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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Nietzsche | |||
본명 | Friedrich Wilhelm Nietzsche[1]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 ||
출생 | 1844년 10월 15일 | ||
독일 연방[2] 작센 왕국 뢰켄[3] | |||
사망 | 1900년 8월 25일[4] (향년 55세) | ||
독일 제국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바이마르[5] | |||
국적 | [[프로이센 왕국| 프로이센 왕국]] (1844~1869) / 무국적 (1869~1900) | ||
직업 | 문헌학자, 철학자, 시인, 음악가 | ||
서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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슐포르타 공립학교 (1858년-1864년) | |||
본 대학교 (1864년-1865년 / 중퇴) | |||
라이프치히 대학교 (1865년-1869년 / 문헌학 / 박사) | |||
경력 | 바젤 대학교 고전 문헌학 정교수 (1869~78)[6] | ||
학파 | 대륙철학, 독일 관념론, 허무주의, 투시주의, 실존주의, 후기 구조주의 | ||
연구 분야 | 미학, 반토대주의, 반소비지상주의, 무신론, 윤리학, 실존주의, 사실-가치 구분, 형이상학, 허무주의, 존재론, 철학사, 시, 심리학, 비극, 가치이론, 의지주의 | ||
가족 | 아버지 카를 빌헬름 루트비히 니체 (1813~1849) | ||
어머니 프란치스카 니체 (1826~1897) | |||
여동생 엘리자베트 니체 (1846~1935) | |||
종교 | 무신론[7] [8]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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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Gott ist tot! Gott bleibt tot! Und wir haben ihn getötet! Wie trösten wir uns, die Mörder aller Mörder? 신은 죽었다. 신은 죽어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를 죽여버렸다. 살인자 중의 살인자인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를 위로할 것인가? 《즐거운 학문》 |
Ich kenne mein Los. Es wird sich einmal an meinem Namen die Erinnerung an etwas Ungeheures anknüpfen – an eine Krise, wie es keine auf Erden gab, an die tiefste Gewissen-Kollision, an eine Entscheidung, heraufgeschworen gegen alles, was bis dahin geglaubt, gefordert, geheiligt worden war. Ich bin kein Mensch, ich bin Dynamit. 나는 내 운명을 안다. 언젠가는 내 이름에 어떤 엄청난 것에 대한 회상이 접목될 것이다. – 지상에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었던 위기에 대한, 가장 심원한 양심들의 충돌에 대한, 이제까지 믿어져 왔고 요구되어 왔으며 신성시되었던 모든 것에 거부를 불러일으키는 결단에 대한 회상이. 나는 인간이 아니다. 나는 다이너마이트다. 《이 사람을 보라》 |
프로이센 왕국(현재 독일) 출신의 철학자, 문헌학자. 그가 주장한 주요 철학적 사상에는 신은 죽었다[9], 힘에의 의지[10], 위버멘쉬[11][12], 영원회귀[13], 운명을 사랑하라[14] 등이 있다.
특유의 급진적인 사상으로 생철학, 실존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등의 철학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현대 대륙 철학의 근간을 마련했다.[15] 마르크스, 프로이트, 비트겐슈타인과 더불어 현대 인문학 전반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철학자이기도 하다. 실제로 저명한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이 시대 지식인들이 얼마나 정직한지를 확인하려면 그들이 마르크스와 니체의 이론적 기여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쉽게 말해, 마르크스와 니체의 영향력을 인정하지 않는 학자는 진실되지 못하다는 말로, 니체가 당대에 끼친 지성사적 영향력을 높이 평가한 발언이었다.[16]
특유의 공격적 비판으로 인해 오인되기도 하지만, 어떤 철학자보다 넓은 사상의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 철학자이며 그의 저서는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극단적일 정도로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다.[17] 그러한 까닭 중 하나는 니체 특유의 서술 방식이다. 그의 저작은 대부분 압축적이고 강렬한 아포리즘으로 이루어지며 논리적이라기보다는 문학적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남긴다.[18] 하지만 실제 성격은 온화하고 유머를 좋아했으며 사교성이 있었다고 한다.
