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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이야깃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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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단 선수단 명단선수단 등번호
유니폼 KIA 타이거즈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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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군 기아 챌린저스 필드전남 야구장
타이거즈 역사 해태 타이거즈 역사KIA 타이거즈 역사감독해태 왕조김씨 왕조(김씨 타선)KKK포이강철-조계현-이대진SKYCK포-LCK포양현종-헥터 원투펀치박전문전장정(JJJ 라인)
타이거즈 기록 해태-KIA 타이거즈 기록 및 인물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1호 기록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공사 현장 변천사홈런존 저주
우승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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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 V11986 V21987 V31988 V41989 V51991 V61993 V71996 V81997 V92009 V102017 V112024 V12
현재 시즌 202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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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선수 육성 체계
2.1. 2차 3라운더 잔혹사
3. KBO 신인상 잔혹사4. 군기 및 징계5. 선수들의 충성심6. 노란 응원막대7. 잠수함 투수 전성시대8. 포수 기근9. 마무리 기근10. 두산만 만나면 작아지는 팀11. 추석은 가족과 함께 못 지내는 구단12. 그 외

[clearfix]

1. 개요

KBO 리그 소속 프로 야구단인 KIA 타이거즈의 이런저런 여담을 정리하는 문서.

2. 선수 육성 체계

일단은 KIA 타이거즈는 2010년부터 8개 구단 최초로 3군 체제를 시작한 팀이다. 하지만 창설 초기에는 무늬만 3군이라는 성격이 매우 강했다. 일단 2군 시설부터가 낙후되어 있던 상황이니 막 생긴 3군 시스템의 모습은 말할 필요도 없다. 2012년 말에 완공된 함평 육성 전용 구장이 완공되기 전까지 함평 전남야구장#을 임대하여 2군 구장으로 사용하였던 KIA 타이거즈 2군은 그야말로 이었으며 전용구장이 완공된 이후에도 함평군의 훈련 시설이 아직 완공 전이라 육성 체계가 완성되지 못한 탓에 2012년까지는 잔류군 및 재활군의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선동열 감독 체제 이후로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신인들을 많이 뽑고 신고 선수도 많이 영입하여 3군 체계를 강화시켜 선수들에게 많은 기회를 부여하면서 경쟁을 통해 훌륭한 팜 시스템을 구축하여 제2의 이준호나, 넥센의 서건창 등을 발굴하고자 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2012년 시즌 후반기에 고양 원더스 소속의 외야수 강하승을 신고선수로 영입한 것[1]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2군 총괄코치가 3군까지 전체적으로 선수단을 관리하는 체계이다.

또한, KIA는 코칭스태프 체계에서 2군 감독이 따로 없고 1군 감독이 2군, 3군까지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체계를 따른다. 대신 2군 총괄코치라는 일종의 수석코치 및 감독대행을 두어 관리하는 체계. 그만큼 1군 감독이 2군과 3군까지 세밀히 점검을 하면서 모든 선수단의 운영을 관리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더욱이 선동열 감독 체제가 들어서면서 선수 육성에 대한 의미를 더욱 강조하면서 경쟁 시스템 구축이 가속화 될 전망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함평에 좋은 시설이 들어서고 무한 경쟁체제가 확립되어 좋은 시너지 효과가 일어나야지만, 그리고 선동열 감독 이후의 코칭스탭진이 2군 및 3군 육성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만 가능한 일이다. 2012년 시즌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던 선 감독이었지만, 그의 부임 이후 육성군 체질 개선으로 2군이 좋은 성적은 얻은 것에 대해서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2] 그리고 2014년 말 선동열 감독이 사퇴하고 김기태 감독 체제가 들어서면서 2군 감독 직책이 신설되었고, 2019년 5월 김기태 감독이 사퇴하면서 2군 총괄코치 직책이 부활했다. 이후 2020년에 맷 윌리엄스 감독이 부임하면서 다시 2군 감독 직책이 부활했으나 2021년에 다시 2군 총괄 체제로 돌아왔다.

일단 최초로 3군이라는 단어를 도입하고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의 산물이었던 기아 챌린저스 필드가 완공되면서 선수 육성의 하드웨어는 갖춰진 상태이다. 챌린저스 필드 클럽하우스 완공이 늦어진 상태에서 2군 코치진들이 새로운 선수 발굴에 실패한 결과 2013년 시즌의 참담한 결과가 나오게 되었다.
과거 2군 시스템과 인프라는 어느정도 개선은 된 편이지만 별개로 재활시스템은 10개 구단 중 최악으로 꼽혔다.[3][4] 2015년 12월 7일 홈구장인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부지내에 재활센터를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완공이 된다면 구단 자체 재활치료가 가능해진다고 한다. KIA, 인프라 대확충...프리미엄 좌석, 3군 구장, 재활센터 건립 그리고 2016년 7월 13일 2군 경기장인 기아 챌린저스 필드 옆 부지에 재활센터 개소식을 가졌고 10개 구단중 최악으로 꼽혔던 재활시스템은 이전보다는 나아졌다.

다만 아직 선수 육성능력은 좋게 봐도 중하위권에 불과하다.[5] 애초에 KIA는 퓨처스 시설이 첨단화된 지도 4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군문제 해결도 김기태 감독이 부임하고 나서야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니 당장 성과를 바라기에는 조금 이른 상황. 또한 은퇴한 KIA 출신 선수를 코치연수도 시키지 않고 그대로 코치에 박아버리는 속칭 갸무원 문제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그래도 퓨처스에서 두각을 보였던 선수조차 드물었던 선동열 시절과는 달리 김기태 부임 뒤에는 그 선수들을 1군에서 쓸 수 있는지의 여부는 뒤로 하더라도 군경팀에서든 함평에서든 좋은 성적을 내는 선수들이 어느 정도 나오고는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선수들이 대부분 1~2년차라 처음부터 재능이 있었던 부류로 보이기 때문에 함평 교육시스템이 좋아서 이런 선수들을 배출한다고 보기 어렵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이진영.[6]

최근에는 손승락이 2군에서 뛰어난 투수를 올려보내고 있어 육성에 대한 평가가 올라가고 있다.

2.1. 2차 3라운더 잔혹사

위의 신인육성 시스템과 엮여서, KIA는 신인지명에서 유독 3라운드에서 지목한 선수들이 살아남는 확률이 적은 편이다. 3라운드에서 지명한 선수 중 WAR이 제일 높은 자원이 테러리스트라고 불릴 정도로 실력에서 좋은 평가를 못 받았던박경태일 정도. 이를 알고 있는 골수 팬들은 3라운드 지명선수는 '버리는 카드'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은 편이다.

