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셀린 디옹
- [ 정규 앨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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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싱글 목록 ]
- ||<tablebgcolor=#FFFFFF,#1c1d1f><tablecolor=#000000,#E5E5E5><tablewidth=100%><width=10000><colbgcolor=#fff><-2> ↓ 1980년대 ↓ ||
1981년 Ce n'était qu'un rêve · La voix du bon Dieu 1985년 L'amour viendra · Tellement j'ai d'amour pour toi · D'amour ou d'amitié 1983년 Mon ami m'a quittée · Un enfant 1984년 Ne me plaignez pas · Une colombe · Mon rêve de toujours 1985년 Un amour pour moi · Vois comme c'est beau · C'est pour toi · C'est pour vivre · Dans la main d'un magicien · La ballade de Michel 1986년 Billy · L'univers a besoin d'amour · Fais ce que tu voudras 1987년 On traverse un miroir · Incognito Je ne veux pas · Lolita (Trop jeune pour aimer) 1988년 Comme un cœur froid · La religieuse · Ne partez pas sans moi · Délivre-moi · Jours de fièvre · D'abord, c'est quoi l'amour" 1989년 Can't Live with You, Can't Live Without You ↓ 1990년대 ↓ 1990년 (If There Was) Any Other Way · Unison · Where Does My Heart Beat Now 1991년 The Last to Know · Beauty and the Beast 1992년 Je danse dans ma tête · If You Asked Me To · Nothing Broken but My Heart · Love Can Move Mountains 1993년 Water from the Moon · Un garçon pas comme les autres (Ziggy) · When I Fall in Love · The Power of Love 1994년 L'amour existe encore · Misled · Think Twice · Only One Road · Calling You 1995년 Pour que tu m'aimes encore · Je sais pas · Next Plane Out · To Love You More 1996년 Falling into You · Because You Loved Me · It's All Coming Back to Me Now · The Power of the Dream · All By Myself 1997년 Call the Man · J'attendais · Tell Him · Be the Man · The Reason · My Heart Will Go On 1998년 Immortality · Zora sourit · The Prayer · I'm Your Angel · S'il suffisait d'aimer 1999년 On ne change pas · Treat Her Like a Lady · That's the Way It Is ↓ 2000년대 ↓ 2000년 Live (for the One I Love) · The First Time Ever I Saw Your Face · I Want You to Need Me 2001년 Sous le vent 2002년 A New Day Has Come · I'm Alive · Goodbye's (The Saddest Word) 2003년 I Drove All Night · One Heart · Tout l'or des hommes · Have You Ever Been in Love 2004년 Et je t'aime encore 2005년 Je ne vous oublie pas 2006년 Tous les secrets · Tout près du bonheur · I Believe in You (Je crois en toi) 2007년 Et s'il n'en restait qu'une (je serais celle-là) · Immensité · Taking Chances 2008년 Eyes on Me · A World to Believe In · The Prayer (Live) · Alone · My Love ↓ 2010년대 ↓ 2012년 Parler à mon père 2013년 Loved Me Back to Life 2014년 Incredible 2015년 L'hymne 2016년 The Show Must Go On · Encore un soir · Recovering 2018년 Ashes 2019년 Imperfections · Lying Down · Courage
1. 개요
셀린 디옹의 활동을 정리한 문서.2. 1980년대
프랑스어를 주로 쓰는 캐나다 퀘벡 주에서 태어났다. 프로필에 기재되어 있듯이 14남매[1]중 막내[2]로 출생해 매우 가난한 환경에서 지냈다 한다.[3]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 분위기는 화목했고 셀린의 부모님[4]은 음악을 매우 사랑하여 빈곤한 환경에서도 작은 피아노 바를 운영하기도 하면서 셀린은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하였다고 한다. 그것도 머지 않아 12살이라는 어린 나이[5]에 Ce n'était qu'un rêve (그것은 단지 꿈이었을 뿐)'이라는 곡을 작곡하고 녹음했다. 셀린의 오빠는 이 곡의 데모 테이프를 '르네 앙젤릴'이라는 매니저에게 보냈으나 아무리 기다려도 연락이 오지 않자 자동 응답기에 "당신은 그 곡을 들어보지 않은 것이 틀림없습니다. 들어봤다면 연락을 안 했을 리가 없으니까요."라고 남겼다. 데모 테이프를 들은 후 르네는 그 즉시 셀린에게 연락을 했고, 자신의 집을 저당 잡히면서까지 전 재산으로 셀린의 앨범을 제작하게 되었다. 이때 시작된 인연은 이후 부부의 인연으로까지 이어진다. 