다만 문제는 그 홍교에서 20~30m 떨어진 곳에 보신각이 보인다. 참고로 현재 기준으로 종로2가 사거리에 있는 보신각과 홍교 자리는 직선거리로만 1.1km. 논산에 위치한 세트장의 협소로 인한 문제로, 고증 오류보다는 옥에 티로 보인다. 또한 보신각의 형태가 단층 건물로 나오는데, 이게 고증에 맞다. 현대의 보신각 건물은 1979년에 철근 콘크리트로 중건한 2층 건물이므로 고증에 맞지 않는다.
- 1화 배경이 1875년 도쿄인데 1931년에 개축된 지금의 오사카성 천수각이 보인다. 뿐만 아니라 22화에서 대한제국 사절단이 일본 도쿄에서 귀국할 때 오사카성 천수각이 다시 한 번 등장한다. 오사카성 천수각이 아니라 료운카쿠를 그래픽으로 재현했어야 고증에 맞는 건데...
- 10화에서 김희성과 그 부모가 식사하는 장면에서 각자 앞에 식탁을 차려서 먹는데, 저게 정상이다. 상다리 부러지게 잔뜩 차려먹는 풍습은 일제강점기 당시 고급 한식집에서 일본인을 대상으로 "왕공족의 식사를 할 수 있다"며 차려놓은 데서 비롯하였다. 심지어 실제 수라도 저렇게 한 상에다 잔뜩 차리지 않는다. 최소한 3개의 밥상이 들어간다.
- 20화에서 중화전에서 고종과 장포수가 대화하는 신에서, 숭례문의 현판이 달린 방향으로 보아 경운궁 쪽을 보는 각도로 그래픽되어 있다. 즉 앞뒤가 바뀌었단 소리.
- 제물포행 경인선 열차에서 특등실(1등실), 2등실, 3등실이 모두 통로로 연결된 것으로 나온다. 실제로는 특등실과 2등실 사이는 울타리로 막혀 있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바람이 분다 초반부에 보면 이 부분이 고증되어 있다. 또한 특등실 팻말도 좌횡서 한글로 되어 있다.
- 작중에서 평양으로 가는 경의선 열차를 경성역에서 타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오는데, 경의선은 1905년 개통된 이래 줄곧 용산역에서 출발했다. 현재의 서울역이 경의선 출발역이 된 것은 1919년의 일로, 그 전에는 용산역에서 현 경의중앙선을 따라 올라갔다. 더군다나 작중 시기에는 경성역이 존재하지 않았다(!) 8화에서 나왔던 경성역은 1905년 서대문역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현재의 서울역은 1923년까지 남대문역이라는 이름이었으며 서대문역이 종착이었다. 일제가 서대문역을 폐역시키고 남대문역에서 크게 좌로 꺾어 터널을 뚫은 후 기존 경의선과 연결시킨 것이 현재의 선로다.
- 열차 클로즈업 부분에서 철교 부분에 가공전차선이 보인다. 터널을 나와서도 철거된 전차선이 보인다
시대를 앞서간 조선의 철도
5. 기타 옥에 티
- 이완익과 이토 히로부미가 만나 일본어로 대화하는 장면의 한국어 자막이 다소 엉성하다. 배를 세는 단위는 '척(隻)'임에도 "운요호 한 대"라고 번역하거나, 이토 히로부미에게 차관 내지는 돈을 받는 대목의 대화임에도 "오만 원"으로 자막이 쓰였다. 물론 당시 대한제국의 화폐 단위인 '원(圜)'이나 일본 화폐 단위인 '엔'이나 한자 표기만 다르고 의미는 같지만 일본인에게 돈을 꾸어 받는 대화 맥락으로 보아 "오만 원"보다는 "오만 엔"으로 자막을 쓰는 것이 좀더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 총의 격발 반동이 묘사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반동이 실제보다 약하게 묘사되는 게 아니라 아예 반동이 없다(...). 유진이 산에서 애신의 총을 쏴 보는 장면이 대표적. 심지어 교관 유진이 시범을 보인다고 총신에 바둑돌을 올려놓고 실총을 쏘는데도 안 떨어진다. 이것은 실탄이 아닌 공포탄사격을 해서 벌어진 일로 공포탄은 소량의 화약만을 사용하고 탄자가 없기 때문에 아무런 반동이 없다. 고로 연기자가 반동을 몸으로 연기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은 연기지도에서 빠진 듯하다.
