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과외(課外)는 학교의 정해진 정규 교과 과정 이외에 비공식적으로 하는 수업의 일종으로, 교수자와 1대 1로 집중적인 교수를 하는 것을 뜻한다.사교육의 한 종류로, 엄밀히 따져보면 제도권 내의 정규 과정 수업 이외의 활동은 모두 엄밀히 말하면 과외 활동이지만 흔히 국어, 수학, 영어, 미술, 음악 등 학교 수업만으로 학업 성취도 향상이 어려운 과목에서 교수자와 수강자가 1대 1로 수업을 하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통용된다. 과외비는 상당히 비싸기 때문에 비용을 줄이고자 1대 2 또는 1대 3, 심지어 1대 4로 하는 경우도 있다.[1] 이런 경우 그룹 과외라고 칭한다.
2. 상세
2.1. 교육자의 선호 조건
보통 남성보다는 여성을, 문과보다는 이과를 선호한다.남학생인 경우는 기왕이면 동성보다는 이성이 좋으니 당연히 남선생보다는 여선생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의 경우는 남선생이 학생 입장에선 무서워보이고 엄격해 보일 수 있으며 조금 엄격한 강사를 원하더라도 차라리 여자 선생을 초빙하고 '엄격하게 가르쳐주세요' 하면 되는 거고,[2] 여학생들은 동성인 여선생들을 더 편해하고 좋아하기 때문에 학부모 입장에서도 같은 스펙이면 여선생을 선호한다.
대체로 문과보다는 이과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국어와 영어는 수능에서 문/이과의 실력 차이가 크지 않지만, 수학에서 문/이과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과 출신보다 이과 출신이 과외 구하기가 쉬운 편이다.
남자가 굳이 과외 학생을 구하는 경우, 보통 미필이면 사실 구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과외를 구할 정도면 아무리 어려도 학생이 최소 중학교 2학년~고등학교 1학년 이전에는 구하는 것이 보통이다. 부모나 학생이나 이 과외를 받는 학생이 입시할 때까지~고등학교 입학 전 선행학습을 완료할 때까지 받는 등 장기적으로 코디해줄 사람을 선호하는데, 남선생은 과외 도중 군대를 가게 된다면 과외가 중간에 끊겨 곤란할 수밖에 없으니까 당연히 남성의 군 미필 여부는 필수 조건이다.
다만 어디까지나 실력이나 학력이 비등한 관계에서 남성보단 여성, 문과보단 이과를 선호한다는 조건일 뿐이지, 학력과 실력이 매우 탁월하다면 해댕 사항을 무시할 수 있다.
2.2. 과외 과목
과외를 구하는 과목은 수학, 영어가 많다. 대학 입시에서 가장 중요한 과목이면서, 매우 어려운 과목이기 때문이다. 영어 과목은 과외를 아르바이트로 할 수 있을 정도의 역량을 가진 명문대 재학생이라면 문과라고 특별히 영어를 더 잘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기 때문에 문/이과를 크게 구별하지 않지만, 수학의 경우 이과 선호가 두드러진다. 문과 출신이 중학생 수준 정도면 몰라도 고등학교 수학을 가르치는 경우는 드물다. 수학의 경우 이과 학생들의 경우는 출제 범위와 과목 자체가 문과 수학의 범위를 넘어서기 때문에 사실상 이과생한테만 배울 수 있고, 문과 학생의 경우도 아무래도 더 전문성을 갖춘 이과생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문과생이 자신의 입장을 잘 알 것 같다는 이유로 문과생에게 수학을 배우려는 학생도 있긴 하다.[3] 배우려는 학생의 선호도 차이도 있지만 일부를 제외하면 애초에 문과 출신들이 수학을 가르치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 스스로 영어를 택하는 경우가 많다.국어의 경우는 거의 문과생에게 과외를 받으려 하지만 국어는 과외를 애초에 잘 받지 않는 과목이다.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국어 자체가 과외 강사에게 있어 상당히 난해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문학 이론, 문법 등 내신에 나올 법한 정형화된 경우라면 낫지만, 독서와 같이 정형화 되지 않은 거라면.[4] 다른 하나는 수요 자체가 적기 때문이다. 중하위권은 계열 막론하고 영어와 수학에 집중하게 된다. (예체능은 수학 제외) 그렇다고 상위권은 수요가 있냐면 그건 또 아닌 게, 문과 상위권이면 애초에 국어를 잘 한다! 이과 상위권은 수학 과탐에 집중하기 때문에 국어에 신경쓰기도 쉽지 않다. 결국 성적은 상위권 학생인데 국어만 유독 점수가 낮거나, 불안 해소용 내지 질문 셔틀로서 국어 과외 수요가 있다는 것. 이 정도면 과외선생이 웬만큼 뛰어나더라도 학생의 기대 수준에 부응할 수도 없고, 설사 뛰어난 강사가 존재하더라도 그 강사의 과외비는 일반인이 쉽사리 부담할 수 있는 과외 금액이 아니다.
탐구인 경우는 과탐인 경우는 다른 과목에 묻어가는 형식으로 가르치는 경우가 많지만, 반대로 사탐인 경우는 그러는 경향이 적다. 기껏해야 한국사 같은 대학교의 관련 학과와 밀접한 연결점이 있는 과목 정도이다.
2.3. 장단점
2.3.1. 장점
학원과 달리 1대 1이라는 특성 때문에 선생 입장에서는 한 명을 가르쳐서 피로도가 낮은데다가 급여가 매우 높으며, 반대로 학생 입장에서는 교육 역량이 분산되는 학원보다 더욱 제대로 맞춤 교육을 받을 수 있다.가끔 반수생이 고등학생을 가르치며 반수 비용도 벌고 자신의 실력도 높이는 경우가 있다고 하지만 그리 흔한 경우는 아니다. 가르치는 건 좋지만 그걸 통해서 복습은 해볼 수 있을지언정 자기 실력 자체가 일취월장하느냐는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새로 배우고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
2.3.2. 단점
학생의 학구열이 높아 과외자의 대학보다도 목표 대학이 높은데다가 경쟁이 매우 치열한 경우, 상위권 대학에 재학 중인 명문대생들도 과외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게다가 때가 되면 과외 활동을 버리고 제대로 된 직업을 찾아 취직 활동에 나서지 않으면 나이만 먹어가며 취업 시기를 놓치는 독이 될 수도 있다.[6]
게다가 과외자와 학생의 나이가 너무 많이 차이나면 선호하지 않는다. 입시 트렌드가 계속 변하기 때문에 예전 입시를 거친 사람들은 현재의 입시 트렌드와 출제 경향 등에 익숙하지 않아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03년도 현역생부터 문/이과가 거의 통합되는 방향으로 제도가 바뀌었는데, 이로 인하여 과거 입시에 익숙했던 문과생 과외자들이 크게 당황하는 경우가 있었다.
