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bordercolor=#ea0029><tablebgcolor=#ea0029> | KIA 타이거즈 관련 문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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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KBO 리그 소속 프로 야구단인 KIA 타이거즈의 이런저런 여담을 정리하는 문서.2. 선수 육성 체계
일단은 KIA 타이거즈는 2010년부터 8개 구단 최초로 3군 체제를 시작한 팀이다. 하지만 창설 초기에는 무늬만 3군이라는 성격이 매우 강했다. 일단 2군 시설부터가 낙후되어 있던 상황이니 막 생긴 3군 시스템의 모습은 말할 필요도 없다. 2012년 말에 완공된 함평 육성 전용 구장이 완공되기 전까지 함평 전남야구장#을 임대하여 2군 구장으로 사용하였던 KIA 타이거즈 2군은 그야말로 헬이었으며 전용구장이 완공된 이후에도 함평군의 훈련 시설이 아직 완공 전이라 육성 체계가 완성되지 못한 탓에 2012년까지는 잔류군 및 재활군의 성격이 강했다.하지만 선동열 감독 체제 이후로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신인들을 많이 뽑고 신고 선수도 많이 영입하여 3군 체계를 강화시켜 선수들에게 많은 기회를 부여하면서 경쟁을 통해 훌륭한 팜 시스템을 구축하여 제2의 이준호나, 넥센의 서건창 등을 발굴하고자 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2012년 시즌 후반기에 고양 원더스 소속의 외야수 강하승을 신고선수로 영입한 것[1]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2군 총괄코치가 3군까지 전체적으로 선수단을 관리하는 체계이다.
또한, KIA는 코칭스태프 체계에서 2군 감독이 따로 없고 1군 감독이 2군, 3군까지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체계를 따른다. 대신 2군 총괄코치라는 일종의 수석코치 및 감독대행을 두어 관리하는 체계. 그만큼 1군 감독이 2군과 3군까지 세밀히 점검을 하면서 모든 선수단의 운영을 관리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더욱이 선동열 감독 체제가 들어서면서 선수 육성에 대한 의미를 더욱 강조하면서 경쟁 시스템 구축이 가속화 될 전망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함평에 좋은 시설이 들어서고 무한 경쟁체제가 확립되어 좋은 시너지 효과가 일어나야지만, 그리고 선동열 감독 이후의 코칭스탭진이 2군 및 3군 육성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만 가능한 일이다. 2012년 시즌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던 선 감독이었지만, 그의 부임 이후 육성군 체질 개선으로 2군이 좋은 성적은 얻은 것에 대해서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2] 그리고 2014년 말 선동열 감독이 사퇴하고 김기태 감독 체제가 들어서면서 2군 감독 직책이 신설되었고, 2019년 5월 김기태 감독이 사퇴하면서 2군 총괄코치 직책이 부활했다. 이후 2020년에 맷 윌리엄스 감독이 부임하면서 다시 2군 감독 직책이 부활했으나 2021년에 다시 2군 총괄 체제로 돌아왔다.
일단 최초로 3군이라는 단어를 도입하고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의 산물이었던 기아 챌린저스 필드가 완공되면서 선수 육성의 하드웨어는 갖춰진 상태이다. 챌린저스 필드 클럽하우스 완공이 늦어진 상태에서 2군 코치진들이 새로운 선수 발굴에 실패한 결과 2013년 시즌의 참담한 결과가 나오게 되었다.과거 2군 시스템과 인프라는 어느정도 개선은 된 편이지만 별개로 재활시스템은 10개 구단 중 최악으로 꼽혔다.[3][4] 2015년 12월 7일 홈구장인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부지내에 재활센터를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완공이 된다면 구단 자체 재활치료가 가능해진다고 한다. KIA, 인프라 대확충...프리미엄 좌석, 3군 구장, 재활센터 건립 그리고 2016년 7월 13일 2군 경기장인 기아 챌린저스 필드 옆 부지에 재활센터 개소식을 가졌고 10개 구단중 최악으로 꼽혔던 재활시스템은 이전보다는 나아졌다.
다만 아직 선수 육성능력은 좋게 봐도 중하위권에 불과하다.[5] 애초에 KIA는 퓨처스 시설이 첨단화된 지도 4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군문제 해결도 김기태 감독이 부임하고 나서야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니 당장 성과를 바라기에는 조금 이른 상황. 또한 은퇴한 KIA 출신 선수를 코치연수도 시키지 않고 그대로 코치에 박아버리는 속칭 갸무원 문제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그래도 퓨처스에서 두각을 보였던 선수조차 드물었던 선동열 시절과는 달리 김기태 부임 뒤에는 그 선수들을 1군에서 쓸 수 있는지의 여부는 뒤로 하더라도 군경팀에서든 함평에서든 좋은 성적을 내는 선수들이 어느 정도 나오고는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선수들이 대부분 1~2년차라 처음부터 재능이 있었던 부류로 보이기 때문에 함평 교육시스템이 좋아서 이런 선수들을 배출한다고 보기 어렵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이진영.[6]
최근에는 손승락이 2군에서 뛰어난 투수를 올려보내고 있어 육성에 대한 평가가 올라가고 있다.
2.1. 2차 3라운더 잔혹사
위의 신인육성 시스템과 엮여서, KIA는 신인지명에서 유독 3라운드에서 지목한 선수들이 살아남는 확률이 적은 편이다. 3라운드에서 지명한 선수 중 WAR이 제일 높은 자원이 테러리스트라고 불릴 정도로 실력에서 좋은 평가를 못 받았던박경태일 정도. 이를 알고 있는 골수 팬들은 3라운드 지명선수는 '버리는 카드'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은 편이다.보통 경우 1~2라운드 픽까지는 즉전감으로 예상되는 선수를 많이 지목하는 편인데, 3라운드 픽부터는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뽑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이 가운데에서도 '당장은 프로에서 통할 실력은 아니지만 아마추어에서 과거 눈에 띄는 성과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잘 키우면 기대감을 가질 수 있는 선수'를 3라운드에서 뽑는데 이 때 뽑은 선수들이 아마추어 시절에는 좋은 기량을 보여주었으나, 부상 및 알 수 없는 부진을 이유로 프로에서 기량을 제대로 뽑지 못했거나 육성시스템에서 기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키우지 못한 경우가 많으면서 일찌감치 방출되거나 살아남더라도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경우가 많은 것으로 분석된다.
간혹 윤정우와 같이 KIA에서 제 기량을 펼치기도 전에 다른 팀으로 이적한 케이스도 있다.
지명 연도 | 이름 | 지명 결과 | 비고 |
2024 | 이상준 | ||
2023 | 정해원 | ||
2022 | 강병우 | (현역) | |
2021 | 이승재 | (군보류) | |
2020 | 오규석 | (군보류) | 육성선수 신분으로 계약 |
2019 | 이태규 | (현역) | 육성선수 신분으로 계약 2024년 KT 이적 |
2018 | 이원빈 | 2020년 방출 | 투수에서 내야수로 전환 이력. 1군 경력 없음 |
2017 | 김석환 | (현역) | |
2016 | 정동현 | 2019년 방출 | 정대현의 동생. 군복무 이후 방출 |
2015 | 이종석 | 2020년 방출 | 대학 시절 혹사이력 있음. 2019년 육성선수로 전환 |
2014 | 김지훈 | 2016년 방출 | |
2013 | 이효상 | 2016년 방출 | |
2012 | 장시하 | 2016년 방출 | |
2011 | 윤정우 | 2012년 LG 이적 | 2015년 KIA 재이적 2017년 SK 이적 2019년 SK 방출 |
2010 | 이인행 | 2019년 은퇴 | 1군 통산 4시즌, 50경기 출전 |
2009 | 손정훈 | 2010년 방출 | 2013년 NC 입단, 2013년 방출 2014년 kt 입단, 2014년 방출 |
2008 | 박진영 | 2012년 방출 | |
2007 | 이호신 | 2018년 방출 | 통산 188경기 출전 |
2006 | 박경태 | 2019년 방출 | 통산 233경기 출전 |
2005 | 최훈락 | 2014년 방출 | 통산 141경기 출전 |
2004 | 권희석 | 2012년 방출 | 1군 경력 없음 |
2003 | 김주호 | 2005년 두산 이적 | 2007년 방출, 통산 76경기 출전 |
KIA라는 이름으로 참여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3라운더 목록을 보면, 가장 오래 살아남았고 승리기여도 역시 높은 선수가 박경태였을 정도로 KIA에서 잘 된 선수가 거의 없을 정도이다. 그나마 눈에 띄는 선수로는 좌완투수 정대현의 동생으로 데뷔 시즌 선발투수로 나서 승리투수가 되는 등 주목을 받기도 했으나 이후 부진으로 제 기량을 펼치지 못한 정동현이나 한때 김기태의 양아들로 유명했고 박경태 못지 않게 오래 살아남았던 이호신, 외모 때문에 주목을 받았던 최훈락, 장타력을 갖춘 호타준족이란 평가를 받았으나 여러 팀을 돌던 윤정우 정도이며, 그 외에도 2005년 전병두를 받고 다니엘 리오스를 내어준 두산 베어스와의 2:1 트레이드에서 함께 끼어 두산으로 이적한 김주호 역시 KIA의 3라운더였다.
그나마 이승재가 입단 첫 해 깜짝 승리투수가 되는 등 눈에 띄는 활약을 보여주었고, 타이거즈 러브투게더 장학생으로 선발돼 거포 유망주로 KIA에 입단한 김석환이 군복무 문제를 해결하고 본격적인 1군 진입을 위한 담금질에 나서고 있어 조만간 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예상된다.