-공포탄이 반동이 없다는 건 잘못된 서술이라는 문장이 있었는데 몸이 움직일만큼의 반동은 없는 게 맞다. 반동이라는 것은 탄자를 가스가 밀어내면서 반작용으로 인해 생기는 것으로 가스가 아무것도 밀어내지 않고 총구를 빠져나가는 공포탄이 반동이 생길 리가... 약간의 반동이 생긴다고 해도 총의 무게가 무거우므로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영화촬영용 프롭이 실총을 개조한 것일 경우 총구를 거의 막는 상태로 제작되며 실체 탄의 크기보다 작은 구멍을 뚫어서 반동과 동시에 화염이 나가도록 개조한다. 총류탄을 반동이 있는 예로 들었는데 화약가스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뿜어져 나가기 때문에 반동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군에서 공포탄을 사용하는 훈련을 할 때 연발사격을 위해서는 공포탄 어댑터를 총구에 끼우는데 손으로도 쉽게 당겨지는 노리쇠 스프링을 밀 반동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부착하는 것이다. 실제로 애신이 사용하는 윈체스터 M1894의 실사격 동영상#을 보면 반동이 상당한 편이며 이걸 연기력만으로 '반동이 없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체격이 작은 김태리가 거의 반동이 없는 사격장면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은 반동이 없는 공포탄이었기 때문이다.
- 15화에서 외국인 묘지에 묘비가 비춰지는데, 실존 인물의 묘비와 내용이 같다. 문제는 해당 인물의 사망년도가 1937년이라는 것.
- 구동매가 17화에서 총을 맞고, 18화에서 총알을 빼내는데, 한발은 등에, 한발은 가슴에 맞았음에도 수술할 때보면 두발 다 가슴에 박혀 있다. 총알이 피부를 관통하지 못하고 예쁘게 엉덩이를 내밀고 있는 묘사도 부자연스러운 부분. (등 부분이고, 관통 직전 상태라 볼 여지는 있지만 어색하다. 소총탄 두 발을 가슴에 맞았는데 그 정도 상처면 기흉이 되어 숨을 못 쉬고 죽는다.)
- 구동매가 일본어로 자신의 이름을 말할 때나 극 중 일본인들이 구동매의 이름을 부를 때 가타카나 발음에 기초한 한국식 발음으로 구동매(グ.ドンメ)라고 말하는데 이는 고증에 맞지 않는다. 이 당시에는 일본어로 조선인들의 이름을 말할 때 일본식 한자 발음에 기초해서 말했다.[55] 대만판 넷플릭스에서는 중국어 자막이 뜰 때 구동매의 한자이름이 ‘具東魅’라고 뜨는데, 만약 이게 구동매의 한자이름이라면 구토우미(具東魅, ぐとうみ)라고 불러야 고증에 맞다. 이러한 호칭 고증 오류는 기존의 일제강점기 시대극에서도 자주 나타나던 고증 오류이기도 하다.
