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법률안 거부권(法律案拒否權)은 국가원수 또는 정부수반 등이 입법부에서 의결하여 행정부에 이송한 법률안에 대하여 공포를 보류하거나 재의를 요구할 권리를 가리킨다.2. 역사와 의미
자세한 내용은 거부권 문서의 역사와 의미 부분을
참고하십시오.3. 대통령 중심제
대통령 중심제 국가의 대통령이 지니는 거부권은 군주의 거부권에서 유래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에서 행정부가 입법부에 대하여 지니는 유일한 견제수단으로 거부권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거부권을 채택하고 있다.당연하지만, 대체적으로 대통령의 출신 당인 여당이 국회에서 우세할 때는 거부권이 거의 안 나오는 반면 야당이 우세하며 대통령과 별로 사이도 좋지 않으면 거부권이 잘 나온다. 이러면 국회와 정부간의 관계가 험악해져 국정에 혼란이 온다. 하지만 가끔 여대야소인데도 거부권이 쏟아져 나오는 황당한 상황도 있다. 예외적으로 베네수엘라는 우고 차베스가 멋대로 헌법을 뜯어 고쳐 대통령이 비상식적인 무제한 거부권을 보유한다. 베네수엘라처럼 대통령이 무제한 거부권을 보유하게 되면 의회는 아무런 기능을 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3.1. 대한민국 대통령의 거부권
자세한 내용은 법률안 거부권/대한민국 문서 참고하십시오.대한민국 대통령의 거부권 또는 재의요구권은 미국식 대통령중심제의 환부거부권과 유사하나 세부적인 차이를 보인다.
3.2.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일반적으로 거부권은 환부거부(affected veto)라고 한다. 법안을 거부하여 의회로 돌려보낼 때 환부이유서를 첨부하기 때문에 환부거부라고 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거부한 법안은 의회에서 재심의해 양원의 ⅔ 이상의 찬성을 얻으면 거부권을 무시하고 법안으로 성립하게 할 수 있다.미국에서는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이 두 번 행사한 이후 의회 존중 차원에서 많지 않았다. 이 때 이외에는 거부권이 묻혀 있다 앤드루 잭슨 대통령이 의회를 견제하기 위해 임기 중 거부권을 12번이나 행사했고, 율리시즈 그랜트 대통령은 무려 93번 행사했고, 그로버 클리블랜드는 무려 414회나 거부권을 행사했다(...). 클리블랜드 대통령은 민주당이었지만, 당시 미국 의회는 상하 양원 모두가 공화당 밭이었던 터라 민주당 대통령 입장에서는 거부권 말고는 답이 없었다.
특이하게, 잭슨 이전에 제임스 매디슨 대통령이 거부권을 7번 행사한 적은 있지만, 의회가 중복 입법을 한 사례에 한해 거부권을 행사했으므로 실질적으로 보통 생각하는 거부권이라고 볼 수는 없다. 당시는 컴퓨터같은 게 없던 시대라서, 의회에서 같은 법안을 2번, 3번씩 통과시키는 실수를 할 때가 있었다.
한편 직접적인 거부권 행사 외에도 보류거부(pocket veto)라는 개념이 있는데, 이는 대통령이 의회가 통과시킨 법안에 서명하지 않은 채로 회기가 끝나는 경우에 발생한다. 미국 헌법상 일요일 포함 10일이 지나도록 대통령이 서명하지도 거부하지도 않은 법안은 대통령이 서명한 법안과 같이 법으로 효력을 지니는데, 만약 그 10일이 끝나기 전에 의회의 회기가 끝나버리면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고 의회로 다시 보내려 해도 받을 의회가 없으므로 서명하지 않은 법안은 자동폐기된다. 이는 의회의 재의를 통해 강제통과를 못하게 막는 효과를 갖는다. 보류거부를 할 때에는 거부권 행사 시에 환부이유서가 첨부되지 않는다. 현대에서는 보류거부를 막기 위해 의회가 법안 작성시 보통 "서명하지 않을 거라면 거부권을 발동하고 의회를 대표하는 이 사람[1]에게 법안을 돌려주시오"라고 덧붙인다. 이러한 보류거부는 제임스 메디슨이 최초로 사용했으며, 빌 클린턴 대통령 재임 시기에 쓰인 게 마지막이고 그 이후로는 한 번도 없다.