3. KBO 신인상 잔혹사
의외로 많이 언급되지는 않지만 1982년 리그가 시작된 이래 신인왕과 연이 없는 팀이다. 1985년 신인왕과 KBO 골든글러브를 거머쥔 이순철[7]이 배출된 이후 2020년까지 35년 동안 타이거즈에서 신인왕을 배출해내지 못했다. 11번의 우승을 거머쥐는 동안에도 빼어난 신인이 나오지 못하거나, 그 해에 신인왕에 버금가는 활약을 했음에도 그 해에 더 괴물같은 선수들이 타 팀에서 나오면서 인연을 맺지 못했다.- 1989년에는 신인 이강철이 214.2이닝 15승 11패 3세이브 평균자책점 3.19라는 훌륭한 성적을 거뒀으나, 태평양의 박정현이 19승 10패 2세이브에 평균자책점 2.15, 242.2이닝을 투구하며 신인왕 자리를 내주게 된다.
- 1990년에 1차 지명으로 입단한 이호성의 경우 그 해 외야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할 정도로 준수한 성적을 보였으나 그 해 신인왕은 김동수의 차지였다.
- 가장 유명한 사례로는 이종범의 케이스로, 1993년에는 걸출한 스타급 선수들이 많이 배출되었던 한 해였고 특히 삼성 라이온즈의 교타자 양준혁과의 라이벌 구도가 그려졌다.[8] 결국 신인왕 투표에서 양준혁에 밀려 신인왕 타이틀을 놓치게 되었다. 대신 이종범은 1993년 한국시리즈 MVP와 이듬해 리그 MVP로 신인왕의 설움을 풀기는 했고 아들이 신인왕을 받으면서 아버지의 꿈을 대신 이뤘다.
- 2002년에는 김진우도 12승에 탈삼진왕을 차지하는 등 신인왕을 탈만 한 성적이지만 더 뛰어난 현대 조용준의 등장으로 실패했다.
- 2006년, 최고 계약금 10억을 쥐고 입단한 한기주의 경우에도 데뷔 후 선발 및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며 수준급의 성적을 거두기는 했지만 그 해에 혜성처럼 나타난 MVP와 신인왕을 동시에 거머쥔 괴물급 투수의 등장으로 묻혔다.
- 2009년, 최연소 올스타전 MVP와 한국시리즈의 숨은 공신으로 활약했던 안치홍 역시 그 해에 유일한 순수 신인으로 신인왕에 도전했으나 후반기에 접어들어 약점이 노출되어 삽질을 거둔 끝에 0.235라는 멘도사 라인 급의 타율을 기록했고, 결국 중고 신인인 이용찬에게 자리를 내줬다.
- 2012년에는 박지훈이 불펜에서 준수한 성적을 거두며 신인왕에 도전했으나 서건창이 등장하면서 실패했다.
- 2019년에는 전상현이 불펜에서 준수한 성적을 거두고 이창진이 중견수로써 좋은 성적을 펼치며 스탯티즈 WAR*로는 LG의 정우영보다 뛰어난 성적을 거뒀지만, 결국 신인왕은 정우영이 가져갔다.
하지만 2021년에 이의리가 최준용과 함께 신인왕 유력후보로 올랐고, 결국 신인왕을 수상하며 마침내 잔혹사를 끊어냈다.
4. 군기 및 징계
해태 타이거즈 시절과 2000년대 초반까지 KIA 타이거즈 군기는 악명 높았다. KIA로 트레이드 될 바에는 은퇴하는게 낫겠다고 옷 벗은 선수들도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손혁이 트레이드 이후 입단을 거부하다가 임의탈퇴로 은퇴했다. 그러다가 이종범이 일본에서 돌아온 후 이대진과 함께 앞장서서 똥군기를 정리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종범 본인도 이 부분을 자랑스러워하고 있다고.그래도 2010년대 초반까지 여전히 군기는 다른 9개 구단에 비해 강한 편에 속했다. 김주찬의 경우 FA로 KIA로 이적한 후 한 인터뷰에서 "군기가 다른 팀에 비해서 센 편인 거 같다." 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무한도전 타인의 삶 때 넥센 히어로즈의 이숭용과 역할을 바꾼 정준하도 녹화 당일 넥센의 경기 상대였던 KIA 측 식당을 방문했는데, 넥센은 선후배가 뒤섞여 이야기를 나누며 심지어는 팀 내 최고참(의 대역)에게 농담도 치며 식사하던 분위기였으나, KIA는 대선배인 이종범이 혼자 독상을 하고 다른 선수들도 별 대화 없이 묵묵히 식사하고 있었다고 한다. 다만 해태 시절에도 군기반장은 김성한이나 이순철과 같이 주로 야수진에 있었고 투수진의 고참급이던 선동열, 이강철, 이대진 등은 맞은 적은 있어도 후배들에게 엄격하게 굴었다는 이야기는 없으며 최향남의 금발 염색이나 임창용의 클럽 죽돌이 생활, 등판 하루 전날 과음을 행한 적도 있는 선동열 등의 사례를 보면 최소한 해태 시절에는 투수진의 군기는 엄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해태 선수들을 보면 은근히 기행 이미지가 강하다(...).
이것과 연관되어서 만일 구단 내의 선수가 사생활이나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을 경우 내부 자체 징계를 세게 때리는 편이기도 하다. 무단 이탈을 한 김진우나 음주운전을 한 손영민, 구단물품과 관련되어 문제가 생겼던 한성구의 경우 임의탈퇴라는 강수를 거는 한편 SNS에서 부적절한 언어를 사용하여 팬들의 분노를 산 윤완주의 경우에도 한국야구위원회에서는 경고 정도로 끝난 부분을 구단 자체적으로 3개월 선수 자격 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린 사례가 있다. 외국인 선수도 예외는 없어서 대마초 전자담배 관련으로 물의를 일으킨 애런 브룩스의 경우 알짤없이 임의탈퇴를 걸었다.[9] 심지어 뒷돈 관련으로 물의를 일으킨 단장 장정석도 가차없이 해임시켰으며 자팀의 레전드 출신 감독인 김종국도 배임수재 혐의를 받자 곧바로 경질했다. 2024시즌 백업 내야수로 준수한 활약을 보였던 홍종표가 SNS상에서 여러 물의를 일으킨 것도 모자라 본인이 속한 소속팀의 연고지를 비하하는 발언을 한 것이 알려지자 가차없이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 제외, 2군도 아닌 육성군으로 좌천시키며 강력한 징계를 내렸다.
다만 LG와 KIA 두 팀을 거친 이대형과 이용규의 대화로 미루어보면 오히려 LG가 더 엄격했고 KIA는 의외로 그보단 좀 편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2010년대 후반 ~ 2020년대에 이르러 최형우[10]가 최고참이 되고 후배들과 편하게 지내는 것을 좋아하는 양현종, 김선빈, 나성범 등이 고참 라인을 형성하면서 다른 팀들보다도 오히려 느슨해 보일 정도로 군기가 없어졌다.[11] 최근 갸티비 등을 보면 한국 사회의 탈권위화, 젊은 선수들의 성장과 함께 선후배 관계는 많이 풀어진 것으로 보인다. 황대인과 이우성이 누가 더 잘생겼냐고 얼굴전쟁을 벌인다든가. 다만 김태군이[12] 트레이드로 들어온 이후에는 분위기가 좀 더 엄격해졌다.
5. 선수들의 충성심
강한 군기와는 별개로 타이거즈에 엄청난 충성심을 보이는 선수들이 제법 있다. 보통 해태 시절에 활약했거나 어린 시절 타이거즈 야구를 보고 자란 연고지 출신 선수들에게 이런 경향이 더욱 강하다. 이와 또 별개로 타 팀에서 건너온 선수들도 팀에 대한 상당한 애정을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특히 군기가 점차 약해져갔던 2010년대에 들어온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서정환: 대구 출신임에도 "난 전라도 사람이여"라고 말할 정도로 팀에 애정이 많았다고 한다. KIA팬들도 감독으로서는 무척 싫어하지만 선수로서는 딱히 싫어하지는 않는다.
- 임창용: 삼성 시절엔 FA계약 직후에 KIA 타이거즈로 트레이드 해 줄 것을 요구한 적도 있고,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에서 뛸 때도 타이거즈에서 은퇴하고 싶다고 말했을 정도였으며 결국 KIA로 돌아와 활약했지만 김기태와의 불화 끝에 방출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방출 전 마지막 면담에서 어떻게든 좋으니 팀에 남고 싶다고 말했지만 결국 방출을 당했다.
- 이호준: 한창 SK와 KIA가 대립했을 시절에도 인터뷰로 KIA가 좋은 성적을 냈으면 한다고 말했고 주장임에도 벤치 클리어링 때 그라운드에 나오지 않았다.[13] 거기다 NC로 이적하고 나서도 은퇴 시즌에서 행해진 마지막 광주 경기에서 은퇴는 타이거즈에서 하고 싶었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 정성훈: 현대로 트레이드된다는 소식을 듣자 팀을 떠나기 싫다며 울었고 아예 올스타전때 현대 유니폼에 KIA 헬멧을 쓰고 나오는 기행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KIA를 떠난지 16년이 지난 2018 시즌에 친정팀으로 다시 돌아와 KIA에서 은퇴했다.