- 작중에서 경운궁 대한문 뒤로 바로 중화전의 모습이 보인다. 경운궁은 ㄴ자로 꺾여져 있는 구조여서 대한문에서 중화전의 정면을 보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 시청자의 이해를 돕겠다며 어려운 한자어를 해설해 주는 자막을 군데군데 삽입했는데 차라리 없었으면 좋았다 싶을 정도로 아주 개판이다. '종묘사직'의 '사직(社稷)'을 해설한답시고 정작 한자는 '사직서'에 쓰는 '辭職'을 적어놓는 등, 이런 식의 오류가 천지인데 넷플릭스 VOD에서도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미스터 션샤인의 엄비 | 덕혜옹주의 양귀인 |
- 엄비라는 호칭 역시 잘못되었다. 당시 후궁 엄씨는 이미 황귀비로 책봉된 상태였기 때문에 황귀비마마라 불렸어야 하고,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이미 순의 봉호를 받았기 때문에 굳이 -비로 부르려면 엄비가 아니라 순비마마라고 불렀어야 한다. 장희빈을 희빈이라고 하지 장빈이라고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엄씨는 엄귀인-순빈-순비-순헌황귀비의 작위를 받았다.
- 신미양요는 1871년에 벌어진 일인데, 신미년에 미국으로 건너간 유진이 지하철에서 일을 하며 받은 돈은 1899년에 발행된 은태환권 지폐이다. 모건 달러 은화는 1878년부터 발행되었으므로 차라리 모건 달러를 사용했다면 그나마 고증에 맞았을 것이다.
- 화폐 고증은 가장 어색하다. 독수리 5전은 드라마에 등장한 대로 1902년에 발행된 것이 맞으나, 드라마에서는 실제와 다르게 실제 발행된 재질인 백동을 채택하지 않고 청동으로 나왔다. 5화에 등장한 20원 금화도 1916년까지 미두취인소의 거래가격이 1석(144kg)당 15원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구동매 손에서 나오기엔 지나친 감이 있다.
또한 이상하게도,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든 우편에서 갑신정변 무렵 발행해 고작 20일 정도 쓰고 전량 폐기된 문위우표가 등장한다. 문위우표는 10, 5문 외엔 전량 미사용이다. 따라서 문위우표가 아닌 독수리 보통우표가 붙어 있어야 고증에 맞다.
- 영어 표현에서도 오류가 있다. 일례로 카일이 유진을 솔져(Soldier)로 칭하는데, 이는 육군 병사를 칭하는 표현이다. 미군은 각 군별로 호칭 표현이 상이한데, 유진의 경우 해병대 소속이므로 마린(Marine)이 옳은 표현이고, 또한 장교이므로 오피서(Officer)로 칭해야 한다. 이 외에도 원어민으로 부터 자막이 전체적으로 부자연스럽다는 평가를 받았다.
- 24화(마지막화)에 등장하는 영국인 종군기자(영국 외신 특파원으로 소개됨) 프레더릭 아서 맥켄지(Frederick Arthur Mackenzie)는 사실 캐나다에서 나고 자란 캐나다인이다.[57] 물론 영국 언론사인 데일리 메일 소속으로 활동했으니 영국인이라고 해도 완전히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58] 신기하게도 해당 배역을 맡은 외국인 배우는 전형적인 북미식 억양(North American Accent)으로 대사를 하는데 맥켄지가 영국 언론사에서 활동하긴 했지만 사실 캐나다 출신이었다는 것을 제작진 또는 해당 배우가 알고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라면 정확한 고증이다. 하지만 맥켄지를 영국인으로 알고 있으면서 영어 대사 발음을 그렇게 처리했다면 고증 오류가 됐을 것이다.
- 원래 유격대나 게릴라(비정규 반군), 무장혁명군 대원들은 비록 뛰어난 체력과 정신력을 갖추었더라도 열악한 상황으로 인해 먹는 것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며 장기간 작전과 행군을 지속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거구(근육돼지)보다는 날렵하고 민첩한 슬림근육 체형이 많다. 하물며 먹을 것도 풍부하지 않았던 구한말의 항일 의병들이라면 두말할 나위도 없다. 장승구(장포수) 역의 모티브가 된 것으로 알려진 의병 남상덕의 사진(왼쪽에서 세번째)을 보면 역시 슬림하다.