보통 경우 1~2라운드 픽까지는 즉전감으로 예상되는 선수를 많이 지목하는 편인데, 3라운드 픽부터는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뽑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이 가운데에서도 '당장은 프로에서 통할 실력은 아니지만 아마추어에서 과거 눈에 띄는 성과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잘 키우면 기대감을 가질 수 있는 선수'를 3라운드에서 뽑는데 이 때 뽑은 선수들이 아마추어 시절에는 좋은 기량을 보여주었으나, 부상 및 알 수 없는 부진을 이유로 프로에서 기량을 제대로 뽑지 못했거나 육성시스템에서 기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키우지 못한 경우가 많으면서 일찌감치 방출되거나 살아남더라도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경우가 많은 것으로 분석된다.

간혹 윤정우와 같이 KIA에서 제 기량을 펼치기도 전에 다른 팀으로 이적한 케이스도 있다.
지명 연도 이름 지명 결과 비고
2024 이상준
2023 정해원
2022 강병우 (현역)
2021 이승재 (군보류)
2020 오규석 (군보류) 육성선수 신분으로 계약
2019 이태규 (현역) 육성선수 신분으로 계약
2024년 KT 이적
2018 이원빈 2020년 방출 투수에서 내야수로 전환 이력. 1군 경력 없음
2017 김석환 (현역)
2016 정동현 2019년 방출 정대현의 동생. 군복무 이후 방출
2015 이종석 2020년 방출 대학 시절 혹사이력 있음. 2019년 육성선수로 전환
2014 김지훈 2016년 방출
2013 이효상 2016년 방출
2012 장시하 2016년 방출
2011 윤정우 2012년 LG 이적 2015년 KIA 재이적
2017년 SK 이적
2019년 SK 방출
2010 이인행 2019년 은퇴 1군 통산 4시즌, 50경기 출전
2009 손정훈 2010년 방출 2013년 NC 입단, 2013년 방출
2014년 kt 입단, 2014년 방출
2008 박진영 2012년 방출
2007 이호신 2018년 방출 통산 188경기 출전
2006 박경태 2019년 방출 통산 233경기 출전
2005 최훈락 2014년 방출 통산 141경기 출전
2004 권희석 2012년 방출 1군 경력 없음
2003 김주호 2005년 두산 이적 2007년 방출, 통산 76경기 출전

KIA라는 이름으로 참여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3라운더 목록을 보면, 가장 오래 살아남았고 승리기여도 역시 높은 선수가 박경태였을 정도로 KIA에서 잘 된 선수가 거의 없을 정도이다. 그나마 눈에 띄는 선수로는 좌완투수 정대현의 동생으로 데뷔 시즌 선발투수로 나서 승리투수가 되는 등 주목을 받기도 했으나 이후 부진으로 제 기량을 펼치지 못한 정동현이나 한때 김기태의 양아들로 유명했고 박경태 못지 않게 오래 살아남았던 이호신, 외모 때문에 주목을 받았던 최훈락, 장타력을 갖춘 호타준족이란 평가를 받았으나 여러 팀을 돌던 윤정우 정도이며, 그 외에도 2005년 전병두를 받고 다니엘 리오스를 내어준 두산 베어스와의 2:1 트레이드에서 함께 끼어 두산으로 이적한 김주호 역시 KIA의 3라운더였다.

그나마 이승재가 입단 첫 해 깜짝 승리투수가 되는 등 눈에 띄는 활약을 보여주었고, 타이거즈 러브투게더 장학생으로 선발돼 거포 유망주로 KIA에 입단한 김석환이 군복무 문제를 해결하고 본격적인 1군 진입을 위한 담금질에 나서고 있어 조만간 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예상된다.

3. KBO 신인상 잔혹사

의외로 많이 언급되지는 않지만 1982년 리그가 시작된 이래 신인왕과 연이 없는 팀이다. 1985년 신인왕과 KBO 골든글러브를 거머쥔 이순철[7]이 배출된 이후 2020년까지 35년 동안 타이거즈에서 신인왕을 배출해내지 못했다. 11번의 우승을 거머쥐는 동안에도 빼어난 신인이 나오지 못하거나, 그 해에 신인왕에 버금가는 활약을 했음에도 그 해에 더 괴물같은 선수들이 타 팀에서 나오면서 인연을 맺지 못했다.

하지만 2021년에 이의리최준용과 함께 신인왕 유력후보로 올랐고, 결국 신인왕을 수상하며 마침내 잔혹사를 끊어냈다.

4. 군기 및 징계

해태 타이거즈 시절과 2000년대 초반까지 KIA 타이거즈 군기는 악명 높았다. KIA로 트레이드 될 바에는 은퇴하는게 낫겠다고 옷 벗은 선수들도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손혁이 트레이드 이후 입단을 거부하다가 임의탈퇴로 은퇴했다. 그러다가 이종범이 일본에서 돌아온 후 이대진과 함께 앞장서서 똥군기를 정리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종범 본인도 이 부분을 자랑스러워하고 있다고.

그래도 2010년대 초반까지 여전히 군기는 다른 9개 구단에 비해 강한 편에 속했다. 김주찬의 경우 FA로 KIA로 이적한 후 한 인터뷰에서 "군기가 다른 팀에 비해서 센 편인 거 같다." 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무한도전 타인의 삶넥센 히어로즈이숭용과 역할을 바꾼 정준하도 녹화 당일 넥센의 경기 상대였던 KIA 측 식당을 방문했는데, 넥센은 선후배가 뒤섞여 이야기를 나누며 심지어는 팀 내 최고참(의 대역)에게 농담도 치며 식사하던 분위기였으나, KIA는 대선배인 이종범이 혼자 독상을 하고 다른 선수들도 별 대화 없이 묵묵히 식사하고 있었다고 한다. 다만 해태 시절에도 군기반장은 김성한이나 이순철과 같이 주로 야수진에 있었고 투수진의 고참급이던 선동열, 이강철, 이대진 등은 맞은 적은 있어도 후배들에게 엄격하게 굴었다는 이야기는 없으며 최향남의 금발 염색이나 임창용의 클럽 죽돌이 생활, 등판 하루 전날 과음을 행한 적도 있는 선동열 등의 사례를 보면 최소한 해태 시절에는 투수진의 군기는 엄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해태 선수들을 보면 은근히 기행 이미지가 강하다(...).