- 김종국: 대학 시절 당시 대표 유망주던 그를 탐낸 다른 구단들에서 온 영입 제의를 모두 뿌리치고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했으며 2006년 FA 당시 다른팀과 협상한다는 어떤 페인트 모션도 없이 본인이 직접 타이거즈 프론트를 찾아가 계약을 맺었다. 애시당초 이적할 생각이 없었다는 소리. 물론 진통이 없진 않았지만 그래도 우선 협상 기간내에 재계약을 성사시켰다. 이후 코치, 감독까지 한팀에서만 있던 진성 타이거즈맨이라 할 수 있다.[14]
- 신종길: 한화 시절 자신이 트레이드 대상에 올랐다는 얘기를 듣자 구단에 'KIA가 아니면 안 가겠다'고 선언했다.
- 김상현: LG로 트레이드될때 소주를 마시고 감독이 쉬던 숙소 방에 들어가서 타이거즈에 남고 싶다면서 무릎을 꿇고 감독한테 빌었다. 이후 2009년에 다시 돌아와 MVP와 팀의 우승까지 경험했다.
- 양현종: 광주 출신의 로컬 보이인데다 본인도 KIA의 KBO 영구결번을 노린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팀에 애정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2021년에는 미국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나서도 KIA와의 우선 협상에만 마음을 두고 있다며 친정팀 복귀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고 결국 복귀했다.
- 안치홍: 신인 때 부터 타이거즈의 중심은 나라고 말하며 20년 동안 팀을 이끌겠다는 짤이 두고두고 회자 될 정도... 였지만, 2020 시즌을 앞두고 FA로 롯데로 이적했다. 하지만 이적이 결정된 이후에 지금까지 자신을 키워 준 것에 감사했다고, 떠나게 돼서 죄송하다는 내용의 손편지를 남기며[15] 팀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고 KIA팬들을 울렸다.
- 노수광: SK와 4대4 트레이드가 결정되고 눈물을 흘리고 감독에게 큰 절을 올리려고 했다고 한다. 트레이드 된 이후에도 자주 KIA 덕아웃에 놀러오는 모습을 보여줬다.
- 서동욱: KIA에서 다른 팀으로 넘어간 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자꾸 KIA로 자신을 보내 달라고 요구했다고. 사실 KIA에 대한 충성심보다는 그 당시 KIA의 얇은 뎁스가 본인에게 기회를 줄 것이라 여겼기 때문에 KIA행을 원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해도 다른 팀들 놔두고 KIA를 콕 집어서 이야기 한 것을 보면 충성심도 있긴 있었을 것이다. 넥센은 서동욱을 대체할 주전이 이미 충분했기 때문에 딱히 활용법도 마땅치 않은 서동욱을 무상 트레이드로 KIA에 넘겨주면서 서동욱은 11년 뒤 KIA에 돌아오게 되었으며 커리어하이를 찍고 우승반지도 획득하고 은퇴할때까지 생활했다. 그 뒤 최강야구에서도 맹활약중인 류현인에게 농담삼아서긴 해도 KIA로 가라고 이야기한걸 보면 팀에 대한 애정은 아직 남아있는것으로 보인다.[16]
- 나지완: 생애 첫 FA 자격을 얻었을 때 구단이 포지션이 완벽히 겹치고 상위호환인 최형우를 영입하려고 계획 중이었기에 다른 팀을 알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음에도 셀프 디스카운트까지 해가며 팀에 잔류했다. 심지어 KIA보다 10억 이상을 제시한 구단이 있었음에도 이를 거절하면서까지 KIA에 잔류한 것이다. 이에 감동 받은 KIA 구단도 예산을 있는 대로 긁어모아 4년 40억 원의 계약을 안겨주었다. 은퇴 후 방송 및 해설 일로 이래저래 바쁜 와중에도 KIA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말을 공식적으로 여러 번 했다.
6. 노란 응원막대
막대풍선형 | 종이막대형 (일명 호통이) |
각 팀마다 팀 컬러를 반영한 응원막대를 판매하고 있지만, 빨간색과 감색을 팀 컬러로 내세우고 있는 타이거즈는 뜻밖에도 노란색 막대풍선을 쓰고 있다. 일부 KIA 팬들은 노란색 응원막대를 단무지라고 부르기도. KIA 타이거즈의 BI나 CI에서도 호랑이를 제외하고는 노란색을 찾기 힘들고 CI 변경 전에도 노란색 계열을 쓴 부분은 마찬가지로 호랑이 캐릭터를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노란 막대풍선의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자면 LG 트윈스가 1990년대 초반 처음으로 막대풍선을 이용한 응원을 시작한 뒤 다른 프로야구 구단에서도 응원 막대풍선을 차용하기 시작했는데, KIA의 전신인 해태 타이거즈 시절부터 노란색 막대풍선을 사용하기 시작했다.[17] 이후 KIA 타이거즈로 팀이 바뀌면서 하얀 응원막대로, 2002년부터 2004년까지 빨간 응원막대로 바뀌기는 했지만 잘 보이지 않아서 결국은 다시 시각적으로 빨간색보다 잘 보이고 부피도 커보이는 노란막대로 회귀했다. KIA가 한 번 쓰다가 버린(?) 붉은색 응원막대는 훗날 팀 상징 컬러가 바뀐 SK 와이번스에서 쓰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좀 단순한 이유이기도 하지만 해태 로고 중에도 노란색이 일부 있기도 하고 나름대로 호랑이 캐릭터에 노란색 계열이 들어가는 만큼 의외로 잘 어울리는 응원 막대풍선 색깔이 되었고, 노란 막대풍선은 타이거즈만의 상징물이 되었다. 이 덕분에 KIA를 응원할 때 보면 빨간 베이스에 노란색이 강조되는 효과가 나온다. 특히 경기가 KIA의 압승으로 흘러가기라도 하는 날에 그 기세는 더 말할게 없을 정도. 매우 우연의 일치지만,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과 컬러가 상당히 비슷해졌다.
일각에서는 호남에서 노란색이 정치적으로 남다른 의미를 상징하는 만큼 타이거즈의 응원색으로 어울린다는 이야기도 한다. 실제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80년대에 이끌었던 평화민주당의 상징색이 노란색이었고 훗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탄생한 열린우리당도 노란색을 상징색으로 썼다. 모두 호남에서 강력한 지지를 받았던 정당들이다. 현재는 정치색과 완전히 무관.
친환경 트렌드와 함께 막대풍선이 배트 스틱으로 대체되던 와중에도 KIA팬들은 여전히 노란 막대풍선을 주로 사용하였고, 일반적인 긴 모양의 막대풍선 외에도 호랑이 발을 형상화한 막대풍선이나 탬버린 등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나오고 있다.
2022년 11월, 경기장 내 비닐 일회용품 사용이 금지됨에 따라 단무지 막대풍선도 공식적으로는 판매가 중단되었고, 원통 모양의 종이 재질로 바뀌었다. 애칭은 호통이.
7. 잠수함 투수 전성시대
타이거즈에 대해 설명할 때 왼손잡이 선수 수난사와 함께 언급되는 특징으로 수준급의 옆구리 투수들이 많이 배출되었던 팀이라는 것. 이 중 왼손잡이 수난사는 수많은 우투좌타 야수가 배출되고 있는 현대야구의 추이와 함께 타이거즈 왼손투수의 기록을 속속 갈아치우고 있는 양현종과 그 뒤를 이을 후계자로 각광받는 이의리와 윤영철의 등장으로 사실상 옛날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지만 수준급의 옆구리 투수의 배출은 기아자동차로 모기업이 바뀐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다.1989년부터 2012년까지 지속되었던 이강철-(박충식)-신용운-손영민의 등번호 19번 계보의 선수들이나 해태에서 뛴 적 있는 재일교포 선수 주동식, KIA 2009 시즌의 뒷문을 책임졌던 유동훈 등도 타이거즈를 대표했던 옆구리 투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선수이며, 해태에서 데뷔한 뒤 삼성에서 오래 선수생활을 하다 우여곡절을 겪고 KIA로 돌아온 임창용 역시 타이거즈가 배출한 KBO 리그 대표 사이드암 투수이다.
2012년을 끝으로 '등번호 19번 옆구리투수'의 계보가 끊겼고[18] 2010년대 초~중반 잠시 잠수함 투수의 기세가 줄어든 적이 있었지만 그 이후에도 박준표, 박정수, 윤중현 등의 선수를 발굴해 냈고, 한화에서 데뷔했지만 상무에서 군 생활을 보낸 뒤 제대하여 KIA 마운드의 한 축이 된 임기영도 등장하며 타이거즈 옆구리 투수 배출의 역사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8. 포수 기근
좋은 투수들은 프로 초창기부터 샘솟듯 솟아났지만 희한하게도 좋은 포수는 가뭄에 콩나듯 등장하는 팀이 타이거즈다. 사실 이는 프로 원년부터 그랬다. 원년 해태 선수단에는 김경훈과 박전섭이라는 포수가 있었지만 그저 투수의 볼을 받아줄 정도의 포수에 그쳤다. 결국 1983년 재일교포 선수 영입 과정에서 김무종을 영입하면서 포수 기근을 해소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는 그래도 확실한 주전 포수가 있었다. 김무종이 노쇠하자 장채근이라는 대형 포수가 등장했고 장채근 이후에는 정회열이 주전 마스크를 썼으며 그 후에는 최해식이 타이거즈의 안방마님 역할을 했다.문제는 최해식 이후였다. 김지영과 권오성이라는 백업 포수들이 있었으나 최해식을 밀어내지 못했고 2000년 대형 포수 김상훈이 입단하기 전까지 최해식이 혹사를 당해야 했다. 2000년대 이후부터는 김상훈과 차일목의 시대였는데 김상훈이 주전으로 있을 때는 차일목이 백업과 주전을 오갔다.[19] 에드먼턴 키즈 멤버 중 한 명인 송산을 신인 지명으로 영입했지만 성장하지 못하고 도태됐다. 이때 KIA 프런트는 치명적 실수를 범하게 된다. 김상훈과 차일목 모두 2010년대부터는 30대가 되는 만큼 확실한 미래의 주전 포수를 잡았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2006년 당시 지역 내 학교에 대형 포수가 성장하고 있었음에도[20][21]영입에 소극적 태도를 보였고 이는 결국 타이거즈 팬들의 뒷목을 거하게 잡는 포수 대기근으로 이어지게 된다.