하지만 장승구(장포수) 역을 맡은 배우 최무성은 근육돼지 스타일도 아니고, 그냥 많이 먹고 안 움직여 살이 피둥피둥 찐 게으른 동네 아저씨 체형이다. 심지어 최무성 배우는 22화 후반부에서 총을 들고 달리는 모습이 대한민국 예비군보다도 더 숨차고 힘겨워 보인다. 훌륭한 연기력과는 별개로 의병의 핵심 요원 역할인 장승구 역은 더 날렵하고 재빠른 이미지의 배우가 맡았어야 하거나, 아니면 배우 최무성이 이 배역을 잘 소화하기 위해 체중감량을 했어야 할 필요가 있다.
[1] 다만 이는 주인공의 사격훈련을 강조하기 위해 불필요한 장전 장면은 생략한 것(정확히 말하면 발사 장면만 강조한 것)이므로 고증오류로 보기에는 애매하다[2] 여담으로 이 사진의 조선군 엑스트라는 작중 2번이나 이러한 장전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첫 번째 장전시에는 완전히 장전해 총을 쏘았고, 두 번째에는 장전중에 미군의 총을 맞아 전사. 이 두 장면으로 이 엑스트라는 화승총의 장전 모습과 단점(장전시간이 오래 걸려 그 사이에 공격당하기 쉽다)를 잘 보여주었다.[3] 개중에는 진짜 화승총도 많이 나오기는 하는데 어디서 구했는지 조선식 화승총이 아닌 서양식 격발 구조를 보여주는 물건이 나타기도 했다.[4] 풍산그룹의 창업주 류찬우 회장이 징비록을 저술한 인물이자 드라마 징비록의 주인공인 서애 류성룡의 12세손이기 때문에 협찬해 준 것이다.[5] 감아둔 모양이 방아쇠를 당겼을때 과연 점화장치가 움직일 수 있을것인가 하는 의문은 든다[6] 다만 이 문제는 애신이 총을 좀 커스텀해서 저 장전손잡이 윗부분이 아닌, 앞쪽 나무 덮개에 탈착식인 얇고 긴 쇠판을 대각선으로 대어서 고정한 건데 천 때문에 안 보이는 거라고 우기면 해결되긴 한다.굳이 이리 고정할 이유가 없다는 게 문제지만...[7] 다만 이 문제는 애신이나 승구가 총을 좀 커스텀해서 저 장전손잡이 윗부분이 아닌, 앞쪽 나무 덮개에 탈착식인 얇고 긴 쇠판을 대각선으로 대어서 고정한 건데 천 때문에 안 보이는 거라고 우기면 해결되긴 한다. 굳이 이리 고정할 이유가 없다는 게 문제지만...[8] SMLE는 No.1 Mk.III이다. No.4 Mk.I은 SMLE라고 부르지 않는다.[9] 크라그-에르겐센 소총은 미육군의 제식소총이다 미해병대는 리-네이비 소총을 제식으로 사용하였다[10] 스프링필드 M1873은 미국-스페인 전쟁을 끝으로 퇴역하는 소총이며 1890년대에 크라그-에르겐센 또는 리-네이비로 대체된다. 유진 초이는 미국-스페인 전쟁의 공로로 특진하여 조선에 왔으므로 두 소총의 교체기에 온 셈이어서 병사들이 둘 중 어느 것을 들고 있더라도 말이 된다. 그러나 두 소총 모두 국내에서 레플리카를 구하기란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바로 뒷세대 소총인 스프링필드 M1903이 시대상으로도 더 가까운 소총이고 흔하기도 해서 더 적합한 대안이었을 것이다.[11] 게다가 싱글 액션 리볼버의 방아쇠압은 굉장히 낮다. 오죽하면 툭 쳐도 나갈 정도. 애신은 싱글 액션 리볼버를 처음 만지는 것이므로, 레버액션 소총이나 화승총의 방아쇠압을 생각하고 살짝 손가락만 걸친다는 게 격발되어서 진짜로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12] 공이치기가 앞으로만 전진 가능. 반대로 방아쇠를 한 번 당길 때 공이치기가 자동으로 뒤로 갔다가 앞으로 때리는 현대 권총의 기본 동작은 더블 액션.[13] 이는 일종의 안전 장치 역할이기도 하다. 기술력의 발달로 현대 권총이 더블 액션 방식으로 바뀌면서 공이를 잠그는 안전 장치가 별도로 개발된 것이다.