3. 역사
과외의 역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 시대부터 존재했던 유서 깊은 직업이며, 고학력자들이 가장 많이 종사했던 업종 중 하나였다. 서양에서는 고대 그리스의 유수한 학자들이 과외 교사를 본업 혹은 부업으로 했으며, 소피스트라 부르기도 했다.근대 시대 유럽에는 공교육 시스템이 미비했고 경제력이 있는 귀족과 부르주아 계층 등 상류층의 교육은 모두 과외 형식으로 이루어져 왔다. 임마누엘 칸트는 40대 중반 쾨니히스베르크 대학교의 교수가 될 때까지 개인 과외를 본업으로 하여 생계를 이어왔고 당대 상당수의 학자나 지식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칸트 정도니까 교수라도 되었고, 평생 과외를 업으로 했던 사람이 다수였다. 18세기 이후 공교육이라는 것이 유럽에 생기기 시작했지만 20세기초까지 상류층은 대부분 학교에 다니지 않고 개인 과외로 중등 교육을 이수했다. 19세기 대학이 대폭 증설되고 산업이 발전하면서 고학력자들의 일자리가 대폭 늘어나면서 전업 과외인이 차차 줄어들었고,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처럼 고정적인 직업을 얻기 전까지 과도기적으로 과외를 하는 경우로 제한되어 갔다.
현재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여전히 개인 과외 및 그룹 과외가 존재하며, 주로 수학 및 과학 과목이 수요가 많다. 대학원생 기준으로 미국 중소 도시에서는 시간당 30불 내외로 시세가 형성되지만, 명문대 출신은 시간당 50불 이상으로 올라간다. 또한 SAT를 위한 전문 그룹 과외 강사도 있다. 아이비리그 등 명문대 입학을 위한 경쟁이 치열한 뉴욕 등 대도시의 SAT 전문 족집게 강사는 시간당 수백불 이상의 고액을 벌기도 한다.
동양에서도 오래 전부터 개인 그룹 과외 등 사교육은 횡행했다. 기원전에 이미 중국에서는 제자백가가 난립했으며, 맹모삼천지교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교육열이 높았다. 이후 과거제를 중심으로 교육 체제가 확립되면서 중국과 한국 등 동아시아에서는 서양처럼 어학, 역사, 신학과 철학 등 인문학 중심의 과외보다 시험 합격이라는 목적성이 분명한 입시 대비 형태의 과외가 유행했다. 귀족, 양반 층에서는 단계별 과거 시험 대비를 위한 개인 및 그룹 과외가 횡행했다. 특히 응시 인원이 많은 소과 등을 대상으로는 일종의 학원 형태로 운영되기도 했다. 과거 시험에 합격해야 양반 가문이 유지되기 때문에 조선시대 양반 집안은 과거 시험 준비를 위해 노력과 비용을 아끼지 않았다.
이후 19세기 일본을 시작으로 서구화가 되면서 대학교가 설립되었고 입시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치열한 대학 입시를 대비하기 위한 과외 및 입시학원 등 사교육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해방 이후 우리나라, 그리고 개방화 이후 중국에서도 비슷한 입시 문화 및 학원과 과외 등 사교육이 생겨났다.
3.1. 대한민국
1950년대 때부터 시작되어 60~70년대에 크게 유행한 대학생 과외 형태는 입주 과외였다. 학생의 집에서 하숙 겸 상주하면서 수시로 공부를 봐주는 형태였다. 입주 과외를 통해 등록금+하숙비+용돈을 해결할 수 있었다. 기사에 따르면 당시 입주과외비를 2011년 물가로 환산하면 월 150만원 가량 된다고 한다.[7]1960년대 비평준화 시절, 대도시인 서울과 부산에서는 명문 중고교에 진학하기 위한 초등학생, 중학생들의 입시 전쟁이 과열되면서 과외 등 사교육이 사회 문제가 되었다. 이 당시에는 중학교도 입학 시험이 존재하였고, 명문 중학교에 입학하려면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1960년대에는 경기중에 입학하면 경기고에도 거의 그대로 진학했고, 당시 경기고에 들어가면 서울대나 연고대에 거의 합격했었다. 때문에 경기중학교에만 들어가면 SKY는 거의 보장된 상황이었고 때문에 중학교 입시가 치열했다. 하지만 중학교 입시는 통학 거리의 한계가 있어 지방으로는 파급되지 못했고, 서울과 당시 6.25를 통해 서울 못지 않은 대도시로 성장한 부산 정도가 특히 치열했다. (1960년에 서울과 부산 인구가 각각 200만명, 100만명을 동시 돌파했다.) 초기에 이런 중학교 입시는 주로 과외가 담당했으나 1950년대말 서울 종로에 입시학원들이 생겨나면서 60년대부터 학원들이 성업하였다.
60년대 중학교 입시가 너무 과열되면서 학원과 과외가 횡행하였다. 특히 60년대에는 현직 교사들이 공무원 신분으로 불법적으로 과외를 하여 사회 문제가 되었다.[8] 또 중학교 재수생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연고대는 보장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경기중을 비롯한 명문 중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60년대말 서울에만 13살 중학교 재수생이 연간 6천명이 넘었다.
이 당시에는 웬만한 가정에서 자식 다섯은 기본으로 두었던것은 물론이고, 사교육은 커녕 월사급도 부담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돈이 있는 가정은 물론 가난하더라도 공부를 특출나게 잘하는 자녀가 있으면 나머지 자녀들을 희생하면서까지도 명문학교에 보낼려고 애썼다. 안 그래도 하루벌어 하루사는 사람이 많았던 가난했던 시대에 사교육비가 천정부지로 치솟자 엄청난 사회문제가 되었고, 정부는 1968년 7월 15일 교육개혁을 단행하여 '어린이를 입시 지옥에서 구하자'며 중학교 평준화 정책을 실시했다. 이 정책에 당시 중학교 입시를 준비하던 6천여 재수생들은 멘붕에 빠졌지만 대다수의 어린이와 학부모들의 폭발적인 환영을 받았다. 1969년 서울특별시에서 중학교 입시가 폐지된 것을 시작으로 1970년에는 부산직할시· 대구시· 광주시· 대전시 ·인천시 ·전주시로 확대되었고, 1971년에는 중학교 입시가 대한민국 모든 지역에서 폐지되었다.
하지만 중학교 입시가 사라지자 이번엔 고교 입시가 치열해졌다. 60년대까지는 경기중에 들어가면 거의 경기고까지 스트레이트로 가는 식이었기에 중학교 입시가 치열했고 고교 입시는 상대적으로 치열하지 않았다. 이후 중학생들의 고교 입시 전쟁이 지나치게 과열되자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1974년대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을 전격 시행했다. 1974년 서울과 부산에서 연합고사를 실시하여 연합고사 성적으로 뺑뺑이 돌리는 방식으로 학교를 배정하는 고교 평준화 정책이 본격 시행되었다. 평준화 실시 이후 명문고를 가기 위한 중학생들의 입시 전쟁은 크게 완화되었지만 이제는 대학 입시 경쟁이 과열되었다.