2010년대에도 타이거즈의 주전 포수는 김상훈, 차일목이었고 그 이후의 확실한 대책은 없었다. 장충고 1년 선후배 사이인 백용환과 이홍구를 잇달아 영입했지만 타격에만 재능이 있을 뿐 포수 능력에는 성장이 더뎠다. 결국 어쩔 수 없었는지 이용규의 FA 이적 때 보상선수로 한승택을 지명했고 SK 와이번스에서 김민식을 데려왔다. 김민식은 2017년 한 시즌 반짝 대폭발하며 타이거즈의 V11에 기여했지만 그게 다였다. 현재는 한승택, 김민식, 백용환이 1군 주전급 포수로 앉아 있지만 팀의 전력을 강하게 지탱할 수 있는 확실한 A급 주전은 모두 아니다.
2020년대에 들어서도 아직도 문제는 이어지고 있다. 김민식과 한승택이 번갈아 출장하고 있지만, 두 포수 모두 공격력이 2할대 중반이고 블로킹, 프레이밍 또한 좋지 않다.
이에 2022년 4월 드디어 타이거즈는 포수를 길러내지 못하는 것을 자각했는지, 출혈을 감수하면서 포수를 영입한다. 그것도 타이거즈에서 여태껏 본 적이 없었던, 무려 두 자릿수 홈런을 날릴 수 있는 공격형 포수 박동원을 키움에서 영입한 것이다. 내년 시즌이 FA인 선수를 주전급 3루수 김태진과 2023시즌 신인 2라운드 지명권, 현금 10억까지 내주면서 말이다! 박동원은 22년 9월 현재 두 자릿수 홈런을 넘어섰고[22], 무엇보다 그 동안 타이거즈 베터리에게 볼 수 없었던 공격적 리드로 타이거즈 팬들에게 눈정화를 시켜주고 있다. 수비가 부족한 김민식을 SSG에 보내는 것으로 정리하고, 현재 박동원 주전에 한승택이 백업으로 나오는 방향으로 포수 체제가 구비되었다. 과연 박동원이 FA가 되는 2023년에 타이거즈에 남을 것인지, 그리고 타이거즈의 포수 잔혹사를 끊어낼 수 있을지 기대가 되고 있다. 한편 양의지도 동시에 FA로 풀리는지라 KIA가 양의지 영입전에 나설수도 있다라는 주장을 일부 언론사에서 하고 있어 과연 두 대형 포수의 공존이라는 대이변이 일어날지[23], 아니면 박동원과의 결별이 이루어질지 여부도 관심사다. 결국 양의지 영입은 샐러리캡 문제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박동원도 LG로 이적하며 KIA의 포수자리에는 거대한 구멍이 뚫리게 되었다. 그렇기에 2023 시즌은 한승택 주전 - 주효상 백업 체제로 시작할 것으로 보이는데 확실히 이전보다는 무게감이 없기에 KIA로서는 주효상이 터져주길 바라거나, 시즌 중 트레이드를 모색하거나, 아니면 다음 FA에 나오는 김태군이나 이지영을 노릴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2023 시즌 결국 한승택과 주효상이 이탈한 가운데, 젊고 경험 부족한 백업급 포수들이 주전을 맡아야 하는 최악의 상황에서 류지혁과 김태군의 트레이드를 단행하였다. 그나마 그 상황 속에서 한준수가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것이 위안거리다. 이후 김태군을 비FA 다년 계약으로 묶는데 성공하며 포수 체제는 김태군 주전 - 한준수 백업으로 체제가 정비된 상태다.
총론으로 대형 포수의 부족 문제는 2000년대 중반부터 20년 가까이 이어진 고질적 문제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포수진 육성과 영입에 대한 타이거즈 프런트의 시각이 20년 동안 상당히 좁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이 때문에, 2024년 시즌을 앞두고 나카무라 타케시 배터리 코치를 다시 영입하였다.
9. 마무리 기근
포수 기근보다야 낫지만 마무리 정규직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도 하나의 고민거리였다. 굵직한 투수 역사를 자랑하는 타이거즈 치고 꽤나 의외의 이슈. 타이거즈 역사상 최다 세이브를 기록한 사람은 선수 생활 내내 선발로 리그의 역사를 써내다 말년에 건초염 이슈로 마무리 보직으로 옮긴 선동열이었으며 그 아래 임창용은 타이거즈에서 뛴 기간이 적은 선수였으며 윤석민은 마무리가 없는 팀 사정상 어쩔 수 없이 마무리로 간 거지 선발로 훨씬 더 좋은 성적을 기록한 선발 자원인데다 한기주는 혹사 이슈로 인해 선수 생활 대부분을 재활하면서 보냈다. 또한 타이거즈 내에서 마무리 투수로 3년 이상 버틴 선수는 정해영이 등장하기 전까진 아예 없었다![24]이후 타이거즈는 외국인 티오에 하이로 어센시오라는 마무리 투수를 넣을 정도로 좀처럼 해답을 찾지 못했었다. 심지어 규정 상 한 경기에 최대 두 명의 외인을 넣을 수 있지만 마무리를 외인 투수로 넣으면 다른 외인 투수와 야수가 선발일 시 그 날은 등판이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슈를 감안하고 마무리를 외인 투수로 넣어야 할 정도로 마무리 역사가 처참했다. 우승했던 2009 시즌은 유동훈이 혜성처럼 나타나 마무리 보직에서 0점대 방어율을 기록하며 언터쳐블한 모습을 보였으나 다음 시즌부터 마무리 보직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결국 마무리 보직을 내려놓았으며 2017 시즌의 경우 내부에서 도저히 마무리감을 찾지 못해 마무리 경험은 있었으나 당시 부진하고 있었던 김세현을 트레이드로 데려와 마무리를 맡겨서 시즌 최종전까지 간 끝에 우승에 성공하긴 했으나 그 다음 시즌 곧바로 부진에 빠지며 마무리 보직은 또다시 무주공산에 빠지게 되었다. 이후 팀 내부에서 마무리로 육성하려던 김윤동은 혹사 여파로 마운드에서 어깨를 붙잡고 쓰러졌으며 두 번 다시 마운드로 복귀하지 못했다. 이후 문경찬과 전상현이 마무리를 맡았으나 각각 부진과 부상으로 얼마 안가 마무리 보직에서 물러났다.
사실 2010년대에 들어서는 마무리뿐만 아니라 불펜진 역시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외부 수혈로 겨우 틀어막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 2019년도에 서재응이 박전문 라인을 만들어내며 리그 최상급 불펜진을 만들어냈으나 다음 시즌 문경찬이 부진 끝에 nc로 트레이드되며 불펜에 빈 자리가 발생했고 그 자리를 당시 신인인 정해영이 메꾸게 된다. 당시 투수코치인 서재응은 정해영의 경우 장기적으로는 선발 자원으로 분류되어 2군에서 선발 수업을 받고 있었으나 1군 경험을 잠깐이라도 쌓게 하기 위해서 1군으로 올렸다고 했다. 그런데 어지간한 기아 불펜보다 좋은 모습을 보이자 순식간에 셋업맨 보직까지 올라가 온갖 험한 경험을 하게 되더니 다음 시즌에는 기존 불펜진이 부상 및 부진으로 깔끔하게 전멸해버리자 맷 윌리엄스 감독이 기존 불펜 플렌을 싸그리 갈아엎고 정해영을 곧바로 마무리로 박아버렸고, 이는 곧 신의 한 수가 된다. 마무리 시즌 첫 해부터 34세이브를 기록하더니 리그 내 온갖 세이브 최연소 기록을 갈아치우기 시작한 것. 사실 팀과 정해영 본인 모두 선발로 커야 한다 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으나[25] 마무리로 연착륙에 성공하자 둘 다 마무리가 맞는 자리다 라고 생각이 바뀌었다. 특히 타이거즈 입장에서는 처참했던 마무리 역사를 고려하면 마무리 보직에서 장기 집권 하면서 못해도 20세이브 이상은 보장해주는 정해영을 선발로 돌리려는 도박을 감행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가끔 정해영이 부상 등으로 엔트리에서 제외되었을 때 불펜진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충분히 경험했기 때문. 정해영 역시 마무리 첫 해에는 본인은 어디까지나 임시직이고 선발로 크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었으나 마무리로 뛰면서 팀 및 리그 기록을 세우기 시작하자 이제는 선발 욕심을 내지 않고 오로지 마무리로 뛰고 싶어하고 있다.