쉽게 말해 움짤 속 애신은 권총의 안전 장치를 풀어버림과 동시에 장전해서 자기 애인 얼굴에 겨눈 것이다[14] 현대의 리볼버와는 달리 재장전을 위해서는 실린더를 아예 분리해야 하며, 이 총의 경우는 실린더를 2개로 나눈 특수실린더를 사용해야 금속탄피를 사용할 수 있으므로 신속한 재장전 따위는 불가능하다[15] 시그니처 웨폰은 등장인물의 개성을 상징하는 무기를 소품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워킹 데드의 그라임즈나 시티 헌터의 사에바 료가 사용하는 콜트 파이슨, 더티해리의 S&W M29, 바람의 검심의 역날검 고든 프리먼의 빠루 등이 대표적인 케이스다.[16] 물론 일본군 장교들은 권총을 사비로 마련해야 했으므로 따로 구해다 썼다고 하면 틀린건 아니다.[17] 유진과 카일이 홍파의 주막 단골인지라 홍파는 카일 무어와도 안면이 있는 사이여서 카일도 상당히 화가 나있던 상황이었다. 유진에게 홍파가 조리돌림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 것도 카일. 카일은 1화에 나오는 미서전쟁에서의 전상으로 인해 오른팔을 사용하지 못한다. 정확히는 펜 정도의 가벼운 물체를 들 수 있는 정도.[18] 위 사진은 극중 이완용이다.[19] 무사들은 카타나를 풀어놓아도 와키자시는 풀어놓지 않았다.[20] 일본의 무사들이 카타나와 와키자시를 함께 패용하는 것.[21] 정확한 고증된 레이피어 대련방식으로 대결장면이 나온다면 오히려 지루하게 연출되었을 수도 있다.[22] 애초에 군자의 여섯가지 기본 소양인 육예 중 하나가 활쏘기다. 나머지 다섯 예절, 말타기, 글쓰기, 음악, 셈하기[23] 영정조 시기만 가도 기병만이 활을 썼다.[24] 사실 별로 놀라운 것이 아닌게, 애신이 사용하는 Winchester Model 1894도 외부로 노출된 공이가 있다. 애신이 비슷한 원리라고 생각하는게 당연하다.[25] 고종의 친서를 가지고 왕의 대리인 자격으로 백악관을 찾았던 백인 선교사 호머 헐버트도 루스벨트 대통령과의 면담을 거절당했다.[26] 조선인 의병 김인수가 제정 러시아군의 대령이 된 일이 있었다#[27] 미국 남북 전쟁 당시 세네카족(원주민) 출신인 엘리 파커 미 육군 중령[59]의 사례가 있긴 하다. 그렇지만 북군 총사령관인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의 친구였고, 본인의 행정 능력을 발휘한 기회도 주어졌다. 이후 남군의 항복 문서를 작성하기도 하는 등 요직에 있었다. 헨리 플리퍼(Henry Ossian Flipper)가 1877년 흑인 최초로 장교가 되긴 했다.[60] 최초의 미 해군사관학교 출신 아시아계 미국인은 중국계 미국인 Gordon Chung-Hoon(1910년 하와이 태생)으로 1934년 해군 소위로 임관하여 미 해군 제독에 오른 최초의 아시아계 미국인이 되었다. 최초의 웨스트포인트 미국 육군사관학교 출신 아시아계 미국인은 역시 중국계인 Wing Fook Jung으로 1940년 임관했다. 미국인 아버지와 하와이계 어머니를 둔 앨버트 리먼(Albert Lyman, 1885-1942)은 1909년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해 임관했고 1942년 준장에 진급하면서 최초의 아시아-하와이-태평양 도서지역 출신 (Asian-Hawaiian-Pacific Islander American,AHPIA) 미 육군 장성이 되었다.[28] 즉, 당시 한국을 칭하던 명칭들은 현대 대한민국에서 쓰는 명칭들과 거의 같았다는 것이다.[29] 위에도 설명했지만, 당시 조선/대한제국을 로마자로 Joseon이라고 적은 예는 없다.