70년대 입시 과열을 잡기 위해 평준화가 순차적으로 실시되었지만 국민소득 향상으로 가난한 집에서도 여윳자금을 사교육비에 쏟아붓기 시작하며, 교육열은 높아져 갔다. 74년 고교 평준화로 학교 수업이 중위권 학생 기준으로 이루어지자 명문대 본고사를 준비하던 상위권 학생들을 중심으로 과외가 성행하게 되었다. 과외 공부만으로도 부족해 과외공부의 복습을 시켜주는「새끼과외」, 입시를 앞두고 집중지도를 받는 「반짝 과외」, 어느 한 과목을 집중적으로 파는 「소나기과외」 등 갖가지 형태의 과외가 생겨났다. #
1979년 12월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신군부는, 정의 사회 구현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서민층의 지지를 얻기 위한 유화 정책으로 1980년 7월 30일, 전격적으로 과외를 전면 금지시켰다. 또한 재학생들이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받는것도 금지했기 때문에 상당수의 학원도 이때 문을 닫았다.[9] 이 당시에 과외비가 비쌌기 때문에 당시 국민들에게 엄청난 지지를 받았지만, 과외 하나로 생활비, 학숙비, 등록금까지 모두 해결할 수 있었던 명문대생은 대놓고 드러내지는 못했지만 엄청난 불만을 가졌다. 이것이 유신 정권 때만 해도 비교적 잠잠하던 대학생들이 1980년 이후 학생운동이 폭발적으로 일어난 한 원인이 되었다는 시각도 있다.
전두환 정부는 과외를 금지한 대신에 TV에서 교육방송을 실시했다. 이미 전두환 정부는 정권을 잡은 직후부터 사교육 금지를 위한 방안을 고심했고, 1980년 4월 KBS에 과외를 대신할 교육방송을 하도록 지시했다. 그리하여 KBS와 MBC에서 가정고교방송이 편성되었고, 이광용[10], 채영기 등 당시 최고의 1타 강사들을 섭외하여 1980년 6월 첫 방송을 시작했다. 당시 KBS 교육방송의 반향은 엄청나서 교재가 품절되어 난리였고, 교육방송 때문에 비수기에 TV 판매량이 두배나 급증하였다. KBS 교육방송은 이듬해인 1981년 별개의 채널로 독립하여 KBS 3TV이 되었고, 1990년에 KBS에서 분리되어 EBS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당시 정부는 과외하다가 적발되면 면직, 구속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사용했다. 실제로 당시 과외하다가 적발된 학부모들이 면직되었다. 다만 엄밀히 말하자면 과외가 완전 금지였던 적은 전두환 정권 전반기 몇 년 정도의 일이고, 그 이후로는 점차 과외 단속이 느슨해졌다.
그러나 정부의 과외 금지 조치에도 비밀 과외가 성행했고, 게다가 과외가 비밀 과외 형태로 음성적으로 진행되면서 단속반을 피해야 하는 위험 부담이 가격에 고스란히 반영돼 과외비가 천정부지로 오르게 되었다. 또한 과외가 금지되고, 상당수의 학원들이 폐업했어도 대학진학률을 높이는데 매달리던 대부분의 고등학교에서 야간자율학습 및 보충수업을 의무적으로 시행했기 때문에 고학년생들은 여전히 밤에 공부로 시간을 낭비했던것은 여전했기는 했다.
아무튼 그래서 이 시대를 보낸 세대들이 교복자율화와 엮어서 전두환때를 청소년들이 가장 자유를 누리던때라는 농담을 하기도 한다. 물론 비교적 자유로히 사복을 입고 등하교했기는 했지만, 이 당시에는 체벌이 금지되지는 않아서 사소한 이유로 체벌을 한다거나, 머리를 길렀다고 고속도로를 내는것은 여전했었기 때문에[11] 실상과는 거리가 있었기는 했다.
1986년 대법원은 “지식을 교습하는 행위는 반사회적이거나 반국가적인 불법한 내용이 아닌 한 제한할 수 없다”는 학습권 존중 판결을 내렸다. 1989년 2월 대학생 과외가 전면 허용되었다. 대학생이 아닌 일반인은 여전히 과외가 금지였으나 유명무실했졌다. 90년대부터 몇만원짜리 동네 과외서부터 고액 과외까지 성행하게 되었다. 사문화된 일반인 과외 금지 규정도 해제되었다.
그리고 2000년 4월 말 헌법재판소에 의해 1980년대 시행되었던 과외 금지 조치에 대해 위헌 판결[12]이 나면서 앞으로 과외가 규제될 일은 없게 되었다.[13]
4. 불법 여부
4.1. 법적으로 허용된 과외
1. 학원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 제2조 제3에 의하여 허용된 과외 행위 혹은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보충수업 자율학습.
2. 학원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 제3조에 의하여 허용된 과외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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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불법 과외 여부의 판정 기준 및 불법 과외 유형
판정 근거: 학원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 및 동 시행령 |
- 현직 교사(예·체능 포함)의 교습 행위(방학 중에도 불가)
- 영리를 목적으로 직업적, 전문적으로 하는 대학생 교습 행위
- 영리를 목적으로 건물임대 및 다수인(10인 이상)을 대상으로 과목별 강사팀을 조직·운영하는 교습 행위
- 일반인의 무인가 교습행위
- 퇴역 학원 강사 등의 개인 및 그룹 교습행위
- 빌라, 오피스텔, 사무실 등을 이용한 기업형 교습 행위 ||
신고 절차는
1. 개인과외교습자 신고서 작성
2. 지역 교육청에 제출
3. 신고서 검토 및 확인
4. 신고필증 교부
순이다.
교육청에 직접 방문해서 신고서를 제출하고 신고필증을 교부받으면 과외활동을 할 수 있다.
규정을 보면 애매한 부분이 많은데 구체적인 적법 판정은 각 관할 교육청에서 판단하도록 되어 있다. 문제는 지역 교육청마다 이 기준이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같은 교습 행위에 대해서 서로 다르게 판단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 지역에서는 합법인 것이 바로 옆에 있는 도시에서는 불법으로 규제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교육 관련 정책이 으레 그러하듯 과외 관련 법규도 생각보다 자주 바뀌기 때문에 합법이었던 교습 행위가 어느날 갑자기 불법이 되기도 한다. 위의 규정을 보다보면 알겠지만 애매한 부분이 많을 뿐더라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이미 상당수의 과외들이 불법 요건을 충족한다. 그러나 과외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비공개적이라 일일이 적발할 수 없기에 그냥 암암리에 범법을 하면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만일 자신이 그런 행위를 당했거나, 혹은 목격했다면 지체없이 교육부 불법 사교육 신고 센터에 신고하도록 하자.
5. 대우
고도의 정신 노동이라는 업무 특성상, 일 자체가 매우 깔끔하다. 더러운 꼴 안 볼 가능성이 다른 알바보다 높다. 하지만 학생 혹은 학부모가 개차반이면 더러운 일을 겪기도 한다. 이건 그냥 재수가 없는 경우라고 생각해야 한다.다른 직종보다는 훨씬 감정 노동 측면에서 수월하다. 무엇보다도 엄청난 급여 덕에 대학생이 할 수 있는 알바들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선호도를 자랑한다. 실제로 과외 구직 시장에서 통할 만한 고학력자들을 모아 두면 대부분 한 번 이상의 과외 경험이 있을 정도로 아르바이트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급여 외에 인격적인 차원에서의 대접도 매우 좋다. 일단 고용주(이 경우엔 학부모)에게 "선생님" 소리를 들으며 존댓말을 들을 수 있는 알바가 얼마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고용주들이 알바를 어떤 취급하는지만 생각해 보자. 그리고 집에따라 다르지만 공부하면서 먹으라고 간식을 제공해주는 경우도 많다. 가끔 이런 것에 익숙해진 과외 강사가 당연하게 요구하는 경우가 있는데, 절대로 당연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성적이 좋아야 되는, 진입장벽이 꽤 높은 업종이라 아무나 하긴 힘들다. 보통 과외 시장에서 통하는 학교는 KAIST, 포항공과대학교 같은 과학 계열 특성화 대학, 서울 소재 중상위권 이상 종합 대학, 의치한약수, 지거국, 교대나 주요사범대[14] 재학생, 외국 대학 출신자 정도는 돼야 과외 구직 시장에서 통한다. 수능 성적으로 따지면 보통 최소 상위 5% (문과) ~ 10% (이과) 이내 정도는 돼야 할 것이다.
