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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운전사/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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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존 인물 김사복
1.1. 김사복 발견
2. 실화와 차이점3. 시대상
3.1. 차량3.2. 군대3.3. 기타
4. 탐구
4.1. 옥에 티
5. 관련 문서

1. 실존 인물 김사복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김사복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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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개봉할 때까지 김사복에 대해서 알려진 건 이름 석 자와 "힌츠페터를 도와준 한국인 택시기사"라는 2가지가 전부였기 때문에 적어도 김사복 자체에 대한 내용은 대부분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각색이다. 영화 내에 출연하는 김사복이라는 인물에 관한 오류는 굉장히 많은 편이지만 개봉 전 해당 인물에 대해 알려진 정보가 매우 한정되었기 때문에 창작으로 제작되었고, 영화가 개봉된 후 많은 관심을 얻으면서 해당 인물에 대한 정보가 상당히 많이 밝혀진 경우다. 이러한 점은 영화 타이타닉과 매우 비슷한 경우로, 영화가 오류를 가지고 있는게 아닌 영화가 오류를 만들어내는 매우 희귀한 케이스다.

영화가 개봉한 후 김사복의 큰아들인 김승필이 언론에 아버지의 사연을 제보함에 따라 실제 김사복에 대한 자세한 사실이 드러나게 되었다. 따라서 영화 속의 인물 김사복(김만섭)과, 실제 실존인물 김사복은 다를 수밖에 없다. 실제 영화상에서 김사복과 가장 성격이 흡사한 인물을 찾는다면 정진영이 연기한 '이 기자'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아래의 내용은 장남인 김승필이 영화 개봉 이후 밝힌 내용을 근거로 한다.

1.1. 김사복 발견

영화가 상영된 후 김사복에 대한 근황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는데, 영화 개봉 3일 후 김사복의 큰아들임을 자처하는 사람인 김승필이 나타나 언론 인터뷰를 했고, 2달 뒤에는 마침내 실존인물 김사복의 정체가 확인되었다.

그리고 9월 5일, 김승필이 CBS 노컷뉴스에 공개한 사진 중 김사복 씨와 힌츠페터가 같이 있는 사진이 당시 동료 특파원이었던 피터 크레입스에게 확인되어서 최종 확정. 김승필 씨의 주장은 사실로 드러났다. 김승필 씨에 따르면 외신 기자랑 자주 동행하면서 재야의 인사들과 만날 기회도 자주 가졌고, 평소 사상계도 자주 읽었다고 한다. 실제로 같이 공개된 사진 중에는 민중운동가 함석헌같이 찍은 사진도 있었다.

그리고 9월 6일, 최종적으로 본 영화의 제작사인 더램프 측에서 힌츠페터의 아내 에델트라우트 브람슈타트 여사에게 사진을 보내 '남편이 맞다'는 확답을 받았고, 공식적으로 김사복 씨를 찾았다고 발표했다.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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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실화와 차이점

3. 시대상

3.1. 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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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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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TDCARBINE1-1.jpg
파일:TDCARBINE2-1.jpg
파일:TDM3-2.jpg
파일:TDMT3.png
파일:TDMT2.png
파일:TDMT1.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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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TDSWC2.png
파일:TD(M1911.1).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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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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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탐구

