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카하마 타쿠야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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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 NPB 이스턴리그 타격왕 |
2014 NPB 이스턴리그 최고출루율 |
한신 타이거스 등번호 36번 | ||||
라이언 보겔송 (2007) | → | 타카하마 타쿠야 (2008~2010) | → | 히후미 신타 (2011~2015) |
한신 타이거스 등번호 66번 | ||||
마에다 야마토 (2008~2010) | → | 타카하마 타쿠야 (2011) | → | 쿠로세 하루키[1] (2011) |
치바 롯데 마린즈 등번호 00번 | ||||
다이다 타케노리 (2005~2008) | → | 타카하마 타쿠야 (2011~2016) | → | 시바타 코헤이 (2017) |
치바 롯데 마린즈 등번호 32번 | ||||
크레이그 브라젤 (2013~2014) | → | 타카하마 타쿠야 (2017~2019) | → | 사토 토시야 (2020~) |
치바 롯데 마린즈 등번호 127번 | ||||
키모토 유키히로 (2009~2012) | → | 타카하마 타쿠야 (2020~2021) | → | 공번 |
치바 롯데 마린즈 등번호 61번 | ||||
미케 카즈마 (2017~2020) | → | 타카하마 타쿠야 (2021) | → | 공번 |
타카하마 타쿠야 高濱卓也/Takuya Takahama | |
생년월일 | 1989년 7월 6일 ([age(1989-07-06)]세) |
출생지 | 사가현 사가 시 |
포지션 | 유격수[2], 2루수, 1루수[3] |
투타 | 우투좌타 |
학력 | 요코하마고교 |
프로입단 | 2007년 NPB 고교생 드래프트 1라운드 |
소속팀 | 한신 타이거스(2008~2011) 치바 롯데 마린즈 (2011~2021) |
등장곡 | DUFF - 君に贈る詩 |
응원가 | 眠らずの戦場(신 세계수의 미궁 BGM)[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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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 치바 롯데 마린즈 소속 야구선수.2. 선수 경력
고등학교 2학년 때 하계 코시엔 대회에 나가긴 했는데 나카타 쇼가 버티는 오사카토인 고등학교에게 11대 6으로 패하면서 1차전에서 탈락했다.[5] 코시엔 출전은 이때가 유일했으며, 3학년 땐 현 대회 준결승에서 탈락했다.하지만 하급생 때부터 중심 타선을 도맡은 데다가 당겨치기와 밀어치기에 모두 능숙하고 발도 빠르며 어깨도 좋은 내야수라 큰 주목을 받아 고교 시절에는 89년생 최대어로 꼽히는 나카타 쇼, 사토 요시노리, 카라카와 유키 바로 다음 급으로 평가받았다. 일부에서는 빅 3과 동급으로 평가하여 사천왕으로 부르기도 했을 정도.
실제로 드래프트 때 키무라 유타 등의 유망주들에게 영양비 명목으로 뒷돈을 준 것이 발각되어 고교생 드래프트 상위 지명권을 박탈당한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를 제외한 11팀은 모두 위의 3명을 1순위로 지명했으나, 추첨에 의해 롯데, 닛폰햄, 야쿠르트가 각각 카라카와, 나카타, 사토를 데려갔고 이에 실패한 7팀 중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와 한신 타이거스가 타카하마를 중복 1라운드 지명을 했다. 결국 추첨 끝에 한신이 타카하마를 데려가는 데 성공.
보면 알겠지만 아마추어 때는 중복지명까지 받을 정도로 상당한 유망주였다.
2.1. 한신 타이거스 시절
그러나 한신에서는 무릎 부상으로 인해 초반에 많이 못 뛰었고, 2군에서도 1할대 후반~2할대 초반의 멘도사 라인 수준의 타격력에다가 연속적으로 실책까지 하면서 안 터지는 1라운더의 대명사가 되어갔다.이러던 중 2011년 시범경기에서 반짝 활약하면서 주목을 받게 되었는데, 개막 직전인 3월 1일에 치바 롯데 마린즈에서 FA로 한신에 이적한 코바야시 히로유키의 보상선수로 롯데에 이적하게 되었다.[6]
2.2. 치바 롯데 마린즈 시절
2011년에는 오기노 타카시의 부상 이후 주전 유격수로 낙점되었으나 몇 경기 뛰지 못하고 2군행. 시즌 후반에 잠깐 백업 유격수를 맡기 위해 콜업됐었다.그 후로 또 2년간 1군에 거의 올라오지 않으며[7] 2군에서 1루수, 2루수, 유격수 등을 떠돌다가 2군에서 주전 유격수로 정착한 2014년 이후 백업으로 간간히 출장하였다.