이것과 연관되어서 만일 구단 내의 선수가 사생활이나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을 경우 내부 자체 징계를 세게 때리는 편이기도 하다. 무단 이탈을 한 김진우나 음주운전을 한 손영민, 구단물품과 관련되어 문제가 생겼던 한성구의 경우 임의탈퇴라는 강수를 거는 한편 SNS에서 부적절한 언어를 사용하여 팬들의 분노를 산 윤완주의 경우에도 한국야구위원회에서는 경고 정도로 끝난 부분을 구단 자체적으로 3개월 선수 자격 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린 사례가 있다. 외국인 선수도 예외는 없어서 대마초 전자담배 관련으로 물의를 일으킨 애런 브룩스의 경우 알짤없이 임의탈퇴를 걸었다.[9] 심지어 뒷돈 관련으로 물의를 일으킨 단장 장정석도 가차없이 해임시켰으며 자팀의 레전드 출신 감독인 김종국도 배임수재 혐의를 받자 곧바로 경질했다. 2024시즌 백업 내야수로 준수한 활약을 보였던 홍종표가 SNS상에서 여러 물의를 일으킨 것도 모자라 본인이 속한 소속팀연고지를 비하하는 발언을 한 것이 알려지자 가차없이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 제외, 2군도 아닌 육성군으로 좌천시키며 강력한 징계를 내렸다.

다만 LG와 KIA 두 팀을 거친 이대형이용규대화로 미루어보면 오히려 LG가 더 엄격했고 KIA는 의외로 그보단 좀 편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2010년대 후반 ~ 2020년대에 이르러 최형우[10]가 최고참이 되고 후배들과 편하게 지내는 것을 좋아하는 양현종, 김선빈, 나성범 등이 고참 라인을 형성하면서 다른 팀들보다도 오히려 느슨해 보일 정도로 군기가 없어졌다.[11] 최근 갸티비 등을 보면 한국 사회의 탈권위화, 젊은 선수들의 성장과 함께 선후배 관계는 많이 풀어진 것으로 보인다. 황대인이우성이 누가 더 잘생겼냐고 얼굴전쟁을 벌인다든가. 다만 김태군[12] 트레이드로 들어온 이후에는 분위기가 좀 더 엄격해졌다.

5. 선수들의 충성심

강한 군기와는 별개로 타이거즈에 엄청난 충성심을 보이는 선수들이 제법 있다. 보통 해태 시절에 활약했거나 어린 시절 타이거즈 야구를 보고 자란 연고지 출신 선수들에게 이런 경향이 더욱 강하다. 이와 또 별개로 타 팀에서 건너온 선수들도 팀에 대한 상당한 애정을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특히 군기가 점차 약해져갔던 2010년대에 들어온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6. 노란 응원막대

파일:KIA막대풍선.png 파일:KIA_페이퍼스틱스.jpg
막대풍선형 종이막대형 (일명 호통이)

각 팀마다 팀 컬러를 반영한 응원막대를 판매하고 있지만, 빨간색과 감색을 팀 컬러로 내세우고 있는 타이거즈는 뜻밖에도 노란색 막대풍선을 쓰고 있다. 일부 KIA 팬들은 노란색 응원막대를 단무지라고 부르기도. KIA 타이거즈의 BI나 CI에서도 호랑이를 제외하고는 노란색을 찾기 힘들고 CI 변경 전에도 노란색 계열을 쓴 부분은 마찬가지로 호랑이 캐릭터를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노란 막대풍선의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자면 LG 트윈스가 1990년대 초반 처음으로 막대풍선을 이용한 응원을 시작한 뒤 다른 프로야구 구단에서도 응원 막대풍선을 차용하기 시작했는데, KIA의 전신인 해태 타이거즈 시절부터 노란색 막대풍선을 사용하기 시작했다.[17] 이후 KIA 타이거즈로 팀이 바뀌면서 하얀 응원막대로, 2002년부터 2004년까지 빨간 응원막대로 바뀌기는 했지만 잘 보이지 않아서 결국은 다시 시각적으로 빨간색보다 잘 보이고 부피도 커보이는 노란막대로 회귀했다. KIA가 한 번 쓰다가 버린(?) 붉은색 응원막대는 훗날 팀 상징 컬러가 바뀐 SK 와이번스에서 쓰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좀 단순한 이유이기도 하지만 해태 로고 중에도 노란색이 일부 있기도 하고 나름대로 호랑이 캐릭터에 노란색 계열이 들어가는 만큼 의외로 잘 어울리는 응원 막대풍선 색깔이 되었고, 노란 막대풍선은 타이거즈만의 상징물이 되었다. 이 덕분에 KIA를 응원할 때 보면 빨간 베이스에 노란색이 강조되는 효과가 나온다. 특히 경기가 KIA의 압승으로 흘러가기라도 하는 날에 그 기세는 더 말할게 없을 정도. 매우 우연의 일치지만,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과 컬러가 상당히 비슷해졌다.

일각에서는 호남에서 노란색이 정치적으로 남다른 의미를 상징하는 만큼 타이거즈의 응원색으로 어울린다는 이야기도 한다. 실제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80년대에 이끌었던 평화민주당의 상징색이 노란색이었고 훗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탄생한 열린우리당도 노란색을 상징색으로 썼다. 모두 호남에서 강력한 지지를 받았던 정당들이다. 현재는 정치색과 완전히 무관. 하긴 한데 정의당이 같은 색을 쓰고 있긴 하다

친환경 트렌드와 함께 막대풍선이 배트 스틱으로 대체되던 와중에도 KIA팬들은 여전히 노란 막대풍선을 주로 사용하였고, 일반적인 긴 모양의 막대풍선 외에도 호랑이 발을 형상화한 막대풍선이나 탬버린 등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나오고 있다.

2022년 11월, 경기장 내 비닐 일회용품 사용이 금지됨에 따라 단무지 막대풍선도 공식적으로는 판매가 중단되었고, 원통 모양의 종이 재질로 바뀌었다. 애칭은 호통이. 하지만 경기장 앞에 가면 (디자인은 다르지만) 파는 사람들은 널려있다

7. 잠수함 투수 전성시대

타이거즈에 대해 설명할 때 왼손잡이 선수 수난사와 함께 언급되는 특징으로 수준급의 옆구리 투수들이 많이 배출되었던 팀이라는 것. 이 중 왼손잡이 수난사는 수많은 우투좌타 야수가 배출되고 있는 현대야구의 추이와 함께 타이거즈 왼손투수의 기록을 속속 갈아치우고 있는 양현종과 그 뒤를 이을 후계자로 각광받는 이의리윤영철의 등장으로 사실상 옛날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지만 수준급의 옆구리 투수의 배출은 기아자동차로 모기업이 바뀐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다.