미국에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횟수는 보류거부를 포함해 총 2,500번 이상이다. 역대 미국 대통령 중 거부권(보류거부 포함)을 가장 많이 행사한 대통령은 최장기 재임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즈벨트로 도합 635번 행사했다. 한 임기 중에 가장 거부권을 많이 행사한 대통령은 그로버 클리블랜드로 22대 대통령(1기) 시절에 414번을 행사했다. 반면 존 애덤스, 토마스 제퍼슨, 존 퀸시 애덤스, 윌리엄 해리슨, 재커리 테일러, 밀러드 필모어, 제임스 가필드는 거부권을 한번도 행사하지 않았다. 출처 이 중 의회가 다시 재의결해 법으로 성립한 횟수는 전체 거부권 행사 횟수 중 7%라고 한다.[2]
다만 도널드 트럼프도 10회만을 행사하였다. 트럼프의 거부권 숫자(10회) 자체는 워런 G. 하딩 대통령(전체 6회) 이후로 무려 100년 만에 가장 적은 숫자이다. 트럼프의 거부권 행사 건수는 조지 워커 부시(12회)[3], 버락 오바마(12회)에 비해 적은 편이나, 트럼프는 4년짜리 단임 대통령으로서 10번이나 사용한 반면 저 전직 대통령 둘은 연임 8년 임기 내내 저만큼 썼기에 사실 4년 동안의 평균 행사건수는 트럼프가 좀 더 많다. 그리고 조 바이든도 거부권을 사용했다. #
미국의 주도 연방정부와 비슷하게 주 행정부 수반인 주지사가 주의회의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물론 의회에서 재심의해 일정 수준 이상의 찬성을 얻으면 거부권을 무시할 수 있으며, 그 수준은 주에 따라 혹은 법안에 따라 다르다. 단순 과반이면 되는 주[4]도 있고, 사안에 따라 3/4 이상의 동의를 필요로 하는 주[5]도 있다. 기본적으로 미국 주 정치에서도 의회가 지사의 거부권을 기각하려면 ⅔의 찬성이 있어야 하지만, 3/5로도 가능한 주도 있다.
3.2.1. 대통령 서명 문구
미국 대통령에게는 전통적 권한으로 "대통령 서명 문구(Presidential Signing Statements)"라는 것이 있다. 원래 미국 대통령이 의회를 통과한 법안에 서명할 때 "이것은 좋은 법이다"라는 덕담을 적는 선언문이었는데, 가끔씩 글귀 중에 "법안의 내용 중 헌법에 위배되는 것으로 보이는 부분이 있으므로 서명은 하되 그 부분은 이행하지 않는다"라는 의미를 담은 글을 적을 때가 있다. 만일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하원과 상원에서 ⅔ 다수결로 대통령을 씹고 강제 통과시킬 수 있는데, 거부권 행사를 하지 않고 얌전히 서명은 해 주는 대신 저렇게 입장 표명을 해놓으면 법이 있기는 있는데 아무 효력이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입법부가 법을 만들면 그걸 이행하는 게 행정부의 몫인데, 대통령은 국가원수임과 동시에 행정부의 수장이다. 따라서 국가 원수이자 행정부 수장이 친히 이행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마당에 행정부가 이 법을 제대로 이행할 리가 없으므로 법 자체가 붕 떠버린다. 설상가상으로 이는 거부권을 행사한 게 아니고 법을 이행하는건 행정부의 권한이라, 입법 권한만 있는 의회가 다시 어떻게 해볼 수도 없다. 이게 합법적인지 여부를 헌법에 딱히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 옛날 앤드루 잭슨이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등이 아주아주 가끔씩 이 꼼수를 이용했는데, 조지 W. 부시는 첫 임기 4년 동안 이 짓거리를 435번 했다.