가르치려는 과목을 충분히 잘 알아야 되고 자료와 경험도 필요하며 돌발 질문에 대답하는 순발력과 암기력 등은 학생 때 어지간히 철저히 공부해놓지 않은 이상 거저 생겨나지 않는다. 이런 점은 과외를 시작한 후에 준비한다고 되는 부분이 절대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본인이 공부를 잘 하는 것과, 배운 것을 잘 가르치는 것은 꽤 다르다.
10년쯤 했다 하는 전문 과외 선생이라 해도 쉬운 부분은 아니다. 사실 어느 학생이든 학생에게 척척 맞는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과외를 하고 있겠는가? 진작에 더 큰 시장으로 갔을 사람이다. 학부모의 인식도 한 몫 하는 것이, 자녀에게 과외를 시키는 학부모들은 빡세게, 숙제 많이, 쉬는 시간 없이 열공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괜히 사범대학에서 교수법을 따로 가르치는 게 아니다. 가르치는 것도 기술이 필요하므로, 학생이 집중력이 부족하거나 기초가 안 되어 있을 경우 애를 먹는 일이 많다.[15]
6. 급여
2회/주, 2시간/회, 수도권 기준 30만~50만원/월이 표준이다. 시급으로 치면 월 30만원의 경우 30만원/(2시간*2회*4주)=18,750원이다. 일반 알바와 달리 준비 시간이 걸리고, 이동 거리가 멀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시급 15,000원 미만은 거의 없다. 또 같은 과목 과외를 계속하면 요령이 생겨 준비 시간도 줄어든다. 세전 연봉 4,000만원의 대기업 대졸 신입 사원의 경우 세금 제하면 월 285만원 정도가 실수령액이 되는데, 주 40시간 근무시 시급 17,813원, 주 60시간 근무시 시급 12,000원 정도다. 서울대생 과외같은 경우에는어쨌든 단순히 보면 웬만한 대기업 초임보다도 시급이 높다. 학창 시절 과외로 재미를 보던 사람이 취직해서 일이 더럽고 힘들다는 생각이 들면 "차라리 과외나 할까?"란 생각을 하는 이유. 하지만 그건 굉장히 단순한 생각이다. 물론 이런 불평을 하는 사람들도 보통은 진지하게 하는 소리가 아니라 단순한 푸념인 경우가 많다.
취업에 실패한 경우 과외가 가능한 학력이라면 과외로 먹고 살려는 졸업생들이 종종 있다. 1대1 면대면 방식의 전통적이고 순수한 과외 교습 행위에서 30대 강사는 찾기 힘들다. 학부모들이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30대를 넘어가면 그냥 학원 강사를 하던가, 보통 노하우를 살려 교습 학원을 차리거나 오피스텔 등을 적당히 개조해서 그룹과외를 하는 것이 보통이다.
시세는 1989년 대학생 과외가 전면 허용된 이래 거의 안 올랐다. 1990년 서울대에서 자체 통계를 낸 결과, 과외 강사 1인당 평균 수입이 월 36만원이었다.[19] 참고로 당시 서울대 문과 기준 학기당 등록금은 45만원 정도였고, 대졸 신입 사원 평균 월급이 50~60만원이었다.[20] 90년대에도 명문대생이라면 과외비로 보통 30만원 이상은 받았고, 90년대 중반 이후로는 고등학생(이과)은 40만원 이상받는 경우도 흔해졌다. 1998년 교육부에서 국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주2회 1회2시간 기준으로 대학생 과외비는 평균 30만원이었다(한겨레 1998.11.05 기사). 2002년 병욱 대첩 당시 쟁점이 "주 2회 40만원 이하로는 하지 말자"였는데, 2019년 현재도 별 차이가 없다. 특성상 대부분 개인사업자기 때문에 가격 인상이 쉽지 않다. 그것도 있으나 지나친 교육비를 제한하려는 노력[21]도 있다.
과외 허용 초창기에 물가 대비 높은 과외비가 가능했던 것은 일단 1980년대 과외 금지 시절 윗 단락에서 언급한대로 위험수당까지 붙은 높은 과외비가 그대로 계승한 데다가, 1990년대 중반까지도 중,고 재학생 대상 교습학원 및 전문 과외강사의 강의가 불가능했었다. 즉 1989년부터 90년대 중반까지 몇년동안은 명문대 대학생 외에 합법적으로 과외강의가 불가능한, 즉 수요에 비해 공급이 크게 제한되어 있었다는 것이다.[22] 그게 1992년부터 재학생의 입시학원 수강이 일단은 가능해졌고[23], 1994년 법령 개정으로 학원설립 관련 규제가 완화되어 이무렵부터 소규모 보습학원을 위시한 재학생용 학원이 늘어나고, 이후 대형 입시학원도 그 사업에 프랜차이즈라는 이름으로 가세하고, 2000년대 이후부터는 이들 학원들이 전문화된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수강생들을 모으다 보니 시장의 파이를 과외가 독점할 수 없어 시세가 내려갈수밖에 없었다. 체계적인 교습 시스템으로 무장한 대형 학원 및 그 프랜차이즈를 개인이 대적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최근 과외비는 학원 원비와 비슷한 수준까지 왔다. 1:1의 장점을 능가하는게 전문 학원이기 때문.[24]
광역시의 경우 거점국립대학교 학생들도 의치한약수 등 소위 메이저급인 일부 학과를 제외하면 과외 자리를 구하기가 쉽지는 않다. 왜냐하면 광역시에는 보통 거점국립대 의대, 수의대, 약대, 로스쿨, 사범대, 지역 사립대 의대, 울산ㆍ대구경북ㆍ광주과기원, 사립대 한의대, 교대, 등이 대거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당연하지만 과외 시세는 과목별 뿐 아니라 지역별 편차도 심하다. 서울, 부산, 대구등 대도시 보다는 오히려 인근의 베드타운[25]에서 시세가 높은데, 중산층 가정이 많아 수요는 높은데 거주 중인 명문대생은 (방학, 휴학해서 집에 있지 않는 이상) 적기 때문이다. 지방으로 갈수록 명문대생들이 적기 때문에 명문대생 가격이 더 높아진다.