2015년에 결혼했으며 2016년에는 처음으로 개막 엔트리에 들어 개막전에 2번 타자 3루수로 선발 출장도 했고, 데뷔 홈런도 날렸다. 또한 종종 선발로 출장하게 되면서 시즌 100타수를 넘긴 해는 이 시즌이 유일. 하지만 타율은 .215로 좋지 못하며 2017년에는 다시 대수비 요원으로 강등당해 다시 출장 기회가 확 줄어들었다.
2.2.1. 2018 시즌
1군 출장 없이 2군에서 60경기 타율 2할 6푼대를 기록하는 중. 2군에서 주전으로 나오고는 있지만 별로 좋지는 않다. 팀이 공격적으로 노망주 타자들을 정리중인 상황에서 카나자와 타케시, 호소야 케이와 함께 가장 다음 시즌이 보장되지 않는 타자.[8]9월 15일 기적적으로 1군에 올라왔다. 이날 7회초에 스즈키 다이치와 교체되어 3루수 대수비로 투입. 이날 성적은 2타수 무안타.
9월 16일 대타로 나와 플라이아웃당하고 다시 대수비 가토 쇼헤이로 교체.
9월 17일 카키누마 토모야의 대타로 나와 1루수 땅볼 아웃.
9월 29일 대수비로 나와 1안타를 쳤다. 그러나 9회에 대타 호소야 케이로 교체. 정작 호소야는 아웃당했다.
그 후 미야자키 교육리그에 파견되며 1군에서 말소되었다. 사실상 이번 시즌 커리어는 끝이다. 시즌 성적은 10경기 12타수 3안타 0홈런 0타점 타율 .250.
2.2.2. 2019 시즌
2군에서 레귤러로 나와 29경기 92타수 15안타 타율 .315에 2홈런 10타점, OPS .899를 기록하고[9] 5월 8일 케니스 바르가스 대신 1군에 올라왔다.5월 8일 경기에서 3루 대수비로 투입됐다.
5월 9일 11회 초 대타로 나와 결승 1타점 2루타를 터트렸다.
그 후 대타로 주로 나오나 계속 득점권에서 삼진머신으로 답답하다. 근데 웃긴 건 이구치가 대타용 양아들로 삼은 건지 대타로는 제일 자주 나온다.
5월 18일 요시다 유타의 대타로 나왔으나 유격수 파울플라이 아웃. 그 후 1루수로 들어갔으나 타석은 더이상 안 왔다.
5월 20일 1군에서 말소. 말소 전 성적은 7경기 6타수 1안타 1타점 타율 .167에 OPS .500.
6월 18일 히로시마 원정을 앞두고 1군에 복귀. 이날 11회 초에 투수 대타로 나와 2타점 적시 2루타를 쳤다.
6월 19일 경기에는 벤치에만 앉아있었고 경기 직후 미케 카즈마 대신 1군에서 말소.
시즌 후 방출자 명단에 들었으나 완전 방출은 아니고 육성선수로 계약한다고 밝혔다. 비시즌 기간에 허리 수술을 받고 마지막으로 내년 시즌을 도전한다는 듯.
2.2.3. 2020 시즌
허리 수술을 받으면서 육성선수로 강등당했고, 등번호도 127번으로 바뀌었다. 사실상 마지막 기회.그러나 같이 육성선수로 강등당한 30대 노망주 1라운더 오미네 유타와는 달리 2군에서도 대타 위주로 나오며 부진하다. 그 오미네는 8월 말에 결국 지배등록이 되고 9월 초에 1군 선발진에 진입했는데 타카하마는 지배 등록 가능성조차 보이지 않으니 이시미네에 이어 2년 연속 1라운더가 정리되는 사태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10월 3일 2군에서 만루홈런을 쳤다. 다만 42경기에서 4홈런에 타율은 2할, OPS는 7할 안팎이라 그래봤자 1군 콜업은 요원할 듯. 심지어 수비도 주로 1루수를 보는 상황이라[10] 대수비로 쓸 가치도 없다.
놀랍게도 또 생존했다. 2021년에도 육성선수로 재계약을 한다고 한다.