사실 이걸 가장 많이 한 대통령은 아들 부시가 아니라 빌 클린턴인데, 서명하고 글 적어놓는 숫자가 더 많았다는 거지 남용의 논란거리는 더 적었다고 한다. # 더구나 클린턴은 압도적인 공화당 하원과 겨루며 임기를 치른 사람인 반면, 부시는 하원에 자기 당인 공화당 소속 의원이 가득한 상황인데도 이런 짓을 벌였다는 게 어처구니 없는 점. 레이건은 8년간 250건, 아버지 부시가 4년간 228건(그 가운데 반대는 110여건), 클린턴이 무려 381건을 했으니(반대는 그 가운데 70건) 아들 부시의 8년간 157번은 훨씬 적은 것이나, 그가 건드린 연방법의 개수는 무려 1200개에 달해 실질적인 악영향은 이 쪽이 훨씬 컸다. #
대통령이 이 권한을 남용하면 의회가 통과시킨 법안을 본인 마음대로 짜깁기할 수 있게 되므로 결과적으로
이것보다 더 직접적인 '항목별 거부권법(line-item veto)'이라는 제도는 이미 클린턴 행정부 시절 위헌 판결이 난 바 있다. 이걸 허용하면 대놓고 법안 짜깁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법률안의 일부만을 거부하는 것을 부분거부(partial veto)라고 하는데, 부분거부를 허용할 경우 사실상 행정부가 입법을 하는 형국이 되는 것이므로 삼권분립이 깨져 버린다. 따라서 한국을 포함한 대다수의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총체거부(package veto)만을 원칙상 허용한다.
4. 군주제
원칙적으로 군주제 국가에서는 국사행위의 최종 결정권자가 군주이며 최종 책임도 군주가 지기 때문에, 법률을 포함해 내각이 결정한 국사행위 전반에 관해 최종 가부를 결정할 수 있다. 이것은 국가원수가 원칙상 법률을 제정할 수 없으나 제한적으로 법에 간섭할 수 있는 공화국의 '거부권'과 그 유래와 성질이 다르다. 전제군주제 국가에서는 왕이 총리와 내각, 의회의 결정 사항을 자유롭게 뒤집을 수 있었고 이를 '국왕이 거부권을 행사했다'가 아니라 '폐하께서 신하들이 정한 방안을 재가(윤허)하지 않으셨다'라고 표현했다.그러나 민주주의가 확립되고 국왕이 통치권을 민주 정부에 양도한 입헌군주제 국가에서는 대부분의 정책 결정과 실행을 총리와 내각, 의회가 수행하므로 국왕이 '신하'들이 결정한 안건을 특수한 경우에 한해 지적하는 '거부권'으로 기능하고, 그마저 거의 발동되지 않는다.
영국에서는 1708년 앤 여왕이 Scottish Militia Bill 1708이라는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 마지막이었다.[6] 군주가 재가해주지 않으면 법안이 법률이 될 수 없으므로 군주가 재가를 거부하는 것이 아닌 재가를 보류하는 방법을 쓸 수는 있는데, 1912년 조지 5세가 이런 방식으로 당시 아일랜드 자치 법안의 시행을 2년간 보류한 바 있다.[7] 예외적으로 국왕의 권한을 변경하거나 왕실 재산과 관련된 법안에 대해서 국왕은 재량으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이러한 법안이 의회에서 심의되려면 먼저 국왕이 동의해야 한다(King's/Queen's Consent). 왕실에 따르면 이 권한은 어디까지나 이론상 재량으로 행사할 수 있을 뿐, 일반적으로 그러한 동의권도 내각의 조언 없이 국왕이 재량으로 행사할 정치적 능력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왕실에 냉담하거나 반대하는 공화주의자 측에서는 이 국왕의 동의권 행사에 대한 기록이 제대로 공개되지 않음을 들어 정말 자의적인 동의권 행사를 하지 않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보내고 있다. 가디언 기사 더 가디언에서 엘리자베스 2세가 이러한 '동의권'을 이용해 1,000여 개의 법에 영향력을 미쳤다는 폭로가 나온 적도 있다. 가디언 기사
영연방 왕국에서는 현지에서 국왕을 대리하는 총독이 국왕 대리 답게 국회를 통과한 법안에 대해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물론 총독 자리 자체가 명목상으로 두는 형식적인 자리라 실질적으로는 거부권 행사 같은걸 멋대로 고려하긴 커녕 군말 말고 법안에 사인해야만 하는 입장이다. 그리고 국왕을 대리하는 총독이 승인했으므로 국왕 본인의 재가 또한 필요가 없다. 총독이 국왕의 대리인 만큼 총독이 서명한 법안에 국왕이 다시 거부권을 행사할 수는 있으나, 영국 국왕이 영연방 왕국의 법률안에 거부권으로 간섭한 사례는 없다.