서울권 대학 재학생과 지방권 대학 재학생 간 선호도 차이가 있지만 지방에서 서울로 등하교를 하는 학생은 사실상 없기에 지방권에선 서울 명문대생에게 과외를 받기 힘들다. 그래서 지방 명문이거나 지거국 상위권이라면 오히려 블루오션인 셈. 반대로 명문대학들이 너무 몰려 있는 지역인 경우엔 명문대라도 과외 잡기가 쉽지 않다. 특히 신림동이 그러한데 서울에 아무 연고(인맥)가 없는 지방 출신 서울대생이 싼 가격으로 과외 시장에 뛰어들어서 단가가 낮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 라는 대원칙 역시 과외에도 기본적으로는 해당된다. 만약 대학/대학원에 재학 중이라면 안해도 되지만, 휴학생은 대학 및 대학원에 재학하는 상태가 아니므로 교육청에 과외 신고를 해야 한다. 대학/대학원 재학생이 아닌 자가 합법적으로 과외를 하려면 관할 교육청에 '개인 과외 교습자 신고서'를 제출하고 세무서에도 사업자등록을 해야 한다. 다만 개인과외는 공제되는 항목들이 많은데다 규모가 크지 않아 세금을 낼 가능성은 적다.
개인 과외 교습자 신고를 하지 않고 과외 교습 행위를 하다 적발될 경우 학원의 설립 운영 및 과외 교습에 관한 법률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다만, 초중고생을 학습 대상으로 하지 않는 경우라면 개인과외 교습자 신고는 하지 않아도 된다. 재능기부처럼 봉사 활동으로 하는 무료인 경우에는 소득이 없기 때문에 사업자 등록을 할 필요가 없다.
7. 주의사항
- 임금 체불 및 미지급
후불로 드릴게요 → 형편상 다음 달에 → 돈을 더블로 칠 게요 → 연락 끊김인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지인에게 소개받은 경우엔 이런 경우가 거의 없지만, 과외 알바 사이트나 전단지로 소개받은 경우엔 종종 있다. 내용증명 우편 보내서 돈을 받아내는 경우가 있다곤 하지만 내용 증명 보내면 폐문 부재로 돌려 보내는 등 과외 선생들의 피눈물을 뽑아내는 경우가 있다. 지급명령/소액 재판 및 사기 진정을 걸면 다 받아낼 수 있긴 하다.
2. 후불
신뢰가 깨지는 행동과 실력이 영 안 좋다고 느껴지는 행위를 자주 했다거나, 인지도가 낮거나, 어째 믿을 수가 없어 보였다거나 등 그런 실수를 한 게 없다고 확신하고 나서도 의심스러운 경우엔 과외 시작할 때 얼굴에 철가면 쓰고 선불 아니면 안 한다고 말해 놓자. 선불을 망설이는 경우, 하지 않는 것이 좋다. 혹은 정 타협해서 급여 주기를 짧게 잡고 조금씩 받든지.. 먹고 튈 것을 염려해서 그런 거라면그 정도 타협에는 협조할 것이다ㅡ 1번 항목 같은 경우가 아닌데도 선불을 못 한다는 것은 집에 돈이 넉넉치 않다는 것이므로 과외비를 받을 때가 되어서 본의 아니게 못 받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후불제 과외 경험자 중 돈을 떼인 경우가 많다. 선불이 돈을 떼일 리가 없잖아? 떼는 거면 몰라도 특히 계속 잘 줬어도, 마지막 달의 과외비는 핑계를 대며 떼먹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3. 학원
학생이 학원에 다닐 경우, 학원과 과외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번거로워질 수 있다. 해당 과목 학원을 다니는지 사전에 확인하자. 범위가 겹쳐서 학생의 학원 숙제 셔틀이 될 수 있다.[26]
4. 과외를 구하는 입장에서 주의사항
* 과외선생의 자질을 매우 유심히 파악하고 과외를 맡겨야 한다. 대충 학벌만 보고 과외를 덜컥 맡기는 경우가 많은데 시간과 돈을 날려먹기 십상이다. 특히 대학생 과외선생 중에는 남는 시간에 용돈벌이나 하려고 가볍게 임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수능은 최저만 겨우 맞춘 수시러가 수능 과외를 한다거나, 내신은 버리고 수능에 올인한 정시러가 내신 과외를 하는 불상사를 막으려면 적어도 점수 인증 정도는 받아야 할 것이다.
* 점수 인증을 하더라도 본인이 해당 과목을 잘 하는 것과 잘 가르치는 것은 천지차이이다. 해당 과목에 대한 감각은 좋지만 체계적인 설명은 못하거나, 기본기 없이 각종 꼼수만 꿰어서 점수를 낸 경우도 많다. 오히려 낮은 점수에서 시작해서 성적을 끌어올린 경험이 있는 사람이 과외선생으로는 훨씬 믿음직하다.
* 본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학습방향에 대해 충분히 상의하고 수업을 시작해야 한다. 과외의 장점은 맞춤형 학습인데, 본인에게 뭐가 필요한지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하면 대충 숙제만 잔뜩 내주거나 차라리 인강을 듣는 게 나은 경우가 발생하기 쉽다.
* 과외선생의 자질을 매우 유심히 파악하고 과외를 맡겨야 한다. 대충 학벌만 보고 과외를 덜컥 맡기는 경우가 많은데 시간과 돈을 날려먹기 십상이다. 특히 대학생 과외선생 중에는 남는 시간에 용돈벌이나 하려고 가볍게 임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수능은 최저만 겨우 맞춘 수시러가 수능 과외를 한다거나, 내신은 버리고 수능에 올인한 정시러가 내신 과외를 하는 불상사를 막으려면 적어도 점수 인증 정도는 받아야 할 것이다.
* 점수 인증을 하더라도 본인이 해당 과목을 잘 하는 것과 잘 가르치는 것은 천지차이이다. 해당 과목에 대한 감각은 좋지만 체계적인 설명은 못하거나, 기본기 없이 각종 꼼수만 꿰어서 점수를 낸 경우도 많다. 오히려 낮은 점수에서 시작해서 성적을 끌어올린 경험이 있는 사람이 과외선생으로는 훨씬 믿음직하다.
* 본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학습방향에 대해 충분히 상의하고 수업을 시작해야 한다. 과외의 장점은 맞춤형 학습인데, 본인에게 뭐가 필요한지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하면 대충 숙제만 잔뜩 내주거나 차라리 인강을 듣는 게 나은 경우가 발생하기 쉽다.
8. 업무 내용 및 장단점
과목은 수학, 영어 위주며, 그 다음은 과학, 국어, 사회 순이다. 제2외국어는 거의 없다.보통은 1인 혹은 그보다 약간 많은 학생을 대상으로 하여 학교 공부에 대한 일종의 보충 수업을 담당하게 된다. 따라서 학원 업무와 유사하지만, 소수의 학생만을 특별 지도하므로 집중도가 높고 학생의 눈높이를 감안한 맞춤형 교육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대개 선생이 학생의 가정을 방문하여 수업을 하기 때문에 학생은 이동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다.
단점으로는 과외 교사는 일반 대학생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무래도 프로 강사가 담당하는 학원 강의에 비해 전문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과외를 아예 직업으로 삼아 대학생 교사보다 높은 보수를 받는 프로 과외교사도 있지만, 이쯤 되면 프리랜서 강사지, 알바라고 할 수 없으니까.