남편 르네 앙젤릴은 2016년 1월 14일, 암 투병 끝에 사망했다. 여기에 언급된 오빠도 이틀 후 1월 16일 암으로 사망한다.프랑스어권에서 꾸준한 인기를 얻으면서 1982년 'Tellement J'Ai d'amour pour Toi'라는 곡으로 일본 야마하 국제 콘테스트에서 금메달을 수상하였으며 1988년에는 'Ne partez pas sans moi'란 곡으로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6] 그랑프리를 따기도 했다.[7] 오디션으로 대성공한 가수였다.[8] 국적이 다르긴 하였지만 이 노래는 셀린 본인이 노래를 했다. 작사는 그리스인, 작곡은 스위스인이 했고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ESC) 1988에서 스위스 국가 자격으로 출전했다. # 이 우승에 얽힌 비화가 있다. 마지막 판정 직전까지 2위였던 스위스가 1점 차이로 영국을 역전하며 우승했다. ESC 1988 판정은 각 나라마다 10국가에 1-8, 10, 12점씩을 주었는데 마지막 유고슬라비아 심판에게 6점을 받아서 최종 137점을 얻은 스위스의 셀린 팀이 우울해하고 아직 점수 호명이 안된 영국이 좋아하면서 영국의 우승이 확정나나 싶었는데 마지막까지 영국의 이름이 나오지 않으면서 결국 셀린이 우승을 거두었다. 호명 직후 셀린의 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유럽 전역에만 국한되어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셀린이 마이클 잭슨의 공연을 보고선[9][10] "나도 저 사람처럼 슈퍼스타가 되고 싶다"라고 말하자 르네가 영어로 앨범을 녹음해야 가능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그때부터 셀린은 가정 교사를 두고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3. 1990년대
1990년, 영어로 된 데뷔 앨범 'Unison'을 발표했다.[11]A-ha와 같은 가수의 프로듀서였던 크리스토퍼 넬을 주축으로 제작된 이 앨범은 당시 유행하던 댄스 팝과 팝 락이 적절히 배합된 앨범이었다. 첫 싱글 '(If There Was) Any Other Way'는 빌보드 싱글 차트 35위에 올랐지만 셀린의 이름을 제대로 알린 것은 다른 발라드 곡 "Where Does My Heart Beat Now"였다. 빌보드 싱글 차트 4위까지 오른 곡으로 빌보드 연말 차트 37위에 랭크되었다. 이 곡은 폭발적으로 터져나가는 발성의 팝 락 곡으로 그녀는 가창력을 인정받으며 휘트니 휴스턴, 머라이어 캐리와 함께 디바 대열에 동참하게 된다. 그러나 인정받았다는 것은 그녀의 가창력일 뿐, 상업적인 측면에서 이때까지는 저 둘과 비교할 바가 못되었다. 디옹 스스로도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Where Does My Heart Beat Now'는 알아도 누가 그 노래를 불렀는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노래가 아닌 자기 이름을 알린 것은 'Beauty and the Beast'부터 였다고 말했다. 그래도 앨범이 미국에서만 100만 장 이상이 팔려 영어권 데뷔에 성공했다.이후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장편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의 주제가 Beauty and the Beast를 피보 브라이슨과 듀엣으로 부르고 걸프 전쟁에 참전한 미군들을 격려하는 곡인 'Voices That Care'에서도 여성 솔로파트를 맡는 등 인기가 날로 더욱 높아져 갔다. Beauty and the Beast는 싱글차트 9위까지 오르며 히트했고 그래미에서도 수상에 성공했다. 여세를 몰아 발표한 2집에서도 'If You Asked Me To', 'Nothing Broken But My Heart', 'Love Can Move Mountains' 등의 히트곡이 터져 나왔다. 이곡들은 셀린과 많은 작업을 한 여류 히트메이커 다이안 워렌의 곡들로 모두 빌보드 40위권에 안착했다. 또한 프린스가 작곡해 준 with this tear는 그녀의 가창력뿐 아니라 섬세함이 더해짐을 증명해 준다. 이 앨범에서는 멜로디 메이커 월터를 주축으로 만든 앨범으로 1집보다 훨씬 감성적인 멜로디를 선사했다. 무엇보다 'Beauty and the Beast'가 아카데미에서 주제가상을 받은 것이 셀린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데에 큰 공을 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Where Does My Heart Beat Now | Beauty and the Beast |
When I Fall In Love live (Live) |
이런 활발한 영어 앨범 활동 중에도 그녀는 꾸준히 프랑스어 앨범을 발매했는데 특히 1995년 발매된 D'Eux는 프랑스어 앨범 역대 최고 판매량을 기록했고 프랑스에선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 된다. 프랑스의 국민가수 장자크 골드만이 메인 프로듀싱한 이 앨범은 프랑스 내에서만 720만 장이 팔렸으며 세계적으로 10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고 셀린 디옹의 최고 명반으로 꼽힌다. 이 앨범의 인기가 워낙 대단해서 프랑스에선 무려 44주간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했다. 그녀의 다음 앨범인 Falling into You 역시 이 앨범에 밀려 2위를 차지했을 정도이다.
이후 기세를 몰아 4집 'Falling into You'는 미국에서만 1천만 장 이상이 팔렸으며 전 세계적으로는 3,000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Because You Loved Me, 'It's All Coming Back to Me Now[14]' 그리고 국내에서 오빠 만세로 잘 알려진 'All By Myself' 등이 히트했다.[15]디옹의 커리어에서 가장 성공한 두 앨범 중 하나인데, 5집이 'My Heart Will Go On'에 집중된 인기라고 한다면, 4집은 'Because You Loved Me'가 대표적이긴 하지만 비교적 고루고루 인기를 얻었다. 3집 때까지 머라이어 캐리에 밀려 콩라인이던 셀린 디옹은 이 앨범으로 소니에서 주요 가수로 격상되었다.