스페인의 국왕은 거부권이 있다. 하지만 프랑코 정권이 종식되고 왕정복고가 된 이후에는 거부권을 행사한 적이 없다.
그러나 입헌군주제라도 군주가 거부권을 적극적으로 써먹는 나라 역시 있다. 군주의 거부권을 가장 적극적으로 쓰는 입헌군주제 국가는 태국이다. 태국은 내각 구성에 대해서도 군주가 승인하지 않으면 내각이 붕괴되고 심지어 태국 군주의 거부권 한 방으로 쿠데타도 무효화할 수 있다. 라마 9세가 쿠데타로 뽑힌 총리를 소환해서 “대단히 부적절하다!”는 공개 면박 한 번으로 쿠데타를 무효화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 이것도 일반적인 거부권같은 문서에 서명하고 도장찍고 같은 절차를 일일이 거친 것도 아니다. 그저 TV 앞에 총리 소환해서 공개적으로 “너 나가!”라고 외치는 걸로도 쿠데타를 무효화할 정도로 강력한 게 군주의 거부권이다.
리히텐슈타인 공작에게는 실질적으로 거부권이 부여돼 있어서 유럽 군주 중에 가장 강력한 권한이 주어졌다는 비판도 있다. 나라 예산 상당량을 공작가문의 재산으로 충당하는 국가라 군주의 결정에 쉽게 반발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자리잡은 지금도 몇몇 나라의 군주는 이론적으로 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태국같이 군주 권한이 실질적으로 강력한 나라가 아닌 한, 현지 정치인들도 거부권을 무효화할 대책을 다 마련해두고 있다. 예를 들면 벨기에에서 1990년에 낙태 합법화 법안을 국왕 보두앵이 자신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라서 개인적으로 도저히 재가할 수 없다고 거부했는데, 그렇다고 정말로 거부할 수도 없기에 자신이 법안에 서명하지 않아도 되도록 권한을 정지할 것을 내각에 요청했고, 내각이 그에 따라 24시간 동안 왕권을 정지시키고 국왕을 대리하여 법안을 공포하는 것으로 해결했다. 그 외에도 왕이 법안을 거부한다면 의회가 왕권을 정지시키고, 왕실이 섭정을 지명한 다음 그의 재가를 받는 것으로 해결하도록 헌법적 장치를 마련해두기도 한다.(스페인 등)
예외적으로 일본의 천황이나 스웨덴 국왕은 거부권이 없다. 일본은 전후 신헌법에 따라 다른 여러 군주제 국가처럼 법률의 공포권자가 천황이지만(제7조) 국사행위에 대한 책임을 내각이 지고(제3조), 천황의 국정에 관한 권한이 없도록(제4조) 규정해놓았으므로 천황은 형식적으로라도 국회를 통과한 법안을 재가할 권리를 갖지 않는다. 제국 헌법 시절에는 천황은 모든 국사행위에 대해 거부권이 있었으나 한 번도 명시적으로 사용된 적은 없었고[8], 패전 이후 GHQ의 요구에 따라 일본국 헌법을 제정하면서 정치 권한을 박탈했다. 그 대신 참의원이 거부권을 가지고 있는데, 중의원에서 2/3에 못 미치는 찬성으로 통과한 법률안을 참의원에서 부결시켜 중의원으로 돌려보내는 식이다. 스웨덴에서는 1975년의 개헌으로 국왕의 거부권이 사라지고, 국왕의 법률 공포권도 내각으로 이전되었다. 심지어 이 나라에서는 총리 임명장도 군주가 아닌 국회의장 명의로 나가며, 군주의 서명이 반드시 필요한 법률문서는 외교관 신임장이 전부.