10. 두산만 만나면 작아지는 팀
KIA 타이거즈라는 구단 자체가 역사적으로 강팀이었던 적이 몇 없기에 약한 모습을 보이는 구단들은 많으나, 특히 그 가운데서도 두산 베어스를 상대로 한 열세 현상이 매우 심각하다. 2012년 이후 최근 13년간 KIA-두산의 상대 전적은 다음과 같다.연도 | 두산 | KIA | 상대우위 |
2012년 | 10승 1무 8패 | 8승 1무 10패 | 두산 베어스 우위 |
2013년 | 12승 1무 3패 | 3승 1무 12패 | 두산 베어스 우위 |
2014년 | 7승 9패 | 9승 7패 | KIA 타이거즈 우위 |
2015년 | 8승 8패 | 동률 | |
2016년 | 11승 5패 | 5승 11패 | 두산 베어스 우위 |
2017년 | 8승 1무 7패 | 7승 1무 8패 | 두산 베어스 우위 |
2018년 | 8승 8패 | 동률 | |
2019년 | 13승 3패 | 3승 13패 | 두산 베어스 우위 |
2020년 | 13승 3패 | 3승 13패 | 두산 베어스 우위 |
2021년 | 9승 2무 5패 | 5승 2무 9패 | 두산 베어스 우위 |
2022년 | 7승 9패 | 9승 7패 | KIA 타이거즈 우위 |
2023년 | 12승 4패 | 4승 12패 | 두산 베어스 우위 |
2024년 | 9승 1무 6패 | 6승 1무 9패 | 두산 베어스 우위 |
총 전적 | 127승 6무 78패 | 78승 6무 127패 | 두산 베어스 우위 |
표에서도 보이듯 KIA가 두산을 상대로 근 13년간 상대전적 우위를 차지한 시즌은 두산이 자체적으로 크게 부진했던 2014년과 2022년 단 두 시즌뿐이며, 이마저도 9승 7패로 근소우위인 반면[26] 열세를 기록한 시즌에는 승패마진이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심지어 우승을 차지한 2017년에도 상대전적 열세를 기록했다. 역대 전체 상대전적을 보아도 2024년 현재 354승 19무 398패(-44)로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29인 삼성에게보다도 훨씬 고전한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 2012년까지는 OB-두산 상대 통산 상대전적 마진이 +3로 근소하게 우세였는데 그 이후로 심각했던 두산전 열세현상으로 -44까지 밀린 것이다. 특히 KIA는 잠실 원정에서도 부진했지만 유난히 두산을 상대로 한 홈경기에서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2016년부터 2024년까지 두산 베어스의 광주 원정 경기 성적은 47승 1무 24패로 압도적인 우세를 보이고 있다. 그나마 2017년 한국시리즈에서는 천적 두산을 꺾고 통산 11번째 우승을 달성하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으나, 그 외에는 두산에게 어김없이 일방적으로 밀리며 두산의 높은 순위 유지에 제대로 기여하고 있다. 2023년 시즌에도 KIA 타이거즈는 타팀들에게는 양호한 성적을 기록했으나 두산 상대로 4승 12패로 처참히 깨지면서 또 다시 두산 공포증에 발목을 잡히고 말았고, 이로 인해 두산과 단 한 게임 차로 밀려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우승 시즌이었던 2024 시즌마저도 두산과의 상대전적에서 6승 1무 9패로 열세였다[27]. 가히 천적관계가 계속해서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KIA는 공교롭게도 2013년 이후로 두산과 같은 서울 연고팀들인 LG와 키움(넥센)에게도 굉장히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유독 2013년 이후 서울 연고팀들만 만나면 맥을 추지 못하고 있다.[28]
여담으로 두산 감독 시절 KIA의 저승사자로 악명 높았던 김태형은 2024년에 새로 부임한 롯데에서도 KIA에게 제대로 고춧가루를 뿌리고 있다. 그래도 후반 들어 KIA도 반격하면서 7승 1무 8패, 백중세를 거뒀다.
두산과는 다르게, SK 와이번스 상대로는 불가사의할 정도로 강한 모습을 보여줬었으나, SK가 SSG 랜더스로 팀명을 바꾸고 김원형이 감독으로 부임한 2021년부터는 반대로 SSG에게 계속 호구잡히고 있다.[29]
11. 추석은 가족과 함께 못 지내는 구단
'추석은 가족과 함께'라는 격언이 있지만, 안타깝게도 KIA 선수단은 그 격언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추석 연휴 동안 홈구장인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에서 홈경기를 가지는 경우가 별로 없다. KBO 측에서 관중 수 증가를 위해 의도적으로 추석 연휴 기간 동안의 KIA 경기를 수도권에 편성하고 있기 때문. 2015년부터 8년 연속으로 추석 연휴 기간 동안 일부 경기 혹은 전 경기가 수도권 원정에서 경기를 했다.[30] 그 때문에 무등 야구장의 리모델링 이전까지는 챔피언스 필드 주변 경기장이 추석 특별수송으로 투입된 공동운수협정차량의 주박용도로 활용되었다.[31]다만 2024 시즌에는 추석연휴(14일~18일) 중 주말시리즈인 14~15일에 홈경기(키움 2연전)가 잡혔다. 물론 16일과 17일에는 어김없이 수도권 경기가 잡혔다.
12. 그 외
- 2012 시즌 들어 롯데 자이언츠나 넥센 히어로즈 등 각 팀의 여성 경기보조요원(예: 배트 걸)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가 되고 있다. 야구의 인기가 확대되면서 또 다른 구단의 인기요소가 되기 때문인데, KIA는 운영하지 않았다. KIA의 경우에는 경기 보조요원을 지역의 유소년 야구 선수들을 활용하는데, 구단 측에서는 유소년 야구선수들이 경기에 보조로 참여함으로써 선수가 되기 전 프로야구 경험을 축적하여 선수 생활의 바탕이 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유명한 야구 선수들을 직접 그라운드 안에서 보면서 선수로서의 꿈을 키우는 경험을 해준다는 차원에서는 나름대로 실속있는 방침이라 할 수 있을 듯. 보조요원으로 참여한 학생들에게는 소속 학교에 일 수당 5만원을 지급한다고 한다.. 하지만 2015 시즌부터는 유소년 선수 대신 다른 구단들처럼 배트걸을 쓰기 시작했다. 이 배트걸은 구단 치어리더들이 번갈아가며 맡는다. 다만, 2020년부터는 배트걸을 운영하지 않는다.
사진은 2011년 올드 유니폼 데이 당시의 이종범.
- 2005년 이래 시즌 개막전 전패를 기록하면서 2012년까지 8연패를 기록하였다. 그렇다보니 초반에 팀 분위기가 꼬이는 경우가 계속 발생하였으며 그 분위기가 계속 진행되면 팀 운영에 차질이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KIA 타이거즈의 개막전 승률이 2012년까지는 0.393으로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고. # 그러나 2013~2015 시즌 개막전에서 모두 승리하며 3연승을 기록하며 개막전 승률을 어느 정도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2017년 이후 2024년까지 또 개막전 연패를 당했다.
- 구단 상품들이 정말 구매의욕을 꺾어놓는 수준이다.# KIA 타이거즈의 유니폼과 상품은 10개 구단 중 삼성 라이온즈와 쌍벽을 이룰 정도로 영 좋지 못했다. 프런트에서도 인식은 하고 있다고.# 그래서인지 2017년을 끝으로 기존 사업자였던 비젼코리아와의 계약이 끝나자 마자 킷 스폰서인 마제스틱의 한국 판매를 담당하는 '케이엔코리아'와 상품 계약을 맺은 뒤 상품의 다양성이 증가되면서 점차 고객들의 의견을 만족하고 있다. 다만 아직 초기여서인지 몰라도 일부 상품의 마감이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은 있다. 그래도 디아도라, IAB STUDIO와 계약하면서 디자인 센스가 나아지긴 했으나, 가끔 카택니폼 등 괴디자인 유니폼도 나온다.
- 한동안 지나칠 정도로, 해태 타이거즈 프랜차이즈 출신 감독을 선호하는 일명 해태순혈주의를 고집하였다. KIA 타이거즈 역대 감독들은 김기태 전 감독, 조범현 전 감독, 맷 윌리엄스 전 감독, 이범호 감독[32]을 제외하고는 모두 순수 해태 혹은 KIA 출신이었다.[33][34] 하지만... 2009년 타이거즈에 12년 만의 V10을 안겨준 비해태출신 조범현 전 감독은 이듬해 2010년 전반기 6월까지 3위권을 형성했지만, 후반기의 16연패로 인해 빗발치는 팬들의 원성을 들어야 했고 결국 그해 5위로 가을야구에 실패했다. 2011년에도 전반기 1위를 했으나 후반기에 깔끔하게 망하면서 결국 정규리그 4위로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패배를 기록하며 조범현 전 감독은 이에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를 한다. 그러나 구단과 팬들에게 이를 깨게 만든 장본인이 있었으니... 2012~2014년 3년간 감독을 맡은 한국야구의 살아있는 전설 해태 출신인 선동열. 선동열 체제동안 KIA는 588이라는 처참한 성적을 거두며 3시즌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고 거기다 이종범을 떠밀다시피 은퇴시키고 안치홍에게 임의탈퇴를 들먹였다고 논란이 일면서[35] 민심을 완전히 잃고 팀을 떠났다. 3년간의 선동열 체제는 KIA 팬들이 타이거즈 감독은 꼭 해태 출신이 아니어도 된다고 생각하게 해주었으며 이는 해태순혈주의를 깨는 시금석이 됐다. 이후 2022년에 원 클럽 플레이어로 은퇴한 후 말단 코치부터 차근차근 올라온 김종국을 오랜만에 프랜차이즈 출신 감독으로 선임했지만 2023시즌 종료 후 배임 혐의로 경질되며 오래간만의 프랜차이즈 출신 감독 선임은 또 실패로 끝났다.