'Because You Loved Me'는 영화 '업클로스 앤 퍼스널 (Up Close And Personal)'에 삽입되어 메가 히트를 쳤고 빌보드에서 6주간 1위를 했으며 어덜트 컨템포러리 차트에서 거의 1년 동안 랭크되어 있음은 물론, 그래미 어워드에서 'Album Of The Year'를 수상했다. 당연히 투어도 대박을 쳤으며 첫 내한 공연도 이때 이루어졌다. 이렇게 대박 행진을 이어가기는 했지만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당대 탑스타였던 머라이어와 디바의 시초인 휘트니의 아성을 넘기기는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Because You Loved Me (Live) | All By Myself (Live) |
다음 해 발표한 5집 'Let's Talk about Love'는 미국에서만 무려 천만 장 이상이 팔렸으며 전 세계적으로 3,000만 장이 넘게 팔렸다. 특히, 영화 '타이타닉'의 주제가인 'My Heart Will Go On'은 셀린 히트곡의 정점으로 평가받는다. 이 무렵 그녀의 앨범이 1초당 1장씩 팔려나간다는 통계자료까지 나왔으니 말 다한 것이다. 게다가 타이타닉의 OST 역시 3천만 장이 넘게 팔렸는데,[16] 이 앨범은 'My Heart Will Go On' 이외의 트랙이 전부 클래식 음악이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사실상 한 곡의 힘이 컸다. 사실 본 앨범에서도 완성도와는 별개로 싱글은 'My Heart Will Go On'을 제외하면 별로 히트한 싱글이 없었다.[17]
게다가 곡의 싱글마저 미국에서 한정판으로 풀어버리는 바람에 순식간에 매진이 되었다. 소니의 대표적인 흑역사 중 하나가 됐다. 그런고로 그 해에는 'My Heart Will Go On'이 수록된 5집과 타이타닉 OST 양 쪽 모두 3천만 장이 넘게 판매된 것이다. 그야말로 엄청난 기록이다. 보통 2~3년 틈을 두고 앨범을 발표하는 것이 일반적인 팝계에서 다작을 하면서도 이렇게 메가 히트를 시켜버렸으니 그야말로 리즈 시절을 달렸다.
셀린 디옹의 최대 히트곡 "My Heart Will Go On (Live)" |
이후 크리스마스 앨범과 베스트앨범을 발표했다. R. 켈리와의 듀엣 'I'm Your Angel'이 빌보드 핫 100 1위를 하는 등 역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미국 내에서 많이 팔린 캐럴 음반들 중 하나다.[19]
The Prayer |
내는 앨범마다 최소 1,000만 장 이상은 팔아버리는 당시 셀린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였다.
또한 이 시기 그녀의 베스트앨범 'All The Way...a Decade of Song'을 발매하는데 2,000만 장 이상 판매라는 베스트앨범으로선 믿기 힘든 판매량을 기록한다. 다만 여기엔 신곡 7곡이 포함되어 있었다. 90년대 중반 이후의 그녀의 네 장의 앨범(4집, 5집, 캐롤 음반, 베스트앨범)은 96~99년 4년간 1억 장을 돌파했고, 여기에 타이타닉 OST는 포함조차 되지 않았으니 90년대 중후반은 그야말로 셀린 디옹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고로 90년대 전체 음반 판매량에서도 남녀, 장르 통틀어 1위다.90s Celine Dion No.1
4. 2000년대
그러다 어느 날 남편 르네가 후두암에 걸리자 활동을 중단하면서까지 남편 병간호에 나섰다. 다행히 르네의 병은 호전을 보였으며 시험관 시술로 아들까지 얻는 겹경사를 맞았다. 사생활이 안정을 찾으면서 6집 'A New Day Has Come'[23]와 7집 'One Heart'[24]가 연이어 발매되었지만 예전만 한 인기를 얻지 못했다. 그래도 라스베이거스에서 장기 공연을 하면서 여전한 가창력을 발휘했다. 그 해에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판 앨범[25]을 중박으로 평가하는 것이 어불성설이긴 하나, 그전 앨범들에서 워낙 압도적인 판매량을 보인 것과 대비되는 점, 또한 6집에서는 전작들과는 달리 싱글 차트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두었다는 점을 보았을 때 확실히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26]
앨범 판매량도 어마무시 하지만 라이브 활동이 인상적인 디바로도 꼽힌다.[27]그녀보다 라이브 콘서트 활동을 더 잘한 여가수로는 마돈나밖에 없다. 물론 셀린 디옹의 곡 난이도도 난이도인 만큼 사전녹음도 대다수이긴 하다. 그러나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 중 라이브 활동을 뽑으라면 그녀보다 잘한 가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한 예시로 2007~09년의 'Taking Chances Wolrd Tour' 는 역대 라이브 투어 중 11위[28][29]21세기에 들어와서는 아예 라스베이거스에 공연장을 새로 지어 레지던스 쇼 형식의 공연을 하고 있다. 2003~07년의 'A New Day' 에 이어 2011년부터는 'Celine' 을 진행 중이다. 2019년까지 계약된 상태다. 셀린디옹의 콘서트 티켓은 2000~2009년에만 7.2억 달러, 환율 1,000원만 잡아도 7200억이 넘게 팔렸다. 또한 2006년쯤에 셀린 디옹의 목소리가 가라앉는다는 말이 나왔고 그것을 라스베이거스의 건조한 공기 때문이라고 여겨서 아예 공연 장소에 가습기를 설치했다.