2. 생애
자세한 내용은 프리드리히 니체/생애 문서 참고하십시오.3. 사상 및 영향
자세한 내용은 프리드리히 니체/사상 및 영향 문서 참고하십시오.4. 오해와 논란
자세한 내용은 프리드리히 니체/오해와 논란 문서 참고하십시오.5. 명언
자세한 내용은 프리드리히 니체/명언 문서 참고하십시오.6. 저서
제목 | 발간 연도 |
<colbgcolor=#fff,#1f2023> 비극의 탄생[19] Die Geburt der Tragödie | <colbgcolor=#fff,#1f2023> 1872년 |
반시대적 고찰[20] Unzeitgemäße Betrachtungen | 1873년 ~1876년 |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Menschliches, Allzumenschliches | 1878년 |
아침놀 Morgenröte | 1881년 |
즐거운 학문 Die fröhliche Wissenschaft[21] | 1882년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22] Also sprach Zarathustra | 1883년 |
선악의 저편[23] Jenseits von Gut und Böse | 1886년 |
도덕의 계보[24] Zur Genealogie der Moral | 1887년 |
바그너의 경우 Der Fall Wagner | 1888년 |
우상의 황혼[25] Götzen-Dämmerung | |
안티크리스트[26] Der Antichrist | 1894년[27] |
이 사람을 보라[28] Ecce homo | 1908년[29] |
니체 대 바그너 Nietzsche contra Wagner | 1889년[30] |
디오니소스 송가 Dionysos-Dithyramben | 1891년[31] |
6.1. 읽는 순서
흔히 니체의 저서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잘 알려져 있으나, 니체 철학에 익숙하지 않으면 그 안에 담긴 은유를 다 읽어내기에 무리가 있으므로 그저 산문시를 읽는 것에 불과하다.[32] 그래서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선악의 저편〉을 읽는 것이 필수다.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잘 안 팔리자,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해서 그 책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나름 학문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끔 저술한 책이 바로 〈선악의 저편〉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는 〈선악의 저편〉의 도덕 부분을 확장해서 논문형식으로 쓴, 〈도덕의 계보〉를 보통 읽는다. 이 두 책을 독파하고 나면 〈우상의 황혼〉, 〈즐거운 학문〉 등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4권의 책[33]을 읽었으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도 어느 정도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이해가 될 것이지만, 너무 많은 상징과 패러디가 들어 있기 때문에 쉽게 다가가긴 힘들다. 그래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전문해설서를 끼고 보는 것을 추천한다.그리고 니체 사상에서 핵심 개념들의 초기 아이디어가 어떠했는지 좀더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반시대적 고찰〉 2부 '삶에 대한 역사의 공과'는 반드시 읽어봐야 한다. 힘에의 의지, 강자와 약자, 위버멘쉬 등 후기 텍스트만으로는 정확하게 이해하기 힘든 핵심 개념들이 초기에 어떤 의미와 맥락에서 쓰였는지를 파악할 수 있어서 니체를 오해하지 않고 이해하는데 매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니체가 여러 책에서 반복해서 말하는 '디오니소스적인 것'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으면, 그의 초기 저작 〈비극의 탄생〉을 읽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다만 〈비극의 탄생〉은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깊게 받은 초기 저술이기 때문에, '힘에의 의지'를 강조하는 후기 철학과는 다르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물론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대부분이 '힘에의 의지'로 계승되므로 〈비극의 탄생〉은 후기 철학을 심도 있게 이해하는데도 도움된다.