5. 이원집정부제
나라에 따라 천차만별이다.이원집정부제인 프랑스의 대통령은 제한적인 거부권을 가지고 있는데 의회가 통과시킨 법안에 대해 다시 독회(법안 심의)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오직 한 번만 가능하며(suspensive veto) 의회가 다시 반환받은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더 엄격한 절차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거부권은 아니지만 대통령이 직접 의회에서 통과된 법안에 대해 헌법위원회에 위헌심사를 요청하는 것이 가능하다. 유럽 국가의 거부권은 이런 식으로 대통령이 국회에 법안을 되돌려보내는 것 이외에 헌법위원회나 위헌심사 기능을 가진 대법원에 위헌 심사를 의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대만은 거부권을 대통령에 해당하는 총통이 아니라 총리에 해당하는 행정원장이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행정원장은 총통이 전적인 인사권을 행사하는 자리이고[9] 행정원장의 거부권 행사도 총통의 재가가 필요하다. 오권분립에서 총통 자리는 원래 5권 전반을 총괄하고 조정하는 자리로 만드는 것이 요지였기 때문이다. 5권이 전부 동등하게 국민의 선출에 의해 집권하는 것이 오권분립이었으므로, 당연히 행정원장이 입법원(국회)의 의결사항에 대해 거부권을 갖는게 맞았다. 또한 이런 논리에 의하여 감사원에 해당하는 감찰원에 행정원의 행정행위에 대한 거부권(동의권)을 부여했다. 감찰원의 거부권은 1992년 헌법 수정으로 폐지했다.
러시아도 대통령에게 연방의회를 통과한 법안에 대해 1회에 한해 거부권이 있다. 그러나 어차피 2003년 총선 이후로 통합 러시아당이 쭈욱 과반수를 확보하고 있는 상태라 정부 차원에서 굳이 거부권을 행사할 필요가 없고 설사 거부권이 나올 법안을 상정하더라도 부결시키면 그만이다.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 당시에는 집권당 우리 집 - 러시아가[10] 의회의 10%도 간신히 차지할 정도로 극소수 정부였던 터라 거부권을 매우 많이 행사하였다.
우크라이나도 이원집정부제를 채택하고 있고 대통령에게 법안에 대한 단 1회의 환부거부 형식 거부권을 인정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거부권처럼 법안의 일부를 거부할 수 없으며 전체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 대통령의 거부권을 받은 법안은 우크라이나 최고 라다(의회)에 환부되며, 환부된 법안이 최고 라다에 접수된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우크라이나 최고 라다 재적 ⅔ 이상의 찬성을 받으면 대통령의 거부권은 무효화되고 우크라이나 최고 라다 위원장(국회의장) 명의로 법안이 공포된다. 90일 이내에 재적 ⅔ 이상의 찬성을 얻지 못한 법안은 즉시 폐기된다.
폴란드는 대통령한테 의회를 통과한 법안에 대해 단 1회의 환부거부 형식 거부권을 인정하고 있다. 거부권이 행사된 법안은 세나트(상원)가 아닌 세임(하원)으로 환부되며, 세임으로 환부된 법안이 접수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세임 재적 3/5 이상의 찬성을 얻을 시 대통령의 거부권은 무효화되고 폴란드 세임 의장의 명의로 법안이 공포된다. 60일 이내에 세임 재적 3/5 이상의 찬성을 얻지 못한 법안은 즉시 폐기된다.
6. 공화정 의원내각제
명목상 거부권은 있으나 실질적으로 행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실질적 거부권이 행사되기 시작하면 이 국가는 이원집정부제로 분류한다.독일은 대통령이 거부권을 가지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따라서 거부권을 함부로 실행하지 않고 대부분은 의회를 통과한 법을 그대로 승인해주고 있다. 어쩌다 거부권 행사를 하면 그게 대통령으로서 적절한 결정이었는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질 정도니 말 다했다. 게다가 독일 대통령은 독일 총리 의사에 따라 의회에서 불신임 투표 한방으로 탄핵할 수도 있다. 결국 실권은 거의 없고 거의 외국 귀빈과 상호 방문하고 국민들에게 덕담해주는 정도의 구실을 한다고 보면 된다. 바이마르 공화국 헌법 시절에 독일 대통령한테 실질적 거부권을 줬다가 파울 폰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아돌프 히틀러한테 정권을 넘겨준 사례를 독일 정치인들이 잘 알고 있어, 독일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를 거의 안 한다.
그리스도 대통령이 있지만 상징일 뿐이고, 거부권이 없으며 법안에 서명은 해 줘야 한다.