[30]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당시에 만연해 있던 인종주의의 영향을 받아서 필요하면 무력을 동반해서라도 앵글로 색슨 문화를 확산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필리핀을 '문명화'시키기 위해서 미국의 지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서 '백색함대'를 건설해서 태평양으로의 영향력 확대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개인적인 제국주의자로서의 모습과는 별개로 미국 외교 정책의 기본적인 틀은 먼로주의가 여전히 우세했고, 따라서 그가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 뒤로 미국의 태평양 방면에 대한 관심은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질 때까지 후퇴하게 된다.[31] 당시 미국 주류의 해외 진출에 대한 시선은 태평양이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에 머물러 있었다. 당시 미국의 외교정책은 먼로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는 상황이었고, 중국이 이미 열강들의 각축장이 되고, 일본의 근대화가 메이지 유신을 통해 성공하게 되자, 미국은 굳이 태평양, 특히 동아시아에서 무력까지 동원해가며 열강들과 식민지 쟁탈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32] 스페인과의 전쟁에 소극적이였던 전임 윌리엄 매킨리와는 달리 그는 대스페인 개전론에 속하여 미서전쟁이 터지자 해군차관직을 때려치고 직접 전쟁터에서 활약해 전쟁 영웅이 되기까지 했으며 그 경력을 바탕으로 부통령이 되었다. 물론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집권 당시 대외 정책은 먼로 독트린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식민지에 반대하는 반제국주의자들의 주장에 반박하고 필리핀의 식민지화를 강하게 주장하는 등 고립주의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대외 정책은 관련 논문을 조금만 찾아보면 전통적인 고립주의와는 거리가 멀었음을 알 수 있으며 나무위키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항목에서도 대략적으로 나온다.[참고문헌] 《韓國政治外交史論叢 제26집 제2호 :러일전쟁과 데오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대 한국 정책》, 《미국사연구 제15집 : 알프레드 마한(Alfred T. Mahan)의 帝國의 戰略과 美西戰爭》, 《아시아리뷰 제4권 제2호(통권 제8호) : 1등 (혹은 2등) : 1894~2014년간의 동아시아 질서에서 일본에 대한 미국의 선호》, 《해항도시문화교섭학 제9호 : 『바다에서 바다로: 미국 패권의 역사』 - 논제: 커밍스와 미국의 태평양 전략》, 《미국사연구 제19집 : 19세기 미국 오리엔탈리즘과 미국의 정체성》[34] 정확히는 조선의 지리적 위치상 일본과의 충돌이 불가피하고 상기했듯 열강과의 충돌을 피하다보니 그런 것이다.[35] 대표적인 사례가 러일전쟁. 러일전쟁 당시 미국은 영국 이상으로 일본에 대한 차관 지원에 적극적이었다.[36] 미국은 당시 한국에서 제일 먼저 철수한 나라였다.[37] 그런데 유진이 본국 복귀를 명받은건 1904년이다... 카일의 "유진을 조선에 놔두면 무슨 짓을 할지 뻔하기 때문에 자신이 요청해 본국 철수를 명 받게 되었다."는 말에 따르자면 아직 공사관 까지 철수를 결정한건 아니고 그저 카일, 유진 등의 인력 재배치를 명했을 수도 있다. 그 후 유진은 관수에게 도미와 함께 현실적으로 가장 안전한 곳인 미국 공사관에 계속 남아 있으라는 당부를 받는다.[38] 병인양요, 신미양요[39] 프랑스인 사제들은 부득이 밖에 다녀야 할 때면, 상복을 입고 얼굴을 다 덮는 삿갓을 쓰고 다녔다. 이렇게 하면 서양인임을 들키지 않을 수 있었고, 다른 사람이 말을 걸어오지도 않았기 때문이다.