1989년부터 2012년까지 지속되었던 이강철-(박충식)-신용운-손영민의 등번호 19번 계보의 선수들이나 해태에서 뛴 적 있는 재일교포 선수 주동식, KIA 2009 시즌의 뒷문을 책임졌던 유동훈 등도 타이거즈를 대표했던 옆구리 투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선수이며, 해태에서 데뷔한 뒤 삼성에서 오래 선수생활을 하다 우여곡절을 겪고 KIA로 돌아온 임창용 역시 타이거즈가 배출한 KBO 리그 대표 사이드암 투수이다.

2012년을 끝으로 '등번호 19번 옆구리투수'의 계보가 끊겼고[18] 2010년대 초~중반 잠시 잠수함 투수의 기세가 줄어든 적이 있었지만 그 이후에도 박준표, 박정수, 윤중현 등의 선수를 발굴해 냈고, 한화에서 데뷔했지만 상무에서 군 생활을 보낸 뒤 제대하여 KIA 마운드의 한 축이 된 임기영도 등장하며 타이거즈 옆구리 투수 배출의 역사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8. 포수 기근

좋은 투수들은 프로 초창기부터 샘솟듯 솟아났지만 희한하게도 좋은 포수는 가뭄에 콩나듯 등장하는 팀이 타이거즈다. 사실 이는 프로 원년부터 그랬다. 원년 해태 선수단에는 김경훈과 박전섭이라는 포수가 있었지만 그저 투수의 볼을 받아줄 정도의 포수에 그쳤다. 결국 1983년 재일교포 선수 영입 과정에서 김무종을 영입하면서 포수 기근을 해소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는 그래도 확실한 주전 포수가 있었다. 김무종이 노쇠하자 장채근이라는 대형 포수가 등장했고 장채근 이후에는 정회열이 주전 마스크를 썼으며 그 후에는 최해식이 타이거즈의 안방마님 역할을 했다.

문제는 최해식 이후였다. 김지영권오성이라는 백업 포수들이 있었으나 최해식을 밀어내지 못했고 2000년 대형 포수 김상훈이 입단하기 전까지 최해식이 혹사를 당해야 했다. 2000년대 이후부터는 김상훈과 차일목의 시대였는데 김상훈이 주전으로 있을 때는 차일목이 백업과 주전을 오갔다.[19] 에드먼턴 키즈 멤버 중 한 명인 송산을 신인 지명으로 영입했지만 성장하지 못하고 도태됐다. 이때 KIA 프런트는 치명적 실수를 범하게 된다. 김상훈과 차일목 모두 2010년대부터는 30대가 되는 만큼 확실한 미래의 주전 포수를 잡았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2006년 당시 지역 내 학교대형 포수가 성장하고 있었음에도[20][21]영입에 소극적 태도를 보였고 이는 결국 타이거즈 팬들의 뒷목을 거하게 잡는 포수 대기근으로 이어지게 된다.

2010년대에도 타이거즈의 주전 포수는 김상훈, 차일목이었고 그 이후의 확실한 대책은 없었다. 장충고 1년 선후배 사이인 백용환이홍구를 잇달아 영입했지만 타격에만 재능이 있을 뿐 포수 능력에는 성장이 더뎠다. 결국 어쩔 수 없었는지 이용규의 FA 이적 때 보상선수로 한승택을 지명했고 SK 와이번스에서 김민식을 데려왔다. 김민식은 2017년 한 시즌 반짝 대폭발하며 타이거즈의 V11에 기여했지만 그게 다였다. 현재는 한승택, 김민식, 백용환이 1군 주전급 포수로 앉아 있지만 팀의 전력을 강하게 지탱할 수 있는 확실한 A급 주전은 모두 아니다.

2020년대에 들어서도 아직도 문제는 이어지고 있다. 김민식과 한승택이 번갈아 출장하고 있지만, 두 포수 모두 공격력이 2할대 중반이고 블로킹, 프레이밍 또한 좋지 않다.

이에 2022년 4월 드디어 타이거즈는 포수를 길러내지 못하는 것을 자각했는지, 출혈을 감수하면서 포수를 영입한다. 그것도 타이거즈에서 여태껏 본 적이 없었던, 무려 두 자릿수 홈런을 날릴 수 있는 공격형 포수 박동원을 키움에서 영입한 것이다. 내년 시즌이 FA인 선수를 주전급 3루수 김태진과 2023시즌 신인 2라운드 지명권, 현금 10억까지 내주면서 말이다! 박동원은 22년 9월 현재 두 자릿수 홈런을 넘어섰고[22], 무엇보다 그 동안 타이거즈 베터리에게 볼 수 없었던 공격적 리드로 타이거즈 팬들에게 눈정화를 시켜주고 있다. 수비가 부족한 김민식을 SSG에 보내는 것으로 정리하고, 현재 박동원 주전에 한승택이 백업으로 나오는 방향으로 포수 체제가 구비되었다. 과연 박동원이 FA가 되는 2023년에 타이거즈에 남을 것인지, 그리고 타이거즈의 포수 잔혹사를 끊어낼 수 있을지 기대가 되고 있다. 한편 양의지도 동시에 FA로 풀리는지라 KIA가 양의지 영입전에 나설수도 있다라는 주장을 일부 언론사에서 하고 있어 과연 두 대형 포수의 공존이라는 대이변이 일어날지[23], 아니면 박동원과의 결별이 이루어질지 여부도 관심사다. 결국 양의지 영입은 샐러리캡 문제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박동원도 LG로 이적하며 KIA의 포수자리에는 거대한 구멍이 뚫리게 되었다. 그렇기에 2023 시즌은 한승택 주전 - 주효상 백업 체제로 시작할 것으로 보이는데 확실히 이전보다는 무게감이 없기에 KIA로서는 주효상이 터져주길 바라거나, 시즌 중 트레이드를 모색하거나, 아니면 다음 FA에 나오는 김태군이나 이지영을 노릴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2023 시즌 결국 한승택과 주효상이 이탈한 가운데, 젊고 경험 부족한 백업급 포수들이 주전을 맡아야 하는 최악의 상황에서 류지혁과 김태군의 트레이드를 단행하였다. 그나마 그 상황 속에서 한준수가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것이 위안거리다. 이후 김태군을 비FA 다년 계약으로 묶는데 성공하며 포수 체제는 김태군 주전 - 한준수 백업으로 체제가 정비된 상태다.

총론으로 대형 포수의 부족 문제는 2000년대 중반부터 20년 가까이 이어진 고질적 문제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포수진 육성과 영입에 대한 타이거즈 프런트의 시각이 20년 동안 상당히 좁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이 때문에, 2024년 시즌을 앞두고 나카무라 타케시 배터리 코치를 다시 영입하였다.