파일:TDPF1.png
파일:TDPF2.png
파일:TDSWC3.png

4.1. 옥에 티

파일:TDB9.jpg

5. 관련 문서



[1] GM코리아, 이후의 새한자동차에서 오펠 레코드를 들여와 판매했었다.[2] 지금이야 일반 가정도 차 2-3대 즘 보유한 집은 많지만 그 당시 가장 싼값이던 포니조차도 서민들의 1-2년치 연봉이었다. 중산층 정도나 차를 사는 수준이었고, 그마저도 포니나 브리사, 돈 좀 있다 하면 스텔라였다. 1가구 1차가 실현된 때는 1990년대에 들어서나 가능했다.[3] 이 말이 거짓말이 아닌게, 당시 국내의 대중차였던 브리사가 985CC/1,272CC였고, 현대 포니가 1,238CC/1,439CC였던걸 보면, 레코드의 1,900CC는 그야말로 고급차였던 셈.[4]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의 택시는 소형차들이었다. 1988 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택시 고급화 정책이 시행되면서야 비로소 중형택시들이 등장했고, 이것들이 오늘날 국내 택시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5] 다만 그렇다고 해서 김사복 씨가 소위 '손에 물 묻혀 본 적 없는 사람'인 것절대 아니다. 애초에 김사복 씨는 함경남도 원산시 신풍리(현 북한 강원도 원산시) 출신의 실향민으로써, 초등학생 나이에 월남하다 선박 전복사고로 부모님을 잃는 등, 유년기부터 인생이 험했던 인물이었다(다행히 고모댁에 의탁됨). 장성해 결혼한 이후에 원단공장을 시작했으나 그마저 망한 이후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운전대를 잡아서 성공했던, 소위 밑바닥부터 치고 올라와 자수성가한 케이스인 셈이다. 자수성가노블리스 오블리제, 대단한 지식을 모두 겸비한 무시무시한 인물이였던 것. 따라서 영화의 김만섭의 모습은 서울 상경 이후 형편이 어려웠던 (5.18 시점의) 과거 김사복의 모습으로도 볼 수 있다.[6]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영상의 촬영과 저장, 음성의 기록 기능이 일체화된 ENG 카메라가 있기는 했으나 보편적으로 쓰일 정도로 보급되지는 않았다. 모양도 요즘 같은 일체형이 아니라 테이프 데크와 배터리 팩은 별도의 일체형 박스로 분리되어 있었고 카메라와는 케이블로 연결하는 방식이었으며 배터리 사용 시간도 그다지 길지 못했다. 그리고 이 박스의 무게도 상당해서 20kg 정도나 했다. 그리고 이 당시 ENG 카메라를 썼던 건 주로 일본과 미국의 방송사들이었고 유럽의 방송사들은 필름 카메라를 주로 사용했다. 따라서 영상을 취재하며 동시녹음을 하기 위해서는 필히 카메라와 분리된 별도의 녹음 장비를 이용해야만 했다. 오늘날 뉴스 취재 과정에서 촬영기자를 보조하는 역할을 '오디오맨'이라고 하는데, 과거 녹음을 담당했던 일에서 유래했다. 루모어 역시 오디오맨의 역할이었다고 볼 수 있다.[7] 심지어 공기관인 시, 도청에서도 몰래 봤다는 말이 있다.[8] KBS 일요스페셜 푸른 눈의 목격자 참고.[9] '광주 학살' 하면 5월 21일 낮 금남로에서 애국가 제창 직후 이루어진 집단발포가 가장 유명하지만, — 《제5공화국》, 《화려한 휴가》에서도 참혹하게 재현된 장면이다. — 실제로 처음으로 총기 발포가 이루어진 것은 그 전날 밤이었다. 그 애국가 제창 직후 집단발포한 사건은 영화에서 "애국가를 부르고 있는데 군인들이 다짜고짜 발포했다"는 대사로 등장한다. 이 영화에선 독일인 기자와 택시운전사가 직접 경험하지 않은 부분은 과감히 생략했다.[10] 이 집단사직으로 인해 지역신문의 편집은 중단되었고, 전국신문은 계엄군의 차단으로 인해 광주가 고립됨으로 인해 20일 이후로 들어오지 않게 되었으며 방송사는 시위대의 분노로 인해 불타거나 기재가 파괴당하면서 광주에는 항쟁기간 동안 사실상 언론이라는 것이 없게 되었다(유일하게 방송을 계속한 KBS라디오는 시종일관 계엄군 입장을 대변하는 선무방송만 하여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상황에서 윤상원(임을 위한 행진곡의 피헌정자)을 비롯한 재야 민주화 활동가들은 대안언론격인 '투사회보'를 발행하며 소식을 알리기 위해 애를 썼다.[11] 영화에서는 1명만 피격되는 장면이 나왔다.[12] 다만 외국인을 태운 것도 아니고 서울 택시는 더더욱 아닌 만큼, 적당히 둘러대면 한두 대쯤 검문을 통과하는 것 자체는 문제되지 않는다. 줄줄이 그 길을 따라 추격하러 온 것은 설명되지 않지만.[13] 다만, 이후 레코드택시의 출입이 어려워지자 인근 업체에서 포니를 빌려와 잠입 재방문을 시도하였다.[14] 브리사는 수동만 나왔다.