프랑스어와 영어 양쪽으로 나누어진 음악 활동으로 인해 라이브 투어 또한 세트리스트를 영어권 대상과 프랑스어권 대상으로 나누어 진행하고 있다.[30]프랑스어권 세트리스트가 영어/프랑스어 곡이 대략 반반 섞인 구성인 데 비해 영어권 세트리스트는 한두 개 정도의 프랑스어 곡만이 포함되는 차이를 보인다.[31]이유는 불분명하다. 아마도 역대 프랑스어 싱글 중 유일하게 영국 차트에 들었기 때문인 듯 하다. 늘 끼는 곡은 'Pour que tu m'aimes encore'. 2008년 내한공연 당시 셀린의 코멘트는 '한 곡 정도는 프랑스어 곡을 불러야 해요' 였고 당연하게도 관객의 호응은 공연 전체에서 최하를 달렸다.[32]
캐나다 퀘벡 주 출신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 외에 일본 로컬 활동 이력도 특이한 점으로 꼽을 수 있다.[33]특히 일본에서 드라마 주제곡으로 사용된 'To Love You More'[34]는 서양인으로는 12년 만의 오리콘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했고 'Be the Man' 은 아예 일본어판 싱글이 처음 발매되었다. 근래에는 2007년 'Taking Chances' 앨범의 'A World to Believe in' 에서 이토 유나와 듀엣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인기를 반영해서 월드 투어의 일본 방문 시에는 도쿄 돔과 교세라 돔 오사카 기본 방문. 'Taking Chances Tour' 에서는 일본 공연 입장료가 대한민국보다 훨씬 저렴하고 전체 개최국 중에서도 밑에서 2번째였을 정도이다. 내한 활동 경력으로는 1997년에 한번, 2008년에 이은 두번째 내한 공연을 펼쳤다. 휘트니 휴스턴, 머라이어 캐리와 달리 보존을 잘한 가창력과 무대매너로 관객들을 감동시킨 바가 있다.[35][36]내한공연 동안 한국 힐튼 호텔에 투숙한 게 인상 깊었는지 한국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다. 내한공연 후 캐나다 잡지에서 한국식 온돌에 앉아 아들과 같이 한복을 입고 앉아있는 모습도 포착됐다. 그리고 1997년 내한공연 당시 마치 씨디를 틀어놓은 듯한 라이브였지만 씨디를 튼 게 아니냐는 의혹이 들 정도였다. 왜냐하면, 제대로 된 앵콜곡 한곡없이 공연이 끝났기 때문이었다. 다만 저 두 가수의 내한 라이브 비디오가 있는 방면 셀린의 1997년 첫 내한 방문 때는 비디오가 없고 2008년 두번째 내한 비디오만 간간히 있는 편이다.
셀린이 선배가수든 후배가수든의 곡을 커버로 많이 부르는것 으로 유명하지만[37] 퀸에 대한 사랑은 남달랐다. 2008년인 Taking Chances Wolrd Tour을 시작으로 이후 줄곧 퀸의 Show Must Go On을 라이브로 선보이며[38] 노래를 부르기 전에는 프레디 머큐리를 사랑하고 존경한다고 말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위에서 설명한 대로 공연과 투어에 집중하며 앨범은 간간이 내고 있다. 2003년 이후 라스베이거스에서 계속 진행 중인 그녀의 쇼는 이미 라스베이거스의 상징이 되었다. 엘비스 프레슬리 다음 가는 라스베이거스의 최고 거물 가수로 등극했으며 그녀 이후 브리트니 스피어스나 제니퍼 로페즈, 레이디 가가도 라스베이거스 쇼에 참여하지만 그녀만 한 실적을 거두지는 못했다.[39] 2000년대 들어서 그녀의 활동은 싱글과 프로모션 활동보다는 콘서트와 공연에 집중하는 형태라 싱글 성적은 부진을 이어갔다. 하지만, 고정 팬층 덕에 앨범 판매량은 그럭저럭 나오고 있다. 'Taking chances'와 'Loved me back to life' 앨범 역시 350만 장, 150만 장 정도 팔렸다.
현재까지도 전성기의 가창력을 잘 보존하고 있다고 평가 받는다. 오히려 파워는 전성기보다 조금 떨어졌을지 몰라도 전성기보다 더 깔끔한 목소리, 기교, 그리고 고음역대에서의 편안하고 완벽한 소리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목소리가 변하지 않았다고 말하면 어불성설일 것이고 20, 30대 당시의 카랑카랑한 미성에서 서서히 40, 50대의 깊고 굵은, 따스한 목소리로 변해왔다.
휘트니 휴스턴이랑 머라이어 캐리는 소울 스타일 창법이었는데, 이쪽은 믹스 보이스가 뭔지를 똑똑히 보여준다. 셀린 디옹의 대표곡인 'I surrender가 사례다. 듣다 보면 머리가 아플 정도. 휘트니 휴스턴과 머라이어 캐리는 복잡하고 시끄러운 사생활에서도 구설수가 나왔는데, 셀린 디옹은 남편인 르네 앙젤릴과도 항상 사이가 좋았고 사생활에서도 구설수는 나오지도 않았다. 약물이나 술에는 입도 대지 않고, 스스로를 빈틈없이 다스렸기 때문이다. 휴스턴이 숨을 거두었을 때, 나온 인터뷰에서 마약이 그녀의 모든 것을 뺏어갔다고 화냈다. 더구나 흥청망청거리는 분위기가 싫어서, 뒤풀이 파티에도 안 간다고 한다. 그 할리우드 연예계에서 정말 보기 드문 유교걸 느낌이다,
크라이슬러와도 연이 깊은 가수이다. 1980년대 및 1990년대에 캐나다 퀘벡 주 프랑스어 광고에 주로 출연한 바 있었으며, 이후 2004년에 퍼시피카 및 다수 크라이슬러 라인업 광고에 목소리 및 출연을 한 적이 있다.