가끔 각종 경시 대회 대비 등의 수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이 아닌데다 내용이 어려운 만큼 보수도 높다. 특히 경시 대회 대비 과외의 경우 단순히 학력이 높은 사람보다는 실제로 수많은 경시 대회를 누비며 내공을 쌓은 사람이 더 적합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교사를 찾는 것부터가 고역이다. 이 분야에서 인기있는 과외 선생의 경우 한달 보수가 100만원은 우습게 넘어간다. 경시 대회를 몇 주 앞둔 집중 훈련 기간에 주당 8시간 이상의 빡빡한 스케줄을 굴리는 경우 150까지도 가며, 선생이 가진 교재나 자료를 학생에게 주는 경우 그 교재비도 따로 줘야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런 과외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아무리 명문대 출신이라도 일반 대학생이 꿈꾸기는 매우 어렵다. 그리고 이런 과외를 받는 학생들은 대부분 그 과목에 있어서는 웬만한 대학생과 맞먹는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설픈 실력으로 나섰다가는 선생이 학생에게 역관광당할 수 있다. 제대로 된 선생님 찾기가 어렵기 때문에 경시 대회 과외를 잘 하는 사람은 임금 체불같은 건 상상할 수도 없고 오히려 그 학부모로부터 귀빈 대접을 받는다. 그리고 가만히 있어도 다른 과외 자리 소개가 들어오기도 한다. 실제로 영재원이나 특목고 대비 학원 강사들 중에는 이런 식으로 과외를 시작해서 점점 명성이 높아져, 아예 전업 강사가 된 경우가 많다.
과외 받는 학생들의 실력도 올 1등급 학생부터 7~9등급까지 다양한데, 상위권 학생일수록 페이가 올라간다. 그리고 상위권 학생들일수록 스카이 상위권 학과나 의대 재학생을 선호한다.
그 외에 AP 과목들도 페이가 세기로 유명하다. AP 강사가 흔치 않을 뿐만 아니라[27], AP를 듣는다는 것은 유학 준비생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가정 환경이 어느 정도 여유 있을 확률이 높으므로 임금 체불 등의 문제도 거의 없으며 가끔씩 보너스를 챙겨주는 경우도 있다.
이런 특이한 과목들이 아니더라도 수능 앞둔 고3이나 재수생들은 급하기 때문에 페이가 높다. 카이스트 수학과 정도 되면 수리 논술 주 2회로 130을 찍는 경우도 있다.
또한 대학생 이상의 고학력자가 수강생인 경우도 있다. 과목은 주로 영어 등 어학이나 유학 준비 시험, 프로그래밍이나 일반화학, 일반물리 등 어려운 대학 과목 등이다. 문과 쪽으로는 드물게 고등고시 관련 과목 과외도 있다. 고시 합격자들이 임용되기 전 남는 시간 동안 종종 하는 듯.
9. 여담
- 과외 학생을 가르칠때 편한 트레이닝복, (남자의 경우) 반바지, 노출이 심한 옷은 되도록이면 입지 않는 편이 좋다. 과외 선생님의 복장에 대해 지적하기 힘들기도 하고 옷차림이 불편해도 참는 경우가 많지만 복장에 대해 은근히 신경쓰는 학부모가 있기 때문에 오랫동안 학생과 함께 과외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깔끔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너무 화려한 복장이나 답답한 정장을 입으라는건 아니고(...) 캐주얼하고 깔끔한, 학생이 친숙한 옷을 입고하는 것이 좋다. 여름의 경우 여자과외 교습자이면 스커트에 샌들 차림일 때가 많은데 스커트를 입더라도 너무 짧지 않고, 특히 가정에 방문하는 경우라면 덧신을 따로 준비하는것이 좋지만, 남성과 달리 여성은 맨발로 학생의 집에 가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맨발이더라도 너무 화려한 패디큐어나 발찌같은 악세사리는 삼가는 게 좋다. 맨발로 학생의 집을 방문할 경우 최소한 발은 깨끗이 하고 가자. 참고로 여자는 남학생 여학생 상관없이 맨발로 학생집에 가는 것이 가능하고, 과외 받는 학생이 양말을 신고있더라도 맨발로 학생집에가는 경우가 많을 정도로 현재는 거의 보편화되었다. 현재는 크게 보수적인 집안이 아니라면 여성의 맨발은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편이다. 요즘은 남자도 남학생을 과외할때는 맨발이 용인되기도 한다. 대체로 과외를 받는 남학생도 맨발이라면 남자도 맨발로 과외를 가도 괜찮은 편이다. 여자 교습자일 경우, 가르치는 학생이 남자 청소년일 경우 복장이 미니스커트나 미니원피스, 오프숄더 같이 신체의 노출이 있거나 몸매가 드러나는 옷이면 학부모 입장에서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
- 중하위권 학생을 가르치다 보면 그저 학생이 안 하던 공부를 해서 성적이 올랐을 뿐인데 강사는 '가르치는 실력이 좋아서', 학생은 '내가 머리는 되는데 안 하는 타입이어서'라는 착각에 빠질 수 있다.
- 명문대 출신이라면 과외 자리를 구하기 쉬울 것이다. 의치한약수 등의 일부 학과를 제외하면, 대다수 지방 사립대, 하위권 대학 출신들은 과외 구하기가 힘들며, 과외 수업을 할 역량 자체도 대부분 안된다. 지방에서 과외를 구할 경우는 지방대를 다니고 있어도 그나마 과외 구하기가 쉬운 편이다.[28] 물론 카이스트와 같은 과학기술원, 포항공과대학교나 지방거점국립대, 국립대 사범대와 교대가 코앞인 지역은 제외. 물론 아무리 지방이라도 부모들이 아예 바보가 아니기에 블루오션이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부모가 납득할 만큼의 좋은 성적을 보유해야 하긴 하다.
- 한편 과외로 번 돈을 졸업할 때까지 갖고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대학생의 특성상 대개는 등록금, 생활비(자취 비용, 교재 구입비, 식사 비용, 교통비, 학생회/동아리 회비 등), 유흥비 등 어떤 식으로든 소진해 버리기 때문. 예외는 있지만 소비를 해버려도 의미가 없지는 않다. 명문대 출신이 아니라면 수많은 과외를 하며 학비를 충당하고도 남을 정도의 돈을 버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온전히 학비를 다 내고 엄청난 자취 비용 등의 생활비도 추가로 들게 마련이며, 보호자의 도움 없이 대학을 졸업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하위권 대학 재학생의 경우 택배 상하차 알바, 일용직 노가다, 배달, 유흥업소/식당 서빙 등을 전전하며, 생활비와 학비를 보태려고 한다. 그런 일들은 몸과 정신이 망가지는 일들이다. 하지만 과외 시장에서 수요가 많은 상위권 대학에 다니고 실력이 되는 경우는, 마음만 먹는다면 보호자의 도움을 거의 안받고 자기 힘으로 생활하고 졸업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실제로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 중에는 국가장학금으로 등록금을 내고 기타 생활비는 과외로 충당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 대개 과외 선생은 학생의 이야기를 들어주거나 공부를 비롯한 인생 전반에 관해 조언을 해주는 멘토 역할도 일정 부분 수행하게 된다. 보통 학생들이 많이 묻는 것으로 캠퍼스 라이프나 연애 등의 대학 생활, 진로 문제, 성관계 등 대개 어른만이 할 수 있는 일들에 관한 것[29][30] 등이 있다. 가정사에 관한 고민을 남몰래 털어놓기도 한다. 특히 학생이 청소년기면, 과외선생과의 나이차가 10살 내외일 경우 연애, 대학 생활 등에 대해 조언을 구하고 싶어하기도 한다.