9. 마무리 기근

포수 기근보다야 낫지만 마무리 정규직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도 하나의 고민거리였다. 굵직한 투수 역사를 자랑하는 타이거즈 치고 꽤나 의외의 이슈. 타이거즈 역사상 최다 세이브를 기록한 사람은 선수 생활 내내 선발로 리그의 역사를 써내다 말년에 건초염 이슈로 마무리 보직으로 옮긴 선동열이었으며 그 아래 임창용은 타이거즈에서 뛴 기간이 적은 선수였으며 윤석민은 마무리가 없는 팀 사정상 어쩔 수 없이 마무리로 간 거지 선발로 훨씬 더 좋은 성적을 기록한 선발 자원인데다 한기주는 혹사 이슈로 인해 선수 생활 대부분을 재활하면서 보냈다. 또한 타이거즈 내에서 마무리 투수로 3년 이상 버틴 선수는 정해영이 등장하기 전까진 아예 없었다![24]

이후 타이거즈는 외국인 티오에 하이로 어센시오라는 마무리 투수를 넣을 정도로 좀처럼 해답을 찾지 못했었다. 심지어 규정 상 한 경기에 최대 두 명의 외인을 넣을 수 있지만 마무리를 외인 투수로 넣으면 다른 외인 투수와 야수가 선발일 시 그 날은 등판이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슈를 감안하고 마무리를 외인 투수로 넣어야 할 정도로 마무리 역사가 처참했다. 우승했던 2009 시즌은 유동훈이 혜성처럼 나타나 마무리 보직에서 0점대 방어율을 기록하며 언터쳐블한 모습을 보였으나 다음 시즌부터 마무리 보직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결국 마무리 보직을 내려놓았으며 2017 시즌의 경우 내부에서 도저히 마무리감을 찾지 못해 마무리 경험은 있었으나 당시 부진하고 있었던 김세현을 트레이드로 데려와 마무리를 맡겨서 시즌 최종전까지 간 끝에 우승에 성공하긴 했으나 그 다음 시즌 곧바로 부진에 빠지며 마무리 보직은 또다시 무주공산에 빠지게 되었다. 이후 팀 내부에서 마무리로 육성하려던 김윤동은 혹사 여파로 마운드에서 어깨를 붙잡고 쓰러졌으며 두 번 다시 마운드로 복귀하지 못했다. 이후 문경찬과 전상현이 마무리를 맡았으나 각각 부진과 부상으로 얼마 안가 마무리 보직에서 물러났다.

사실 2010년대에 들어서는 마무리뿐만 아니라 불펜진 역시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외부 수혈로 겨우 틀어막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 2019년도에 서재응이 박전문 라인을 만들어내며 리그 최상급 불펜진을 만들어냈으나 다음 시즌 문경찬이 부진 끝에 nc로 트레이드되며 불펜에 빈 자리가 발생했고 그 자리를 당시 신인인 정해영이 메꾸게 된다. 당시 투수코치인 서재응은 정해영의 경우 장기적으로는 선발 자원으로 분류되어 2군에서 선발 수업을 받고 있었으나 1군 경험을 잠깐이라도 쌓게 하기 위해서 1군으로 올렸다고 했다. 그런데 어지간한 기아 불펜보다 좋은 모습을 보이자 순식간에 셋업맨 보직까지 올라가 온갖 험한 경험을 하게 되더니 다음 시즌에는 기존 불펜진이 부상 및 부진으로 깔끔하게 전멸해버리자 맷 윌리엄스 감독이 기존 불펜 플렌을 싸그리 갈아엎고 정해영을 곧바로 마무리로 박아버렸고, 이는 곧 신의 한 수가 된다. 마무리 시즌 첫 해부터 34세이브를 기록하더니 리그 내 온갖 세이브 최연소 기록을 갈아치우기 시작한 것. 사실 팀과 정해영 본인 모두 선발로 커야 한다 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으나[25] 마무리로 연착륙에 성공하자 둘 다 마무리가 맞는 자리다 라고 생각이 바뀌었다. 특히 타이거즈 입장에서는 처참했던 마무리 역사를 고려하면 마무리 보직에서 장기 집권 하면서 못해도 20세이브 이상은 보장해주는 정해영을 선발로 돌리려는 도박을 감행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가끔 정해영이 부상 등으로 엔트리에서 제외되었을 때 불펜진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충분히 경험했기 때문. 정해영 역시 마무리 첫 해에는 본인은 어디까지나 임시직이고 선발로 크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었으나 마무리로 뛰면서 팀 및 리그 기록을 세우기 시작하자 이제는 선발 욕심을 내지 않고 오로지 마무리로 뛰고 싶어하고 있다.

10. 두산만 만나면 작아지는 팀

KIA 타이거즈라는 구단 자체가 역사적으로 강팀이었던 적이 몇 없기에 약한 모습을 보이는 구단들은 많으나, 특히 그 가운데서도 두산 베어스를 상대로 한 열세 현상이 매우 심각하다. 2012년 이후 최근 13년간 KIA-두산의 상대 전적은 다음과 같다.
연도 파일:두산 베어스 엠블럼.svg
두산
파일:KIA 타이거즈 엠블럼.svg
KIA
상대우위
2012년 10승 1무 8패 8승 1무 10패 두산 베어스 우위
2013년 12승 1무 3패 3승 1무 12패 두산 베어스 우위
2014년 7승 9패 9승 7패 KIA 타이거즈 우위
2015년 8승 8패 동률
2016년11승 5패 5승 11패 두산 베어스 우위
2017년8승 1무 7패 7승 1무 8패 두산 베어스 우위
2018년 8승 8패 동률
2019년 13승 3패 3승 13패 두산 베어스 우위
2020년 13승 3패 3승 13패 두산 베어스 우위
2021년 9승 2무 5패 5승 2무 9패 두산 베어스 우위
2022년 7승 9패 9승 7패 KIA 타이거즈 우위
2023년 12승 4패 4승 12패 두산 베어스 우위
2024년 9승 1무 6패 6승 1무 9패 두산 베어스 우위
총 전적 127승 6무 78패 78승 6무 127패 두산 베어스 우위