-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인성이 좋고 실력이 좋은 선수라면 용병이든 누구든간에 차별하지 않고 섭섭하지 않게 대우 잘해주는 구단으로 정평이 나있는 편. 이를 증명하는게 2015년 7월 27일 외국인 타자 브렛 필의 딸 킨리의 돌잔치가 열렸는데,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외국인 선수가 한국식으로 돌잔치를 열게 된 건 처음이고, 돌잔치를 여는 과정에서도 구단은 이를 위해 많은 신경을 써준 것은 물론, 선수단, 코칭스태프, 구단 직원까지 참여를 하였다. 또한, 2015년 시즌 전반기에는 필의 가족을 초청하여 시구를 하는 시구자가 되었고 이후 경기를 관람할 수 있게 신경 써주었다. 게다가 필의 은퇴 이후에는 외국인 선수의 북미지역 담당 스카우터로 채용하고, 한국시리즈에도 초청하는 등, 이러한 복지 면에서는 뛰어난 편이다. 이러한 흐름은 외국인 투수 애런 브룩스의 가족들이 교통사고를 당했을때 치료비를 모금하고 가장 큰 부상을 입었던 막내 아들에게 쾌유를 기원하는 캠페인을 벌이는 등의 행보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 지방 연고 구단인 만큼 시구행사가 많은 편은 아니다. 다만 타 구단들이 유명인사를 시구자로 섭외하기 위해 돈을 쓰는 것에 비해 KIA는 반대로 시구를 원하는 쪽에 돈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덕분인지 유독 광주/전남[36] 산하 기초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시구가 잦은 편이다. 해당 지역의 단체관람객 동원은 덤. 그러면서 구단 한 켠에(특히 외야 출입구 부 울타리) 해당 지자체의 지역 행사를 홍보하는 현수막이 걸리는 등 홍보의 장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KIA가 시구행사로 벌어들이는 수익은 러브 투게더 행사 등 자선단체 기부에 쓰인다.
- 김기태 전 감독이 취임 후 2015년 시즌 선수들의 부상을 막기 위해 홈팀 덕아웃인 3루 쪽에 고사를 지낸 뒤 덕아웃에 북어를 달았다고(!!!) 한다. 그러자 놀랍게도 선수들의 부상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물론 김주찬 덕에 효과가 미미해진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지만 북어는 현재까지 걸려 있다고 한다.
- 구단 프런트가 야알못이라고 오랫동안 까였었다. 현대자동차 그룹의 방침상 전 사장이 사장단 회의에 참석하지 않아 한화 이글스 사장이 대신 결정권을 행사하며 오는 단장들 역시 순수하게 돈과 인프라 지원만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정재공 전 단장 이후 프런트가 구단 운영에 함부로 간섭하지 않고 현장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그야말로 지갑 이상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비판 역시 존재한다. 그러나 2015년 이후로는 조금식 개선되는 모습이 보이는데, 현장의 요청이 있기 전에 박한우 전 사장, 허영택 전 단장을 필두로 한 구단 고위층이 2020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에 재활센터를 건립하는 등[37] 구단 인프라에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다.
- KIA 협력병원에 안과병원이 있는데, 이 곳이 나름대로 시력교정 수술이 유명해서 KIA 소속 선수들이나 KIA를 거쳤던 선수들 중에서 이 곳을 통해서 안경에서 벗어난 선수들이 몇몇 있다. 양현종[38]이나 김종국, 노수광 등이 그 예이고, 장성호는 롯데 시절에 했음에도 KIA와의 연을 통해 안경에서 해방되었으며 조영훈 역시 삼성 시절에 시력 문제로 고생했다가 KIA 이적 후에 안경에서 해방되었다.
- 2017년 7월 5일 기준 한미일 사상 최초 8경기 연속 두 자리수 득점을 기록하였다. 다음 날인 7월 6일에는 5득점만을 기록하면서 연속 기록이 중단되었지만, 7월 9일 20득점을 하며 두 자리수 득점을 기록했다.[39][40]
- '타이거즈(스)'를 구단 이름으로 하는 한미일 세 팀들 가운데 가장 많은 우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2024년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합하면 전신이었던 해태 시절까지 포함해 12회 우승으로 최다이다. 두번째가 메이저리그 소속의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로 4번 우승했다. 3번째는 일본프로야구 소속의 한신 타이거스로 2번 우승했다. 대만 프로야구에서도 싼상 타이거스가 있었지만 이쪽은 승부조작에 얽히며 하위권을 전전하다 해산해서 우승 기록은 없다.[41] 사실 타이거즈라는 구단 이름으로 가장 많은 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는 곳은 12번의 우승을 기록한 멕시코 프로야구 리그의 티그레스 데 킨타나 로오지만 이쪽은 메이저리그 산하 리그 시절 우승 기록이라서 논외로 보며 2024년 KIA가 V12를 달성하며 따라잡는데 성공했다.
- SSG 랜더스가 가을야구 전문구단이라면 여기는 한국시리즈 전문구단이다. 전신 해태 시절을 포함해 창단 이후 진출했던 12번의 한국시리즈 모두 우승으로 종결지었다. 다만 역사 문단에서 서술했던 것처럼 한국시리즈가 아닌 가을야구 스테이지에서는 상당히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시리즈가 아닌 스테이지에서 상대팀을 꺾고 상위 스테이지로 올라갔던 마지막 기록이 무려 1989년 플레이오프다. 결과만 놓고 따졌을 때 1990년대 이후로는 정규시즌 2~5위로 가을야구에 올랐다고 하더라도 얼마 즐기지도 못하고 광탈한 셈이다.
-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 2020년대에 모두 우승을 경험해 본 유일한 구단이다.[42]
- 해태 아줌마가 올드팬들 사이에선 제법 유명하다. 평소에는 껌이나 담배, 응원 도구 등을 파는 행상인인데, 경기가 시작되면 특유의 한복 치마 복장을 하고 응원단석까지 올라가 해태를 응원했다.[43] 반응은 꽤 괜찮았던 편. KIA 인수 후에는 무등 경기장 외야석에 자주 나타났으며, 챔피언스 필드 완공 이후에도 가끔 외야석에서 응원 유도나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홈경기에 가면 자주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지수'라고 불리는 장애인 팬이다. 문제는 그가 부르는 삼진송[44]이 중계방송에서도 들릴 정도로 심각하게 시끄러운 인간 소음공해 수준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응원 자체도 비매너인데 일반 라이트 팬들도 호응해준다. 먹을 것을 달라고 하거나 폭력을 휘두르기도 한다고 하지만 안전경호팀에서도 이를 제지하지 않는다.
- 매년 5월 18일 광주 홈경기를 치를 때는 5.18 민주화운동을 추모하기 위해 경기 전 국민의례 때 희생자들을 기리는 묵념을 하고, 치어리더 응원도 생략하는 등 조용히 경기를 치르는 편이다.
- KBO 리그에서 수도권 원정 9연전을 치르는 세 팀 중 한 팀이다. 다른 두 팀은 롯데 자이언츠와 NC 다이노스. 세 팀은 수도권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팀들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이동거리를 줄이기 위해서 매년 6~7월 수도권 원정 9연전을 떠난다. KIA가 관중 동원이 잘 되는 구단인 것을 감안하여 수도권 9연전을 떠나면 주말-주중-주말 시리즈 순으로 배정한다. 대신 수도권 9연전 앞뒤로는 무조건 홈 6연전이 배정된다. 고로 홈 6연전 - 수도권 원정 9연전 - 홈 6연전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셈.
- 용병들은 제외하고는 국내 선수단은 전부 수염을 기르지 않고 있다. 뉴욕 양키스와 요미우리 자이언츠처럼 국내 선수 위주로만 수염 금지 규정이 있는 거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다만 김봉연, 이용규, 이재주, 김경언이나 2009년 한국시리즈 당시의 서재응의 사례에서 보이듯 실제로는 수염 금지 규정은 없고 그냥 현재 있는 국내 선수들이 수염 기르는 취미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 2018년부터 챔피언스 필드 인근의 선한병원 등이 구단 공식 지정 병원이다. 2018년 이전에는 광주수완병원, 2013년 이전에는 광주한국병원이었다.
- 2022년 기준 KIA 인수 이후 2번의 우승을 모두 경험한 선수는 양현종, 나지완, 안치홍 등 3명 밖에 없다. 그마저도 2024년 11월 기준으로 안치홍은 2020 시즌에 롯데로 이적했다가 23시즌 이후 한화로 이적했고 나지완은 2022년 10월 7일 은퇴식을 열며 은퇴를 공식화했다. 이제 남은 선수는 2009년 당시 투수조 막내였고 2017년의 에이스였던 양현종 뿐이다.
- 선수들의 e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강한 편이다. 특히 최원준 선수의 경우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에서 주최한 리그 오브 레전드 대회에서 우승하고 MVP로 뽑히면서 E스포츠 팬들에게도 이름을 알렸다.