아일랜드 대통령에게도 거부권이 있다. 거부권을 두 가지 형태로 행사할 수 있는데, 하나는 법안을 재가하지 않고 대법원에 보내 법안이 헌법에 부합하는지 판단을 의뢰하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의회의 추가적인 동의를 얻어 법안을 국민투표에 회부하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대통령의 거부권은 프랑스와 유사하다.
인도의 대통령도 거부권을 가지고 있으며,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의회를 통과한 법안에 대해 다시 독회를 요구하는 것이지만 의회가 2주동안 무시하거나 다시 찬성 과반으로 가결시키면 대통령 의사와 관계없이 법이 될 수 있다. 한편 거부권 행사에 대한 기한을 헌법으로 규정하지 않아 법안 서명을 보류해 실질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튀르키예는 2018년 7월 10일 이전까지 의원내각제(의회제)였지만 해당 문서 2007년에 헌법을 일부 수정해 대통령 직선제를 도입함으로써 내각 의결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을 창설했다. 물론 그 의도는 에르도안이 총리에서 튀르키예 대통령으로 전직한 이후에도 정국을 장악하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의원내각제 국가에서 유례없이 막강한 거부권이었다.
체코는 1993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분할된 이후 바이마르 공화국을 본뜬 헌법을 만들면서 의회에서 선출된 대통령에 대해 3회까지 거부권을 인정하는 조항을 넣었다. 이 때문에 체코의 대통령은 국민 직선으로 뽑지도 않음에도 매우 권한이 강하다.[11] 따라서 사실상 이원집정부제에 가깝다고도 볼 수 있다. 체코 대통령이 거부한 대표적인 사안으로 경제학자 출신 바츨라프 클라우스 대통령이 체코의 유로화 도입을 3회 거부하여 최종 부결시킨 사례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7. 기타
이란은 라흐바르라고 하는 최고지도자가 의회, 대통령이 내놓는 모든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수 있다.[1] 주로 법안 최초 발의자. 수정안일 경우 예외적으로 수신자가 하원의장인 경우가 있다. 원칙적으로는 수정안인 경우에도 법안 최초 발의자한테 법안을 돌려줘야 한다. 위원회에서 만든 병합 대안이면 원칙적으로 상임위원장한테 돌려줘야 한다. 하원의장한테 법안이 돌아가는 것은 정말 예외적인 케이스.[2] 거부권을 씹은 가장 최근의 사례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미국 의회가 주한미군을 줄이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 등이 포함된 2021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을 재의결한 사례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지만, 2020년 12월 28일 하원이 찬성 322표, 반대 87표로 NDAA를 재의결해 무효로 한 데 이어 공화당이 주도하는 상원마저 2021년 1월 3일에 찬성 81표에 반대 13표로 재의결했다. 당시는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와 2021년 미국 조지아 주 상원의원 결선투표 이후 2021년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으로 인해 트럼프 정부가 레임덕을 겪고 있었다.#[3] 조지 워커 부시는 거부권보단 대통령 서명 남용을 즐겨 사용했다.[4] 앨라배마, 아칸소, 인디애나, 켄터키, 테네시, 웨스트버지니아.[5] 알래스카(예산법), 애리조나, 오클라호마(긴급 법안)[6] 의회제도는 중세의 등족회의로부터 비롯되어 오랜 세월에 걸쳐 관행을 축적함으로써 국왕의 거부권을 소멸시키고 내각의 지위와 권한을 확립하였다. #[7] 2년 간 재가를 내주지 않았고, 2년 뒤에 제1차 세계 대전이 터지면서 의회에서 자치 보류 법안을 통과시키자 조지 5세는 아일랜드 자치 법안과 보류 법안을 동시에 재가했다.[8] 1929년에 쇼와 천황이 다나카 기이치 총리에게 사퇴 압력을 가해 사임에 이르게 한 적은 있다. 직접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아니나, 원래 이런 권한은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효과가 있기 마련이다.[9] 본래는 총통이 지명하고 입법원의 동의를 얻어 임명하는 자리였다. 1997년 헌법 개정으로 총통이 임명.[10] 옐친 본인은 공식적으로 무소속이었으나 당시 우익정당 우리 집 - 러시아의 지지를 받았고, 러시아 총리가 구성하는 내각에도 참여했다.[11] 다만 2012년 개헌으로 현재는 직선제로 전환되었다. 체코 대통령 문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