니체가 지은 책들에 대한 니체 자신의 평가를 보고 싶은 사람은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를 읽는 것도 괜찮다.[34] 이 책은 또한 '어떻게 자기를 확신하고 긍정하며 살 수 있는가'에 대한 니체의 생각도 함께 쓰여져 있어서 이런 부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깊은 이해를 원하거나 관련 전문가의 경우에는, 이 저서들과 같은 시기에 쓰인 『유고』를 함께 보는 것이 좋다. 유고에는 니체가 출간한 저서들의 발생과정 및 숨겨진 의도와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특히 1885~1888년 사이에 쓰인 유고(책세상판 전집 기준 19~21번)는 책 『힘에의 의지』를 기획하기 위한 글 모음이기 때문에 니체의 진면목을 확인하려면 이 유고를 읽어야 한다. [35]
6.2. 한국어판 전집
니체 전집은 휘문출판사판(1969년), 청하출판사판(1982년), 책세상 니체전집 (2000년) 총 세가지가 있다.[36] 원고의 방대함과 치밀함은 책세상판이 높지만 번역 질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물론 청하판은 80년대에 나왔고 중역이 많지만 그럼에도 니체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책세상판과 달리 중요한 서문/평이 실려있으며 번역의 질이 우수한 작품도 있다. 대표적으로 니체의 대표작 중 하나인 『선악의 피안』[37]이 그렇다. 책세상판도 일부 단권으로 된 책은 서문이 달려있으며(ex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책의 뒤에 해설이 달려있다.책세상판 전집이 나온 이후, 아카넷 대우고전총서에서 박찬국 교수가 번역한 니체의 저작들을 모아 니체 선집을 구성했다. 박찬국 교수의 번역은 매끄러운 의역으로 이해하기 쉬워서 최근에는 박찬국 교수의 번역본을 많이 참고하는 편이다.
7. 여담
- 기존에 절대적이라고 믿어 왔던 전통적 가치관들을 망치로 다 깨뜨린다고 하여, 망치를 든 철학자라는 별명이 있다. 사실 이 별명도 니체 본인이 스스로를 그렇게 부른 것에서 나왔다.
- 니체는 10세 때 모테트[38]를 작곡하는 등 10대 시절부터 아마추어 작곡 활동을 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음악이 없는 삶이란 잘못된 것이다"라는 얘기까지 할 정도였다. 안타깝게도 청년 시절 이후부터는 본업인 저술에 몰두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작곡에 할애하지는 않았지만, 바쁜 와중에도 오페라나 오케스트라곡을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음악 스타일은 슈만과 흡사했다. 많지는 않지만 음반으로도 발매되었다. #1 #2
- 종종 원효를 한국의 니체라고 부르기도 한다. 동굴 속 해골물을 먹고 깨닫고는 세상에 나가 자신의 지혜를 광대처럼 '춤'을 추면서 전파했던 원효를 두고, 마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차라투스트라[39]와 비슷한 면이 있다고 본 것이다. # #
8. 외부 링크
[1] /ˈfʁiː.dʁɪç ˈniːt͡ʃə/ 성씨의 독일어 국제음성기호 표기는 Nie(니)-tzsche(처)로 끊어 읽은 [ˈniːt͡ʃə\]이지만 Nie(니)-tz(츠)-sche(셔)로 끊어 읽은 [ˈniːt͡sʃə\]도 허용된다. tzsch는 지금은 고유명사 외에는 쓰이지 않는 독일어의 오중문자(pentagraph)로 [t͡ʃ\] 발음을 나타낸다.[2] 독일 연방은 나폴레옹 전쟁의 결과를 수습하기 위해 유럽의 여러 나라가 빈 회의에서 유럽의 지도를 다시 만들 때 연합국들이 모여 만든 연방 국가로, 왕자와 공작, 주교, 선거후가 지배하던 39개의 독립된 군주국과 자유도시로 구성되었다. 다만 니체가 태어났을 당시 작센 주는 명목상 독립된 지역이었을뿐, 사실상 프로이센 왕국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3] 뢰켄(Röcken) : 라이프치히에서 남서쪽으로 약 21km 떨어진 곳에 있는 마을. 200명 정도 살고 있는 매우 작은 마을이다. 현재는 작센안할트 주 소속이다.[4] 장례식은 3일 뒤인 1900년 8월 28일에, 그가 태어난 뢰켄(Röcken Churchyard #)에서 치러졌다.[5] 현재는 독일 튀링겐 주 바이마르에 속한다.[6] 임시교수는 1868년부터 했었다.[7] 『도덕의 계보』에서 신이 '조상에 대한 공포'로부터 기원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듯이, 신은 허구(거짓말)에 불과하다는 것이 니체의 기본 입장이다. 따라서 니체의 유명한 말, '신은 죽었다'는 말은, 진짜 신이 있는데 죽었다는 것이 아니라, 신이 있다고 믿고 있었지만 이제 그것이 거짓말인 것을 알았다는 의미로 쓰인 것이다. 