5. 2010년대
2010년대에도 앨범을 간간히 내고 있는데 꾸준하게 평타 이상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발매했다 하면 100만 장은 기본으로 넘겨주고 있다. 특히 2010년 이후 발매된 두 장의 프랑스어 앨범 Sans attendre와 Encore un soir는 프랑스에서만 연속으로 80만 장을 넘게 팔며 프랑스의 국민 가수급 위엄을 보여주는 중. 싱글 실적이 없다는 세간의 인식과 달리 2016년에는 프랑스 싱글 차트에서 9년 만에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2013년, Loved Me Back To Life를 발매했다. 20~30대의 목소리에서 40~50대의 목소리로 변화되는 것을 선명히 보여준 앨범이었다. 프로듀서에는 시아[40]가 참여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앨범을 들으면 시아 스타일을 명확히 들을 수 있다. 특히 Water And A Flame은 아델과 Daniel Merriweather가 참여한 곡으로 셀린이 커버했다고 한다.
2017년에는 디즈니 미녀와 야수 실사 영화의 OST 'How Does a Moment Last Forever'를 불렀다. 91년 피보 브라이슨과 불렀던 미녀와 야수(애니메이션)의 주제가 'Beauty and the Beast' 이후로 무려 25년 만에 동일 작품의 실사화에서 다시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41] 시간의 흐름과 사랑에 대한 아름다운 발라드이며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흐른다.
영화 공개 이후로 라스베이거스 쇼에서 처음으로 'How Does a Moment Last Forever'를 공개하는 셀린 디옹. 벨과 같은 노란색 드레스를 입고 아이처럼 떨려 하는 셀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곡이 끝난 뒤에 자신과 비슷한 노란색 드레스를 입은 소녀를 무대 위로 불러내 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드레스가 워낙 예뻐서 공연 전에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다고.
정말 긴장되면서도 들뜨는 기분인데요. 25년 전에 저는 운 좋게도 마법 같은 영화 미녀와 야수에 참여했어요. 저의 연예계 생활 중에 가장 대단한 순간 중에 하나였답니다. 진심으로 감사하지요. 그리고 25년이 지나서, 디즈니가 저에게 다시 한번 요청했어요. 미녀와 야수의 실사영화 버전에 참여해서 노래를 녹음해 줄 수 있겠냐는 거였죠. 관객 여러분도 제 입장에서 생각해 보시면 알겠지만... 제가 어떻게 거절하겠어요? 자, 지금 들려드릴 신곡은 '어떻게 한 순간이 영원이 될까요(How Does A Moment Last Forever)'입니다. 오늘 콘서트에서 관객 여러분께 최초로 들려드릴게요.
2018년에는 데드풀 2의 OST를 불렀다. 약을 거하게 빤 뮤직비디오까지 공개했다. 무대에 난입한 데드풀의 더티섹시한 춤사위와 노래가 끝난 뒤 데드풀과 셀린의 대사가 일품. 셀린이 의외로 코미디 연기도 잘 한다며 팬들도 좋아하는 분위기이다.[42]
데드풀: 셀린! 황홀했어요. 내 평생 이렇게 아름다운 공연은 처음이에요.
셀린: 정말 너무 감사해요! 너무 고마...
데드풀: 아뇨, 제가 고맙죠! 근데... 우리 다시 찍어야겠어요.
셀린: 그러죠. 왜죠?
데드풀: 그게 너무 잘 불러버리신 거죠. 이거 데드풀 2에요. 타이타닉(같은 걸작)도 아니고... 지금 10점 만점에 11점이걸랑요~ 한 5점이나 5.5점으로 불러주심 감사하겠슴다. 맞춰주쇼.
셀린: 보소! 이 몸은 원래 10점 만점에 11점짜리야! 그니깐 걍 쨔져~ 스파이더맨 총각.
데드풀: 아... 씨... 엔싱크 섭외할걸.[스포일러]
셀린: 정말 너무 감사해요! 너무 고마...
데드풀: 아뇨, 제가 고맙죠! 근데... 우리 다시 찍어야겠어요.
셀린: 그러죠. 왜죠?
데드풀: 그게 너무 잘 불러버리신 거죠. 이거 데드풀 2에요. 타이타닉(같은 걸작)도 아니고... 지금 10점 만점에 11점이걸랑요~ 한 5점이나 5.5점으로 불러주심 감사하겠슴다. 맞춰주쇼.
셀린: 보소! 이 몸은 원래 10점 만점에 11점짜리야! 그니깐 걍 쨔져~ 스파이더맨 총각.
데드풀: 아... 씨... 엔싱크 섭외할걸.[스포일러]
2019년 6월 8일, 마지막 공연을 끝으로 2003년 시작한 라스베가스 레지던시 쇼(2003~2007년 'A New Day' / 2011년~2019년 'Celine')를 마무리했다.[44]
2019년 11월 15일, 새 정규 앨범인 'Courage'가 발매됐다. 콘서트 덤핑 등으로 기대 이상의 초동 판매량을 선보이며 빌보드 200 차트에서 오랜만에 1위를 차지 하였으나 엄청난 낙폭을 보이며 2주차에 차트 밑바닥으로 추락하였다... 역대 낙폭 2위라는 신기록을 세운 셈[45] 세계적으로 80만 장 가량 팔렸다. 판매량 자체는 아쉬우나 연차를 생각해보면 선방한 편이라고 볼 수 있다.
6. 2020년대
2021년 5월에 버클리 음악대학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수여 받았다.##셀린의 버클리 음악대학 명예박사 학위 수여식
2022년 12월 8일, 희귀 질환인 강직인간증후군(Stiff-Person Syndrome) 투병 사실을 밝혔다. ## 2023년 2월 1일, 셀린의 큰언니 클로데트[46]가 인터뷰에 나와 셀린의 소식을 전했다. # 클로데트에 따르면 셀린은 현재 미국 콜로라도 주 덴버에서 의료진한테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2023년 2월 15일, 발렌타인 기념이자 그녀가 출연할 영화[47]인 Love Again의 트레일러가 나왔다. Love Again. 이 영화의 주연으로는 샘 휴건과 프리양카 초프라이며 장르로는 로맨틱 코미디이다. 예고편에 보면 알 수 있듯이 셀린과 배우들의 재미난 애드립 장면이 많이 나온다.[48]이 영화는 5월 12일 개봉 예정이었으나 개봉을 일주일 앞당겨 5월 5일 날 미국 한정 개봉 예정이다.[49]
2023년 4월 13일, 신곡 Love Again을 YouTube및 Spotify에 발표했다.