[40] 정식으로 입국한 경우 기준이다. 이보다 앞선 1850~1860년대에 몇 차례 미국인 포경선 선원들이 동해상에서 표류하다가 강원도 등지의 해안가로 떠밀려와 단기간이지만 조선 땅을 밟은 적이 있으며, 이것이 조선과 미국인이 최초로 조우한 사례이다. 이들은 대개 청나라를 거쳐 본국으로 송환되었다.[41] '억장이 무너진다', '내 코가 석 자' 같은 관용 표현까지 유창하게 구사한다.[42] 그래서 일본은 수출에서 재미를 보지 못하고 철도산업과 1차 산업의 기계화 등을 통해 산업혁명을 이어간다. 잊지 않고 옆나라의 피를 살뜰히 빨면서 청일전쟁의 승전으로 받은 배상금 등으로 경공업을 일으키고, 1901년 야하타 제철소(八幡製鐵所)의 준공을 시작으로 중공업을 일으킨다.[43] 문서 수정 전,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가 아닐까 하는 내용이 있었는데, 금문교와는 건설 시기도 맞지 않을 뿐더러, 회색 돌을 쌓아올린 두 개의 아치를 가진 주탑 모습을 보면 다리 전체가 금속으로 이루어진 금문교와는 모양 자체가 다르다.[44] 그리고 퀸즈버러 교가 보이는 장면에서 자세히 살펴보면 뒤쪽에 아치형 교량인 헬게이트 교(맨해튼의 랜달스아일랜드와 퀸스를 잇는 다리)도 보이는데, 이 헬게이트 교는 퀸즈버러 교보다도 늦은 1912년에 착공되어 1916년에 완공된 다리이다. 즉, 작중 주 시대적 배경인 대한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존재하지도 않았던 셈. 고증오류에 고증오류 더하기[45] 정확히는 합병보다는 속국화하는 게 여러 모로 더 이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어떤 방법이 일본에게 더 이득이 되는지에 대한 방법론의 차이였을 뿐이지 결코 조선을 위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46] 다만 19세기 이후의 조선 말기의 실상이 워낙에 대환장파티였다는 사실이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고 공공연하게 인식되어 있기 때문에, 조선 말기를 다룬 미디어에서 이와 같은 장면이 묘사되어도 대중에게 별 위화감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는 점은 있다. 당장 현대 한국인들에게 19세기 중후반의 조선의 모습에 대해 떠올려 보라고 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삼정의 문란과 동학농민운동의 도화선이 된 조병갑의 횡포 등 지배계층의 수탈과 횡포로 인해 일반 백성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떠올릴 것이다.[47] 신자체가 오늘날처럼 일본에서 통용되기 시작한 것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1945년 이후이고, 이전까지는 여전히 구자체가 통용되었다. 그나마 쇼와 시대에는 사람들이 한자를 쓰다가 획을 긋기 너무 귀찮다 싶을 때는 종종 신자체를 약자(略字)로 쓰는 경우가 있었지만(그래도 책이나 논문 같은 출판물에서는 구자체가 통용되었다), 근대화가 이루어진 지 얼마 되지 않고 아직 봉건적 잔재들이 많이 남아 있던 메이지 시대에는 구자체가 많이 통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가나 표기법도 사실 헨타이가나 표기법이 많이 나와야 시대상 고증에 맞지만, 헨타이가나 고증은 현지 일본인들에게도 극악의 난이도인지라 한국 드라마 제작진에게 그 정도의 기대를 하는 건 무리이긴 하다.애초에 역사적 가나 표기법의 존재 자체를 인지하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이미 한국 작가 상위 1%이다.