다만 니체는 유용성의 측면에서 '신을 믿는 것(종교)'을 아예 없애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데, 이 경우에도 유용한 종교는 그리스도교가 아닌 '다신교'이다.[8] 참고로, 니체는 반기독교(Anticrist)인 것은 맞으나 반신론(Antitheism)이라고까지는 볼 수 없다. 니체는 그리스의 신들과 인도의 신들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었다. 그렇다고 반유일신론도 아닌게, 니체는 구약의 신에 대해서 긍정적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니체가 신에 대한 적극적인 반박을 할 때도 있는데, 그 때 그 반박은 '기독교의 신'에만 해당되는 반박이었다. 즉, 니체가 반박을 하면서까지 부정적으로 본 '신'은 '신약의 신'에만 한정된다.[9] 서양의 전통적인 최고 가치로서의 신이 부재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 문제에 대한 시작은, 소크라테스가 육체에서 분리된 영혼이 존재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시작되었는데, 이 영혼과 육체를 분리하는 이원론에 의해 육체적 삶을 도외시하는 문제가 생겼다. 이 문제는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과 그리스도교가 계승하며 더욱 고착화된다. 특히 그리스도교는 현실의 삶보다 내세의 삶(천국)을 더 강조하기에, 천국을 강조할수록 '현실에서의 삶'은 점점더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러한 신은 죽어야 된다는 것이 니체의 주장이다.[10] 절대적 가치(신)가 사라진 세상에선, 스스로가 스스로의 가치를 만들며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사회 속에 살고 있으며 서로가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면 다툼이 생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스스로가 만든 가치가 상대가 만든 가치보다 더 높은 곳에 위치하기 위한 노력과 의지가 곧 '힘에의 의지'가 된다. 하지만 이것이 상대방의 가치를 짓밟고자 함은 아니다. 상대방과의 경쟁을 통해 나의 가치가 세련되게 다듬어지므로, 상대방의 가치는 나의 가치 형성에 필수적이며 따라서 상대방의 가치 또한 소중해 할 줄 안다. 이런 경쟁을 통해 내 삶을 지배하는 가치를 내 스스로 만들어 내고, 내 삶의 규칙들을 내 손으로 작성하는, 그런 사람이 위버멘쉬가 된다.[11] 초인/Übermensch(Overman), (보통)사람을 넘어서라. 니체는 개개인이 스스로의 가치와 욕망을 추구하는 '정신적 귀족'이 되기를 원했다. 니체는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상태를 '노예'라고 불렀는데, 노예는 자신의 욕구를 절제한다. 또한 노예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이 '주인'에게 있다는 것을 이용해, 다른 사람에게 권리(힘에의 의지)를 양보함으로써 책임을 회피하려고 한다. 이러한 노예의 반대를 뜻하는 것이 '정신적 귀족'이다. 즉, 자신의 욕구를 마음껏 발산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려는 자세를 말한다.[12] 니체는 위버멘쉬를 설명할 때 '어린아이가 되라'고 말하는데, 어린아이는 남의 눈치를 보지 않으며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즐긴다. 이야말로 귀족의 자세라고 볼 수 있다. 반면 노예는 남의 눈치를 보고 살아가며(그게 약자라면 물질적 경쟁하기 위하여, 그게 강자라면 거스르지 않기 위하여)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한다. 노예는 단지 남의 가치를 부정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긍정하지만(자신을 선하다고 보기 위해서 자신을 억압하는 주인을 악으로 두는 것), 귀족은 자신의 가치를 긍정할 줄 알기 때문에 그런 자신의 가치와 대립될 자격이 있는 남의 가치를 소중히 할 줄 안다.[13] 스스로가 스스로의 가치를 만들어 간다는 것은, 어떤 욕망의 대상을 성취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모든 욕망은 성취를 이루면 권태로워진다. 즉 가치 생성의 마지막 귀결은 권태라는 것이다. 이로서 우리는 삶이 허무하다는 허무주의에 빠진다. 우리의 일상도 욕망추구와 마찬가지다. 결국 일상은 반복됨으로써 권태를 느끼고 괴로워한다. 하지만 니체는 이 반복된 일상(욕망추구)을 뒤집어서 생각하고자 한다. 반복은 오히려 '새로운 시작'이다. 반복의 원운동에서 고통은 기쁨으로 변하고, 권태는 열정으로 변하며 절망은 희망으로 변한다.