표에서도 보이듯 KIA가 두산을 상대로 근 13년간 상대전적 우위를 차지한 시즌은 두산이 자체적으로 크게 부진했던 2014년과 2022년 단 두 시즌뿐이며, 이마저도 9승 7패로 근소우위인 반면[26] 열세를 기록한 시즌에는 승패마진이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심지어 우승을 차지한 2017년에도 상대전적 열세를 기록했다. 역대 전체 상대전적을 보아도 2024년 현재 354승 19무 398패(-44)로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29인 삼성에게보다도 훨씬 고전한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 2012년까지는 OB-두산 상대 통산 상대전적 마진이 +3로 근소하게 우세였는데 그 이후로 심각했던 두산전 열세현상으로 -44까지 밀린 것이다. 특히 KIA는 잠실 원정에서도 부진했지만 유난히 두산을 상대로 한 홈경기에서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2016년부터 2024년까지 두산 베어스의 광주 원정 경기 성적은 47승 1무 24패로 압도적인 우세를 보이고 있다. 그나마 2017년 한국시리즈에서는 천적 두산을 꺾고 통산 11번째 우승을 달성하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으나, 그 외에는 두산에게 어김없이 일방적으로 밀리며 두산의 높은 순위 유지에 제대로 기여하고 있다. 2023년 시즌에도 KIA 타이거즈는 타팀들에게는 양호한 성적을 기록했으나 두산 상대로 4승 12패로 처참히 깨지면서 또 다시 두산 공포증에 발목을 잡히고 말았고, 이로 인해 두산과 단 한 게임 차로 밀려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우승 시즌이었던 2024 시즌마저도 두산과의 상대전적에서 6승 1무 9패로 열세였다[27]. 가히 천적관계가 계속해서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KIA는 공교롭게도 2013년 이후로 두산과 같은 서울 연고팀들인 LG와 키움(넥센)에게도 굉장히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유독 2013년 이후 서울 연고팀들만 만나면 맥을 추지 못하고 있다.[28]

여담으로 두산 감독 시절 KIA의 저승사자로 악명 높았던 김태형은 2024년에 새로 부임한 롯데에서도 KIA에게 제대로 고춧가루를 뿌리고 있다. 그래도 후반 들어 KIA도 반격하면서 7승 1무 8패, 백중세를 거뒀다.

두산과는 다르게, SK 와이번스 상대로는 불가사의할 정도로 강한 모습을 보여줬었으나, SK가 SSG 랜더스로 팀명을 바꾸고 김원형이 감독으로 부임한 2021년부터는 반대로 SSG에게 계속 호구잡히고 있다.[29]

11. 추석은 가족과 함께 못 지내는 구단

'추석은 가족과 함께'라는 격언이 있지만, 안타깝게도 KIA 선수단은 그 격언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추석 연휴 동안 홈구장인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에서 홈경기를 가지는 경우가 별로 없다. KBO 측에서 관중 수 증가를 위해 의도적으로 추석 연휴 기간 동안의 KIA 경기를 수도권에 편성하고 있기 때문. 2015년부터 8년 연속으로 추석 연휴 기간 동안 일부 경기 혹은 전 경기가 수도권 원정에서 경기를 했다.[30] 그 때문에 무등 야구장의 리모델링 이전까지는 챔피언스 필드 주변 경기장이 추석 특별수송으로 투입된 공동운수협정차량의 주박용도로 활용되었다.[31]

다만 2024 시즌에는 추석연휴(14일~18일) 중 주말시리즈인 14~15일에 홈경기(키움 2연전)가 잡혔다. 물론 16일과 17일에는 어김없이 수도권 경기가 잡혔다.