2.2.4. 2021 시즌
2군에서는 또 타격왕 페이스를 보여주다가 5월 31일 기적적으로 지배등록. 등번호는 61번이다.1군에서 잠깐 대타로 나왔으나 시즌 1안타를 기록하고 전반기가 끝나면서 2군으로 사라졌다. 이후 피닉스 리그 명단에도 못 드는 중. 올해 드디어 방출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결국 전력외통고를 받고 방출. 바로 은퇴를 선언했다. 본인 말에 의하면 전반기가 끝나면서 2군 갈 때 허리 부상이 재발하는 바람에 더 이상 뛸 수가 없었다는 듯.[11]
3. 은퇴 후
자동차 판매업에 종사한다고 한다. 지인을 통해 입사했다는 듯.4. 플레이 스타일
전형적인 발 빠른 교타자 내야수. 그러나 프로에서 발이 느려진 것인지 센스가 떨어지는 것인지 도루는 잘 못 하는 듯. 전반적으로 타격은 똑딱이 스타일이다. 50m 달리기는 6.1초.수비는 아마추어 시절에는 좋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프로에서는 유격수로 제일 많이 나오지만 수비율은 9할 5~6푼에 실책도 잦은 편. 2루수 수비는 표본이 유격수보다 적지만 안정적이지 못하고 1루수도 실책을 좀 하는 듯 탄탄한 수비력은 아니다. 분명 내야 유틸리티이긴 한데 미키 료와는 다르게 수비보다는 타격 쪽에 강점이 있는 선수. 2군에서 시즌 100안타도 치는 등 안타 생산 능력은 나름 기대된다. 문제는 똑딱이라서 타격에서 딱히 차별화를 주지도 못하는 지라 냉정하게 미키 료보다 팀내 입지는 더 좁은 상황. 다만 오미네 유타와 함께 1라운더라 그런지 생존왕 기질을 계속 보여주고 있다.
5. 기타
- GReeeeN의 팬이다.
- 편식하지 않는다. 싫어하는 음식을 물었을 때 아예 없다고 할 정도.
- BMW를 타고 다니는 듯. 가장 좋아하는 차가 BMW라고 한다.
- 동생은 닛폰햄 소속이었던 타카하마 유토. 고졸 거포 3루수 유망주였으나 2군 본즈조차도 못 되면서 1군 통산 4경기밖에 못 나오고 입단 5년만에 전력외 통고를 받았다. 공교롭게도 2019년 시즌 후 형제가 같은 해에 전력외통고를 받았다.[12] 그리고 타카하마 유토도 육성 계약을 하면서 형제가 쌍으로 육성선수 강등을 겪었다. 그러나 동생은 2020년에, 타카하마 본인도 2021년에 지배 등록이 되면서 다시 1군에 복귀했다. 물론 주전으로 자리잡은 동생 유토랑 달리 형 타쿠야는 대타로 잠깐 나오다가 사라지고 그 해를 끝으로 은퇴. 여담으로 2021년에 타카하마가 1군에서 친 유일한 안타는 동생의 소속팀 닛폰햄전에서 기록했고, 동생이 1루수로 그라운드에 있는 상황에서 친 안타이다.
- 프로 생활을 14년을 하면서 등번호만 무려 6개나 달아볼 정도로 등번호를 많이 바꿨다.
[1] 시즌 중인 5월에 트레이드로 입단한 선수로 타카하마가 시범경기 도중에 보상선수로 이적해서 공석이 된 66번을 달았으나 시즌이 끝나고 다시 등번호를 바꿨다.[2] 2013~2014년에는 2군에서 주전 유격수를 맡았으며 제일 많이 나온 포지션도 유격수다.[3] 2012년에는 2군에서 주전 1루수를 맡았다. 이 해에는 스미 코타가 2군 주전 2루수를, 호소야 케이가 2군 주전 유격수를 맡아서 그런 듯.[4] ラララ… 高濱 ラララ… 高濱 湧き上がる その闘志 今だ解き放て高濱(라라라... 타카하마 라라라... 타카하마 솟구치는 그 투지를 지금이다 해방해라 타카하마/라라라... 타카하마 라라라... 타카하마 와키아가루 소노 토시 이마다 토키하나테 타카하마)[5] 정작 토인고교도 다음 경기인 2차전에서 탈락했다.[6] 공교롭게도 이적일이 1군에 처음 올라온 날이었다. 고생 끝에 간신히 1군에 오자마자 다른 팀에 가게 된 것.[7] 2년 동안 1군 8경기 출장.[8] 현재 30대 이상의 1군에서 백업 자리 하나 못 얻는 전형적인 노망주 타자는 이 3명밖에 없다.(사실 한국 기준으로나 30대지 일본 기준으로 타카하마는 문서 작성일 기준 만 29세를 갓 넘겼지만 말이다.)[9] 1군 콜업된 날 기준 이스턴리그 타율 2위였다. 참고로 1위는 .350을 찍고있는 팀메이트 스가노 츠요시.[10] 다만 2, 3루로는 백업으로 여러번 나와서 출장 경기의 40%가 1루수이며, 2루수와 3루수로는 각각 25% 정도 출장했다.[11] 타카하마는 2019년 시즌 후반에 허리 부상으로 수술을 받으면서 꽤 오랜 시간을 재활로 날렸다. 복귀한지 1년 반만에 재발한 것은 치명타였던 셈.[12] 이런 케이스로 KBO 리그의 안정광, 안정훈 형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