- 타 구단에 비해서 시스템 없이 주먹구구 식으로 운영한다는 비판을 많이 들었던 팀이다. 소위 2군, 3군 운영도 도입이 늦은 편이었고 훈련장 인프라나 스카우팅도 좋지 않아서 한번에 돈을 써서 우승을 하기는 했지만 길게 보면 중하위권에 안착한 기간이 길었다. 감독 선임도 프랜차이즈 감독 잔혹사를 보면 알 듯이 고집부리면서 최악의 수를 둔 경우도 00년대부터 굉장히 많았다. 1군 주전급들은 좋지만 백업 야수진이 엉망이여서 시즌 중에 좋은 성적을 거두다가도 다시 하락하는 경향이 많았다. 다만 202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 평가는 조금 변했는데 시스템 하나는 잘 갖춰놓아서 중위권이다는 소리가 나오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10년대 후반부터 유망한 선수 지명->우수한 스태프의 육성-> 성공적인 1군 안착이 이루어지며 타 팀에서 애매한 선수들도 KIA에서 잠재력을 개화시킨 케이스도 많아지는 등 선수단의 뎁스가 최상위권이고 인프라 투자나 FA, 트레이드에도 적극적으로 성공적인 전력강화를 이뤘다. 다만 감독 선임 문제가 고쳐지지 않아서 선수단의 능력 대비 성적이 엉망이었다는 점이 과거와 다른 상황이다.[45]
- 다른 팀 프렌차이즈 스타를 빼오는데 도가 튼 구단이다. 2011시즌을 앞두고 김태균 다음 가는 한화의 야수 프렌차이즈 스타 이범호를 하이재킹한 것을 시작으로 2012시즌 종료 후에는 FA로 풀린 김주찬을 4년 50억 원에 영입해왔다. 그리고 2016시즌 종료 후 삼성 왕조의 4번 타자이자 유력한 영구결번 후보 최형우에게 사상 첫 100억 원대 계약을 안겨주며 영입에 성공했고 2022시즌 종료 후 NC의 상징과도 같은 선수였던 나성범마저 뺏어오는데 성공했다. 반면 KIA는 템퍼링 의혹이 있는 이용규와 팀 사정상 갈 길이 달랐던 안치홍 정도를 제외하면 다른 팀에게 프랜차이즈 스타를 뺏긴 적은 없다.[46]
- 그리고 2010년대에 들어서 다른팀에 있는 호남출신 선수를 FA 등으로 데려오는 경우가 많이 볼 수 있다. FA의 경우 2013시즌 종료 후 LG 트윈스에 있었던 이대형(광주제일고 졸업)을 영입하였고, 2016시즌 종료 후에는 삼성 라이온즈에 있었던 최형우(전주고 졸업)를 데려왔다. 2022시즌을 앞두고는 당시 역대 최고 금액으로 NC 다이노스에 있었던 나성범(광주진흥고-연세대 졸업)을 데려왔다. FA는 아니지만 2023시즌 후 LG 트윈스에 있었다가 자진해서 방출되어 무소속이었던 서건창(광주제일고 졸업)을 영입한바가 있다.[47] 2009시즌 전에는 한화 이글스에 있던 신종길(광주제일고 졸업)을 맞트레이드로 영입한바가 있다.[48]
- 2024시즌 종료 시점에 한국시리즈 최다 우승(통산 12회) 경력을 지닌 명문구단이지만, 0[49], 2[50], 5[51]로 끝나는 해에서는 한국시리즈 우승을 한 적은 없다.[52]
- 응원석이 1회부터 9회까지 쉬지 않고 응원에 집중하는 분위기라, 기아 팬들은 1회초가 시작하기 전에 먹을 걸 다 먹고 오며 경기 초에 눈치껏 먹다가 경기가 진행될수록 응원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그래서 정반대로 1회부터 9회까지 뭔가를 먹는 경우가 많은 두산 팬들이 가면 문화충격을 받는 경우가 많다.
[1] 그러나 강하승은 타어강이라는 역대급 DTD이후 방출되었다.[2] 막상 12시즌이 끝나자마자 박철우 2군 총괄코치는 타격코치로 밀려나고 한화에서 잘린 한대화를 새 2군 총괄로 데려왔다.[3] 당장 KIA시절에 혹사에 허덕이며 재활군에 있던 신용운이 삼성에서 다시 정상적으로 선수생활 하는것을 보면 어느정도인지 실감이 간다. 오죽하면 팬들도 안타깝지만 그래도 KIA 나가서 천만다행이란 말을 할 정도니.[4] 의료시스템의 경우 범현대가를 활용하면 되지 않냐고 하지만, 범현대가의 의료기관인 아산의료원은 현대중공업그룹 관할이라 야구와는 관계가 없다.[5] 육성능력 보다는 애초에 조범현 말기~선동열 시절의 뻘픽으로 원석들이 극히 적은 게 문제다.[6] 야안갑이라고 놀림을 받지만, 나이를 감안하면 엄연히 얘가 KIA 외야수 유망주 랭킹 1위다. 2021년 5월 22~23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2경기 연속 홈런으로 가능성을 보였으나 2022 시즌 초 한화 이글스로 트레이드되었고 거기서 터진다.[7] 이 해 같이 데뷔한 선수가 바로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이다.[8] 본래 양준혁은 1992 시즌에 프로에 데뷔할 수 있었으나 삼성이 김태한을 1차지명하는 바람에 양준혁이 2차지명으로 밀렸고, 쌍방울 레이더스가 그를 2차 2라운드에서 지명했지만 삼성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던 그는 군입대를 선택했고, 결국 1993 신인드래프트에서 삼성이 그를 1차지명하기에 이르렀다.[9] 대마초의 경우, 미국에서는 속지주의로 처벌되지만 한국은 속인주의를 채택함은 물론 대마초가 원칙적으로 불법이다.[10] 최형우가 후배 선수와 귀멸의 칼날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11] 사실 지금 최형우는 한국 나이 40으로 팀 내 다음 번 짬밥인 고종욱, 나성범, 김선빈, 서건창과도 대략 6살 정도 차이가 나는, 프로 전체적으로도 최고참이다 못해 말년병장급 짬라인에 드는 선수다. 아마 본인이 박정권이나 정현욱에게 당한 것을 보상 심리로 후배들을 놔두는 듯.(박정권이 전주고 시절 선배였으며 정현욱은 지금까지도 전설의 짤로 회자되는 야 지금 우규민 나오냐의 장본인인데 그때 털린 게 최형우였다.)[12] 평소에는 얌전히 있다가 특정 선수가 야구에 대해 진지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선배여도 가차없이 독설을 날린다. 특히 어린 선수들을 집중 관리하는데, 어린 선수들에게 군기반장으로 통할 정도이다. 다만 똥군기는 부리지 않는다. 팀 내 분위기를 잡기 위해 본인이 스스로 악역을 자처한 것으로 보인다.[13] KIA와 SK가 벤치 클리어링을 벌였던 대표적 사례는 윤길현 욕설 사건이 있었던 2008년 6월 15일 경기와 서재응과 정근우가 충돌했던 2009년 한국시리즈 3차전 경기이다.[14] 하지만 김종국은 2024년 배임수재 혐의에 걸리면서 타이거즈 역사상 최악의 감독으로 타이거즈를 떠나고 말았다.[15] 이적이 확정되고 나서 마음이 너무 복잡해서 새벽에 홀로 정처없이 걸었다고 한다.[16] 물론 지금 KIA는 김도영이나 윤도현 같은 신인급 내야 자원이 많아 류현인을 지명할 가능성이 낮긴 하지만... 실제로 KIA는 류현인을 지명하지 않았고 kt가 7라운드에서 류현인을 지명하였다.[17] 해태 타이거즈의 원정 유니폼 색상은 빨간색이었지만, 유니폼만 영국 근위병에서 따온 빨간색이었을 뿐 엠블럼에서 보이듯이 당시 메인 컬러는 검정과 노랑이었다. 이 영상을 보면 당시 관중들이 노란색 깃발을 흔든 게 보인다.[18] 2018년 손영민이 다시 이 등번호를 되찾음으로써 다시 이어지게 되었다가 다시 끊겼는데 2021년 윤중현이 다시 잇게 되었다.[19] 차일목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대타요원이던 이재주에게 마스크를 씌웠다. 다만 이재주의 포수 능력은 상당히 떨어진다.[20] 물론 애초부터 양의지가 고등학생 시절부터 초특급 선수였던 것은 아니다. 당장 지명 순번이 2차 8라운드였다. 양의지의 기량이 급성장한 것은 경찰 야구단에 입대해서 유승안 감독의 조련을 받은 이후부터다. 실제로 양의지 본인도 자신이 KIA로 갔더라면 이정도로 성공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고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21] 다만 이런 인터뷰와는 별개로 양의지도 고향팀인 KIA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KIA 역시도 양의지를 영입할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운이 너무나도 없었는데 당장 조범현 시절에 당시 무명이던 양의지를 트레이드로 영입하려 했으나 무산되었고 1차 FA때에도 양의지가 KIA 행을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2017 FA 당시에 최형우, 양현종, 나지완을 잡는데 거금을 써서 팀연봉 총액 1위가 된지라 섣불리 나설수가 없었다. 실제 현장에서도 양의지가 FA 시장에 1년만 늦게 나왔어도 양의지는 KIA의 몫이었다고 이야기를 할 정도. 이후 2차 FA때도 아예 두산 아니면 KIA로 가겠다 결심을 굳히고 의견을 보냈는데 이번에도 샐러리캡에 발목 잡히며 영입 시도도 하지 못했다.(당시 박동원을 이적시키더라도 양의지를 영입하면 샐러리캡을 초과해버리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이쯤 되면 그냥 양의지와 KIA의 연은 이번 지구에선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그나마 남은 루트는 정성훈의 사례처럼 진짜 선수 생활 마지막 해에 오는 것 정도인데 이것도 두산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양의지에겐 쉽지 않은 길이다.