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이러한 반복의 고통 자체를 자신의 열정을 자극하는 것으로 바꿀 줄 안다.[14] 아모르 파티(Amor fati/라틴어)를 말한다. 영원회귀에서 내가 선택한 모든 삶의 가치들은 연결되어 있으므로, 우리가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내가 선택한 모든 삶의 가치들과 그 가치들에 연결된 모든 가치들, 그리고 그 의미를 위해 살아가는 나 자신의 길 그 자체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여기서 운명은 자신이 만들어왔고 자신이 만들어갈 운명이 설혹 그 결과가 불합리하게 여겨지더라도, 자신이 만들어왔다는 그 이유만으로도, 그 불합리한 결과를 받아들이고 그 운명을 사랑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것을 말한다.[15] 니체사상이 나치에게 이용된 이후로 유럽에서는 금기시되다가 다시 발굴된 것은 하이데거와 질 들뢰즈에 의해서이다. 영미철학계 내에서도 적을 분석한다는 차원에서 니체 연구가 들어갔는데, 영미철학계는 사실 니체 사상이 나치가 말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를 알리는 철학적 작업들을 통해서 영미권에도 니체전문가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유럽권에서는 니체를 실존철학, 포스트모더니즘사상과 연관짓는 반면에, 영미권의 분석들은 대부분 니체를 정치철학적으로 접근하는 편이다.[16] 출처. 앞뒤 문장을 더 적으면 다음과 같다. "오늘날 학자, 특히 철학자의 정직성을 측정하려면 마르크스와 니체에 대한 그의 태도를 보면 된다. 니체와 마르크스가 없었다면 자신의 저술이 상당 부분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자들은 그저 자신과 타인을 속이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란 정신적으로나 지성적으로나 사실상 마르크스와 니체가 만든 세계다.Wilhelm Hennis, 2000. "The Trace of Nietzsche in the Work of Max Weber", Max Weber's Central Question. (Threshold Press). p.149. / Bryan Turner가 1999년에 쓴 Classical Sociology 85페이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17]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는 “니체는 불신자가 신자가 되거나, 보수주의자가 혁명가가 되거나, 방법론적 학자가 몽상가가 되거나,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가 광신자가 되어왔다”고 말한다.[18] 이것은 '도덕의 계보학'에서 니체 본인이 직접 언급하고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니체는 아포리즘(일부 번역본에서는 잠언이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잠언은 한마디의 짧은 경구이며 아포리즘은 어느 정도의 부피를 지닌 긴 논의라는 점에서 서로 명확히 구별된다)으로 쓰인 자신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일단 그것을 온당하게 읽어내는 것만 해도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 쓰고 있다. '아침놀' 서문에서는 대놓고 본인을 읽는 법을 배우라고 하고 있다.(...)[19]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받은 니체의 첫 저술로서, 그리스 비극을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투쟁과 조화로 설명하고 있다.[20] 4년에 걸쳐 4편의 글을 모은 책이다. 1. 다비드 슈트라우스, 고백자와 저술가 (1873) 2. 삶에 대한 역사의 공과 (1874) 3. 교육자로서의 쇼펜하우어 (1874) 4. 바이로이트의 리하르트 바그너 (1876)[21] 참고로, 이 책 제목의 영문 번역은 'The Gay Science'이다. 여기서 Gay는 '즐거운'이라는 의미지, '동성애자'라는 의미가 아니다. 1950년대까지는 Gay가 '즐겁다'는 의미로 쓰였다.[22] 니체의 저서 중 가장 유명한 책.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23]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해설서. 차라투스트라는 꽤 난해하지만, 이것은 그것과 비교하면 덜 난해하다. 이 책은 아홉 장으로 나뉘어 기술되었는데, 첫 장에서 실체론을 비판하며 시작된다.