12. 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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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러나 강하승은 타어강이라는 역대급 DTD이후 방출되었다.[2] 막상 12시즌이 끝나자마자 박철우 2군 총괄코치는 타격코치로 밀려나고 한화에서 잘린 한대화를 새 2군 총괄로 데려왔다.[3] 당장 KIA시절에 혹사에 허덕이며 재활군에 있던 신용운이 삼성에서 다시 정상적으로 선수생활 하는것을 보면 어느정도인지 실감이 간다. 오죽하면 팬들도 안타깝지만 그래도 KIA 나가서 천만다행이란 말을 할 정도니.[4] 의료시스템의 경우 범현대가를 활용하면 되지 않냐고 하지만, 범현대가의 의료기관인 아산의료원현대중공업그룹 관할이라 야구와는 관계가 없다.[5] 육성능력 보다는 애초에 조범현 말기~선동열 시절의 뻘픽으로 원석들이 극히 적은 게 문제다.[6] 야안갑이라고 놀림을 받지만, 나이를 감안하면 엄연히 얘가 KIA 외야수 유망주 랭킹 1위다. 2021년 5월 22~23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2경기 연속 홈런으로 가능성을 보였으나 2022 시즌 초 한화 이글스로 트레이드되었고 거기서 터진다.[7] 이 해 같이 데뷔한 선수가 바로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이다.[8] 본래 양준혁은 1992 시즌에 프로에 데뷔할 수 있었으나 삼성이 김태한을 1차지명하는 바람에 양준혁이 2차지명으로 밀렸고, 쌍방울 레이더스가 그를 2차 2라운드에서 지명했지만 삼성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던 그는 군입대를 선택했고, 결국 1993 신인드래프트에서 삼성이 그를 1차지명하기에 이르렀다.[9] 대마초의 경우, 미국에서는 속지주의로 처벌되지만 한국은 속인주의를 채택함은 물론 대마초가 원칙적으로 불법이다.[10] 최형우가 후배 선수와 귀멸의 칼날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11] 사실 지금 최형우는 한국 나이 40으로 팀 내 다음 번 짬밥인 고종욱, 나성범, 김선빈, 서건창과도 대략 6살 정도 차이가 나는, 프로 전체적으로도 최고참이다 못해 말년병장급 짬라인에 드는 선수다. 아마 본인이 박정권이나 정현욱에게 당한 것을 보상 심리로 후배들을 놔두는 듯.(박정권이 전주고 시절 선배였으며 정현욱은 지금까지도 전설의 짤로 회자되는 야 지금 우규민 나오냐의 장본인인데 그때 털린 게 최형우였다.)[12] 평소에는 얌전히 있다가 특정 선수가 야구에 대해 진지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선배여도 가차없이 독설을 날린다. 특히 어린 선수들을 집중 관리하는데, 어린 선수들에게 군기반장으로 통할 정도이다. 다만 똥군기는 부리지 않는다. 팀 내 분위기를 잡기 위해 본인이 스스로 악역을 자처한 것으로 보인다.[13] KIA와 SK가 벤치 클리어링을 벌였던 대표적 사례는 윤길현 욕설 사건이 있었던 2008년 6월 15일 경기와 서재응정근우가 충돌했던 2009년 한국시리즈 3차전 경기이다.[14] 하지만 김종국은 2024년 배임수재 혐의에 걸리면서 타이거즈 역사상 최악의 감독으로 타이거즈를 떠나고 말았다.[15] 이적이 확정되고 나서 마음이 너무 복잡해서 새벽에 홀로 정처없이 걸었다고 한다.[16] 물론 지금 KIA는 김도영이나 윤도현 같은 신인급 내야 자원이 많아 류현인을 지명할 가능성이 낮긴 하지만... 실제로 KIA는 류현인을 지명하지 않았고 kt가 7라운드에서 류현인을 지명하였다.[17] 해태 타이거즈의 원정 유니폼 색상은 빨간색이었지만, 유니폼만 영국 근위병에서 따온 빨간색이었을 뿐 엠블럼에서 보이듯이 당시 메인 컬러는 검정과 노랑이었다. 이 영상을 보면 당시 관중들이 노란색 깃발을 흔든 게 보인다.[18] 2018년 손영민이 다시 이 등번호를 되찾음으로써 다시 이어지게 되었다가 다시 끊겼는데 2021년 윤중현이 다시 잇게 되었다.[19] 차일목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대타요원이던 이재주에게 마스크를 씌웠다. 다만 이재주의 포수 능력은 상당히 떨어진다.[20] 물론 애초부터 양의지가 고등학생 시절부터 초특급 선수였던 것은 아니다. 당장 지명 순번이 2차 8라운드였다. 양의지의 기량이 급성장한 것은 경찰 야구단에 입대해서 유승안 감독의 조련을 받은 이후부터다. 실제로 양의지 본인도 자신이 KIA로 갔더라면 이정도로 성공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고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21] 다만 이런 인터뷰와는 별개로 양의지도 고향팀인 KIA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KIA 역시도 양의지를 영입할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운이 너무나도 없었는데 당장 조범현 시절에 당시 무명이던 양의지를 트레이드로 영입하려 했으나 무산되었고 1차 FA때에도 양의지가 KIA 행을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2017 FA 당시에 최형우, 양현종, 나지완을 잡는데 거금을 써서 팀연봉 총액 1위가 된지라 섣불리 나설수가 없었다. 실제 현장에서도 양의지가 FA 시장에 1년만 늦게 나왔어도 양의지는 KIA의 몫이었다고 이야기를 할 정도. 이후 2차 FA때도 아예 두산 아니면 KIA로 가겠다 결심을 굳히고 의견을 보냈는데 이번에도 샐러리캡에 발목 잡히며 영입 시도도 하지 못했다.(당시 박동원을 이적시키더라도 양의지를 영입하면 샐러리캡을 초과해버리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이쯤 되면 그냥 양의지와 KIA의 연은 이번 지구에선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그나마 남은 루트는 정성훈의 사례처럼 진짜 선수 생활 마지막 해에 오는 것 정도인데 이것도 두산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양의지에겐 쉽지 않은 길이다.(정성훈과도 다른것이 정성훈은 선수생활 시작은 해태 타이거즈에서 했기에 KIA 복귀가 가능했다. 두산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한 양의지와는 차이가 있다는 이야기.) 결국 양의지에게 남은 고향팀에 대한 애정 표현의 현실적인 길은 이호준처럼 은퇴시즌 마지막 광주경기에서 은퇴는 타이거즈에서 하고 싶었다는 소회를 밝히거나(이것도 이호준이 선수 생활 시작을 KIA의 전신인 해태에서 했기에 가능했다.) 은퇴 후 배터리나 타격 코치로 KIA에 오는 것 정도다.[22] 거기다 종전 KIA 시절 최다홈런 기록을 넘어섰다.(종전 기록은 2009년 김상훈이 기록한 13개였다.)[23] 이 경우 포지션 정리가 필수인데 일단 나이가 더 젊은 박동원이 주전 포수로 계속 나오되 양의지는 지명타자나 1루수를 소화하며 박동원의 체력 안배용이나 부상으로 인한 장기 이탈등의 사유 발생시 포수 마스크를 쓰는 방향으로 갈 것으로 보인다.[24] 타이거즈 세이브 1위인 선동열도 93년에 마무리로 전환했다가 94년 불펜에서 부진을 거듭한 끝에 선발 재전환까지 시도했던 어찌보면 커리어 최악의 시기가 껴있었으며 임창용은 2년 연속 20세이브 이상 기록하며 연착륙하나 싶었으나 부상 이탈 후 삼성으로 떠나버렸다가 2016년이 돼서야 돌아왔다. 윤석민도 05, 06시즌 2년 연속 마무리로 뛰긴 했으나 곧바로 선발로 보직 변경하였으며 한기주는 07, 08시즌 리그 상위급 마무리의 위용을 선보였으나 고교시절 및 신인시절 혹사의 여파로 끝없는 재활길에 들어서게 되었다.