(정성훈과도 다른것이 정성훈은 선수생활 시작은 해태 타이거즈에서 했기에 KIA 복귀가 가능했다. 두산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한 양의지와는 차이가 있다는 이야기.) 결국 양의지에게 남은 고향팀에 대한 애정 표현의 현실적인 길은 이호준처럼 은퇴시즌 마지막 광주경기에서 은퇴는 타이거즈에서 하고 싶었다는 소회를 밝히거나(이것도 이호준이 선수 생활 시작을 KIA의 전신인 해태에서 했기에 가능했다.) 은퇴 후 배터리나 타격 코치로 KIA에 오는 것 정도다.[22] 거기다 종전 KIA 시절 최다홈런 기록을 넘어섰다.(종전 기록은 2009년 김상훈이 기록한 13개였다.)[23] 이 경우 포지션 정리가 필수인데 일단 나이가 더 젊은 박동원이 주전 포수로 계속 나오되 양의지는 지명타자나 1루수를 소화하며 박동원의 체력 안배용이나 부상으로 인한 장기 이탈등의 사유 발생시 포수 마스크를 쓰는 방향으로 갈 것으로 보인다.[24] 타이거즈 세이브 1위인 선동열도 93년에 마무리로 전환했다가 94년 불펜에서 부진을 거듭한 끝에 선발 재전환까지 시도했던 어찌보면 커리어 최악의 시기가 껴있었으며 임창용은 2년 연속 20세이브 이상 기록하며 연착륙하나 싶었으나 부상 이탈 후 삼성으로 떠나버렸다가 2016년이 돼서야 돌아왔다. 윤석민도 05, 06시즌 2년 연속 마무리로 뛰긴 했으나 곧바로 선발로 보직 변경하였으며 한기주는 07, 08시즌 리그 상위급 마무리의 위용을 선보였으나 고교시절 및 신인시절 혹사의 여파로 끝없는 재활길에 들어서게 되었다.[25] 윤석민 이후 두 자릿수 승수를 기록한 국내 우완 선발 자원이 없었기에 그 몫을 정해영에게 기대하고 있던 중이었다.[26] 공교롭게로 두산은 KIA전 열세를 기록한 해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27] KBO리그 역대 한경기 최다득점 경기도 이 시즌이었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이 시즌 KIA가 유독 2위 상대로 강했는데 두산이 시즌 초 1경기차 2위일 때는 위닝시리즈를 거두고 승차를 벌렸다.[28] 2024년 기준 KIA의 서울 연고팀들 상대 2013년~2024년 상대전적은 두산전 70승 117패 5무, LG전 88승 102패 2무, 키움전 84승 107패 1무다. 그런데 정작 LG가 우승한 2023년에는 오히려 KIA가 LG에 9승 7패로 근소하게나마 앞섰다. 그리고 2024년 시즌에는 LG 상대로 무려 13승 3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어 정말 오랜만에 상황이 반전되었으며, 키움 상대로도 11승 5패로 우위를 확정지었다. 하지만 두산에게는 6승 1무 9패로 밀려 여전히 곰 공포증을 떨쳐내지 못한 모습이다.[29] 2021~2024년 4년간 SSG전 상대전적이 24승 1무 39패로 상당히 밀려 2020년 기준 +13이던 통산 상대전적 마진도 2024년 -2로 근소하게 열세로 넘어갔다.[30] 2015년: 잠실 1경기, 2016년: 잠실 2경기, 2017년: 수원 3경기, 2018년: 수원 2경기, 2019년: 잠실 3경기, 2020년: 고척 3경기 + 잠실 2경기, 2021년: 잠실 2경기, 2022년: 인천 2경기 + 잠실 2경기, 2023년: 고척 1경기 + 인천 2경기[31] 이런 현상은 창원 NC 파크에서도 볼 수 있다. 마산고속버스터미널이 창원 NC 파크와 매우 가깝기 때문. 그런데 NC는 KIA와는 달리 추석 연휴에도 홈경기를 많이 치르고 있다.[32] 2001년 입단부터 2011년 이전까지 우리나라에선 한화 이글스 소속으로 뛴 선수였다.[33] 김기태도 광주광역시 출신이라 사실상 비연고지 감독은 조범현과 맷 윌리엄스 뿐이다.[34] 아이러니하게도 위 비해태 출신 두 감독이 KIA 타이거즈의 유이한 우승 감독이다.[35] 물론 실제는 지금 구단이 열렬히 너의 입대를 반대하고 있는데 무작정 나간다면 구단이 임의탈퇴라는 수단도 꺼내들 수 있다며 안치홍의 입대를 만류하는 것이었다만 해명도 늦었고 임의탈퇴라는 단어가 너무 강렬했던지라 알려지는게 늦었다.[36] 전라북도의 경우 경기도 열리지 않은지 오래되었지만 그룹 계열사가 스폰하는 지역 축구팀이 리그를 탈탈 털며 왕조를 구축하다 못해 아시아의 정복자로 등극하고 있는 형편이라, 국내축구와 K리그의 전반적인 사정과 달리 지역내 위상과 축구 열기가 이례적으로 뜨겁다. 그래서 이 지역 지자체장들은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자주 볼 수 있고 지역 지자체의 날이나 홍보행사 역시 전주성에 집중되어 챔피언스 필드에서 볼 수 있는 전북권 정치인들은 정세균 국회의장처럼 전국구 헌법기관장 등으로 축소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특히 정세균은 해태 시절부터 타이거즈를 응원해온 올드팬이기도 하다.) 단 이러한 현상이 전북 지역에서 타이거즈에 대한 관심이 없어졌다는 뜻은 아니다. 당장 KIA에서 활동하며 인기를 끌었고 본인부터가 KIA 아니면 치어리더 의미가 없다 밝혔던 이다혜 치어리더도 전주 출신이었다. 물론 이쪽은 서한국 단장과의 갈등으로 소속사를 나왔긴 했지만 타 KBO 야구팀 응원은 하지 않고 대만으로 가는 길을 택하며 타이거즈에 대한 의리는 지키고 있다.[37] 현장의 요청 때문에 만든 게 아니라 그룹 고위층의 지시로 만들어졌다고 한다.[38] 경기를 할 때 안경을 쓰지만 도수가 없는 것이라고 한다. 2017시즌 전 팀 우승이 확정된다면 다음 시즌부터 안경을 벗고 던진다고 했으나 2018년 시범경기 첫 등판에서 안경 없이 나와 좋지 못한 기록을 남기면서 안경을 다시 쓰고 던지기로 했다.[39] 한미일 종전 기록은 뉴욕 자이언츠가 1929년 6월 20일~23일까지 기록한 6경기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이다. 기간 동안 더블헤더 4경기가 포함돼 나흘 만에 이러한 기록이 탄생하게 되었다.[40] 타팀 팬들이 한미일 사상최초 혹은 메이저리그를 넘어섰다는 등의 수식어 때문에 리그 간의 수준차를 논하면서 이 기록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런 논리대로면 2003년 이승엽이 기록한 아시아 홈런 신기록도 종전 기록이 NPB에서 나왔기 때문에 이것 역시 인정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종전 기록은 1929년에 뉴욕 자이언츠가 기록한 6경기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이다. 이 기록이 탄생한 해가 최근이라면 수준차를 논할 수 있었겠지만 1929년 탄생한 기록이기 때문에 수준차를 애초에 논하기 힘들다.[41] 1990년에 대만시리즈에 진출하긴 했지만 웨이취안 드래곤스에게 2승 4패를 당하며 준우승에 그쳤다.[42] 한국시리즈 우승 2위의 삼성 라이온즈마저도 1990년대 한국시리즈 우승이 없다. 사실 1985년 우승도 통합 우승을 해 한국시리즈가 열리지 않아 1980년대도 한국시리즈는 우승이 없다. 두산도 2020년대에 아직 우승이 없다.[43] 잠실이나 인천(숭의야구장 시절) 원정때도 종종 따라 왔다.[44] 퀸의 We Will Rock You의 후렴구와 비슷하게 부른다.[45] 일례로 과거에는 하위권 전력에 팀 시스템도 엉망이라서 반등도 못했다면 현재는 우승 경쟁을 할만한 체급을 감독의 운용으로 포스트 시즌 진출 경쟁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46] 이는 KIA가 FA 이적한 선수에 대한 대우를 프랜차이즈 스타급으로 잘 해준 케이스가 많아서 선수 입장에서도 이적하기 좋으며 FA 투자 금액도 높은 편이라 경쟁 구단과 금액 경쟁을 이기는 경우가 많아서다. 일례로 이범호, 김주찬 등은 KIA에서 FA 재계약도 문제없이 해주고 이범호에게는 은퇴식, 현역 연장을 원한 김주찬에게는 보상없이 FA로 풀어주어 타 구단 이적을 허용하는 등 선수 친화적인 최고 대우를 해줬다. 계약 비용도 타 팀 프랜차이즈 스타급 선수에게는 최고 수준급 거액으로 비드했다.[47] 서건창이 LG에서 방출된 뒤, 전 소속팀이었던 키움 히어로즈에서 영입제의를 받았으나, KIA 타이거즈가 고향구단이기도 했고 KIA에서 더 많은 기회가 있을것으로 판단해 KIA 타이거즈에 입단했다. 그리고 2024시즌에 KIA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덕분에 그해에 한국시리즈 출전 명단에 이름을 올렸으며 우승반지를 얻었다.[48] 위의 인물들은 학창시절에 해태-KIA 타이거즈를 보면서 야구인으로서의 꿈을 키웠고, 인터뷰에서 고향팀인 KIA 타이거즈에 가고 싶어했다고 밝혔다.[49] 1990년 - LG 트윈스 / 2000년 - 현대 유니콘스 / 2010년 - SK 와이번스 / 2020년 - NC 다이노스[50] 1982년 - OB 베어스 / 1992년 - 롯데 자이언츠 / 2002년 - 삼성 라이온즈 / 2012년 - 삼성 라이온즈 / 2022년 - SSG 랜더스[51] 1985년 - 삼성 라이온즈(전•후기 리그 통합우승) / 1995년 - OB 베어스 / 2005년 - 삼성 라이온즈 / 2015년 - 두산 베어스[52] 반대로 1 - 1991 / 3 - 1983, 1993 / 4 - 2024 / 6 - 1986, 1996 / 7 - 1987, 1997, 2017 / 8 - 1988 / 9 - 1989, 2009