[24] 도덕적 개념의 형성사를 다룬 책. <선악의 저편>에서 말한 "귀족 도덕과 노예도덕"을, 좀 더 상세하게 논문형식으로 쓴 글이다.[25] 기존의 모든 가치에 대해 반박하는 논리를 펼치는 책이다. 이 책에서 니체는 모든 확신에 반박하는 자신을 두고 '망치를 든 철학자'로 표현하고 있다. 제목 '우상의 황혼'은 바그너의 악극인 니벨룽의 반지의 제3부 악장극 <신들의 황혼>(Götterdämmerung)의 패러디이다.[26] <도덕의 계보>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한 책으로, 그리스도교는 비판하지만 예수는 비교적 고평가하는 점이 이채롭다.[27] 1888년에 저술했으나, 1894년이 되어서야 출간되었다.[28] 아모르 파티를 그대로 보여주는 글쓰기로 쓰여진 니체의 철학적 자서전이다. 이 책에서 니체는 의도적으로 자신을 과도하게 칭찬하는데, 그 설명이 니체 사상의 핵심을 관통하기 때문에 니체 사상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책 중 하나로 꼽힌다. 또한 자신의 작품을 스스로 해설하는 부분도 있어서 니체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많은 도움을 준다. 책의 제목은 성경 구절의 패러디다. "예수가 가시관을 쓰고 자주색 옷을 입은 채로 나오자 빌라도가 그들에게 '보라! 이 사람이다!' 하였다." <요한복음> 19:5[29] 쓰여진 연도는 1888년, 최초로 출판된 연도는 1908년이다.[30] 1888년 말에 쓴 마지막 저서이나 1889년 초에 출간되었다.[31] 1888년(1888~1889년)에 쓴 마지막 시 모음집. 일부 시는 1881년에 쓴 것을 가져왔다.[32] 서울대학교 박찬국 교수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부터 시작하면 절대로 안 돼요. 몇 쪽 안 읽고 좌절해요. 시적인 비유가 많아 니체 전공자에게도 어려운 책입니다. 니체가 난해한 사상가라는 인상은 이 책 때문에 생겼다고 생각해요. 니체를 이해하고 싶다면 『도덕의 계보학』, 『안티 크리스트』, 『비극의 탄생』 등 논문식으로 쓴 책부터 시작하세요. "라고 말했다. #[33] 4권의 책이란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 〈즐거운 학문〉, 〈우상의 황혼〉을 말한다. 니체의 핵심 주장을 내포하고 있는 중요한 책이다.[34] 다만 《이 사람을 보라》는 입문용으로 읽기에는 다소 난해할 수 있다. 글 자체가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친절하게 설명해 놓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어떤 의도로 이런 글을 썼는지 모르면 이해하기 힘들다.[35] 이밖에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읽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된다. 니체의 철학은 주로 쇼펜하우어에 대한 반응으로 발전해왔다고 볼 수 있으며, 쇼펜하우어를 논박하는 과정에서 니체의 철학도 뚜렷하게 정립되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볼테르의 『캉디드』를 읽는 것도 니체 철학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볼테르의 책을 만나고 나서부터이기 때문이다. 『캉디드』의 주인공 캉디드는 삶의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낙천적인 태도'를 '현실적인 태도'로 승화시키는데, 이 책을 통해 니체 철학에서의 '긍정'이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인지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볼테르가 『캉디드』를 지은 의도는 라이프니츠의 낙천주의를 비판하기 위한 것이지만, 니체는 『캉디드』를 그런 식으로 읽지 않았다. 오히려 고통스러운 운명에 당당히 맞서는 주인공 캉디드는 이제 '미래'를 위한 낙천주의자가 아니라 '현재'를 위한 낙천주의자가 되었다는 소설로 보았던 것.[36] 전집에 여동생 엘리자베스가 니체의 유고를 편집하여 내놓은 책인 권력에의 의지는 포함되지 않는데, 1960년도 이후부터 학계에서는 이 책을 니체의 공식적인 저서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37] 다른 출판사에서는 '선악을 넘어서', '선악의 저편' 등으로 번역되기도 한다.[38] Motette: 성서 구절을 다성적으로 다룬 무반주 악곡을 말한다.[39] 차라투스트라는 독일어 발음 음차이고 이 인물에 대한 제대로된 한국어 표기는 자라투스트라다. 여기에서는 니체의 책에 나오는 인물을 다루므로 독일어 발음 음차로 표기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