- 선생이 학생의 질문에 선을 지키며 성의껏 답해 주는 자세를 견지하면 높은 확률로 학생이 선생을 진심으로 믿고 따르며 의지하게 된다. 그리고 선생은 적절히 떡밥을 살포하여 학생의 학업 의지를 고취시키는 게 포인트. 여담으로 가수 신해철은 학생 시절 영어 과외를 했는데 그야말로 신해철스러운 다양하고 흥미로운 정보를 전수시켜 자기는 뒤에서 코 파면서 애들 공부하는 걸 구경했다고 한다.
- 참고로 외국에도 "튜터"라고 부르는 비슷한 문화가 있다. 시급제인데 고등학생보다는 대학의 저학년들이 고학년에게 튜터를 받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 특히 미국의 경우 대학교에서 요구하는 학습량이 매우 많기 때문에 튜터를 받을 학생을 찾는다는 광고 뿐 아니라 "튜터를 구한다"는 광고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리고 가정 방문보다는 특정 장소를 택해서 만나는 것을 선호하며, 일반적으로 학부모를 대면할 일은 많지 않다. 그리고 초반 1~2시간 정도는 무료로 튜터를 하면서 계속 지도를 받을지 직접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 이와 별도로 재외 한국인들끼리는 한국식 과외도 많이 한다. 보통 과외는 나이 30이 넘은 후에는 거의 안하게 되지만 외국에서는 꼭 한국인 선생님을 찾는 학생들의 수요가 꽤 있는 편이라 의외로 나이가 중요하지는 않다. 특히 1년 연구년 등으로 자녀들과 함께 단기간 외국에 나온 부모들의 경우 자녀들이 외국에 있는 동안 한국의 친구들보다 뒤처질 것을 염려해 한국인 과외선생을 애타게 찾는 모습도 볼 수 있다.
- AP 과외를 원하는 고등학생들도 은근히 많다. 한국인이 많지 않은 지역이라면 과외 구하기는 의외로 쉽다. 대학원 유학 생활 중 과외로 용돈을 버는 경우도 있으며 좁은 한인 사회의 특성상 잘 가르친다고 소문 날 경우 가만히 있어도 자리가 계속 들어오기도 한다. 다만 미국 유학생이 과외를 봐줄 경우 영리 활동으로 여겨질 수 있고 적발 시 비자 취소와 함께 강제 출국 당할 수 있다.[31][32]
- 과외 짬밥이 나름 생기면 방학이나 휴학 기간에 돈 좀 넉넉히 벌어보고자 학원에서 일하는 경우도 있는데, 훌륭한 과외 강사가 곧 훌륭한 학원 강사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2시간 가량의 시간에서 1:1로 모든 것을 세세히 봐주면서 하는 수업과 10명이 넘는 학생들을 모아두고 50분 내외의 시간 안에 가르치는 것은 확실히 다르다.
- 가끔 지인들의 아이를 맡게 될 수도 있다.[33] 이런 경우에는 원래 알던 사람의 아이를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에 가르치기에도 비교적 수월하고, 학부모와의 관계 또한 아무래도 자신을 믿고 맡겼다는 느낌 덕분인지 좀 더 가까운 편이다.
- 또한, 2020년에 발병한 코로나19로 인해 학원 수업, 학교 수업이 중단되면서 과외시장 자체가 매우 커졌다. 일대일 대면 과외는 물론이고, ZOOM 등의 화상 회의 프로그램, 김과외 등의 과외 중개 플랫폼, 맘카페를 통한 비대면 과외의 수요도 늘었다.
- 조선 시대에도 과외 교사가 있었는데, 숙사라고 불렸다. 글자 그대로 학생의 집에서 먹고 자면서 학생을 가르쳤는데, 주로 가난한 선비들이 생계 유지를 위해 하는 일이어서 학생들로부터 별로 존중을 받지 못했으나, 개중에는 왕실이나 높은 관리들의 자제들을 가르치면서 큰 인기를 얻었던 노긍이나 이귀상처럼 사회적으로 명성을 얻었던 숙사들도 있었다.
- 과외 학생이 성실한 편이라면 괜찮지만 숙제를 잘 하지 않는 등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는 학생도 있다. 혹은 과외 중에 학습과 관련 없는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조르는 학생도 있을 수 있다. 이런 학생들을 잘 다루는 것도 과외 선생님의 몫이다. 숙제를 해 오지 않는 학생의 경우 수업 중에 숙제와 관련된 쪽지 시험을 보거나[34] 사정이 있어서 숙제를 자주 못 하는 학생의 경우 숙제를 주지 않고 수업 중에 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편이 좋다.
부모님이 엄하신 분이라면 부모님께 바로 말씀드리는것도 방법이다.
- 일어일문학을 전공한 교수가 퇴임 후 일본어 과외 시장에 진출한 사례가 있었다(2019).
10. 참고 문서
11. 관련 문서
[1] 대체로 서로 친한 친구들끼리 묶는 경우가 많다. 그래야 상대적으로 조율이 쉽기 때문. 그래서 혼성인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2] 물론 엄격한 강사를 원할 때 남선생을 초빙하는 경우가 아예 없지는 않다.[3] 오히려 문과 수학의 경우는 문과생들이 더 전문화(?)되어 있는 경우도 있어서 선호하는 경향도 있다.[4] 물론 읽기 전략 같은 걸 가르칠 수는 있지만, 결국 학생에게 문제해설을 하려면 매 번 지문을 다 읽고 정리해야 한다. 그마저도 학생이 이해를 못하겠다면 말짱 도루묵.[5] 농담은 아닌 게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서울 강남3구나 양천구 목동, 대구 수성구, 인천 송도, 부산 해운대구 등 상대적으로 부촌인 곳에선 과외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이 크다.[6] 대체로 과외는 대학생 재학 시기부터 대학 졸업 후 취직 준비를 할 때까지 진행하는 경우가 많으며, 슬슬 스물 후반을 바라본다는 생각이 들면 당장 과외를 포기하고 취업 준비를 하는 게 낫다. 때를 놓치면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는 게 어렵기 때문.[7] 입주 과외는 가난한 집안 학생들에게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왜냐하면 공부를 열심히 해서 명문대에 들어가면 입주 과외를 하며 등록금과 하숙비를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히려 50~60년대에 공부 잘 하는 학생들은 등록금, 생활비 걱정하지 않으면서 대학에 다닐 수 있었다고 한다. 드라마나 소설에는 예전 못살던 시절에 전교 1~2등 하던 우등생이 집안 형편이 어려워 등록금을 마련할 수 없어서 명문대 진학을 포기하는 상황이 그려지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와 반대로 가난한 집안에서 공부 좀 잘 하는 학생들은 입주과외를 할 수 있는 명문대에 들어가려고 기를 쓰고 더 열심히 공부를 했다고 한다.[8] 처벌 규정에도 불구하고 일부 현직 교사들이 과외에 나선 것은 1980년대까지 교사 봉급이 상당히 박봉이었던 탓도 있었다. IMF 이전에는 민간 대기업도 정년이 상당히 보장되는 편이어서 박봉이었던 교사직은 지금과는 달리 비인기 직종이었다. 1990년대 이후 교사 봉급이 많이 오르면서 민간 기업과 연봉 격차가 많이 줄어들게 되어 이런 문제는 상당 부분 해소되었다.