2023년 5월 27일, 위에 서술한 대로 치료중에 있었으나 강직인간증후군이 심해지면서 건강 상의 이유로 결국 2023~2024년까지 있는 Courage World Tour 유럽 일정을 모두 취소하였다.#또한 이 질병 때문에 현재 셀린이 사망했다는 가짜뉴스 또한 판 치고 있다. 아마 새해 인사 이후로는 셀린이 모습을 보이지 않아서 그런 듯 하다. 그렇지만 클로데트 디옹은 가끔씩 인터뷰에 나와 셀린이 치료에 만전을 가하고 있다고 한다.
2023년 9월 6일, 셀린의 백싱어들이 모여서 작은 콘서트를 개최했는데 셀린이 복귀하길 염원하는 마음에서 열었다 하여 Pour toi Celine이라 한다. 안타깝게도 셀린 디옹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2023년 9월 3일, 셀린이 출연한 영화 Love Again이 넷플릭스에서 개봉한다. 하지만 미국 한정..
2023년 11월 1일, Celine Back
근 3년동안 카메라에 보이지 않다 라스 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캐나다 친선 경기에 응원차 방문하였다 한다. 세 아들과 함께 셀린은 서 있는 채로 웃으며 카메라에 잡혀 팬들의 걱정을 한시름 덜기도 했다.
2023년 11월 3일, 케이티 페리의 마지막 라스베이거스 레지던시 공연장에서 모습을 비추었다. Celine In Las Vegas 2023, 셀린 말고도 찰스 3세의 아들인 해리 왕자와 그의 부인인 메건 마클도 참여 했었다. 왕실 가족의 등장도 놀랍긴 했지만 셀린의 나들이 행적이 더 주목 받았다. 앞서 말한 두 차례의 행보로 팬들은 셀린이 무대로 복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며 환호하는 반응을 보였다.
2023년 12월 19일, 언니 클로데트 디옹이 언론을 통해서 셀린이 강직인간증후군의 병세가 악화됨에 따라 근육통제능력을 상실했음을 언론을 통해 밝혔다.# 한 달 전만 해도 공식석상에 나서 회복 가능성을 보여줬기 때문에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부분.[50]
2024년 2월 1일, 셀린의 다큐멘터리가 제작예정 되었다. 그동안의 커리어 및 현재 앓고 있는 강직인간증후군을 어찌 대처하는지를 방영한다.
2024년 2월 5일, 셀린이 그래미 시상식에 시상자로 나섰다. 앞서 병세가 악화됐다는 뉴스가 나온지 3달만에 공식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테일러 스위프트한테 올해의 앨범상을 시상해주었다.[51] [52]
2024년 3월달, 셀린[53]이 그래미 시상식 이후에도 행보를 계속 하고 있다. 쉴 수 있음에 그런지 자녀들과 함께 자신이 팬으로 속해있는 하키 팀에도 명단을 호명하고 응원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2024년 4월 23일, 보그 프랑스 잡지의 파격적인 표지로 복귀 신호를 암시했다. 자신은 한번도 패션을 돈 주고 사지 않았던 적은 없다며 패션 디자이너에 대한 존경의 표시를 보이기도 했다. 또한 현재 일주일 중 5일은 운동 및 보컬 코치를 하고 있다 한다. 불치병이라고 자책하는 것보단 이 불치병과 같이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굳어졌다고 밝혔다. 그것 외에 과거 타이타닉에 대한 일화를 말해주기도 하였으며 중간중간에 휘트니 휴스턴의 Run To You를 열창하든가 자신의 곡 Imperfections를 부르는 등 팬들로 하여금 기대하는 반응이 나왔다.
2024년 6월 25일에 셀린의 다큐멘터리 'I AM CELINE DION'이 Prime Video을 통해 방송 예정이다. 셀린 본인이 불치병인 강직인간증후군을 투병하는 과정을 상세히 밝혔다고 한다. 이를 위해 뉴욕에 방문한 모습도 보였다.
그러던 2024년 7월, 2024 파리 올림픽 개회식에 성화 봉송 이후 에펠탑에서 사랑의 찬가(Hymne à l'amour)를 열창하며 복귀 무대를 프랑스계로서 가장 크고 뜻깊은 장소에서 가지게 되었다. 강직인간증후군을 투병 중인 그녀가 당당하게 병마를 이겨내고 에펠탑에 올라 공연한 모습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인간승리이자 '진정한' 올림픽 정신을 몸소 보여주었다는 찬사를 받았다.[54]추가하자면 이 공연 직후로 셀린이 라이브로 했느냐 사전녹음을 사용했느냐에 따른 갑론을박이 매우 심하게 논쟁되었는데 국제올림픽위원회에 의하면 셀린이 투병 이후 첫 라이브 공연이었으며 이는 어느 올림픽 사상 최초라고도 밝혔다.
2024년 10월 7일, 슈퍼볼 출연을 암시하는 병맛 광고를 SNS에 업로드 하여 팬들로 하여금 웃음과 기대를 주었다.