[15] 4개의 사각 테일램프를 장착한 BF105는 1989년도에 페이스 리프트된 차량이다. 영화 속 일부 차량은 같은 BF105이지만, 헤드라이트만 원형램프로 복원이 되어 나왔다.[16] 당시에 맞추려면 이전 모델인 BF101이 나와야 하지만, 현재 국내에는 남아있는 개체가 영화 촬영시 기준 아예 없어서 그나마 개체가 있는 BF105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2022년 기준 미얀마에서 역수입 해온 차량 복원한 것이 있긴 한데, 그 차량은 그대로 안산산업박물관으로 갔다.[17] 헤드라이트 아래가 아닌, 휠하우스 양쪽에 사각램프로 돌출된 외관은 이노베이션 코란도부터 적용된 특징.[18] 당시에 맞추려면 93년식 이노베이션 버전이 아닌, 신진 지프 2기형 버전이 니와야한다.[19] 다만 일부 장면에도 신진 지프도 나왔으며 추격씬에만 해당 코란도를 사용해 해당 씬에서 파손되었다.[20] 광주로 이동해 시민군과 합세할 가능성이 있는 외지인들.[21] 실차는 아니고, 화려한 휴가에서 등장하였던 것과 같은 모조품 탱크다.[22] 다만, 보닛의 길이가 짧고, 적재함 구조로 보아, 미군 M계열 트럭을 6.25 배경의 영화에 쓰기 위해 개조한 것으로 보인다.[23] 89년까지 운용했던 J603(!)은 광주에 투입된 사진자료가 존재한다[24] 다만 1911은 라이선스 생산, 타 회사의 민간시장용 제품, 불법 카피본 등이 많아서 콜트 순정품으로 단정지을 수는 없다. 특히 한국전쟁 당시 부산진 조병창에서 생산한 기록도 있으니 더더욱.[25] 젊음은 갈 곳을 모르는 채(젊음은 피어나는 꽃처럼) / 어제 처음 만나서 사랑을 하고(어제 다시 만나서 다짐을 하고) / 이름 모를 거리로 떠나갈 거예요(행복 어린 거리로 떠나갈 거예요).[26] 현재는 새로운 모범운전자회 휘장이 쓰이고 있는데, 모범운전자 문서 참조.[27] 지금은 5년으로 완화되었다. 또한 여기에서 만섭의 경력을 대충 유추해볼 수 있는데, 그 이전까지 회사 택시를 몰다 중동 건설 붐 당시 사우디아라비아에 넘어갔고 중도 귀국한 후 아내가 타계, 개인택시 면허와 함께 모범운전자 자격을 취득한 것으로 볼 수 있다.[28] 물론 한국어를 모르던 피터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겠지만, 감정만은 그대로 전해져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으로 표현된다.[29] 또한 초반에 만섭은 전국에 비상계엄 선포란 기사를 보고 "또 손님 끊기는 거 아냐?"라고 투덜거리는데, 이로 보아 10.26 사태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계엄령이 선포된 후 손님이 많이 줄어 작중 시점으로부터 최근 몇 달간 수입이 많이 줄었을 거라고도 추측할 수 있다.[30] 1980년 5월 당시에 서울 지하철 노선은 꼴랑 1개 정도였다. 서울 지하철 2호선 1차 구간이 개통된 것이 1980년 10월 31일이다. 부산이나 인천, 대구, 대전, 광주 도시철도는 아예 없었다. 계획만 있었거나 계획이 세워지기도 전이다. 수도권 전철 1호선의 근간 노선이라 할 수 있는 경인선중앙선(용산역-청량리역) 일부 구간, 경원선 일부 구간(청량리역-광운대역), 경부선(서울역-수원역 구간) 일부 구간은 이 시점에 이미 전철화되어 있었지만, 그 이외 노선은 종로선을 제외하면 아예 없었다.[31] 사납금 제도가 생긴 이유가 그 당시에는 법인택시 기사들에게도 월급제보다 훨씬 유리하게 작용했기 때문이기도 하다.[32] 1990년대에도 강제력이 있긴 했지만 사실상 속도위반, 신호위반 등과 함께 교통경찰 범칙금 단골 셔틀 수준으로 인식이 저조했다. 2010년대 들어 출시된 차량들은 그것도 모자라 운전석에서 안전벨트를 매지 않으면 경고음이 계속 나오도록 되어있다.[33] 보통 좌석에 무게가 감지되면 안전벨트 차라고 경고음이 나오는데, 혼자 운전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놈의 경고음 때문에 조수석에 가방 올려놓을 때도 가방 다치지 말라고 벨트 채워줘야 할 정도로 죽어라 울린다.[34] 바깥쪽은 알루미늄 덮개 처리.[35] 영화에 등장한 브리사는 유지관리의 용이함을 위해 프린스의 구동계를 이식한 것으로 인한 문제가 겹쳐져 있기에 휠의 단순교체만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영화 속 차량은 프린스의 구동계를 이식한 것으로 소개되어 있는데, 프린스의 구동계를 이식하는 과정에서 허브와 너클까지 모두 이식한 것으로 추측되고, 57.1사이즈인 프린스 허브에 맞춰서 스파크 14인치 휠의 허브(56.5) 내경을 깎아서 장착한 것으로 추측된다. 