[25] 윤석민 이후 두 자릿수 승수를 기록한 국내 우완 선발 자원이 없었기에 그 몫을 정해영에게 기대하고 있던 중이었다.[26] 공교롭게로 두산은 KIA전 열세를 기록한 해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27] KBO리그 역대 한경기 최다득점 경기도 이 시즌이었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이 시즌 KIA가 유독 2위 상대로 강했는데 두산이 시즌 초 1경기차 2위일 때는 위닝시리즈를 거두고 승차를 벌렸다.[28] 2024년 기준 KIA의 서울 연고팀들 상대 2013년~2024년 상대전적은 두산전 70승 117패 5무, LG전 88승 102패 2무, 키움전 84승 107패 1무다. 그런데 정작 LG가 우승한 2023년에는 오히려 KIA가 LG에 9승 7패로 근소하게나마 앞섰다. 그리고 2024년 시즌에는 LG 상대로 무려 13승 3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어 정말 오랜만에 상황이 반전되었으며, 키움 상대로도 11승 5패로 우위를 확정지었다. 하지만 두산에게는 6승 1무 9패로 밀려 여전히 곰 공포증을 떨쳐내지 못한 모습이다.[29] 2021~2024년 4년간 SSG전 상대전적이 24승 1무 39패로 상당히 밀려 2020년 기준 +13이던 통산 상대전적 마진도 2024년 -2로 근소하게 열세로 넘어갔다.[30] 2015년: 잠실 1경기, 2016년: 잠실 2경기, 2017년: 수원 3경기, 2018년: 수원 2경기, 2019년: 잠실 3경기, 2020년: 고척 3경기 + 잠실 2경기, 2021년: 잠실 2경기, 2022년: 인천 2경기 + 잠실 2경기, 2023년: 고척 1경기 + 인천 2경기[31] 이런 현상은 창원 NC 파크에서도 볼 수 있다. 마산고속버스터미널창원 NC 파크와 매우 가깝기 때문. 그런데 NC는 KIA와는 달리 추석 연휴에도 홈경기를 많이 치르고 있다.[32] 2001년 입단부터 2011년 이전까지 우리나라에선 한화 이글스 소속으로 뛴 선수였다.[33] 김기태도 광주광역시 출신이라 사실상 비연고지 감독은 조범현과 맷 윌리엄스 뿐이다.[34] 아이러니하게도 위 비해태 출신 두 감독이 KIA 타이거즈의 유이한 우승 감독이다.[35] 물론 실제는 지금 구단이 열렬히 너의 입대를 반대하고 있는데 무작정 나간다면 구단이 임의탈퇴라는 수단도 꺼내들 수 있다며 안치홍의 입대를 만류하는 것이었다만 해명도 늦었고 임의탈퇴라는 단어가 너무 강렬했던지라 알려지는게 늦었다.[36] 전라북도의 경우 경기도 열리지 않은지 오래되었지만 그룹 계열사가 스폰하는 지역 축구팀이 리그를 탈탈 털며 왕조를 구축하다 못해 아시아의 정복자로 등극하고 있는 형편이라, 국내축구와 K리그의 전반적인 사정과 달리 지역내 위상과 축구 열기가 이례적으로 뜨겁다. 그래서 이 지역 지자체장들은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자주 볼 수 있고 지역 지자체의 날이나 홍보행사 역시 전주성에 집중되어 챔피언스 필드에서 볼 수 있는 전북권 정치인들은 정세균 국회의장처럼 전국구 헌법기관장 등으로 축소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특히 정세균은 해태 시절부터 타이거즈를 응원해온 올드팬이기도 하다.) 단 이러한 현상이 전북 지역에서 타이거즈에 대한 관심이 없어졌다는 뜻은 아니다. 당장 KIA에서 활동하며 인기를 끌었고 본인부터가 KIA 아니면 치어리더 의미가 없다 밝혔던 이다혜 치어리더도 전주 출신이었다. 물론 이쪽은 서한국 단장과의 갈등으로 소속사를 나왔긴 했지만 타 KBO 야구팀 응원은 하지 않고 대만으로 가는 길을 택하며 타이거즈에 대한 의리는 지키고 있다.[37] 현장의 요청 때문에 만든 게 아니라 그룹 고위층의 지시로 만들어졌다고 한다.[38] 경기를 할 때 안경을 쓰지만 도수가 없는 것이라고 한다. 2017시즌 전 팀 우승이 확정된다면 다음 시즌부터 안경을 벗고 던진다고 했으나 2018년 시범경기 첫 등판에서 안경 없이 나와 좋지 못한 기록을 남기면서 안경을 다시 쓰고 던지기로 했다.[39] 한미일 종전 기록은 뉴욕 자이언츠가 1929년 6월 20일~23일까지 기록한 6경기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이다. 기간 동안 더블헤더 4경기가 포함돼 나흘 만에 이러한 기록이 탄생하게 되었다.[40] 타팀 팬들이 한미일 사상최초 혹은 메이저리그를 넘어섰다는 등의 수식어 때문에 리그 간의 수준차를 논하면서 이 기록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런 논리대로면 2003년 이승엽이 기록한 아시아 홈런 신기록도 종전 기록이 NPB에서 나왔기 때문에 이것 역시 인정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종전 기록은 1929년에 뉴욕 자이언츠가 기록한 6경기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이다. 이 기록이 탄생한 해가 최근이라면 수준차를 논할 수 있었겠지만 1929년 탄생한 기록이기 때문에 수준차를 애초에 논하기 힘들다.[41] 1990년에 대만시리즈에 진출하긴 했지만 웨이취안 드래곤스에게 2승 4패를 당하며 준우승에 그쳤다.[42] 한국시리즈 우승 2위의 삼성 라이온즈마저도 1990년대 한국시리즈 우승이 없다. 사실 1985년 우승도 통합 우승을 해 한국시리즈가 열리지 않아 1980년대도 한국시리즈는 우승이 없다. 두산도 2020년대에 아직 우승이 없다.[43] 잠실이나 인천(숭의야구장 시절) 원정때도 종종 따라 왔다.[44] We Will Rock You의 후렴구와 비슷하게 부른다.[45] 일례로 과거에는 하위권 전력에 팀 시스템도 엉망이라서 반등도 못했다면 현재는 우승 경쟁을 할만한 체급을 감독의 운용으로 포스트 시즌 진출 경쟁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46] 이는 KIA가 FA 이적한 선수에 대한 대우를 프랜차이즈 스타급으로 잘 해준 케이스가 많아서 선수 입장에서도 이적하기 좋으며 FA 투자 금액도 높은 편이라 경쟁 구단과 금액 경쟁을 이기는 경우가 많아서다. 일례로 이범호, 김주찬 등은 KIA에서 FA 재계약도 문제없이 해주고 이범호에게는 은퇴식, 현역 연장을 원한 김주찬에게는 보상없이 FA로 풀어주어 타 구단 이적을 허용하는 등 선수 친화적인 최고 대우를 해줬다. 계약 비용도 타 팀 프랜차이즈 스타급 선수에게는 최고 수준급 거액으로 비드했다.[47] 서건창이 LG에서 방출된 뒤, 전 소속팀이었던 키움 히어로즈에서 영입제의를 받았으나, KIA 타이거즈가 고향구단이기도 했고 KIA에서 더 많은 기회가 있을것으로 판단해 KIA 타이거즈에 입단했다. 그리고 2024시즌에 KIA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덕분에 그해에 한국시리즈 출전 명단에 이름을 올렸으며 우승반지를 얻었다.[48] 위의 인물들은 학창시절에 해태-KIA 타이거즈를 보면서 야구인으로서의 꿈을 키웠고, 인터뷰에서 고향팀인 KIA 타이거즈에 가고 싶어했다고 밝혔다.[49] 1990년 - LG 트윈스 / 2000년 - 현대 유니콘스 / 2010년 - SK 와이번스 / 2020년 - NC 다이노스[50] 1982년 - OB 베어스 / 1992년 - 롯데 자이언츠 / 2002년 - 삼성 라이온즈 / 2012년 - 삼성 라이온즈 / 2022년 - SSG 랜더스[51] 1985년 - 삼성 라이온즈(전•후기 리그 통합우승) / 1995년 - OB 베어스 / 2005년 - 삼성 라이온즈 / 2015년 - 두산 베어스[52] 반대로 1 - 1991 / 3 - 1983, 1993 / 4 - 2024 / 6 - 1986, 1996 / 7 - 1987, 1997, 2017 / 8 - 1988 / 9 - 1989,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