[9] 다만 예체능이나 재수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원은 예외사항이라서 1980년대에 나온 매체에서도 학원이 나오는 경우는 있었다. 주수도가 학원을 차려서 대박쳤다느니, 천방지축 하니같은 애니메이션에서도 과외금지시절임에도 학원가서 피아노 교습을 한다느니 했던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였다.[10] 성문종합영어, 맨투맨종합영어와 함께 80~90년대를 풍미했던 영어의 맥의 저자 바로 그 사람이다.[11] 1982년에 두발자유화를 실시했다고는 했지만, 파마와 염색은 금지였고, 구체적인 시행방안은 학교장에게 일임한다는 조항으로 인해 학교장 재량으로 길이규정을 할수있던지라, 이 당시에도 길이규제가 있던 경우가 다수였고, 빡빡한 학교에서는 남학생은 길이 3cm 스포츠 머리, 여학생은 길이 5cm이하 단발로 규정해서 머리에 고속도로를 내는 행태는 변함이 없었다.[12] 사건번호 98헌마429[13] 과외금지 위헌 판결[14] 교원대나 공주사대[15] 게다가 골치아픈 문제가 있다. 선행이 안 됐거나 기초가 덜 닦인 학생의 경우 현행 진도 따라가기도 벅차다. 물론 진도를 나가는 일이야 불도저식으로 막 나갈 수는 있지만, 학생이 그걸 받아먹을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그렇게 막 빼봐야 학교에서 우격다짐으로 나가는 것과 하등 다를 게 없다. 나가기도 힘든데 시험 점수가 잘 나오는 것은 당연히 힘들고, 점수가 안나오면 아무래도 학생보다는 선생님 탓을 하는 부모가 많다. 돈내고 가르치는데 실력이 없어서 성적상승이 안된다나.. 결국 편하게 천천히 나가도 문제, 강하게 스파르타식으로 나가도 문제라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16] 강남을 얘기한다. 관악구와 구로구쪽은 학구열 자체가 낮고 소득수준도 낮은 편이라 학원도, 과외 수요도 적고 과외 시급은 더 낮은편[17] 다만 서울대생이 서울을 벗어날 경우 얘기가 달라지는데 이 때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현저히 적어지므로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주2회 회당 2시간 기준 50이 기본으로 잡힌다.[18] 물론 명문대생이나 의대생의 경우 약간의 프리미엄이 붙는 경우도 있지만 절대로 위에서 언급한 수준은 아니다. 입장바꿔 본인이 학부모라고 생각해보자. 명문대 출신 과외선생이라고 시장에서 책정된 수준의 1.5배~2배를 시급으로 턱하니 내놓기 쉽겠는가? 학부모가 명문대의 수준을 아는 명문대 출신일수록 과하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19] 강사 1인당 평균이 그렇다는 것이지 한 개 수업당 수강료가 저렇다는 것은 아니다. 두 개 이상의 수업을 뛰는 경우가 많아 저런 결과가 나온 듯. 여담으로 1990년 평균적인 수업료는 단과 주 2회 2시간 기준 15~25만원 정도였으며 당시는 학원수강 등이 금지되어 대학생 과외 외에 별다른 사교육이 없었던 탓에 강사 1명이 영어, 수학 등 여러 과목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 보통 주 3~4회, 2시간, 영어 수학은 기본에 필요하면 내신과목 보충, 이렇게들 많이 했다. 당연 수강료는 그 시간에 비례한다.[20] 즉, 그러니까 1990년대 초반에 과외는 그야말로 꿀알바였다는것으로 당대에는 과외를 좀 빡세게 돌아다니면 대학등록금 마련은 가능했었다. 다만 이것은 당시에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아서 벌어진 결과이기도 하다.[21] http://dbedu.sen.go.kr/CMS/civilapp/civilapp01/civilapp0103/civilapp010302/1201799_2729.html[22] 더군다나 과외는 1:1, 기껏해야 한번에 3~5명 정도가 한계라서 흡수할수 있는 인원이 학원 등에 비해 작다. 그러면서도 1990년대 초반은 대입 수험생 수 사상 최대인, 즉 대학입학 경쟁이 가장 치열한 시기라 사교육 수요는 지금보다 많았다.[23] '일단'은 가능해 졌으나 그때만 해도 재수생만으로도 수강생이 넘치던 시절이라 재학생 유치에 그리 관심이 없었다. 또한 당시 입시학원은 동네 학원과는 달리 도심부 대형 건물에 위치한 관계로 재학생들의 접근성이 불리했다. 따라서 재학생의 수강이 가능은 했지만 일반적인 경향은 아니었다. 여담으로 과외 금지인 1980년대 후반에도 재학생들은 비밀리에 학원 수강을 했는데 그 때만 해도 한 집에 자녀수가 많아 고등학생이 친형이나 친척 형의 신분증으로 재수생 코스프레가 어렵지 않았고 학원에서도 암암리에 알면서 눈감아 줬다. 물론 불법이여서 학원에서 특별히 재학생용 교육과정을 만든 것은 아니고 그냥 재수생용 단과학원에 재수생용 강의를 들어간 것이라 재학생 맞춤형 같은 것은 불가능했다.[24] 그래서 현재 과외시장은 부유층의 초 A급 강사 초고액 과외를 제외하고는 학원을 보내기 어려운 상황, 즉 교통 등의 문제로 학원에 통학하기 어려운 경우에 대안으로 과외를 선택하는 것이 과반수다. 우선순위가 학원 다음 과외가 되었다는 것.[25] 일산, 분당, 경산, 양산, 김해가 대표적인 예시다.[26] 이건 좀 생각을 해봐야 하는 부분인게, 편의점 같은데서 알바하는 것 보다는야 이게 훨씬 낫다. 학원 숙제 셔틀이건 뭐건 시급만 보장된다면 무엇이 대수이겠는가?[27] AP 과목들은 국내 교육과정과 가르치는 내용 및 유형이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에 강사가 흔치 않다.[28] 하지만 요즘은 지방이더라도 높은 퀄리티의 사교육을 원하는 학생이 많아서 주요과목의 경우 지방대생의 디메리트를 상쇄할 특이한 스펙을 가져야 과외를 할 수 있게 됐다. 예를 들어 수학을 과외한다면 지방대 수교과에서 학점이 4.0 이상이라던가 아니면 대수경 입상자라던가...[29] 다만 미성년자를 과외하는 경우 학생이 먼저 말을 꺼낸 게 아닌 이상 이런 주제는 당연히 피하는 것이 좋다. 경우에 따라 불쾌해하는 경우가 있고 성희롱이 될 수도 있다.[30] 성관계같은 민감한 주제인데 함부로 이성인 제자에게 말했다? 괜찮으면 다행인데 안 괜찮다면... 사실 당연하지만 동성에게도 뜬금없이 얘기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31] 물론 영주권자이거나 시민권자, 혹은 취업 제한이 없는 SSN이 나오는 비자를 소지중이라면 아무런 제한 없이 과외가 가능하다. 그런 경우가 거의 없어서 문제지.(...)[32] 다만 한국인을 상대로 한국 계좌로 과외비를 입금받는 경우 법적으로 문제는 없다. 한국에서 영리활동을 한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33] 실제로는 가끔이 아니라 대부분 지인의 자녀, 지인의 지인의 자녀 이런 식으로 과외를 구하게 된다.[34] 영어 과외라면 단어 시험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