스파크의 13인치 휠도 있으나 14인치 휠을 적용한 것은 캘리퍼의 간섭으로 인한 문제로 14인치 휠을 장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포니와 스텔라가 공용하던 휠의 pcd는 108로서 현대자동차의 옛 생산제품인 포드 코티나의 사양을 가져온 것이다.[36] 하물며 당시 세상에 딱 넷 있던 분단국가가 독일, 한국, 예멘, 중국이다. 키프로스는 1980년 이후 분단되었고, 동독에 대한 국민감정은 북한이나 일본 수준으로 안좋았다. 전국민이 분단이 뭔지 자기네가 왜 쪼개져 있는지 설명 안해도 다 아는 실로 드문 곳에 왔다는 걸, 그가 모를 리가 없건만 이 부분을 반영하지 않은 것은 약간 아쉬운 부분. 다만 실존인물인 김사복은 영어가 유창했지만 이 영화 설정상 김만섭의 영어는 워낙 짧으니 영어로 서독이라는 단어는 모르고 독일만 알아서 그랬다고 변명할 여지는 있겠다.[37] 2017년 기준으로 '서독' 이라는 단어는 고연령층 외에는 아는 사람만 아는 단어가 된 상태라서 대다수 관객들에게는 낮선 단어다. 여담으로 고의 고증오류의 가장 큰 경우가 비 영어권의 사건을 다루는 영화에서 화자들이 영어로 대화 하는것. 더빙이 아니라 원래 작품이 그렇다. 고증을 충실히 한다면 해당 언어로 대화하고 자막 처리하는 것이 맞으나 자막 읽기를 싫어하는 미국인 관객을 위해 영어로 제작한다. 대표적으로 작전명 발키리, 마지막 황제.[38] 추측상으로 <마유미>처럼 비행기 테러와 관련된 영화가 아니니 보잉과 상표권의 가격 협상이 잘 안 됐거나 포커 27이나 보잉 727의 CG나 영상이 적어서 비교적은 흔한 에어버스기로 대체한 것으로 추정된다.[39] 구 호남고속도로 장성 나들목 남단에 있는 못재육교 밑 폐도에서 해당 장면을 촬영하였다. 영화를 자세히 보면 한국도로공사에서 설치한 기점표시판이 보인다. 이 도로는 직선화 및 못재터널 신설로 2012년에 폐도되었다.[40] 1980년 당시 4차선 고속도로는 경부고속도로경인고속도로밖에 없었으며, 호남, 남해, 영동, 동해, 구마선 모두 2차선이었다. 호남고속도로는 1985년 대전-전주, 1986년 전주-광주, 1988년 광주-담양 구간이 확장되었다. 나머지 구간이 완전 확장된 것은 1996년. 영동고속도로가 확장된 것은 1994년~2001년사이였으며,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88올림픽고속도로도 구 도로가 일반도로로 강등되고 산꼭대기에 교각 놓고 직진하는 시원한 선형으로 바뀌었으며, 극히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2차선 고속도로는 이제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41] 다만 호남고속이 2차선이라고는 해도 명색이 고속도로인지라, 곡선 반경은 영화에서 나오는 고갯길보단 완만하다.[42] 그나마 적절히 아웃포커싱되기는 했다.[43] 설계상으로는 수표교나 진천 농다리 같이 옛날 돌다리의 하중구조와 똑같다. 이 때문에 집중호우만 오면 시골 다리가 끊기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자체하중으로 눌러 지탱하는지라 거센 물살에 교각이 순간적으로 떴다가 중심이 무너진 채로 내려앉으면 다리가 무너져버리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레고처럼 끼워놓은 구조가 아니고 블록쌓기처럼 얹어만 놓은 형태인 것.[한글] 군, 광주에서 인간사냥을 자행하다[45] 지금의 조선일보명조체를 0.9:1 비율 혹은 포토샵에서 span 140%로 찌그러뜨리면 비슷하다.[46] 이는 송강호가 10년 앞서 출연한 영화에서 등장한 여주인공의 차량 번호도 마찬가지이다.[47] 취소선을 쳐놨지만 사실 이 사람이 정한 법 때문에 멀쩡히 잘 팔리던 해당 차량이 단종된 탓이다.[48] 단, 일본에서도 역사가 오래된 기관은 역사성을 과시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구자체를 쓰는 경우가 있으며, 배경인 1980년에는 지금보다 그런 경우가 더 많았기 때문에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다. 지금도 요미우리 신문, 게이오기주쿠대학, 학사회(제국대학 학부 졸업생들의 동문회. 초창기 일본의 학사 학위는 제국대학에서만 수여했기 때문에 붙은 이름.) 등 역사가 오래된 몇몇 단체는 명칭을 구자체로 표기하며 현행 헌법도 구자체 표준 시절에 제정되어 여전히 구자체로 적혀 있다. 번체자라는 말은 중화권식 표현이고 일본어에서는 구자체라고 한다.[49] 대우가 새한자동차이던 시절 1982년 출시한 "맵시"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