2024년 10월 9일, 켈리 클락슨이 셀린의 데표곡인 My heart will go on을 존경심을 담아 커버한 모습에 감동해 직접 메시지를 남겼다.
2024년 11월 2일, 조금조금씩 활동을 계속 해오던 와중 본인과 본인 가족이 아델의 라스 베이거스 레지던시를 찾아간 것에 대한 것을 SNS에 업로드 하였다. 아델은 셀린 디옹의 궁전에서 2년동안 공연한 것에 감사함을 표하며 셀린이 방문한 것이 본인한테는 어떠한 말로도 설명할 수 없다며 밝혔으며 셀린 또한 본인이 투병 중에 아델의 노래가 삶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며 서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였다. 두 사람이 만난 영상은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었으며 팬들도 전설들의 만남에 감격했다 또는 듀엣을 원한다[55]등의 반응을 보였다.
[1] 셀린이 음악적 능력이 타고 났듯이 형제자매들도 음악엔 소질이 보였다. ![2] 여기서도 재미있는 사실이 있는데 셀린의 아버지인 아데마르 디옹은 결혼 하고 나서 부터는 아이 갖기를 원치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14명의 아이까지 둔 걸 보면...-[3] 아기 때는 서랍에서 잠을 자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4] 부모님 두 분 다 퀘백 주에선 방송인을 직업으로 삼았다.[5] 셀린은 학교에 다닐때도 마른 체격과 고르지 못한 치아로 뱀파이어라는 별명을 달고 다니며 친구들로부터 놀림과 왕따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성인이 되고 난 후에 인성이 바른 걸 보면 가정 분위기와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인 듯 하다.[6] 한국으로 따지면 슈퍼스타K가 유럽 전체로 열리는 버전이라 보면 된다.[7] 이상의 세 곡은 2005년 발매된 컴필레이션 앨범 On ne change pas에 수록되었다.[8] 한국에선 서인국하고 비슷한 부분이 많다.[9] 이후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까지 듣게되자 휘트니 노래도 커버하면서 영어권 데뷔에 더욱 영향을 끼치게된다.[10] 휘트니와 비슷하게 셀린도 성가대 출신이다. 가수 데뷔 시작 이전에도 CCM가수로 시작한 바 있다.[11] 셀린이 영어 데뷔를 하긴 했어도 정규 2집을 빼면 전체적으로 유럽풍 느낌이 나는 곡이 대다수이긴 하다.[12] 당시 고전 팝 리메이크 열풍을 주도했던 포스터답게 이곡 역시 원곡의 완성도를 한층 더 끌어올렸다.[13] 영국 차트 1위[14] 이곡도 커버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당시 진행중이던 밴드가 음반을 내진 않았기에 셀린이 원곡이라는 말이 맞긴 하다.[15] 이 All By Myself에는 또다른 재밌는 일화가 있는것이 넷플릭스 시리즈 데이비드 포스터 오프 더 레코드에 나온다. 데이비드 포스터에 관한 다큐멘터리인데 잠깐 셀린의 이야기도 나온다. 셀린이 포스터와 만난 장면과 All By Myself를 녹음한 장면인데 그중에 All By Myself의 마지막 하이라이트 부분인 Anymoreeee 고음(F5)파트다. 사실 포스터 본인도 이 불가능한 파트를 셀린한테 맡겼다 한다. 물론 동기부여로 셀린한테 이 고음을 소화하지 못하면 아랫층에 같이 녹음작업을 하고 있는 휘트니 휴스턴을 불러와 대신 녹음을 시킬 것이었다. 결과적으론 셀린은 그 고음을 완벽하게 소화했지만 포스터는 이 말도 안되는 고음을 7번이나 더 시켰다고 한다. 그러면서 포스터 본인도 그때 당시 셀린이 자신을 엄청 미워했을것 이라고 농담조로 말했다.[16] 싱글로만 약 690만장[17] My Heart Will Go On 이후 비 지스와 함께한 Immortality는 나름 히트했지만, 미국을 제외하고 유럽, 호주, 캐나다에서만 발매되었다.[18] 참고로 이때의 아카데미 시상식 때의 시청한 사람이 5500만명으로 역대 아카데미 시상식 중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한다.[19] 머라이어 캐리가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를 작사작곡해서 현재까지 1위 캐럴 음반이어도 2위가 바로 셀린디옹의 캐롤이다. 그녀 역시 Don't save it for all Christmas day이라는 캐롤을 공동작곡해서 캐롤쪽 인기 역시 낮진 않다.[20] 이곡은 1998년 캐럴 앨범인 There are Special Times에 수록되어 있는 곡이다. 1999년 오스카에서 휘트니와 머라이어의 When You Believe와 같은 순간에 불렸다. 물론 당시 주제가상으로는 When You Believe가 수상했다.[21] 영상 속 라이브는 2010년대.[22] 출처[23] 1200만 장 그해 전체 음반량 판매 순위 2위. 