(...)[48] 두 대통령의 재임 기간 사이에는 20~30년 정도 되는 간격이 있다. 러일전쟁이 발발한 1904년 당시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로스쿨을 다니고 있던 20대 초반의 학생이었으며 아직 정계에 입문하기도 전이었다.[49] 겉에서 보기에 2층으로 보이나 지붕만 두 겹이고 실제 내부는 단층이며 천장이 높은 구조이다. 경복궁 근정전이나 창덕궁 인정전도 마찬가지이다.[50] 단, 데드비트가 반드시 쿼츠 무브먼트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1600년대에 이미 기계식 무브먼트에서 데드비트 세컨드를 구현하였다.[51] 다만 당시 일본군의 계급 명칭은 현대와 같은 대·중·소 체제로 일본군에는 대위 계급이 있긴 했다. 작중 유진은 일본어에도 능통한 등 여러 모로 일본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설정으로 나오고, 또한 당시 막 근대화를 시작하는 군사적으론 걸음마 단계였던 대한제국군과 일찍이 근대화를 이루고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연달아 승리하며 국제적으로도 꽤나 인정받던 일본군의 군사적 역량 및 위상 차이를 감안하면 유진이 군사적으로 좀더 익숙하고 (대한제국군에 비해) 체계가 좀더 잡혀 있던 일본군의 계급 명칭을 기준으로 말한 것이라고 본다면 어느 정도 말이 되긴 한다.[52] 이게 어느정도냐면, 무려 비행기로 이동하면 1시간 40분이 걸리고 신칸센으로 이동하면 5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다(…). 오히려 부산~후쿠오카 구간의 거리가 이것보다 더 가까운 사실을 알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장면인지 바로 와닿을 것이다.[53] 파나마 운하가 개통되기 이전에 아시아에서 배를 타고 바로 미국 동부로 가려면 남아메리카 대륙을 빙 돌아서 가야 했고, 이 경우 당연하게도 이동에 걸리는 시간이 미친듯이 늘어났다.[54] 차라리 뉴욕으로 갈 때 먼저 시베리아 횡단열차로 유럽까지 간 다음 유럽에서 뉴욕행 여객선을 타고 대서양을 건너는 것으로 묘사되었다면 시대상 고증과 핍진성 면에서는 더 나았을 것이다.[55] 한국인들 역시 마찬가지 였던지라 대표적으로 이토 히로부미는 조선~대한제국에선 이등박문이라고 불렸다. 이런 경향은 지금도 약간이나마 남아 있어 특히 중~노년층 한국인들은 마오쩌둥을 모택동, 장제스를 장개석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다. 젊은 층의 한자에 대한 관심이 많이 줄어들고 언론에서도 본래 발음을 존중하는 식으로 표기하는 지금의 인물들에 대해서는 많이 줄어든 편. 시진핑(习近平, 習近平)을 습근평이라고 부르는 한국 사람은 거의 없다.[56] 다만 이는 군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살리기 위해 칼 대신 총을 들게 한 것일 수 있다.[57] 그의 저서에 "... that I was an Englishman (really I am a Scots-Canadian, but to them it was all the same) who must not be injured." (번역) "나는 다쳐서는 안 될 잉글랜드인(실제로 나는 스코틀랜드계 캐나다인이지만 그들(조선인들)에겐 차이가 없었다)이었다."라고 나온다.[58] 게다가 당시의 캐나다는 캐나다 자치령 시절로, (실질적으로는 자치권이 보장되었긴 했지만) 명목상으로는 아직 영국의 자치령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