당시 9.11 테러 때문에 전세계가 충격에 빠졌지만 이 앨범이 미국인들에게 위로곡으로 쓰여 많은 판매량을 기록했다.[24] 600만 장[25] 1위는 에이브릴 라빈[26] 셀린 디옹이 공백기를 가졌던 3~4년동안 인터넷의 발달로 불법 다운로드가 급증해 음반시장이 전세계적으로 붕괴 수준으로 급격히 몰락하던 시기였다. 물론 잘 팔던 가수들은 가끔가다 2000만 장씩 넘기기도 했지만 2010년대 이후 부턴 유로 다운로드뿐만 아니라 스트리밍 시장도 급격히 성장해 이젠 1000만장 넘기기도 어려워졌다.[27] 전성기 때는 파리 라이브에 이틀 만에 2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어마무시한 티켓파워가 있었으니 그 위엄이 더 돋보인다.[28] 여성 중 2위[29] 1위 마돈나[30] 대표적으로 2008년 콘서트인 Taking Chances World Tour에선 보스턴 라이브인 영어권과 몬트리올 라이브인 프랑스권을 따로따로 DVD로 제작하였다.[31] 셀린의 영어권 데뷔 이후 프랑스인들은 셀린의 프랑스어의 발음이 영어 발음으로 많이 치우쳐졌다는 말을 많이 하고는 한다.[32] 그래도 마지막에는 박수가 끊이질 않았다.[33] 지금에서야 대한민국도 음악시장 중에선 큰 규모를 자랑할 순 있지만 셀린이 전성기였던 때에는 아시아 음악 시장 중에선 일본밖에 노릴 데가 없었으니 이건 셀린 말고도 당시 전성기였던 스타들도 많이 활동하였다. 결코 한국이 싫어서 그러는 것은 아닌 것.[34] 현재 한국인들도 많이 듣는 셀린의 곡 중 하나이다.[35] 역대 내한공연한 아티스트 중엔 최상급의 모습만 보여주었다.[36] 이 내한공연에서도 재미있는 사실이 보통의 연예인인 경우 인천공항에서의 공항샷을 보여주는 바 있지만 셀린은 김포공항을 통해 한국으로 왔다고 한다. 당연히 셀린이 인천공항으로 올 거라는 예상으로 그때 기자들도 집합 수준으로 모여 있었다. 하지만 셀린이 김포공항에 있었으니 내한공연 검색을 해보면 공연모습만 나오지 공항에서의 모습은 거의 잡히지 않았다.[37] 대표적으로 티나 터나, 신디 로퍼, 프레디 머큐리 등등.[38] Show Must Go On 공연 이전에는 We Will Rock You를 선보인다.[39] 물론 가가나 로페즈도 라스베이거스 레지던시로 전석을 매진했는데도 불구하고 셀린만큼의 실적을 거두지 못한다는 것이 셀린 디옹을 라스베이거스 쇼에서 뛰어넘는다는 거 자체가 말이 안되는 것이기도 하다.[40] 셀린과 시아는 매우 절친한 사이라고 한다.[41] 참고로 'Beauty and the Beast'는 실사영화에서 아리아나 그란데와 존 레전드가 불렀다.[42] 여기서도 드러나는 데드풀(라이언 레이놀즈)의 캐나다 사랑.[스포일러] 그리고 3편 오프닝은 진짜로 엔싱크의 Bye Bye Bye를 삽입했다.[44] 이 대장정의 라스베이거스 쇼는 1000회를 넘게 했다 하여 지구촌 화제 뉴스에도 나왔다.[45] 1위는 본 조비의 새 앨범[46] Claudette Dion. 셀린이 신인이었을 때 곁에서 음악가로 함께 활동한 바 있다.[47] 따지고 보면 자신의 연기로써는 첫 데뷔작이다.[48] 참고로 영화 프로듀서에도 셀린이 있고 OST도 셀린이 직접 작곡했다 한다. 아마도 예전부터 영화 출연에 관심이 깊었던 셀린이 이번 영화에 뜻깊은 감정이 생긴 거 같다.[49] 참고로 5월 12일은 셀린의 새 음반 5개를 발표한다.[50] 하지만 이 강직인간증후군이라는 병 자체가 희귀병이긴 하지만 사망률은 매우 낮다. 또한 몸 전체가 항상 움직일 수 없을 정도는 아닌데도 셀린이 휠체어가 타고 다니는 딥페이크가 꽤 많이 유포됐다. 정작 셀린은 휠체어를 타지도 않아 미디어에서 매우 과장되게 표현한 것이다. 그밖에도 셀린이 사망했다는 가짜뉴스가 적지않게 유포되고 있다.[51] 상을 받은 테일러가 셀린 디옹을 무시하는 태도로 보였다고 논란이 생기기도 했는데 테일러 팬들은 선배 가수인 셀린 디옹의 질병 때문에 함부로 대할 수가 없어서 그랬다 라고 반박하지만 영상을 보면 테일러가 셀린하고 눈도 안 마주치고 상을 받는 장면도 있어 예의에 어긋났다고 대중들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52] 후에 그래미 어워드 관객석에서 찍힌 영상에서 테일러 스위프트가 수상소감 후 들어갈 때 인사하는 모습이 찍혔다. 또한 같이 찍은 사진도 공개되었다.[53] 자신이 연예인임에도 불구하고 화장 하나 없이 나오는 셀린의 모습에 몇몇 대중들도 놀랐다.[54] 셀린이 사랑의 찬가를 부른 것이 이번 올림픽이 처음은 아니었다. 프랑스 방송 중 드문드문 부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2015년 아메리카 뮤직 어워드 최초로 불어 공연 때도 사랑의 찬가를 선보이기도 하였다. 당시 2015년 11월 파리 테러로 인해 프랑스인들이 깊은 슬픔 때문에 위로곡으로 공연을 펼쳤다 한다. 하지만 공연 영상을 보면 목소리가 갈라지는 듯한 모습도 보였는데 이것은 셀린 본인이 강직인간증후군 투병 중임과 동시에 남편인 르네 앙젤릴도 암으로 투병 중 이었기에 심리적으로도 보컬적으로도 약화되었기 때문이다.[55] 두 사람의 노래 색이 매우 비슷하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